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공장에 취직하다! - 01,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2. 5.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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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의 마지막 주,
사실상 호주 농장에서의 마지막 일이 끝났다. 도넬리리버 와인팜.
농장에서 같이 일하던 사람들과 추석때 부침개도 해먹고 추석분위기를 내자고 이야기하던 때가 있었지만,
그 이야기는 없었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우리들은 해고를 당했으니까..

어느덧,
10월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호주 농장에서의 약 7주간의 노동.

나에게는 더 이상의 선택은 없었다. 무조건 호주에서 일을 해야 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느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돈이 있든 없든 여행을 떠나야 한다고. 떠나야만 한다고.
나에게 더 이상 시간이 많지 않았다.


소식.
10월이 되면 슬슬 퍼스 주변의 공장들이 고용을 늘리고 크리스마스 준비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리고, 퍼스에서 만난 형이 나에게 말해주었다.
"10월부터 공장에서 사람 많이 뽑아보니까, 어떻게든 들어가봐."

그래서 생각한 방법.
어떻게든 인사담당관을 만나야 했다. 그래서 일 좀 시켜달라고 무작정 들이댈 생각이었다.

농장에 일을 하러 가기전 여러 공장을 돌면서 어플리케이션(Application)을 써 놓은 공장들이 퍼스와 프리맨들에 몇 군데 있었다.
난 그 중에서 가능성이 있는 몇 개의 공장을 다시 찾아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공장의 리셉션(Reception)에 찾아가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 X시에 인터뷰를 보러 오라고 해서 찾아왔다."
그러면 리셉션에서 일하는 여자는 인사담당자에게 호출을 해서 그 날 인터뷰일정이 잡혀 있는지 물어보았다.
하지만, 그 방법이 생각만큼 쉬운것은 아니었다.

인사담당관이 약속이 없다고 말하면, 만나지도 못 하는 경우도 있었고,
어떤 날은 그 날이 인사담당관이 쉬는날이기도 했다.
어쩌다가 운 좋게 인사담당자를 만나면 나는 기회다 싶어 거짓말을 해 댓다.
"며칠 전에 전화가 왔는데 오늘 이시간에 인터뷰하러 오라고 했다고...다른 일도 그만두고 왔다고."
하지만 모두가 헛수고였다. 그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수없이 인사담당자을 만나서 이야기를 했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냉정했다.
수 백명의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는데, 나 한명 일 할 자리가 없는것에 대해 한탄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10월이 시작되려하는 그 주에 마지막으로 어플리케이션을 썻다.
그리고, 10월이 시작되어도 공장에서는 소식이 없었다.
그래서, 퍼스를 떠났다.
그런데! 퍼스를 떠나고 바로 다음날 전화가 왔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전화.

프리맨틀 소재의 소세지 공장 돌소냐(DORSOGNA).
일을 하러 오라고 전화가 온 것이었다.



- D'ORSOGNA, 로고.
 나에게 참 고마운 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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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이야기 - 카날본으로 가는 길 로드하우스(Road house)에서,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1. 28.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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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당신은 꿈을 믿으시나요? 혹시 믿는 다면,
꿈이 나의 미래를 예지한다는 느낌으로? 아니면 꿈은 반대라는 생각으로?
아니면 그냥 개꿈이라고 생각하나요?

전 꿈을 믿는 편입니다.

보통, 난 너무 피곤해서 새우잠같은걸 잘 때 꿈을 잘 꾸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 꿈을 꾸는 경우가 있다.
그 다음날이 대체적으로 중요한 날일 때. 뭔가 의미있다고 생각되는 꿈을 꾸는 편이다.

예를들어, 시험기간이라던가, 뭐 아무튼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일을 하는 날일 때 말이다.

그리고 호주에서, 뇌리에 선명하게 기억될만한 꿈들을 몇 개 꾸었다.



꿈을 꿨다.
- 퍼스에서 북쪽으로 1000km 카날본Carnarvon으로 가는 길, 어느 로드하우스의 주차장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꿈 속에서,
한 후배가 나에게 전화를 했다.
"오빠, 수업에서 조별 발표를 해야하는데 오빠 우리조에서 같이 발표 하실래요?" 라고 말했다.
난, "Ok"라고 대답을 했다.

왜 갑자기 그 아이가 나에게 전화를 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왜 하필 그애 였는지.
학교 다니면서 많이 마주치지도 않았다. 서너번 정도 본 것 같다. 술도 같이 딱 두번 먹었다. 싸이는 일촌이지만, 뭐 그냥 보통 선후배사이다. 별로 친한사이는 아니다.
왜냐하면 친할 기회가 없었으니까. 09학번.....ㄷㄷ...나는 세계일주를 한답시고 09년 3월 한국을 떳으니까.


꿈 속에서,
같이 발표 조모임을 하게 되었다.
발표준비를 다 끝내고 발표를 하는날이 되었는데 갑자기 내가 너무 급한일이 생겨서 발표를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교수님한테 전화를해서 발표를 다음으로 미루면 안되겠느냐고 부탁을 했더니 다음에 발표를 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뭐 지금은 기억이 잘 안나는 이것저것을 하고나서,
다시 발표를 하게 되었다.

꿈의 끝.


아침 6시 경,
잠에서 깨어났다. 약 4시간을 차 안에서 눈을 붙이고, 카날본으로 다시 떠났다.


왠지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냥 느낌이.
그리고 왠지 어디선가 내 전화기로 전화를 해 줄것 같았다. 그냥 이유없이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일자리에 관한 전화가 올 것 같다는 근거없는 믿음이 생겼다.
혼자 꿈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았는데, 왠지 공장 어디선가에서 나한테 전화가 올 것 같았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아무튼 그 날 아침부터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 날, 오전 10시 경.
카날본에 도착을 해서, 농장들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일자리를 알아보러 다니고 있었다.
다행히도 시내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서 일을 구하러 다니고 있어서 전화가 터지는 구역이었다.

농장을 돌아다니며 농장주와 이야기를 나누던 그 때, 어디선가 일반전화로 걸려진 전화가 내 휴대폰을 울렸다.
프리맨틀Fremantle 에 위치한 소세지 공장에서 전화가 온 것이었다. 돌쏘냐(DORSOGNA). 내가 얼마나 가고 싶어하던 공장이던가!
오늘 오후 1시까지 인터뷰를 보러 공장으로 올 수 있는지 묻길래, 당연히 오케이했다.

인터뷰까지 남은시간 3시간.
1000km가 넘는거리를 3시간만에 어떻게 간단말인가???????
일은 그렇게 되었다.

여기서 부터 나는 참 절박했다.
그리고 같이 카날본에 간 사람들은 참 착찹해했다.

그날의 꿈. 잊지 못한다.



- 잠을잤던 로드하우스,
모든건 우연의 일치였을까? 카날본에서 퍼스로 돌아오는 버스도 여기서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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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looking for a job again! - 다시 구직자의 삶으로(2)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1. 28.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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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일을 다시 잡았구나!!
근데, 북쪽으로 2500km?! 차를 타고 꼬박 2박3일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거기라도 가서 돈을 벌어야지,, 페이도 어느정도 괜찮았고, 농장 숙소에 수영장도 있었다.

에이전시가 문을 닫을 시간이라서 내일 오전에 자세하게 이야기를 해줄테니 다음날 오전에 오라고 하길래 알았디고하고 에이전시를 빠져나왔다.
"다시, 농장으로 가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일이 끝나고 딱 일주일만이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다.
농장주와 계약이 체결되는 그 순간까지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그 전에 일을 구할 때도 일을 하기 바로 직전에 펑크가 나서 도루묵이 된 적이 있다고.
너무 기대는 하지말고 그냥 안전빵으로 생각하고 있으라고.

마음 한구석엔 약간의 불안감이 있었지만,
그래도 안도감이 조금 더 컷다. 일을 할 수 있다는 안도감.

그날 저녁,
백팩커스의 같은 방을 쓰는 외국애들에게 작별인사를 미리했다.
그리고 모든 짐들을 다시 정리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저녁으 먹었다.

다음 날, 오전.
에이전시영업시간 전에 미리 찾아가서 기다리고 있으니, 여직원이 잠시 기다리면서 인터넷에 올라와있는 더 좋은 일자리를 한 번 알아 보라고 했다. 뭔가 좀 불안하면서도 찝찝한 기분이었다.
여직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농장주의 전화번호를 적어주는 것이었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계약서나 페이에대한 설명 등등 그런 설명이 아니라, 달랑 전화번호 하나 주면서 농장주에게 직접 전화를 해보라니?!  - 이럴경우, 하루가 지나버리면 거의 90%이상 자리가 없다고 봐야한다.

농장주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지 않아서 메세지를 남겼다. 그래도, 조바심이 나서 다시 전화를 했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한 남자의 목소리
"Hello?"
어쩌고 저쩌고.
퍼스 에이전시에서 소개받고 전화했다고 하니, 이름을 묻고 알았으니까 나중에 다시 전화 준댄다...

"끝났네."라고 생각했다.

1시간 뒤 다시 전화했다.
지금 당장 일 할 수 있고, 일잘한다고 했다. 그리고 수박 플랜팅, 피킹도 해봤다고 했다.(당연히 거짓말) 지금 퍼스에 있지만 브룸으로 갈 수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대답은,
"나중에 연락주겠다."였다. 

게임 끝.

이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니 역시나,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목요일 오후,
그동안 썼던 공장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보통 공장에서 목요일날 연락이와서 금요일날 인터뷰를 보고 월요일부터 일을 시작하는게 일반적이라고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공장도 끝난 것 같았다.

나는 금요일을 퍼스에서의 마지노선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이제 퍼스에서 미련을 두려고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게 믿었던 일자리가 사라지고나니 모두가 힘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가고,

몇 분 뒤,
결정되었다.
지금. 그냥 카날본(Carnarvon)으로 떠나자!


목요일 오후 다섯시.
퍼스에서 북쪽으로 1000km를 달리는 여정을 시작했다.
일을 찾아서.



처음,
내가 호주에와서 조건이 괜찮은 일자리를 내가 거부했을 때(그 당시는 그게 좋은 조건인줄 몰랐다)
일이 안구해 질 때, 내가 그 때 미쳤지라고 생각하면서도 "나중에 더 좋은 일자리가 생기겠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더 좋은 일자리, 더 좋은 잡job, 그걸 찾아서 퍼스를 떠나기로 했다.




- 북쪽으로 끝없이 달리는 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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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looking for a job again! - 다시 구직자의 삶으로(1)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1. 28.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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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에서의 즐거웠던 나날들은 끝이 났다.
그리고 나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더이상 쓸모없어진 사냥개처럼 내동댕이 쳐 졌다.

나는 어느정도 다 예상하고 있던 결과였기에 최대한 빨리 다른 잡(job)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이제 여름이 시작되고 있어서 슬슬 일자리가 많아 진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그건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퍼스시티(Perth city)의 백팩(Backpackers)도 이미 일자리를 찾아서 몰려든 사람들로 붐볐다.
불과 두달전만해도 한산하던 백팩에 도미토리방이 없을 정도라니!

세명이서 같이 다니기로 해서, 같은 숙소에 같은 방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물론 비싼방은 있었지만)
여차저차해서 방을 잡았다. 내가 호주에 왔을 때 두번째로 갔던 백팩이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더니, 티격태격하기도 했지만 어쨋든 일을 다시 구해야 했다.

또 다시 시작되었다.
일을 구하기 위한 사투가,,,,2개월 전보다 경쟁자들이 더 늘어난 상황이었다.
거기다가 나에게 또하나의 조건이 더 붙어 있었다.
3명 모두가 일을 구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현실적으로 3명이 동시에 같은 일자리를 갈 수는 없었다. 3
명을 한꺼번에 고용하는 곳은 50군데중에 한곳이 있을까 말까한게 현실이었다.

일단은 우선 일을 구하는게 급하니까, 말을 했다.
일을 구하기 가장 쉬운 사람은,1명이면서 차가 있는 사람.
그 다음이 차가 있고 2명.
그 다음이 차가 없는 1명.
그 다음이 차가 없는 2명.
이라고.


그리고 덧붙였다. 2명짜리 일은 에이전시(Agency)에 자주 등록되니까 2명짜리 일이 나오면 먼저 일을 하러 가라고. 그리고 나서 내가 따로 가겠다고.
물론, 3명 동시에 할 수 있는일을 우선적으로 찾아보겠다고.

욕 바가지로 먹었다...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것이 현실인데. 3명을 우선적으로 알아보겠다고 했는데,
내가 나 외에 2명을 더 먹여 살려야한다는 부담감이 나를 압박해왔다. 내가 어쩌다가 이리 됐는지 ㅠ


아침을 먹고, 도시락을 싸들고 나와서 일자리를 찾으러 다녔다. 에이전시에도 가보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정보도 얻고,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알아보고.

공장들도 10월부터 크리스마스까지가 시즌이라서 사람을 많이 뽑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래서 퍼스, 프리맨틀Fremantle의 주변 공장지역에 어플리케이션을 쓰러도 다녔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통잔의 잔고는 줄어들었고, 몸에 힘도 점점 빠지는 것 같았고, 웃음도 점점 사라져갔다.

일을 구한다는건 힘든일이었다. 더욱이 나에겐 시간이 없었다.
나는 여행을 계속 해야한다는 압박이 있었고, 나중엔 돈이 있든 없든 여행을 떠나야만 했다.
있으면 있는데로, 없으면 없는데로,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다시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었다.
예전같으면 공휴일이 좋았을 텐데, 하필이면 월요일이 Queen's birthday라서 공휴일이었다.
 이런 제길,, 에이전시와 공장이 모두 문을 닫는 공휴일...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주까지 일이 구해지지않으면 나 혼자라도 북쪽으로 가야 겠다고... 북쪽에는 농장들이 많았고, 농장을 직접 찾아가야겠다고.

북쪽지방은 퍼스보다 기온이 따뜻했기에 농장이 서서히 열리고 있었다. 퍼스와 남쪽지방은 기후가 비교적 서늘해서 빨리야 10월 중순, 11월에 농장이 열렸기에 나는 북쪽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나의 생각을 말했다.
모두가 북쪽으로 갈 생각이 있는것 같기도 했다.

그러다가 수요일.
에이전시가 문을 닫기전에 한 번 더 가봐야 겠다는 생각에, 에이전시에 들렀더니 북쪽으로 2500km에 위치한 곳에 있는 수박농장Watermelon farm 에 2명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일단, 간다고 말했다..무조건 가겠다고. 지금 당장 갈 수 있다고...





- 퍼스시티의 밤거리, 겨우 저녁 7시가 조금 넘은 시간

 - 퍼스 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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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로 가는 비행기표를 구입하다!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준비 · 2009. 11. 28.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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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남미로 들어가는 관문으로 생각한 곳 호주.

내가 호주를 남미의 바로 전으로 생각한 이유는?
- 호주에서 남미로가는 비행기표가 가장 싸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

처음 여행을 시작하기 전 생각을 했었다.
워킹홀리데이를 먼저하고 여행을 떠날까? vs 여행중간에 워킹홀리데이를 할까?

남미와 북미를 여행의 마지막 여정으로 선택한 뒤 나의 결정은 여행의 중간에 호주에 들러서 워킹홀리데이를 하는 것.


호주에서 열심히 워킹을 하고 가끔씩 홀리데이를 즐기고 있는 최근,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되었다.
남미로가는 비행기표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것....

그 이유는??
호주가 지금 성수기인것처럼, 남미도 11월 부터 성수기에 접어들어서 비행기표 가격이 .............

10월 초에 비행기표 가격을 호주에서 알아 봤을 때,
편도 1000달러(AUD), 왕복 1600달러(AUD, 텍스포함) 였었다.
그 가격조차 비싸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더 싼 표를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미적거리기다가 어느덧 11월이 되어 버렸고, 통장의 잔고도 이제 어느정도 빵빵해져서 다시 표를 알아본 순간, 내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편도 2000달러(AUD)?????? 왕복 3000달러!!
호주내의 유명 비행기티켓판매처에 문의한 결과, 성수기라서 티켓가격이 많이 오른 것이라는 답변.플라잇셋터 www.flightcentre.com.au / STA TRAVEL www.statravel.com.au / STUDENT FLIGHTS www.studentflights.com.au ) 및 시드니의 한인 여행사 모두 성수기라는 단어를 붙였다.

그래서 생각한 대안!!
Oneworld(원월드) 세계일주항공권을 알아보는거야!! 어차피 한국까지 가야하니까,,

5개대륙 3899AUD, 음,,가격때문에 좀 더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일단 보류.

몇 일동안 뱅기표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어떻게 남미를 가야할까? 생각한 대안..여러가지.
1. 그냥 미친척하고 3000 달러 내고 왕복으로 칠레로 간다.
2. 칠레가는 편도 2000 달러(AUD)끊고, 칠레에서 제3국(볼리비아)가는 편도를 두개 끊고 칠레가서 볼리비아표 취소한다.
3. 미국으로 먼저 간 다음 남미에갔다가 호주로 다시 돌아와서 한국간다.
4. 원월드 세계일주 항공권을 발권한다.(남미로 가려면 반드시 5대륙이어야한다)
5. 미국 경유를 알아 본다.(나중에 생각난 것이다)

가장 마음이 끌린것은 칠레편도 - 제3국 편도 티켓으로 칠레로 가는 것이었다.
이 방법은 몽골에서 중국비자 받을때도 썼던 방법과 유사한데, 중국비자를 받기위해 제3국으로 가는 비행기티켓예약확인서를 대사관에 제출해야해서 제3국 예약하고, 비자받고 비행기를 취소한 적이 있었다.

여러가지를 알아보던 끝에, 남미/카리브해에서 미국으로 갈 때 미국 마이애미(Miami)를 많이 경유한다는 사실을 발견, 시드니(Sydney)에서 마이애미로 가는 뱅기를 알아보았다.
이게 웬일? 700달러(USD)?? 마이애미로 가는 뱅기표를 덜컥 결제했다. ----- 그 다음날 알아버린 사실이었지만 시드니가 호주의 시드니(Sydney)가 아니라 미국의 시드니(Sidney)였다. (참 웃기지도않을 해프닝이 있었다)

아무튼, 다시 마이애미의 결제를 취소하고,,두번이나
LA로 가는 걸알아보았다. 1211달러(USD),, 고민했다. 그리고 LA에서 남미로 가는 걸 알아 보았다.
편도로 가는 가격은 어느정도 괜찮으니, 왕복 가격이 만만찮은것들,,,돈이 문제였다.

그러다가, 어느 날,
칠레로가는 편도 비행기표가격마저 또 한번 올라버린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
급하게 그냥 LA로 가는걸 질러버렸다.. 1211USD,, 이것마저도 놓치면 안될 것 같은 생각에.

그리고 알아보았다. 남미 어디로 가지?
칠레 산티아고? 페루 리마? 볼리비아 산타크루즈? 그러다가 문득,
어느 블로그에서 남미와 관련하여 보고타(Bogota)를 언급한 걸 본 기억이 있어서, 보고타를 지도에서 찾아봤다.
콜롬비아의 수도가 보고타였구나........(이런 나의 무지)
LA- 보고타 비행기표를 검색해보니 그나마 싸다...
그리고 질렀다.


그냥 한순간에 질러버렸다. 이렇게 남미로가는 비행기표는 막을 내렸다.
시드니 - LA    >> 1211 USD (왕복)
LA - 보고타(콜롬비아)   775 USD (왕복)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난 뭘하러 호주에 왔나?? 돈벌려고,,그리고 남미가는 뱅기표 싸게 살려고 왔는데.. 뱅기표는 너무 비싸다!

내가 지금 머물고있는 퍼스Perth
Perth - Sydney   300 AUD,
Sydney - LA     1211 USD
LA - Bogota   775 USD
비행기,,,,,,,,정말 싫다...타기싫다.......비싸니까.


아무튼,
주사위는 던져 졌다. 이제 남미로 가는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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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e got the job! - 05, 호주에서의 마지막 와인농장 : Donnelly River(2)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1. 21.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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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넬리리버 와인팜에서 2주라는 시간을 보냈다.
2주, 결코 짧지않은 시간이다. 그 안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

같은 농장, 같은 숙소, 여섯명의 사람들. 같이 일하고, 같이 생활하는 사람들.

사람이 모여사는 곳에는 이런사람, 저런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 곳, 도넬리리버에서도 여러가지 일이 있었고,
그리고 모두가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사실,
나는 농장일 끝나면 혼자 어디론가 가겠다고 말 할 생각이었다.


농장에는 나와 친하게 지내는 사람 둘, 그리고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서 나와 사이가 좋지않게 된 사람 하나, 그리고 리더 형 그리고 그 형의 여자친구가 있었다.

대충, 3 / 2 / 1 이런식으로 사람들이 모여서 놀았다...1 ? 의도하지않게 왕따?비슷한게 되어버렸다.
1이 왕따?가 된 이유는 자명했다. 일을 너무 못했다. 아니, 너무 안했다. 할 수 있는데도 일을 안하니 일을 열심히하는 우리가 그 땜빵을 해 줘야 했다. 그래서 나날이 사람들의 불만은 쌓여갔고, 자연스럽게 나중에는 외면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컨츄렉터가 나중에 전해준 이야기.
"2~3명에게는 일을 줄 수 있다."
나는 생각했다.
"컨츄렉터는 분명히 리더형과 일을 하려고 그런말을 했을 것이라고. 말도 잘듣고 착하니까. 그리고 나는 이쯤에서 빠져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착한 리더형,
나와 친하게 지내는 다른 형에게 일자리를 넘겼다. 2~3명이 자리가 있다고 하니 니네가 해라는 식으로. 자기는 다른 일자리를 구해보겠다.(차도있고 능력도 될법하니까, 인정하는 부분이다)

나는 그냥 오렌지를 따러 나가버렸다. 웬지 분위기가 나까지 엮이는 분위기여서 말이다.
역시나, 내가 오렌지를 따서 들어오니, 나랑 나랑 친하게 지내는 두명까지 이렇게 셋이서 같이 일을 하잔다.
거기서, "전 그냥 혼자 일자리 알아볼게요"라고 차마 말할 수 없었다. 그런 분위기? 그런말 했다가 매장달할 것 같은느낌?  그래서 "뭐 전 아무렇게되든 상관없어요" 라고 말해버렸다...

그리고 다른 한명은? - 나이가 가장 많은 큰형님이었는데,
착찹한 것 같았다. 영어를 하나도 할 줄 모르는 데다가, 그렇게 미움까지 받고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일이 되어 버렸고.

농장이 끝나고, 어커머데이션정리를 하고,
와이너리에서 와인을 사고,
그렇게 다시 퍼스로 돌아왔다.


그리고 퍼스에서 다시 컨츄렉터와 이야기를 했다.
사실, 난 컨츄렉터를 믿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끼리 이야기를 한 내용을 컨츄렉터를 만나서 이야기했다.
리더형과 여친은 다른일 찾으러 가겠다고. 그리고 혼자인 큰형님도 돌아갔고, 셋이 남았다고.
컨츄렉터는 자신이 예상한 결과가 나오지 않아서 실망을 했는지, 갑자기 지금 다른 애들이 거기에 일을 하고 있다고 둘러 댄다. 그리고는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생각했다.
이제, 끝이구나.

그렇게,
혼자인 큰형님은 이미 떠났었고,
나와 같이 팀을 구성하게된 두명, 그리고 리더형과 그 여친 이렇게 두팀이 시티로 나와서 다시 잡(job)을 구해보기로 했다.




-마지막날 일을 끝내고,



- 마지막으로 모두가 헤어진 숙소에 지는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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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e got the job! - 04, 호주에서의 마지막 와인농장 : Donnelly River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1. 21.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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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와인팜.
와인으로 유명한 호주 서남부의 마가렛리버(Margaret river)에서 약간 오른쪽에 위치한 펨버튼(Pemberton)에 갔다.
여기로 오기 전 조그마한 와인팜 몇 군데를 더 갔었다. 퍼스 근처의 스완강(Swan river)도 와인으로 유명한 곳이었는데 그곳에 위치한 와인 팜이었다. 한 농장은 포도나무가 40년이 넘은 것이었는데, 정말 나무가 돌덩이처럼 보였다. 그 나무에서 나는 와인의 향이 정말 죽여준다고 하는데, 먹어보지 못한게 아쉽다.

아무튼,
퍼스Perth에서 남쪽으로 4시간 이상을 달려 도착한 곳, 도넬리리버(Donnelly river) 와인팜.
농장안에 와이너리(Winnery)도 있었다.

쾌 큰 농장이었다.
이곳에서 엄청난 속도로 2주나 일했으니까 말이다.
농장안에는 소떼들이 몰려 다니면서 풀을 뜯고 있었는데, 농장의 잡초는 소들이 다 뜯어먹고 있었고,
농장 어커머데이션앞 뒤에 오렌지나무와 레몬나무가 몇그루 있었는데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떨어진 오렌지들을 소들이 주워먹고 있었다.
농장 주변은 숲이라서 캥거루들이 뛰어 다니고 있었다.

기후?
정말 최악이었다. 포도나무들이 언덕을 따라서 언덕 위쪽가지 쭉 심어져있었는데, 언덕위에서 보면 저 멀리 남극해가 보였다. 그 쪽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과 구름, 정말 최악!

모진 환경에서 자란 나무들이 만들어낸 와인의 맛이 좋다고,, 이곳에서 생산된 와인은 호주 와인콘테스트에서 상도 받았다. 바람이 얼마나 불던지, 포도나무가 뽑히기도했고, 밑둥이 1미터가 넘는 나무도 쓰러져 있었다.

농장일을 하면서 그렇게 많이 비를 맞아가면서 일을 하기는 처음이었다. 도착한 첫날부터 비가 쏟아졌다.
하지만, 농장주의 닥달로 인해서 비를 맞아가면서 일을 했다.
9월 중순이면 거의 우기가 끝나는 기간인데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렸다.
10-20분 비가 내리다가 해가 뜬다.
하늘 저 멀리 구름이 보이고 그 구름들이 다시 20-30분뒤에 농장위를 지나가면서 엄청난 비를 뿌렸다.

일을 하기도 뭐하고, 안하기도 뭐하고, 비옷이 없었으면 정말 감기걸려서 폐렴으로 죽었을것 같다.
그렇게 힘들게 그래도 계속 일을 했다.
그래도 농장주가 빨리 일을 끝내주기를 요청했기에 우리는 일을 많이 할 수 있었다.

한번은,
팀원들 사이에서 논쟁이 있었다.
그 날도 일을 하러 나갔다가 비가 줄기차게 내리길래 일을 그만두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러자 또 비가 그쳤다.
일을 하러 다시 나갈것인가 말것인가 논쟁이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이런 상태가 될 건데 앞으로 어떻게 할지.

본인은 여행을 계속 해야했기에 시간이 없었고,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웬만하면 일을 하자는 쪽이었다. 주 50시간 이상 하면 좋겠다는 생각. - 50시간이면 텍스를 제외하고 주당 700달러 정도 세이브할 수 있었다.
나와 같은 의견 3명, 주40시간이 기본이니까 주40시간만 쉬엄쉬엄 하자는 사람 3명. 몸생각하면서 천천히 하자는 의견이었다.
이런저런 논란 끝에, 그 날 일은 접고, 펨버튼 날씨가 개판이니 중간에 비가와도 계속 일을 하자는 쪽으로 무게가 기울었다.

처음,
계속 일을 하자고 의견을 낸 본인이 욕을 많이 먹었다.(나이가 젤 어렸으므로, 기쁨조이자 갈굼의 대상이었다)
일을 할 수 있을때 짧은 시간에 많이해서 돈을 짧은 시간에 많이 벌자는 나의 의견에 처음에 반발했던 사람들도 나중에 페이를 받고나서는 돈을 많이 받았다고 좋아했다..(처음에 욕할땐 언제고 ㅡㅡ)

아무튼,
그렇게 농장숙소에서 여러 음식도 해먹고, 재미있게 보냈다.
6명이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사람이 여럿 모이면 이런 저런일도 생기고 마음상하는 사람도 생기고 여러가지였지만 나름, 잘 버텼다.

그리고, 와이너리에서 와인도 공짜로 주어서 와인도 많이 마셨다.
어커머데이션 창고에도 와인이 있어서 그것도 꺼내 마시고,, 
오렌지나무에서 매일 오렌지를 20개 이상씩 따먹었다. 오줌과 똥이 주황색이 될 정도로 말이다..


펨버튼으로 왔을 때 컨츄렉터가 우리에게 한 말이 있었다.
"이 농장을 빨리 끝내면 다른 농장이 있긴한데, 그 농장주도 지금 포도 나무 싹이 피고 있어서 빨리 손질해주길 바란다"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 농장이 끝나면, 다시 일을 구해야겠구나 하고 말이다. 그래서 하나하나 계획을 세웠고, 정리를 하고 있었다.

농장일이 끝나기 3일 전,
컨츄렉터와의 통화에서 컨츄렉터가 농장일이 끝나고 다른 일을 연결시켜준다고 했다. 
나는  크게 기대하지 않고 있었지만,  일단 시켜주면 하면서 그 일을 계속할지 생각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이제 농장을 떠나고싶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그리고 이제 혼자 다시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농장일이 끝나는 날이 다가올수록,
사람들의 얼굴에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나하는 근심이 보였지만,
컨츄렉터가 다시 일을 준다는 말에 모두 화기를 띄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통화한 결과로는 2-3명 분의 자리만 있다고 했다.
그리고 모두가 짐을 싸야할 시간이 하루가 남아있었다.







- 움직이는 호주산 쇠고기들


- 토나올 것 같은 포도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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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녀, 파문 - 그것은 한국이 아직 남성중심사회라는 것의 방증(傍證)?

- 생각 저장소 · 2009. 11. 21.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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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수다에서의 루저녀파문이 대한민국 남자들 사이에서 큰 화두로 떠올랐다가 서서히 사라진 지금,
내 머릿속에서 지금 쓰려는 이 글을 한 번 써 봐야겠다고 생각한지 한참 지났지만,
나 또한 주민등록번호의 첫 번째 자리가 "1"로 시작하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에 대해 생각하다가 문득 머릿속에서 생각하게 된 이야기를 써보려 한다.


몇 주전,
인터넷을 하다가 미수다 루저녀라는 글귀를 수없이 보았지만, 미수다 자체에 관심이 없을 뿐더러, 자질구레한 인터넷에 떠도는 별 쓰잘데기없는 신문기사들에 관심이 없는지라 쳐다보지도 않았다.

얼마 후,
공장에서 일을 하고있는데, 나와 같은 시간에 일하는 형이 나에게 물었다.
"루저"를 아냐고.
"루저?" 인터넷하다가 미수다 루저 뭐 어쩌고 얼핏본것같은데, 잘 모르겠다고 말했더니 대충 설명을 해 주더라.
"미수다에 나온 어떤 여자가, 남자 키가 180이 넘지 않으면 루저(loser) 라고 말했다고."
그냥 웃어 넘겼다.
참 개념없이 방송에서 그런말을 하는 별의 별 여자가 다 있구나 하고 말이다.

또 몇일 후,
주말에 약속이 다 펑크가 나서(본인이 고의적으로 다 펑크 낸거지만,,) 시간이 좀 남아서 루저녀에대해서 검색을 해 보았다. 수 많은 블로그에서 루저녀에대해서 다루고 있었고, 내 친구의 싸이 게시판에도 그것에 관해서 언급을 해놓았다.
방송을 보지는 않고, 방송의 내용 중 주요 장면들만 캡쳐된 사진들을 보았는데,
참, 몇 몇 여대생들이 한 말들이 가관이었다.


그걸 보면서 생각을 해 봤다.

방송작가는 출연자들에게 "남자들의 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도록 주문을 했을 거고, 그 여대생들은 너무 생각없이 자신의 뇌를 거치지않고 입으로 나오는 말을 그대로 내 뱉았을 것이라는 것.
그리고, 키 말고도 데이트에 대해서도 언급하는 장면을 보면서 참 어이없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결론적으로는 "근본부터 글러먹은 것들이 TV에 나왔다"는 생각.

본론으로 들어가서,
사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외모가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높다는 사실은 자명한 사실이다.(최소한 20대에게 있어서는)
남자들이 여자들의 외모에 대해서 운운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사회는 이미 내성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여자는 이쁘면 모든 게 용서된다는 말, 여자는 능력보다는 외모, 이쁘고 성격나쁘면 용서가되고 못생기고 성격좋으면 그나마 용서가되고 못생기고 성격까지 나쁘면 최악이라는 말 등등, (너무 이중적으로 극단적인 표현을 했으나 그냥 예를든것 뿐임)

이번에 여자들이 언론에서 남자들의 외모 - 키 - 에 대해서 언급을 하자, 발끈 했다. 사실 내 주위에도 키에 신경을 쓰는 사람들이 많다.(키 높이깔창을 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키"에 대해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남자들 의외로 많다.
'루저녀'는 남자들에게 "어디 감히 남자의 외모에(특히 키)에 그렇게 들먹거리냐? 건방지다." 라는 식으로 질타를 받았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아직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남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면 그 파장이 일파만파 커져서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은 아직 남성들이 사회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것을, 우위에 있고 싶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문제가 '루저녀'를 매도한 남자들에게 있다고 생각하는건 절.대.아니다.
문제의 근본은 물론, "개념없는"발언을 줄기차게 한 몇몇 여대생들에게 있긴 하지만,
그 사건의 후폭풍을 보면서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대한민국 사회가 남여평등을 양성평등을 운운하면서 여러 서구사회를 따라가려고 하고 있지만('여성가족부'라는 정부부처 까지 있지만) 
남성과 여성의 조화라는 중도를 향한 길은 아직 멀었다고 본다. 이 또한 오래전부터 꾸준히 천천히 준비해온 것이 아니라 급격하게 하려다가 보니까 힘든것이 아닐까? 갑작스런 충격을 주면 그 반작용도 심한 것 처럼. 작용과 반작용.


내가 지금  체류하고 있는 호주는 여자들이 참 살기가 좋은 국가이다. 법령을 비롯한 복지의 면이 여성들에게 유리(?)한 것이 많다. 그렇지만 남자들이 차별을 받거나 사는데 불편함은 없다.
모두가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고 서로의 인권, 인격을 존중받으면서도 여성들을 위한 혜택은 많은 국가가 바로 호주이다.(듣자하니 여자들은 애를 낳으니까, 그 만큼 보상을 해주는 거란다. 아이는 국가의 미래?)


결론,
이번 '루저녀'파문을 보면서 아직은 대한민국은 남성중심의 사회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고, 
아직도 저런 '무개념 여대생'들이 티비에 나올 정도라는 것도 한심하고,
사회적으로 양성평등을 이루는데도 많이 부족한 게 사실이고,
사회적 기득권을 어느성(性)을 가진 사람이 잡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서로가 살기 좋게 될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

  



- Slovenia, Lake b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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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날로그를 좋아하는 이유.

- 길을 걷다, 세계여행/Feel-ing, 세계일주-ing, · 2009. 11. 17.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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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아날로그를 좋아하는 이유.


내가 너무 구식이라서 아날로그를 좋아하는 걸까?

째깍째깍, 돌아가는 시계바늘.
사각사각, 종이위의 연필심.
쓱싹쓱싹, 톱밥을 뱉고있는 나무.

아직 주변에 아날로그는 많지만,
디지털이 지배하는 시대에 그걸을 찾기란 힘들다.

난 아날로그가 좋다.

디지털은 차갑지만,
아날로그는 온기를 품고 있으니까.



Someday, Sep 2009.
From Australia.




- 해질녘, 알바니하이웨이 Albany HWY 옆의 집 한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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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day of Wine farm, Donnelly River.

- 길을 걷다, 세계여행/Feel-ing, 세계일주-ing, · 2009. 11. 17.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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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st day of Wine farm, Donnelly River.


나는 내가 숨쉬고 있는,
움직이고 있는,
보고 있는,
듣고 있는
모든 순간들을 기억하고 싶다.

이것은 욕심이 아니다.

행복하다고 느껴지는,
내 인생에서 다시 없을 이 순간을
모두 기억하고 싶다.


22/09/2009. Tue.
Pemberton, Australia.







- 와인팜



- 마지막날, 포도나뭇가지 정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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