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got the job! - 02, 눈을 다치다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0. 3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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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
호주 남서부지역의 농장에서의 일거리는 대부분이 푸르닝(Pruning)이다.
특히, 마가렛리버(Magaret river)와 그 주변지역의 와인은 굉장히 유명하다. 퍼스 주변에도 많은 와인팜들이 있고, 나 또한 포도밭에서 겨울철 포도나무를 다음는일을 한 것이다.

나는 컨츄렉(Contract)이 아닌 아월리(Hourly)로 일했기 때문에, 푸쉬업(Push-up)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일을 빨리빨리 해야했다. 컴츄렉이라면 내 능력이되는만큼 하고싶은 만큼 일을 하고 돈을 받으면 되지만, 아월리는 시간으로 수당을 계산하기에 푸쉬업을 받았다.


오랜만에 날씨가 좋은 날, 햇살조차도 따사로왔다.
그 날도 역시 나뭇가지자르는 기계로 열심히 가지를 자르고 있었는데, 잘린 나뭇가지가 갑자기 튀어올라 내 눈을 강타했다.

한순간이었다.
가끔, 잔가지들이 튀어서 얼굴 주변에 맞긴 했었지만 정확하게 눈을 강타해버린 것이었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눈물이 계속 흘러나왔다.

약 10분 후,
서서히 눈을 떳지만, 따갑고 사물이 흐릿하게 보였다. 안약을 넣어보기도 하고, 물로 씻어보기도하고, 그렇게 눈을 감고 30분 쯤 후에 좀 더 안정이 되었을 때 눈을 보니, 동공의 옆에 살짝 찢어진 것 같은 흔적이 보였다.

컨츄렉터에게 전화를 해서, 다쳐서 일을 할 수 없고, 병원을 가봐야겠다고 말했다. 컨츄렉터는 한두시간뒤에 온다고 했다.(우리 팀은 매일아침 우리가 농장으로 가서 우리끼리 일을 하고, 일이 끝나면 전화로 그 날 어느정도 일을 했는지 보고하는 식으로 일을 했기 때문에 눈치보지않고 마음편하게 일을 할 수 있었다)


컨츄렉터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일을 시작한지 이제 이주 남짓. 내가 모은 돈은 한국가는 비행기표를 사고, 약간의 생활비 정도.
혹시나, 눈을 수술해야한다고 하면 일을 그만두고 한국으로 가야 하는 건아닐까?
만약 한국에 가면, 한국에서 수술을 하고, 한국에서 알바를 해서 그 돈으로 미국이라도 잠깐 갔다와야 겠다..는 생각.
나도 지금 일으 할 수 있는데, 눈이 좀 아픈것만 말고는 일을 할 수 있는데,,오늘 100달러 날렸다는 생각,,
호주 병원비도 비싼데, 호주에서 수술해야한다고 하면어쩌지? 라는 생각.
아무튼 별에 별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점심을 먹고나서, 병원.
의사가 내 눈을 검사했다. (그래도 역시 비교적 잘 산다는 나라라서 그런지 시설은 인도에 병원갔을 때보다 좋은 것 같았다.)
눈에 뭔 용액을 붙고 닦아내고 이것저것 하고 거즈를 눈에 대었다. 그리고 나서 눈을 떠보니 한결 깔끔한 느낌이었다.
의사가 약국에가서 나보고 연고를 사오랜다... 애꾸눈으로 약국에가니 정신이 몽롱했다. 처방전에 적혀있는대로 약을 달라니까 약사가 뭐라뭐라고 웃으면서 농담같은걸 하는데 뭔말인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시 병원,
연고를 2시간마다 눈안에 바르랜다...연고를 눈에 바르라니? 안약을 넣는 것도 아니고.. 아무튼 그렇게 하라니까 했다.(연고를 바르고 눈을 깜빡이면 눈밖으로 다 삐져나왔다..그래도 그 연고가 3만원이나 하니 버릴 수도 없고 열심히 발랐다).
그리고, 3일뒤에 다시 병원에 오라고 했다..사실 다시 올까말까 고민했다. 그래도 다시 오기로 했다.
그렇게 병원 치료가 끝났다..

내심 마음속으로 병원비 걱정을 하고 있었다.
물론 여행자 보험을 들긴 했지만,,당장 가진돈이 얼마 없었기에,,메디케어(Medicare)혜택이 없는 나로서는 일반진료비가 100달러 였다.
결제하려고 카운터에 가니, 결제가 다되었다는 거였다.
'엥? 난 결제한적이 없는데??'

알고보니, 직장의료보험으로 처리된 것이었다. 근무중에 다친거니까 직장보험으로 처리되어 직장에서 치료비를 내준 것이었다. 다행이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래, 난 합법적인 외국인 노동자니까."

그렇게 다시 농장으로 돌아와,
나무 그늘 밑에 누워서 낮잠도 잤다. 다른 사람들은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지만, 뭐 이렇게 된 것 오랜만에 휴식을 취했다. 오렌지도 따먹고, 야생 오리도 괴롭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뻣던 건,
내가 의사에게 내 눈의 상태가 어떻냐고 물었을 때,
의사가 No problem 이라고 말하면서 내일부터 일을 해도 상관없다고 말을 해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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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looking for job! - 04, 구직자에서 외국인노동자가 되기까지 03.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0. 27.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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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의 첫 주,
난 럭키가이라고 생각했었다.

호주에서의 둘 째주,
이대로 호주에서의 워킹은 실패로 끝나는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공장을 돌아다니면서 어플리케이션을 쓰러 다녔지만,
공장의 리셉션(Reception)에서는 하나같이 같은 말들을 반복했다.
"지금 시기에는 사람을 뽑지않으니까, 나중에 모집하게되면 연락주겠다."
"지금은 경제가 어려워서 사람들을 해고하고 있는 상황이다. 어플리케이션을 쓰는건 시간낭비다."
"지금은 겨울이라서 일거리가 별로 없다. 12월이나 1월에 다시 와라."  (어쩌라는거냐? 난 11월말에 호주를 뜰 거단말이다...)

아무튼, 저런 멘트들이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거기다가, 나의 몸상태가 조금씩 나빠지고 있었다.


아무튼,
일을 구하러 다니기 시작하고  2주가 다 지나가려 하고고 있었다.

금요일,
그 날도 에이전시에 들렀지만, 일이 없다는 소리를 들을 수 밖에 없었다.
힘이 빠졌다. 통장의 잔고도 이미 바닥이었다.

수없이 어플리케이션을 썻던 공장들은 무응답이었다. 보통 금요일날 인터뷰를 보고 월요일부터 일을 시작한다는 사람들의 말. 이미 끝난 것 같았다.

금요일 오후,
일을 구하러 돌아다닐까하다가, 힘도 나지않고해서 기분전환할겸, Blue cat(Perth시티의 무료버스)을 타고 스완강가(Swan river)로 갔다.  그 곳 벤치에 앉아서 많은 생각을 했다.
다음주까지 안되면, 걍 한국이나 갈까? 하는 생각.
한국가서 몇 달 돈 벌어서 미국이나 갈까 하는 생각.
그리고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
그리고 여행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들.

그리고, 저녁때 교회에나 가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통의 전화가 울렸는데, 퍼스에 처음 왔을 때 만난 형님이었다. 특별히 바쁜일이 없어서, 그 형님의 일을 도와 주었다. 어차피 그 형님도 교회에 다녔기 때문에 같이 교회에 가기로 했다.

금요일 오후 5시,
에이전시에서 한통의 전화가 왔다. 순간, 느낌이 왔다. 왔구나............. 금요일 오후 5시가 조금 넘은 시간.
에이전시는 4시 30분에 문을 닫는다. 왠일일까?
"Hello? this is Mr chang. speaking."
"Hi, Chang,, 어쩌고 저쩌고"

결론은,
일자리가 생겼는데, 당장 내일부터 일할수 있냐였다.
너무 흥분해서, 알았다고하면서 입에서 이상한 영어가 막 튀어 나왔다. 그래도 에이전시 메니져는 성격도 좋고 농담따먹기도 좋아하는 편이라서 나에게 농담도 하면서 자기와 만날 시간과 약속을 잡았다.

나는 나와 같이 있던 형님에게 말하고, 에이전시로 갔다.
막 퇴근하려던길에 나를 발견한 에이전시 메니져는 잘 왔다면서 나에게 일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었다.
그리고 행운을 빈다면서, 무슨일이 생기면 자기에게 전화하라고 명함을 건네주었다.

일에대한 소개가 적힌 종이와, 내가 일하러 가게될 곳의 전화번호, 주소, 준비물, 임금 등이 적힌 종이를 주었다.
그것을 받아들었을 때 그 기쁨이란!

마침, 그 날 텍스파일넘버(TFN, Tax file number)을 받았고, 모든것이 완벽했다.

그렇게, 일을 시작 할 수 있다는 생각과, 지난번처럼 펑크가 날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함께 내 몸속에 공존하고 있었다.


모든 것은 내일 결정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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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tract VS. Hourly

- 길을 걷다, 세계여행/Feel-ing, 세계일주-ing, · 2009. 10. 26.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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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ntract VS. Hourly.


고용자와 피고용자.
Business to business.
능력제와 시간제.
그 갈등.

고용하는자는 계산기를 두드린다.
피고용자는 머리로 생각하고 몸을 움직인다.
조금이라도 손해를 볼 수 없다는 고용주.
조금이라도 손해를 볼 수 없는 피고용자.

하지만,
그 승자는 인센티브라는 먹잇감을 가지고 있는,
고용주.
그것이 농장의 현실.


21/08/2009. Fri.
Upper swan, Australia.





- 쌍무지개가 너무 잘보여서 사진 찍을려니까 앞에서 절대 안비켜준다,,,드루먼, 컨츄렉터


- 드루먼의 수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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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농장에서,

- 길을 걷다, 세계여행/Feel-ing, 세계일주-ing, · 2009. 10. 24.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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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주 농장에서,

호주의 와인팜,
작은 언덕들로 둘러쌓은 포도밭.

이른 아침,
안개가 포도나무들을 감싸고 있다.
캥거루들이 포도나무 사이를 뛰어다닌다.
오리들이 개울에서 몸을 씻고 있다.
다양한 새들이,
오렌지나무에 앉아 오렌지를 쪼아 먹는다.

포도밭에서 시작하는 하루.
내가 다듬은 나무에서 재배되는 포도가,
3년 뒤, 와인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의 몸속으로 들어간다.

햇살이 찾아드는 와인팜.
안개는 어느새 걷히고,
해질녁의 와인팜은.
신비스러움을 머금고 있다.


11/08/2009 Tue.
Bullsbrook,WA Australia.







-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있는 포도밭



- 수 천그루의 포도나무들



- 농장의 경운기~


- 오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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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looking for job! - 03, 구직자에서 외국인노동자가 되기까지 02.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0. 23.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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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 와서 맞이한 첫 번째 월요일에 두 개의 농장일을 놓쳐버리고나서, 나는 집중적으로 공장에 가서 어플리케이션Application을 쓰기로 했다.

물론,
오전에는 잡에이전시(Job Agency)에 들러서 일자리가 있는지를 물어보고, 일이 없다고하면 점심도시락을 챙겨서 공장지대를 돌아다녔다.

구글어스(Google Earth)로 퍼스Perth 주변의 공장처럼 보이는 곳의 위치를 확인한 후 그 곳을 돌아다녔다.

운 좋게도 퍼스에서 좋은 사람 몇몇을 만나 일을 구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모두가 형, 누나들이었고 호주에서 1년이상 워킹으로 와 있던 사람들이어서 나에게 많은 이야기도 해 주었는데,

특히, 난 여행중에 호주에 들려 잠깐 돈을 벌고 가야하는 처지라서 시간이 별로 없는 상태였기에 그 사람들의 도움은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퍼스에서 만난 형과 함께 그 형의 차를 타고 프리맨틀Fremantle 주변의 공장을 돌면서 어플리케이션쓰는 요령을 배웠다. - 조금 더 내가 쓴 어플리케이션폼이 눈에 띌 수 있는 노하우를 보고 배웠다. -

그리고,
주변의 공장과 주변 사정, 퍼스 주변의 농장의 정보에 대해서 많은 걸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시즌이 겨울(내가 호주에 처음 왔을 때가 7월 중순, 일을 구하러 다닐때가 7월말 8월초,,호주는 한겨울이었다)이라서 많은 공장들이 인원을 줄인 상태였고, 거기다가 호주경기가 나빳기 때문에 하나같이 사람을 모집하지 않는 다고 했다.
한국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곳까지 돌아다녔으나, 일을 구하기는 힘들었다. 

시간이 지날 수록, 난 점점 더 초조해졌고, 통장의 잔고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나의 건강상태도 더욱 악화되어 갔다. - 많은 나라들을 여행하다보니 몸의 밸런스가 깨어져버렸었다.


그래도 어쩌겠나?
나는 그냥 열심히 알아보고, 돌아다녔다.
매일 아침, 호주 정부에서 운영하는 잡사이트와 몇몇 에이전시사이트에 올라오는 일자리를 확인하고, 에이전시에 가서 일자리를 문의했으며, 돈이 급했기에 돈은 얼마 안되지만 새벽에 청소를 하는 일도 알아 보았다.

그렇게 몇 일 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일을 구하러 다닌지 2주차가 되었다. 이제는 에이전시에서 나를 알아볼 정도가 되었다. 내가 에이전시에 들어가서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오늘 일거리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그리고 일을 구할 수 있는 다른 방법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나중에는 서로 친구먹을 정도 까지 되었다)


호주에서 맞이하는 두 번째 월요일,
드디어!!
에이전시에서 잡을 하나 얻어 내었다. 그리고 일을 하러 당장 떠날 수 있다고 말해놓은 상태였다. 사실은 경험자를 원했는데, 난 별에별 구라를 다 쳐가면서, 할 수 있다고 우겼고, 워킹 세컨비자가 필요하니까 꼭 시켜달라고 떼를써서 하기로 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게...(지금 생각하면 그 때까지도 참 어리석었다. 하지만 글을 쓰고있는 지금은 더 잘 되고 있으니 다행이다)
에이전시에 올라온 다른 일이 조금 더 끌렸다. 벌을치는 일이었는데, 왠지 그 일이 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 일을 시켜달라고 했더니,
"농장간다며?"라면서 정색을 하길래,
"dont worry my second visa. I'd like to bee keeping"이라고 말했다.

그게, 실수였다.
월요일이라서 안그래도 일이 바빠서 스트레스 받는데, 내가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니까 짜증이 난거였다.
알았다고, 일단 기다리라고 해서 기다렸는데,,,,

결국은, 둘다 캔슬이 되었다.

절망.
참 많은 후회가 밀려 들었다.
괜히, 조금 더 좋은 조건에, 뭔가 재미있을 것 같은 일을 해 보려다가
두마리 토끼를 다 놓친 격이었다.

또 다시 느꼈다.

일을 하려거든,
그 일이 있을 때 그냥 무조건 시작하고 나서 계속할 지 그만둘지를 결정해야 된다는 것을.
기회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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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그 곳에 발을 내 딛다.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0. 18.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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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를 하면서, 여행을 하는 데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생각하고 있던 호주 워킹홀리데이(Working Holiday), 워킹 홀레데이만이 세계일주를 계속 할 수 있게 해줄 유일한 희망이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모스크바에서 바이칼 호수가 있는 이르쿠츠크를 지나 몽골을 지나고 중국을 거쳐 호주 서부(Western Australia)의 퍼스(Perth)로 날아갔다.



내가, 퍼스를 선택한 이유? 

케언즈(Cains), 시드니(Sydney), 브리즈번(Brisbane) 등  유명 도시들을 선택하지 않고, 퍼스를 선택한 이유?

첫째, 한국에서 알던 사람이 자신이 젊었던 시절에 퍼스에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했다.

둘째, 여행을 하며 만났던 사람들 중에서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하고나서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이 호주의 퍼스에서 일했고, 호주에서 퍼스가 제일 좋은 것 같다고 했다.

셋째, 호주의 여러 큰 도시 중, 한국 사람이 제일 적은 곳이 퍼스라고 했다.

넷째, 비행기 표값이 제일 쌌다. 호주의 서쪽에 있다 보니 그런 것 같았다. 편도로 텍스 포함 51만원에 표를 구입했다.

여러가지 이유로 호주의 서부 주도, 퍼스로 날아갔다. 


- 퍼스 Esplanade, 시티 버스 터미널.


7월 22일. 밤. 퍼스 국제공항. 퍼스에는 비가 추적추적내리고 있었다.

 호주의 세관 검사는 까다로웠다. 나무로 된 제품을 들고 있는 경우에는 검사를 받아야 했으나, 젬베(djambe)와 스케이트보드를 들고 있던 나는 의외로 간단하게 통과되었다. 세관 검사를 하는 사람이 스케이트보드를 보며, "Is that all"이라고 물었고 나는 "Sure"라고 대답했다. 뒤쪽에 줄은 길게 늘어져 있었고, 세관 검사 요원은 나를 그냥 통과해 주었다.

 어디로 가야 할 지 몰랐던 나는 공항에서 노숙을 하고 아침 해가 밝으면 퍼스 시내의 백패커(Backpacker, GuestHouse)로 갈 생각이었다. 공항에서 노숙하려고 자리를 찾다 보니, 서양 애 하나가 자리를 잡고 있길래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공항 세면대에서 세수를 하고 밤을 새려고 준비를 하고 있는 찰나, 공항에 숙모를 픽업하러 나왔다는 어떤 한국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한국 분이시면 저희 집에 가서 하루 주무셔도 돼요"

공항 한쪽 구석에서 노숙을 하려는 내가 안쓰러워 보였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호주에 오기 전 한국인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한국인이 많다고 해서 섣불리 따라간다고 하지 못했다. 잠시, 고민하다가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한 나는 '호의를 베푼'한국 사람을 따라갔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 사람과의 인연도 거기서 시작이었다. 좋았다면 좋았을 인연, 나빴다고 하면 나빴을 인연. 아무튼 나는 그 분에게 빚을 졌고, 그렇게 호주에서의 생활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겨울이라고는 했지만 춥지 않았다. 그리고 맑았다.


앞으로 펼쳐질 호주에서의  워킹라이프(Working Life)에 대한 기대감을 품은 채 잠이 들었다. 수요일 도착,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텍스파일 넘버(Tax file Number)를 받고 휴대폰을 개통했다. 주말에는 교회에 나가기로 했다. 마침 나를 자기 집에서 재워준 사람이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분이라서 그 교회에 가기로 결정했다.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오랜만에 잠도 많이 자고 푹 쉬었다. 갑작스럽게 바뀐 계절의 변화. 기온에 적응해야 하기도 했고, 호주에서 일을 시작하려면 체력 보충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일(job)을 구해야 했다. 마음 한켠엔 일을 못구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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