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카파도키아 Daylight - 풍경이 주는 즐거움.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4. 5. 10.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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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등산 좋아하세요?

 최근 등산을 다니는 사람이 많아졌다. 웬만한 회사에서는 사내 등산 동호회가 있을 정도고, 아파트 단지의 등산 동호회를 비롯해서 외부 등산 동호회들이 즐비한다. 그만큼 등산을 하는 인구도 많아졌고, 등산복을 판매하는 곳도 눈에 띄게 많아졌다. 등산이 주는 매력은 '산 정상에 올라 섰을 때'느낄 수 있는 쾌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산에 오르는 과정은 어떤 산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힘들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산 정상, 높은 곳에서 산 아래를 내려다 볼 때 느끼는 상쾌함과 함께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느낌은 등산의 큰 매력이 아닐 수 없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풍경. 탁 트인 풍경은 우리를 즐겁게 한다.


△ 웰컴투 괴레메, 카파도키아.



2. 5월의 카파도키아, 괴레메(CAPPADOCIA, Göreme)

 터키 중부의 카파도키아로 향했다. 5월의 카파도키아의 기온은 봄을 느끼기에 충분했고, 하늘은 파랳다. 카파도키아의 기괴암석들이 만들어 놓은 동굴들을 이용한 호스텔 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동굴 도미토리'를 제공하고 있었고, 나는 그곳을 선택했다. 5월의 카파도키아는 조용했다. 여행 비수기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거의 없었고, 숙소에서 아침을 먹는 사람은 나와 노년의 부부 두 팀이 고작이었다.


 카파도키아의 기괴 암석 위로 떨어지는 햇살을 받으며 카파도키아를 걸었다. 나는 특별한 일정이 없이 이곳 저곳 주위를 서성이며 주변을 돌아다녔다. 5월의 카파도키아에는 봄 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왔고, 바위들 사이에 자리한 마을은 봄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한적한 도로위로는 이따금씩 관광객들을 가득 실은 버스와 카파도키아 사람들을 가득 실은 봉고차가 지나다닐 뿐, 다른 자동차를 찾아볼 수 없었다. 관광객들을 실은 버스는 뷰포인트(View Point)에 멈춰서서 관광객들을 버스 밖으로 토해냈고, 관광객들은 그곳에서 사진을 찍고, 기념품을 고르느라 정신이 없어보였다. 나도 그들 틈에 섞여 사진을 찍고 나의 갈 길을 갔다.


△ 뷰 포인트(View Point)에서 바라본 카파도키아.


△ 카파도키아의 봄, 한적한 마을.


3. 햇살, 하늘, 경치. 완벽한 조화.

 카파도키아, 괴레메에 '특별히 뷰 포인트(View Point)가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해 봤다. 뷰 포인트에서는 괴레메 시가지 쪽을 향해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탁 트인 풍경이 펼쳐 져 있었지만,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풍경을, 더 멋진 풍경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은 많았다. 파란 하늘 아래, 뽀죡하게 솟아 오른 암석과 동굴. 자연이 만들어 낸 작품은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가볍게 불어오는 바람과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꽃, 흔들리는 야생초들과 어우러져 멋드러진 풍경을 선물하고 있었다.

 우치사르(UÇhisar)에서부터 괴메까지 걸어가면서 발견한 카파도키아의 풍경은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멋진 풍경과 견주어봐도 결코 뒤지지 않을 만큼 멋진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꾸미지 않은 아름다움이라고 할까? 단순한 구성이었지만 복잡한 듯한 풍경. 그러면서도 차분한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있었다. 

 카파도키아의 변덕스러운 날씨도 이런 아름다움을 손상시킬 수는 없었다. 천둥번개를 데려온 구름들이 비를 흠뻑 뿌리고 지나가기도 했지만, 야생 들꽃들은 그런 비에도 아랑곳 않고 만개해 있었다. 변덕스러운 날씨 뒤에 찾아오는 파란 하늘과 산뜻한 공기는 카파도키아의 대지위를 걷는 나를 한층 더 즐겁게 했다.


△ 카파도키아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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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지도 없이 길을 헤매도, 그저 I♥NY(3) - New York City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4. 4. 26.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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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도, Map.
 
  역사 교과서나 위인 전기를 통해서, 혹은 다른 여러가지 매체를 통해서 한 번 쯤 들어 봤을 법한 이름이 있다. '김정호'. 조선시대에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다는 사람. 물론, 그 전에도 지도를 그렸던 사람은 많지만, 그의 이름이 아직까지 불려지는 이유는 아주 '정확하게'지도를 그렸기 때문이리라.

  여행을 가거나 어딘가를 찾아갈 때, 지도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여행을 하는데 있어서 지도는 아주 중요하다. 지도 없이 어딘가를 찾아 가겠다고 길을 나선다면 하루종일 길을 헤매면서 하루를 다 허비할 지도 모른다. 지도가 있어도 지도를 잘 볼 줄 모른다면 길을 헤멜 지도 모르지만, 지도가 있으면 현지인들에게 길을 물을 수가 있다. 요즘은 스마트폰의 지도 서비스가 아주 좋기 때문에 이제는 '디지털 지도'를 사용하여 쉽게 길을 찾기도 한다.

  지도를 보며 골목길을 누비다가 목적지에 도달 했을 때의 기쁨. 그 순간에는 택시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 했을 때는 느낄 수 없는 성취감이 있다. 가끔은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끼리 이쪽이니 저쪽이니 티격태격 하다가도, 서로 의견을 잘 교환하여 목적지에 제대로 도착했을 때는 서로간에 돈독한 신뢰를 쌓을 수도 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는 사실[지도를 잘못 보고 이상한 곳을 헤메다가 결국 싸움에 이르게 되는 될 수도 있으니 조심하자].

  우리는 여행을 다니든, 일상 생활을 하든 '지도(Map)'라는 이름이 붙은 다양한 것들을 접한다. 지도는 알게 모르게 우리의 생활속에 스며들어 있다.


2.서울의 지도, 서울의 길.


   전 세계의 여느 대도시가 그렇듯이 서울에는 무수한 지하철 노선이 얽히고설켜 있다. 지방 작은 도시에 사는 사람이 서울에 올라와서 지하철 노선도를 처음 보게되면 눈이 휘동그래 진다. 지하철 노선도는 내가 어디에서 어디로 가야할 지 골똘히 생각하게 만든다. 

  함께 자취를 하던 친구와 주말마다 오토바이를 타고 서울 관광 안내 책자에 나오는 서울의 관광 명소를 돌아다니던 때가 있었다. 큰 도로를 벗어나 작은 골목길이나 좁은 도로를 지날 때,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서 헤매던 기억이 있다. 구불구불 꼬여있는 서울의 골목길은 저 길이 이 길 같고, 이 길이 저길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도가 있었지만, 길을 찾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우리가 찾던 목적지가 나오기도 했다.


3. 뉴욕 지하철 노선도(New York Metro Map)

  JFK공항(John F.Kennedy International Airport)에서 맨해튼의 125th Street까지 지하철을 타고 이동 했다. 125번가는 할렘의 중심가였다. 그 곳에 위치한 숙소가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가장 저렴한 숙소 중 하나였기에 나는 서슴없이 그곳으로 이동했다. JFK 공항에서 출발하여 두 번 지하철을 갈아타고나서 125번가 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게스트하우스에 비치된 뉴욕 관광 안내 지도를 집어 들었다. 그 지도의 한쪽 면에은 큼직하게 뉴욕 메트로 맵이 뉴욕의 지도와 겹쳐져서 그려져 있었다. 아주 간략하고 보기 좋게.


  나는 뉴욕 지하철 지도의 역 이름을 살펴 보던 중 한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지하철역 이름과는 좀 다른 역 이름들. 우리나라의 지하철역이름은 그 동네의 지명이나 큰 건물의 이름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예를 들면 3호선의 대화, 구파발, 불광, 홍제, 옥수, 약수, 압구정 등] 그렇지만 뉴욕 지하철의 역들은 대부분 그 거리의 이름을 지하철 역이름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특히, 맨해튼의 경우 그 특징이 두드러 졌다.



△ 뉴욕 지하철 노선도(New York Metro Map)


 맨해튼은 가장 아래 쪽, 남쪽의 1st street부터 북쪽으로 가면서 동서로 가르지르는 길에 번호를 부여해서 길 이름을 구성하고 있엇다. 1st, 2nd, 3rd, 4th, 5th .... 10th, 100th, 125th street...이런 식으로 동서를 가르지르는 도로에는 스트릿(street)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남북을 가로지르는 길에는 way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었다. 그래서 맨해튼을 남북을 가로지르는 대표적인 길이 바로 '브로드웨이(broad Way)'이다.  지하철 역들은 주로 street 넘버를 지하철 역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같은 스트릿(Street)의 동쪽과 서쪽에 서로 다른 지하철 노선이 지나가는 경우에는 동일한 지하철 역 이름을 가지고 있었기에 나는 종종 실수로 다른 역에서 내리곤 했다.

  내가 가장 눈여겨 본 지하철 역은 나의 숙소가 위치하고 있던 125th Street와 42nd Street의 타임스퀘어 역이었다. 그 외에도 20번가, 7번가 등 많은 역들이 거리 이름으로 되어 있어서 그곳을 지도에서 그곳을 찾아 이동하기가 아주 쉬웠다.


4. SOHO부터 Wall Street까지.
 

   소호(SOHO)에 가 보고 싶었다. 예전에는 화랑이 즐비해 있었다지만 높아진 임대료로 인해 화랑들은 이제 주로 첼시 쪽으로 이동하거나 더 먼 곳으로 서서히 이동하고 있다고 했지만 '화랑'의 흔적을 찾고 싶었다. 소호는 패션의 거리가 되어 가고 있다고 들었다. 론니플래닛 뉴욕 시티(Lonely planet, New York City)에 나온 안내에 따라 지하철 역에서 내렸지만, 그곳이 소호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그곳이 소호라고 해서 '여기가 소호 입니다'라는 안내판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소호역'이라는 말도 없었으니 나는 그저 사람들을 따라서 걸을 수 밖에 없었다. 왠지 내가 가는 곳이 '소호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무작정 사람들이 많이 가는, 젊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뒤쫓았다.


    

△ 리틀 이탈리아와 차이나타운은 붙어 있다.


  길을 걸으며 거리 곳곳에 파편처럼 흩어져 있는 예술의 흔적과, 건물들의 모습에 취해 셔터를 누르다 보니 어느새 내가 와 있는 곳은 '리틀 이탈리아(Little Italy)였다. 언젠가 '리틀 이탈리아'에 대해 읽은 기억이 났다. 차이나타운 근처에 위치한 '이탈리아 타운'. 조금 더 걸으니 '차이나타운(China town)'이 나왔다. 그러면서, '차이나 타운의 지하로 잘못 들어가면 영영 빠져나올 수 없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차이나타운의 지하는 미로처럼 얽혀 있어서 뉴욕 경찰들도 그곳으로 들어가는 것을 꺼려한다는 이야기.

  차이나타운의 한 테이크아웃 음식점에서 사람들이 음식을 사 가는 모습을 보니 배가 고파왔다. 메뉴를 고른 만큰 돈을 지불하는 방식이었는데, 가격은 저렴했다. 음식을 사 들고, 근처에 있는 공원에 앉아 배를 채운 다음 다시 발걸음을 남쪽으로 옮겼다. 점점 더 소호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남쪽으로 내려가자 NYPD(뉴욕 경찰서)건물이 나왔고,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더 이상 이쪽으로 오지말라고 소리쳤다. 나는 방향을 서쪽으로 돌려 계속 걸었다. 법원 같은 건물이 나왔고, 나는 다시 지하철 역으로 들어갔다. 42번가로 돌아가려 했으나, 나는 지하철을 잘못 타버렸고 브루클린 브리지(Brooklyn Bridge)를 건넜다. 맨해튼을 떠나 브루클린으로 가고 있었다. 맨해튼의 야경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5. SOHO에서 타임스퀘어까지.

  나는 다음날 또 다시 소호를 찾았다. 이번에는 다른 지하철 역에서 내렸다. 왠지 그곳이 소호의 중심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을 빠져나오니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그리고 많은 유명 브랜드의 매장이 깃발을 펄럭이며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제대로 찾아온 것 같았다. 아메리칸어페럴, 유니클로, 바나나리퍼블릭, 게스, 디씨슈즈 등의 많은 해외 유명 의류 브랜드들이 내 눈에 띄었다. 호주에서 자메이카까지 6개월 이상을 보내면서 나는 여름 옷만을 가지고 있었고, 뉴욕의 추위를 견디기 힘들었다. 소호의 여러 의류 매장들을 돌아다니며 옷을 구입했다. 통장 잔고는 조금씩 줄어들었지만, 추위를 막을 수 있다면 통장의 잔고가 줄어드는 것은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 소호 거리에 있는 게스(guess)매장과 젊은 이들.

  
   소호의 거리들을 돌아다니며 쇼핑을 하고, 사진을 찍고, 거리의 분위기를 관찰했다. 거리의 분위기를 밝고 활기가 넘쳤으며, 다양한 먹거리들이 즐비하고 있었다. 북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뉴욕대(NYU)를 지나 42번가 까지 갔다. 42번가는 타임스퀘어 근처에 위치한 곳이라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붐볐다. 해가 저물고, 현란한 불빛이 하나둘 거리를 메우기 시작했다. 기온은 조금씩 더 떨어지고 있었다.

 

△ 뉴욕대(NYU)지하철 역(왼쪽)과 뉴욕대 근처 공원의 개선문(오른쪽)

 

  숙소 근처에 위치한 유명한 재즈 카페에서 재즈 공연을 볼 생각을 한 나는, 간단히 식사를 하고 재즈 카페를 찾았다. 재즈 공연을 보기 위한 사람들로 카페는 붐비고 있었다.



6. 길 찾기가 쉬운 맨해튼.

  전형적인 바둑판식 도로가 깔려 있는 맨해튼. 맨해튼의 중심에는 센트럴파크(Central Park)가 있고, 그 오른쪽을 이스트사이드(East Side), 왼쪽을 웨스트사이드(West Side)라 부르고 있는 곳. 1번가(1st street)부터 약 130번가까지 차례로 하나씩 숫자를 붙여 나가며 동서를 가로지르는 길이 있는 곳. 남쪽을 향해 계속 길을 걷다 보면 1번가와 2번가가 나왔고, 배터리 파크에 서서 강 저 멀리를 바라보면 자유의 여신상이 서 있었다.


 

△ 42번가 역 안(왼쪽)과 42번가 역을 나왔을 때 만날 수 있는 풍경.



  나는 20번가와 42번가 사이를 수 없이 왔다갔다 했고, 그렇게 다니다 보니 어느새 맨해튼은 지도 없이도 다닐만 한 곳이 되어 있었다. 나는 맨해튼 말고 주변 지역(롱아일랜드, 브루클린, 퀸즈)도 돌아다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미국에 유학와 있는 친구를 만나러 뉴저지에도 가 보고, 롱아일랜드, 퀸즈, 브루클린의 여러 패션 아이템 샵에도 들러 좋은 패션 아이템을 찾아보거나, 거리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뉴욕은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오는 그런 곳이었다.




 

△ 42번가를 향해 가는 길(왼쪽)과 42번가 주변(오른쪽)


△ 차이나타운 관광 안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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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거리를 걷다 보면, I♥NY(2) - NewYork city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4. 4. 26.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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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발(Shoes).

  여행자에게 있어 신발은 아주 중요한 도구이다. 평소에 걷던 양 보다 더 많은 양을 걸어다니는 여행자에게 있어서 신발의 선택은 아주 중요하다. 발이 아프면 여행을 즐겁게 할 수도 없고, 들르고 싶은 곳에 들를 수도 없다. 그래서 '발'을 보호하기 위해 신발을 잘 선택해야 한다.

 여행자들은 보통 두 개의 신발을 가지고 다닌다. 하나는 편한 운동화[보통 선택하는 것이 조깅화류이다. 가볍고 발이 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간편하게 신고다닐 수 있는 슬리퍼[보통 '조리'라고 불리는 신발을 가지고 다닌다]를 가지고 다닌다. 또 다른 하나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은 드물지만, 깔끔한 복장에 어울리는 신발을 하나 더 가지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여행을 하면서 어떤 신발을 신고 여행을 할 지, 신발을 고르는 일. 신발은 용도와 목적에 따라서 다양한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나의 여행에 맞는 신발을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 여행의 목적에 따라서 어떤 신발을 고르느냐는 모처럼 떠난 여행이 얼마나 편안하고 즐거운 여행이 되느냐에 적잖은 영향을 끼친다고 할 수 있다.


2. 뭐 타고 다니세요?

  "신발 타고 다닙니다"

  탈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탈 것이라고 하는 것은 승용자, 버스, 전철 등을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탈 것의 본질이 '우리를 목적지까지 가는 데 도움을 주는 도구'라고 할 때, '신발'도 중요한 탈 것이 되지 않을까? 우리는 항상 신발을 신고 외출을 하고, 집에서 나와서 목적지까지 가는 것은 물론,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신발과 함께 한다. 그래서 우리는 신발을 잘 골라야 한다. 나에게 어울리는 신발, 잘 맞는 신발. 여행자에게는 편안한 신발. 

 여행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해 보고 싶다. "어떤 신발 타고 여행 하실 생각이세요?"

 

△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펼쳐지는 곳. 42번가 주변.


3. Walking on street.

   뉴욕, 맨해튼의 거리를 걷다보면 많은 풍경들과 마주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 혼잡한 거리, 공원, 지하철 역, 노란 택시, 저 멀리 보이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그리고 한 손에 커피를 들고 거리를 걷는 사람들과 청소부들까지. 그리고 또 한가지 놓칠 수 없는 것은 거리 곳곳에 숨어있는 설치 미술 작품들과 10달러에 3장씩 판매되고 있는 I LOVE NY 티셔츠. 이 모든 것들을은 놓치기엔 너무 아까운 뉴욕의 풍경들이다.

 

△ 맨해튼의 중심이라고 할 수있는 42번가 역(42St stn). 많은 지하철들이 42번가 역을 지난다.

   저렴한 숙소가 있는 125번가에서 지하철을 타고 주로 42번가에 내렸다. 42번가에서부터 뉴욕의 거리를 걸었다. 아침에는 커피 한 잔과 머핀 혹은 베이글을 집어 먹고 늦은 밤이 될 때까지 뉴욕 이곳 저곳을 누비고 다녔다. 많은 지하철 노선들은 42번가를 지나갔다. 42번가의 아래쪽으로는 소호(Soho)와 월 스트리트(Wall St), 세계 무역센터(WTC)현장이 있고, 월 스트리트의 상징 '황소상'을 볼 수도 있다. 여러가지 볼거리를 보면서 거리를 거닐다 보면, 저 멀리 '자유의 여신상'이 보인다. 관광객들 무리에 휩쓸려, 배를 타고 '자유의 여신상'에 갈 수도 있다. 맨해튼 관광의 끝자락, '자유의 여신상'에서 맨해튼을 바라볼 수 있다.



4. 센트럴 파크(Central Park)의 또 다른 느낌. 

  겨울에 만나는 센트럴 파크는 추워보였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았던 그런 센트럴 파크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달라 보였다. 구겐하임 미술관 너머로 보이는 센트럴 파크는 너무나도 조용했고, 앙상한 가지 위에 새 몇 마리가 센트럴 파크를 방문한 유일한 방문객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수 없이 들었던 '이곳은 센트럴 파크 북쪽 입구 역입니다'라는 지하철 안내 방송은 나를 '센트럴 파크 북쪽 입구'에 내리게 하기는 역부족이었다. 왠지 '센트럴 파크의 북쪽 입구'는 더 스산한 느낌이 들 것 같았다. 


 센트럴파크 북쪽 입구 역을 지나쳐, 66번가(66st) 링컨 센터로 향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그 아래 우쪽 서 있는 큰 건물들. 링컨 센터 오페라 하우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겨울의 링컨 센터는 다양한 공연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겨울 여행의 묘미라고 할까? 여름 여행에서는 맛볼 수 없는 겨울 여행만의 묘미가 '링컨 센터'에도 준비되어 있었다. 


  

△ 링컨 센터. 공연 당일 오전에 방문하면 가격이 저렴한 티켓을 구입할 수 있다.

 링컨 센터 오페라 하우스에 들어서서 공연 일정 팜플랫을 집어 들었다. 오늘 밤과 내일 밤, 어떤 공연을 하는 지 찾아보았다. 'Ariadne auf Naxos'라는 제목의 오페라가 오늘 밤 공연 될 예정이었다. 나는 창구로 가서 스탠딩(Standing)티켓을 달라고 했다. 20달러 짜리, 두 장을 구입하고 오페라하우스를 빠져나왔다. 유럽 여행을 할 때도 스탠딩 좌석을 구입해 저렴한 가격에 오페라와 오케스트라 연주를 감상한 적이 많았다. 스탠딩 티켓이었지만, 공연장의 스탠딩 석 주변에는 항상 좌석이 남았기 때문에 나는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나는 다시 링컨 센터 지하철 역으로 향했고, 센트럴 파크 북쪽을 지나온 열차에 몸을 실었다. 열차는 맨해튼 남쪽을 향해 달렸다.


△ 브루클린 브리지(Brooklyn Bridge)



5. 맨해튼의 남쪽.
  열차는 소호를 지나 브루클린 브리지를 건너갔다. 나는 브루클린 브리지를 건너기 전열차에 내렸다. '월 스트리트'에서 내려 거리를 걸었다. 세계 금융의 중심지라고 불리는 'Wall Stree'의 거리는 혼잡하지 않았다. 


 

△ 월스트리트(Wall Street)와 Wall Street 역.


  뉴욕 증권거래소가 어떤 곳인지 보고 싶었고, 월가의 상징이라는 '황소'도 보고 싶었다. 무작정 길을 걷다 보니 길은 사라지고 길의 끝자락에 다다랐다. 큰 강이 내 앞에 드리워져 있었고, 브루클린 브리지가 강 건너편으로 이어져 있었다. 

  계속 길을 걷다보니 눈 앞에 '뉴욕 증권 거래소'가 있었다. 생각했던 것 만큼 웅장하거나 위대해 보이지는 않았다. '여기가 TV에서 자주 보던, 세계 금융의 중심이구나'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을 뿐 더 이상의 감흥은 없었다. 지금의 시대가 금융, 자본의 시대이기에 뭔가 세련되고 아주 현대적인 건물이 뉴욕 증권거래소 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그것과는 약간 다른 모습을 한 뉴욕 증권 거래소의 모습에 약간 실망햇을 지도 모른다. 증권거래소를 옆 골목으로 나가서 월스트리트와 브로드웨이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남쪽을 향해 걸었다. 건너편에 큰 성당이 보였지만 나의 발걸음을 붙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 뉴욕 증권 거래소


  자유의 여신상을 보러 가기 위해 배터리파크를 향해 걸었다. 자유의 여신상을 보러 가는 길에 월 스트리트의 상징이 된 '황소상'이 있었다. 황소 주변에서 관광객 몇 명이 사진을 찍고 있었고, 나는 그 관광객들 무리에 끼어 사진을 찍었다. 서로 카메라를 주고 받으며 사진을 찍었다. 황소에 매달려 보기도하고, 황소를 껴안아 보기도 했다. 황소상이 내가 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을 줄이야.  


 

△ 월 스트리트의 상징, 황소상. (월 스트리트 볼링그린)



6. 허드슨 강의 바람은 매서웠다.

뉴욕의 겨울은 차가웠다. 허드슨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살을 파고들어 뼛속가지 시리게 만드는 것 같았다. 불과 몇 주전만 해도 남미에서 한여름을 즐기던 나에게 뉴욕의 추위는 매서웠다. 남미에서 쿠바, 자메이카를 거칠 때까지도 더웠지만, 자메이카에서 멀지 않은 뉴욕의 날씨는 나에게도 너무나도 가혹한 추위였다.


 

△ 자유의 여신상도 추워하는 뉴욕의 겨울(왼쪽) / 자유의 여신상으로 가는 배를 타는 '배터리파크'(오른쪽)


 자유의 여신상이 저 멀리 강 위에 떠 있었다. 저곳까지 배를 타고 가기 위해 표를 구입하고 검문소를 햐했다. 내 가방이 엑스레이(x-ray)기계 안으로 들어갔을 때,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도'를 가방에 넣고 있다는 것이 그제서야 생각났다. 검문소의 직원이 과도를 꺼낼 것을 요구했지만, 나는 모르는 척 했다. 그렇지만 그들의 눈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과도를 검문소 직원에게 건네주며 나중에 자유의 여신상에서 돌아왔을 때 돌려줄 것이냐고 물었을 때, 그 직원은 단호하게 말했다. "No"

  왜 돌려주지 않느냐는 나의 말에, 직원은 그것이 규정이라는 대답뿐이었다. 나는 여행의 막바지에 중요한 물건 하나를 잃었다는 상실감에 젖어 들었다. 배를 기다리는 선착장의 대합실에서, 우울한 마음으로 자유의 여신상으로 나를 데려다 줄 배를 기다렸다. 회색과 짙은 녹색이 섞인 허드슨 강의 강물은 나를 더욱 침울하게 했다.


    

△ 허드슨 강 위에서 바라본 맨해튼과 자유의 여신상.


7. 자유의 여신상.

  배는 선착장을 떠나 허드슨 강의 물살을 가로지르며 자유의 여신상을 향해 갔다. 뉴욕의 하늘은 잿빛으로 변해 있었고, 왠지 도시 전체가 우울함에 젖어든 것 같았다. 그런 가운데 자유의 여신상은 하늘을 향해 불곷을 치켜 세우고 있었다. '오, 자유여. 미국은 내 칼의 자유를 박탈해 갔다'

 

 

△ 자유의 여신상 앞(왼쪽 위), 자유의 여신상 내부(오른쪽 위)

자유의 여신상 내부 전시실의 '미니어처(왼쪽)과 자유의여신상 발가락(오른쪽)

  자유의 여신상에서 바라본 뉴욕은 사진에서 보았던 뉴욕과 비슷했다. 맨해튼에서 내 몸 속으로 파고들었던 바람보다 더 강력한 바람이 내 뺨을 후려쳤기에 나는 외부 전망대에 오래 머물 수가 없었다. 맨해튼 도심에 있을 때 보다 몇 배는 더 춥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다른 섬에 위치한 감옥을 둘러보기 위해 배에서 내렸지만, 나는 배에서 내리지 않고 맨해튼으로 돌아왔다. 세계 무역센터 현장을 거닐었고, 날이 어두워지자 친구를 만나러 갔다.


  밤에는 링컨 센터 오페라 하우스에서 오페라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 밤의 링컨 센터. 오페라 공연이 시작하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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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좋아할 수 밖에. I♥NY (1) - New York City, NY(U.S.A)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4. 4. 25.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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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술, 미술관 그리고 예술.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목적에 따라 여행 장소가 정해지기도 한다. 가령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 산자락을 트레킹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네팔의 포카라로 향할 것이고, 유럽 이곳 저곳을 누비며 중세 유럽의 흔적을 느끼고 싶은 사람이라면 유럽 배낭 여행을 떠날 것이다. 저렴한 여행 경비로 다양한 먹거리와 놀거리를 찾는 사람은 동남아로 떠날 것이고, 홍콩으로 떠나는 사람은 쇼핑을 할 생각에 가슴 부풀어 있을 것이다. 이처럼 여행의 목적지는 그 여행의 성격과 많은 연관성을 가지게 된다.


  일반적으로 유럽 여행을 하면서 가장 많이 가게 되는 곳 중 하나가 박물관 혹은 미술관이다. 특히, 유럽에 있는 유명 미술관의 경우는 항상 많은 사람들로 북적댄다. 중세시대 뿐만 아니라 근대의 유명한 화가의 생가를 비롯해서 다양한 장소가 미술관으로 꾸며져있고, 그런 미술관을 둘러보기 위해서 멀리서 비행기를 타고 오거나, 기차를 타는 것은 흔한 일이다. 영국의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 테이트모던(Tate Mordern), 프랑스의 오르세 미술관(Orsay Museum), 로댕 미술관, 피카소 미술관, 네덜란드의 반 고흐 미술관 등 유럽에 위치한 많은 유명 미술관들은 항상 많은 관광객들로 붐빈다. 중,고등학교 시절 교과서에서 보았던 그림들을 이들 미술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은 유럽의 유명 미술관을 찾는 사람에게 두 배의 기쁨을 선사해 준다.

△ 뉴욕 현대 미술관(The Museum of Modern Art, MoMA)은 세계 3대 현대 미술관 중 하나이다.

  미술, 예술에 대한 여행자들의 갈망은 어디에서 부터 비롯된 것일까?[물론 모든 여행자가 미술관에 대한 갈망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외국의 유명 미술관에 있는 작품들을 자신의 나라(우리나라)에서 우연히 감상할 기회가 생겼을 때, 그것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여행지에서 지불하는 대가의 몇 배를 치루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갈망의 근원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을 수도 있다. 또 다른 이유로는, 여행자들은 여행에서 여유를 만끽하기 위해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기도 하고, 잘 정돈되고 쾌적한[미술관이나 박물관은 다른 장소들에 비해서 비교적 쾌적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 환경 속에서 시간을 보내기를 원하기 때문에 미술관을 갈망하는 것일 수도 있다. 물론 미술이나 예술에 대한 갈망의 가장 근본적인 근원지는 여행자 개인이 가진 다양한 미술 작품에 대한 관심이 되겠지만, 여행자들이 들고 다니는 작은 책자들은 많은 지면을 할애해 가면서 여행자들에게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기 대문에, 여행자들은 그 정보들에 현혹되어 미술과 예술에 관한 갈망을 싹틔우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2. 예술과 공공질서의 파괴 사이.
  골목길을 걷다 보면 건물의 벽이나, 담장에 그려진 그림들을 볼 수 있다. 스프레이 락카로 그려진 그림들을 가리켜 누군가는 공공질서를 파괴하는 낙서라고 말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그런 것들도 예술의 하나라고 말하기도 한다. 낙서와 예술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

  예전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샤갈전이 열렸을 때,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찾아온 샤갈의 그림들을 보기 위해 서울시립미술관을 찾았다. 샤갈의 그림들은 경매에서 고가에 거래되는 것은 물론이고, 수 많은 사람들이 많은 대가를 지불해 가면서 샤갈의 그림을 보기를 원한다. 샤갈의 그림을 가리켜 '예술 작품'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거리의 담벼락에 그려진 '그래피티(Graffiti)를 보고 누군가는 예술이라고 하지만 누군가는 '낙서'라고 말한다. 예술의 관점에서 본다면 '담벼락에 그려진 그림'은 거리의 분위기를 조금 더 밝고, 아름답게 꾸며준다는 측면에서 '예술'이라고 일컬을 수 있다. 하지만 예술의 기준을 '미술관의 작품'으로 정의하는 사람의 관점에서는 거리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아무렇게나 그러져 있는 작품은 낙서인 것이다.


  공공질서를 파괴하는 낙서와 예술성 높은 미술 작품으로 평가되는 기준은 참으로 모호하다. 그 기준이 일관성 없는 편견의 산물일 뿐이라는 것은 이미 뱅크시(Banksy)라는 아티스트에 여러차례 풍자되기도 했다.

  

△ 예술일까? 공공질서의 파괴일까?


3. 세계의 수도, 뉴욕(New York City)
  뉴욕을 세계 경제, 문화의 수도라고 말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맨해튼의 월스트리트(Wall Street)는 경제의 중심지로 불린다그리고 뉴욕은 '문화의 중심지'라고도 불린다. 특히 현대 미술과 관련하여 60년대, 70년대 자본주의와 미술. 그리고 팝 아트. 다양한 현대 미술과 모더니즘을 넘어선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뉴욕은 많은 아티스트들의 활동지였다. 
  
  나는 세계 3대 현대 미술관 중 하나로 불리는 모마(MoMA, Museum of Mordern Art)에 가 보고 싶었다.  유럽 배낭여행을 통해서 유럽에 있는 세계 3대 현대 미술관 중 두 곳인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Tate Mordern),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센터(Centre Pompidou)센터를 둘러보았던 나로서는 세계 문화의 중심지 뉴욕의 모마(MoMA)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또한, 맨해튼 근교(브루클린, 롱아일랜드)에서 그래피티, 재즈 카페에서 재즈(Jazz) 공연, 링컨 센터에서 열리는 공연,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그 외의 다양한 뉴욕만의 특권을 즐겨야 겠다고 생각했다.

 

△ 링컨센터(왼쪽)과 자유의여신상 내부 전시관(오른쪽)


4. MoMA, 그리고 MoMA PS1

  우리는 편지를 쓴 뒤, 중간에 빠뜨린 부분이나 본문에 적지 않은 중요한 말은 편지의 끝에 P.S(추신 혹은 덧)라는 말과 함께 간단히 적으면서 편지를 마무리 할 때가 있다. 뉴욕 맨해튼에 있는 MoMA 본관과 롱아일랜드에 있는 MoMA PS1의 관계가 편지 본문과 추신(PS)의 관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맨해튼에 위치한 MoMA의 본관엔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깔끔한 내부와 그 안에 어울리는 작품들. 미술관을 탐험하며 돌아다니는 몇 시간 동안 나의 감정과 마음, 그리고 나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는 작품들. 오디오 가이드와 함께 하는 모마 여행은 나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모마는 다양한 섹션에서 예술의 다양성을 보여주었고, 많은 사람들의 휴식처이자, 눈을 즐겁게 해 주며, 감성을 키워주는 공간이었다.

△ 'MoMA'의 다양한 작품들.


   롱아일랜드에 있는 MoMA PS1의 입장료는 무료였다[MoMA의 입장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 한해서 무료입장]. 무료라고 하지 않아도, PS1은 MoMA보다 훨씬 작은 규모의 미술관이었기 때문에 입장료가 절반이 채 되지 않았다. PS1은 설치 미술을 위주로 꾸며진 공간이었다. 나는 팝 아트와 설치미술에 상당한 흥미가 있었기 때문에, 느낌은 달랐지만 모마에서 느꼈던 것 이상의 만족을 얻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학교와 비슷한 같은 구조로 되어 있는 미술관은 외곽 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PS1의 방문객은 나를 포함해서 다섯 명이었다. 그 곳에선 미술 강의도 이루어 지고 있었다[세미나 실에서 1:1 또는 2:1 강의를 하고 있었다]. 각 방마다 안내원을 겸한 감시자들이 나의 행동을 주시했다. 방문자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미술 작품을 감상하듯이 나의 행동 하나하나를 감상햇다.

△ 롱아일랜드에 있는, MoMA PS1


  미디어 아트의 영상을 보고, 영상이 말하고 있는 것을 생각했다. 독특한 아이디어로 설치된 작품들을 보면서 감탄하며, 다양한 각도에서 작품을 바라보면서 몸을 이용해서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웠다. 1층 복도에서는 카페테리아에서 흘러나온 여자들의 목소리로 가득찼다. 미술관에 근무하는 여직원들은 카페테리아에서 점심을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나는 그녀들의 목소리를 미술관 바닥에 그대로 흘려 놓은 채 미술관을 빠져나왔다.

△ MoMA PS1의 작품


5. 그래피티.
  MoMA PS1을 빠져 나와, 근처 건물 벽을 가득 메우고 있던 그래피티를 구경했다. 그래피티 스쿨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빽빽하게 그려진 그래피티들. 보기 좋게 잘 꾸며진 건물이었다. 나는 세계 각국의 골목을 거닐면서 그래피티 사진을 많이 찍었던 나 였지만, 뉴욕의 그래피티들이 작품성이 가장 뛰어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 그래피티


6. 구겐하임 미술관
  언젠가 책에서 본 적 있는 건물 모양이었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독특한 건물 모양으로 유명한 미술관이었다. 구겐하임 미술관. 건물의 중간이 뻥 뚫려서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빛이 건물 내부로 흘러 들어왔다. 채광이 잘 되었고 분위기는 독특했다. 중앙 홀에서 남녀 한 쌍이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엇다. 행위예술. 천천히, 천천히, 서로를 애무하며 키스를 하는 퍼포먼스였다. 아침 일찍 방문한 구겐하임 미술관엔 사람이 얼마 없었다. 그들은 천천히 움직이며 포퍼먼스를 계속 했다. 그리고 몇 시간 동안 작품을 감상하며 꽤 오랜 시간을 보낸 뒤, 아래쪽을 바라보았을 때도 퍼포먼스는 계속되고 있었다. 제법 많은 학생들이 미술관을 방문 중이었고, 퍼포먼스를 하는 주변에는 사람들이 앉아서 그들의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예술이란!

  유치원생, 초등학생처럼 보이는 학생들이 체험 학습을 하는 듯 했다. 미술관에 방문한 사람들을 상대로 여러가지 질문을 하고 퀴즈를 푸는 활동을 하는 듯 했다. 많은 학생들이 미술관을 방문한 다른 사람들에게 달려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움을 요청했다. 물론, 나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 구겐하임 미술관 외관(왼쪽), 구겐하임 미술관 미술관의 퍼포먼스(오른쪽)


7. 거리 곳곳의 작품들.
  뉴욕 거리 곳곳에는 다양한 예술 작품들이 많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간혹 대기업의 건물 입구나 큰 건물의 입구에 설치 미술 작품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지만, 뉴욕의 거리에는 거리 곳곳에 많은 작품들이 산재해 있었다. 나는 9.11테러로 무너져 내린 세계 무역 센터 자리를 오가며 근처 벤치에 앉아 있는 동상을 보았고, 큐브를 보기도 했고, 그 외에 다양한 작품들을 거리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뉴욕은 도시 자체가 미술관이었다. 도시 곳곳에 현대 미술의 흔적이 보였다. 미술관이든 거리든 어디든지 예술이 있었다. 뉴욕은 그런 곳이었다.

  

△ 월드 트레이드 센터(WTC)와 거리 곳곳의 예술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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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세부 시티 - 우리는 외국 여행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먹는가?(Cebu City)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3. 2. 23.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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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행이 주는 행복, 즐거움

 여행,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렇지만 우리가 여행에서 기대하는 것은 비슷하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곳'과는 다를 것 같은 곳에서 새로운 무엇가를 발견하고 기쁨을 느끼기 위함이다.

다시 말해, 다른 나라에서 '이국적'인 풍경을 바라보고, '이국적'인 느낌을 만끽하며 즐거움을 느끼기 위함이다. 

 여행이 우리에게 즐거움[또는 행복감]을 주는 큰 이유 중 하나는 앞으로 떠날[가까운 미래에] 여행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우리는 '여행' 자체에서보다 여행에 대한 '기대'에서 더 큰 즐거움을 느끼고, 설레어 한다. 여행지에 대한 상상 속에서, 여행을 계획하면서, 그리고 여행지에서 할 일들을 머릿속에서 미리 해봄으로써 큰 만족을 느낀다. 

 사실, 대부분의 여행지[외국의 어느 도시, 관광지]는 그 자체로 우리에게 많은 즐거움을 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머릿속에서 포장된 여행지의 이미지가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사실, 여행지 '그곳'은 우리가 살고있는 '이곳'과 대체로 다를 바가 없는 곳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나와는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내가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 뿐[우리들은 이러한 사실에서 일종의 해방감을 느끼기도 한다]이다. 



2. 행은 '공항'에서 끝난다.

 공항은 상당히 흥미로운 곳이다. 그곳은 중립적인 곳[인천공항은 지리적으로 대한민국에 있지만, 그곳은 대한민국이 아니다]이고, 여행에 대한 기대가 종결되는 곳이다. 우리는 많은 기대를 가지고, 공항으로 향하고, 하늘을 향해 나는 비행기를 보면서 다른 나라의 '이국적'인 모습을 상상한다. 공항의 안내판에 쓰여있는 다양한 언어들에서 우리는 '이국적'인 느낌을 받고, 행복을 느낀다. 공항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알아 듣지 못할 외국어를 들으며 약간은 당황하지만, 곧 즐거움의 감정에 휩싸인다. 모든것이 생소하고, 낯설지만 우리는 그런 '이국적'인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그런 모든 것들이 여행이 주는 '행복'의 하나를 이루게 된다.


  "암스테르담의 스히폴 공항에 내려 터미널 안으로 불과 몇 걸음 떼어놓았을 때 나는 천장에 걸린 안내판의 모습에 깜짝 놀란다. …(중략)… 그 단순함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그 세속성에도 불구하고, 이 간판은 나에게 즐거움을 준다. …(중략)… 이국적 정서는 특정한 곳에서 나온다. Aankomst(도착)에서 a를 두개 쓰는 것에, Uitgang(출구)에서 u와 i가 잇달아 나오는 것에, 외국어 밑에 영어가 쓰여 있는 것에, '접수대'라는 말을 쓸 곳에 Balies라고 쓰는 곳에, 프루티거체나 유니버스체같은 실용적이면서도 모더니즘한 냄새가 나는 글자체를 사용한 것에"   'The Art of Travel(Alain de Botton, 한국어판<여행의 기술 95p>)' 

 

 비행기가 나의 엉덩이를 의자 뒤쪽으로 몰아넣고 하늘을 향해 박차오를 때, 묘한 기분이 우리를 사로

잡는다. 그것은 단순히 하늘을 향해 오를때 느낄 수 있는 물리적인 느낌만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을 떠나, '이국적'인 것들이 뒤덮고 있는 '그곳'으로 떠난다는 기대감에서 오는 만족감이다. 몇 시간 후면 우리는 머릿속에서 상상하며 그리던 곳에 실제로 닿을 수 있다. 상상이 실제가 되는 순간을 하나하나 경험하며, 만족감에 젖어간다. 여행을 떠나기 전, 공항에 가는 것부터 비행기에 앉아 묘한 기분을 느끼는 것까지 모두가 상상하던 그대로이다. 그리고 몇 시간 뒤에 우리는 안내판에 내가 살던 곳에서 주로쓰는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가 쓰여있는 것을 목결할 것이고, 우리는 거기에서 '이국적'인 느낌을 받으며 즐거워 할 것이다. 여행의 출발점이자 도착점인 '공항'은  여행이 주는 '행복'의 가장 중요한 요소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이국적'인 풍경[그것이 비록 인위적일지라도]과 기대하고 상상하던 것들의 실현.

 여행, 그것은 기대하고 생각하던 것들이 하나하나 실현되는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과정의 집합체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공항은 더할나위없이 중요한 장소이다.



3. 리는 무엇을 보는가?

 흔히들 그 나라의 수도(Capital)는 그 나라를 상징한다고 한다. 오늘 지나온 거리, 어제 지났던 거리를 상상해 보자. 어떤 풍경들, 어떤 상점들이 머릿속에 나타나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슷한 풍경을 상상하고 있을 것이다.

 "카페베네와 파리바게트의 나라 한국"이라고 누군가가 말한 적이 있다. 대한민국의 수 많은 도시의 번화가, 지하철 역 주변에는 항상 우리들의 눈에 익은 상점의 간판이 보인다. 거대 자본을 앞세운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그들은 '프렌차이즈'라고 불린다. 그것도 '거대한'프렌차이즈. 비단 대한민국의 거리만 그런 것은 아니다[프렌차이즈의 시작은 미국이었고, 이제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거대한 프렌차이즈 회사들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여행지의 거리를 생각해 보자. 사람들이 뒤엉켜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 그곳엔 어김없이 프렌차이즈 회사들이 즐비해 있다. 맥도날드, 피자헛, 던킨도너츠, 스타벅스, 크리스피크림도넛, 커피빈, 버거킹 등 수 많은 글로벌 프렌차이즈 음식점들이 거리를 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모습들이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오히려 익숙하다. 우리는 항상 그런 프렌차이즈 음식점들에 둘러싸여 살아왔고, 언제든지 그 음식점들을 이용할 수 있다. 전 세계 어느 도시[오지나 시골을 제외한 주요 도시, 주요 관광지]에 가더라도 우리는 그들을 만날 수 있다. 심지어, 프랑스 문화 예술의 상징이라고 불리는 몽마르트 언덕에서도 스타벅스 커피를 마실 수 있다.  


전세계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가도 우리는 익숙함과 마주한다.



4. 리는 무엇을 느끼는가?

 낯섦과 이국적인 모습의 시작점이자 종결점이 공항을 빠져나오면, 우리는 다시 익숙함과 마주하게 된

다. 공항에서 숙소[호텔, 게스트하우스 등]로 가는 동안 바라보는 거리의 풍경에서 익숙하지 않은 문자들이 즐비한 것에서 약간의 이국적인 느낌을 얻을 수도 있지만, 그것의 절정은 공항에서 였고 이제는 더이상 새로운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나와 의사소통이 원활히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국적인 새로움으로 다가오기보다는 약간의 거부감과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요소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런 와중에 우리들은 영어로 된 '낯익은'글자들을 발견하게 된다.


 McDonalds, Starbucks coffee, Coffee bean & Tea leaf, Bugger King 등의 문자들이 오히려 우리에게 기쁨을 주게된다. 이것은 익숙함이 주는 즐거움, 편안함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지금 있는 이곳, 낯섦이 지배하고 있는 이곳[여행지]에도 내가 살던 곳에 있던 프렌차이즈가 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기쁨을 주게된다. 이것은 익숙함이 주는 기쁨, 이곳도 내가 있던 곳과는 다르지 않다는 안도감, 그리고 낯선 곳에서 보게되는 익숙한 풍경이라는 것에서 느끼는 신선함이 생긴다. 그리고, 지금 여기의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으면 언제라도 저곳으로 달려가 내가 상상하는 맛을 얻을 수 있고, 내가 커피를 마시면서 여유를 즐기고 싶으면 언제라도 저곳에 앉아 내가 늘 하던 것처럼 여유를 즐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우리를 기쁘게 한다. 


 우리는 외국에서 느끼는 이국적인 모습, 낯섦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낯선 곳에서 볼 수 있는 익숙함에서 즐거움과 편안함을 찾게된다. 그리고 이곳도 내가 있던 곳과 같다는 생각에 마음의 안정을 갖게 된다. 


 예전에는 여행에서 느끼는 낯섦과 새로운 음식에 대한 기대와 실망에서 여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었다면, 이제는 여행지에서도 익숙함,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여행의 의미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5. 리는 무엇을 먹는가?

우리는 어떤 장소로 여행을 떠나기 전, 그곳의 유명한 음식에 대해서 알아보고 그 음식을 먹기를 원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곳에 가서 음식을 먹는다. 그 음식이 입맛에 맞다면 다행이고, 그렇지 않다면 돈

은 좀 아깝다고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어느정도 만족한다. 그런 현지 음식[Local Food, 로컬음식, 로컬푸드]이 가지는 매력은 내가 사는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음식이기에, 여행을 통해서 그곳에서 맛보지 않으면 다시는 맛볼 수 없다는 것에 있다.


 현실. 장시간의 비행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에서 잠시 쉬다가 밖으로 나왔을 때, 어떤 음식점으로 가야할지 망설이게 된다. 수많은 로컬 음식점들이 우리의 곁을 지나가지만 우리는 그곳으로 선뜻 들어가지 못한다. 저곳에는 어떤 음식을 팔까? 음식의 맛은 어떨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 보기도 하고 호기심을 가질 뿐이다. 간혹, 용기를 내어 현지 식당에 들어가 메뉴판을 보더라도, 전혀 알아볼 수 없는 글자뿐이다[그림이 첨부되어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음식점의 주인은 영어를 할 줄 모른다. 답답한 마음에 손으로 아무 음식이나 주문해 보지만, 상상도 못한 음식이 나올 뿐이다. 

 

 지친몸을 이끌고 숙소 밖으로 나와 식사를 위해 음식점을 찾아 나선다. 알지못할 이름의 현지 음식점

[불확실성의 온상, 로또와 마찬가지로 항상 기대를 하지만 그 기대는 어긋나기 마련이다]을 지나, 숙소로 오는 길에 보았던 맥도날드, 버거킹, 크리스피크림도넛을 생각해 본다. 그런 음식점들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음식뿐만이 아니다. 그들은 마음의 안정[편안함, 만족]을 준다. 음식이 아주 맛있다거나 고급이 아니어도 좋다. 단지 우리는 지친 몸을 불확실성의 세계에서 떼어놓고, 편안한 마음으로 식사를 하고 싶을 뿐이다. '거대한'프렌차이즈 음식점들은 지친 몸을 이끌고 그곳으로 들어가는 우리에게 안성맞춤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생각하던 그대로의 '맛'을 느끼고, 생각하던 그대로의 '서비스'를 경험한다. 내가 여행을 떠나기 전, 집 근처 프렌차이즈 음식점에서 맛보았던 '그 맛'을 제공하고, '그 서비스'를 제공한다. 우리의 기대를 충족시킨다. 우리는 현지에도 있는 스타벅스커피의 초록색 글자를 보면서 안도한다. 저곳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는 외국에서 '거대한'프렌차이즈 음식점들을 보고, 음식을 먹으며 만족감에 젖는다. 


 이것은 '거대한'프렌차이즈 음식점들이 추구하는 전략이자[전 세계 어느곳에서나 항상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그것은 예측가능성이다. 많은 소비자들은 그런 예측 가능성, 익숙한 맛을 기대하면서 음식점을 찾는다] 우리가 가지는 기대의 충족이다.[우리는 우리가 기대하던 맛과 서비스를 받는다]



6. 의 유명 음식점을 찾아서.

 여행지에서 맥도날드 햄버거나 도넛을 먹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우리들은 현지의 유명한 식당과 유명

음식점을 찾아다닌다[주로 가이드북이나 인터넷을 통해서 정보를 얻는다]. 필리핀의 경우 사람들은 필리핀 음식을 먹기 위해, 골든까우리(Golden Cowrie)라는 네이티브 레스토랑을 찾거나, 문카페(Mooon Cafe)라는 멕시칸 음식점[멕시칸 푸드를 사람들이 많이 찾는 이유는 스페인 식민지 시대를 경험한 적이 있는 것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을 많이 찾는다. 이런 음식점들은 '아직'은 우리나라에 없고, 다른 나라에도 없는 '필리핀만의'것 처럼 보이기에, 사람들은 필리핀을 여행하면서 많이 찾는 것 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사실은 골든까우리, 문카페를 많이 찾는 이유는 그것들이 맥도날드나 버거킹, 피자헛과 같은 음식점들과 거의 같다는 점 때문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 규모와 글로벌화 정도일 것이다.


 골든까우리와 문카페는 필리핀 현지의 '프렌차이즈'이다. '프렌차이즈'의 장점은 어느 장소에 위치하는가에 상관없이 그 간판을 달고 있는 음식점들은 비슷한 '맛'과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측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맥도날드, 버거킹, 커피빈, 피자헛에서 기대하는 것은 수준 높은 맛과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아니다. 적당한 수준의 맛과 서비스이다. 우리는 그곳에 딱 그정도의 기대를 하고, 그것을 얻기 때문에 만족하고, 심리적인 안정을 갖게 된다.


 필리핀의 수많은 쇼핑몰과 거리, 그리고 그곳에는 항상 문카페와 골든까우리가 있다. 문카페와 골든까우리라는 간판이 있는 곳 아무 곳에 들어가도 우리는 비슷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실패를 할 확률이 적다. 우리는 불확실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우리의 기대를 충족할 수 있고, 거기에서 우리는 만족할 수 있고, 기쁨을 느끼게 된다.


 결국 우리는 맥도날드화(McDonaldization)한 식당에서 만족을 찾고 있다. 우리는 이미 일상생활에서 그런 프렌차이즈들이 제공하는 예측 가능한 맛과 서비스에 젖어 있기 때문에 여행을 가서도 그런 것들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7. 언.

모든 여행지, 모든 사람들이 프렌차이즈[맥도날드화된 식당들]에서 음식을 먹는 것은 아니다. 인도

바라나시(Varanasi)의 골목의 틈새에 위치한 블루라씨(Blue Lassi)를 찾아가 맛있는 라씨 한 잔을 먹을 수도 있다. 그 라씨의 맛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다. 이처럼 아직은, 전 세계에 단 하나뿐인 음식점에서 저렴한 가격에 맛있는 음식을 먹을 여지는 남아 있다. 아직은 여행의 묘미를 즐길 여지가 남아 있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 수록, 맥도날드화한 음식점들이 우리의 주변을 빼곡히 채워나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그런 것들이 편안하게 느껴지고, 어떤 기대를 하게 된다. 이러한 습관은 여행을 가서도 버리기가 힘들게 되었다. 우리는 여행을 떠나서도 불확실성을 두려워하게 되었고, 거부하게 되었다. 우리는 계획된 것, 확실한 것,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것을 찾게 되었고 그러한 우리의 변화'거대한' 프렌차이즈 음식점들이 수 십년 간 공을 들인 결과다.


 여행의 묘미를 어디에서 찾는가는 개인의 문제이다. 하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여행이 주는 큰 매력은 이국적인 모습, 낯섦, 불확실성 속에서 나, 우리, 내가 속한 문화와 다른 점을 발견하고 경험하고 그것을 이해하면서 내면화 하는게 아닐까 한다. 


 



- 참고 자료

1. 여행의 기술(Art of Travel, 알랭드보통)

2.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McDonalds and McDonaldization, 조지 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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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 자메이카, 음악과 함께 하는 삶. Jamaica, Kingston.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1. 3. 27.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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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ba, Habana - Cayman Island - Jamaica, Kingston - New York, NYC.


1. 전설, Legend.

  전설. 사람들이 여행을 할 때 좇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전설이다. 드라큘라 전설. 로빈후드 전설. 여러가지 전설이 있다. 어느 지방의 전설이 유명해지면 사람들이 그 전설을 좇아 그 곳을 찾아온다. 전설이 매력있는 이유 중 하나는 그 전설에 관련된 구체적인 증거물이 존재한다는 것이다.[중고등학교때 국어 공부를 꽤나 열심히 했던 사람이라면 전설, 신화, 민담(설화)를 기억해 보라. 전설의 특징은 구체적인 장소와 증거물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꽤나 많은 전설이 존재한다. 어떻게 보면 춘향이와 이몽룡의 사랑이야기는 남원 지방의 전설이고, 그들이 놀았다는 구체적인 사물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축제가 열리고 사람들은 그 곳을 찾는다. 그 옛날 춘향이와 이몽룡이 놀았다는 그 곳에서 그들 기억속에 존재하는 춘향이와 이몽룡의 모습을 생각하게 된다.
  인도의 타지마할에도 전설은 존재한다. 타지마할을 짓고 나서, 왕은 타지마할과 같은 건축물을 더 이상 만들지 못하게 하기 위해 타지마할을 만드는데 참여했던 사람들의 손을 잘라버렸다는 그런 이야기와 함께 전하는 타지마할. 그래서 사람들은 세계에서 아름답다고 소문난, 세계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건축물을 보기위해 인도의 건조한 도시, 아그라(Agra)로 발걸음을 옮긴다. 
  
  전설은 어느 장소와 관련되거나 특정한 건축물에 관련된 것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마이클 잭슨을 전설이라고 부른다. 누군가는 스티브 잡스를 전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그는 아직 살아 있지만, 살아 있어도 전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메이카에 가면 또 하나의 전설을 만날 수 있다. 레게 음악의 전설, 밥 말리.


2. 밥말리(Bob Marley)라고 쓰고, 전설(Legend)라고 읽는다.

  나는 전설을 좇아 다녔다. 어린 시절 영화로 접한 드라큘라의 이야기. 그 전설을 좇아 루마니아로 떠나기도 해봤고,[남들이 다 하는 것 처럼], 전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흔적을 찾아 그의 집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밥 말리. 레게 음악의 전설. 언제 부턴가 레게 음악의 리듬이 좋아졌고, 레게 음악에 대해서 알아 보았다. 힙합과는 다른, 재즈와도 다른, 독특한 매력의 레게. 남미의 레게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접하면서 자메이카 태생의 세계적인 레게 뮤지션이었던 밥 말리가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집에서 본 그가 받은 수 많은 음악상. 그리고 그가 입었던 옷. 그리고 생전의 사진. 항상 마리화나를 입에 물고 작업을 했다는, 밥 말리.
  
  자메이카에선 "레전드"라고 쓰고 "밥 말리"라고 읽고, "밥 말리"라고 쓰면 "레전드"라고 읽었다.


3. 자메이카에서 맞이한 새로운 이야기.

  비행기는 쿠바 하바나공항을 떠났다. 나와 장난을 치던 꼬마(http://dwis.tistory.com/530 참고하시길!)도 나와 같은 비행기를 타고 케이만제도(Cayman Island)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1시간 반 뒤, 카리브 해의 작은 섬에 비행기가 착륙했다. 공항은 동네 기차역 보다 작았다. 2층의 아담한 건물. 그 곳에서 꼬마와 나는 헤어졌다. 그랜드 케이만(Grand Cayman)의 조지타운. 영국령 카리브해 자치 섬인 케이만 제도의 수도였다. 해가 스믈스믈 바다 저편으로 넘어갔고, 비행기는 2시간 딜레이 되었다. 그 덕에 나는 해가 떠 있을 때 자메이카에 도착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버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편으론 걱정되었다. 치안이 극도로 좋지 않다는 자메이카. 그리고 그 수도 킹스톤(Kingston). 밤 9시를 넘긴 시각, 그 날의 마지막 비행기가 사람들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꾸역꾸역 비행기 몸체속으로 들어갔다. 습기를 많이 머금은 따뜻한 바람이 내 살갛을 스쳐 지나갔다. 카리브 해의 냄새가 내 콧가에 머물렀다.

  자메이카의 킹스톤 국제공항. 공항을 빠져 나오니 밤 11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나는 인터넷에서 주워들은 정보들을 이리 저리 조합을 했다. 그리고 택시 기사들과 쇼부를 쳤으나 그들은 가격을 내리려 하지 않았다. 한 남자가 나에게 접근 해 왔고, 나는 그와 쇼부를 쳤다. 20달러에 내 목적지 까지. 그리고 그가 주차장으러 차를 가지러 갔고, 나는 주차장 게이트에서 그가 차를 몰고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 때, 고급 벤츠가 내 앞에 멈추어 서더니 창문이 열렸다. 그리고 나에게 외쳤다. "헤이, 너 왜 거기 서있는거야? 어디로가?"


4. 자메이카에 다시는 오지 마세요.

  나? 택시 기다리고 있어. 왜 거기서 택시를 기다려? 어디까지가? 예약한 호텔로 가야지.[사실 그 때 예약한 호텔따윈 없었다] 그러면서 일단 나에게 타라고 했다. 자기가 태워 주겠다면서.[아주 좋은 차로 보였고, 뒷자석에 탄 사람은 정말 신사처럼 보였기에 나를 어떻게 해칠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살짝 고민을 하다가, 그의 차에 올라탔다.

  그 때, 나와 쇼부를 쳤던 무허가 택시 기사가 뒤에서 소리쳤다. 그리고 내가 탄 차의 운전기사와 무슨 말을 나누었다. 그리고 나에게 물었다. 저 사람 알아?

  알긴 아는데, 저 사람 차를 타고 호텔로 가기로 했어. 그리고 신사가 바로 말을 이었다. 내가 호텔로 데려다 주겠어. 여긴 위험해. 저런 사람 차 타지 않는게 좋아. 

  나는 고민을 했다.[고민이라고 할 것 까진 없었다. 지금 이 차를 타고가면 택시비 20달러 굳는다는 생각과 함께 원래 내가 타기로 한 택시 기사가 나중에 밤에 나를 총으로 쏴 죽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냥 지금 이 차를 타고 호텔로 가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운전기사와 택시기사는 실랑이를 벌였고, 밖에서는 욕설이 마구 들렸지만, 창문이 닫혔고 차는 출발했다. 나는 불안한 마음에 뒤를 돌아보았으나 다행히, 그 택시기사는 따라오지 않는 것 같았다.

  내 옆에 탔던 신사가 말했다. 너 한국 사람이지? 나는 대답했다. 응 한국사람이야. 그러자 그 신사가 덧붙였다. 난 워싱턴에서 온 비지니스맨인데, 내 부인이 한국사람이야. 그래서 니가 한국사람이라는 걸 알아봤지. 잘됐어. 이름은 뭐야? 내 이름은 진. 여행중이야. 자메이카는 처음이지? 처음처럼 보이는데. 응 처음이야. 
 
  그러자 미국인 사업가는 덧붙였다. 자메이카에 다음 부터 절대로 오지말라고. 이곳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위험한 곳이라고. 그리고 또 하나 덧붙였다. 자기 아들의 이름이 "진"이라고. 나와 이름이 같았다. 나는 그들이 묵는 호텔로 갔고, 그 곳에서 콜택시를 불러서 내 숙소로 이동을 했다. 

  그리고 그 사업가는 나에게 명함을 하나 주면서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을 하라고 했다.[그 후로 연락 할 일은 없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를 더 받았다. 자메이카는 생각보다 위험한 곳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말이다.

  조금은 불안했지만, 나쁘지 않은 출발이었다.


5. 거리엔 음악이 흐르고.

  숙소에 짐을 풀고, 잠을 잤다. 방은 더블 룸 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날이 밝자 슈퍼마켓에서 먹을 음식과 생수 한 통을 사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후덥지근한 날씨였다. 마당의 해먹에는 몇 몇 애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스라엘에서 온 애들이었다. 그들은 내일 자메이카 북부 도시로 떠난 다고 했다. 그곳에는 레게 음악파티가 열린다고 했다.

  몇 몇 일본인 들은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밤에만 움직이는 듯 했다. 밤에는 클럽에서 음악이 울려퍼졌기에. 그들은 낮에 잠을 자고, 밤에는 클럽에서 놀았다. 낮에는 거리에서 음악이 울려 퍼졌고, 밤에는 클럽에서 음악이 울려 퍼졌다. 나는 밤 낮 가리지 않고 음악을 들었다.

  2월 초 였지만, 북반구 였지만, 자메이카는 더웠다. 거리를 걸어 번화가로 향했다. 생각보다 먼 거리였다. 거리를 혼자 걸으면서도 생각했다. 누군가가 나에게 총이나 칼을 들이대는 건 아닐까?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 다가가자, 길거리에서 음악 CD를 파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다양한 음악들. 흘러나오는 음악은 주로 레게였다.[힘합 리믹스 음악이 나오는 곳도 있었다]

  시내의 중심가인 넬슨만델라 공원의 곁을 지나갔다. 인터넷을 하다가 얼핏 본 기억이 났다. 넬슨만델라 공원에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그는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래서 그 공원이 아주 큰 규모인 줄 알았는데, 정말 작은 규모였다. 공원의 바깥에서 안에 누가 있는지 다 보일 정도의 작은 크기의 공원. 그 공원에서 낯익은 냄새가 내 코를 자극했다. 그리고 하얀 연기들이 피어 올랐다. 담배보다는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부드러운 냄새. 담배보다 몸에 해롭지는 않지만, 조금은 더 강력한 것.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입에 물고 연기를 뿜어 댓다.


6. 밥 말리.

  밥 말리 뮤지엄에서 밥 말리를 보았다. 레게의 전설. 자메이카의 전설이었다. 밥 말리. 그의 음악, 그의 영향을 받은 많은 아티스트. 대한민국의 레게 뮤지션들이 자메이카에서 레게 음악을 배우고, 앨범 작업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었다. 레게의 본고장에서 레게를 듣고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기분이 묘했다.


7. 클럽. 나이트.

  숙소에 머무는 외국애들과 밤에 클럽을 갔다. 자메이카에서 밤에 외출을 할 때는 반드시, 숙소 문 앞까지 택시를 불러서 택시를 타고 목적지 까지 간 다음, 그 곳에서 돌아 올 때도 그 앞에서 택시를 타고 숙소 앞에 내려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봉변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자메이카에선 어떤 사람이 밤에 사람을 죽이고도, 그것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사람을 죽인 사람은 그것을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무서운 세상이구나 라고 생각을 했다.

  클럽 앞에서 돈을 지불하고, 클럽으로 들어섰다. 육중한 철문을 밀고 들어선 그 곳에는 음악이 흘러 나왔고, 많은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자메이카의 젊은이들이 다 모여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곳에서 느낀건, 아, 여기도 라틴인가?

8. 음악이 시간을 채워주는 도시.

  자메이카와 쿠바는 멀리 떨어지지 않았는데, 느낌이 달랐다. 기후도 달랐다. 자메이카에선 힘이 빠졌다. 쿠바보다 습한 날씨와 약간은 더 높은 기온. 낮에는 그냥 숙소 침대에서 뒹굴었다. 나가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거리엔 태양이 내리쬐고 있었고, 사람들은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해가 지길 기다려, 저녁을 지어 먹고. 밤이 깊어지면 숙소의 다른 외국애들과 음악을 즐기러 갔다. 그렇게 자메이카에서의 하루하루는 음악과 함께 하는 시간들로 채워졌다.


- 무료하게 거리를 걸으며



-



- 밥말리 뮤지엄 외벽



- 내가 자메이카에서 한거라곤 고작 밥말리 뮤지엄을 간 것 뿐.








- 밥 말리









- 시계탑. 시내 중심가. 옆에 넬슨만델라 공원이 있다.



- 시외버스 터미널


- 나에게 야유를 보내던 여고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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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 쿠바, 하바나 - 환상 그 이상의 즐거움 (La Habana) <3>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1. 3. 15.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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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nezuela, Caracas   -   Cuba, La Habana   -   Jamaica, Kingston

1. 엽서 혹은 편지.

  초등학교 시절[15년 전 쯤]을 생각 해 보면, 친구들끼리 편지를 참 많이 주고 받았었다. 그 시절엔 휴대폰이라는 것도 없었고, 삐삐라고 불리는 작은 기계가 이제 막 세상에 모습을 드러 내려 할 때 였기에, 사람들은 손으로 글자를 쓰고, 편지 봉투에 그 글자들을 담고, 그리고 풀로 그 글자들을 감싸서, 우표와 함께 우체통에 넣었다. 
 
  어느 날, 집으로 들어서기 전 우체통에 다른 사람의 체온이 담긴 편지가 들어 있는 걸 발견 한다면 그 날은 정말 즐거운[혹은 기분 안좋은 일이 있었더라도 좋아지는] 하루가 된다. 

  연말이 되면 엽서를 보내기도 했고, 라디오 프로그램에 사연을 보낼 때도 단연 엽서를 썼다[지금은 휴대폰 문자나 인터넷 게시판을 이용하는 걸로 알고 있다] 누군가에게 짧은 말을 전할 때 나의 체온을 함께 전하고 싶다면 엽서를, 그리고 나의 마음을 좀 더 길게 담아서 전하고 싶다면 편지를 썼다.

  중학교 시절, 설레는 마음으로 편지를 써서 좋아하는 여자아이에게 건네주기도 하고, 저 멀리 다른 도시로 전학 간 친구에게도 편지를 써서 안부를 묻곤 했다. 그리고 해외에 있는 친구들과도 편지를 주고 받기도 했다. 그렇게 편지는 보내는 기쁨과 그것을 기다리는 설렘 속에 기쁨이 있고, 또한 받았을 때도 기쁜 마음이 드는 특이한 존재였다.

  그리고,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장소에서, 그 장소에 어울리거나 그 곳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혹은 그 나라에 어울리거나 특징을 잘 나타내는] 엽서를 구입하고, 친구들에게 안부를 묻는 엽서를 보낸다. 외국에서 외국의 향기가 담긴 엽서를 보내는 것은 백년 전이든 50년 전이든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든 여행자 들이 좋아하는 행동 중 하나이다.

  엽서는 쓰는 사람의 체온이 담기고, 보내는 사람은 받는 사람을 한 번 더 생각하게 해주고, 엽서를 받는 사람은 그 사람의 체온을 전달 받고 기쁨에 잠길 것이 분명하기에, 여행에서 보내는 엽서는 특별한 가치를 지니게 된다.



2. 내 엽서는 어디로 갔나요?
 
  나는 여행을 하면서 엽서를 수 많은 엽서를 보냈다.[보통 한 나라에서 2통 이상 씩. 한 번 보낼 때 보통 2개를 보낸다. 지금 까지 100통이 넘는 엽서를 친구, 혹은 아는 사람, 혹은 여행 중 만난 사람들에게 보냈다. 하지만 그 엽서들이 모두 그들의 품에 도착했는 지는 알 수 없다.]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에게 엽서를 보내면서 드는 생각은 오직 하나. 이 엽서를 받은 사람은 기분이 좋겠지? 그리고 먼 훗날 서랍장을 뒤지다가 우연히 내가 해외에서 보낸 엽서를 발견 했을 때 나를 잠시라도 기억 해 주겠지. 좋은 기억으로. 라는 생각.   
 
  엽서를 받았냐고 물어 봤을 때, 엽서를 받지 못했다는 사람들도 많았다.[특히,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에서 보냈을 경우] 내 엽서들은 어디로 갔을까? 누군가 그 엽서와 관련이 없는 사람 손에 닿아서 파괴 되었거나 그 가치를 상실 했을 것이다.

  내가 억울하게 생각하는 것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보낸 엽서들이 대다수가 한국에 도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엽서 하나 보내는 가격이 한화 5천원 이상을 하지만, 나는 받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기뻐할 것을 알기에 보냈지만, 엽서들은 도착하지 않았다.[물론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



3.  쿠바에 대한 상념.

  대학교 시절, 체 게바라를 알았다. 사회적 문제, 노동 운동에 관심을 가지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이다. 체 게바라 평전을 읽었고, 체 게바라의 젊은 시절을 모델로 한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라는 영화를 보았다. 그리고, 나도 젊은 시절의 체 게바라처럼 오토바이는 아니라도 그 코스를 따라 여행을 해 보겠다고 생각을 했다. 버스를 타고서라도.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와는 많이 다른 코스로 남미를 여행했다. 그렇지만, 그토록 가 보고 싶었던 쿠바에 왔다. 돈이 얼마가 들던 나는 쿠바는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나의 일정을 채찍질 해서 쿠바에 닿아 있었다.

  사실, 쿠바에서는 체 게바라의 흔적을 가장 먼저 보고 싶었다. 체 게바라의 삶의 종지부. 그와 피델 카스트로. 그리고 사회주의 혁명. 쿠바의 이미지는 그런 것들이었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의 재즈 음악과 쿠바나 음악 보다는, 헤밍웨이가 하바나에 머물면서 썻다는 <노인과 바다>의 하바나 바다의 이미지 보다는, 쿠바 혁명의 흔적, 아니 그 보다더 직설적으로는 체 게바라의 흔적이 어떻게 남아 있는 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쿠바에 도착한 첫 날. 나의 쿠바에 대한 환상은 뒤바꼈다. 쿠바는 내가 생각하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혁명의 흔적은 역사의 파편이 되어 한 쪽에 머물러 있었고. 내가 찾던 체 게바라는 사진 속에서만 웃고 있었다.


4. 쿠바에 대해서 얼마나 아세요?

  어디에 가세요? 쿠바에요. 다음은 어디가? 쿠바. 쿠바. 쿠바에 간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좋겠다고 했다. 물론, 나도 쿠바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쿠바에 간다는 나를 부러워 했다. 쿠바가 어떤 곳이길래?

  내가 쿠바에 도착 하기 전 쿠바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곤, 사회주의 국가. 미국과 적대적 관계. 하바나의 클럽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재즈. 체 게바라와 피델카스트로의 혁명. 단지 그것 뿐이었다. 나는 단지 한 사람 때문에 쿠바를 동경하고 있었던 것이 틀림 없다.

  남미, 라틴 아메리카의 영웅. 체 게바라.  하지만 영웅은 어디에도 없었다.

쿠바에 처음 도착하고, 시티 센터에 도착 했을 때 내 눈에 보인 건, 거대한 고딕 양식의 건물이었다. 중세 유럽에 온 듯한 느낌. 유럽의 한 도시에 온 기분이었다. 건물들은 낡아 있었지만, 기품있어 보였다. 흑은과 백인. 혼혈인들이 뒤섞여 있었고, 스페인어들이 쉴새 없이 내 귓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무언가 활기가 느껴졌지만, 내가 기대하던, 내가 생각하던 그런 곳과는 달랐다. 쿠바는 이런 곳인가? 클래식 카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지만, 세련되어 보이지는 않았다. 도로엔 차들이 지나다녔고, 거리엔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혼잡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나는 쿠바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5. 쿠바에 대해서 알아가는 단계.

  숙소로 잡은 불법 까사에서, 쿠바 사람들의 삶을 보았다. 불법 까사는 다세대 아파트의 수 많은 문들 중 하나를 열고 들어가자 나왔다. 5평이 채 되지 않은 작은 공간. 그 곳에서 한 가족이 살고 있었다. 주인 여자의 남편은 경찰. 주인 여자의 나이는 30대 중반 정도로 보였지만 19살 짜리 아들이 있었고, 동생은 5살 이었다. 내 방이랍시고 내 준 곳에 창문은 없었고, 건넛집의 음악소리, 말소리가 다 들려왔다. 옆 집에서 키우는 새들이 아침을 알리는 그런 곳이었다. 침대는 삐걱대고 있었다.

  지도를 보며 거리를 걸었다. 올드 시티. 길을 따라 가자,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곳이라서 그런지 괜찮아 보이는 카페와 식당들이 늘어서 있었다. 건물들은 하나같이 오래되어 쓰러질 듯 한 모습을 띤 것도 있었지만, 그래도 봐 줄만 했다. 광장에는 여러 무리의 광광객 떼들이 보였다. 나는 조용히 그늘에 앉아 그들을 바라 보다가, 혼자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골목 속으로 숨어버렸다.

  밤의 쿠바 시내 거리는 조용했다. 빛 조차 찾아들지 않는 골목 속으로 다니기가 무서웠다. 늦은 밤의 거리는 차들도 거의 없었기에 혼자 그 거리를 걷고 있자니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왠지 모르게 누군가 나타나 칼로 나를 찌를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 - 쿠바가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

  서점에 들러 책을 보았다. 음반 가게에 들러 음악을 들어 보았다. 쿠바나 뮤직. 나쁘지 않기에 CD를 몇 장 샀다. 길 거리에, 서점에 엽서를 파는 사람들. 그 곳엔 항상 체 게바라가 있었다. 체 게바라는 이제 자본주의의 물결 속에서 좋은 돈벌이 수단이 되고 있었다.

  3peso 짜리 지폐 속의 체 게바라는 3CUC(1CUC=24peso)에 판매되고 있는 좋은 기념품의 하나 였다.[나는 우연히 상점에서 3peso 지폐를 거슬러 받았다] 그리고, 체 게바라의 얼굴이 양각된 동전도 하나의 기념품이 되어 있었다. 쿠바 국민들에게는 그냥 동전에 불과했지만, 관광객들에게는 그것이 하나의 기념품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체 게바라의 얼굴을 가지고 돈을 벌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그것은 가능했다.

  혁명의 흔적은 혁명 광장에서 잠깐 느낄 수 있었다. 드넓은 광장을 가운데 두고, 큰 얼굴들이 탑을 바라보고 있었다. 혁명 탑. 체 게바라의 눈동자도 그 곳을 향해 있었다. 혁명은 그 곳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사진속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하바나의 거센 파도. 듣던대로 거센 파도였다. 도심에서는 바람을 전혀 느낄 수 없었지만, 노인과 바다에서 묘사된 듯 한 하바나 해변에는 성난 파도가 휘몰아 쳤다. 이 곳이 노인이 사투하던 바다라고 말하는 것 처럼. 노인은 결국 빈손으로 집에 돌아왔고, 잠이 들었다. 나도 빈 손으로 그 곳을 거닐다가 싸구려 까사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쿠바의 극장에서 쇼를 보았다. 하바나의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극장으로 몰려와 쇼를 보았다. 어딜가나 그런 부류는 있는 법이다. 그 쇼의 가격이 보통 식당에서 코스 요리로 한끼를 먹는가격의 30배가 넘는 금액이지만, 그런 쇼는 표가 없어서 못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젊은 청춘 남녀들의 모습을 보았다. 세상, 어딜가나 다 똑같은 법이다.

  쿠바에는 시내버스 노선도가 따로 없다. 버스 안에만 노선도가 있다. 외국인들은 버스 노선을 알 수 없다. 버스는 한 번 타는데 0.5peso.[한화 약30원]. 일부러 외국인들은 택시를 타게 하려고 노선도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현지인들이 타는 여객선을 타고 요새가 지어져 있는 하바나 건너편의 카사블랑카로 갔다. 그 곳에서 하바나 시내를 바라보고 버스를 타고 하바나로 돌아왔다. 0.5peso짜리 버스에는 쿠바나의 냄새가 났다. 나쁘지는 않았다. 이게 바로 사람사는 냄새.

  0.5peso짜리 시내버스를 타고 정처 없이 돌아 다녔다. 그냥 이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그리고 거기서 또 다른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그렇게 버스를 타고 사람 사람 곳을 돌아다니며 구경을 했다. 시티투어 버스가 15CUC인가(?)를 하는것에 비하면 100배 이상 싼 금액이니까. 난 그런 여행을 즐겼다.


6. 쿠바 어떤가요?

  쿠바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조금 더 많이. 쿠바는 내 생각 속에서 혁명의 나라 였지만, 그 곳은 정열의 나라 였고, 음악의 나라였고, 사람 냄새 나는 곳이었다.

  한편으론, 체 게바라가 너무나도 상품화 되어있다는 사실이좀 씁쓸하긴 했다. 체 게바라가 과연 그 사실을 알면 어떤 말을 할까?

쿠바는 그런곳이었다. 사람 사는 곳. 라틴 아메리카 속의 라틴 아메리카. 


- 까삐똘리오 옆으로 지나가는 버스


- 까삐똘리오


-


-
























- 차이나 타운 입구



- 혁명 광장의 체 게바라










- 하바나 해안도로






- 카사블랑카 언덕에서 본 하바나





 Good Bye Cuba, Adios! Hab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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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 쿠바, 하바나 - 진정한 라틴의 피가 흐르는 곳. (La Habana) <2>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1. 3. 6.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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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nezuela, Caracas - Cuba, La Habana - Jamaica, Kingston


1. 음악, 그것은 여행객의 필수품이 되어 버렸다.

  옛날 어느 유럽여행이라는 프로그램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면서 반드시 챙겨야 하는 것이 무엇이었을까?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면서 여행 필수품에서 사라져 버린 것들도 있을 것이고 새로 생겨난 것들도 많을 것이다. 여행 가방은 아마도 그 형태만 가뀌고 기능성이 추가 되었을 뿐 예나 지금이나 가장 중요한 필수품일 것이 분명하다. 카메라는 어떨까? 자신이 다녀온 곳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찍은 사진. 아마 옛날 유럽 여행이 시작되었을 때도 카메라는 필수품이었을지도 모른다. 단지 시간이 지나 기술이 발전했고, 예전보다 더 편리하게 사진을 찍고, 찍은 사진을 볼 수 있다는 것 말고는 바뀐 것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서 새롭게 여행 필수품이 되어버린 것. 바로 음악. 궁극적으로 말하자면 음악을 재생하는 장치와 음악이 재생될 수 있게 하는 음원이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소니(Sony)에서 워크맨을 개발하여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이후 워크맨 시장은 급속도로 발달했다.[필자가 고등학생이던 때만해도 워크맨은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고, 그 때 막 MD player 가 나오고 CD player는 최고급 아이템 중의 하나였다] CD player 시대를 지나 새롭게 등장한 것이 바로, MP3 player 이다.

  2000년 밀레니엄시대를 기대와 우려속에서 맞이하고, 2002년 월드컵의 함성을 지날 무렵 MP3 플레이어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고, 많은 문제가 있었지만 각각의 개인은 서로간에 음악을 주고 받기에 바빳다. 그러면서 여행, 더 궁극적으로는 해외여행의 필수품으로 자리잡은 듯 하다.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음악을 가지고 있다. 음악이라고 해서 기계가 재생하는 그런 음악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악기를 들고 다니면서 음악을 직접 만드는 이들도 있다. 소형 스피커를 들고 다니며 작은 기계속의 음악을 공유하는 사람도 있고, 직접 몸으로 음악을 만드는 사람도 있다. 기타 사물을 이용해 연주를 하는 사람도 봤다. 그리고, CD를 수십장 들고 다니며 음악을 듣는 사람도 봤다.[CD를 들고 다니며 음악을 듣는 사람에게서는 왠지 묘한 매력이 느껴진다.]

  이렇듯, 음악과 그것을 재생하는 장치는 여행객의 필수품이 되었다.


2. 음악은 우리를 즐겁게 한다.

  많은 이들이 음악을 즐긴다. 그리고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음악에 재능이 있든 없든] 대중가요는 차치하고[대중가요가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다]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은 보통 인디(indie)음악을 많이 찾는다. 인디음악에는 항상 에너지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우리나라 사람들도 다양한 음악을 다양한 장소에서 즐기게 되었다.[아마 인터넷과 다양한 매체의 발달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특히, 서울에 위치한 '홍대 앞 거리'의 많은 클럽과 카페에서 다양한 음악을 즐길 수 있다. 그렇게 다양한 음악을 클럽이나 카페같은 곳에서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닌데, 우리나라의 정서상 그런 문화가 보편적으로 허용되는 특정 지역에서만 그런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슬픈 감정을 자아내기도 한다.

  물론, 서울이라는 공간이 너무나도 거대하고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볼거리, 다양한 장소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그런 오픈된 장소에서 여유와 음악을 즐기며, 노는 문화에는 익숙치 않은 것 같다.[물론 뉴욕, 파리, 런던 같은 대도시에서도 라틴과 같은 분위기는 아니지만, 우리나라보다는 훨씬 더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음악들을 즐길 수 있다. 물론 그에 합당한 돈을 지불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즐기기 위해 특정 장소를 찾고, 그러한 특정한 장소들이 더욱 많아 지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즐겁게 하는 하나의 요소이다. 음악은 세상을 아름답게 할 수도 있다. 존 레논이 말했던 것 처럼.



3. 경제적 발전과 삶을 즐기는 것은 반비례 하는 쿠바.

  쿠바의 경제가 세계에서 몇 번째 쯤 될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싸구려 까사(casa, 현지인 민박 형태의 숙소)에서 생활이 시작되고 내가 그녀에게 방세를 지불 했을 때 그녀는 미소를 머금었다[내가 지불한 방세는 10CUC. 1CUC = 24peso. 20페소면 로컬 레스토랑에서 코스요리를 먹을 수 있는 정도이다]. 그리고 나에게 스페인어로 말을 걸어왔다.[그녀는 영어를 못했으므로] 나의 짧은 스페인어와 라틴스페니시 프라세북의 사전을 뒤적이며 대화를 이어갔다.

  오늘 밤, 그녀는 라틴댄스를 추러 간다고 했다. 거기서 춤도 배우고, 라틴 댄스도 추고. 나에게 같이 가보지 않겠냐는 말을 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나는 그 날 밤, 오페라극장에서 하는 쇼의 티켓을 예매해 놓은 상태였다.



4. 쿠바의 치안, 보기와는 다르네요?

  극장으로 가는 길, 길거리의 가로등은 빛이 나지 않은 채 서있거나, 빛이 약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런 거리를 걸었다. 거리를 걸었기보다는 그냥 칠흑같은 어둠속을 헤쳐나갔다고 보는 편이 옳을 정도로 어두운 골목이었다. 거리의 양 옆에는 낡은 건물들이 서 있었고, 그 곳에는 쿠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어둠 저편에서 "하포네스(japanese의 스페인어식 발음)" 혹은 "치노!(중국인의 스페인어)"라는 소리가 메아리쳐 울려왔고, 가끔 내 바로 뒤에서 그런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무서웠다. 사실, 난 완전하지 않은 지도 한장과 낮에 거리를 쏘다녔던 기억을 더듬으며 길을 가고 있었는데, 그런 어둠 속에서 내 기억력은 제대로 작동될 리 없었다.

  어느정도 지났을까? 나는 더이상 길을 갈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날 밤, 극장에서 열리는 쇼고 뭐고 다 집어 치우고 싶었다. 그냥 숙소로 돌아가서 잠이나 자고 싶었다. 쇼를 보고 나면 밤 12시가 넘을 텐데, 밤 늦은 시간 혼자 숙소로 돌아올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정말 그 거리에서 칼맞고 죽어도 누구하나 챙겨주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극장으로 가던 발걸음을 다시 숙소 쪽으로 돌려서, 사람들이 우글대는 혼잡한 거리로 진입했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나는 길을 걷다가 우연히 한국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들은 말. 

  쿠바가 라틴아메리카에서 치안이 제일 좋은 나라래요.


5. 쿠바의 음악과 쇼(Show)를 즐기다.

  쿠바의 신시가(新市街)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 사람의 말을 듣고 난 쿠바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왜 쿠바가 라틴에서 가장 치안이 좋은 곳이 되었을지를 생각 해 보았고, 그리고 나를 자기의 까사로 안내한 쿠바 청년의 말이 생각났다.
  사회주의 국가 쿠바. 외화벌이의 유일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 외국인 관광객. 그리고 국가가 엄격하게 통제하는 사회의 범죄통제와 사회 질서 혼란에 대한 국가의 응징.

  그 날 이후로, 나는 밤마다 이곳 저곳을 쏘다니며 공연을 보고, 재즈카페에서 술을 마시며 재즈 공연을 보고 들었으며, 공원 벤치에 앉아 밤 늦은 시간까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쿠바에서 만난 한국인과 함께] 밤이 깊어 자정이 지난 시간에도 쿠바의 시내버스는 운행을 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공원에서 더위를 식히며, 담소를 나누거나 술을 마셨다. 더러는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거리에 사람은 뜸했지만, 공원에는 아직 숙소로 돌아가기 아쉬운 그런 기운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희한한 것은 여름 날씨였는데도 불구하고, 공원에는 모기가 없었다. 아니, 쿠바에서 모기를 보지 못했다.

  쿠바의 밤에는 극장같은 공연 장에서 발레공연이 열리거나 연주회가 열렸고, 재즈 카페에서는 재즈 음악이 흘러 나왔고, 쇼를 하는 술 집의 무대위에서는 무용수들이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렀고, 사설 댄스장에서는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며 즐기는 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렇게 쿠바의 밤은 흥미로운 볼거리, 놀거리들로 가득했다. 물론 낮이라고 예외는 아니었지만.



6. 거리에선 음악이 흘러 나오고.
    
   싸구려 까사의 여주인은 나에게 쿠바의 다양한 음악들을 들려주었다. 조그마한 흑백 텔리비전 화면속에 비치는 DVD영상은 어색했지만,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은 나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쿠바의 다양한 아티스트들. 라틴음악 부터 재즈까지. 쿠바나 뮤직. 정말 매력적이었다. 나는 여주인에게 추천받은 가수의 CD를 사야겠다는 생각을 머리속에 간직한 채 쿠바의 거리를 걸었다. 그리고 버스정류장 근처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CD를 팔고 있는 노점에 들러 음악을 들으며 CD를 고르고 있었다.

  거리에는 음악이 흘러 퍼졌고, 사람들은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 주변에 서 있으면서도 리듬을 타고 있었다. 그 중 한 꼬마, 대여섯살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꼬마가, 살사 음악에 맞추어 몸을 흔들었다. 정말 유연한 몸놀림. 놀라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의 몸놀림을 하는 그 어린아이는 내 머리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아, 모든 쿠바의 사람들이 어릴 때 부터 이렇게 음악을 들으면서 춤을 추니, 나이가 조금 더 들어 10대 후반, 20대 그리고 30대 더 나아가 40대가 되어서도 그렇게 춤을 추는 것을 즐기고, 음악을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쿠바의 거리에서는 음악이 흘러 넘쳤고, 사람들은 흘러 넘치는 음악을 몸으로 주워 담고 있었다.



- 쿠바 거리의 아파트와 달.

- 어둠에 젖어드는 까삐똘리오

- 스트릿

- 거리의 벽화

- 오페라극장 건물. 1층에는 우체국이 있다.

- 벼룩시장.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체게바라의 얼굴

- 길거리 공연단

- 꽤나 유명했던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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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핑몰

- 낮잠자던 아저씨. 친구가 나를 막 부르더니 사진 찍으랬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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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당의 형제

- 일하던 아저씨. 사진 찍어 달래서.

- 구두수선집 아저씨. 나를 불러세우고선 사진 찍어 달랬다.
많은 나라를 돌면서 느낀 것인데, 다른 나라 사람들은 자신이 일하고 있는 모습을 찍히길 좋하는 듯. 무슨 일을 하고 있던 간에 자부심이 대단한 것 같았다.

- 차이나 타운의 알림판. 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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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안해도 안다. 혁명광장에서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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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명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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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넘볼 수 없던 호텔. 로비만 가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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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바나의 거센 파도를 느낄 수 있었떤 곳.

- 어흥!

- 싸대기 맞을래?? 까삐똘리오 동상

- 중궈~

- 카사블랑카에서 본 하바나 시내

-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풍의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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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 쿠바, 하바나 - 기대 그 이상의 가치. - 쿠바, 하바나<1>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1. 2. 27.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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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nezuela, Caracas(베네수엘라 카라카스) - Cuba, La Habana(쿠바 하바나) - Jamaica, Kingston(자메이카 킹스톤)


1. 비자(Visa), 특정한 국가를 여행 할 때 허가증을 따로 받아야 한다는 것.

    전자 여권 제도가 시행되기 전 광화문 미국 대사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던 광경이 있었다. 미국 대사관 입구에서부터 대사관 주변으로 길게 뻗은 줄. 미국 비자를 받기위해 사람들은 그렇게 줄을 서야 했다.[전자 여권 제도가 시행된 후, 그 모습은 사라졌다] 2004년 필자가 일본을 여행 할 때만 해도, 일본 대사관에서 비자를 따로 발급 받아야 했다.[그것은 적잖히 번거로운 일이었다] 하지만 일본과의 무비자 협정 체결 이후, 일본은 손쉽게 갈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빨리 중국과도 무비자 협정이 체결되기를 바란다]

  어느 특정 국가를 여행할 때, 그 나라에 대해서 확인 해야 할 것 중 하나가 바로 비자의 필요 유무(有無)이다. 전 세계적인 추세가 특별히 대사관에서 비자를 따로 발급 받지 않고도 자기의 나라를 여행할 수 있게 하는 무사증(무비자)를 허용하고 있지만, 아직도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라면 비자가 필요한 국가가 많다.[유럽의 경우는 러시아, 벨라루스를 제외하고 모든 나라가 무사증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 필자가 2005년 마케도니아와 슬로바키아를 가고자 했을 때는 비자가 필요했지만 2007년 이후로 무비자로 바뀌어 동유럽 여행이 한결 쉬워졌다]
  비자를 발급 받을 때 유의할 점은, 반드시 본국[대한민국 사람이라면 한국내에서]발급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고, 우리나라에 대사관이 없어서 외국에 있는 대사관에서 발급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국경에서 비자 발급 비용을 지불하면[흔히 비자피(Vasa fee)라고 한다] 비자를 발급해 주는 곳도 있다는 것.[대표적으로 캄보디아, 네팔을 들 수 있고, 시리아의 경우는 우리나라와 수교를 하고 있지않기 때문에 국경에서 비자를 발급해 준다. 시리아 입국시 일본인의 경우는 일본 현지의 시리아 대사관에서 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고 들었다]

  비자 문제는 유럽 여행을 할 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장기간 여러나라를 여행하는 장기여행자들의 경우는 특히 신경써야 할 부분이다.[국경에서 비자 문제로 입국이 거부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러시아, 몽골, 중국, 시리아, 볼리비아등 많은 나라들이 아직도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비자를 요구하고 있고, 비자에 관한 문제는 수시로 정책이 바뀌기 때문에 꼭 챙겨두어야 할 사항이다.


2. 쿠바에 다녀온 흔적을 남길 수 없다.

  이스라엘은 중동의 미운오리 새끼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이스라엘은 꼭 가봐야 할 곳중 한 군데이기도 하지만, 많은 여행자들이 이스라엘의 독특한 위치와, 역사적 상황, 그리고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기 위해 이스라엘을 가고자 한다. 하지만, 이스라엘을 갈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바로 입/출국 스탬프를 여권에 찍어서는 안 된다는 것. 이스라엘을 입/출국 할 때는 별지에 스탬프를 찍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출/입국 스탬프가 찍혀 있으면 주변 나라에서 입국을 시켜주지 않는 다는 것이다. 미운오리 새끼, 이스라엘.

  쿠바에 가기 위해서는 비자가 필요하다. 쿠바는 국제사회의 왕따이다. 국제사회의 큰형 미국이 쿠바를 왕따시키고 있기에, 쿠바는 늘 찬밥 신세다. 하지만, 역사적으로든 문화적으로든 쿠바는 엄청난 매력을 가진 곳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쿠바를 찾는다.[많은 수의 미국인들도 쿠바를 찾는다. 미국의 대문호였던 헤밍웨이는 쿠바 하바나에 살면서 "바다와 노인"이라는 소설을 썻다] 하지만, 쿠바도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여권에 스탬프를 찍을 수 없다. 별도의 비자 용지를 구입해서 그 곳에 스탬프를 찍고 출국 할 때 반납해야 한다.

  보통, 쿠바의 비자는 항공사 사무실에 비자를 판매하는 코너에 있다. 쿠바에 입국하기 위해서는 비자가 필요하고, 그 곳에서 비자를 구입해야 한다. 그리고 그 종이에 입국 스탬프를 찍고, 쿠바 출국 심사를 할 때 반납한다. 쿠바의 흔적은 여권에 남길 수 없다.[쿠바 스탬프가 있으면 미국을 갈 수 없다는 이야기도 있다]



3. 비행기는 카리브해(Caribbean sea) 위를 날고 있었다.

  하우스파티 다음 날 아침, 나는 숙소로 가서 짐을 챙겼다. 내가 루이지의 집을 떠날 때 그는 나에게 물었었다. 어디서 공항가는 버스를 탈 거냐고. 나는 지도를 보여주고 11시 쯤 지도에 표시된 곳에서 버스를 탈 것이라고 말하고 떠났지만, 그 곳에서 버스를 타지 않았다.
  
  공항에서의 까다로운 배낭 패킹을 마치고, 출국세를 지불하고, 베네수엘라의 인기있는 가수라는 녀석의 CD를 한장 구입하고, 쿠바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렸다. 또 다시 방문하게 되는 사회주의 국가였다.[이번 여행에서 시리아, 중국, 쿠바 세 군데의 사회주의 국가를 방문했는데, 각각의 나라 분위기가 너무나도 달랐다] 체 게바라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남아있는 쿠바. 피델 카스트로, 체 게바라. 혁명. 그리고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의 재즈. 그리고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 묘사되는 하바나의 성난 바다. 여러가지 이미지들이 내 머리속에 겹쳐졌다.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에 좀 더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다음 행선지인 쿠바와 자메이카의 매력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크게 다가왔기에, 카라카스에서 좀 서둘러 떠나는 감이 있어 좀 아쉬웠지만, 내가 그토록 가고싶어 하던 곳에 더 오래 머물고 싶다는 욕망을 이길 수는 없었다.

  Cubana air의 낡은 기체는 한적한 공항 위를 이륙해서 반원을 그린다음, 파랗게 펼쳐져 있는 카리브해(Caribbean sea)위에 자리를 잡았다. 창밖 아래로는 카리브해의 작은 섬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세계적인 휴양지로 손꼽히는 섬들이겠지.



4. 하바나 국제 공항.

  크지 않은 공항은 좀 혼잡해 보였다. 공항은 여러 무리의 관광객들을 토해냈고, 쿠바에 살고 있는 것 같은 여러 중국인들을 토해냈다. 나는 공항의 환전소에서 환전을 했다. 충격이었다. 이미 쿠바에 오기전에 들은 바는 있었지만, 정말 이렇게 심할 줄은 몰랐다. 캐나다 달러가 쿠바에서 가장 환율이 좋다는 이야길 듣고 캐나다 달러를 사고자 했지만, 캐나다 달러를 살 곳이 없었던 내가 가진 것은 미국 US달러였다.
  우리나라 환율로 따지면, US달러가 훨씬 높았지만 쿠바에서는 US달러의 가치는 형편없었다. 울며 겨자먹기로 외국인용 화폐로 쓰인다는 CUC(쿡 이라고 불린다)을 바꾸고 공항 앞에서 택시를 잡았다. 택시에 몸을 싣고, 시내 중심가격은 까삐똘리오로 가자고 했다. 그 근처에 까사[현지인이 운영하는 민박과 같은 숙소]가 많다는 정보를 들은 바 있어서 그 곳에서 숙소를 잡기 위함이었다.


5. 혁명의 흔적과 함께 시간이 멈춰 버린 듯한 도시.

  한적한 공항 주변의 도로를 달려, 하바나 시내로 접어들고 있음이 느껴졌다. 사람들은 버스 정류장 근처에 몰려서 버스를 타려 하고 있었고, 버스는 사람들을 가득 태우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거리엔 우리나라에서는 찾아 볼 수 없고, 다른 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클래식 자동차(Classic car)들로 넘쳐났다. 그리고 론니플래닛에 적혀있던 한 구절이 생각났다. "쿠바의 볼거리 중 하나인 클래식 카(Car)"

  낡은 자동차들이 검은 매연을 토하면서 거리를 누비고 다녔다. 페인트가 벗겨진 클래식 카도 있었고, 삐까번쩍한 클래식 카들도 있었다. 도요타의 자동차도 거리를 누비고 있었고, 간혼 현대차도 보였다. 그래도 거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클래식 카였다.

  어쩌면 혁명 이후 시간이 멈춰 버린 걸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미국의 경제 봉쇄 정책으로 인해서 시간이 멈춰버린 것일 지도]



6. 불법 까사. 그 곳이 나의 숙소.

  까사를 찾기위해 까삐똘리오[예전에는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던 건물. 중앙에 큰 돔이 있는데 세계에서 손에 꼽힌다.  쿠바 하바나의 메인 건물 중 하나로서 역사도 오래되었고 규모면에서도 세계적인 건축물이다] 주변을 배회하다 보니, 한 명이 나에게 접근하더니 물었다. 까사?까사?
  씨씨, 라고 대답하딘 10cuc에 해 준다고 했다. 엄청 싸다는 생각에, 한번 집부터 보자고 했다. 그러더니 따라오라면서, 나와는 2미터 정도의 간격을 두고 걸었다. 그리고 말을 할 때도, 나를 바라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시선을 다른 곳으로 향했다.[ 쿠바는 미국의 경제봉쇄적책으로 인해 외화를 벌어들이는 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외국인 관광객에 의한 외화벌이이다. 따라서 쿠바는 정책적으로 외국인 관광객을 많이 보호하고 관광을 장려하고 있다. 외국인 보호와 관광객 유치라는 정부 정책에 의해 정부에서 제공되는 서비스의 가격에는 외국인 가격(foreign price)가 형성되어 있음은 물론이지만, 외국인 관광객에 대한 보호도 강력하게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현지인이 외국인 관광객과 직접 대화를 하거나 접근하여 신체 접촉을 하는 모습을 경찰이 보면 그 자리에서 쿠바 현지인은 체포되어 감옥으로 간다고 한다.] 
  까삐똘리오에서 걸어 일반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 같은 건물에 들어섰다. 출입문을 열쇠로 열고, 좁은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각종 전선들이 거미줄처럼 계단 위쪽에 얽혀 있었다.[불이라도 날 것 같았고, 불이 난다면 다 죽을 것 같았다] 4층에 다다르자 또 하나의 문이 나왔고, 그 곳에는 복도를 따라 몇 개의 문이 있었다. 그 중 하나로 나를 안내했다.

  여기가 현지인들이 살고 있는 곳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이 겨우 설 수 있는 주방. 거실에는 네 개의 세포와 작은 TV와 오디오가 있었다. 화장실은 거실 한쪽 벽문에 있었는데, 환풍기가 없었고, 샤워기는 없이 수도꼭지만이 있었다. 주방 바로 뒤에 좁은 계단을 타고 올라가니 다락방이 나왔다. 다락방은 두개의 칸으로 나뉘어 있었고, 계단과 연결되는 곳에 하나의 침대가 있었고, 문 너머에 또 다른 하나의 침대가 있었다. 

  이런 곳에서 한 가족이 살고 있다니. 정말 빈민촌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 곳이 일반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다. 이것이 쿠바의 현실인가? 아-주 저렴한 가격의 숙소. 뭐, 난 이제까지 여행하면서 이보다 더 심하고 시설이 좋지 않은 곳에서도 살아 봤으니라고 생각했고, 그 날 몹시 피곤했기에 다른 숙소로 옮길 생각도 없었다. 일단 여기서 이틀 정도 지내보고 숙소를 옮길지 말지 결정하기로 했다.

그렇게,
불법 싸구려 까사(casa)에서 나의 쿠바에서의 여정은 시작되었다.



- 공항을 빠져나오며


- 까삐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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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소 근처의 차이나 타운 입구


- 어디에나 걸려 있는 체 게바라


- CIUDAD DE LA HABANA


- 관광객 기다리는 쌔끈한 클래식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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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명의 흔적


- 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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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 미녀(美女) 공화국, 베네수엘라 - 카라카스(Caracas)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1. 2. 19.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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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zil - Santa Elena de Uairen - Ciudad Bolivar - Caracas(카라카스) - Cuba, Havana(쿠바 하바나)



1. 지금 당신의 지갑 속에는 몇 장의 카드가 들어있나요? - 신용카드(체크카드,현금카드) vs 여행자 수표.

   지갑 속을 들여다 보면 몇 장의 카드가 눈에 띈다. 포인트 적립 카드를 비롯해서 신용카드(체크카드), 보안카드 를 비롯한 다양한 카드들. 카드가 난무하는 시대에 현금 지폐를 비롯한 일정 금액의 가치와 동등한 효력을 가진 종이들은[수표나 상품권 등] 그 설자리를 점점 잃어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여행을 하면서 꼭 챙겨야 하는 필수 품 중 하나였던 여행자 수표는 이제는 여행 필수품이라는 항목에서 제외된 듯한 느낌이 든다. 그 자리를 대신해서 현금카드 혹은 신용카드가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불과 몇 년 사이에] 
  2004년 겨울 유럽 여행의 필수품은 여행자 수표였다.[특히 지점이 많아서 편리하다고 알려진 토마스쿡은 인기가 많았다] 그 당시 많은 이들이 여행자 수표를 이용했고, 그 이후에도 많은 이들이 여행자 수표를 이용하였다.[여행자 수표의 장점은 환전 수수료가 비교적 적었고, 분실시 발행 코드를 알고 있으면 재발행 할 수 있고, 본인 서명이 없으면 사용 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여행자 수표를 교환해 주는 지점이 없으면 환전을 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 할 수 있다는 점이 단점] 2010년 까지도 여행자 수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보았지만, 그 수는 급감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자리를 신용카드나 현금카드가 대체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현급지급기(ATM)가 있으면 그 자리에서 전산환율로 바로 현금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을 바탕으로 많은 이들이 현금카드를 가지고 다닌다.[특히 시티은행의 경우는 해외에서 돈을 찾을 때도 수수료가 면제 된다]

  하지만 현금카드, 신용카드의 편리성에 따른 위험성도 간과할 수 없다. 카드를 분실하게 될 경우 여행에 필요한 현금을 충당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을 갖기 힘들고, 다량의 현금 유출 이라는 참혹한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2. 어디에서나 현금카드가 편하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2005년 동유럽을 여행 할 때였다. 크로아티아 스플리트(split)에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모스타르(Mostar)로 가는 버스를 타기위해 버스 정류장 옆에 있는 현금지급기에서 돈을 찾았다. 그 당시 현금지급기는 건물의 벽에 붙어 있는 오픈형이었고, 나는 버스 시간에 쫒기고 있었기에 돈을 급하게 찾아 버스표를 사고 바로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몇 시간을 달려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국경에 도착했고, 소지품 검사와 여권 검사를 할 때 현금지급기에 카드를 그대로 꽂아 놓고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스타르에 도착해서 내 계좌의 잔고를 확인 해 보았을 때, 내 통장의 잔고는 0원에 가까운[희미한 기억으로는 8백 몇 십원] 숫자를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렇게 통장에 들어있던 여행 경비를 모두 도둑 맞은 것이다.

  2009년 베네수엘라의 카라카스에서 은행의 현금지급기앞에 섰다. 그리고 카드를 집어 넣고, 베네수엘라에서 사용 할 돈을 넉넉하게 찾았다[전산환율로 원화 대비 베네수엘라 페소로 바로 계산되어 출금되었다]. 생각보다 베네수엘라의 물가가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은행에서 찾은 돈을 원화로 계산해 보고, 길거리의 음식들의 값을 계산 해 보니] 물론 나는 달러가 있었지만, 쿠바와 자메이카에서 US달러를 써야 했기에 달러를 환전하지 않았다. 그리고 베네수엘라를 떠나 쿠바, 자메이카를 거쳐 미국으로 갔다.

  미국에서 들은 이야기. 베네수엘라는 고정환율이라서 달러로 환전 하면 물가가 엄청나게 싸게 느껴지지만, 현금지급기에서 돈을 찾아서 생활하게 될 경우 물가가 엄청 비싸진다고. 나는 그제서야 베네수엘라의 물가가 비싸게 느껴졌던 이유를 알았다.



3.  미인들의 나라 베네수엘라?

  베네수엘라. 왠지 모르게 낯설지 않은 나라 이름이었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 본 듯한 느낌이 들었던 베네수엘라. 한 번도 가보지도 않았고, 지도에서 어디에 있는지 마음먹고 찾아 본 기억이 없는 나라였다. 그 나라에 대해서도 잘 아는 것이 없었다. 단지 차베스라는 대통령의 이름만 TV에서 얼핏 들은 것 같았다.

  그런데, 누군가 말해주었다. 세계에서 미스 유니버스가 가장 많이 나온 나라. 베네수엘라. 아, 미인의 나라! 그리고, 사람들이 나에게 했던 말들이 기억났다. 내가 베네수엘라에 간다고 하자, 좋겠다. 부럽다고 하면서 덧붙였던 말들. 이쁜 여자들을 많이 볼 수 있겠네. 사진 많이 찍어. 남자, 여자 할 것없이 나에게 그런 말을 했었다. 그랬구나.

  미스 유니버스, 미인의 나라. 베네수엘라.



4. 카라카스. 두 가지 세계.
 
  볼리바르(Ciudad Bolivar)에서 버스를 타고 카라카스로. 볼리바르에서 루리로와 헤어졌다. 루리로는 나에게 저녁 때 같이 떠날 것을 권했지만 나에게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는 나와 내가 길거리에 나가서 악기를 연주하면 재미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어쩌면 돈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나의 잠베와 루리로의 피리의 합주를 말한다]. 하지만 나는 더운 날씨에 길거리에서 공연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고, 쿠바로 가는 비행기편을 알아보러 카라카스로 가야 했다. 루리로에게는 미안한 일이었고, 나로서도 이렇게 바쁘게 어디론가 떠나는 것은 원치 않았지만, 베네수엘라에 머무는 것 보다 쿠바에서 하루라도 더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물론 베네수엘라가 싫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쿠바에 대한 기대가 너무나도 컷기에 쿠바에서 하루라도 더 머물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일 뿐이다]
  
  카라카스로 향하던 버스는 어느덧 도시에 진입하려 하고 있었다. 고속도로의 거의 끝 부분 도시의 진입로 근처에 산 등성이를 타고 무너져 가는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얼핏봐도 그 곳은 빈민가 처럼 보였다[그 곳의 사진을 몇 장 찍었는데, 그 곳에서 만난 대학생들이 그 사진을 보고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말해 주었다]. 버스는 얼마간을 더 달려, 높은 빌딩들이 서 있는 도심으로 들어왔고, 사람들과 짐들을 토해냈다. 사람들은 각자의 짐을 주섬주섬 주워들고 뿔뿔히 흩어졌다. 나도 사람들의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버스에서 내리기 전에 보았던 지하철 입구를 향해 걸었다.

  지하철을 타고 도심으로 향했다. 카라카스에는 저렴한 게스트하우스가 없었기에, 론니플래닛에 나와있는 가장 저렴하다는 숙소로 찾아갔다. 러브 모텔을 개조한 숙소라고 적혀 있었는데, 역시나 러브 모텔의 느낌이 살짝 배어 있엇다. 내가 도착했을 때 싱글룸이 없었기에 나는 더블룸에서 혼자 묶어야 했고, 숙박 요금은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했지만 다른 대안은 없었다.

  시내 중심가를 거닐었다. 많은 사람들이 시내 중심가에서 쇼핑을 하고 음식을 먹고 있었다. 하지만 밤이 깊어가자 사람들은 하나 둘 씩 모습을 감추었고, 나는 나이트 클럽에나 가볼까 하는 요량으로 이곳 저곳을 배회하고 있었지만, 거리의 분위기는 외국인 여행자가 혼자 함부로 돌아다니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론니플래닛의 한 구절이 내 머릿속에 자꾸 나타났다. "밤에는 위험하니 반드시 숙소 앞에서 택시를 타고 목적지로 이동 할 것. 혼자 절대 돌아다니지 말 것."

 

5. 그 곳은 아직도 변화를 원한다.

  시내 곳곳을 돌아다녔다. 지하철 요금은 정말 쌋다. 버스 요금도 쌋다.[석유가 생산되고 있는 나라기 때문에 저렴하다고 들었다] 지하철을 타고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고, 항공사를 찾아가 비행기 표를 알아보러 다녔고, 관광 안내도의 여러 가볼만 한 곳을 찾아 가 보았고, 대형 서점들을 찾아가 보았고, 사람들이 모여드는 번화가의 거리를 걸었다.

  경찰차와 경찰오토바이들이 어디론가 몰려가고 있었다. 아까전에 지나온 곳에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이 모여 있었는데, 그 곳으로 가는 듯 했다. 다시 그 곳으로 가서 그 현장을 구경했다. 한쪽에서 외치고 있었다. 차베스! 차베스! 사람들은 함성을 질렀고, 누군가는 연설을 했다[그 사람이 차베스는 아니었다] 여러 사람들이 큰 대로 위에 설치된 연단 같은 곳에서 무언가를 말했다. 사람들은 그들의 말에 호응했고, 함성을 질렀다. 내가 대학시절 겪었던 그런 광경이 내 눈앞에 오버랩 되었다. 과연 이들이 내가 생각하는 이들일까?

  서점에서 엽서를 몇 장 사서, 엽서를 보냈다. 그리고, 가이드북에 소개 되어있는 올드 시티를 구경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6. 우리와 같은 방향이네요? 같이 가요.

  매표소 옆, 벽에 그려져 있는지하철 노선도를 유심히 보고 있었다. 가이드 북에 나와있는 노선도와는 약간 달랐다. 그래서 가이드 북의 노선도와 벽에 그려져있는 그림을 유심히 번갈아 가며 보고 있엇다. 그 때 누군가 영어로 말했다. 메이아이헬프유? 나는 나의 목적지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들도 거기 까지 간다고 하면서, 같이 가자고 했다.

  남자 셋, 여자 셋이었다. 세 커플 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중에서 영어를 제일 잘 하는 듯한 여자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영어로 이것 저것 이야기를 주고 받았고, 다른 사람들과도 나의 짧은 스페인어로 대화를 했다. 대학생. 나이는 21, 22살. 

  목적지에 내려 내가 어디로 가려고 한다고 말하자, 그들은 나를 안내해 주었다. 그 곳도 번화가 중의 하나였는지 사람들이 많았다. 공원 같은 곳에 둥글게 서서 담배를 피웠다. 담배를 다 피우자 왠지 서먹서먹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니들 술마시러 가냐?

그들은 웃으며 말했다. 응, 술마시러 가. 오늘 하우스 파티를 하기로 했거든. 그리고 덧붙였다. 너도 안바쁘면 같이 갈래?

하우스 파티? 나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얘들이 나를 어디 가둬놓고 돈을 갈취할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올드 시티를 돌아볼 계획을 취소하고 그들과 함께 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들을 따라, 하우스 파티를 한다는 애의 집으로 갔다.


 
7. 대학생들 그리고 하우스 파티.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난 아이들과의 하우스 파티. 그의 아파트에서 음악을 들으며, 술을 마셨다. 저렴한 와인 같은 것을 마셨는데, 도수는 그리 세지 않았다. 나에게 많은 술을 주었지만 내가 취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마존에서 배운 라틴 댄스를 추었고, 삼바와 살사도 추었다. 어우러져 사진도 찍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낮부터 저녁까지, 그리고 밤까지 놀았다. 

  라틴 아메리카의 사람들은 파티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춤도 정말 잘 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카라카스에서의 일정도 끝나가고 있었다.



  

- 벽에 그려져 있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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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 외곽의 빈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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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 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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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회






- 경찰 출동



- 파뤼파뤼 가는 중


- 원래 여기서부터 올드시티 구경을 하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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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붓하게 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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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댄스타임


- 시벨과 카를로스


- 그래피티




-출근길 지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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