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 오는 이유?

- 길을 걷다, 세계여행/Feel-ing, 세계일주-ing, · 2009. 12. 26. 12:22

반응형

- 호주에 오는 이유?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로 오는 사람은 많다.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를 오는 이유도 다양하다.
나처럼 여행중에 경비를 벌기 위해서,
한국에서 공부가되지않아 기분전환을 할 겸,
학비를 벌기위해(호주학교 or 한국학교)
취직이 되지않아서(본국에서),
영주권을따서 호주에 정착하기 위하여,

젊음의 특권이니까.

다양한 이유로 호주로와서 돈을 벌기를 원하고, 여행을 하기도 한다.

호주 워킹홀리데이,
정답은 없다.

성공과 실패, 그것도 자신이 판단하는 것이다.

 

someday, Oct 2009.
Fremantle, Australia.



- 교외의 한적한 주택가. 오리지날 호주의 하늘 그리고 구름



- perth city




- 콴타스, 호주의 트레이드마크?





 

반응형

호주에서, 공장에서 일하다 (2)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2. 11. 23:28

반응형


일을 하다보면 돈욕심이 생길것이라는 말을 들었었다.
"돈욕심?"


일을 시작하고 일주일,
일주일 일 한것에 대한 페이를 받았다. 그 주는 운이 좋겠도(?) 주말까지 일했다.
텍스를 제외하고, 1200달러가 조금 넘는 금액,,,한국돈으로 120만원이 넘는 돈을 일주일만에 벌었다.

계산해보았다.
어느 정도 일하면, 여행을 하는데 필요한 돈이 모일까?
비행기 표값을 포함해서, 6-7000달러를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공장에서 받는 돈이란 엄청 큰 금액이었다.

돈욕심?
생길만도 했다. 일주일만 일하면, 내 통장으로 백만원이 들어오는데,,,,
그래도 나는 여행을 해야 했다. 더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여기서 일 좀 더 하고, 내년 6-7월까지 천천히, 쭉- 여행하고 싶었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
해야할 게 너무나 많았고, 한국에 돌아가야하는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3월 학교 개강전까진 가야하니까,, 그 전에 이것저것 준비도 해야하고..

딱, 두달. 8주만 일하자고 생각했다.
그러면 여행하는데 필요한 돈은 충분히 모을 것 같았다.
거기다가, 호주에서 내가 하고싶었던 서핑과 스카이다이빙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공장에서의 일은 단순하고 지루한 일들이 많았다.
쉽지만 지루한 일들.
특히, 내가 가장 많이한 헝그리잭베이컨을 트롤리에 담아서 스모크하우스에서 굽는일은 단순하고, 쉽지만 엄청난 물량이어서 지루함의 극치였다. 나는 나중엔 정말 헝그리잭이 싫어졌다.
하루에, 약2000개의 베이컨의 비닐을 벗겨내어 스모크하우스에 넣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일은 정말 지루함과의 싸움이었다.

그 외의,
필라델피아,,,내가 공장을 그만두는날 마지막으로 한 일이 필라델피아였을 정도로 나를 괴롭혔던 녀석,,
C.O.B,,이녀석 덕분에 나의 이두근이 많이 자라났다..
버지니아 햄, eye bacon, R/ON bacon, R/Less bacon, Lenaldo bacon, Subway bacon, Subway cut, Roll mild, Roll hot, Roast beef, Deli ham, Polony, Triple smoke ham(T.S.H), Honey cure ham 등등,,,여러종류의 햄과 소세지, 베이컨을 다루었다.


-소세지, 햄의 이름은 왜 세계 각국의 유명도시 이름일까?
우리에게 잘 알려진 비엔나 소세지가 있다.
비엔나,,오스트리아의 수도 빈(Wien)의 다른 이름이 비엔나Vienna이다.
프랑크푸르트라는 소세지가 있다. 꽤 맛있는 녀석이었다.
버지나아햄이라는 녀석이 있었다. 줄무늬 스타킹같은 곳에 들어가는 녀석.
그리고 나를 괴롭혔던, 필라델피아.
델리 햄..
등등, 소세지나 햄의 이름이 세계각국의 도시이름인 경우가 많은 것 같았다. 그 도시가 그 햄으로 유명하나??


-어떤 일을 하느냐가 중요한것이 아니라 누구와 함께 일하느냐가 중요하다.
대부분의 일들은 두명/세명이서 팀을짜서 일을 해야 했다. 고기를 기계에 넣고, 망에 넣고, 그걸 트롤리에 싣고,,뭐 그런식으로 진행되거나 아무튼 보통 두명/세명이었다. 물론 혼자 해도 되는 일이 있긴 했지만 혼자해도 되는일도 둘이하면 더 빨리 끝낼 수 있기 때문에 두명이서 같이 팀을 이뤘다.

나는 그 공장에서 가장 늦게 입사(?)를 했기에, 이곳 저곳 돌아다니면서 다른 애들과 팀을 이루어서 일을 많이했다. 그러다보면 가끔씩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기본적으로 한국사람들과 같이 일을 하면, 힘든것도 돌아가면서 하고, 무거운것도 같이 들고 협동, 단합이 잘 된다. 물론, 마음이 잘 맞는 외국애들과도 잘 된다.

하지만, 가끔씩, 정말 게으른 애들하고 일을 하게 되면,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도무지 움직일 생각을 안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당연히 자기가 움직여야할 상황에서도 수수방관이다..........짜증백퍼센트다..
가끔씩 너무 화가날 땐, 니가 하라고 소리를 치곤했다.
뭐 그래도 어쩌겠는가?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동룐데, 그러려니 해야지,

어디서나 마찬가지지만,
일을 하거나 뭔가를 할 때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누구와 하느냐가 중요하다.


10월이 지나고, 11월이 지나가려고 하고 있을 때 쯤,
내가 이제 일을 해야할 날들이 얼마 안남았음이 실감났다.
"드디어 남미로 떠나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에 기쁘기도 했지만,
그동안 같이 일하면서, 나름대로 정이 든 녀석들과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살짝 아쉽기도 했다.
웬지, 내가 빠지면 공장이 잘 안돌아갈것같은 느낌이 들기도했다..-_-^


내가 일하는 오후반은, 오전반 보다 사람수가 대략 10배?정도 적었다. 내가 일하는 키친룸 Kitchen Room 에는 프로덕션Production 애들 4명과 키친 12명이 일하고 있었다.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하루의 반 이상을 그들과 함께 생활했다. 그리고 같이 이야기하고, 얼굴을 마주 봤다.
사람수는 적었지만, 다양한 국적을 가진 이들이 모여있었다.
한국,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콩고, 수단, 아프가니스탄, 스리랑카, 독일, 필리핀, 호주, 에티오피아, 뉴질랜드.

일을하는 이유는 대체적으로 비슷하긴 했다. 나를 제외하고. 그래서 애들이 나를 특별하게 보았다.
여행중. 그리고 또 일을 끝내고 여행을 갈 것이라는 나를.



12월의 첫 째주,
첫 째주에 일을 끝내려고 했었다. 이미 내가 호주에 처음 도착했을 때 일을 하려던 기간보다 2주나 더 지연되었지만 돈이 어느정도 모였다. 비행기 표값이 비록 생각보다 많이 비쌋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돈을 많이 벌었다.
슈퍼바이저에게 말했다. 다음주에 그만두겠다고.
역시 쿨한 슈퍼바이저. "한국가냐?"고 묻길래 그냥 구구절절 설명하기도 귀찮아서 "한국간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잘가라는 말한마디와 악수를 했다.

수 많은 한국인과 여러 국가의 사람들이 이 공장에서 일을하고 떠났을 것이다. 최대 6개월, 세컨비자까지 하면 1년. 슈퍼바이저들은 그런 것에 익숙한 것 같다. 일을 잘하든 못하든, 간다는 사람을 붙잡지는 않는다. 일을 하려고 기다리는 사람도 많겠거니와, 수십 년간 일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그렇게 만나고 보내왔을지를 생각한다면.

그렇게 나의 공장일은 12월 둘 째주에 접어들고나서 끝이났다.
그동안 내가 공장에서 번 돈은, 텍스를 제외하고 1,1000달러가 조금 넘는 금액.  엄청난 돈을 나에게 주었다.
그리고, 공장 덕택에 내가 호주에서 하고 싶었던 두 가지를 할 수 있었다.








- 스모크하우스의 굴뚝,


- 일이 끝나고, 공장 전체를 청소할때 뿌리는 솝soap. 하얗게 뒤덮히는게 눈 같다. 이거 할 때가 젤 기분이 좋았다.


- 필라델피아와 그 왼쪽엔 아이베이컨


- 칸쿠와 자바, 형제


- 칸쿠,


- 필립,


- 아멧,


- 칸쿠와 오지


- 테라,


- 가브리엘






반응형

호주에서, 공장에 취직하다! - 01,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2. 5. 18:12

반응형


2009년 9월의 마지막 주,
사실상 호주 농장에서의 마지막 일이 끝났다. 도넬리리버 와인팜.
농장에서 같이 일하던 사람들과 추석때 부침개도 해먹고 추석분위기를 내자고 이야기하던 때가 있었지만,
그 이야기는 없었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우리들은 해고를 당했으니까..

어느덧,
10월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호주 농장에서의 약 7주간의 노동.

나에게는 더 이상의 선택은 없었다. 무조건 호주에서 일을 해야 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느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돈이 있든 없든 여행을 떠나야 한다고. 떠나야만 한다고.
나에게 더 이상 시간이 많지 않았다.


소식.
10월이 되면 슬슬 퍼스 주변의 공장들이 고용을 늘리고 크리스마스 준비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리고, 퍼스에서 만난 형이 나에게 말해주었다.
"10월부터 공장에서 사람 많이 뽑아보니까, 어떻게든 들어가봐."

그래서 생각한 방법.
어떻게든 인사담당관을 만나야 했다. 그래서 일 좀 시켜달라고 무작정 들이댈 생각이었다.

농장에 일을 하러 가기전 여러 공장을 돌면서 어플리케이션(Application)을 써 놓은 공장들이 퍼스와 프리맨들에 몇 군데 있었다.
난 그 중에서 가능성이 있는 몇 개의 공장을 다시 찾아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공장의 리셉션(Reception)에 찾아가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 X시에 인터뷰를 보러 오라고 해서 찾아왔다."
그러면 리셉션에서 일하는 여자는 인사담당자에게 호출을 해서 그 날 인터뷰일정이 잡혀 있는지 물어보았다.
하지만, 그 방법이 생각만큼 쉬운것은 아니었다.

인사담당관이 약속이 없다고 말하면, 만나지도 못 하는 경우도 있었고,
어떤 날은 그 날이 인사담당관이 쉬는날이기도 했다.
어쩌다가 운 좋게 인사담당자를 만나면 나는 기회다 싶어 거짓말을 해 댓다.
"며칠 전에 전화가 왔는데 오늘 이시간에 인터뷰하러 오라고 했다고...다른 일도 그만두고 왔다고."
하지만 모두가 헛수고였다. 그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수없이 인사담당자을 만나서 이야기를 했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냉정했다.
수 백명의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는데, 나 한명 일 할 자리가 없는것에 대해 한탄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10월이 시작되려하는 그 주에 마지막으로 어플리케이션을 썻다.
그리고, 10월이 시작되어도 공장에서는 소식이 없었다.
그래서, 퍼스를 떠났다.
그런데! 퍼스를 떠나고 바로 다음날 전화가 왔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전화.

프리맨틀 소재의 소세지 공장 돌소냐(DORSOGNA).
일을 하러 오라고 전화가 온 것이었다.



- D'ORSOGNA, 로고.
 나에게 참 고마운 회사다.
반응형

나는 배신자인가?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1. 29. 23:22

반응형
10월 2일 목요일.  PM 4:00.
퍼스(perth)에서 일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카날본으로 떠나기로 결정한 세 남자.


오후 다섯시.
그렇게 퍼스를 떠났다.


10월 3일 금요일,
1000Km 북쪽으로 차를 달려 도착한 작은 해변도시. 카날본Carnarvon. 열대기후에 가까운 곳.
일년 내내 바나나 농사를 하고 있는 곳. 일년 내내 농장일이 있는 곳이라는 말을 듣고 온 이곳.

일을 찾기위해 농장을 돌아다니던 중 어디선가 걸려온 한통의 전화...


프리맨틀의 어느 공장 에서 걸려온 전화.
그리고 그 날 오후 1시까지 공장 오피스로 면접을 보러 오라는 통보.

하지만, 절대 갈 수 없다.

3시간 만에 1000km가 넘는 거리를 무슨수로 간단말인가? 비행기도 없는 곳에서..
우여곡절끝에 인터뷰는 월요일로 미뤘고,
수 많은 고민 끝에 퍼스로 돌아가기로 한다.


다른 두 남자의 만류.
함께 카날본에서 일하자는 제안. 같이 있자는 제안.
모든 미련을 버리고 여기까지 왔으면 깔끔하게 여기서 새로, 함께일하자는 그들.
이미 농장도 잡았는데 퍼스까지 돌아 갈 필요가 없잖냐면서, 같이 있자는 그들.


갈등.

돈과 여행과 정(情)과 사람들.
그토록 기다리던 기회.

이 기회를 놓치기 싫었다. 
그리고 마음 한 구석엔 그들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혼자이고 싶었다.
이젠 새로운 곳에서 다시 한 번 시작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결정한 퍼스行.

만남과 헤어짐.
일과 일자리.
떠남과 정착.
여행자,

워홀러의 숙명이라고 믿고 싶다.







- 퍼스로 가는 길, 로드하우스.


- To Perth.


- Greyhound From Carnarvon.


- 카날본의 밤거리.


반응형

I've got the job again!! - 하루만에 두개의 일자리를 구하다!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1. 28. 22:08

반응형

지평선 넘어로 뻗어있는 도로를 달려 퍼스Perth에서 카날본Carnarvon까지 와버렸다. 997km.


오전 6시,
꿈을 꿨다. 왠지 기분이 좋은 꿈. 카날본으로 가는길이 상쾌했다. 왠지 일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오전 8시.
카날본 시티센터에 도착을 했다.
여기가 카날본이구나..! 정말 휴양지같은 느낌이었다. 실제로 요트나 카약같은걸 차에 싣고 오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카날본에 부는 바람도 다합(Dahab, 이집트의 홍해에 있는 작은 휴양도시)에서 내가 느꼈던 바람과 유사했다. 기후도, 풍경도.. 다합에 대한 기억이 나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오전 9시.
시티 비지터센터(city visitor centre)가 문을 열자마자 들어가서, 잡에이전시(job agency)가 어디에있는지 물어봤다. 시티 쇼핑센터에 위치한 에이전시를 가르쳐주길래 바로 그리로 갔다.
에이전시에가서 잡을 구하고 있다고 말을 하니, 직접 농장을 찾아가보라면서 농장들이 모여있는 위치를 지도에 표시해주었다. 플랜트Planet. 어마어마했다.


그 이후,
농장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가니, 정말 거대한 대 농장들이 줄지어 있었다. 한 농장주에게 일이 있을만한 농장좀 알려달라고하니 카날본에만 170개가 넘는 농장이 있는데 자기는 그걸 다 알 수 없다고, 그냥 열심히 돌아다녀 보랜다...
대농장이 170개,,,,,,,,??? 거기서 일자리를 설마 못구하랴?

이미 일을 하고 있는 농장도 많았고, 아직 시즌을 시작하지않은 농장도 많았다. 농장을 하나하나 차례대로 돌아다녔다.

오전 10시경,
농장을 돌아다니면서 농장주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도중, 어디선가 전화가 왔다. "꿈이 드디어 현실이 되는건가?!"


전화,
"Hello"
"Yes, this is Mr, Chang"
"i'm mrs.....후략."

1시까지 공장으로 면접을 보러 오라는 전화.
카날본에서 퍼스까지 1000km거리를 3시간만에 어떻게 가지????????

프리맨틀의 아는 형에게 전화를 했다.
"형, 나 돌쏘냐에서 면접보러 오래요,"
"잘됐다 야, 당연히 가야지"
"네 형, 가야죠, 근데 저 지금 카날본에 있어요"
"아, 뭐 일이 또 그렇게 되냐???"
"그래서 말인데, 형이 대신 면접 좀 가주시면 안되요??"
"나도 니 맘 알겠는데, 나 예전에 거기서 일해서 걔네들이 나 보면 알아 그냥 사실대로 말해, 카날본에 있다고 내일 간다고"
"아... 네 알았어요 형, 어쩔 수 업네요. 나중에 다시 연락드릴게요"

방법은 없었다.
카날본에서 비행기도 없었고, 버스도 없었다.
비행기라도 있으면 비행기라도 타고 가고 싶었다. 버스는 다음날 새벽2시. 퍼스엔 오후4시에 도착한다.

공장에 다시 전화를 했다.
"오늘 오후1시에 인터뷰보러가기로 한 MR. CHANG인데, 사실 내가 지금 카날본에 있다.
인터뷰를 가려고, 비행기도 알아보고 버스도 알아봤는데 오늘은 교통편이 없다. 인터뷰를 내일이나 월요일로 미루면 안되겠느냐?"고 말했다.

"알았다. 일단 나중에 다시 전화 주겠다. yes or no를 조금 있다가  전화로 알려 주겠다." 는 대답.
초조했다.
그래도 한 숨 놓았다. 
나는 꿈을 믿었다. - 꿈에서 교수님이 나중에 발표하는 것을 허락했기에 믿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농장을 컨텍(contact)하러 갔다.
어느 한 농장에서 내일 일을 하러 오라고 했다. 일단 캐시잡으로 일을 시켜준댄다. 농장 어커머데이션도 시설도 좋았고 가격도 쌋다. 그렇게 일이 일사천리로 풀렸다.


일단 처음 숙소로 잡은, 카날본 백팩커스로 돌아왔다.
같이 온 동료들이 나에게 말했다.
"농장도 컨텍됐고, 우리랑 같이 여기 농장에서 일하자"라고.

고민했다. 많은 생각을 했다. 대답을 하지 않았다.
'여행, 돈, 시간, 사람, 정(情), 확실성과 불확실성' 모든걸 생각해야했다.

많은 고민끝에 나는 입을 열었다.
"퍼스로 다시 돌아갈게요"
"퍼스에 모든 미련 다 버리고 왔으면 여기 같이 있자. 여기까지 와서 니가 이러면 배신이다"라는 대답.

나의 상황에 대해서 설명했다.
이제 얼마남지 않은 시간. 그리고 필요한 돈. 내년까지 여행을 마쳐야하는 나의 상황. 시간+돈 과 사람 사이의 갈등이었다.

결국, 퍼스로 다시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퍼스로 가서 공장에 일단 가보지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을 평생 원망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날은 컨텍했던 농장에서 반나절 일을하고 현금으로 돈을 받고 나는 퍼스로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지만, 일이야 어떻게 되든 퍼스로가지않으면 정말 후회할 것 같았다. 


후담이지만,
결국은 모든일이 잘 풀렸다.
그리고 카날본에 같이 갔던 사람들과도 지금 잘 지내고 있다. 가끔씩 만나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들은 다시 퍼스로 내려와서 다른 농장에서 일하고 있고, 한명은 몸상태가 안좋아서 한국으로 귀국했다.







- Great north coast hwy의 로드하우스,


-


- 퍼스로가는 버스, 그레이하운드. 카날본-퍼스의 가격이 190AUD....쩐다..13시간버스가 20만원 ㅠ


- 호주에서의 마지막 농장일,


- 바나나밭 중간에 수박을 심었다...


- 바나나 열매들, 많이 따먹었다 ㅋㅋ



반응형

꿈 이야기 - 카날본으로 가는 길 로드하우스(Road house)에서,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1. 28. 20:39

반응형

혹시, 당신은 꿈을 믿으시나요? 혹시 믿는 다면,
꿈이 나의 미래를 예지한다는 느낌으로? 아니면 꿈은 반대라는 생각으로?
아니면 그냥 개꿈이라고 생각하나요?

전 꿈을 믿는 편입니다.

보통, 난 너무 피곤해서 새우잠같은걸 잘 때 꿈을 잘 꾸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 꿈을 꾸는 경우가 있다.
그 다음날이 대체적으로 중요한 날일 때. 뭔가 의미있다고 생각되는 꿈을 꾸는 편이다.

예를들어, 시험기간이라던가, 뭐 아무튼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일을 하는 날일 때 말이다.

그리고 호주에서, 뇌리에 선명하게 기억될만한 꿈들을 몇 개 꾸었다.



꿈을 꿨다.
- 퍼스에서 북쪽으로 1000km 카날본Carnarvon으로 가는 길, 어느 로드하우스의 주차장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꿈 속에서,
한 후배가 나에게 전화를 했다.
"오빠, 수업에서 조별 발표를 해야하는데 오빠 우리조에서 같이 발표 하실래요?" 라고 말했다.
난, "Ok"라고 대답을 했다.

왜 갑자기 그 아이가 나에게 전화를 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왜 하필 그애 였는지.
학교 다니면서 많이 마주치지도 않았다. 서너번 정도 본 것 같다. 술도 같이 딱 두번 먹었다. 싸이는 일촌이지만, 뭐 그냥 보통 선후배사이다. 별로 친한사이는 아니다.
왜냐하면 친할 기회가 없었으니까. 09학번.....ㄷㄷ...나는 세계일주를 한답시고 09년 3월 한국을 떳으니까.


꿈 속에서,
같이 발표 조모임을 하게 되었다.
발표준비를 다 끝내고 발표를 하는날이 되었는데 갑자기 내가 너무 급한일이 생겨서 발표를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교수님한테 전화를해서 발표를 다음으로 미루면 안되겠느냐고 부탁을 했더니 다음에 발표를 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뭐 지금은 기억이 잘 안나는 이것저것을 하고나서,
다시 발표를 하게 되었다.

꿈의 끝.


아침 6시 경,
잠에서 깨어났다. 약 4시간을 차 안에서 눈을 붙이고, 카날본으로 다시 떠났다.


왠지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냥 느낌이.
그리고 왠지 어디선가 내 전화기로 전화를 해 줄것 같았다. 그냥 이유없이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일자리에 관한 전화가 올 것 같다는 근거없는 믿음이 생겼다.
혼자 꿈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았는데, 왠지 공장 어디선가에서 나한테 전화가 올 것 같았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아무튼 그 날 아침부터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 날, 오전 10시 경.
카날본에 도착을 해서, 농장들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일자리를 알아보러 다니고 있었다.
다행히도 시내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서 일을 구하러 다니고 있어서 전화가 터지는 구역이었다.

농장을 돌아다니며 농장주와 이야기를 나누던 그 때, 어디선가 일반전화로 걸려진 전화가 내 휴대폰을 울렸다.
프리맨틀Fremantle 에 위치한 소세지 공장에서 전화가 온 것이었다. 돌쏘냐(DORSOGNA). 내가 얼마나 가고 싶어하던 공장이던가!
오늘 오후 1시까지 인터뷰를 보러 공장으로 올 수 있는지 묻길래, 당연히 오케이했다.

인터뷰까지 남은시간 3시간.
1000km가 넘는거리를 3시간만에 어떻게 간단말인가???????
일은 그렇게 되었다.

여기서 부터 나는 참 절박했다.
그리고 같이 카날본에 간 사람들은 참 착찹해했다.

그날의 꿈. 잊지 못한다.



- 잠을잤던 로드하우스,
모든건 우연의 일치였을까? 카날본에서 퍼스로 돌아오는 버스도 여기서 쉬었다.




반응형

I'm looking for a job again! - 다시 구직자의 삶으로(1)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1. 28. 07:18

반응형

농장에서의 즐거웠던 나날들은 끝이 났다.
그리고 나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더이상 쓸모없어진 사냥개처럼 내동댕이 쳐 졌다.

나는 어느정도 다 예상하고 있던 결과였기에 최대한 빨리 다른 잡(job)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이제 여름이 시작되고 있어서 슬슬 일자리가 많아 진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그건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퍼스시티(Perth city)의 백팩(Backpackers)도 이미 일자리를 찾아서 몰려든 사람들로 붐볐다.
불과 두달전만해도 한산하던 백팩에 도미토리방이 없을 정도라니!

세명이서 같이 다니기로 해서, 같은 숙소에 같은 방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물론 비싼방은 있었지만)
여차저차해서 방을 잡았다. 내가 호주에 왔을 때 두번째로 갔던 백팩이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더니, 티격태격하기도 했지만 어쨋든 일을 다시 구해야 했다.

또 다시 시작되었다.
일을 구하기 위한 사투가,,,,2개월 전보다 경쟁자들이 더 늘어난 상황이었다.
거기다가 나에게 또하나의 조건이 더 붙어 있었다.
3명 모두가 일을 구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현실적으로 3명이 동시에 같은 일자리를 갈 수는 없었다. 3
명을 한꺼번에 고용하는 곳은 50군데중에 한곳이 있을까 말까한게 현실이었다.

일단은 우선 일을 구하는게 급하니까, 말을 했다.
일을 구하기 가장 쉬운 사람은,1명이면서 차가 있는 사람.
그 다음이 차가 있고 2명.
그 다음이 차가 없는 1명.
그 다음이 차가 없는 2명.
이라고.


그리고 덧붙였다. 2명짜리 일은 에이전시(Agency)에 자주 등록되니까 2명짜리 일이 나오면 먼저 일을 하러 가라고. 그리고 나서 내가 따로 가겠다고.
물론, 3명 동시에 할 수 있는일을 우선적으로 찾아보겠다고.

욕 바가지로 먹었다...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것이 현실인데. 3명을 우선적으로 알아보겠다고 했는데,
내가 나 외에 2명을 더 먹여 살려야한다는 부담감이 나를 압박해왔다. 내가 어쩌다가 이리 됐는지 ㅠ


아침을 먹고, 도시락을 싸들고 나와서 일자리를 찾으러 다녔다. 에이전시에도 가보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정보도 얻고,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알아보고.

공장들도 10월부터 크리스마스까지가 시즌이라서 사람을 많이 뽑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래서 퍼스, 프리맨틀Fremantle의 주변 공장지역에 어플리케이션을 쓰러도 다녔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통잔의 잔고는 줄어들었고, 몸에 힘도 점점 빠지는 것 같았고, 웃음도 점점 사라져갔다.

일을 구한다는건 힘든일이었다. 더욱이 나에겐 시간이 없었다.
나는 여행을 계속 해야한다는 압박이 있었고, 나중엔 돈이 있든 없든 여행을 떠나야만 했다.
있으면 있는데로, 없으면 없는데로,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다시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었다.
예전같으면 공휴일이 좋았을 텐데, 하필이면 월요일이 Queen's birthday라서 공휴일이었다.
 이런 제길,, 에이전시와 공장이 모두 문을 닫는 공휴일...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주까지 일이 구해지지않으면 나 혼자라도 북쪽으로 가야 겠다고... 북쪽에는 농장들이 많았고, 농장을 직접 찾아가야겠다고.

북쪽지방은 퍼스보다 기온이 따뜻했기에 농장이 서서히 열리고 있었다. 퍼스와 남쪽지방은 기후가 비교적 서늘해서 빨리야 10월 중순, 11월에 농장이 열렸기에 나는 북쪽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나의 생각을 말했다.
모두가 북쪽으로 갈 생각이 있는것 같기도 했다.

그러다가 수요일.
에이전시가 문을 닫기전에 한 번 더 가봐야 겠다는 생각에, 에이전시에 들렀더니 북쪽으로 2500km에 위치한 곳에 있는 수박농장Watermelon farm 에 2명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일단, 간다고 말했다..무조건 가겠다고. 지금 당장 갈 수 있다고...





- 퍼스시티의 밤거리, 겨우 저녁 7시가 조금 넘은 시간

 - 퍼스 시티
반응형

I've got the job! - 04, 호주에서의 마지막 와인농장 : Donnelly River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1. 21. 14:59

반응형

마지막 와인팜.
와인으로 유명한 호주 서남부의 마가렛리버(Margaret river)에서 약간 오른쪽에 위치한 펨버튼(Pemberton)에 갔다.
여기로 오기 전 조그마한 와인팜 몇 군데를 더 갔었다. 퍼스 근처의 스완강(Swan river)도 와인으로 유명한 곳이었는데 그곳에 위치한 와인 팜이었다. 한 농장은 포도나무가 40년이 넘은 것이었는데, 정말 나무가 돌덩이처럼 보였다. 그 나무에서 나는 와인의 향이 정말 죽여준다고 하는데, 먹어보지 못한게 아쉽다.

아무튼,
퍼스Perth에서 남쪽으로 4시간 이상을 달려 도착한 곳, 도넬리리버(Donnelly river) 와인팜.
농장안에 와이너리(Winnery)도 있었다.

쾌 큰 농장이었다.
이곳에서 엄청난 속도로 2주나 일했으니까 말이다.
농장안에는 소떼들이 몰려 다니면서 풀을 뜯고 있었는데, 농장의 잡초는 소들이 다 뜯어먹고 있었고,
농장 어커머데이션앞 뒤에 오렌지나무와 레몬나무가 몇그루 있었는데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떨어진 오렌지들을 소들이 주워먹고 있었다.
농장 주변은 숲이라서 캥거루들이 뛰어 다니고 있었다.

기후?
정말 최악이었다. 포도나무들이 언덕을 따라서 언덕 위쪽가지 쭉 심어져있었는데, 언덕위에서 보면 저 멀리 남극해가 보였다. 그 쪽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과 구름, 정말 최악!

모진 환경에서 자란 나무들이 만들어낸 와인의 맛이 좋다고,, 이곳에서 생산된 와인은 호주 와인콘테스트에서 상도 받았다. 바람이 얼마나 불던지, 포도나무가 뽑히기도했고, 밑둥이 1미터가 넘는 나무도 쓰러져 있었다.

농장일을 하면서 그렇게 많이 비를 맞아가면서 일을 하기는 처음이었다. 도착한 첫날부터 비가 쏟아졌다.
하지만, 농장주의 닥달로 인해서 비를 맞아가면서 일을 했다.
9월 중순이면 거의 우기가 끝나는 기간인데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렸다.
10-20분 비가 내리다가 해가 뜬다.
하늘 저 멀리 구름이 보이고 그 구름들이 다시 20-30분뒤에 농장위를 지나가면서 엄청난 비를 뿌렸다.

일을 하기도 뭐하고, 안하기도 뭐하고, 비옷이 없었으면 정말 감기걸려서 폐렴으로 죽었을것 같다.
그렇게 힘들게 그래도 계속 일을 했다.
그래도 농장주가 빨리 일을 끝내주기를 요청했기에 우리는 일을 많이 할 수 있었다.

한번은,
팀원들 사이에서 논쟁이 있었다.
그 날도 일을 하러 나갔다가 비가 줄기차게 내리길래 일을 그만두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러자 또 비가 그쳤다.
일을 하러 다시 나갈것인가 말것인가 논쟁이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이런 상태가 될 건데 앞으로 어떻게 할지.

본인은 여행을 계속 해야했기에 시간이 없었고,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웬만하면 일을 하자는 쪽이었다. 주 50시간 이상 하면 좋겠다는 생각. - 50시간이면 텍스를 제외하고 주당 700달러 정도 세이브할 수 있었다.
나와 같은 의견 3명, 주40시간이 기본이니까 주40시간만 쉬엄쉬엄 하자는 사람 3명. 몸생각하면서 천천히 하자는 의견이었다.
이런저런 논란 끝에, 그 날 일은 접고, 펨버튼 날씨가 개판이니 중간에 비가와도 계속 일을 하자는 쪽으로 무게가 기울었다.

처음,
계속 일을 하자고 의견을 낸 본인이 욕을 많이 먹었다.(나이가 젤 어렸으므로, 기쁨조이자 갈굼의 대상이었다)
일을 할 수 있을때 짧은 시간에 많이해서 돈을 짧은 시간에 많이 벌자는 나의 의견에 처음에 반발했던 사람들도 나중에 페이를 받고나서는 돈을 많이 받았다고 좋아했다..(처음에 욕할땐 언제고 ㅡㅡ)

아무튼,
그렇게 농장숙소에서 여러 음식도 해먹고, 재미있게 보냈다.
6명이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사람이 여럿 모이면 이런 저런일도 생기고 마음상하는 사람도 생기고 여러가지였지만 나름, 잘 버텼다.

그리고, 와이너리에서 와인도 공짜로 주어서 와인도 많이 마셨다.
어커머데이션 창고에도 와인이 있어서 그것도 꺼내 마시고,, 
오렌지나무에서 매일 오렌지를 20개 이상씩 따먹었다. 오줌과 똥이 주황색이 될 정도로 말이다..


펨버튼으로 왔을 때 컨츄렉터가 우리에게 한 말이 있었다.
"이 농장을 빨리 끝내면 다른 농장이 있긴한데, 그 농장주도 지금 포도 나무 싹이 피고 있어서 빨리 손질해주길 바란다"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 농장이 끝나면, 다시 일을 구해야겠구나 하고 말이다. 그래서 하나하나 계획을 세웠고, 정리를 하고 있었다.

농장일이 끝나기 3일 전,
컨츄렉터와의 통화에서 컨츄렉터가 농장일이 끝나고 다른 일을 연결시켜준다고 했다. 
나는  크게 기대하지 않고 있었지만,  일단 시켜주면 하면서 그 일을 계속할지 생각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이제 농장을 떠나고싶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그리고 이제 혼자 다시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농장일이 끝나는 날이 다가올수록,
사람들의 얼굴에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나하는 근심이 보였지만,
컨츄렉터가 다시 일을 준다는 말에 모두 화기를 띄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통화한 결과로는 2-3명 분의 자리만 있다고 했다.
그리고 모두가 짐을 싸야할 시간이 하루가 남아있었다.







- 움직이는 호주산 쇠고기들


- 토나올 것 같은 포도나무들,









반응형

내가 아날로그를 좋아하는 이유.

- 길을 걷다, 세계여행/Feel-ing, 세계일주-ing, · 2009. 11. 17. 15:30

반응형

- 내가 아날로그를 좋아하는 이유.


내가 너무 구식이라서 아날로그를 좋아하는 걸까?

째깍째깍, 돌아가는 시계바늘.
사각사각, 종이위의 연필심.
쓱싹쓱싹, 톱밥을 뱉고있는 나무.

아직 주변에 아날로그는 많지만,
디지털이 지배하는 시대에 그걸을 찾기란 힘들다.

난 아날로그가 좋다.

디지털은 차갑지만,
아날로그는 온기를 품고 있으니까.



Someday, Sep 2009.
From Australia.




- 해질녘, 알바니하이웨이 Albany HWY 옆의 집 한채.

반응형

Last day of Wine farm, Donnelly River.

- 길을 걷다, 세계여행/Feel-ing, 세계일주-ing, · 2009. 11. 17. 15:26

반응형

- Last day of Wine farm, Donnelly River.


나는 내가 숨쉬고 있는,
움직이고 있는,
보고 있는,
듣고 있는
모든 순간들을 기억하고 싶다.

이것은 욕심이 아니다.

행복하다고 느껴지는,
내 인생에서 다시 없을 이 순간을
모두 기억하고 싶다.


22/09/2009. Tue.
Pemberton, Australia.







- 와인팜



- 마지막날, 포도나뭇가지 정리하면서,


 

반응형

'- 길을 걷다, 세계여행 > Feel-ing, 세계일주-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냥개  (0) 2009.12.06
내가 아날로그를 좋아하는 이유.  (0) 2009.11.17
일상, 지나가는 하루하루.  (2) 2009.11.15
Wine test.  (0) 2009.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