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만이 가질 수 있는 기회, '호주 워킹홀리데이' -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는 곳.

- 호주, 워홀이야기- · 2015. 5. 23.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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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靑春)! 듣기만해도 가슴 설레는 말이다(민태원, '청춘예찬')"라는 말을 자주 생각하곤 합니다. 많은 청춘들이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자신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노력의 하나로 '젊음의 특권'이라고 불리는 '워킹홀리데이'를 계획하고 있기도 합니다.

  많은 청춘들이 '20대'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생각합니다. 호주 워킹홀리데이가 그리 호락호락한 것만은 아니지만, 드넓은 호주에는 무궁무진한 기회와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호주워킹홀리데이를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합니다. 저도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왔었고, 제 친구들과 주변 지인들도 여럿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왔는데요, 모두들 호주에서의 경험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호주에서 만난 친구들과의 추억. 그리고 호주에서의 생활과 여행까지. 호주는 젊은 청춘들에게 물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은 것을 전해주는 장소라고 할 수 있죠 :) 


△ 호주 워킹홀리데이, 자신의 인생을 바꾼 경험.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 꿈을 찾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

즐거운 반전의 시작. 호주에서 [                    ] 나를 발견하다. 


△ 호주의 상징 캥거루.

캥거루 아일랜드.

www.australia.com/ko-kr(호주정부관광청)

 

  호주는 '호주 대륙'이라고 불릴 만큼 드넓은 땅을 가지고 있고, 다양한 기후, 멋진 자연 풍경을 자랑하는 곳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동부 대도시에 모여살고 있긴하지만, 서부와 북부, 남부 등지에도 도시를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죠. 뿐만 아니라 호주 대륙 곳곳에는 일을 하고자하는 사람들을 위한 일자리들이 도처에 널려있기도 합니다.

  '호주워킹홀리데이'를 떠난 사람들 대부분이 1년, 그 이상을 호주에 머물고 싶어합니다. 1년이라는 시간이 정말 너무나도 짧다고 느껴질 뿐만 아니라, 너무나도 할 수 있는 것들이 많고,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은 곳이기 때문이죠. 호주워킹홀리데이를 통해 외국인 친구들과 어울리며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고, 돈을 벌어서 여행을 떠나는 것. 호주 대륙의 다양한 모습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만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호주의 다양한 매력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사진으로도 그 감동을 온전히 전달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 호주는 '보드 스포츠'의 메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서핑(Surfing)'을 하기에 너무나도 좋은 비치들이 많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서핑 스팟으로, 시드니 북쪽의 '골드 코스트(gold coast, 골코)'가 있죠.

http://www.australia.com/ko-kr

△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에서의 다이빙/스노클링

△ 많은 이들이 찾는, 호주 남부의 대도시

'멜번'

△ 호주의 대표적인 도시 '시드니'

시드니의 하버브리지와 오페라하우스의 야경이 일품입니다.

http://www.australia.com/ko-kr

△ 호주 서북부 '브룸(Broome)'에서의 낙타 사파리.


△ 호주 관광청에서는 작년에 이어 올해(2015년)에도 '호주로 보내주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Let's Go 호주'라는 이벤트

'호주 정부 관광청 홈페이지' 혹은 '호주 관광청 페이스북'에 접속해서,

호주 사진들을 감상한 뒤, 자신이 가보고 싶은 곳을 선택, 자신의 공약과 함께 사진을 올리면 된다.

선정된 사람에게는 '호주 왕복 항공권 1매(1명/대상)', 인기상 30명에게는 스타벅스 아메라카노 1매가 증정된다.(~6월 5일까지)


- 호주 정부 관광청 페이스북 페이지 : www.facebook.com/wowaustralia

- 호주 정부 관광청 홈페이지 : www.australia.com/ko-kr

- '더콘테스트' 이벤트 관련 페이지 : www.thecontest.co.kr

△ '20대, 나를 찾아 떠나는 호주 여행' 이벤트도 진행하고 있다.

1차 미션 퀴즈와 2차 면접(1차 합격자들)을 통해 선발되는 사람들에게는 '호주 왕복 항공권'과 '어학코스(+홈스테이)'가 제공된다.


- 1차 미션 통과자 30명에게 호주 Top 10 도서 증정.

 1등 총 2명 :  시드니 맥쿼리대학 부설 어학코스 4주 + 홈스테이 4주 + 항공권(1명) / 다윈 나비타스 어학코스 4주 + 홈스테이 4주 + 항공권(1명)

2등 총 2명 : 애들레이드 비즈니스앤테크놀로지 인스티튜트 어학코스 4주 + 항공권(1명) / 퍼스 커튼 대학교 부설 어학코스 4주 + 항공권(1명)


- 퀴즈 참여 홈페이지(더콘테스트) : www.thecontest.co.kr/quiz/Australia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계획중인 사람이라면 위의 이벤트에 참여해서 더 좋은 기회를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가기 전에 '필리핀'에서 어학 연수 과정을 거치거나 호주 현지에서 어학연수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호주 정부에서 '어학연수 + 홈스테이 + 항공권'을 제공한다고 하니, 한 번 도번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벤트에 당첨되지 않더라도, 호주에서 자신의 미래를 위한 열정의 불씨를 키워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 '엔조이(i)유어라이프 닷컴'의 호주 워킹홀리데이 관련 글


 - 워홀이야기] 예비 워홀러들에게 고(告)하다.

 - 워홀이야기] 호주에서, 워킹을 끝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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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홀이야기] 예비 워홀러들에게 고(告)하다.

- 호주, 워홀이야기- · 2011. 12. 10.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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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rd edit(2nd edit 10.12.08)


1.호주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고하다.

  내가, 호주에 머물면서 틈틈이 포스팅을 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많은 예비 워홀러들이 나에게 무언가를 물었고, 나 또한 호주에 입국하기 전 여행을 하면서 워킹홀리데이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호주에서의 성공을 꿈꾸었다.

  한 때, 나에게 조언을 구하던 여러 사람들 중에는 이미 호주에 도착해서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직 '호주'라는 광활한 땅에 가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호주에 도착했지만 일이 생각만큼 잘 풀리지 않아, 나에게 조언을 구하는 사람도 있다.
  나에게 많은 질문을 했던 사람들, 그리고 나의 글을 보면서 호주에서의 희망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딱 한가지다.

"열정을 가지고 가라. 그리고 자신의 목표를 확실하게 정하라"는 말.

  한번은 파랑새의 꿈 대구지부에 들른적이 있다.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기 전, 사전 교육 일정이 있다고 했다. 그 때 호주 워킹홀리데이에 대해서 이야기 해 주던 분이 해 준 말이 생각난다.  "자신의 목표를 확실하게 해야한다."

돈이면 돈, 영어면 영어. 하나라도 건져야 한다. 일단 한가지에 목표를 두고 열심히 하라는 뜻이다.


  나의 목적은 돈이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여행 경비.
호주와 남미, 중미, 미국 여행을 위한 여행 경비가 필요 했다.
그리고, [나의 호주이야기를 보면 알겠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 내가 호주에 있을 때,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과 연락을 한 적 있는데, 호주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일은 여전히 힘들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이 노력한다면 얼마든지 길은 있다고 생각한다.[나와 연락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정말 노력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운도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 나의 이야기.

  처음, 호주 퍼스(Perth)에 갔을 때, 나는 정말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호주에 도착해서 무작정, 일을 구하러 다녔다. 처음 백팩에서 만난 아일랜드 가이 '말리키', 그리고 백팩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인 스탭에게 들은 정보, 처음 간 교회에서 들은 정보 등 그들에게서 정보를 얻고, 계획을 짜고, 그리고 몸을 움직였다. 부지런히 다녔고, 필사적이었다.[여기서 멈추면 내 여행도 끝이라는 생각에]

  매일 아침,
  퍼스 시티(Perth city)의 에이전시가 문을 열기전부터 기다리다가, 문을 열자 마자 안으로 달려 들어가 직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항상 그들이 나에게 해 준말은, 일이 없으니 다음에 연락을 주겠다.였다.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 마다 웃으면서 나왔다[마음은 좋지 않았지만]. 일자리를 얻기 위해 한국에서의 아르바이트 경험은 물론, 군대에서 했던 일도 거창하게 이력서에 써 넣었다. 물론, 하지 않은 일도 해 봤다고 적었다. 할 줄 모르는 것도 일단 할 수 있다고 우기면서, 대단한 능력자인 것처럼 행동했다.

  한번은,  the job shop 이라는 에이전시에서, 나에게 일자리를 주기로 했다. 그날 밤, 나는 기쁜 마음으로 모든 짐을 다 싸놨지만, 마지막에 그 일자리가 나와 같은 에이전시에서 일을 구하던 프랑스애들에게 넘어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는 끓어 오르는 분노를 억지로 꾹 눌러서 참았다. 아니 분노를 누를 수 밖에 없었다. 그 프랑스 애들은 트랙터 자격증이 있었고, 나보다 영어를 잘 했기에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여기서 내가 화를 내면, 혹시라도 나에게 돌아올 지 모르는 다른 일자리 마저 없어질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 일을 겪으면서도, 매일 에이전시에 드나들었다. 나는 내가 성실하다는 것을 보여 줘야 했고, 부지런 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고, 나는 결국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나를 믿게 만드는 방법은 부지런함을 직접 보여주는 것 뿐이었다]

  두 번째 일을 구할 때는 더 힘들었다. 나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었다. 거기다가 여행을 위한 자금은 충분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비행기 푯값은 치솟고 있었다.

  매일 아침, 모두가 잠들어 있는 시간 일어나서 씻고, 백팩에서 제공해주는 아침을 먹고, 백팩에서 제공해주는 빵과 잼으로 도시락을 쌌다. 그리고 공장 지대를 돌아다니면서 어플리케이션을 썼다. 공장 지대의 길 모퉁이에 앉아, 심란하고 우울한 마음으로 맛없고, 건조한 빵을 질겅질겅 씹던 기억이 있다.
  
  때로는 무턱대고 공장 오피스를 찾아다녔다.,그리고는 직원에게 인터뷰 하러 오라는 전화를 받았다며, 인사 담당자를 만나게 해 달라고 떼를 쓰기도 했다. 그럴 때면, 문전 박대를 당하기도 하고, 인사 담당관을 만났지만 거절 당하기도 했고, 미친놈 취급을 당하면서 쫓겨 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절박한 심정이었기에, 무엇이든 하려고 달려든 것이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한때는, 공사장에서 노가다라도 할 요량으로, 블루 카드(Blue card : 공사장같은 곳에서 일하려면 필요한 카드)를 만들기 위해, 신문 광고를 뒤져 가장 싼 가격으로 블루 카드를 발급해 주는 직업 훈련소에 가서 교육을 받고, 시험을 보고, 블루 카드를  발급 받았다. 블루 카드 발급을 위해 교육을 받는 내내, 혹시나 교육을 받고 나서 시험에 불합격 하여 블루 카드를 받지 못할 까봐, 필사적으로 문제를 풀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중고차 매장들을 돌아다니며, 세차라도 할 수 있게 일자리를 달라고 해 봤고, 이삿짐 센터에도 찾아가서 물건을 잘 나른다고 일을 시켜 달라고도 해 봤다.
  매일, 혹시 오늘은 내가 어플리케이션을 쓴 공장에서 전화가 오지 않을 까.라는 생각에 항상 전화기를 붙잡고 전화벨이 울릴 때 마다 가슴을 조리던 적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노력한 만큼 운이 따랐고 좋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처음, 농장에서 일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내가 이력서를 넣었던 에이전시에서 연락이 온 적이 있다. 일자리가 생겼다고 연락이 온 것이었다. 그것도 내가 열심히 눈도장 찍은 결과가 아닌가 싶다.
  어플리케이션 쓰러 갈 때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었고, 에이전시에서도 직원 앞에서는 항상 웃는 얼굴르 그들을 바라봤기 때문이 아닐까.



3.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한국 사람이라는 걸 이용해서 한국 사람이 한국사람을 상대로 등쳐먹는 사람이 많다고들 하는데, 그런건 정말 자기가 잘 판단해서 피해야 한다. 누구도 그 상황에 도움을 줄 수 없다.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는,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은 착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일부는 정말 쓰레기같은 친해지기 싫은 사람이 몇 몇 있다는 것이 문제다] - 나는 모든 사람이 나보다는 착하다는 생각을 하며 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처음 호주에 갔을 때 만났던 유동환 형님.정말 고마웠다.[그땐 차마 말을 못했고, 마지막에 인사도 못하고 떠나서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퍼스, 라이프라인(Life line)장로 교회 사람들 그리고 지금은 영주권 준비하고 있을 형진이형, 영희누나 등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준 사람들 모두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호주에 갔을 때, 처음 나의 룸메이트가 되었던 아이리시 가이(Irish guy) 말리키.[밤마다 함께 악기를 연주하며 즐거운 생활이 될 수 있게 해 준 친구다], 처음 농장 일을 할 때, 같은 팀에서 일하게 된 너무 착해서 탈이었던 스티브 형님, 지금은 한국으로 돌아온 희훈이형 그리고 아직 호주에 있는 창욱이, 지훈이형 등. 특히 농장에서 같이 일했던 사람들은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내가 너무 열심히 일해서, 형들이 나에게 구박을 많이 했지만, 모두들 함께 해 주었기에 고마웠다.]
 
 나와 함께 있던 모든 사람들이 나의 목적을 알고 있었기에, 나의 마음을 잘 이해해 주었다. 단기간에 최대한 돈을 많이 벌고 싶어하는 나를 다 이해해 주었다. 맨날 나에게 쫌생이라고 놀리면서도 나를 많이 도와 주었던 사람들. 카날본에서의 사건과 퍼스에서의 재회.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주고 많은 걸 베풀고 알려주었던 외국인들.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난 사람을 만나는 것에 있어서, 운이 좋았다. 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호주로 가는 모든 한국인들,
꿈과 열정을 가지고 떠나는 한국의 젊은이들.
모두 "성공[성공이라는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좀 웃기지만]"하길 바란다.


- Winthrop, 프리맨틀 공장 다닐 때 살던 곳.


- 퍼스 시티,



- 시티의 입구

 


- 론돈아이? 런던아이 모조품 ㅋ



- 교회 사람들과 처음이자 마지막 나들이



- 불크릭 스테이션.



- 퍼스 시티 맥도날드



- 팸버튼 포도밭



- 불스브룩(Bulls brook) 판자촌



- 휴게소



- On the Road



- 스카이다이빙




- Mr, 드루먼(Drument). 처음 널 만났을 때 정말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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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홀이야기] 호주, 공장에서 일하다.

- 호주, 워홀이야기- · 2010. 11. 10.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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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ond Edit.(first edi 09.12.06)

1. 공장에 취직하고 처음 몇 주간.
정말 부지런히 열심히 일했다. 좀 힘든일, 작업 분량이 많아도 군소리 하지 않고 묵묵히 일 했다.
사실 내가 생각 할 때 크게 힘든 것도 없었다.[농장에서 일하던 것에 비하면 정말 쉽고, 힘들지 않는 일들이라고 생각했을 정도]

같이 일하는 동료들중에 일을 하면서 힘들다, 소세지가 무겁다고 투덜대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런 말을 들을 때 마다 맞장구를 쳐 주기는 했지만, '이게 정말 힘든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농장에서 일을 하면서 몸을 단력 시키고[미친듯이 일했었다] 나서 공장으로 온 온 나로서는 공장에서 하는 일들은 많이 힘들지 않으면서 쉬운 일들이었다.


2. 특히,
  소시지 및 햄, 베이컨 등을 만드는 공장이다보니 공장안이 시원했다[한여름에도 추워서 일을 할 때는 옷을 몇 겹씩 껴입어야 했다]. 실내는 항상 최소 냉장고 냉장실의 온도[패킹룸쪽은 냉동실 수준의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공장안은 추워서 파리가 없었지만, 공장 밖으로 잠깐씩 나가는 순간 파리떼들이 습격해 왔다]

  호주에서 내리쬐는 강렬한 태양 아래에서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좋았다.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고,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말로는 벌써부터 일 할 때 최소 수십마리의 파리들이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렸다.

  농장보다 시급이 높아서 좋았고, 일하는 시간도 많아서 좋았다. 그리고 시원한 곳에서 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새벽에 몰래 창고에서 소시지를 꺼내먹는 재미가 있어서 좋았다.[농장에서는 과일따먹는 재미가 있었지만] 아무튼 여러가지로 좋았다. 그 중에서 가장 좋은 건 돈을 많이 준다는 것.



3. 필라델피아, 내 너를 저주하리다!!
  필라델피아라는 햄이 있다. 햄 한덩어리가 사람 머리통보다 큰 놈인데, 스틱 하나에 3개가 걸려 있다. 그것들 세개[하나의 스틱]을 끓는 물에 담궈서삶아야 하는데, 완전 노가다로 그 녀석들을 번쩍!들어서 물에 집에 넣어야 한다. 그 녀석들 보기에도 무거워 보이지만 실제로도 엄청 무겁다....... 
  그런데 항상 그 일을 해야 할 때마다 나를 시키는 것이었다.....ㅠ_ㅠ... 내가 처음에 잘 보이려고 일을 너무 열심히 막 하다보니, 내가 그걸 잘 하는줄알고 나를 시키는 것이었다.[다른 사람이 모두 꺼려하니까, 제일 만만한게 나였나 보다]

  처음에 그 무거운걸 무식하게 하루에 수십개씩 들었다가 놓았다가를 반복했다.[나중에는 요령이 생겨 비교적 쉽게 했지만] 무게로 치면 아마 하루에 몇 톤 정도 물에 담갔다 뺐다 했다.
 
  항상 그녀석을 들어 옮기면서 생각했다.아 필라델피아,,"내가 미국에 가면 반드시 필라델피아 역(驛)에 침을 뱉고, 길바닥에도 침을 뱉고 돌아다닐 것라고.."
 필라델피아 햄 때문에 팔목이 나가서 몇 주간 고생했다. 처음엔 어깨에도 무리가가서 어깨가 아팠다. 만병의 근원이 필라델피아 햄이었다.

  나는 어느새, 무거운 햄, 소세지류를 들어서 트롤리[햄들을 쌓아두는 거치대같은 것]에 걸거나, 옮기는 일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런 일을 도맡아서 하는 사이 내 몸 속에서는 이두근, 삼두근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라고 있었다.


5. 
  서브웨이(SUBWAY), 헝그리잭스(Hungry Jack's, 호주의 버거킹)에 납품하는 베이컨을 내 손으로 만들고 있었다.
서브웨이 고기를 자르고, 베이컨을 만들고, 헝그리잭스 베이컨을 만들었다.  만들면서 생각했다. "호주 사람들은 내 손으로 만든 고기들을 먹는구나, 내 침도 자연스럽게 먹는구나"[일을 하면서 지루하기 때문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니까, 당연히 침이 튄다]라고.

헝그래잭스 베이컨을 만드는 일은 내가 공장에서 가장 많이 한 일 중에 하나였다. 사실, 헝그리잭스를 하는 일이 싫었다. 어려운 건 아니었다. 정말 쉬운일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너무 지루했다. 쉬운일을 계속 반복해야 했다. 매일매일 헝그리잭스에 납품하는 물량이 고정적으로 있었기 때문에 매일 엄청난 양을 만들어야 했다. 길고, 지루한 작업의 연속이었다.
특히, 헝그리잭스는 복도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약간 더운곳에서 작업을 했다..그래서 가끔 더울 때도 있었다. 그게 싫었던거였다.


6. 몇 주 후,
  처음 2-3주간 일을 너무 열심히 한 것이 잘못이었다[보통 사람들은 처음에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 처럼 나도 그랬다].  공장에서 일 할 때 대부분이 일을 천천히 하면서 일의 양과 자기가 집에 갈 시간을 맞추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그들과 같이 일을 하다보니 나 또한 속도를 맞추게 되었다. 그것이 편했다.[일을 쉽게, 천천히 할 수 있었으니까]
  특히, 나와 일을 같이 많이 한 콩고출신의 "자바"가 그랬다.[우리파트에서 일을 젤 천천히 하고 농땡이를 피우는 녀석으로 꼽혔다]
가끔씩, 너무 일을 천천히하고, 안하려고하는 모습을 보여서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같은 회사 동료니까 참았다. 그냥 난 묵묵히 할 일을 했다.



7.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나보다 오랬동안 일을 했던 외국애들(최소 몇 년씩 일을 한 애들) 및 슈퍼바이저, 작업반장이 나를 보는 시선이 별로 좋지 않다는 걸 느꼈다.일하는 속도가 느리다는 거였다. 게을러졌다고,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속도가 느린건 아니었다. 난 그냥 나와 같이 하는 애들의 속도를 맞추어 주었다. 빨리하면 빨리하고, 천천히하면 나도천천히 하고,, 천천히 하는쪽이 많긴 했다.

결국 난,
일을 천천히 한다. 못한다 등 호박씨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는 소식을 들었다.[공장에서 일을 오랬동안 하면서 슈퍼바이저, 작업반장 등과 친하게 지내는 외국인이 나와 친하게 지내는 한국인에게 그 말을 해 주었고, 난 그 소식을 알게 되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그러려니 했다.

8. 그냥, 난 내 할일을 했다.
 어쩌겠나? 사람의 마음이 한 곳으로 기울어 지면 되돌리기가 처음보다 더 힘든 것을. 그리고 어차피 여기서 9주만 일할 거니까라고 생각했다.
 일을 못한다고 호박씨 깔때는 다 까면서 또 필요하면 나를 불러서 힘쓰는 일을 많이 시켰다. 그렇다고 해서 나도 기분나빠 하지 않고 그냥 내 할일을 했다. 그게 그냥 편했다. 그러려니~ 필라델피아, 베이컨, 로스트비프, C.O.B,,, 힘쓰는 일은 내 담당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공장에서의 생활이 마무리되어갔다.





- DORSOGNA, 콸리타,


- 필라델피아,,,보기만 봐도 토나온다ㅋ


- 이곳이 햄들의 욕조!


- 요렇게 집어 넣는다,,


- 키친룸,,급하게 몰래 찍느라 완전 화질 구림 ㅋㅋㅋ 베이컨, 치즈마일드 소시지, C.O.B 등등..


- 오른쪽이 C.O.B 보기만봐도 무거워보인다...돼지 뒷다리 ㅋ
왼쪽은 치즈마일드,,제일 맛있는듯 안에 치즈가 들어있다 ㅋㅋ


- 오른쪽 구석탱이에 자바, 나와 함께있는건 칸쿠,
초록색옷입은애는 이름 물어보면 이런다."한국사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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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홀이야기] 호주에서, 쉐어하우스에 들어가다!

- 호주, 워홀이야기- · 2010. 11. 9.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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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ond Edit.


1. 
  일본에서 꽤나 유명하다고 하는[일본인 친구의 말에 의하면] 다양한 직업을 가졌지만 그 중에 하나가
작가인 , "다카하시 아유무".

그의 책 의 오세아니아부분에서 이런 제목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Weekly life'

  처음 호주에 오기 전에는 이 글의 제목과 내용을 선뜻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이제는 이해할 수 있었다.
호주의 많은 도시에 존재하는 쉐어하우스. 보통 1주일 또는 2주일 단위로 돈을 지불하고 그 집에서 방을 얻어 사는 것. 특히, 많은 워홀러들이 쉐어하우스 운영을 하면서, 특히 요즘에는 단기쉐어라는것이 많이 생겨났다.
 


2. 시티잡(city job)이라고 불리는 공장에 취직을 했다.
  백팩에서 살 수 없었으므로[물론 살 수는 있었지만 쉐어하우스로 가는 것이 더 저렴하고 편했으므로], 나는 쉐어를 알아보았다.  당장 내일부터 공장에 출근을 하라고 통보를 받았으니, 일단 집부터 구하는 것이 급선무 였다.  공장이 프리맨틀(Fremantle)에 위치하고 있었으므로, 프리맨틀주변에 있는 쉐어하우스를 알아 보았다.

  사실,  처음 퍼스에 왔을 때, 그리고 일자리를 알아보러 프리맨틀에 처음 왔을 때 프리맨틀은 한 번 쯤 살아보고 싶던 곳이었다.  그곳엔 바다가 있었기에, 내가 생각하던 그럼 삶[평일에 일하고 주말에 서핑하고]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평일에 일하고 주말에 바다에 나가서 해수욕, 서핑을 하고, 다이빙도 하고, 스노클링도 하고, 얼마나 좋을까? 내가 상상하던 그런 곳과 딱 들어맞는 곳이 바로 프리맨틀이었다.
 

이제, 내가 상상하던 호주에서의 생활을 할 수 있는건가???

 

3.
  퍼스시티(perth city)에서 20-30분이면 오지만, 퍼스와는 너무 다른 분위기.  조용하고, 차분한 거리, 인도양의 푸른 파도와 멋진 노을을 가진 도시. 바닷바람이 불어서 기분이 좋은 도시.  정말 내 마음에 꼭 드는 도시였다.


  프리맨틀(Fremantle) - City of Fremantle.

프리맨틀의 도서관의 게시판에 가서 각족 쉐어하우스 광고 쪽지에 가서 알아보고, 인터넷 사이트 검트리(http://perth.gumtree.com.au) [호주의 중고 물품거래 및 하우스 렌트에 대한 각종 정보가 있는 사이트]에도 알아보고, 이곳저곳 발품을 팔면서 쉐어하우스에 대해서 알아 보았다.

 

  일단, 가격이 싼곳으로!  그리고 웬만하면 한국인 쉐어보다는 오지[Aussie, 호주사람]쉐어로 가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지쉐어라 가면 자연스럽게 영어를 사용해야 하니까 영어도 늘릴겸 해서 말이다.
하지만 마땅한 곳을 찾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찾아간 곳 - 다음 카페의 퍼스 커뮤니티. "퍼스 참을수 없는 그리움(일명, 퍼참)"

그곳에 보니, 비교적 공장과 가까운 곳에 사람을 구한다는 광고를 올린 쉐어하우스 주인이 있었다. 그리고  그 중 한 군데를 연락해서 집을 보러 가 보았다.

 

4. 
  싱글룸,  주당 $125[싼 가격은 아니었다. 난 일주일에 $100 정도의 집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방은 넓었다. 침대도 더블침대가 있어서 크고 좋았다. 
  집도 깨끗하고. 호주 사람들이 사는 도시 교외의 한적한 동네에 위치한 집이었다. 전형적인 호주 주택가에 위치한 집.
 

   이런 곳에 살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아라고 혼자 되뇌었다. 보통 호주사람들이 이런 집에 사니까. 나도 이런 곳에 한 번 살아볼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집 앞에는 작은 정원이 있고, 뒤쪽 마당엔 잔디와 나무와 화초가 약간 있고, 조그마한 풀장이 있는 집. 흔히들 나오는 외국드라마의 그냥 평범한 집같았다. 키친도 외국 시트콤이나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조. 전형적인 외국집이었다.

좀 비싸긴해도 살아보자, 라고 생각했다.

 


5.

그렇게 살게 된 곳. 리치하이웨이(Leach Hwy)라는 큰 길가의 옆으로 난 주택가의 도로 빌링스웨이(Billings Way)에 위치한 집.
발음을 그대로 한국말로 번역한다면, - 부자 고속도로의 지폐들의 거리?

그럼 난, 부자 고속도로옆의 지폐들 거리에 살게 되는간가? 난 이제 부자가 되는건가?라는 유치한 농담을 속으로 생각하며.


아무튼,
공장에 취직하고 새로 살기로 결정한 집 주소도 좋았고[어감이 좋았단 말], 공장에서 돈도 많이 벌게되고 여러모로 좋았다.
그리고, 그곳이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곳.


호주에서 살아보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쉐어하우스.


- 6 번지,



- 안뜰,


- 주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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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narvon, Australia / 카날본, 호주 / 2009.10.3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09. 12. 26.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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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백개의 농장이 있는 곳, 카날본

   

+퍼스Perth - 카날본Carnarvon, Greyhound Bus, 14hr, $190(Vip 할인 $160)
+카날본 백팩커스, 6인도미토리, $20.

 

- 카날본엔 농장이 있다.

농장에서 일하기 위해서 찾아간 카날본.
바나나로 유명한 서부의 작은 도시였어. 이른 아침, 카날본의 시내에 진입하면서 본 풍경은 끝없이 펼쳐진 농장. 바나나 농장.

수백개의 농장들이 있고, 수십가지의 과일, 채소들이 자라고 있었어.
마트에서 비싼가격에 판매되는 채소, 과일들이 여기에선 그냥 버려지고 있었어. 최고의 품질, 최상의 품질이 아니면 모두다 버려지는 과일, 채소들.

최고의 퀄리티를 추구하는 농장주들?

 

 

- 휴양도시, 카날본.

처음 카날본의 시가지에서 느낄 수 있었던 느낌은, 휴양도시같다는 느낌.
한적하고 조용한 휴양도시.
실제로, 호주 사람들은 차에 카누, 보트를 싣고 카날본에 오는걸 보았어.
바람은 마치, 지중해에서 부는 산뜻하면서도 시원한 바람, 이집트 다합의 홍해에서 느꼈던 그런 분위기가 감도는 그런 도시의 분위기.

 
바다엔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어. 엄청나게 큰 고기들이 잡히고, 킹크랩(King crab)들이 바닷속을 기어다니는 그런 곳. 카날본.

 
이런 곳에서 일을하기보다는,

몇 일 푹- 쉬다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일을 하더라도, 주말에 여유있게 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

 
서핑하기에 좋은 바람이 불고 있었어.
서핑을 하고싶어하던 나에겐, 좋은 바람이었지. 햇살은 따갑지만, 바람이 시원했던 카날본.

 
휴양지같은 느낌의 카날본, 그렇지만 수백개의 농장에서 일을 하러 찾아가는 카날본.
휴양과 일, 두 가지를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카날본

 




- Roadhouse, to Carnarvon


- 길가 풍경,


- 끝없이 펼쳐진 바나나 농장


- 카날본의 밤거리, 에버리진조심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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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 공장에 취직하다! - 02,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2. 5.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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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에서 일하기 위해 찾아간 카날본.
하지만, 프리맨틀의 공장에서 걸려온 전화.

우여곡절 끝에 미루게 된 인터뷰. 나에게 어떤 운명이 펼쳐질지 알 수 없었다.
전화영어(?)에 유독 약하던 내가, 어떻게 그렇게 통화를 자연스럽게 끝마쳤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아무튼, 난,
배신자, 양아치라는 칭호(?)를 얻었고, 요즘 호주 경기가 안좋아서 공장에서도 일하는 시간을 많이 안준다는 주변의 위협성(?)발언과 페이가 농장보다 적을 것이라는 말에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결정한 퍼스행.
퍼스로가는 버스표는 끊었고! 주사위는 던져졌다. 결과는 아직 미지수였지만..

그래도,
한가지 희망은 있었다.  "최소한 주에 40시간은 일 할 수 있다" 는, 프리맨틀에사는 형님의 말,,

토요일, 추석.
카날본의 농장에서 반나절 동안 일을 했다. 밥값, 방값이라도 벌어서 가자는 생각에,
캐시(Cash)잡이었다. 단 하루.
일을 끝내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농장주에게 말을 했다.
"내가 급한일 때문에 퍼스에 가게 됐는데, 혹시 나중에 다시 돌아왔을 때 일을 할 수 있겠냐"라고
농장주는 대답했다.
"일이 맨날 있는 건 아니지만, 일이 있으면 시켜 주겠다."라고

한 결 마음이 놓였다.


퍼스로 가는 버스,
많은 생각을 했다.
일이 잘 안풀리더라도, 이젠 카날본으로는 다시 못가겠다고. 남쪽으로 가야겠다고. 날씨가 이제 따뜻해 지고 있으니 이제 남쪽도 슬슬 농장들이 시즌을 시작하니까.


프리맨틀,
프리맨틀에서 가장 저렴한 백팩커를 찾아갔다. 역시 프리맨틀에는 백팩이 많이 없고,
관광도시의 성격이 강해서 그런지 가격이 퍼스시티(perth city)보다 가격이 비쌌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오래 있지는 않을 거니까.
빨리 쉐어를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월요일 오전 10시,
몇 시에 인터뷰를 보러올 수 있냐는 물음에, 나는 아침 6시에라도 갈 수 있다고 말했었다. 그만큼 절박함을 표현하고 싶었다/
10시에 인터뷰 약속을 잡고, 나는 10시 조금전에 도착해서, 리셉션에가서 말했다. 당당히.
"I have a interview ~"
역시나, 인사담당자에게 인터뷰 약속이 있는지 물어보더니 기다리랜다...ㅋㅋㅋ


잠시후,
금발의 키큰 여자가 나오더니, 나를 보고 인사를 했다. 다이애나.
그리고는 회의실 같은데로 가더니, 내가 쓴 어플리케이션을 보고 뭐라뭐라고 했는데, 어플리케이션을 쓸 때 하도 구라를 많이 적어놔서 기억이 하나도 안나서 긴장을 했는데, 그냥 웃으면서 간단한 인터뷰는 무사히 잘 넘겼다.
그리고, 페이 및 일하는 시간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었다.


기본 38시간, 오버타임 매일 두시간 이상,,조건은 괜찮았다. 거기다가 난 Afternoon shift(오후반)이라서 돈도 오전반보다 조금더 많이 받았다. 오전반X1.15... 시간당 21달러가 조금 넘는 돈이었다. 괜찮았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퀴즈같은걸 풀어오랜다..시험인가? 호주와서 두번째 시험이었다. 정말 열심히 풀었다..
블루카드만들 때 이후로 그렇게 열심히 글을 집중해서 읽은 적은 처음이었다.
통과!
그리고 고용계약서를 작성하고 회사보관용에 사인을 하고, 개인보관용을 하나 받고 사인을 했다..


다이애나와 함께 공장을 둘러보고나서,
내일부터 출근하라는 말을 들었다. 드디어 출근이구나!!


계산을 해 보았다. 돈 계산.
38 X 21 + 10 X 23(풀타임X1.5 임금, 1.5시간 오버타임) 이렇게만 해도 꽤 되는 돈이었다.

카날본에 있는 형에게 전화를 했다. 모든 일들이 잘 풀린것 같다고. 주당 40시간 이상 일할 수 있다고.
나중에 호주 뜨기전에 한 번 만날 수 있으면 만나자고.


화요일, 첫 출근. 오후4시.
일하러 왔다고 리셉션에 말하니, 다이애나가 나와서 어느파트냐고 묻길래 "Kitchen"이라고 말했다.
잠시 후, 키친파트 슈퍼바이저가 왔다. '미겔'
그리고 나서 나를 데리고 들어가더니, 일 하고 있던 한국사람 한명 부르더니 나한테 일을 가르쳐주라고 하고 훌쩍 떠났다.

난 아직 ID CARD도 안만들었고, 지문인식기에 지문도 등록안했는데,,일부터 하라니. 이런,
뭐 어쩌겠나? 일을 했다. 소세지 공장이라서 그런지 안은 냉장고 냉장실/냉동실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옷을 얇게 입고온 나는 추웠다. 그래도 꾹 참고 일을 했다. 열심히 해야지,,

오후 다섯시경,
야간반 사람들이 거의다 출근을 해서 그 사람들과 일을 같이 했다. 오늘 새로 들어왔다고. 그리고 여러가지를 물어봤고, 가르쳐주었다.
아마, 하루에 12시간씩 일을 하게 될 거라고. 요즘에 바빠서 그렇게 하고 있다고.
특히, 오후반은 사람이 적어서 한사람 한사람 역할이 중요하니까 열심히 하라고.
"하루에 12시간? 주5일에 60시간? 도대체 얼마를 벌지???"

많이 버는 만큼, 텍스도 많이 떼지만, 내가 이 공장에서 받게될 돈은 내가 처음 상상하던 수치를 초월했다.
못해도 일주일에 백만원이상은 벌 수 있다
는 말을 들었기에...

그렇게 공장이라는 곳에서 본격적으로 일하게 되었다.


농장에서 일할 때,

"사람들이 공장에서 일하고 싶다, 공장이 편하고 돈도 많이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었다.
나는 공장에서 일한 적이 없었기에 잘은 몰랐지만,
우스갯소리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인간 문명의 발달과정중 경제적인 측면을 볼 때,
1차 산업 - 2차 산업 - 3차 산업으로 바뀌었는데, 1차가 농업, 2차가 공업,,
다시 말해서, 농장보다 공장이 좋으니까 인간문명이 그렇게 발달했겠죠뭐,,,3차 서비스 - 금융..돈많이 버니까.."

"결론은, 농장보다 공장이 좋다는 것이었다."



- 가끔씩, 12시간 넘게 일을 하고 집에 가다보면 동이트고 있다. 멋있다.


- 같은 키친파트의, 칸쿠와 자바, 콩고출신의 형제. 흐릿한애는 패킹룸(Packing room) 클리너(Clea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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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 공장에 취직하다! - 01,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2. 5.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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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의 마지막 주,
사실상 호주 농장에서의 마지막 일이 끝났다. 도넬리리버 와인팜.
농장에서 같이 일하던 사람들과 추석때 부침개도 해먹고 추석분위기를 내자고 이야기하던 때가 있었지만,
그 이야기는 없었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우리들은 해고를 당했으니까..

어느덧,
10월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호주 농장에서의 약 7주간의 노동.

나에게는 더 이상의 선택은 없었다. 무조건 호주에서 일을 해야 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느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돈이 있든 없든 여행을 떠나야 한다고. 떠나야만 한다고.
나에게 더 이상 시간이 많지 않았다.


소식.
10월이 되면 슬슬 퍼스 주변의 공장들이 고용을 늘리고 크리스마스 준비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리고, 퍼스에서 만난 형이 나에게 말해주었다.
"10월부터 공장에서 사람 많이 뽑아보니까, 어떻게든 들어가봐."

그래서 생각한 방법.
어떻게든 인사담당관을 만나야 했다. 그래서 일 좀 시켜달라고 무작정 들이댈 생각이었다.

농장에 일을 하러 가기전 여러 공장을 돌면서 어플리케이션(Application)을 써 놓은 공장들이 퍼스와 프리맨들에 몇 군데 있었다.
난 그 중에서 가능성이 있는 몇 개의 공장을 다시 찾아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공장의 리셉션(Reception)에 찾아가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 X시에 인터뷰를 보러 오라고 해서 찾아왔다."
그러면 리셉션에서 일하는 여자는 인사담당자에게 호출을 해서 그 날 인터뷰일정이 잡혀 있는지 물어보았다.
하지만, 그 방법이 생각만큼 쉬운것은 아니었다.

인사담당관이 약속이 없다고 말하면, 만나지도 못 하는 경우도 있었고,
어떤 날은 그 날이 인사담당관이 쉬는날이기도 했다.
어쩌다가 운 좋게 인사담당자를 만나면 나는 기회다 싶어 거짓말을 해 댓다.
"며칠 전에 전화가 왔는데 오늘 이시간에 인터뷰하러 오라고 했다고...다른 일도 그만두고 왔다고."
하지만 모두가 헛수고였다. 그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수없이 인사담당자을 만나서 이야기를 했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냉정했다.
수 백명의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는데, 나 한명 일 할 자리가 없는것에 대해 한탄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10월이 시작되려하는 그 주에 마지막으로 어플리케이션을 썻다.
그리고, 10월이 시작되어도 공장에서는 소식이 없었다.
그래서, 퍼스를 떠났다.
그런데! 퍼스를 떠나고 바로 다음날 전화가 왔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전화.

프리맨틀 소재의 소세지 공장 돌소냐(DORSOGNA).
일을 하러 오라고 전화가 온 것이었다.



- D'ORSOGNA, 로고.
 나에게 참 고마운 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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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배신자인가?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1. 29.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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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일 목요일.  PM 4:00.
퍼스(perth)에서 일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카날본으로 떠나기로 결정한 세 남자.


오후 다섯시.
그렇게 퍼스를 떠났다.


10월 3일 금요일,
1000Km 북쪽으로 차를 달려 도착한 작은 해변도시. 카날본Carnarvon. 열대기후에 가까운 곳.
일년 내내 바나나 농사를 하고 있는 곳. 일년 내내 농장일이 있는 곳이라는 말을 듣고 온 이곳.

일을 찾기위해 농장을 돌아다니던 중 어디선가 걸려온 한통의 전화...


프리맨틀의 어느 공장 에서 걸려온 전화.
그리고 그 날 오후 1시까지 공장 오피스로 면접을 보러 오라는 통보.

하지만, 절대 갈 수 없다.

3시간 만에 1000km가 넘는 거리를 무슨수로 간단말인가? 비행기도 없는 곳에서..
우여곡절끝에 인터뷰는 월요일로 미뤘고,
수 많은 고민 끝에 퍼스로 돌아가기로 한다.


다른 두 남자의 만류.
함께 카날본에서 일하자는 제안. 같이 있자는 제안.
모든 미련을 버리고 여기까지 왔으면 깔끔하게 여기서 새로, 함께일하자는 그들.
이미 농장도 잡았는데 퍼스까지 돌아 갈 필요가 없잖냐면서, 같이 있자는 그들.


갈등.

돈과 여행과 정(情)과 사람들.
그토록 기다리던 기회.

이 기회를 놓치기 싫었다. 
그리고 마음 한 구석엔 그들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혼자이고 싶었다.
이젠 새로운 곳에서 다시 한 번 시작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결정한 퍼스行.

만남과 헤어짐.
일과 일자리.
떠남과 정착.
여행자,

워홀러의 숙명이라고 믿고 싶다.







- 퍼스로 가는 길, 로드하우스.


- To Perth.


- Greyhound From Carnarvon.


- 카날본의 밤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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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이야기 - 카날본으로 가는 길 로드하우스(Road house)에서,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1. 28.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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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당신은 꿈을 믿으시나요? 혹시 믿는 다면,
꿈이 나의 미래를 예지한다는 느낌으로? 아니면 꿈은 반대라는 생각으로?
아니면 그냥 개꿈이라고 생각하나요?

전 꿈을 믿는 편입니다.

보통, 난 너무 피곤해서 새우잠같은걸 잘 때 꿈을 잘 꾸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 꿈을 꾸는 경우가 있다.
그 다음날이 대체적으로 중요한 날일 때. 뭔가 의미있다고 생각되는 꿈을 꾸는 편이다.

예를들어, 시험기간이라던가, 뭐 아무튼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일을 하는 날일 때 말이다.

그리고 호주에서, 뇌리에 선명하게 기억될만한 꿈들을 몇 개 꾸었다.



꿈을 꿨다.
- 퍼스에서 북쪽으로 1000km 카날본Carnarvon으로 가는 길, 어느 로드하우스의 주차장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꿈 속에서,
한 후배가 나에게 전화를 했다.
"오빠, 수업에서 조별 발표를 해야하는데 오빠 우리조에서 같이 발표 하실래요?" 라고 말했다.
난, "Ok"라고 대답을 했다.

왜 갑자기 그 아이가 나에게 전화를 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왜 하필 그애 였는지.
학교 다니면서 많이 마주치지도 않았다. 서너번 정도 본 것 같다. 술도 같이 딱 두번 먹었다. 싸이는 일촌이지만, 뭐 그냥 보통 선후배사이다. 별로 친한사이는 아니다.
왜냐하면 친할 기회가 없었으니까. 09학번.....ㄷㄷ...나는 세계일주를 한답시고 09년 3월 한국을 떳으니까.


꿈 속에서,
같이 발표 조모임을 하게 되었다.
발표준비를 다 끝내고 발표를 하는날이 되었는데 갑자기 내가 너무 급한일이 생겨서 발표를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교수님한테 전화를해서 발표를 다음으로 미루면 안되겠느냐고 부탁을 했더니 다음에 발표를 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뭐 지금은 기억이 잘 안나는 이것저것을 하고나서,
다시 발표를 하게 되었다.

꿈의 끝.


아침 6시 경,
잠에서 깨어났다. 약 4시간을 차 안에서 눈을 붙이고, 카날본으로 다시 떠났다.


왠지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냥 느낌이.
그리고 왠지 어디선가 내 전화기로 전화를 해 줄것 같았다. 그냥 이유없이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일자리에 관한 전화가 올 것 같다는 근거없는 믿음이 생겼다.
혼자 꿈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았는데, 왠지 공장 어디선가에서 나한테 전화가 올 것 같았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아무튼 그 날 아침부터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 날, 오전 10시 경.
카날본에 도착을 해서, 농장들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일자리를 알아보러 다니고 있었다.
다행히도 시내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서 일을 구하러 다니고 있어서 전화가 터지는 구역이었다.

농장을 돌아다니며 농장주와 이야기를 나누던 그 때, 어디선가 일반전화로 걸려진 전화가 내 휴대폰을 울렸다.
프리맨틀Fremantle 에 위치한 소세지 공장에서 전화가 온 것이었다. 돌쏘냐(DORSOGNA). 내가 얼마나 가고 싶어하던 공장이던가!
오늘 오후 1시까지 인터뷰를 보러 공장으로 올 수 있는지 묻길래, 당연히 오케이했다.

인터뷰까지 남은시간 3시간.
1000km가 넘는거리를 3시간만에 어떻게 간단말인가???????
일은 그렇게 되었다.

여기서 부터 나는 참 절박했다.
그리고 같이 카날본에 간 사람들은 참 착찹해했다.

그날의 꿈. 잊지 못한다.



- 잠을잤던 로드하우스,
모든건 우연의 일치였을까? 카날본에서 퍼스로 돌아오는 버스도 여기서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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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ino,

- 길을 걷다, 세계여행/Feel-ing, 세계일주-ing, · 2009. 11. 14.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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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sino,

Perth city's Casino.

룰렛, 블랙잭, 포커,, 수많은 딜러와 게임기
수없이 쌓여있는 칩들.

엄청난 돈들이 오가고,

환호성을 외치는 사람,
돈을 잃고 힘없이 카지노를 떠나는 사람,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이 있지만,
결국은 모두다 떠 난다.

Casino, 돈을 빨아 들이는 블랙홀.

  

01/09/2009, Tue.
Perth, Austr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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