Traveler,

- 길을 걷다, 세계여행/Feel-ing, 세계일주-ing, · 2011. 8. 10. 23:53

반응형
2nd edit.(1st (10.01.02))

- Traveler

Just, Traveler.

I am Traveler, not a Tourist.

"여행자" -엄밀히 말하자면 배낭여행자(Backpacker)-들은 여행을 하면서 많은 것들을 만난다. 그것들과 헤어진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많은 이야기가 존재하고 생각이 존재하게 된다.

  그 만남과 헤어짐이라는 '공간'에 존재하는 이야기와 생각들. 우리가 여행을 하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건,
우리가 '관광객(Tourist)'가 아닌 "여행자"이기 때문이다.


--------------------------



터키, 카파도키아의 5월.
반응형

Ep] 그리스, 산토리니 - 냉정한 그리스, 안그래도 억울한데 돈까지 더내라고?!(Santorni, Greece)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1. 7. 16. 16:48

반응형

second edit(1st 10.30.10)

1. 대중교통, 현대인의 쉼터.

  대중교통[지하철, 버스, 기차 등]을 이용하다보면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 있다. 가끔은 자기 자신이 그 장면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지만, 그러한 모습 때문에 자기 자신이 불편을 겪고 얼굴을 찌푸린 일이 있을 것이다. 지하철이 출발하고, 도착 할 때 옆 사람의 머리가 나의 어깨를 슬며시 누를 때가 있다.

  아침 출근길의 지하철이나 오후 나른한 시간의 버스. 많은 사람들이 대중교통이라고 일컫는 탈것 안에서 잠을 청하고 있다. 자신의 의지에 의한 잠이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찾아온 잠이든, 대중교통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하게 다가와 있기에 많은 사람들은 그 속에서 잠을 청하고 있는 것이다.

  대중교통과 그 안에서의 졸음. 어떻게 본다면, 대중교통은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생활에 지친 사람들에게 잠깐이나마 휴식의 시간을 제공한다. 현대인의 쉼터가 되고 있다.


2. 집에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가 깜빡 졸았던 적이 있다. 

  너무 졸려서 잠깐 눈을 감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집까지 여섯 정거장 정도 남아 있었다. 아니 눈이 감기기 전에도 여섯 정거장 정도 남았었는데 어떻게 된 거지? 라는 생각에 시계를 보니 두시간이 지나 있었다. 지하철 2호선...한바퀴를 돈 것이었다.

  도시가 어둠에 휩쌓여 있을 때 부터 술을 마시다가, 태양이 도시를 깨울 때 쯤 집에가던 시절이 있었다. 대학 새내기 시절, 상쾌한 아침 공기와 태양의 따스함을 느낄 무렵 집에 가던 때였다.  신입생 시절은 그렇게 지하철 2호선을 타고 한두바퀴 도는건 기본이었다.

 친구의 이야기, 밤 늦도록 술을 마시다가, 막차를 타고 집에 간다는 친구가 있었다. 친구는 집에 가기 위해, 당고개행 열차를 타고 당당히 집을 향해 갔다. 친구는 정신을 잃었고, 나중에 정신을 차려보니, 열차 차량기지에서 잠을 자고 있더랬다. 그리고 그의 한쪽 신발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그는 자신이 간디가 되지 못한 사실에 대해 안타까워 하고 있었다. 그리고 신발이 벗겨진 그 한쪽 발은, 진흙 범벅이 되어 있었다고 했다. 무슨일이 일어났던 걸까? 술과 잠이 문제다.

  우리나라 기차는 참 관대하다.  기차를 타고 고향 집에 내려가다 보면 가끔 잠이 들 때가 있다. 그러다가 내가 내려야 할 기차역을 지나친 경우가 있다. 그렇게 되면, 그 다음 역에 내려서 역무원에게 말을 하면, 다시 반대편으로 가는 열차를 타고 돌아갈 수 있게 해 준다. 내 친구 중 한명은 너무나도 깊이 잠이 든 나머지, 대구에서 내려야 하는데, 부산까지 갔다 온 적이 있다고도 했다. 그렇게 역을 지나쳐도, 추가요금을 내지 않고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인가?


3. 
  사실, 그리스에 갈 마음은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산토리니(Santorini)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계획에도 없던 산토리니에 가기로 했다. 

  그리스 아테네에 도착한 첫 날, 아침. - 야간 열차를 타고 그리스 북부의 테살로니키에서 왔는데, 같은 칸에 탄 사람이 밤새도록 떠들어대서 너무나 피곤했다 -  너무나 피곤한 나머지 역 안의 대합실 의자에서 한 시간만 졸다가 일어나야 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졸고나니, 내 눈앞이 뭔가 허전했다.
  왜일까? 라는 생각을 잠시 한 후에,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내 눈앞에 놓아 두었던 배낭이 없어진 것이었다. 내 배낭.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배낭을 도둑 맞은 것이었다!!!  

 
헐.... 좌절에 좌절에 절망에.....다행히 카메라, 노트북, 여권은 작은 가방에 넣어두고 의자 바로 밑에 넣어두어서 괜찮았지만, 큰 배낭이 없어졌다는 사실에 정말 어이가 없었다.
  일단,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찾을 도리는 없었다. 잃어 버린건 잃어버린 거고, 좌절모드였지만, 그래도 산토리니에 가려고 왔으니 산토리니에는 가봐야 겠다 싶어서 배를 타러 갔다. 온종일 아무것도 못 먹고, 배낭을 찾아보겠다가 역 주변 반경 1km(?)내에 있는 휴지통을 다 뒤지고 하느라고 정말 피곤한 하루였다.

  산토리니로 가는 배표를 끊고, 겨우겨우 배에 올랐다. 정말 내 꼴은 거지꼴이었다. 땀 냄새가 내 몸에서 진동을 하고 있었다. 배 안에 있는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고 나니, 정말 개운했다. 살 것 같은 기분에 도취될 무렵, 졸음이 슬슬 몰려 왔다.

  승무원에게 몇 시 쯤에 산토리니에 도착하냐고 물어보니, 새벽에 도착한댄다. 아니 새벽 몇시에 도착하냐고!? 몇 번이나 물었지만 그냥 새벽이랜다. 새벽이면,,,다섯시? 뭐 그쯤? 그러니까 뭐 그럴지도 모르겠단다. 아니, 뭔 한두번 가는 것도 아니면서 도착 예정 시간을 몰라? 일단 피곤한 마음에 나는 그냥 구석에 가서 잠을 청하기로 했다. 어차피, 산토리니에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니까, 그때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나가면 깰 수 있겠지라는 생각에...


4. 
  그는 뭔가 이상하 느낌에 눈을 떴다. 눈을 뜨니, 주변에 사람이 아무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엔진소리가 우렁차게 났다. 설마.... 그는 승무원에게 가서, 산토리니, 산토리니를 외쳤다. 그러자, 그 승무원은 창밖을 가리키면서 산토리니라는 것이었다. 산토리는 점점 그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배는 산토리니 항구를 떠나 다른  섬을 향하고 있었다. 그는 정말 뛰어 내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승무원에게 산토리니 가야된다고 내 표를 보여주면서 내려야 된다고 하니, 그 때 승무원이 그에게 한 말이 더 가관이었다. 너는 지금 코스(Kos)섬으로 가는 배를 타고 있으니, 돈을 더 내야해. 20유로를 더 내. 뭐라고? 미쳤냐? 돈없어. 산토리니 못내린 것도 억울한데 돈을 더 내라고? 미쳤냐? 그는 배째라는 식으로 나갔다. 하지만 그런 수작이 먹힐리가 없었다. 돈을 내지 않으면 경찰을 부르겠다면서 그들은 오히려 더 난리를 피웠다. 어이없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었다.
 
  그는 결국 20유로를 더 뜯겼다. 그리고 그 다음 정박지인 코스섬에 내렸다. 어차피 그 배는 산토리니로 돌아가니까, 그 배에 계속 타고 있다가 산토리니에 내리겠다고 했더니, 그 배는 더 멀리(로도스)섬 까지 갔다가 돌오니까 그러면 60유로를 내야한다는 것이었다. 에이 미친것들. 그는 20유로만 낸 채 침을 뱉으면서, 코스섬에 내렸다.



5.  
  코스섬에는 가족단위 휴양객들이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돈도 없는 본인. 배낭 도둑맞고, 자다가 산토리니에 내리지도 못하고 돈만 더 뜯기고, 돈도 없고, 옷도 없고, 씻지도 못하고 정말 거지가 따로 없었다. 다시 배가 오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날씨는 덥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 비참했다.


6. 
  오후 6시 무렵, 선착장에 산토리니로 가는 배가 왔다. 산토리니를 거쳐서 아테네로 가는, 그가 타고 왔던 그 배였다. 그는 정말, 그냥 그 배를 타고 아테네로 가고 싶었다. 그냥 산토리니고 뭐고 다 때려 치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차마 그럴 순 없었다. 그렇게 되면 그가 그렇게 고생을 한 이유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산토리니로 가서 침을 뱉겠다고 다짐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산토리니로 갔다.
  코스에서 산토리니로 가는 동안 그는, 홍콩계 미국인인 애와 이런저런 대화를 했다. 그녀는 그에게 말을 주면서 즐겁게 해 주려고 했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산토리니에 대한 증오로 넘쳐나고 있었기에, 대화가 깊이있게 진행될 수 없었다. 그리고 마음 한켠엔 썩어빠진 그리스 놈들에 대한 증오도 일어나고 있었다. 

  산토리니, 좋았긴 했지만, 정말 그리스는 나랑 안맞는 나라다.


- 아테네 항구

- 코스 섬, 해안 도로


- 코스섬에 정박중인 요트들


- 산토리니로 가는 배, 사람이 정말 몇 없었다


- 바이바이, 코스섬


- 산토리니..............폭파시켜버리고싶었다


- 산토리니의 밤, 아름다웠다.



반응형

Ep]그리스, 아테네 - 아무도 길가의 악사에게 동전을 던지지 않는다.(Athens, Greece)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1. 7. 16. 10:55

반응형

second edit.(1st 8.28.10)

1. 길을 걷다 어디선가 음악이 들려오면,
  길을 걷다 보면, 가끔 우리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악을 들을 수 있다[당신의 귀에 꽂혀 있는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아닌]. 그것이 스피커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이든, 아니면 누군가가 거리에서 자신의 몸으로 음악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든 우리는 그 공기의 울림 사이를 지나가게 된다. 때로는 유행가가 흐르고, 때로는 오래 되었지만 누구나 알 수 있는 유명한 곡[고전일 수도 있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유행가일 수도 있다] 
  
  음악이 울려퍼지는 그 곳으로 시선을 돌려보자[스피커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과 사람이 연주하는 음악은 듣기만 해도 구별 가능하므로], 그리고 그 곳에서 연주를 하고 있는 사람을 바라보자. 그는 자신의 느낌을 담아, 불특정 다수의 대중에게 자신의 느낌을 선율에 따라 전달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어떤 음악이든, 그 음악은 그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길거리에 울려퍼지는 음악에는, 그것을 연주하는 사람의 소울[Soul]이 담겨있다. 우리는 그것을 느끼고 공감하면 된다.


2. 거리의 악사.
" 띠리리링……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스크린 도어가 닫힘니다....."
오늘도 충무로역 계단을 따라 내려가 역 속으로 몸을 담갔다가, 다시 내 몸을 지상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오후 6시.
충무로역사 안, 음악소리가 나에게 다가와 내 귓가 주위를 맴돈다.들려온다. 나의 발걸음은 기계적으로 출구를 향하고 있다.
한쪽 모퉁이에 위치한 악사에게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내 귓등을 때리지만, 그 울림은 점점 약해질 뿐이다.
  1번 출구.
대한극장 출입구에서 흘러나오는 묘한 향기가 나를 상념속으로 밀어 넣는다. 지상으로 나를 밀어내주는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싣자, 내 시선은 저 통로 끝자락에 머물고 있는 허공으로 향했고, 나는 거기에 없었다.

  프랑스의 한 지하철 역사안, 거리의 예술가 한명이 바이올린을 켜고 있다. 바이올린의 울림이 지하철 안을 울리고 있다. 잠시 후, 내 몸을 싣고 어딘가로 사라져버릴 열차의 굉음이 지하철역 안에 울려퍼지기 시작했고, 그의 음악 소리는 점차 사그라 들었다.

  뉴욕, 42번가 타임스퀘어 역사 안. 음악이 울려퍼진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 음악 소리가 그 사이를 채우고 있다. 나는 역 안에 채워진 음악소리를 내 귀속에 주워 담으며, 유유히 플랫폼으로 걸어갔다.  음악이 있던 자리는 열차 바퀴와 철로 사이에서 나는 굉음으로 채워 졌다.

  네팔의 오래된 버스 안. 허름한 차림의 악사가 네팔 전통악기를 들고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나서 버스 안에 울려퍼지는 네팔의 전통 음악. 아름 다운 선율이 내 귓가를 자극한다. 마치 바이올린과 흡사한 소리지만, 바이올린은 아니다. 음악이 멈추자, 사람들은 그의 손에 동전을 쥐어 준다. 

 
 콜롬비아의 시내버스 안. 한 남자가 자신의 머리통보다 큰 라디오를 들고 버스로 올라탔다. 곧, 음악이 울려 퍼지고, 그는 그 음악에 맞추어 노래를 부른다. 콜롬비아의 음악일까? 처음 들어보는 노래지만, 그 노래가 그 음악이 마음에 든다. 좋다고 생각한다. 내 주머니를 뒤져, 그의 손에 동전을 쥐어주자 그의 표정이 환해진다. 나에게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리스 아테네의 한 거리, 광장. 내가 있었다. 한 쪽 어깨에는 커다란 악기가 매달려 있다.  아프라칸 드럼 잠베[djambe].
  나는, 내리쬐는 태양아래, 광장의 한쪽 모퉁에에 자리를 잡고 북을 두드렸다. 북의 울림이 광장 전체에 울려 퍼졌고, 사람들은 나를 바라보았다. 내 앞을 지나가며 가볍게 몸을 흔드는 이들도 있다. 나는 마음의 눈을 감고 내 몸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느낌을 손으로 전달했다. 손을 통해서, 소리가 만들어져 광장에 또 다시 울려 퍼졌다.


"길을 지나가는 숱한 행인중 누구도 저 악사에게 동전하나 던지지 않는 걸"

- The Quiett 의 "그 후 몇년 中"



3. 음악으로 소통하다
  그리스는 나와 악연으로 맺어진 나라라고 생각했다. 2005년 그리스를 방문 했을 때도 힘든 시절이었다. 그리고 2009년 여름 또 다시 그리스를 방문 했을 때, 내게 너무나도 가혹한 시련을 주었다.
  
  내가 가진건 작은 가방 하나와, 악기하나 뿐이었다. 돈도 없었다, 아는 사람도 없었다.
오늘 아침, 나는 배낭을 도둑 맞았고, 내가 가진건 작은 가방 하나와 악기 였다. 악기를 도둑맞지 않은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음악은, 악기는 나를 편안하게 해 줬다. 나에게 괴로운 마음이 들 때, 내 마음을 음악에 쏟을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잠시나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주었고, 나를 행운, 행복 속으로 밀어넣어 주었다.


  그리스의 번화가,
  수많은 거리의 악사들이 있었다. 그들 틈에, 나는 자리를 잡고, 악기를 연주했다. 
연주라고 하기보다는 그냥 두드림에 가까운 소리였다. 거리의 수 많은 악사들은 다양한 현악기들로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 냈지만, 다양한 기교를 부릴 수 없는 타악기의 한계랄까? 나는 두드림, 심장의 울림을 퍼뜨리고 있었다.
  나는  리듬에 맞춰 두드렸고, 지나가는 행인들은 리듬을 탔다. 몸을 흔들었다. 리듬을 타는 행인들을 보며, 나는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한 상점 주인은 시끄럽다며, 나를 멀리 쫒아내기도 했지만, 나는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 악기를 연주했다. 더러는, 내 사진을 찍었고, 비디오카메라를 들이댔다.  더러는, 나에게 동전을 던져 주었고, 더러는, 환호를 보내 주었다.

  그 곳에서 노래는 부르는 다른 거리의 악사와 함께 협주를 하기도 했다.
비록 언어는 달랐고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하나 될 수 있었다. 바이올린을 켜는 꼬맹이들도 나와 함께 해 주었다. 잠깐이었지만, 꼬맹이들은 나의 음악을 들어주었고, 나와 함께 연주했다.

음악이란, 이래서 좋은 건가? - 세계 각지의 사람들과 하나로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길거리에서 손수레를 끌며 장사를 하는 그리스의 한 늙은 할머니가, 나에게 다가와 동전을 내 손에 쥐어주었다.

적어도 그 순간 만큼은 행복했다. -
돈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4. 그리스에서의 마지막 밤.
  허름한 차림의 한 남자가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한 쪽 어깨에는 흔히 볼 수 없는 악기를 매고 있다. 그의 옷차림이 심상치 않다. 피부는 좀 까만편이다. 그는 그리스의 번화가의 한 상점 앞에 자리를 잡았고,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아! 잠베(djambe). 아프리카 전통악기였다. 
 
  그리스 국가(國歌)에 리듬을 맞춰 북을 두드려 댓다. 빠른 리듬, 느린 리듬, 다양한 음악을 연주한다. 흥미롭다. 사람들은 그를 지나치며 그에게 관심을 보인다. 하지만, 거리에는 수 많은 악사들이 있다. 악사들이 많은 만큼 많은 종류의 악기들이 존재했다.


  하지만, 이 동양인 사내는 좀 독특했다. 그의 북소리는 온 거리에 울려 퍼졌다. 분수대에 앉아서 연주를 하기도 했고, 광장을 울리기도 했다. 특이한 복장의 한 동양인 사내. 그는 사람들에게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했다. 그는 단지 좀 초짜처럼 보였지만, 그 날 그리스 번화가는 흥미로운 볼거리를 하나 더 가진 셈이었다.


  한 시간이 좀 지났을까? 그는 북을 메고 자리를 뜬다. 그의 앞에는 동전 수십개가 쌓여 있었다. 그 동전을 챙겨들고, 한 식당으로 가서 음식을 주문한다. 배가 고팠나 보다. 그리고 음식을 먹고는 유유히 어디론가 사라진다. 행색을 봐서는 여행을 하는 사람이 분명했다. 그의 작은 가방에는 그리스의 국기도 붙어 있다. 저 악기와 저 작은 가방을 가지고 여행을 하고 있는 걸까? 그렇게 그는 사라졌다. 


  그 날 이후, 그리스의 거리에서 그를 다시 볼 수 없었다.






- 아테네의 거리, 이곳에서도 북을 쳤다


- 산토리니, .


- 거리의 악사들



반응형

Ep] 뉴욕(NewYork, NY) - 폭설과 비행 취소. 비행기 비지니스석을 타라고?! (NYC, USA)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1. 7. 15. 23:44

반응형

1. 자연, 재해(災害)

  기술의 발달하면서 인간 문명은 점점 더 나은 생활을 추구하면서 발전을 하고 있다. 좀 더 편안한 삶을 위해서, 사회 곳곳에서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우리들은 그 노력의 결과물을 통해서 더 편리한 삶을 살아간다. 옛날[수백년 전]에는 인공위성이라는 것이 없었고, TV도 없었으며, 라디오라는 것도 없었다. 사람들은 날씨를 예측 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고 여기던 시대가 있었으며[물론 아직도 날씨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 하고, 오늘 날씨는 하늘의 뜻에 따라 바뀌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날씨는 오직 하늘의 신적 존재만이 알 수 있는 것이라고 나에게 말한 적이 있다] , 혹시나 날씨를 예측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우대해 주었다. 그리고 비가 내리기를 간절히 원할 때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기우제.

  기술이 많은 발전을 이루었지만, 그 '기술'이라는 것으로 어떻게 할 수없는 것들은 무수히 많다. 그 중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바로 '날씨'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비가 내릴지 안 내릴 지 예측 할 수는 있지만, [현대의 과학 기술로는] 비가 내리지 않는 곳에 비를 내리도록 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눈이 내릴지 안 내릴지, 얼마나 내릴지 예측은 가능하지만 눈을 많이 내리게 하거나, 내리지 않도록 막을 수는 없다. 가끔은, 그 예측마저도 틀릴 경우가 많다. 이렇듯 자연 현상에 대한 것은 아직도 인간의 기술로는 제어 할 수 없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다. 옛날[우리가 원시라고 부르는 시대] 사람들은 자연에 순응하면서 살아왔다. 산 비탈에 자연과 조화 되도록 집을 짓고, 농사를 짓고 살아왔다. 날씨가 추워지면, 날씨가 따뜻한 곳으로 옮겨 가며 살기도 했다. 인간 문명이 발달하면서 인간은 자연의 일부가 되기 보다는 독립된 존재가 되려 했다. 살기 좋다고 생각 되는 곳을 개발하여, 인간이 살기 편한 곳으로 만들었다.

  현대 사회는, 인간에게 조금 더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제공하기 위해 자연을 지배하려고 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자연 현상을 통제하려 하지만 결국은 자연에게 굴복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부정하려 하고 있다. 우리가 자연 현상 때문에, 우리의 생활이 불편을 겪는다면, 그 때는 그냥 시간을 두고 지켜 보며, 자연과 하나 되는 길을 찾는게 더 옳은 길일지도 모르겠다. 

  자연 현상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서 무언가를 하다가 자연과 충돌이 일어났을 때 재해라고 부르는게 아닐까.



2. 뉴스(NEWS), 전광판의 붉은 글씨.

  비가 많이 오는 장마 철이면, 뉴스에는 장마로 인한 각종 피해 상황을 알리는 뉴스들이 많이 보인다. 철로가 유실되어 기차가 다닐 수 없게 되어 많은 불편을 겪기도 한다. 많은 비로 인해서, 산사태가 일어나서 그 도로가 유실되기도 하고, 사고가 나기도 한다. 심지어는 산 아래의 가옥(家屋)이 매몰되는 일을 겪기도 한다. 물론, 그럴 경우에는 사람들이 다치거나, 사망하기도 한다. 눈이 많이 내려 하우스가 붕괴되어 농민들이 피해를 입기도 하고, 가건물의 천장이 붕괴도었다는 소식을 접하기도 한다.
  
  비가 많이 내리면[아주 많이], 가끔 비행기가 지연되거나 취소되기도 한다. 짙은 안개가 끼면, 비행기는 취소되기도 하고 지연되기도 한다., 눈이 많이 내리면 비행기는 당연히 비행일정이 취소된다. 공항의 비행일정을 알리는 모니터에는 Cancel 이라는 글자가 빨간 색으로 찍힌다. 가끔은 기차역에서도, 사고로 인해서 기차의 운행이 지연되거나 취소되면, 빨간색 글씨를 보게 된다.

  우리는 살면서, 빨간 글씨를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붉은색 글씨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정보들은 대부분, 우리에게 유익하지 않은 정보들이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빨간색 글씨는 우리의 불안샘을 자극한다.



3.  90년 만의 폭설, 워싱턴(Wasington)

  자메이카 킹스톤(Kingston, 자메이카의 수도)를 떠난 JetBlue air사(社)의 보잉기는 카리브해를 지나고, 마이애미(Maiami)상공을 지나고 있었다. 창 밖에는 잿빛 구름들이 빼곡히 들어차있었다. 저 구름들이 땅을 향해서 눈을 뿌리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 뉴스에서 얼핏 본 기사들의 제목이 생각 났다. "미국 동부 90년 만의 폭설"

  좌석 앞에 설치된 모니터에서 비행기의 항로가 보였다. 나는 지금 워싱턴 상공을 지나고 있었고, 이제 곧 뉴욕이 나올 터였다. 워싱턴을 지나자, 내 발 아래 있던 구름들이 사라졌고, 쌀쌀한 모습의 도시가 조그마하게 보였다. 뉴욕엔 눈이 내리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하늘에서 보는 땅은 얼어 붙은 듯이 보였다.

  자메이카 킹스톤의 여름과 같이 푹푹 찌던 날씨, 그 곳에서 4시간 떨어진 뉴욕은 차가운 겨울이 뒤덮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약간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진 겨울 옷이라곤 바람막이 하나 밖에 없는데, 하늘에서 본 뉴욕은 차가운 모습으로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비행기는 JFK 공항에 승객들을 토해냈고, 나는 공항의 건물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공항 건물 안에 갇혀 있는 공기들은 따뜻했다. 햇살이 유리를 통과해서 내 몸을 비추고 있었다. 나는 입국 카드를 작성하고, 입국 심사대에서 약간의 농담을 주고 받은 후, 터미널을 빠져 나왔다.

  차가운 뉴욕의 공기 내 몸을 엄습 했지만, 뉴욕의 날씨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겨울에 볼 수 있는, 겨울 특유의 저녁 노을이 도시를 비추고 있었고, 도시를 지나 나에게 까지 뻗어 있었다. 뉴욕의 공기는 겨울의 공기 답게 차가웠지만, 상쾌했다.



뉴욕 JFK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뉴욕의 날씨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겨울 특유의 저녁노을이 비치고 있었고, 공기는 겨울의 공기답게 차갑지만 상쾌했다.



4. News, Heavy Show.

  그는 뉴스를 봤다. 워싱턴, 뉴저지를 비롯한 동남부 지방 수십년 만의 폭설. 워싱턴 90년 만의 폭설. 그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뉴욕은 눈이 내리지 않았다. 뉴욕의 거리에는 오래 전에 쌓인, 녹다 만 눈의 흔적이 약간 있었을 뿐이었다. 그는 얼마 후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혹시나 폭설로 비행기가 취소될까봐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하지만, 그건 나중의 일이니까 괜찮아라고 자위했다.

  연일 뉴스에서는 폭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는 뉴욕에서의 생활을 즐기면서도, 한켠으로는 신경이 쓰였다. 설마, 뉴욕에는 눈이 안오겠지. 조마조마 했다. 뉴욕에는 제발, 눈이 오지 마라...라고 생각을 했다.

  뉴욕의 날씨는 추웠지만, 가끔은 잿빛 구름들이 뉴욕의 하늘을 뒤덮었지만 눈이 내리지는 않았다. 잿빛 구름이 하늘을 뒤덮은 다음날은 파란 하늘이 뉴욕의 하늘을 감싸고 있었다. 그는 뉴욕에서,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5. 뉴욕, 떠나기 하루 전.

  나는 뉴욕을 떠나기 하루 전, 유학중인 친구를 만났다. 그날따라 유독 날씨가 따뜻했다. 뉴욕에 온 날 중 가장 따뜻한 날씨였다. 포근하다고 느껴질 정도도로 따뜻한 날, 나는 친구를 만난 것이었다.
 오늘은 날씨가 따뜻해서 놀기 좋은 날이네.내가 말했다. 원래 눈오기 전에 날씨가 따뜻하잖아. 오늘 밤부터 눈이 많이 온다던데, 그래서 학교도 내일 쉬어. 내일 수업 다 휴강이야. 친구가 말했다. 헐, 진짜? 설마. 하늘에 구름도 얼마 없는데. 나 내일 비행기 타야 되는데, 눈오면 비행기 안뜨잖아. 내가 말했다.

  나는, 눈이 오지 않길 바랐다. 내일은 비행기를 타야하는 날이었다. 눈이 와도, 조금만 왔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일단 LA까지 가는 비행기니까, 국내선이니까, 뜨겠지.라고 생각했다.



6. 뉴욕을 떠나는 날.

  그는 꿈을 꿨다. 그리 유쾌한 꿈은 아나었다. 뒤숭숭한- 그런 꿈이었다. 불안했다. 어두 컴컴한 방을 빠져나와, 주방에서 커피한잔과 머핀을 먹고, 창 밖을 바라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크게 우려할만한 수준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7. 꿈 이야기.

  꿈에서, 내가 어딘가[정확한 기억은 없다]에서 빠져나가려고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나를 빠져나가지 못하게 했다. 나는 울면서 빠져그 곳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서 발버둥을 쳤다. 그렇게 빠져나가려고 노력을 한 긑에, 결국 마지막에는 그 곳을 힙겹게 탈출했고, 그와 동시에 잠에서 깨어 났다.



8. 다시, 뉴욕을 떠나는 날.

  시간이 지날 수록 하늘에서 뿌리는 눈의 양은 많아지고 있었다. 그는 오전에 뉴욕 App store에 갈 계획이었기에, 체크아웃(Check out)을 하고 앱스토어로 떠났다. 그가 그 곳까지 갈 때는 눈이 많이 오지 않았는데, 그 안에서 구경을 하고 물건을 사고 나오자, 눈보라가 뉴욕 시내를 휘감고 있었다. 엄청난 눈발이 몰아치고 있었던 것이었다.

  불안한 마음이 불안샘을 진동시키고 있었다. 사실, 그는 시간이 지나면 눈이 그치겠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시간이 지나자 눈과 함께 엄청난 바람이 불어댔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리고 모니터 화면에 찍힌 검은 점들은 Heavy snow가 아닌 Snow Storm이라는 모양으로 그의 눈이 비추어 졌다.
 
  그는 App store에 전시된 MAC book 으로 JFK공항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설마 설마 하면서, 그는 비행 스케쥴을 확인 했다. 모든 비행기의 상태가 Cancel로 표시되어 있었다. 그 중에는 그가 타고가야할 Unitied Airline의 비행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그 순간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고, 멍하니 화면만을 응시하며 입을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쇼핑을 더 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숙소로 돌아가서 가방을 들고, 공항으로 떠났다. 일단 공항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을 했다. 공항으로 가는 길은 온통 눈으로 뒤덮여 있었고,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다. 공항으로 가는 전철 안에서 쏟아지는 눈을 보면서 생각했다.

'지금껏 살면서 눈이 이렇게 많이 오는 건 처음봐.'


공항가는 길,
거리는 온통 눈으로 뒤덮여 있었고, 눈보라가 몰아쳤다. 공항으로 가는 전철안에서 쏟아지는 눈을 보면서 생각했다.
'지금 껏 살면서 눈이 이렇게 많이 오는걸 본건 처음이야'라고.



9. JFK 공항 제7 터미널.

  United Airline의 데스크가 위치한 7터미널로 갔다. NY-LA 비행기. 그리고 LA에서 대한항공으로 갈아타도록 되어 있었지만, 비행기는 취소되어 있었다. 데스크 직원에게 말했다. 직원은 나에게 다음 비행편을 타도록 해준다고 했는데, 자리가 있는 비행기는 3일 뒤에 있는 비행기였다. 절망.이 나를 엄습했다.

  첫 번째 보딩패스.
  자리가 없다는 말만을 되풀이 하며, 직원은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녀는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를 조회중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나에게 티켓 한 장을 주었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였다. DELTA 항공 카운터로 가 보라는 말. 나는 티켓을 바라보았다.

  4일 뒤, 뉴욕에서 인천으로 날아가는 델타항공 티켓이었다. 울며 겨자먹기로 티켓을 받아들고, 델타항공 카운터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만히 서서 티켓을 보니, 탑승자 이름이 내 이름이 아니었다. MR.JIWOONG/YANG라고 적힌 티켓이었다. 오타인가?라는 생각을 했지만, 비행기 티켓은 이름이 다르면 탑승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여권의 이름과 완전 다른 이름이었다.

  나는 다시 카운터로 갔다. 그리고 두번째 보팅패스.
 티켓의 이름이 내 여권의 이름과 다르다고 말하니, 여권을 달라고 했다. 여권을 보며 나에게 물었다. 누가 발권을 해줬냐는 말에, 저기 저 여자라고 말하며 가리켰다. 그리고 나서 말도 안되는 티켓이라며, 새로운 티켓을 한 장 발권해 준다고 했다. 그러면서 또 한마디 덧붙였다.
  넌 원래 LA로 가서 갈아타기로 되어 있었으니, DELTA항공 인천으로 바로가는 티켓은 이용할 수 없다. 그래서 취소를 했어.
 나는 유나이티드에어리인의 데스크에서 또 다시 한 시간동안 서 있었다. 결론은 비행기가 없다는 것이었다. 대한항공 LA지사와 전화통화를 번갈아하면서 겨우 자리를 구한 것은 5일 뒤의 비행기였다. NY-LA구간 비행티켓이 없는 날엔 LA-서울 구간의 자리가 있었고, LA-서울의 자리가 없을 땐, NY-LA의 자리가 없는 식이었다. 둘 다 자리가 있는 날은 5일 뒤였다.

  대한항공측에서 전화상으로 나에게 말했다. 폭설로 인해서 비행기를 못타서 어쩔수 없이 날짜를 변경했다는 서류를 챙기라고 했고, 그 서류를 챙기고 보딩패스를 받았다. 나에게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보딩 패스를 받고 보니, 뭔가 이상했다. 아까 이야기 할 때의 비행 날짜가 아니라, 뉴욕에서 인천으로 다이렉트로가는 비행기의 보딩패스였다. 이건 뭐지??

  마침, 유나이티드 데스크에서 근무하는 한국인이 나에게 와서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설명해 주었는데, 내가 보딩패스가 좀 이상한 것 같다며 보여주었다.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이건 내일 밤 뉴욕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표인데, 제1 터미널 대한항공 카운터에가서 문읠을 해 보세요.




10. 제1 터미널. 대한항공 카운터.

  그는 어이가 없었다. 1시간 넘게, 유나이티드항공사 직원과 대한항공 지원과 이야기 한 건, 뉴욕-LA, LA-서울의 비행기 표인데, 결과적으로 그가 받은 보딩패스는 뉴욕-서울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찌됐든, 제1터 터미널로 갔다.

  대한항공 카운터,
 폭설이 계속되고 있었지만, 새벽 1시에 출발하는 대한항공 KE086기는 정시 출발이라고 모니터가 알려주고 있었다. 그는 카운터로 가서 물어보았다. 이 티켓 어떻게 되는 건가요?

  대한항공 카운터에서 대답했다. 이 티켓으로는 비행기를 탑승할 수 없다. 당신이 끊은 티켓보다 이 비행기가 더 비싼 것이기 때문에 오버차지를 해야한다. 그리고 좌석도 비지니스석이다. 만약 당신이 오버치지를 하지 않고 타고 가고 싶다면, 유나이티드항공사로가서 티켓을 바꿔 달라고 해서 서류를 다시 챙겨와라.
  [하지만 그는, 서류를 다시 챙겨오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그가 다른 비행기 티켓을 달라고 했을 때, 다른 루트로 가는 티켓을 제공할 수 없다는 말을 그들은 되풀이 했었기 때문이다.]

 그는 물었다. 오버차지가 얼마야? 
 295달러를 더 내면, 좌석을 마련해주겠다고 했다. 
 그는 생각을 했다. 유나이티도항공사로 가서 땡깡을 부려볼까, 아니면 5일을 더 기다릴까, 아니면 295달러를 더 낼까. 그는 갑자기, 그가 가진 티켓이 비지니스석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쏠렸다.

  295달러를 더 내고 비행기를 타게 된다면, 비지니스석을 타고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생각했다. - 내가 언제 비지니스석을 타보겠어?- 30초 정도 생각하고, 그는 결정했다. 오버차지를 내고, 한국으로 가야겠어.




11. 비행기는 떠난다.

  나는 비지니스석을 타지 못했다. 역시,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 했다. 항공사는 조금이라도 자기들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새벽 1시.
 눈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비행기에는 시동이 걸렸다. 바깥에서는 비행기에 쌓인 눈을 제거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 분주함을 기다리는데 1시간이 넘게 걸리고 있었다.

  어느새, 눈발은 사그라 들었고, 세찬 바람만이 거대한 비행기 동체를 흔들어 댓다. 맑은 날, 무거운 동체를 하늘로 끌어 올려 수천km를 날아와도 힘들어 하지 않던 엔진도, 매서운 눈보라가 지나간 뒤에는 힘겨워 하는 것 같았다. 

  힘겨워 하는 엔진과 세찬 바람에 떨고 있는 동체의 안에서는 안도의 한숨에서 나온 입금이 공기를 덥히고 있었다. 비행기는 JFK활주로를 빠르게 달려갔고, 창문 저 아래로, 맨해튼의 밤이 보였다. 바둑판 같은 모습. 비행기는 약간 흔들 거렸지만, 이윽고 높은 하늘에 자리를 잡았다.

 굿바이 뉴욕.


- 공항가는 길, 거리엔 온통 눈.


- 나중에 보딩받고나서 찍은 화면, 다음날 비행기들은 거의 On time 이되어있었다.


- 나에게 티켓을 건네준 직원...... 말이달랐다....



- 앱스토어, 들어가기전엔 눈이 많이 오지 않았다.


-


-하늘에서 본 맨해튼, 바둑판형식의 도시.



반응형

Ep]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 베로니카를 만나러, 류블랴나, 류블랴나(Slovenia, Ljubljana)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1. 6. 19. 23:30

반응형

1. 책 또는 영화 속 주인공을 찾아서.

  영화나 드라마, 책을 보다 보면, 간혹 그 배경이 되는 장소에 가고 싶다는 충동을 느낄 때가 있다[실제로 테마 여행이라고 해서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곳들을 찾아다니는, 소위 말해, 영화 여행을 하는 사람을 본 적도 있다]. 영화나 드라마의 경우, 그 배경을 실제 화면을 통해 볼 수 있기 때문에 그 장소가 아름답다거나 멋있다는 것을 보는 순간 알 수 있다. 또한 영상을 바라보면서 그 곳에 가고 한 번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장소에 대해 명확한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책을 통해 어떤 특정한 장소를 접했을 때는 그렇지가 못하다[이게 책의 매력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책을 읽으면, 생각을 하게 된다[책의 내용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면서 읽기 때문에]. 어떤 인물이 나온다면 그 인물에 대해서 상상하게 된다. 아름답게[혹은 멋있게] 묘사된 주인공에 대해서. 그리고 그 주인공과 더불어 평화롭거나 아름답게 묘사되고 있는 배경에 대해서. 책에서는 배경이 아름답게 묘사되지 않고 있더라도[언급조차 하지 않을 수 있다], 주인공이 사건을 전개해 나가는 그 배경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어, 이미 당신의 머릿속에는 배경의 이미지가 형성되어져 있을지도 모른다.그 묘사되고 있는 배경에 대한 궁금증은 증폭되어, 이미 머릿속에서 [자신의 경험에 기초하여]그 모습이 그려지고 있을 수가 있다.  

  파울로 코엘류의 소설
[그의 소설들은 그의 다양한 여행 경험을 담고 있다]. 그의 소설들 속에는 다양한 주인공들이 있고, 다양한 배경이 있다. <연금술사>의 양치기와 그의 여정. <프로토벨로의 마녀>의 마녀와 그 배경이 되는 영국과 루마니아 시비우(Sibiu). <순례자>의 주인공과 스페인 산티아고길에 대한 흥미와 다양한 묘사들. 여행을 다닐 때[여행을 다니기 전에도 마찬가지였지만] 가장 흥미롭게 읽을 수 있고, 여행을 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소설을 뽑으라면, 파울로 코엘류의 소설들을 뽑을 수 있다[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의 소설들은 그 여행지에 대한 새로운 인상을 심어준다. 그리고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의 책들도, 생각하는 여행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이 두 사람[파울로 코엘류와 알랭 드 보통]이 함께한다면, 상상력을 통해 재구성된 생각하는 여행을 할 수 있다.


2. 작가의 흔적을 찾아서.
 
   김유정 문학관. 이효석 문학관. 구상 문학관. 정지용 문학관. 서정주 문학관. 그리고 각 작가의 생가(生家)들. 지방자치단체들은 많은 돈을 들여서 그 지방 출신의 작가들이 남겨놓은 흔적을 손질하고 다듬어 놓았다[이미 사라져 버린 것은 재현시켜 놓기도 했다]. 

  정지용의 생가를 찾아가서, 그 주변을 둘러 보고, 안내 책자를 읽거나 설명을 듣는다. 이효석의 흔적을 좇기 위해,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무렵>의 달빛이 흐드러지게 비치는 메밀밭 길을 걷기 위해 사람들은 그 곳으로 찾아간다. 그리고 그 곳은 언제나 사람들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 곳은 관광지가 되었기 때문에, 많은 돈을 들였기 때문에, 언제나 그 곳은 사람들을 맛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사람들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곳엔, 한가지가 부족하다. 진실성. 정지용의 <고향>이라는 시에 나오는 그런 분위기는 더 이상 없다. 배경은 같다고 하지만, 그 속에서 묻어나오는 진실성은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이효석의 소설에서 묻어나오는 그런 느낌도, 서정주의 <질마재 신화>에서 묻어나오는 그런 느낌도, 채만식의 <탁류>에서 우러나오는 그런 그 시대의 진실된 느낌이 사라지고 없다. 그 빈자리엔 새로운 것들이, 인위적인 것이 들어서 있다.

  그런 것들을 바라 보는 마음 한켠엔 언제나 부족한 무언가가 있다. 그리고, 그런 부족함은 항상 손가락 끝에서 울리는 짤막한 소리 하나로 대체 되곤 했다. "찰칵"



3. 베로니카는 그 곳에 앉아 있을까?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라는 책을 읽은 적 있다. 베로니카는 수도원 창가에서 조그마한 광장의 분수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름조차 낯선 도시에서. 그 도시의 이름은 '류블랴나(Ljubljana)'. 슬로베니아의 수도였다. 베로니카가 항상 창가에서 바라보던 그 분수대가 있는 조그마한 광장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일까?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곳이 딱히 좋다고 말 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책에서 조차 그런 말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냥, 그 곳의 분위기가 어떤지 느껴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곳에 가면, 진짜 분수대가 있을지, 확인해 보고 싶었고, 베로니카가 세상을 내다보던 창문이 진짜 있을지 궁금했다. 확인해 보고 싶었다.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그리고 광장의 노천 카페에 앉아, 커피 한잔을 마시며, 여유를 즐겨보고 싶었다.

  왠지 그곳은 여유가 가득할 것 같았다. 그리고, 커피만 한잔 마시고 그 곳을 미련없이 떠나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어느덧, 기차는 류블랴나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국경에서 따로 여권을 검사하지는 않았다[유럽연합 국가들은 여권 검사를 하지 않는다]


4.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류블랴나.

  그를 실은 기차는 자그레브[Zagreb, 크로아티아의 수도]역을 떠난다. 하늘은 잿빛이었고, 간혹 빗방울이 창문에 할퀴고 지나갔다. 얼핏, 창 밖을 바라보니 자그레브 역 앞의 동상이 보이는 듯 하다.

  언젠가, 자그레브에 머문 적이 있었다. 그 때도, 베로니카를 만나고 싶었다. 그녀의 시선을 좇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지만, 그는 자그레브역 플렛폼에서 기차를 떠나보냈다. 그리고, 류블랴나엔 다음에 꼭 가리라고 생각하면서 크로아티아의 남쪽 해안도시 스플리트[Split, 아드리안해의 미항(美港)]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때는 발길 닿는대로 자그레브의 거리를  거닐었고, 성당을 드나들었으며, 시장을 거닐며 잘 익은 과일들을 탐했고, 노천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세련되어 보이는 크로아티아 국기 무늬를 한 지붕을 구경했고, 한창 축구를 잘하던 동유럽의 축구 강호 크로아티아의 분위기를 느꼈다.

  그리고, 그는 또 다시 자그레브역의 모습을 보았다. 이번에는 그 역을 곁에 두고 슬로베니아로 향하고 있었다. 자그레브에서 3시간. 3시간이면 슬로베니아 류블랴나였다. 겨우 3시간이면 크로아티아의 수도에서 슬로베니아의 수도로 갈 수 있다.

  그는, 잿빛 하늘을 바라보며,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류블랴나. 얼마나 가 보고 싶던 곳이었던가. 론니 플래닛의 류블랴나 페이지를 펼쳐서 그가 찾아가야 할 곳을 체크해 두었다. 류블랴나에서 갈 만한 곳도 체크해 두었다. 그리고 그가 가장 가고 싶어하던 그곳[도시의 중앙 광장]에도 체크를 해 두었다. 그가 머무려고 하는 숙소에서 광장까지 어떻게 가면 될 지도 체크해 두었다.


5. 안녕 베로니카.

  기차는 류블랴나역에 멈추었다. 기차는 슬로베니아를 거쳐 오스트리아로 간다고 한다. 나는 기차에서 내려, 건물로 향했다. 작은 규모의 역.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 역과 비슷한 크기다. 작고 아담하고. 역 안에는 매점이 하나 있고, 맥도날드가 있다. 자판기 몇 개가 있고, 관광 안내소가 있다. 2층에는 매표 창구가 있다. 관광 안내소에서 지도를 몇 개 주섬주섬 챙겨서, 숙소를 찾아간다.

  숙소로 가는 길, 잿빛 하늘에서 간혹 물방울이 떨어지지만, 큰 비가 될 것 같진 않다. 작은 배낭 하나를 매고 다니는 여행객. 배낭을 잃어버리고 난 뒤라서 내 몰골은 형편없어 보일 것임이 틀림 없다. 동유럽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거리 곳곳의 그래피티는 내 눈길을 사로 잡을 만큼 높은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그래피티 사이에 위치한 숙소에 체크인을 했다. 샤워를 하고 베로니카를 찾아 나선다.

  베로니카를 만나러 가는 길, 아담하다. 높은 건물들을 찾을 수 없는 벽돌로된 골목길. 유럽 특유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동유럽과 서유럽의 경계. 서유럽과 동유럽의 분위기가 동시에 묻어났다. 지도에 표시된 대로라면, 이 길을 지나면 광장이 나올 터였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광장은 나왔고, 나는 베로니카를 만날 수 있었다. 광장 한켠에 있는 베로니카.


6. 죽기로 결심한 베로니카는, 살아 있었다.

  그가 그 조그마한 광장에 들어섰을 때, 베로니카는 살아있었다. 그러나 베로니카가 세상을 바라보던 통로로 이용하던 창(窓)은 없었다. 그리고 분수대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마도]분수대의 모티브가 되었을 법한, 동상이 그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베로니카는 어디선가에서 그 동상을 바라보았을 것이고, 그 곁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을 것이었다. 그도 그 분수대를 바라 보았다. 베로니카가 그랬던 것 처럼.

  그는 광장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그곳은 아주 자연스러웠다. 세계적인 작가 파울로코엘류의 소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의 배경이 되는 곳이었지만, 그곳에는 그런 것을 알리는 표지가 전혀 없었다. 그곳은 그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그 소설을 모르는 사람들이나 소설의 배경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듯 한] 하나의 광장, 수 많은 길 중의 하나였을 뿐이었다. 광장 주변의 노천 카페들도, 소설과는 전혀 무관하다는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광장 변두리에 위치한 한 카페에 앉았다. 종업원이 메뉴판을 갖다 주었고, 커피를 한잔 주문했다. 그리고 잠시 베로니카에 대해 생각하는 사이, 커피 향이 그의 코 주위를 감쌌다.

  그는 단지, 그 곳에서 베로니카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 모습은 실재한 모습이 아닌 그의 상상속에 존재하던 모습이었다. 그리고 베로니카가 소설 속에서 숨쉬던 공기를 마셔보고 싶었고, 그 곳에서 여유를 느껴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슬로베니아 '류블랴나'까지 와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생각했다. 소설의 배경이라는 것. 정말 별 것 없구나. 배경은 말 그대로 배경이었다. 사람들이 일상을 살아가는 곳. 그곳은 전혀 꾸며지지 않았다. 베로니카의 모습, 그것은 그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스쳐지나가는 그곳이었지만, 그 수 많은 사람들에겐 그냥 스쳐지나가는 하나의 광장, 하나의 공간에 불과했다. 
  그런 장소 였기에, 그는 그 장소에서 특별한 무언가를 느꼈다. 어느새 특별한 장소가 되어 있었다. 그곳에는 자연스러움이 묻어났다. 한국에서 찾아다녔던 소설이나 시(詩)의 배경이 되는 곳에서는 찾을 수 없던 것이 배어 있었다. 진실성.



  그는, 단지 베로니카의 흔적을 보고 싶었다. 자신이 생각하던 작은 광장의 모습이 어떤지 보고 싶었다. 그곳의 여유로움은 어떤 것일까를 생각하며, 류블랴나에 갔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마케도니아를 거쳐,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까지. 그리고 베오그라드에서 크로아티아를 거쳐 슬로베니아 류블랴나까지. 그리고 결국, 그곳에서, 베로니카를 보았다.

 단지, 베로니카가 보고 싶어서 슬로베니아 류블랴나까지 찾아간 그의 이야기.


-숙소 옆의 그래피티


-광장으로 가는 길.




-소설속에서 분수의 모티브가 되었을거라고 생각되는 동상



- 광장으로 이어지는 번화가



 -도시를 관통하던 하천







- 아담한 도시 중앙 광장



-광장 건너편의 시장



-



-



- 류블라냐 성에서 바라본 류블랴나






 

 





-노천카페에서 커피 한 잔




-카페에서 일하던 사람



-미니어처



-류블랴나 역의 매점



-아담한 류블랴나 역



-독특했던 류블랴나 역의 과일 자판기



-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역 앞.




-자그레브 과일 시장



- 공사중이던 건물


-전망대에서 바라본 자그레브 시내


-아침의 스플리트 역


-스플리트 올드 시티



-밤의 스플리트 항



반응형

EP] 자메이카, 킹스톤- 자메이카에 다시 오지 말라고?! - Jamaica, Kingston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1. 5. 10. 23:35

반응형


1. 치안(治安)에 관한 생각.

  여행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 자신의 목적지[여행할 장소]에 관해서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 중 하나가 그 장소의 안전에 관한 문제이다[그것은 다시 말해 '치안'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떠한 정보[여행 장소에 관한 정보]를 수집 할 때 좋은 정보 보다는 안좋은 정보를 더 많이 접하게 된다[일상 생활에서도 흔히 그러한 것을 경험 할 수 있다.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정보의 대다수는 범죄 사건, 사고에 관한 소식이라는 점에서 볼 때 우리는 안좋은 소식을 훨씬 많이 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예전에 이란 여행을 하고자 했던 사람이 정보를 수집했다면, 이란 국민들의 시위에 관한 소식과 시위 하던 사람들 중에서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정보를 접하게 될 것이고, 여행을 가고자 했던 사람은 여행을 망설이게 될 것이다. 얼마전 태국에서 일어났던 시위, 그리고 최근 일어나고 있는 중동의 민주화 물결, 이런 정치적인 문제들은 그 나라의 치안 상태가 극도로 불안정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여행자들은 그 곳의 여행을 꺼리게 된다.

  그런 곳에 사는 사람은 어떨까? 대한민국은 과연 안전한 나라인가? 대한민국은 결과적으로 보자면, 아직도 전쟁중인 국가이다. 엄연히 국제법상으로 휴전(休戰)중인 국가이지 절대 종전(終戰)을 한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도 언제 전쟁이 일어날 지 모르는 곳이고,  설령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전쟁이 일어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한국인이 그 상황을 바라보는 눈과 제3자인 외국인이 대한민국의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르고, 따라서 판단의 결과도 달라진다.[물론 대한민국의 상황이 그렇게 극단적이지는 않다]

  사업가의 경우는 어떨까? 해외로 출장을 다니며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과 거래를 하는 국가의 치안에 관해 상당한 관심을 기울일 것이 틀림없다[치안 유지가 잘 되어 정치, 사회적으로 안정적이라면 사업을 하는데 있어서 큰 리스크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치안이 안정적이고 그렇지 않고의 여부는 그 나라에 얼마나 많이 투자를 할 것인가 말것인가와 연관이되고, 사회적으로 범죄율이 낮다면, 그 나라의 사람들을 고용해서 사업을 크게 확장 할 수도 있을 것이며, 물류 창고와 같은 시설을 확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치안은 여행을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사업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큰 관심거리이다[중요한 사안이다].

  하지만, 한 가지 알아두어야 할 중요한 것은 그 현장에 살고있는 현지인들은 여행자나 사업가들에 비해서 민감하지 않다는 것이다[물론 그것은 자기의 상황과 주변의 상황을 잘 알고 있고, 자신의 삶의 터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현지인들은 여행자나 사업가들이 많은 오해를 하고 있다고 생각 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럴지도 모른다.

 

2.                         

  2005년 이집트 여행을 갔을 때는 바야흐로 이집트 대통령 선거가 얼마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내가 이집트를 가기 전, 이집트 국민들은 데모를 하기도 했고, 과격파에서는 테러를 감행하기도 했다.[신문과 뉴스를 통해서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정보를 터키에서 접하고 있었다] 내가 접한 이집트의 상황은 그리 나빠보이지 않았다. 나는 평소와 다름 없는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보았고, 그 곳은 사람이 사는 곳이었을 뿐이었다. 내가 이집트에 머무는 한 달간 딱 한번의 테러가 있었긴 했지만,[그 테러로 인해 관광객 7명이 목숨을 잃었다. 관광지 관광객을 노린 테러였다] 사람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내가 머물던 바로 옆 도시에서 테러가 났기에 나는 잔뜩 긴장했지만 결과적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네팔에 갔을 때, 누군가 암살당했다는 소식이 들렸고, 버스의 파업이 있었고, 훌리건들이 내가 탄 버스를 공격하기도 했다. 하지막 막상, 수도 카트만두에 도착했을 때는 너무나도 평화로웠다. 그 곳 역시 그냥 사람 사는 곳이었다.

  네팔에서 파키스탄 비자를 받고, 파키스탄으로 들어가려 할 때 즈음, 인도-파키스탄 국경에서 테러사건이 일어났다. 버스 폭탄 테러로 스리랑카 크리켓팀이 큰 피해를 입기도 했고, 관공서를 노린 테러가 일어나기도 했다. 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인도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결국 파키스탄을 건너뛰어 비행기를 타고 터키로 넘어갔다. 하지만, 그 무렵 나와 다른 결정을 한 다른 여행객은 파키스탄의 훈자로 무난히 갈 수 있었고, 세계 최고의 절경으로 손꼽히는 훈자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 곳, 훈자는 순박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아주 평화로운 곳이라고 했다.[아직도 훈자를 가지 않은 것이 한(恨)이다.]



3. 쿠바에서 케이만 제도 그리고 자메이카로.

  쿠바에서의 일주일. 싸구려 까사에서의 일주일. 싸구려 불법 까사의 주인 아줌마는 내가 쿠바를 떠난다고 하니 아쉬운 눈치였다. 나도 쿠바가 점점 좋아지고 있었는데, 비행기 예약 날짜가 다가왔으니 어쩔 수 없었다. 거리로 나서서 시내 외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지나가는 클래식카 택시들에게 손을 들었다. 합승을 해줄 법 한데도, 그들은 한사코 합승을 시켜주지 않았다[현지인들은 합승을 많이 했지만, 외국인은 시켜주지 않는 것이었다]

  지나가는 택시 한대를 잡아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서 올 때는 좋은 차를 타고 왔었는데, 갈 때는 현지인들이 타는 낡은 차량을 타고 가니 기분이 뭔가 색달랐다. 택시 기사가 중간에 자기 부인을 좀 만나고 가자면서, 자기 부인을 만나 같이 공항으로 왔다. 부인은 택시 기사의 점심 식사를 가지고 온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하바나 국제공항에 도착했고, 나는 15CUC을 지불했다. 친절히 내 짐들을 꺼내주고, 택시는 그 곳을 떠났다.[공항에서 시내로 갈 때는 20CUC이었다. 20CUC이 공식적인 고정요금 인듯 했다. 내가 처음 하바나에 도착했을 때 공항 직원에게 시내로 가는 택시비가 얼마냐고 물었는데 그 때 20CUC이라고 말을 해 주었었다.]

  출국 수속을 밟고, 쿠바 스탬프가 찍힌 비자를 출국관리소 직원에게 제출했다. 비행기는 케이만 제도(Cayman Island, 영국령의 작은 섬)를 경유해서 자메이카로 가는 것이었다. 케이만 제도까지 1시간 남짓, 케이만 제도에서 자메이카까지 1시간 반 남짓 걸리는 거리였다. 자메이카 킹스톤(Jamaica, Kingston)에 도착 예정시간은 오후 6시. 어두워지기 전에 도착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메이카의 밤은 상당히 위험하다고 들었기에, 약간은 안심이 되었다.

  쿠바의 공항에서 귀여운 꼬마와 장난을 치다 보니, 어느덧 게이트가 열렸다. 비행기는 카리브해 위로 떠올랐고, 자그마한 쿠바가 서서히 사라졌다. 그리고, 케이만 제도를 향해 날아갔다.

  케이만 제도, 작은 섬나라에 도착했다. 공항 건물은 2층짜리 작은 건물이 전부였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높은 습도가 내 숨통을 조여왔다. 이 텁텁함. 전형적인 열대의 날씨였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공기였다. 한국의 8월 무더위로 인해 습도가 높고 온도까지 높은 공기를 그 작은 섬에 옮겨 놓은 듯 했다.

  내 짐들을 들고, 빠져 나왔다. 피부 색깔이 어중간한 외국인 관광객은 나 혼자였다. 몇 안되는 승객들. 검은 피부를 가진 사람들은 모두 자메이카로 가는 사람들이었고, 흰색 피부를 가진 몇 몇은 현지인이었다. 나와 장난을 치던 꼬마도 이 작은 섬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작은 섬, 휴양지로 놀러오면 좋을 것 같은 섬에서 꼬마는 무얼 하며 살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아마 좀 나이가 들면, 영국 본토로 들어가서 공부를 하겠지, 라는 생각을 했다.

  Air Jamaica 카운터에서 내 큰 배낭을 수하물로 보내고 출국장으로 나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 비행기는 3시간 지연이었다. 예상 도착시간은 밤 9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오우, 이런 제기랄.

  작은 섬에 어둠이 깔렸을 때, 활주로에 비행기가 한 대 나타났다. 쿠바의 까삐똘리오 인터넷 카페에서 자메이카의 일본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 예약 메일을 보냈었는데, 답장은 아직 오지 않은 상태였다. 불안한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라타기 위해 활주로를 걸었다.. 또 다시 고온 다습한 공기가 내 피부에 와닿았다.

  낯설지 않은 느낌이었다. 어둠은 언제나 나를 긴장시키고, 약간은 불안하게 만들었다. 비행기를 타러 가는 내 마음은 좀 무거워져 있었다. 자메이카, 뭔가 많이 낯설다는 느낌, 준비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4. Welcome to Jamaica.
 
  비행기는 사람들을 토해냈다. 확실히 쿠바보다 큰 공항, 많은 사람들이 게이트를 빠져나와 입국장에 줄을 섰다. 국제 공항의 느낌이 조금 묻어났다. 외국인은 몇 없었다. 그는 자메이카의 스탬프가 왠지 마음에 들었다. 아래쪽에 자메이카, 섬 나라의 모양이 찍히는 스탬프. 그는 관광객으로 분류 되었다. 가방을 주워들고[레인커버가 떨어져 나가 있었다. 없어진 것이다!] 공항을 빠져나왔다. 밤 10시가 넘은, 11시가 가까워진 시간이었다.

  그는 말을 걸어오는 택시 기사들을 무시하고 공항 주위를 배회해 보았다[혹시나 버스가 있으면 그것을 타고 가려고]. 하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공항의 한쪽은 공사중이었고, 보통 택시를 타고 숙소까지 이동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왔기에, 택시 기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가격을 물어 보았다. 40달러. 그는 손사래를 치며 다른 택시기사의 무리로 이동하려 했다. 그 때였다.

  한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어디까지가? 그는 종이에 적힌 주소를 보여줬다. 30달러를 불렀고, 그는 그 남자를 외면했다. 25달러를 불렀다. 그는 말했다. 투엔티! 오케이, 라고 말하며, 그는 자기 차를 가지고 온다고 했다. 그리고는 공항 주차장 입구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그는 그 곳에서 공항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차량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 였다. 고급 메르세데스 벤츠 한대가 그의 앞에 멈추어 섰다. 그리고 운전석이 열리고, 그 안에서 누군가가 그에게 소리쳤다. 그는 생각했다. 그 택시기사인가? 그러기엔 차가 너무 좋은데?
  그리고 뒷 좌석의 창문이 열렸고, 누군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헤이, 여기서 뭐해?, 나? 택시 기사기다리고 있어. 아니 여기서 뭘 기다린다고? 어디까지가? 태워 줄게. 순간, 그는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이런 고급 승용차를 탄 사람이 자기 자신을 납치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의 목적지까지 데려다 준다고 하고 있었기에, 그는 그 차를 타고 싶었지만, 그 택시기사가 왠지 마음에 걸렸다. 에라 모르겠다.

  그는 고급 메르세데스에 올라탔다.


5.                          

  차가 출발하려는 순간, 어떤 사람이 차 앞을 가로막고 섰다. 아뿔사, 그 택시 기사였다. 그리고는 운전석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자메이카 억양으로 영어를 하기 시작했다. 언성이 높았다. 나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나에게 운전석에서 물어왔다. 아는 사람이야?

  안다고 했다. 내가 저 사람 차를 타고 호텔까지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정식 택시 운전기사가 아니었다. 사복에, 차량도 일반 승용차였다. 내 옆에 있던 사업가는 나에게 물었다. 내릴거야? 아니면 같이 타고 갈래?

  판단이 서지 않았다. 저 택시 기사는 내가 어느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는지 알고 있었기에, 밤에 와서 나를 칼로 찌르거나 총으로 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 옆에 있던 미국인 사업가는 빨리 결정하라고 했다. 운전기사와 택시기사는 계속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초조했다. 그리고 결정했다.  
 
  난 택시를 타지 않겠어. 이 차를 타고 갈게. 일단 택시비 20달러를 굳힐 수 있다는 생각을 했기에 그런 판단을 했다. 될대로 돼라.

  내가 탄 메르세데스 뒤로 그 택시기사가 따라왔다. 불안했다.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했다. 그리고 옆에 있던 사업가가 말을 걸어왔다. 너 한국사람이지? 어 맞아, 한국사람이야. 지금은 여행중. 어쩐지, 그렇게 보였어. 내 부인이 한국사람이거든. 오 정말? 어디 사는데? 워싱턴 살아. 너가 한국 사람 같아서 너를 태워준거야. 이름이 뭐야? 내 이름은 Jin. 오 정말? 내 아들 이름도 Jin 인데. 아들이 3명 있어. 자메이카는 처음이야? 처음 같이 보이는데. 응 처음이야, 쿠바에서 오늘 자메이카로 넘어오는 길이야. 자메이카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줄 모르지?

  다음부터, 자메이카엔 오지마. 위험한 곳이야. 여긴 여행 할 만한 곳이 아니야.  .... 알았어. 참고할 게. 고마워.

  운전기사는 내가 머물 게스트하우스의 위치를 잘 알지 못했기에, 사업가가 머무는 호텔로 가게 되었다. 프론트에서 음료수 서비스를 받고, 그 미국인 사업가는 나에게 명함을 하나 주며 덧붙였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전화해. 그렇게 말하며, 콜택시를 불렀고, 콜택시가 왔을 때, 나를 배웅해주었다.


6.                            

  그는 콜택시 기사에게 주소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택시는 출발했다. 택시 기사가 자기의 휴대폰을 어딘가에 떨어뜨렸다면서, 휴대폰을 좀 찾아달라고 했다. 좌석 밑 어딘가를 뒤져 봐 달라고 했기에, 그는 이곳 저곳을 뒤졌다. 그 순간 그는 간담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좌석 밑에서, 대도(길이가 팔뚝만한 칼)을 보았던 것이다. 그는 생각했다. 뭐지, 이 사람 나를 어딘가로 데려가서 칼로 위협하고 돈을 뺏으려는 건가? 그는 휴대폰을 기사에게 건내고, 자리를 좀 멀리 옮겼다[봉고차 였기에, 공간은 많았다]

  기사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자메이카식 영어로 대화를 했다. 그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들이 무슨 대화를 하는지. 인적이 없는 곳, 길 중간에 차가 갑자기 멈추었다. 그는 긴장하고 있었다. 무슨일이지?

  전화 통화를 하더니, 다시 출발했다. 길을 이리저리 왔다갔다 했다. 그는 불안했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그는 꿈자리를 생각해 봤으나, 꿈자리가 나빳던 것 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어느 골목으로 들어갔고, 차는 멈추었다. 그리고 기사가 말했다. 다왔어.

  주소를 확인했다. 내가 가려던 곳이 맞았다. 벨을 눌렀고, 문이 열렸다. 내 짐을 집 안으로 옮겼고, 주인이 나왔다. 방을 안내해 주었고, 택시비를 지불했다. 그는 그렇게 자메이카의 숙소에 도착했다. 시간은 밤 12시에 가까워져 있었다. 그 곳에 있던 일본애에게 물으니, 몇 명은 그날 밤 클럽에 놀러갔다고 했다. 다음에 너도 같이 가라고 했다.


7.                               

  자메이카의 밤은 어둡고, 적막했다. 왠지 위험하고 불길한 기운이 감돌았다. 밤에, 음악 클럽에 다니면서 놀았는데, 그 때는 항상 집앞까지 택시를 불러 택시를 타고 다녔다. 그리고 집에 돌아올 때도 택시를 잡아타고 왔고, 야식이 먹고 싶을 때도, 야식을 파는[훈제 닭고기를 파는 포장마차 같은 곳]곳까지 택시를 타고 갔다가 돌아오곤 했다.

  누군가 이런말을 했다. 자메이카의 밤 거리에서, 누군가가 총을 쏘아 사람을 죽여도 그것은 범죄가 아닐 수도 있다. 만약 그 장면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범죄가 아니고, 누군가가 봤을 때만 범죄가 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자메이카 사람들이 달리기를 잘하는 건, 밤에 누군가와 골목에서 맞닥뜨렸을 때, 총알보다 빨리 달려서 살아야 하니까, 총알보다 빨리 달려야 해서인가? 그래서 우사인 볼트가, 총알탄 사나이 인가...

 

 

-공항에서 같이 장난치던 꼬마



-쿠바의 남쪽 바다


-자메이카 입국 스탬프

- 거리, 낮은 별 감흥 없다




-시계탑, 그리고 넬슨 만델라 공원.

-시외버스터미널

-하교하는 학생들. 낮에는 위험한 것들이 없다. 



반응형

Ep] 쿠바, 하바나 - 스타벅스 커피보다 비싼 쿠바의 밀크티.(La Habana)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1. 4. 21. 21:34

반응형

1. 아는 것이 힘이다. 아는 것이 돈이다!

  우리는 "아는 것이 힘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 등의 "아는 것"과 관련된 다양한 구호들을 쉽게 접한다. 그리고 실제로 아는 것이 많을 수록 살아가면서 좀 더 많은 혜택을 누리기도하고[물론 너무 많이 알아서 피곤한 경우도 가끔 있다], 부당한 대우에 대해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 할 수 있다. 그 만큼 아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여행의 경우에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어느 유적지를 갔을 때 혹은 특정한 장소에 갔을 때 그 곳에 대해서 뭔가 색다른 사실을 알고 있다면 좀 더 풍부한 여행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 외에도 우리는 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앎으로써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모르면 혜택을 전혀 못받고 지나가거나, 더 심한 경우에는 금전적인 피해를 입기도 한다.[물론 모르는 상태에서 금전적으로 지출이 있었다면 그 지출조차 불필요한 지출이었다고 생각 할 수 없지만] 대표적으로, 공공 건물이나 OO타워 등의 대형 건물, 대형 쇼핑몰, 학교나 학원 등의 장소에서 상해를 입었을 경우 그에 따른 치료비를 다 지급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사소하지만 모르기 때문에 금전적인 손해를 보는 경우가 더러 있다. 한 개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런 경우는 두 가지 손해를 입는 것이다.[신체적 그리고 금전적 손해]
 
  특히, 여행의 경우 "아는 것이 돈이다"라는 말이 제대로 먹히는 경우가 많다. 인터넷을 통해서 수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철저하게 준비해 가는 사람은 여행의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인 금전적인 부분에 있어서 상당한 절약 효과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어느 도시의 어느 호텔[혹은 호스텔, 민박]이 가격 대비 시설이 좋은가부터 시작해서 교통비를 절약 하는 방법, 그리고 저렴하면서 질 좋은 식사는 어디서 할 수 있을지 등의 정보를 찾을 수 있다.



2. 모르면 손해다.

  관광지를 가면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많다. 별 것 아닌 문제로 기분을 상하게 되는 때도 많다. 휴가철이나 연휴가 끼어있는 주말 등의 어디론가 짧은 여행을 떠나기 좋을 때 우리는 연인, 친구 혹은 가족끼리 짧은 여행을 떠나게 될 경우가 많다. 그 여행지의 장사꾼들은 다른 지방에서 들뜬 마음으로 찾아온 사람들에게 '바가지' 요금을 부과하기 일쑤다.[희소성과 관광지라는 특수성을 강조하면서 부당한 요금을 부과하는 장사꾼들은 어디에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분명 내가 사는 동네에는 천원 하던 물건이 관광지에서는 2천원, 3천원으로 그 가치가 올라가 있는 경우를 자주 발견 할 수 있다. 우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어쩔 수 없이 돈을 지불하는 경우도 많다.

  한 외국인을 보았다. 다른 나라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특히 유럽이나, 아메리카 대륙] 포장마차에서 어묵 꼬치를 먹고 있었다. 한국 사람들은 하나에 5백원에 먹고 돈을 지불했는데, 그들은 하나에 천원을 지불하고 있었다. 근본적인 잘못은 그 장사꾼에게 있지만, 만약 그 외국인들이 다른 관광객이나 인터넷 정보를 통해서 가격 정보를 알았다거나, 차림표[혹은 가격표]를 읽을 줄 알았다거나, 누군가가 진짜 가격을 말해 줬다면 그들은 부당한 가격을 지불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르는게 병이 되어 부당한 대우를 당할 때가 많다.



3. 1CUC = 1Peso?

  베네수엘라를 떠난 비행기가 하바나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카라카스 쿠바나에어 사무실에서 구입한 쿠바 비자종이에 스탬프를 찍고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공항 로비로 빠져나왔다. 내가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환전소였다. 예상대로 형편없는 환율이었다.[쿠바는 US$에 대한 환율이 상당히 나쁘다. 반면 CA$의 환율은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울며 겨자먹기로 US$를 환전했다. 약 1.3달러 : 1CUC 였다. 나에게는 1CUC가 한국돈으로 1500원 가량 되는 셈이었다.[나중에 알게 된 한국 사람들은 캐나다 달러를 가져왔는데 1CUC에 천원정도의 환전비율이라고 했다.]

  쿠바에 오기 전, 호주에 머물 때 쿠바를 여행 갔다온 사람이 나에게 해준 말이 있었다. 쿠바는 여행자가 사용하는 화폐와 현지인이 사용하는 화폐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행자들이 환전을 하게 되면 여행자 전용 화폐인 1CUC(쿡)을 받아서 사용하게 된다고 했다. 나는 대략 쿠바에서 쓸 금액을 계산해서 조금 여유 있게 환전을 하고, 택시를 잡아타고 쿠바 시내로 향했다. 물론 택시비도 CUC으로 지불을 했고, 가자마자 잡은 숙소에서도 CUC로 방값을 지불하기로 했다.

  하루에 10CUC에 묵기로 한 불법 까사에 내 짐을 놓아두고, 나는 하바나의 중심가로 향했다. 해가 스멀스멀 멕시코만 저편으로 넘어가고 있었고, 어둠이 하바나를 잠식해갈 즈음이었다. 나는 배가 물가가 싸다고 들은 쿠바, 하바나의 식당에서 배를 채워볼 요량으로 식당가를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식당의 메뉴판, 그것도 모자라 길거리에 파는 핫도그나 샌드위치 조차도 내가 생각 할 때 터무니 없이 비싸보였다. 핫도그가 10peso 에서 15peso. 작은 아이스크림 콘이 5peso 였다. 식당의 메뉴는 25peso 부터 30peso 정도의 가격이 책정되어 있었다. 나는 혼란 스러웠다. '쿠바 사람들은 모두 엄청난 부자인가?'라는 의문과 함께 내 머리는 공황속으로 빠져들었고, 배가 고팠지만 나는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 까사의 삐걱거리는 침대위에서 내 지친몸을 달래야 했다.

  분명히 공항에서 환전한 CUC이라 불리는 돈에도 화폐 단위는 Peso라고 적혀 있었다. 1CUC이라 불렸지만 지폐에 적혀 있는 것은 1peso, 5CUC 은 5peso라고 적혀 있었다. 그렇게 치면, 길거리에 파는, 고깃집[갈비집 같은 곳]에서 무료로 디저트로 퍼 먹는 아이스 크림 하나가 5peso니까 5peso = 5CUC. 1CUC = 약 1500원. 아이스크림 하나가 7천원이 넘는 셈이었다. 

  살인적인 물가에 나는 굶어 죽을 수 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나는 세상이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아픈 머리를 베게속에 파묻었다.



4. 갑부들의 나라 쿠바?

  그가 눈을 떳을 때 싸구려 까사엔 아무도 없었다. 유리 없는 창문 밖은 그늘져 있었고, 그늘의 안쪽에서 새 소리만이 창틀을 넘어 그의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그는 아직도 어제 엄청난 음식가격의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상태였다. 그 엄청난 가격들은 그를 공황 상태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다음 비행까지는 5일이 남아 있었는데, 그 기간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는 론니플래닛 캐리비안 아일랜드(Lonely Planet Caribbean islands)의 Cuba 부분을 펼쳤다. 일단 먹는 건 둘째치고, 하바나에 왔으니 길을 걸으며 하바나의 공기라도 마셔볼 심산이었다. 쿠바의 일반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 건물. 복도 계단엔 전선들이 거미줄 처럼 얽혀 있었다. 옆 집의 TV소리, 아이 우는 소리, 그리고 새가 밥을 달라고 소리지르는 것 까지 바로 옆 에서 말하는 것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방음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집을 얼른 빠져 나왔다.

  그의 걸음엔 힘이 없었다. 먹은 것도 없었다. 까삐똘리오로 향했다. 숙소에서 비교적 가깝고, 많은 단체 관광객들이 버스를 타고 우르르 몰려와 사진을 찍고, 우르르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는 까삐똘리오 계단에 앉아 책을 읽으며 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까삐똘리오 길 건너편을 거닐고 있는 수 많은 쿠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수 많은 작은 가게들을 바라보았다. 수 많은 사람들이 가게에서 뭔가를 사먹고, 길을 떠나고 있었고, 거기에 발맞춰 많은 음식들을 또 다시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는 또 한번 생각 했다. 외국인과 내국인의 차별이 어느 정도 존재한다더니, 정말 여기는 외국인을 전부 초갑부로 알고 있는 건가? 길 건너편 핫도그를 파는 가게에서 소시지에 야채가 곁들여진 핫도그를 먹고 싶었지만, 가격은 12peso 였다. 핫도그 하나에 1만 8000원을 주고 사먹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5. 스타벅스 커피보다 비싼 구멍가게 밀크티 한 잔.

  까삐똘리오의 계단에 앉아 계속 궁상만 떨고 있을 순 없었다. 까삐똘리오 앞에서 사진만 찍고 사라지는 단체 관광객들을 구경하는 것도 신물이 났다. 어느 정도 배고픔이 사그라 든 것 같아 나는 발걸음을 구 시가지[쿠바의 낡은 건물들이 모여 있는 곳]로 옮겼다. 그리고 골목 골목을 거닐면서 쿠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이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만큼의 돈을 지불하면서 살아가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내가 가진 지식으로 그들의 물가를 이해하기에는 뭔가 역부족이었다.

  거리를 걷다가 어느 작은 식당 같은 곳 앞에서 사람들 몇 몇이 모여서 밀크티를 마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자 인도의 짜이가 미치도록 그리워 졌고, 나는 밀크티의 가격을 확인해 보았다. 3peso. 옆에 있던 상자엔 주먹만한 빵이 쌓여 있었는데, 밀크티와 빵 하나를 먹으면 금상첨화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밀크티 한 잔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 짧은 스페인어로 말했다. 이 빵 하나만 먹어도 되죠? 그리고 바로 빵을 하나 집어 들어서 밀크티와 함께 마셨다.

  계산을 해 봤다.3peso. 1500x3 = 4500원. 나는 지금 4500원 짜리 밀크티를 마시고 있다. 나는 지금 4500원 짜리 밀크티를 마시고 있다. 나는 지금 4500원 짜리 밀크티를 마시고 있다. 라고 누군가 내 머릿속에서 자꾸 소리치고 있었다. 그랬다. 인도의 달콤한 짜이는 1잔에 100원도 안했는데, 쿠바의 밀크티는 적어도 나한테는 한 잔에 4500원 이었다. 스타벅스 커피보다 비싸다.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나는 내 나이보다 조금 더 있어보이는 주인에게 5peso라고 적힌 5CUC짜리 지폐를 내밀었다. 그러자 그는 지금 잔돈이 없으니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면서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잠시 뒤 나타나서 2peso를 거슬러 주었다. 1peso 라고 적힌 지폐 두 장. 2CUC이었다.
  나는 생각했다.아까전에도 사람들이 많이 와서 사 먹던데, 왜 2peso를 바꾸기 위해 다른 가게 까지 갔다온걸까? 나는 그런 의문만을 남긴 채 그 곳에 모여있던 사람들의 시선을 등 뒤로 받으며 다시 까삐똘리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까삐똘리오로 오니 또 다시 배가 고팠다. 점심때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런데, 까삐똘리오 앞에 못 보던 장사꾼이 둘 생겼다. 빵 사이에 그냥 소시지만 꽂아서 파는 핫도그를 파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들 주위를 스쳐 지나가는 관광객인척 하면서 가격을 보았다. 내 눈이 휘동그래졌다. 핫도그 하나에 0.5CUC. 나에겐 혁명이었다. 어쩜 이럴수가 있지?

  나는 그 날 그 곳에서 식사를 다 해결했고, 마운틴 듀까지 1CUC를 지불하고 사 먹었다. 태양이 스믈스믈 낡은 건물들 아래로 모습을 감출 때 즈음 나는 나의 보금자리 불법 까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6. 불법 까사 주인에게 들은 이야기.

  그가 까사로 돌아오니, 이미 주인 아줌마가 먼저와서 작은 흑백 TV로 공연 DVD를 보고 있었다. 그에게 친한척을 하면서 옆에 앉으라면서 같이 보자고 했다. 그도 음악을 좋아하는 편이라 흥미있게 보고 있었는데, 그녀가 말했다. 니가 하루에 10CUC을 더 내면 아침과 저녁을 내가 해 주겠다. 그는 생각 해 보았다. 사실 좀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10CUC이라는 돈이 좀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싫다고 했더니 5CUC으로 가격을 내려서 같은 제안을 했다. 사실 숙소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던 터라 제안을 거절했는데, 여러가지 옵션을 더 제시하자 그의 마음이 조금 동요 되었다. 그리고 그는 쿠바의 살인적인 물가에 충격을 받고 있던 터라, 알았다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너무 기뻐하며, 자기가 잘하는 요리로 해서 대접하겠다며 이틀치 돈을 미리 달라고 했다.  그는 뭔가 찝찝했지만, 사기칠 사람같아 보이지는 않았서 그렇게 했다.

  그리고 스페인어 사전을 찾아가며 대화한 끝에 그는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환전소에 가면 1CUC을 24peso로 바꿔 준다는 말이었다. 그는 그건 쿠바나(쿠바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냐? 라고 되물었으나, 아무나 CUC을 가져가면 Peso로 바꿔준다는 거였다. 1CUC에 24Peso. 그러면서 필요하면 자기가 지금 가서 환전해 줄 수 있다고 했다. 아는 사람이 환전소에서 일한다면서 엄청난 호의를 베풀기 시작했다.

  그는 생각 해 보았다. 그랬다. 3peso 짜리 밀크티는 3CUC이 아닌 진짜 쿠바돈 3peso 였다. 그는 3peso만 지불하면 될 밀크티 가격에 72peso[3x24peso]를 지불 했던 것이다. 그는 또 한번 충격에 휩싸였다. 낮에 든건 없었지만 배가 고팠기에 맛있게 먹었던 핫도그도 알고보니 12peso짜리 핫도그 였던 것이다. 12peso짜리 핫도그는 길 건너에서는 야채까지 곁들여져 있었다. 식당 메뉴의 24peso도 실상은 1CUC이면 되는 것이었다.

  그 때부터 그는 쿠바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 그랬다. 까사의 하루 방값이 10CUC인데, 핫도그 하나가 12peso일리 없었다. 그는 그녀에게 20CUC를 주며, peso로 바꿔 달라고 했다. 그리고 잠시 뒤 그녀는 480peso를 그에게 가져다 주었다.



7. 여행에선 돈을 쓸 수록 배움이 크다?

  나는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쿠바가 정말 좋다. 물가가 싸다라고 다른 이에게 들었는데, 사실 나는 그 말을 이해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날 밤, 불법 싸구려 까사의 아줌마는 나에게 진실을 알게 해 주었다. 하지만, 내가 낮에 그런 일을 겪었다고는 말하지 못했다. 그건 지금 하나의 사건으로 남아 있다.

  밀크티 한 잔이 스타벅스 커피 보다 비쌌던 쿠바에서의 이야기.


- 노을의 까삐똘리오


-까삐똘리오 앞 계단


-


- 까삐똘리오 앞


-


-


- 학교 운동장


- 0.5페소 짜리 버스. 정말 좋다. 싸서..


-


- 라 하바나 시티.


- 골목을 거닐다


-


-


- 아저씨


- 콘 아이스크림이 맛있던 가게의 형제



-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 풍의 음악이 울려퍼지던 재즈카페


-


- 위 쪽 돈이 CUC 아래 쪽 돈이 쿠바나 peso
CUC의 가치가 24배가 높다....돈도 더 이쁘다.



반응형

세계여행] 자메이카, 음악과 함께 하는 삶. Jamaica, Kingston.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1. 3. 27. 20:11

반응형

Cuba, Habana - Cayman Island - Jamaica, Kingston - New York, NYC.


1. 전설, Legend.

  전설. 사람들이 여행을 할 때 좇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전설이다. 드라큘라 전설. 로빈후드 전설. 여러가지 전설이 있다. 어느 지방의 전설이 유명해지면 사람들이 그 전설을 좇아 그 곳을 찾아온다. 전설이 매력있는 이유 중 하나는 그 전설에 관련된 구체적인 증거물이 존재한다는 것이다.[중고등학교때 국어 공부를 꽤나 열심히 했던 사람이라면 전설, 신화, 민담(설화)를 기억해 보라. 전설의 특징은 구체적인 장소와 증거물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꽤나 많은 전설이 존재한다. 어떻게 보면 춘향이와 이몽룡의 사랑이야기는 남원 지방의 전설이고, 그들이 놀았다는 구체적인 사물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축제가 열리고 사람들은 그 곳을 찾는다. 그 옛날 춘향이와 이몽룡이 놀았다는 그 곳에서 그들 기억속에 존재하는 춘향이와 이몽룡의 모습을 생각하게 된다.
  인도의 타지마할에도 전설은 존재한다. 타지마할을 짓고 나서, 왕은 타지마할과 같은 건축물을 더 이상 만들지 못하게 하기 위해 타지마할을 만드는데 참여했던 사람들의 손을 잘라버렸다는 그런 이야기와 함께 전하는 타지마할. 그래서 사람들은 세계에서 아름답다고 소문난, 세계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건축물을 보기위해 인도의 건조한 도시, 아그라(Agra)로 발걸음을 옮긴다. 
  
  전설은 어느 장소와 관련되거나 특정한 건축물에 관련된 것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마이클 잭슨을 전설이라고 부른다. 누군가는 스티브 잡스를 전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그는 아직 살아 있지만, 살아 있어도 전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메이카에 가면 또 하나의 전설을 만날 수 있다. 레게 음악의 전설, 밥 말리.


2. 밥말리(Bob Marley)라고 쓰고, 전설(Legend)라고 읽는다.

  나는 전설을 좇아 다녔다. 어린 시절 영화로 접한 드라큘라의 이야기. 그 전설을 좇아 루마니아로 떠나기도 해봤고,[남들이 다 하는 것 처럼], 전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흔적을 찾아 그의 집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밥 말리. 레게 음악의 전설. 언제 부턴가 레게 음악의 리듬이 좋아졌고, 레게 음악에 대해서 알아 보았다. 힙합과는 다른, 재즈와도 다른, 독특한 매력의 레게. 남미의 레게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접하면서 자메이카 태생의 세계적인 레게 뮤지션이었던 밥 말리가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집에서 본 그가 받은 수 많은 음악상. 그리고 그가 입었던 옷. 그리고 생전의 사진. 항상 마리화나를 입에 물고 작업을 했다는, 밥 말리.
  
  자메이카에선 "레전드"라고 쓰고 "밥 말리"라고 읽고, "밥 말리"라고 쓰면 "레전드"라고 읽었다.


3. 자메이카에서 맞이한 새로운 이야기.

  비행기는 쿠바 하바나공항을 떠났다. 나와 장난을 치던 꼬마(http://dwis.tistory.com/530 참고하시길!)도 나와 같은 비행기를 타고 케이만제도(Cayman Island)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1시간 반 뒤, 카리브 해의 작은 섬에 비행기가 착륙했다. 공항은 동네 기차역 보다 작았다. 2층의 아담한 건물. 그 곳에서 꼬마와 나는 헤어졌다. 그랜드 케이만(Grand Cayman)의 조지타운. 영국령 카리브해 자치 섬인 케이만 제도의 수도였다. 해가 스믈스믈 바다 저편으로 넘어갔고, 비행기는 2시간 딜레이 되었다. 그 덕에 나는 해가 떠 있을 때 자메이카에 도착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버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편으론 걱정되었다. 치안이 극도로 좋지 않다는 자메이카. 그리고 그 수도 킹스톤(Kingston). 밤 9시를 넘긴 시각, 그 날의 마지막 비행기가 사람들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꾸역꾸역 비행기 몸체속으로 들어갔다. 습기를 많이 머금은 따뜻한 바람이 내 살갛을 스쳐 지나갔다. 카리브 해의 냄새가 내 콧가에 머물렀다.

  자메이카의 킹스톤 국제공항. 공항을 빠져 나오니 밤 11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나는 인터넷에서 주워들은 정보들을 이리 저리 조합을 했다. 그리고 택시 기사들과 쇼부를 쳤으나 그들은 가격을 내리려 하지 않았다. 한 남자가 나에게 접근 해 왔고, 나는 그와 쇼부를 쳤다. 20달러에 내 목적지 까지. 그리고 그가 주차장으러 차를 가지러 갔고, 나는 주차장 게이트에서 그가 차를 몰고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 때, 고급 벤츠가 내 앞에 멈추어 서더니 창문이 열렸다. 그리고 나에게 외쳤다. "헤이, 너 왜 거기 서있는거야? 어디로가?"


4. 자메이카에 다시는 오지 마세요.

  나? 택시 기다리고 있어. 왜 거기서 택시를 기다려? 어디까지가? 예약한 호텔로 가야지.[사실 그 때 예약한 호텔따윈 없었다] 그러면서 일단 나에게 타라고 했다. 자기가 태워 주겠다면서.[아주 좋은 차로 보였고, 뒷자석에 탄 사람은 정말 신사처럼 보였기에 나를 어떻게 해칠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살짝 고민을 하다가, 그의 차에 올라탔다.

  그 때, 나와 쇼부를 쳤던 무허가 택시 기사가 뒤에서 소리쳤다. 그리고 내가 탄 차의 운전기사와 무슨 말을 나누었다. 그리고 나에게 물었다. 저 사람 알아?

  알긴 아는데, 저 사람 차를 타고 호텔로 가기로 했어. 그리고 신사가 바로 말을 이었다. 내가 호텔로 데려다 주겠어. 여긴 위험해. 저런 사람 차 타지 않는게 좋아. 

  나는 고민을 했다.[고민이라고 할 것 까진 없었다. 지금 이 차를 타고가면 택시비 20달러 굳는다는 생각과 함께 원래 내가 타기로 한 택시 기사가 나중에 밤에 나를 총으로 쏴 죽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냥 지금 이 차를 타고 호텔로 가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운전기사와 택시기사는 실랑이를 벌였고, 밖에서는 욕설이 마구 들렸지만, 창문이 닫혔고 차는 출발했다. 나는 불안한 마음에 뒤를 돌아보았으나 다행히, 그 택시기사는 따라오지 않는 것 같았다.

  내 옆에 탔던 신사가 말했다. 너 한국 사람이지? 나는 대답했다. 응 한국사람이야. 그러자 그 신사가 덧붙였다. 난 워싱턴에서 온 비지니스맨인데, 내 부인이 한국사람이야. 그래서 니가 한국사람이라는 걸 알아봤지. 잘됐어. 이름은 뭐야? 내 이름은 진. 여행중이야. 자메이카는 처음이지? 처음처럼 보이는데. 응 처음이야. 
 
  그러자 미국인 사업가는 덧붙였다. 자메이카에 다음 부터 절대로 오지말라고. 이곳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위험한 곳이라고. 그리고 또 하나 덧붙였다. 자기 아들의 이름이 "진"이라고. 나와 이름이 같았다. 나는 그들이 묵는 호텔로 갔고, 그 곳에서 콜택시를 불러서 내 숙소로 이동을 했다. 

  그리고 그 사업가는 나에게 명함을 하나 주면서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을 하라고 했다.[그 후로 연락 할 일은 없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를 더 받았다. 자메이카는 생각보다 위험한 곳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말이다.

  조금은 불안했지만, 나쁘지 않은 출발이었다.


5. 거리엔 음악이 흐르고.

  숙소에 짐을 풀고, 잠을 잤다. 방은 더블 룸 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날이 밝자 슈퍼마켓에서 먹을 음식과 생수 한 통을 사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후덥지근한 날씨였다. 마당의 해먹에는 몇 몇 애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스라엘에서 온 애들이었다. 그들은 내일 자메이카 북부 도시로 떠난 다고 했다. 그곳에는 레게 음악파티가 열린다고 했다.

  몇 몇 일본인 들은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밤에만 움직이는 듯 했다. 밤에는 클럽에서 음악이 울려퍼졌기에. 그들은 낮에 잠을 자고, 밤에는 클럽에서 놀았다. 낮에는 거리에서 음악이 울려 퍼졌고, 밤에는 클럽에서 음악이 울려 퍼졌다. 나는 밤 낮 가리지 않고 음악을 들었다.

  2월 초 였지만, 북반구 였지만, 자메이카는 더웠다. 거리를 걸어 번화가로 향했다. 생각보다 먼 거리였다. 거리를 혼자 걸으면서도 생각했다. 누군가가 나에게 총이나 칼을 들이대는 건 아닐까?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 다가가자, 길거리에서 음악 CD를 파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다양한 음악들. 흘러나오는 음악은 주로 레게였다.[힘합 리믹스 음악이 나오는 곳도 있었다]

  시내의 중심가인 넬슨만델라 공원의 곁을 지나갔다. 인터넷을 하다가 얼핏 본 기억이 났다. 넬슨만델라 공원에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그는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래서 그 공원이 아주 큰 규모인 줄 알았는데, 정말 작은 규모였다. 공원의 바깥에서 안에 누가 있는지 다 보일 정도의 작은 크기의 공원. 그 공원에서 낯익은 냄새가 내 코를 자극했다. 그리고 하얀 연기들이 피어 올랐다. 담배보다는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부드러운 냄새. 담배보다 몸에 해롭지는 않지만, 조금은 더 강력한 것.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입에 물고 연기를 뿜어 댓다.


6. 밥 말리.

  밥 말리 뮤지엄에서 밥 말리를 보았다. 레게의 전설. 자메이카의 전설이었다. 밥 말리. 그의 음악, 그의 영향을 받은 많은 아티스트. 대한민국의 레게 뮤지션들이 자메이카에서 레게 음악을 배우고, 앨범 작업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었다. 레게의 본고장에서 레게를 듣고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기분이 묘했다.


7. 클럽. 나이트.

  숙소에 머무는 외국애들과 밤에 클럽을 갔다. 자메이카에서 밤에 외출을 할 때는 반드시, 숙소 문 앞까지 택시를 불러서 택시를 타고 목적지 까지 간 다음, 그 곳에서 돌아 올 때도 그 앞에서 택시를 타고 숙소 앞에 내려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봉변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자메이카에선 어떤 사람이 밤에 사람을 죽이고도, 그것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사람을 죽인 사람은 그것을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무서운 세상이구나 라고 생각을 했다.

  클럽 앞에서 돈을 지불하고, 클럽으로 들어섰다. 육중한 철문을 밀고 들어선 그 곳에는 음악이 흘러 나왔고, 많은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자메이카의 젊은이들이 다 모여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곳에서 느낀건, 아, 여기도 라틴인가?

8. 음악이 시간을 채워주는 도시.

  자메이카와 쿠바는 멀리 떨어지지 않았는데, 느낌이 달랐다. 기후도 달랐다. 자메이카에선 힘이 빠졌다. 쿠바보다 습한 날씨와 약간은 더 높은 기온. 낮에는 그냥 숙소 침대에서 뒹굴었다. 나가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거리엔 태양이 내리쬐고 있었고, 사람들은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해가 지길 기다려, 저녁을 지어 먹고. 밤이 깊어지면 숙소의 다른 외국애들과 음악을 즐기러 갔다. 그렇게 자메이카에서의 하루하루는 음악과 함께 하는 시간들로 채워졌다.


- 무료하게 거리를 걸으며



-



- 밥말리 뮤지엄 외벽



- 내가 자메이카에서 한거라곤 고작 밥말리 뮤지엄을 간 것 뿐.








- 밥 말리









- 시계탑. 시내 중심가. 옆에 넬슨만델라 공원이 있다.



- 시외버스 터미널


- 나에게 야유를 보내던 여고생들




반응형

여행-Feeling] 체 게바라. at the CUBA,

- 길을 걷다, 세계여행/Feel-ing, 세계일주-ing, · 2011. 3. 20. 21:06

반응형
second edit.

- 체 게바라


체 게바라,
그는 라틴의 영웅이었다.
하지만,
그가 살아 있을 때, 그가 바라던 세상이 오지 않았다.

그의 모습이 남아있는
라틴 아메리카
지금 그곳엔
그의 모습이, 그의 흔적이 남아 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자본을 위한 하나의 도구가 되어 있었다.

돈을 벌기위한 수단, 체.
자본, 상업을 위한 수단이 되어버린 체 게바라.
그는 단지 좋은 돈벌이 수단에 불과했다.

그는,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La havana, Cuba.




- 혁명광장.  
하바나, 쿠바.


- 까삐똘리아(Capitolio)앞에서 체게바라가 나오는 지폐를 팔고있다.
하바나, 쿠바.


-  Plaza de Armas, 엽서에 나오는 체 게바라의 모습들.
하바나, 쿠바.


- 레전드
  보고타, 콜롬비아.


- 문에 붙여진, 체 게바라의 모습.(술집으로 추정)
키토, 에콰도르.


- 책과 잡지 등등을 파는 잡화상.
라파즈, 볼리비아.


- 라파즈의 여행자거리.
라파즈, 볼리비아.


반응형

'- 길을 걷다, 세계여행 > Feel-ing, 세계일주-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Feeling_) 테살로니키 역(驛)  (23) 2011.08.11
Traveler,  (0) 2011.08.10
Feeling] 한국엔 없지만 아마존에는 있다.  (4) 2011.02.15
반딧불이  (5) 2010.02.24

세계여행] 쿠바, 하바나 - 환상 그 이상의 즐거움 (La Habana) <3>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1. 3. 15. 22:39

반응형

Venezuela, Caracas   -   Cuba, La Habana   -   Jamaica, Kingston

1. 엽서 혹은 편지.

  초등학교 시절[15년 전 쯤]을 생각 해 보면, 친구들끼리 편지를 참 많이 주고 받았었다. 그 시절엔 휴대폰이라는 것도 없었고, 삐삐라고 불리는 작은 기계가 이제 막 세상에 모습을 드러 내려 할 때 였기에, 사람들은 손으로 글자를 쓰고, 편지 봉투에 그 글자들을 담고, 그리고 풀로 그 글자들을 감싸서, 우표와 함께 우체통에 넣었다. 
 
  어느 날, 집으로 들어서기 전 우체통에 다른 사람의 체온이 담긴 편지가 들어 있는 걸 발견 한다면 그 날은 정말 즐거운[혹은 기분 안좋은 일이 있었더라도 좋아지는] 하루가 된다. 

  연말이 되면 엽서를 보내기도 했고, 라디오 프로그램에 사연을 보낼 때도 단연 엽서를 썼다[지금은 휴대폰 문자나 인터넷 게시판을 이용하는 걸로 알고 있다] 누군가에게 짧은 말을 전할 때 나의 체온을 함께 전하고 싶다면 엽서를, 그리고 나의 마음을 좀 더 길게 담아서 전하고 싶다면 편지를 썼다.

  중학교 시절, 설레는 마음으로 편지를 써서 좋아하는 여자아이에게 건네주기도 하고, 저 멀리 다른 도시로 전학 간 친구에게도 편지를 써서 안부를 묻곤 했다. 그리고 해외에 있는 친구들과도 편지를 주고 받기도 했다. 그렇게 편지는 보내는 기쁨과 그것을 기다리는 설렘 속에 기쁨이 있고, 또한 받았을 때도 기쁜 마음이 드는 특이한 존재였다.

  그리고,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장소에서, 그 장소에 어울리거나 그 곳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혹은 그 나라에 어울리거나 특징을 잘 나타내는] 엽서를 구입하고, 친구들에게 안부를 묻는 엽서를 보낸다. 외국에서 외국의 향기가 담긴 엽서를 보내는 것은 백년 전이든 50년 전이든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든 여행자 들이 좋아하는 행동 중 하나이다.

  엽서는 쓰는 사람의 체온이 담기고, 보내는 사람은 받는 사람을 한 번 더 생각하게 해주고, 엽서를 받는 사람은 그 사람의 체온을 전달 받고 기쁨에 잠길 것이 분명하기에, 여행에서 보내는 엽서는 특별한 가치를 지니게 된다.



2. 내 엽서는 어디로 갔나요?
 
  나는 여행을 하면서 엽서를 수 많은 엽서를 보냈다.[보통 한 나라에서 2통 이상 씩. 한 번 보낼 때 보통 2개를 보낸다. 지금 까지 100통이 넘는 엽서를 친구, 혹은 아는 사람, 혹은 여행 중 만난 사람들에게 보냈다. 하지만 그 엽서들이 모두 그들의 품에 도착했는 지는 알 수 없다.]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에게 엽서를 보내면서 드는 생각은 오직 하나. 이 엽서를 받은 사람은 기분이 좋겠지? 그리고 먼 훗날 서랍장을 뒤지다가 우연히 내가 해외에서 보낸 엽서를 발견 했을 때 나를 잠시라도 기억 해 주겠지. 좋은 기억으로. 라는 생각.   
 
  엽서를 받았냐고 물어 봤을 때, 엽서를 받지 못했다는 사람들도 많았다.[특히,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에서 보냈을 경우] 내 엽서들은 어디로 갔을까? 누군가 그 엽서와 관련이 없는 사람 손에 닿아서 파괴 되었거나 그 가치를 상실 했을 것이다.

  내가 억울하게 생각하는 것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보낸 엽서들이 대다수가 한국에 도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엽서 하나 보내는 가격이 한화 5천원 이상을 하지만, 나는 받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기뻐할 것을 알기에 보냈지만, 엽서들은 도착하지 않았다.[물론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



3.  쿠바에 대한 상념.

  대학교 시절, 체 게바라를 알았다. 사회적 문제, 노동 운동에 관심을 가지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이다. 체 게바라 평전을 읽었고, 체 게바라의 젊은 시절을 모델로 한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라는 영화를 보았다. 그리고, 나도 젊은 시절의 체 게바라처럼 오토바이는 아니라도 그 코스를 따라 여행을 해 보겠다고 생각을 했다. 버스를 타고서라도.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와는 많이 다른 코스로 남미를 여행했다. 그렇지만, 그토록 가 보고 싶었던 쿠바에 왔다. 돈이 얼마가 들던 나는 쿠바는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나의 일정을 채찍질 해서 쿠바에 닿아 있었다.

  사실, 쿠바에서는 체 게바라의 흔적을 가장 먼저 보고 싶었다. 체 게바라의 삶의 종지부. 그와 피델 카스트로. 그리고 사회주의 혁명. 쿠바의 이미지는 그런 것들이었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의 재즈 음악과 쿠바나 음악 보다는, 헤밍웨이가 하바나에 머물면서 썻다는 <노인과 바다>의 하바나 바다의 이미지 보다는, 쿠바 혁명의 흔적, 아니 그 보다더 직설적으로는 체 게바라의 흔적이 어떻게 남아 있는 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쿠바에 도착한 첫 날. 나의 쿠바에 대한 환상은 뒤바꼈다. 쿠바는 내가 생각하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혁명의 흔적은 역사의 파편이 되어 한 쪽에 머물러 있었고. 내가 찾던 체 게바라는 사진 속에서만 웃고 있었다.


4. 쿠바에 대해서 얼마나 아세요?

  어디에 가세요? 쿠바에요. 다음은 어디가? 쿠바. 쿠바. 쿠바에 간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좋겠다고 했다. 물론, 나도 쿠바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쿠바에 간다는 나를 부러워 했다. 쿠바가 어떤 곳이길래?

  내가 쿠바에 도착 하기 전 쿠바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곤, 사회주의 국가. 미국과 적대적 관계. 하바나의 클럽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재즈. 체 게바라와 피델카스트로의 혁명. 단지 그것 뿐이었다. 나는 단지 한 사람 때문에 쿠바를 동경하고 있었던 것이 틀림 없다.

  남미, 라틴 아메리카의 영웅. 체 게바라.  하지만 영웅은 어디에도 없었다.

쿠바에 처음 도착하고, 시티 센터에 도착 했을 때 내 눈에 보인 건, 거대한 고딕 양식의 건물이었다. 중세 유럽에 온 듯한 느낌. 유럽의 한 도시에 온 기분이었다. 건물들은 낡아 있었지만, 기품있어 보였다. 흑은과 백인. 혼혈인들이 뒤섞여 있었고, 스페인어들이 쉴새 없이 내 귓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무언가 활기가 느껴졌지만, 내가 기대하던, 내가 생각하던 그런 곳과는 달랐다. 쿠바는 이런 곳인가? 클래식 카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지만, 세련되어 보이지는 않았다. 도로엔 차들이 지나다녔고, 거리엔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혼잡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나는 쿠바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5. 쿠바에 대해서 알아가는 단계.

  숙소로 잡은 불법 까사에서, 쿠바 사람들의 삶을 보았다. 불법 까사는 다세대 아파트의 수 많은 문들 중 하나를 열고 들어가자 나왔다. 5평이 채 되지 않은 작은 공간. 그 곳에서 한 가족이 살고 있었다. 주인 여자의 남편은 경찰. 주인 여자의 나이는 30대 중반 정도로 보였지만 19살 짜리 아들이 있었고, 동생은 5살 이었다. 내 방이랍시고 내 준 곳에 창문은 없었고, 건넛집의 음악소리, 말소리가 다 들려왔다. 옆 집에서 키우는 새들이 아침을 알리는 그런 곳이었다. 침대는 삐걱대고 있었다.

  지도를 보며 거리를 걸었다. 올드 시티. 길을 따라 가자,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곳이라서 그런지 괜찮아 보이는 카페와 식당들이 늘어서 있었다. 건물들은 하나같이 오래되어 쓰러질 듯 한 모습을 띤 것도 있었지만, 그래도 봐 줄만 했다. 광장에는 여러 무리의 광광객 떼들이 보였다. 나는 조용히 그늘에 앉아 그들을 바라 보다가, 혼자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골목 속으로 숨어버렸다.

  밤의 쿠바 시내 거리는 조용했다. 빛 조차 찾아들지 않는 골목 속으로 다니기가 무서웠다. 늦은 밤의 거리는 차들도 거의 없었기에 혼자 그 거리를 걷고 있자니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왠지 모르게 누군가 나타나 칼로 나를 찌를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 - 쿠바가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

  서점에 들러 책을 보았다. 음반 가게에 들러 음악을 들어 보았다. 쿠바나 뮤직. 나쁘지 않기에 CD를 몇 장 샀다. 길 거리에, 서점에 엽서를 파는 사람들. 그 곳엔 항상 체 게바라가 있었다. 체 게바라는 이제 자본주의의 물결 속에서 좋은 돈벌이 수단이 되고 있었다.

  3peso 짜리 지폐 속의 체 게바라는 3CUC(1CUC=24peso)에 판매되고 있는 좋은 기념품의 하나 였다.[나는 우연히 상점에서 3peso 지폐를 거슬러 받았다] 그리고, 체 게바라의 얼굴이 양각된 동전도 하나의 기념품이 되어 있었다. 쿠바 국민들에게는 그냥 동전에 불과했지만, 관광객들에게는 그것이 하나의 기념품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체 게바라의 얼굴을 가지고 돈을 벌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그것은 가능했다.

  혁명의 흔적은 혁명 광장에서 잠깐 느낄 수 있었다. 드넓은 광장을 가운데 두고, 큰 얼굴들이 탑을 바라보고 있었다. 혁명 탑. 체 게바라의 눈동자도 그 곳을 향해 있었다. 혁명은 그 곳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사진속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하바나의 거센 파도. 듣던대로 거센 파도였다. 도심에서는 바람을 전혀 느낄 수 없었지만, 노인과 바다에서 묘사된 듯 한 하바나 해변에는 성난 파도가 휘몰아 쳤다. 이 곳이 노인이 사투하던 바다라고 말하는 것 처럼. 노인은 결국 빈손으로 집에 돌아왔고, 잠이 들었다. 나도 빈 손으로 그 곳을 거닐다가 싸구려 까사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쿠바의 극장에서 쇼를 보았다. 하바나의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극장으로 몰려와 쇼를 보았다. 어딜가나 그런 부류는 있는 법이다. 그 쇼의 가격이 보통 식당에서 코스 요리로 한끼를 먹는가격의 30배가 넘는 금액이지만, 그런 쇼는 표가 없어서 못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젊은 청춘 남녀들의 모습을 보았다. 세상, 어딜가나 다 똑같은 법이다.

  쿠바에는 시내버스 노선도가 따로 없다. 버스 안에만 노선도가 있다. 외국인들은 버스 노선을 알 수 없다. 버스는 한 번 타는데 0.5peso.[한화 약30원]. 일부러 외국인들은 택시를 타게 하려고 노선도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현지인들이 타는 여객선을 타고 요새가 지어져 있는 하바나 건너편의 카사블랑카로 갔다. 그 곳에서 하바나 시내를 바라보고 버스를 타고 하바나로 돌아왔다. 0.5peso짜리 버스에는 쿠바나의 냄새가 났다. 나쁘지는 않았다. 이게 바로 사람사는 냄새.

  0.5peso짜리 시내버스를 타고 정처 없이 돌아 다녔다. 그냥 이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그리고 거기서 또 다른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그렇게 버스를 타고 사람 사람 곳을 돌아다니며 구경을 했다. 시티투어 버스가 15CUC인가(?)를 하는것에 비하면 100배 이상 싼 금액이니까. 난 그런 여행을 즐겼다.


6. 쿠바 어떤가요?

  쿠바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조금 더 많이. 쿠바는 내 생각 속에서 혁명의 나라 였지만, 그 곳은 정열의 나라 였고, 음악의 나라였고, 사람 냄새 나는 곳이었다.

  한편으론, 체 게바라가 너무나도 상품화 되어있다는 사실이좀 씁쓸하긴 했다. 체 게바라가 과연 그 사실을 알면 어떤 말을 할까?

쿠바는 그런곳이었다. 사람 사는 곳. 라틴 아메리카 속의 라틴 아메리카. 


- 까삐똘리오 옆으로 지나가는 버스


- 까삐똘리오


-


-
























- 차이나 타운 입구



- 혁명 광장의 체 게바라










- 하바나 해안도로






- 카사블랑카 언덕에서 본 하바나





 Good Bye Cuba, Adios! Habana!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