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4. 5. 15. 02:00
1. 해돋이.
새롭게 해[年]이 바뀔 때, 많은 사람들은 동쪽 바다에 머물거나 산 위에 올라서서 동쪽을 바라본다. 그러고는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자연에 대해 경외감을 느낀다. 새해 첫날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소원을 비는 사람들도 더러 있기는 하지만, 떠오르는 태양은 우리의 생각을 멎게 한다. 태양이 수평선 뒤편의 바다속에서 떠오를 때, 저 멀리 지평선 아래에서 태양이 하늘 위로 서서히 올라갈 때 바다의 색깔 혹은 대지의 색깔은 시시각각 변한다. 마찬가지로 빛의 산란에 의해서 하늘의 색깔도 시시각각 변한다. '내가 지금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고 있다'는 자부심과 함께 떠오르는 태양이 전해주는 '대지의 변화'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벅찬 감동'에 휩싸여 아무말 없이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서 있게 된다.
그 순간은 아주 잠깐이기 때문에, 혹여라도 그 아름다운 순간을 놓칠세라 차마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못한다.
△ 해돋이는 우리를 설레게 한다.
2. 여행지에서의 해돋이.
여행을 하다보면 해돋이를 보게 될 경우가 많다. 자연 풍경이 뛰어난 여행지에는 보통 '해돋이'관광 코스가 마련되어 있기 마련인데, 해돋이라는 자연 현상과 아름다운 자연 풍경이 어우러지면 더 없이 멋진 풍경이 연출되기 때문일 것이다.
해돋이를 보기위해 새벽에 일어나서 나갈 준비를 하는 것은 때로는 귀찮은 일이다. 해가 뜨기 훨씬 전에 일어나서 준비를 해야하는 탓에 잠이 덜 깨어있을 뿐만 아니라, 해가 뜨기 직전의 기온은 하루 중 가장 낮은 온도이기 때문에 한여름이 아닌 이상 따뜻하게 챙겨입지 않으면 추위에 떨면서 해가 뜨는 것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가 뜨는 그 순간 해돋이를 보기 위해 귀찮아 했던 모든 것들이 보상을 받는 동시에 귀찮았던 기억은 잊혀진다. 그리고, 정신은 맑아지기 시작한다. 그것이 아침의 정기[精氣]라고 하는 걸까? 기운이 솟는 것과 동시에 뿌듯함이 가슴을 가득 메운다.
카파도키아의 괴레메에도 아침 해돋이는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카파도키아의 명물인 '열기구'를 타고 하늘에 올라 저 멀리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본다고 했지만, 가난한 여행자인 나에게 열기구는 '사치'라고 생각했다. 나는 해돋이를 즐기기 위한 최적의 장소로 마을 뒷산을 선택해 놓았었다. 전날 오후에 괴레메 마을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다가 발견한 장소였다. 마을 뒷산이라고 하기에는 좀 애매 높이인 언덕은 오후에는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서 쉬기에도 좋은 장소였다. 같은 숙소에 머물고 있던 다른 두 명의 여행자와 함께 어둠을 헤치고 뒷산에 올랐다. 우리는 차가움이 스민 새벽 공기를 마시며, 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렸다.
동쪽 하늘, 어둠이 서서히 걷히고 있는 하늘에는 열기구가 하나 둘 씩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 피어오르는 카파도키아의 열기구들(왼쪽)과 나란히 늘어선 열기구들(오른쪽)
지상에서 열기구를 바라보는 것도 재미있다. 물론, 열기구를 타는 것도 재미있겠지만...
3. 하늘이 태양 빛으로 물드는 순간.
아무리 멋진 광경이라도 카메라로 그 모습을 잘 담을 수 없을 때가 많다. 사진 찍는 일을 직업으로 하거나 큰 취미로 하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좋은 카메라 장비를 가지고 다니지 않을 뿐더러, 여행자가 큰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것 자체가 힘들기 때문에 그저 두 눈으로 보고 머릿속에 그 장면을 기억해야만 할 때가 있다.
그런 때가 바로, '일출'의 순간이 아닐까?
- 주황빛으로 물든 대지.
여행을 하면서 수 많은 일출을 봤다. 사하라 사막에서, 몽골 초원에서, 이집트 시나이 산 정상에서, 갠지즈 강에서. 그리고 카파도키아에서. 모든 곳의 일출이 그렇듯, 카파도키아의 일출도 카파도키아만이 매력이 있었다. 자연이 만들어 준 기괴 암석들이 대지에 퍼져있고, 저 멀리서 태양이 떠오르며 대지의 암석들을 주황 빛으로 물들였다. 열기구들이 땅과 하늘 사이에 끼어서 비누방울 처럼 두둥실 떠다녔다. 지구와 우주와 인간이 만든 기구의 조화는 보기 좋았다.
그렇게 몇 분간을 태양을 바라봤다. 셔터를 여러차례 눌러보았지만 사진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람의 눈에 보이는 장면을 그대로 담을 수만 있다면 좋을 텐데'라는 아쉬움은 카파도키아에서도 생겨났다.
파란 하늘, 붉은 태양, 신선한 바람. 카파도키아의 아침은 상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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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4. 5. 10. 17:26
1. 등산 좋아하세요?
최근 등산을 다니는 사람이 많아졌다. 웬만한 회사에서는 사내 등산 동호회가 있을 정도고, 아파트 단지의 등산 동호회를 비롯해서 외부 등산 동호회들이 즐비한다. 그만큼 등산을 하는 인구도 많아졌고, 등산복을 판매하는 곳도 눈에 띄게 많아졌다. 등산이 주는 매력은 '산 정상에 올라 섰을 때'느낄 수 있는 쾌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산에 오르는 과정은 어떤 산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힘들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산 정상, 높은 곳에서 산 아래를 내려다 볼 때 느끼는 상쾌함과 함께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느낌은 등산의 큰 매력이 아닐 수 없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풍경. 탁 트인 풍경은 우리를 즐겁게 한다.
△ 웰컴투 괴레메, 카파도키아.
2. 5월의 카파도키아, 괴레메(CAPPADOCIA, Göreme)
터키 중부의 카파도키아로 향했다. 5월의 카파도키아의 기온은 봄을 느끼기에 충분했고, 하늘은 파랳다. 카파도키아의 기괴암석들이 만들어 놓은 동굴들을 이용한 호스텔 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동굴 도미토리'를 제공하고 있었고, 나는 그곳을 선택했다. 5월의 카파도키아는 조용했다. 여행 비수기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거의 없었고, 숙소에서 아침을 먹는 사람은 나와 노년의 부부 두 팀이 고작이었다.
카파도키아의 기괴 암석 위로 떨어지는 햇살을 받으며 카파도키아를 걸었다. 나는 특별한 일정이 없이 이곳 저곳 주위를 서성이며 주변을 돌아다녔다. 5월의 카파도키아에는 봄 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왔고, 바위들 사이에 자리한 마을은 봄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한적한 도로위로는 이따금씩 관광객들을 가득 실은 버스와 카파도키아 사람들을 가득 실은 봉고차가 지나다닐 뿐, 다른 자동차를 찾아볼 수 없었다. 관광객들을 실은 버스는 뷰포인트(View Point)에 멈춰서서 관광객들을 버스 밖으로 토해냈고, 관광객들은 그곳에서 사진을 찍고, 기념품을 고르느라 정신이 없어보였다. 나도 그들 틈에 섞여 사진을 찍고 나의 갈 길을 갔다.
△ 뷰 포인트(View Point)에서 바라본 카파도키아.
△ 카파도키아의 봄, 한적한 마을.
3. 햇살, 하늘, 경치. 완벽한 조화.
카파도키아, 괴레메에 '특별히 뷰 포인트(View Point)가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해 봤다. 뷰 포인트에서는 괴레메 시가지 쪽을 향해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탁 트인 풍경이 펼쳐 져 있었지만,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풍경을, 더 멋진 풍경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은 많았다. 파란 하늘 아래, 뽀죡하게 솟아 오른 암석과 동굴. 자연이 만들어 낸 작품은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가볍게 불어오는 바람과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꽃, 흔들리는 야생초들과 어우러져 멋드러진 풍경을 선물하고 있었다.
우치사르(UÇhisar)에서부터 괴메까지 걸어가면서 발견한 카파도키아의 풍경은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멋진 풍경과 견주어봐도 결코 뒤지지 않을 만큼 멋진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꾸미지 않은 아름다움이라고 할까? 단순한 구성이었지만 복잡한 듯한 풍경. 그러면서도 차분한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있었다.
카파도키아의 변덕스러운 날씨도 이런 아름다움을 손상시킬 수는 없었다. 천둥번개를 데려온 구름들이 비를 흠뻑 뿌리고 지나가기도 했지만, 야생 들꽃들은 그런 비에도 아랑곳 않고 만개해 있었다. 변덕스러운 날씨 뒤에 찾아오는 파란 하늘과 산뜻한 공기는 카파도키아의 대지위를 걷는 나를 한층 더 즐겁게 했다.
△ 카파도키아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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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4. 4. 26. 19:15
1. 유목 사회에서 농경 사회로.
사람들은 큰 강 유역에 모여 살면서 문명 사회를 이루었다. 그 이전의 시대의 사람들도 모여 살긴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이지도 않았고 때로는 이동을 하는 수렵, 채집 중심의 사회였다. 생존에 유리한 환경 속에서 사람들이 모여 살다보니, '문명사회'라고 불리는 것이 만들어 졌다.
산업 혁명 이후, 사람들은 도시로 몰려들었다. 대도시는 점점 더 거대도시가 되어갔고 대도시 주변에는 신도시라는 이름의 작은 도시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산업 혁명은 영국에서 시작하여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경제를 발전시키려는 나라들의 도시들은 비슷한 모습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도시에는 노동자들이 사는 곳과 부자들이 사는 곳의 구분이 생겼고, 부자들은 엄청난 돈을 들여가며 자신들만의 쉼터를 만들며, 삶을 윤택하게 가꾸어 나갔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힘든 삶을 살아야 했다.
△ '뉴욕(New York)' 롱아일랜드에서 바라본 뉴욕의 중심 맨해튼.
2. 어디 사세요?
누군가를 만났을 때, 가장 흔히 하는 질문은 어디에 사느냐고 묻는 것이다. 한국에서, 특히 서울에서. '사는 곳'은 자신의 경제력, 경제적 지위가 대략 어느정도 된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 되었다. 예컨대, 자신이 처음 만난 두 사람에게 "어디에 사느냐"고 물었을 때 어떤 사람 A는 '강남구 XX동 타X팰X스'산다고 말했고, B는 '노원구 상X동'에 산다고 했다면[노원은 필자가 사는 곳으로서, 극단적 비유를 위해 예로 든 곳이다], A와 B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우리 사회는 이미 어떤 사람이 어떤 동네, 어느 아파트에 사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그 사람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어떻다는 것을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 어느 누구도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동네 이름'만 가지고 그 동네 사람들이 어떻다고 생각한다. 비단 이런 현상이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비슷한 현상은 목격 할 수 있다.
3. 125번가 역으로 가려면 어떻게 가죠?
맨해튼에 있는 가장 저렴한 게스트하우스의 도미토리를 예약했다. 125번가에 위치한 호스텔이었다. 나는 맨해튼에 생각보다 저렴한 숙소가 있다는 사실에 약간 놀라면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여행 경비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숙박비'이기 때문에 나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저렴한 숙소를 선택한 것이다..
△ 125번가 역(왼쪽), 125번가에 내리는 눈(오른쪽)
전철역을 빠져나와 바라본 풍경은 내가 늘상 외국에서 보던 풍경과 비슷했다. 여느 도시와 비슷하다는 생각. 뉴욕, 주변에 흑인들이 좀 많다는 것을 제외하곤 별다른 특별함이 없었다. 나는 게스트하우스의 주소를 확인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길은 어두웠고, 길 양쪽으로 눈이 쌓여 있었다.
'아, 1년 만에 겨울로 돌아왔구나. 뉴욕, I LOVE YOU'
4. 할렘가(Harlem District)
게스트하우스에서 체크인을 하고, 도미토리에 들어간 나는 도미토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냈다. 그러나 다른 여행지와는 좀 다른 분위기의 숙소라고 생각했다. 남미나 중동 같은 곳에서 느낄 수 없었던 서먹함이 나의 피부를 파고 들었다. 대도시를 여행할 때 느낄 수 있는 서먹함. 그런 느낌이라고 생각했다. 어색했다. 오랜만에 이런 느낌을 받는 다는 것이. 그렇지만, 나는 늘 하던 습관대로 눈앞에 보이는 이들에게 가볍게 인사를 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여행 하는 사람들의 예의인 양.
론니플래닛(Lonely planet)을 펼쳐 들었을 때, 125번가에 대한 내용이 나왔다. 125번가, 숙소가 있는 곳이라는 생각에 찬찬히 읽어 보았다. 할렘가(Halem District)의 중심인 125th st. 내가 위치한 곳이 할렘가의 중심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내가 전철을 타고 오면서 보았던 풍경들이 좀 더 명확히 이해되었다. 지하철이 맨해튼 남쪽에서 북쪽으로 오면서, 흑인들만 열차에 올랐던 이유를. 지하철 역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대다수가 흑인들이었다는 사실이 다시금 생각났다. 그리고 지금 머물고 있는 숙소가 저렴한 이유도 어느정도 이해되었다.
이곳이 할렘이라고 불리는 곳이었지만, 그 동안 영화나 드라마로 보던 할렘의 이미지, 말로 듣던 할렘의 이미지와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저, 그냥 사람사는 동네였다.
5. 저지 시티(Jersey city)에서 들은 이야기.
하루는 미국에 유학 온 대학 동기를 만나기 위해 허드슨 강 건너편의 맨해튼 서쪽의 저지 시티로 갔다. 저지시티에서 식사를 하고 쇼핑몰을 구경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친구는 나에게 숙소가 어디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125번가에 숙소가 있어". 친구는 놀라며 되물었다. "거기 할렘이잖아? 안 위험해?".
"몰라, 위험한 건 전혀 모르겠는데? 그냥 똑같아."라고 대답했다.
나는 생각했다. 할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할렘의 공포를 만든다.
"할렘에서는, 저녁 때 운전자도 없는 자동차들이 도로를 돌아다닌다"는 말도 이런 맥락에서 생긴 오해가 아닐까.
6. JFK공항에서,
예상치 못한 폭설이 내렸고, 비행 일정이 취소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유나이티드 에어라인(United Airline)데스크에서 다음 비행기를 알아보았지만, 항공사에서 제공해 줄 수 있는 비행편은 '5일 뒤'에 있는 비행기 뿐이었다. LA에 가서 내가 타고 가기로 되어있던 LA발 대한항공 비행기는 정상 운행이었지만, 뉴욕에서 LA로 갈 방도가 없었다.
△ 전철을 타고 공항으로 가는 길에 바라본 눈내리는 마을(왼쪽), 모든 비행편 결항으로 인해 혼란스러운 공항(오른쪽)
"한국 분이시죠?"
나는 그 직원의 도움으로 비행 스케줄을 새로 잡을 수 있었지만, 당장 비행기를 탈 수 있는 방도는 없었다. 숙소로 돌아가서 며칠을 보내야 할 것 같았기에, 직원은 나에게 숙소가 어디냐고 물었고, 나는 대답했다.
"125번가에 있던 숙소였어요. 지금 돌아가도 방이 있을 지 모르겠네요"
그러자 그 직원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할렘, 위험하지 않아요? 왠만하면 그곳으로 돌아가지 말고 다른 숙소로 알아보세요"
"퀸즈에 친구가 살고 있어요. 그곳으로 가보죠."라고 내가 말하자 직원은 휴대폰을 빌려주며 그 친구에게 전화하고, 그리로 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당부했다. "125번가는 위험하니까, 조심하세요."
나는 새로 발급받은 보팅패스를 들고 데스크를 빠져나왔다. JFK공항 통유리 너머로 매서운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다. 뉴욕은 나를 그런식으로 붙잡고 있었다.
△ 브로드웨어 42번가의 화려함. 이곳의 화려함은 '125번가 할렘'과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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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4. 4. 26. 14:41
1. 지도, Map.
역사 교과서나 위인 전기를 통해서, 혹은 다른 여러가지 매체를 통해서 한 번 쯤 들어 봤을 법한 이름이 있다. '김정호'. 조선시대에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다는 사람. 물론, 그 전에도 지도를 그렸던 사람은 많지만, 그의 이름이 아직까지 불려지는 이유는 아주 '정확하게'지도를 그렸기 때문이리라.
여행을 가거나 어딘가를 찾아갈 때, 지도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여행을 하는데 있어서 지도는 아주 중요하다. 지도 없이 어딘가를 찾아 가겠다고 길을 나선다면 하루종일 길을 헤매면서 하루를 다 허비할 지도 모른다. 지도가 있어도 지도를 잘 볼 줄 모른다면 길을 헤멜 지도 모르지만, 지도가 있으면 현지인들에게 길을 물을 수가 있다. 요즘은 스마트폰의 지도 서비스가 아주 좋기 때문에 이제는 '디지털 지도'를 사용하여 쉽게 길을 찾기도 한다.
지도를 보며 골목길을 누비다가 목적지에 도달 했을 때의 기쁨. 그 순간에는 택시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 했을 때는 느낄 수 없는 성취감이 있다. 가끔은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끼리 이쪽이니 저쪽이니 티격태격 하다가도, 서로 의견을 잘 교환하여 목적지에 제대로 도착했을 때는 서로간에 돈독한 신뢰를 쌓을 수도 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는 사실[지도를 잘못 보고 이상한 곳을 헤메다가 결국 싸움에 이르게 되는 될 수도 있으니 조심하자].
우리는 여행을 다니든, 일상 생활을 하든 '지도(Map)'라는 이름이 붙은 다양한 것들을 접한다. 지도는 알게 모르게 우리의 생활속에 스며들어 있다.
2.서울의 지도, 서울의 길.
전 세계의 여느 대도시가 그렇듯이 서울에는 무수한 지하철 노선이 얽히고설켜 있다. 지방 작은 도시에 사는 사람이 서울에 올라와서 지하철 노선도를 처음 보게되면 눈이 휘동그래 진다. 지하철 노선도는 내가 어디에서 어디로 가야할 지 골똘히 생각하게 만든다.
함께 자취를 하던 친구와 주말마다 오토바이를 타고 서울 관광 안내 책자에 나오는 서울의 관광 명소를 돌아다니던 때가 있었다. 큰 도로를 벗어나 작은 골목길이나 좁은 도로를 지날 때,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서 헤매던 기억이 있다. 구불구불 꼬여있는 서울의 골목길은 저 길이 이 길 같고, 이 길이 저길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도가 있었지만, 길을 찾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우리가 찾던 목적지가 나오기도 했다.
3. 뉴욕 지하철 노선도(New York Metro Map)
JFK공항(John F.Kennedy International Airport)에서 맨해튼의 125th Street까지 지하철을 타고 이동 했다. 125번가는 할렘의 중심가였다. 그 곳에 위치한 숙소가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가장 저렴한 숙소 중 하나였기에 나는 서슴없이 그곳으로 이동했다. JFK 공항에서 출발하여 두 번 지하철을 갈아타고나서 125번가 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게스트하우스에 비치된 뉴욕 관광 안내 지도를 집어 들었다. 그 지도의 한쪽 면에은 큼직하게 뉴욕 메트로 맵이 뉴욕의 지도와 겹쳐져서 그려져 있었다. 아주 간략하고 보기 좋게.
나는 뉴욕 지하철 지도의 역 이름을 살펴 보던 중 한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지하철역 이름과는 좀 다른 역 이름들. 우리나라의 지하철역이름은 그 동네의 지명이나 큰 건물의 이름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예를 들면 3호선의 대화, 구파발, 불광, 홍제, 옥수, 약수, 압구정 등] 그렇지만 뉴욕 지하철의 역들은 대부분 그 거리의 이름을 지하철 역이름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특히, 맨해튼의 경우 그 특징이 두드러 졌다.
△ 뉴욕 지하철 노선도(New York Metro Map)
맨해튼은 가장 아래 쪽, 남쪽의 1st street부터 북쪽으로 가면서 동서로 가르지르는 길에 번호를 부여해서 길 이름을 구성하고 있엇다. 1st, 2nd, 3rd, 4th, 5th .... 10th, 100th, 125th street...이런 식으로 동서를 가르지르는 도로에는 스트릿(street)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남북을 가로지르는 길에는 way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었다. 그래서 맨해튼을 남북을 가로지르는 대표적인 길이 바로 '브로드웨이(broad Way)'이다. 지하철 역들은 주로 street 넘버를 지하철 역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같은 스트릿(Street)의 동쪽과 서쪽에 서로 다른 지하철 노선이 지나가는 경우에는 동일한 지하철 역 이름을 가지고 있었기에 나는 종종 실수로 다른 역에서 내리곤 했다.
내가 가장 눈여겨 본 지하철 역은 나의 숙소가 위치하고 있던 125th Street와 42nd Street의 타임스퀘어 역이었다. 그 외에도 20번가, 7번가 등 많은 역들이 거리 이름으로 되어 있어서 그곳을 지도에서 그곳을 찾아 이동하기가 아주 쉬웠다.
4. SOHO부터 Wall Street까지.
소호(SOHO)에 가 보고 싶었다. 예전에는 화랑이 즐비해 있었다지만 높아진 임대료로 인해 화랑들은 이제 주로 첼시 쪽으로 이동하거나 더 먼 곳으로 서서히 이동하고 있다고 했지만 '화랑'의 흔적을 찾고 싶었다. 소호는 패션의 거리가 되어 가고 있다고 들었다. 론니플래닛 뉴욕 시티(Lonely planet, New York City)에 나온 안내에 따라 지하철 역에서 내렸지만, 그곳이 소호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그곳이 소호라고 해서 '여기가 소호 입니다'라는 안내판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소호역'이라는 말도 없었으니 나는 그저 사람들을 따라서 걸을 수 밖에 없었다. 왠지 내가 가는 곳이 '소호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무작정 사람들이 많이 가는, 젊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뒤쫓았다.
△ 리틀 이탈리아와 차이나타운은 붙어 있다.
길을 걸으며 거리 곳곳에 파편처럼 흩어져 있는 예술의 흔적과, 건물들의 모습에 취해 셔터를 누르다 보니 어느새 내가 와 있는 곳은 '리틀 이탈리아(Little Italy)였다. 언젠가 '리틀 이탈리아'에 대해 읽은 기억이 났다. 차이나타운 근처에 위치한 '이탈리아 타운'. 조금 더 걸으니 '차이나타운(China town)'이 나왔다. 그러면서, '차이나 타운의 지하로 잘못 들어가면 영영 빠져나올 수 없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차이나타운의 지하는 미로처럼 얽혀 있어서 뉴욕 경찰들도 그곳으로 들어가는 것을 꺼려한다는 이야기.
차이나타운의 한 테이크아웃 음식점에서 사람들이 음식을 사 가는 모습을 보니 배가 고파왔다. 메뉴를 고른 만큰 돈을 지불하는 방식이었는데, 가격은 저렴했다. 음식을 사 들고, 근처에 있는 공원에 앉아 배를 채운 다음 다시 발걸음을 남쪽으로 옮겼다. 점점 더 소호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남쪽으로 내려가자 NYPD(뉴욕 경찰서)건물이 나왔고,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더 이상 이쪽으로 오지말라고 소리쳤다. 나는 방향을 서쪽으로 돌려 계속 걸었다. 법원 같은 건물이 나왔고, 나는 다시 지하철 역으로 들어갔다. 42번가로 돌아가려 했으나, 나는 지하철을 잘못 타버렸고 브루클린 브리지(Brooklyn Bridge)를 건넜다. 맨해튼을 떠나 브루클린으로 가고 있었다. 맨해튼의 야경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5. SOHO에서 타임스퀘어까지.
나는 다음날 또 다시 소호를 찾았다. 이번에는 다른 지하철 역에서 내렸다. 왠지 그곳이 소호의 중심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을 빠져나오니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그리고 많은 유명 브랜드의 매장이 깃발을 펄럭이며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제대로 찾아온 것 같았다. 아메리칸어페럴, 유니클로, 바나나리퍼블릭, 게스, 디씨슈즈 등의 많은 해외 유명 의류 브랜드들이 내 눈에 띄었다. 호주에서 자메이카까지 6개월 이상을 보내면서 나는 여름 옷만을 가지고 있었고, 뉴욕의 추위를 견디기 힘들었다. 소호의 여러 의류 매장들을 돌아다니며 옷을 구입했다. 통장 잔고는 조금씩 줄어들었지만, 추위를 막을 수 있다면 통장의 잔고가 줄어드는 것은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 소호 거리에 있는 게스(guess)매장과 젊은 이들.
△ 뉴욕대(NYU)지하철 역(왼쪽)과 뉴욕대 근처 공원의 개선문(오른쪽)
숙소 근처에 위치한 유명한 재즈 카페에서 재즈 공연을 볼 생각을 한 나는, 간단히 식사를 하고 재즈 카페를 찾았다. 재즈 공연을 보기 위한 사람들로 카페는 붐비고 있었다.
6. 길 찾기가 쉬운 맨해튼.
전형적인 바둑판식 도로가 깔려 있는 맨해튼. 맨해튼의 중심에는 센트럴파크(Central Park)가 있고, 그 오른쪽을 이스트사이드(East Side), 왼쪽을 웨스트사이드(West Side)라 부르고 있는 곳. 1번가(1st street)부터 약 130번가까지 차례로 하나씩 숫자를 붙여 나가며 동서를 가로지르는 길이 있는 곳. 남쪽을 향해 계속 길을 걷다 보면 1번가와 2번가가 나왔고, 배터리 파크에 서서 강 저 멀리를 바라보면 자유의 여신상이 서 있었다.
△ 42번가 역 안(왼쪽)과 42번가 역을 나왔을 때 만날 수 있는 풍경.
▶ '지도 없이 길을 헤매도, 그저 I LOVE NY'관련 글 보기
- 뉴욕의 거리를 걷다 보면, I ♥ NY(2) - NewYork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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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번가를 향해 가는 길(왼쪽)과 42번가 주변(오른쪽)
△ 차이나타운 관광 안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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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4. 4. 26. 13:20
1. 신발(Shoes).
여행자에게 있어 신발은 아주 중요한 도구이다. 평소에 걷던 양 보다 더 많은 양을 걸어다니는 여행자에게 있어서 신발의 선택은 아주 중요하다. 발이 아프면 여행을 즐겁게 할 수도 없고, 들르고 싶은 곳에 들를 수도 없다. 그래서 '발'을 보호하기 위해 신발을 잘 선택해야 한다.
여행자들은 보통 두 개의 신발을 가지고 다닌다. 하나는 편한 운동화[보통 선택하는 것이 조깅화류이다. 가볍고 발이 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간편하게 신고다닐 수 있는 슬리퍼[보통 '조리'라고 불리는 신발을 가지고 다닌다]를 가지고 다닌다. 또 다른 하나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은 드물지만, 깔끔한 복장에 어울리는 신발을 하나 더 가지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여행을 하면서 어떤 신발을 신고 여행을 할 지, 신발을 고르는 일. 신발은 용도와 목적에 따라서 다양한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나의 여행에 맞는 신발을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 여행의 목적에 따라서 어떤 신발을 고르느냐는 모처럼 떠난 여행이 얼마나 편안하고 즐거운 여행이 되느냐에 적잖은 영향을 끼친다고 할 수 있다.
2. 뭐 타고 다니세요?
"신발 타고 다닙니다"
탈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탈 것이라고 하는 것은 승용자, 버스, 전철 등을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탈 것의 본질이 '우리를 목적지까지 가는 데 도움을 주는 도구'라고 할 때, '신발'도 중요한 탈 것이 되지 않을까? 우리는 항상 신발을 신고 외출을 하고, 집에서 나와서 목적지까지 가는 것은 물론,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신발과 함께 한다. 그래서 우리는 신발을 잘 골라야 한다. 나에게 어울리는 신발, 잘 맞는 신발. 여행자에게는 편안한 신발.
여행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해 보고 싶다. "어떤 신발 타고 여행 하실 생각이세요?"
△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펼쳐지는 곳. 42번가 주변.
3. Walking on street.
뉴욕, 맨해튼의 거리를 걷다보면 많은 풍경들과 마주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 혼잡한 거리, 공원, 지하철 역, 노란 택시, 저 멀리 보이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그리고 한 손에 커피를 들고 거리를 걷는 사람들과 청소부들까지. 그리고 또 한가지 놓칠 수 없는 것은 거리 곳곳에 숨어있는 설치 미술 작품들과 10달러에 3장씩 판매되고 있는 I LOVE NY 티셔츠. 이 모든 것들을은 놓치기엔 너무 아까운 뉴욕의 풍경들이다.
△ 맨해튼의 중심이라고 할 수있는 42번가 역(42St stn). 많은 지하철들이 42번가 역을 지난다.
저렴한 숙소가 있는 125번가에서 지하철을 타고 주로 42번가에 내렸다. 42번가에서부터 뉴욕의 거리를 걸었다. 아침에는 커피 한 잔과 머핀 혹은 베이글을 집어 먹고 늦은 밤이 될 때까지 뉴욕 이곳 저곳을 누비고 다녔다. 많은 지하철 노선들은 42번가를 지나갔다. 42번가의 아래쪽으로는 소호(Soho)와 월 스트리트(Wall St), 세계 무역센터(WTC)현장이 있고, 월 스트리트의 상징 '황소상'을 볼 수도 있다. 여러가지 볼거리를 보면서 거리를 거닐다 보면, 저 멀리 '자유의 여신상'이 보인다. 관광객들 무리에 휩쓸려, 배를 타고 '자유의 여신상'에 갈 수도 있다. 맨해튼 관광의 끝자락, '자유의 여신상'에서 맨해튼을 바라볼 수 있다.
4. 센트럴 파크(Central Park)의 또 다른 느낌.
겨울에 만나는 센트럴 파크는 추워보였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았던 그런 센트럴 파크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달라 보였다. 구겐하임 미술관 너머로 보이는 센트럴 파크는 너무나도 조용했고, 앙상한 가지 위에 새 몇 마리가 센트럴 파크를 방문한 유일한 방문객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수 없이 들었던 '이곳은 센트럴 파크 북쪽 입구 역입니다'라는 지하철 안내 방송은 나를 '센트럴 파크 북쪽 입구'에 내리게 하기는 역부족이었다. 왠지 '센트럴 파크의 북쪽 입구'는 더 스산한 느낌이 들 것 같았다.
센트럴파크 북쪽 입구 역을 지나쳐, 66번가(66st) 링컨 센터로 향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그 아래 우쪽 서 있는 큰 건물들. 링컨 센터 오페라 하우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겨울의 링컨 센터는 다양한 공연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겨울 여행의 묘미라고 할까? 여름 여행에서는 맛볼 수 없는 겨울 여행만의 묘미가 '링컨 센터'에도 준비되어 있었다.
△ 링컨 센터. 공연 당일 오전에 방문하면 가격이 저렴한 티켓을 구입할 수 있다.
링컨 센터 오페라 하우스에 들어서서 공연 일정 팜플랫을 집어 들었다. 오늘 밤과 내일 밤, 어떤 공연을 하는 지 찾아보았다. 'Ariadne auf Naxos'라는 제목의 오페라가 오늘 밤 공연 될 예정이었다. 나는 창구로 가서 스탠딩(Standing)티켓을 달라고 했다. 20달러 짜리, 두 장을 구입하고 오페라하우스를 빠져나왔다. 유럽 여행을 할 때도 스탠딩 좌석을 구입해 저렴한 가격에 오페라와 오케스트라 연주를 감상한 적이 많았다. 스탠딩 티켓이었지만, 공연장의 스탠딩 석 주변에는 항상 좌석이 남았기 때문에 나는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나는 다시 링컨 센터 지하철 역으로 향했고, 센트럴 파크 북쪽을 지나온 열차에 몸을 실었다. 열차는 맨해튼 남쪽을 향해 달렸다.
△ 브루클린 브리지(Brooklyn Bridge)
5. 맨해튼의 남쪽.
열차는 소호를 지나 브루클린 브리지를 건너갔다. 나는 브루클린 브리지를 건너기 전열차에 내렸다. '월 스트리트'에서 내려 거리를 걸었다. 세계 금융의 중심지라고 불리는 'Wall Stree'의 거리는 혼잡하지 않았다.
△ 월스트리트(Wall Street)와 Wall Street 역.
뉴욕 증권거래소가 어떤 곳인지 보고 싶었고, 월가의 상징이라는 '황소'도 보고 싶었다. 무작정 길을 걷다 보니 길은 사라지고 길의 끝자락에 다다랐다. 큰 강이 내 앞에 드리워져 있었고, 브루클린 브리지가 강 건너편으로 이어져 있었다.
계속 길을 걷다보니 눈 앞에 '뉴욕 증권 거래소'가 있었다. 생각했던 것 만큼 웅장하거나 위대해 보이지는 않았다. '여기가 TV에서 자주 보던, 세계 금융의 중심이구나'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을 뿐 더 이상의 감흥은 없었다. 지금의 시대가 금융, 자본의 시대이기에 뭔가 세련되고 아주 현대적인 건물이 뉴욕 증권거래소 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그것과는 약간 다른 모습을 한 뉴욕 증권 거래소의 모습에 약간 실망햇을 지도 모른다. 증권거래소를 옆 골목으로 나가서 월스트리트와 브로드웨이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남쪽을 향해 걸었다. 건너편에 큰 성당이 보였지만 나의 발걸음을 붙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 뉴욕 증권 거래소
자유의 여신상을 보러 가기 위해 배터리파크를 향해 걸었다. 자유의 여신상을 보러 가는 길에 월 스트리트의 상징이 된 '황소상'이 있었다. 황소 주변에서 관광객 몇 명이 사진을 찍고 있었고, 나는 그 관광객들 무리에 끼어 사진을 찍었다. 서로 카메라를 주고 받으며 사진을 찍었다. 황소에 매달려 보기도하고, 황소를 껴안아 보기도 했다. 황소상이 내가 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을 줄이야.
△ 월 스트리트의 상징, 황소상. (월 스트리트 볼링그린)
6. 허드슨 강의 바람은 매서웠다.
뉴욕의 겨울은 차가웠다. 허드슨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살을 파고들어 뼛속가지 시리게 만드는 것 같았다. 불과 몇 주전만 해도 남미에서 한여름을 즐기던 나에게 뉴욕의 추위는 매서웠다. 남미에서 쿠바, 자메이카를 거칠 때까지도 더웠지만, 자메이카에서 멀지 않은 뉴욕의 날씨는 나에게도 너무나도 가혹한 추위였다.
△ 자유의 여신상도 추워하는 뉴욕의 겨울(왼쪽) / 자유의 여신상으로 가는 배를 타는 '배터리파크'(오른쪽)
자유의 여신상이 저 멀리 강 위에 떠 있었다. 저곳까지 배를 타고 가기 위해 표를 구입하고 검문소를 햐했다. 내 가방이 엑스레이(x-ray)기계 안으로 들어갔을 때,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도'를 가방에 넣고 있다는 것이 그제서야 생각났다. 검문소의 직원이 과도를 꺼낼 것을 요구했지만, 나는 모르는 척 했다. 그렇지만 그들의 눈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과도를 검문소 직원에게 건네주며 나중에 자유의 여신상에서 돌아왔을 때 돌려줄 것이냐고 물었을 때, 그 직원은 단호하게 말했다. "No"
왜 돌려주지 않느냐는 나의 말에, 직원은 그것이 규정이라는 대답뿐이었다. 나는 여행의 막바지에 중요한 물건 하나를 잃었다는 상실감에 젖어 들었다. 배를 기다리는 선착장의 대합실에서, 우울한 마음으로 자유의 여신상으로 나를 데려다 줄 배를 기다렸다. 회색과 짙은 녹색이 섞인 허드슨 강의 강물은 나를 더욱 침울하게 했다.
△ 허드슨 강 위에서 바라본 맨해튼과 자유의 여신상.
7. 자유의 여신상.
배는 선착장을 떠나 허드슨 강의 물살을 가로지르며 자유의 여신상을 향해 갔다. 뉴욕의 하늘은 잿빛으로 변해 있었고, 왠지 도시 전체가 우울함에 젖어든 것 같았다. 그런 가운데 자유의 여신상은 하늘을 향해 불곷을 치켜 세우고 있었다. '오, 자유여. 미국은 내 칼의 자유를 박탈해 갔다'
△ 자유의 여신상 앞(왼쪽 위), 자유의 여신상 내부(오른쪽 위)
자유의 여신상 내부 전시실의 '미니어처(왼쪽)과 자유의여신상 발가락(오른쪽)
자유의 여신상에서 바라본 뉴욕은 사진에서 보았던 뉴욕과 비슷했다. 맨해튼에서 내 몸 속으로 파고들었던 바람보다 더 강력한 바람이 내 뺨을 후려쳤기에 나는 외부 전망대에 오래 머물 수가 없었다. 맨해튼 도심에 있을 때 보다 몇 배는 더 춥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다른 섬에 위치한 감옥을 둘러보기 위해 배에서 내렸지만, 나는 배에서 내리지 않고 맨해튼으로 돌아왔다. 세계 무역센터 현장을 거닐었고, 날이 어두워지자 친구를 만나러 갔다.
밤에는 링컨 센터 오페라 하우스에서 오페라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 밤의 링컨 센터. 오페라 공연이 시작하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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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4. 4. 25. 22:41
1. 미술, 미술관 그리고 예술.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목적에 따라 여행 장소가 정해지기도 한다. 가령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 산자락을 트레킹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네팔의 포카라로 향할 것이고, 유럽 이곳 저곳을 누비며 중세 유럽의 흔적을 느끼고 싶은 사람이라면 유럽 배낭 여행을 떠날 것이다. 저렴한 여행 경비로 다양한 먹거리와 놀거리를 찾는 사람은 동남아로 떠날 것이고, 홍콩으로 떠나는 사람은 쇼핑을 할 생각에 가슴 부풀어 있을 것이다. 이처럼 여행의 목적지는 그 여행의 성격과 많은 연관성을 가지게 된다.
일반적으로 유럽 여행을 하면서 가장 많이 가게 되는 곳 중 하나가 박물관 혹은 미술관이다. 특히, 유럽에 있는 유명 미술관의 경우는 항상 많은 사람들로 북적댄다. 중세시대 뿐만 아니라 근대의 유명한 화가의 생가를 비롯해서 다양한 장소가 미술관으로 꾸며져있고, 그런 미술관을 둘러보기 위해서 멀리서 비행기를 타고 오거나, 기차를 타는 것은 흔한 일이다. 영국의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 테이트모던(Tate Mordern), 프랑스의 오르세 미술관(Orsay Museum), 로댕 미술관, 피카소 미술관, 네덜란드의 반 고흐 미술관 등 유럽에 위치한 많은 유명 미술관들은 항상 많은 관광객들로 붐빈다. 중,고등학교 시절 교과서에서 보았던 그림들을 이들 미술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은 유럽의 유명 미술관을 찾는 사람에게 두 배의 기쁨을 선사해 준다.
△ 뉴욕 현대 미술관(The Museum of Modern Art, MoMA)은 세계 3대 현대 미술관 중 하나이다.
미술, 예술에 대한 여행자들의 갈망은 어디에서 부터 비롯된 것일까?[물론 모든 여행자가 미술관에 대한 갈망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외국의 유명 미술관에 있는 작품들을 자신의 나라(우리나라)에서 우연히 감상할 기회가 생겼을 때, 그것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여행지에서 지불하는 대가의 몇 배를 치루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갈망의 근원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을 수도 있다. 또 다른 이유로는, 여행자들은 여행에서 여유를 만끽하기 위해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기도 하고, 잘 정돈되고 쾌적한[미술관이나 박물관은 다른 장소들에 비해서 비교적 쾌적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 환경 속에서 시간을 보내기를 원하기 때문에 미술관을 갈망하는 것일 수도 있다. 물론 미술이나 예술에 대한 갈망의 가장 근본적인 근원지는 여행자 개인이 가진 다양한 미술 작품에 대한 관심이 되겠지만, 여행자들이 들고 다니는 작은 책자들은 많은 지면을 할애해 가면서 여행자들에게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기 대문에, 여행자들은 그 정보들에 현혹되어 미술과 예술에 관한 갈망을 싹틔우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2. 예술과 공공질서의 파괴 사이.
골목길을 걷다 보면 건물의 벽이나, 담장에 그려진 그림들을 볼 수 있다. 스프레이 락카로 그려진 그림들을 가리켜 누군가는 공공질서를 파괴하는 낙서라고 말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그런 것들도 예술의 하나라고 말하기도 한다. 낙서와 예술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
예전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샤갈전이 열렸을 때,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찾아온 샤갈의 그림들을 보기 위해 서울시립미술관을 찾았다. 샤갈의 그림들은 경매에서 고가에 거래되는 것은 물론이고, 수 많은 사람들이 많은 대가를 지불해 가면서 샤갈의 그림을 보기를 원한다. 샤갈의 그림을 가리켜 '예술 작품'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거리의 담벼락에 그려진 '그래피티(Graffiti)를 보고 누군가는 예술이라고 하지만 누군가는 '낙서'라고 말한다. 예술의 관점에서 본다면 '담벼락에 그려진 그림'은 거리의 분위기를 조금 더 밝고, 아름답게 꾸며준다는 측면에서 '예술'이라고 일컬을 수 있다. 하지만 예술의 기준을 '미술관의 작품'으로 정의하는 사람의 관점에서는 거리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아무렇게나 그러져 있는 작품은 낙서인 것이다.
공공질서를 파괴하는 낙서와 예술성 높은 미술 작품으로 평가되는 기준은 참으로 모호하다. 그 기준이 일관성 없는 편견의 산물일 뿐이라는 것은 이미 뱅크시(Banksy)라는 아티스트에 여러차례 풍자되기도 했다.
△ 예술일까? 공공질서의 파괴일까?
3. 세계의 수도, 뉴욕(New York City)
뉴욕을 세계 경제, 문화의 수도라고 말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맨해튼의 월스트리트(Wall Street)는 경제의 중심지로 불린다. 그리고 뉴욕은 '문화의 중심지'라고도 불린다. 특히 현대 미술과 관련하여 60년대, 70년대 자본주의와 미술. 그리고 팝 아트. 다양한 현대 미술과 모더니즘을 넘어선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뉴욕은 많은 아티스트들의 활동지였다.
나는 세계 3대 현대 미술관 중 하나로 불리는 모마(MoMA, Museum of Mordern Art)에 가 보고 싶었다. 유럽 배낭여행을 통해서 유럽에 있는 세계 3대 현대 미술관 중 두 곳인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Tate Mordern),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센터(Centre Pompidou)센터를 둘러보았던 나로서는 세계 문화의 중심지 뉴욕의 모마(MoMA)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또한, 맨해튼 근교(브루클린, 롱아일랜드)에서 그래피티, 재즈 카페에서 재즈(Jazz) 공연, 링컨 센터에서 열리는 공연,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그 외의 다양한 뉴욕만의 특권을 즐겨야 겠다고 생각했다.
△ 링컨센터(왼쪽)과 자유의여신상 내부 전시관(오른쪽)
4. MoMA, 그리고 MoMA PS1
우리는 편지를 쓴 뒤, 중간에 빠뜨린 부분이나 본문에 적지 않은 중요한 말은 편지의 끝에 P.S(추신 혹은 덧)라는 말과 함께 간단히 적으면서 편지를 마무리 할 때가 있다. 뉴욕 맨해튼에 있는 MoMA 본관과 롱아일랜드에 있는 MoMA PS1의 관계가 편지 본문과 추신(PS)의 관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맨해튼에 위치한 MoMA의 본관엔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깔끔한 내부와 그 안에 어울리는 작품들. 미술관을 탐험하며 돌아다니는 몇 시간 동안 나의 감정과 마음, 그리고 나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는 작품들. 오디오 가이드와 함께 하는 모마 여행은 나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모마는 다양한 섹션에서 예술의 다양성을 보여주었고, 많은 사람들의 휴식처이자, 눈을 즐겁게 해 주며, 감성을 키워주는 공간이었다.
△ 'MoMA'의 다양한 작품들.
롱아일랜드에 있는 MoMA PS1의 입장료는 무료였다[MoMA의 입장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 한해서 무료입장]. 무료라고 하지 않아도, PS1은 MoMA보다 훨씬 작은 규모의 미술관이었기 때문에 입장료가 절반이 채 되지 않았다. PS1은 설치 미술을 위주로 꾸며진 공간이었다. 나는 팝 아트와 설치미술에 상당한 흥미가 있었기 때문에, 느낌은 달랐지만 모마에서 느꼈던 것 이상의 만족을 얻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학교와 비슷한 같은 구조로 되어 있는 미술관은 외곽 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PS1의 방문객은 나를 포함해서 다섯 명이었다. 그 곳에선 미술 강의도 이루어 지고 있었다[세미나 실에서 1:1 또는 2:1 강의를 하고 있었다]. 각 방마다 안내원을 겸한 감시자들이 나의 행동을 주시했다. 방문자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미술 작품을 감상하듯이 나의 행동 하나하나를 감상햇다.
△ 롱아일랜드에 있는, MoMA PS1
미디어 아트의 영상을 보고, 영상이 말하고 있는 것을 생각했다. 독특한 아이디어로 설치된 작품들을 보면서 감탄하며, 다양한 각도에서 작품을 바라보면서 몸을 이용해서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웠다. 1층 복도에서는 카페테리아에서 흘러나온 여자들의 목소리로 가득찼다. 미술관에 근무하는 여직원들은 카페테리아에서 점심을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나는 그녀들의 목소리를 미술관 바닥에 그대로 흘려 놓은 채 미술관을 빠져나왔다.
△ MoMA PS1의 작품
5. 그래피티.
MoMA PS1을 빠져 나와, 근처 건물 벽을 가득 메우고 있던 그래피티를 구경했다. 그래피티 스쿨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빽빽하게 그려진 그래피티들. 보기 좋게 잘 꾸며진 건물이었다. 나는 세계 각국의 골목을 거닐면서 그래피티 사진을 많이 찍었던 나 였지만, 뉴욕의 그래피티들이 작품성이 가장 뛰어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 그래피티
6. 구겐하임 미술관
언젠가 책에서 본 적 있는 건물 모양이었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독특한 건물 모양으로 유명한 미술관이었다. 구겐하임 미술관. 건물의 중간이 뻥 뚫려서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빛이 건물 내부로 흘러 들어왔다. 채광이 잘 되었고 분위기는 독특했다. 중앙 홀에서 남녀 한 쌍이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엇다. 행위예술. 천천히, 천천히, 서로를 애무하며 키스를 하는 퍼포먼스였다. 아침 일찍 방문한 구겐하임 미술관엔 사람이 얼마 없었다. 그들은 천천히 움직이며 포퍼먼스를 계속 했다. 그리고 몇 시간 동안 작품을 감상하며 꽤 오랜 시간을 보낸 뒤, 아래쪽을 바라보았을 때도 퍼포먼스는 계속되고 있었다. 제법 많은 학생들이 미술관을 방문 중이었고, 퍼포먼스를 하는 주변에는 사람들이 앉아서 그들의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예술이란!
유치원생, 초등학생처럼 보이는 학생들이 체험 학습을 하는 듯 했다. 미술관에 방문한 사람들을 상대로 여러가지 질문을 하고 퀴즈를 푸는 활동을 하는 듯 했다. 많은 학생들이 미술관을 방문한 다른 사람들에게 달려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움을 요청했다. 물론, 나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 구겐하임 미술관 외관(왼쪽), 구겐하임 미술관 미술관의 퍼포먼스(오른쪽)
7. 거리 곳곳의 작품들.
뉴욕 거리 곳곳에는 다양한 예술 작품들이 많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간혹 대기업의 건물 입구나 큰 건물의 입구에 설치 미술 작품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지만, 뉴욕의 거리에는 거리 곳곳에 많은 작품들이 산재해 있었다. 나는 9.11테러로 무너져 내린 세계 무역 센터 자리를 오가며 근처 벤치에 앉아 있는 동상을 보았고, 큐브를 보기도 했고, 그 외에 다양한 작품들을 거리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뉴욕은 도시 자체가 미술관이었다. 도시 곳곳에 현대 미술의 흔적이 보였다. 미술관이든 거리든 어디든지 예술이 있었다. 뉴욕은 그런 곳이었다.
△ 월드 트레이드 센터(WTC)와 거리 곳곳의 예술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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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4. 1. 27. 02:21
3rd Edit.
1. 여행 속 "만남".
혼자 여행을 하는 사람이든,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하는 사람이든, 여행은 여행하는 사람에게 있어 만남의 연속이다. 특히 그 만남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혼자 여행을 하는 사람은 더 많은 만남을 경험 할 수 있다]
그 '만남'이라는 것이, 잠깐 스쳐가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조금 길게 이어질 수 있고, 그 만남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만남을 통해서[여행 중 누군가와의 만남]을 통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만남은 어쩌면 우리가 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고귀한 경험일 지도 모른다.
2.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그 여행 속에서 만났던 수 많은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그 만남은 여행이 끝났지만 지속되고 있을 수도 있다] 나도 많은 여행을 했고, 많은 만남이 있었다[아직은 젊은 나이-만 25세 밖에 안되었으니!-라서 더 많은 만남을 가질 수 있었는지도]
인도에서의 많은 사람들, 이집트에서 그리고 유럽에서의 만남, 터키의 친구들, 네팔의 연인, 시베리아 횡단열차속에서의 만남, 남미, 쿠바 등. 수 많은 사람들이 나와 만났고, 대화했고, 함께 했고, 내 카메라 렌즈속으로 들어왔고, 나 또한 가끔은 그들의 카메라 메모리에 저장되었다.
그리고 나는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그들의 다양한 사고방식을 이해했고, 그들의 다양한 문화를 이해했고, 나 자신의 삶의 방향을 만들어 갔다.
만남 속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은 나의 추억이 되었고, 나의 스승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 어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의 재산이 되었다.
3. 쿠바 하바나(Havana)에서의 짧은 여정을 마치고, 왠지 모를 아쉬움을 남겨둔 채. 자메이카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갔다.
쿠바에서의 일주일,
싸구려 카사(까사,casa 홈스테이)에서, 다시는 경험 하지 못 할 쿠바 사회를 간접적으로 경험했다[숙소의 영향이 컷다. 그 곳은 실제 그들이 사는 곳이었으므로] 그것은 그들의 현실, 삶이었다.[내가 머물던 집은 불법 카사로서,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못한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이었다]
나의 비행기는 케이만아일랜드(Cayman Island, 영국령의 카리브해의 섬)를 경유해서 자메이카로 가는 것이었기에[그 비행기가 가장 저렴했다. 약 215US$], 하바나 공항에서 케이만아일랜드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와 같은 비행기를 타는 것 같아보이는 한 꼬마가 나의 앞 쪽 건너편 자리에서 심심한 듯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 때 케이만아일랜드행 비행기가 대기하고 있는 게이트 앞에 있었는데, 그 앞에 그 꼬마와 삼촌뻘로 보이는 사람이 같이 있었으므로 그런 사실을 쉽게 파악 할 수 있었다.]
4. 한 꼬마.
한 꼬마가 하바나 공항, 케이만아일랜드행 비행기에 탑승하는 게이트 앞에 왔다. 그 꼬마는 혼자 앉아 있는 한 남자를 보았다. 검은 머리에 거무잡잡한 피부. 보통의 남자들보다는 조금 긴 머리. 그리고 보통의 남자들 보다는 조금 큰 키. 그 꼬마 여자아이는 귀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은 신기한 무언가를 보는듯한 눈빛으로 동양인 남자를 바라보았다.
꼬마는 그의 앞자리[건너편]에서 그를 몰래 훔쳐보다가, 그가 꼬마에게로 시선을 가져가면 의자 뒤로 숨곤 했다. 그 꼬마의 삼촌뻘 되어 보이는 남자는 쿠바에서의 일정이 피곤했는지 의자 위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고, 그 꼬마는 자신과 놀아줄 상대를 찾지 못해, 심심해 하는 눈치였다.
꼬마의 장난기 어린 행동이 시작되었고, 그 곳엔 숨바꼭질 하듯 긴장감이 나돌았다. 그는 카메라를 집어 들고, 카메라의 초점을 꼬마쪽을 향해서 고정시킨 채, 꼬마를 향해 셔터를 눌렀다.
5.
나와 그 꼬마의 숨바꼭질. 나는 사실 속으로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그 꼬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얼마 후 그 꼬마의 삼촌뻘되는 사람이 잠에서 깨어났고, 우리들의 놀이는 끝이 났다.
꼬마를 향해 셔터를 눌러 대던 그 당시엔 몰랐지만, 그 곳을 떠난 지금 그 때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정말 재미있는 장면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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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4. 1. 27. 02:06
1. 구걸, 구걸하는 사람들.
길을 걷다보면 마주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지하철을 타도 자주 마주칠 수 있다] 여행을 하다보면, 더 자주 마주치게 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당신에게 다가와 손을 내민다. 그리고, 애절한 눈빛을 함께 당신의 시선 속에 던진다. 그리고 간혹 이런말을 함께 당신의 주변에 맴돌게 하기도 한다. One Dollar.
그 사람들이, 그 아이들이. 구걸을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일까? 아니면 그가 그렇게 구걸을 하게 만든[특히, 외국인을 상대로 구걸을 하는] 사회 제도, 구조가 잘못된 것일까? 결론을 쉽게 내릴 수 없을 것 같다[아마도 이 문제는 생각하는 사람에 따라서 다른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여행을 하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들[구걸을 하는 아이들, 사람들]에게 돈을 쥐어준다. 그들이 외치는 원 달러. 원 달러를 외치는 이들에게 있어서 원 달러의 가치는 비교적 크다. 하지만 그에 반해, 원 달러를 건내주는 사람에게 있어서 원 달러의 가치는 너무나도 작은 것이 일반적이다[자기 나라(본국)의 화폐 가치에 비교 했을 때]. 그러기에, 그들은 쉽게 원 달러를, 원 달러를 외치는 이들이게 건네준다.
혹자는 '그들'의 행동이 잘못되었고, 그런 행동을 되풀이 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혹자는 '그들'의 행동은 사회적 약자의 행복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도와 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누구의 말이 옳고, 그르다고 말할수는 없다. 그것은 각자가 가진 가치관의 문제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의 문제이고, 그 동안 그들 자신이 쌓아온 경험의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들에게 손을 내미는 '그들'은 최소한 사회적 강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2. 작은 바구니를 품에 품고,
지하철 차량을 연결하는 통로의 문이 열리고, 잡음섞인 음악 소리가 작은 기계를 통해서 열차 안에 울려퍼진다. 누군가는 얼굴을 찌푸리고, 누군가는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로 그 사람이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지하철 차량 속의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 손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거나, 그 사람이 지나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다가 간혹,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한 손에 들려있는 바구니에 지폐 한장 혹은 동전 몇 개를 집어 넣는다. 그렇게 음악을 짊어진 사람은 유유히 다른 열차칸으로 사라져간다. 잡은 섞인 음악의 파편만을 열차칸에 남겨 놓은채.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뉴스에서는 장마라고 떠들어대고, 비 피해를 조심해야 한다고 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우슨을 펼쳐들고 거리를 돌아다녔고, 그들이 지하보도로 들어섰을 때 하늘로 향하던 우산을 땅을 향했고, 하늘에서 우산위로 떨어지던 물방울은 우산에서 땅으로 떨어졌다. 물방울은 바닥을 적셨고, 이내 작은 바구니를 앞에 두고, 바구니를 향해 엎드려 있던 사람의 무릎을 적시는 듯 했다.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역사를 빠져나오는 길의 풍경은 이랬다.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의 시선은 그들의 뒷통수만 살짝 스쳐 지나갈 뿐, 그들의 바구니를 무겁게 채워주지는 못했다.
3. 기차는 국경을 넘어,
테살로니키를 오후에 떠난 기차는 북쪽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리스 북부지방을 지나, 마케도니아 국경을 지나려 하고 있었다. 국경을 지나기 위해 정차한 기차에는 국경 기차역의 고요함이 스며들고 있었다[기차를 타고 국경을 지나본 사람이라면 알 법한 느낌]. 새 소리가 울려퍼지던 그 때, 내가 타고 있던 칸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꾀죄죄한 얼굴의 한 여자가[30대 중반정도의 얼굴]가 나를 슬픈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알아 들을 수 없는 말로 나에게 말을 걸어 왔다. 나에게 조금 다가오면, 손을 내 밀었다. 그녀의 뒤에는 작은 꼬마가 그녀의 옷깃을 잡고 있었고, 나의 시선은 꼬마에게 잠시 머물렀다가 그녀의 손을 향했다. 그녀의 손에는 유로화 동전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그녀가 했던 말을 생각 해 보았다. 나에게 동전을 달란 말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케도니아를 지나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로 가는 기차에서 유로화 동전은 쓸모 없는 것이었다. 마케도니아에서도 세르비아에서도 유로화는 사용될 수 없는 돈. 골동품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손에 쌓인 동전을 보며, 나는 나보다 돈이 더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을 잠시 했을 뿐, 그녀를 향해 고개를 저을 수 밖에 없었다.
4. 집시, 집시 아이들.
시비우(Sibiu)를 지나 머무르던 작은 마을 시기쇼아라(Sighisoara). 그는 기차역에서 그가 타고 갈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역 앞의 작은 상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역 쪽으로 다가가자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 들었다. 그는 어제, 그 동네의 빌라옆 쓰레기통을 뒤지던 한 무리의 아이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아이들은 말을 걸어 왔다. 그러면서 그의 한 손에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가리켰다. 이미 그가 반 이상을 먹은 소프트 콘이었다. 그의 침과 아이스크림의 녹은 부분이 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아이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아이스크림을 받아 먹었다.
그는 가방에서 자일리톨을 꺼내 아이들에게 하나씩 나눠 주었다. 아이들은 기뻐하며 껌을 받아갔다. 이윽고, 멀리서 기차 소리가 나더니, 서서히 멈춰섰다.
기차 안은 한산했다. 시골 작은 도시를 출발한 기차는 비교적 큰 도시이자, 많은 기차들이 지나는 브라쇼브(Brasov)로 향했다. 그는 음악을 듣고 있었고, 그의 옆 건너편 칸엔 루마니아 전통의상을 입은 것 같은 여인과 아들, 그리고 남편처럼 보이는 남자가 타고 있었다. 그 여인이 갑자기 그에게 말을 걸어 왔다. 그는 알아 들을 수 없었지만, 그 여인이 사진 찍히기를 원한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는 그들의 사진을 찍어 주었다. 그러자 그 여인이 그에게 뭐라고 말했다. 그는 정확히 그 뜻을 알 수 없었지만, 그녀의 행동으로 보아 돈을 달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지만, 사진에 대한 답례로, 유로화 지폐를 한 장 건네 주었다.
5. 몽골, 초원에는 웃음이 울려 퍼지지만,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백화점 앞에는 관광객들이 여러가지 물건을 사기위해서 몰려든다. 그리고, 그들에게 다가가는 다른 이들이 있었다. 너덜너덜한 옷가지를 입고, 얼굴엔 콧물 흐른 자국이 있는 아이들. 그 아이들은 나에게, 나와 같이 있던 일행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아이들의 모습이 불쌍했지만, 그렇게 관광객들에게 구걸을 하는 아이들이 밉기도 했다. 나와 함께 있던 일행 중 한 명이 그 아이들에게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주려 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사탕'이었다. 그는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인도에서, 내 또래의 일본인과 잠시 동행을 한 적이 있었다. 그는 나와 함께 버스를 타고, 조드푸르로 향하는 길이었다. 조드푸르에 도착했을 때, 숙소로 올라가는 길, 언덕 중턱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 한 무리를 만났다. 그 아이들은 우리 둘을 쳐다보았고, 우리도 그 아이들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갑자기, 그 일본인은 보조가방을 주섬주섬 열기 시작하더니, 그 안에서 사탕을 꺼내서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나는 항상 사탕을 준비해서 다녀요. 이렇게 아이들을 만날 때 마다 사탕을 나눠주면 굉장히 좋아하더라고요."라고 덧붙이며 그는 웃어보였다.
왜 그 때가 생각난걸까? 몇 달도 더 전에 여행했던, 인도였다. 인도부터 유럽까지. 그리고 또 다시 유럽에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몽골까지 온 나였다. 여기에서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고 있었다.
구걸하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는 모습. 인도에서 그냥 뛰어놀던 동네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던 모습과는 조금은 다른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어쨌거나, 구걸해서 돈을 얻어가는 아이들이 못마땅했다. 그들은, 충분히 다른 일을 배울 수 있었음에도, 구걸을 배웠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6. 어느 식당, 셋 만의 이야기.
몽골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세 명의 한국인은 해가 대륙 저편으로 넘어가고, 어둠이 몽골을 덥쳤을 때 저녁을 먹기위해 시내 레스토랑으로 갔다. 광장을 지나서, 조금 더 떨어진 곳. 거리는 어두웠다. 식당안은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지만, 밖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칠흑같은 어둠만이 그 식당을 감싸고 있었다. 그는 창밖을 바라보면서 이 세상에는 그 식당과 그 안에 있는 사람만이 존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낮에 있었던, 구걸하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거리로 떠올랐다. 구걸하는 아이들에게 돈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사람과 그들을 도와 주어야 한다는 또 한 사람. 왜 구걸을 하는 것일까? 라는 질문과 함께 서로의 견해가 테이블 위에 쏟아졌다.
그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더이상 없기에, 구걸이라는 수단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을 하던 한 사람. 사회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어 버린 거라는 그녀의 말. 그리고 여러가지 이유를 설명하는 그녀의 말은 어느정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다른 견해를 피력하던 그는, 그것은 자신의 의지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 아이들, 그리고 아니가 조금 더 있는 아이들. 그들이 과연 구걸밖에 할 수 없었을까? 그 아이들이 다른 것을 하고자 했다면, 그의 부모나 다른 나이많은 형제가 다른 일을 할 수 있도록 뭔가를 해 주었다면 그들은 구걸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다른 일을 힘들게 배우고, 하는 것 보다 구걸을 하는게 더 쉽고 편하게 돈을 구할 수 있는 일이라는걸 알기 때문에 그들은 구걸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덧붙였다. "내가 예전에, 돈이 없어서 그리스에서 구걸을 한 적이 있었는데, 구걸을 하다보면 욕심이 생기고, 구걸이라는 것이 돈을 정말 쉽게 모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는 걸 알게돼."(http://dwis.tistory.com/563 참조)
7. 단상(短想)
지하철에서 장님인 척, 구걸을 하는 사람이 지하철을 내리고 역사를 빠져나가면, 고급 승용차를 타고 유유히 사라진다는 말[풍문인지 진실인지는 알 도리가 없지만]을 들은 적이 있다. 구걸로 상당한 수입을 올린다는 말이다. 지하철역이나 길거리에 하루종일 업드려 있는 사람들의 바구니에 얼마 만큼의 돈이 들어가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난 항상 이런 생각을 해본다. 저들은 정말 무언가 다른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일까?
물론, 구걸도 구걸을 하는 사람의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특히, 경제적으로 발전이 덜되어 사회 전체가 풍족하지 못한 곳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아이들 중, 극빈층에 속하게 되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구걸밖에 없을 수도 있는 것이고, 구걸이 편하고 좋아하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구걸에 대해서, 누가 옳고, 누가 그릇됐다고 가타부타 할 수 없는 것 같다.는 생각.
-해가 저무는 시기쇼아라
- 시기쇼아라 역의 아이들,
- 시기쇼아라의 아이들
-기차 안,
- 불가리아, 집시 가족
- 울란바토르 메인광장
-사원 주변 풍경
- 전통과 현대의 공존
- 어둠이 스미는 광장
-울란바토르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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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3. 10. 9. 22:25
1.템플스테이(Temple Stay), 하다.
언제부턴가 우리 주변에 템플스테이에 관한 이야기가 많아졌다. '사찰', '사원', '신전' 등에서 머문다는 의미의 '템플스테이'는 종교적인 의미를 떠나, 우리 삶에서 문화 생활의 한 단면으로 자리잡고 있다. 바쁜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호젓한 사찰에 머물며 몸과 마음의 다스리고 자기 자신을 되돌아 보며, 힐링을 한다는 의미로 템플스테이는 꽤나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템플스테이를 하는 데 있어서 개인이 가진 '종교'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Temple'은 모든 사람에게 개방적이며, 템플스테이의 기회를 제공해 준다. 템플스테이는 특정 종교를 믿는 사람들만의 것이 아닌, 우리 모두가 향유할 수 있는 문화적 행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황금사원(Golden Temple, 골든템플)
우리는 템플스테이를 하면서, 그 사원의 종교가 추구하는 이상향을 좇을 필요는 없다. 그곳의 상징물이나, 분위기가 자신이 추구하는 어떤 목적을 얻는데 도움이 된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은 것이다. 단지 우리는 템플스테이를 통해서 자신을 위한 수양을 통해 어떤 깨달음을 얻으면 되는 것이다.
우리는 템플스테이를 통해 새로운 무언가를 추구할 수 있다.
2.템플스테이_가능할까요?
여행을 하다보면, 종교와 관련된 많은 건축물들과 마주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여행지인 '경주'는 신라시대 불교 유적 일색이며, 우리나라 국보/보물급 유물들도
룹비니(Lumbini)의 한국 사찰
종교와 관련있는 것이 대다수이다. 또한, 유럽 대부분의 관광지들은 로마 제국과 중세 기독교의 산물이며, 중동의 대다수 유적지들도 종교만 조금 다를 뿐, 유럽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인도에는 다양한 종교가 있고, 각각의 종교들은 그들만의 성지(聖地)를 가지고 있으며, 외국인 관광객이든 현지인이든 많은 사람들이 성지를 찾는다.
성지에는 흔히 '사원'이라고 일컬어지는 각 종교들의 'Temple'이 있다.
인도와 네팔은 불교의 발상지 답게, 불교와 관련된 많은 성지가 존재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곳이 네팔의 룸비니[Lumbini, 부처님(고타마 싯타르타)이 태어난 곳]와 인도의 보드가야[Bodh Gaya,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장소, 보리수 나무가 있다]이다. 우리는 그곳의 불교 사찰에서 템플스테이를 할 수 있다.
3.황금사원(Golden Temple), 친구들.
황금사원의 외국인 숙소는 협소한 공간이기에 언제나 많은 외국인들로 붐빈다. 물론, 그곳에도 숙소를 관리하는 사람이 따로있고 침대의 개수를 넘어서는 외국인은 그곳에서 머물 수 없었다. 다행히
사원의 숙소. 현지인들이 묵는 숙소다.
내가 암리차르의 황금사원에 도착했을 때, 하나의 침대가 비어 있었다. 어두운 주황색 조명이 약하
게 빛나고 있는 길쭉한 방에 침대들이 길게 놓여 있었고, 여럿이 함께쓰는 작은 방들도 몇 개 있었다. 종교 시설에서 마련해 준 숙소라기 보다는, 게스트하우스의 도미토리 같은 느낌을 풍기는 그 숙소에는 나 처럼 혼자 여행을 다니는 여행객에서부터 둘 또는 셋이서 다니는 여행객까지 다양한 여행자들이 있었고, 책을 보거나 수다를 떠는 사람, 그리고 음악을 들으며 낮잠을 자는 사람까지 다양 행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나는 내 옆 침대에 누워있던 남자와 인사를 했다. 이름은 짐(Zim). 미국 보스턴에서 왔다고 했다. 마침, 점심을 먹고 난 뒤 책을 뒤적이고 있었고, 잠시 후에 암리차르의 한 사원에 놀러가려던 참이었다고 했다. 그곳은 Mandir Mata Lal Devi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나는 그곳에 대해 전혀 몰랐고, 짐도 잘 몰랐지만 일단 갈 거라고 했다. 두 명의 동행자가 있었다. 내 침대는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쪽이었고, 두 명의 동행자는 길쭉한 방의 안쪽에 위치한 침대에 머물고 있는 두 명의 영국 소녀였다[여성이라고 하기에는 젊었으므로]. 하나(Hannah)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는 마른 체형에 안경을 썼고, 백금색 금발 머리를 가진 소녀였다.
짐, 캐시니, 하나(왼쪽부터)
또 다른 소녀는 캐시니(Kayshani)라고 하는 소녀였는데, 하나와 달리 통통한 체격에 성격도 활발했고, 피부는 햇빛에 약간 그을린듯 했으며, 머리색은 갈색이었다. 하나와 캐시니는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졸업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보스턴에서 온 짐, 영국에서 온 하나와 캐시니, 그리고 나는 황금사원의 숙소에서 만나자 마자 함께 Mandir Mata Lal Devi라는 사원을 찾아 떠났다.
Mandir Mata Lal Devi를 찾아가는 길은 유쾌했다. 인도의 그저 그런 거리였지만, 대도시가 아니었고, 관광객들은 대부분 국경인 와가(Wagah border)로 향해서인지 거리에 관광객들은 거의 없었다. 거리의 인도 사람들도 우리를 낯선 눈으로 바라보았다. Mandir Mata Lal Devi는 여러
신들의 모습(Mandir Mata Lal Devi)
신들을 모셔놓은 사원이었다. 인도의 수 많은 신들. 수 만 가지의 신들이 존재한다고 들었는데, 그런 신들을 모아 놓고, 모시고 있는 사원이었다. 우스꽝스러운 생김새의 신들에서부터 돌맹이 모양의 신들까지 다양한 생김새의 신들이 있었고, 우리는 동굴 탐험을 하듯이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놀이동산 귀신의 집에 온 기분이라고 할까?
한참 동안 사원 안을 헤매고 돌아다니고 나서야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하나와 캐시니 그리고 짐은 활동적이었고, 웃음을 멈출 줄 몰랐다. 그렇게 우리는 사원에서의 추억을 뒤로 한 채, 국경에서 벌어지는 국기 하강식을 보러 가기 위해 와가로 가는 릭샤에 올랐다.
4.여행이란 그런 것.
여행이란 우연의 연속이 만들어 낸 산물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아무런 구체적인 계획이 없이, 황금사원에서 황금 빛으로 빛나는 사원을 보기 위해 그곳에 갔다. 그곳엔 내가 들었던, 내가 생각하던 황
밤의 황금사원(Night of Golden Temple)
금사원이 있었다. 타지마할보다 더 뛰어난 예술, 건축물이라고 불리던 황금사원이었다. 그리고 듣던대로 아름다웠다. 어둠 속에서 황금빛으로 빛나는 황금사원은 나에게 묘한 기분이 들게 했다. 사원안은 언제나 경건했다. 혼잡스러움 속에서도 경건함이 깃들얼 있었다.
우연히 친구들을 만났다. 그곳에서 처음 만났고, 그리고 황금사원을 떠나면서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친구들이었다. 모두 황금사원으로 모였다가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졌다. 그곳에는 세계 각지에서 모인 친구들이 머물고 있었다. 템플스테이를 하며, 황금사원에서 제공하는 식사를 먹었고, 제공하는 잠자리에서 잤고, 그곳의 공동 샤워실에서 함께 샤워를 했다. 함께 밥먹고, 함께 호흡하면서 공통의 목적을 가지고 행동하는 우리들이었기에, 짧은 기간에 친해질 수 있었고, 나이와 국적을 떠나 서스럼없이 지낼 수 있었다.
내가 한 달 뒤에는 터키에 갈 예정이라고 말하자, 터키에서 여행온 친구가 이스탄불의 저렴한 숙소
우리들. Friends.
가 있는 곳과 맛있는 먹거리가 있는 골목을 알려 주었다. 맥글로드간즈로 간다고 하자, 그곳에서 온 여행객이 그곳에 쉽고, 편하게 가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나도 내가 지나온 길에 대해서 알려 주었다. 하나와 캐시니 그리고 짐과는 서로 간단한 선물을 교환했다. 흔히 여행객들이 차고다니는 팔찌. 서로 팔찌를 주고 받고, 헤어졌다. 첫만남이 있고 난 다음 날, 짐이 떠났고, 그 다음날은 하나와 캐시니가 떠났다. 그리고 그 다음날은 내가 황금사원을 떠났다.
모두가 우연히 만나지만, 그것이 필연적인 것이라는 착각이 드는 것. 그리고 각자의 길을 가기위해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지만, 그러지 않을 것처럼 지낸다. 여행이란, 그런 것이다.
여행. 만남과 헤어짐을 통해 완성 되는 것. 템플스테이를 통해서 더 특별해 질 수 있는 것.
황금사원으로 들어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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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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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황금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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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황금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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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하강식에 모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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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하강식(인도-파키스탄 국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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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으로 지는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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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3. 9. 17. 11:21
1.우리가 생각하는 것들_장소에 관하여.
우리가 장소를 기억한다는 것은, 그 장소에 어떤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어떤 특정한 장소를 접하는 사람들은 각자 그 장소를 다르게 인식한다. 어떤 장소는 누군가에게는 좋은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특별한 장소가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 장소가 불쾌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곳 일 수도 있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무런 감흥
장소와 방향(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도, 의미도 없는 기억에 조차 남지 않는 '장소'가 될 수도 있다.
이처럼 '장소'는 가변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장소에 대해 서로 다른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장소는 사람들에게 상이한 의미를 전달하게 되는 것이다. 그 '장소'는 그 자체의 하나로 존재하지만, 우리는 그 장소와 함께 다른 수많은 '이미지'들을 결합시켜 다양한 '장소'로 만들어 우리들 각자의 머릿속에 넣어둔다[그것이 의식적 행동이 될 수 도 있고, 무의식적인 행동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기억을 하거나 어떤 추억을 만드는 데 있어서 많은 이미지들을 활용한다[기억을 하는 데 있어서 이미지를 활용하는 것은 상당히 유용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어떤 장소는 어떤 특정한 이미지와 연결되어 우리의 머릿속에 남게 된다. 예컨데 우리가 일상을 보내며 과거의 특정한 경험과 연관되는 어떤 특정한 이미지[사물, 사진, 영상 등의 모든 형태]를 접하게 될 때 우리는 그 이미지와 관련된 어떤 기억을 떠올릴 수 있고, 잊고 있던 옛 추억이 떠오름으로 인해서 즐거운 감상에 젖을 수도 있다.
또한, 우리는 어떤 장소를 생각하거나 떠올리려 할 때, 그 장소에서 보았던 이미지들을 회상할 수도 있고, [아직 그 장소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이 없다면]책이나 인터넷에서 보았던 어떤 것을 떠올릴 수도 있다. 우리가 떠올린 이런 이미지들은 어떤 '상징'이 되어 우리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징'은 우리가 여행을 할 때, 어떤 지향점 혹은 목표가 되어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 우리는 여행을 하면서 그런 '상징'을 좇고, 그 '상징'을 통해서 머릿속에서 또 다른 이미지들을 만든다.
2.우리가 보고싶어 하는 것들_상징
우리는 '상징'을 찾아 다니며, 그것들을 보고싶어 한다.
많은 사람들이 '뉴욕'하면 자유의 여신상을 떠올린다. 많은 사람들이 '파리'하면 에펠탑을 떠올리고, '런던'하면 빅밴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나라 그 도시를 여행하며 우리는 그런 상징물을 찾아 사진을
찍고, 우리 각자의 추억을 만들어 간다. 비단 이런 '상징 좇기'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시가 아닌, 한
뉴욕, 자유의 여신상
나라[국가]의 상징과도 관련이 된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중국의 만리장성, 브라질의 쌈바, 몽골의 게르 등 우리는 이들 나라를 방문할 때면 그런 상징을 찾아 헤멘다.
현대 사회의 여행은 어쩌면 이런 '상징 좇기'를 하는 일종의 형식 유희라고 볼 수도 있으며, 여행사들은 그런 '상징 좇기'를 부추기며 그 나라를 방문했을 때, '상징물' 앞에서 사진을 찍는 행위가 여행의 모든 것이며, 여행의 종착지인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이러한 '상징 좇기'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상징'은 여행의 목적지가 될 수도 있고, 여행의 목표가 될 수도 있다. 어느날 내가 책을 읽다가[그 책의 제목은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였다] 문득 그 책의 배경이 되는 도시에 가고 싶어졌고, 그 도시의 '상징'을 그 책에 나오는'도시의 광장'이라고 생각하고 무작정 그 도시의 광장으로 향했던 것 처럼, '상징 좇기'는 여행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도시의 '상징', 여행의 '상징 좇기'를 통해 우리는 그 도시를 기억하고, 여행을 통해 자신이 만든 새로운 경험을 바탕으로 그 도시를 이미지화 한다. 그리고 나 자신과 그 장소, 도시 사이에 새로운 의미관계를 만들어 그 장소를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여 그곳을 자신만의 특별한 공간으로 만들어 간다.
3.인도의 상징을 찾아서_
인도의 '상징'. '인도'하면 떠오르는 것,
많은 것들이 떠오를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올리는 것 중 하나가 '타지마할(Taj Mahal)'이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의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는 타지마할. '인도의 대표적인 건축물', '인류가 보편적으로 감탄할 수 있는 걸작'이라는 수식어들. 이런 수식어들은 우리들에게 '타지마할'이 인도
타지마할(Taj Mahal), 인도 아그라
의 상징이 될 수 있게 해 준다. 우리는 많은 책들을 통해서, 그리고 많은 광고를 통해서 타지마할의 모습을 보아 왔다.
델리(Delhi)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아그라(Agra). 많은 사람들이 아그라를 찾는 목적은 인도의 '상징'을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이다. 아그라 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인류가 남긴 걸작 '타지마할'을 만날 수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타지마할은 아그라에서 요염한 자태를 뽐내며 관광객들을 맞아들이고 있다. 파란 하늘, 길게 늘어진 회랑, 그리고 그 끝에 위치한 새햐안 색의 거대한 건물. 곡선이 아름다운 건물, 그 주위에 네 개의 기둥이 서 있다. 우리가 많이 보아왔던 '타지마할'의 모습이 있다.
하지만, 그곳에 가보면 우리가 상상하던 '타지마할'이 아닌 또 '다른 타지마할'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인도의 상징인 '타지마할'을 본다는 생각으로, 길을 떠났다면 우리는 그 목적을 생각하며 그것에 충실하면 된다. 하지만, 여행은 그 하나의 목적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여행은 그 목적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겪는 수 많은 사건들[일상의 소소한 일들을 포함한 모든 일들이라는 의미]의 집합체이다. '타지마할'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수 많은 사람들, 무더위, 그리고 놀랄만큼 비싼 타지마할의 입장료. 많은 요소들이 우리들을 불쾌하게 만들 수 있다. 이러한 불쾌함을 만드는 소소한 요소들이 우리가 인도의 상징을 바라보며, 감탄하고 싶다는 순수한 목적을 훼손시킬 수도 있다. 심지어는 '타지마할'이라는 건물이 가진 본질적 가치, 여행의 순수했던 목적마저 훼손된 채, 우리는 타지마할에 관한 안좋은 기억만을 가진 채 아그라를 떠날 수도 있다.
4.'타지마할'에 관한 짧은 대화_
우연히 어떤 여행자들을 만났다. 그들은 타지마할에 다녀온 뒤였고, 아직 타지마할에 가 보지 않은[곧 타지마할을 방문할 예정인] 여행자들에게 타지마할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물론 나도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 중에 하나였다]. 그들 무리 중 한 남자가 타지마할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를 해 주고 있었고, 모두의 귀와 눈은 그의 입과 몸짓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는 타지마할에 가는 방법, 타지마할의 입장료 등 자신이 경험한 타지마할에 대해 열심히 말했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그는 덧붙였다.
"타지마할이 꼭 가봐야 하는 곳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냥 큰 건물 하나 있는데, 입장료 얼마나 비싼지, 완전 바가지에요.그 입장료[타지마할의 입장료는 외국인과 내국인이 다른데, 외국인이 내국인에 비해서 30배 이상 비싸다. 내국인은 20루피, 외국인은 750루피]에 비하면, 정말 형편없어요."
그러고 나서 심지어 이런 말을 했다.
"돈아깝고 시간아깝고, 가지마세요"
나는 그의 말에 반박하고 싶었지만, 아직 그곳에 가보지 않은 나로서는 별로 할 말이 없었기에, 그 말을 듣고도 잠자코 있었다. 옆에서 나와 함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른 여행자가 말했다.
"가지 말까... 시간도 별로 없는데."
그러면서 그녀는 아그라에서 멀지 않은 다른 도시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그렇게 여러가지 여행 정보를 주고 받으며 한참을 이야기 한 뒤, 나는 나와 함께 타지마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던, 고민하던 그녀에게 말했다.
"타지마할에 가보세요. 왜 저 사람 말만 듣고 가보지도 않은 곳에 대해서 편견을 가지고 있죠?" 그녀는 다시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덧붙였다.
"후회하더라도 가보고 후회해야지, 가보지도 않고 후회도 못해보는 건 너무 억울하지 않나요?"
5.우리는 왜 그곳에 머무르지 않는가_Taj Mahal.
아침 일찍, 아그라의 타지마할로 향했다. 아침 일찍 타지마할에 가서, 그곳에서 시간을 보낸 뒤 델리로 돌아올 예정이었다. 아그라 역의 혼잡한 인파를 헤치고 나와 릭샤꾼들을 무시한 채, 타지마할을 향
저 너머, 타지마할.
해 걸었다. 타지마할로 향하는 길에, 아그라 성을 비롯한 여러가지 볼거리들이 있었지만 그런 것들은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오직 세기의 명작, 인도의 '상징' 타지마할을 봐야 한다는 생각과 타지마할에 기대감이 있었기에 한시라도 빨리 타지마할을 보러 가고 싶었다. 아그라의 오래된 다른 건축물들을 뒤에 흘려보내고, 타지마할 입장권을 구입했다. 듣던대로 비싼 가격이었다. 정말, 터무니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수 많은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외국인 가격과 내국인 가격이 따로 책정되어 있는 곳을 수 없이 봐왔지만 이렇게 차이가 많은 폭리를 취하는 곳은 처음이었다.
보안검사를 한 뒤, 넓은 광장 같은 곳을 지나 타지마할이 있다는 곳을 향해 갔다. 큰 관문 같은 것이 있었고, 그 아래 수 많은 인파가 뒤엉켜 있었고, 그 뒤로 타지마할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관문의 어두운 통로, 그 뒤로 파란 하늘. 그 아래, 새하얀 타지마할이 있었다. 듣던대로 웅장했고, 듣던대로 라인이 살아 있었다. 책에서 보던, 딱 그 모습이었다. 한가지 다른 점, 새롭게 발견한 것이 있다면, 내 주변, 타지마할의 주변에만 수 백명의 사람들이 뒤엉켜서 타지마할의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혼자, 타지마할을 향해 걸어갔고, 사진을 찍기 위해 뷰 포인트(View Point)에서 다른 사람들
이 사진을 다 찍을 때까지 기다리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
사진찍는 사람들
고, 나는 벤치에 앉아 타지마할이 뿜어내고 있는 아우라를 느껴보기도 했다. 새하얀 타지마할의 대리석 바닥. 바닥 조차 돌이 아닌 부드러운 지우개로 만들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돌이 아닌, 하얀 진흙으로 빗은 건물 같았다. 부드러움이 묻어나는 건물이었다. 주변을 둘러싼 회랑 사이사이를 드나들며, 회랑의 출입구 사이로 언뜻 보이는 타지마할의 모습을 구경했다.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하는 타지마할. 내가 타지마할의 주위를 거닐며 보는 타지마할은 시시각각 모습을 바꾼채 나에게 다가왔다. 타지마할 앞으로 펼쳐져 있는 정원, 나무 그늘 벤치에 앉아 타지마할을, 타지마할 주위를 거니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햇살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그런 타지마할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와서 사진을 찍고 타지마할 주위를 한바퀴 돌고, 다시 들어왔던 관문을 통과해서 빠져나갔다. 나는 타지마할이 잘 보이는 한켠에 앉아 그 사람들을, 그리고 타지마할을 유심히 살폈다.
Taj Mahal, 사진찍는 소년
'이게 바로, 세기의 걸작이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동안 나는 여행을 하면서 유럽의 수많은 건축물들을 보아왔고, 숨막히는 절경도 보아왔지만, 이곳 타지마할의 앞에서 또 다른 감동을 받고 있었다. 선과 색과 하늘의 조화. 그 옛날, 무굴제국의 황제 '샤 자한'이 타지마할을 만든 기술자들의 팔을 잘랐다는 이야기가 생각났고, 충분히 그럴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감동을 줄 수 있는, 죽기전에 꼭 봐야 하는 건물, 그것이 왜 타지마할인지, 그 정답은 여기에 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 누군가의 말을 듣고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그것은 정말 '일생일대의 후회될 일' 이라고 생각했다. '입장료'가 아깝지 않았다. 혹자들이 말하는 터무니없이 비싼 입장료,라 할지라도 타지마할은 그 입장료를 내고라도 볼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돌바닥에 앉아 타지마할을 보며, 감동을 하며, 감격에 차 올라 있을 때, 한 여행객이 내 눈에 밟혔다. 그녀도 나를 보았고, 자연스럽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정말 멋지지 않아요?' 내가 말했고, 그녀는 '정말 그렇네요'라고 말한뒤, '식사하셨어요?'라고 덧붙였다.
시간이 많이 흘러 있었다. 나는 그녀의 제안에 따라, 식당으로 향했고, 식사를 하고, 근처 카페테리아에 앉아 음료를 마신 후, 조금이나마 무더위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그녀가 말했다.
'가이드 북에 보니까, 아그라에 볼거리가 꽤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아그라 성에 가볼까 해요. 거긴 타지마할보다 볼 게 많을 것 같아요. 같이 갈래요?'
그녀는 총총걸음으로 아그라 성을 향해 걸었다. 나는 아그라 성에 들어가지 않았다. 나무 그늘에 앉아, 아그라의 풍경을 바라보았을 뿐이다.
얼마 뒤, 그녀는 아그라 성의 입구를 빠져나와 나무 그늘에 앉아 있던 나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여기가 타지마할보다 볼건 더 많은데요? 미소"
6.우리는 무엇을 볼 것인가_
타지마할, 새하얀 건물이 파란 하늘아래. 은은한 빛을 내뿜으며 서 있다. 단지, 그것이 전부다. 타지마할이 왜,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일까. 스쳐지나가듯 보면서, 사진만을 찍는다면, 타지마할이 주는 감동을 느끼지 못한 채 지나칠 지도 모른다. 타지마할을 그윽히 바라보며, 타지마할이 내뿜은 아우라를 느낀다면, 우리는 그 건물이 가지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타지마할에서 뿐만 아니라, 많은 곳에서 세기의 걸작들을 만난다. 로마에서, 파리에서, 안데스 산 속의 마추픽추에서. 그들은 단지, 사진을 찍기 위한 배경이 아니다. 사진을 찍기 위한 피사체가 아니다. 그들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지만, 우리가 그들의 가치를 한순간에 발견해 내기는 쉬운일이 아니다.
우리는 그들 곁에 머물면서, 그윽히 그들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한다면, 감동이 밀려올 것이고, 새로운 의미를, 새로운 느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사진을 뛰어 넘는 그 장소의 진정한 이미지를 머릿속에 새겨넣을 수 있다.
구경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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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마할, 그 감동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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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마할에서 바라본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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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마할,
타지마할, 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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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다른 볼거리를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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