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주] 페루, 푸노(Puno)엔 축제는 없었다.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0. 12. 2. 21:16

반응형

Second Edit.

쿠스코 - 푸노(Puno) - 볼리비아 라파즈(La paz)



1. 내가 방문한 도시에 축제(Festival)이 있다면?

  우리는 어느 도시를 여행을 할 때, 가끔 그 도시에 가기 전 고려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축제"
브라질의 쌈바축제. 스페인의 라토마티나(토마토축제), 인도의 홀리축제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축제들이 많다. 일부 지역에서 열리는 축제들은 그 지역의 기후 또는 지리적 특성이나 기타 조건들로 인해 생겨났고 보통 오랜 전통을 지닌다는 특징을 지닌다. 축제들은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축제를 보기위해 몰려들기도 한다.[하지만 반대로 혼잡함을 피하기 위해 축제가 없는 쪽을 찾아가는 사람도 있다]

  간혹, 우리가 어떤 도시를 방문했을 때 우리가 알지 못했던 축제가 그 도시에서 열린다면 우리는 즐겁게 그 축제에 참여 할 것이다.




2. 전 세계 어딜가나 공통적으로 축제가 있는 날이 있다. 

  내가 마추픽추를 100달러가 넘는 돈을 지불하고 빠르고, 편안하게 다녀온 이유 중 하나는 볼리비아와 국경 도시이자 티티카카호수가 있는 푸노(Puno)에서 뉴이어파티를 하기로 한 약속 때문이었다.[사실 푸노에 티티카카호수가 유명한 곳인지도 몰랐고, 그런 곳이 있는 줄도 몰랐다] 
  인도에서 사막투어를 같이 갔던 폴리시(Polish,폴란드인) 마그다가 자신도 남미에 있다고 연락이 오면서 그 곳에서 보기로 했던 것이다. 그녀는 인도에서 폴란드로 돌아갔고, 그리고 6개월 간 노르웨이의 호텔[그녀의 직장]에서 일을 하다가 휴가[6개월 간의 휴가]를 받아 남미를 여행중이 었다. 나는 인도를 떠나, 터키, 동유럽을 지나 러시아, 몽골, 중국을 거친다음 호주를 지나서 남미를 여행중이었다. 인도에 있을 때 어쩌면 남미에서 만날 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혹시나 해서 페이스북(facebook)으로 연락을 해 보니, 그녀 역시 페루에 있다는 것이었다![나는 그 때 콜롬비아에 있었다]. 

  푸노에 도착 한 날 아침, 나는 론니플래닛에 나와있던 저렴한 숙소에 자리를 잡았다. 그 호스텔이 있던 3명의 여행객은 내가 도착 한 날 아침 떠났고, 호스텔에는 나 혼자였다. 웬지 적막감마저 돌았고, 한여름이었지만 고산지대라서 약간은 서늘한 날씨였다. 하늘은 파랳다. 

    인터넷카페로 가서 페이스북에 접속을 했고, 메시지를 남겼다. 나는 오늘 아침에 푸노에 도착했다고. 그리고 호스텔 이름과 주소를 덧붙였다.


3. 
  몹시 피곤했다. 비내리는 마추픽추. 그리고 술. 그리고 야간버스. 몸은 무거웠지만 배가 고팠기 때문에 나는 오는 길에 보았던 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나는 시장을 둘러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곳은 항상 사람사는 냄새가 난다]
  다양한 모습들, 다양한 풍경들. 다양한 먹을 거리. 저렴한 가격. 사람들은 어슬렁 거리며 주위를 스캔하고 있는 나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봤다. 나도 그들을 신기하게 쳐다봤다. 사진을 찍고, 수박을 사먹고, 바나나를 사먹고, 제과점에 들러 빵을 먹고, 이것저것 먹다보니 배가 불렀다.
  
  그리고 잠을 잤다. 자다가 일어나 보니 날은 점점 어두워지려 하고 있었다. 다시 인터넷카페에 가보니,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은 듯 했다. 오늘은 12월 30일. 내일은 연락이 되겠지. 
  론니 플래닛에 소개되어있는 Bar에 가서 술을 홀짝홀짝 마셨다. 분위기 좋은 술집이었다. 인테리어도 좋았고, 흘러나오는 음악은 특히 더 좋았다.[라틴 음악은 정말 좋았다, 라틴음악에 빠져서 씨디를 엄청나게 사댔다] 한 외국인 관광객처럼 보이는 사람이 혼자 오더니 저녁을 먹고 맥주를 한 잔 먹고 자리를 떠났다. 아직 조금은 이른 시간이라서 그런지 손님은 나 밖에 없었다. 나는 맥주 두잔을 마시고, 약간은 기분이 좋아진 상태로 다시 푸노 시가지를 방황했다. 저녁은 무엇을 먹을까를 생각하면서.



4. 12월 31일.

  인터넷으로 푸노에 대해서 검색을 해보니, 티티카카호수 투어라는 것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여행사나 관광안내소에서도 본 것 같았다. 호스텔의 게시판에서도 말이다. 여행사에 가니, 비교적 저렴하게 판매하는 1일짜리 투어가 있길래, 신청을 하고 돌아왔다. 내일은 투어를 갔다오면 되겠군.

  인터넷카페에 들러 페이스북에 접속 해 보니, 메시지는 없었다. 아직 푸노에 도착안한걸까? 어제 저녁 때 호스텔 옆 방에 누군가 들어온 것 같았다.[큰 캐리어 하나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은 보지 못했다. 내가 자고 있을 때 왔다가 또 어딘가 아침 일찍 나갔나보다. 이곳 저곳 거리를 방황하다가, 다시 호스텔로 돌아와서 잠을 청했다. 왜이리 매일 피곤한거지? 고산지대라서 조금만 움직도 피곤한건가?



5. 
  Hi. my name is Jin. ncietomeetyou. whereareyoufrom? 잠에서 깨어나 부시시한 상태로 말했다. 상대쪽에선 밝고 명랑한 목소리로 응수했다. 이름은 슐리나. 컴프롬UK. 태생은 폴란드인데, 고교시절부터 영국에서 생활해서 영국에 있는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은 런던에서 저널리스트로 일하고 있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 그리고 나는 덧붙였다. 오늘저녁에 약속있어?
  당연히 없지! 사실 새해를 혼자 외롭게 맞아야 되는건 아닐까 걱정하고 있었다고 덧붙이며, 이따가 저녁 때 광장에 뉴어이파티하러 같이 가자고 말했다. 나는 물론 오케이. 그리고 호스텔을 나왔다.

  저녁 먹기 조금 이른시간, 인터넷카페에 들러보니, 아직도 메시지가 없다. 희한한 일이군. 나는 간단하게 저녁을 사먹고, 시내를 돌아다녔다. 광장에 보니 무대가 설치되고 있었다. 아 역시 관광도시라서 그런지 뉴이어 파티를 하는건가? 금방 몸이 무거워졌고, 나는 다시 숙소로 돌아와서 잠을 잤다.


6. 
  잠에서 깨니 슐리나가 묻는다. 몇시에 나갈래? 아까 보니까 광장에 무대설치하고 있던데, 12시 쯤에 공연하나봐. 밖에 추우니까 천천히 나가자. 뭐 10시 쯤 나가면 될 것 같기도 한데? 그러면서 난 침대에 몸을 뉘였다. 슐리나는 알았다면서 자기는 잠시 어딜 나갔다 온댄다. 
  
  슐리나가 나에게 샴페인 한 병을 보여준다. 밖에 나갔다가 엄청 싸게팔고 있었다면서, 얼마인지 나에게 맞춰 보랜다. 샴페인...싸다...라면 뭐 20페소? 라고 했더니, 7페소 밖에 안한다면서, 놀라운 가격이라고 난리다. 골져스 샴페인. 음, 그럼 뉴이어를 외치고 이 샴페인을 마시면 되겠구나. 사실, 푸노에 오기 전 다 마셔버린 와인이 좀 아쉬웠다. 호주산 최고급와인이었는데 말이다.


7. 푸노엔 축제는 없었다.
  10시 쯤 나갔다. 한여름인데 이렇게 추울수가!![고도 4000미터가 넘으니] 최대한 따뜻하게 입고 나갔다. 광장에 공연보러가자 우리. 광장으로 가니, 무대는 철거 중이었다. 멍미? 이미 새해 맞이 공연은 끝났다는 것이었다. 아니 아직 12시도 안되었는데? 공연하는 사람들 일찍 끝내고 자야지! 헐. 장난함?
  
  시내를 거닐다가, 벤치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저널리스트답게 나름 남북한의 정치상황에 대해서 좀 알고 있었다. 내 군대 이야기도 좀 해주고, 남북문제, 핵문제, 그리고 여행이야기. 그리고 내가 영국 갔을 때 이야기. 등등. 뭐 이것저것 하여튼 시간때우려고 이야기 참 많이했다.[그냥 Bar에서 술이나 한 잔 할 걸 왜 추운 거리에서 그렇게 수다를 떨었는지 모르겠다]


  12시 쯤 되어, 광장에 가니. 트럼펫연주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몇 몇 사람들 무리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있었다. 동네 꼬맹이들은 싸구려 폭축을 터뜨리고 있었다.[흔히 우리가 여름에 해수욕장 가서 터뜨리는 그런 것] 나와 슐리나는 서로 해피뉴이어를 외치며 샴페인을 흔들었다. 주변에는 몇 명의 외국인 관광객들만이 남아 있었다. 우리는 서로 해피뉴이어를 외쳐댔고, 이게 뭐냐면서 서로 웃었다. 싸구려 샴페인과 해피뉴이어. 샴페인은 정말 맛이 없었다. 포도주스도 아닌 것이 포도주스맛이 나면서 맛은 없었다. 서로 샴페인이 마시기 싫어서 미루면서 벌칙을 하듯이 마셔댔다. 손도 시려웠고, 코는 빨개져서, 웃기지도 않았다.
  
  그렇게, 새해가 찾아왔다. 페루의 작은 도시. 푸노에서 해피뉴이어를 외쳤다. 2005년 영국 트라팔가광장에서 외쳤던, 해피뉴이어가 왠지 그리웠다.

 

8. 덧.
  원래 푸노에서 만나서 뉴이어파티를 하기로 했던 마그다는 그 다음 도시인 라파즈(La paz)에서 만났다. 그런데 웃긴 것은 슐리나와 나는 둘이서 공원 한 쪽 에서 해피뉴이어를 외치고 트럼펫연주소리를 안주삼아 샴페인을 마셨는데, 마그다는 그 때 트럼펫연주하는 사람 무리에 끼어서 같이 놀고 있었다고 했다.






- 뉴이어를 외친 광장



 


- 푸노



- 시장 풍경


 


- 여기 에서 수박 한통은 먹은 듯. 한 조각에 우리나라돈으로 100원 정도?



 


- 나를 무섭게 노려 본다 ㅋㅋㅋ 속옷가게 파는 아줌마 무섭다 ㅠ



- 저런 꼬마 애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돼지머리를 팔고 있다.......ㅋㅋㅋ



- 여기서 결혼인가 아무튼 무슨 행사가 있었던 교회



- 조용한 성당



- 도시 뒤쪽 언덕에서 바라본 푸노. 해발고도 4017미터



- 홀짝홀짝 술을 마셨던 BAR




- 영국 런던의 트라팔가광장에서의 새해 맞이.

 


 


 




   
 



반응형

세계일주] 페루에서 마추픽추를 가지 않을 수 없지 (2)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0. 11. 28. 20:09

반응형

쿠스코(Cusco/Cuzco) - 마추픽추(Machupicchu) - 푸노(puno)



1. 여행을 떠나기 전 해야하는 것 중 하나.
  혹시, 당신이 여행을 떠나보았다면 이런 질문을 받아 보았을 지도 모른다. "너는 왜 여기로 여행을 왔니?". 만약 당신이 여행을 떠나기 전이라면 이런 질문을 받을지도 모른다. "너는 왜 거기로 가려고 하니?"

   여행지의 선정,
 왜 나는 그 곳에 가려고 하는가?[왜 그곳을 여행하려 하는가?]


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 곳에 대한 막연한 동경[근원은 어릴 적 티비나 책, 아니면 다른 사람의 여행담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혹은, 책을 보다가 그 책에 나온 곳이 너무 가고 싶었졌다거나, 영화에서, 혹은 드라마의 영향으로 어떤 특정한 곳이 가고 싶다고 느껴 질 수 있다.[본인은 실제로 <베로니카죽기로결심하다>라는 책을 보고 슬로베니아에 갔다 오기도 했다.]




2. 세기의 불가사의, 공중도시 마추픽추.
  세계일주를 시작하기 전, 마추픽추를 선택했다. 나는 여행을 떠나기 전 세계일주를 하게 되면 내가 어디를 가 볼 것이며, 어디서 무엇을 할 것인지 리스트에 적은 적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마추픽추 였다. 사실, 마추픽추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던 나는 리스트에 적고, 마추픽추에 대해서 알아보다가 마추픽추가 남미 페루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뭐, 그렇다면 남미 페루에 가면 되겠군.

  왜 마추픽추에 가야했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앞서 언급한대로, 어릴 적 티비에서 본 적이 있었고, 각 종 책에서도 많이 봤다. 남미를 간다면, 세계일주를 한다면 그 곳 정도는 가 봐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 산 꼭대기에 지어졌다는 도시, 그리고 그 다시의 담벼락은 자연석이면서도 물샐틈 없이 정교하다는 그 곳. 충분히 여행지로서 매력이 있었다. 마추픽추야 기다려. 내가 너에게 다가갈테니.



3. 기차는 마추픽추역에 도착했다.
  마추픽추역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마추픽를 이미 관광하고 온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산 속의 공기는 상쾌했고, 작은 마을을 가로지르는 계곡은 비가 많이 내려서인지 우렁찬 소리를 내면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길거리의 상점들과 식당들은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기 바빴다. 전형적인 관광도시의 한 모습을 보고 있는 듯 했다. 나는 언덕의 중간에 위치한 싸구려 호텔에 짐을 풀고, 호텔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었다. 역시, 관광지 싸구려 호텔 레스토랑의 음식은 맛이 없었다.

  하늘은 파랳다. 옅은 구름이 도시를 휘감았지만, 강렬한 태양이 나를 도시를 비추고 있었다. 내일도 이런 날씨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도시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다가, 별로 할 일이 없어서 잠을 청했다. 내일은 아침에 일찍 마추픽추에 올라야 하니까.



4.  비내리는 마추픽추.
  마을 관광안내소에서 마추픽추 입장티켓을 구입 한 후, 셔틀버스 승차장으로 갔다. 편도 7달러[여전히 너무 폭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올라가는 길은 모르니 버스를 타고 올라가기로 했다.[내려올 때는 경치구경도 할 겸 걸어 내려오면 되니까]
  구불구불 산길을 따라 버스는 계속 올라갔다. 저 아래, 마을이 보였다. 마을이 점점 작아졌고, 계곡은 점점 더 깊어졌다. 정말 저 위에 마추픽추가 있는 건가? 나무 밖에 보이지 않았다. 구름에 가려져 있는 곳엔 아무것도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버스는 계속 산길을 뱅뱅 돌면서 올라갔다.

  버스는 마추픽추 입구에 승객들을 토해냈다. 비교적 이른 아침이라고 생각했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와 있었다. 와나이픽추?인가 거기는 인원제한이 걸려있어 거기가려는 사람들은 더 일찍 왔을 테니까. 나는 거기까지 관심 없었다. 그냥 마추픽추만이라도..
  구름이 휘감고 있는 마추픽추는, 역시! 마추픽추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날씨가 좀 흐린게 아쉬웠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곧 비가 몰아칠 것 같은 생각이들었다. 바람이 점점 거세지고 있었고, 조금씩 조금씩 더 많은 구름들이 마추픽추를 스쳐 지나갔다.

  기어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하나 둘 씩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아마도 입장이 통제된 듯 했다. 입구 쪽으로 나오니, 들어가려는 사람들의 줄이 끝없어 보였다. 하지만, 입장은 허용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왠만한 볼거리는 다 보았으니까! 비를 맞으며, 마추픽추를 나왔다. 사실 살짝 아쉽기도 했지만, 비를 맞은 상태였고, 생각보다 바람이 차게 느껴졌다.

  나는 걸어서 계곡 아래를 향해 갔다. 마추픽추를 머리위에 둔 채, 나는 지상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5. 조금은 아쉽지만, 바이바이.
  내일은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파란 하늘아래 마추픽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폴란드인 친구와의 약속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했다. 그 친구와 푸노(Puno)에서 만나서 뉴이어(New year)파티를 하기로 했기 때문에, 푸노로 떠나야 했다.[사실 이미 기차표를 끊어 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취소한다면 언제 마추픽추를 빠져 나갈 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 마추픽추를 떠난 더 큰 이유이다]

  마추픽추에서 내려오는 길에 만난 뉴요커 Greg 와 Jacob. 그들도 세계일주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들과 함께 간단한 저녁을 먹고  맥주를 마신 후 나는 배낭을 들었다. 내 옆엔 내 배낭에 항상 붙어다닌 죠니도 함께 하고 있었다.
  배낭을 메고, 마추픽추 역으로 가니,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마추픽추역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나는 앞을 보고 죠니는 뒤를 보고 있었다. 내가 탈 기차가 곧 출발한다는 방송이 울려펴졌고, 나는 플랫폼으로 나갔다. 


Adios!  MACHU PICCHU. 





- 구름속 마추픽추, 한가롭게 풀뜯는 야마(llama)











-


- 마추픽추 뒤 쪽의 죽음의 다리. 스페인군대가 쳐들어 올 때를 대비해서 이렇게 탈출구를...
저 다리를 건너가고 나서 나무를 치우면 아무도 못 건넌다.


- 죽음의 다리와 절벽


- 비가와서 우리는 대피중




-

- 자콥과 그레그


- 산봉우리들


- 어느 상점


-마추픽추역





- 플랫폼


-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 내 친구 죠니 ㅋㅋㅋㅋ



- 오이야따이땀보역 도착! 해발 2792미터.

 
반응형

세계일주] 페루에서 마추픽추를 가지 않을 수 없지 (1)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0. 11. 28. 20:09

반응형

쿠스코(Cusco/Cuzco) - 마추픽추(Machupicchu) - 푸노(puno)



1. 여행에서 필요한 것 하나 - 이해심?
  
   경제적으로 발전이 덜 된 나라[개발도상국, 제3세계 국가라고들 부르는 곳]를 여행할 때, 대체적으로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를 여행할 때는 느끼지 못하는, 약간은 화가 날 수도 있는 그런 일을 당하거나[당해야만 한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목격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 

  이집트를 여행할 때의 일이다. 박물관을 가거나, 기차를 타거나 할 때 두가지 가격이 있다. 내국인 가격과 외국인 가격[Nation price, foreigner price]. 대표적으로 박물관을 갔을 때, 유적지를 입장할 때, 기차표를 살 때 등등. 심지어 식당에서는 외국인 메뉴판의 가격과 내국인 메뉴판의 가격이 다른 경우도 봤다.[나는 식당에서도 외국인이라고 돈을 더 내라고 하길래, 식당 주인과 싸운적도 있다]. 인도를 여행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인도의 명소 타지마할의 입장료는 외국인이 몇 십배의 요금을 더 내야 한다. 관광객의 입장에서는 좀 억울할 수도 있지만, 그 나라 관광청의 입장에서는 수익을 외국인관광객에서 수익을 더 올리려는 의도에서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 같다.

  이럴 때는 그냥, 외국인 관광객의 입장에서 그 모든 불합리한 일에 대해서 너그럽게 이해해야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다. 어차피 화를 낸다고 해서 상황은 변하지 않고, 괘씸해서 유명한 유적지를 포기한다는 것은 자신에게 손해일 뿐이다. 우리는 이럴 때 그냥 너그럽게 이해하고, 그 나라의 문화적 발전에 조금 더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마음편하다.



2.
  페루의 마추픽추는 세계적으로 아주 유명한 관광지이다. 당연히 그 곳에도 외국인 프라이스는 존재했다. 내가 봤을 때 그 곳을 찾는 관광객의 90%이상은 외국인인 것 같았다. 페루 관광청의 입장에서는 이들 외국인 관광객에게 많은 요금을 부과하여 많은 수익을 올리고 싶을 것이다. 당연히 그들은 여러가지 명목을 내세워서 그러한 일을 벌이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그래, 입장료는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나중에 언급 하겠지만 마추픽추를 가기 위해서는 4일간 트레킹을 해서 걸어가거나 오이야따이땀보에서 마추픽추역까지 기차를 타고 가야한다. 그것까지는 좋다. 하지만....기차역에 가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 아무리 안데스 산지에 기차 레일을 깔고 서비스를 좋게 한다지만....

  내가 탄 기차가격은 편도 54달러짜리 기차였다. 물론 시설은 좋았다. 천장이 유리로 되어 있어 하늘을 볼 수 있는 기차였고, 기차에서는 비행기처럼 차내식이 제공되었다. 조금 더 저렴한 기차도 있었지만, 시간도 안맞았고 자리도 없었다.[아마 그 저렴한 기차의 표는 투어회사들이 다 공수해가는 것 같다]

  마추픽추역에 도착하여 돌아가는 차편을 예매하기위해서 창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내 앞에 페루인이 있었다. 나는 유심히 보았다. 과연 저 사람도 요금표에 나와있는대로, 40달러 이상을 지불할 것인가? 그 사람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그 사람은 신분증을 꺼내는 것 같았다. 페루 국민임을 증명하는 신분증.

  사실, 50달러라는 돈은 페루에서 엄청난 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겨우 하루 생활비 정도에 해당되겠지만, 페루에서는 잘 쓰면 최소 3일은 버틸 수 있을 금액이니 말이다. 그것도 관광객의 입장에서 말이다. 보통 조그마한 일반 식당에가서 밥 한끼에 1000원 2000원 정도 하니, 50달러는 실로 엄청난 것이다.

  역시나, 그 사람은 외국인보다 턱없이 적은 금액을 지불했다. 7페소.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그것이 페루의 정책인것을? 나는 이미 그런 모습을 많이 봐 왔기 때문에, 그 다음차례인 나는 54달러를 또 지불했다. 좌석이 있는 기차는 그것밖에 없었으니까.[물론 더 비싼 기차도 있었지만, 나는 항상 가장 싼 것 원했다]




3.
  쿠스코에서 3일 째, 어느정도 몸이 고산지대에 적응 한 것 같았다. 마추픽추에 가는 방법에 대해서 호스텔 직원에게 물으니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내가 가진 가이드북인 론니플래닛에도 나와있었지만, 그래도 현지 정보가 가장 정확한 것이기 때문에 한 번더 물은 것이었다.
  나의 목표는, 저렴하게 잘 마추픽추를 가는 것이었다. 내 몸무게의 반쯤이나 될 법한 배낭을 짊어지고, 시내에 있는 작은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좁은 버스에 배낭을 짊어지고 올라타니 다리가 저려 미칠지경이었으나, 버스는 만원이었고, 내 배낭을 나는 안고 있어야 했다.[제일 싼 버스를 타면 그만큼 고생을 해야한다는 것은 진리]

 

4.
  마추픽추로 가는 길은 버스 한번으로 될 문제가 아니었다. 소형버스를 타고 와서 산 속의 작은 도시에 내려서 거기서 봉고차로 갈아탔다. 그 봉고차를 타고 더 작은 마을로 이동했다. 그 작은 마을에서 또 작은 마을로 이동했다. 그 곳에 가니 택시들이 많았고, 전부 마추픽추를 외쳐댔다. 하지만 터무니 없는 가격처럼 들렸다. 아니 왜 그렇게 비싼거지??

  거기서는 버스는 더이상 없었다. 기차를 타고 가거나 택시를 타고 가거나 둘 중 하나였다. 기차역으로 가니, 막 떠나려는 기차가 있었다. 마추픽추로가는 기차인데 자리가 많이 남아있다는 게 신기했다. 매표소에 가서 열차 가격을 물으니, 기절할 노릇이었다.
 
  일명 마추픽추역으로 가는 편도행 기차가 54달러라는 것.[편도 비행기야??] 다른 방법은 없었다. 기차는 떠나려 하고 있었고, 그 기차를 놓치면 다음 기차는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었기에, 울며 겨자먹기로 기차에 올랐다.
  기차에 올라 숨을 고르고, 열차 가격표를 다시 한번 확인하니, 가장 싼 기차표가 30달러선이었다. 당연히 그건 매진이었고, 등급도 가장 낮았고, 편수도 적었다. 내가 탄 기차는 중상급이었다. 차내식도 제공되는 나름 좋은 기차였다. 정말, 한시간 가량 기차를 타고 천천히 마추픽추역을 향해서 가는데, 비행기를 타고 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비행기같다고 생각되는 기차를 타고, 마추픽추를 향해서 갔다. 어느새, 마추픽추스테이션에 도착했다는 방송이 들렸고, 기차는 승객들을 토해냈다. 

  저 위, 구름에 가려진 곳. 그곳이 마추픽추 였다.



- 페루레일에서 제공되는 차내식




-



- 마추픽추로 가기위한 관문도시, 아구아스깔리엔떼스






-



-




- 마추픽추 스테이션



 

반응형

세계일주] 페루 쿠스코, 마추픽추에 가려면 체력을 길러라.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0. 11. 23. 13:25

반응형

경로 : 페루 리마 - 쿠스코(Cuzco/Cusco) - 마추픽추 - 푸노(Puno) - 볼리비아


1. 여행에서 필요한 것에 관한 이야기 하나.

  "체력은 국력"이라는 말에 세뇌를 받다 시피한 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운동을 열심히 했다.[축구부, 육상부원으로 중학교 3학년 까지 활동했다] 개인적으로 운동을 좋아하기도 했고, 운동하면서 흘리는 땀이 웬지 기분이 좋았다.
  
  공부를 하는데 있어서도 체력이 중요하다. 특히 고시를 준비하거나, 수능을 준비하는 학생들의 경우는 막판 체력관리와 건강관리가 시험의 당락과 고등점에 엄청난 영향을 준다고 할 수도 있다.
  술을 마시는데도 체력이 엄청 중요하다. 젊은 시절 혈기왕성할때는 별다른 체력관리를 하지 않아도, 끓는 피와 열정으로 밤새 술을 마실 수 있지만, 나이가 조금씩 들기 시작하자 역시 술은 체력과 정신력싸움이라는걸 느끼게 된다.[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인가?]
  
  여행에서는 어떨까? 두말할 필요가 없다. 여행이라는 것은 불확실성의 연속이다.[이러한 불확실성이 여행의 한가지 매력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될지 모른다. 갑자기 산에 올라야 할 수도있고, 열차를 탔는데, 자리가 없어서 입석으로 밤을 지새워야 할 수도 있다[본이의 경험상]. 아니면, 자신이 가려고 한 곳이 고산지대여서 고산병에 대비해야 할 수도 있다.[남미의 안데스 지역 또는 히말라야지역 그 외]

  커다란 배낭을 메고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체력은 필수다. 요즘은 기능성 배낭이 발달해서 무게 분산이 잘된다지만 절대무게라는 것과 백팩커의 상징인 행군은 항상 기다리고 있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배낭의 무게를 줄이고 몸과 마음을 가볍게하고 다니는게 가장 좋지만, 놀고, 먹고, 건강하게 여행을 하는데 체력이 좋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그리고, 당신이 만약 - 남미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나의 경험상 네팔은 고산병의 위험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체력을 웬만큼 기르고 떠나기를 권장한다[장거리 버스와 고산지대에 대응하려면 웬만한 체력이 아니면 병에 시달리기 쉽상이다]. 아무리 고산병에 대비한 약이 있다고 하지만, 약을 먹어도 고생을 할 것이 분명하지만, 몸이 고산지대에 어느정도 버틸 수 있다면, 한숨 푹 자고나면 적응 할 수 있을 정도가 되니까 말이다.


2. 
   잿빛 하늘과 텁텁한 기후[여름이었으니까], 그리고 어울리지 않는 산타클로스의 빨간 옷들[여름에 맞이하는 크리스마스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호주에서 부터 그런 느낌이었지만]을 뒤로 한채 버스에 오른게 어제다. 페루 리마에서의 크리스마스는 별로 흥겨울 것도, 그렇다고 그렇게 슬플 것 까지도 없었다. 호스텔의 친구들이 모두 자고 있을 때 나는 혼자서 쿠스코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가 해안을 따라 달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산길로 접어들었다. 나는 잠이 들었고, 눈을 뜨니 산의 중턱쯤 되는 곳이었다. 그리고 아침이었다. 아침 5시. 뒤쪽 큰 산 너머로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산지라서 그런지 공기는 약간 차갑게 느껴졌다.
  사람들은 휴게소에서 간단한 식사를 했다. 나는 쿠키와 콜라로 간단히 끼니를 때우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구름을 헤치고 산을 계속 올라갔다. 저 위 저위 그리고 더 위 그리고 그 안쪽에, 고대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가 있는것인가?

  버스가 쿠스코에 도착했다. 사람들은 말했다. 쿠스코에가면 고산병증세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나는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정류장앞의 식당에서 폴로를 먹고, 론니플래닛에 나와있는 인기있다는 호스텔을 찾아갔다. 언덕을 오르고 올라, 골목의 계단을 오르자, 호스텔이 있었다. 정말 힘들어 미칠지경이었지만, 나는 그냥 자고 싶었다. 두통이 찾아왔다. 머리가 점점 아파왔고,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씻는 것 조차도 귀찮았고, 그냥 침대에 누워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고, 잠이 들었고, 방에서 술마시는 친구들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가 다시 내 친대 옆으로 시선을 가져왔다. 그리고 또다시 잠이 들었다. 왜이러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3.
  머리가 정말 깨질듯이 아팠고 그냥 자고 싶어서 잤다. 얼마후 깨어났을 때 주위는 어두웠다. 새벽인가? 시계를 보니 저녁이었다. 많이 잔 것 같은데. 이제 좀 정신이 맑은 것 같았다. 피곤해서 머리가 아픈 거였나? 아무튼 이렇게 머리 아프긴 첨음이었다.

  호스텔안에 있는 Bar에가니, 내 앞침대에서 봤던 애가 보였다. 인사를 하고, 맥주를 한병시켰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당구를 치다가 다시 방으로 돌아오고있었다. 내 방 앞 샤워실겸 화장실 앞에서 검은 머리의 여자를 보았다.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하이라고 말하고 가볍게 웃으며 그녀를 지나쳐서 방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서 물었다. 웨얼아유프롬?



4.
  그녀는 고산병때문에 코스코에 오자마자 이틀동안 토하고, 어지럽고 고생을 엄청하다가 이제서야 정신을 좀 차리고 있다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 전형적인 고산병증세라고 덧붙이면서, 나에게 그런 증상이 없냐고 물었다. 나는 말했다. 아, 머리가 좀 아프긴 하더라고요. 그게 고산병 증센가?

  그날 새벽 그녀는 마추픽추로 떠난다고 했다. 서로 좀 아쉬운 마음에[서로 한국사람을 못본지 꾀 된 상태였다. 나는 남미에와서 처음보는 한국인이었다] Bar에가서 와인을 마셨다[나는 호주 농장에서 일할 때 와인을 몇 병 사서 들고다니고 있었다].

 와인을 마시며, 나는 신세계를 경험했다. 숨이 막혀오는 것이었다. 심장 박동수가 빨라졌고, 숨쉬기가 어려웠다. 왜이러지? 술을 너무 오랜만에 마셔서 그런가?[불과 이틀전에 리마에서도 마셨는데?]


5. 그녀와 작별하고.
  나는 침대에 와서 누웠다. 숨쉬기가 정말 힘들었다. 이대로 잠들면 심장마비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내 머리속을 휘감고 있었다. 잠이 들고 싶었지만, 잠을 도저히 잘 수가 없었고, 숨을 헐떡헐떡 몰아쉬고 있었다. 한 외국인이 나에게 아유오케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노프라블럼이라고 대답했다. 사실은 노프라블럼이 아닌데!!



6. 왜 이런일이 일어났지? 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페루 쿠즈코는 해발고도 3500-3600m정도에 위치한 도시이다. 산소는 해발고도가 높아질수록 희박해지고, 기압의 영향으로 체내의 유기적인 활동이 저하되는걸까?[내 나름대로 정말 신뢰할만한 추정이었다]
  결론은, 내가 고산지대에 오자마자, 머리가 아파서 잠을 좀 잔후, 적을을 제대로 하기도 전에 술을 퍼마셔대서 몸이 깜짝놀란것같았다. 밤새 심장마비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휩싸여있다보니, 어느새 잠이 들었고 눈을뜨니 날이 밝아 있었다.

나는 창문을 열고 쿠스코 시내를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다행이다. 나는 살아있다.






- 시장 풍경



- 시장 풍경, 고깃집ㅋㅋ



- 그냥 정처없이 걷다가, 바라본 쿠스코



- 호스텔로 올라가는 길에 그려져있던 그림. 정말 딱 내 모습이었음....
큰 배낭에, 쪼리신고, 어깨에 잠베매고. 헐떡대는 ㅋㅋ



- 호스텔 입구 근처에서 바라본 쿠스코시내



- 골목길




-호스텔 안뜰 ㅋㅋ


반응형

Ep] 몽골, 볼리비아 - 해외여행에서 "세상 참 좁다"라고 느낄 때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0. 11. 21. 15:27

반응형

몽골과 볼리비아에서 있었던 이야기.


1. 케빈 베이컨의 법칙.

  누군가와 이야기 하다가 한 번 쯤은 해봤을 만한 멘트. "어?! 나도 그 사람 아는데?" "세상 참 좁다".
내가 알던 사람이 알고보니, 친구의 친구이거나, 알고보니 아는 사람이 또 알고 있는 사람이거나, 새로 알게된 사람이 알고보니 논랄만큼 나와 가까운 사람일 때. 흔히들 그런말을 하게 된다. 그 두사람이 공통적으로 아는 사람을 공유하게 될 때.

  한국의 유명한 소셜네트워크 사이트인 싸이월드에서는 이러한 관계를 "2촌"아라고 표시를 해 두고 있는 걸 발견하기도 했다.


2.                     
  대학교 2학년 때, 같이 자취하는 친구의 여자친구가 나와 같은 과 후배의 베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세상 참 좁다라고 느꼈다. 이탈리아 민박집에 머물 때, 몇일 동안 같이 술먹고 놀던 사람을 동네의 한 놀이터에서 보게 되었을 때[그 때 내가 살던 동네는 신촌] 당황스러우면서도 세상 참 좁다고 느꼈다. 그 사람들도 근처에 산다고.[그 외에도 이런 경우는 수도 없이 많았다.]
 
이럴 때 마다 하는 말 "세상 참 좁다!" 그러면서 생각 한 것, "정말 착하게 살아야 겠다."



3.  기차는 시베리아를 떠나 몽골초원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기차 창문틈으로 스며드는 한기에 새벽에 자주 잠이 깨었는데, 그 때마다 보이는 창 밖의 푸른 초원이 이곳이 몽골임을 알려주었다.[기마민족의 땅 몽골] 울란바토르의 아침은 시베리아보다 차가웠다. 시베리아엔 봄이 오고 있었는데, 울란바토르는 쟃빛 하늘아래로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내가 탄 국제선 열차는 기차의 제일 끝에 붙어 있었다.[국제선 열차 차량은 따로 분리되어 한 칸만 러시아 국경을 넘어왔다] 기차에서 내리자 여러 사람들이 팻말을 들고 서 있었고,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미스터 창? [나는 러시아의 이르쿠츠크에 머물 때 몽골의 한 호스텔을 예약해 두었었다. 가격도 싸고, 예약비도 필요 없었으며, 상당히 인기있는 호스텔이라고 해서 예약을 하고 몽골로 넘어왔다. 특히, 기차역에서 픽업을 해준다고 하기에!]
  그 사람은 한국어를 좀 할 줄 알았다. 왜냐하면 그 호스텔 주인이 한국인이었기 때문이었다.[몽골인 여자와 결혼하여 몽골에서 호스텔을 운영중인 한국인이다]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영어와 한국어로 몽골의 거리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기차가 도착한 시간이 이른 아침이어서, 거리는 황량했다[잿빛 하늘은 몽골 거리의 분위기를 더욱더 암울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호스텔에 도착하자, 체크인을 하고, 방을 배정 받았다.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싶었다. 2박 3일간 기차 속에서 생활한 터라 제대로 씻지도 못했고, 울란바토르의 기온은 차갑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내 침대에 아무렇게나 누워 잠깐 잠을 청했다.



4. 2박 3일간의 안데스투어[우유니사막투어]가 끝났다.

  우리 팀은 환호성을 지르며 지프에서 뛰어 내렸다. 2박 3일간의 투어가 끝나고 돌아온 우유니시티는 변함이 없었다[내일도 많은 사람들이 우유니투어를 떠나겠지]. 우리는 이대로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에 저녁 밥과 함께 맥주를 마시자는 약속을 하고 각자 호텔을 향해서 떠났다.[모두가 같은 곳을 향해 걸었고, 공교롭게도 우리는 모두 같은 호텔에 묵었다!] 

  사막에서 묻혀온 소금과 모래를 몸에서 떨궈냈다. 뜨거운 물이 내 몸을 타고 흘러 내렸다. 방으로 돌아와 사진을 컴퓨터로 옮기고, 사진들을 구경했다. 너무나도 평온한 오후였다. 적당한 온도, 적당한 휴식처, 적당한 기분.

  약간 출출한 분이 들어, 약간의 먹을거리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몸을 움직여, 밖으로 나가려 했다. 아래층에 있는 리센션 앞에 몇 명의 새로운 여행자들이 배낭을 풀어헤치고 있었다. 그들은 무언가를 상의하고 있었다.



5.                         
  잠에서 깼다. 그대로 누워 눈을 뜨니, 건너편 침대 2층에서 누군가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책 표지가 한글로 쓰여진것 같기도했다[시력이 좋지 않아 애매했다]. 나는 그냥 그대로 누워서 잠시 정신줄을 놓았다가, 앉았다. 그 방에는 단 둘이 있었다.

  하이. 하이. 웨얼아유프롬? 코리아. 아, 한국분이세요?ㅋㅋㅋ 책에 한글 비슷한게 적혀있어서 혹시나 했는데. 오늘 오셨어요? 아침에 들어오는 것 같던데. 네, 오늘 아침에 울란바토르도착했어요ㅋㅋ생각보다 많이 춥네요 여기. 어제까진 날시 괜찮았는데, 오늘 갑자기 추워진 것 같아요 비가내려서. 아...혹시 괜찮으시면 이따 저녁때 밥이라도 같이 먹을래요? 괜찮죠. 나가서 먹을까요? 아니면 여기 주방도 있고, 해먹어도 되고요. 전 뭐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만들어 먹는 것도 괜찮고, 사먹어도 괜찮고요. 저도 뭐 상관없는데. 요리좀 하시나봐요? ㅋㅋ, 뭐 그냥 못하는건 아니에요.

여기에서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도 요리를 웬만큼 할 줄 안다면...해양경찰 출신이 아닐까?[해양경찰 전경은 막내가 무조건 취사병으로 근무를 해야하기 때문에 해경 출신이면 웬만한 요리는 다 배우고, 할 수 있게 된다] 사실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물어보기로 했다.

혹시 군대 어디 나오셨어요?, 저요? 전경출신인데 왜요?, 아 요리좀 하신다길래 혹시 해경출신인가 해서요 ㅋㅋ, 어 저 해경나왔는데, 혹시 해경나오셨어요?, 진짜요? 저도 해경나왔는데. 대박...ㅋㅋㅋㅋ 혹시 어디 지역이세요?[해경은 지방 경찰청 근무를 제외하고 전국 각지 경찰서 근무를 하는데, 소속 경찰서가 다르면 2년 2개월간 볼 일이 없다] 아까 집이 대구라고 하셨으니 포항? , 아니요 통영출신이에요, ㅋㅋㅋㅋㅋ아 진짜 대박이다...저도 통영경찰서 출신인데..혹시 몇기세요?, 아 진짜 통영 출신이에요? 진짜 대박이네 ㅋㅋㅋ 저 259기요, 아 전 262기인데 선임이시네요. 근데 왜 배탈때 못 본것 같지? 혹시 배는 언제 탔었어요?[후략]

알고보니, 내가 배를 탔던 기간에 2개월 정도 같이 배를 탔었다. 같은 부두에 머물렀지만, 그 선임은 중형급 이상의 배를 탔고, 나는 소형배를 탔기 때문에 서로 잘 알아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어쩐지 이름이 낯익긴 했다]  
   
우리는 바로 그 자리에서 맥주를 마시러 나갔다. 이따 저녁때 밥은 밥이고, 이런데서 같은 군부대를 나온 사람을 만났으니 술이나 한잔 하러 가야하지 않겠냐는 생각에서 말이다.


6.                         
  리셉션 앞에서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는 그들에게 인사를 했다. 이미 그 호텔에 방이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벌써 몇 팀이 발길을 돌리는 것을 봤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들은 우유니사막투어를 하러 왔고, 나는 이미 하고 왔기 때문에 여러가지 정보를 줄 수 있었다. 모두가 일본어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에 나도 아는 일본어를 가지고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중 한 여자애가 한국인이었다.[아니 그런데 무슨 일본어를 저렇게 잘하지? 라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하다다가 알게된 사실. 일본에서 중,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한국으로 왔다고 했다.[아, 어쩐지 일본어를 잘하더라]. 전공은 일어일문.  재외국인 전형?이라고 나는 반문하면서 혹시, 대학은 어디냐고 물어봤다.[웬만하면 나는 이런걸 잘 안물어 보는데, 내 친구가 중앙대 일어일문을 다니고 있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 보았다]
  혹시나, 했는데. 대답은 중앙대였다. 중앙대 일어일문. 그래서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봤다. 내 친구를 아느냐고.[사실 모를리가 없었다. 내 친구는 학생회장까지 했었으니까 말이다] 역시, 물어보나마나였다. 보통사이도 아니고 완전 절친선후배사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알지 못했던, 내가 소개시켜준 여자와 내 친구간의 비하인드 스토리[슬픈 이별의 이야기]도 나에게 들려주었다.

  그 날 밤, 나는 싸이월드 내 친구의 홈피에가서 이렇게 적었다. " 야 ㅋㅋ 나 지금 볼리비아 우유니인데, OOO알아? 절친동생이라던데?ㅋㅋ 오늘 걔 만났어."
  그리고 다음 날, 내가 떠나기 전, 점심을 같이 먹고, 우연히도 저녁 때 같은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의도하지 않았지만, 투어 갔던 애들이 그 레스토랑에 다 모였고, 친구의 후배와 그녀와 같이 있던 애도 그 식당에서 만나게 되었다]



7.                        
  여행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다보면 이런 저런 인연이 다 있다. 는 생각.   






- 요리하는 남자

 


 


- 울란바토르 역[도착한 날과 떠나는 날 하늘은 흐렸다]

 



 

- 우유니 역



 

- 호텔 앞 거리


 

- 아티스트 에드손


반응형

Ep]페루 - 잉카콜라 vs 코카콜라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0. 11. 17. 17:48

반응형
Second Edit.

- Inca Kola vs Coca Cola

1. 10년전 쯤 기억을 하나 되새겨 본다면,

  한창 콜라 열풍이 불어닥쳤던 그 시절이었던 것 같다. 티비에서는 많은 콜라 광고가 나왔고, 다양한 제품들이 쏟아졌다. 대표적으로 "콤비콜라". "815콜라" 등이 있었고, 콜라계의 지존 "코카 콜라". 그리고 그를 따라잡기 위한 "펩시 콜라" 등등. 많은 콜라가 있었다. 애국심을 마케팅 전략으로 한 815콜라. 그나마 먹어 줄만 했던 것 같다.
  미국 자본주의의 앞잡이라는 비판과 함께 친구들 사이에서 코카 콜라를 먹으면 안된다는 그런 논리 때문에, 펩시 콜라도 많이 마셨는데 지금 생각 해 보면, 역시 콜라는 코카 콜라다.[사실 난 어릴 때, 펩시콜라의 마크가 태극기의 태극마크와 비슷해서, 펩시콜라가 국산인 줄 알았다.]

  농구나 축구를 하고 나서, 동네 슈퍼앞에 모여서 형들과 돌려 마시던 콜라. 그리고 그 당시 나름 고급스럽게 보였던 컨피던스와 파워헤이드.[파워헤이드는 요즘도 운동하고 가끔씩 먹지만 웬지 고급스러워 보인다]

  콜라 춘추전국시대. 그런 시대가 있었다.


2.                       
  콜라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학창시절 다큐멘터리 보는 것을 참 좋아했다] 그 때가 아마도, 콤비콜라, 815콜라 등 코카콜라에 대항하여 여러 콜라들이 막 출시되던 콜라 춘추전국시대였던 것 같다.

그 다큐멘터리의 주제는 페루에서 코카콜라를 제치고 성공한 <잉카콜라>였다.
  페루의 "잉카콜라"는 좀 특이하게, 색깔에 있어서도 보통의 콜라와 차별성을 둔 노란색 콜라인데, 전세계 콜라중 유일하게 검은색이 아닌 노란색 콜라라는 것이었다. 콜라의 색깔을 노란색으로 한 이유는 노란색(황금색)은 고대 잉카제국의 황금을 상징하기 때문에 잉카제국의 후예라는 페루의 특성을 잘 살린 콜라라고 했다. 그리고 페루에서 잉카콜라는 코카콜라를 제치고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했다.


3.                          
  그 당시 나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생각했다. 언젠가 페루에 가면 페루에가면 잉카콜라를 먹어봐야겠다고 말이다.[페루에 실제로 가 보니, 잉카콜라는 유명하면서도 자부심이 대단한 것 같았다. 코카콜라는 없어도, 잉카콜라 없는 곳이 없을 정도?]

  페루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먹었던 콜라가 잉카콜라였다.[본인은 콜라빠로서 매 끼 식사후 콜라를 섭취하고, 심심할 때도 콜라를 먹는 콜라 중독자]
 
  맛? 괜찮은 것 같았다.[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이다] 좀 달짝찌근하지만 톡 쏘는 맛이 있다.[이 말은 단것을 많이 먹으면 입안이 끈적거리면서 텁텁한 기분이 드는게 보통이지만, 그런 기분이 들기전에 탄산의 톡 쏘는 느낌으로 인해 어느정도 해소가 된다는 말]
코카콜라와 견주어 봤을 때, 결코 뒤지지않는 맛이라고 생각했다.[나는 음식을 먹고 펩시 콜라를 먹으면 소화가 안될 뿐더러, 역시나 페루에서도 잉카콜라만 먹다보니 코카콜라가 그리워서 코카콜라를 사먹은적도 있다.]


4.                          
  페루의 리마[수도]의 싸구려 호수텔의 도미토리에 같이 묵고 있던 각국의 여행객들. 아르헨티나에서부터 여행을 하고 있다는 한 커플이 오늘 오전에 새로 들어온 한국인 여행객 "진"에게 저녁에 같이 밥도 먹고, 놀러 가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그는 딱히 할 일이 일정이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흔쾌히 수락 했다.

  그 날 저녁, 그들은 대통령궁앞을 지나 리마의 번화가에서 좀 벗어난 곳 한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각자 먹을 메뉴를 주문하고, 콜라를 주문했다. 그런데, 주문한 콜라가 코카 콜라였다.[메뉴에 모든 콜라는 2L여서, 2L 짜리 피트병이 배달되었다]

 그 때, 갈리시아출신의 남자애와 이탈리아 출신의 여자애 하나가 자신들은 코카 콜라를 먹지 않는다면서, 잉카콜라를 따로 하나 더 주문했다.[그들은 코카콜라 컴퍼니를 싫어해서, 코카콜라컴퍼니제품은 안먹는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잉카콜라를 먹을 사람이 더 없냐면서 잉카콜라를 권했다. 8명이 밥을 먹는데, 테이블에 코카콜라 2L 피트와 잉카콜라 2L피트가 나란히 올려져있었다.[한사람당 500ml씩 먹어야, 다 먹을 수 있는 분량?]


5.                               
  우리는 한창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밥을 먹고 있었는데 갈리사아애가 엄청난[코카콜라 컴퍼니의 제품은 먹지 않는다는 그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사실이었을 것이다] 사실을 발견하고 경악을했다.

무슨 일이냐고 갸우뚱 하는 우리에게, 그는 잉카콜라의 병을 들어 보였다.
잉카콜라의 제조회사가 코카콜라 컴퍼니(Cocacola company)였던 것이다.

뭐 어쩌겟나, 내용물만 코카 콜라의 검은 물만 아니면 되지! 우리는 그냥 잉카콜라를 먹었다 ㅋㅋ


6.                               
  그는 세계 상품시장은 자본의 힘에 의해서 지배당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 봤다. 예전에 그가 티비의 타큐멘터리에서 잉카콜라에 대해서 보았을 때 잉카콜라는 코카콜라에 대항해서 나온 페루의 자존심이었는데, 이제는 코카콜라컴퍼니의 배를 채워주기위해서 생산되는 이름만 "잉카콜라"인 잉카콜라를 보며, 씁쓸함을 느꼈다.

  그러면서 또 생각 했다. 코카콜라컴퍼니, 대단하다. 세계 콜라시장을 다 장악하려하다니.

7.                                
 페루 리마에서 우리끼리 웃어 댔던 이야기.






- 코카콜라


- 잉카콜라



 


- 잘 보이진 않지만, 필기체의 코카콜라 컴퍼니 마크. 내용물은 노란색의 잉카콜라.
반응형

Ep]인도, 소나울리 - 테러를 당하다.(1)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0. 11. 13. 13:29

반응형

1. 거부[rejection]

  많은 장기 여행자[6개월 이상 여행을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들에게 중요한 것 한가지를 뽑으라면, 항공권을 저렴하면서도 잘 구매하는 것을 뽑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장기 여행자들이 많이 선택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편도 항공권.
   해외 여행을 떠날 때, 편도 항공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한가지 고민이 더 생기게 된다[이런 고민은 편도 항공권을 가진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이 고민은 일반적으로 편도 항공권을 가진 사람이 받는 '입국 거부'라는 부당한 대우와 관련이 되기 때문이다.
   여행을 가는 사람[특히, 장기 해외 여행]이 편도 항공권을 살까, 말까를 고민하면서 한 번쯤 생각해 보게 되는 문제. 편도 항공권으로 여행한다고 공항에서 입국거부 당하는 것은 아닐까[물론 입국 못하는 사례가 많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편도 항공권이라고 해서 그 공항에서 입국거부를 당했다는 사람을 실제로는 만나보지 못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여행사와 항공사의 이익을 위한 겁주기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해 본다]. 편도 항공권과 입국 거부에 관한 문제는 엉킨 실타래보다도 더 풀기 어려운 딜레마를 제공한다. 그것은 여행 자금의 문제와 여행을 제대로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사로 상충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경우로, 육로(陸路)로 여행을 하는 사람이라면, 국경이 폐쇄되거나, 입국 거부를 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실제로, 정치(政治) 상태가 혼란한 국가를 여행하려고 할 때는 그 인접 국가의 국경에서 출국을 금지시키기도 한다.

  여행이라는 것은 알 수가 없다. 여행(旅行, Traveling) 이라는 말 속에는 불확실성이 내포되어 있다[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그게 여행의 매력이라고 말 할 수 있다].


2.                
  이런 생각을 가끔 해보게 된다.  남한과 북한이 통일되면, 기차를 타고 중국으로 러시아로, 몽골로 여행을 할 수 있을 텐데. 낭만적으로 보이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한국에서 타고 갈 수 있을 텐데.라고 말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도 국경이 폐쇄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정확히 말한다면, 우리나라는 지금 전쟁중이다. 그리고 그 전쟁을 좀 오랫동안 쉬고 있는 것일 뿐이다]
. 남한과 북한을 연결하는 길을 함부로 밟을 수 없다. 그 길을 따라 남한에서 북한으로 가려면 비합법적이거나, 정치적, [그리고 정치인들이 말하기를]평화적, 인도적인 일을 한다는 명목으로 가야 한다. 그 경우를 제외하고는 남한과 북한을 잇는 길을 지나갈 수 없다. 다시 말해, 일반인[외국인과 한국인 모두를 포함하는 사람들]이 여행을 위해 남한과 북한의 국경을 함부로 넘어갈 수 없다는 말이다.

  어릴 때 살던 동네에 미군부대가 있었다. 미군부대에는 정문과 후문이 있었고, 그 옆 쯤 되는 곳에 철로가 놓여 있었다.  미군부대 안까지 쭉- 이어져 철조망을 관통하고 있는 철로. 가끔은, 그 철로를 위로 탱크나 전차 같은 무기들을 실은 열차가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의 집은 미군 부대의 후문에 가까운 곳에 위치하는 곳이었고, 중학교는 그 철로를 지나 얼마를 더 가야 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학교를 다녀오던 길에 종종 보이던 열차. 그 철로를 따라 천천히 흘러가는 열차를 보면서 저 열차를 따라가면 미군 부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텐데. 그러면 맛있는 피자와 햄버거를 싼 가격에 먹을 수 있는데!.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조금 더, 어릴 적. 미군부대에 출입할 수 있는 친구를 따라 미군부대의 수영장에서 수영하던 기억, 식당에서 피자를 사먹던 기억이 물방울처럼 피어 올랐다. 
  민들레 꽃씨가 날리는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오후.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길, 미군부대 안으로 이어진 철로가 나를 부르는 듯 했다. 나를 따라 들어오렴.이라고. 철로 위를 지나, 사람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던 철조망 문도 열려 있었다. 내가 들어와도 좋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철로 위에 발을 올렸다. 자연스럽게- 철로 위에서, 철로를 따라 걷고 있는 내가 있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누군가가 소리치고 있었다. 뭐지? 나는 주위를 둘러 보았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나를 부르는 것 같았는데. 들뜬 마음으로 나는 계속 걸었다. 어디선가 또 들려오는 소리. 누군가 나를 부르는게 확실했다. 누구지?.. 저 쪽, 감시탑 위에서 나를 향해 소리치는 한 군인이 보였다. 나에게 돌아가라고 소리쳤다. 아차, 역시- 나는 안으로 들어갈 수 없구나.


  나는, 쫓겨 났다. 거부 당했다. 미군 부대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 곳은, 대한민국이 아닌 곳이니까.
 


3.                        
  인도 조드푸르(Jodhpur)에서 뭄바이(Mumbai)로 가려고 했던 나는, 뭄바이로 가는 기차표의 좌석은 4일 뒤에 살 수 있다는 말에, 바라나시(Varanasi)로 가는 기차표를 끊었다[같이 있던 일본애가 바라나시로 간다기에, 나도 그냥 바라나시나 가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바라나시로 가는 2박 3일. 책을 보고, 또 보고 또 봐도 기차는 계속 달리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천천히. 
  동행하던 일본애는 바라나시에 도착하자마자 네팔(Nepal)로 갈 예정이라고 했다.  바라나시에서 네팔로 바로 갈 수가 있어?.라는 나의 물음에, 그는 바라나시에서 인도와 네팔의 국경도시인 소나울리로 가는 버스가 있다.고 대답해 줬다. 그는 그 버스를 타고 바로 네팔로 떠날 것이라고 했다. 
  
  나는 바라나시로 가는 것도 예정에 없던 이라, 네팔까지 간다는 그의 말에 별다른 흥미를 갖지 못했다. 거기다가, 내가 그 자리에서 나도 네팔로 가야겠어.라고 하면, 내가 너무 그 일본애를 따라가는 모양새가 될 것 같았기에 나는 바라나시에서 며칠간 머물기로 했다.일단 나는 바라나시에 머물면서 그 다음 어디로 갈지를 생각해 보기로 했다.

  지루한 시간들이 차창을 스쳐 지나가더니, 기차는 어느 새 바라나시에 도착했다. 그 일본애는 자신의 가이드북을 찢어서 나에게 주었다[나는 가이드북이 없었기 때문에 초반부터 힘든 여행을 하고 있었다]. 가이드북이 없던 나로서는 고마운 일이었다. 나는 그에게, 그는 나에게 서로의 여행에 행운을 빌어주며, 과일주스 한잔을 마시고 서로의 길을 향했다.
 
  나는 사이클 릭샤에 올라, 갠지즈 강가의 가트를 향해 갔다. 여기가 바라나시구나. 갠지즈강이 흐르는 곳. 인도의 젖줄기, 힌두의 성지. 여기서 무얼 하지.라고 생각하며, 숨막힐 정도로 먼지로 가득찬 인도의 도로를 달렸다.



4.                          
  그는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할 일이 없었다기 보다는 계획 없이 그 곳에 왔기 때문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가 머물고 있던 게스트 하우스의 식당에는 많은 여행자들이 남기고 간 책들이 있었다[그 곳은 휴식 공간처럼 꾸며져, 책도 볼 수 있고, 식사도 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었다]. 그는 여행자들이 남기고간 책, 그 중에서도 인도 여행에 관한 책들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여름이 막 시작되고 있는 바라나시의 오후 날씨는 무더웠다. 그는 더위를 피해, 그 게스트 하우스의 식당에서 시간을 때우며, 정보를 수집하기로 한 것이다. 여행 책자의 바라나시 부분을 열심히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바라나시의 역사, 문화, 먹을거리 등. 바라나시- 비록, 그는 그곳에 생각없이 갔지만, 그곳은 인도 여행에 있어서 생각보다 중요한 도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책의 내용 중에서도, 교통정보 부분을 열심히 뒤적거렸다. 그 곳에는 바라나시에서 네팔로 넘어가는 코스와 방법이 다양하게 있었다. 
  
  그가, 식당의 한쪽 귀퉁이에서 바라나시에서 네팔로 가는 방법에 관한 부분을 열심히 뒤적거리고 있을 때, 한쪽에서 밥을 먹던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는, 눈으로는 책을 보고 있었지만 귀는 그들의 말소리를 열심히 주워담고 있었다. 머릿속엔 이미 책의 내용은 들어오지 않았다. 저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 볼까?.라는 생각만 했을 뿐.

  대화의 내용을 유심히 듣던 그는, 그들이 네팔로 가려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그 사람들은 네팔로 가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었으므로]. 그는 슬며시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그리고 물었다. 혹시 네팔에 가세요? 네팔 이야기 하시길래.




5.                         
  그 사람들은 이틀 뒤 네팔로 떠난다고 한다. 네팔에 같이 갈 사람들을 모으고 있다고 했다. 나도 네팔로 가 볼까? 이틀 뒤. 어차피 나는 여기에 있어도 할 일이 그렇게 많은 것이 아니었기에, 일단 네팔로 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인도 여행을 해도 상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말했다. 네, 같이 가요. 

  나는 그들과 함께 네팔로 가기로 했다[그렇다고 네팔 여행을 함께 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국경을 같이 넘어가자는 이야기 였다. 국경을 넘고, 룸비니(Lumbini)에 잠깐 들렀다가, 대부분 포카라로 가서 히말라야 트레킹을 할 것이라고 했고, 나는 포카라가 아닌 카트만두로 갈 예정이었다]. 어차피 나는 인도를 지나 파키스탄으로 갈 예정이었기에, 파키스탄 비자를 네팔에서 받으면 쉽고, 편하게 받을 수 있다고 생각 했다. 네팔 여행도 할 겸, 네팔에 가서 파키스탄 비자를 받아오면 되겠다는 생각도 했다.
 
  
  나는 바라나시의 먼지로 가득찬 골목을 헤집고 돌아다녔다. 소똥을 피하고, 개똥을 포히고, 쓰레기들을 피해 골목을 헤메다가 지치면, 짜이를 파는 곳에서 3루피 짜리 짜이를 한잔 마시면서 인도 사람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사람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이틀 뒤 네팔에 간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나에게 네팔에 절대 가면 안된다는 말을 했다. 아니 왜? 나는 가야해.라고 내가 말했다. 그는 나에게, 
요즘 네팔에서 테러가 나서 사람들이 죽고 있어.라고 말했다.
테러?.나는 생각했다. 테러는 파키스탄을 이야기 하는거 아닌가?[파키스탄은 폰탄 테러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 지금 너 파키스탄 이야기 하는거 아니야?.라고 되묻자, 그는 말했다. 아니야, 네팔이 확실해. 그는 네팔이 지금 정치적으로 혼란 스럽다고 덧붙였다. 나는 그의 말을 신뢰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 나는 관광객인데 설마 나를 죽이기야 하겠어?.라고 말하며, 웃어 넘겼다.



6.                            
  네팔로 떠나기로 한 날, 여섯명이 모였다. 여섯의 사람들은 릭샤를 타고 역으로 향한다. 그들은 역에서 소나울리로 가기 위해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도 기차의 연착, 그것을 너그럽게 받아 들이면서[밤 12시 경 출발 해야할 기차가 새벽 5시 쯤 도착했다] 기차에 올랐다. 밤을 거의 새다 시피한, 그들은 몇 시간 뒤 종점인 박타푸르[기차는 박타푸르까지 운행했고, 박타푸르에서 소나울리까지 버스를 타거나, 지프(Jeep)를 타고 소나울리로 이동해야 했다]에 도착했다. 박타푸르 역 앞에서 지프두 대를 섭외한 그들은, 지프(Jeep)를 타고 소나울리로 갔다.

  소나울리에 가기 전[바라나시를 떠나기 하루 전], 그들은 네팔에 관한 좋지 않은 소식을 하나 들었다. 지금
네팔로 넘어가는 국경 검문소가 폐쇄되었다.는 소식. 네팔과 인도의 국경, 소나울리에서 온 다른 여행자들이 그런 소식을 들고 바라나시로 온 것이었다.
설마, 아무일도 없겠지.라고 생각하고 그들은 네팔로 떠난 것이었다. 이미, 가기로 한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니까. 가보면, 진실을 알게 되겠지.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그들은 바라나시를 떠난 것이었다.

  그들이 소나울리, 국경 사무소에 도착했을 때. 설마,라고 생각하던 일은 진실이 되어 있었다. 국경의 출입국 관리 사무소에서는,
"출국 허가 도장을 찍어줄 수 없음"이라고 엄포를 놓고 있는 상태였다. 출입국 관리 사무소의 직원들은, 가만히 의자에 앉아 있을 따름이었다. 

  그의 일행을 포함한 20명 정도되는 여행자들이 국경 사무실에 죽치고 앉아 있어야만 했다. 국경을 마음대로 들락 날락 하는 현지인들을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 보며[현지인들은 비자나 여권없이도 생활의 편의를 위해 왔다갔다 할 수 있었다], 열려 있지만 지나갈 수 없는 국경을 원망해야 했다.
  하지만, 몇몇 사람은 국경을 그냥 넘어 가기도 했다. 어차피 여권 검사만 안하면 불법 입국으로 처벌 받을 일도 없고, 며칠 네팔에 머무르다가 다시 인도로 올 것이니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여행자들에게 출입이 금지된 국경을 지나서 저 멀리 사라져갔다.

  태양은 저물어 어둠이 내려 앉기 시작했고, 거리에 붐비던 사람들도 거의 다 사라져갔다. 시간이 꽤 많이 흘렀다. 점심때쯤 도착한 국경에서 다섯, 여섯, 일곱...여덟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국경 사무실의 직원 앞에 놓인 전화기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모두가 그 전화기를 바라보면서, 그 속에서 국경을 넘어도 좋다는 소식.을 전해주기를 바랐다. 

   
여행자들은 보내 달라고 아우성을 질렀다.



7.                          
  네팔의 총리가 한 대학생 시위자에게 총을 맞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네팔에서는 지금 유혈사태가 일어나고, 각종 파업사태가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암울했다. 뭐지, 하필이면 내가 가려고 하는 이 때에. 일주일 전까지만해도 아무런 일도 없다고 했는데. 하필 이런 때에. 내 자신을 원망할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하- 더 이상, 기운을 차릴 수 없다. 언제까지 일까? 여기, 사무실에서 침낭을 펴야하나?

   어둠이 완전히 거리를 지배했을 때, 거리를 거닐던 사람들은 거의 다 사라졌다. 어디선가 이따금씩 비명같은 소음이 들려 올 때를 제외하곤, 적막함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런 시간들이 지속되던 가운데, 테이블 위에 고요히 놓여 있던, 묵묵히 침묵을 지키고 있던 전화기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전화벨이 울렸고, 모두들 그 전화기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제발.


  수화기는 생각보다 빨리 제자리를 찾아 갔다. 전화를 받았던 직원은, 별 말을 하지 않고 고개만 몇 번 끄덕였다. 표정도 변화가 없었다. 아직도, 출국 허가가 명령이 떨어지지 않을 걸까?. 약간의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이 가라 앉을 때쯤, 출입국 관리 사무소 직원은 천천히 입을 뗐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알파벳 몇 개가 흘러 나왔다. You can go Nepal. 모두들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각자 짐을 챙기고, 여권을 내밀었다. 하나,  둘 출국 카드를 작성했고, 스탬프를 찍었다.



8.                         
  어둠이 깔린 거리. 국경을 지나는 사람은 여행자들 밖에 없었다. 그들은 국경을 넘어, 네팔 출입국 관리 사무소로 향했다. 수십명의 여행자들이 달빛과 자신의 손전등에 의지해서 입국 카드를 작성했다. 사무실에서 네팔 비자(Nepal visa)를 사고, 스티커를 붙였다. 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그들이 국경을 넘은 시간. 국경에서 포카라, 카투만두로 가는 버스가 있을리 없었다. 밤늦은 시간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테러로 인해 버스 운행을 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곧 접할 수 있었다. 길의 중간 쯤에서 정권 반대파들이 버스를 향해서 테러를 감행하고 있기 때문에 버스운행이 전면 중단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일단 밤이 깊었으니, 근처의 한 호텔에서 하룻밤 묵기로 하고 다음 날 아침 일찍, 릭샤를 타고, 룸비니(lumbini)로 가기로 했다. 일단 그곳에서 며칠 쉬면서 네팔의 상황을 지켜보자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 소나울리


- 소나울리 출입국 관리 사무소


- 기다리는 여행객들


- 국경 게이트, 저 넘어는 네팔.







반응형

Ep] 에스토니아. 탈린 - 기다리지 않으면, 로맨스도 없다.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0. 11. 12. 20:04

반응형


1.                            
  비포선라이즈(Before sun rise)라는 영화가 있다. 혹시, 당신이 20대 중반을 좀 넘긴 나이라면 한 번 봤을 법한 그런 영화. 여행을 하면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게 되는 그런 영화. [내가 고등학교 때 그 영화를 처음 봤고, 대학교 때 비포선셋(Before sun set)이라는 영화와 함께 한번 더 봤으며, 몇 해 전 모 여자고교에서 영어 멘토링 수업을 할 때 봤던 영화로써 총 3번이나 본 영화이다.]여행에 대한 로망이 스며들어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혹시, 당신은 비행기를 타는 순간 또는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는 순간. 그 공간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는 사람중에 당신의 연인이 될 지도 모르는 그런 사람을 만나기를 기대하는가?



2.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알랭드 보통의 책,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한국어판)>의 처음 장면은 두 남녀의 "만남"이다. 그들은 우연히, 파리에서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만나게 된다. 두 남녀는 우연히 옆자리에 앉게 되고, 그들은 이야기를 하게 되고, 그들은 약속을 잡고, 그들은 사랑하게 된다. 이것 또한 짧은 여행에서 만들어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3.                          
  에스토니아를 떠나는 날, 하늘은 파랳다.[비오는 발틱 거리의 종지부를 찍는 날이었다] 역시, 여행의 필수 요소중 하나는 파란 하늘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발트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상쾌 했다. 숙소 뒤 편에 있는 언덕위에 있는 성벽엔 많은 사람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었고, 나도 그들 사이를 서성였다.
 
  어느 관광객이 나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면서 카메라를 건네자[사진기를 들고 반대편으로 달려가면 흥미 진진할 것 같다는 생각을 1초 정도 해 봤다] 나는 구도를 잡고 셔터를 눌렀다. 그들은 고맙다며, 나에대한 관심을 나타냈다. 어디서왔어? 한국에서. 북쪽? 아니 남쪽에서 왔어. 나는 북쪽을 싫어해. 나도 북한이 무서워. 같은 짧은 대화가 오갔다.



6. 백야.                        
  6월 중순의 북유럽은 백야현상이 나타난다. 백야행(白夜行)이라는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글귀가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처음 에스토니아에 도착했을 때 그는 당황했었다. 아직도 환한 대낮같은 시간에 술취한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길을 잘 못찾아서 헤메고 있었는데, 취객이 그를 도와주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계를 보니 이미  오후9시가 가까운 시간이었고, 오후 11시가 되어도 밖은 여전히 환했다. 
  술을 마시다가 12시가 가까운 시간이 되어 자려고 했던 그도 창 밖을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지만, 밖은 아직 밝다.  이것이 바로 "백야 현상"

  그가 탈린[에스토니아의 수도]을 떠나,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떠날 시간이 가까워 져도 하늘의 태양은 사라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거리는 여전히 밝았고, 차들과 사람들은 여전히 거리를 활보 했다. 술에 취한 사람들도 가끔 그의 눈에 비췄다. 그는 호스텔에서 저녁을 지어먹고, 남은 에스토니아 돈으로 마트에가서 최대한 금액에 맞춰서 과일을 몇 개 샀다. 버스 시간이 2시간 가량 남았지만 버스정류장을 향해 출발했다.



7.                             
  버스 정류장은 작은 규모였지만 시설이 나쁜편은 아니었다. 유리로 된 창문 넘어로는 버스 플랫폼과 들어오고 나가는 버스가 보였다. 대합실 안에는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들 몇몇이 보였고, 사람들은 사라졌다가, 다시 생겨났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나는 컴퓨터로 영화를 보고 있었다.

  어느 순간, 내가 고개를 들자, 내 눈앞에 백팩을 맨 여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검은색 생머리에 적당한 체구, 그리고 몸집에 비해 좀 커보이는 배낭. 어느새 내 마음속에는 영화에 욕망은 사라지고, 그 여자에 대한 관심이 싹텄다. 그리고 유리 너머로 그 여자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를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내 시력이 나빠서 10m 이상 떨어져 있는 사람은 구별을 못한다] 체구와 피부색과, 머리색깔과, 배낭등등을 종합해 볼 때, 한국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얼핏 피부색을 보니 완전 서양인도 아닌 것 처럼 보였다. 얼핏 봤을 때는 일본인 또는 히스패닉계의 여행자로 보였다. 

  언제부턴가 나는, 저런 여자들한테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여자들이 나에게 매력을 느끼느냐 겠지만 말이다. 어쨋든 이건 순전히 내 입장이다]. 여행을 하다보니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자기 몸집보다 큰 백팩을 메고, 강인하게(?) 여행을 하는 모습. 그리고, 순수 백인보다는 히스패닉계열의 피부를 가진 여자.



8.                              
  그녀는 버스정류장 플랫폼과 대합실을 왔다갔다 하면서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는 버스 시간이 얼마나 남았나를 확인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가 타야할 버스가 도착했고, 그는 짐을 챙겨서 플랫폼으로 걸어 나갔다. 그 여자가 자신이 타야 할 버스의 차장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는 다가갔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날 때 까지 그녀와 차장에게서 약간의 거리를 두고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차장의 표정은 완고했고, 그녀는 뭔가를 부탁하는 듯했지만, 실패한 것 같았다. 
 
  차장이 그의 표를 보여달라고 했다. 그러저 그의 배낭을 버스 짐칸에 번호표를 붙여서 넣어 주었다. 그리고는 내 표를 가지고 그녀에게 보여주면서 말했다. 지금 곧 출발하는 버스는 이 티켓이 필요하고, 니 티켓은 다음 버스를 타야해 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돈을 더 지불할테니 태워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차장은 창구에가서 티켓을 끊어 오라고 했지만, 국제선 버스티켓은 버스회사사무실에서 파는데, 이미 사무실은 닫혀있었다. 그는 차장이 깐깐하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버스에 자리도 많이 남으면서 태워주면 안되나하고 생각했다.

  그와 그녀는 서로를 쳐다볼 뿐 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는 지금 이 버스를 타야하고, 그녀는 30분 뒤에 출발하는 다음 버스를 타야했다. 차장은 버스가 이제 곧 출발할 테니 버스에 오라라고 손짓했다. 그녀는 한 번 더 차장에게 태워달라고 했지만 차장은 완고했다. 그는 그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9.                           
  나는 참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왠지 당돌해보이는 그녀와 대화를 해 보고 싶었지만, 나에게 주어진시간은 없었다. 나는 버스에 올랐고, 유리창 뒤편 플랫폼에 있는 벤치에 앉아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도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녀는 종이에 뭔가를 적었다. 그리고 버스에 올랐다. 차장이 내리라고 말했고, 버스에는 이미 시동이 걸려있었다.
 
  나는 뭐지?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그녀는 나에게 종이쪽지 하나를 건네 주었다. 종이에는 페이스북 아이디가 적혀있었다. 나는 그 쪽지를 지갑 한 귀퉁이에 꽂아 놓았다. 그리고 미소를 보냈다. 씨유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외치면서.



10.                         
   버스는 아침 6시에 목적지 도착 예정이었다. 밤 11시 20분 탈린 출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간으로 오전7시 도착 예정 이었다. 가는 길 내내 해가지지 않았다. 백야속을 헤치고 버스는, 러시아와 에스토니아의 국경을 넘었다. 러시아 국경을 넘을 때, 저 멀리 강인지 바다인지 모를곳에 태양이 빛나고 있었다.[새벽 2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는데 말이다] 러시아 국경을 넘어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향하는데 추위가 엄습해왔다. 러시아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역시 얼음과 추위의 땅 러시아인가?라고 그는 생각했다. 추위가 그의 몸을 엄습해왔다. 그는 추위에 몸을 떨면서 탈린에서 출발했을 그녀의 버스를 생각했다. 탈린에서 출발하는 다음버스와 시차가 30분이니까 30분뒤에 그녀가 탄 버스가 도착 할 테니 도착하면 정류장에서 기다려야 겠다고 생각했다.



11. 버스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했다.
  버스기사가 나를 깨웠다. 도착했으니 내리라고 했다. 여기가 어디지? 나는 버스기사가 내리라는 대로 내렸더니 도로 한 복판이었다. 비는 내리고 있었고, 추웠다. 잠도 오고, 배도 고팠다. 러시아는 왜이렇게 추운거냐라고 생각하면서 러시아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정시간보다 2시간이나 일찍 도착했다!![7시 도착예정이었는데 5시에 도착한 것이었다. 버스기시사가 미친듯이 밟았나보다] 
  나는 도저히 추위를 견딜 수 없어서 지하철역 건물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도 바람이 몰아쳐 들어왔다. 다음 버스가 도착하려면 적어도 2시간을 기다려야했다. 나는 생각했다. 추위에 떨면서 두시간을 기다려야 할까? 아니면, 호스텔을 잡고, 페이스북으로 연락해서 만날까? 고민했다. 그러다가 내린 결론은, 일단 추우니까 호스텔에서 인터넷으로 연락을 하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예약한 호스텔을 향해서 지하철을 타고 떠났다.



12.  나중에 알게 된 사실.              
  나는 버스 정류장에서 그녀를 처음 봤지만, 그녀는 나를 낮에 시내를 돌아다닐 때부터 봤다고 이야기해 주었다.[내가 낮에 어떤 관광객 커플의 사진을 찍어 줄 때 자신도 거기에 있었다고 나에게 말해 주었다.] 그리고, 자신은 오스트리아에 살고 있다고 말해 주었다.






- 내가 머물렀던 호스텔의 주인. 나에게 커피 한잔을 권했다.





- 비개인 탈린의 하늘. 저 멀리 발트해가 보인다. 여기서 사진을 찍어 주었다.




- 버스정류장. 밤 11시가 넘어서자 조금씩 어둠이 찾아왔다. 저기 플랫폼 중간에 서있는 그녀.











반응형

Ep] 시리아, 하마 - 히치하이킹, 여행자의 특권! - 시리아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0. 11. 7. 15:56

반응형

1.                            
  TV광고 또는 영화의 한 장면 혹은 드라마 혹은 포스터 등등에서 우리는 가끔 끝없이 펼쳐진 도로 가운데 서서 지나가는 자동차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미녀(?)를 발견하곤 한다. 

  만약, 전국 일주를 생각하는 당신, 무전 여행을 계획했다면 당연 이동 수단으로써 히치하이킹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본인의 어릴적 기억을 더듬어보면, 어린 시절 친구들과 산골에 있는 저수지와 계곡을 찾아 놀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히치하이킹을 해서 자주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 탈것은 1톤 트럭부터 경운기, 승용차에 이르기 까지 다양하게 히치하이킹을 해 봤던 기억이 있다.
  단, 요즘은 히치하이킹하는 사람들을 납치하는 사례가 있다고 하니,,,주의하도록 하자. 요즘은 정말 무서운 세상이다.



2.                                
  언젠가, 여행중에 만난 어떤 형에게 들은 적이 있다. 그 형이 파키스탄을 지나 이란에 도착했을 때, 교통수단이 마땅치 않아, 히치하이킹을 해서 수백km를 손쉽게 이동할 수 있었고, 이란 사람들의 친절에 감동했다는 그 말. 나도 언젠가 한번쯤은 히치하이킹을 하며 세계 여러곳을 돌아다녀보고 싶기도 했다.

  또 다른 기억 하나. 불가리아를 여행하고 있을 적, 지금은 이름도 기억이 잘 안나는 꽤나 유명한 수도원에 갔던 적이 있다. 교통편이 얼마나 불편한지, 우여곡절 끝에 찾아간 그 수도원의 입구에 해당하는 마을에서 택시를 타고 수도원까지 갔었는데, 택시비가 너무나도 비쌋다. 수도원 구경을 마치고 다시 마을로 내려와야 할 때, 그 때 내 눈에 띈 젊은 여행자들. 그들은 이탈리아 출신의 대학생이었는데, 차를 렌트해서 발칸유럽을 여행하는 중이라 했다. 나 또한 발칸유럽을 여행중이었으니, 혹시 괜찮다면 나를 좀 태워달라고 부탁 했다. 그들은 흔쾌히 승낙했고, 우리들은 차를 타고 다음 목적지까지 같이 간 적이 있다.



3.  시리아의 악몽. 이젠 안녕.
  내 몸을 실은 버스는 팔미라로 가지 않고 라타키아로 갔고, 나는 시리아의 모든 일정을 접고, 단지 하마와 알레포에만 가기로 결정했다. 하마로 간 나는, 도무지 뭐가 먼지 알 수 없었다. 시리아에 대해 너무나도 모르고 왔던 나는, 정말 난감했다. 단지 시리아가 사회주의 국가라는 사실 밖에 모르던 나는, 인터넷에서 얼핏 본 호텔의 이름을 기억해 냈다. 리아드호텔. 하마에서 꽤나 유명한 호텔이었다. 한국인여행자와 일본인여행자들 사이에선 말이다.
 
  리아드호텔의 위치에 관한 내가 찾은 정보중[물론 터키에서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얻은 정보였다] 내 노트에 적힌 정보는 시계탑 근처에 리아드호텔이 있다는 것. 보통 시계탑은 시가지의 중앙에 위치한다는 추측아래, 시내로 가기위해 발버둥을 쳤다. 말한마디 통하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온갖 손짓 발짓, 시계를 까지 보여주고 그림까지 그려가면서 말이다. 시계를 보여주니 몇시인지 가르쳐주는데, 나도 시계가 있단 말이다!라고 속으로 소리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 슬펐다.

  결국! 사람들의 도움으로 시가지를 찾아갔고, 거기서 또 물어물어 리아드호텔을 찾아갔다. 거리에 가끔 보이는 일본인 여행자와 한국인 여행자! 아, 그들을 보는순간 표현은 안했지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기뻣음은 틀림없다. 외국에서 한국인 여행자를 만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모순된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너무 힘들고 지쳐있었으니까 말이다.



4. 크락데슈발리에로 가다.
  그는 하마[Hama]에서 뭘 할까를 생각하다가, 같은 방에 있던 일본애들에게 정보를 하나 얻었다. 크락데슈발리에성. 소위 십자군성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그곳이 일본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의 배경이 되었다는 성이 하마의 근처에 있다는 것. 그래서 그는 그 곳에 한 번 가보는게 좋을 것 갔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같은 호텔에 있던 한국인 여자애가 다음 날 십자군성에 간다는 말을 듣고 그와 그녀는 동행하기로 했다. 그 성에 가는 방법은 이미 호텔 내에 머물고 있는 한국 사람들이 이이기를 해 주었고, 주의사항까지 친절히 그들에게 일러 주었지만, 그 곳에 가는 일은 그들에게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이 동네에선...

  다음날 아침, 호텔 앞의 빵가게에서 그들은 크로아상을 하나 사 먹고, 크락데슈발리에로 떠났다. 하마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다른 작은 도시로 간다음 또 거기서 미니버스를 타고 가야했는데...거기서부터 그들은 길을 헤메기 시작했다. 미니버스를 잘못타서 시내를 뱅뱅 돌다가 다시 돌아온 곳은 버스터미널. 다행히 그들은 다른 방향으로 가서 수소문한 끝에 크락데슈발리에로 가는 미니버스를 제대로 탈 수 었고. 그리고 무사히 십자군성에 도착해서, 구경을 마쳤다.


5. 이런 사기꾼들한테는 돈을 지불 할 순 없지!
  십자군성에서 돌아오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일정 인원의 사람이 필요 했다. 미니버스 정원이 6명 이상이 되어야, 미니버스가 출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와 나는 좀 늦어버려 그 성에는 둘만 남게 되었고, 미니버스 기사는 터무니 없는 금액의 차비를 요구했다. 훗, 우리는 순순히 그들의 요구에 따를 수 없었기에, 그냥 걸어서 성을 내려왔다.
  내려 오는 길에 지나가는 차들을 향해서 손을 흔들었지만, 차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그나마 세워주는 애들이 하는 말이라곤, 얼마줄래? 내가 하마까지 데려다줄게 였다. 어이가없어서, 꺼지라고 한마디 한 다음 그들을 쫒아보냈다.

  언덕의 능선에 위치한 마을은 비교적 조용하고 아름다웠다.[멀리서 볼때] 동네 아이들은 착해 보였다. 사진을 찍어달라는 아이들이 있었다. 꼬맹이들은 우리에게 사진을 찍어달라며 우리를 에워쌋고 우리는 그들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식료품가게 주인의 자식쯤 되어 보이는 그들이었는데, 가게 안의 토마토가 크고 먹음직 스럽게 보이길래, 사진을 빌미로 아주 헐값에 토마토를 구입하기도 했다.



6. 히치에 성공하다.
  그들은 얼마나 더 가야  차를 얻어 탈수있을까?하는 대화를 했다. 설마 우리가 하마까지 걸어가야 되겠어?ㅋㅋ 마을 저 아래에는 고속도로가 있었는데, 거기엔 차들이 많으니 라고 말하며 그들은 십자군성을 뒤로 한 채 성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그들이 중간 쯤 내려 왔을 대 마침 동네 슈퍼마켓에 들른 물류차량[동네 수퍼에 물건을 대어주는 차량]이 였고 그들은 운전기사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은 사정을 설명하며 기사에게 좀 태워달라고 하니, 타라고 하면서 보조석의 짐들을 치웠다. 굳이 짐들을 치울 필요까진 없었는데, 그 운전기사는 그들에게 정말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하지만, 고속도로가 있는 곳에 다다르자 그 기사는 자신의 방향은 하마쪽이 아닌 반대쪽이어서, 더 이상 태워 줄 수 없다는 말과 함게, 행운을 빈다며, 고속도로 어귀에 그들을 내려놓고 떠났다.

  고속도로 어귀에 서서 그들은 지나가는 트럭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이나 다를까, 거대한 트럭이 그들 앞에 와서 멈춰섰고. 어디까지 가냐고 묻자, 그들은 "하마"를 외쳤다. 그러자 트럭의 운전 기사는 그들을 향해 타라고 손짓을 했다.  어차피 그 쪽 방향을 향해 가니까  가는데 까지 데려다 주겠다는 이야기였다. 대형트럭이라서 그런지 안은 비교적 넓었다. 트럭은 기들을 싣고 고속도로를 무섭게 달려가고 있었고, 트럭 운전기사는 그들을 향해 이것저것 말을 걸어왔다, 후훗, 그들은 알아들은건 별로 없었지만, 나름대로 그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려는 것 같은 느낌에 미소와 웃음으로 응수했다. 아 정말 착한 시리아사람들!이라고 그는 생각하고 생각했다.
 
  트럭은 그들을 하마로 가는 버스가 있는 버스터미널까지 실어었고,그들은 그곳에서 하마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 나의 구세주 리아드호텔



- 하마 시계탑


- 하마 시내의 한 겔러리, 작가들의 사회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담겨 있는 작품들이 많았다



- 역사의 흔적,



- 이렇게 보면,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 볼 것 같기도하다


- 식료품가게 꼬맹이, 옆에 꼬맹이는 왜 미니어처가 되었지?ㅋㅋ



- 아저씨 사랑해유~
반응형

Ep] 시리아, 다마스커스 - 잘못탄 버스는 어디로 가는걸까?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0. 11. 6. 13:15

반응형

1.  누구나 한번 쯤 경험해 봤을 만한 경험.
  버스를 잘못 타서 반대 방향으로 가거나, 버스를 타고 나서 막상 정신을 차려보니 자기가 알 지 못하는 곳에 버스가 도착 해 있던 경험. 혹은, 지하철을 반대로 타서, 황급히 내려서 반대쪽 지하철을 탔던 경험. 
  나만 그런건 아니라고 믿는다[그렇게 믿고 싶다].  습관적으로 지하철을 타다보니, 가끔은 목적지와는 반대방향으로 타기도하고, 충무로역에서 3호선을 타야하는데, 습관적으로 4호선 플랫폼으로 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나 자신을 자책하기도 한다. 버스를 탈 때도, 내가 잘 알지 못한 곳에서 버스를 탈 때 반대로 타고 가다가 내려서 길을 건너서 다시 타고 간 적도 수도 없이 많다.
  혹시, 당신은 그런 경험이 없었는지요?

특히, 여행을 가서,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가야할 때 그런 경험을 더 없이 많이 하게 된다. 장거리 시외버스는 덜하지만, 시내버스에서는 버스 잘못타기를 거듭 반복 하면서 스스로를 멍청하다고 자책을 하기도 하지만 그러는 사이  현지인 만큼의 버스타는 스킬을 습득하게 된 자신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릴 수도 있다.



2.                           
  그는 터키 아다나의 친구들을 배웅을 받으며, 알레포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가 아침에 도착한 곳은 시리아 제2의 도시 알레포(Aleppo, Syria). 갑자기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에 가고싶다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기에 그는 일정에도 없던 다마스커스를 먼저 구경하러 가기로 결정했다. 묻고 물어, 미니버스와 대형버스를 번갈아 타며, 시내 외곽에 위치한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는 무작정 다마스커스(Damascus)로 가는 버스표를 끊고 버스에 몸을  실었다.

  차도르를 한 여인과 한 동양인 여행자와 몇몇의 승객을 실은 버스는 사막을 달려, 하마(Hama)에 도착했고, 그는 빵으로 허기를 채웠다. 그의 옆에 앉은 시리아사람은 아무것도 모르는 그를 많이 도와주었다[사실, 버스 티켓을 파는 사무실에서 만난 그 사람 덕분에 그 버스회사 티켓을 가지고 있으면, 버스 정류장에 있는 한 식당에서 차이(짜이,차,Tea의 한 종류)가 한잔 무료라는 사실을 알고 차를 한 잔 얻어 먹을 수 있었다].

  버스는 사막을 달리고 달려, 시리아 남부에 위치한 다마스커스에 도착했다. 사실 그는 막막했다.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사람들에게 물었지만,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워 보였다. 그의 손에는 지도도 없었고, 가이드북도 없었고, 배고픔이 찾아 왔고, 태양은 강렬했고, 그의 마음 한켠에 존재하고 있던 두려움이 스물스물 기어나왔다. 일단 사람들에게 묻고 물어, 무작정 시내로 향한 그는 미니버스를 타고 시내쪽으로 가다가, 번화가인것처럼 보이는 곳에서 내렸다. 경찰에게 호텔을 물으니 그가 가야할 방향을 일러 주기에 그 쪽으로 가니, 과연 호텔들이 많이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싸구려 호텔들 처럼 보였지만, 가격은 생각보다 비쌋다. 뭐지 이건? 그가 생각하던건 이런것이 아니었다.


3. 결정을 해야했다.
  다마스커스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오늘 여기를 떠서, 원래 가려고 했던 시리아 동부의 팔미라 유적지로 갈 것인가를. 공원에서 누군가가 다가와 커피 비슷한 걸 주길래, 먹기 싫다고 했더니, 공짜라면서 먹어 보란다. 그래서 먹었더니 뭔 이런 맛이 다있어?라는 생각과 함께 버려버렸다. 그리고 잠시 뒤 이상한 커피같은걸 준 녀석이 와서 돈을 내놓으라길래 화를 좀 내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니 그냥 되돌아 가는것이었다. 기분이 사실 좀 나빠서, 나는 당장 팔미라로 떠나기로 결정했다. 
 
  아니 뭐 다마스커스까진 그럼 왜왔음??


4. 버스정류장에 가서 팔미라행 버스티켓을 끊었다.
  출발 시각은 오후 다섯시. 하지만 오후 다섯시가 되어도 버스가 보이질 않았다. 버스 회사로 가니, 마냥 기다리라고만 한다. 이거 뭐 왠지 불안했다. 사기당한 기분이었다. 다섯시를 넘긴 시각 시간이 흘러 다섯시 반 쯤 되자, 같은 버스회사의 버스가 들어오길래 그리로 달려갔다. 그리고 내 표를 내밀면서 팔미라를 외치니, 타라고 했다. 이제 팔미라로 가는 구나.

  ByeBye! 다마스커스. 저 멀리 사막 뒤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그는 좌석에 몸을 뉘였고, 버스는 지는 태양을 옆에 두고 북쪽으로 달렸다. 어 이상하다? 팔미라는 동쪽인데, 왜 계속 북쪽으로만 가지? 북쪽으로 가다가 동쪽으로 가려나? 라고 그는 생각을 했지만, 너무나도 피곤했기에 아무 생각 않고 될대로 대라는 식으로 그는 잠을 청했다.


5. 버스기사가 소리쳤다.
  내려내려, 다왔어. 여기 팔미라야? 일단내려. 종점이야. 나는 내렸다. 이미 늦은 밤이었다. 시간은 10시를 가리키려 하고 있었고, 이제 버스정류장에서 다른 도시로 출발하는 버스도 없었다. 술취한 택시기사가 나에게 어디를 가냐고 물었다. 그래서 팔미라 유적지에 가낟고 말하니, 택시에 타란다. 자기가 데려다 주겠다고. 가격이 얼마냐니까, 여기까지 타고온 버스비보다 더 비싸다고 한다. 뭐 장난하는 거임? 술취한 택시기사와 실랑이를 벌이다가, 경찰에게 물었다. 팔미라 유적지를 가려면 어디로 가야하나? 그러자 경찰이 말했다. 여기는 라타키아라고. 아 그니까 팔미라 유적지는 어느방향에 있냐고. 그러자 또 말한다. 라타키아라고. 라타키아? 라타키아가 어딘지는 모르겠고 난 팔미라 유적지에 가려고 한다니까? 라고 말하면서..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6. 그는 카메라를 꺼냈다.
  다마스커스의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외국인 배낭여행객에게서 잠깐 지도를 빌려 본 일이 있었는데, 그 때 시리아 지도를 사진으로 찍어 놨었다. 그 사진파일을 확대해서 보았다. 라타키아, 라타키아 라고 속으로 되내이면서, 파일을 뒤졌다. 라타키아!
  그는 절망하려 했지만, 그럴 힘도 없었다. 어이가 없었다. 버스기사에게 욕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버스기사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버스회사도 이미 문이 다 닫혀 있었다.
  라타키아와 팔미라는 서로 반대쪽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알레포가 서울. 다마스커스가 광주. 팔미라가 영덕, 동해 그쯤? 그리고, 라타키아는...........대천 정도 되는 위치였다. 어쩜 이렇게 될수가 있지?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버스기사는 팔미라로 간다고 말했는데, 왜 나를 싣고 여기로 온것이냐!라고 생각했다.



7. 나는 따질 생각이었다.
  아침이 되면 버스 회사에 돈을 환불해 달라고 할 작정이었다. 그리고 버스 경찰에게 물어보니, 팔미라로 가는 아침 버스가 있댄다. 팔미라, 거긴 인연이 아닌 가보다.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냥 원래 두번 째 목적지였던, 하마(Hama)로 가기로 했다. 어제 그냥 하마에 섰을 때 내렸으면 이 고생도 안했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버스 정류장의 벤치에서 침낭을 펴고, 잠을 청했다.


8.                             
  아침에 버스회사를 찾아간 그는 당연한 결과라고 할만한 소릴 들었다. 우리는 모르겠으니, 다마스커스 회사에 문의를 해 보아라.라고 하는 말을. 그랬다. 지금에 와서 어쩌겠는가? 그는 그냥 하마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그리고 버스정류장에서 잠베를 치면서 버스를 기다렸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시리아, 왜 이토록 나에게 시련을 주는건데?





 


- 다마스커스 시내

 



- 넘어가는 태양


- 라타키아 버스터미널


- 사진을 찍어 달라던 버스기사들


나에게 먹을 것을 사 줬던 애들


- 내가 불쌍해 보였나??


- 구두닦이 꼬맹이들


- 다른 버스 기사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