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인도, 바라나시 - 물[水], 갠지스 강으로 가는 이유(Varanasi, India)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3. 9. 5.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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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水, Water], 그것은 생명.

  인간은 물이 없으면 살 수 없다. 이 사실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물을 갈망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한다. 우리는 물과 떨어질 수 없기 때문에 항상 곁에 두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물을 갈망하고, 물을 통해 갈증을 해소하면서도 물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 


  
'관심'이란, 서울에 여행 온 프랑스 사람이 서울이라는 도시의 일부를 바라보며, 여러 사물들의 움직임과 위치가 나타내는 의미를 찾아내려고 노력하는데 필요한 '관심'같은 것을 말한다. 우리는 프랑스인과 달리, [서울에 사는 사람들을 예로 들자면]서울의 일상적인 풍경에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으며, 주변의 변화조차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그런 상태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물에 대한 '관심'은 물이 가지는 의미, 존재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이다.

 

  화성 탐사선이 화성에서 물의 흔적에 대한 정보를 지구로 보내면, 그것을 받아본 지구인들은 흥분 상태로 돌입한다. 화성에 생명체가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기대감. 먼 미래에는 지구인이 화성에서도 살 수 있지않을까,라는 생각. 

 물은, 그 흔적 만으로도 생명이 될 수 있다. 

 

 메마른 땅에 빗방울이 스치고 지나가기만 해도, 초록색 풀들이 대지를 뒤덮는다. 메말랐던 땅이 생명의 땅으로 변모한다. 사막 한가운데 있는 물 웅덩이-오아시스- 주변은 생명의 요람이다. '물'은 생명이자 그것의 탄생이라고 할 수 있다.




2., 그것은 삶(Life).

  어린 시절의 여름, 친구들과 함께 흐르는 물 속으로 송사리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개천에 자주 놀러가곤 했다. 개천에서 실컷 헤엄치고 물고기도 잡으며 한참을 놀다가, 물에 흠뻑 젖은 채로 집을 향해 걷는 것이 일상의 모습이었다. 지금은 TV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그런 광경들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여름이면, 개천으로 강으로 달려갔다.   

  지금도 여름이면, 사람들은 너도나도 물가로 달려간다. 드넓은 바다로, 산 속의 계곡으로, 강변의 수영장으로. 누군가는 물 속에서 살고싶다고도 말한다. 물은, 우리의 갈증을 해소시켜 준다. 더위에 지친, 우리의 몸이 느끼는 갈증을 해소시켜 주고,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바다에서의 즐거움, 계곡에서의 즐거움, 강변 수영장에서의 즐거움. 우리는 물과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오감(五感)이 즐겁다.


  겨울, 눈이 내린다. 눈덮힌 자동차들, 눈 덮힌 집들. 집 앞, 온 동네, 온 도시, 온 세상이 눈에 덮힌다. 하루 아침에 온 세상의 풍경이 새하얗게 바뀐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우리는 눈덮힌 세상을 바라보며, 첫사랑을 생각할 수도 있고, 저 멀리 떨어져 있을 누군가를 생각할 수도 있다[누군가는 치워야할 쌓인 눈을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낭만을 즐기자]. 작은 물방울들이 응고된 결정체가 세상을을 바꿔 놓는다. 매서운 바람이, 잿빛 하늘아래 음울하던 풍경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새하얗게 바뀌어 있는 것이다. 


  눈[雪]은 물[水]이고, 물은 우리의 삶의 풍경을 바꿔놓는다. 

  



3.지스(Ganges), 그곳으로 가는 이유,

  유라시아 대륙의 지붕, 티베트 고원. 그곳에서 남쪽, 인도양을 향해 가다보면 거대한 국가, 인도(India)가 있다. '인도'라는 단어를 보았을 때,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인도'라는 거대한 나라

를 하나의 이미지 속에 구겨넣을 수는 없지만, 우리는 기억의 편의를 위해 '인도'라는 국가를 어떤 하나의 이미지로 만들어 머릿속에 넣어 둘 수 있다. 

  우리가 '인도'라는 말을 들었을 때 떠오르는 것,

  누군가는 타지마할(Tajmahal)을 말할 수 있고, 누군가는 흙먼지 날리는 혼잡한 거리와 릭샤에 대해서 말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드넓은 갠지스 강에 몸을 담그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도 있다. '인도'라는 나라를 이것들만으로 표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이것들은 모두 '인도의 이미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지금의 인도 거리가 흙먼지 날리는 혼잡한 풍경을 갖추기 이전17세기 무굴 제국의 황제 샤 자한이 '타지마할'을 만들라고 명령하기 훨씬전에, 히말라야 산맥이 있었고, 히말라야 산맥의 빙하에서 물이 흘러 나왔고, 흘러나온 물은 큰 강을 이루었다. 그 강이 바로 '갠지스 강'이다. 인도의 이미지, 그 모든 것이 있기 이전부터 갠지스는 인도를 흘렀다.


  인도에 여행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거리 열차를 타고 '바라나시[Varanasi, Banaras라고 표기하는 사람도 있다]'로 향한다. 보통, 이틀 이상씩 흙먼지를 만들며 달리는 열차에 몸을 싣고, 침대칸에서 누웠다 앉았다를 반복하며, 하염없이 창밖을 보다 말았다를 반복하면서 바라나시로 향한다.

바라나시의 혼잡한 거리.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가져간 책을 다 읽어도 기차는 여전히 달리고 있다. 같은 칸에 타고 있던 사람과 나눌 이야깃거리가 더 이상 없다고 느껴질 때 쯤이면, 바라나시 역에 도착한다. 바라나시 역 안팎에 머물고 있는 수 많은 인파들을 헤치고 나오면 우리는 그제서야 바라나시의 모습과 대면하게 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바라나시'까지 가는 걸까, 왜 바라나시는 여행자들을 자신의 품 안으로 끌어들이는 걸까, 어떤 매력이 있기에 여행자들은 그곳으로 가는 걸까.


  바라나시에는 강이 있다. '갠지스 강'이 있다. 물론, 그 강이 바라나시에만 흐르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바라나시'로 간다. 그곳에서 '갠지스 강'을 보기를 원한다. 그곳에 흐르는 강은 '그냥' 갠지스 강이 아니다. 신비의 강, 갠지스이다. 수 많은 가트(Ghat)들이 강변에 있고, 사람들은 그곳을 찾는다. 죽은 사람도 강을 찾고, 산 사람도 강을 찾는다. 여행객들도 강을 찾고, 현지인들도 강을 찾는다. 모든 일은 가트에서 일어나지만, 사람들은 '강'때문이라고 말한다.




4.거의 죽음, 현재의 삶, 미래의 생명 - 갠지스 강의 모든 것

  갠지스 강가를 거닐다 보면[엄밀히 말하면, 수 많은 가트들을 거닐다 보면], 우리는 그곳에서 많은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어제를 살았지만 지금은 죽은 사람의 모습, 오늘을 살기위해 자신을 정화하는 사람

햇볕을 쬐고 있는 빨래들, 갠지스 강가.

들의 모습, 미래의 생명을 위한 의식을 행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과거의 죽음, 현재의 삶, 미래의 생명'이라는 갠지즈 강이 담고 있는 모든 것이다.


  물[水]생명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소멸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리고 맥락에 따라서는 대상에 대한 사랑의 방증이 될 수 있다.

 

  바라나시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갠지스 강은 이다. 이른 아침,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해가 뜰 무렵, 갠지스 강가는 사람들로 붐빈다. 강물에 몸을 담그고 하루를 시작하려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그들에게 강물은 하루를 건강하게 열 수 있게 하는 신성함이 깃든 물이다. 그 강물매우 더럽기 때문에 강물에 들어가는 것은 몸에 해로울 수 있다고 누군가가 말하더라도 그것은 그들에게 중요한 사실이 아니다. 

  그 강물에 몸을 담그며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갠지스 강이 그들의 삶과 함께 하는 강이라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갠지스 강의 물은 신성함이 깃든 물이기 때문에 그곳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자신의 몸을 깨끗이 정화시키고 벅찬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도와주는 신성한 물인 것이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중요한 것이다. 


  갠지스 강의 가트에 앉아 강물을 바라보다 보면, 주변의 화장장에서부터 떠내려가는 많은 부유물들이 눈에 보인다. 어제를 살았지만 오늘은 눈을 감고, 심장을 정지시키고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이 강 옆에서 화장되고, 고요히 흐르는 강물에 실려간다.강물은 어제를 살던 사람의 흔적을 소멸시켜 준다.   

갠지스 화장장.

 갠지스 강에서 화장되어 강물에 휩쓸리는 것은 인생의 모든 것을 강물의 신성함에 맡기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곳에는 과거의 죽음이 있다.


  어제를 살다간 사람들의 흔적이 강물에 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강물에 담겨 있다. 그리고, 갠지스 강에는 어제를 살다간 사람들이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하길 원하는 소망이 담겨 있고,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제보다 더 벅찬 삶을 살 수 있기를 희망하는 희망찬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는 곳이다. 


  갠지스 강에, 이 모든 걸 느끼기 위해서 사람들은 강가로 모인다.




5.지스 강, 그것은 믿음의 차이.

 

  나는, 바라나시에 도착하고나서부터 며칠 째 두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어느날 아침, 막 해가 뜨려는 순간 강물에 들어가서 수영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수건 한 장만을 챙겨들고 가트로 나갔다. 해가 뜨려는 순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멱을 감고 있었고, 또 다른 많은 사람들[대부분은 관광객이었으리라]은 조각배를 타고 강 위를 유유히 떠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일부 사람들[그들도 역시 대부분 관광객이었다]은 아침 일찍부터 가트와 가트 사이를 돌아다니며 강가 산책을 하고 있었다.

갠지스 강에서 아침을.


  두려움 반, 호기심 반이었다. 발을 물에 담그자 따뜻한 기운이 발 끝에서 부터 온 몸을 타고 올라왔다. 오른발, 왼발. 그리고 돌 계단을 한 계단, 두 계단 내려가자 내 몸이 서서히 강물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주변에는 많은 인도 사람들이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시선을 받으며 강물 속으로 서서히 들어갔다. 미끈한 점액 같은 것들이 발가락 사이로 파고 들었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미끈한 점액들이 내 발가락을 감쌌고, 엉덩이가 물에 잠겼고, 배꼽이 물에 잠겼고, 가슴이 물에 잠겼고, 목까지 물이 찾다. 나는 거기에서 멈춰서 주위를 둘러 보았다. 나와 함께 물 속에 있던 인도 사람들이 와,하고 웃어보였다. 나는 눈을 감고 물 속에 머리 끝까지 집어 넣었다.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몇 초나 지났을까. 나는 다시 머리를 꺼내고, 푸하,하고 숨을 내 뱉았다. 상쾌했다. 가트 위에서 나를 구경하던 외국인들도 나를

갠지스 강물 안에서, 인도를 느끼다.

신기한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나와 함께 물 속에 있던 인도 사람들이 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웠고, 나도 그들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지켜 세웠다. 기분이 좋았다. 정말, 신성한 물이기 때문일까? 해가 서서히 떠오르는 바라나시의 아침이었다. 갠지스 강 물속에서 맞이하는 바라나시의 아침은 상쾌했고, 기분 좋았다. 


  인도, 바라나시의 사람들이 매일 갠지스 강물에 몸을 담그며 하루를 시작하는 이유가, 강물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상쾌함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봤다. 


  태양은 서서히 강 위로 떠올라, 도시를 주황빛 색체를 조금씩 걷어내고 있었다. 거짓말같이 나의 두통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두통은 나에게 찾아오지 않았고, 또렷한 정신만이 내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훗날, 여행을 하며 만난 이에게 이날의 경험을 말하자,

 "에이 설마, 그냥 기분탓이었겠지. 근데 몸에 두드러기 난 건 없어?" 라고 그녀가 말했다.

 


 갠지스 강물의 대장균 수는 보통 강물보다 수 천, 수 백만 배 많다고 한다. 그리고 수 많은 책자에서, 그리고 몇몇 사람들은 '절대로' 강물에 들어가지 말라고 경고를 하고 있었다. 

 수 백, 수 천 명의 사람들이 물 속에 들어가서 수영을 하고, 몸을 씻는 갠지스 강. 누구는 신성한 물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더러운 물, 위험한 물이라고 하고 있었다. 저 뒤쪽에서는 시체가 떠내려가고, 소들이 수영을 하고, 이쪽에서는 사람들이 빨래를 하고, 몸을 씼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물[水]에 대한 믿음의 차이.





바라나시 역, 신비함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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멱을 감는 사람들, 바라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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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배를 타고, 갠지스를 거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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갠지스 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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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NGA, 갠지스 강은 '강가'라고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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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갠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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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발트3국(빌뉴스,리가,탈린) - 비와 낭만, 비오는 발틱(발트3국) 거리를 걷다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3. 9. 1.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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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비[雨, Rain], 그 지루함의 끝은 낭만.

  여름, 지루하게 비가 내린다. 가끔씩 억수같이 쏟아지고, 아파트 사이사이를 흐르는 작은 천(川)은 금새 흘러 넘친다. 삼삼오오 모여 천(川) 안에서 놀던 오리 가족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여름 휴가를 떠났을까]. 창 밖으로, 빈틈없이 떨어지는 빗방울들을 바라보다보면 가끔씩 빗속을 걷고 싶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1998)> 박흥식, 허진호 감독.

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어쩌면 정신나간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시련을 당했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것은 정말 지루함을 떨쳐낼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면서, 특히 여름에 많은 비를 만나야 하는 것은 좋은 것일 수 있다[비를 맞고나서도 추위에 떨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그동안 우리가 봐 왔던 많은 영화들에서 비는, 슬픔을 대신 말해주었고 비는, 우연을 말해주었고 비는, 운명을 보여주었고 비는, 낭만적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영화 <접속(1997)>에서 어떤 우연을, 영화 <동감(2000)>에서 어떤 비극적 운명을,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1998)>에서는 사랑을 속삭였고, 영화 <클래식(2003)>에서도 비는 사랑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아직도 많은 '비'는 우리에게 어떤 낭만적 만남과 사랑을 말해주고 있다. 내가 우산도 없이 빗속을 걷고 있으면 누군가 나타나서 우산을 씌워주는 것은 아닐까,라는 상상을 하며 어떤 '운명적 만남'을 조심스레 기대해 보기도 한다. 이처럼,


 '비'는 지루함이 아니라, '낭만'이 될 수 있다.




2.이지 않는 '비'가 전해주는 즐거움.

  마른 땅에 빗방울이 떨어질 때, 촉촉한 물기가 메마른 땅을 적시며 흙 속으로 스며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흙 내음이 살며시 우리의 콧속으로 스민다. 이 순간 '흙 냄새' 좋다,라는 말이 나오기도 한

비오는 거리, 2013

다. 오랜만에 찾아온 빗방울이 메마른 대지를 적실 때, 우리는 갑작스레 찾아온 흙 내음에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가끔은 빗방울이 똑, 똑, 똑, 똑, 떨어질 때가 있다. 무언가를 두드리며 떨어지는 소리. 가끔은 우드드드득, 무언가를 마구 두드리며 떨어질 때도 있다. 가끔은 '쏴아-'하는 소리를 내며, 아파트 벽을, 나뭇잎을 쉼없이 두드릴 때도 있다. 우리는 '아, 비가 오는 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비가 내리는 소리가 좋다, 라는 생각을 한다. 자연이 자연과 부딪으며 내는 소리들, 자연이 사람[사람이 만든 물건]과 부딪으며 내는 소리들이 있다. 우리는 이런 소리를 들으며, '좋다'라고 느낀다.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 '소리[음악]'가 아닌 자연이 만들어낸 그저 '소리'일 뿐이지만, 우리는 그 소리가 음악보다 '좋다'라고 느껴질 대가 있다. 

  봄 비 내리는 밤, 우리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땅에서 부터 피어올라 콧속으로 스미는 흙 내음을 맡으며 기분좋게 잠들 때가 있다.


 밤사이 세차게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지만, 아침의 고요함 속에서 깨어날 때가 있다. 세차게 떨어지는 비가 내던 빗소리는 사라지고, 고요 속에서 가끔 새소리가 들리고, 자동차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고요를 뚫고 방 안으로 들어오는 그런 날이 있다. 그런 날 아침. 집을 나서며 하늘을 바라보면, 맑고 투명한, 파란 하늘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다. 그런 날은 왠지 우리의 기분을 즐겁게 만든다.   


  가끔은, 귀[耳]로. 가끔은, 코[鼻]로. 우리는 비[雨]를 만난다. 귀와 코로 만나는 비는 우리에게 즐거움을 전해준다. 비[雨]는 즐거움이다.



3.여행을 하는 중에 만나는 '비'? 

  일상을 살면서 우리는 일기예보에 민감하다. 혹시나 '비'가 올까봐.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걱정이다. 스마트폰 액정 속에 나와있는 세계 각국의 날씨에 먹구름이 잔뜩이니까. 

  비가 오는 날에는 숙소에서 쉬거나, 비가 오는 날에는 예정된 일정을 취소해야 하나,라는 생각으로

잿빛 하늘. 류블랴나.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 비가 오면 어쩌지?

  비가 오면 여행이 새로워 진다. 우리는 그것을 즐겨야 한다.


  '비'는 그 도시의 색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잔뜩 찌푸린 잿빛 하늘, 그 사이를 뚫고 떨어지는 물방울. 우리는 빗속에서 그 도시의 색다른 모습을 보게 되고, 그 도시의 골목을 적시고 있는 비를 만나게 된다. 카페에 앉아 거리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길 수도 있다[날씨가 맑았다면 절대 하지 못 할 일이다]. '비'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도시의 색다른 풍경을 보여준다[대부분의 여행 안내책, 여행 블로그들에는 비오는 날의 풍경이 거의 없다]. 우리는 그 동안 알지 못했던 낯선 풍경을 통해서, 그 여행의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다[물론 그곳에 머물동안 계속 비가 왔다면, 그곳의 이미지는 '비'내리는 풍경으로 영원히 각인될 것이지만]. 조용한 거리, 빗방울이 떨어지는 거리를 거닐다 보면, 그 거리가 온통 나 혼자만의 것이 된 것 같다. 비가 오는 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들어진 '이방인의 거리'.


  여행을 하는 데 있어 비가 내리는 것은, 뭔가 번거로운 일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비 때문에 카메라를 함부로 꺼낼 수도 없고, 빗방울로 얼룩지고 잿빛 먹구름들로 뒤덮힌 하늘에선 한 줌 빛 조차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사진도 잘 찍히지 않는다. 비가 오는 날의 사진은 찾기 힘들지만, 그렇지만 우리는 평소와는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있다. 비가 오는 날 사진을 찍는 대신 사람의 흔적이 씻겨 나가버린 한적한 거리를 거닐어 보고, 가만히 앉아 비가 오는 모습을 바라보기도 해 보고, 비가 만들어 내는 소리를 들어보자. 이국에서 만들어 내는 빗소리는 우리가 사는 곳의 소리와 뭔가 다르지 않을까?



4.틱(Baltic, 발트 3국.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거리를 걷다.

  빌뉴스(Vilnius). 하늘을 보니, 구름들이 북쪽으로 마구 날아가고 있었다. 슬로베니아에서, 헝가리에서 만났던 빗방울들이 폴란드를 지나 리투아니아도 와 있었다. 알고 있었다, 리투아니아 빌뉴스에

빌뉴스 거리에 서다.

도 비가 온다는 사실을, 일기예보에서 봤지만 나는 빌뉴스로 갔다. 

  빌뉴스의 골목들을 걸었다, 올드 타운운 골목 골목을 거닐었다. 드문드문 사람들이 보였지만, 거리는 한산했고, 동유럽 특유의 벽돌길, 벽돌집들이 나에게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발틱만의 새로운 느낌, 맑지 않은 하늘, 밝지 않은 거리, 6월 중순이었지만 거리의 노점상들은 털모자, 털장갑을 팔고 있었다. 아직, 꽃이 피지 않았고, 날씨는 쌀쌀했다. 비오는 발틱, 비오는 빌뉴스의 거리를 걸었고 빌뉴스에 머무는 내내 비가 내렸다. 많지 않는 비, 우산을 쓰지 않아도 그리 많이 젖지 않을 양 만큼. 딱, 그만큼만 비가 내렸고, 가볍게 젖은 몸을 이끌고 커피를 마실 때면, 리트머스지로 물이 스며들듯 커피의 온기가 내 몸을 적셨다.


  리가(Riga). 빌뉴스를 떠나기 전 봤던 일기예보에서는 리가에도 비가 내린다고 했다. 사람 없고, 자동차들이 멈추지 않아 폐허가 된 국경 검문소를 지나 리가에 도착했다. 비오는 리가 거리를 가로지르며, 리가의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밤11시가 넘었지만, 아직 어둠이 오지 않았다. 하늘엔 구름이 가득했지만, 거리는 어두워지지 않았고, 가로등도 빛나지 않았다. 어둡지 않는 거리에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기분 좋게 웃고, 말을 거는 사람들이 많았다. 비오는 거리, 어둡지 않은 밤. 술집[pub]에 모여 사람들은 즐거운 기분을 한 껏 토해내고 있었다. 삐걱 거리는 나무 바닥, 물기를 머금은 나무 테이블. 아늑한 기운이 술집에 가득했다. 빗방울 떨

비오는 리가의 거리.

어지는 광장, 노천 카페에 앉아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 광장의 변두리 식당에 앉아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리곤 빗방울을 바라보며, 비오는 리가의 거리를 바라보며 여유를 즐겼다.


  탈린(Tallin). 버스를 타고 북쪽 하늘을  바라보니, 저 멀리 하늘은 파란색이었다. 구름이 버스의 뒤를 쫓았지만 버스는 구름보다 빨리 달렸고탈린에 도착했을 때 하늘은 파란색이었다. 백야(白夜)현상의 탓일까, 밤 12시가 넘어도, 거리는 조금 어두워졌을 뿐, 아직도 어둠 보다는 빛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밤 늦도록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고, 나는 잠을 자기 위해 커튼을 쳐야만 했다. 

  깊은 밤, 빗방울이 세차게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물기를 가득 머금은 구름들이 북쪽으로 날아온 것이었다. 6월 중순, 이불을 꽁꽁 싸매고, 탈린 거리를 향해 힘차게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내는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내일도, 비오는 발틱의 거리를 걷겠구나.' 

  아침, 창문을 열었을 때, 차가운 공기가 방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6월 중순, 10도가 채 안되는 서늘한 공기가 어젯밤 세차게 떨어진 물방울들을 양 껏 머금고 있었다. 일기예보에서는 비가 내일까지 올 것이라고 말했고, 다음날 밖으로 나와 탈린의 거리에 발을 딪고 하늘을 바라보았을 때, 파랗고 투명한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너무나도 맑고 투명해서, 금방이라도 손에 닿을 것 같은 그런 하늘. 그리고, 발트해에서 불어오는 조금은 차가운 봄 바람이 내 피부에 와 닿았다.


  비오는 발틱 거리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비오는 탈린의 거리, 싸늘함을 머금고 있는 공기들에 둘러싸여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자그마한 기념품 상점들을 둘러 보았던, 내 인생에서 다시 없을 비오

올드 캐슬, 탈린.

는 탈린의 거리였다. 여름 옷을 걸치고 있던 나에게, 한 겨울 가랑비를 맞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던 탈린의 거리는 그렇게 떠나갔다.


 햇살 가득한 탈린의 거리, 탈린의 교외에는 어느새 꽃이 피어 있었다. 민들레 풀씨가 나풀나풀 날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고, 이제는  꽃들도, 나무들도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6월 중순에 맞는 봄. 며칠 전 밤, 세차게 내리던 비는 봄을 불러내기 위해 대지를 그렇게 힘차게 두드렸던 것일까. 세차게 내리던 비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고, 포근한 봄기운이 탈린의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5.스럽다.

 비[雨], 오는 류블랴나의 거리는 사랑스러웠다. 

비 오는 발틱의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그래서 더 사랑스러웠다.그래서 말하고 싶다. 

 사랑스럽다, 발틱 - 빌뉴스, 리가, 탈린.



탈린의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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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가득 찬 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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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쿠바, 하바나 - 엽서, 상실된 엽서가 주는 의미(Havana, Cuba)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3. 8. 30.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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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엽서를 주고받던 시절에 관한 이야기.


  손바닥만한 크기의 네모난 모양. 한 면에는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주소를 쓰는 곳이 있고, 한 귀퉁이에는 엽서가 붙어 있었다. 주로 연말, 혹은 가끔씩 우리는 엽서라는 것을 써서 누군가에게 보내곤 했다. 엽서는 간편했다. 우표를 따로 살 필요도 없었고, 받는 사람의 주소만 알면 손쉽게 누군가에게 나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다[물론 2~3일은 걸리는 데다가, 그 메시지를 우편 배달부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도 다 볼 수 있는 단점이 있긴 하다].

영화 <클래식(the classic)>의 한 장면. 2003, 곽재용 감독.

 1990년 후반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엽서와 편지를 썼고, 서로 주고 받았다. 지금은 손바닥 안에서 클릭 한 번이면 접속할 수 있는 '인터넷'. 이것이 뭔지 잘 모르던 시절, 이메일(E-Mail)이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생소한 단어였던 시절, 사람들은 그렇게 편지(Mail), 엽서(post card)를 주고 받았다.

 

 [구분짓기 좋아하는]누군가는 '아날로그적 감성'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공들여 편지를 쓰는 것이 그냥 좋다고도 했다. 인터넷이 보급되고, 이메일이 보편화 되고, 휴대전화가 보급되고, 문자 메시지를 통해서 수시로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 누군가에게 엽서를 보낸다는 것을 생각할 틈이 없었다. 누군가에게 엽서를 써서 보냈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 조차 없었다. 엽서는 그렇게 우리들 곁에서 점차 멀어져 갔다. 이제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체온을 담은, 정성을 담은 편지는 번거로운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간편하게 쓸 수 있는 이메일, 그마저도 이제는 다른 SNS로 대체되었다. 

  침대에 누워 종이 한 장을 들고, 그 사람을 상상해보는 즐거움은 좀처럼 찾기 힘들다. 이제 편지는, 누군가에게 러브레터를 쓸 때나 가끔[x10] 등장하는, 그런 신기한 물건이 되어가고 있다.


 

영화 <클래식(the Classic)> 중.

1990년대를 통과하고 2000년대 초반을 지내며 인생의 추억을 쌓아온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은 집 한켠, 책장 한켠에 작은 상자를 하나쯤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가끔씩, 그 상자를 바라보고 그 상자 속에서 꺼낸 엽서, 편지들에게서 향수를 느끼고, 추억을 더듬는다. 엽서, 편지들은 우리를 옛 시절의 추억에 잠길 수 있는 '여유'를 선물해준다.






2.행지에서 엽서를 고르며,


  여행지에서 만나게 되는 엽서는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그 곳에 여행을 온 사람들에게 각각 다른 의미를 가진다는 뜻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여행지의 엽서는 그 속에 그 장소, 그 도시의 대표적인 무언가[상징물, 사람들, 유적, 풍경 등]를 담고 있게 마련이다. 


  엽서는 매력적이다. 누군가가 어떤 도시를 방문해서 그 도시의 기념품 가게에 진열되어 있는 엽서를 집어 들었다면, 그것은 그 엽서가 담고 있는 무언가의 매력에 이끌렸기 때문이다. 엽서를 고르는 일은 절대로 즉흥적이지 않다. 엽서를 선택한 사람은 그 엽서가 담고 있는 것이 그 도시를 아주 매력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자신이 그 도시를 방문하고 있다는 사실을 매력적으로 나타내 줄거라고 믿기 때문에 그것을 선택한 것이다. 또한, 그 엽서에 그 나라 우체국의 스탬프가 찍혀서 누군가에게 전해질 것을 생각한다면 함부로 엽서를 고를 수 없다. 엽서를 고르는 일은 결코, 손쉽게 아무렇게나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류블랴나(슬로베니아)에서 고른 엽서.


  기념품 가게의 진열대에 아무렇게나 진열되어 있는 엽서처럼 보이지만, 그 엽서들은 아주 신중하게 선택될 물건들이다. 그 엽서들은 아주 많은 것을 담고 있으며, 작은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 

  그 도시가 가진 매력을 지닐 것, 나의 취향에 맞을 것, 나를 잘 표현할 것, 엽서가 담고 있는 것이 받는 사람의 취향에 맞을 것, 그리고 나의 온기를 담고 전달되어 받는 사람을 기쁘게 할 것.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엽서를 받는 사람이 엽서를 받아보고, 기뻐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엽서를 고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3.서를 보내며,


  엽서를 보내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우체국을 찾아 길거리를 헤메는 일은 꽤나 번거로운 일이다[그리고

쿠바의 길가에 팔고 있는 엽서들. 체 게바라의 모습이 담겨있다.

놀라운 사실은, 엽서를 보내는 비용이 꽤나 비싸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번거로움 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내용을 써야할지'와 '누구에게 어떤 엽서를 보낼까'이다.


  엽서의 단점은, 엽서에 담긴 내용이 공개적이라는 것이다[겉 봉투가 없기 때문에 내용이 바로 보인다는 의미]. 엽서의 수신인이 혼자 사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엽서의 내용을 우편 배달부는 볼 수 있다. 옆집 사람이 호기심에 볼 수도 있다. 혼자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엄마가, 아빠가, 동생이, 누나가, 언니가, 오빠가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엽서를 보낼 때는 이런 가능성들을 배제하고 오직, '한명의 수신인'이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그 '수신인'이 엽서를 받았을 때, 기뻐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엽서를 보낸다. 그 엽서 속에 내가 담음 메시지가, 그 엽서가 원래 담고 있던 어떤 상징, 매력이 그 '수신인'을 기쁘게 해야 한다.


  가끔은, 엽서가 우리를 실망시키는 경우가 있다['엽서'가 실망시키기 보다는, 엽서를 발송하는 '국가의 우체국 시스템'에 분노하게 되는 것이다]. 어렵게, 많은 생각을 하며 고르고, 어떤 내용을 담을지 고민하며 온기를 담은 엽서. 우체국에서 스탬프가 찍히는 모습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엽서는 어디론가 사라져 갈 곳을 잃을 경우가 종종 있다. 영원히 수신인을 찾아가지 못하는 엽서들이 존재한다[그럴 땐, 나의 노력이, 나의 애틋함이 헛수고 였다는 생각이 들어 허무함이 밀려온다. 실제로 인도, 볼리비아, 쿠바 등지에서 이런 경험을 했다].




4.엽서를 보내는 이유.


  그 시절, 우리는 엽서, 편지를 주고 받았다. '아날로그적 감성'이라는 말이 없던 시절.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호주 Pemberton 와이너리 기념 엽서

었고, 서로가 교감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그 흔적은 아직까지 남아서 가끔씩, 추억에 잠기게 하기도 하고, 잊고 있던 누군가를 생각하며 '그 사람은 지금 뭘 하고 살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 보게 한다. 그리고 가끔은, 손가락이 닳기도 한다.


  엽서를 보내며,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엽서를 받은 그 사람은 내가 보낸 엽서를 받고 잠시나마 기뻐하며 내가 써내려간 글자들을 어루만질 것이다. 그리고 그 엽서는 기쁜 마음과 함께 어딘가에 보관이 되겠지. 

 훗날 바쁜 일상을 살아가면서, 서로의 기억속에서 서로가 잊혀졌을 때, 나와 그 사람이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을 때,  어느날 우연히 발견된 내가 보낸 그 엽서가 그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기억할 수 있게 한다면 그것은 정말 기쁜 일이다. 비록, 나는 그 순간까지도 내가 엽서를 보내주었던 그 사람을 기억해내지 못할 지라도, 그 사람이 나를 기억해준다는 것은 크나큰 기쁨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엽서를 보낸다.




5. 덧, 아이러니.

 나는 지금까지 여행을 하면서 수 십장의 엽서를 보냈지만, 한 통의 엽서도 받아보지 못했다. 엽서의 기능이 상실된 것일까, 엽서가 잊혀진 것일까, 내가 잊혀진 것일까.  




보통의 우리나라 엽서 앞면




쿠바의 골목길, 벽화



까비똘리에오 찾아오는 어둠.



주말 시장, 하바나의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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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시엠립) - 점(點)과 선(線), 툭툭과 자전거의 의미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3. 8. 27.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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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삐삐'라는 기계가 진동을 할 때면, 우리는 공중전화를 찾아 두리번 거리던 시절이 있었다.

   '삐삐',를 가지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의 30대, 40대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알고 있을 물건이다.'삐삐'가 울리면 공중전화를 찾아 두리번 거리곤 했고, 때로는 집 전화기로 '삐삐'의 자그마한 액정에 찍힌 번호를 보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곤 했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약속을 할 때면, 우리는 몇 시간, 몇 십분 전에 전화를 통해서 약속을 하고 약속 장소에서 서로를 기다려야 했다. 그 시절에는 약속 장소를 향해서 가고 있는 그 누구도 조급해하지 않았고,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는 그 누군가도 안절부절하지 않았다. 약속 장소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은 그 누군가가 곧 올 것이고,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고,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 시간 속에는 설렘이 깃들어 있었기때문에 불안해하거나 지루할 틈이 없었다. 


 누군가가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올 때 마다 나의 시선은 카페의 문을 향하고, 내가 기다리는 그 사람이 들어오지 않을까 하는 설렘. 누군가와 약속을 하는 순간부터 그 사람을 만나는 순간,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기다림의 시간까지. 우리는 그 시간들을 사랑했다.


네가 오기로 한 그자리에 /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 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다 안다 /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에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 너였다가 /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 사랑히는 이여 / 오지 않는 너를 기달며 /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 아주 먼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다 /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갓금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전문.


2.간이 많이 흘렀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를 두고 많은 사람들은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지금보다 윤택한 삶은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IT기술은 눈부

앙코르 와트 신전

신 발전을 거듭했고, Steve Jobs는 '혁신'이라는 말의 의미를 전 세계에 알리며 iPhone을 세상에 선보였다. 대한민국에서는 '비둘기호'열차가 사라졌고, 고속열차 KTX 가 선로 위를 달리고 있다. 더 윤택해진 삶, 더 편리해진 삶, 손바닥 안에 있는 작은 기계 하나면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삶 속에서 우리는 더없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지금 우리의 삶은 우리에게 많은 편리함을 가져다 주었지만, 우리가 상실한 어떤 가치에 대해서는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모든 것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시대에 '여유'라는 말을 하기가 힘들어 졌고, '여유'는 사치로 취급된다. 지금의 30대, 40대들은, 언젠가 그들이 '삐삐'를 치고나서 상대방이 나에게 연락을 해 줄 때까지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기다린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고 산다. 심지어, 그 이후의 세대들[1980년대 후반 이후 출생자들]은 그 애틋함을 알지 못한다. 누구나 손바닥 안에 전화기를 가지고 있고, 언제든지 메시지를 보낼 수 있으며, 내가 보낸 메시지를 상대방이 확인 했는지도 알 수 있다. 여유롭게,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기다리던 우리의 모습은 사라진지 오래다. '여유', '애틋함'이 자리하고 있던 곳에는 '조급함', '불안'만이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누군가와 약속을 잡하, 그 사람을 만남기 위해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기다리는 모습은 사라졌다. 우리는 실시간으로 상대방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고, 약속 시간은 수시로 변경될 수 있으며, 심지어 약속 시간 10분 전에도 약속은 취소될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불안'이 우리의 삶 속에 스며들어 왔다고 할 수 있다.


  KTX는 말한다. "KTX를 타면. 시간이 절약되고 약속 시간에 더 빠르고 정확하게 도달할 수 있습니다." 기차가 빨라진 대신, 창 밖의 풍경은 시시각각 변하는 다양한 삶의 모습이 아닌, 기차역의 플랫폼과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로 채워졌다[무궁화호를 탈 수도 있고, 우리는 무궁화호를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넘쳐나는 KTX들 사이로 간간히 존재하는 무궁화호는 쓸쓸해 보인다. 사람들은 스마트 시대에 걸맞게 KTX를 타야하는 것처럼 여긴다]. 빠름, 빠르게,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를 외치면서 그것이 정답인 양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다. 출발점과 목적지만 존재하는 그런 삶, 하나의 점에서 또 다른 하나의 점으로 이어지는 그런 삶. 

 중간이 사라졌다. 점과 점, 그 둘을 연결해서 하나의 선으로 만들기엔 지금 우리의 삶은 너무나도 빠르다.


3.코르 유적에서 무엇을 타야할까? 툭툭 vs 자전거 - '툭툭'


  캄보디아 시엠립[앙코르 유적이 위치한 도시, 앙코르 와트가 가장 대표적인 사원이다]에는 '툭툭'과 '자전거'가 있다. 많은 사람들[앙코르와트를 방문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툭툭'을 타고 앙코르의 여러 사원들을 방문하고, 사진을 찍는다. 툭툭은 빠르고 편하며, 짧은 시간에 많은 사원들을 둘러 볼 수 있다. 몇몇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고 앙코르 유적의 사원들을 방문하고, 그곳의 공기를 마신다.  그렇지만 자전거는 느리고, 힘들다. 사원 하나하나를 둘러보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정글 곳곳에 신전들이 퍼져있기 때문에, 신전들 사이를 오가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앙코르 와트

△ 앙코르와트 사원의 전경



 '툭툭'은 앙코르 사원들을 둘러보는 데 있어서 최고의 탈것이라고 자신을 광고한다. '툭툭'은 앙코르 유적의 여러 사원들을 빠르게 돌아볼 수 있도록 해주는 최고의 탈것임은 틀림없지만, 아무도 툭툭이 '최고의 만족'을 준다고 말하지 않는다. 툭툭은 그저 관광객들을 앙코르 유적의 여러 사원에 실어다주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다. 툭툭은 앙코르의 사원들을 관광객들에게 '점'으로 만들어 준다. 넓은 정글 속에 있는 사원들은 툭툭에 의해서 점들이 되고, 관광객들은 앙코르 사원들을 점으로 기억하게 된다.


앙코르 와트 신전을 구경중인 사람들

시엠립 시가지에서 관광객들을 실은 '툭툭'은 관광객들을 '앙코르 와트' 내려준다. 관광객들은 사진을 찍고, 다시 툭툭에 올라 '앙코르 톰'에 내린다. 사진을 찍고 다시 툭툭에 오른 관광객들은 '프레아 칸'에 내려 사원을 오르내리며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찍고 사원에서 빠져나온 관광객들을 실은 툭툭은 밀림으로 들어가, 비포장길을 빠른 속도로 가로질러 또 다른 사원에 관광객들을 내려놓는다[빠르게 달리는 툭툭 안에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바깥 풍경을 포착하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툭툭[궁극적으로는 툭툭의 운전기사]에게는 '사원'과 '사원' 사이의 공간은 무의미하다. 사원들 '사이의 공간'은 사원과 사원을 이어주는 '길', '통로'에 불과하다. 다시말해, '통로', '길'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툭툭'에게는 밀림 속의 수 많은 사원들 조차 어떤 '특별한'의미를 지니지 않는 돌 무더기일 뿐이다. 툭툭 혹은 운전자들에게 있어 그곳은 단지 '관광객들의 목적지'이고 '자신의 일터'일 뿐이므로, 그들은 관광객들이 빨리 사진을 찍고 사원에서 빠져나와 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다음 사원을 향해 가는 것이 툭툭의 존재 이유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툭툭'에게 있어서 앙코르와트를 비롯한 앙코르 유적의 여러 사원들은 몇 개의 점들에 불과하고, 그런 '점'과 '점들'에 관광객을 내려놓는 것이 '툭툭의 목적'이다. 이런 툭툭에 실려 다니는 관광객들은 자연스럽게, 사원들을 '점과 점'으로 인식하게 되며, 앙코르와트에 대한 이미지는 규모가 '큰' 몇 개의 사원에 대한 이미지로 대변된다. 



△ 프레야 칸



4.코르 유적에서 무엇을 타야할까? 툭툭 vs 자전거 - '자전거'

 우리 주변에서 '느리게 하는 여행'을 찾기란 힘들다. 우리는 더 빨리 움직일 수 있게 되었고, 더 빨리,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삶이 더, 빨라져서일까? 그만큼 시간을 절약하고 있지

끝없는 툭툭의 행렬

만, 그것을 여유로운 생활을 하는 데 쓰지
않고 더 많은 일을 하는데, 더 바쁜 삶을 사는데 쓰고 있다(스베냐 플라스푈러, <우리의 노동은 왜 우울한가>에서 발췌).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은 우리에게 '느림'의 의미를 알려주지도 않고, 그런 '여유'를 부릴 수 있도록 허락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아니라면, 모두가 빠르고 편한 것만 원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자전거'도 '툭툭'과 마찬가지로 '사원'과 '사원'을 이어준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툭툭'이 앙코르의 유적들을 돌아보는데 최고의 탈것이라고 말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자전거'는 힘들고, 느리다는 이유로 추천을 하지 않는다. 자전거가 '최고의 탈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최고의 만족'을 준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 앙코르 유적지에서는 모든 사람들의 목적지가 밀림 속에 산재해 있는 앙코르 사원들이고, 사원들은 한 곳에 몰려 있는 것

신전과 자전거


이 아니라 넓은 지역에 걸쳐 퍼져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둘러보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앙코르 유적을 포함한 밀림에서 볼만한 것, 봐야하는 것이 앙코르 사원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앙코르 유적지의 사원들은 다 같은 돌무더기가 아니다. 그리고 그 사원들을 연결하는 밀림속의 길들도 모두 같은 밀림 속의 길이 아니며, 자전거를 타고 밀림 속의 길을 가다가 만나는 소나기들도 다 같은 소나기가 아니며, 밀림 속에서 만나는 다양한 동물들은 색다른 앙코르 유적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 준다. 자전거는, 비록 느리지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해주고, 앙코르 유적의 다채로운 모습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밀림 속을 질주해보기도 하고, 나무 밑에서서 지나가는 비를 피해보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멈춰서서 동물들을 바라보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고 신전 주위를 빙빙 돌아보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고 앙코르 유적의 숨결을 마음껏 느낄 수 있다. 앙코르 유적이 문닫는 그 시간까지, 그 누구도 재촉하지 않는다. '빠름', '빨리'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저, 자전거를 타고 밀림 속에서 유유히 흘러다니면 된다.


5.리의 여행은 언제부터,


 우리의 여행은 언제부터 이렇게 빨라 졌을까?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해야하고, 많은 것을 보아야 왠지 좀 더 뿌듯하고 유익한 여행을 한 것 같다는 착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좀 더 많은 사진을 찍고, 나중에 그 사진을 보면서 여행의 기억을 더듬는 것이 '여행'이 되어버린 것은 왜일까. 바쁜 일상을 떠나 여행에서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찾겠다는 다짐은 바쁜 여행 속에서, 일상보다 더 바쁘고 부지런한 생활을 하면서 사라져 버린다. 

 '빠름', '빨리'. '빠르게'. 이런 말들은 우리에게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지만, 우리는 더 많은 시간을 더 많이 움직이는데 써버린다.
 '빠름'을 버리고, '느림'을 선택해 보자. 그리고, '느림'이 당신에게 주는 '여유'를 마음껏 즐겨보자.
- From. 앙코르 유적, 캄보디아.


△ 비를 피하다.


<밀림 속 신전 - 고목들이 스며들다>


<밀림 속 신전 - 스며든 고목>


<밀림 속 신전>


<섬세한 부조>


<통로, 대칭>


<자전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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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세부 시티 - 우리는 외국 여행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먹는가?(Cebu City)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3. 2. 23.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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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행이 주는 행복, 즐거움

 여행,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렇지만 우리가 여행에서 기대하는 것은 비슷하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곳'과는 다를 것 같은 곳에서 새로운 무엇가를 발견하고 기쁨을 느끼기 위함이다.

다시 말해, 다른 나라에서 '이국적'인 풍경을 바라보고, '이국적'인 느낌을 만끽하며 즐거움을 느끼기 위함이다. 

 여행이 우리에게 즐거움[또는 행복감]을 주는 큰 이유 중 하나는 앞으로 떠날[가까운 미래에] 여행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우리는 '여행' 자체에서보다 여행에 대한 '기대'에서 더 큰 즐거움을 느끼고, 설레어 한다. 여행지에 대한 상상 속에서, 여행을 계획하면서, 그리고 여행지에서 할 일들을 머릿속에서 미리 해봄으로써 큰 만족을 느낀다. 

 사실, 대부분의 여행지[외국의 어느 도시, 관광지]는 그 자체로 우리에게 많은 즐거움을 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머릿속에서 포장된 여행지의 이미지가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사실, 여행지 '그곳'은 우리가 살고있는 '이곳'과 대체로 다를 바가 없는 곳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나와는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내가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 뿐[우리들은 이러한 사실에서 일종의 해방감을 느끼기도 한다]이다. 



2. 행은 '공항'에서 끝난다.

 공항은 상당히 흥미로운 곳이다. 그곳은 중립적인 곳[인천공항은 지리적으로 대한민국에 있지만, 그곳은 대한민국이 아니다]이고, 여행에 대한 기대가 종결되는 곳이다. 우리는 많은 기대를 가지고, 공항으로 향하고, 하늘을 향해 나는 비행기를 보면서 다른 나라의 '이국적'인 모습을 상상한다. 공항의 안내판에 쓰여있는 다양한 언어들에서 우리는 '이국적'인 느낌을 받고, 행복을 느낀다. 공항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알아 듣지 못할 외국어를 들으며 약간은 당황하지만, 곧 즐거움의 감정에 휩싸인다. 모든것이 생소하고, 낯설지만 우리는 그런 '이국적'인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그런 모든 것들이 여행이 주는 '행복'의 하나를 이루게 된다.


  "암스테르담의 스히폴 공항에 내려 터미널 안으로 불과 몇 걸음 떼어놓았을 때 나는 천장에 걸린 안내판의 모습에 깜짝 놀란다. …(중략)… 그 단순함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그 세속성에도 불구하고, 이 간판은 나에게 즐거움을 준다. …(중략)… 이국적 정서는 특정한 곳에서 나온다. Aankomst(도착)에서 a를 두개 쓰는 것에, Uitgang(출구)에서 u와 i가 잇달아 나오는 것에, 외국어 밑에 영어가 쓰여 있는 것에, '접수대'라는 말을 쓸 곳에 Balies라고 쓰는 곳에, 프루티거체나 유니버스체같은 실용적이면서도 모더니즘한 냄새가 나는 글자체를 사용한 것에"   'The Art of Travel(Alain de Botton, 한국어판<여행의 기술 95p>)' 

 

 비행기가 나의 엉덩이를 의자 뒤쪽으로 몰아넣고 하늘을 향해 박차오를 때, 묘한 기분이 우리를 사로

잡는다. 그것은 단순히 하늘을 향해 오를때 느낄 수 있는 물리적인 느낌만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을 떠나, '이국적'인 것들이 뒤덮고 있는 '그곳'으로 떠난다는 기대감에서 오는 만족감이다. 몇 시간 후면 우리는 머릿속에서 상상하며 그리던 곳에 실제로 닿을 수 있다. 상상이 실제가 되는 순간을 하나하나 경험하며, 만족감에 젖어간다. 여행을 떠나기 전, 공항에 가는 것부터 비행기에 앉아 묘한 기분을 느끼는 것까지 모두가 상상하던 그대로이다. 그리고 몇 시간 뒤에 우리는 안내판에 내가 살던 곳에서 주로쓰는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가 쓰여있는 것을 목결할 것이고, 우리는 거기에서 '이국적'인 느낌을 받으며 즐거워 할 것이다. 여행의 출발점이자 도착점인 '공항'은  여행이 주는 '행복'의 가장 중요한 요소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이국적'인 풍경[그것이 비록 인위적일지라도]과 기대하고 상상하던 것들의 실현.

 여행, 그것은 기대하고 생각하던 것들이 하나하나 실현되는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과정의 집합체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공항은 더할나위없이 중요한 장소이다.



3. 리는 무엇을 보는가?

 흔히들 그 나라의 수도(Capital)는 그 나라를 상징한다고 한다. 오늘 지나온 거리, 어제 지났던 거리를 상상해 보자. 어떤 풍경들, 어떤 상점들이 머릿속에 나타나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슷한 풍경을 상상하고 있을 것이다.

 "카페베네와 파리바게트의 나라 한국"이라고 누군가가 말한 적이 있다. 대한민국의 수 많은 도시의 번화가, 지하철 역 주변에는 항상 우리들의 눈에 익은 상점의 간판이 보인다. 거대 자본을 앞세운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그들은 '프렌차이즈'라고 불린다. 그것도 '거대한'프렌차이즈. 비단 대한민국의 거리만 그런 것은 아니다[프렌차이즈의 시작은 미국이었고, 이제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거대한 프렌차이즈 회사들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여행지의 거리를 생각해 보자. 사람들이 뒤엉켜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 그곳엔 어김없이 프렌차이즈 회사들이 즐비해 있다. 맥도날드, 피자헛, 던킨도너츠, 스타벅스, 크리스피크림도넛, 커피빈, 버거킹 등 수 많은 글로벌 프렌차이즈 음식점들이 거리를 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모습들이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오히려 익숙하다. 우리는 항상 그런 프렌차이즈 음식점들에 둘러싸여 살아왔고, 언제든지 그 음식점들을 이용할 수 있다. 전 세계 어느 도시[오지나 시골을 제외한 주요 도시, 주요 관광지]에 가더라도 우리는 그들을 만날 수 있다. 심지어, 프랑스 문화 예술의 상징이라고 불리는 몽마르트 언덕에서도 스타벅스 커피를 마실 수 있다.  


전세계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가도 우리는 익숙함과 마주한다.



4. 리는 무엇을 느끼는가?

 낯섦과 이국적인 모습의 시작점이자 종결점이 공항을 빠져나오면, 우리는 다시 익숙함과 마주하게 된

다. 공항에서 숙소[호텔, 게스트하우스 등]로 가는 동안 바라보는 거리의 풍경에서 익숙하지 않은 문자들이 즐비한 것에서 약간의 이국적인 느낌을 얻을 수도 있지만, 그것의 절정은 공항에서 였고 이제는 더이상 새로운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나와 의사소통이 원활히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국적인 새로움으로 다가오기보다는 약간의 거부감과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요소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런 와중에 우리들은 영어로 된 '낯익은'글자들을 발견하게 된다.


 McDonalds, Starbucks coffee, Coffee bean & Tea leaf, Bugger King 등의 문자들이 오히려 우리에게 기쁨을 주게된다. 이것은 익숙함이 주는 즐거움, 편안함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지금 있는 이곳, 낯섦이 지배하고 있는 이곳[여행지]에도 내가 살던 곳에 있던 프렌차이즈가 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기쁨을 주게된다. 이것은 익숙함이 주는 기쁨, 이곳도 내가 있던 곳과는 다르지 않다는 안도감, 그리고 낯선 곳에서 보게되는 익숙한 풍경이라는 것에서 느끼는 신선함이 생긴다. 그리고, 지금 여기의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으면 언제라도 저곳으로 달려가 내가 상상하는 맛을 얻을 수 있고, 내가 커피를 마시면서 여유를 즐기고 싶으면 언제라도 저곳에 앉아 내가 늘 하던 것처럼 여유를 즐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우리를 기쁘게 한다. 


 우리는 외국에서 느끼는 이국적인 모습, 낯섦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낯선 곳에서 볼 수 있는 익숙함에서 즐거움과 편안함을 찾게된다. 그리고 이곳도 내가 있던 곳과 같다는 생각에 마음의 안정을 갖게 된다. 


 예전에는 여행에서 느끼는 낯섦과 새로운 음식에 대한 기대와 실망에서 여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었다면, 이제는 여행지에서도 익숙함,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여행의 의미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5. 리는 무엇을 먹는가?

우리는 어떤 장소로 여행을 떠나기 전, 그곳의 유명한 음식에 대해서 알아보고 그 음식을 먹기를 원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곳에 가서 음식을 먹는다. 그 음식이 입맛에 맞다면 다행이고, 그렇지 않다면 돈

은 좀 아깝다고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어느정도 만족한다. 그런 현지 음식[Local Food, 로컬음식, 로컬푸드]이 가지는 매력은 내가 사는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음식이기에, 여행을 통해서 그곳에서 맛보지 않으면 다시는 맛볼 수 없다는 것에 있다.


 현실. 장시간의 비행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에서 잠시 쉬다가 밖으로 나왔을 때, 어떤 음식점으로 가야할지 망설이게 된다. 수많은 로컬 음식점들이 우리의 곁을 지나가지만 우리는 그곳으로 선뜻 들어가지 못한다. 저곳에는 어떤 음식을 팔까? 음식의 맛은 어떨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 보기도 하고 호기심을 가질 뿐이다. 간혹, 용기를 내어 현지 식당에 들어가 메뉴판을 보더라도, 전혀 알아볼 수 없는 글자뿐이다[그림이 첨부되어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음식점의 주인은 영어를 할 줄 모른다. 답답한 마음에 손으로 아무 음식이나 주문해 보지만, 상상도 못한 음식이 나올 뿐이다. 

 

 지친몸을 이끌고 숙소 밖으로 나와 식사를 위해 음식점을 찾아 나선다. 알지못할 이름의 현지 음식점

[불확실성의 온상, 로또와 마찬가지로 항상 기대를 하지만 그 기대는 어긋나기 마련이다]을 지나, 숙소로 오는 길에 보았던 맥도날드, 버거킹, 크리스피크림도넛을 생각해 본다. 그런 음식점들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음식뿐만이 아니다. 그들은 마음의 안정[편안함, 만족]을 준다. 음식이 아주 맛있다거나 고급이 아니어도 좋다. 단지 우리는 지친 몸을 불확실성의 세계에서 떼어놓고, 편안한 마음으로 식사를 하고 싶을 뿐이다. '거대한'프렌차이즈 음식점들은 지친 몸을 이끌고 그곳으로 들어가는 우리에게 안성맞춤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생각하던 그대로의 '맛'을 느끼고, 생각하던 그대로의 '서비스'를 경험한다. 내가 여행을 떠나기 전, 집 근처 프렌차이즈 음식점에서 맛보았던 '그 맛'을 제공하고, '그 서비스'를 제공한다. 우리의 기대를 충족시킨다. 우리는 현지에도 있는 스타벅스커피의 초록색 글자를 보면서 안도한다. 저곳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는 외국에서 '거대한'프렌차이즈 음식점들을 보고, 음식을 먹으며 만족감에 젖는다. 


 이것은 '거대한'프렌차이즈 음식점들이 추구하는 전략이자[전 세계 어느곳에서나 항상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그것은 예측가능성이다. 많은 소비자들은 그런 예측 가능성, 익숙한 맛을 기대하면서 음식점을 찾는다] 우리가 가지는 기대의 충족이다.[우리는 우리가 기대하던 맛과 서비스를 받는다]



6. 의 유명 음식점을 찾아서.

 여행지에서 맥도날드 햄버거나 도넛을 먹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우리들은 현지의 유명한 식당과 유명

음식점을 찾아다닌다[주로 가이드북이나 인터넷을 통해서 정보를 얻는다]. 필리핀의 경우 사람들은 필리핀 음식을 먹기 위해, 골든까우리(Golden Cowrie)라는 네이티브 레스토랑을 찾거나, 문카페(Mooon Cafe)라는 멕시칸 음식점[멕시칸 푸드를 사람들이 많이 찾는 이유는 스페인 식민지 시대를 경험한 적이 있는 것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을 많이 찾는다. 이런 음식점들은 '아직'은 우리나라에 없고, 다른 나라에도 없는 '필리핀만의'것 처럼 보이기에, 사람들은 필리핀을 여행하면서 많이 찾는 것 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사실은 골든까우리, 문카페를 많이 찾는 이유는 그것들이 맥도날드나 버거킹, 피자헛과 같은 음식점들과 거의 같다는 점 때문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 규모와 글로벌화 정도일 것이다.


 골든까우리와 문카페는 필리핀 현지의 '프렌차이즈'이다. '프렌차이즈'의 장점은 어느 장소에 위치하는가에 상관없이 그 간판을 달고 있는 음식점들은 비슷한 '맛'과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측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맥도날드, 버거킹, 커피빈, 피자헛에서 기대하는 것은 수준 높은 맛과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아니다. 적당한 수준의 맛과 서비스이다. 우리는 그곳에 딱 그정도의 기대를 하고, 그것을 얻기 때문에 만족하고, 심리적인 안정을 갖게 된다.


 필리핀의 수많은 쇼핑몰과 거리, 그리고 그곳에는 항상 문카페와 골든까우리가 있다. 문카페와 골든까우리라는 간판이 있는 곳 아무 곳에 들어가도 우리는 비슷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실패를 할 확률이 적다. 우리는 불확실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우리의 기대를 충족할 수 있고, 거기에서 우리는 만족할 수 있고, 기쁨을 느끼게 된다.


 결국 우리는 맥도날드화(McDonaldization)한 식당에서 만족을 찾고 있다. 우리는 이미 일상생활에서 그런 프렌차이즈들이 제공하는 예측 가능한 맛과 서비스에 젖어 있기 때문에 여행을 가서도 그런 것들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7. 언.

모든 여행지, 모든 사람들이 프렌차이즈[맥도날드화된 식당들]에서 음식을 먹는 것은 아니다. 인도

바라나시(Varanasi)의 골목의 틈새에 위치한 블루라씨(Blue Lassi)를 찾아가 맛있는 라씨 한 잔을 먹을 수도 있다. 그 라씨의 맛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다. 이처럼 아직은, 전 세계에 단 하나뿐인 음식점에서 저렴한 가격에 맛있는 음식을 먹을 여지는 남아 있다. 아직은 여행의 묘미를 즐길 여지가 남아 있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 수록, 맥도날드화한 음식점들이 우리의 주변을 빼곡히 채워나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그런 것들이 편안하게 느껴지고, 어떤 기대를 하게 된다. 이러한 습관은 여행을 가서도 버리기가 힘들게 되었다. 우리는 여행을 떠나서도 불확실성을 두려워하게 되었고, 거부하게 되었다. 우리는 계획된 것, 확실한 것,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것을 찾게 되었고 그러한 우리의 변화'거대한' 프렌차이즈 음식점들이 수 십년 간 공을 들인 결과다.


 여행의 묘미를 어디에서 찾는가는 개인의 문제이다. 하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여행이 주는 큰 매력은 이국적인 모습, 낯섦, 불확실성 속에서 나, 우리, 내가 속한 문화와 다른 점을 발견하고 경험하고 그것을 이해하면서 내면화 하는게 아닐까 한다. 


 



- 참고 자료

1. 여행의 기술(Art of Travel, 알랭드보통)

2.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McDonalds and McDonaldization, 조지 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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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네팔(Nepal) - 테러를 당하다.(2) : 네팔 버스테러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2. 2. 6.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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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st edit 10.11.14)

"Episode] 테러를 당하다.(1) : 인도 국경 폐쇄"에서 이어집니다.(클릭하면 글을 볼 수 있어요)


1. 테러. 테러리즘(Terror, Terrorism)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2001년 9월 11일. 뉴욕의 중심. 세계 경제의 중심. 맨해튼(
Manhattan)의 중심에 있던 세계무역센터(WTC. world trade center)가 무너져 내렸다. 여객기 두 대가 테러리스트의 지시에 따라 쌍둥이 빌딩의 내부에 파고 들었다. 하늘을 찌를듯한, 세계 경제의 중심지의 위상을 드높이며 서 있던 쌍둥이 빌딩은 차례로 무너져 내렸고, 한 줌의 재가 되었다.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테러.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가? 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당신은 어떤 생각이 먼저 머릿속에 찾아오기 전에 온 몸으로 느끼고 있다. 알 수 없는 두려움. 공포의 끝자락을. 당신이 머물고 있는 빌딩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고, 10분 뒤 폭발할 거라는 테러리스트의 메시지가 남겨진다면 그것이 어떤 공포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겠지만, 우리는 막연히 생각할 뿐이다. 그리고, 생존자들의 입을 통해서 우리는 테러의 공포에 대해서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엄청난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후유증에 시달리는 사람들.

  테러리즘, 테러리스트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일까. 그들은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테러를 자행한다[일반적으로 정치, 종교, 사상적 목적을 위해 폭력적인 방법의 수단을 동원한다] 그런 임무 수행의 과정 중에 개인, 단체, 국국가를 상대로 누군가를 사망에 이르게 하고, 물질적, 정신적인 피해를 입힘으로써 공포심을 일으키고, 어떤 행동을 강요하거나 혹은 행동을 중단하게끔 한다. 이러한 테러는 특히, 정치나 종교와 많은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된다[주요 테러리스트들의 출신을 살펴보면 이슬람 과격분자라는 견해가 많은 것을 근거로 생각해 볼 때 말이다].

  테러리스트들['테러분자'라고 하기도 한다]은 자신들이 믿는 이념의 큰 뜻을 이루기 위해 민간인이나 관련되지 않은 사람들의 희생이 어쩔 수 없다는 가치 판단을 내리며, 그 자신 혹은 자신들의 동조자들의 생명 또한 희생되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여행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들은 항상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들은, 특정 누군가를 향해서 테러를 자행하고 사회나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 불특정 다수를 이용하여 자신의 목적을 취하려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포심을 극대화하기 좋은 가장 좋은 대상이 바로 여행자, 외국인들이다. 옛날 이집트에서 폭탄 테러가 났을 때도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테러였고, 예멘에서 테러가 났을 때도 관광객을 상대로 한 테러였다. 관광객은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지만, 그들은 테러리스트의 표적이기도 하다.


2. 
  서울에서 시내버스가 폭발하는 사고가 일어난 적이 있다. 그 사고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했다. 그 버스에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설레는 마음을 안고 약속 장소로 가던 사람이 있었을 것이고,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어디론가 떠나고 있던 사람, 자신의 보금자리로 돌아가던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갑작스런 사고로 그 사람들은 상처를 입었으며, 혼란을 경험했다. 갑작스런 사고. 그것은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 넣었다. 물론, 그것은 테러가 아닌 갑작스런 사고였지만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희생되었다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공포심을 느껴야 했다.

  얼마 전, 또 파키스탄에서 자살 폭탄테러
가 났다. 내가 파키스탄에 가려고 생각하고 있던 무렵에도 한창 자살 폭탄 테러가 자행되던 시점이었기에 인도와 네팔 사이의  국경이 폐쇄되기도 했다. 결국 나는 잦은 자살폭탄 테러로 인해[궁극적으로는 나도 자살 폭탄테러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인도 국경을 넘어 파키스탄을 넘어가지 못했다. 나는 갈 수가 없었다.

  예멘에서 한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폭탄 테러가 일어나서, 4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그 사람들 중에는 내가 아는 사람과 관련되는 사람이 있었다. 나에게는 예외라고 느껴지던 테러의 위험, 테러로 인한 죽음이 나에게 어느새 한걸음 다가와 있었다. 나는 도저히 테러의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느꼈다. 테러는 불특정 다수를 향해서 일어난다. 테러는 관광객들을 노리는 경우가 더 많다. 여행자는 항상 조심해야 한다.
   사고, 테러 등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사건들은 예측하지 못할 때 찾아온다[예측할 수 있을 때 찾아오는 사고는 부주의다]. 해외여행, 특히 정치적으로 불안정하거나, 내전이 있는 지역을 여행 할 때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
언제, 어디서 불의의 사고가 터질지 모르고, 그 희생자가 바로 당신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내가 파키스탄을 가려 했을 때, 국경에서 버스 폭탄테러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코소보가 독립하기 전 코소보 지역을 여행 하려 했을 때, 코소보는 국지적 게릴라전이 발생하여, 민간인들이 수도 없이 죽어 나갔고, 내가 이집트 다합에 있을 때 외국인을 상대로 한 테러가 발생해서 7명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이번 네팔 여행을 하기 위해 인도를 떠나 네팔 국경으로 향했을 때에도, 전국적인 파업과 정치적 불안 상태가 발생하고 있었다. 나는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봤다. 나는 조금은 소극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3.  
  여권에 네팔 입국 스탬프를 찍고, 일행들과 함께 근처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는다. 우리는 다음날 아침 일찍, 테러를 피해 룸비니(Lumbini)에 있는 한국 사찰에 머물다가 상황을 지켜본 다음 카트만두나 포카라로 가기로 했다. 일행은 사이클 릭샤를 타고 룸비니로 이동했다
. 국경에서 룸비니의 사찰들이 모여 있는 곳 까지는 20km가 넘지만, 모든 교통수단이 통제되고 있는 상황에 우리가 탈수 있는 것은 사이클릭샤 밖에 없었다. 우리는 사이클릭샤를 운전하는 사람에게 많은 돈을 쥐어 주었지만,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큰 배낭과 두 사람을 싣고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사이클릭샤 운전수. 힘들고 지쳐 보인다. 
  
  룸비니의 한국 사찰(절/寺)[룸비니에는 독일, 일본, 중국, 태국 등 각국의 사찰들이 각국의 특색에 따라 지어져 있다. 그 곳은 부처가 태어난 곳이기 때문에, 불교의 성지중 한 군데이다.]
은 방문자들에게 숙식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었기에 그 곳에서 머무는데 부담은 없다. 또한, 절에서 제공되는 음식도 한국의 음식과 비슷했기에 인도의 음식에 지쳐있던 나로서는 몸보신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우리는 몇 시간을 자전거에 의지한 끝에,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장소였다.



4. 
  그들은 룸비니에 3일 째 머물고 있었다
. 여전히 교통수단은 마비된 상태였고, 각종 소문들이 절 안으로 파도치듯 한 두명의 여행자들과 함께 몰려 왔다. 문제는 테러집단이었다. 그들은 대중교통인 버스를 향해서 테러를 자행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사찰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더 이상 발이 묶여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짧은 기간 여행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그들은 하루 바삐 그들의 목적지로 가야만 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다.
나는 더 이상 여기서 시간을 지체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내일 상황이 어떻게 되든 여기를 떠나겠어요. 

  매일 밤, 소나울리[인도와 네팔의 국경 도시]에서 비밀리에 버스를 운행 한다는 소식이 봄바람 불듯이 사찰 안으로 흘러 들어왔기에 사람들은 그것을 타려고 했다. 포카라와 카트만두로 가는 버스가 각각 한 대씩 있었다. 가격은 평소의 3배 이상. 하지만 사람들은 다른 대안이 없었기에 그 버스를 타야만 했다. 그도 그 버스를 타고 카트만두로 떠날 생각이었다. 그
전날 함께 룸비니의 사찰에 머물던 두 명의 남자가 먼저 포카라로 떠났기에, 사회적 혼란 상태는 어느정도 진정되고 있는 듯했다.



5. 
  룸비니에 남아 있던 여섯명의 사람들이 다시 소나울리로 아침 일찍 나온다. 그날 밤, 포카라와 카트만두로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위해서다. 나와 사람들은 호텔에서 반나절을 쉬면서 해가 기울어 어두워지기를 기다린다. 포카라로, 카트만두로 각각 자신의 길을 가야하는 사람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지금 우리의 상황에 대해서, 과거에 대해서, 그리고 미래의 여행에 대해서.

  거리에는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거리를 가득 메웠던 사람들이 하나 둘 씩 사라져간다. 어둠이 온 거리를 지배하자, 버스를 타기위해 많은 여행자들이 모여든다. 하지만, 버스는 단 두 대다. 포카라로 가는 버스 한 대. 그리고 카트만두로 가는 버스 한 대. 포카라로 가는 버스는 사람이 많아서 버스 지붕에도 사람이 올라탄다[포카라는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재미있는 광경이지만, 야간 버스이고, 지금 상황에 사고가 날 수도 있기에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카트만두로 가는 버스는 인원이 딱 맞았다. 저녁 8시. 버스 기사와 요금을 받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버스에 시동이 걸렸다. 자기들 끼리 무언가 말을 주고 받았다. 나는 어서 빨리 카트만두에 도착하기를 바랄 뿐이다.

  버스는 라이트를 켜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달빛에만 의지해서 도시를 빠져 나가려는 것이다. 게다가 버스는 단독으로 출발하는 것이 아니다. 10톤 트럭 뒤에 바짝 붙어서, 라이트를 끄고, 버스가 버스임을 부정한 채 운행하는 것이다. 소나울리의 버스 협회에서 웃돈을 받고, 여행자들만을 위해서 비밀리에 운행하는 버스
였기에, 진행자들은 조심스러웠다. 사람들은 우왕좌왕했지만, 출발전 큰 사고는 없었다.



6. 
  그는 운전석 뒤 둘 째 줄에 자리를 잡았다. 그의 앞 좌석에는 동행하는 여자 아이가 앉았고, 그 앞 운전석에는  칸막이가 쳐져 있었다. 그리고 운전기사의 옆에 보조석 자리에 세명의 외국인 여자가 앉았다. 그들은 버스가 떠나려고 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달렸다. 모든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다. 천천히, 트럭들 틈에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밤은 점점 깊어갔고 사람들은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피곤했다. 목적지로 가기 위해 많은 시간을 기다린 탔이었을까. 그도 음악을 들으며 슬며시 잠속으로 빠져들려고 하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버스의 옆면을 무언가가 툭툭 건드리는 소리가 났다. 둔탁한 소리였다. 뭐지. 그 때 갑자기 창문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 쨍그랑. 여자의 비명 소리가 들려 왔고, 버스는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밖에서는 괴성이 들려오고 있다. 버스 옆면을 두드리는 둔탁한 소리가 끊임없이 그의 귓등을 때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괴성을 질러댔다. 혼란스러웠다. 잠은 어느새 멀리 달아나고 없었다. 그리고 그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면서,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하지. 여기서 죽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채웠다.



7.
  버스는 멈추지 않는다
.
  버스의 앞 유리창이 박살났다. 파편은 산산조각 나서 이리저리 뒹굴고 있다. 하지만 운전기사는 버스를 세우지 않고 계속 몰았다. 마구 흔들리며 바닥 긁는 소리를 내는 유리조각들. 사람들의 괴성과 어디선가 들려오는 여자의 흐느낌. 그리고 멀어져 가는 굵직한 남자들의 목소리.
  깨진 유리창으로 차가운 산바람이 쏟아져 들어왔고, 운전석과 좌석 사이의 칸막이에 달린 문은 마구 흔들리면서 혼란한 상황을 어색하지 않게 표현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버스에 올랐던, 보조석에 앉아 있던 외국인 여자는 비명을 지르며 울고 있다.
  

  바깥의 함성이 서서히 잦아지다가 이윽고 들리지 않았다. 버스의 엔진 소리만이 어두운 공기를 울리고 있었다. 얼마 후, 운전기사는 버스를 세웠다. 운전기사 옆에 자리하고 있던 세 명의 여자 여행객은 울고 있었다. 한 명은 다리가 피범벅이었다.
  여행자들은 자신의 배낭에서 응급약을 꺼내서 전달해 주었다. 깨진 유리로 인해 가벼운 찰과상이 여러군데 난 것 같았다. 큰 상처는 아닌 것 같았다. 다행이었다. 운전기사에게 큰 돌덩이가 날아갔지만, 운전기사도 큰 상처를 입지 않았다.나는 혹시나 여기서 다시 소나울리로 돌아가야하는건 아닌가하는 걱정이 앞섰다. 여기서 돌아가면 모두 도루묵이다. 나는 또 다시 이 길을 지나올 자신이 없다.



8.
  여행자들은 서로 도울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도왔다. 운전기사는 선글라스가 필요했다.[유리창이 없었기에, 차가운 밤바람과 산속의 벌레들로 부터 눈을 보호해야 했다.] 
  버스는 다시 출발했고, 히말라야 산자락의 밤 공기는 차가웠다. 모두들 추위에 떨면서 히말라야의 산 속을 달렸다. 카트만두는 영원히 나올 것 같지 않았다. 그는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언제 또 다시 그런 상황이 발생할지 몰랐다. 히말라야 산맥 저 뒤편으로 태양이 고개를 내미려고 할 때, 도시가, 건물들이 보였다. 해가 밝으려 할 때 모두들 카트만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는 그날 소나울리에서 카트만두로 오던 길에 일어난 모든 일들이 꿈같이 느껴졌다.





- 카트만두 시내 데모현장



- 룸비니의 한국 사찰, 저 뒤에 공사중인건 대웅전. 황룡사 9층 목탑을 따라한 것.



- 룸비니의 밤. 룸비니의 밤에는 원숭이들이 괴성을 질러댄다.





- 국경(인도 쪽)




- 사이클 릭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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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이집트, 바하리야 - 인생의 가르침을 얻다. 사막에서 만난 사람.(Egypt, Bahariya)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2. 1. 11.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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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연(講演)
  우리는 주변에서 저명한 사람들이 초청되어 어떤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강연회가 열리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리고 누구나 한 번쯤 강연회에 참석하여[강연을 하는 사람이 자신이 평소에 알던 사람일 경우, 강연회에 참석하여 강연을 듣는 경우가 많다] 강연을 듣기도 한다. 특히, 당신이 만약 지금 대학생이라면, 강연을 들을 수 있는 기회는 더 많다. 각 대학에서는 해외 유수 대학의 석학이나 사회 저명인사를 초청하여 강연을 하는 경우가 많고, 총학생회에서도 학생들의 삶의 질 향상과 교양을 위해서 사회 여러 분야의 사람들을 초청하여 강연을 하고, 학생들은 그 강연을 듣는다. 또한, 시간이 허락한다면 초청 연사와 질의 응답을 하는 시간을 가지고, 함께 대화를 하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우리는 사회 생활[학교 생활, 취미활동, 직장 생활 등의 모든 활동을 포괄하는 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면서, 자신보다 좀 더 많은 경험을 한 사람[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 자신 스스로가 판단 했을 때, 본받을 점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말과 행동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게 된다[자신이 판단 했을 때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서도 배울 것은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자]. 
  흔히, 이런 사람을 일컬어 롤 모델[Role model]이라고 한다.

  이처럼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대화를 통해서, 혹은 그 어떤 사람의 행동, 행적을 보면서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을 가지게 되고, 스스로를 변화시켜 나간다. 다시 말해, 우리 스스로 지금 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자신을 발전시켜 나간다고 할 수 있다.


2. 이집트에서 만난 사람.

  이집트 여행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나는 며칠 시간이 남았기에 이집트 바하리야 사막에 갔다 와야겠다고 생각했다.[카이로에서 바하리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그 곳에 도착하면, 그 곳에서 사막 투어를 주선하는 사람과 협상을 해서 1박 2일 짜리 사막투어를 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버스를 타고 바하리야로 떠난다. 이번 여정이 이집트에서의 마지막 여정이 될 것이다[이집트를 떠나는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4일이 남은 시점이었다]. 버스는 사막을 가로지르는 검은 실선 위를 달린다. 앞뒤좌우, 사방이 모두 모래 이다. 뿌연 먼지 위로 태양이 홀로 불타고 있다. 
  휴게소에 들러 허기를 채우고, 더위를 피하기 위해 주위를 어슬렁 거리며 방황하고 있었다. 저 쪽에 같은 버스에서 내린 일본인 여자 여행객 두 명이 보인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바하리야에 가서 사막 투어를 할 것이냐고 물었다. 그녀들은 그럴 것이라고 대답한다. 오늘은 도착하면 호텔에서 쉬고, 내일 투어에 참여할 예정이라고 덧붙인다. 그들은 이미 호텔을 정해놓은 상태다. 나는 생각해본다. 바하리야에 도착해서 협상에 실패한다면, 어쩔 수 없이 호텔에 묵고 다음날 투어를 떠나야 한다. 모든 것은 불확실하다.

  버스는 지평선 저 끝에 있을지도 모르는 낭떠러지를 향해 계속 달린다.


△ 흑사막으로 가는 길.

끝없이 이어져 있는 도로, 그 위에 아무도 없다.



3. 흑사막과 백사막(Black desert and white desert) - 바하리야
  버스는 바하리야 거리에 승객과 짐들을 토해 냈다버스 주변에는 지프 몇 대와 택시들이 서 있다. 누군가 그를 향해 외쳤다. 미스터 스즈키?. 아니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본다. 그에게 스즈키냐고 물었던 한 남자는 계속해서 스즈키를 찾고 있었다.
  그는 이대로 호텔을 잡고, 여행사에 가서 사막 투어 문의를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어디로 가야 할까?. 그가 걸어야 할 방향을 정하고 막 발걸음을 떼려 할 때, 지프의 묵직한 경적이 그의 뒤통수를 때린다. 일 년 넘게 양치질 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하얀색 도요타 지프 한 대가 그의 곁으로 다가와 섰다. 
  안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사막 투어 갈꺼야? 갈꺼면 지금 같이 가자. 얼만데?. 150파운드. 음, 비싼데?. 그럼 140에 해줄게. 그래도 너무 비싸, 100파운드 해줘. 그건 안되고 그럼 120파운드 어때?. 그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오케이를 외쳤다. 보조석에 앉아 있던 한 일본인 남자가 같이 가자고 소리치며, 얼른 차에 오르라고 부추기고 있었다
.
그 남자가, 스즈키였다.

  그는 차에 오르며 생각 했다. 일단 지금 120에 합의를 봤지만, 나중에 더 깍아서 100까지 해야겠다. 그는 이미 시와 사막(Siwa desert)에서 1박 2일 사막 투어를 80파운드에 갔다 온 적이 있기 때문에 120파운드는 비싸다고 생각했다.

  지프는 사막으로 떠나기 전 미리 주문해 놓은 듯한 먹거리를 차에 실었고, 작은 상점에 들러 먹을 것을 추가로 좀 더 샀다. 그러고 나서 사막의 입구에 있는 찻집에서 차를 마시며 약간의 시간을 흘려 보냈다. 그런 뒤, 투어를 떠나는 두 남자[그와 스즈키]는  지프 뒤에 나란히 올랐고, 바퀴는 사막을 향해 굴렀다.


△ 검은 현무암으로 덮여 있는 흑사막(왼쪽)과 석회암이 있는 백사막(오른쪽)



4. 사막(desert) 속으로,
   나는 협상을 하면서 물었었다. 오프로드(Off road) 주행과 음식, 그 밖에 어떤 옵션이 포함되어 있냐고. [사실, 시와 사막(Siwa desert)에서의 투어가 나에게 있어 굉장히 만족스러웠던 상황이었기에 나는 바하리야 사막 투어에 더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다. 가격도 더 비싼데 당연히 더 재미있겠지?라고 생각하며.]
  흑사막을 지나 백사막으로 가서, 그 곳[백사막]에서 캠핑을 하는 일정이다  
사막의 입구, 카페에서 마신 민트차의 여운을 뒤로 한 채, 우리들은 사막을 헤집고 다녔다. 지프는 사막을 신나게 달린다. 스즈키는 마냥 즐거운 표정으로 이것 저것을 구경하며, 사진을 마구 찍어대고 있다. 흑사막. 독특한 사막이다. 표면이 시커먼 돌들로 덮여 있다. 하지만, 시와 사막[모래 사막]의 강렬한 이미지가 뇌리에 새겨져 있던 나로서는 만족할 수 없다[사실 좀 실망스러웠다]. 즐거움이나 만족감을[혹은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더구나, 이곳의 사막 투어가 시와 사막보다 더 비싼 금액이라는 것이 나의 기분을 더 나쁘게 할 뿐이다.

  검은색 화석으로 덮여 있는 흑사막. 그리고 하얀색 버섯 바위와 석회암으로 덮여 있는 백사막. 흔히 볼 수 없는 그런 사막이지만, 나의 마음은 즐겁지 않다. 마음 한켠엔 찝찝함이 남아 있다. 


△ 물을 마시러 온 '사막여우'.

우리가 캠핑하는 곳에서 귀를 쫑긋 세운 채 물을 마시고 있다.



5. 사막 속에서, 
  그들은 백사막 모래 위에 담요를 깔고, 지프를 바람막이 삼아 캠핑할 준비를 했다. 주변에는 하얀색 버섯 바위가 그들을 둘러 싸고 있다. 그와 스즈키는 여러 사진을 찍었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는 스즈키가 사막 투어를 위해서 엄청난 준비를 해 왔다는 것에 감탄을 했다. 스즈키는 이 사막 투어를 위해, 자신이 일본에서 준비해 온 CD[사막에서 듣기 좋은 음악 셀렉션]를 보여주었다. 수 십장의 CD가 케이스 속에 담겨져 있었다. 그들은 저녁 식사가 준비 되는 동안 그 음악을 들으며, 사막의 건조하면서 감미로운 공기를 허파 속으로 들여 보냈다.

  저녁 식사 준비가 다 되었다.고 운전 기사가 말했다. 치킨 바베큐가 숯불 위에서 노릇노릇하게 익어가고 있었고, 사막의 베두인들이 먹는다는 전통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전통 음식을 먹었다. 그러고 나서 황톳빛으로 변한 치킨 바베큐를 먹고, 맥주와 음료수를 마셨다. 운전 기사는 자신이 이집트의 한 고등학교 국사 교사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 주말에는 사막 투어 가이드를 하고 있다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러면서 물 한 컵을 떠서 앞에 놓아 두었는데, 그렇게 하면 사막 여우가 찾아와 물을 마신다는 말을 덧붙였다.

  해가 사막 저편으로 모습을 감추었을 때, 그들을 비추는 건 모닥불에서 흘러나오는 붉고 건조한 빛이 전부였다. 그들은 모닥불을 앞에 두고, 시간을 보냈다. 허리가 안좋다는 알리[운전기사 겸 가이드]에게 침을 맞으면 허리가 한결 좋아진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 그는 사막의 모래 위에, 포만감이 지배하고 있는 배를 대고 엎드려 허리에 스즈키가 놓아주는 침을 맞기도 했다[스즈키는 일본에서 한의사였기에, 항상 가방에 침을 가지고 다녔다].
 
그렇게, 달 빛 없이 별 빛 만으로 가득하던 밤이 지나고, 사막에는 지평선 너머로 아침 태양이 스믈스믈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 아침햇살.

백사막에서 맞이한 아침.



6. 돌아오는 길.
  나는 생각한다. 시와 사막(Siwa Desert)과는 다른 매력이 있지만, 그래도 시와 사막 때 만큼 재미있었던 것 같지 않다. 아직 돈을 지불하지 않았으니, 이따가 돈을 줄 때 다시 한 번 더 협상을 해서 내가 원하는 금액인 100파운드만 줘야 겠어.

  어느덧, 지프는 바하리야 시내로 진입하고 있다. 알리는 한 시간쯤 뒤에 카이로로 가는 버스가 올 것이이니 저쪽 벤치에 앉아 기다리면 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나에게 투어 비용을 지불하라는 메시지가 담긴 눈빛을 보낸다. 나는 이제 말을 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저런 이야기로 말을 시작했다.
  나는 몇 마디를 덧붙여 나의 입장을 밝힌다. 하지만, 알리는 완고하다. 나도 더 이상 내 주장만을 말하면서 내 뜻을 고집할 순 없다. 120파운드를 알리에게 건네주고 지프에서 내린다.

  나와 스즈키는 지프에서 내려 간단하게 끼니를 때웠다.  버스 정류장 옆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서 버스를 기다린다. 메마른 태양이 흙먼가 피어오르는 거리를 광통하고 있다. 먼지들이 다시 그 태양빛을 관통한다. 나는 몽상에 잠겨 있다.
  그 몽상을 깨뜨리며, 스즈키가 나에게 말을 걸어 왔다.

  당신은 지금 막 다녀온 사막 투어가 마음에 들지 않았나요? 나는 그의 질문에 답한다. 며칠 전 시와에서 사막 투어에 다녀왔는데, 그곳은 이곳보다 가격도 저렴하고 더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사실, 나로서는 이번에 간 사막에 좀 실망했고, 재미도 별로 없었어요. 
  스즈키는 말한다.
 나는 이 투어를 가려고
카이로에서 예약하고 왔는데, 얼마를 냈는지 아세요? 나는 스즈키가 얼마를 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 없었다. 처음에 운전기사가 나에게 제시한 150파운드 정도 일거라고 생각을 하고, 150파운드 정도 아니냐고 말했다. 하지만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전 500파운드를 내고 왔어요. 카이로에서 말이죠.라고 스즈키가 말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내가 돈을 낼 때 제시된 옵션에는 치킨 바베큐 한 마리, 맥주, 과일 등 다 포함된 것이었어요. 당신은 120파운드를 냈죠? 그리고 나와 똑같은 옵션을 제공받았어요. 사실, 그 옵션은 나를 위한 것이었는데, 당신이 참가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반으로 나뉜거죠. 그렇지만, 전 마음 상하거나, 기분나쁘지 않아요. 당신을 원망하지도 않고요. 왜냐하면 저는 이번 사막 투어에서 500파운드 이상의 즐거움을 찾았고, 그 이상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하거든요.

  나는 생각한다. 치킨, 맥주, 과일 등 모든 것이 스즈키의 몫이 었다. 중간에 내가 끼어들게 됨으로써 모든 것이 반으로 나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스즈키보다 380 파운드나 적은 돈을 지불했다. 모든 조건을 공유 하면서도. 
  그렇지만,  스즈키는 이번 사막 투어에 대해서 만족을 했고, 즐거웠고, 자신의 인생에서 다시 없을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 백사막의 풍경.



7. 머릿속을 맴도는 그 말. 

  버스가 흙먼지를 날리며 굴러와 그들 앞에 멈춰 섰다. 그들은 버스에 올랐다. 둘은 함께 좌석의 한쪽을 차지했지만, 시선은 서로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각자 사막 건너의 서로 다른 지평선 너머의 절벽을 바라보며, 다른 생각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가 부끄럽다고 느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스즈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그는 바하리야 사막 투어를 하는 동안, 머릿속 한쪽에 생겨난 어떤 생각때문에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다. 시와 사막 투어와 비교 때문에 제대로 된 즐거움을 찾지 못했던 것이다. 그의 마음 한편에 자리잡은 불만이 바하리야 사막 투어의 재미를 갉아 먹은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시와 사막은 시와 사막 나름대로의 매력과 재미가 있는 것이고, 바하리야 사막은 바하리야 사막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다는 것을. 그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집트 여행의 마지막 여정. 바하리야 사막 투어의 끝자락. 그는 [인생의 대선배]스즈키에게서 [단순하지만 망각하기 쉬운]즐겁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것이었다. 그는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모래들을 바라보며, 계속 무언가를 되뇌이고 있었다.

  당신은 지금, 여기에서 최고의 만족, 최고의 즐거움, 최대한의 행복을 이끌어 내려고 하지 않았어요. 당신이 100파운드, 500파운드, 1000파운드, 얼마의 돈을 내던 그건 상관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오직, 당신과 나에게 중요했던 건 이번 여행[바하리야 사막 투어]에서 최고의 만족, 최고의 즐거움, 최대한의 행복을 누리는 거였어요. 저는 제 목표를 이루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가 얼마를 냈던, 당신이 얼마를 냈던, 제가 낸 돈이 아깝지 않아요. 돈을 얼마 내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 최대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을 찾고, 가치를 뽑아내면 되는 거잖아요. 지불한 돈 이상의 가치를 찾아서 즐기면 되는 거에요. 우리가 함께 보냈던 그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잖아요. 그러니, 우리는 최대한 행복하게, 즐겁게 즐기는 수 밖에 없죠. 

  그 순간에도, 버스는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며 사막 위를 굴러가고 있었다.



2. 일기장(Diary)
  요즘은, '일기장(日記帳)'이라는 말을 쓰기보다는, '다이어리'라고 부르는게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 그런 것들을 누구나 하나씩은 들고 다닌다. 흔히, "다이어리를 쓴다"고 말하고, 그때그때 떠오르는 것을 적거나, 어떤 날의 생각을 네모로 생긴 수첩에 적어 둔다. 이런 용도 말고도,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여러가지 용도로 다이어리를 쓴다.

  집안의 짐을 정리 해야할 일이 생겼다. 나는 이사를 가야 했다. 
  
  이사를 가기위해 짐을 정리하는 행위에는 단순히 짐을 포장하는 행위 말고도 다른 행동들을 수반하게 된다. 그 동안 찾아볼 수 없었고, 이미 머릿속 기억에서 지워져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여러가지 물건들이 책상 서랍의 구석에서 나오기도 하고, 책더미 사이에서 추억의 편지나 엽서 같은 것이 흘러 나오기도 한다. 그렇게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어떤 사람의 흔적이 불쑥 나타나는가 하면,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지워져 있던 순수하던, 풋풋했던 옛날의 기록들이 고개를 슬며시 내밀기도 한다['추억'과 함께 말이다].
    짐을 정리하면서 나오는 몇 권의 작은 노트[또는 수첩]. 머릿속 저편 망각의 그물 속에서 어떤 기억을 슬며시 꺼낸 뒤, 그 작은 노트를 조심스럽게 펼칠 때. 그럴때면 항상, 왠지 모를 가슴 벅찬 설렘이 몰려 온다. 어느새 손끝에는 옛날 나는 무슨 생각을 했었더라?.하는 호기심이 맺혀있다. 한 장. 한 장. 조심스럽게 과거의 시간을 넘겨 가며, 옛날 썼던 글들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순수하던, 힘들었던, 고민이 많았던, 그런 시절들이 페이지 저 너머에 펼쳐 져 있다.

  서랍의 한 귀퉁이의 어둠 속에서 잠을 자고 있던 일기장, 내 손끝에 닿았다. 일기장? 초록과 하얀색이 부드럽게 뒤섞여 파스텔톤으로 은은하게 빛나고 있는 딱딱한 표지. 길쭉한 모양의 노트였다. 고등학교 2학년때 부터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생각 날 때마다 간간히, 글자들을 묻어 놓았던 일기장이다. 무슨 내용이 들어있을까? 그 시절, 나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라는 호기심이 나를 둘러사고 있었다. 어느새 내 손은 일기장을 펼쳤고, 그 곳에는 지금의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이야기와 생각들이 흐르고 있었다. 내가, 이.랬.었.구.나..

  나는 [적어도 일기장을 넘기던 그 순간까지]고등학교 시절 3년을 되돌아 봤을 때, 내 자신 스스로가 힘들거나 괴롭다고 느꼈던 적이 거의- 없었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일기장은 그제서야 나에게 말해주고 있었다[비록, 그 날이 심하게 괴로웠던 날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시절 나는 힘들어 하고 있었다. 힘들고 고독한 싸움을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고. 성적은 원하는 만큼 올라주지 않았고, 일기장 속에는 힘들어 하는 내가 있었다. 어느덧, 고3 후기. 나는, 그 시절을 나름대로 즐겼다고 믿고 있었지만, 그것은[그렇게 믿은 이유는] 단지 즐거웠던 기억의 파편만이 머릿속에 남아버린 탓이었다. 그 시절에 내가 끄적였던 일기장에는 그 당시의 [어쩌면 진실된]내가 남아 있었다. 그 시절을 즐기지 못하고 있던 내가.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이 유행하던 시절, 나는 피할 수 없었지만, 즐기지도 못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과거의 시간. 일기장이 너는 그랬어.라고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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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몬테네그로, 부드바 - Save me! 당신은 내 생명의 은인(恩人) (Montenegro, Budva)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1. 12. 15.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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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름(夏, Summer)
  
  여름.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를까. 찌는듯한 무더위, 이글거리는 태양과 아스팔트 위에서 춤추는 아지랑이, 불면증, 방학, 휴가, 시원하게 보이는 바다와 백사장이 있는 해수욕장? 

  '여름'이라는 말을 가지고 생각해 낼 수 있는 것은 많지만, 그 중에서도 여름을 가장 상징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은 파란 바다와 백사장이 어우러진 '해수욕장'과 '피서객'이다. 많은 사람들이, 휴가철 해수욕장을 찾는다[중고등학생, 대학생이라면 누구라도 친구들과 함께 해수욕장에 갈 계획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고, 직장인들도 여름 휴가에는 해수욕장에서 해수욕을 좀 즐기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해수욕장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다양한 즐거움을 제공해 준다. 해수욕장은 자연이 우리에게 준 하나의 혜택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해수욕장은 해수욕'만' 하라고 있는게 아니기에, 사람들은 해수욕장을 많이 찾게 되고, 여름을 상징하는 중요한 하나의 장소가 된다.

  바다로 가는 기차 안은 즐겁다. 들뜬 마음으로 기차에 오른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 작은 가방을 들고 바다로 간다. 해수욕장엔 수 많은 인파가 들이닥치지만, 그것 때문에 불쾌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화가나지도, 짜증나지도 않는다. 모두들 즐겁게 놀러 온 것이기 때문에 많은 인파들조차 반갑다. 하지만, 너무 들뜬 나머지 몇몇 사람들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을 한가지 잊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해수욕장에는 지켜야할 규칙이 있고, 항상 '안전'을 위해서, '사고 예방'을 위해서 뒤에서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더 재미있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지켜야할 규칙이 있는 것이다.

  해수욕장에는 피서객, 동네 주민, 안전요원(Life guard), 경찰, 소방관, 상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그런 사람들이 서로 상호작용을 하며 질서를 만들어 간다. 모두가 즐겁게 피서를 즐기기 위해서는 질서가 지켜져야 하고, 피서객들은 안전 수칙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해수욕장에서 즐거운 기억을 가지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불쾌하거나, 안좋은 기억을 가지고 돌아가기도 한다. 


  당신이 언젠가, 여름에 관한 기억을 더듬을 때. 해수욕장에서의 어떤 일에 대한 기억은 당신에게 조금은 특별하면서, 강렬한 이미지로 다가올 수 있다.



2. 동해(東海). East sea[Sea of between Korea and japan. not sea of japan] 

  학창 시절, 매년 여름이면 바다로 향했다. 보충 수업이 시작되기 전, 친구들과 기차를 타고 바다로 갔다. 동해 바다, 남해 바다, 해수욕장에서 여름을 만끽하기 위해 떠났다. 
  
  그 해 여름. 어김없이 친구들과 함께 바다로 향했다. 고등학교 1학년. 7월 중순을 막 지난 정동진 바다는 아직, 한적했다. 태양이 백사장을 향해 떨어졌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거센 파도를 싣고 왔다. 어릴 때 부터, 바다에서 자주 놀았던 나는, 물개처럼 바다를 휘젖고 다녔다. 파도에 몸을 싣고, 파도를 타기도 했다.

  문득, 호기심이 생겼다. 친구들과 함께 내기를 했다. 저기, 저 뒤에 보이는 안전선까지 제일 늦게 갖다오는 사람이 통닭 쏘기. 친구들과 나는 미친듯이 팔과 다리를 바다 속에서 휘저었다. 파도가 내 면상에 부딪치며 깨졌지만, 나는 굴하지 않았다. 꼴찌만 안하면 되는거야. 무사히 안전선을 터치 햇고, 이제 다시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나는 파도에 몸을 실었다. 파도가 햐얀 물거품으로 변해 모래 속으로 스며드는 곳까지만 가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안심했던 탓일까? 나는 지쳐있었고, 갑자기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이쯤 왔으면 내 발이 바닥에 닿을 거야.라는 생각을 했고, 나는 수면 아래 보이지 않는 바닥을 짚기 위해 발 끝을 아래쪽으로 내려 꽂았다. 그 순간, 내 몸은 걷잡을 수 없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당황스러웠다.

  호흡 조절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내가 있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파도는 거칠게 몰아치고 있었다. 당황한 내 몸은 순간적으로 허우적 댓다. 바닷물이 내 입과 코를 통해서 마구 쏟아져 들어왔다. 긴장을 해서인지 설상가상으로 다리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통증이 찾아왔지만, 그 통증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주변에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았다. 나는 소리치려 했지만, 입을 벌리는 순간마다 바닷물이 내 입속으로 파고 들어, 내 목소리를 집어 삼켰다. 필사적으로 팔을 저었다.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일 수 없었다. 움직일 수 없는, 통증만이 느껴지는 다리가 내 몸뚱어리에 달려 있었고, 그 순간 나를 살릴 유일한 도구는 양쪽 팔밖에 없었다.

  그렇게 허우적대기를 몇 십 번. 어느새, 내 몸은 파도가 부서져 하얀 거품으로 변하는 지점에 도착해 있었다. 파도의 조각이 내 몸을 어루만졌다. 파란 배경에 노랗게 물들었던 조각 구름들이 서서히 하얗게 변하는 모습이 보였다. 어휴, 죽다 살아났네.
 
  그 사건이 있고 난 후, 발이 닿지 않는 곳, 바다가 두려워 졌다.
   


3. 바다로 가는 시기.

  태양(日)은 7월을 지나 8월의 문턱에 다다랐다. 더위는 절정으로 치솟고 있다. 나는 아드리안해[adrian sea, 이탈리아와 발칸반도 사이에 있는 바다]로 잠기는 태양을 뒤로 한 채, 사라예보[Sarajebo,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시외버스터미널에 있었다.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오늘 밤, 보스니아와 세르비아의 국경 도시 바르디스테[Vardiste]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그 버스를 타고, 국경으로 간 다음, 기차를 타고 몬테네그로[Montenegro]의 해안 도시 바르[BAR]로 향할 예정이다.

  어둠이 깔리자, 버스는 출발한다. 어둠에 휩쌓인 사라예보에는 불빛들이 반짝인다. 아름다워 보인다. 나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밤에 피는 국가'라고 생각한다. 밤에 피는 국가.

  모스타르[Mostar,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남부에 위치한 도시]의 거리에 내가 서 있었다. 거리에는 사람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오직 내가 만날 수 있었던 건, 내전(內戰)의 흔적들 뿐이었다. 텅빈, 건물들. 폐허가 된 건물들이 도시 곳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빈 건물들의 벽에는 총탄 자국이 선명했다. 건물의 2층에 위치한, 예전에는 창문이 달려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그 곳의 주위에는, 수 많은 총탄의 흔적이 있었다. 전봇대에도, 강위를 가로지르는 다리의 기둥에도. 온통 총탄의 흔적이었다. 관광객들이 찾아가는 상점가 주변을 제외하고는 사람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이글거리는 태양이 모습을 감추고, 도시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가로등에서는 희미한 빛이 새어 나와 힙겹게 거리를 비추고 있었다. 길가, 작은 공원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고 있었다. 저녁이 되자, 사람들이 어딘가에서 모여 들었고 몇몇 무리의 사람들은 테이블에 앉아 음료를 마시기도 했다. 아이들은 공원 주위를 뛰어다녔다. 낮에는, 뜨거운 태양빛이 채우고 있던 자리에, 어둠이 미처 자리잡기 전에 사람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밤에 피는 도시'

  차장이 나를 깨운다. 나에게 뭐라고 말을 하고 있다. 아마도, 내가 내려야 할 곳이라고 말하는 거겠지. 나는 내 짐들을 주섬주섬 챙겨들고 버스에서 내린다. 새벽이다. 피부에 닿는 공기는 약간 차갑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산-속 작은 도시의 밤 공기는 차다.

  낡고 허름한 기차역 안으로 들어간다. 매표소에 위에 불안하게 매달린 시간표를 확인하니, 내가 알던 그대로다. 조금 후면, 기차가 도착할 것이다. 나를 아드리안해의 휴양 도시로 실어다 줄 기차. 간혹, 열차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화물 열차들이다. 그 열차들을 몇 차례 보내고 난 뒤, 기차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기차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4. BAR[바르]

  날이 밝았다. 기차는 종착역에 멈춰섰고, 많은 사람들이 기차에서 내렸다. 그도, 왁자지껄 떠들며 역사를 떠나는 무리에 휩쓸려 역사를 빠져나왔다. 간단하게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빵을 사 들고, 주변을 둘러 보았다. 그는 부드바[Budva]로 갈 생각이었다. 바르[BAR]에서, 부드바로 가는 미니버스(봉고차)가 역 앞에 서 있다. 그는 운전사에게 부드바로 가는 것이 확실하냐고 다시 한 번 물었다. 운전사는 간다면서 그의 가방을 차에 실었다. 뒷 좌석에 그의 가방을 싣고, 그 옆에 앉으라고 권했다. 몇 사람이 더 차에 올랐다. 자동차는 부드바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니버스는 해안도로를 신나게 달렸다. 해안 절벽 아래에는 아름다운 섬들이 있었다. 와- 그는 속으로 감탄을 하며, 언젠가는 저런 곳에서 시간을 보내보고 싶다고 생각을 한다. 봉고차 바퀴 아래로 많은 해수욕장들이 지나가고, 아름다운 해안선이 지나간다. 그는 바깥 경치를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는 사이, 자동차는 산을 한바퀴 돌아 목적지까지 도착했다. 부드바.

  그는 번화한 거리에 내동댕이 쳐졌다. 자동차와 사람들과 상인들이 뒤엉켜 있었다. 여기도 지금은 휴가철이라서 그럴거야.라는 생각을 해 본다. 리조트 건물 안에 보니, 물품 보관소가 있다. 그는 그 곳에 일단 큰 배낭을 맡겨 두기로 했다. 작은 크로스백 하나, 비치타올, MP3플레이어와 돈을 챙겨서 리조트 물품 보관소를 빠져나왔다. 오늘은 어디서 잠을 잘까.라고 그는 잠시 고민을 해 보지만, 마땅히 답은 나오지 않는다. 일단, 바다로 가서 놀아야 겠다는 생각이 먼저다.

  해변으로 가는 길, 많은 사람들이 있다. 많은 상점들이 있다. 노점상들도 많다. 여느-바다와 비슷한 풍경이다. 음악CD를 싸게 팔고 있는 노점상을 발견하고 음악을 들어보기도 한다. 길거리에서 파는, 구운 옥수수를 사먹기도 하고, 노점상에서 연인들이 하는 게임을 구경하기도 한다. 그는 책[론니플래닛]을 펼쳤다. 아, 이곳으로 가 봐야 겠군.



5. Old catsle, Mogren beach.

  아드리안해의 해안 도시들은 성(城)을 가지고 있다[성(城)을 가졌다고 하기 보다는, 오래된 성벽을 가지고 있고, 그 성벽 안쪽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보는 편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해안선을 따라서, 성벽이 세워져 있고, 그 안쪽으로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고풍스러운 느낌이 든다. 옛날, 대항해시대의 흔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무역, 상업을 통해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성을 짓고, 그 안쪽에 살면서 해적들에 대항하는 그런 것을 상상했다. 지금은, 이 성벽이 바다와 조화를 이루어 멋진 풍경을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지금 이 성벽의 의미는, 바다와의 조화를 통한 아름다움이다.
 
  스플리트[Split, 크로아티아의 남부 해안도시. 미항(美港)이라고 불릴만큼 아름다운 곳이다]에서 그랬듯이, 나는 성안 이곳저곳을 누빈다. 골목과 골목을 휘젓고 다니면서 옛 정취를 느껴본다. 성벽 위를 걸으면서, 바다를 바라보기도 한다. 내가 하고 있는게, '성벽 걷기'일거야. 라고 생각한다. 성벽 안쪽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들이 있고, 바깥쪽은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져 있다. 바다가 태양빛을 반사시킨다. 눈이 부시다.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라고 표현해도 될 것 같다.


  아침은 빵으로 간단하게 때웠다. 부드바에 도착해서, 너무 돌아다닌 탓인지 배가 고팠다. 성벽 안쪽에는 많은 식당들이 있었다. 관광지 느낌이 물씬-풍기는 그런 곳이기에 관광객들을 상대로하는 식당과 카페테리아가 많이 있었다. 이런곳에서 바가지 쓰기 쉽상인데.라는 생각이 들지만 나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다. 나는, 몇 군데 식당을 돌아다니다가, 현지인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식당으로 들어가, 간단하게 식사를 해결한다. 비싸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관광지 식당이라는 것을 고려 할 때]. 맛도 나쁘지 않았다. 

  이제 해변으로 가볼까. 모그렌비치[Mogren beach] 가 봐야 겠군. 책에 많은 해수욕장들이 소개되고 있었지만, 나는 모그렌비치로 가기로 했다. 모그렌비치를 설명하는 많은 문장들 중에, 나의 호기심과 기대감을 자극하면서 나를 그곳으로 향하게금 만든 문구가 있었다. 

  "부드바에 있는 해수욕장들 중에서 멋진 경치를 가진 곳 중 하나이다. 또한 이곳은 많은 글래머들이 찾는 곳이다."



6. 해수욕.

  그는 모그렌비치(Mogren beach)를 찾아갔다. 태양이 머리위를 지나간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해수욕을 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이었다. 모그렌비치로 가는 입구는 절벽 아래의 작은 공간을 지나가야 했다. 그가 절벽의 모퉁이를 돌자, 해수욕장 입장료를 내는 곳이 나타났다. 모그렌비치는 입장료를 내야했다. 그는, 입장료 2Euro를 지불하고 해수욕장의 모래위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 보았다. 설마 내가 낚인 건가. 라는 말을 입속에 머금었다.

  그는, 주위를 둘러 보면서 깨달았다. 아, 실수 했구나.라고 생각을 했다. 해수욕장엔, 얼핏보기에도 여자보다 남자가 더 많은 것 같았다. 모든, 남자들이 그의 생각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해수욕장을 찾은게 틀림 없었다. 돈을 내고, 입장한 해수욕장이니 그는 해수욕이나 즐겨야 겠다고 생각하고, 절벽아래 그늘진 공간에 비치 타월을 깔고 누웠다. 물 위를 둥둥 떠다니는 사람들이 보였다. 신기했다. 어떻게 저렇게 자연스럽게 물 위에 사람들이 떠 다닐수가 있지?

  바다 위로 사람들이 떠다녔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도, 유유히 흘러 다녔다. 그는 신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바다속에 들어가면 저렇게 뜰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아직 바다에 대한 공포증을 떨쳐내지 못한 상태였다. 그는 물 속으로 들어갔다. 물은 너무나도 깨끗했다. 경치도 좋은 편이었다. 그는 가까운 곳에서 몸을 풀면서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조금씩 조금씩, 발이 닿는 곳에서 헤엄을 치면서 자신감을 키워나갔다.

  안전선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안전선 바깥에도 사람들이 둥둥 떠다녔다. 저렇게 멀리까지 나가도 되는걸까.라는 의문을 가지기도 했지만, 그건 그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여유롭게 물 위에 떠 있는 사람들을 보니 그도, 안전선까지라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위험한 발상이었지만, 그는 어느정도 자신감을 얻은 상태였기에 충분히 저 멀리까지 헤엄쳐서 갔다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갈까 말까, 고민을 했다. 비치 타월에 앉아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저- 사람들 처럼. 

  물 속으로 뛰어 들었다. 바다라고 하기엔 물이 너무 맑았다. 생각보다 깊기도 했다[너무 맑아서, 상대적으로 얕아 보였다]. 그는 헤엄을 쳐서 안전선까지 왔다. 꽤 먼거리를 헤엄쳐서 왔다. 뒤를 보니, 백사장까지 거리가 꽤 되어보였다. 그는, 막막했다. 일단 안전선까진 왔지만, 다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태였다. 그는 그가 온 만큼 다시 되돌아 가야했다. 덜컥- 겁이 조금 나기도 했다.

  크게 숨을 몰아쉬고- 다시 헤엄을 쳤다. 어느 정도 왔을까, 정신없이 헤엄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너무나도 더디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생각보다 더디게, 더디게 앞으로 나아갔다. 힘이 부쳐왔다. 하아, 하아, 하아, 하아, 헉,헉,헉,헉-  그 순간이었다. 그는 왼쪽 다리에 큰 통증을 느꼈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다리 근육에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그가 큰일 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는 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물을 먹었다. 필사적으로 물 위로 다시 솟아올라서 허우적 댔다. 소리쳐야 했다. Help me! help me! 라고 머릿속에서 소리치라고 명령어를 입력하고 있었지만, 입은 말을 듣지 않았다. help me 라는 말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해변에 있던 사람 몇 명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가 왜 그렇게 허우적 대는지는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외치기 시작했다. '헬프미'가 아닌 '살려줘!'라는 소리가 그의 입 밖으로 새어나왔다.

  물을 몇 모금이나 마셨을까. 그가 '살려줘'라고 몇 번 외쳤을 때, 해변에 있던 누군가가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는 그의 목을 껴안고, 뒤로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그는, 나무토막처럼 둥둥 떠 있었다. 최대한 몸에서 힘을 뺐다. 그들은 곧 해변으로 올라왔다. 왓해픈? 이라고 그를 구해준 남자가 물었다. 그는, 숨을 고르며 대답했다. 다리 근육이 마비가 됐어. 그러자, 그를 구해준 남자는 그의 다리를 부여잡고, 마사지를 해 주기 시작했다. 그의 입에서 작은 소리가 굴러 나왔다. 죽다 살아났네.


 
7. 라쇼[Raso]

  나를 구해준 그 남자의 이름은 '라쇼'라고 한다. 브라질 출신이인데, 일 때문에 몬테네그로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나는 고맙다고 말한다. 리고 한국에서 온 여행객이라고 소개했다. 해수욕을 즐기러 왔다가 물에 빠진 것이라고 덧붙인다. 나는 가방을 뒤지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하회탈 열쇠고리를 꺼낸다. 그에게, 전해준다. Korean tradtional mask. it's for you. thank you.

  라쇼와 나는 이야기를 좀 나누다가, 헤어진다. 나는 비치타올을 접어 가방에 넣고, 모그렌비치를 떠난다. 힘든 하루다.





 

- 출항을 기다리는 배들, 스플리트 항구



- 모스타르, 풍경들.


- 모스타르


- 모스타르, 세계문화유산



- BAR 역



- 골목과 골목 사이


- 바다와 부드바 성



- 성벽과 바다



- 부드바


- 모그렌비치(Mogren beach)



- 부드바(Bud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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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시리아, 하마(Hama) - 만난다는 것은 헤어짐과 동의어 (Syria, Hama)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1. 12. 10.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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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남. 만나다.

  만나다.【…을누군가 가거나 와서 둘이 서로 마주 보다. 혹은, 인연으로 어떤 관계를 맺다.는 의미로 많이 쓰이는 말이다. 만난다는 것. 그것은 약간의 설렘을 수반한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약속된 시간에, 약속된 장소에서 누군가를 기다릴 때, 그 기다림 속에는 설렘이 깃들어 있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이 좋은 이유는, 만나는 행위가 이루어 지기 전 어떤 일련의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만나기 전, 당신의 마음 속에는 만날 대상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담겨있을 것이고, 그[또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그 사람을 기다리는 행위 속에는 기대감[상대방이 언제, 어떤 모습을 하고 나타날까.같은 부류의 기대감]과 설렘이 있기 때문이다.

  황지우 시인시(詩) 중에는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라는 시가 있다.
   네가 오기로 한 그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 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다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에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후략….


  우리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불과 15년 전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약 15년전 유행하던 PC통신 천리안, 나우누리 등에서 서비스하던 채팅을 비롯해서, 인터넷을 이용하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채팅 서비스를 통해 대화를 나누고, 동호회에 가입을 하고 모임을 갖기도 한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대화상대를 찾아 대화를 하고 만남을 가지기도 한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사람을 만나더라도, 그 곳에 항상 존재하고 있는 것은 바로 설렘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설렘이 있던 자리를 이별[헤어짐]이라는 녀석이 채우게 된다. 요즘 처럼, 사람을 쉽게 만나는 시대에는 헤어짐도 더 빨리, 쉽게 찾아오기 마련이다.

  여행.을 하다보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 중에서도, 여행을 하고 있는 다른 여행자들을 만날 수 있다.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여행자들에게는 서로에게 끌릴 수 밖에 없는 요소가 있다. 그들은 서로가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는 사실. 이런 이유로, 여행자들은 서로에게 많은 경계를 하지 않으며, 좀 더 포용적인 마음을 가질 수 있다 . 하지만 알고 있다. 누가 말하지 않더라도, 알고 있는 한가지 사실.

  우리들은 언젠가는 헤어져야 한다.사실.

 
2. 어떤 경우-

  [지금은 상상 할 수 없을지도 모를 사람이 많이 있겠지만] 휴대폰을 가진 사람을 주변에서 찾아보기 힘들던 시절이 있었다[그 시절은 '삐삐'와 '공중전화'그리고 '집 전화'가 긴요한 통신 수단이었다]. 그 시절, 인터넷이라는 것이 서서히 보급되던 시절이었다. 모뎀이 "삐이이-지지직'대는 소리를 내며, 집 전화를 불통상태로 만들면, 온라인 세상이 열렸다. 그 시절, 나는 매일 밤 [PC통신]천리안에서 나와 다른 곳에 사는 누군가와 대화를 하기 위해 채팅방을 찾았고, 다른 사람들이 올린 자료를 보기 위해 자료실을 뒤적거렸으며, 동호회라는 곳에 가입을 해서 여러가지 글과 정보를 공유했다. 
  몇 년 후, 하나포스, 메가패스 등의 초고속 인터넷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하나, 둘씩 천리안을 떠났다[가입해지 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나와 돈독한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은 하나, 둘씩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갔다. 그 때, 미처 나의 연락처를 알려 주기 전에 갑작스럽게 해지가 된 경우도 있었고, [멋있는 척 하며]통신[그 때는 '온라인'을 지칭하던 말]에서 만난 관계는 통신에서 끝내자.라는 말을 하며 관계를 정리하기도 했다.

  천리안, 나우누리 등 PC통신 시대를 지나, 랜선(LAN), 무선인터넷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많은 온라인 커뮤니티들이 활성화 되었다[프리챌, 다모임, 세이클럽...다음 카페, 네이버 카페 등].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끼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교류를 하면서 친분을 쌓기도 하고, 정모를 통해 친목을 다지기도 했다. 그렇게 새로운 만남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그런 만남 속에서도 헤어짐은 늘 존재했다. 갑작스럽게, 친하게 지내던 누군가가, 돌연 - 클럽을 탈퇴해 버리고. 휴대폰번호 마저 바뀌어 버리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 그럴 때면, 이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이제, 그 사람과도 끝났구나.  

  온라인, 통신 매체를 통해서 만난 사람과의 관계는 통신 기기, 통신 매체의 단절이 발생하면- 그 사람과의 관계도 단절이 된다. 어떻게 본다면, 참으로 맺고, 끊기 쉬운 인간관계다.



3.  하마(Hama, 시리아 중부의 도시. 수차(水車)가 유명하다)

  라타키아(Latakia)를 떠난 버스가 하마 버스터미널로 들어오고 있다. 하늘은 파란 바다에 흰 물감을 풀어 놓은 듯 하다. 한 낮의 버스 정류장은 뜨겁다. 태양 나를 비추고 있다. 나는 어디로 가야하지?

  일단, 하마로 돌아왔다. 아니, 돌아왔다고 하기보다는 하마에 도착했다고 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알레포(Aleppo)에서 다마스커스(Damascus)로 향하는 버스에서 몸을 실었을 때, 중간 기착지가 하마였다. 그 때, 나는 하마의 버스터미널에서 차를 마셨다. 옆 자리에 앉았던 한 남자가 버스 티켓에 붙어 있는 쿠폰으로 차를 마실 수 있는 곳을 안내해 줬었다. 하마로 이렇게 일찍 돌아올 줄 몰랐다. 나는 막막했고, 피곤했다. 어제는 라타키아 버스터미널의 벤치에서 노숙을 했다.

  지도 한 장 없다. 어디로 가야 할 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바로보고 있는 방향도 모른다. 아는 사람도 없다. 아랍어도 할 줄 모른다. 도대체, 지금의 나는 할 줄 아는게 없다. 나는, 버스터미널 주변에서 사람들에게 말했다. 시계탑이 어디에 있는 줄 아냐고.

  터키 아다나에 있을 때 인터넷으로 검색을 했다. 하마. 하마에 가면 리아드 호텔(Riad hotel)이 있다. 그 곳은 한국 사람들과 일본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그럼, 그 곳으로 가면 뭔가 정보를 얻을 수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 하마에 가면 리아드 호텔로 가면 되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지금, 리아드 호텔에 가고 싶지만, 갈 수가 없다. 어디로 가야하지? 몰랐다. 딱, 한가지만 빼고.
호텔 근처에, 시계탑이 있다는 정보. 시계탑으로 가면 뭐라도 해결 되겠지.라는 생각에 사람들에게 말했다. 클락타워. 클락타워. 사람들은 알아 듣지 못했다. 내 손목의 시계를 가리키며, 타워, 타워를 외쳤다. 나에게 시간을 가르쳐 준다. 시간은 나도 알고 있다고!



4. 시계탑.

  태양이 큰 배낭을 메고 있는 한 남자를 비추고 있다. 그는 지쳐 보인다. 사람들에게 뭔가 도움을 요청하는 듯 했지만, 만족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는 시계탑을 찾아가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근처에 있는 리아드호텔을 찾아가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는 생각 했다. 시계탑은 보통, 시내에 있다. 그럼 시내로 가자.라고. 그리고, 다시 말했다. 시티, 시티 센터. 그러자 한 남자가, 손짓을 한다.

  그는 그 곳으로 몸을 움직였다. 작은 미니버스를 타는 곳이다. 거기서 물었다. 클락 타워, 시티, 시티 센터. 작은 봉고가 그를 싣고 달리기 시작했다. 운전기사가 그에게 뭔가 말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대답했다. 클락 타워, 리아드 호텔, 시티 센터. 그 때, 보조석에 앉았던 남자가 리아드 호텔! 이라는 말을 내뱉는다. 작은 봉고는 어디선가 멈췄고, 나에게 내리라고 한다. 그러더니, 보조석에 앉은 남자가 손짓했다. 리아드 호텔쪽을 가리켰지만, 그는 거기에 리아드 호텔이 있는 지 모른다. 그는 그 쪽으로 걸었다.

  거리의 사람에게 물었다. 리아드 호텔? 지나가던 사람이 손짓했다. 저- 쪽. 그는 손끝이 가리키고 있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 곳에 있었다. 리아드 호텔. 그는 구세주를 만난듯 마음이 놓였다. 뭔가- 대단한 것을 발견한 것 같이 기뻤다. 오! 리아드 호텔! 나의 구세주여. 라고 외치며 그 곳으로 달려갔다.

  그는, 프론트로 가서 체크인을 했다. 돈을 지불했다. 안내를 받았다. 4인 도미토리룸이다. 프론트에서는 너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거야.라는 말을 남겼다. 내친구들? 이라고 그는 반문했다. 프론트에서는 대답없이 웃음을 지었다. 그가, 호텔 한쪽의 침대에 짐을 풀고, 샤워를 하고, 누워서 쉬고 있을 때 - 한 무리의 남자들이 들어왔다. 3명의 남자. 셋다 일본인이었다. 아, 내 친구들. 프론트의 남자는 그가 일본인 인줄 알았나보다.

  그는 키친을 어슬렁 거렸다. 저녁에 뭘 먹을까? 일본인 룸메가 추천해준 파르페 가게에 가서 사 먹을까? 아니면, 가방에 든 재료를 가지고 음식을 해 먹을까. 그러다가, 한 무리의 한국인들을 만났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그는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한국 사람들이었다.



5. 밤거리.

  저녁, 윗층 주방 옆 식탁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한국 사람 여럿이서 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나는 혼자 였지만, 그들에게 인사를 하고 합석을 한다. 간단하게, 소개를 한 후- 염치 없이 음식들을 나눠 먹는다. 아, 내일은 뭐할지 모르겠어요. 아직 정해진 게 없어서. 내일은 그냥 하루 푹 쉬면서, 뭐 할지 좀 생각해 봐야 겠어요. 

  오랜만에 푹-잤다. 오랜만에 마음이 편하다. 걱정없이, 편-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시장을 둘러보고, 사진을 찍는다. 사람 사진, 풍경 사진. 거리를 걸으며,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한다. 차도르를 걸친 여성들. 불편하지 않을까?

  숙소로 돌아 왔다. 어젯밤 보았던, [나보다 어려 보이는]여자애가 서 있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오늘 뭐했어요? 그냥, 길거리 돌아다녔어요. 오, 저도 그냥 돌아다니다가 들어왔는데, 어디 좋은데 발견했어요?. 아니요, 그냥 그랬어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역시, 나보다 어리다. 잠시-지만, 그 여자애가 부럽다고 생각해 본다. 그리고, 잠시- 대단하다고 생각해 본다.  

  나에게 말했다. 오빠, 그거 봤어요? 아까 돌아다니다 보니까, 길거리에 찐옥수수 팔던데. 찐옥수수? 먹어봤어? 나 완전 그런거 좋아하는데. 아, 진짜요? 나도 그런거 좋아하는데, 먹으러 갈래요?. 좋지- 진짜 오랜만이다, 그런거 먹는거. 우리는 거리에서 찐 옥수수를 사 들고, 길 옆에 앉아 목수수를 먹는다. 내가, 생각하던 한국의 맛은 아니지만 그래도 좋았다. 중동[모든 것이 이국적으로 느껴지는 곳]에서 한국에서만 맛 볼 수 있을 법한 그런, 한국적인 느낌이 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이런 곳에서 그런 음식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며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내일은 뭐해?. 내일, 전 크락데슈발리에 가보려고요. 크락데슈발리에? 들어 본 것 같은데,, 어제 같은방 일본애들이 갔다왔다던 곳인가?. 아마 그럴거에요, 여기서 꽤 유명한데. 아, 그래? 난 아는게 없어서. 일본 애니 '천공의 성 라퓨타' 모델이라던데, 이쁘다고 하더라고요. 아, 한 번 가봐야 겠네. 같이가요, 내일. 그러자. 거기, 가는 방법도 까다로워서 혼자 가려면 힘들다던데, 잘됐다.  

  우리는 거리를 걷는다. 어느 작은 갤러리에 들러, 그림을 구경한다. 시리아- 사회주의 국가, 독재 국가. 속에서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유에 대한 갈망들이 작품속에 드러나 있음을 느꼈다. 갤러리를 관리하는 사람이 우리에게 차를 한 잔 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여자애가 덧붙였다. 전, 중동와서 이렇게 차를 얻어 먹을 기회가 많네요. 훗- 웃음을 머금었다.

  어둠이 깔린 하마 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카페에서 차를 마시는 사람, 거리 곳곳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 거리는 여유로워 보였다. 무덥지 않은- 가끔은 건조함이 몸 속을 파고드는, 건조한 공기가 피부를 감싸고 있는 도시. 우리는 호텔로 발걸음을 옮겼다.



6. 크락데슈발리에.

  도시에 태양이 서서히 비치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호텔을 나섰다. 아직은 도시가 달궈지기 전이다. 호텔 근처의 빵가게에서 빵을 샀다. 빵을 많이 사지는 않는다. 적당히. 둘 다, 아침을 가볍게 먹는다. 점심 식사도-간단히 적당량만. 배부르지 않게. 큰 버스를 타고, 작은 봉고차를 타고, 크락데 슈발리에로 간다. 그들은 한 번, 버스를 잘못타서 도시를 뱅뱅 돌았다. 이런-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 싶더니, 역시나 였다. 그들은 우여곡절 끝에 크락데 슈발리에에 도착했다.

  마을의 산등성이. 그 위에, 하얀- 성이 홀로 우뚝 서 있다. 십자군 성(城). 그 옛날 십자군 전쟁때 이곳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 했겠지.라고 그는 생각했다. 학생 할인으로 입장권을 끊고 안으로 들어갔다. 긴-통로. 성은 크다. 좀 이른 시간이라서 그런지 사람이 많지는 않다. 조용하다. 햇살이 성의 무너진 틈새와 작은 창을 통해 들어왔다. 통로의 어둠은 작은 구멍을 통해서 들어오는 빛에 의해 상처를 받기 싫은 듯, 주위로 물러나 있다. 그는 작은 창으로 바라보는 바깥세상은 아름답다.고 생각해 본다.

  그는, 작은 배낭 하나와 잠베를 들고 왔다. 바람이 성의 망루에 서 있는 그들의 피부를 스쳐 지나간다. 그녀가 말했다. 오빠, 잠베 연주좀 들려 주면 안돼?. 그는 조용한 곳에 앉아 잠베를 연주 해 볼 요량으로 잠베를 들고왔던 터라, 성의 망루에서 잠베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둔탁한 음이 무너진 성의 벽돌을 두드린다. 고요한 가운데 울려 퍼지는- 잠베의 둔탁함. 곁은 지나던 관광객들은 잠시 멈추어 그 모습을 지켜 보기도 한다.

  그들은 성의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녔다. 사진을 찍고, 올라가고, 내려가고. 바라보고. 어느덧 태양은 머리위를 지나 슬슬, 서쪽을 향해 가고 있다. 사진 찍어 줄까?. 그가 말했다. 그녀는 거절한다. 난, 내가 나오는 사진은 안찍어. 그의 카메라로, 한 컷 찍어주려 하자 그녀는 거절한다. 안찍어도 돼, 괜찮아. 
  그도, 그 자신이 나오는 사진을 잘 찍지 않지만, 그래도 가끔은 자신이 나온 사진을 찍고 싶을 때가 있긴 했다. 하지만, 절-대. 자신의 사진은 찍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크락데슈발리에를 떠나는 차를 타기위해 그들은 성에서 내려왔지만, 그들을 싣고 그곳을 떠나 하마로 돌아가 줄 자동차는 없었다. 그들은 성 아래 마을을 향해 내려왔다. 그는 말했다. '히치'해서 갈까?



7. 다시, 하마.
 
  카페에서 맥주를 마신다. 하마, 왠지 편안한 느낌이 든다. 그녀는 하마를 떠나면, 이집트를 향해서 간다고 한다. 나는 반대 방향이다. 나는 이제부터 계속 북쪽으로 가야한다[물론 반드시 가야하는건 아니지만]. 서로의 가까운 미래에는 서로의 여행 계획이 있다. 그녀는 이집트로 간 다음, 그리스를 거쳐 이탈리아로 간다고 했다. 이탈리아에서 방학을 맞아 이탈리아 여행을 온다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나는 터키를 지나, 그리스로 간다고 했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우리가 그리스에서 우연히 만날 수도 있겠네.라고 말한다. 풋- 그럴리가.

  나는 그리스를 지나, 러시아 상트페트르부르크까지 북쪽으로 북쪽으로, 그리고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야한다. 그래, 그게 내 계획이다. 여행의 수 많은 목표 중 하나다. 여행자에게는 자신의 여행 목적, 목표에 대한 집념이 있고, 그 집념을 깨기는 어렵지.라고 생각해 본다.

  아침, 하마에는 여전히 건조한 공기가 머무르고 있었고, 태양이 공기 사이로 파고 들었고, 빵집에서는 빵이 구워졌다. 나는 오늘 하마를 떠나 알레포로 간다. 
  큰 길가에서, 버스터미널로 가는 봉고차를 타기 위해 호텔 문을 나섰다. 몇 명의 여행자들이 배웅을 나온다. 오랜 시간 그들과 함께 한 것 같지만, 사실은 며칠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아쉽다는 마음이 든다.

  호텔에서 봉고차를 타러 가는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이 든다. 그녀에게 이메일 주소나 페이스북 주소라도 알려줄까. 말까. 다른 사람들의 주소라도 물어볼까. 말까. 길가에서, 봉고를 기다리며 그녀의 얼굴을 쳐다본다. 오묘하다. 그녀도 아쉬워 할까? 
  여기 까지 걸어오는 길에, 결정을 내렸다. 우리가 인연이 된다면, 언젠가 또 다시 만날 기회가 있겠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입 밖으로 한 마디 말이 흘러나와 바닥에 떨어졌다. 여행 잘 해. 어색한 미소가 그 뒤를 따른다.

  만난다는 것은 헤어짐과 동의어. 여행은 수 많은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면서 완성되는 것이다. 라는 말을 만들어 봤다.






- 성 위에서,



- 성 벽의 통로.


- 햇살



- 그림자,


- 마을의 아이들. 거인과 난장이


- 우리를 큰 길까지 태워다 준, 배달부.


- 리아드 호텔



- 하마의 수차.


- 수차와 수로


- 하마의 시계탑

- 갤러리,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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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불가리아, 소피아 - 고개를 끄덕끄덕, '아니'라는 의미 였다고?! (Bulgaria, Sofia)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1. 12. 3.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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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언어(言語, Language) - 몸짓 언어(Body language, 바디랭귀지)
 
   너, 나랑 말이 좀 통하는데. 통하는게 있네.라는 말을 할 때가 있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다보면, 느낄 때가 있다. 말[言]이 통한다는 것은, 너와 내가가[우리가] 친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말'이 통할 수 있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말이 통할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언어와 관련된 다양한 문화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것,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것, 같은 관습 속에서 서로 친밀해 질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을 갖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같은 언어를 공유한다는 것은, 서로 원활한 의사소통(Comunifcation)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우리가 여행을 하면서, [가장]낯설다.이국적이다.라고 느낄 때가 언제일까. 생각 해 본다면,  
 비행기에서 내려, 게이트를 막 빠져나왔을 때, 당신이 가야 할 곳을 알려주는 안내 표지판을 봤을 때.일 것이다[혹은, 출입국 관리사무소에서의 팻말을 보았을 때. 육로로 국경을 지난다면]. 내가 쓰는 언어와 다른 언어를 쓰는 국가에 갔을 때, 나에게 다가오는 문자(文字)들. 그것의 진정한 의미가 설령 출구를 뜻하거나, 내국인, 외국인을 뜻하는 것일지라도 그 문자들은 또 다른 의미를 함의하고 있다. 그들은 당신에게, 여기는 다른 나라. 당신은 이방인. 당신은 우리와 구별된다.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세계지적재산기구(WIPO)에서는 국제 공개어 10개를 선정하고 있다[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중국어, 아랍어, 일본어, 독일어, 한국어, 포르투갈어 10가지]. 이들 언어는 국제 사회에 무언가를 알릴 때 사용하는 언어들이다[무언가를 알릴 때 이들 10가지 언어로 번역을 하여 알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 10가지 언어를 알고 있으면,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사람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따라서, 10가지 언어를 모두 알면 가장 좋지만, 10가지 언어를 모두 습득하고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결코 쉬운일은 아니다. 따라서, 여행을 할 때 우리는 기본적인 의사소통에 관련된 언어를 몸에 익히고 떠나지만, 현실에 부닥치게 되면 또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 바로 그 상황에 필요한 것, 필요한 언어가 바로, 몸짓 언어[Body language]다.

  몸짓 언어[바디랭귀지, Body language]는 의소사통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사람의 행동과 관련해서 심리학에서 아주 중요하게 다루어지는게 '몸짓 언어'이다. 본고에서는 무의식적인 몸짓 언어와 암묵적 의사 표현에 관련된 이야기 보다는 의식적, 의도적 몸짓 언어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행 중에 당신이 바디랭귀지를 필요로 하여 사용하게 되거나, 바디랭귀지의 의미를 파악해야 할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단지 그 상황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일 것이다. 이 순간, 바디랭귀지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알아 두어야 할 것은 그 나라의 문화와 관습이다. 특히, 바디랭귀지와 관련된 특이한 문화와 관습을 알아 두지 않으면 오해가 생기거나,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언어에 관해이야기 할 때 이런 말들을 많이 한다. 언어는 문화의 산물이다[혹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 민족의 선각자들이 우리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한 이유도 언어에 우리 문화와 민족의 혼이 담겨있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언어와 문화.는 불가분의 관계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하자면, 문화는 그 나라의 역사와 관련이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언어, 그 중에서도 '몸짓 언어[바디랭귀지]'에 관해 이야기 할 때, 우리가 그 나라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한 상황이라면 오해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2. 바디랭귀지는 많은 정보를 주지만, 오해도 준다.

  친구와 대화를 할 때, 가끔. 대화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다른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대화의 주제와는 관련성이 떨어지는]다른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게 된다. 왜 일까? 그런 생각이 대화 도중에 끼어 드는 이유가 뭘까.[이런 현상을 '잔류 사고 여유(leftover thinking space)'라고 한다. 이는 상대방의 말하는 속도 보다 빠르게 진행되는 자신(청자)의 사고 속도 때문에 중간에 다른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대화를 함에 있어서 집중력을 잃게 하고, 심지어 무의식적으로 다른 행동 하게 되기도 한다.] 
   문제는 이 순간 발생했다.

  친구와 대화. 둘이 함께 수행해야 할 과제에 관한 이야기 였다. 친구는 나에게 열심히 그 과제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고 있었다. 내가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그리고 친구는 자신은 어떤 일을 할 지 [아주 열심히]설명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왜 일까? 불현듯, 그날 저녁에 약속되어 있던, 영화에 관한 일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게 몇 시 였더라. 7시 30분.이라는 시간이 머릿속에 떠오르고, 지금이 몇 시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감과 동시에 무의식적으로 왼쪽 손목으로 시선이 움직였다.
  친구는, 더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 자리엔 오해가 머물러 있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시계를 쳐다봤을 뿐인데. 친구는 나의 행동에서, 다른 메시지를 읽었다. 나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가 기분나빠 할 그런 메시지를 읽었다. 그건 오해였다.

  어린 시절, 독고병[숨바꼭질과 유사한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내던 때가 있었다[그 시절은 PC게임 보다는 놀이터에서 뛰어노는게 일상화 되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는 건물 뒤에서, 건너편 건물 뒤에서 나를 향해 손짓하는 친구를 보았다. 분명, 그는 나에게 오라는 손짓을 하고 있었다[내가 생각 했을 때]. 나는 그 친구를 향해 달렸다. 그러나 곧 발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술래에게 발각되어 내가 술래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손짓을 한 그 친구에게 말했다. 너때문에 죽었자나. 그는 말했다. 내가 언제 오라고 했어, 가라고 했지. 난 분명히 가라는 손짓을 했다고. 내가 볼 땐 오라는 손짓이었는데. 손바닥이 아래로 향하면서 손목을 까딱까딱. 오라는 거 아니었나..?



3. 기차는 해바라기 평원을 지나고,

  보스프러스해협을 바라보던 기차가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이스탄불의 밤. 거대한 모스크들을 뒤로 한 채, 기차는 발칸반도의 중앙으로 향한다. 내일 아침이면 불가리아에 도착하겠지.라고 생각한다. 이집트에서 비행기를 타고 지중해를 건넜다. 더 이상의 불안한 여행은 싫다. 이제-편히.

  태양의 열기가 무겁게 내려 않아있던, 7월 중순의 이집트 카이로. 사막이 시작되는 곳에 위치한 공항. 공항 주변의 모래는 서로 경쟁 하듯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떨어지는 태양빛을 이겨보겠다는 듯이. 
  비행기 내부로 몸을 옮길 때, 느껴지던 더위. 더위는 곧 사라졌고 비행기는 활주로를 달리기 시작한다. 얼마나 달렸을까. 이제, 하늘을 향해 땅을 박차고 올라가겠지.라고 생각했을 때. 비행기는 더 이상 위로 오르지 않았다. 활주로 위에 그대로 멈춰썼다. 뭐지? 곧 아랍어로 된 기내 방송이 나온다. 나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언어[아랍어]-. 이국적인 날씨. 그렇게 3시간을 활주로 위에서, 에어컨조차 나오지 않는 오븐 처럼 열기로 가득찬 비행기 몸뚱어리 안에서 보내야 했다. 창 밖에는, 엔지니어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엔진 고장.

  기차의.창 밖에는 옅은 안개가 끼어 있고, 그 사이로 햇살이 파고 든다. 상쾌한.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산 속의 아침이다. 기차는 멈추어 있다. 가끔, 새 소리가 안개사이를 가른다. 고요하다. 어디지? 불가리아 국경 사무소. 아-
  한참 후,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이 나를 찾아 왔고, 그 자리엔 입국 스탬프의 흔적이 남았다. 도장. 입국 허가를 받았다는 증거. 햇살이 스믈스믈 기어 들어 안개를 완전하게 밀어 냈을 때 쯤, 기차는 움직인다. 불가리아의 해바라기 평원을 지난다. 창 밖에는 해바라기, 해바라기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노란-해바라기들.

  언제부턴가, 해바라기.라고 불리는 꽃을 좋아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 때부터 였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해 준 적 있다. 해바라기는, 보면 볼수록 점점 더 예뻐 보이는 꽃이야. 질리지 않아. 질리지 않는 다는 건, 좋아. 너도- 해바라기 같아.


  기차는 해바라기 사이를 달린다. 파-란하늘. 노-란 해바라기. 함형수 시인의 '해바라기의 비명(碑銘)'이 생각난다. 함형수 시인,도 알았을까? 끝없이 펼쳐진 해바라기들이, 지금. 여기에 존재하다는 것을.
  
  시계는 12시를 넘어 간다. 배가 고파온다. 열차 시간표의 도착 예정 시간은 오전 10시 였지만, 그 시간을 훌쩍 넘기고 있다. 뭐, 그렇다고 내가 걱정할 건 없다. 나는, 창문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나를 스쳐지나가는 바람을 만끽한다. 그저- 좋다.는 말 밖에.




4. Sofia, 소피아[불가리아의 수도].

  이스탄불에서 어둠을 넘어온 열차는 소피아에 도착했다. 소피아 중앙역. 그는 낯선 글자들을 봤다. 키릴 문자[키릴 문자는 동유럽(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와 몰도바,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일부지역, 크로아티아 일부지역, 루미나이 일부지역, 불가리아, 마케도니아 공화국)과 중앙아시아, 북아시아와 아제르바이잔, 그루지야 일부지역, 몽골에서 쓰이는 문자이다]였다. 키릴- 영어는 없었다. 역의 대합실, 중앙에 거대한 무언가가 새겨져 있다. 이국적인 모습들. 키릴 문자와 거대한 상징물. 맑은 하늘, 처음 듣는 언어. 그가 알아 들을 수 없다는 것은, 이방인이라는 증거였다.

  기차는 곧,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로 떠날 것이었다. 그가 남긴, 차가운 흔적을 싣고. 그는 소피아에 남았다. 지도를 펼쳐 들고, 거리를 나섰다. 배낭을 메고, 거리를 걸었다. 거리는 여느- 유럽 도시와 비슷했다. 트램이 다니고 있었다. 그는 트램을 타는 대신 걸음을 택했다. 그는 걷는 것을 좋아했다. 숙소를 찾았고, 체크인을 했다. 샤워를 하고, 숙소 같은 방에 머물고 있던 독일인 형제에게 인사를 했다. 그들은 내일 소피아를 떠난다고 했다. 그 전에, 릴라 수도원[10세기에 세워진 수도원으로 불가리아의 가장 유명한 관광지 중 한 곳]에 들렀다가 마케도니아로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거리를 걷다가 지쳐 돌아왔다. 밤의 소피아, 오늘은 쉬고 싶다.고 생각을 했다. 

 그는 대사관에 가야 했다. 마케도니아 대사관에 들러야 했고, 주 불가리아 한국 대사관에 들러야 했다. 지도에, 대사관의 위치는 나오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을 수 밖에 없었다.  Embassy라는 말을 사람들이 알아 들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묻기 시작했다. where is embassy of Macedonia?. where can i find macedonia ebmassy? 사람들은 알아듣지도, 어떤 식으로도 대답을 할 줄 몰랐다. 아니, 아이돈노우.라는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할 수 없었다. 마케도니아 대사관을 찾아가야 했고, 한국 대사관을 찾아가야 했다. 어쩌지?



5. 고개를 끄덕끄덕.

  7월 말, 소피아의 하늘에서 떨어지는 햇살은 뜨겁다[햇살은 뜨거웠지만 습도가 낮아 그리 덥다고 느끼진 않았다]. 나는 떨어지는 햇살을 피부에 흡수시키며 거리를 걷는다.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길 모퉁이에 경찰들이 보인다. 그들에게 다가서서 말했다. Macedonia Embassy.라고. 몇 번을 반복해서 말한다.

  대답이 돌아온다. 아. 엠바씨. 경찰들은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한 후, 나에게 말을 해 준다. 나는 말을 못알아 들었기에, 손짓과 고갯짓 등 온갖 의사소통 수단을 동원해서 의사소통을 시도한다.

  아, 그러니까 저쪽으로 가라고? 한 경찰관이 고개를 끄덕인다. 알았어, 저쪽으로 가란 말이지.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손짓을 했다.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옆에 있던 경찰관이 내 손끝을 옆 골목 쪽으로 옮긴다. 저쪽 이라고?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어 댄다. 아니, 저쪽이 아니라면서 왜 저쪽을 가리켜? 그럼 아까 그 쪽? 이라고 하며, 다시 옆 골목을 가리키니까, 고개를 끄덕인다. 힘들다. 일단 가고 보자. 나는 그들이 고개를 끄덕인 쪽으로 향할 채비를 하고, 땡큐를 외친다. 그리고 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그들이 나를 부른다.
  그리고, 뭐라고 말을 하면서 내가 가는 방향이 아닌 다른 쪽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나는 반문하며, 저 쪽으로 가라고? 라고 말하며, 손짓을 한다. 그러자 그들은, 고개를 다시 도리도리 흔든다. 뭐 어쩌란 말이야? 나는 그들이 고개를 끄덕였던 쪽으로 간다.

  아무리 가도, 뭔가 나올 생각이 없는 듯 하다. 여긴 어디지? 나는 길가에서 체스를 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묻는다.Macedonia embassy. 엠바씨? 엠바써더? 누군가 아는 척을 한다. 그리고는, 내가 가야할 뱡향을 손짓으로 알려 준다. 나는 인사를 하고 길을 떠난다. 하지만, 아무리 그 쪽으로 가도 대사관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또 다시 물었다. 엠바씨, 마케도니아 엠바씨. 나에게 알려준다. 아, 저쪽으로 가라고? 내가 지나온 곳이다. 다시 저쪽으로 가야한다고?라며 내가 반문 한다. 그는 고개를 도리도리 흔든다. 아니, 저 쪽으로 가라고 손짓을 해준 이유는 뭐야? 왜 고개를 도리도리 흔드는 거지?



6. 맞다면, 고개를 도리도리.

  그는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던 말던, 그런 것 따위는 무시하고 손짓을 해 준 방향으로 간다. 이미- 그가 지나온 곳이다. 왜, 이쪽을 가리켰을까? 그는 생각했다. 주변을 잘 살펴 보았다. 마케도니아의 국기는 보이지 않았다. 왜 이쪽으로 손짓을 했을까? 그는 주변을 유심히 살펴 보았다. 아차-!

  엠베서더 호텔이 있었다. 엠바씨. 엠베서더. 그럴 만 했다. 사람들은 나에게, 엠바씨가 아닌 호텔의 위치를 알려 주었다. 엠베서더 호텔. 훗-
  그는, 길을 잃은 상태였다. 힘들다. 돌아 가자. 그는 일단 소피아 중앙역을 찾아가서 그 곳 부터 천천히 거리를 걸을 생각을 한다. 걷다가, 길을 물었다. 역이 어디죠? 아리따운 여성이었다. 앞으로 쭉- 가면 된다면서 손짓을 했다. 저쪽으로 쭉? 그러면 나와? 라고 하면서 되물었다. 그러자, 고개를 도리도리 흔든다. 그는, 멈칫했다. 저쪽이라면서 또 왜?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지.라고 생각하며.

  숙소로 돌아왔다. 그는 책을 펼쳤다. 그가 어렵게 구해 온, 론니플래닛 동유럽[Lonely planet East Europe]. 불가리아를 색인에서 찾아서, 문화에 대해서 읽었다. Culture and history of Bugaria.
  그리고, 왜 사람들이 그에게, 고개를 끄덕였는지, 왜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었는지 이해 할 수 있었다. 역사와 문화의 산물이었다. 발칸반도의 중앙에 위치하여 오랜 세월동안 외세의 침입을 받으며 살아온 민족이었다. 그들은 외세의 침입 속에서도, 독립을 원했다. 그 과정중에 생기게 된 하나의 약속. 고개를 끄덕이면 No.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으면 Yes.를 뜻하게 되는 바디랭귀지. 그는 그것을 이제서야 할게 된 것이다. 아- 역시, 문화와 역사란, 이래서 알 필요가 있는 것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발칸 반도의 여러 나라의 역사에 대해서 공부했지만, 그것은 19, 20세기 격변의 시기에 대한 것이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한 나라의 역사, 문화와 관련된 바디랭귀지의 변화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 덕에, 그는 실컷 고생을 했던 것이다.



- 이집트 카이로, 땅 위를 구르는 뜨거움 


- 시와 사막


- 이스탄불에서 베오그라드까지 가는 열차


- 해바라기


- 해바라기


- 어딜가나 해바라기


- 소피아 중앙역


- 소피아, 시내의 성당

-릴라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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