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그리스, 산토리니 - 냉정한 그리스, 안그래도 억울한데 돈까지 더내라고?!(Santorni, Greece)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1. 7. 16.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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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ond edit(1st 10.30.10)

1. 대중교통, 현대인의 쉼터.

  대중교통[지하철, 버스, 기차 등]을 이용하다보면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 있다. 가끔은 자기 자신이 그 장면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지만, 그러한 모습 때문에 자기 자신이 불편을 겪고 얼굴을 찌푸린 일이 있을 것이다. 지하철이 출발하고, 도착 할 때 옆 사람의 머리가 나의 어깨를 슬며시 누를 때가 있다.

  아침 출근길의 지하철이나 오후 나른한 시간의 버스. 많은 사람들이 대중교통이라고 일컫는 탈것 안에서 잠을 청하고 있다. 자신의 의지에 의한 잠이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찾아온 잠이든, 대중교통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하게 다가와 있기에 많은 사람들은 그 속에서 잠을 청하고 있는 것이다.

  대중교통과 그 안에서의 졸음. 어떻게 본다면, 대중교통은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생활에 지친 사람들에게 잠깐이나마 휴식의 시간을 제공한다. 현대인의 쉼터가 되고 있다.


2. 집에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가 깜빡 졸았던 적이 있다. 

  너무 졸려서 잠깐 눈을 감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집까지 여섯 정거장 정도 남아 있었다. 아니 눈이 감기기 전에도 여섯 정거장 정도 남았었는데 어떻게 된 거지? 라는 생각에 시계를 보니 두시간이 지나 있었다. 지하철 2호선...한바퀴를 돈 것이었다.

  도시가 어둠에 휩쌓여 있을 때 부터 술을 마시다가, 태양이 도시를 깨울 때 쯤 집에가던 시절이 있었다. 대학 새내기 시절, 상쾌한 아침 공기와 태양의 따스함을 느낄 무렵 집에 가던 때였다.  신입생 시절은 그렇게 지하철 2호선을 타고 한두바퀴 도는건 기본이었다.

 친구의 이야기, 밤 늦도록 술을 마시다가, 막차를 타고 집에 간다는 친구가 있었다. 친구는 집에 가기 위해, 당고개행 열차를 타고 당당히 집을 향해 갔다. 친구는 정신을 잃었고, 나중에 정신을 차려보니, 열차 차량기지에서 잠을 자고 있더랬다. 그리고 그의 한쪽 신발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그는 자신이 간디가 되지 못한 사실에 대해 안타까워 하고 있었다. 그리고 신발이 벗겨진 그 한쪽 발은, 진흙 범벅이 되어 있었다고 했다. 무슨일이 일어났던 걸까? 술과 잠이 문제다.

  우리나라 기차는 참 관대하다.  기차를 타고 고향 집에 내려가다 보면 가끔 잠이 들 때가 있다. 그러다가 내가 내려야 할 기차역을 지나친 경우가 있다. 그렇게 되면, 그 다음 역에 내려서 역무원에게 말을 하면, 다시 반대편으로 가는 열차를 타고 돌아갈 수 있게 해 준다. 내 친구 중 한명은 너무나도 깊이 잠이 든 나머지, 대구에서 내려야 하는데, 부산까지 갔다 온 적이 있다고도 했다. 그렇게 역을 지나쳐도, 추가요금을 내지 않고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인가?


3. 
  사실, 그리스에 갈 마음은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산토리니(Santorini)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계획에도 없던 산토리니에 가기로 했다. 

  그리스 아테네에 도착한 첫 날, 아침. - 야간 열차를 타고 그리스 북부의 테살로니키에서 왔는데, 같은 칸에 탄 사람이 밤새도록 떠들어대서 너무나 피곤했다 -  너무나 피곤한 나머지 역 안의 대합실 의자에서 한 시간만 졸다가 일어나야 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졸고나니, 내 눈앞이 뭔가 허전했다.
  왜일까? 라는 생각을 잠시 한 후에,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내 눈앞에 놓아 두었던 배낭이 없어진 것이었다. 내 배낭.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배낭을 도둑 맞은 것이었다!!!  

 
헐.... 좌절에 좌절에 절망에.....다행히 카메라, 노트북, 여권은 작은 가방에 넣어두고 의자 바로 밑에 넣어두어서 괜찮았지만, 큰 배낭이 없어졌다는 사실에 정말 어이가 없었다.
  일단,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찾을 도리는 없었다. 잃어 버린건 잃어버린 거고, 좌절모드였지만, 그래도 산토리니에 가려고 왔으니 산토리니에는 가봐야 겠다 싶어서 배를 타러 갔다. 온종일 아무것도 못 먹고, 배낭을 찾아보겠다가 역 주변 반경 1km(?)내에 있는 휴지통을 다 뒤지고 하느라고 정말 피곤한 하루였다.

  산토리니로 가는 배표를 끊고, 겨우겨우 배에 올랐다. 정말 내 꼴은 거지꼴이었다. 땀 냄새가 내 몸에서 진동을 하고 있었다. 배 안에 있는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고 나니, 정말 개운했다. 살 것 같은 기분에 도취될 무렵, 졸음이 슬슬 몰려 왔다.

  승무원에게 몇 시 쯤에 산토리니에 도착하냐고 물어보니, 새벽에 도착한댄다. 아니 새벽 몇시에 도착하냐고!? 몇 번이나 물었지만 그냥 새벽이랜다. 새벽이면,,,다섯시? 뭐 그쯤? 그러니까 뭐 그럴지도 모르겠단다. 아니, 뭔 한두번 가는 것도 아니면서 도착 예정 시간을 몰라? 일단 피곤한 마음에 나는 그냥 구석에 가서 잠을 청하기로 했다. 어차피, 산토리니에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니까, 그때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나가면 깰 수 있겠지라는 생각에...


4. 
  그는 뭔가 이상하 느낌에 눈을 떴다. 눈을 뜨니, 주변에 사람이 아무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엔진소리가 우렁차게 났다. 설마.... 그는 승무원에게 가서, 산토리니, 산토리니를 외쳤다. 그러자, 그 승무원은 창밖을 가리키면서 산토리니라는 것이었다. 산토리는 점점 그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배는 산토리니 항구를 떠나 다른  섬을 향하고 있었다. 그는 정말 뛰어 내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승무원에게 산토리니 가야된다고 내 표를 보여주면서 내려야 된다고 하니, 그 때 승무원이 그에게 한 말이 더 가관이었다. 너는 지금 코스(Kos)섬으로 가는 배를 타고 있으니, 돈을 더 내야해. 20유로를 더 내. 뭐라고? 미쳤냐? 돈없어. 산토리니 못내린 것도 억울한데 돈을 더 내라고? 미쳤냐? 그는 배째라는 식으로 나갔다. 하지만 그런 수작이 먹힐리가 없었다. 돈을 내지 않으면 경찰을 부르겠다면서 그들은 오히려 더 난리를 피웠다. 어이없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었다.
 
  그는 결국 20유로를 더 뜯겼다. 그리고 그 다음 정박지인 코스섬에 내렸다. 어차피 그 배는 산토리니로 돌아가니까, 그 배에 계속 타고 있다가 산토리니에 내리겠다고 했더니, 그 배는 더 멀리(로도스)섬 까지 갔다가 돌오니까 그러면 60유로를 내야한다는 것이었다. 에이 미친것들. 그는 20유로만 낸 채 침을 뱉으면서, 코스섬에 내렸다.



5.  
  코스섬에는 가족단위 휴양객들이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돈도 없는 본인. 배낭 도둑맞고, 자다가 산토리니에 내리지도 못하고 돈만 더 뜯기고, 돈도 없고, 옷도 없고, 씻지도 못하고 정말 거지가 따로 없었다. 다시 배가 오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날씨는 덥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 비참했다.


6. 
  오후 6시 무렵, 선착장에 산토리니로 가는 배가 왔다. 산토리니를 거쳐서 아테네로 가는, 그가 타고 왔던 그 배였다. 그는 정말, 그냥 그 배를 타고 아테네로 가고 싶었다. 그냥 산토리니고 뭐고 다 때려 치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차마 그럴 순 없었다. 그렇게 되면 그가 그렇게 고생을 한 이유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산토리니로 가서 침을 뱉겠다고 다짐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산토리니로 갔다.
  코스에서 산토리니로 가는 동안 그는, 홍콩계 미국인인 애와 이런저런 대화를 했다. 그녀는 그에게 말을 주면서 즐겁게 해 주려고 했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산토리니에 대한 증오로 넘쳐나고 있었기에, 대화가 깊이있게 진행될 수 없었다. 그리고 마음 한켠엔 썩어빠진 그리스 놈들에 대한 증오도 일어나고 있었다. 

  산토리니, 좋았긴 했지만, 정말 그리스는 나랑 안맞는 나라다.


- 아테네 항구

- 코스 섬, 해안 도로


- 코스섬에 정박중인 요트들


- 산토리니로 가는 배, 사람이 정말 몇 없었다


- 바이바이, 코스섬


- 산토리니..............폭파시켜버리고싶었다


- 산토리니의 밤,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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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그리스, 아테네 - 아무도 길가의 악사에게 동전을 던지지 않는다.(Athens, Greece)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1. 7. 16.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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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ond edit.(1st 8.28.10)

1. 길을 걷다 어디선가 음악이 들려오면,
  길을 걷다 보면, 가끔 우리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악을 들을 수 있다[당신의 귀에 꽂혀 있는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아닌]. 그것이 스피커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이든, 아니면 누군가가 거리에서 자신의 몸으로 음악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든 우리는 그 공기의 울림 사이를 지나가게 된다. 때로는 유행가가 흐르고, 때로는 오래 되었지만 누구나 알 수 있는 유명한 곡[고전일 수도 있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유행가일 수도 있다] 
  
  음악이 울려퍼지는 그 곳으로 시선을 돌려보자[스피커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과 사람이 연주하는 음악은 듣기만 해도 구별 가능하므로], 그리고 그 곳에서 연주를 하고 있는 사람을 바라보자. 그는 자신의 느낌을 담아, 불특정 다수의 대중에게 자신의 느낌을 선율에 따라 전달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어떤 음악이든, 그 음악은 그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길거리에 울려퍼지는 음악에는, 그것을 연주하는 사람의 소울[Soul]이 담겨있다. 우리는 그것을 느끼고 공감하면 된다.


2. 거리의 악사.
" 띠리리링……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스크린 도어가 닫힘니다....."
오늘도 충무로역 계단을 따라 내려가 역 속으로 몸을 담갔다가, 다시 내 몸을 지상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오후 6시.
충무로역사 안, 음악소리가 나에게 다가와 내 귓가 주위를 맴돈다.들려온다. 나의 발걸음은 기계적으로 출구를 향하고 있다.
한쪽 모퉁이에 위치한 악사에게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내 귓등을 때리지만, 그 울림은 점점 약해질 뿐이다.
  1번 출구.
대한극장 출입구에서 흘러나오는 묘한 향기가 나를 상념속으로 밀어 넣는다. 지상으로 나를 밀어내주는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싣자, 내 시선은 저 통로 끝자락에 머물고 있는 허공으로 향했고, 나는 거기에 없었다.

  프랑스의 한 지하철 역사안, 거리의 예술가 한명이 바이올린을 켜고 있다. 바이올린의 울림이 지하철 안을 울리고 있다. 잠시 후, 내 몸을 싣고 어딘가로 사라져버릴 열차의 굉음이 지하철역 안에 울려퍼지기 시작했고, 그의 음악 소리는 점차 사그라 들었다.

  뉴욕, 42번가 타임스퀘어 역사 안. 음악이 울려퍼진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 음악 소리가 그 사이를 채우고 있다. 나는 역 안에 채워진 음악소리를 내 귀속에 주워 담으며, 유유히 플랫폼으로 걸어갔다.  음악이 있던 자리는 열차 바퀴와 철로 사이에서 나는 굉음으로 채워 졌다.

  네팔의 오래된 버스 안. 허름한 차림의 악사가 네팔 전통악기를 들고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나서 버스 안에 울려퍼지는 네팔의 전통 음악. 아름 다운 선율이 내 귓가를 자극한다. 마치 바이올린과 흡사한 소리지만, 바이올린은 아니다. 음악이 멈추자, 사람들은 그의 손에 동전을 쥐어 준다. 

 
 콜롬비아의 시내버스 안. 한 남자가 자신의 머리통보다 큰 라디오를 들고 버스로 올라탔다. 곧, 음악이 울려 퍼지고, 그는 그 음악에 맞추어 노래를 부른다. 콜롬비아의 음악일까? 처음 들어보는 노래지만, 그 노래가 그 음악이 마음에 든다. 좋다고 생각한다. 내 주머니를 뒤져, 그의 손에 동전을 쥐어주자 그의 표정이 환해진다. 나에게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리스 아테네의 한 거리, 광장. 내가 있었다. 한 쪽 어깨에는 커다란 악기가 매달려 있다.  아프라칸 드럼 잠베[djambe].
  나는, 내리쬐는 태양아래, 광장의 한쪽 모퉁에에 자리를 잡고 북을 두드렸다. 북의 울림이 광장 전체에 울려 퍼졌고, 사람들은 나를 바라보았다. 내 앞을 지나가며 가볍게 몸을 흔드는 이들도 있다. 나는 마음의 눈을 감고 내 몸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느낌을 손으로 전달했다. 손을 통해서, 소리가 만들어져 광장에 또 다시 울려 퍼졌다.


"길을 지나가는 숱한 행인중 누구도 저 악사에게 동전하나 던지지 않는 걸"

- The Quiett 의 "그 후 몇년 中"



3. 음악으로 소통하다
  그리스는 나와 악연으로 맺어진 나라라고 생각했다. 2005년 그리스를 방문 했을 때도 힘든 시절이었다. 그리고 2009년 여름 또 다시 그리스를 방문 했을 때, 내게 너무나도 가혹한 시련을 주었다.
  
  내가 가진건 작은 가방 하나와, 악기하나 뿐이었다. 돈도 없었다, 아는 사람도 없었다.
오늘 아침, 나는 배낭을 도둑 맞았고, 내가 가진건 작은 가방 하나와 악기 였다. 악기를 도둑맞지 않은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음악은, 악기는 나를 편안하게 해 줬다. 나에게 괴로운 마음이 들 때, 내 마음을 음악에 쏟을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잠시나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주었고, 나를 행운, 행복 속으로 밀어넣어 주었다.


  그리스의 번화가,
  수많은 거리의 악사들이 있었다. 그들 틈에, 나는 자리를 잡고, 악기를 연주했다. 
연주라고 하기보다는 그냥 두드림에 가까운 소리였다. 거리의 수 많은 악사들은 다양한 현악기들로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 냈지만, 다양한 기교를 부릴 수 없는 타악기의 한계랄까? 나는 두드림, 심장의 울림을 퍼뜨리고 있었다.
  나는  리듬에 맞춰 두드렸고, 지나가는 행인들은 리듬을 탔다. 몸을 흔들었다. 리듬을 타는 행인들을 보며, 나는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한 상점 주인은 시끄럽다며, 나를 멀리 쫒아내기도 했지만, 나는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 악기를 연주했다. 더러는, 내 사진을 찍었고, 비디오카메라를 들이댔다.  더러는, 나에게 동전을 던져 주었고, 더러는, 환호를 보내 주었다.

  그 곳에서 노래는 부르는 다른 거리의 악사와 함께 협주를 하기도 했다.
비록 언어는 달랐고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하나 될 수 있었다. 바이올린을 켜는 꼬맹이들도 나와 함께 해 주었다. 잠깐이었지만, 꼬맹이들은 나의 음악을 들어주었고, 나와 함께 연주했다.

음악이란, 이래서 좋은 건가? - 세계 각지의 사람들과 하나로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길거리에서 손수레를 끌며 장사를 하는 그리스의 한 늙은 할머니가, 나에게 다가와 동전을 내 손에 쥐어주었다.

적어도 그 순간 만큼은 행복했다. -
돈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4. 그리스에서의 마지막 밤.
  허름한 차림의 한 남자가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한 쪽 어깨에는 흔히 볼 수 없는 악기를 매고 있다. 그의 옷차림이 심상치 않다. 피부는 좀 까만편이다. 그는 그리스의 번화가의 한 상점 앞에 자리를 잡았고,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아! 잠베(djambe). 아프리카 전통악기였다. 
 
  그리스 국가(國歌)에 리듬을 맞춰 북을 두드려 댓다. 빠른 리듬, 느린 리듬, 다양한 음악을 연주한다. 흥미롭다. 사람들은 그를 지나치며 그에게 관심을 보인다. 하지만, 거리에는 수 많은 악사들이 있다. 악사들이 많은 만큼 많은 종류의 악기들이 존재했다.


  하지만, 이 동양인 사내는 좀 독특했다. 그의 북소리는 온 거리에 울려 퍼졌다. 분수대에 앉아서 연주를 하기도 했고, 광장을 울리기도 했다. 특이한 복장의 한 동양인 사내. 그는 사람들에게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했다. 그는 단지 좀 초짜처럼 보였지만, 그 날 그리스 번화가는 흥미로운 볼거리를 하나 더 가진 셈이었다.


  한 시간이 좀 지났을까? 그는 북을 메고 자리를 뜬다. 그의 앞에는 동전 수십개가 쌓여 있었다. 그 동전을 챙겨들고, 한 식당으로 가서 음식을 주문한다. 배가 고팠나 보다. 그리고 음식을 먹고는 유유히 어디론가 사라진다. 행색을 봐서는 여행을 하는 사람이 분명했다. 그의 작은 가방에는 그리스의 국기도 붙어 있다. 저 악기와 저 작은 가방을 가지고 여행을 하고 있는 걸까? 그렇게 그는 사라졌다. 


  그 날 이후, 그리스의 거리에서 그를 다시 볼 수 없었다.






- 아테네의 거리, 이곳에서도 북을 쳤다


- 산토리니, .


- 거리의 악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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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뉴욕(NewYork, NY) - 폭설과 비행 취소. 비행기 비지니스석을 타라고?! (NYC, USA)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1. 7. 15.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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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연, 재해(災害)

  기술의 발달하면서 인간 문명은 점점 더 나은 생활을 추구하면서 발전을 하고 있다. 좀 더 편안한 삶을 위해서, 사회 곳곳에서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우리들은 그 노력의 결과물을 통해서 더 편리한 삶을 살아간다. 옛날[수백년 전]에는 인공위성이라는 것이 없었고, TV도 없었으며, 라디오라는 것도 없었다. 사람들은 날씨를 예측 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고 여기던 시대가 있었으며[물론 아직도 날씨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 하고, 오늘 날씨는 하늘의 뜻에 따라 바뀌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날씨는 오직 하늘의 신적 존재만이 알 수 있는 것이라고 나에게 말한 적이 있다] , 혹시나 날씨를 예측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우대해 주었다. 그리고 비가 내리기를 간절히 원할 때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기우제.

  기술이 많은 발전을 이루었지만, 그 '기술'이라는 것으로 어떻게 할 수없는 것들은 무수히 많다. 그 중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바로 '날씨'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비가 내릴지 안 내릴 지 예측 할 수는 있지만, [현대의 과학 기술로는] 비가 내리지 않는 곳에 비를 내리도록 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눈이 내릴지 안 내릴지, 얼마나 내릴지 예측은 가능하지만 눈을 많이 내리게 하거나, 내리지 않도록 막을 수는 없다. 가끔은, 그 예측마저도 틀릴 경우가 많다. 이렇듯 자연 현상에 대한 것은 아직도 인간의 기술로는 제어 할 수 없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다. 옛날[우리가 원시라고 부르는 시대] 사람들은 자연에 순응하면서 살아왔다. 산 비탈에 자연과 조화 되도록 집을 짓고, 농사를 짓고 살아왔다. 날씨가 추워지면, 날씨가 따뜻한 곳으로 옮겨 가며 살기도 했다. 인간 문명이 발달하면서 인간은 자연의 일부가 되기 보다는 독립된 존재가 되려 했다. 살기 좋다고 생각 되는 곳을 개발하여, 인간이 살기 편한 곳으로 만들었다.

  현대 사회는, 인간에게 조금 더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제공하기 위해 자연을 지배하려고 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자연 현상을 통제하려 하지만 결국은 자연에게 굴복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부정하려 하고 있다. 우리가 자연 현상 때문에, 우리의 생활이 불편을 겪는다면, 그 때는 그냥 시간을 두고 지켜 보며, 자연과 하나 되는 길을 찾는게 더 옳은 길일지도 모르겠다. 

  자연 현상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서 무언가를 하다가 자연과 충돌이 일어났을 때 재해라고 부르는게 아닐까.



2. 뉴스(NEWS), 전광판의 붉은 글씨.

  비가 많이 오는 장마 철이면, 뉴스에는 장마로 인한 각종 피해 상황을 알리는 뉴스들이 많이 보인다. 철로가 유실되어 기차가 다닐 수 없게 되어 많은 불편을 겪기도 한다. 많은 비로 인해서, 산사태가 일어나서 그 도로가 유실되기도 하고, 사고가 나기도 한다. 심지어는 산 아래의 가옥(家屋)이 매몰되는 일을 겪기도 한다. 물론, 그럴 경우에는 사람들이 다치거나, 사망하기도 한다. 눈이 많이 내려 하우스가 붕괴되어 농민들이 피해를 입기도 하고, 가건물의 천장이 붕괴도었다는 소식을 접하기도 한다.
  
  비가 많이 내리면[아주 많이], 가끔 비행기가 지연되거나 취소되기도 한다. 짙은 안개가 끼면, 비행기는 취소되기도 하고 지연되기도 한다., 눈이 많이 내리면 비행기는 당연히 비행일정이 취소된다. 공항의 비행일정을 알리는 모니터에는 Cancel 이라는 글자가 빨간 색으로 찍힌다. 가끔은 기차역에서도, 사고로 인해서 기차의 운행이 지연되거나 취소되면, 빨간색 글씨를 보게 된다.

  우리는 살면서, 빨간 글씨를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붉은색 글씨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정보들은 대부분, 우리에게 유익하지 않은 정보들이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빨간색 글씨는 우리의 불안샘을 자극한다.



3.  90년 만의 폭설, 워싱턴(Wasington)

  자메이카 킹스톤(Kingston, 자메이카의 수도)를 떠난 JetBlue air사(社)의 보잉기는 카리브해를 지나고, 마이애미(Maiami)상공을 지나고 있었다. 창 밖에는 잿빛 구름들이 빼곡히 들어차있었다. 저 구름들이 땅을 향해서 눈을 뿌리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 뉴스에서 얼핏 본 기사들의 제목이 생각 났다. "미국 동부 90년 만의 폭설"

  좌석 앞에 설치된 모니터에서 비행기의 항로가 보였다. 나는 지금 워싱턴 상공을 지나고 있었고, 이제 곧 뉴욕이 나올 터였다. 워싱턴을 지나자, 내 발 아래 있던 구름들이 사라졌고, 쌀쌀한 모습의 도시가 조그마하게 보였다. 뉴욕엔 눈이 내리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하늘에서 보는 땅은 얼어 붙은 듯이 보였다.

  자메이카 킹스톤의 여름과 같이 푹푹 찌던 날씨, 그 곳에서 4시간 떨어진 뉴욕은 차가운 겨울이 뒤덮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약간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진 겨울 옷이라곤 바람막이 하나 밖에 없는데, 하늘에서 본 뉴욕은 차가운 모습으로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비행기는 JFK 공항에 승객들을 토해냈고, 나는 공항의 건물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공항 건물 안에 갇혀 있는 공기들은 따뜻했다. 햇살이 유리를 통과해서 내 몸을 비추고 있었다. 나는 입국 카드를 작성하고, 입국 심사대에서 약간의 농담을 주고 받은 후, 터미널을 빠져 나왔다.

  차가운 뉴욕의 공기 내 몸을 엄습 했지만, 뉴욕의 날씨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겨울에 볼 수 있는, 겨울 특유의 저녁 노을이 도시를 비추고 있었고, 도시를 지나 나에게 까지 뻗어 있었다. 뉴욕의 공기는 겨울의 공기 답게 차가웠지만, 상쾌했다.



뉴욕 JFK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뉴욕의 날씨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겨울 특유의 저녁노을이 비치고 있었고, 공기는 겨울의 공기답게 차갑지만 상쾌했다.



4. News, Heavy Show.

  그는 뉴스를 봤다. 워싱턴, 뉴저지를 비롯한 동남부 지방 수십년 만의 폭설. 워싱턴 90년 만의 폭설. 그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뉴욕은 눈이 내리지 않았다. 뉴욕의 거리에는 오래 전에 쌓인, 녹다 만 눈의 흔적이 약간 있었을 뿐이었다. 그는 얼마 후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혹시나 폭설로 비행기가 취소될까봐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하지만, 그건 나중의 일이니까 괜찮아라고 자위했다.

  연일 뉴스에서는 폭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는 뉴욕에서의 생활을 즐기면서도, 한켠으로는 신경이 쓰였다. 설마, 뉴욕에는 눈이 안오겠지. 조마조마 했다. 뉴욕에는 제발, 눈이 오지 마라...라고 생각을 했다.

  뉴욕의 날씨는 추웠지만, 가끔은 잿빛 구름들이 뉴욕의 하늘을 뒤덮었지만 눈이 내리지는 않았다. 잿빛 구름이 하늘을 뒤덮은 다음날은 파란 하늘이 뉴욕의 하늘을 감싸고 있었다. 그는 뉴욕에서,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5. 뉴욕, 떠나기 하루 전.

  나는 뉴욕을 떠나기 하루 전, 유학중인 친구를 만났다. 그날따라 유독 날씨가 따뜻했다. 뉴욕에 온 날 중 가장 따뜻한 날씨였다. 포근하다고 느껴질 정도도로 따뜻한 날, 나는 친구를 만난 것이었다.
 오늘은 날씨가 따뜻해서 놀기 좋은 날이네.내가 말했다. 원래 눈오기 전에 날씨가 따뜻하잖아. 오늘 밤부터 눈이 많이 온다던데, 그래서 학교도 내일 쉬어. 내일 수업 다 휴강이야. 친구가 말했다. 헐, 진짜? 설마. 하늘에 구름도 얼마 없는데. 나 내일 비행기 타야 되는데, 눈오면 비행기 안뜨잖아. 내가 말했다.

  나는, 눈이 오지 않길 바랐다. 내일은 비행기를 타야하는 날이었다. 눈이 와도, 조금만 왔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일단 LA까지 가는 비행기니까, 국내선이니까, 뜨겠지.라고 생각했다.



6. 뉴욕을 떠나는 날.

  그는 꿈을 꿨다. 그리 유쾌한 꿈은 아나었다. 뒤숭숭한- 그런 꿈이었다. 불안했다. 어두 컴컴한 방을 빠져나와, 주방에서 커피한잔과 머핀을 먹고, 창 밖을 바라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크게 우려할만한 수준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7. 꿈 이야기.

  꿈에서, 내가 어딘가[정확한 기억은 없다]에서 빠져나가려고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나를 빠져나가지 못하게 했다. 나는 울면서 빠져그 곳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서 발버둥을 쳤다. 그렇게 빠져나가려고 노력을 한 긑에, 결국 마지막에는 그 곳을 힙겹게 탈출했고, 그와 동시에 잠에서 깨어 났다.



8. 다시, 뉴욕을 떠나는 날.

  시간이 지날 수록 하늘에서 뿌리는 눈의 양은 많아지고 있었다. 그는 오전에 뉴욕 App store에 갈 계획이었기에, 체크아웃(Check out)을 하고 앱스토어로 떠났다. 그가 그 곳까지 갈 때는 눈이 많이 오지 않았는데, 그 안에서 구경을 하고 물건을 사고 나오자, 눈보라가 뉴욕 시내를 휘감고 있었다. 엄청난 눈발이 몰아치고 있었던 것이었다.

  불안한 마음이 불안샘을 진동시키고 있었다. 사실, 그는 시간이 지나면 눈이 그치겠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시간이 지나자 눈과 함께 엄청난 바람이 불어댔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리고 모니터 화면에 찍힌 검은 점들은 Heavy snow가 아닌 Snow Storm이라는 모양으로 그의 눈이 비추어 졌다.
 
  그는 App store에 전시된 MAC book 으로 JFK공항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설마 설마 하면서, 그는 비행 스케쥴을 확인 했다. 모든 비행기의 상태가 Cancel로 표시되어 있었다. 그 중에는 그가 타고가야할 Unitied Airline의 비행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그 순간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고, 멍하니 화면만을 응시하며 입을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쇼핑을 더 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숙소로 돌아가서 가방을 들고, 공항으로 떠났다. 일단 공항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을 했다. 공항으로 가는 길은 온통 눈으로 뒤덮여 있었고,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다. 공항으로 가는 전철 안에서 쏟아지는 눈을 보면서 생각했다.

'지금껏 살면서 눈이 이렇게 많이 오는 건 처음봐.'


공항가는 길,
거리는 온통 눈으로 뒤덮여 있었고, 눈보라가 몰아쳤다. 공항으로 가는 전철안에서 쏟아지는 눈을 보면서 생각했다.
'지금 껏 살면서 눈이 이렇게 많이 오는걸 본건 처음이야'라고.



9. JFK 공항 제7 터미널.

  United Airline의 데스크가 위치한 7터미널로 갔다. NY-LA 비행기. 그리고 LA에서 대한항공으로 갈아타도록 되어 있었지만, 비행기는 취소되어 있었다. 데스크 직원에게 말했다. 직원은 나에게 다음 비행편을 타도록 해준다고 했는데, 자리가 있는 비행기는 3일 뒤에 있는 비행기였다. 절망.이 나를 엄습했다.

  첫 번째 보딩패스.
  자리가 없다는 말만을 되풀이 하며, 직원은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녀는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를 조회중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나에게 티켓 한 장을 주었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였다. DELTA 항공 카운터로 가 보라는 말. 나는 티켓을 바라보았다.

  4일 뒤, 뉴욕에서 인천으로 날아가는 델타항공 티켓이었다. 울며 겨자먹기로 티켓을 받아들고, 델타항공 카운터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만히 서서 티켓을 보니, 탑승자 이름이 내 이름이 아니었다. MR.JIWOONG/YANG라고 적힌 티켓이었다. 오타인가?라는 생각을 했지만, 비행기 티켓은 이름이 다르면 탑승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여권의 이름과 완전 다른 이름이었다.

  나는 다시 카운터로 갔다. 그리고 두번째 보팅패스.
 티켓의 이름이 내 여권의 이름과 다르다고 말하니, 여권을 달라고 했다. 여권을 보며 나에게 물었다. 누가 발권을 해줬냐는 말에, 저기 저 여자라고 말하며 가리켰다. 그리고 나서 말도 안되는 티켓이라며, 새로운 티켓을 한 장 발권해 준다고 했다. 그러면서 또 한마디 덧붙였다.
  넌 원래 LA로 가서 갈아타기로 되어 있었으니, DELTA항공 인천으로 바로가는 티켓은 이용할 수 없다. 그래서 취소를 했어.
 나는 유나이티드에어리인의 데스크에서 또 다시 한 시간동안 서 있었다. 결론은 비행기가 없다는 것이었다. 대한항공 LA지사와 전화통화를 번갈아하면서 겨우 자리를 구한 것은 5일 뒤의 비행기였다. NY-LA구간 비행티켓이 없는 날엔 LA-서울 구간의 자리가 있었고, LA-서울의 자리가 없을 땐, NY-LA의 자리가 없는 식이었다. 둘 다 자리가 있는 날은 5일 뒤였다.

  대한항공측에서 전화상으로 나에게 말했다. 폭설로 인해서 비행기를 못타서 어쩔수 없이 날짜를 변경했다는 서류를 챙기라고 했고, 그 서류를 챙기고 보딩패스를 받았다. 나에게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보딩 패스를 받고 보니, 뭔가 이상했다. 아까 이야기 할 때의 비행 날짜가 아니라, 뉴욕에서 인천으로 다이렉트로가는 비행기의 보딩패스였다. 이건 뭐지??

  마침, 유나이티드 데스크에서 근무하는 한국인이 나에게 와서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설명해 주었는데, 내가 보딩패스가 좀 이상한 것 같다며 보여주었다.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이건 내일 밤 뉴욕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표인데, 제1 터미널 대한항공 카운터에가서 문읠을 해 보세요.




10. 제1 터미널. 대한항공 카운터.

  그는 어이가 없었다. 1시간 넘게, 유나이티드항공사 직원과 대한항공 지원과 이야기 한 건, 뉴욕-LA, LA-서울의 비행기 표인데, 결과적으로 그가 받은 보딩패스는 뉴욕-서울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찌됐든, 제1터 터미널로 갔다.

  대한항공 카운터,
 폭설이 계속되고 있었지만, 새벽 1시에 출발하는 대한항공 KE086기는 정시 출발이라고 모니터가 알려주고 있었다. 그는 카운터로 가서 물어보았다. 이 티켓 어떻게 되는 건가요?

  대한항공 카운터에서 대답했다. 이 티켓으로는 비행기를 탑승할 수 없다. 당신이 끊은 티켓보다 이 비행기가 더 비싼 것이기 때문에 오버차지를 해야한다. 그리고 좌석도 비지니스석이다. 만약 당신이 오버치지를 하지 않고 타고 가고 싶다면, 유나이티드항공사로가서 티켓을 바꿔 달라고 해서 서류를 다시 챙겨와라.
  [하지만 그는, 서류를 다시 챙겨오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그가 다른 비행기 티켓을 달라고 했을 때, 다른 루트로 가는 티켓을 제공할 수 없다는 말을 그들은 되풀이 했었기 때문이다.]

 그는 물었다. 오버차지가 얼마야? 
 295달러를 더 내면, 좌석을 마련해주겠다고 했다. 
 그는 생각을 했다. 유나이티도항공사로 가서 땡깡을 부려볼까, 아니면 5일을 더 기다릴까, 아니면 295달러를 더 낼까. 그는 갑자기, 그가 가진 티켓이 비지니스석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쏠렸다.

  295달러를 더 내고 비행기를 타게 된다면, 비지니스석을 타고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생각했다. - 내가 언제 비지니스석을 타보겠어?- 30초 정도 생각하고, 그는 결정했다. 오버차지를 내고, 한국으로 가야겠어.




11. 비행기는 떠난다.

  나는 비지니스석을 타지 못했다. 역시,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 했다. 항공사는 조금이라도 자기들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새벽 1시.
 눈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비행기에는 시동이 걸렸다. 바깥에서는 비행기에 쌓인 눈을 제거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 분주함을 기다리는데 1시간이 넘게 걸리고 있었다.

  어느새, 눈발은 사그라 들었고, 세찬 바람만이 거대한 비행기 동체를 흔들어 댓다. 맑은 날, 무거운 동체를 하늘로 끌어 올려 수천km를 날아와도 힘들어 하지 않던 엔진도, 매서운 눈보라가 지나간 뒤에는 힘겨워 하는 것 같았다. 

  힘겨워 하는 엔진과 세찬 바람에 떨고 있는 동체의 안에서는 안도의 한숨에서 나온 입금이 공기를 덥히고 있었다. 비행기는 JFK활주로를 빠르게 달려갔고, 창문 저 아래로, 맨해튼의 밤이 보였다. 바둑판 같은 모습. 비행기는 약간 흔들 거렸지만, 이윽고 높은 하늘에 자리를 잡았다.

 굿바이 뉴욕.


- 공항가는 길, 거리엔 온통 눈.


- 나중에 보딩받고나서 찍은 화면, 다음날 비행기들은 거의 On time 이되어있었다.


- 나에게 티켓을 건네준 직원...... 말이달랐다....



- 앱스토어, 들어가기전엔 눈이 많이 오지 않았다.


-


-하늘에서 본 맨해튼, 바둑판형식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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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 베로니카를 만나러, 류블랴나, 류블랴나(Slovenia, Ljubljana)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1. 6. 19.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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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 또는 영화 속 주인공을 찾아서.

  영화나 드라마, 책을 보다 보면, 간혹 그 배경이 되는 장소에 가고 싶다는 충동을 느낄 때가 있다[실제로 테마 여행이라고 해서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곳들을 찾아다니는, 소위 말해, 영화 여행을 하는 사람을 본 적도 있다]. 영화나 드라마의 경우, 그 배경을 실제 화면을 통해 볼 수 있기 때문에 그 장소가 아름답다거나 멋있다는 것을 보는 순간 알 수 있다. 또한 영상을 바라보면서 그 곳에 가고 한 번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장소에 대해 명확한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책을 통해 어떤 특정한 장소를 접했을 때는 그렇지가 못하다[이게 책의 매력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책을 읽으면, 생각을 하게 된다[책의 내용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면서 읽기 때문에]. 어떤 인물이 나온다면 그 인물에 대해서 상상하게 된다. 아름답게[혹은 멋있게] 묘사된 주인공에 대해서. 그리고 그 주인공과 더불어 평화롭거나 아름답게 묘사되고 있는 배경에 대해서. 책에서는 배경이 아름답게 묘사되지 않고 있더라도[언급조차 하지 않을 수 있다], 주인공이 사건을 전개해 나가는 그 배경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어, 이미 당신의 머릿속에는 배경의 이미지가 형성되어져 있을지도 모른다.그 묘사되고 있는 배경에 대한 궁금증은 증폭되어, 이미 머릿속에서 [자신의 경험에 기초하여]그 모습이 그려지고 있을 수가 있다.  

  파울로 코엘류의 소설
[그의 소설들은 그의 다양한 여행 경험을 담고 있다]. 그의 소설들 속에는 다양한 주인공들이 있고, 다양한 배경이 있다. <연금술사>의 양치기와 그의 여정. <프로토벨로의 마녀>의 마녀와 그 배경이 되는 영국과 루마니아 시비우(Sibiu). <순례자>의 주인공과 스페인 산티아고길에 대한 흥미와 다양한 묘사들. 여행을 다닐 때[여행을 다니기 전에도 마찬가지였지만] 가장 흥미롭게 읽을 수 있고, 여행을 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소설을 뽑으라면, 파울로 코엘류의 소설들을 뽑을 수 있다[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의 소설들은 그 여행지에 대한 새로운 인상을 심어준다. 그리고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의 책들도, 생각하는 여행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이 두 사람[파울로 코엘류와 알랭 드 보통]이 함께한다면, 상상력을 통해 재구성된 생각하는 여행을 할 수 있다.


2. 작가의 흔적을 찾아서.
 
   김유정 문학관. 이효석 문학관. 구상 문학관. 정지용 문학관. 서정주 문학관. 그리고 각 작가의 생가(生家)들. 지방자치단체들은 많은 돈을 들여서 그 지방 출신의 작가들이 남겨놓은 흔적을 손질하고 다듬어 놓았다[이미 사라져 버린 것은 재현시켜 놓기도 했다]. 

  정지용의 생가를 찾아가서, 그 주변을 둘러 보고, 안내 책자를 읽거나 설명을 듣는다. 이효석의 흔적을 좇기 위해,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무렵>의 달빛이 흐드러지게 비치는 메밀밭 길을 걷기 위해 사람들은 그 곳으로 찾아간다. 그리고 그 곳은 언제나 사람들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 곳은 관광지가 되었기 때문에, 많은 돈을 들였기 때문에, 언제나 그 곳은 사람들을 맛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사람들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곳엔, 한가지가 부족하다. 진실성. 정지용의 <고향>이라는 시에 나오는 그런 분위기는 더 이상 없다. 배경은 같다고 하지만, 그 속에서 묻어나오는 진실성은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이효석의 소설에서 묻어나오는 그런 느낌도, 서정주의 <질마재 신화>에서 묻어나오는 그런 느낌도, 채만식의 <탁류>에서 우러나오는 그런 그 시대의 진실된 느낌이 사라지고 없다. 그 빈자리엔 새로운 것들이, 인위적인 것이 들어서 있다.

  그런 것들을 바라 보는 마음 한켠엔 언제나 부족한 무언가가 있다. 그리고, 그런 부족함은 항상 손가락 끝에서 울리는 짤막한 소리 하나로 대체 되곤 했다. "찰칵"



3. 베로니카는 그 곳에 앉아 있을까?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라는 책을 읽은 적 있다. 베로니카는 수도원 창가에서 조그마한 광장의 분수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름조차 낯선 도시에서. 그 도시의 이름은 '류블랴나(Ljubljana)'. 슬로베니아의 수도였다. 베로니카가 항상 창가에서 바라보던 그 분수대가 있는 조그마한 광장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일까?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곳이 딱히 좋다고 말 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책에서 조차 그런 말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냥, 그 곳의 분위기가 어떤지 느껴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곳에 가면, 진짜 분수대가 있을지, 확인해 보고 싶었고, 베로니카가 세상을 내다보던 창문이 진짜 있을지 궁금했다. 확인해 보고 싶었다.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그리고 광장의 노천 카페에 앉아, 커피 한잔을 마시며, 여유를 즐겨보고 싶었다.

  왠지 그곳은 여유가 가득할 것 같았다. 그리고, 커피만 한잔 마시고 그 곳을 미련없이 떠나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어느덧, 기차는 류블랴나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국경에서 따로 여권을 검사하지는 않았다[유럽연합 국가들은 여권 검사를 하지 않는다]


4.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류블랴나.

  그를 실은 기차는 자그레브[Zagreb, 크로아티아의 수도]역을 떠난다. 하늘은 잿빛이었고, 간혹 빗방울이 창문에 할퀴고 지나갔다. 얼핏, 창 밖을 바라보니 자그레브 역 앞의 동상이 보이는 듯 하다.

  언젠가, 자그레브에 머문 적이 있었다. 그 때도, 베로니카를 만나고 싶었다. 그녀의 시선을 좇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지만, 그는 자그레브역 플렛폼에서 기차를 떠나보냈다. 그리고, 류블랴나엔 다음에 꼭 가리라고 생각하면서 크로아티아의 남쪽 해안도시 스플리트[Split, 아드리안해의 미항(美港)]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때는 발길 닿는대로 자그레브의 거리를  거닐었고, 성당을 드나들었으며, 시장을 거닐며 잘 익은 과일들을 탐했고, 노천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세련되어 보이는 크로아티아 국기 무늬를 한 지붕을 구경했고, 한창 축구를 잘하던 동유럽의 축구 강호 크로아티아의 분위기를 느꼈다.

  그리고, 그는 또 다시 자그레브역의 모습을 보았다. 이번에는 그 역을 곁에 두고 슬로베니아로 향하고 있었다. 자그레브에서 3시간. 3시간이면 슬로베니아 류블랴나였다. 겨우 3시간이면 크로아티아의 수도에서 슬로베니아의 수도로 갈 수 있다.

  그는, 잿빛 하늘을 바라보며,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류블랴나. 얼마나 가 보고 싶던 곳이었던가. 론니 플래닛의 류블랴나 페이지를 펼쳐서 그가 찾아가야 할 곳을 체크해 두었다. 류블랴나에서 갈 만한 곳도 체크해 두었다. 그리고 그가 가장 가고 싶어하던 그곳[도시의 중앙 광장]에도 체크를 해 두었다. 그가 머무려고 하는 숙소에서 광장까지 어떻게 가면 될 지도 체크해 두었다.


5. 안녕 베로니카.

  기차는 류블랴나역에 멈추었다. 기차는 슬로베니아를 거쳐 오스트리아로 간다고 한다. 나는 기차에서 내려, 건물로 향했다. 작은 규모의 역.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 역과 비슷한 크기다. 작고 아담하고. 역 안에는 매점이 하나 있고, 맥도날드가 있다. 자판기 몇 개가 있고, 관광 안내소가 있다. 2층에는 매표 창구가 있다. 관광 안내소에서 지도를 몇 개 주섬주섬 챙겨서, 숙소를 찾아간다.

  숙소로 가는 길, 잿빛 하늘에서 간혹 물방울이 떨어지지만, 큰 비가 될 것 같진 않다. 작은 배낭 하나를 매고 다니는 여행객. 배낭을 잃어버리고 난 뒤라서 내 몰골은 형편없어 보일 것임이 틀림 없다. 동유럽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거리 곳곳의 그래피티는 내 눈길을 사로 잡을 만큼 높은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그래피티 사이에 위치한 숙소에 체크인을 했다. 샤워를 하고 베로니카를 찾아 나선다.

  베로니카를 만나러 가는 길, 아담하다. 높은 건물들을 찾을 수 없는 벽돌로된 골목길. 유럽 특유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동유럽과 서유럽의 경계. 서유럽과 동유럽의 분위기가 동시에 묻어났다. 지도에 표시된 대로라면, 이 길을 지나면 광장이 나올 터였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광장은 나왔고, 나는 베로니카를 만날 수 있었다. 광장 한켠에 있는 베로니카.


6. 죽기로 결심한 베로니카는, 살아 있었다.

  그가 그 조그마한 광장에 들어섰을 때, 베로니카는 살아있었다. 그러나 베로니카가 세상을 바라보던 통로로 이용하던 창(窓)은 없었다. 그리고 분수대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마도]분수대의 모티브가 되었을 법한, 동상이 그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베로니카는 어디선가에서 그 동상을 바라보았을 것이고, 그 곁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을 것이었다. 그도 그 분수대를 바라 보았다. 베로니카가 그랬던 것 처럼.

  그는 광장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그곳은 아주 자연스러웠다. 세계적인 작가 파울로코엘류의 소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의 배경이 되는 곳이었지만, 그곳에는 그런 것을 알리는 표지가 전혀 없었다. 그곳은 그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그 소설을 모르는 사람들이나 소설의 배경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듯 한] 하나의 광장, 수 많은 길 중의 하나였을 뿐이었다. 광장 주변의 노천 카페들도, 소설과는 전혀 무관하다는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광장 변두리에 위치한 한 카페에 앉았다. 종업원이 메뉴판을 갖다 주었고, 커피를 한잔 주문했다. 그리고 잠시 베로니카에 대해 생각하는 사이, 커피 향이 그의 코 주위를 감쌌다.

  그는 단지, 그 곳에서 베로니카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 모습은 실재한 모습이 아닌 그의 상상속에 존재하던 모습이었다. 그리고 베로니카가 소설 속에서 숨쉬던 공기를 마셔보고 싶었고, 그 곳에서 여유를 느껴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슬로베니아 '류블랴나'까지 와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생각했다. 소설의 배경이라는 것. 정말 별 것 없구나. 배경은 말 그대로 배경이었다. 사람들이 일상을 살아가는 곳. 그곳은 전혀 꾸며지지 않았다. 베로니카의 모습, 그것은 그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스쳐지나가는 그곳이었지만, 그 수 많은 사람들에겐 그냥 스쳐지나가는 하나의 광장, 하나의 공간에 불과했다. 
  그런 장소 였기에, 그는 그 장소에서 특별한 무언가를 느꼈다. 어느새 특별한 장소가 되어 있었다. 그곳에는 자연스러움이 묻어났다. 한국에서 찾아다녔던 소설이나 시(詩)의 배경이 되는 곳에서는 찾을 수 없던 것이 배어 있었다. 진실성.



  그는, 단지 베로니카의 흔적을 보고 싶었다. 자신이 생각하던 작은 광장의 모습이 어떤지 보고 싶었다. 그곳의 여유로움은 어떤 것일까를 생각하며, 류블랴나에 갔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마케도니아를 거쳐,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까지. 그리고 베오그라드에서 크로아티아를 거쳐 슬로베니아 류블랴나까지. 그리고 결국, 그곳에서, 베로니카를 보았다.

 단지, 베로니카가 보고 싶어서 슬로베니아 류블랴나까지 찾아간 그의 이야기.


-숙소 옆의 그래피티


-광장으로 가는 길.




-소설속에서 분수의 모티브가 되었을거라고 생각되는 동상



- 광장으로 이어지는 번화가



 -도시를 관통하던 하천







- 아담한 도시 중앙 광장



-광장 건너편의 시장



-



-



- 류블라냐 성에서 바라본 류블랴나






 

 





-노천카페에서 커피 한 잔




-카페에서 일하던 사람



-미니어처



-류블랴나 역의 매점



-아담한 류블랴나 역



-독특했던 류블랴나 역의 과일 자판기



-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역 앞.




-자그레브 과일 시장



- 공사중이던 건물


-전망대에서 바라본 자그레브 시내


-아침의 스플리트 역


-스플리트 올드 시티



-밤의 스플리트 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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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자메이카, 킹스톤- 자메이카에 다시 오지 말라고?! - Jamaica, Kingston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1. 5. 10.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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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치안(治安)에 관한 생각.

  여행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 자신의 목적지[여행할 장소]에 관해서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 중 하나가 그 장소의 안전에 관한 문제이다[그것은 다시 말해 '치안'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떠한 정보[여행 장소에 관한 정보]를 수집 할 때 좋은 정보 보다는 안좋은 정보를 더 많이 접하게 된다[일상 생활에서도 흔히 그러한 것을 경험 할 수 있다.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정보의 대다수는 범죄 사건, 사고에 관한 소식이라는 점에서 볼 때 우리는 안좋은 소식을 훨씬 많이 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예전에 이란 여행을 하고자 했던 사람이 정보를 수집했다면, 이란 국민들의 시위에 관한 소식과 시위 하던 사람들 중에서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정보를 접하게 될 것이고, 여행을 가고자 했던 사람은 여행을 망설이게 될 것이다. 얼마전 태국에서 일어났던 시위, 그리고 최근 일어나고 있는 중동의 민주화 물결, 이런 정치적인 문제들은 그 나라의 치안 상태가 극도로 불안정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여행자들은 그 곳의 여행을 꺼리게 된다.

  그런 곳에 사는 사람은 어떨까? 대한민국은 과연 안전한 나라인가? 대한민국은 결과적으로 보자면, 아직도 전쟁중인 국가이다. 엄연히 국제법상으로 휴전(休戰)중인 국가이지 절대 종전(終戰)을 한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도 언제 전쟁이 일어날 지 모르는 곳이고,  설령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전쟁이 일어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한국인이 그 상황을 바라보는 눈과 제3자인 외국인이 대한민국의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르고, 따라서 판단의 결과도 달라진다.[물론 대한민국의 상황이 그렇게 극단적이지는 않다]

  사업가의 경우는 어떨까? 해외로 출장을 다니며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과 거래를 하는 국가의 치안에 관해 상당한 관심을 기울일 것이 틀림없다[치안 유지가 잘 되어 정치, 사회적으로 안정적이라면 사업을 하는데 있어서 큰 리스크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치안이 안정적이고 그렇지 않고의 여부는 그 나라에 얼마나 많이 투자를 할 것인가 말것인가와 연관이되고, 사회적으로 범죄율이 낮다면, 그 나라의 사람들을 고용해서 사업을 크게 확장 할 수도 있을 것이며, 물류 창고와 같은 시설을 확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치안은 여행을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사업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큰 관심거리이다[중요한 사안이다].

  하지만, 한 가지 알아두어야 할 중요한 것은 그 현장에 살고있는 현지인들은 여행자나 사업가들에 비해서 민감하지 않다는 것이다[물론 그것은 자기의 상황과 주변의 상황을 잘 알고 있고, 자신의 삶의 터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현지인들은 여행자나 사업가들이 많은 오해를 하고 있다고 생각 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럴지도 모른다.

 

2.                         

  2005년 이집트 여행을 갔을 때는 바야흐로 이집트 대통령 선거가 얼마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내가 이집트를 가기 전, 이집트 국민들은 데모를 하기도 했고, 과격파에서는 테러를 감행하기도 했다.[신문과 뉴스를 통해서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정보를 터키에서 접하고 있었다] 내가 접한 이집트의 상황은 그리 나빠보이지 않았다. 나는 평소와 다름 없는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보았고, 그 곳은 사람이 사는 곳이었을 뿐이었다. 내가 이집트에 머무는 한 달간 딱 한번의 테러가 있었긴 했지만,[그 테러로 인해 관광객 7명이 목숨을 잃었다. 관광지 관광객을 노린 테러였다] 사람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내가 머물던 바로 옆 도시에서 테러가 났기에 나는 잔뜩 긴장했지만 결과적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네팔에 갔을 때, 누군가 암살당했다는 소식이 들렸고, 버스의 파업이 있었고, 훌리건들이 내가 탄 버스를 공격하기도 했다. 하지막 막상, 수도 카트만두에 도착했을 때는 너무나도 평화로웠다. 그 곳 역시 그냥 사람 사는 곳이었다.

  네팔에서 파키스탄 비자를 받고, 파키스탄으로 들어가려 할 때 즈음, 인도-파키스탄 국경에서 테러사건이 일어났다. 버스 폭탄 테러로 스리랑카 크리켓팀이 큰 피해를 입기도 했고, 관공서를 노린 테러가 일어나기도 했다. 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인도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결국 파키스탄을 건너뛰어 비행기를 타고 터키로 넘어갔다. 하지만, 그 무렵 나와 다른 결정을 한 다른 여행객은 파키스탄의 훈자로 무난히 갈 수 있었고, 세계 최고의 절경으로 손꼽히는 훈자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 곳, 훈자는 순박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아주 평화로운 곳이라고 했다.[아직도 훈자를 가지 않은 것이 한(恨)이다.]



3. 쿠바에서 케이만 제도 그리고 자메이카로.

  쿠바에서의 일주일. 싸구려 까사에서의 일주일. 싸구려 불법 까사의 주인 아줌마는 내가 쿠바를 떠난다고 하니 아쉬운 눈치였다. 나도 쿠바가 점점 좋아지고 있었는데, 비행기 예약 날짜가 다가왔으니 어쩔 수 없었다. 거리로 나서서 시내 외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지나가는 클래식카 택시들에게 손을 들었다. 합승을 해줄 법 한데도, 그들은 한사코 합승을 시켜주지 않았다[현지인들은 합승을 많이 했지만, 외국인은 시켜주지 않는 것이었다]

  지나가는 택시 한대를 잡아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서 올 때는 좋은 차를 타고 왔었는데, 갈 때는 현지인들이 타는 낡은 차량을 타고 가니 기분이 뭔가 색달랐다. 택시 기사가 중간에 자기 부인을 좀 만나고 가자면서, 자기 부인을 만나 같이 공항으로 왔다. 부인은 택시 기사의 점심 식사를 가지고 온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하바나 국제공항에 도착했고, 나는 15CUC을 지불했다. 친절히 내 짐들을 꺼내주고, 택시는 그 곳을 떠났다.[공항에서 시내로 갈 때는 20CUC이었다. 20CUC이 공식적인 고정요금 인듯 했다. 내가 처음 하바나에 도착했을 때 공항 직원에게 시내로 가는 택시비가 얼마냐고 물었는데 그 때 20CUC이라고 말을 해 주었었다.]

  출국 수속을 밟고, 쿠바 스탬프가 찍힌 비자를 출국관리소 직원에게 제출했다. 비행기는 케이만 제도(Cayman Island, 영국령의 작은 섬)를 경유해서 자메이카로 가는 것이었다. 케이만 제도까지 1시간 남짓, 케이만 제도에서 자메이카까지 1시간 반 남짓 걸리는 거리였다. 자메이카 킹스톤(Jamaica, Kingston)에 도착 예정시간은 오후 6시. 어두워지기 전에 도착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메이카의 밤은 상당히 위험하다고 들었기에, 약간은 안심이 되었다.

  쿠바의 공항에서 귀여운 꼬마와 장난을 치다 보니, 어느덧 게이트가 열렸다. 비행기는 카리브해 위로 떠올랐고, 자그마한 쿠바가 서서히 사라졌다. 그리고, 케이만 제도를 향해 날아갔다.

  케이만 제도, 작은 섬나라에 도착했다. 공항 건물은 2층짜리 작은 건물이 전부였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높은 습도가 내 숨통을 조여왔다. 이 텁텁함. 전형적인 열대의 날씨였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공기였다. 한국의 8월 무더위로 인해 습도가 높고 온도까지 높은 공기를 그 작은 섬에 옮겨 놓은 듯 했다.

  내 짐들을 들고, 빠져 나왔다. 피부 색깔이 어중간한 외국인 관광객은 나 혼자였다. 몇 안되는 승객들. 검은 피부를 가진 사람들은 모두 자메이카로 가는 사람들이었고, 흰색 피부를 가진 몇 몇은 현지인이었다. 나와 장난을 치던 꼬마도 이 작은 섬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작은 섬, 휴양지로 놀러오면 좋을 것 같은 섬에서 꼬마는 무얼 하며 살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아마 좀 나이가 들면, 영국 본토로 들어가서 공부를 하겠지, 라는 생각을 했다.

  Air Jamaica 카운터에서 내 큰 배낭을 수하물로 보내고 출국장으로 나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 비행기는 3시간 지연이었다. 예상 도착시간은 밤 9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오우, 이런 제기랄.

  작은 섬에 어둠이 깔렸을 때, 활주로에 비행기가 한 대 나타났다. 쿠바의 까삐똘리오 인터넷 카페에서 자메이카의 일본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 예약 메일을 보냈었는데, 답장은 아직 오지 않은 상태였다. 불안한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라타기 위해 활주로를 걸었다.. 또 다시 고온 다습한 공기가 내 피부에 와닿았다.

  낯설지 않은 느낌이었다. 어둠은 언제나 나를 긴장시키고, 약간은 불안하게 만들었다. 비행기를 타러 가는 내 마음은 좀 무거워져 있었다. 자메이카, 뭔가 많이 낯설다는 느낌, 준비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4. Welcome to Jamaica.
 
  비행기는 사람들을 토해냈다. 확실히 쿠바보다 큰 공항, 많은 사람들이 게이트를 빠져나와 입국장에 줄을 섰다. 국제 공항의 느낌이 조금 묻어났다. 외국인은 몇 없었다. 그는 자메이카의 스탬프가 왠지 마음에 들었다. 아래쪽에 자메이카, 섬 나라의 모양이 찍히는 스탬프. 그는 관광객으로 분류 되었다. 가방을 주워들고[레인커버가 떨어져 나가 있었다. 없어진 것이다!] 공항을 빠져나왔다. 밤 10시가 넘은, 11시가 가까워진 시간이었다.

  그는 말을 걸어오는 택시 기사들을 무시하고 공항 주위를 배회해 보았다[혹시나 버스가 있으면 그것을 타고 가려고]. 하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공항의 한쪽은 공사중이었고, 보통 택시를 타고 숙소까지 이동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왔기에, 택시 기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가격을 물어 보았다. 40달러. 그는 손사래를 치며 다른 택시기사의 무리로 이동하려 했다. 그 때였다.

  한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어디까지가? 그는 종이에 적힌 주소를 보여줬다. 30달러를 불렀고, 그는 그 남자를 외면했다. 25달러를 불렀다. 그는 말했다. 투엔티! 오케이, 라고 말하며, 그는 자기 차를 가지고 온다고 했다. 그리고는 공항 주차장 입구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그는 그 곳에서 공항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차량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 였다. 고급 메르세데스 벤츠 한대가 그의 앞에 멈추어 섰다. 그리고 운전석이 열리고, 그 안에서 누군가가 그에게 소리쳤다. 그는 생각했다. 그 택시기사인가? 그러기엔 차가 너무 좋은데?
  그리고 뒷 좌석의 창문이 열렸고, 누군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헤이, 여기서 뭐해?, 나? 택시 기사기다리고 있어. 아니 여기서 뭘 기다린다고? 어디까지가? 태워 줄게. 순간, 그는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이런 고급 승용차를 탄 사람이 자기 자신을 납치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의 목적지까지 데려다 준다고 하고 있었기에, 그는 그 차를 타고 싶었지만, 그 택시기사가 왠지 마음에 걸렸다. 에라 모르겠다.

  그는 고급 메르세데스에 올라탔다.


5.                          

  차가 출발하려는 순간, 어떤 사람이 차 앞을 가로막고 섰다. 아뿔사, 그 택시 기사였다. 그리고는 운전석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자메이카 억양으로 영어를 하기 시작했다. 언성이 높았다. 나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나에게 운전석에서 물어왔다. 아는 사람이야?

  안다고 했다. 내가 저 사람 차를 타고 호텔까지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정식 택시 운전기사가 아니었다. 사복에, 차량도 일반 승용차였다. 내 옆에 있던 사업가는 나에게 물었다. 내릴거야? 아니면 같이 타고 갈래?

  판단이 서지 않았다. 저 택시 기사는 내가 어느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는지 알고 있었기에, 밤에 와서 나를 칼로 찌르거나 총으로 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 옆에 있던 미국인 사업가는 빨리 결정하라고 했다. 운전기사와 택시기사는 계속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초조했다. 그리고 결정했다.  
 
  난 택시를 타지 않겠어. 이 차를 타고 갈게. 일단 택시비 20달러를 굳힐 수 있다는 생각을 했기에 그런 판단을 했다. 될대로 돼라.

  내가 탄 메르세데스 뒤로 그 택시기사가 따라왔다. 불안했다.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했다. 그리고 옆에 있던 사업가가 말을 걸어왔다. 너 한국사람이지? 어 맞아, 한국사람이야. 지금은 여행중. 어쩐지, 그렇게 보였어. 내 부인이 한국사람이거든. 오 정말? 어디 사는데? 워싱턴 살아. 너가 한국 사람 같아서 너를 태워준거야. 이름이 뭐야? 내 이름은 Jin. 오 정말? 내 아들 이름도 Jin 인데. 아들이 3명 있어. 자메이카는 처음이야? 처음 같이 보이는데. 응 처음이야, 쿠바에서 오늘 자메이카로 넘어오는 길이야. 자메이카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줄 모르지?

  다음부터, 자메이카엔 오지마. 위험한 곳이야. 여긴 여행 할 만한 곳이 아니야.  .... 알았어. 참고할 게. 고마워.

  운전기사는 내가 머물 게스트하우스의 위치를 잘 알지 못했기에, 사업가가 머무는 호텔로 가게 되었다. 프론트에서 음료수 서비스를 받고, 그 미국인 사업가는 나에게 명함을 하나 주며 덧붙였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전화해. 그렇게 말하며, 콜택시를 불렀고, 콜택시가 왔을 때, 나를 배웅해주었다.


6.                            

  그는 콜택시 기사에게 주소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택시는 출발했다. 택시 기사가 자기의 휴대폰을 어딘가에 떨어뜨렸다면서, 휴대폰을 좀 찾아달라고 했다. 좌석 밑 어딘가를 뒤져 봐 달라고 했기에, 그는 이곳 저곳을 뒤졌다. 그 순간 그는 간담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좌석 밑에서, 대도(길이가 팔뚝만한 칼)을 보았던 것이다. 그는 생각했다. 뭐지, 이 사람 나를 어딘가로 데려가서 칼로 위협하고 돈을 뺏으려는 건가? 그는 휴대폰을 기사에게 건내고, 자리를 좀 멀리 옮겼다[봉고차 였기에, 공간은 많았다]

  기사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자메이카식 영어로 대화를 했다. 그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들이 무슨 대화를 하는지. 인적이 없는 곳, 길 중간에 차가 갑자기 멈추었다. 그는 긴장하고 있었다. 무슨일이지?

  전화 통화를 하더니, 다시 출발했다. 길을 이리저리 왔다갔다 했다. 그는 불안했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그는 꿈자리를 생각해 봤으나, 꿈자리가 나빳던 것 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어느 골목으로 들어갔고, 차는 멈추었다. 그리고 기사가 말했다. 다왔어.

  주소를 확인했다. 내가 가려던 곳이 맞았다. 벨을 눌렀고, 문이 열렸다. 내 짐을 집 안으로 옮겼고, 주인이 나왔다. 방을 안내해 주었고, 택시비를 지불했다. 그는 그렇게 자메이카의 숙소에 도착했다. 시간은 밤 12시에 가까워져 있었다. 그 곳에 있던 일본애에게 물으니, 몇 명은 그날 밤 클럽에 놀러갔다고 했다. 다음에 너도 같이 가라고 했다.


7.                               

  자메이카의 밤은 어둡고, 적막했다. 왠지 위험하고 불길한 기운이 감돌았다. 밤에, 음악 클럽에 다니면서 놀았는데, 그 때는 항상 집앞까지 택시를 불러 택시를 타고 다녔다. 그리고 집에 돌아올 때도 택시를 잡아타고 왔고, 야식이 먹고 싶을 때도, 야식을 파는[훈제 닭고기를 파는 포장마차 같은 곳]곳까지 택시를 타고 갔다가 돌아오곤 했다.

  누군가 이런말을 했다. 자메이카의 밤 거리에서, 누군가가 총을 쏘아 사람을 죽여도 그것은 범죄가 아닐 수도 있다. 만약 그 장면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범죄가 아니고, 누군가가 봤을 때만 범죄가 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자메이카 사람들이 달리기를 잘하는 건, 밤에 누군가와 골목에서 맞닥뜨렸을 때, 총알보다 빨리 달려서 살아야 하니까, 총알보다 빨리 달려야 해서인가? 그래서 우사인 볼트가, 총알탄 사나이 인가...

 

 

-공항에서 같이 장난치던 꼬마



-쿠바의 남쪽 바다


-자메이카 입국 스탬프

- 거리, 낮은 별 감흥 없다




-시계탑, 그리고 넬슨 만델라 공원.

-시외버스터미널

-하교하는 학생들. 낮에는 위험한 것들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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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쿠바, 하바나 - 스타벅스 커피보다 비싼 쿠바의 밀크티.(La Habana)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1. 4. 21.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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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는 것이 힘이다. 아는 것이 돈이다!

  우리는 "아는 것이 힘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 등의 "아는 것"과 관련된 다양한 구호들을 쉽게 접한다. 그리고 실제로 아는 것이 많을 수록 살아가면서 좀 더 많은 혜택을 누리기도하고[물론 너무 많이 알아서 피곤한 경우도 가끔 있다], 부당한 대우에 대해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 할 수 있다. 그 만큼 아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여행의 경우에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어느 유적지를 갔을 때 혹은 특정한 장소에 갔을 때 그 곳에 대해서 뭔가 색다른 사실을 알고 있다면 좀 더 풍부한 여행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 외에도 우리는 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앎으로써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모르면 혜택을 전혀 못받고 지나가거나, 더 심한 경우에는 금전적인 피해를 입기도 한다.[물론 모르는 상태에서 금전적으로 지출이 있었다면 그 지출조차 불필요한 지출이었다고 생각 할 수 없지만] 대표적으로, 공공 건물이나 OO타워 등의 대형 건물, 대형 쇼핑몰, 학교나 학원 등의 장소에서 상해를 입었을 경우 그에 따른 치료비를 다 지급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사소하지만 모르기 때문에 금전적인 손해를 보는 경우가 더러 있다. 한 개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런 경우는 두 가지 손해를 입는 것이다.[신체적 그리고 금전적 손해]
 
  특히, 여행의 경우 "아는 것이 돈이다"라는 말이 제대로 먹히는 경우가 많다. 인터넷을 통해서 수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철저하게 준비해 가는 사람은 여행의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인 금전적인 부분에 있어서 상당한 절약 효과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어느 도시의 어느 호텔[혹은 호스텔, 민박]이 가격 대비 시설이 좋은가부터 시작해서 교통비를 절약 하는 방법, 그리고 저렴하면서 질 좋은 식사는 어디서 할 수 있을지 등의 정보를 찾을 수 있다.



2. 모르면 손해다.

  관광지를 가면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많다. 별 것 아닌 문제로 기분을 상하게 되는 때도 많다. 휴가철이나 연휴가 끼어있는 주말 등의 어디론가 짧은 여행을 떠나기 좋을 때 우리는 연인, 친구 혹은 가족끼리 짧은 여행을 떠나게 될 경우가 많다. 그 여행지의 장사꾼들은 다른 지방에서 들뜬 마음으로 찾아온 사람들에게 '바가지' 요금을 부과하기 일쑤다.[희소성과 관광지라는 특수성을 강조하면서 부당한 요금을 부과하는 장사꾼들은 어디에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분명 내가 사는 동네에는 천원 하던 물건이 관광지에서는 2천원, 3천원으로 그 가치가 올라가 있는 경우를 자주 발견 할 수 있다. 우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어쩔 수 없이 돈을 지불하는 경우도 많다.

  한 외국인을 보았다. 다른 나라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특히 유럽이나, 아메리카 대륙] 포장마차에서 어묵 꼬치를 먹고 있었다. 한국 사람들은 하나에 5백원에 먹고 돈을 지불했는데, 그들은 하나에 천원을 지불하고 있었다. 근본적인 잘못은 그 장사꾼에게 있지만, 만약 그 외국인들이 다른 관광객이나 인터넷 정보를 통해서 가격 정보를 알았다거나, 차림표[혹은 가격표]를 읽을 줄 알았다거나, 누군가가 진짜 가격을 말해 줬다면 그들은 부당한 가격을 지불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르는게 병이 되어 부당한 대우를 당할 때가 많다.



3. 1CUC = 1Peso?

  베네수엘라를 떠난 비행기가 하바나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카라카스 쿠바나에어 사무실에서 구입한 쿠바 비자종이에 스탬프를 찍고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공항 로비로 빠져나왔다. 내가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환전소였다. 예상대로 형편없는 환율이었다.[쿠바는 US$에 대한 환율이 상당히 나쁘다. 반면 CA$의 환율은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울며 겨자먹기로 US$를 환전했다. 약 1.3달러 : 1CUC 였다. 나에게는 1CUC가 한국돈으로 1500원 가량 되는 셈이었다.[나중에 알게 된 한국 사람들은 캐나다 달러를 가져왔는데 1CUC에 천원정도의 환전비율이라고 했다.]

  쿠바에 오기 전, 호주에 머물 때 쿠바를 여행 갔다온 사람이 나에게 해준 말이 있었다. 쿠바는 여행자가 사용하는 화폐와 현지인이 사용하는 화폐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행자들이 환전을 하게 되면 여행자 전용 화폐인 1CUC(쿡)을 받아서 사용하게 된다고 했다. 나는 대략 쿠바에서 쓸 금액을 계산해서 조금 여유 있게 환전을 하고, 택시를 잡아타고 쿠바 시내로 향했다. 물론 택시비도 CUC으로 지불을 했고, 가자마자 잡은 숙소에서도 CUC로 방값을 지불하기로 했다.

  하루에 10CUC에 묵기로 한 불법 까사에 내 짐을 놓아두고, 나는 하바나의 중심가로 향했다. 해가 스멀스멀 멕시코만 저편으로 넘어가고 있었고, 어둠이 하바나를 잠식해갈 즈음이었다. 나는 배가 물가가 싸다고 들은 쿠바, 하바나의 식당에서 배를 채워볼 요량으로 식당가를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식당의 메뉴판, 그것도 모자라 길거리에 파는 핫도그나 샌드위치 조차도 내가 생각 할 때 터무니 없이 비싸보였다. 핫도그가 10peso 에서 15peso. 작은 아이스크림 콘이 5peso 였다. 식당의 메뉴는 25peso 부터 30peso 정도의 가격이 책정되어 있었다. 나는 혼란 스러웠다. '쿠바 사람들은 모두 엄청난 부자인가?'라는 의문과 함께 내 머리는 공황속으로 빠져들었고, 배가 고팠지만 나는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 까사의 삐걱거리는 침대위에서 내 지친몸을 달래야 했다.

  분명히 공항에서 환전한 CUC이라 불리는 돈에도 화폐 단위는 Peso라고 적혀 있었다. 1CUC이라 불렸지만 지폐에 적혀 있는 것은 1peso, 5CUC 은 5peso라고 적혀 있었다. 그렇게 치면, 길거리에 파는, 고깃집[갈비집 같은 곳]에서 무료로 디저트로 퍼 먹는 아이스 크림 하나가 5peso니까 5peso = 5CUC. 1CUC = 약 1500원. 아이스크림 하나가 7천원이 넘는 셈이었다. 

  살인적인 물가에 나는 굶어 죽을 수 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나는 세상이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아픈 머리를 베게속에 파묻었다.



4. 갑부들의 나라 쿠바?

  그가 눈을 떳을 때 싸구려 까사엔 아무도 없었다. 유리 없는 창문 밖은 그늘져 있었고, 그늘의 안쪽에서 새 소리만이 창틀을 넘어 그의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그는 아직도 어제 엄청난 음식가격의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상태였다. 그 엄청난 가격들은 그를 공황 상태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다음 비행까지는 5일이 남아 있었는데, 그 기간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는 론니플래닛 캐리비안 아일랜드(Lonely Planet Caribbean islands)의 Cuba 부분을 펼쳤다. 일단 먹는 건 둘째치고, 하바나에 왔으니 길을 걸으며 하바나의 공기라도 마셔볼 심산이었다. 쿠바의 일반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 건물. 복도 계단엔 전선들이 거미줄 처럼 얽혀 있었다. 옆 집의 TV소리, 아이 우는 소리, 그리고 새가 밥을 달라고 소리지르는 것 까지 바로 옆 에서 말하는 것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방음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집을 얼른 빠져 나왔다.

  그의 걸음엔 힘이 없었다. 먹은 것도 없었다. 까삐똘리오로 향했다. 숙소에서 비교적 가깝고, 많은 단체 관광객들이 버스를 타고 우르르 몰려와 사진을 찍고, 우르르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는 까삐똘리오 계단에 앉아 책을 읽으며 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까삐똘리오 길 건너편을 거닐고 있는 수 많은 쿠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수 많은 작은 가게들을 바라보았다. 수 많은 사람들이 가게에서 뭔가를 사먹고, 길을 떠나고 있었고, 거기에 발맞춰 많은 음식들을 또 다시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는 또 한번 생각 했다. 외국인과 내국인의 차별이 어느 정도 존재한다더니, 정말 여기는 외국인을 전부 초갑부로 알고 있는 건가? 길 건너편 핫도그를 파는 가게에서 소시지에 야채가 곁들여진 핫도그를 먹고 싶었지만, 가격은 12peso 였다. 핫도그 하나에 1만 8000원을 주고 사먹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5. 스타벅스 커피보다 비싼 구멍가게 밀크티 한 잔.

  까삐똘리오의 계단에 앉아 계속 궁상만 떨고 있을 순 없었다. 까삐똘리오 앞에서 사진만 찍고 사라지는 단체 관광객들을 구경하는 것도 신물이 났다. 어느 정도 배고픔이 사그라 든 것 같아 나는 발걸음을 구 시가지[쿠바의 낡은 건물들이 모여 있는 곳]로 옮겼다. 그리고 골목 골목을 거닐면서 쿠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이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만큼의 돈을 지불하면서 살아가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내가 가진 지식으로 그들의 물가를 이해하기에는 뭔가 역부족이었다.

  거리를 걷다가 어느 작은 식당 같은 곳 앞에서 사람들 몇 몇이 모여서 밀크티를 마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자 인도의 짜이가 미치도록 그리워 졌고, 나는 밀크티의 가격을 확인해 보았다. 3peso. 옆에 있던 상자엔 주먹만한 빵이 쌓여 있었는데, 밀크티와 빵 하나를 먹으면 금상첨화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밀크티 한 잔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 짧은 스페인어로 말했다. 이 빵 하나만 먹어도 되죠? 그리고 바로 빵을 하나 집어 들어서 밀크티와 함께 마셨다.

  계산을 해 봤다.3peso. 1500x3 = 4500원. 나는 지금 4500원 짜리 밀크티를 마시고 있다. 나는 지금 4500원 짜리 밀크티를 마시고 있다. 나는 지금 4500원 짜리 밀크티를 마시고 있다. 라고 누군가 내 머릿속에서 자꾸 소리치고 있었다. 그랬다. 인도의 달콤한 짜이는 1잔에 100원도 안했는데, 쿠바의 밀크티는 적어도 나한테는 한 잔에 4500원 이었다. 스타벅스 커피보다 비싸다.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나는 내 나이보다 조금 더 있어보이는 주인에게 5peso라고 적힌 5CUC짜리 지폐를 내밀었다. 그러자 그는 지금 잔돈이 없으니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면서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잠시 뒤 나타나서 2peso를 거슬러 주었다. 1peso 라고 적힌 지폐 두 장. 2CUC이었다.
  나는 생각했다.아까전에도 사람들이 많이 와서 사 먹던데, 왜 2peso를 바꾸기 위해 다른 가게 까지 갔다온걸까? 나는 그런 의문만을 남긴 채 그 곳에 모여있던 사람들의 시선을 등 뒤로 받으며 다시 까삐똘리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까삐똘리오로 오니 또 다시 배가 고팠다. 점심때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런데, 까삐똘리오 앞에 못 보던 장사꾼이 둘 생겼다. 빵 사이에 그냥 소시지만 꽂아서 파는 핫도그를 파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들 주위를 스쳐 지나가는 관광객인척 하면서 가격을 보았다. 내 눈이 휘동그래졌다. 핫도그 하나에 0.5CUC. 나에겐 혁명이었다. 어쩜 이럴수가 있지?

  나는 그 날 그 곳에서 식사를 다 해결했고, 마운틴 듀까지 1CUC를 지불하고 사 먹었다. 태양이 스믈스믈 낡은 건물들 아래로 모습을 감출 때 즈음 나는 나의 보금자리 불법 까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6. 불법 까사 주인에게 들은 이야기.

  그가 까사로 돌아오니, 이미 주인 아줌마가 먼저와서 작은 흑백 TV로 공연 DVD를 보고 있었다. 그에게 친한척을 하면서 옆에 앉으라면서 같이 보자고 했다. 그도 음악을 좋아하는 편이라 흥미있게 보고 있었는데, 그녀가 말했다. 니가 하루에 10CUC을 더 내면 아침과 저녁을 내가 해 주겠다. 그는 생각 해 보았다. 사실 좀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10CUC이라는 돈이 좀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싫다고 했더니 5CUC으로 가격을 내려서 같은 제안을 했다. 사실 숙소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던 터라 제안을 거절했는데, 여러가지 옵션을 더 제시하자 그의 마음이 조금 동요 되었다. 그리고 그는 쿠바의 살인적인 물가에 충격을 받고 있던 터라, 알았다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너무 기뻐하며, 자기가 잘하는 요리로 해서 대접하겠다며 이틀치 돈을 미리 달라고 했다.  그는 뭔가 찝찝했지만, 사기칠 사람같아 보이지는 않았서 그렇게 했다.

  그리고 스페인어 사전을 찾아가며 대화한 끝에 그는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환전소에 가면 1CUC을 24peso로 바꿔 준다는 말이었다. 그는 그건 쿠바나(쿠바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냐? 라고 되물었으나, 아무나 CUC을 가져가면 Peso로 바꿔준다는 거였다. 1CUC에 24Peso. 그러면서 필요하면 자기가 지금 가서 환전해 줄 수 있다고 했다. 아는 사람이 환전소에서 일한다면서 엄청난 호의를 베풀기 시작했다.

  그는 생각 해 보았다. 그랬다. 3peso 짜리 밀크티는 3CUC이 아닌 진짜 쿠바돈 3peso 였다. 그는 3peso만 지불하면 될 밀크티 가격에 72peso[3x24peso]를 지불 했던 것이다. 그는 또 한번 충격에 휩싸였다. 낮에 든건 없었지만 배가 고팠기에 맛있게 먹었던 핫도그도 알고보니 12peso짜리 핫도그 였던 것이다. 12peso짜리 핫도그는 길 건너에서는 야채까지 곁들여져 있었다. 식당 메뉴의 24peso도 실상은 1CUC이면 되는 것이었다.

  그 때부터 그는 쿠바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 그랬다. 까사의 하루 방값이 10CUC인데, 핫도그 하나가 12peso일리 없었다. 그는 그녀에게 20CUC를 주며, peso로 바꿔 달라고 했다. 그리고 잠시 뒤 그녀는 480peso를 그에게 가져다 주었다.



7. 여행에선 돈을 쓸 수록 배움이 크다?

  나는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쿠바가 정말 좋다. 물가가 싸다라고 다른 이에게 들었는데, 사실 나는 그 말을 이해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날 밤, 불법 싸구려 까사의 아줌마는 나에게 진실을 알게 해 주었다. 하지만, 내가 낮에 그런 일을 겪었다고는 말하지 못했다. 그건 지금 하나의 사건으로 남아 있다.

  밀크티 한 잔이 스타벅스 커피 보다 비쌌던 쿠바에서의 이야기.


- 노을의 까삐똘리오


-까삐똘리오 앞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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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삐똘리오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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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운동장


- 0.5페소 짜리 버스. 정말 좋다. 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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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 하바나 시티.


- 골목을 거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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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저씨


- 콘 아이스크림이 맛있던 가게의 형제



-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 풍의 음악이 울려퍼지던 재즈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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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쪽 돈이 CUC 아래 쪽 돈이 쿠바나 peso
CUC의 가치가 24배가 높다....돈도 더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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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 하우스 파티, Shall we dance? (Venezuela, Caracas)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1. 2. 23.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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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음주가무(飮酒歌舞)

   술이 있는 곳엔[엄밀히 따지자면 술을 마시는 곳] 음악이 있고, 음악과 술이 있는 곳에는 춤이 있다. 술과 음악과 춤이 함께 한 장소에서 조화를 이루는 것은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보편적인 현상인 듯 하다. 대학생 시절을 되돌아 보며 하는 말 중에서도 신입생 혹은 학년이 낮을 때 쉴새 없이 음주가무를 즐겼지 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음주가무를 즐기던 민족이다. 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실제로 고대 국가였던 고구려나 동예, 옥저 같은 나라에서는 추수를 끝낸 뒤 하늘에 감사하기 위해 제사를 지내고 몇 일 밤낮을 지새면서 음주가무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기도 하다. 한반도에서는 그렇게 고대부터 음주가무를 즐기는 행사들이 있어왔다. 항상 좋은 일이 있으면 술과 노래와 춤이 함께 한 것이다.

  슬프니까 술 한잔. 그리고 슬픈 음악. 기쁘니까 술 한잔. 그러면서 즐거운 음악. 그냥 심심하니까 술 한잔. 그럴 땐 적당한 음악. 노래방에 가면, 노래가 흘러 나오고, 맥주가 들어오고, 앞으로 튀어나가 서로 마이크를 잡고 몸을 흔들어 대기도 한다. 

  대학의 단과대, 학과별 행사가 있을 경우에는 넓은 장소에서 음주가무가 벌어지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그런 공개된 장소에서 벌어지는 음주가무를 목격하고 참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주 특별한 행사가 아니고서는 혹은 그런 집단적인 행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런 공개적인 장소에서의 음주가무를 꺼린다. 어느새 세월은 흘렀고, 음주가무는 어둠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좀 더 개방적인 장소라기 보다는 좀 더 폐쇄적이고 은밀한 장소에서 음주가무가 이루어 지고 있다. 그것은 시대의 변화에 따른 것이고, 공개적, 공동체적으로 무언가를 하기를 원하는 사람보다 개인적으로 조용히 살아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 지면서 생기는 현상이 아닐까 싶다.

  음주가무를 논하면서 왠지 씁쓸한 기분이 찾아든다.


2. 이제는 하나의 추억이 되어버린 음주가무(飮酒歌舞)를 즐기던 시절.

  대학시절 봄바람이 내 볼을 스치기 전부터, 야외에서 음주가무를 즐기던 때가 있었다. 아직은 밤이면 약간 찬 기운이 느껴지던 4월의 첫째주 금요일. 해오름제라는 이름으로 사물놀이패가 하늘을 울리고, 우리들은 광장에서 밤새 음주가무를 즐기던 때가 있었다.[물론 지금도 해오름제는 매년 열린다]

  내가 나이를 먹은 탓도 있겠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대학에 들어오는 후배들을 보니 옛날과는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대학 이란 곳을 만으로 6년을 다니다 보니] 후배들은 점점 더 개인주의화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소수의 몇 몇 후배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선배란 자신들에게 존재하지 않는 것 처럼 보인다.[물론 나도 그들을 모른다] 그들을 탓 할 마음은 없다. 그들이 선배라는 사람에 대해서 관심이 있든 없든 그것은 그들의 자유이니까 말이다. 

  단지 안타까운 것은, 내가 대학생활을 하면서 정말 즐거웠던 일들이라고 생각하던 것들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학점, 취업이 뭔지. 그런 것들을 1학년 때 부터 고민하는 요즘 학생들을 보면 안타깝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 바는 아니다]



3. 여행, 그것은 불확실성만으로 이루어진 또 다른 세계.
  
  나는 카라카스의 지하철 역에서 열심히 지하철 노선도를 보고 있었다. 그 날 오후, 카라카스의 올드시티를 거닐어야 겠다는 생각에 올드시티에 위치한 지하철 역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 비교적 단순한 지하철 노선도 였지만, 그 날 따라 노선도는 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가이드북의 노선도와 실제 노선도가 달랐기 때문에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열심히 지하철 노선도를 보고 있는데,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어디까지 가냐고. 

  목적지를 말하자, 나에게 말을 건 학생처럼 보이는 남자는 자기도 거기까지 간다며 같이 가자고 했다. 나는 지하철 표를 구입하고 그들과 함께 열차에 올랐다. 세 명의 남자와 세 명의 여자. 그들은 세 커플처럼 보였는데, 커플은 아니고 모두 친구였다. 아무 짧은 영어를 구사할 줄 아는 한 명의 여자, 그리고 짧은 영어를 하는 또 한명의 여자, 그리고 영어를 할 줄 모르는 한 명의 여자. 짧은 영어를 구사하는 여자가 나에게 많은 것을 물었다. 그리고 영어를 구사할 줄 아는 두 명의 남자와도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짧은 스페인어를 사용하여 대화를 하기도 했다. 영어를 할 줄 모르는 여자는 스페인어로 나에게 무언가를 물어 왔기 때문에.


4. 

  한 명의 동양인 남자와 세 명의 백인 계열 느낌이 많이 나는 남자. 그리고 구릿빛 피부가 돋보이는 두 명의 여자, 이탈리아계의 백인 여자 한명. 그들은 광장의 동상 아래에 빙 둘러서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여섯명의 베네수엘라 대학생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진(Jin)이라고 불리던 한 동양인 남자는 그들의 말에 기계적으로 반응 하듯이 반박자 늦은 웃음을 보였다.
 
  담배가 다 타 들어가자 약간의 적막이 흘렀고, 그는 말했다. 너희들 술마시러 가냐? 그는 왠지 그런 분위기를 감지하고 있었기에 그렇게 물어본 것이었다.[사실 그도 술을 안 먹은지 꽤 되었기에 술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었다] 여섯명의 대학생들은 그에게 말했다. 응, 그들은 루이지(Luigi)를 가리키며 그의 집에서 오늘 파티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또 덧붙였다. 너도 갈래?

  그들 중 한 명은 다른 약속이 있다며, 먼저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베네수엘라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다섯명의 학생들과 그는 루이지의 아파트로 향했다.

  가는 길에 골동품 가게에 들러, 골동품 카메라를 구경하기도 하고, 마실 술을 좀 사가기도 했고, 빵 가게에 들러 바게트와 안에 넣어 먹을 햄과 치즈를  사기도 했으며, 음료수를 몇 개 사기도 했다. 술은 많이 사지 않았다. 루이지의 집에 와인이 많이 있어서 그걸 마실 것이라고 했기 때문에 그들은 약간의 간식거리를 사서 아파트로 향했다.



5. 
  
  나는 그들을 따라 아파트로 들어갔다. 전망이 꽤나 좋은 곳이었다. 시벨(Cibel)이 창 밖 너머 저 아래 위치한 저택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곳이 대통령이 살고 있는 곳이야.

  익숙한 리듬의 음악이 거실에 울려 퍼졌다. 테이블 위에는 술이 있었고, 그들은 나에게 술을 권했다. 맛이 나쁘지 않은 와인이었다. 와인이라고 하기에는 좀 도수가 약한. 약간은 음료수에 가까운 와인이었다. 맥주보다 알콜 농도는 더 높았지만, 맥주만큼 취한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맥주는 취하는 것 보다 배가 쉽게 부르게되는 술이긴 하지만].

  베네수엘라의 유명한 가수의 음악이 흘러나왔다[그들이 유명한 가수라고 말해 주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음악은 신이 났고, 그들은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라틴 댄스.
  
  그들은 나를 일으켜 세웠고, 나에게도 라틴 댄스를 권했다. 나는 스텝을 밟았다. 아마존에서 배운 스텝이 유용하게 쓰였고, 나는 아마존에서 보다 더 춤을 즐길 수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또 다른 스텝도 가르쳐 주었다.

  아드리아나가 살사춤을 추었다. 엄청난 흔들림이었다. 놀라울 정도 였다.[라틴의 여자들은 어릴 때 부터 엉덩이를 흔들며 살사를 추니 커 가면서 더 부드럽게 흔들 수 있는 것 같다. 쿠바에서 본 꼬마가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추는 것을 보고 놀랄 정도 였으니]
  나에게 살사를 권했지만, 난 도저히 그 속도의 반의 반도 못따라 갈 정도였다. 허리가 끊어 질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대낮부터  시작된 술판은 흥을 더해갔고, 밖은 어느새 어둠이 찾아와 있었다.


6. 루나(Luna).

  점점 밤이 깊어가자, 음악은 좀 조용한 것으로 바뀌었다.[밤 늦은 시간에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춤을 추며 놀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은 가끔 조용히 라틴 댄스를 추거나 술을 홀짝 거리고, 대화를 나누었다.
  
  루이지의 엄마와 누나가 밖에서 돌아왔지만, 파티는 계속 되었다.[루이지는 피부가 백인 같았는데, 누나와 엄마는 피부가 검은 빛에 가까웠다. 혼혈은 역시 랜덤이라는 생각] 그는 루이지의 엄마와 누나에게 인사를 하고 계속 술을 마셨다. 그날 따라 그는 좀처럼 취하지 않았다. 그는 너무 즐거웠기 때문일까? 그는 대학시절 정말 즐거운 술 자리에서 소주 대꼴 3병을 마신 적도 있다.[물론 세번 토했지만]

  밤은 깊어 갔다. 그리고 창 밖 저 높이에는 달이 떠 있었다. 더러는 방으로 들어가 야구를 보았고, 더러는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그는 숙소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이미 전철은 끊겼을 테고, 루이지의 집에서 자고 가라고 그에게 말했다. 그는 아침 일찍, 숙소로 돌아가야 했다. 다음 날 점심 즈음, 쿠바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했기 때문에.

  소파에 앉아, 저 높이 떠서 빛을 창 안으로 쏟아내고 있는 달을 보자 갑자기 그는 "루나"라는 말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는 입 밖으로 소리를 만들어 보았다.  Luna. 

  옆에 있던 시벨이 말했다. Si, SI, Luna. 그리고 별에 대해서 덧붙였지만, 그는 더 이상 기억하지 못했다.

그냥, 루나. 라는 말이 참 아름답게 느껴진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7. 
  그들은 거실에 나를 위해 간이 침대를 설치해 주었다. 그 위에서 나는 잠이 들었고, 6시 쯤 일어났다. 숙소까지 가는데 1시간. 샤워를 하고 짐을 챙기고 아침을 먹고 공항으로 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모두들 잠이 든 시간이었다. 나는 간이 침대를 접고, 이불을 개어서 옆에 놓아 두었다. 그리고, 쪽지를 하나 써서 탁자위에 올려 놓았고, 조용히 루이지를 깨웠다[출입문은 안에서도 열쇠로 문을 열어야 하는 것이었기에] 카를로스와 루이지가 아파트 입구까지 배웅을 해 주었다. 그리고 그들과 헤어지고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카라카스에서의 하우스 파티는 그렇게 끝났다.



- 카라카스 시내

- 파티 멤버 + 찍사 Cibel

- 울랄라


- 표정들

- 동상

- 구조가 좀 특이하던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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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비아 팔에 그림 그려주는 카를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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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브라질, 아마존 - 아마존의 과외 선생님들 - (Brazil, Amazon)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1. 2. 16.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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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가기 전 걱정 하는 것 중 하나가 의사소통에 관련된 것이다. "나 영어 못하는데 어떡하지?" 혹은 "남미는 영어도 안통하고 스페인어만 써야 한다며? 스페인어 공부해야해?" 혹은 "중동에서는 아랍어만 써야되는 거야?"라는 생각을 하고, 혹자에게 그런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그리고 실제로 여행을 떠나기 전 그 나라의 언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을 만나 볼 수도 있다[일주일간의 일본 여행을 위해서 일본어 책을 두권, 세권씩 가지고 일본어 공부를 한 달 하고 떠나는 사람을 본 적 있다]. 여행을 떠나기 전이나 떠난 후에 우리가 배우는 것은 언어 뿐만이 아니다.

  누군가는 여행을 하며 악기를 들고 다니기 위해 간단한 악기를 배우기도 한다. 누군가는 여행에서 좀 더 즐거운 파티를 즐기기 위해 춤을 배우기도 한다. 누군가는 여행에서 좀 더 즐거운 여행을 위해서 그 나라의 문화에 대해서 배우기도 하고, 음식에 대해서 배우기도 한다. 여행이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이유중 하나가 바로 여행 중에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특히, 그 배우게 되는 것이 자신이 상상하지도 못하던 것이었다면, 여행은 한층 더 즐거운 것이 될 수 있다.  
 

2. 즐겁게 배우고자 하는 마음.

  학교를 다니면서 조금의 용돈 벌이를 위해, 혹은 여행 경비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학원에서 강의를 하거나 개인 과외를 하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부터 고등학교 2학년 까지 다양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느낀 것. 학생들이 배우려는 마음이 없으면 내가 아무리 가르쳐 줘 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 
 
  나의 학창시절을 생각해 본다. 초등 학교 시절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 학원을 다닌 적 있으나, 그 마저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학원은 다니지 않고 놀러 다니기 바빳다[그 시절은 PC방이 없던 시절이라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총싸움을 하거나 미니카를 가지고 놀기도 했다] 물론, 공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은 눈꼽만큼도 없엇다. 중학교 때도 물론, 중3이 되기 전 까지 공부란 걸 몰랐고, 중3이 되어서야 내 스스로 공부를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때부터 공부를 했다. 그렇게 뭔가를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때 뭔가를 해야만 난 그 무언가를 재미있게 배울 수 있었다.

  유럽 배낭여행을 위해서 유럽의 역사에 대해서 공부 할 때도, 내가 재미있을 것 같아서 세계사를 공부할 때도, 그리고 여행에서 만나는 많은 일본인들과의 답답함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기 위해 일본어를 공부할 때도, 인도에서 잠베(djambe)를 배울 때도, 중동 여행을 위해 아랍어를 공부할 때도, 남미에서 생존하기 위해 스페인어를 공부할 때도, 모두가 내가 하고 싶어서 했고, 그 모든것은 고통이 아니라 나에게 있어서 즐거움이었다.


3. 포르투갈어 선생님 - 마르코(Marco)
 
  아마존 선착장에서의 4일. 그리고 아마존 강 위를 떠 가는 배 위에서의 4일. 선착장에서 만난 한 커플[파울리나(Paulina, 여, 칠레 출신)와 마르코(Marco, 남, 아르헨티나 출신)]. 배가 출항하기 전 나는 주로 그들과 함께 다녔다. 그 선착장에서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그들 밖에 없었고, 영어가 잘 안 될때는 나의 짧은 스페인어로 대화를 할 수 있었고, 그들은 나의 말을 포르투갈어로 번역을 해 주었다. 물론, 브라질 사람들이 하는 말을 영어 또는 스페인어로 번역을 해주기도 했고[마르코는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영어를 할 줄 알았다]. 

  사실, 나도 가이드북 뒤에 붙어 있는 포르투갈어를 가지고 공부를 했지만 역부족이었고, 스페인어와 헷갈리기만 했다.[어차피 브라질을 빠져나가면 또 베네수엘라와 쿠바로 갈 건데 그 때도 스페인어만 쓸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마르코와 파울리나 그리고 나는 선착장 앞에 있는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마르코가 말했다. Hey Jin, 너 포르투갈어 배워볼 생각 없어? 음, 혼자 공부중이긴 한데 어렵네. 여행하려면 배우는게 좋지. 그럼 내가 가르쳐 줄까? 응? 너가 그르쳐 준다고? 그럼 지금부터 나랑 파울리나가 스페인어랑 영어를 가지고 포르투갈어 가르쳐 줄게. 어때? 나야 좋지.

  가르쳐 준다는 말에, 배워 보겠다는 말은 그렇게 쉽게 나왔다.[의욕이 너무 앞선 탓]


4.                       
  포르투베유(Porto Velho) 여객선 선착장 근처의 한 식당에 세 명의 외국인이 있었다. 그들은 외국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주로 영어와 스페인어. 그리고 한국어와 일본어[파울리나는 대학에서 일본문학도 배운다고 하면서 약간의 일본어도 했다] 그리고 동양인 남자는 그들에게서 포르투갈어를 배우는 듯한 모양새였으나, 표정을 봐서는 그리 탐탁치 않은 듯 보였다.
  기본적인 단어에서부터,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는 것 까지. 그에게 있어 포르투갈어는 쉽지 않은 듯 보였다. 그의 표정에는 오히려 혼란한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마르코는 그에게 틈틈히 포르투갈어를 가르쳐 주려고 하였으나, 그는 어느덧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스페인어도 잘 모르는 상황에서 포르투갈어를 배우려 하니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 진 것이었다. 그는 처음에 열심히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이제는 포르투갈어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르코에게 말했다. 포르투갈어는 포기해야 겠어. 

  그에게 있어 포르투갈어는 오히려 더 부담이 되었는 지도 모른다. 그는 그냥 론니플래닛 스페니쉬 프라세북(Lonely planet Spanish prase book)만을 틈틈히 들여다 보며, 스페인어에 집중하기로 했다.



5. 배는 아마존의 물살을 갈랐고, 음악은 물살을 타고 강 양쪽에 끝없이 펼쳐진 숲으로 스며 들었다.

  배 위에서는 매일 밤마다 파티가 이어졌다. 다양한 음악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라틴의 경쾌한 음악도 한 몫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술을 마시며 그들과 떠들고 놀았지만, 춤을 추지는 않았다.[라틴 댄스를 출 줄 몰랐으니까]

  마르코와 파울리나는 리듬에 맞추어 서로 파트너가 되어 라틴 댄스를 추었다. 그러던 차에 파울리나와 마르코가 나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진, 춤 춰보지 않을래? 아, 난 라틴댄스를 출 줄 몰라. 그냥 구경만 할 게. 내가 가르쳐 줄 게. 같이 추자. 그렇게, 파울리나의 손을 잡고 무대로 나갔다.

  리듬에 맞춰, 오른 발을 앞으로 또 앞으로. 그리고 또 뒤로 또 뒤로. 내 발은 자꾸 꼬이기만 했고, 스텝을 맞추기가 어려웠다.[이래뵈도 리듬은 잘 타는 몸인데도 말이다] 그렇게 스텝이 꼬였다가 풀렸다가, 파울리나의 리드로 어느 정도 리듬을 타고, 음악에 몸을 맡겨 스텝을 밟을 정도가 되었다.

  주변에 춤을 추던 사람들도 내 주위에서 조언을 해 주었다. 자세를 교정 해 주고, 스템에 대해서 설명해 주고,[친절한 사람들] 그렇게 파울리나의 리드로 배 위에서 울려퍼지는 음악에 맞추어 라틴 댄스를 출 수 있게 되었다.

 
6.                       
  그는 춤추고 술마시고 노는걸 좋아하지만, 여기서는 왠지 좀 소되되는 것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한국의 클럽이나 콜롬비아의 클럽에서 흘러나오는 그런 음악과 다른, 그리고 그런 곳에서 추는 춤과는 좀 다른. 배 위에서는 라틴 음악의 리듬에 맞춰 라틴 댄스를 추고 있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파울리나의 도움으로 배 위에서 즐기는 파티에서 소외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는 어설프기는 했지만, 라틴 댄스를 췄다. 파트너도 파울리나에서 다른 여인으로 바꾸어 가며, 음악에 몸을 맡기며, 라틴 스텝을 따라가려 했다. 그는 배 위에서, 라틴 댄스를 배웠다.

  그리고, 나중에 베네수엘라의 하우스 파티에 라틴댄스를 조금은 더 능숙하게 출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7, 배 위의 사람들.

  많은 브라질 사람들과 다양한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은 다양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와서 남미를 여행하고 있는 커플은 신기한 악기를 가지고 다녔다.[탬버린 비슷한 것과 캐스터네츠 그리고 활 처럼 생겨서 하나의 현이 달린 악기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둘러 앉아 나의 잠베도 쳐 보고, 그 악기들을 간단하게 연주해 보았다. 모두들 그렇게 악기와 음악 그리고 술을 통해서 하나가 되고 있었다.

밤은 깊어 갔고, 우리의 목적지도 다가오고 있었다.



- 파울리나와 마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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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하는 사진. 중 하나.



- 댄스 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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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페루, 푸노 - 티티카카 호수 이야기.(Puno, Peru)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1. 1. 23.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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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을 읽는다.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는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기차를 타고 가면서,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도 책을 읽는다. 요즘 디지털 시대, 스마트폰 시대, 태블릿PC 시대라고 하지만, 그래도 종이 위에  뿌려진 잉크의 흔적을 읽는 사람들은 많다[네모난 화면 속에 검은 점(픽셀, Pixel)들이 만들어 내는 글자를 읽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행을 하면서 사람들은 책을 몇 권씩 들고 다닌다. 여행을 떠나기 전 가방에 가방에 들어 가는 물건 중 하나가 바로 "책"이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이 책을 읽어야 겠어 라는 생각에, 혹은 바빠서 못 읽었던 책인데 여행지에 가서 여유를 즐기면 책을 좀 봐야지 라거나 아니면 기차를 타고 많이 이동해야 하니까 그 때 책을 봐야겠어 라는 생각으로 책을 한 두권쯤은 가져가게 된다[실제로 그 책을 다 읽기가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다양한 장르의 책들을 개인의 취향에 따라 가져가게 된다. 조금 더 풍족한 여행을 위해서[가이드북은 그런 부류의 책과는 다르다. 물론 여행을 좀 더 풍족하게 할 수는 있겠지만]


2. 책(Book)을 가지고 있다.

  나 항상 여행을 하면서 책을 들고 다닌다. 이동을 하거나 혹은 어딘가에서 한가로이 쉴 때, 주로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는다. 한국에서는 느낄 수 없는 따사로운 햇살을 피부로 느끼며, 상쾌한 바람의 감촉을 느끼며 책을 읽는다. 내 가방 무게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책.  그 책들 중 하나가 일본작가 다카하시아유무의 <러브앤프리(Love & Free)>라는 책이었다. 그리고 그 책 속에 이런 글귀가 있다.

어느 히피가 읊은 
Life of Some Island 어느 섬의 일생
 
지구의 고동으로 '섬'이 태어났다
어부들이 고기를 찾아 섬으로 모여들었다
히피들이 마리화나를 좇아 섬에 다다랐다
서퍼들이 파도를 찾아 섬으로 왔다
카페와 여관들이 하나 둘 생겼다
몇몇 여행객들이 섬에 들렀다
어떤 바보 같은 자식이 여행 잡지에 소개했다
관광객들이 섬을 찾기 시작했다
어부는 손을 놓고 히피와 서퍼는 섬을 떠났다
커다란 호텔과 상점들이 문을 열었다
관광객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원주민들은 삶의 방식을 바꾸고 문화를 버리고
관광객을 상대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섬은 오염되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과 식물의 생태계가 망가지기 시작했다

섬은 죽었다

다카하시 아유무, -러브 앤드 프리 中-


3.                            

  여행을 가거나, 어딘가를 다니다 보면 어느 특정 장소가 무나도 마음에 들어 나중에 다시오고 싶은, 그런 장소가 있다.[그 곳이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고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곳일 때 더욱 그렇다] 그 장소에 언젠가는 다시 가야지 하고 생각하다가 몇 년 뒤 그 장소에 다시 가 보았을 때, 그곳이 예전에 내가 보았던 그런 곳이 아닌, 많은 상점들이 늘어서있고, 오염되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휴가를 즐기고 있는 곳으로 바뀌어 있다면, 예전의 모습을 상상하고 그 곳을 찾았던 사람은 실망과 함께 그 장소를 떠나게 된다. 그리고는 다시는 그 장소를 찾지 않게 될 것이다.[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4.                                     

  여행을 하다보면[특히, 경제적 수준이 낮은 나라(개발 도상국이라고 일컫는 나라들)를 여행할 때] 씁쓸한 장면을 많이 목격하거나 그 장면 속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관광객은 봉이다"라는 생각이 의식의 밑바닥부터 자리하고 있는듯한 사람들의 관광객에 대한 횡포를 목격할 기회가 아주 많다. 관광객을 하나의 인간이기 이전에 자신의 경제적 이익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아주 많이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관광객을 상대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관광지를 가다보면, 예전에 관광지화가 되기전에는 자기들끼리 조금은 부족하지만[경제적으로], 여유있고 행복하게 살았을 법한 사람들이, 자신들이 사는 곳이 관광지화 되고, 관광객을 상대로 돈을 벌어들이기 위해 분주하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 때가 많다.[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 한켠으로 씁쓸하다] 또한, 관광지가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들[막대한 자본을 가지고 장사하러 온 사람들]에 의해서 더욱 오염되었을 때[환경적인 모습이 아닌 인간적인 면모나 내적인 감정 등의 것들] 그 관광지에 대해서 더 큰 실망을 하게 될 때가 있다.


5.  페루의 푸노(Puno)라는 도시.[볼리비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호수인 티티카카호수(Lake TITICACA)가 있는 곳]

    도시의 앞은 바다만큼 넓은 호수가 자리하고 뒤는 높은 산이 둘러 싸고 있었다. 푸노에서 새해를 맞이한 날(1월 1일), 도시 뒤편 산 언저리에 있는 작은 마을을 둘러보았다.
  무너진 담길, 부서진 연탄과 흩날리는 연탄재들. 그리고 가파른 언덕에 위치한 계단식 밭들. 염소 몇 마리가 낮잠을 자고 있었고 무너진 담들 사이에서 축구와 피구를 하며 노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바람을 가르며 내 귓가를 스쳐지나갔다. 나무 그늘 아래 앉아 그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비록 그 아이들의 삶은 가난해 보이지만, 마음은 즐거울 수 있다는 걸 보았다.

페루의 작은 도시, 시골 산등성이에 위치한 달동네 아이들. 그들은 행복해 보였다.



6. 티티카카호수의 사람들.

  푸노(Puno)에서 머물면서 관광 명소로 불리는 티티카카 호수와 그 위에 떠 있는 섬들을 방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숙소 근처 여행사로가서 하루짜리 투어 프로그램을 신청하고 다음날 호수를 가로질러 섬으로 가기로 했다.
  억새풀 같은 것들을 엮어서 호수 위에 작은 섬을 만들고 그 위에 사는 원주민들, 그들은 관광객들을 위해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관광객들이 자신들에게 돈을 주기를 원했다. 한 부모는 아이들을 시켜 노래를 부르게 하고 돈을 받아오게 했다. 그 아이들은 슬픈 표정으로 노래를 불렀다.
  배를 타고 몇 시간을 달려 다른 큰 섬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을 때, 한 가족이 마당에 나와서 춤을 추었다.[그 지방의 민속 춤 같았다] 그들 역시 춤을 추고나서 돈을 원했다. 

  점심을 먹고, 그 섬 마을의 광장으로 갔을 때 아이들이 무리지어 다니면서 무언가를 팔고 있었다. 집에서 손으로 만든 것 처럼 보이는 팔찌와 목걸이가 그 아이들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아이들의 표정엔 웃음이 없었다. 그저, 그걸 하나 팔고 싶다는 소망만이 얼굴에 가득했다. 어쩌다 누군가가 물건 중 하나를 사면 아이들은 잠시나마 기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가 보기엔 그 기쁨은 그 아이들의 것이 아니라, 그 돈을 가지게 될 모의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그 관광지 작은 섬 마을 아이들은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닌, 부모들의 탐욕 때문에 행복과 즐거움을 잃은 채 생활하고 있었다[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보였다].



7.   티티카카코.                     

  - 티티카카 코

어느 외딴 섬
마유코씨와 진씨는
그 곳에
서로를 남겨둔 채 떠났다.
코묻은 아이들
그들의 흔적을 바라본다.

발 아래,
바다보다 넓은 호수를 두고
손바닥은
하늘을 바라보는 아이들
서로를 바라보는 그들. 

어느 외딴 섬
코흘리개 아이들, 웃음은
어른들의 것.

*湖(こ[코], 호수 의 일본식 한자 음)


- 호수 위 지푸라기 위에 사는 원주민 아낙네들


- 노래 부르는 아이들과 노 젖는 아빠.


- 춤추는 가족들


- 마을 광장


- 수평선이 바라보이는 티티카카 호수. 해발고도 3600미터는 넘는듯.


- 도시 뒷산 언덕에서 바라본 모습



- 마을의 무너진 담벼락 안에서 노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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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남미(볼리비아, 우유니) - 마지막 하나 남은건 누가 먹지??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1. 1. 23.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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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ond edit

1.  음식점에서 음식을 먹을 때 흔히 볼 수 있는 장면 하나.

  중국집에서 탕수육을 먹거나, 배달 시켜 먹을 대 마지막에 남은 탕수육 하나는 항상 외롭게 남게 된다. 내 젓가락을 갖다 대고 싶지만 왠지 모르게 선뜻 젓가락이 나서질 않는다.
  친구들 끼리 둘러 앉아 만두를 먹을 때면, 마지막에 남는 만두 하나. 자신은 배가 부르니 네가 먹으라며 양보를 하는 모습! [비단 탕수육, 만두 뿐만 아니라, 각종 음식들]. 양이 많을 때는  거리낌없이 먹다가 마지막에 하나가 남게 되면, 그 마지막 하나 남은 음식은 몸둘 바를 모르고 부끄러워 한다.

  우리나라에서 사람들끼리 음식을 먹을 때, 흔히 목격 할 수 있는 현상. 하나 남은 음식을 누가 먹을까? 하나남은 음식은 외롭다. 쓰레기통으로 가기는 싫은데.

  하나 남은 음식의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음식으로서의 본분을 다하고 싶지만, 갑자기 식탁에 퍼지는 묘한 분위기 때문에 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나도, 양보정신이 투철(?)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걸까?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평소에 배어있기 때문에. 이것은 과연 문화적 특수성일까?


2. 상황은 좀 달라 질 수 있다. -그래도 예외적은 상황은 존재하는 법.

  특히, 남자 친구들끼리(동성의 친구들) 음식을 먹을 땐 마지막 하나를 먹기 위해서 피터지는[음식의 옆구리가 터진다] 젓가락끼리의 다툼을 흔히 목격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마지막 하나를 집어서 입속에 넣는 자는 음흉한 미소를 다른 사람들에게 날린다. 친한 친구들 사이에선 양보따윈 없다. 그저 먹고 싶은사람이 빨리 먹는게 임자.[여자들은 마지막 하나 남은 것을 먹으면 살찐다는 이유로 먹는 것을 미룬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남자들과는 대조적이다]


3. 우유니사막 투어가 끝난 다음 날, 

  따로 약속을 하지 않았지만, [우유니 워낙 작은 동네라서] 나는 우유니 사막 투어에 같이 갔었던 애들과 점심 즈음해서 맥주를 마시게 되었다. 나는 그날 저녁 우유니를 떠날 예정이었고, 그들은 다음날 오전에 떠날 예정이었다. 어차피 버스 시간은 저녁이었기 때문에 점심때 술을 마시는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들과 함께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고, 안주를 주문했다. 안주는 '감자튀김[프렌치프라이]'이었다.

  맥주를 마실때 나온 안주, 감자튀김[우리나라에서도 자주 먹는 그것. 튀김안주의 대표주자]. 맥주를 홀짝홀짝 마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함께 마신 친구는 브라질리안(Brazilian) 에드손(남)과 아르헨티노(Argentino) 베로니카(여)였다.  둘은 커플]

  어느덧 시간이 흐르고, 술은 목을 통해 계속 몸 속으로 흘러 들어갔고, 안주도 하나 둘 먹다 보니 결국 마지막 하나남은 감자튀김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나는 관찰을 하기 시작했다[누가 과연 먹을 것인가, 저 하나를 놓고 어떤 반응이 나타날까]. 어느 정도 예상대로, 서로가 술만 홀짝홀짝 할 뿐, 아무도 먹지 않고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 순간,  


4.                               

브라질리언 에드손이 물었다.
"한쿡에서도 마지막에 하나 남은 음식 안먹어?"
그는 대답했다. 안먹는건 아니지만 마지막 남은 음식을 먹는걸 대체적으로 꺼려한다고. 그리고 왠지 모를 미묘한 긴장관계가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지금처럼.

"왜 그런건데?"라고 에드손이 물었다.
왜 일까? 한국 사람들은 예의가 바르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때문에? 잘은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는,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의미라고 그는 말했다. 그가 개인적으로 생각 할 때는 그런 이유가 크지 않을까 라는 생각했기 때문에.

그 말을 듣고 에드손이 말했다.
"브라질에서는 마지막에 하나 남은 음식을 먹으면 결혼 못하다는 미신이 있어"

그러자, 옆에 있던 베로니카가 덧붙였다.
"어, 정말? 아르헨티나에도 마지막 남은 음식을 먹으면 결혼을 못한다는 미신이 있는데"라고.


그 말이 끝나자 에드손은 "난 결혼 안할꺼니까"라고 말하면서 하나남은 감자튀김을 덥썩 집어 먹었다.
그들은 웃으면서 이야기를 마쳤고, 감자튀김 한 접시를 더 주문했다.


5.                                   
  마지막 하나 남은 음식을 먹으면, 결혼 못한다는 미신. 공짜를 좋아하면 대머리가 된다는 미신과 비슷한 이야기. 그냥 웃어 넘길 수 있는 이야기들. 그렇지만 사람들은 왠지 진짜 그렇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묘한 믿음이 있다.

마지막에 하나남은 음식을 잘 먹지 않은다는 것, 먹기를 꺼려 한다는 것.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우유니에서 있었던,  마지막 하나 남은 음식에 관한 이야기.


(음식사진은 없다....대신 우유니 소금사막 사진ㅋ)


- 미신이야기와 전혀상관없지만, 그래도 투어중에 점심먹을때 사진.(마그다, 에드손, 베로니카, 로신)


- 소금사막, 소금사막에서 일하는 사람.


- 점프샷.


- 휴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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