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4. 4. 26. 19:15
1. 유목 사회에서 농경 사회로.
사람들은 큰 강 유역에 모여 살면서 문명 사회를 이루었다. 그 이전의 시대의 사람들도 모여 살긴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이지도 않았고 때로는 이동을 하는 수렵, 채집 중심의 사회였다. 생존에 유리한 환경 속에서 사람들이 모여 살다보니, '문명사회'라고 불리는 것이 만들어 졌다.
산업 혁명 이후, 사람들은 도시로 몰려들었다. 대도시는 점점 더 거대도시가 되어갔고 대도시 주변에는 신도시라는 이름의 작은 도시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산업 혁명은 영국에서 시작하여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경제를 발전시키려는 나라들의 도시들은 비슷한 모습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도시에는 노동자들이 사는 곳과 부자들이 사는 곳의 구분이 생겼고, 부자들은 엄청난 돈을 들여가며 자신들만의 쉼터를 만들며, 삶을 윤택하게 가꾸어 나갔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힘든 삶을 살아야 했다.
△ '뉴욕(New York)' 롱아일랜드에서 바라본 뉴욕의 중심 맨해튼.
2. 어디 사세요?
누군가를 만났을 때, 가장 흔히 하는 질문은 어디에 사느냐고 묻는 것이다. 한국에서, 특히 서울에서. '사는 곳'은 자신의 경제력, 경제적 지위가 대략 어느정도 된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 되었다. 예컨대, 자신이 처음 만난 두 사람에게 "어디에 사느냐"고 물었을 때 어떤 사람 A는 '강남구 XX동 타X팰X스'산다고 말했고, B는 '노원구 상X동'에 산다고 했다면[노원은 필자가 사는 곳으로서, 극단적 비유를 위해 예로 든 곳이다], A와 B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우리 사회는 이미 어떤 사람이 어떤 동네, 어느 아파트에 사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그 사람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어떻다는 것을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 어느 누구도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동네 이름'만 가지고 그 동네 사람들이 어떻다고 생각한다. 비단 이런 현상이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비슷한 현상은 목격 할 수 있다.
3. 125번가 역으로 가려면 어떻게 가죠?
맨해튼에 있는 가장 저렴한 게스트하우스의 도미토리를 예약했다. 125번가에 위치한 호스텔이었다. 나는 맨해튼에 생각보다 저렴한 숙소가 있다는 사실에 약간 놀라면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여행 경비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숙박비'이기 때문에 나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저렴한 숙소를 선택한 것이다..
△ 125번가 역(왼쪽), 125번가에 내리는 눈(오른쪽)
전철역을 빠져나와 바라본 풍경은 내가 늘상 외국에서 보던 풍경과 비슷했다. 여느 도시와 비슷하다는 생각. 뉴욕, 주변에 흑인들이 좀 많다는 것을 제외하곤 별다른 특별함이 없었다. 나는 게스트하우스의 주소를 확인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길은 어두웠고, 길 양쪽으로 눈이 쌓여 있었다.
'아, 1년 만에 겨울로 돌아왔구나. 뉴욕, I LOVE YOU'
4. 할렘가(Harlem District)
게스트하우스에서 체크인을 하고, 도미토리에 들어간 나는 도미토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냈다. 그러나 다른 여행지와는 좀 다른 분위기의 숙소라고 생각했다. 남미나 중동 같은 곳에서 느낄 수 없었던 서먹함이 나의 피부를 파고 들었다. 대도시를 여행할 때 느낄 수 있는 서먹함. 그런 느낌이라고 생각했다. 어색했다. 오랜만에 이런 느낌을 받는 다는 것이. 그렇지만, 나는 늘 하던 습관대로 눈앞에 보이는 이들에게 가볍게 인사를 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여행 하는 사람들의 예의인 양.
론니플래닛(Lonely planet)을 펼쳐 들었을 때, 125번가에 대한 내용이 나왔다. 125번가, 숙소가 있는 곳이라는 생각에 찬찬히 읽어 보았다. 할렘가(Halem District)의 중심인 125th st. 내가 위치한 곳이 할렘가의 중심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내가 전철을 타고 오면서 보았던 풍경들이 좀 더 명확히 이해되었다. 지하철이 맨해튼 남쪽에서 북쪽으로 오면서, 흑인들만 열차에 올랐던 이유를. 지하철 역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대다수가 흑인들이었다는 사실이 다시금 생각났다. 그리고 지금 머물고 있는 숙소가 저렴한 이유도 어느정도 이해되었다.
이곳이 할렘이라고 불리는 곳이었지만, 그 동안 영화나 드라마로 보던 할렘의 이미지, 말로 듣던 할렘의 이미지와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저, 그냥 사람사는 동네였다.
5. 저지 시티(Jersey city)에서 들은 이야기.
하루는 미국에 유학 온 대학 동기를 만나기 위해 허드슨 강 건너편의 맨해튼 서쪽의 저지 시티로 갔다. 저지시티에서 식사를 하고 쇼핑몰을 구경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친구는 나에게 숙소가 어디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125번가에 숙소가 있어". 친구는 놀라며 되물었다. "거기 할렘이잖아? 안 위험해?".
"몰라, 위험한 건 전혀 모르겠는데? 그냥 똑같아."라고 대답했다.
나는 생각했다. 할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할렘의 공포를 만든다.
"할렘에서는, 저녁 때 운전자도 없는 자동차들이 도로를 돌아다닌다"는 말도 이런 맥락에서 생긴 오해가 아닐까.
6. JFK공항에서,
예상치 못한 폭설이 내렸고, 비행 일정이 취소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유나이티드 에어라인(United Airline)데스크에서 다음 비행기를 알아보았지만, 항공사에서 제공해 줄 수 있는 비행편은 '5일 뒤'에 있는 비행기 뿐이었다. LA에 가서 내가 타고 가기로 되어있던 LA발 대한항공 비행기는 정상 운행이었지만, 뉴욕에서 LA로 갈 방도가 없었다.
△ 전철을 타고 공항으로 가는 길에 바라본 눈내리는 마을(왼쪽), 모든 비행편 결항으로 인해 혼란스러운 공항(오른쪽)
"한국 분이시죠?"
나는 그 직원의 도움으로 비행 스케줄을 새로 잡을 수 있었지만, 당장 비행기를 탈 수 있는 방도는 없었다. 숙소로 돌아가서 며칠을 보내야 할 것 같았기에, 직원은 나에게 숙소가 어디냐고 물었고, 나는 대답했다.
"125번가에 있던 숙소였어요. 지금 돌아가도 방이 있을 지 모르겠네요"
그러자 그 직원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할렘, 위험하지 않아요? 왠만하면 그곳으로 돌아가지 말고 다른 숙소로 알아보세요"
"퀸즈에 친구가 살고 있어요. 그곳으로 가보죠."라고 내가 말하자 직원은 휴대폰을 빌려주며 그 친구에게 전화하고, 그리로 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당부했다. "125번가는 위험하니까, 조심하세요."
나는 새로 발급받은 보팅패스를 들고 데스크를 빠져나왔다. JFK공항 통유리 너머로 매서운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다. 뉴욕은 나를 그런식으로 붙잡고 있었다.
△ 브로드웨어 42번가의 화려함. 이곳의 화려함은 '125번가 할렘'과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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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4. 1. 27. 02:06
1. 구걸, 구걸하는 사람들.
길을 걷다보면 마주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지하철을 타도 자주 마주칠 수 있다] 여행을 하다보면, 더 자주 마주치게 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당신에게 다가와 손을 내민다. 그리고, 애절한 눈빛을 함께 당신의 시선 속에 던진다. 그리고 간혹 이런말을 함께 당신의 주변에 맴돌게 하기도 한다. One Dollar.
그 사람들이, 그 아이들이. 구걸을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일까? 아니면 그가 그렇게 구걸을 하게 만든[특히, 외국인을 상대로 구걸을 하는] 사회 제도, 구조가 잘못된 것일까? 결론을 쉽게 내릴 수 없을 것 같다[아마도 이 문제는 생각하는 사람에 따라서 다른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여행을 하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들[구걸을 하는 아이들, 사람들]에게 돈을 쥐어준다. 그들이 외치는 원 달러. 원 달러를 외치는 이들에게 있어서 원 달러의 가치는 비교적 크다. 하지만 그에 반해, 원 달러를 건내주는 사람에게 있어서 원 달러의 가치는 너무나도 작은 것이 일반적이다[자기 나라(본국)의 화폐 가치에 비교 했을 때]. 그러기에, 그들은 쉽게 원 달러를, 원 달러를 외치는 이들이게 건네준다.
혹자는 '그들'의 행동이 잘못되었고, 그런 행동을 되풀이 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혹자는 '그들'의 행동은 사회적 약자의 행복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도와 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누구의 말이 옳고, 그르다고 말할수는 없다. 그것은 각자가 가진 가치관의 문제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의 문제이고, 그 동안 그들 자신이 쌓아온 경험의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들에게 손을 내미는 '그들'은 최소한 사회적 강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2. 작은 바구니를 품에 품고,
지하철 차량을 연결하는 통로의 문이 열리고, 잡음섞인 음악 소리가 작은 기계를 통해서 열차 안에 울려퍼진다. 누군가는 얼굴을 찌푸리고, 누군가는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로 그 사람이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지하철 차량 속의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 손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거나, 그 사람이 지나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다가 간혹,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한 손에 들려있는 바구니에 지폐 한장 혹은 동전 몇 개를 집어 넣는다. 그렇게 음악을 짊어진 사람은 유유히 다른 열차칸으로 사라져간다. 잡은 섞인 음악의 파편만을 열차칸에 남겨 놓은채.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뉴스에서는 장마라고 떠들어대고, 비 피해를 조심해야 한다고 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우슨을 펼쳐들고 거리를 돌아다녔고, 그들이 지하보도로 들어섰을 때 하늘로 향하던 우산을 땅을 향했고, 하늘에서 우산위로 떨어지던 물방울은 우산에서 땅으로 떨어졌다. 물방울은 바닥을 적셨고, 이내 작은 바구니를 앞에 두고, 바구니를 향해 엎드려 있던 사람의 무릎을 적시는 듯 했다.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역사를 빠져나오는 길의 풍경은 이랬다.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의 시선은 그들의 뒷통수만 살짝 스쳐 지나갈 뿐, 그들의 바구니를 무겁게 채워주지는 못했다.
3. 기차는 국경을 넘어,
테살로니키를 오후에 떠난 기차는 북쪽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리스 북부지방을 지나, 마케도니아 국경을 지나려 하고 있었다. 국경을 지나기 위해 정차한 기차에는 국경 기차역의 고요함이 스며들고 있었다[기차를 타고 국경을 지나본 사람이라면 알 법한 느낌]. 새 소리가 울려퍼지던 그 때, 내가 타고 있던 칸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꾀죄죄한 얼굴의 한 여자가[30대 중반정도의 얼굴]가 나를 슬픈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알아 들을 수 없는 말로 나에게 말을 걸어 왔다. 나에게 조금 다가오면, 손을 내 밀었다. 그녀의 뒤에는 작은 꼬마가 그녀의 옷깃을 잡고 있었고, 나의 시선은 꼬마에게 잠시 머물렀다가 그녀의 손을 향했다. 그녀의 손에는 유로화 동전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그녀가 했던 말을 생각 해 보았다. 나에게 동전을 달란 말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케도니아를 지나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로 가는 기차에서 유로화 동전은 쓸모 없는 것이었다. 마케도니아에서도 세르비아에서도 유로화는 사용될 수 없는 돈. 골동품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손에 쌓인 동전을 보며, 나는 나보다 돈이 더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을 잠시 했을 뿐, 그녀를 향해 고개를 저을 수 밖에 없었다.
4. 집시, 집시 아이들.
시비우(Sibiu)를 지나 머무르던 작은 마을 시기쇼아라(Sighisoara). 그는 기차역에서 그가 타고 갈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역 앞의 작은 상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역 쪽으로 다가가자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 들었다. 그는 어제, 그 동네의 빌라옆 쓰레기통을 뒤지던 한 무리의 아이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아이들은 말을 걸어 왔다. 그러면서 그의 한 손에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가리켰다. 이미 그가 반 이상을 먹은 소프트 콘이었다. 그의 침과 아이스크림의 녹은 부분이 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아이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아이스크림을 받아 먹었다.
그는 가방에서 자일리톨을 꺼내 아이들에게 하나씩 나눠 주었다. 아이들은 기뻐하며 껌을 받아갔다. 이윽고, 멀리서 기차 소리가 나더니, 서서히 멈춰섰다.
기차 안은 한산했다. 시골 작은 도시를 출발한 기차는 비교적 큰 도시이자, 많은 기차들이 지나는 브라쇼브(Brasov)로 향했다. 그는 음악을 듣고 있었고, 그의 옆 건너편 칸엔 루마니아 전통의상을 입은 것 같은 여인과 아들, 그리고 남편처럼 보이는 남자가 타고 있었다. 그 여인이 갑자기 그에게 말을 걸어 왔다. 그는 알아 들을 수 없었지만, 그 여인이 사진 찍히기를 원한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는 그들의 사진을 찍어 주었다. 그러자 그 여인이 그에게 뭐라고 말했다. 그는 정확히 그 뜻을 알 수 없었지만, 그녀의 행동으로 보아 돈을 달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지만, 사진에 대한 답례로, 유로화 지폐를 한 장 건네 주었다.
5. 몽골, 초원에는 웃음이 울려 퍼지지만,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백화점 앞에는 관광객들이 여러가지 물건을 사기위해서 몰려든다. 그리고, 그들에게 다가가는 다른 이들이 있었다. 너덜너덜한 옷가지를 입고, 얼굴엔 콧물 흐른 자국이 있는 아이들. 그 아이들은 나에게, 나와 같이 있던 일행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아이들의 모습이 불쌍했지만, 그렇게 관광객들에게 구걸을 하는 아이들이 밉기도 했다. 나와 함께 있던 일행 중 한 명이 그 아이들에게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주려 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사탕'이었다. 그는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인도에서, 내 또래의 일본인과 잠시 동행을 한 적이 있었다. 그는 나와 함께 버스를 타고, 조드푸르로 향하는 길이었다. 조드푸르에 도착했을 때, 숙소로 올라가는 길, 언덕 중턱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 한 무리를 만났다. 그 아이들은 우리 둘을 쳐다보았고, 우리도 그 아이들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갑자기, 그 일본인은 보조가방을 주섬주섬 열기 시작하더니, 그 안에서 사탕을 꺼내서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나는 항상 사탕을 준비해서 다녀요. 이렇게 아이들을 만날 때 마다 사탕을 나눠주면 굉장히 좋아하더라고요."라고 덧붙이며 그는 웃어보였다.
왜 그 때가 생각난걸까? 몇 달도 더 전에 여행했던, 인도였다. 인도부터 유럽까지. 그리고 또 다시 유럽에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몽골까지 온 나였다. 여기에서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고 있었다.
구걸하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는 모습. 인도에서 그냥 뛰어놀던 동네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던 모습과는 조금은 다른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어쨌거나, 구걸해서 돈을 얻어가는 아이들이 못마땅했다. 그들은, 충분히 다른 일을 배울 수 있었음에도, 구걸을 배웠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6. 어느 식당, 셋 만의 이야기.
몽골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세 명의 한국인은 해가 대륙 저편으로 넘어가고, 어둠이 몽골을 덥쳤을 때 저녁을 먹기위해 시내 레스토랑으로 갔다. 광장을 지나서, 조금 더 떨어진 곳. 거리는 어두웠다. 식당안은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지만, 밖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칠흑같은 어둠만이 그 식당을 감싸고 있었다. 그는 창밖을 바라보면서 이 세상에는 그 식당과 그 안에 있는 사람만이 존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낮에 있었던, 구걸하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거리로 떠올랐다. 구걸하는 아이들에게 돈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사람과 그들을 도와 주어야 한다는 또 한 사람. 왜 구걸을 하는 것일까? 라는 질문과 함께 서로의 견해가 테이블 위에 쏟아졌다.
그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더이상 없기에, 구걸이라는 수단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을 하던 한 사람. 사회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어 버린 거라는 그녀의 말. 그리고 여러가지 이유를 설명하는 그녀의 말은 어느정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다른 견해를 피력하던 그는, 그것은 자신의 의지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 아이들, 그리고 아니가 조금 더 있는 아이들. 그들이 과연 구걸밖에 할 수 없었을까? 그 아이들이 다른 것을 하고자 했다면, 그의 부모나 다른 나이많은 형제가 다른 일을 할 수 있도록 뭔가를 해 주었다면 그들은 구걸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다른 일을 힘들게 배우고, 하는 것 보다 구걸을 하는게 더 쉽고 편하게 돈을 구할 수 있는 일이라는걸 알기 때문에 그들은 구걸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덧붙였다. "내가 예전에, 돈이 없어서 그리스에서 구걸을 한 적이 있었는데, 구걸을 하다보면 욕심이 생기고, 구걸이라는 것이 돈을 정말 쉽게 모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는 걸 알게돼."(http://dwis.tistory.com/563 참조)
7. 단상(短想)
지하철에서 장님인 척, 구걸을 하는 사람이 지하철을 내리고 역사를 빠져나가면, 고급 승용차를 타고 유유히 사라진다는 말[풍문인지 진실인지는 알 도리가 없지만]을 들은 적이 있다. 구걸로 상당한 수입을 올린다는 말이다. 지하철역이나 길거리에 하루종일 업드려 있는 사람들의 바구니에 얼마 만큼의 돈이 들어가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난 항상 이런 생각을 해본다. 저들은 정말 무언가 다른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일까?
물론, 구걸도 구걸을 하는 사람의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특히, 경제적으로 발전이 덜되어 사회 전체가 풍족하지 못한 곳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아이들 중, 극빈층에 속하게 되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구걸밖에 없을 수도 있는 것이고, 구걸이 편하고 좋아하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구걸에 대해서, 누가 옳고, 누가 그릇됐다고 가타부타 할 수 없는 것 같다.는 생각.
-해가 저무는 시기쇼아라
- 시기쇼아라 역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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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언어(言語, Language) - 몸짓 언어(Body language, 바디랭귀지)
너, 나랑 말이 좀 통하는데. 통하는게 있네.라는 말을 할 때가 있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다보면, 느낄 때가 있다. 말[言]이 통한다는 것은, 너와 내가가[우리가] 친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말'이 통할 수 있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말이 통할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언어와 관련된 다양한 문화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것,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것, 같은 관습 속에서 서로 친밀해 질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을 갖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같은 언어를 공유한다는 것은, 서로 원활한 의사소통(Comunifcation)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우리가 여행을 하면서, [가장]낯설다.이국적이다.라고 느낄 때가 언제일까. 생각 해 본다면,
비행기에서 내려, 게이트를 막 빠져나왔을 때, 당신이 가야 할 곳을 알려주는 안내 표지판을 봤을 때.일 것이다[혹은, 출입국 관리사무소에서의 팻말을 보았을 때. 육로로 국경을 지난다면]. 내가 쓰는 언어와 다른 언어를 쓰는 국가에 갔을 때, 나에게 다가오는 문자(文字)들. 그것의 진정한 의미가 설령 출구를 뜻하거나, 내국인, 외국인을 뜻하는 것일지라도 그 문자들은 또 다른 의미를 함의하고 있다. 그들은 당신에게, 여기는 다른 나라. 당신은 이방인. 당신은 우리와 구별된다.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세계지적재산기구(WIPO)에서는 국제 공개어 10개를 선정하고 있다[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중국어, 아랍어, 일본어, 독일어, 한국어, 포르투갈어 10가지]. 이들 언어는 국제 사회에 무언가를 알릴 때 사용하는 언어들이다[무언가를 알릴 때 이들 10가지 언어로 번역을 하여 알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 10가지 언어를 알고 있으면,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사람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따라서, 10가지 언어를 모두 알면 가장 좋지만, 10가지 언어를 모두 습득하고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결코 쉬운일은 아니다. 따라서, 여행을 할 때 우리는 기본적인 의사소통에 관련된 언어를 몸에 익히고 떠나지만, 현실에 부닥치게 되면 또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 바로 그 상황에 필요한 것, 필요한 언어가 바로, 몸짓 언어[Body language]다.
몸짓 언어[바디랭귀지, Body language]는 의소사통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사람의 행동과 관련해서 심리학에서 아주 중요하게 다루어지는게 '몸짓 언어'이다. 본고에서는 무의식적인 몸짓 언어와 암묵적 의사 표현에 관련된 이야기 보다는 의식적, 의도적 몸짓 언어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행 중에 당신이 바디랭귀지를 필요로 하여 사용하게 되거나, 바디랭귀지의 의미를 파악해야 할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단지 그 상황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일 것이다. 이 순간, 바디랭귀지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알아 두어야 할 것은 그 나라의 문화와 관습이다. 특히, 바디랭귀지와 관련된 특이한 문화와 관습을 알아 두지 않으면 오해가 생기거나,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언어에 관해서 이야기 할 때 이런 말들을 많이 한다. 언어는 문화의 산물이다[혹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 민족의 선각자들이 우리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한 이유도 언어에 우리 문화와 민족의 혼이 담겨있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언어와 문화.는 불가분의 관계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하자면, 문화는 그 나라의 역사와 관련이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언어, 그 중에서도 '몸짓 언어[바디랭귀지]'에 관해 이야기 할 때, 우리가 그 나라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한 상황이라면 오해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2. 바디랭귀지는 많은 정보를 주지만, 오해도 준다.
친구와 대화를 할 때, 가끔. 대화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다른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대화의 주제와는 관련성이 떨어지는]다른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게 된다. 왜 일까? 그런 생각이 대화 도중에 끼어 드는 이유가 뭘까.[이런 현상을 '잔류 사고 여유(leftover thinking space)'라고 한다. 이는 상대방의 말하는 속도 보다 빠르게 진행되는 자신(청자)의 사고 속도 때문에 중간에 다른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대화를 함에 있어서 집중력을 잃게 하고, 심지어 무의식적으로 다른 행동 하게 되기도 한다.]
문제는 이 순간 발생했다.
친구와 대화. 둘이 함께 수행해야 할 과제에 관한 이야기 였다. 친구는 나에게 열심히 그 과제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고 있었다. 내가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그리고 친구는 자신은 어떤 일을 할 지 [아주 열심히]설명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왜 일까? 불현듯, 그날 저녁에 약속되어 있던, 영화에 관한 일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게 몇 시 였더라. 7시 30분.이라는 시간이 머릿속에 떠오르고, 지금이 몇 시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감과 동시에 무의식적으로 왼쪽 손목으로 시선이 움직였다.
친구는, 더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 자리엔 오해가 머물러 있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시계를 쳐다봤을 뿐인데. 친구는 나의 행동에서, 다른 메시지를 읽었다. 나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가 기분나빠 할 그런 메시지를 읽었다. 그건 오해였다.
어린 시절, 독고병[숨바꼭질과 유사한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내던 때가 있었다[그 시절은 PC게임 보다는 놀이터에서 뛰어노는게 일상화 되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는 건물 뒤에서, 건너편 건물 뒤에서 나를 향해 손짓하는 친구를 보았다. 분명, 그는 나에게 오라는 손짓을 하고 있었다[내가 생각 했을 때]. 나는 그 친구를 향해 달렸다. 그러나 곧 발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술래에게 발각되어 내가 술래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손짓을 한 그 친구에게 말했다. 너때문에 죽었자나. 그는 말했다. 내가 언제 오라고 했어, 가라고 했지. 난 분명히 가라는 손짓을 했다고. 내가 볼 땐 오라는 손짓이었는데. 손바닥이 아래로 향하면서 손목을 까딱까딱. 오라는 거 아니었나..?
3. 기차는 해바라기 평원을 지나고,
보스프러스해협을 바라보던 기차가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이스탄불의 밤. 거대한 모스크들을 뒤로 한 채, 기차는 발칸반도의 중앙으로 향한다. 내일 아침이면 불가리아에 도착하겠지.라고 생각한다. 이집트에서 비행기를 타고 지중해를 건넜다. 더 이상의 불안한 여행은 싫다. 이제-편히.
태양의 열기가 무겁게 내려 않아있던, 7월 중순의 이집트 카이로. 사막이 시작되는 곳에 위치한 공항. 공항 주변의 모래는 서로 경쟁 하듯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떨어지는 태양빛을 이겨보겠다는 듯이.
비행기 내부로 몸을 옮길 때, 느껴지던 더위. 더위는 곧 사라졌고 비행기는 활주로를 달리기 시작한다. 얼마나 달렸을까. 이제, 하늘을 향해 땅을 박차고 올라가겠지.라고 생각했을 때. 비행기는 더 이상 위로 오르지 않았다. 활주로 위에 그대로 멈춰썼다. 뭐지? 곧 아랍어로 된 기내 방송이 나온다. 나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언어[아랍어]-. 이국적인 날씨. 그렇게 3시간을 활주로 위에서, 에어컨조차 나오지 않는 오븐 처럼 열기로 가득찬 비행기 몸뚱어리 안에서 보내야 했다. 창 밖에는, 엔지니어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엔진 고장.
기차의.창 밖에는 옅은 안개가 끼어 있고, 그 사이로 햇살이 파고 든다. 상쾌한.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산 속의 아침이다. 기차는 멈추어 있다. 가끔, 새 소리가 안개사이를 가른다. 고요하다. 어디지? 불가리아 국경 사무소. 아-
한참 후,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이 나를 찾아 왔고, 그 자리엔 입국 스탬프의 흔적이 남았다. 도장. 입국 허가를 받았다는 증거. 햇살이 스믈스믈 기어 들어 안개를 완전하게 밀어 냈을 때 쯤, 기차는 움직인다. 불가리아의 해바라기 평원을 지난다. 창 밖에는 해바라기, 해바라기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노란-해바라기들.
언제부턴가, 해바라기.라고 불리는 꽃을 좋아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 때부터 였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해 준 적 있다. 해바라기는, 보면 볼수록 점점 더 예뻐 보이는 꽃이야. 질리지 않아. 질리지 않는 다는 건, 좋아. 너도- 해바라기 같아.
기차는 해바라기 사이를 달린다. 파-란하늘. 노-란 해바라기. 함형수 시인의 '해바라기의 비명(碑銘)'이 생각난다. 함형수 시인,도 알았을까? 끝없이 펼쳐진 해바라기들이, 지금. 여기에 존재하다는 것을.
시계는 12시를 넘어 간다. 배가 고파온다. 열차 시간표의 도착 예정 시간은 오전 10시 였지만, 그 시간을 훌쩍 넘기고 있다. 뭐, 그렇다고 내가 걱정할 건 없다. 나는, 창문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나를 스쳐지나가는 바람을 만끽한다. 그저- 좋다.는 말 밖에.
4. Sofia, 소피아[불가리아의 수도].
이스탄불에서 어둠을 넘어온 열차는 소피아에 도착했다. 소피아 중앙역. 그는 낯선 글자들을 봤다. 키릴 문자[키릴 문자는 동유럽(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와 몰도바,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일부지역, 크로아티아 일부지역, 루미나이 일부지역, 불가리아, 마케도니아 공화국)과 중앙아시아, 북아시아와 아제르바이잔, 그루지야 일부지역, 몽골에서 쓰이는 문자이다]였다. 키릴- 영어는 없었다. 역의 대합실, 중앙에 거대한 무언가가 새겨져 있다. 이국적인 모습들. 키릴 문자와 거대한 상징물. 맑은 하늘, 처음 듣는 언어. 그가 알아 들을 수 없다는 것은, 이방인이라는 증거였다.
기차는 곧,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로 떠날 것이었다. 그가 남긴, 차가운 흔적을 싣고. 그는 소피아에 남았다. 지도를 펼쳐 들고, 거리를 나섰다. 배낭을 메고, 거리를 걸었다. 거리는 여느- 유럽 도시와 비슷했다. 트램이 다니고 있었다. 그는 트램을 타는 대신 걸음을 택했다. 그는 걷는 것을 좋아했다. 숙소를 찾았고, 체크인을 했다. 샤워를 하고, 숙소 같은 방에 머물고 있던 독일인 형제에게 인사를 했다. 그들은 내일 소피아를 떠난다고 했다. 그 전에, 릴라 수도원[10세기에 세워진 수도원으로 불가리아의 가장 유명한 관광지 중 한 곳]에 들렀다가 마케도니아로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거리를 걷다가 지쳐 돌아왔다. 밤의 소피아, 오늘은 쉬고 싶다.고 생각을 했다.
그는 대사관에 가야 했다. 마케도니아 대사관에 들러야 했고, 주 불가리아 한국 대사관에 들러야 했다. 지도에, 대사관의 위치는 나오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을 수 밖에 없었다. Embassy라는 말을 사람들이 알아 들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묻기 시작했다. where is embassy of Macedonia?. where can i find macedonia ebmassy? 사람들은 알아듣지도, 어떤 식으로도 대답을 할 줄 몰랐다. 아니, 아이돈노우.라는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할 수 없었다. 마케도니아 대사관을 찾아가야 했고, 한국 대사관을 찾아가야 했다. 어쩌지?
5. 고개를 끄덕끄덕.
7월 말, 소피아의 하늘에서 떨어지는 햇살은 뜨겁다[햇살은 뜨거웠지만 습도가 낮아 그리 덥다고 느끼진 않았다]. 나는 떨어지는 햇살을 피부에 흡수시키며 거리를 걷는다.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길 모퉁이에 경찰들이 보인다. 그들에게 다가서서 말했다. Macedonia Embassy.라고. 몇 번을 반복해서 말한다.
대답이 돌아온다. 아. 엠바씨. 경찰들은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한 후, 나에게 말을 해 준다. 나는 말을 못알아 들었기에, 손짓과 고갯짓 등 온갖 의사소통 수단을 동원해서 의사소통을 시도한다.
아, 그러니까 저쪽으로 가라고? 한 경찰관이 고개를 끄덕인다. 알았어, 저쪽으로 가란 말이지.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손짓을 했다.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옆에 있던 경찰관이 내 손끝을 옆 골목 쪽으로 옮긴다. 저쪽 이라고?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어 댄다. 아니, 저쪽이 아니라면서 왜 저쪽을 가리켜? 그럼 아까 그 쪽? 이라고 하며, 다시 옆 골목을 가리키니까, 고개를 끄덕인다. 힘들다. 일단 가고 보자. 나는 그들이 고개를 끄덕인 쪽으로 향할 채비를 하고, 땡큐를 외친다. 그리고 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그들이 나를 부른다.
그리고, 뭐라고 말을 하면서 내가 가는 방향이 아닌 다른 쪽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나는 반문하며, 저 쪽으로 가라고? 라고 말하며, 손짓을 한다. 그러자 그들은, 고개를 다시 도리도리 흔든다. 뭐 어쩌란 말이야? 나는 그들이 고개를 끄덕였던 쪽으로 간다.
아무리 가도, 뭔가 나올 생각이 없는 듯 하다. 여긴 어디지? 나는 길가에서 체스를 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묻는다.Macedonia embassy. 엠바씨? 엠바써더? 누군가 아는 척을 한다. 그리고는, 내가 가야할 뱡향을 손짓으로 알려 준다. 나는 인사를 하고 길을 떠난다. 하지만, 아무리 그 쪽으로 가도 대사관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또 다시 물었다. 엠바씨, 마케도니아 엠바씨. 나에게 알려준다. 아, 저쪽으로 가라고? 내가 지나온 곳이다. 다시 저쪽으로 가야한다고?라며 내가 반문 한다. 그는 고개를 도리도리 흔든다. 아니, 저 쪽으로 가라고 손짓을 해준 이유는 뭐야? 왜 고개를 도리도리 흔드는 거지?
6. 맞다면, 고개를 도리도리.
그는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던 말던, 그런 것 따위는 무시하고 손짓을 해 준 방향으로 간다. 이미- 그가 지나온 곳이다. 왜, 이쪽을 가리켰을까? 그는 생각했다. 주변을 잘 살펴 보았다. 마케도니아의 국기는 보이지 않았다. 왜 이쪽으로 손짓을 했을까? 그는 주변을 유심히 살펴 보았다. 아차-!
엠베서더 호텔이 있었다. 엠바씨. 엠베서더. 그럴 만 했다. 사람들은 나에게, 엠바씨가 아닌 호텔의 위치를 알려 주었다. 엠베서더 호텔. 훗-
그는, 길을 잃은 상태였다. 힘들다. 돌아 가자. 그는 일단 소피아 중앙역을 찾아가서 그 곳 부터 천천히 거리를 걸을 생각을 한다. 걷다가, 길을 물었다. 역이 어디죠? 아리따운 여성이었다. 앞으로 쭉- 가면 된다면서 손짓을 했다. 저쪽으로 쭉? 그러면 나와? 라고 하면서 되물었다. 그러자, 고개를 도리도리 흔든다. 그는, 멈칫했다. 저쪽이라면서 또 왜?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지.라고 생각하며.
숙소로 돌아왔다. 그는 책을 펼쳤다. 그가 어렵게 구해 온, 론니플래닛 동유럽[Lonely planet East Europe]. 불가리아를 색인에서 찾아서, 문화에 대해서 읽었다. Culture and history of Bugaria.
그리고, 왜 사람들이 그에게, 고개를 끄덕였는지, 왜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었는지 이해 할 수 있었다. 역사와 문화의 산물이었다. 발칸반도의 중앙에 위치하여 오랜 세월동안 외세의 침입을 받으며 살아온 민족이었다. 그들은 외세의 침입 속에서도, 독립을 원했다. 그 과정중에 생기게 된 하나의 약속. 고개를 끄덕이면 No.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으면 Yes.를 뜻하게 되는 바디랭귀지. 그는 그것을 이제서야 할게 된 것이다. 아- 역시, 문화와 역사란, 이래서 알 필요가 있는 것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발칸 반도의 여러 나라의 역사에 대해서 공부했지만, 그것은 19, 20세기 격변의 시기에 대한 것이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한 나라의 역사, 문화와 관련된 바디랭귀지의 변화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 덕에, 그는 실컷 고생을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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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잃는다, 상실한다"는 것은 큰 아픔을 수반한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얻고, 또 많은 것을 잃어버린다[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간에 잃는 것이 생긴다]. 혹자는 말했다. 얻는 다는 것은 다른 것을 잃음이라고. 또 혹자는 말했다. 특정한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착취하게 된다고. 그래서 특정한 사람보다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고통받게 된다고. 이렇듯, 얻고 잃음은 한 사람 개인의 일이 아닌 여러 사람이 개입된 사회적인 행동의 결과물이다.
얻는다는 것에 대한 현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아니다. 얻는다는 행위는 상호작용의 결과물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자, 한 번 생각해 보자. 당신이 선물가게에서 어떤 물건을 고를 때, 무엇을 고려하는가?[선물이라는 특정한 상황이 제시되어서 다른 사람을 생각한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혹은, 당신이 책을 한 권 사더라도[당신의 지적 성장을 위해] 그 책과 관련되는 사람들에게는 미미하게나마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여행을 하기위해 얻게 되는 물건들, 혹은 여행중에 얻게 되는 물건들은 그 물건을 사용하는 주체가 당신이든 아니든간에 상호작용을 하게 된다.[배낭을 고를 때는 도둑맞지 않을 정도의 보안을 고려하게 된다. 도둑맞는 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한번 더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행지에서 어떤 물건을 구경하거나 고르면서도 당신은 그 물건을 선물해줄 누군가를 한번 쯤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당신이 무언가를 선택했을 때, 그 선택은 순전히 당신을 위한, 당신의 것만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한[혹은 다른 누군가를 의식한] 배려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당신이 선택한 무언가를 잃는다는 것은, 당신이 애당초에 생각했던 것 보다 더 큰 상실감을 가져오게 된다.
2. 버스에서 내린 후, 몇 시간이 지났다.
버스 정류장에 가자마자 내가타야할 버스가 다가왔다. 나는. 럭키. 라고 외치며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신나게 달렸고 몇 분 후, 내가 내려야 할 정류장에 나를 남겨두고 떠났다. 왠지 모를 허전함이 내 손에 잡히기에 나는 그 허전함을 움켜쥐어 주머니에 쑤셔넣고 집을 향해 걸었다. 무언가 허전하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지만, 그 허전함이 무엇때문에 찾아온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저, 집에 일찍 올 수 있어서 기분이 좋다는 생각이 앞섰기에 허전함은 그 뒤를 따라오는 그림자에 불과했다.
주위를 둘러 보았다. 매일, 그 녀석이 있어야 할 곳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 곳에는 나를 따라오던 허전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뭐지? 이 허전함은?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뭘까. 저 녀석은. 그리고, 전화기를 찾아 보았다. 전화기는 없었다. 전화를 해 보았다. 평소엔 그렇게 듣기 싫던 기계의 울림이 집안 아무곳에서도 느껴지지 않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을 시도해보아도. 작은 기계의 울림은 아무곳에서도 느껴지지 않았다.
생각을 해 보았다. 그래. 이 허전함. 휴대폰이 없어졌기 때문에 찾아온 녀석이었다. 어디서일까? 생각나는 건, 버스였다. 가방 속으로 지갑을 집어 넣을 때, 휴대폰은 집어 넣지 않았다. 내 손에는 엠피쓰리만이 들려 있었다. 휴대폰은, 버스를 타고 종점을 향해 달려갔던 것이다.
상실감. 휴대폰. 그 기계를 잃어버렸다는 데서 찾아오는 상실감보다 더 큰 상실감이 있었다. 휴대폰 속에 담겨있는 수 많은 전화번호들[그것은 내 인생 10년간의 인맥이었다]. 그리고 사진들. 그리고 당장 내일 어딘가로 연락을 해야 했고, 어딘가에서 연락이 오기로 되어 있다는 생각들.
단순히 기계를 하나 잃어버린 다면, 그 모든 것들은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들이었다. 기계는 그냥 돈을 지불하고 하나 더 마련하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기계가 가지고 있는 기계 이외의 것들은, 또 다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었다. 그 동안 내 삶의 흔적들이었다.
그 기계와 함께 했던, 나의 시간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나와 상호작용했던 모든 흔적들이 사라져 버린다고 생각하니, 그 충격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것이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고, 나를 더욱더 혼란스럽게 했다.
3, 기차역에서 눈을 떴다.
오전 다섯시 아테네 중앙역. 나는 밀려오는 졸음을 막을 수 없었다.
주위가 어둠과 고요에 잠겨있는 깊은 밤. 그 속의 열차. 열차는 테살로니키[그리스의 북부 도시]에서 아테네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야간 열차에 몸을 실은 나와 같은 칸에 탑승하게 된 다섯 명의 남자들. 그리고 밤 새도록 무언가에 대해서 열변을 토하던 두 남자[느낌상 정치적인 이야기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두 남자의 소음[그리스어로 말하고 있었기에 나에게는 소음이었다]으로 인해 나는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렇게, 내 귓가를 울리던 소음은 기차가 아테네 역에 도착할 때 까지 멈추지 않았고, 아침 해가 떠오르는 아테네 역에서 그 남자들과 함께 사라졌다.
태양이 아테네 시내를 비추기 시작할 무렵, 나는 생각했다. 여기서 조만만 졸다가, 산토리니로 가는 배를 타러 가야겠군.
4. 눈을 떳을 땐, 허전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아테네역 안의 대합실에 자리를 잡았다. 이른 아침이었기에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시간은 오전 6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그는 큰 배낭은 벽 기둥에 세워 놓고, 작은 가방은 의자 밑에 놓아두고, 잠베(Djambe)를 품에 안아 베게 삼고, 잠을 청했다. 그는 밤 새 한숨도 못잤기에 바로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어 눈을 떴다. 그는 왠지 모를 허전함을 느꼈지만, 너무 피곤했던 나머지 다시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서도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뭐지. 이 허전함은. 뭔가 느낌이 이상해. 왜일까. 그는 다시 눈을 떴다. 피곤함이 눈커플을 지그시 눌렀지만 그는 정신을 가다듬지 않을 수 없었다. 어라?!
그의 앞에 놓여있던 큰 배낭이 보이지 않았다. 왠지 모를 허전함. 그것은 60리터 짜리 배낭의 흔적이었다. 그리고 발 밑의 작은 가방을 확인해 보니, 작은 가방은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함과 동시에 그 배낭이 어디로 갔지? 큰일났다.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그는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8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역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그렇지만, 한 동양인 여행자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가방의 흔적을 찾아보려 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절규했다.
배낭이 사라졌다는 것은 그 배낭에 들어있는 모든 물건들이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직 여행 계획의 '반'이라는 지점에도 도달하지 못한 시점에서, 배낭이 사라졌다는 것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기 때문이다.
5. 아테네 거리를 헤메다.
나는 역장실을 찾아가서 가방의 행방에 대해 물었지만, 대답은 알 수 없다. 였다.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가방의 행방을 물어보았지만 모르겠다는 대답만이 나에게 돌아왔을 뿐이었다.
역 주변을 샅샅히 뒤졌지만 가방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 거리로 나갔다. 역 주변의 주택가의 골목골목을. 그리고 쓰레기를 버리는 곳의 주변을 뒤져보았지만 가방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30kg에 가까운 배낭을 들고 그리 멀리 갔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에, 그 주변 지역을 뒤지면 찾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 주변을 뒤졌지만 헛수고였다.
시간은 흘러, 오후의 강렬한 태양이 아테네 거리에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지쳤다. 가방을 찾을 가능성은 제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찰서로 발길을 돌렸고, 그 곳에서 분실물 접수를 했다. 경찰서에는 소매치기를 당했다는 외국인 관광객도 있었다.[그녀는 그날 오후 출국을 할 예정이었는데, 여권과 비행기표가 든 백을 소매치기 당했다고 했다] 순서를 기다려 도난 사항을 접수하고 경찰서를 떠났다. 암울한 하루가 이어지고 있었다.
6. 생각을 했다.
여행을 계속 해야할까. 여기서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까. 그는 생각을 했다. 다행스럽게도, 큰 가방에는 중요한 물건이 많이 들어있지 않았다. 도난당하지 않은 작은 가방에, 노트북과 카메라와 여권과 대부분의 여행경비가 들어있었다. 항상 큰 가방에 카메라를 넣고 다니던 그는, 다행히 그날은 작은 가방에 카메라를 넣어두고 있었기에 카메라를 잃어버리지 않았다.
그는 생각을 했다. 큰 가방속에 들어있었기에,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물건들을.
여러 권의 책들이 들어있었다. 그가 여행을 하며 읽을 것들, 그가 항상 시간이 날 때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던 책들. 그리고 그의 여행을 안내할 책들.
선물들을 생각을 했다. 그는 그리스까지 가기전에 들렀던 나라들에서 산 선물들을 생각했다. 그 선물 하나하나에 그는 그 선물을 줄 누군가를 생각하며, 선물을 골랐다. 그의 정성이 그 선물 속에는 담겨 있었지만, 아마도 그 가방을 가져간 사람에게는 그 선물들이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 분명했다.[인도 보드가야의 부처가 수양을 했다는 보리수나무의 잎을 주워서 책 속에다 꽂고 다녔었다. 그 나뭇잎 몇 장을 비구니인 그의 고모에게 줄 생각이었다]
또 다른 선물들을 생각했다. 여행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는 선물을 받았다. 그 선물들은 그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들이었다. 한편으로는 추억의 흔적들이라고 할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없어져버린 작은 노트 한 권을 생각했다. 그 노트에는 그의 삶의 흔적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여러가지 생각들. 그리고 그 끄적임. 여행지에 대한 감상을 비롯한 하루하루의 삶에 대한 이야기들. 그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 그것들은 모두 한글로 기록이 되어있는데, 그 도둑[그리스인임이 틀림없다고 본다]에게는 그냥 낙서가 되어있는 종이조각일 뿐이었다.
그는, 쓰레기통을 뒤졌다. 혹시라도, 그가 가지고 다니던 물건들이 쓰레기통에라도 있지는 않을까하고 말이다. 돈은 필요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러가지 물건들은 절대로 잃고 싶지 않았다. 그것들은 돈으로 살 수 없는 무언가가 담겨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7. Just keep going.
나는 전자상가에 가서, 카메라 충전기를 새로 샀다. XX전자 서비스센터에가서 노트북 어탭터를 새로 주문했다. 그리고, 산토리니에서 만난 한 외국인 여행자에게서 내가 앞으로 여행하게 될 곳에 관한 여행 가이드북의 일부를 얻었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의 응원을 받았다. 그러고 나니, 아직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여행을 멋지게 마무리 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테네 시내
-아테네
- 아테네 시네, 거리의 악사
- 산토리니
- 산토리니
- 밤의 산토리니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1. 7. 16. 16:48
second edit(1st 10.30.10)
1. 대중교통, 현대인의 쉼터.
대중교통[지하철, 버스, 기차 등]을 이용하다보면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 있다. 가끔은 자기 자신이 그 장면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지만, 그러한 모습 때문에 자기 자신이 불편을 겪고 얼굴을 찌푸린 일이 있을 것이다. 지하철이 출발하고, 도착 할 때 옆 사람의 머리가 나의 어깨를 슬며시 누를 때가 있다.
아침 출근길의 지하철이나 오후 나른한 시간의 버스. 많은 사람들이 대중교통이라고 일컫는 탈것 안에서 잠을 청하고 있다. 자신의 의지에 의한 잠이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찾아온 잠이든, 대중교통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하게 다가와 있기에 많은 사람들은 그 속에서 잠을 청하고 있는 것이다.
대중교통과 그 안에서의 졸음. 어떻게 본다면, 대중교통은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생활에 지친 사람들에게 잠깐이나마 휴식의 시간을 제공한다. 현대인의 쉼터가 되고 있다.
2. 집에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가 깜빡 졸았던 적이 있다.
너무 졸려서 잠깐 눈을 감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집까지 여섯 정거장 정도 남아 있었다. 아니 눈이 감기기 전에도 여섯 정거장 정도 남았었는데 어떻게 된 거지? 라는 생각에 시계를 보니 두시간이 지나 있었다. 지하철 2호선...한바퀴를 돈 것이었다.
도시가 어둠에 휩쌓여 있을 때 부터 술을 마시다가, 태양이 도시를 깨울 때 쯤 집에가던 시절이 있었다. 대학 새내기 시절, 상쾌한 아침 공기와 태양의 따스함을 느낄 무렵 집에 가던 때였다. 신입생 시절은 그렇게 지하철 2호선을 타고 한두바퀴 도는건 기본이었다.
친구의 이야기, 밤 늦도록 술을 마시다가, 막차를 타고 집에 간다는 친구가 있었다. 친구는 집에 가기 위해, 당고개행 열차를 타고 당당히 집을 향해 갔다. 친구는 정신을 잃었고, 나중에 정신을 차려보니, 열차 차량기지에서 잠을 자고 있더랬다. 그리고 그의 한쪽 신발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그는 자신이 간디가 되지 못한 사실에 대해 안타까워 하고 있었다. 그리고 신발이 벗겨진 그 한쪽 발은, 진흙 범벅이 되어 있었다고 했다. 무슨일이 일어났던 걸까? 술과 잠이 문제다.
우리나라 기차는 참 관대하다. 기차를 타고 고향 집에 내려가다 보면 가끔 잠이 들 때가 있다. 그러다가 내가 내려야 할 기차역을 지나친 경우가 있다. 그렇게 되면, 그 다음 역에 내려서 역무원에게 말을 하면, 다시 반대편으로 가는 열차를 타고 돌아갈 수 있게 해 준다. 내 친구 중 한명은 너무나도 깊이 잠이 든 나머지, 대구에서 내려야 하는데, 부산까지 갔다 온 적이 있다고도 했다. 그렇게 역을 지나쳐도, 추가요금을 내지 않고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인가?
3.
사실, 그리스에 갈 마음은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산토리니(Santorini)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계획에도 없던 산토리니에 가기로 했다.
그리스 아테네에 도착한 첫 날, 아침. - 야간 열차를 타고 그리스 북부의 테살로니키에서 왔는데, 같은 칸에 탄 사람이 밤새도록 떠들어대서 너무나 피곤했다 - 너무나 피곤한 나머지 역 안의 대합실 의자에서 한 시간만 졸다가 일어나야 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졸고나니, 내 눈앞이 뭔가 허전했다.
왜일까? 라는 생각을 잠시 한 후에,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내 눈앞에 놓아 두었던 배낭이 없어진 것이었다. 내 배낭.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배낭을 도둑 맞은 것이었다!!!
헐.... 좌절에 좌절에 절망에.....다행히 카메라, 노트북, 여권은 작은 가방에 넣어두고 의자 바로 밑에 넣어두어서 괜찮았지만, 큰 배낭이 없어졌다는 사실에 정말 어이가 없었다.
일단,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찾을 도리는 없었다. 잃어 버린건 잃어버린 거고, 좌절모드였지만, 그래도 산토리니에 가려고 왔으니 산토리니에는 가봐야 겠다 싶어서 배를 타러 갔다. 온종일 아무것도 못 먹고, 배낭을 찾아보겠다가 역 주변 반경 1km(?)내에 있는 휴지통을 다 뒤지고 하느라고 정말 피곤한 하루였다.
산토리니로 가는 배표를 끊고, 겨우겨우 배에 올랐다. 정말 내 꼴은 거지꼴이었다. 땀 냄새가 내 몸에서 진동을 하고 있었다. 배 안에 있는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고 나니, 정말 개운했다. 살 것 같은 기분에 도취될 무렵, 졸음이 슬슬 몰려 왔다.
승무원에게 몇 시 쯤에 산토리니에 도착하냐고 물어보니, 새벽에 도착한댄다. 아니 새벽 몇시에 도착하냐고!? 몇 번이나 물었지만 그냥 새벽이랜다. 새벽이면,,,다섯시? 뭐 그쯤? 그러니까 뭐 그럴지도 모르겠단다. 아니, 뭔 한두번 가는 것도 아니면서 도착 예정 시간을 몰라? 일단 피곤한 마음에 나는 그냥 구석에 가서 잠을 청하기로 했다. 어차피, 산토리니에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니까, 그때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나가면 깰 수 있겠지라는 생각에...
4.
그는 뭔가 이상하 느낌에 눈을 떴다. 눈을 뜨니, 주변에 사람이 아무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엔진소리가 우렁차게 났다. 설마.... 그는 승무원에게 가서, 산토리니, 산토리니를 외쳤다. 그러자, 그 승무원은 창밖을 가리키면서 산토리니라는 것이었다. 산토리는 점점 그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배는 산토리니 항구를 떠나 다른 섬을 향하고 있었다. 그는 정말 뛰어 내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승무원에게 산토리니 가야된다고 내 표를 보여주면서 내려야 된다고 하니, 그 때 승무원이 그에게 한 말이 더 가관이었다. 너는 지금 코스(Kos)섬으로 가는 배를 타고 있으니, 돈을 더 내야해. 20유로를 더 내. 뭐라고? 미쳤냐? 돈없어. 산토리니 못내린 것도 억울한데 돈을 더 내라고? 미쳤냐? 그는 배째라는 식으로 나갔다. 하지만 그런 수작이 먹힐리가 없었다. 돈을 내지 않으면 경찰을 부르겠다면서 그들은 오히려 더 난리를 피웠다. 어이없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었다.
그는 결국 20유로를 더 뜯겼다. 그리고 그 다음 정박지인 코스섬에 내렸다. 어차피 그 배는 산토리니로 돌아가니까, 그 배에 계속 타고 있다가 산토리니에 내리겠다고 했더니, 그 배는 더 멀리(로도스)섬 까지 갔다가 돌오니까 그러면 60유로를 내야한다는 것이었다. 에이 미친것들. 그는 20유로만 낸 채 침을 뱉으면서, 코스섬에 내렸다.
5.
코스섬에는 가족단위 휴양객들이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돈도 없는 본인. 배낭 도둑맞고, 자다가 산토리니에 내리지도 못하고 돈만 더 뜯기고, 돈도 없고, 옷도 없고, 씻지도 못하고 정말 거지가 따로 없었다. 다시 배가 오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날씨는 덥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 비참했다.
6.
오후 6시 무렵, 선착장에 산토리니로 가는 배가 왔다. 산토리니를 거쳐서 아테네로 가는, 그가 타고 왔던 그 배였다. 그는 정말, 그냥 그 배를 타고 아테네로 가고 싶었다. 그냥 산토리니고 뭐고 다 때려 치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차마 그럴 순 없었다. 그렇게 되면 그가 그렇게 고생을 한 이유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산토리니로 가서 침을 뱉겠다고 다짐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산토리니로 갔다.
코스에서 산토리니로 가는 동안 그는, 홍콩계 미국인인 애와 이런저런 대화를 했다. 그녀는 그에게 말을 주면서 즐겁게 해 주려고 했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산토리니에 대한 증오로 넘쳐나고 있었기에, 대화가 깊이있게 진행될 수 없었다. 그리고 마음 한켠엔 썩어빠진 그리스 놈들에 대한 증오도 일어나고 있었다.
산토리니, 좋았긴 했지만, 정말 그리스는 나랑 안맞는 나라다.
- 아테네 항구
- 코스 섬, 해안 도로
- 코스섬에 정박중인 요트들
- 산토리니로 가는 배, 사람이 정말 몇 없었다
- 바이바이, 코스섬
- 산토리니..............폭파시켜버리고싶었다
- 산토리니의 밤, 아름다웠다.
| Ep]인도, 스리나가르 - 이런게 바로 Culture Shock! 최고급 투어. 갔더니 유배(流配)?! <1> (India, Srinagar) (2) | 2011.11.11 |
|---|---|
| Ep]그리스, 아테네 - 여행중에, 뭔가를 잃는 다는 것[혹은 도난] (2) | 2011.11.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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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p] 뉴욕(NewYork, NY) - 폭설과 비행 취소. 비행기 비지니스석을 타라고?! (NYC, USA) (4) | 2011.07.15 |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1. 6. 19. 23:30
-숙소 옆의 그래피티
-광장으로 가는 길.
-소설속에서 분수의 모티브가 되었을거라고 생각되는 동상
- 광장으로 이어지는 번화가
-도시를 관통하던 하천
- 아담한 도시 중앙 광장
-광장 건너편의 시장
-
-
- 류블라냐 성에서 바라본 류블랴나
-노천카페에서 커피 한 잔
-카페에서 일하던 사람
-미니어처
-류블랴나 역의 매점
-아담한 류블랴나 역
-독특했던 류블랴나 역의 과일 자판기
-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역 앞.
-자그레브 과일 시장
- 공사중이던 건물
-전망대에서 바라본 자그레브 시내
-아침의 스플리트 역
-스플리트 올드 시티
| Ep]그리스, 아테네 - 아무도 길가의 악사에게 동전을 던지지 않는다.(Athens, Greece) (6) | 2011.07.16 |
|---|---|
| Ep] 뉴욕(NewYork, NY) - 폭설과 비행 취소. 비행기 비지니스석을 타라고?! (NYC, USA) (4) | 2011.07.15 |
| EP] 자메이카, 킹스톤- 자메이카에 다시 오지 말라고?! - Jamaica, Kingston (15) | 2011.05.10 |
| Ep] 쿠바, 하바나 - 스타벅스 커피보다 비싼 쿠바의 밀크티.(La Habana) (8) | 2011.04.21 |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1. 2. 27. 23:58
Venezuela, Caracas(베네수엘라 카라카스) - Cuba, La Habana(쿠바 하바나) - Jamaica, Kingston(자메이카 킹스톤)
1. 비자(Visa), 특정한 국가를 여행 할 때 허가증을 따로 받아야 한다는 것.
전자 여권 제도가 시행되기 전 광화문 미국 대사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던 광경이 있었다. 미국 대사관 입구에서부터 대사관 주변으로 길게 뻗은 줄. 미국 비자를 받기위해 사람들은 그렇게 줄을 서야 했다.[전자 여권 제도가 시행된 후, 그 모습은 사라졌다] 2004년 필자가 일본을 여행 할 때만 해도, 일본 대사관에서 비자를 따로 발급 받아야 했다.[그것은 적잖히 번거로운 일이었다] 하지만 일본과의 무비자 협정 체결 이후, 일본은 손쉽게 갈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빨리 중국과도 무비자 협정이 체결되기를 바란다]
어느 특정 국가를 여행할 때, 그 나라에 대해서 확인 해야 할 것 중 하나가 바로 비자의 필요 유무(有無)이다. 전 세계적인 추세가 특별히 대사관에서 비자를 따로 발급 받지 않고도 자기의 나라를 여행할 수 있게 하는 무사증(무비자)를 허용하고 있지만, 아직도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라면 비자가 필요한 국가가 많다.[유럽의 경우는 러시아, 벨라루스를 제외하고 모든 나라가 무사증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 필자가 2005년 마케도니아와 슬로바키아를 가고자 했을 때는 비자가 필요했지만 2007년 이후로 무비자로 바뀌어 동유럽 여행이 한결 쉬워졌다]
비자를 발급 받을 때 유의할 점은, 반드시 본국[대한민국 사람이라면 한국내에서]발급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고, 우리나라에 대사관이 없어서 외국에 있는 대사관에서 발급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국경에서 비자 발급 비용을 지불하면[흔히 비자피(Vasa fee)라고 한다] 비자를 발급해 주는 곳도 있다는 것.[대표적으로 캄보디아, 네팔을 들 수 있고, 시리아의 경우는 우리나라와 수교를 하고 있지않기 때문에 국경에서 비자를 발급해 준다. 시리아 입국시 일본인의 경우는 일본 현지의 시리아 대사관에서 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고 들었다]
비자 문제는 유럽 여행을 할 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장기간 여러나라를 여행하는 장기여행자들의 경우는 특히 신경써야 할 부분이다.[국경에서 비자 문제로 입국이 거부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러시아, 몽골, 중국, 시리아, 볼리비아등 많은 나라들이 아직도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비자를 요구하고 있고, 비자에 관한 문제는 수시로 정책이 바뀌기 때문에 꼭 챙겨두어야 할 사항이다.
2. 쿠바에 다녀온 흔적을 남길 수 없다.
이스라엘은 중동의 미운오리 새끼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이스라엘은 꼭 가봐야 할 곳중 한 군데이기도 하지만, 많은 여행자들이 이스라엘의 독특한 위치와, 역사적 상황, 그리고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기 위해 이스라엘을 가고자 한다. 하지만, 이스라엘을 갈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바로 입/출국 스탬프를 여권에 찍어서는 안 된다는 것. 이스라엘을 입/출국 할 때는 별지에 스탬프를 찍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출/입국 스탬프가 찍혀 있으면 주변 나라에서 입국을 시켜주지 않는 다는 것이다. 미운오리 새끼, 이스라엘.
쿠바에 가기 위해서는 비자가 필요하다. 쿠바는 국제사회의 왕따이다. 국제사회의 큰형 미국이 쿠바를 왕따시키고 있기에, 쿠바는 늘 찬밥 신세다. 하지만, 역사적으로든 문화적으로든 쿠바는 엄청난 매력을 가진 곳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쿠바를 찾는다.[많은 수의 미국인들도 쿠바를 찾는다. 미국의 대문호였던 헤밍웨이는 쿠바 하바나에 살면서 "바다와 노인"이라는 소설을 썻다] 하지만, 쿠바도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여권에 스탬프를 찍을 수 없다. 별도의 비자 용지를 구입해서 그 곳에 스탬프를 찍고 출국 할 때 반납해야 한다.
보통, 쿠바의 비자는 항공사 사무실에 비자를 판매하는 코너에 있다. 쿠바에 입국하기 위해서는 비자가 필요하고, 그 곳에서 비자를 구입해야 한다. 그리고 그 종이에 입국 스탬프를 찍고, 쿠바 출국 심사를 할 때 반납한다. 쿠바의 흔적은 여권에 남길 수 없다.[쿠바 스탬프가 있으면 미국을 갈 수 없다는 이야기도 있다]
3. 비행기는 카리브해(Caribbean sea) 위를 날고 있었다.
하우스파티 다음 날 아침, 나는 숙소로 가서 짐을 챙겼다. 내가 루이지의 집을 떠날 때 그는 나에게 물었었다. 어디서 공항가는 버스를 탈 거냐고. 나는 지도를 보여주고 11시 쯤 지도에 표시된 곳에서 버스를 탈 것이라고 말하고 떠났지만, 그 곳에서 버스를 타지 않았다.
공항에서의 까다로운 배낭 패킹을 마치고, 출국세를 지불하고, 베네수엘라의 인기있는 가수라는 녀석의 CD를 한장 구입하고, 쿠바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렸다. 또 다시 방문하게 되는 사회주의 국가였다.[이번 여행에서 시리아, 중국, 쿠바 세 군데의 사회주의 국가를 방문했는데, 각각의 나라 분위기가 너무나도 달랐다] 체 게바라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남아있는 쿠바. 피델 카스트로, 체 게바라. 혁명. 그리고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의 재즈. 그리고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 묘사되는 하바나의 성난 바다. 여러가지 이미지들이 내 머리속에 겹쳐졌다.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에 좀 더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다음 행선지인 쿠바와 자메이카의 매력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크게 다가왔기에, 카라카스에서 좀 서둘러 떠나는 감이 있어 좀 아쉬웠지만, 내가 그토록 가고싶어 하던 곳에 더 오래 머물고 싶다는 욕망을 이길 수는 없었다.
Cubana air의 낡은 기체는 한적한 공항 위를 이륙해서 반원을 그린다음, 파랗게 펼쳐져 있는 카리브해(Caribbean sea)위에 자리를 잡았다. 창밖 아래로는 카리브해의 작은 섬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세계적인 휴양지로 손꼽히는 섬들이겠지.
4. 하바나 국제 공항.
크지 않은 공항은 좀 혼잡해 보였다. 공항은 여러 무리의 관광객들을 토해냈고, 쿠바에 살고 있는 것 같은 여러 중국인들을 토해냈다. 나는 공항의 환전소에서 환전을 했다. 충격이었다. 이미 쿠바에 오기전에 들은 바는 있었지만, 정말 이렇게 심할 줄은 몰랐다. 캐나다 달러가 쿠바에서 가장 환율이 좋다는 이야길 듣고 캐나다 달러를 사고자 했지만, 캐나다 달러를 살 곳이 없었던 내가 가진 것은 미국 US달러였다.
우리나라 환율로 따지면, US달러가 훨씬 높았지만 쿠바에서는 US달러의 가치는 형편없었다. 울며 겨자먹기로 외국인용 화폐로 쓰인다는 CUC(쿡 이라고 불린다)을 바꾸고 공항 앞에서 택시를 잡았다. 택시에 몸을 싣고, 시내 중심가격은 까삐똘리오로 가자고 했다. 그 근처에 까사[현지인이 운영하는 민박과 같은 숙소]가 많다는 정보를 들은 바 있어서 그 곳에서 숙소를 잡기 위함이었다.
5. 혁명의 흔적과 함께 시간이 멈춰 버린 듯한 도시.
한적한 공항 주변의 도로를 달려, 하바나 시내로 접어들고 있음이 느껴졌다. 사람들은 버스 정류장 근처에 몰려서 버스를 타려 하고 있었고, 버스는 사람들을 가득 태우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거리엔 우리나라에서는 찾아 볼 수 없고, 다른 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클래식 자동차(Classic car)들로 넘쳐났다. 그리고 론니플래닛에 적혀있던 한 구절이 생각났다. "쿠바의 볼거리 중 하나인 클래식 카(Car)"
낡은 자동차들이 검은 매연을 토하면서 거리를 누비고 다녔다. 페인트가 벗겨진 클래식 카도 있었고, 삐까번쩍한 클래식 카들도 있었다. 도요타의 자동차도 거리를 누비고 있었고, 간혼 현대차도 보였다. 그래도 거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클래식 카였다.
어쩌면 혁명 이후 시간이 멈춰 버린 걸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미국의 경제 봉쇄 정책으로 인해서 시간이 멈춰버린 것일 지도]
6. 불법 까사. 그 곳이 나의 숙소.
까사를 찾기위해 까삐똘리오[예전에는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던 건물. 중앙에 큰 돔이 있는데 세계에서 손에 꼽힌다. 쿠바 하바나의 메인 건물 중 하나로서 역사도 오래되었고 규모면에서도 세계적인 건축물이다] 주변을 배회하다 보니, 한 명이 나에게 접근하더니 물었다. 까사?까사?
씨씨, 라고 대답하딘 10cuc에 해 준다고 했다. 엄청 싸다는 생각에, 한번 집부터 보자고 했다. 그러더니 따라오라면서, 나와는 2미터 정도의 간격을 두고 걸었다. 그리고 말을 할 때도, 나를 바라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시선을 다른 곳으로 향했다.[ 쿠바는 미국의 경제봉쇄적책으로 인해 외화를 벌어들이는 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외국인 관광객에 의한 외화벌이이다. 따라서 쿠바는 정책적으로 외국인 관광객을 많이 보호하고 관광을 장려하고 있다. 외국인 보호와 관광객 유치라는 정부 정책에 의해 정부에서 제공되는 서비스의 가격에는 외국인 가격(foreign price)가 형성되어 있음은 물론이지만, 외국인 관광객에 대한 보호도 강력하게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현지인이 외국인 관광객과 직접 대화를 하거나 접근하여 신체 접촉을 하는 모습을 경찰이 보면 그 자리에서 쿠바 현지인은 체포되어 감옥으로 간다고 한다.]
까삐똘리오에서 걸어 일반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 같은 건물에 들어섰다. 출입문을 열쇠로 열고, 좁은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각종 전선들이 거미줄처럼 계단 위쪽에 얽혀 있었다.[불이라도 날 것 같았고, 불이 난다면 다 죽을 것 같았다] 4층에 다다르자 또 하나의 문이 나왔고, 그 곳에는 복도를 따라 몇 개의 문이 있었다. 그 중 하나로 나를 안내했다.
여기가 현지인들이 살고 있는 곳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이 겨우 설 수 있는 주방. 거실에는 네 개의 세포와 작은 TV와 오디오가 있었다. 화장실은 거실 한쪽 벽문에 있었는데, 환풍기가 없었고, 샤워기는 없이 수도꼭지만이 있었다. 주방 바로 뒤에 좁은 계단을 타고 올라가니 다락방이 나왔다. 다락방은 두개의 칸으로 나뉘어 있었고, 계단과 연결되는 곳에 하나의 침대가 있었고, 문 너머에 또 다른 하나의 침대가 있었다.
이런 곳에서 한 가족이 살고 있다니. 정말 빈민촌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 곳이 일반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다. 이것이 쿠바의 현실인가? 아-주 저렴한 가격의 숙소. 뭐, 난 이제까지 여행하면서 이보다 더 심하고 시설이 좋지 않은 곳에서도 살아 봤으니라고 생각했고, 그 날 몹시 피곤했기에 다른 숙소로 옮길 생각도 없었다. 일단 여기서 이틀 정도 지내보고 숙소를 옮길지 말지 결정하기로 했다.
그렇게,
불법 싸구려 까사(casa)에서 나의 쿠바에서의 여정은 시작되었다.
- 공항을 빠져나오며
- 까삐똘리오
-
- 숙소 근처의 차이나 타운 입구
- 어디에나 걸려 있는 체 게바라
- CIUDAD DE LA HABANA
- 관광객 기다리는 쌔끈한 클래식카
-
- 혁명의 흔적
- 주차장
| 세계여행] 쿠바, 하바나 - 환상 그 이상의 즐거움 (La Habana) <3> (16) | 2011.03.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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