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st Keep Going, @Tistory

- 생각 저장소 · 2014. 5. 2.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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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상 다른 것을 추구했다. 어떤 일을 하든지 남들과 같다는 것은 재미가 있지 않았다.


  여행을 좋아한 나는, 자연스럽게 여행에 관한 나만의 이야기가 하고싶었다. 

  첫 시작은 2004년 '네이버 블로그'였지만, 여행에 관련된 글을 적기 시작한 것은 2007년 부터였다.

  블로그 활동을 막 시작하려던 때 친구가 '티스토리'에 대해서 알려 주었다. 당시 구글 검색을 이용하며 '개방성'에 매료되어있던 나로서는 네이버의 '폐쇄성'이 싫었고, 자연스럽게 내가 원하는 대로 블로그를 꾸밀 수 있다는 '티스토리'블로그로 터전을 옮기게 되었다. 블로그를 옮겼다고 해서 열심히 활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티스토리'의 개방성이 좋았기 때문에 티스토리에 터전을 잡기로 했다.


여행을 자주 다니다보니 다른 사람들의 여행 블로그를 자주 방문하게 되었고 나도 '여행 이야기'를 블로그에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여행기'쓰는 것을 그만두었다. 다른 사람들의 여행기는 하나같이 '자기가 갔던 곳', '묵었던 숙소', '먹었던 것'에 관한 이야기였다. 여행을 준비하는 데 있어서 그런 정보들은 중요한 것이 맞았지만, '내가 갔던 곳이다. 좋았다. 너도 가봐라'라는 듯한 느낌을 받는 나는 그저그런 다른 여행 블로그를 가지 않게 되었고, 내 블로그에도 그런 글들이 쓰여 있는 것을 발견한 뒤로 여행기를 쓰지 않았다. 그저그런 여행기를 쓰는 사람이 되기 싫어서, 더이상 글을 쓰지 않았다.


 세계일주를 하고 있던 어느날, 문득 내가 한 번 '색다른 여행기'를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즐겁게 놀았던 이야기로 도배되는 그런 여행이야기가 아닌, 객관적이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그런 여행기가 쓰고 싶어졌다. 여행을 하면서 그런 글들에 대해서 고민하고, 나만의 여행기를 써 보았지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글에 생기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도 없었다. 사람들은 내 블로그에 오지 않았다. 그리고, 여행을 마칠 때까지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어떻게 써야 할 지 나 자신도 잘 몰랐다.


 내 블로그에는 내가 좋아하고, 잘 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낯선 것이었다. 그렇다고, 누구나 다 쓸 수 있는 그런 이야기를 하기는 싫었다. 

2010년부터 다시 여행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내 여행기를 보고, 자신만의 여행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내가 갔던 길을 따라가는 여행이 아닌, 내 글을 보는 누군가가 자신만의 여행을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글을 쓰면서도 '이게 맞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며,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러면서 가끔씩 글을 써 나갔다.


내가 좋아하고 잘 아는 것에 대해 쓰더라도, '다른 사람들과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아주 적었다. 그렇지만 적은 사람들 중에서도 내 글을 읽어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큰 힘이 되기도 했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블로그도 아니었던 내 블로그가  2010년 겨울에  '티스토리 여행 부문 우수블로거'에 선정되면서 '나의 글쓰기 방식이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살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고, 그것은 나만의 글쓰기를 계속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여행에 관한 이야기.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여행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 '자신과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었다. 내 블로그에는 음악, 그래피티, 스케이트보드와 '여행'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지만 나는 '여행 블로거'라고 불리고 있었다. 그때까지 내가 잘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여행'에 관련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2014년, 한동안 방치해 두었던 내 블로그가 생각났다. 대학 졸업을 한 뒤, 바쁘다는 핑계로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도 글을 거의 쓰지 않았다. 머릿속엔 항상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쉽사리 글을 쓸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 나는 수 십번 생각해야 했다. 그래서 쉽사리 글을 쓸 수 없었다.

 나는 다시 블로그에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내 자리에서 잘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블로그에 글을 잘 쓰지 않는 동안 많은 일들을 해왔고 많은 것들을 이야기 하고 싶었지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행, 영화, 책, 연애, IT, 철학 등 많은 주제들에 대해 모두 이야기 할 수 없었다. 나는 세 가지를 이야기 하기로 했다. 'IT, 연애, 여행'에 관한 것.


 티스토리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블로그와 커뮤니티를 통해 '애드센스 수익'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다. 나도 2014년 2월부터 블로그에 '애드센스'를 달면서 그들의 글을 관심있게 읽었다. 혹자는 "수익을 위해 블로그 주제를 정하고, 글을 쓴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의 고민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익과 주제. 주제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수익이냐, 수익을 위해 주제가 정해지느냐.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같았다.


 2007년부터 2014년까지, 약 8년이라는 시간동안 티스토리에 둥지를 트고 있다. 나는 항상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쓰기 원했고,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기를 원했고,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냥 그저 그런 글이 아닌 '생각할 수 있는 글'이 되길 원했고, 지금도 그렇게 쓰고 있다.

 글쓰기는 항상 어렵고 고독한 작업이다. 내가 항상 '생각할 수 있는 글'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남들과 다른 것'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2013년까지, 내 블로그에는 음악, 그래피티, 스케이트보드, 여행에 관한 글이 있었지만 '여행 블로거'라고 불렸다. 2014년 부터 나는 주로 IT에 관해서 글을 쓰고, 연애와 여행도함께 다루고, 나의 취미생활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특정 주제 한 가지'를 다루는 것과 달리 나는 내 블로그가 '내 안에 있는 이야기'를 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다양한 것들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최소한 2014년에는 'IT블로거'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싶다. 예전에는 '여행 블로거 자유인'이었다면 이제는 'IT블로거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Life is Travel, 인생은 여행이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항상 새로운 것들과 맞닥뜨린다. 특히 IT분야는 흥미롭다. 연애도 흥미롭고, 여행은 삶에 여유를 준다. 4


 enjoi your life, 우리는 인생을 즐겨야 한다. 옆 사람의 얼굴을 보라. 즐거워 보이는가? 서로 마주보면 웃음이 난다. 즐겁다는 것이다. 일상에서, 연애를 통해서, 그리고 여행을 통해서, 그 외에 다양한 것들을 통해서 즐거운 삶을 살아야 한다. '삶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일까?' 매슬로우는 '자아실현'을 인간 욕구의 최상의 단계라고 말했다. '자아실현'을 하기위해 가는 과정중에 느끼는 성취감, 소속감, 사랑에 대한 욕구, 인정의 욕구 등. 결국, '즐거운 삶 = 자아실현'이 되는 것은 아닐까?

 

 Just keep going, 삶을 살다보면, 힘들고 슬플 때가 많다. 그렇지만, 주저 앉을 수는 없다. 계속해서 우리가 가야할 길이 있다. 그래서 인생은 여행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삶을 즐겁게 살아가기 위해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과 맞닥뜨리고 즐겨야 한다.


 만남, 그것은 헤어짐과 동의어. IT 세상은 빠르게 다가왔다가 빠르게 지나간다. 인연은 천천히 다가왔다가 빠르게 멀어져 간다. 여행을 하며 만났던 사람들은 헤어지지만 또 다른 만남을 기약할 수 있다. 우리가 즐거운 삶을 갈구하며 계속 길을 가다보면, 행복해 질 것이라고 믿는다.


 내 블로그는 이런 것들을 이야기 한다. IT. 연애. 여행. Life is Travel. enjoi your life. Just Keep going. 그리고 2014년에는 "IT블로거, 자유인"이라고 불리고 싶다.




△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 Salar de Uyu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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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쿠바, 하바나 - 엽서, 상실된 엽서가 주는 의미(Havana, Cuba)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3. 8. 30.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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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엽서를 주고받던 시절에 관한 이야기.


  손바닥만한 크기의 네모난 모양. 한 면에는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주소를 쓰는 곳이 있고, 한 귀퉁이에는 엽서가 붙어 있었다. 주로 연말, 혹은 가끔씩 우리는 엽서라는 것을 써서 누군가에게 보내곤 했다. 엽서는 간편했다. 우표를 따로 살 필요도 없었고, 받는 사람의 주소만 알면 손쉽게 누군가에게 나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다[물론 2~3일은 걸리는 데다가, 그 메시지를 우편 배달부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도 다 볼 수 있는 단점이 있긴 하다].

영화 <클래식(the classic)>의 한 장면. 2003, 곽재용 감독.

 1990년 후반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엽서와 편지를 썼고, 서로 주고 받았다. 지금은 손바닥 안에서 클릭 한 번이면 접속할 수 있는 '인터넷'. 이것이 뭔지 잘 모르던 시절, 이메일(E-Mail)이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생소한 단어였던 시절, 사람들은 그렇게 편지(Mail), 엽서(post card)를 주고 받았다.

 

 [구분짓기 좋아하는]누군가는 '아날로그적 감성'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공들여 편지를 쓰는 것이 그냥 좋다고도 했다. 인터넷이 보급되고, 이메일이 보편화 되고, 휴대전화가 보급되고, 문자 메시지를 통해서 수시로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 누군가에게 엽서를 보낸다는 것을 생각할 틈이 없었다. 누군가에게 엽서를 써서 보냈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 조차 없었다. 엽서는 그렇게 우리들 곁에서 점차 멀어져 갔다. 이제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체온을 담은, 정성을 담은 편지는 번거로운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간편하게 쓸 수 있는 이메일, 그마저도 이제는 다른 SNS로 대체되었다. 

  침대에 누워 종이 한 장을 들고, 그 사람을 상상해보는 즐거움은 좀처럼 찾기 힘들다. 이제 편지는, 누군가에게 러브레터를 쓸 때나 가끔[x10] 등장하는, 그런 신기한 물건이 되어가고 있다.


 

영화 <클래식(the Classic)> 중.

1990년대를 통과하고 2000년대 초반을 지내며 인생의 추억을 쌓아온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은 집 한켠, 책장 한켠에 작은 상자를 하나쯤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가끔씩, 그 상자를 바라보고 그 상자 속에서 꺼낸 엽서, 편지들에게서 향수를 느끼고, 추억을 더듬는다. 엽서, 편지들은 우리를 옛 시절의 추억에 잠길 수 있는 '여유'를 선물해준다.






2.여행지에서 엽서를 고르며,


  여행지에서 만나게 되는 엽서는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그 곳에 여행을 온 사람들에게 각각 다른 의미를 가진다는 뜻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여행지의 엽서는 그 속에 그 장소, 그 도시의 대표적인 무언가[상징물, 사람들, 유적, 풍경 등]를 담고 있게 마련이다. 


  엽서는 매력적이다. 누군가가 어떤 도시를 방문해서 그 도시의 기념품 가게에 진열되어 있는 엽서를 집어 들었다면, 그것은 그 엽서가 담고 있는 무언가의 매력에 이끌렸기 때문이다. 엽서를 고르는 일은 절대로 즉흥적이지 않다. 엽서를 선택한 사람은 그 엽서가 담고 있는 것이 그 도시를 아주 매력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자신이 그 도시를 방문하고 있다는 사실을 매력적으로 나타내 줄거라고 믿기 때문에 그것을 선택한 것이다. 또한, 그 엽서에 그 나라 우체국의 스탬프가 찍혀서 누군가에게 전해질 것을 생각한다면 함부로 엽서를 고를 수 없다. 엽서를 고르는 일은 결코, 손쉽게 아무렇게나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류블랴나(슬로베니아)에서 고른 엽서.


  기념품 가게의 진열대에 아무렇게나 진열되어 있는 엽서처럼 보이지만, 그 엽서들은 아주 신중하게 선택될 물건들이다. 그 엽서들은 아주 많은 것을 담고 있으며, 작은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 

  그 도시가 가진 매력을 지닐 것, 나의 취향에 맞을 것, 나를 잘 표현할 것, 엽서가 담고 있는 것이 받는 사람의 취향에 맞을 것, 그리고 나의 온기를 담고 전달되어 받는 사람을 기쁘게 할 것.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엽서를 받는 사람이 엽서를 받아보고, 기뻐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엽서를 고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3.엽서를 보내며,


  엽서를 보내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우체국을 찾아 길거리를 헤메는 일은 꽤나 번거로운 일이다[그리고

쿠바의 길가에 팔고 있는 엽서들. 체 게바라의 모습이 담겨있다.

놀라운 사실은, 엽서를 보내는 비용이 꽤나 비싸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번거로움 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내용을 써야할지'와 '누구에게 어떤 엽서를 보낼까'이다.


  엽서의 단점은, 엽서에 담긴 내용이 공개적이라는 것이다[겉 봉투가 없기 때문에 내용이 바로 보인다는 의미]. 엽서의 수신인이 혼자 사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엽서의 내용을 우편 배달부는 볼 수 있다. 옆집 사람이 호기심에 볼 수도 있다. 혼자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엄마가, 아빠가, 동생이, 누나가, 언니가, 오빠가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엽서를 보낼 때는 이런 가능성들을 배제하고 오직, '한명의 수신인'이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그 '수신인'이 엽서를 받았을 때, 기뻐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엽서를 보낸다. 그 엽서 속에 내가 담음 메시지가, 그 엽서가 원래 담고 있던 어떤 상징, 매력이 그 '수신인'을 기쁘게 해야 한다.


  가끔은, 엽서가 우리를 실망시키는 경우가 있다['엽서'가 실망시키기 보다는, 엽서를 발송하는 '국가의 우체국 시스템'에 분노하게 되는 것이다]. 어렵게, 많은 생각을 하며 고르고, 어떤 내용을 담을지 고민하며 온기를 담은 엽서. 우체국에서 스탬프가 찍히는 모습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엽서는 어디론가 사라져 갈 곳을 잃을 경우가 종종 있다. 영원히 수신인을 찾아가지 못하는 엽서들이 존재한다[그럴 땐, 나의 노력이, 나의 애틋함이 헛수고 였다는 생각이 들어 허무함이 밀려온다. 실제로 인도, 볼리비아, 쿠바 등지에서 이런 경험을 했다].




4.엽서를 보내는 이유.


  그 시절, 우리는 엽서, 편지를 주고 받았다. '아날로그적 감성'이라는 말이 없던 시절.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호주 Pemberton 와이너리 기념 엽서

었고, 서로가 교감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그 흔적은 아직까지 남아서 가끔씩, 추억에 잠기게 하기도 하고, 잊고 있던 누군가를 생각하며 '그 사람은 지금 뭘 하고 살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 보게 한다. 그리고 가끔은, 손가락이 닳기도 한다.


  엽서를 보내며,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엽서를 받은 그 사람은 내가 보낸 엽서를 받고 잠시나마 기뻐하며 내가 써내려간 글자들을 어루만질 것이다. 그리고 그 엽서는 기쁜 마음과 함께 어딘가에 보관이 되겠지. 

 훗날 바쁜 일상을 살아가면서, 서로의 기억속에서 서로가 잊혀졌을 때, 나와 그 사람이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을 때,  어느날 우연히 발견된 내가 보낸 그 엽서가 그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기억할 수 있게 한다면 그것은 정말 기쁜 일이다. 비록, 나는 그 순간까지도 내가 엽서를 보내주었던 그 사람을 기억해내지 못할 지라도, 그 사람이 나를 기억해준다는 것은 크나큰 기쁨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엽서를 보낸다.




5. 덧, 아이러니.

 나는 지금까지 여행을 하면서 수 십장의 엽서를 보냈지만, 한 통의 엽서도 받아보지 못했다. 엽서의 기능이 상실된 것일까, 엽서가 잊혀진 것일까, 내가 잊혀진 것일까.  




보통의 우리나라 엽서 앞면




쿠바의 골목길, 벽화



까비똘리에오 찾아오는 어둠.



주말 시장, 하바나의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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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 베로니카를 만나러, 류블랴나, 류블랴나(Slovenia, Ljubljana)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1. 6. 19.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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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 또는 영화 속 주인공을 찾아서.

  영화나 드라마, 책을 보다 보면, 간혹 그 배경이 되는 장소에 가고 싶다는 충동을 느낄 때가 있다[실제로 테마 여행이라고 해서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곳들을 찾아다니는, 소위 말해, 영화 여행을 하는 사람을 본 적도 있다]. 영화나 드라마의 경우, 그 배경을 실제 화면을 통해 볼 수 있기 때문에 그 장소가 아름답다거나 멋있다는 것을 보는 순간 알 수 있다. 또한 영상을 바라보면서 그 곳에 가고 한 번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장소에 대해 명확한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책을 통해 어떤 특정한 장소를 접했을 때는 그렇지가 못하다[이게 책의 매력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책을 읽으면, 생각을 하게 된다[책의 내용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면서 읽기 때문에]. 어떤 인물이 나온다면 그 인물에 대해서 상상하게 된다. 아름답게[혹은 멋있게] 묘사된 주인공에 대해서. 그리고 그 주인공과 더불어 평화롭거나 아름답게 묘사되고 있는 배경에 대해서. 책에서는 배경이 아름답게 묘사되지 않고 있더라도[언급조차 하지 않을 수 있다], 주인공이 사건을 전개해 나가는 그 배경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어, 이미 당신의 머릿속에는 배경의 이미지가 형성되어져 있을지도 모른다.그 묘사되고 있는 배경에 대한 궁금증은 증폭되어, 이미 머릿속에서 [자신의 경험에 기초하여]그 모습이 그려지고 있을 수가 있다.  

  파울로 코엘류의 소설들
[그의 소설들은 그의 다양한 여행 경험을 담고 있다]. 그의 소설들 속에는 다양한 주인공들이 있고, 다양한 배경이 있다. <연금술사>의 양치기와 그의 여정. <프로토벨로의 마녀>의 마녀와 그 배경이 되는 영국과 루마니아 시비우(Sibiu). <순례자>의 주인공과 스페인 산티아고길에 대한 흥미와 다양한 묘사들. 여행을 다닐 때[여행을 다니기 전에도 마찬가지였지만] 가장 흥미롭게 읽을 수 있고, 여행을 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소설을 뽑으라면, 파울로 코엘류의 소설들을 뽑을 수 있다[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의 소설들은 그 여행지에 대한 새로운 인상을 심어준다. 그리고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의 책들도, 생각하는 여행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이 두 사람[파울로 코엘류와 알랭 드 보통]이 함께한다면, 상상력을 통해 재구성된 생각하는 여행을 할 수 있다.


2. 작가의 흔적을 찾아서.
 
   김유정 문학관. 이효석 문학관. 구상 문학관. 정지용 문학관. 서정주 문학관. 그리고 각 작가의 생가(生家)들. 지방자치단체들은 많은 돈을 들여서 그 지방 출신의 작가들이 남겨놓은 흔적을 손질하고 다듬어 놓았다[이미 사라져 버린 것은 재현시켜 놓기도 했다]. 

  정지용의 생가를 찾아가서, 그 주변을 둘러 보고, 안내 책자를 읽거나 설명을 듣는다. 이효석의 흔적을 좇기 위해,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무렵>의 달빛이 흐드러지게 비치는 메밀밭 길을 걷기 위해 사람들은 그 곳으로 찾아간다. 그리고 그 곳은 언제나 사람들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 곳은 관광지가 되었기 때문에, 많은 돈을 들였기 때문에, 언제나 그 곳은 사람들을 맛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사람들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곳엔, 한가지가 부족하다. 진실성. 정지용의 <고향>이라는 시에 나오는 그런 분위기는 더 이상 없다. 배경은 같다고 하지만, 그 속에서 묻어나오는 진실성은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이효석의 소설에서 묻어나오는 그런 느낌도, 서정주의 <질마재 신화>에서 묻어나오는 그런 느낌도, 채만식의 <탁류>에서 우러나오는 그런 그 시대의 진실된 느낌이 사라지고 없다. 그 빈자리엔 새로운 것들이, 인위적인 것이 들어서 있다.

  그런 것들을 바라 보는 마음 한켠엔 언제나 부족한 무언가가 있다. 그리고, 그런 부족함은 항상 손가락 끝에서 울리는 짤막한 소리 하나로 대체 되곤 했다. "찰칵"



3. 베로니카는 그 곳에 앉아 있을까?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라는 책을 읽은 적 있다. 베로니카는 수도원 창가에서 조그마한 광장의 분수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름조차 낯선 도시에서. 그 도시의 이름은 '류블랴나(Ljubljana)'. 슬로베니아의 수도였다. 베로니카가 항상 창가에서 바라보던 그 분수대가 있는 조그마한 광장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일까?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곳이 딱히 좋다고 말 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책에서 조차 그런 말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냥, 그 곳의 분위기가 어떤지 느껴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곳에 가면, 진짜 분수대가 있을지, 확인해 보고 싶었고, 베로니카가 세상을 내다보던 창문이 진짜 있을지 궁금했다. 확인해 보고 싶었다.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그리고 광장의 노천 카페에 앉아, 커피 한잔을 마시며, 여유를 즐겨보고 싶었다.

  왠지 그곳은 여유가 가득할 것 같았다. 그리고, 커피만 한잔 마시고 그 곳을 미련없이 떠나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어느덧, 기차는 류블랴나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국경에서 따로 여권을 검사하지는 않았다[유럽연합 국가들은 여권 검사를 하지 않는다]. 


4.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류블랴나.

  그를 실은 기차는 자그레브[Zagreb, 크로아티아의 수도]역을 떠난다. 하늘은 잿빛이었고, 간혹 빗방울이 창문에 할퀴고 지나갔다. 얼핏, 창 밖을 바라보니 자그레브 역 앞의 동상이 보이는 듯 하다.

  언젠가, 자그레브에 머문 적이 있었다. 그 때도, 베로니카를 만나고 싶었다. 그녀의 시선을 좇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지만, 그는 자그레브역 플렛폼에서 기차를 떠나보냈다. 그리고, 류블랴나엔 다음에 꼭 가리라고 생각하면서 크로아티아의 남쪽 해안도시 스플리트[Split, 아드리안해의 미항(美港)]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때는 발길 닿는대로 자그레브의 거리를  거닐었고, 성당을 드나들었으며, 시장을 거닐며 잘 익은 과일들을 탐했고, 노천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세련되어 보이는 크로아티아 국기 무늬를 한 지붕을 구경했고, 한창 축구를 잘하던 동유럽의 축구 강호 크로아티아의 분위기를 느꼈다.

  그리고, 그는 또 다시 자그레브역의 모습을 보았다. 이번에는 그 역을 곁에 두고 슬로베니아로 향하고 있었다. 자그레브에서 3시간. 3시간이면 슬로베니아 류블랴나였다. 겨우 3시간이면 크로아티아의 수도에서 슬로베니아의 수도로 갈 수 있다.

  그는, 잿빛 하늘을 바라보며,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류블랴나. 얼마나 가 보고 싶던 곳이었던가. 론니 플래닛의 류블랴나 페이지를 펼쳐서 그가 찾아가야 할 곳을 체크해 두었다. 류블랴나에서 갈 만한 곳도 체크해 두었다. 그리고 그가 가장 가고 싶어하던 그곳[도시의 중앙 광장]에도 체크를 해 두었다. 그가 머무려고 하는 숙소에서 광장까지 어떻게 가면 될 지도 체크해 두었다.


5. 안녕 베로니카.

  기차는 류블랴나역에 멈추었다. 기차는 슬로베니아를 거쳐 오스트리아로 간다고 한다. 나는 기차에서 내려, 건물로 향했다. 작은 규모의 역.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 역과 비슷한 크기다. 작고 아담하고. 역 안에는 매점이 하나 있고, 맥도날드가 있다. 자판기 몇 개가 있고, 관광 안내소가 있다. 2층에는 매표 창구가 있다. 관광 안내소에서 지도를 몇 개 주섬주섬 챙겨서, 숙소를 찾아간다.

  숙소로 가는 길, 잿빛 하늘에서 간혹 물방울이 떨어지지만, 큰 비가 될 것 같진 않다. 작은 배낭 하나를 매고 다니는 여행객. 배낭을 잃어버리고 난 뒤라서 내 몰골은 형편없어 보일 것임이 틀림 없다. 동유럽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거리 곳곳의 그래피티는 내 눈길을 사로 잡을 만큼 높은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그래피티 사이에 위치한 숙소에 체크인을 했다. 샤워를 하고 베로니카를 찾아 나선다.

  베로니카를 만나러 가는 길, 아담하다. 높은 건물들을 찾을 수 없는 벽돌로된 골목길. 유럽 특유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동유럽과 서유럽의 경계. 서유럽과 동유럽의 분위기가 동시에 묻어났다. 지도에 표시된 대로라면, 이 길을 지나면 광장이 나올 터였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광장은 나왔고, 나는 베로니카를 만날 수 있었다. 광장 한켠에 있는 베로니카.


6. 죽기로 결심한 베로니카는, 살아 있었다.

  그가 그 조그마한 광장에 들어섰을 때, 베로니카는 살아있었다. 그러나 베로니카가 세상을 바라보던 통로로 이용하던 창(窓)은 없었다. 그리고 분수대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마도]분수대의 모티브가 되었을 법한, 동상이 그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베로니카는 어디선가에서 그 동상을 바라보았을 것이고, 그 곁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을 것이었다. 그도 그 분수대를 바라 보았다. 베로니카가 그랬던 것 처럼.

  그는 광장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그곳은 아주 자연스러웠다. 세계적인 작가 파울로코엘류의 소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의 배경이 되는 곳이었지만, 그곳에는 그런 것을 알리는 표지가 전혀 없었다. 그곳은 그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그 소설을 모르는 사람들이나 소설의 배경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듯 한] 하나의 광장, 수 많은 길 중의 하나였을 뿐이었다. 광장 주변의 노천 카페들도, 소설과는 전혀 무관하다는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광장 변두리에 위치한 한 카페에 앉았다. 종업원이 메뉴판을 갖다 주었고, 커피를 한잔 주문했다. 그리고 잠시 베로니카에 대해 생각하는 사이, 커피 향이 그의 코 주위를 감쌌다.

  그는 단지, 그 곳에서 베로니카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 모습은 실재한 모습이 아닌 그의 상상속에 존재하던 모습이었다. 그리고 베로니카가 소설 속에서 숨쉬던 공기를 마셔보고 싶었고, 그 곳에서 여유를 느껴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슬로베니아 '류블랴나'까지 와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생각했다. 소설의 배경이라는 것. 정말 별 것 없구나. 배경은 말 그대로 배경이었다. 사람들이 일상을 살아가는 곳. 그곳은 전혀 꾸며지지 않았다. 베로니카의 모습, 그것은 그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스쳐지나가는 그곳이었지만, 그 수 많은 사람들에겐 그냥 스쳐지나가는 하나의 광장, 하나의 공간에 불과했다. 
  그런 장소 였기에, 그는 그 장소에서 특별한 무언가를 느꼈다. 어느새 특별한 장소가 되어 있었다. 그곳에는 자연스러움이 묻어났다. 한국에서 찾아다녔던 소설이나 시(詩)의 배경이 되는 곳에서는 찾을 수 없던 것이 배어 있었다. 진실성.



  그는, 단지 베로니카의 흔적을 보고 싶었다. 자신이 생각하던 작은 광장의 모습이 어떤지 보고 싶었다. 그곳의 여유로움은 어떤 것일까를 생각하며, 류블랴나에 갔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마케도니아를 거쳐,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까지. 그리고 베오그라드에서 크로아티아를 거쳐 슬로베니아 류블랴나까지. 그리고 결국, 그곳에서, 베로니카를 보았다.

 단지, 베로니카가 보고 싶어서 슬로베니아 류블랴나까지 찾아간 그의 이야기.


-숙소 옆의 그래피티


-광장으로 가는 길.




-소설속에서 분수의 모티브가 되었을거라고 생각되는 동상



- 광장으로 이어지는 번화가



 -도시를 관통하던 하천







- 아담한 도시 중앙 광장



-광장 건너편의 시장



-



-



- 류블라냐 성에서 바라본 류블랴나






 

 





-노천카페에서 커피 한 잔




-카페에서 일하던 사람



-미니어처



-류블랴나 역의 매점



-아담한 류블랴나 역



-독특했던 류블랴나 역의 과일 자판기



-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역 앞.




-자그레브 과일 시장



- 공사중이던 건물


-전망대에서 바라본 자그레브 시내


-아침의 스플리트 역


-스플리트 올드 시티



-밤의 스플리트 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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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자메이카, 킹스톤- 자메이카에 다시 오지 말라고?! - Jamaica, Kingston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1. 5. 10.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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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치안(治安)에 관한 생각.

  여행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 자신의 목적지[여행할 장소]에 관해서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 중 하나가 그 장소의 안전에 관한 문제이다[그것은 다시 말해 '치안'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떠한 정보[여행 장소에 관한 정보]를 수집 할 때 좋은 정보 보다는 안좋은 정보를 더 많이 접하게 된다[일상 생활에서도 흔히 그러한 것을 경험 할 수 있다.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정보의 대다수는 범죄 사건, 사고에 관한 소식이라는 점에서 볼 때 우리는 안좋은 소식을 훨씬 많이 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예전에 이란 여행을 하고자 했던 사람이 정보를 수집했다면, 이란 국민들의 시위에 관한 소식과 시위 하던 사람들 중에서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정보를 접하게 될 것이고, 여행을 가고자 했던 사람은 여행을 망설이게 될 것이다. 얼마전 태국에서 일어났던 시위, 그리고 최근 일어나고 있는 중동의 민주화 물결, 이런 정치적인 문제들은 그 나라의 치안 상태가 극도로 불안정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여행자들은 그 곳의 여행을 꺼리게 된다.

  그런 곳에 사는 사람은 어떨까? 대한민국은 과연 안전한 나라인가? 대한민국은 결과적으로 보자면, 아직도 전쟁중인 국가이다. 엄연히 국제법상으로 휴전(休戰)중인 국가이지 절대 종전(終戰)을 한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도 언제 전쟁이 일어날 지 모르는 곳이고,  설령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전쟁이 일어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한국인이 그 상황을 바라보는 눈과 제3자인 외국인이 대한민국의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르고, 따라서 판단의 결과도 달라진다.[물론 대한민국의 상황이 그렇게 극단적이지는 않다]

  사업가의 경우는 어떨까? 해외로 출장을 다니며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과 거래를 하는 국가의 치안에 관해 상당한 관심을 기울일 것이 틀림없다[치안 유지가 잘 되어 정치, 사회적으로 안정적이라면 사업을 하는데 있어서 큰 리스크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치안이 안정적이고 그렇지 않고의 여부는 그 나라에 얼마나 많이 투자를 할 것인가 말것인가와 연관이되고, 사회적으로 범죄율이 낮다면, 그 나라의 사람들을 고용해서 사업을 크게 확장 할 수도 있을 것이며, 물류 창고와 같은 시설을 확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치안은 여행을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사업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큰 관심거리이다[중요한 사안이다].

  하지만, 한 가지 알아두어야 할 중요한 것은 그 현장에 살고있는 현지인들은 여행자나 사업가들에 비해서 민감하지 않다는 것이다[물론 그것은 자기의 상황과 주변의 상황을 잘 알고 있고, 자신의 삶의 터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현지인들은 여행자나 사업가들이 많은 오해를 하고 있다고 생각 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럴지도 모른다.

 

2.                         

  2005년 이집트 여행을 갔을 때는 바야흐로 이집트 대통령 선거가 얼마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내가 이집트를 가기 전, 이집트 국민들은 데모를 하기도 했고, 과격파에서는 테러를 감행하기도 했다.[신문과 뉴스를 통해서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정보를 터키에서 접하고 있었다] 내가 접한 이집트의 상황은 그리 나빠보이지 않았다. 나는 평소와 다름 없는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보았고, 그 곳은 사람이 사는 곳이었을 뿐이었다. 내가 이집트에 머무는 한 달간 딱 한번의 테러가 있었긴 했지만,[그 테러로 인해 관광객 7명이 목숨을 잃었다. 관광지 관광객을 노린 테러였다] 사람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내가 머물던 바로 옆 도시에서 테러가 났기에 나는 잔뜩 긴장했지만 결과적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네팔에 갔을 때, 누군가 암살당했다는 소식이 들렸고, 버스의 파업이 있었고, 훌리건들이 내가 탄 버스를 공격하기도 했다. 하지막 막상, 수도 카트만두에 도착했을 때는 너무나도 평화로웠다. 그 곳 역시 그냥 사람 사는 곳이었다.

  네팔에서 파키스탄 비자를 받고, 파키스탄으로 들어가려 할 때 즈음, 인도-파키스탄 국경에서 테러사건이 일어났다. 버스 폭탄 테러로 스리랑카 크리켓팀이 큰 피해를 입기도 했고, 관공서를 노린 테러가 일어나기도 했다. 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인도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결국 파키스탄을 건너뛰어 비행기를 타고 터키로 넘어갔다. 하지만, 그 무렵 나와 다른 결정을 한 다른 여행객은 파키스탄의 훈자로 무난히 갈 수 있었고, 세계 최고의 절경으로 손꼽히는 훈자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 곳, 훈자는 순박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아주 평화로운 곳이라고 했다.[아직도 훈자를 가지 않은 것이 한(恨)이다.]



3. 쿠바에서 케이만 제도 그리고 자메이카로.

  쿠바에서의 일주일. 싸구려 까사에서의 일주일. 싸구려 불법 까사의 주인 아줌마는 내가 쿠바를 떠난다고 하니 아쉬운 눈치였다. 나도 쿠바가 점점 좋아지고 있었는데, 비행기 예약 날짜가 다가왔으니 어쩔 수 없었다. 거리로 나서서 시내 외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지나가는 클래식카 택시들에게 손을 들었다. 합승을 해줄 법 한데도, 그들은 한사코 합승을 시켜주지 않았다[현지인들은 합승을 많이 했지만, 외국인은 시켜주지 않는 것이었다]

  지나가는 택시 한대를 잡아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서 올 때는 좋은 차를 타고 왔었는데, 갈 때는 현지인들이 타는 낡은 차량을 타고 가니 기분이 뭔가 색달랐다. 택시 기사가 중간에 자기 부인을 좀 만나고 가자면서, 자기 부인을 만나 같이 공항으로 왔다. 부인은 택시 기사의 점심 식사를 가지고 온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하바나 국제공항에 도착했고, 나는 15CUC을 지불했다. 친절히 내 짐들을 꺼내주고, 택시는 그 곳을 떠났다.[공항에서 시내로 갈 때는 20CUC이었다. 20CUC이 공식적인 고정요금 인듯 했다. 내가 처음 하바나에 도착했을 때 공항 직원에게 시내로 가는 택시비가 얼마냐고 물었는데 그 때 20CUC이라고 말을 해 주었었다.]

  출국 수속을 밟고, 쿠바 스탬프가 찍힌 비자를 출국관리소 직원에게 제출했다. 비행기는 케이만 제도(Cayman Island, 영국령의 작은 섬)를 경유해서 자메이카로 가는 것이었다. 케이만 제도까지 1시간 남짓, 케이만 제도에서 자메이카까지 1시간 반 남짓 걸리는 거리였다. 자메이카 킹스톤(Jamaica, Kingston)에 도착 예정시간은 오후 6시. 어두워지기 전에 도착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메이카의 밤은 상당히 위험하다고 들었기에, 약간은 안심이 되었다.

  쿠바의 공항에서 귀여운 꼬마와 장난을 치다 보니, 어느덧 게이트가 열렸다. 비행기는 카리브해 위로 떠올랐고, 자그마한 쿠바가 서서히 사라졌다. 그리고, 케이만 제도를 향해 날아갔다.

  케이만 제도, 작은 섬나라에 도착했다. 공항 건물은 2층짜리 작은 건물이 전부였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높은 습도가 내 숨통을 조여왔다. 이 텁텁함. 전형적인 열대의 날씨였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공기였다. 한국의 8월 무더위로 인해 습도가 높고 온도까지 높은 공기를 그 작은 섬에 옮겨 놓은 듯 했다.

  내 짐들을 들고, 빠져 나왔다. 피부 색깔이 어중간한 외국인 관광객은 나 혼자였다. 몇 안되는 승객들. 검은 피부를 가진 사람들은 모두 자메이카로 가는 사람들이었고, 흰색 피부를 가진 몇 몇은 현지인이었다. 나와 장난을 치던 꼬마도 이 작은 섬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작은 섬, 휴양지로 놀러오면 좋을 것 같은 섬에서 꼬마는 무얼 하며 살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아마 좀 나이가 들면, 영국 본토로 들어가서 공부를 하겠지, 라는 생각을 했다.

  Air Jamaica 카운터에서 내 큰 배낭을 수하물로 보내고 출국장으로 나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 비행기는 3시간 지연이었다. 예상 도착시간은 밤 9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오우, 이런 제기랄.

  작은 섬에 어둠이 깔렸을 때, 활주로에 비행기가 한 대 나타났다. 쿠바의 까삐똘리오 인터넷 카페에서 자메이카의 일본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 예약 메일을 보냈었는데, 답장은 아직 오지 않은 상태였다. 불안한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라타기 위해 활주로를 걸었다.. 또 다시 고온 다습한 공기가 내 피부에 와닿았다.

  낯설지 않은 느낌이었다. 어둠은 언제나 나를 긴장시키고, 약간은 불안하게 만들었다. 비행기를 타러 가는 내 마음은 좀 무거워져 있었다. 자메이카, 뭔가 많이 낯설다는 느낌, 준비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4. Welcome to Jamaica.
 
  비행기는 사람들을 토해냈다. 확실히 쿠바보다 큰 공항, 많은 사람들이 게이트를 빠져나와 입국장에 줄을 섰다. 국제 공항의 느낌이 조금 묻어났다. 외국인은 몇 없었다. 그는 자메이카의 스탬프가 왠지 마음에 들었다. 아래쪽에 자메이카, 섬 나라의 모양이 찍히는 스탬프. 그는 관광객으로 분류 되었다. 가방을 주워들고[레인커버가 떨어져 나가 있었다. 없어진 것이다!] 공항을 빠져나왔다. 밤 10시가 넘은, 11시가 가까워진 시간이었다.

  그는 말을 걸어오는 택시 기사들을 무시하고 공항 주위를 배회해 보았다[혹시나 버스가 있으면 그것을 타고 가려고]. 하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공항의 한쪽은 공사중이었고, 보통 택시를 타고 숙소까지 이동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왔기에, 택시 기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가격을 물어 보았다. 40달러. 그는 손사래를 치며 다른 택시기사의 무리로 이동하려 했다. 그 때였다.

  한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어디까지가? 그는 종이에 적힌 주소를 보여줬다. 30달러를 불렀고, 그는 그 남자를 외면했다. 25달러를 불렀다. 그는 말했다. 투엔티! 오케이, 라고 말하며, 그는 자기 차를 가지고 온다고 했다. 그리고는 공항 주차장 입구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그는 그 곳에서 공항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차량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 였다. 고급 메르세데스 벤츠 한대가 그의 앞에 멈추어 섰다. 그리고 운전석이 열리고, 그 안에서 누군가가 그에게 소리쳤다. 그는 생각했다. 그 택시기사인가? 그러기엔 차가 너무 좋은데?
  그리고 뒷 좌석의 창문이 열렸고, 누군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헤이, 여기서 뭐해?, 나? 택시 기사기다리고 있어. 아니 여기서 뭘 기다린다고? 어디까지가? 태워 줄게. 순간, 그는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이런 고급 승용차를 탄 사람이 자기 자신을 납치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의 목적지까지 데려다 준다고 하고 있었기에, 그는 그 차를 타고 싶었지만, 그 택시기사가 왠지 마음에 걸렸다. 에라 모르겠다.

  그는 고급 메르세데스에 올라탔다.


5.                          

  차가 출발하려는 순간, 어떤 사람이 차 앞을 가로막고 섰다. 아뿔사, 그 택시 기사였다. 그리고는 운전석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자메이카 억양으로 영어를 하기 시작했다. 언성이 높았다. 나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나에게 운전석에서 물어왔다. 아는 사람이야?

  안다고 했다. 내가 저 사람 차를 타고 호텔까지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정식 택시 운전기사가 아니었다. 사복에, 차량도 일반 승용차였다. 내 옆에 있던 사업가는 나에게 물었다. 내릴거야? 아니면 같이 타고 갈래?

  판단이 서지 않았다. 저 택시 기사는 내가 어느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는지 알고 있었기에, 밤에 와서 나를 칼로 찌르거나 총으로 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 옆에 있던 미국인 사업가는 빨리 결정하라고 했다. 운전기사와 택시기사는 계속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초조했다. 그리고 결정했다.  
 
  난 택시를 타지 않겠어. 이 차를 타고 갈게. 일단 택시비 20달러를 굳힐 수 있다는 생각을 했기에 그런 판단을 했다. 될대로 돼라.

  내가 탄 메르세데스 뒤로 그 택시기사가 따라왔다. 불안했다.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했다. 그리고 옆에 있던 사업가가 말을 걸어왔다. 너 한국사람이지? 어 맞아, 한국사람이야. 지금은 여행중. 어쩐지, 그렇게 보였어. 내 부인이 한국사람이거든. 오 정말? 어디 사는데? 워싱턴 살아. 너가 한국 사람 같아서 너를 태워준거야. 이름이 뭐야? 내 이름은 Jin. 오 정말? 내 아들 이름도 Jin 인데. 아들이 3명 있어. 자메이카는 처음이야? 처음 같이 보이는데. 응 처음이야, 쿠바에서 오늘 자메이카로 넘어오는 길이야. 자메이카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줄 모르지?

  다음부터, 자메이카엔 오지마. 위험한 곳이야. 여긴 여행 할 만한 곳이 아니야.  .... 알았어. 참고할 게. 고마워.

  운전기사는 내가 머물 게스트하우스의 위치를 잘 알지 못했기에, 사업가가 머무는 호텔로 가게 되었다. 프론트에서 음료수 서비스를 받고, 그 미국인 사업가는 나에게 명함을 하나 주며 덧붙였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전화해. 그렇게 말하며, 콜택시를 불렀고, 콜택시가 왔을 때, 나를 배웅해주었다.


6.                            

  그는 콜택시 기사에게 주소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택시는 출발했다. 택시 기사가 자기의 휴대폰을 어딘가에 떨어뜨렸다면서, 휴대폰을 좀 찾아달라고 했다. 좌석 밑 어딘가를 뒤져 봐 달라고 했기에, 그는 이곳 저곳을 뒤졌다. 그 순간 그는 간담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좌석 밑에서, 대도(길이가 팔뚝만한 칼)을 보았던 것이다. 그는 생각했다. 뭐지, 이 사람 나를 어딘가로 데려가서 칼로 위협하고 돈을 뺏으려는 건가? 그는 휴대폰을 기사에게 건내고, 자리를 좀 멀리 옮겼다[봉고차 였기에, 공간은 많았다]

  기사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자메이카식 영어로 대화를 했다. 그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들이 무슨 대화를 하는지. 인적이 없는 곳, 길 중간에 차가 갑자기 멈추었다. 그는 긴장하고 있었다. 무슨일이지?

  전화 통화를 하더니, 다시 출발했다. 길을 이리저리 왔다갔다 했다. 그는 불안했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그는 꿈자리를 생각해 봤으나, 꿈자리가 나빳던 것 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어느 골목으로 들어갔고, 차는 멈추었다. 그리고 기사가 말했다. 다왔어.

  주소를 확인했다. 내가 가려던 곳이 맞았다. 벨을 눌렀고, 문이 열렸다. 내 짐을 집 안으로 옮겼고, 주인이 나왔다. 방을 안내해 주었고, 택시비를 지불했다. 그는 그렇게 자메이카의 숙소에 도착했다. 시간은 밤 12시에 가까워져 있었다. 그 곳에 있던 일본애에게 물으니, 몇 명은 그날 밤 클럽에 놀러갔다고 했다. 다음에 너도 같이 가라고 했다.


7.                               

  자메이카의 밤은 어둡고, 적막했다. 왠지 위험하고 불길한 기운이 감돌았다. 밤에, 음악 클럽에 다니면서 놀았는데, 그 때는 항상 집앞까지 택시를 불러 택시를 타고 다녔다. 그리고 집에 돌아올 때도 택시를 잡아타고 왔고, 야식이 먹고 싶을 때도, 야식을 파는[훈제 닭고기를 파는 포장마차 같은 곳]곳까지 택시를 타고 갔다가 돌아오곤 했다.

  누군가 이런말을 했다. 자메이카의 밤 거리에서, 누군가가 총을 쏘아 사람을 죽여도 그것은 범죄가 아닐 수도 있다. 만약 그 장면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범죄가 아니고, 누군가가 봤을 때만 범죄가 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자메이카 사람들이 달리기를 잘하는 건, 밤에 누군가와 골목에서 맞닥뜨렸을 때, 총알보다 빨리 달려서 살아야 하니까, 총알보다 빨리 달려야 해서인가? 그래서 우사인 볼트가, 총알탄 사나이 인가...

 

 

-공항에서 같이 장난치던 꼬마



-쿠바의 남쪽 바다


-자메이카 입국 스탬프

- 거리, 낮은 별 감흥 없다




-시계탑, 그리고 넬슨 만델라 공원.

-시외버스터미널

-하교하는 학생들. 낮에는 위험한 것들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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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쿠바, 하바나 - 스타벅스 커피보다 비싼 쿠바의 밀크티.(La Habana)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1. 4. 21.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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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는 것이 힘이다. 아는 것이 돈이다!

  우리는 "아는 것이 힘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 등의 "아는 것"과 관련된 다양한 구호들을 쉽게 접한다. 그리고 실제로 아는 것이 많을 수록 살아가면서 좀 더 많은 혜택을 누리기도하고[물론 너무 많이 알아서 피곤한 경우도 가끔 있다], 부당한 대우에 대해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 할 수 있다. 그 만큼 아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여행의 경우에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어느 유적지를 갔을 때 혹은 특정한 장소에 갔을 때 그 곳에 대해서 뭔가 색다른 사실을 알고 있다면 좀 더 풍부한 여행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 외에도 우리는 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앎으로써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모르면 혜택을 전혀 못받고 지나가거나, 더 심한 경우에는 금전적인 피해를 입기도 한다.[물론 모르는 상태에서 금전적으로 지출이 있었다면 그 지출조차 불필요한 지출이었다고 생각 할 수 없지만] 대표적으로, 공공 건물이나 OO타워 등의 대형 건물, 대형 쇼핑몰, 학교나 학원 등의 장소에서 상해를 입었을 경우 그에 따른 치료비를 다 지급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사소하지만 모르기 때문에 금전적인 손해를 보는 경우가 더러 있다. 한 개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런 경우는 두 가지 손해를 입는 것이다.[신체적 그리고 금전적 손해]
 
  특히, 여행의 경우 "아는 것이 돈이다"라는 말이 제대로 먹히는 경우가 많다. 인터넷을 통해서 수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철저하게 준비해 가는 사람은 여행의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인 금전적인 부분에 있어서 상당한 절약 효과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어느 도시의 어느 호텔[혹은 호스텔, 민박]이 가격 대비 시설이 좋은가부터 시작해서 교통비를 절약 하는 방법, 그리고 저렴하면서 질 좋은 식사는 어디서 할 수 있을지 등의 정보를 찾을 수 있다.



2. 모르면 손해다.

  관광지를 가면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많다. 별 것 아닌 문제로 기분을 상하게 되는 때도 많다. 휴가철이나 연휴가 끼어있는 주말 등의 어디론가 짧은 여행을 떠나기 좋을 때 우리는 연인, 친구 혹은 가족끼리 짧은 여행을 떠나게 될 경우가 많다. 그 여행지의 장사꾼들은 다른 지방에서 들뜬 마음으로 찾아온 사람들에게 '바가지' 요금을 부과하기 일쑤다.[희소성과 관광지라는 특수성을 강조하면서 부당한 요금을 부과하는 장사꾼들은 어디에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분명 내가 사는 동네에는 천원 하던 물건이 관광지에서는 2천원, 3천원으로 그 가치가 올라가 있는 경우를 자주 발견 할 수 있다. 우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어쩔 수 없이 돈을 지불하는 경우도 많다.

  한 외국인을 보았다. 다른 나라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특히 유럽이나, 아메리카 대륙] 포장마차에서 어묵 꼬치를 먹고 있었다. 한국 사람들은 하나에 5백원에 먹고 돈을 지불했는데, 그들은 하나에 천원을 지불하고 있었다. 근본적인 잘못은 그 장사꾼에게 있지만, 만약 그 외국인들이 다른 관광객이나 인터넷 정보를 통해서 가격 정보를 알았다거나, 차림표[혹은 가격표]를 읽을 줄 알았다거나, 누군가가 진짜 가격을 말해 줬다면 그들은 부당한 가격을 지불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르는게 병이 되어 부당한 대우를 당할 때가 많다.



3. 1CUC = 1Peso?

  베네수엘라를 떠난 비행기가 하바나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카라카스 쿠바나에어 사무실에서 구입한 쿠바 비자종이에 스탬프를 찍고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공항 로비로 빠져나왔다. 내가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환전소였다. 예상대로 형편없는 환율이었다.[쿠바는 US$에 대한 환율이 상당히 나쁘다. 반면 CA$의 환율은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울며 겨자먹기로 US$를 환전했다. 약 1.3달러 : 1CUC 였다. 나에게는 1CUC가 한국돈으로 1500원 가량 되는 셈이었다.[나중에 알게 된 한국 사람들은 캐나다 달러를 가져왔는데 1CUC에 천원정도의 환전비율이라고 했다.]

  쿠바에 오기 전, 호주에 머물 때 쿠바를 여행 갔다온 사람이 나에게 해준 말이 있었다. 쿠바는 여행자가 사용하는 화폐와 현지인이 사용하는 화폐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행자들이 환전을 하게 되면 여행자 전용 화폐인 1CUC(쿡)을 받아서 사용하게 된다고 했다. 나는 대략 쿠바에서 쓸 금액을 계산해서 조금 여유 있게 환전을 하고, 택시를 잡아타고 쿠바 시내로 향했다. 물론 택시비도 CUC으로 지불을 했고, 가자마자 잡은 숙소에서도 CUC로 방값을 지불하기로 했다.

  하루에 10CUC에 묵기로 한 불법 까사에 내 짐을 놓아두고, 나는 하바나의 중심가로 향했다. 해가 스멀스멀 멕시코만 저편으로 넘어가고 있었고, 어둠이 하바나를 잠식해갈 즈음이었다. 나는 배가 물가가 싸다고 들은 쿠바, 하바나의 식당에서 배를 채워볼 요량으로 식당가를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식당의 메뉴판, 그것도 모자라 길거리에 파는 핫도그나 샌드위치 조차도 내가 생각 할 때 터무니 없이 비싸보였다. 핫도그가 10peso 에서 15peso. 작은 아이스크림 콘이 5peso 였다. 식당의 메뉴는 25peso 부터 30peso 정도의 가격이 책정되어 있었다. 나는 혼란 스러웠다. '쿠바 사람들은 모두 엄청난 부자인가?'라는 의문과 함께 내 머리는 공황속으로 빠져들었고, 배가 고팠지만 나는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 까사의 삐걱거리는 침대위에서 내 지친몸을 달래야 했다.

  분명히 공항에서 환전한 CUC이라 불리는 돈에도 화폐 단위는 Peso라고 적혀 있었다. 1CUC이라 불렸지만 지폐에 적혀 있는 것은 1peso, 5CUC 은 5peso라고 적혀 있었다. 그렇게 치면, 길거리에 파는, 고깃집[갈비집 같은 곳]에서 무료로 디저트로 퍼 먹는 아이스 크림 하나가 5peso니까 5peso = 5CUC. 1CUC = 약 1500원. 아이스크림 하나가 7천원이 넘는 셈이었다. 

  살인적인 물가에 나는 굶어 죽을 수 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나는 세상이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아픈 머리를 베게속에 파묻었다.



4. 갑부들의 나라 쿠바?

  그가 눈을 떳을 때 싸구려 까사엔 아무도 없었다. 유리 없는 창문 밖은 그늘져 있었고, 그늘의 안쪽에서 새 소리만이 창틀을 넘어 그의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그는 아직도 어제 엄청난 음식가격의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상태였다. 그 엄청난 가격들은 그를 공황 상태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다음 비행까지는 5일이 남아 있었는데, 그 기간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는 론니플래닛 캐리비안 아일랜드(Lonely Planet Caribbean islands)의 Cuba 부분을 펼쳤다. 일단 먹는 건 둘째치고, 하바나에 왔으니 길을 걸으며 하바나의 공기라도 마셔볼 심산이었다. 쿠바의 일반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 건물. 복도 계단엔 전선들이 거미줄 처럼 얽혀 있었다. 옆 집의 TV소리, 아이 우는 소리, 그리고 새가 밥을 달라고 소리지르는 것 까지 바로 옆 에서 말하는 것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방음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집을 얼른 빠져 나왔다.

  그의 걸음엔 힘이 없었다. 먹은 것도 없었다. 까삐똘리오로 향했다. 숙소에서 비교적 가깝고, 많은 단체 관광객들이 버스를 타고 우르르 몰려와 사진을 찍고, 우르르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는 까삐똘리오 계단에 앉아 책을 읽으며 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까삐똘리오 길 건너편을 거닐고 있는 수 많은 쿠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수 많은 작은 가게들을 바라보았다. 수 많은 사람들이 가게에서 뭔가를 사먹고, 길을 떠나고 있었고, 거기에 발맞춰 많은 음식들을 또 다시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는 또 한번 생각 했다. 외국인과 내국인의 차별이 어느 정도 존재한다더니, 정말 여기는 외국인을 전부 초갑부로 알고 있는 건가? 길 건너편 핫도그를 파는 가게에서 소시지에 야채가 곁들여진 핫도그를 먹고 싶었지만, 가격은 12peso 였다. 핫도그 하나에 1만 8000원을 주고 사먹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5. 스타벅스 커피보다 비싼 구멍가게 밀크티 한 잔.

  까삐똘리오의 계단에 앉아 계속 궁상만 떨고 있을 순 없었다. 까삐똘리오 앞에서 사진만 찍고 사라지는 단체 관광객들을 구경하는 것도 신물이 났다. 어느 정도 배고픔이 사그라 든 것 같아 나는 발걸음을 구 시가지[쿠바의 낡은 건물들이 모여 있는 곳]로 옮겼다. 그리고 골목 골목을 거닐면서 쿠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이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만큼의 돈을 지불하면서 살아가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내가 가진 지식으로 그들의 물가를 이해하기에는 뭔가 역부족이었다.

  거리를 걷다가 어느 작은 식당 같은 곳 앞에서 사람들 몇 몇이 모여서 밀크티를 마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자 인도의 짜이가 미치도록 그리워 졌고, 나는 밀크티의 가격을 확인해 보았다. 3peso. 옆에 있던 상자엔 주먹만한 빵이 쌓여 있었는데, 밀크티와 빵 하나를 먹으면 금상첨화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밀크티 한 잔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 짧은 스페인어로 말했다. 이 빵 하나만 먹어도 되죠? 그리고 바로 빵을 하나 집어 들어서 밀크티와 함께 마셨다.

  계산을 해 봤다.3peso. 1500x3 = 4500원. 나는 지금 4500원 짜리 밀크티를 마시고 있다. 나는 지금 4500원 짜리 밀크티를 마시고 있다. 나는 지금 4500원 짜리 밀크티를 마시고 있다. 라고 누군가 내 머릿속에서 자꾸 소리치고 있었다. 그랬다. 인도의 달콤한 짜이는 1잔에 100원도 안했는데, 쿠바의 밀크티는 적어도 나한테는 한 잔에 4500원 이었다. 스타벅스 커피보다 비싸다.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나는 내 나이보다 조금 더 있어보이는 주인에게 5peso라고 적힌 5CUC짜리 지폐를 내밀었다. 그러자 그는 지금 잔돈이 없으니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면서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잠시 뒤 나타나서 2peso를 거슬러 주었다. 1peso 라고 적힌 지폐 두 장. 2CUC이었다.
  나는 생각했다.아까전에도 사람들이 많이 와서 사 먹던데, 왜 2peso를 바꾸기 위해 다른 가게 까지 갔다온걸까? 나는 그런 의문만을 남긴 채 그 곳에 모여있던 사람들의 시선을 등 뒤로 받으며 다시 까삐똘리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까삐똘리오로 오니 또 다시 배가 고팠다. 점심때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런데, 까삐똘리오 앞에 못 보던 장사꾼이 둘 생겼다. 빵 사이에 그냥 소시지만 꽂아서 파는 핫도그를 파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들 주위를 스쳐 지나가는 관광객인척 하면서 가격을 보았다. 내 눈이 휘동그래졌다. 핫도그 하나에 0.5CUC. 나에겐 혁명이었다. 어쩜 이럴수가 있지?

  나는 그 날 그 곳에서 식사를 다 해결했고, 마운틴 듀까지 1CUC를 지불하고 사 먹었다. 태양이 스믈스믈 낡은 건물들 아래로 모습을 감출 때 즈음 나는 나의 보금자리 불법 까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6. 불법 까사 주인에게 들은 이야기.

  그가 까사로 돌아오니, 이미 주인 아줌마가 먼저와서 작은 흑백 TV로 공연 DVD를 보고 있었다. 그에게 친한척을 하면서 옆에 앉으라면서 같이 보자고 했다. 그도 음악을 좋아하는 편이라 흥미있게 보고 있었는데, 그녀가 말했다. 니가 하루에 10CUC을 더 내면 아침과 저녁을 내가 해 주겠다. 그는 생각 해 보았다. 사실 좀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10CUC이라는 돈이 좀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싫다고 했더니 5CUC으로 가격을 내려서 같은 제안을 했다. 사실 숙소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던 터라 제안을 거절했는데, 여러가지 옵션을 더 제시하자 그의 마음이 조금 동요 되었다. 그리고 그는 쿠바의 살인적인 물가에 충격을 받고 있던 터라, 알았다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너무 기뻐하며, 자기가 잘하는 요리로 해서 대접하겠다며 이틀치 돈을 미리 달라고 했다.  그는 뭔가 찝찝했지만, 사기칠 사람같아 보이지는 않았서 그렇게 했다.

  그리고 스페인어 사전을 찾아가며 대화한 끝에 그는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환전소에 가면 1CUC을 24peso로 바꿔 준다는 말이었다. 그는 그건 쿠바나(쿠바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냐? 라고 되물었으나, 아무나 CUC을 가져가면 Peso로 바꿔준다는 거였다. 1CUC에 24Peso. 그러면서 필요하면 자기가 지금 가서 환전해 줄 수 있다고 했다. 아는 사람이 환전소에서 일한다면서 엄청난 호의를 베풀기 시작했다.

  그는 생각 해 보았다. 그랬다. 3peso 짜리 밀크티는 3CUC이 아닌 진짜 쿠바돈 3peso 였다. 그는 3peso만 지불하면 될 밀크티 가격에 72peso[3x24peso]를 지불 했던 것이다. 그는 또 한번 충격에 휩싸였다. 낮에 든건 없었지만 배가 고팠기에 맛있게 먹었던 핫도그도 알고보니 12peso짜리 핫도그 였던 것이다. 12peso짜리 핫도그는 길 건너에서는 야채까지 곁들여져 있었다. 식당 메뉴의 24peso도 실상은 1CUC이면 되는 것이었다.

  그 때부터 그는 쿠바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 그랬다. 까사의 하루 방값이 10CUC인데, 핫도그 하나가 12peso일리 없었다. 그는 그녀에게 20CUC를 주며, peso로 바꿔 달라고 했다. 그리고 잠시 뒤 그녀는 480peso를 그에게 가져다 주었다.



7. 여행에선 돈을 쓸 수록 배움이 크다?

  나는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쿠바가 정말 좋다. 물가가 싸다라고 다른 이에게 들었는데, 사실 나는 그 말을 이해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날 밤, 불법 싸구려 까사의 아줌마는 나에게 진실을 알게 해 주었다. 하지만, 내가 낮에 그런 일을 겪었다고는 말하지 못했다. 그건 지금 하나의 사건으로 남아 있다.

  밀크티 한 잔이 스타벅스 커피 보다 비쌌던 쿠바에서의 이야기.


- 노을의 까삐똘리오


-까삐똘리오 앞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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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삐똘리오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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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운동장


- 0.5페소 짜리 버스. 정말 좋다. 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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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 하바나 시티.


- 골목을 거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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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저씨


- 콘 아이스크림이 맛있던 가게의 형제



-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 풍의 음악이 울려퍼지던 재즈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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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쪽 돈이 CUC 아래 쪽 돈이 쿠바나 peso
CUC의 가치가 24배가 높다....돈도 더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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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 내가 돈을 얼마나 썼지?? (2) 교통비편.(남미)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준비 · 2010. 3. 30.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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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에 관한 포스팅이 아주.......아주 늦어지고 있지만;;(언제 포스팅을 할 지 의문..) 그래도 교생 기간중이라 매일매일 정신이 좀 몽롱하고, 책을 봐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으므로,,,사우나를 가기전에 간단한 포스팅을 하고자!! 학교 컴퓨터실에 잠깐 들렀다. 각설하고.


남미..그곳은 어디인가? 남아메리카. South America.
라틴 아메리카(Latin America)라고하면, 센트럴 및 남아메리카이다. (Central America and South America)

여기서는 내가 여행을 했던 쿠바(Cuba)와 자메이카(Jamaica)를 제외한
콜롬비아(Colombia), 에콰도르(Ecuador), 페루(Peru), 볼리비아(Bolivia), 브라질(Brazil), 베네수엘라(Venezuela)에서 썻던 교통비를 나열하겠다.(기억에 존재하는 것들만;;)



- 비행기.

미국 LA - 콜롬비아 보고타(Bogota)/ Mexicana Airline, 왕복 788 USD.(리턴 버림)
베네수엘라 - 쿠바/ Cubana Air, 쿠바나 사무실에서 2400peso 편도 (당시 환율 한화 약 65만원, 출국세 및 텍스, 비자 까지 거의 80만원 든듯;;)

볼리비아 국내선을 이용해서 아마존으로 가려고했으나,,,자리가 없어서 타지 못했다. 남미에서는 비행기를 딱 두번! 탔네?


- 기차.
(남미에서 기차타기란......? 힘들다. 최근에 페루 폭설로, 마추픽추가는 페루레일이 유실됐다는....복구됐을라나??)

페루국내,
오야이따이땀보 - 마추픽추(아구아스갈리엔테스), 편도 US$ 53.
마추픽추 - 오야이따이땀보, 편도 US$ 43.
(트래블러용 저렴한 기차 몇 대 있었지만 내가 갔을 땐 이미 매진.)


- 배.
볼리비아 - 브라질 국경

구아야라메린(Guayamamerin, 볼리비아) - 구아야메린(브라질), 4헤알 or 10볼리비아노, 5분도 안걸림..)

브라질 국내,
프로토벨로(Proto Vhelo) - 마나우스(Manaus),
편도, 170헤알. 3박 4일(물길방향, 역방향은 4박 5일)
(출항 전, 입항 후 배에서 자는건 무료다. 그래서 본인은 배에서만 7박을 했다는...)

- 버스 (두둥!!)
버스버스버스. 버스는 나의 집이었다.............-_-
남미에서 버스는,,, 그냥 1시간에 1달러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콜롬비아, 브라질(우리나라보다 더 비싼듯?!) 빼고..

콜롬비아 국내,
보고타(Bogota) - 칼리(Cail), 55,000페소 , 약 10시간. (약 4만5천원)
칼리(Cail) - 이피알레스(Ipiales, 국경), 40,000페소,  약 9시간(약 3만 3천?)

에콰도르 국내,
툴칸(Tulcan, 국경) - 키토(Qito), US$ 5.  , 약5시간
키토 - 후아킬라스(Huaquillas, 에콰도르 국경 사무소, 사무소에서 국경마을까지 1.5 달러), US$ 9.5, 약 10시간

페루 국내,
국경 - 툼베스(Tumbes),
콜렉티보(Colectivo)  2.5솔.
툼베스 - 리마(Lima), 80솔, 이코노미 Flores Bus , 24시간(약 2만원?)
리마 - 쿠스코(Cusco, Cuzco), 70솔 이코노미 Civa Bus , 26시간(약 2만원?)
쿠스코 - 푸노(Puno), 30솔, Bus cama , 6.5시간 , (약8~9천원?)

볼리비아 국내,
푸노(Puno) - 요융교(페루, 볼리비아국경) - 라파즈(La paz), 약 20솔, 미니버스, 콜렉티보, 릭샤
라파즈 - 우유니(Uyuni), 100볼리비아노(편도), 약15시간 (약 2만5천원)
우유니 - 라파즈, 100볼리비아노, 약 10시간,
라파즈 - 구아야라메린(Guayamamerin), 170 Boliviano,(편도), 약 48시간, (약 4만원?)

브라질국내,
구아야라미린(Guayamamerin, 볼리비아-브라질 국경) - 프로토벨로(Proto Vhelo), 45헤알, 미니버스 (약3만원)
마나우스(Manaus) - 보아비스타 (Voa vista), 120헤알, 편도, 12시간, (약 7만원)
보아비스타 - 산타엘레나(Santa Elena, 국경), 13헤알, 편도, 4시간. (약 1만원)

베네수엘라 국내,
산타 엘레나(국경) - 시우다드 데 볼리바르(Ciudad de bolivar), 70 페소, 약10시간  (약 18000원)
시우다드 데 볼리바르 - 카라카스(Caracas), 80페소, 약 8시간, (약 2만원)



합계????
약, 210만원 정도?   남미에서 교통비가 생각보다 많이들었다....비행기값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다음편,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레저비용으로 쓴돈......................(투어 참가비 및 스카이 다이빙 등등의 레저비용)
언제가 될 지 모르겠지만......






- 콜롬비아 보고타로 가는 길, 멕시카나 에어라인


- 레전드, 콜롬비아 보고타


- 플라자 데 산토도밍고, 에콰도르 키토


- 마추픽추 역(驛), 페루 아구아스 깔리엔테스(쿠스코, 오야이따이땀보)


- 페루레일


- 섬 사람들, 볼리비아 푸노(Lake titicaca, 티티카카 호수)


- 산위의 집들, 볼리비아 라파즈


- 소금사막위를 달리다, 
볼리비아 우유니(소금사막, salar de uyuni)


- 소금사막 위의 작은 섬,
볼리비아 우유니


- 안데스는 살아있다.
안데스 산맥 투어, Los andes


- 안데스 산자락의 작은 마을,


- 조용하고, 평화로운 안데스


- 플라멩고는 똥물에 산다.
볼리비아 안데스 산맥


- 해가 지고, 달이 뜨고, 어둠이 깔리고,
브라질, 아마존(프로토 벨로)


- 배 위의 열정,
브라질 아마존,


- 국경,
브라질 - 베네수엘라/ 산타 엘레나.


- 아직도 혁명인가?
베네수엘라 카라카스(carac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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