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뉴욕(NewYork) - 나는 할렘가(125th st)에 머물고 있어요.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4. 4. 26.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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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목 사회에서 농경 사회로.
  사람들은 큰 강 유역에 모여 살면서 문명 사회를 이루었다. 그 이전의 시대의 사람들도 모여 살긴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이지도 않았고 때로는 이동을 하는 수렵, 채집 중심의 사회였다. 생존에 유리한 환경 속에서 사람들이 모여 살다보니, '문명사회'라고 불리는 것이 만들어 졌다.

  산업 혁명 이후, 사람들은 도시로 몰려들었다. 대도시는 점점 더 거대도시가 되어갔고 대도시 주변에는 신도시라는 이름의 작은 도시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산업 혁명은 영국에서 시작하여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경제를 발전시키려는 나라들의 도시들은 비슷한 모습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도시에는 노동자들이 사는 곳과 부자들이 사는 곳의 구분이 생겼고, 부자들은 엄청난 돈을 들여가며 자신들만의 쉼터를 만들며, 삶을 윤택하게 가꾸어 나갔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힘든 삶을 살아야 했다.

△ '뉴욕(New York)' 롱아일랜드에서 바라본 뉴욕의 중심 맨해튼.



    2. 어디 사세요?

  누군가를 만났을 때, 가장 흔히 하는 질문은 어디에 사느냐고 묻는 것이다. 한국에서, 특히 서울에서. '사는 곳'은 자신의 경제력, 경제적 지위가 대략 어느정도 된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 되었다. 예컨대, 자신이 처음 만난 두 사람에게 "어디에 사느냐"고 물었을 때 어떤 사람 A는 '강남구 XX동 타X팰X스'산다고 말했고, B는 '노원구 상X동'에 산다고 했다면[노원은 필자가 사는 곳으로서, 극단적 비유를 위해 예로 든 곳이다],  A와 B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우리 사회는 이미 어떤 사람이 어떤 동네, 어느 아파트에 사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그 사람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어떻다는 것을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 어느 누구도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동네 이름'만 가지고 그 동네 사람들이 어떻다고 생각한다. 비단 이런 현상이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비슷한 현상은 목격 할 수 있다.


   3. 125번가 역으로 가려면 어떻게 가죠?
  맨해튼에 있는 가장 저렴한 게스트하우스의 도미토리를 예약했다. 125번가에 위치한 호스텔이었다. 나는 맨해튼에 생각보다 저렴한 숙소가 있다는 사실에 약간 놀라면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여행 경비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숙박비'이기 때문에 나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저렴한 숙소를 선택한 것이다..

 

△ 125번가 역(왼쪽), 125번가에 내리는 눈(오른쪽)

  JFK공항에서 입국 수속을 마친 후, 전철에 몸을 실었다. JFK공항철도에서 내려, 전철로 옮겨 탔다. 전철은 125번가를 향해 달려갔다. 전철이 목적지인 125번가에 가까워질수록 열차 안의 사람 수는 줄어들었지만, 흑인의 비율은 높아졌다. 전철은 차가운 공기를 가득 싣고 계속해서 북쪽으로 달렸고, 125번가 역에 도착했다. 

  전철역을 빠져나와 바라본 풍경은 내가 늘상 외국에서 보던 풍경과 비슷했다. 여느 도시와 비슷하다는 생각. 뉴욕, 주변에 흑인들이 좀 많다는 것을 제외하곤 별다른 특별함이 없었다. 나는 게스트하우스의 주소를 확인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길은 어두웠고, 길 양쪽으로 눈이 쌓여 있었다. 

 '아, 1년 만에 겨울로 돌아왔구나. 뉴욕, I LOVE YOU'


   4. 할렘가(Harlem District)
  게스트하우스에서 체크인을 하고, 도미토리에 들어간 나는 도미토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냈다. 그러나 다른 여행지와는 좀 다른 분위기의 숙소라고 생각했다. 남미나 중동 같은 곳에서 느낄 수 없었던 서먹함이 나의 피부를 파고 들었다. 대도시를 여행할 때 느낄 수 있는 서먹함. 그런 느낌이라고 생각했다. 어색했다. 오랜만에 이런 느낌을 받는 다는 것이. 그렇지만, 나는 늘 하던 습관대로 눈앞에 보이는 이들에게 가볍게 인사를 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여행 하는 사람들의 예의인 양.

  론니플래닛(Lonely planet)을 펼쳐 들었을 때, 125번가에 대한 내용이 나왔다. 125번가, 숙소가 있는 곳이라는 생각에 찬찬히 읽어 보았다. 할렘가(Halem District)의 중심인 125th st. 내가 위치한 곳이 할렘가의 중심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내가 전철을 타고 오면서 보았던 풍경들이 좀 더 명확히 이해되었다. 지하철이 맨해튼 남쪽에서 북쪽으로 오면서, 흑인들만 열차에 올랐던 이유를. 지하철 역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대다수가 흑인들이었다는 사실이 다시금 생각났다. 그리고 지금 머물고 있는 숙소가 저렴한 이유도 어느정도 이해되었다.


  이곳이 할렘이라고 불리는 곳이었지만, 그 동안 영화나 드라마로 보던 할렘의 이미지, 말로 듣던 할렘의 이미지와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저, 그냥 사람사는 동네였다.


   5. 저지 시티(Jersey city)에서 들은 이야기.
  하루는 미국에 유학 온 대학 동기를 만나기 위해 허드슨 강 건너편의  맨해튼 서쪽의 저지 시티로 갔다. 저지시티에서 식사를 하고 쇼핑몰을 구경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친구는 나에게 숙소가 어디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125번가에 숙소가 있어" 친구는 놀라며 되물었다. "거기 할렘이잖아? 안 위험해?"

 "몰라, 위험한 건 전혀 모르겠는데? 그냥 똑같아."라고 대답했다.

 나는 생각했다. 할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할렘의 공포를 만든다.

 "할렘에서는, 저녁 때 운전자도 없는 자동차들이 도로를 돌아다닌다"는 말도 이런 맥락에서 생긴 오해가 아닐까.


   6. JFK공항에서,

  예상치 못한 폭설이 내렸고, 비행 일정이 취소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유나이티드 에어라인(United Airline)데스크에서 다음 비행기를 알아보았지만, 항공사에서 제공해 줄 수 있는 비행편은 '5일 뒤'에 있는 비행기 뿐이었다. LA에 가서 내가 타고 가기로 되어있던 LA발 대한항공 비행기는 정상 운행이었지만, 뉴욕에서 LA로 갈 방도가 없었다.

 

△ 전철을 타고 공항으로 가는 길에 바라본 눈내리는 마을(왼쪽), 모든 비행편 결항으로 인해 혼란스러운 공항(오른쪽)


  나는 유나이티드에어라인 직원과 영어로 계속 대화를 하다보니 답답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LA의 대한항공 직원과 전화 통화를 해 보았지만, 마땅한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면서 데스크에서 계속 직원과 대화를 하고 있을 때, 동양인 직원 한 명이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한국 분이시죠?" 

 나는 그 직원의 도움으로 비행 스케줄을 새로 잡을 수 있었지만, 당장 비행기를 탈 수 있는 방도는 없었다. 숙소로 돌아가서 며칠을 보내야 할 것 같았기에, 직원은 나에게 숙소가 어디냐고 물었고, 나는 대답했다.

 "125번가에 있던 숙소였어요. 지금 돌아가도 방이 있을 지 모르겠네요"

  그러자 그 직원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할렘, 위험하지 않아요? 왠만하면 그곳으로 돌아가지 말고 다른 숙소로 알아보세요"

 "퀸즈에 친구가 살고 있어요. 그곳으로 가보죠."라고 내가 말하자 직원은 휴대폰을 빌려주며 그 친구에게 전화하고, 그리로 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당부했다. "125번가는 위험하니까, 조심하세요."

  나는 새로 발급받은 보팅패스를 들고 데스크를 빠져나왔다. JFK공항 통유리 너머로 매서운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다. 뉴욕은 나를 그런식으로 붙잡고 있었다.

△ 브로드웨어 42번가의 화려함. 이곳의 화려함은 '125번가 할렘'과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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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쿠바, 하바나 공항 - 하바나 공항과 한 꼬마.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4. 1. 27. 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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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rd Edit.


1. 여행 속 "만남".

  혼자 여행을 하는 사람이든,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하는 사람이든, 여행은 여행하는 사람에게 있어 만남의 연속이다. 특히 그 만남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혼자 여행을 하는 사람은 더 많은 만남을 경험 할 수 있다] 
  그 '만남'이라는 것이, 잠깐 스쳐가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조금 길게 이어질 수 있고, 그 만남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만남을 통해서[여행 중 누군가와의 만남]을 통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만남은 어쩌면 우리가 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고귀한 경험일 지도 모른다.



2.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그 여행 속에서 만났던 수 많은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그 만남은 여행이 끝났지만 지속되고 있을 수도 있다] 나도 많은 여행을 했고, 많은 만남이 있었다[아직은 젊은 나이-만 25세 밖에 안되었으니!-라서 더 많은 만남을 가질 수 있었는지도] 
  인도에서의 많은 사람들, 이집트에서 그리고 유럽에서의 만남, 터키의 친구들, 네팔의 연인, 시베리아 횡단열차속에서의 만남, 남미, 쿠바 등. 수 많은 사람들이 나와 만났고, 대화했고, 함께 했고,  내 카메라 렌즈속으로 들어왔고, 나 또한 가끔은 그들의 카메라 메모리에 저장되었다.
  그리고 나는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그들의 다양한 사고방식을 이해했고, 그들의 다양한 문화를 이해했고, 나 자신의 삶의 방향을 만들어 갔다. 
 
  만남 속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은 나의 추억이 되었고, 나의 스승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 어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의 재산이 되었다.



3.  쿠바 하바나(Havana)에서의 짧은 여정을 마치고, 왠지 모를 아쉬움을 남겨둔 채. 자메이카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갔다.

  쿠바에서의 일주일,
싸구려 카사(까사,casa 홈스테이)에서, 다시는 경험 하지 못 할 쿠바 사회를 간접적으로 경험했다[숙소의 영향이 컷다. 그 곳은 실제 그들이 사는 곳이었으므로] 그것은 그들의 현실, 삶이었다.[내가 머물던 집은 불법 카사로서,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못한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이었다]

나의 비행기는 케이만아일랜드(Cayman Island, 영국령의 카리브해의 섬)를 경유해서 자메이카로 가는 것이었기에[그 비행기가 가장 저렴했다. 약 215US$], 하바나 공항에서 케이만아일랜드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와 같은 비행기를 타는 것 같아보이는 한 꼬마가 나의 앞 쪽 건너편 자리에서 심심한 듯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 때 케이만아일랜드행 비행기가 대기하고 있는 게이트 앞에 있었는데, 그 앞에 그 꼬마와 삼촌뻘로 보이는 사람이 같이 있었으므로 그런 사실을 쉽게 파악 할 수 있었다.] 


4. 한 꼬마.

  한 꼬마가 하바나 공항, 케이만아일랜드행 비행기에 탑승하는 게이트 앞에 왔다. 그 꼬마는 혼자 앉아 있는 한 남자를 보았다. 검은 머리에 거무잡잡한 피부. 보통의 남자들보다는 조금 긴 머리. 그리고 보통의 남자들 보다는 조금 큰 키. 그 꼬마 여자아이는 귀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은 신기한 무언가를 보는듯한 눈빛으로 동양인 남자를 바라보았다.

 꼬마는 그의 앞자리[건너편]에서 그를 몰래 훔쳐보다가, 그가 꼬마에게로 시선을 가져가면 의자 뒤로 숨곤 했다. 그 꼬마의 삼촌뻘 되어 보이는 남자는 쿠바에서의 일정이 피곤했는지 의자 위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고, 그 꼬마는 자신과 놀아줄 상대를 찾지 못해, 심심해 하는 눈치였다.
 
  꼬마의 장난기 어린 행동이 시작되었고, 그 곳엔 숨바꼭질 하듯 긴장감이 나돌았다. 그는 카메라를 집어 들고, 카메라의 초점을 꼬마쪽을 향해서 고정시킨 채, 꼬마를 향해 셔터를 눌렀다.
 

5.                           

  나와 그 꼬마의 숨바꼭질. 나는 사실 속으로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그 꼬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얼마 후 그 꼬마의 삼촌뻘되는 사람이 잠에서 깨어났고, 우리들의 놀이는 끝이 났다. 
  꼬마를 향해 셔터를 눌러 대던 그 당시엔 몰랐지만, 그 곳을 떠난 지금 그 때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정말 재미있는 장면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쿠바 남쪽의 작은 섬들, 케이만제도로 날아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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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몽골, 루마니아 외 - 슬픈 눈빛, 때묻은 손을 나에게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4. 1. 27.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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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걸, 구걸하는 사람들.

  길을 걷다보면 마주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지하철을 타도 자주 마주칠 수 있다] 여행을 하다보면, 더 자주 마주치게 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당신에게 다가와 손을 내민다. 그리고, 애절한 눈빛을 함께 당신의 시선 속에 던진다. 그리고 간혹 이런말을 함께 당신의 주변에 맴돌게 하기도 한다. One Dollar.

  그 사람들이, 그 아이들이. 구걸을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일까? 아니면 그가 그렇게 구걸을 하게 만든[특히, 외국인을 상대로 구걸을 하는] 사회 제도, 구조가 잘못된 것일까? 결론을 쉽게 내릴 수 없을 것 같다[아마도 이 문제는 생각하는 사람에 따라서 다른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여행을 하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들[구걸을 하는 아이들, 사람들]에게 돈을 쥐어준다. 그들이 외치는 원 달러. 원 달러를 외치는 이들에게 있어서 원 달러의 가치는 비교적 크다. 하지만 그에 반해, 원 달러를 건내주는 사람에게 있어서 원 달러의 가치는 너무나도 작은 것이 일반적이다[자기 나라(본국)의 화폐 가치에 비교 했을 때]. 그러기에, 그들은 쉽게 원 달러를, 원 달러를 외치는 이들이게 건네준다.

  혹자는 '그들'의 행동이 잘못되었고, 그런 행동을 되풀이 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혹자는 '그들'의 행동은 사회적 약자의 행복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도와 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누구의 말이 옳고, 그르다고 말할수는 없다. 그것은 각자가 가진 가치관의 문제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의 문제이고, 그 동안 그들 자신이 쌓아온 경험의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들에게 손을 내미는 '그들'은 최소한 사회적 강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2. 작은 바구니를 품에 품고,

  지하철 차량을 연결하는 통로의 문이 열리고, 잡음섞인 음악 소리가 작은 기계를 통해서 열차 안에 울려퍼진다. 누군가는 얼굴을 찌푸리고, 누군가는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로 그 사람이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지하철 차량 속의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 손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거나, 그 사람이 지나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다가 간혹,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한 손에 들려있는 바구니에 지폐 한장 혹은 동전 몇 개를 집어 넣는다. 그렇게 음악을 짊어진 사람은 유유히 다른 열차칸으로 사라져간다. 잡은 섞인 음악의 파편만을 열차칸에 남겨 놓은채.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뉴스에서는 장마라고 떠들어대고, 비 피해를 조심해야 한다고 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우슨을 펼쳐들고 거리를 돌아다녔고, 그들이 지하보도로 들어섰을 때 하늘로 향하던 우산을 땅을 향했고, 하늘에서 우산위로 떨어지던 물방울은 우산에서 땅으로 떨어졌다. 물방울은 바닥을 적셨고, 이내 작은 바구니를 앞에 두고, 바구니를 향해 엎드려 있던 사람의 무릎을 적시는 듯 했다.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역사를 빠져나오는 길의 풍경은 이랬다.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의 시선은 그들의 뒷통수만 살짝 스쳐 지나갈 뿐, 그들의 바구니를 무겁게 채워주지는 못했다.



3. 기차는 국경을 넘어, 

  테살로니키를 오후에 떠난 기차는 북쪽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리스 북부지방을 지나, 마케도니아 국경을 지나려 하고 있었다. 국경을 지나기 위해 정차한 기차에는 국경 기차역의 고요함이 스며들고 있었다[기차를 타고 국경을 지나본 사람이라면 알 법한 느낌]. 새 소리가 울려퍼지던 그 때, 내가 타고 있던 칸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꾀죄죄한 얼굴의 한 여자가[30대 중반정도의 얼굴]가 나를 슬픈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알아 들을 수 없는 말로 나에게 말을 걸어 왔다. 나에게 조금 다가오면, 손을 내 밀었다. 그녀의 뒤에는 작은 꼬마가 그녀의 옷깃을 잡고 있었고, 나의 시선은 꼬마에게 잠시 머물렀다가 그녀의 손을 향했다. 그녀의 손에는 유로화 동전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그녀가 했던 말을 생각 해 보았다. 나에게 동전을 달란 말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케도니아를 지나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로 가는 기차에서 유로화 동전은 쓸모 없는 것이었다. 마케도니아에서도 세르비아에서도 유로화는 사용될 수 없는 돈. 골동품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손에 쌓인 동전을 보며, 나는 나보다 돈이 더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을 잠시 했을 뿐, 그녀를 향해 고개를 저을 수 밖에 없었다.  



4. 집시, 집시 아이들.

  시비우(Sibiu)를 지나 머무르던 작은 마을 시기쇼아라(Sighisoara). 그는 기차역에서 그가 타고 갈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역 앞의 작은 상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역 쪽으로 다가가자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 들었다. 그는 어제, 그 동네의 빌라옆 쓰레기통을 뒤지던 한 무리의 아이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아이들은 말을 걸어 왔다. 그러면서 그의 한 손에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가리켰다. 이미 그가 반 이상을 먹은 소프트 콘이었다. 그의 침과 아이스크림의 녹은 부분이 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아이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아이스크림을 받아 먹었다.
  그는 가방에서 자일리톨을 꺼내 아이들에게 하나씩 나눠 주었다. 아이들은 기뻐하며 껌을 받아갔다. 이윽고, 멀리서 기차 소리가 나더니, 서서히 멈춰섰다.

  기차 안은 한산했다. 시골 작은 도시를 출발한 기차는 비교적 큰 도시이자, 많은 기차들이 지나는 브라쇼브(Brasov)로 향했다. 그는 음악을 듣고 있었고, 그의 옆 건너편 칸엔 루마니아 전통의상을 입은 것 같은 여인과 아들, 그리고 남편처럼 보이는 남자가 타고 있었다. 그 여인이 갑자기 그에게 말을 걸어 왔다. 그는 알아 들을 수 없었지만, 그 여인이 사진 찍히기를 원한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는 그들의 사진을 찍어 주었다. 그러자 그 여인이 그에게 뭐라고 말했다. 그는 정확히 그 뜻을 알 수 없었지만, 그녀의 행동으로 보아 돈을 달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지만, 사진에 대한 답례로, 유로화 지폐를 한 장 건네 주었다.



5. 몽골, 초원에는 웃음이 울려 퍼지지만,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백화점 앞에는 관광객들이 여러가지 물건을 사기위해서 몰려든다. 그리고, 그들에게 다가가는 다른 이들이 있었다. 너덜너덜한 옷가지를 입고, 얼굴엔 콧물 흐른 자국이 있는 아이들. 그 아이들은 나에게, 나와 같이 있던 일행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아이들의 모습이 불쌍했지만, 그렇게 관광객들에게 구걸을 하는 아이들이 밉기도 했다. 나와 함께 있던 일행 중 한 명이 그 아이들에게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주려 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사탕'이었다. 그는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인도에서, 내 또래의 일본인과 잠시 동행을 한 적이 있었다. 그는 나와 함께 버스를 타고, 조드푸르로 향하는 길이었다. 조드푸르에 도착했을 때, 숙소로 올라가는 길, 언덕 중턱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 한 무리를 만났다. 그 아이들은 우리 둘을 쳐다보았고, 우리도 그 아이들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갑자기, 그 일본인은 보조가방을 주섬주섬 열기 시작하더니, 그 안에서 사탕을 꺼내서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나는 항상 사탕을 준비해서 다녀요. 이렇게 아이들을 만날 때 마다 사탕을 나눠주면 굉장히 좋아하더라고요."라고 덧붙이며 그는 웃어보였다.

  왜 그 때가 생각난걸까? 몇 달도 더 전에 여행했던, 인도였다. 인도부터 유럽까지. 그리고 또 다시 유럽에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몽골까지 온 나였다. 여기에서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고 있었다.

  구걸하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는 모습. 인도에서 그냥 뛰어놀던 동네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던 모습과는 조금은 다른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어쨌거나, 구걸해서 돈을 얻어가는 아이들이 못마땅했다. 그들은, 충분히 다른 일을 배울 수 있었음에도, 구걸을 배웠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6. 어느 식당, 셋 만의 이야기.

  몽골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세 명의 한국인은 해가 대륙 저편으로 넘어가고, 어둠이 몽골을 덥쳤을 때 저녁을 먹기위해 시내 레스토랑으로 갔다. 광장을 지나서, 조금 더 떨어진 곳. 거리는 어두웠다. 식당안은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지만, 밖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칠흑같은 어둠만이 그 식당을 감싸고 있었다. 그는 창밖을 바라보면서 이 세상에는 그 식당과 그 안에 있는 사람만이 존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낮에 있었던, 구걸하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거리로 떠올랐다. 구걸하는 아이들에게 돈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사람과 그들을 도와 주어야 한다는 또 한 사람. 왜 구걸을 하는 것일까? 라는 질문과 함께 서로의 견해가 테이블 위에 쏟아졌다. 
  
  그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더이상 없기에, 구걸이라는 수단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을 하던 한 사람. 사회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어 버린 거라는 그녀의 말. 그리고 여러가지 이유를 설명하는 그녀의 말은 어느정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다른 견해를 피력하던 그는, 그것은 자신의 의지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 아이들, 그리고 아니가 조금 더 있는 아이들. 그들이 과연 구걸밖에 할 수 없었을까? 그 아이들이 다른 것을 하고자 했다면, 그의 부모나 다른 나이많은 형제가 다른 일을 할 수 있도록 뭔가를 해 주었다면 그들은 구걸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다른 일을 힘들게 배우고, 하는 것 보다 구걸을 하는게 더 쉽고 편하게 돈을 구할 수 있는 일이라는걸 알기 때문에 그들은 구걸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덧붙였다. "내가 예전에, 돈이 없어서 그리스에서 구걸을 한 적이 있었는데, 구걸을 하다보면 욕심이 생기고, 구걸이라는 것이 돈을 정말 쉽게 모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는 걸 알게돼."(http://dwis.tistory.com/563 참조)



7. 단상(短想)

  지하철에서 장님인 척, 구걸을 하는 사람이 지하철을 내리고 역사를 빠져나가면, 고급 승용차를 타고 유유히 사라진다는 말[풍문인지 진실인지는 알 도리가 없지만]을 들은 적이 있다. 구걸로 상당한 수입을 올린다는 말이다. 지하철역이나 길거리에 하루종일 업드려 있는 사람들의 바구니에 얼마 만큼의 돈이 들어가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난 항상 이런 생각을 해본다. 저들은 정말 무언가 다른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일까?

  물론, 구걸도 구걸을 하는 사람의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특히, 경제적으로 발전이 덜되어 사회 전체가 풍족하지 못한 곳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아이들 중, 극빈층에 속하게 되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구걸밖에 없을 수도 있는 것이고, 구걸이 편하고 좋아하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구걸에 대해서, 누가 옳고, 누가 그릇됐다고 가타부타 할 수 없는 것 같다.는 생각.




-해가 저무는 시기쇼아라



- 시기쇼아라 역의 아이들,




- 시기쇼아라의 아이들


-기차 안,



- 불가리아, 집시 가족



- 울란바토르 메인광장






-사원 주변 풍경



- 전통과 현대의 공존



- 어둠이 스미는 광장



-울란바토르 역




- 테를지 국립공원. 이곳엔 아직도 노마드가 있다. 아무 걱정 없이 사는 것 같아 보이던, 말을 타고 달리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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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인도, 암리차르 - 황금사원, 템플스테이 그리고 친구들(Amritsar, Golden Temple)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3. 10. 9.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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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플스테이(Temple Stay), 하다.

  언제부턴가 우리 주변에 템플스테이에 관한 이야기가 많아졌다. '사찰', '사원', '신전' 등에서 머문다는 의미의 '템플스테이'는 종교적인 의미를 떠나, 우리 삶에서 문화 생활의 한 단면으로 자리잡고 있다. 바쁜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호젓한 사찰에 머물며 몸과 마음의 다스리고 자기 자신을 되돌아 보며, 힐링을 한다는 의미로 템플스테이는 꽤나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템플스테이를 하는 데 있어서 개인이 가진 '종교'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Temple'은 모든 사람에게 개방적이며, 템플스테이의 기회를 제공해 준다. 템플스테이는 특정 종교를 믿는 사람들만의 것이 아닌, 우리 모두가 향유할 수 있는 문화적 행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황금사원(Golden Temple, 골든템플)


 우리는 템플스테이를 하면서, 그 사원의 종교가 추구하는 이상향을 좇을 필요는 없다. 그곳의 상징물이나, 분위기가 자신이 추구하는 어떤 목적을 얻는데 도움이 된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은 것이다. 단지 우리는 템플스테이를 통해서 자신을 위한 수양을 통해 어떤 깨달음을 얻으면 되는 것이다. 

  우리는 템플스테이를 통해 새로운 무언가를 추구할 수 있다.


2.플스테이_가능할까요?

  여행을 하다보면, 종교와 관련된 많은 건축물들과 마주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여행지인 '경주'는 신라시대 불교 유적 일색이며, 우리나라 국보/보물급 유물들도

룹비니(Lumbini)의 한국 사찰

종교와 관련있는 것이 대다수이다. 또한, 유럽 대부분의 관광지들은 로마 제국과 중세 기독교의 산물이며, 중동의 대다수 유적지들도 종교만 조금 다를 뿐, 유럽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인도에는 다양한 종교가 있고, 각각의 종교들은 그들만의 성지(聖地)를 가지고 있으며, 외국인 관광객이든 현지인이든 많은 사람들이 성지를 찾는다. 

 성지에는 흔히 '사원'이라고 일컬어지는 각 종교들의 'Temple'이 있다. 

  인도와 네팔은 불교의 발상지 답게, 불교와 관련된 많은 성지가 존재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곳이 네팔의 룸비니[Lumbini, 부처님(고타마 싯타르타)이 태어난 곳]와 인도의 보드가야[Bodh Gaya,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장소, 보리수 나무가 있다]이다. 우리는 그곳의 불교 사찰에서 템플스테이를 할 수 있다.

 인도의 북서부, 파키스탄과의 국경도시 -암리차르(Amritsar)-에는 많은 이들이 파키스탄과의 국경에서 벌어지는 국기 하강식 행사를 보기 위해 몰려가지만, 그곳은 '시크교'의 성지인 '황금사원(골든템플, Golden Temple)'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황금사원'에는 외국인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가 따로 마련되어 있으며, 많은 현지인 순례자들도 사원 바로 옆의 숙소에서 머물고 있다. 우리가 어떤 목적을 가졌든, 성지의 '사원'들은 우리에게 호의를 베푼다. 그들 종교는 그들만의 종교가 아닌, 모든 사람들을 위한 종교라는 생각이 들게끔, 우리들에게 많은 호의를 베푸는 것이다. 우리가 그들 종교에 반하는 극단적인 행동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들 종교가 제공하는 호의를 받으며, 그곳에서 우리 자신을 위한 힐링의 시간을 가질 수


3.금사원(Golden Temple), 친구들.

 황금사원의 외국인 숙소는 협소한 공간이기에 언제나 많은 외국인들로 붐빈다. 물론, 그곳에도 숙소를 관리하는 사람이 따로있고 침대의 개수를 넘어서는 외국인은 그곳에서 머물 수 없었다. 다행히

사원의 숙소. 현지인들이 묵는 숙소다.

내가 암리차르의 황금사원에 도착했을 때, 하나의 침대가 비어 있었다. 어두운 주황색 조명이 약하


게 빛나고 있는 길쭉한 방에 침대들이 길게 놓여 있었고, 여럿이 함께쓰는 작은 방들도 몇 개 있었다. 종교 시설에서 마련해 준 숙소라기 보다는, 게스트하우스의 도미토리 같은 느낌을 풍기는 그 숙소에는 나 처럼 혼자 여행을 다니는 여행객에서부터 둘 또는 셋이서 다니는 여행객까지 다양한 여행자들이 있었고, 책을 보거나 수다를 떠는 사람, 그리고 음악을 들으며 낮잠을 자는 사람까지 다양 행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나는 내 옆 침대에 누워있던 남자와 인사를 했다. 이름은 짐(Zim). 미국 보스턴에서 왔다고 했다. 마침, 점심을 먹고 난 뒤 책을 뒤적이고 있었고, 잠시 후에 암리차르의 한 사원에 놀러가려던 참이었다고 했다. 그곳은 Mandir Mata Lal Devi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나는 그곳에 대해 전혀 몰랐고, 짐도 잘 몰랐지만 일단 갈 거라고 했다. 두 명의 동행자가 있었다. 내 침대는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쪽이었고, 두 명의 동행자는 길쭉한 방의 안쪽에 위치한 침대에 머물고 있는 두 명의 영국 소녀였다[여성이라고 하기에는 젊었으므로]. 하나(Hannah)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는 마른 체형에 안경을 썼고, 백금색 금발 머리를 가진 소녀였다.

짐, 캐시니, 하나(왼쪽부터)

또 다른 소녀는 캐시니(Kayshani)라고 하는 소녀였는데, 하나와 달리 통통한 체격에 성격도 활발했고, 피부는 햇빛에 약간 그을린듯 했으며, 머리색은 갈색이었다. 하나와 캐시니는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졸업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보스턴에서 온 짐, 영국에서 온 하나와 캐시니, 그리고 나는 황금사원의 숙소에서 만나자 마자 함께 Mandir Mata Lal Devi라는 사원을 찾아 떠났다. 


 Mandir Mata Lal Devi를 찾아가는 길은 유쾌했다. 인도의 그저 그런 거리였지만, 대도시가 아니었고, 관광객들은 대부분 국경인 와가(Wagah border)로 향해서인지 거리에 관광객들은 거의 없었다. 거리의 인도 사람들도 우리를 낯선 눈으로 바라보았다. Mandir Mata Lal Devi는 여러

신들의 모습(Mandir Mata Lal Devi)

신들을 모셔놓은 사원이었다. 인도의 수 많은 신들. 수 만 가지의 신들이 존재한다고 들었는데, 그런 신들을 모아 놓고, 모시고 있는 사원이었다. 우스꽝스러운 생김새의 신들에서부터 돌맹이 모양의 신들까지 다양한 생김새의 신들이 있었고, 우리는 동굴 탐험을 하듯이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놀이동산 귀신의 집에 온 기분이라고 할까?


 한참 동안 사원 안을 헤매고 돌아다니고 나서야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하나와 캐시니 그리고 짐은 활동적이었고, 웃음을 멈출 줄 몰랐다. 그렇게 우리는 사원에서의 추억을 뒤로 한 채, 국경에서 벌어지는 국기 하강식을 보러 가기 위해 와가로 가는 릭샤에 올랐다.




4.행이란 그런 것.


 여행이란 우연의 연속이 만들어 낸 산물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아무런 구체적인 계획이 없이, 황금사원에서 황금 빛으로 빛나는 사원을 보기 위해 그곳에 갔다. 그곳엔 내가 들었던, 내가 생각하던 황

밤의 황금사원(Night of Golden Temple)

금사원이 있었다. 타지마할보다 더 뛰어난 예술, 건축물이라고 불리던 황금사원이었다. 그리고 듣던대로 아름다웠다. 어둠 속에서 황금빛으로 빛나는 황금사원은 나에게 묘한 기분이 들게 했다. 사원안은 언제나 경건했다. 혼잡스러움 속에서도 경건함이 깃들얼 있었다.


 우연히 친구들을 만났다. 그곳에서 처음 만났고, 그리고 황금사원을 떠나면서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친구들이었다. 모두 황금사원으로 모였다가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졌다. 그곳에는 세계 각지에서 모인 친구들이 머물고 있었다. 템플스테이를 하며, 황금사원에서 제공하는 식사를 먹었고, 제공하는 잠자리에서 잤고, 그곳의 공동 샤워실에서 함께 샤워를 했다. 함께 밥먹고, 함께 호흡하면서 공통의 목적을 가지고 행동하는 우리들이었기에, 짧은 기간에 친해질 수 있었고, 나이와 국적을 떠나 서스럼없이 지낼 수 있었다.


 내가 한 달 뒤에는 터키에 갈 예정이라고 말하자, 터키에서 여행온 친구가 이스탄불의 저렴한 숙소

우리들. Friends.

가 있는 곳과 맛있는 먹거리가 있는 골목을 알려 주었다. 맥글로드간즈로 간다고 하자, 그곳에서 온 여행객이 그곳에 쉽고, 편하게 가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나도 내가 지나온 길에 대해서 알려 주었다. 하나와 캐시니 그리고 짐과는 서로 간단한 선물을 교환했다. 흔히 여행객들이 차고다니는 팔찌. 서로 팔찌를 주고 받고, 헤어졌다. 첫만남이 있고 난 다음 날, 짐이 떠났고, 그 다음날은 하나와 캐시니가 떠났다. 그리고 그 다음날은 내가 황금사원을 떠났다. 


 모두가 우연히 만나지만, 그것이 필연적인 것이라는 착각이 드는 것. 그리고 각자의 길을 가기위해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지만, 그러지 않을 것처럼 지낸다. 여행이란, 그런 것이다.

 

 여행. 만남과 헤어짐을 통해 완성 되는 것. 템플스테이를 통해서 더 특별해 질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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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사원으로 들어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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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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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황금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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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황금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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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하강식에 모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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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하강식(인도-파키스탄 국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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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으로 지는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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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인도, 아그라 - 타지마할, 우리는 왜 그곳에 머무르지 않는가?(India, Agra).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3. 9. 17.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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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리가 생각하는 것들_장소에 관하여.


  우리가 장소를 기억한다는 것은, 그 장소에 어떤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어떤 특정한 장소를 접하는 사람들은 각자 그 장소를 다르게 인식한다. 어떤 장소는 누군가에게는 좋은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특별한 장소가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 장소가 불쾌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곳 일 수도 있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무런 감흥

장소와 방향(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도, 의미도 없는 기억에 조차 남지 않는 '장소'가 될 수도 있다. 

  이처럼 '장소'는 가변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장소에 대해 서로 다른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장소는 사람들에게 상이한 의미를 전달하게 되는 것이다. 그 '장소'는 그 자체의 하나로 존재하지만, 우리는 그 장소와 함께 다른 수많은 '이미지'들을 결합시켜 다양한 '장소'로 만들어 우리들 각자의 머릿속에 넣어둔다[그것이 의식적 행동이 될 수 도 있고, 무의식적인 행동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기억을 하거나 어떤 추억을 만드는 데 있어서 많은 이미지들을 활용한다[기억을 하는 데 있어서 이미지를 활용하는 것은 상당히 유용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어떤 장소는 어떤 특정한 이미지와 연결되어 우리의 머릿속에 남게 된다. 예컨데 우리가 일상을 보내며 과거의 특정한 경험과 연관되는 어떤 특정한 이미지[사물, 사진, 영상 등의 모든 형태]를 접하게 될 때 우리는 그 이미지와 관련된 어떤 기억을 떠올릴 수 있고, 잊고 있던 옛 추억이 떠오름으로 인해서 즐거운 감상에 젖을 수도 있다.  

 

  또한, 우리는 어떤 장소를 생각하거나 떠올리려 할 때, 그 장소에서 보았던 이미지들을 회상할 수도 있고, [아직 그 장소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이 없다면]책이나 인터넷에서 보았던 어떤 것을 떠올릴 수도 있다. 우리가 떠올린 이런 이미지들은 어떤 '상징'이 되어 우리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징'은 우리가 여행을 할 때, 어떤 지향점 혹은 목표가 되어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 우리는 여행을 하면서 그런 '상징'을 좇고, 그 '상징'을 통해서 머릿속에서 또 다른 이미지들을 만든다.


 

2.리가 보고싶어 하는 것들_상징

 

  우리는 '상징'을 찾아 다니며, 그것들을 보고싶어 한다. 

 많은 사람들이 '뉴욕'하면 자유의 여신상을 떠올린다. 많은 사람들이 '파리'하면 에펠탑을 떠올리고, '런던'하면 빅밴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나라 그 도시를 여행하며 우리는 그런 상징물을 찾아 사진을

 찍고, 우리 각자의 추억을 만들어 간다.  비단 이런 '상징 좇기'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시가 아닌, 한

뉴욕, 자유의 여신상

나라[국가] 상징과도 관련이 된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중국의 만리장성, 브라질의 쌈바, 몽골의 게르 등 우리는 이들 나라를 방문할 때면 그런 상징을 찾아 헤멘다. 


  현대 사회의 여행은 어쩌면 이런 '상징 좇기'를 하는 일종의 형식 유희라고 볼 수도 있으며, 여행사들은 그런 '상징 좇기'를 부추기며 그 나라를 방문했을 때, '상징물' 앞에서 사진을 찍는 행위가 여행의 모든 것이며, 여행의 종착지인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이러한 '상징 좇기'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상징'여행의 목적지가 될 수도 있고, 여행의 목표가 될 수도 있다. 어느날 내가 책을 읽다가[그 책의 제목은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였다] 문득 그 책의 배경이 되는 도시에 가고 싶어졌고, 그 도시의 '상징'을 그 책에 나오는'도시의 광장'이라고 생각하고 무작정 그 도시의 광장으로 향했던 것 처럼, '상징 좇기'여행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도시의 '상징', 여행의 '상징 좇기'를 통해 우리는 그 도시를 기억하고, 여행을 통해 자신이 만든 새로운 경험을 바탕으로 그 도시를 이미지화 한다. 그리고 나 자신과 그 장소, 도시 사이에 새로운 의미관계를 만들어 그 장소를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여 그곳을 자신만의 특별한 공간으로 만들어 간다.



3.인도의 상징을 찾아서_

 

  인도의 '상징'. '인도'하면 떠오르는 것,

 많은 것들이 떠오를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올리는 것 중 하나가 '타지마할(Taj Mahal)'이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의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는 타지마할. '인도의 대표적인 건축물', '인류가 보편적으로 감탄할 수 있는 걸작'이라는 수식어들. 이런 수식어들은 우리들에게 '타지마할'이 인도

타지마할(Taj Mahal), 인도 아그라

의 상징이 될 수 있게 해 준다. 우리는 많은 책들을 통해서, 그리고 많은 광고를 통해서 타지마할의 모습을 보아 왔다. 


  델리(Delhi)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아그라(Agra). 많은 사람들이 아그라를 찾는 목적은 인도의 '상징'을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이다. 아그라 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인류가 남긴 걸작 '타지마할'을 만날 수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타지마할은 아그라에서 요염한 자태를 뽐내며 관광객들을 맞아들이고 있다. 파란 하늘, 길게 늘어진 회랑, 그리고 그 끝에 위치한 새햐안 색의 거대한 건물. 곡선이 아름다운 건물, 그 주위에 네 개의 기둥이 서 있다. 우리가 많이 보아왔던 '타지마할'의 모습이 있다.

  하지만, 그곳에 가보면 우리가 상상하던 '타지마할'이 아닌 또 '다른 타지마할'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인도의 상징인 '타지마할'을 본다는 생각으로, 길을 떠났다면 우리는 그 목적을 생각하며 그것에 충실하면 된다. 하지만, 여행은 그 하나의 목적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여행은 그 목적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겪는 수 많은 사건들[일상의 소소한 일들을 포함한 모든 일들이라는 의미]의 집합체이다. '타지마할'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수 많은 사람들, 무더위, 그리고 놀랄만큼 비싼 타지마할의 입장료. 많은 요소들이 우리들을 불쾌하게 만들 수 있다. 이러한 불쾌함을 만드는 소소한 요소들이 우리가 인도의 상징을 바라보며, 감탄하고 싶다는 순수한 목적을 훼손시킬 수도 있다. 심지어는 '타지마할'이라는 건물이 가진 본질적 가치, 여행의 순수했던 목적마저 훼손된 채, 우리는 타지마할에 관한 안좋은 기억만을 가진 채 아그라를 떠날 수도 있다.



4.'타지마할'에 관한 짧은 대화_

  

  우연히 어떤 여행자들을 만났다. 그들은 타지마할에 다녀온 뒤였고, 아직 타지마할에 가 보지 않은[곧 타지마할을 방문할 예정인] 여행자들에게 타지마할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물론 나도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 중에 하나였다]. 그들 무리 중 한 남자가 타지마할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를 해 주고 있었고, 모두의 귀와 눈은 그의 입과 몸짓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는 타지마할에 가는 방법, 타지마할의 입장료 등 자신이 경험한 타지마할에 대해 열심히 말했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그는 덧붙였다. 

 "타지마할이 꼭 가봐야 하는 곳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냥 큰 건물 하나 있는데, 입장료 얼마나 비싼지, 완전 바가지에요.그 입장료[타지마할의 입장료는 외국인과 내국인이 다른데, 외국인이 내국인에 비해서 30배 이상 비싸다. 내국인은 20루피, 외국인은 750루피]에 비하면, 정말 형편없어요." 

 그러고 나서 심지어 이런 말을 했다. 

 "돈아깝고 시간아깝고, 가지마세요"


  나는 그의 말에 반박하고 싶었지만, 아직 그곳에 가보지 않은 나로서는 별로 할 말이 없었기에, 그 말을 듣고도 잠자코 있었다. 옆에서 나와 함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른 여행자가 말했다. 

 "가지 말까... 시간도 별로 없는데."

  그러면서 그녀는 아그라에서 멀지 않은 다른 도시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그렇게 여러가지 여행 정보를 주고 받으며 한참을 이야기 한 뒤, 나는 나와 함께 타지마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던, 고민하던 그녀에게 말했다.

 "타지마할에 가보세요. 왜 저 사람 말만 듣고 가보지도 않은 곳에 대해서 편견을 가지고 있죠?" 그녀는 다시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덧붙였다.

 "후회하더라도 가보고 후회해야지, 가보지도 않고 후회도 못해보는 건 너무 억울하지 않나요?"




5.우리는 왜 그곳에 머무르지 않는가_Taj Mahal.


 아침 일찍, 아그라의 타지마할로 향했다. 아침 일찍 타지마할에 가서, 그곳에서 시간을 보낸 뒤 델리로 돌아올 예정이었다. 아그라 역의 혼잡한 인파를 헤치고 나와 릭샤꾼들을 무시한 채, 타지마할을 향

저 너머, 타지마할.

 걸었다. 타지마할로 향하는 길에, 아그라 성을 비롯한 여러가지 볼거리들이 있었지만 그런 것들은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오직 세기의 명작, 인도의 '상징' 타지마할을 봐야 한다는 생각과 타지마할에 기대감이 있었기에 한시라도 빨리 타지마할을 보러 가고 싶었다. 아그라의 오래된 다른 건축물들을 뒤에 흘려보내고, 타지마할 입장권을 구입했다. 듣던대로 비싼 가격이었다. 정말, 터무니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수 많은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외국인 가격과 내국인 가격이 따로 책정되어 있는 곳을 수 없이 봐왔지만 이렇게 차이가 많은 폭리를 취하는 곳은 처음이었다.


 보안검사를 한 뒤, 넓은 광장 같은 곳을 지나 타지마할이 있다는 곳을 향해 갔다. 큰 관문 같은 것이 있었고, 그 아래 수 많은 인파가 뒤엉켜 있었고, 그 뒤로 타지마할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관문의 어두운 통로, 그 뒤로 파란 하늘. 그 아래, 새하얀 타지마할이 있었다. 듣던대로 웅장했고, 듣던대로 라인이 살아 있었다. 책에서 보던, 딱 그 모습이었다. 한가지 다른 점, 새롭게 발견한 것이 있다면, 내 주변, 타지마할의 주변에만 수 백명의 사람들이 뒤엉켜서 타지마할의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혼자, 타지마할을 향해 걸어갔고, 사진을 찍기 위해 뷰 포인트(View Point)에서 다른 사람들

이 사진을 다 찍을 때까지 기다리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

사진찍는 사람들

고, 나는 벤치에 앉아 타지마할이 뿜어내고 있는 아우라를 느껴보기도 했다. 새하얀 타지마할의 대리석 바닥. 바닥 조차 돌이 아닌 부드러운 지우개로 만들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돌이 아닌, 하얀 진흙으로 빗은 건물 같았다. 부드러움이 묻어나는 건물이었다. 주변을 둘러싼 회랑 사이사이를 드나들며, 회랑의 출입구 사이로 언뜻 보이는 타지마할의 모습을 구경했다.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하는 타지마할. 내가 타지마할의 주위를 거닐며 보는 타지마할은 시시각각 모습을 바꾼채 나에게 다가왔다. 타지마할 앞으로 펼쳐져 있는 정원, 나무 그늘 벤치에 앉아 타지마할을, 타지마할 주위를 거니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햇살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그런 타지마할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와서 사진을 찍고 타지마할 주위를 한바퀴 돌고, 다시 들어왔던 관문을 통과해서 빠져나갔다. 나는 타지마할이 잘 보이는 한켠에 앉아 그 사람들을, 그리고 타지마할을 유심히 살폈다.


Taj Mahal, 사진찍는 소년

 '이게 바로, 세기의 걸작이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동안 나는 여행을 하면서 유럽의 수많은 건축물들을 보아왔고, 숨막히는 절경도 보아왔지만, 이곳 타지마할의 앞에서 또 다른 감동을 받고 있었다. 선과 색과 하늘의 조화. 그 옛날, 무굴제국의 황제 '샤 자한'이 타지마할을 만든 기술자들의 팔을 잘랐다는 이야기가 생각났고, 충분히 그럴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감동을 줄 수 있는, 죽기전에 꼭 봐야 하는 건물, 그것이 왜 타지마할인지, 그 정답은 여기에 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 누군가의 말을 듣고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그것은 정말 '일생일대의 후회될 일' 이라고 생각했다. '입장료'가 아깝지 않았다. 혹자들이 말하는 터무니없이 비싼 입장료,라 할지라도 타지마할은 그 입장료를 내고라도 볼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돌바닥에 앉아 타지마할을 보며, 감동을 하며, 감격에 차 올라 있을 때, 한 여행객이 내 눈에 밟혔다. 그녀도 나를 보았고, 자연스럽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정말 멋지지 않아요?' 내가 말했고, 그녀는 '정말 그렇네요'라고 말한뒤, '식사하셨어요?'라고 덧붙였다.


 시간이 많이 흘러 있었다. 나는 그녀의 제안에 따라, 식당으로 향했고, 식사를 하고, 근처 카페테리아에 앉아 음료를 마신 후, 조금이나마 무더위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그녀가 말했다.

 '가이드 북에 보니까, 아그라에 볼거리가 꽤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아그라 성에 가볼까 해요. 거긴 타지마할보다 볼 게 많을 것 같아요. 같이 갈래요?'

 그녀는 총총걸음으로 아그라 성을 향해 걸었다. 나는 아그라 성에 들어가지 않았다. 나무 그늘에 앉아, 아그라의 풍경을 바라보았을 뿐이다. 


  얼마 뒤, 그녀는 아그라 성의 입구를 빠져나와 나무 그늘에 앉아 있던 나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여기가 타지마할보다 볼건 더 많은데요? 미소" 



 6.리는 무엇을 볼 것인가_

 

 타지마할, 새하얀 건물이 파란 하늘아래. 은은한 빛을 내뿜으며 서 있다. 단지, 그것이 전부다. 타지마할이 왜,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일까. 스쳐지나가듯 보면서, 사진만을 찍는다면, 타지마할이 주는 감동을 느끼지 못한 채 지나칠 지도 모른다. 타지마할을 그윽히 바라보며, 타지마할이 내뿜은 아우라를 느낀다면, 우리는 그 건물이 가지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타지마할에서 뿐만 아니라, 많은 곳에서 세기의 걸작들을 만난다. 로마에서, 파리에서, 안데스 산 속의 마추픽추에서. 그들은 단지, 사진을 찍기 위한 배경이 아니다. 사진을 찍기 위한 피사체가 아니다. 그들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지만, 우리가 그들의 가치를 한순간에 발견해 내기는 쉬운일이 아니다.


  우리는 그들 곁에 머물면서, 그윽히 그들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한다면, 감동이 밀려올 것이고, 새로운 의미를, 새로운 느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사진을 뛰어 넘는 그 장소의 진정한 이미지를 머릿속에 새겨넣을 수 있다.





구경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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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마할, 그 감동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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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마할에서 바라본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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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마할,




타지마할, 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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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다른 볼거리를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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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인도, 바라나시 - 물[水], 갠지스 강으로 가는 이유(Varanasi, India)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3. 9. 5.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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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水, Water], 그것은 생명.

  인간은 물이 없으면 살 수 없다. 이 사실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물을 갈망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한다. 우리는 물과 떨어질 수 없기 때문에 항상 곁에 두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물을 갈망하고, 물을 통해 갈증을 해소하면서도 물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 


  
'관심'이란, 서울에 여행 온 프랑스 사람이 서울이라는 도시의 일부를 바라보며, 여러 사물들의 움직임과 위치가 나타내는 의미를 찾아내려고 노력하는데 필요한 '관심'같은 것을 말한다. 우리는 프랑스인과 달리, [서울에 사는 사람들을 예로 들자면]서울의 일상적인 풍경에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으며, 주변의 변화조차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그런 상태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물에 대한 '관심'은 물이 가지는 의미, 존재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이다.

 

  화성 탐사선이 화성에서 물의 흔적에 대한 정보를 지구로 보내면, 그것을 받아본 지구인들은 흥분 상태로 돌입한다. 화성에 생명체가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기대감. 먼 미래에는 지구인이 화성에서도 살 수 있지않을까,라는 생각. 

 물은, 그 흔적 만으로도 생명이 될 수 있다. 

 

 메마른 땅에 빗방울이 스치고 지나가기만 해도, 초록색 풀들이 대지를 뒤덮는다. 메말랐던 땅이 생명의 땅으로 변모한다. 사막 한가운데 있는 물 웅덩이-오아시스- 주변은 생명의 요람이다. '물'은 생명이자 그것의 탄생이라고 할 수 있다.




2., 그것은 삶(Life).

  어린 시절의 여름, 친구들과 함께 흐르는 물 속으로 송사리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개천에 자주 놀러가곤 했다. 개천에서 실컷 헤엄치고 물고기도 잡으며 한참을 놀다가, 물에 흠뻑 젖은 채로 집을 향해 걷는 것이 일상의 모습이었다. 지금은 TV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그런 광경들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여름이면, 개천으로 강으로 달려갔다.   

  지금도 여름이면, 사람들은 너도나도 물가로 달려간다. 드넓은 바다로, 산 속의 계곡으로, 강변의 수영장으로. 누군가는 물 속에서 살고싶다고도 말한다. 물은, 우리의 갈증을 해소시켜 준다. 더위에 지친, 우리의 몸이 느끼는 갈증을 해소시켜 주고,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바다에서의 즐거움, 계곡에서의 즐거움, 강변 수영장에서의 즐거움. 우리는 물과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오감(五感)이 즐겁다.


  겨울, 눈이 내린다. 눈덮힌 자동차들, 눈 덮힌 집들. 집 앞, 온 동네, 온 도시, 온 세상이 눈에 덮힌다. 하루 아침에 온 세상의 풍경이 새하얗게 바뀐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우리는 눈덮힌 세상을 바라보며, 첫사랑을 생각할 수도 있고, 저 멀리 떨어져 있을 누군가를 생각할 수도 있다[누군가는 치워야할 쌓인 눈을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낭만을 즐기자]. 작은 물방울들이 응고된 결정체가 세상을을 바꿔 놓는다. 매서운 바람이, 잿빛 하늘아래 음울하던 풍경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새하얗게 바뀌어 있는 것이다. 


  눈[雪]은 물[水]이고, 물은 우리의 삶의 풍경을 바꿔놓는다. 

  



3.지스(Ganges), 그곳으로 가는 이유,

  유라시아 대륙의 지붕, 티베트 고원. 그곳에서 남쪽, 인도양을 향해 가다보면 거대한 국가, 인도(India)가 있다. '인도'라는 단어를 보았을 때,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인도'라는 거대한 나라

를 하나의 이미지 속에 구겨넣을 수는 없지만, 우리는 기억의 편의를 위해 '인도'라는 국가를 어떤 하나의 이미지로 만들어 머릿속에 넣어 둘 수 있다. 

  우리가 '인도'라는 말을 들었을 때 떠오르는 것,

  누군가는 타지마할(Tajmahal)을 말할 수 있고, 누군가는 흙먼지 날리는 혼잡한 거리와 릭샤에 대해서 말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드넓은 갠지스 강에 몸을 담그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도 있다. '인도'라는 나라를 이것들만으로 표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이것들은 모두 '인도의 이미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지금의 인도 거리가 흙먼지 날리는 혼잡한 풍경을 갖추기 이전17세기 무굴 제국의 황제 샤 자한이 '타지마할'을 만들라고 명령하기 훨씬전에, 히말라야 산맥이 있었고, 히말라야 산맥의 빙하에서 물이 흘러 나왔고, 흘러나온 물은 큰 강을 이루었다. 그 강이 바로 '갠지스 강'이다. 인도의 이미지, 그 모든 것이 있기 이전부터 갠지스는 인도를 흘렀다.


  인도에 여행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거리 열차를 타고 '바라나시[Varanasi, Banaras라고 표기하는 사람도 있다]'로 향한다. 보통, 이틀 이상씩 흙먼지를 만들며 달리는 열차에 몸을 싣고, 침대칸에서 누웠다 앉았다를 반복하며, 하염없이 창밖을 보다 말았다를 반복하면서 바라나시로 향한다.

바라나시의 혼잡한 거리.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가져간 책을 다 읽어도 기차는 여전히 달리고 있다. 같은 칸에 타고 있던 사람과 나눌 이야깃거리가 더 이상 없다고 느껴질 때 쯤이면, 바라나시 역에 도착한다. 바라나시 역 안팎에 머물고 있는 수 많은 인파들을 헤치고 나오면 우리는 그제서야 바라나시의 모습과 대면하게 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바라나시'까지 가는 걸까, 왜 바라나시는 여행자들을 자신의 품 안으로 끌어들이는 걸까, 어떤 매력이 있기에 여행자들은 그곳으로 가는 걸까.


  바라나시에는 강이 있다. '갠지스 강'이 있다. 물론, 그 강이 바라나시에만 흐르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바라나시'로 간다. 그곳에서 '갠지스 강'을 보기를 원한다. 그곳에 흐르는 강은 '그냥' 갠지스 강이 아니다. 신비의 강, 갠지스이다. 수 많은 가트(Ghat)들이 강변에 있고, 사람들은 그곳을 찾는다. 죽은 사람도 강을 찾고, 산 사람도 강을 찾는다. 여행객들도 강을 찾고, 현지인들도 강을 찾는다. 모든 일은 가트에서 일어나지만, 사람들은 '강'때문이라고 말한다.




4.거의 죽음, 현재의 삶, 미래의 생명 - 갠지스 강의 모든 것

  갠지스 강가를 거닐다 보면[엄밀히 말하면, 수 많은 가트들을 거닐다 보면], 우리는 그곳에서 많은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어제를 살았지만 지금은 죽은 사람의 모습, 오늘을 살기위해 자신을 정화하는 사람

햇볕을 쬐고 있는 빨래들, 갠지스 강가.

들의 모습, 미래의 생명을 위한 의식을 행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과거의 죽음, 현재의 삶, 미래의 생명'이라는 갠지즈 강이 담고 있는 모든 것이다.


  물[水]생명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소멸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리고 맥락에 따라서는 대상에 대한 사랑의 방증이 될 수 있다.

 

  바라나시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갠지스 강은 이다. 이른 아침,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해가 뜰 무렵, 갠지스 강가는 사람들로 붐빈다. 강물에 몸을 담그고 하루를 시작하려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그들에게 강물은 하루를 건강하게 열 수 있게 하는 신성함이 깃든 물이다. 그 강물매우 더럽기 때문에 강물에 들어가는 것은 몸에 해로울 수 있다고 누군가가 말하더라도 그것은 그들에게 중요한 사실이 아니다. 

  그 강물에 몸을 담그며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갠지스 강이 그들의 삶과 함께 하는 강이라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갠지스 강의 물은 신성함이 깃든 물이기 때문에 그곳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자신의 몸을 깨끗이 정화시키고 벅찬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도와주는 신성한 물인 것이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중요한 것이다. 


  갠지스 강의 가트에 앉아 강물을 바라보다 보면, 주변의 화장장에서부터 떠내려가는 많은 부유물들이 눈에 보인다. 어제를 살았지만 오늘은 눈을 감고, 심장을 정지시키고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이 강 옆에서 화장되고, 고요히 흐르는 강물에 실려간다.강물은 어제를 살던 사람의 흔적을 소멸시켜 준다.   

갠지스 화장장.

 갠지스 강에서 화장되어 강물에 휩쓸리는 것은 인생의 모든 것을 강물의 신성함에 맡기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곳에는 과거의 죽음이 있다.


  어제를 살다간 사람들의 흔적이 강물에 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강물에 담겨 있다. 그리고, 갠지스 강에는 어제를 살다간 사람들이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하길 원하는 소망이 담겨 있고,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제보다 더 벅찬 삶을 살 수 있기를 희망하는 희망찬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는 곳이다. 


  갠지스 강에, 이 모든 걸 느끼기 위해서 사람들은 강가로 모인다.




5.지스 강, 그것은 믿음의 차이.

 

  나는, 바라나시에 도착하고나서부터 며칠 째 두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어느날 아침, 막 해가 뜨려는 순간 강물에 들어가서 수영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수건 한 장만을 챙겨들고 가트로 나갔다. 해가 뜨려는 순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멱을 감고 있었고, 또 다른 많은 사람들[대부분은 관광객이었으리라]은 조각배를 타고 강 위를 유유히 떠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일부 사람들[그들도 역시 대부분 관광객이었다]은 아침 일찍부터 가트와 가트 사이를 돌아다니며 강가 산책을 하고 있었다.

갠지스 강에서 아침을.


  두려움 반, 호기심 반이었다. 발을 물에 담그자 따뜻한 기운이 발 끝에서 부터 온 몸을 타고 올라왔다. 오른발, 왼발. 그리고 돌 계단을 한 계단, 두 계단 내려가자 내 몸이 서서히 강물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주변에는 많은 인도 사람들이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시선을 받으며 강물 속으로 서서히 들어갔다. 미끈한 점액 같은 것들이 발가락 사이로 파고 들었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미끈한 점액들이 내 발가락을 감쌌고, 엉덩이가 물에 잠겼고, 배꼽이 물에 잠겼고, 가슴이 물에 잠겼고, 목까지 물이 찾다. 나는 거기에서 멈춰서 주위를 둘러 보았다. 나와 함께 물 속에 있던 인도 사람들이 와,하고 웃어보였다. 나는 눈을 감고 물 속에 머리 끝까지 집어 넣었다.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몇 초나 지났을까. 나는 다시 머리를 꺼내고, 푸하,하고 숨을 내 뱉았다. 상쾌했다. 가트 위에서 나를 구경하던 외국인들도 나를

갠지스 강물 안에서, 인도를 느끼다.

신기한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나와 함께 물 속에 있던 인도 사람들이 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웠고, 나도 그들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지켜 세웠다. 기분이 좋았다. 정말, 신성한 물이기 때문일까? 해가 서서히 떠오르는 바라나시의 아침이었다. 갠지스 강 물속에서 맞이하는 바라나시의 아침은 상쾌했고, 기분 좋았다. 


  인도, 바라나시의 사람들이 매일 갠지스 강물에 몸을 담그며 하루를 시작하는 이유가, 강물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상쾌함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봤다. 


  태양은 서서히 강 위로 떠올라, 도시를 주황빛 색체를 조금씩 걷어내고 있었다. 거짓말같이 나의 두통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두통은 나에게 찾아오지 않았고, 또렷한 정신만이 내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훗날, 여행을 하며 만난 이에게 이날의 경험을 말하자,

 "에이 설마, 그냥 기분탓이었겠지. 근데 몸에 두드러기 난 건 없어?" 라고 그녀가 말했다.

 


 갠지스 강물의 대장균 수는 보통 강물보다 수 천, 수 백만 배 많다고 한다. 그리고 수 많은 책자에서, 그리고 몇몇 사람들은 '절대로' 강물에 들어가지 말라고 경고를 하고 있었다. 

 수 백, 수 천 명의 사람들이 물 속에 들어가서 수영을 하고, 몸을 씻는 갠지스 강. 누구는 신성한 물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더러운 물, 위험한 물이라고 하고 있었다. 저 뒤쪽에서는 시체가 떠내려가고, 소들이 수영을 하고, 이쪽에서는 사람들이 빨래를 하고, 몸을 씼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물[水]에 대한 믿음의 차이.





바라나시 역, 신비함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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멱을 감는 사람들, 바라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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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배를 타고, 갠지스를 거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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갠지스 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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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NGA, 갠지스 강은 '강가'라고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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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갠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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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발트3국(빌뉴스,리가,탈린) - 비와 낭만, 비오는 발틱(발트3국) 거리를 걷다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3. 9. 1.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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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비[雨, Rain], 그 지루함의 끝은 낭만.

  여름, 지루하게 비가 내린다. 가끔씩 억수같이 쏟아지고, 아파트 사이사이를 흐르는 작은 천(川)은 금새 흘러 넘친다. 삼삼오오 모여 천(川) 안에서 놀던 오리 가족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여름 휴가를 떠났을까]. 창 밖으로, 빈틈없이 떨어지는 빗방울들을 바라보다보면 가끔씩 빗속을 걷고 싶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1998)> 박흥식, 허진호 감독.

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어쩌면 정신나간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시련을 당했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것은 정말 지루함을 떨쳐낼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면서, 특히 여름에 많은 비를 만나야 하는 것은 좋은 것일 수 있다[비를 맞고나서도 추위에 떨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그동안 우리가 봐 왔던 많은 영화들에서 비는, 슬픔을 대신 말해주었고 비는, 우연을 말해주었고 비는, 운명을 보여주었고 비는, 낭만적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영화 <접속(1997)>에서 어떤 우연을, 영화 <동감(2000)>에서 어떤 비극적 운명을,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1998)>에서는 사랑을 속삭였고, 영화 <클래식(2003)>에서도 비는 사랑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아직도 많은 '비'는 우리에게 어떤 낭만적 만남과 사랑을 말해주고 있다. 내가 우산도 없이 빗속을 걷고 있으면 누군가 나타나서 우산을 씌워주는 것은 아닐까,라는 상상을 하며 어떤 '운명적 만남'을 조심스레 기대해 보기도 한다. 이처럼,


 '비'는 지루함이 아니라, '낭만'이 될 수 있다.




2.이지 않는 '비'가 전해주는 즐거움.

  마른 땅에 빗방울이 떨어질 때, 촉촉한 물기가 메마른 땅을 적시며 흙 속으로 스며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흙 내음이 살며시 우리의 콧속으로 스민다. 이 순간 '흙 냄새' 좋다,라는 말이 나오기도 한

비오는 거리, 2013

다. 오랜만에 찾아온 빗방울이 메마른 대지를 적실 때, 우리는 갑작스레 찾아온 흙 내음에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가끔은 빗방울이 똑, 똑, 똑, 똑, 떨어질 때가 있다. 무언가를 두드리며 떨어지는 소리. 가끔은 우드드드득, 무언가를 마구 두드리며 떨어질 때도 있다. 가끔은 '쏴아-'하는 소리를 내며, 아파트 벽을, 나뭇잎을 쉼없이 두드릴 때도 있다. 우리는 '아, 비가 오는 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비가 내리는 소리가 좋다, 라는 생각을 한다. 자연이 자연과 부딪으며 내는 소리들, 자연이 사람[사람이 만든 물건]과 부딪으며 내는 소리들이 있다. 우리는 이런 소리를 들으며, '좋다'라고 느낀다.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 '소리[음악]'가 아닌 자연이 만들어낸 그저 '소리'일 뿐이지만, 우리는 그 소리가 음악보다 '좋다'라고 느껴질 대가 있다. 

  봄 비 내리는 밤, 우리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땅에서 부터 피어올라 콧속으로 스미는 흙 내음을 맡으며 기분좋게 잠들 때가 있다.


 밤사이 세차게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지만, 아침의 고요함 속에서 깨어날 때가 있다. 세차게 떨어지는 비가 내던 빗소리는 사라지고, 고요 속에서 가끔 새소리가 들리고, 자동차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고요를 뚫고 방 안으로 들어오는 그런 날이 있다. 그런 날 아침. 집을 나서며 하늘을 바라보면, 맑고 투명한, 파란 하늘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다. 그런 날은 왠지 우리의 기분을 즐겁게 만든다.   


  가끔은, 귀[耳]로. 가끔은, 코[鼻]로. 우리는 비[雨]를 만난다. 귀와 코로 만나는 비는 우리에게 즐거움을 전해준다. 비[雨]는 즐거움이다.



3.여행을 하는 중에 만나는 '비'? 

  일상을 살면서 우리는 일기예보에 민감하다. 혹시나 '비'가 올까봐.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걱정이다. 스마트폰 액정 속에 나와있는 세계 각국의 날씨에 먹구름이 잔뜩이니까. 

  비가 오는 날에는 숙소에서 쉬거나, 비가 오는 날에는 예정된 일정을 취소해야 하나,라는 생각으로

잿빛 하늘. 류블랴나.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 비가 오면 어쩌지?

  비가 오면 여행이 새로워 진다. 우리는 그것을 즐겨야 한다.


  '비'는 그 도시의 색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잔뜩 찌푸린 잿빛 하늘, 그 사이를 뚫고 떨어지는 물방울. 우리는 빗속에서 그 도시의 색다른 모습을 보게 되고, 그 도시의 골목을 적시고 있는 비를 만나게 된다. 카페에 앉아 거리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길 수도 있다[날씨가 맑았다면 절대 하지 못 할 일이다]. '비'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도시의 색다른 풍경을 보여준다[대부분의 여행 안내책, 여행 블로그들에는 비오는 날의 풍경이 거의 없다]. 우리는 그 동안 알지 못했던 낯선 풍경을 통해서, 그 여행의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다[물론 그곳에 머물동안 계속 비가 왔다면, 그곳의 이미지는 '비'내리는 풍경으로 영원히 각인될 것이지만]. 조용한 거리, 빗방울이 떨어지는 거리를 거닐다 보면, 그 거리가 온통 나 혼자만의 것이 된 것 같다. 비가 오는 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들어진 '이방인의 거리'.


  여행을 하는 데 있어 비가 내리는 것은, 뭔가 번거로운 일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비 때문에 카메라를 함부로 꺼낼 수도 없고, 빗방울로 얼룩지고 잿빛 먹구름들로 뒤덮힌 하늘에선 한 줌 빛 조차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사진도 잘 찍히지 않는다. 비가 오는 날의 사진은 찾기 힘들지만, 그렇지만 우리는 평소와는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있다. 비가 오는 날 사진을 찍는 대신 사람의 흔적이 씻겨 나가버린 한적한 거리를 거닐어 보고, 가만히 앉아 비가 오는 모습을 바라보기도 해 보고, 비가 만들어 내는 소리를 들어보자. 이국에서 만들어 내는 빗소리는 우리가 사는 곳의 소리와 뭔가 다르지 않을까?



4.틱(Baltic, 발트 3국.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거리를 걷다.

  빌뉴스(Vilnius). 하늘을 보니, 구름들이 북쪽으로 마구 날아가고 있었다. 슬로베니아에서, 헝가리에서 만났던 빗방울들이 폴란드를 지나 리투아니아도 와 있었다. 알고 있었다, 리투아니아 빌뉴스에

빌뉴스 거리에 서다.

도 비가 온다는 사실을, 일기예보에서 봤지만 나는 빌뉴스로 갔다. 

  빌뉴스의 골목들을 걸었다, 올드 타운운 골목 골목을 거닐었다. 드문드문 사람들이 보였지만, 거리는 한산했고, 동유럽 특유의 벽돌길, 벽돌집들이 나에게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발틱만의 새로운 느낌, 맑지 않은 하늘, 밝지 않은 거리, 6월 중순이었지만 거리의 노점상들은 털모자, 털장갑을 팔고 있었다. 아직, 꽃이 피지 않았고, 날씨는 쌀쌀했다. 비오는 발틱, 비오는 빌뉴스의 거리를 걸었고 빌뉴스에 머무는 내내 비가 내렸다. 많지 않는 비, 우산을 쓰지 않아도 그리 많이 젖지 않을 양 만큼. 딱, 그만큼만 비가 내렸고, 가볍게 젖은 몸을 이끌고 커피를 마실 때면, 리트머스지로 물이 스며들듯 커피의 온기가 내 몸을 적셨다.


  리가(Riga). 빌뉴스를 떠나기 전 봤던 일기예보에서는 리가에도 비가 내린다고 했다. 사람 없고, 자동차들이 멈추지 않아 폐허가 된 국경 검문소를 지나 리가에 도착했다. 비오는 리가 거리를 가로지르며, 리가의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밤11시가 넘었지만, 아직 어둠이 오지 않았다. 하늘엔 구름이 가득했지만, 거리는 어두워지지 않았고, 가로등도 빛나지 않았다. 어둡지 않는 거리에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기분 좋게 웃고, 말을 거는 사람들이 많았다. 비오는 거리, 어둡지 않은 밤. 술집[pub]에 모여 사람들은 즐거운 기분을 한 껏 토해내고 있었다. 삐걱 거리는 나무 바닥, 물기를 머금은 나무 테이블. 아늑한 기운이 술집에 가득했다. 빗방울 떨

비오는 리가의 거리.

어지는 광장, 노천 카페에 앉아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 광장의 변두리 식당에 앉아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리곤 빗방울을 바라보며, 비오는 리가의 거리를 바라보며 여유를 즐겼다.


  탈린(Tallin). 버스를 타고 북쪽 하늘을  바라보니, 저 멀리 하늘은 파란색이었다. 구름이 버스의 뒤를 쫓았지만 버스는 구름보다 빨리 달렸고탈린에 도착했을 때 하늘은 파란색이었다. 백야(白夜)현상의 탓일까, 밤 12시가 넘어도, 거리는 조금 어두워졌을 뿐, 아직도 어둠 보다는 빛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밤 늦도록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고, 나는 잠을 자기 위해 커튼을 쳐야만 했다. 

  깊은 밤, 빗방울이 세차게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물기를 가득 머금은 구름들이 북쪽으로 날아온 것이었다. 6월 중순, 이불을 꽁꽁 싸매고, 탈린 거리를 향해 힘차게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내는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내일도, 비오는 발틱의 거리를 걷겠구나.' 

  아침, 창문을 열었을 때, 차가운 공기가 방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6월 중순, 10도가 채 안되는 서늘한 공기가 어젯밤 세차게 떨어진 물방울들을 양 껏 머금고 있었다. 일기예보에서는 비가 내일까지 올 것이라고 말했고, 다음날 밖으로 나와 탈린의 거리에 발을 딪고 하늘을 바라보았을 때, 파랗고 투명한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너무나도 맑고 투명해서, 금방이라도 손에 닿을 것 같은 그런 하늘. 그리고, 발트해에서 불어오는 조금은 차가운 봄 바람이 내 피부에 와 닿았다.


  비오는 발틱 거리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비오는 탈린의 거리, 싸늘함을 머금고 있는 공기들에 둘러싸여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자그마한 기념품 상점들을 둘러 보았던, 내 인생에서 다시 없을 비오

올드 캐슬, 탈린.

는 탈린의 거리였다. 여름 옷을 걸치고 있던 나에게, 한 겨울 가랑비를 맞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던 탈린의 거리는 그렇게 떠나갔다.


 햇살 가득한 탈린의 거리, 탈린의 교외에는 어느새 꽃이 피어 있었다. 민들레 풀씨가 나풀나풀 날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고, 이제는  꽃들도, 나무들도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6월 중순에 맞는 봄. 며칠 전 밤, 세차게 내리던 비는 봄을 불러내기 위해 대지를 그렇게 힘차게 두드렸던 것일까. 세차게 내리던 비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고, 포근한 봄기운이 탈린의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5.스럽다.

 비[雨], 오는 류블랴나의 거리는 사랑스러웠다. 

비 오는 발틱의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그래서 더 사랑스러웠다.그래서 말하고 싶다. 

 사랑스럽다, 발틱 - 빌뉴스, 리가, 탈린.



탈린의 하늘.

-



빛으로 가득 찬 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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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쿠바, 하바나 - 엽서, 상실된 엽서가 주는 의미(Havana, Cuba)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3. 8. 30.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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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엽서를 주고받던 시절에 관한 이야기.


  손바닥만한 크기의 네모난 모양. 한 면에는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주소를 쓰는 곳이 있고, 한 귀퉁이에는 엽서가 붙어 있었다. 주로 연말, 혹은 가끔씩 우리는 엽서라는 것을 써서 누군가에게 보내곤 했다. 엽서는 간편했다. 우표를 따로 살 필요도 없었고, 받는 사람의 주소만 알면 손쉽게 누군가에게 나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다[물론 2~3일은 걸리는 데다가, 그 메시지를 우편 배달부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도 다 볼 수 있는 단점이 있긴 하다].

영화 <클래식(the classic)>의 한 장면. 2003, 곽재용 감독.

 1990년 후반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엽서와 편지를 썼고, 서로 주고 받았다. 지금은 손바닥 안에서 클릭 한 번이면 접속할 수 있는 '인터넷'. 이것이 뭔지 잘 모르던 시절, 이메일(E-Mail)이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생소한 단어였던 시절, 사람들은 그렇게 편지(Mail), 엽서(post card)를 주고 받았다.

 

 [구분짓기 좋아하는]누군가는 '아날로그적 감성'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공들여 편지를 쓰는 것이 그냥 좋다고도 했다. 인터넷이 보급되고, 이메일이 보편화 되고, 휴대전화가 보급되고, 문자 메시지를 통해서 수시로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 누군가에게 엽서를 보낸다는 것을 생각할 틈이 없었다. 누군가에게 엽서를 써서 보냈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 조차 없었다. 엽서는 그렇게 우리들 곁에서 점차 멀어져 갔다. 이제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체온을 담은, 정성을 담은 편지는 번거로운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간편하게 쓸 수 있는 이메일, 그마저도 이제는 다른 SNS로 대체되었다. 

  침대에 누워 종이 한 장을 들고, 그 사람을 상상해보는 즐거움은 좀처럼 찾기 힘들다. 이제 편지는, 누군가에게 러브레터를 쓸 때나 가끔[x10] 등장하는, 그런 신기한 물건이 되어가고 있다.


 

영화 <클래식(the Classic)> 중.

1990년대를 통과하고 2000년대 초반을 지내며 인생의 추억을 쌓아온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은 집 한켠, 책장 한켠에 작은 상자를 하나쯤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가끔씩, 그 상자를 바라보고 그 상자 속에서 꺼낸 엽서, 편지들에게서 향수를 느끼고, 추억을 더듬는다. 엽서, 편지들은 우리를 옛 시절의 추억에 잠길 수 있는 '여유'를 선물해준다.






2.행지에서 엽서를 고르며,


  여행지에서 만나게 되는 엽서는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그 곳에 여행을 온 사람들에게 각각 다른 의미를 가진다는 뜻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여행지의 엽서는 그 속에 그 장소, 그 도시의 대표적인 무언가[상징물, 사람들, 유적, 풍경 등]를 담고 있게 마련이다. 


  엽서는 매력적이다. 누군가가 어떤 도시를 방문해서 그 도시의 기념품 가게에 진열되어 있는 엽서를 집어 들었다면, 그것은 그 엽서가 담고 있는 무언가의 매력에 이끌렸기 때문이다. 엽서를 고르는 일은 절대로 즉흥적이지 않다. 엽서를 선택한 사람은 그 엽서가 담고 있는 것이 그 도시를 아주 매력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자신이 그 도시를 방문하고 있다는 사실을 매력적으로 나타내 줄거라고 믿기 때문에 그것을 선택한 것이다. 또한, 그 엽서에 그 나라 우체국의 스탬프가 찍혀서 누군가에게 전해질 것을 생각한다면 함부로 엽서를 고를 수 없다. 엽서를 고르는 일은 결코, 손쉽게 아무렇게나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류블랴나(슬로베니아)에서 고른 엽서.


  기념품 가게의 진열대에 아무렇게나 진열되어 있는 엽서처럼 보이지만, 그 엽서들은 아주 신중하게 선택될 물건들이다. 그 엽서들은 아주 많은 것을 담고 있으며, 작은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 

  그 도시가 가진 매력을 지닐 것, 나의 취향에 맞을 것, 나를 잘 표현할 것, 엽서가 담고 있는 것이 받는 사람의 취향에 맞을 것, 그리고 나의 온기를 담고 전달되어 받는 사람을 기쁘게 할 것.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엽서를 받는 사람이 엽서를 받아보고, 기뻐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엽서를 고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3.서를 보내며,


  엽서를 보내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우체국을 찾아 길거리를 헤메는 일은 꽤나 번거로운 일이다[그리고

쿠바의 길가에 팔고 있는 엽서들. 체 게바라의 모습이 담겨있다.

놀라운 사실은, 엽서를 보내는 비용이 꽤나 비싸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번거로움 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내용을 써야할지'와 '누구에게 어떤 엽서를 보낼까'이다.


  엽서의 단점은, 엽서에 담긴 내용이 공개적이라는 것이다[겉 봉투가 없기 때문에 내용이 바로 보인다는 의미]. 엽서의 수신인이 혼자 사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엽서의 내용을 우편 배달부는 볼 수 있다. 옆집 사람이 호기심에 볼 수도 있다. 혼자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엄마가, 아빠가, 동생이, 누나가, 언니가, 오빠가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엽서를 보낼 때는 이런 가능성들을 배제하고 오직, '한명의 수신인'이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그 '수신인'이 엽서를 받았을 때, 기뻐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엽서를 보낸다. 그 엽서 속에 내가 담음 메시지가, 그 엽서가 원래 담고 있던 어떤 상징, 매력이 그 '수신인'을 기쁘게 해야 한다.


  가끔은, 엽서가 우리를 실망시키는 경우가 있다['엽서'가 실망시키기 보다는, 엽서를 발송하는 '국가의 우체국 시스템'에 분노하게 되는 것이다]. 어렵게, 많은 생각을 하며 고르고, 어떤 내용을 담을지 고민하며 온기를 담은 엽서. 우체국에서 스탬프가 찍히는 모습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엽서는 어디론가 사라져 갈 곳을 잃을 경우가 종종 있다. 영원히 수신인을 찾아가지 못하는 엽서들이 존재한다[그럴 땐, 나의 노력이, 나의 애틋함이 헛수고 였다는 생각이 들어 허무함이 밀려온다. 실제로 인도, 볼리비아, 쿠바 등지에서 이런 경험을 했다].




4.엽서를 보내는 이유.


  그 시절, 우리는 엽서, 편지를 주고 받았다. '아날로그적 감성'이라는 말이 없던 시절.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호주 Pemberton 와이너리 기념 엽서

었고, 서로가 교감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그 흔적은 아직까지 남아서 가끔씩, 추억에 잠기게 하기도 하고, 잊고 있던 누군가를 생각하며 '그 사람은 지금 뭘 하고 살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 보게 한다. 그리고 가끔은, 손가락이 닳기도 한다.


  엽서를 보내며,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엽서를 받은 그 사람은 내가 보낸 엽서를 받고 잠시나마 기뻐하며 내가 써내려간 글자들을 어루만질 것이다. 그리고 그 엽서는 기쁜 마음과 함께 어딘가에 보관이 되겠지. 

 훗날 바쁜 일상을 살아가면서, 서로의 기억속에서 서로가 잊혀졌을 때, 나와 그 사람이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을 때,  어느날 우연히 발견된 내가 보낸 그 엽서가 그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기억할 수 있게 한다면 그것은 정말 기쁜 일이다. 비록, 나는 그 순간까지도 내가 엽서를 보내주었던 그 사람을 기억해내지 못할 지라도, 그 사람이 나를 기억해준다는 것은 크나큰 기쁨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엽서를 보낸다.




5. 덧, 아이러니.

 나는 지금까지 여행을 하면서 수 십장의 엽서를 보냈지만, 한 통의 엽서도 받아보지 못했다. 엽서의 기능이 상실된 것일까, 엽서가 잊혀진 것일까, 내가 잊혀진 것일까.  




보통의 우리나라 엽서 앞면




쿠바의 골목길, 벽화



까비똘리에오 찾아오는 어둠.



주말 시장, 하바나의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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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시엠립) - 점(點)과 선(線), 툭툭과 자전거의 의미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3. 8. 27.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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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삐삐'라는 기계가 진동을 할 때면, 우리는 공중전화를 찾아 두리번 거리던 시절이 있었다.

   '삐삐',를 가지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의 30대, 40대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알고 있을 물건이다.'삐삐'가 울리면 공중전화를 찾아 두리번 거리곤 했고, 때로는 집 전화기로 '삐삐'의 자그마한 액정에 찍힌 번호를 보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곤 했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약속을 할 때면, 우리는 몇 시간, 몇 십분 전에 전화를 통해서 약속을 하고 약속 장소에서 서로를 기다려야 했다. 그 시절에는 약속 장소를 향해서 가고 있는 그 누구도 조급해하지 않았고,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는 그 누군가도 안절부절하지 않았다. 약속 장소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은 그 누군가가 곧 올 것이고,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고,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 시간 속에는 설렘이 깃들어 있었기때문에 불안해하거나 지루할 틈이 없었다. 


 누군가가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올 때 마다 나의 시선은 카페의 문을 향하고, 내가 기다리는 그 사람이 들어오지 않을까 하는 설렘. 누군가와 약속을 하는 순간부터 그 사람을 만나는 순간,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기다림의 시간까지. 우리는 그 시간들을 사랑했다.


네가 오기로 한 그자리에 /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 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다 안다 /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에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 너였다가 /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 사랑히는 이여 / 오지 않는 너를 기달며 /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 아주 먼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다 /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갓금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전문.


2.간이 많이 흘렀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를 두고 많은 사람들은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지금보다 윤택한 삶은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IT기술은 눈부

앙코르 와트 신전

신 발전을 거듭했고, Steve Jobs는 '혁신'이라는 말의 의미를 전 세계에 알리며 iPhone을 세상에 선보였다. 대한민국에서는 '비둘기호'열차가 사라졌고, 고속열차 KTX 가 선로 위를 달리고 있다. 더 윤택해진 삶, 더 편리해진 삶, 손바닥 안에 있는 작은 기계 하나면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삶 속에서 우리는 더없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지금 우리의 삶은 우리에게 많은 편리함을 가져다 주었지만, 우리가 상실한 어떤 가치에 대해서는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모든 것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시대에 '여유'라는 말을 하기가 힘들어 졌고, '여유'는 사치로 취급된다. 지금의 30대, 40대들은, 언젠가 그들이 '삐삐'를 치고나서 상대방이 나에게 연락을 해 줄 때까지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기다린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고 산다. 심지어, 그 이후의 세대들[1980년대 후반 이후 출생자들]은 그 애틋함을 알지 못한다. 누구나 손바닥 안에 전화기를 가지고 있고, 언제든지 메시지를 보낼 수 있으며, 내가 보낸 메시지를 상대방이 확인 했는지도 알 수 있다. 여유롭게,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기다리던 우리의 모습은 사라진지 오래다. '여유', '애틋함'이 자리하고 있던 곳에는 '조급함', '불안'만이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누군가와 약속을 잡하, 그 사람을 만남기 위해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기다리는 모습은 사라졌다. 우리는 실시간으로 상대방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고, 약속 시간은 수시로 변경될 수 있으며, 심지어 약속 시간 10분 전에도 약속은 취소될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불안'이 우리의 삶 속에 스며들어 왔다고 할 수 있다.


  KTX는 말한다. "KTX를 타면. 시간이 절약되고 약속 시간에 더 빠르고 정확하게 도달할 수 있습니다." 기차가 빨라진 대신, 창 밖의 풍경은 시시각각 변하는 다양한 삶의 모습이 아닌, 기차역의 플랫폼과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로 채워졌다[무궁화호를 탈 수도 있고, 우리는 무궁화호를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넘쳐나는 KTX들 사이로 간간히 존재하는 무궁화호는 쓸쓸해 보인다. 사람들은 스마트 시대에 걸맞게 KTX를 타야하는 것처럼 여긴다]. 빠름, 빠르게,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를 외치면서 그것이 정답인 양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다. 출발점과 목적지만 존재하는 그런 삶, 하나의 점에서 또 다른 하나의 점으로 이어지는 그런 삶. 

 중간이 사라졌다. 점과 점, 그 둘을 연결해서 하나의 선으로 만들기엔 지금 우리의 삶은 너무나도 빠르다.


3.코르 유적에서 무엇을 타야할까? 툭툭 vs 자전거 - '툭툭'


  캄보디아 시엠립[앙코르 유적이 위치한 도시, 앙코르 와트가 가장 대표적인 사원이다]에는 '툭툭'과 '자전거'가 있다. 많은 사람들[앙코르와트를 방문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툭툭'을 타고 앙코르의 여러 사원들을 방문하고, 사진을 찍는다. 툭툭은 빠르고 편하며, 짧은 시간에 많은 사원들을 둘러 볼 수 있다. 몇몇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고 앙코르 유적의 사원들을 방문하고, 그곳의 공기를 마신다.  그렇지만 자전거는 느리고, 힘들다. 사원 하나하나를 둘러보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정글 곳곳에 신전들이 퍼져있기 때문에, 신전들 사이를 오가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앙코르 와트

△ 앙코르와트 사원의 전경



 '툭툭'은 앙코르 사원들을 둘러보는 데 있어서 최고의 탈것이라고 자신을 광고한다. '툭툭'은 앙코르 유적의 여러 사원들을 빠르게 돌아볼 수 있도록 해주는 최고의 탈것임은 틀림없지만, 아무도 툭툭이 '최고의 만족'을 준다고 말하지 않는다. 툭툭은 그저 관광객들을 앙코르 유적의 여러 사원에 실어다주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다. 툭툭은 앙코르의 사원들을 관광객들에게 '점'으로 만들어 준다. 넓은 정글 속에 있는 사원들은 툭툭에 의해서 점들이 되고, 관광객들은 앙코르 사원들을 점으로 기억하게 된다.


앙코르 와트 신전을 구경중인 사람들

시엠립 시가지에서 관광객들을 실은 '툭툭'은 관광객들을 '앙코르 와트' 내려준다. 관광객들은 사진을 찍고, 다시 툭툭에 올라 '앙코르 톰'에 내린다. 사진을 찍고 다시 툭툭에 오른 관광객들은 '프레아 칸'에 내려 사원을 오르내리며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찍고 사원에서 빠져나온 관광객들을 실은 툭툭은 밀림으로 들어가, 비포장길을 빠른 속도로 가로질러 또 다른 사원에 관광객들을 내려놓는다[빠르게 달리는 툭툭 안에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바깥 풍경을 포착하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툭툭[궁극적으로는 툭툭의 운전기사]에게는 '사원'과 '사원' 사이의 공간은 무의미하다. 사원들 '사이의 공간'은 사원과 사원을 이어주는 '길', '통로'에 불과하다. 다시말해, '통로', '길'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툭툭'에게는 밀림 속의 수 많은 사원들 조차 어떤 '특별한'의미를 지니지 않는 돌 무더기일 뿐이다. 툭툭 혹은 운전자들에게 있어 그곳은 단지 '관광객들의 목적지'이고 '자신의 일터'일 뿐이므로, 그들은 관광객들이 빨리 사진을 찍고 사원에서 빠져나와 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다음 사원을 향해 가는 것이 툭툭의 존재 이유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툭툭'에게 있어서 앙코르와트를 비롯한 앙코르 유적의 여러 사원들은 몇 개의 점들에 불과하고, 그런 '점'과 '점들'에 관광객을 내려놓는 것이 '툭툭의 목적'이다. 이런 툭툭에 실려 다니는 관광객들은 자연스럽게, 사원들을 '점과 점'으로 인식하게 되며, 앙코르와트에 대한 이미지는 규모가 '큰' 몇 개의 사원에 대한 이미지로 대변된다. 



△ 프레야 칸



4.코르 유적에서 무엇을 타야할까? 툭툭 vs 자전거 - '자전거'

 우리 주변에서 '느리게 하는 여행'을 찾기란 힘들다. 우리는 더 빨리 움직일 수 있게 되었고, 더 빨리,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삶이 더, 빨라져서일까? 그만큼 시간을 절약하고 있지

끝없는 툭툭의 행렬

만, 그것을 여유로운 생활을 하는 데 쓰지
않고 더 많은 일을 하는데, 더 바쁜 삶을 사는데 쓰고 있다(스베냐 플라스푈러, <우리의 노동은 왜 우울한가>에서 발췌).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은 우리에게 '느림'의 의미를 알려주지도 않고, 그런 '여유'를 부릴 수 있도록 허락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아니라면, 모두가 빠르고 편한 것만 원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자전거'도 '툭툭'과 마찬가지로 '사원'과 '사원'을 이어준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툭툭'이 앙코르의 유적들을 돌아보는데 최고의 탈것이라고 말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자전거'는 힘들고, 느리다는 이유로 추천을 하지 않는다. 자전거가 '최고의 탈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최고의 만족'을 준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 앙코르 유적지에서는 모든 사람들의 목적지가 밀림 속에 산재해 있는 앙코르 사원들이고, 사원들은 한 곳에 몰려 있는 것

신전과 자전거


이 아니라 넓은 지역에 걸쳐 퍼져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둘러보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앙코르 유적을 포함한 밀림에서 볼만한 것, 봐야하는 것이 앙코르 사원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앙코르 유적지의 사원들은 다 같은 돌무더기가 아니다. 그리고 그 사원들을 연결하는 밀림속의 길들도 모두 같은 밀림 속의 길이 아니며, 자전거를 타고 밀림 속의 길을 가다가 만나는 소나기들도 다 같은 소나기가 아니며, 밀림 속에서 만나는 다양한 동물들은 색다른 앙코르 유적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 준다. 자전거는, 비록 느리지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해주고, 앙코르 유적의 다채로운 모습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밀림 속을 질주해보기도 하고, 나무 밑에서서 지나가는 비를 피해보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멈춰서서 동물들을 바라보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고 신전 주위를 빙빙 돌아보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고 앙코르 유적의 숨결을 마음껏 느낄 수 있다. 앙코르 유적이 문닫는 그 시간까지, 그 누구도 재촉하지 않는다. '빠름', '빨리'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저, 자전거를 타고 밀림 속에서 유유히 흘러다니면 된다.


5.리의 여행은 언제부터,


 우리의 여행은 언제부터 이렇게 빨라 졌을까?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해야하고, 많은 것을 보아야 왠지 좀 더 뿌듯하고 유익한 여행을 한 것 같다는 착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좀 더 많은 사진을 찍고, 나중에 그 사진을 보면서 여행의 기억을 더듬는 것이 '여행'이 되어버린 것은 왜일까. 바쁜 일상을 떠나 여행에서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찾겠다는 다짐은 바쁜 여행 속에서, 일상보다 더 바쁘고 부지런한 생활을 하면서 사라져 버린다. 

 '빠름', '빨리'. '빠르게'. 이런 말들은 우리에게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지만, 우리는 더 많은 시간을 더 많이 움직이는데 써버린다.
 '빠름'을 버리고, '느림'을 선택해 보자. 그리고, '느림'이 당신에게 주는 '여유'를 마음껏 즐겨보자.
- From. 앙코르 유적, 캄보디아.


△ 비를 피하다.


<밀림 속 신전 - 고목들이 스며들다>


<밀림 속 신전 - 스며든 고목>


<밀림 속 신전>


<섬세한 부조>


<통로, 대칭>


<자전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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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네팔(Nepal) - 테러를 당하다.(2) : 네팔 버스테러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2. 2. 6.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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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st edit 10.11.14)

"Episode] 테러를 당하다.(1) : 인도 국경 폐쇄"에서 이어집니다.(클릭하면 글을 볼 수 있어요)


1. 테러. 테러리즘(Terror, Terrorism)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2001년 9월 11일. 뉴욕의 중심. 세계 경제의 중심. 맨해튼(
Manhattan)의 중심에 있던 세계무역센터(WTC. world trade center)가 무너져 내렸다. 여객기 두 대가 테러리스트의 지시에 따라 쌍둥이 빌딩의 내부에 파고 들었다. 하늘을 찌를듯한, 세계 경제의 중심지의 위상을 드높이며 서 있던 쌍둥이 빌딩은 차례로 무너져 내렸고, 한 줌의 재가 되었다.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테러.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가? 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당신은 어떤 생각이 먼저 머릿속에 찾아오기 전에 온 몸으로 느끼고 있다. 알 수 없는 두려움. 공포의 끝자락을. 당신이 머물고 있는 빌딩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고, 10분 뒤 폭발할 거라는 테러리스트의 메시지가 남겨진다면 그것이 어떤 공포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겠지만, 우리는 막연히 생각할 뿐이다. 그리고, 생존자들의 입을 통해서 우리는 테러의 공포에 대해서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엄청난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후유증에 시달리는 사람들.

  테러리즘, 테러리스트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일까. 그들은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테러를 자행한다[일반적으로 정치, 종교, 사상적 목적을 위해 폭력적인 방법의 수단을 동원한다] 그런 임무 수행의 과정 중에 개인, 단체, 국국가를 상대로 누군가를 사망에 이르게 하고, 물질적, 정신적인 피해를 입힘으로써 공포심을 일으키고, 어떤 행동을 강요하거나 혹은 행동을 중단하게끔 한다. 이러한 테러는 특히, 정치나 종교와 많은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된다[주요 테러리스트들의 출신을 살펴보면 이슬람 과격분자라는 견해가 많은 것을 근거로 생각해 볼 때 말이다].

  테러리스트들['테러분자'라고 하기도 한다]은 자신들이 믿는 이념의 큰 뜻을 이루기 위해 민간인이나 관련되지 않은 사람들의 희생이 어쩔 수 없다는 가치 판단을 내리며, 그 자신 혹은 자신들의 동조자들의 생명 또한 희생되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여행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들은 항상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들은, 특정 누군가를 향해서 테러를 자행하고 사회나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 불특정 다수를 이용하여 자신의 목적을 취하려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포심을 극대화하기 좋은 가장 좋은 대상이 바로 여행자, 외국인들이다. 옛날 이집트에서 폭탄 테러가 났을 때도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테러였고, 예멘에서 테러가 났을 때도 관광객을 상대로 한 테러였다. 관광객은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지만, 그들은 테러리스트의 표적이기도 하다.


2. 
  서울에서 시내버스가 폭발하는 사고가 일어난 적이 있다. 그 사고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했다. 그 버스에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설레는 마음을 안고 약속 장소로 가던 사람이 있었을 것이고,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어디론가 떠나고 있던 사람, 자신의 보금자리로 돌아가던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갑작스런 사고로 그 사람들은 상처를 입었으며, 혼란을 경험했다. 갑작스런 사고. 그것은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 넣었다. 물론, 그것은 테러가 아닌 갑작스런 사고였지만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희생되었다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공포심을 느껴야 했다.

  얼마 전, 또 파키스탄에서 자살 폭탄테러
가 났다. 내가 파키스탄에 가려고 생각하고 있던 무렵에도 한창 자살 폭탄 테러가 자행되던 시점이었기에 인도와 네팔 사이의  국경이 폐쇄되기도 했다. 결국 나는 잦은 자살폭탄 테러로 인해[궁극적으로는 나도 자살 폭탄테러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인도 국경을 넘어 파키스탄을 넘어가지 못했다. 나는 갈 수가 없었다.

  예멘에서 한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폭탄 테러가 일어나서, 4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그 사람들 중에는 내가 아는 사람과 관련되는 사람이 있었다. 나에게는 예외라고 느껴지던 테러의 위험, 테러로 인한 죽음이 나에게 어느새 한걸음 다가와 있었다. 나는 도저히 테러의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느꼈다. 테러는 불특정 다수를 향해서 일어난다. 테러는 관광객들을 노리는 경우가 더 많다. 여행자는 항상 조심해야 한다.
   사고, 테러 등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사건들은 예측하지 못할 때 찾아온다[예측할 수 있을 때 찾아오는 사고는 부주의다]. 해외여행, 특히 정치적으로 불안정하거나, 내전이 있는 지역을 여행 할 때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
언제, 어디서 불의의 사고가 터질지 모르고, 그 희생자가 바로 당신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내가 파키스탄을 가려 했을 때, 국경에서 버스 폭탄테러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코소보가 독립하기 전 코소보 지역을 여행 하려 했을 때, 코소보는 국지적 게릴라전이 발생하여, 민간인들이 수도 없이 죽어 나갔고, 내가 이집트 다합에 있을 때 외국인을 상대로 한 테러가 발생해서 7명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이번 네팔 여행을 하기 위해 인도를 떠나 네팔 국경으로 향했을 때에도, 전국적인 파업과 정치적 불안 상태가 발생하고 있었다. 나는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봤다. 나는 조금은 소극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3.  
  여권에 네팔 입국 스탬프를 찍고, 일행들과 함께 근처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는다. 우리는 다음날 아침 일찍, 테러를 피해 룸비니(Lumbini)에 있는 한국 사찰에 머물다가 상황을 지켜본 다음 카트만두나 포카라로 가기로 했다. 일행은 사이클 릭샤를 타고 룸비니로 이동했다
. 국경에서 룸비니의 사찰들이 모여 있는 곳 까지는 20km가 넘지만, 모든 교통수단이 통제되고 있는 상황에 우리가 탈수 있는 것은 사이클릭샤 밖에 없었다. 우리는 사이클릭샤를 운전하는 사람에게 많은 돈을 쥐어 주었지만,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큰 배낭과 두 사람을 싣고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사이클릭샤 운전수. 힘들고 지쳐 보인다. 
  
  룸비니의 한국 사찰(절/寺)[룸비니에는 독일, 일본, 중국, 태국 등 각국의 사찰들이 각국의 특색에 따라 지어져 있다. 그 곳은 부처가 태어난 곳이기 때문에, 불교의 성지중 한 군데이다.]
은 방문자들에게 숙식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었기에 그 곳에서 머무는데 부담은 없다. 또한, 절에서 제공되는 음식도 한국의 음식과 비슷했기에 인도의 음식에 지쳐있던 나로서는 몸보신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우리는 몇 시간을 자전거에 의지한 끝에,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장소였다.



4. 
  그들은 룸비니에 3일 째 머물고 있었다
. 여전히 교통수단은 마비된 상태였고, 각종 소문들이 절 안으로 파도치듯 한 두명의 여행자들과 함께 몰려 왔다. 문제는 테러집단이었다. 그들은 대중교통인 버스를 향해서 테러를 자행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사찰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더 이상 발이 묶여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짧은 기간 여행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그들은 하루 바삐 그들의 목적지로 가야만 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다.
나는 더 이상 여기서 시간을 지체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내일 상황이 어떻게 되든 여기를 떠나겠어요. 

  매일 밤, 소나울리[인도와 네팔의 국경 도시]에서 비밀리에 버스를 운행 한다는 소식이 봄바람 불듯이 사찰 안으로 흘러 들어왔기에 사람들은 그것을 타려고 했다. 포카라와 카트만두로 가는 버스가 각각 한 대씩 있었다. 가격은 평소의 3배 이상. 하지만 사람들은 다른 대안이 없었기에 그 버스를 타야만 했다. 그도 그 버스를 타고 카트만두로 떠날 생각이었다. 그
전날 함께 룸비니의 사찰에 머물던 두 명의 남자가 먼저 포카라로 떠났기에, 사회적 혼란 상태는 어느정도 진정되고 있는 듯했다.



5. 
  룸비니에 남아 있던 여섯명의 사람들이 다시 소나울리로 아침 일찍 나온다. 그날 밤, 포카라와 카트만두로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위해서다. 나와 사람들은 호텔에서 반나절을 쉬면서 해가 기울어 어두워지기를 기다린다. 포카라로, 카트만두로 각각 자신의 길을 가야하는 사람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지금 우리의 상황에 대해서, 과거에 대해서, 그리고 미래의 여행에 대해서.

  거리에는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거리를 가득 메웠던 사람들이 하나 둘 씩 사라져간다. 어둠이 온 거리를 지배하자, 버스를 타기위해 많은 여행자들이 모여든다. 하지만, 버스는 단 두 대다. 포카라로 가는 버스 한 대. 그리고 카트만두로 가는 버스 한 대. 포카라로 가는 버스는 사람이 많아서 버스 지붕에도 사람이 올라탄다[포카라는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재미있는 광경이지만, 야간 버스이고, 지금 상황에 사고가 날 수도 있기에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카트만두로 가는 버스는 인원이 딱 맞았다. 저녁 8시. 버스 기사와 요금을 받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버스에 시동이 걸렸다. 자기들 끼리 무언가 말을 주고 받았다. 나는 어서 빨리 카트만두에 도착하기를 바랄 뿐이다.

  버스는 라이트를 켜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달빛에만 의지해서 도시를 빠져 나가려는 것이다. 게다가 버스는 단독으로 출발하는 것이 아니다. 10톤 트럭 뒤에 바짝 붙어서, 라이트를 끄고, 버스가 버스임을 부정한 채 운행하는 것이다. 소나울리의 버스 협회에서 웃돈을 받고, 여행자들만을 위해서 비밀리에 운행하는 버스
였기에, 진행자들은 조심스러웠다. 사람들은 우왕좌왕했지만, 출발전 큰 사고는 없었다.



6. 
  그는 운전석 뒤 둘 째 줄에 자리를 잡았다. 그의 앞 좌석에는 동행하는 여자 아이가 앉았고, 그 앞 운전석에는  칸막이가 쳐져 있었다. 그리고 운전기사의 옆에 보조석 자리에 세명의 외국인 여자가 앉았다. 그들은 버스가 떠나려고 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달렸다. 모든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다. 천천히, 트럭들 틈에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밤은 점점 깊어갔고 사람들은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피곤했다. 목적지로 가기 위해 많은 시간을 기다린 탔이었을까. 그도 음악을 들으며 슬며시 잠속으로 빠져들려고 하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버스의 옆면을 무언가가 툭툭 건드리는 소리가 났다. 둔탁한 소리였다. 뭐지. 그 때 갑자기 창문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 쨍그랑. 여자의 비명 소리가 들려 왔고, 버스는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밖에서는 괴성이 들려오고 있다. 버스 옆면을 두드리는 둔탁한 소리가 끊임없이 그의 귓등을 때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괴성을 질러댔다. 혼란스러웠다. 잠은 어느새 멀리 달아나고 없었다. 그리고 그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면서,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하지. 여기서 죽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채웠다.



7.
  버스는 멈추지 않는다
.
  버스의 앞 유리창이 박살났다. 파편은 산산조각 나서 이리저리 뒹굴고 있다. 하지만 운전기사는 버스를 세우지 않고 계속 몰았다. 마구 흔들리며 바닥 긁는 소리를 내는 유리조각들. 사람들의 괴성과 어디선가 들려오는 여자의 흐느낌. 그리고 멀어져 가는 굵직한 남자들의 목소리.
  깨진 유리창으로 차가운 산바람이 쏟아져 들어왔고, 운전석과 좌석 사이의 칸막이에 달린 문은 마구 흔들리면서 혼란한 상황을 어색하지 않게 표현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버스에 올랐던, 보조석에 앉아 있던 외국인 여자는 비명을 지르며 울고 있다.
  

  바깥의 함성이 서서히 잦아지다가 이윽고 들리지 않았다. 버스의 엔진 소리만이 어두운 공기를 울리고 있었다. 얼마 후, 운전기사는 버스를 세웠다. 운전기사 옆에 자리하고 있던 세 명의 여자 여행객은 울고 있었다. 한 명은 다리가 피범벅이었다.
  여행자들은 자신의 배낭에서 응급약을 꺼내서 전달해 주었다. 깨진 유리로 인해 가벼운 찰과상이 여러군데 난 것 같았다. 큰 상처는 아닌 것 같았다. 다행이었다. 운전기사에게 큰 돌덩이가 날아갔지만, 운전기사도 큰 상처를 입지 않았다.나는 혹시나 여기서 다시 소나울리로 돌아가야하는건 아닌가하는 걱정이 앞섰다. 여기서 돌아가면 모두 도루묵이다. 나는 또 다시 이 길을 지나올 자신이 없다.



8.
  여행자들은 서로 도울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도왔다. 운전기사는 선글라스가 필요했다.[유리창이 없었기에, 차가운 밤바람과 산속의 벌레들로 부터 눈을 보호해야 했다.] 
  버스는 다시 출발했고, 히말라야 산자락의 밤 공기는 차가웠다. 모두들 추위에 떨면서 히말라야의 산 속을 달렸다. 카트만두는 영원히 나올 것 같지 않았다. 그는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언제 또 다시 그런 상황이 발생할지 몰랐다. 히말라야 산맥 저 뒤편으로 태양이 고개를 내미려고 할 때, 도시가, 건물들이 보였다. 해가 밝으려 할 때 모두들 카트만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는 그날 소나울리에서 카트만두로 오던 길에 일어난 모든 일들이 꿈같이 느껴졌다.





- 카트만두 시내 데모현장



- 룸비니의 한국 사찰, 저 뒤에 공사중인건 대웅전. 황룡사 9층 목탑을 따라한 것.



- 룸비니의 밤. 룸비니의 밤에는 원숭이들이 괴성을 질러댄다.





- 국경(인도 쪽)




- 사이클 릭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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