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지도 없이 길을 헤매도, 그저 I♥NY(3) - New York City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4. 4. 26.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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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도, Map.
 
  역사 교과서나 위인 전기를 통해서, 혹은 다른 여러가지 매체를 통해서 한 번 쯤 들어 봤을 법한 이름이 있다. '김정호'. 조선시대에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다는 사람. 물론, 그 전에도 지도를 그렸던 사람은 많지만, 그의 이름이 아직까지 불려지는 이유는 아주 '정확하게'지도를 그렸기 때문이리라.

  여행을 가거나 어딘가를 찾아갈 때, 지도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여행을 하는데 있어서 지도는 아주 중요하다. 지도 없이 어딘가를 찾아 가겠다고 길을 나선다면 하루종일 길을 헤매면서 하루를 다 허비할 지도 모른다. 지도가 있어도 지도를 잘 볼 줄 모른다면 길을 헤멜 지도 모르지만, 지도가 있으면 현지인들에게 길을 물을 수가 있다. 요즘은 스마트폰의 지도 서비스가 아주 좋기 때문에 이제는 '디지털 지도'를 사용하여 쉽게 길을 찾기도 한다.

  지도를 보며 골목길을 누비다가 목적지에 도달 했을 때의 기쁨. 그 순간에는 택시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 했을 때는 느낄 수 없는 성취감이 있다. 가끔은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끼리 이쪽이니 저쪽이니 티격태격 하다가도, 서로 의견을 잘 교환하여 목적지에 제대로 도착했을 때는 서로간에 돈독한 신뢰를 쌓을 수도 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는 사실[지도를 잘못 보고 이상한 곳을 헤메다가 결국 싸움에 이르게 되는 될 수도 있으니 조심하자].

  우리는 여행을 다니든, 일상 생활을 하든 '지도(Map)'라는 이름이 붙은 다양한 것들을 접한다. 지도는 알게 모르게 우리의 생활속에 스며들어 있다.


2.서울의 지도, 서울의 길.


   전 세계의 여느 대도시가 그렇듯이 서울에는 무수한 지하철 노선이 얽히고설켜 있다. 지방 작은 도시에 사는 사람이 서울에 올라와서 지하철 노선도를 처음 보게되면 눈이 휘동그래 진다. 지하철 노선도는 내가 어디에서 어디로 가야할 지 골똘히 생각하게 만든다. 

  함께 자취를 하던 친구와 주말마다 오토바이를 타고 서울 관광 안내 책자에 나오는 서울의 관광 명소를 돌아다니던 때가 있었다. 큰 도로를 벗어나 작은 골목길이나 좁은 도로를 지날 때,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서 헤매던 기억이 있다. 구불구불 꼬여있는 서울의 골목길은 저 길이 이 길 같고, 이 길이 저길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도가 있었지만, 길을 찾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우리가 찾던 목적지가 나오기도 했다.


3. 뉴욕 지하철 노선도(New York Metro Map)

  JFK공항(John F.Kennedy International Airport)에서 맨해튼의 125th Street까지 지하철을 타고 이동 했다. 125번가는 할렘의 중심가였다. 그 곳에 위치한 숙소가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가장 저렴한 숙소 중 하나였기에 나는 서슴없이 그곳으로 이동했다. JFK 공항에서 출발하여 두 번 지하철을 갈아타고나서 125번가 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게스트하우스에 비치된 뉴욕 관광 안내 지도를 집어 들었다. 그 지도의 한쪽 면에은 큼직하게 뉴욕 메트로 맵이 뉴욕의 지도와 겹쳐져서 그려져 있었다. 아주 간략하고 보기 좋게.


  나는 뉴욕 지하철 지도의 역 이름을 살펴 보던 중 한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지하철역 이름과는 좀 다른 역 이름들. 우리나라의 지하철역이름은 그 동네의 지명이나 큰 건물의 이름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예를 들면 3호선의 대화, 구파발, 불광, 홍제, 옥수, 약수, 압구정 등] 그렇지만 뉴욕 지하철의 역들은 대부분 그 거리의 이름을 지하철 역이름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특히, 맨해튼의 경우 그 특징이 두드러 졌다.



△ 뉴욕 지하철 노선도(New York Metro Map)


 맨해튼은 가장 아래 쪽, 남쪽의 1st street부터 북쪽으로 가면서 동서로 가르지르는 길에 번호를 부여해서 길 이름을 구성하고 있엇다. 1st, 2nd, 3rd, 4th, 5th .... 10th, 100th, 125th street...이런 식으로 동서를 가르지르는 도로에는 스트릿(street)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남북을 가로지르는 길에는 way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었다. 그래서 맨해튼을 남북을 가로지르는 대표적인 길이 바로 '브로드웨이(broad Way)'이다.  지하철 역들은 주로 street 넘버를 지하철 역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같은 스트릿(Street)의 동쪽과 서쪽에 서로 다른 지하철 노선이 지나가는 경우에는 동일한 지하철 역 이름을 가지고 있었기에 나는 종종 실수로 다른 역에서 내리곤 했다.

  내가 가장 눈여겨 본 지하철 역은 나의 숙소가 위치하고 있던 125th Street와 42nd Street의 타임스퀘어 역이었다. 그 외에도 20번가, 7번가 등 많은 역들이 거리 이름으로 되어 있어서 그곳을 지도에서 그곳을 찾아 이동하기가 아주 쉬웠다.


4. SOHO부터 Wall Street까지.
 

   소호(SOHO)에 가 보고 싶었다. 예전에는 화랑이 즐비해 있었다지만 높아진 임대료로 인해 화랑들은 이제 주로 첼시 쪽으로 이동하거나 더 먼 곳으로 서서히 이동하고 있다고 했지만 '화랑'의 흔적을 찾고 싶었다. 소호는 패션의 거리가 되어 가고 있다고 들었다. 론니플래닛 뉴욕 시티(Lonely planet, New York City)에 나온 안내에 따라 지하철 역에서 내렸지만, 그곳이 소호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그곳이 소호라고 해서 '여기가 소호 입니다'라는 안내판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소호역'이라는 말도 없었으니 나는 그저 사람들을 따라서 걸을 수 밖에 없었다. 왠지 내가 가는 곳이 '소호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무작정 사람들이 많이 가는, 젊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뒤쫓았다.


    

△ 리틀 이탈리아와 차이나타운은 붙어 있다.


  길을 걸으며 거리 곳곳에 파편처럼 흩어져 있는 예술의 흔적과, 건물들의 모습에 취해 셔터를 누르다 보니 어느새 내가 와 있는 곳은 '리틀 이탈리아(Little Italy)였다. 언젠가 '리틀 이탈리아'에 대해 읽은 기억이 났다. 차이나타운 근처에 위치한 '이탈리아 타운'. 조금 더 걸으니 '차이나타운(China town)'이 나왔다. 그러면서, '차이나 타운의 지하로 잘못 들어가면 영영 빠져나올 수 없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차이나타운의 지하는 미로처럼 얽혀 있어서 뉴욕 경찰들도 그곳으로 들어가는 것을 꺼려한다는 이야기.

  차이나타운의 한 테이크아웃 음식점에서 사람들이 음식을 사 가는 모습을 보니 배가 고파왔다. 메뉴를 고른 만큰 돈을 지불하는 방식이었는데, 가격은 저렴했다. 음식을 사 들고, 근처에 있는 공원에 앉아 배를 채운 다음 다시 발걸음을 남쪽으로 옮겼다. 점점 더 소호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남쪽으로 내려가자 NYPD(뉴욕 경찰서)건물이 나왔고,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더 이상 이쪽으로 오지말라고 소리쳤다. 나는 방향을 서쪽으로 돌려 계속 걸었다. 법원 같은 건물이 나왔고, 나는 다시 지하철 역으로 들어갔다. 42번가로 돌아가려 했으나, 나는 지하철을 잘못 타버렸고 브루클린 브리지(Brooklyn Bridge)를 건넜다. 맨해튼을 떠나 브루클린으로 가고 있었다. 맨해튼의 야경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5. SOHO에서 타임스퀘어까지.

  나는 다음날 또 다시 소호를 찾았다. 이번에는 다른 지하철 역에서 내렸다. 왠지 그곳이 소호의 중심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을 빠져나오니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그리고 많은 유명 브랜드의 매장이 깃발을 펄럭이며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제대로 찾아온 것 같았다. 아메리칸어페럴, 유니클로, 바나나리퍼블릭, 게스, 디씨슈즈 등의 많은 해외 유명 의류 브랜드들이 내 눈에 띄었다. 호주에서 자메이카까지 6개월 이상을 보내면서 나는 여름 옷만을 가지고 있었고, 뉴욕의 추위를 견디기 힘들었다. 소호의 여러 의류 매장들을 돌아다니며 옷을 구입했다. 통장 잔고는 조금씩 줄어들었지만, 추위를 막을 수 있다면 통장의 잔고가 줄어드는 것은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 소호 거리에 있는 게스(guess)매장과 젊은 이들.

  
   소호의 거리들을 돌아다니며 쇼핑을 하고, 사진을 찍고, 거리의 분위기를 관찰했다. 거리의 분위기를 밝고 활기가 넘쳤으며, 다양한 먹거리들이 즐비하고 있었다. 북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뉴욕대(NYU)를 지나 42번가 까지 갔다. 42번가는 타임스퀘어 근처에 위치한 곳이라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붐볐다. 해가 저물고, 현란한 불빛이 하나둘 거리를 메우기 시작했다. 기온은 조금씩 더 떨어지고 있었다.

 

△ 뉴욕대(NYU)지하철 역(왼쪽)과 뉴욕대 근처 공원의 개선문(오른쪽)

 

  숙소 근처에 위치한 유명한 재즈 카페에서 재즈 공연을 볼 생각을 한 나는, 간단히 식사를 하고 재즈 카페를 찾았다. 재즈 공연을 보기 위한 사람들로 카페는 붐비고 있었다.



6. 길 찾기가 쉬운 맨해튼.

  전형적인 바둑판식 도로가 깔려 있는 맨해튼. 맨해튼의 중심에는 센트럴파크(Central Park)가 있고, 그 오른쪽을 이스트사이드(East Side), 왼쪽을 웨스트사이드(West Side)라 부르고 있는 곳. 1번가(1st street)부터 약 130번가까지 차례로 하나씩 숫자를 붙여 나가며 동서를 가로지르는 길이 있는 곳. 남쪽을 향해 계속 길을 걷다 보면 1번가와 2번가가 나왔고, 배터리 파크에 서서 강 저 멀리를 바라보면 자유의 여신상이 서 있었다.


 

△ 42번가 역 안(왼쪽)과 42번가 역을 나왔을 때 만날 수 있는 풍경.



  나는 20번가와 42번가 사이를 수 없이 왔다갔다 했고, 그렇게 다니다 보니 어느새 맨해튼은 지도 없이도 다닐만 한 곳이 되어 있었다. 나는 맨해튼 말고 주변 지역(롱아일랜드, 브루클린, 퀸즈)도 돌아다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미국에 유학와 있는 친구를 만나러 뉴저지에도 가 보고, 롱아일랜드, 퀸즈, 브루클린의 여러 패션 아이템 샵에도 들러 좋은 패션 아이템을 찾아보거나, 거리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뉴욕은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오는 그런 곳이었다.




 

△ 42번가를 향해 가는 길(왼쪽)과 42번가 주변(오른쪽)


△ 차이나타운 관광 안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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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좋아할 수 밖에. I♥NY (1) - New York City, NY(U.S.A)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4. 4. 25.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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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술, 미술관 그리고 예술.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목적에 따라 여행 장소가 정해지기도 한다. 가령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 산자락을 트레킹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네팔의 포카라로 향할 것이고, 유럽 이곳 저곳을 누비며 중세 유럽의 흔적을 느끼고 싶은 사람이라면 유럽 배낭 여행을 떠날 것이다. 저렴한 여행 경비로 다양한 먹거리와 놀거리를 찾는 사람은 동남아로 떠날 것이고, 홍콩으로 떠나는 사람은 쇼핑을 할 생각에 가슴 부풀어 있을 것이다. 이처럼 여행의 목적지는 그 여행의 성격과 많은 연관성을 가지게 된다.


  일반적으로 유럽 여행을 하면서 가장 많이 가게 되는 곳 중 하나가 박물관 혹은 미술관이다. 특히, 유럽에 있는 유명 미술관의 경우는 항상 많은 사람들로 북적댄다. 중세시대 뿐만 아니라 근대의 유명한 화가의 생가를 비롯해서 다양한 장소가 미술관으로 꾸며져있고, 그런 미술관을 둘러보기 위해서 멀리서 비행기를 타고 오거나, 기차를 타는 것은 흔한 일이다. 영국의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 테이트모던(Tate Mordern), 프랑스의 오르세 미술관(Orsay Museum), 로댕 미술관, 피카소 미술관, 네덜란드의 반 고흐 미술관 등 유럽에 위치한 많은 유명 미술관들은 항상 많은 관광객들로 붐빈다. 중,고등학교 시절 교과서에서 보았던 그림들을 이들 미술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은 유럽의 유명 미술관을 찾는 사람에게 두 배의 기쁨을 선사해 준다.

△ 뉴욕 현대 미술관(The Museum of Modern Art, MoMA)은 세계 3대 현대 미술관 중 하나이다.

  미술, 예술에 대한 여행자들의 갈망은 어디에서 부터 비롯된 것일까?[물론 모든 여행자가 미술관에 대한 갈망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외국의 유명 미술관에 있는 작품들을 자신의 나라(우리나라)에서 우연히 감상할 기회가 생겼을 때, 그것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여행지에서 지불하는 대가의 몇 배를 치루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갈망의 근원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을 수도 있다. 또 다른 이유로는, 여행자들은 여행에서 여유를 만끽하기 위해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기도 하고, 잘 정돈되고 쾌적한[미술관이나 박물관은 다른 장소들에 비해서 비교적 쾌적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 환경 속에서 시간을 보내기를 원하기 때문에 미술관을 갈망하는 것일 수도 있다. 물론 미술이나 예술에 대한 갈망의 가장 근본적인 근원지는 여행자 개인이 가진 다양한 미술 작품에 대한 관심이 되겠지만, 여행자들이 들고 다니는 작은 책자들은 많은 지면을 할애해 가면서 여행자들에게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기 대문에, 여행자들은 그 정보들에 현혹되어 미술과 예술에 관한 갈망을 싹틔우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2. 예술과 공공질서의 파괴 사이.
  골목길을 걷다 보면 건물의 벽이나, 담장에 그려진 그림들을 볼 수 있다. 스프레이 락카로 그려진 그림들을 가리켜 누군가는 공공질서를 파괴하는 낙서라고 말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그런 것들도 예술의 하나라고 말하기도 한다. 낙서와 예술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

  예전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샤갈전이 열렸을 때,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찾아온 샤갈의 그림들을 보기 위해 서울시립미술관을 찾았다. 샤갈의 그림들은 경매에서 고가에 거래되는 것은 물론이고, 수 많은 사람들이 많은 대가를 지불해 가면서 샤갈의 그림을 보기를 원한다. 샤갈의 그림을 가리켜 '예술 작품'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거리의 담벼락에 그려진 '그래피티(Graffiti)를 보고 누군가는 예술이라고 하지만 누군가는 '낙서'라고 말한다. 예술의 관점에서 본다면 '담벼락에 그려진 그림'은 거리의 분위기를 조금 더 밝고, 아름답게 꾸며준다는 측면에서 '예술'이라고 일컬을 수 있다. 하지만 예술의 기준을 '미술관의 작품'으로 정의하는 사람의 관점에서는 거리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아무렇게나 그러져 있는 작품은 낙서인 것이다.


  공공질서를 파괴하는 낙서와 예술성 높은 미술 작품으로 평가되는 기준은 참으로 모호하다. 그 기준이 일관성 없는 편견의 산물일 뿐이라는 것은 이미 뱅크시(Banksy)라는 아티스트에 여러차례 풍자되기도 했다.

  

△ 예술일까? 공공질서의 파괴일까?


3. 세계의 수도, 뉴욕(New York City)
  뉴욕을 세계 경제, 문화의 수도라고 말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맨해튼의 월스트리트(Wall Street)는 경제의 중심지로 불린다그리고 뉴욕은 '문화의 중심지'라고도 불린다. 특히 현대 미술과 관련하여 60년대, 70년대 자본주의와 미술. 그리고 팝 아트. 다양한 현대 미술과 모더니즘을 넘어선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뉴욕은 많은 아티스트들의 활동지였다. 
  
  나는 세계 3대 현대 미술관 중 하나로 불리는 모마(MoMA, Museum of Mordern Art)에 가 보고 싶었다.  유럽 배낭여행을 통해서 유럽에 있는 세계 3대 현대 미술관 중 두 곳인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Tate Mordern),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센터(Centre Pompidou)센터를 둘러보았던 나로서는 세계 문화의 중심지 뉴욕의 모마(MoMA)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또한, 맨해튼 근교(브루클린, 롱아일랜드)에서 그래피티, 재즈 카페에서 재즈(Jazz) 공연, 링컨 센터에서 열리는 공연,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그 외의 다양한 뉴욕만의 특권을 즐겨야 겠다고 생각했다.

 

△ 링컨센터(왼쪽)과 자유의여신상 내부 전시관(오른쪽)


4. MoMA, 그리고 MoMA PS1

  우리는 편지를 쓴 뒤, 중간에 빠뜨린 부분이나 본문에 적지 않은 중요한 말은 편지의 끝에 P.S(추신 혹은 덧)라는 말과 함께 간단히 적으면서 편지를 마무리 할 때가 있다. 뉴욕 맨해튼에 있는 MoMA 본관과 롱아일랜드에 있는 MoMA PS1의 관계가 편지 본문과 추신(PS)의 관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맨해튼에 위치한 MoMA의 본관엔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깔끔한 내부와 그 안에 어울리는 작품들. 미술관을 탐험하며 돌아다니는 몇 시간 동안 나의 감정과 마음, 그리고 나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는 작품들. 오디오 가이드와 함께 하는 모마 여행은 나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모마는 다양한 섹션에서 예술의 다양성을 보여주었고, 많은 사람들의 휴식처이자, 눈을 즐겁게 해 주며, 감성을 키워주는 공간이었다.

△ 'MoMA'의 다양한 작품들.


   롱아일랜드에 있는 MoMA PS1의 입장료는 무료였다[MoMA의 입장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 한해서 무료입장]. 무료라고 하지 않아도, PS1은 MoMA보다 훨씬 작은 규모의 미술관이었기 때문에 입장료가 절반이 채 되지 않았다. PS1은 설치 미술을 위주로 꾸며진 공간이었다. 나는 팝 아트와 설치미술에 상당한 흥미가 있었기 때문에, 느낌은 달랐지만 모마에서 느꼈던 것 이상의 만족을 얻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학교와 비슷한 같은 구조로 되어 있는 미술관은 외곽 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PS1의 방문객은 나를 포함해서 다섯 명이었다. 그 곳에선 미술 강의도 이루어 지고 있었다[세미나 실에서 1:1 또는 2:1 강의를 하고 있었다]. 각 방마다 안내원을 겸한 감시자들이 나의 행동을 주시했다. 방문자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미술 작품을 감상하듯이 나의 행동 하나하나를 감상햇다.

△ 롱아일랜드에 있는, MoMA PS1


  미디어 아트의 영상을 보고, 영상이 말하고 있는 것을 생각했다. 독특한 아이디어로 설치된 작품들을 보면서 감탄하며, 다양한 각도에서 작품을 바라보면서 몸을 이용해서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웠다. 1층 복도에서는 카페테리아에서 흘러나온 여자들의 목소리로 가득찼다. 미술관에 근무하는 여직원들은 카페테리아에서 점심을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나는 그녀들의 목소리를 미술관 바닥에 그대로 흘려 놓은 채 미술관을 빠져나왔다.

△ MoMA PS1의 작품


5. 그래피티.
  MoMA PS1을 빠져 나와, 근처 건물 벽을 가득 메우고 있던 그래피티를 구경했다. 그래피티 스쿨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빽빽하게 그려진 그래피티들. 보기 좋게 잘 꾸며진 건물이었다. 나는 세계 각국의 골목을 거닐면서 그래피티 사진을 많이 찍었던 나 였지만, 뉴욕의 그래피티들이 작품성이 가장 뛰어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 그래피티


6. 구겐하임 미술관
  언젠가 책에서 본 적 있는 건물 모양이었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독특한 건물 모양으로 유명한 미술관이었다. 구겐하임 미술관. 건물의 중간이 뻥 뚫려서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빛이 건물 내부로 흘러 들어왔다. 채광이 잘 되었고 분위기는 독특했다. 중앙 홀에서 남녀 한 쌍이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엇다. 행위예술. 천천히, 천천히, 서로를 애무하며 키스를 하는 퍼포먼스였다. 아침 일찍 방문한 구겐하임 미술관엔 사람이 얼마 없었다. 그들은 천천히 움직이며 포퍼먼스를 계속 했다. 그리고 몇 시간 동안 작품을 감상하며 꽤 오랜 시간을 보낸 뒤, 아래쪽을 바라보았을 때도 퍼포먼스는 계속되고 있었다. 제법 많은 학생들이 미술관을 방문 중이었고, 퍼포먼스를 하는 주변에는 사람들이 앉아서 그들의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예술이란!

  유치원생, 초등학생처럼 보이는 학생들이 체험 학습을 하는 듯 했다. 미술관에 방문한 사람들을 상대로 여러가지 질문을 하고 퀴즈를 푸는 활동을 하는 듯 했다. 많은 학생들이 미술관을 방문한 다른 사람들에게 달려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움을 요청했다. 물론, 나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 구겐하임 미술관 외관(왼쪽), 구겐하임 미술관 미술관의 퍼포먼스(오른쪽)


7. 거리 곳곳의 작품들.
  뉴욕 거리 곳곳에는 다양한 예술 작품들이 많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간혹 대기업의 건물 입구나 큰 건물의 입구에 설치 미술 작품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지만, 뉴욕의 거리에는 거리 곳곳에 많은 작품들이 산재해 있었다. 나는 9.11테러로 무너져 내린 세계 무역 센터 자리를 오가며 근처 벤치에 앉아 있는 동상을 보았고, 큐브를 보기도 했고, 그 외에 다양한 작품들을 거리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뉴욕은 도시 자체가 미술관이었다. 도시 곳곳에 현대 미술의 흔적이 보였다. 미술관이든 거리든 어디든지 예술이 있었다. 뉴욕은 그런 곳이었다.

  

△ 월드 트레이드 센터(WTC)와 거리 곳곳의 예술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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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은 살아있다" - 제주여행 추천! 제주여행에서 가볼만 한 곳.

- 길을 걷다, 국내여행/맛집멋집 국내여행 · 2014. 2. 1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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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여행 추천; "박물관은 살아있다" - 제주여행에서 친구,연인,가족끼리 가볼 만 한 곳!


오랜만에 제주도를 찾았습니다. 비가 와서 여행 기분도 안나고 생각보다 많이 추웠지만, 

생각보다 괜찮았던 곳을 발견해서 포스팅하게 되네요^^

사실 예전에 제주도 여행을 할 때는 경치구경을 위주로 했는데, 

겨울에 제주도 여행을 하다보니 실내를 많이 찾게 되었어요.


제주도를 짧은 기간 여행하면서 여러군데를 돌아다녔는데, 

제주 서귀포 중문에 있는  "박물관은 살아있다"라는 곳에 갔을 때 생각보다 재미있었습니다. 

별로 기대를 하지 않고 갔기 때문에 뭔가 색다르고 신선했던 경험이었어요!


<제주도 "박물관은 살아있다"위치. 지도 제공 : 다음 지도>



"박물관은 살아있다"의 건물 외관은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을 본뜬 것 같았습니다. 

유럽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건축양식이긴 한데, 

그래도 저는 영국 런던에 있는 대영박물관 외관을 본뜬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네요^^ 

박물관은 살아있다 입장료성인9,000원 / 청소년 8,000원 / 소인 7,000원 이랍니다^^



<제주도 "박물관은 살아있다" 외관. 사진출처 : "박물관은 살아있다"공식 홈페이지>



박물관은 살아있다 내부에 가면, "모나리자"를 시작으로 다양한 미술 작품들, 건물들이 있습니다. 

입체감이 대단하더라고요!

"박물관은 살아있다"를 방문한 관광객 모두들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답니다^^

한국 관광객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인 관광객들도 사진 찍느라 정신이 팔려 있더라고요~







"박물관은 살아있다" 박물관 건물 밖에 "프로방스 마을"이라고 해서 정원이 있는데, 비가 와서 밖에 나가지는 않았습니다. 

박물관 구경을 끝내고, 뒤편에 있는 카페에서 쉬다가 나왔죠^^




<"박물관은 살아있다" 공식홈페이지에 있는 사진. 출처 : "박물관은 살아있다" 공식 홈페이지>




<사진 출처 : "박물관은 살아있다" 공식 홈페이지. http://www.alivemuseum.com >


"박물관은 살아있다" 공식 홈페이지에 가보니, 2014년 1월에 N서울타워(남산타워)에도 오픈을 했다고 합니다! 

폴라로이드 사진 이벤트는 끝나버렸지만, 그래도 한 번 들러서 재미를 만끽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합니다. 

N서울타워(남산타워)에 있는 "박물관은 살아있다"에서 

친구, 가족, 연인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네요^^



인사동에도 "박물관은 살아있다"가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인사동 "박물관은 살아있다" 위치. 지도 제공 : 다음지도>


인사동에 위치한 "박물관은 살아있다"지하철 3호선 안국역 6번 출구로 나오면 금방 찾을 수 있답니다^^

나중에 한 번 가봐야 겠네요 ㅎㅎ 

제주에 있는 "박물관은 살아있다"와 또 다른 재미가 있을 지도 모르겠어요.

고맙습니다^^




<박물관은 살아있다 유튜브 영상. 출처 : 유튜브, ALIVE MUSEUM 박물관은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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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몽골, 루마니아 외 - 슬픈 눈빛, 때묻은 손을 나에게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4. 1. 27.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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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걸, 구걸하는 사람들.

  길을 걷다보면 마주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지하철을 타도 자주 마주칠 수 있다] 여행을 하다보면, 더 자주 마주치게 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당신에게 다가와 손을 내민다. 그리고, 애절한 눈빛을 함께 당신의 시선 속에 던진다. 그리고 간혹 이런말을 함께 당신의 주변에 맴돌게 하기도 한다. One Dollar.

  그 사람들이, 그 아이들이. 구걸을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일까? 아니면 그가 그렇게 구걸을 하게 만든[특히, 외국인을 상대로 구걸을 하는] 사회 제도, 구조가 잘못된 것일까? 결론을 쉽게 내릴 수 없을 것 같다[아마도 이 문제는 생각하는 사람에 따라서 다른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여행을 하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들[구걸을 하는 아이들, 사람들]에게 돈을 쥐어준다. 그들이 외치는 원 달러. 원 달러를 외치는 이들에게 있어서 원 달러의 가치는 비교적 크다. 하지만 그에 반해, 원 달러를 건내주는 사람에게 있어서 원 달러의 가치는 너무나도 작은 것이 일반적이다[자기 나라(본국)의 화폐 가치에 비교 했을 때]. 그러기에, 그들은 쉽게 원 달러를, 원 달러를 외치는 이들이게 건네준다.

  혹자는 '그들'의 행동이 잘못되었고, 그런 행동을 되풀이 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혹자는 '그들'의 행동은 사회적 약자의 행복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도와 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누구의 말이 옳고, 그르다고 말할수는 없다. 그것은 각자가 가진 가치관의 문제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의 문제이고, 그 동안 그들 자신이 쌓아온 경험의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들에게 손을 내미는 '그들'은 최소한 사회적 강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2. 작은 바구니를 품에 품고,

  지하철 차량을 연결하는 통로의 문이 열리고, 잡음섞인 음악 소리가 작은 기계를 통해서 열차 안에 울려퍼진다. 누군가는 얼굴을 찌푸리고, 누군가는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로 그 사람이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지하철 차량 속의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 손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거나, 그 사람이 지나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다가 간혹,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한 손에 들려있는 바구니에 지폐 한장 혹은 동전 몇 개를 집어 넣는다. 그렇게 음악을 짊어진 사람은 유유히 다른 열차칸으로 사라져간다. 잡은 섞인 음악의 파편만을 열차칸에 남겨 놓은채.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뉴스에서는 장마라고 떠들어대고, 비 피해를 조심해야 한다고 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우슨을 펼쳐들고 거리를 돌아다녔고, 그들이 지하보도로 들어섰을 때 하늘로 향하던 우산을 땅을 향했고, 하늘에서 우산위로 떨어지던 물방울은 우산에서 땅으로 떨어졌다. 물방울은 바닥을 적셨고, 이내 작은 바구니를 앞에 두고, 바구니를 향해 엎드려 있던 사람의 무릎을 적시는 듯 했다.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역사를 빠져나오는 길의 풍경은 이랬다.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의 시선은 그들의 뒷통수만 살짝 스쳐 지나갈 뿐, 그들의 바구니를 무겁게 채워주지는 못했다.



3. 기차는 국경을 넘어, 

  테살로니키를 오후에 떠난 기차는 북쪽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리스 북부지방을 지나, 마케도니아 국경을 지나려 하고 있었다. 국경을 지나기 위해 정차한 기차에는 국경 기차역의 고요함이 스며들고 있었다[기차를 타고 국경을 지나본 사람이라면 알 법한 느낌]. 새 소리가 울려퍼지던 그 때, 내가 타고 있던 칸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꾀죄죄한 얼굴의 한 여자가[30대 중반정도의 얼굴]가 나를 슬픈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알아 들을 수 없는 말로 나에게 말을 걸어 왔다. 나에게 조금 다가오면, 손을 내 밀었다. 그녀의 뒤에는 작은 꼬마가 그녀의 옷깃을 잡고 있었고, 나의 시선은 꼬마에게 잠시 머물렀다가 그녀의 손을 향했다. 그녀의 손에는 유로화 동전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그녀가 했던 말을 생각 해 보았다. 나에게 동전을 달란 말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케도니아를 지나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로 가는 기차에서 유로화 동전은 쓸모 없는 것이었다. 마케도니아에서도 세르비아에서도 유로화는 사용될 수 없는 돈. 골동품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손에 쌓인 동전을 보며, 나는 나보다 돈이 더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을 잠시 했을 뿐, 그녀를 향해 고개를 저을 수 밖에 없었다.  



4. 집시, 집시 아이들.

  시비우(Sibiu)를 지나 머무르던 작은 마을 시기쇼아라(Sighisoara). 그는 기차역에서 그가 타고 갈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역 앞의 작은 상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역 쪽으로 다가가자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 들었다. 그는 어제, 그 동네의 빌라옆 쓰레기통을 뒤지던 한 무리의 아이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아이들은 말을 걸어 왔다. 그러면서 그의 한 손에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가리켰다. 이미 그가 반 이상을 먹은 소프트 콘이었다. 그의 침과 아이스크림의 녹은 부분이 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아이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아이스크림을 받아 먹었다.
  그는 가방에서 자일리톨을 꺼내 아이들에게 하나씩 나눠 주었다. 아이들은 기뻐하며 껌을 받아갔다. 이윽고, 멀리서 기차 소리가 나더니, 서서히 멈춰섰다.

  기차 안은 한산했다. 시골 작은 도시를 출발한 기차는 비교적 큰 도시이자, 많은 기차들이 지나는 브라쇼브(Brasov)로 향했다. 그는 음악을 듣고 있었고, 그의 옆 건너편 칸엔 루마니아 전통의상을 입은 것 같은 여인과 아들, 그리고 남편처럼 보이는 남자가 타고 있었다. 그 여인이 갑자기 그에게 말을 걸어 왔다. 그는 알아 들을 수 없었지만, 그 여인이 사진 찍히기를 원한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는 그들의 사진을 찍어 주었다. 그러자 그 여인이 그에게 뭐라고 말했다. 그는 정확히 그 뜻을 알 수 없었지만, 그녀의 행동으로 보아 돈을 달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지만, 사진에 대한 답례로, 유로화 지폐를 한 장 건네 주었다.



5. 몽골, 초원에는 웃음이 울려 퍼지지만,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백화점 앞에는 관광객들이 여러가지 물건을 사기위해서 몰려든다. 그리고, 그들에게 다가가는 다른 이들이 있었다. 너덜너덜한 옷가지를 입고, 얼굴엔 콧물 흐른 자국이 있는 아이들. 그 아이들은 나에게, 나와 같이 있던 일행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아이들의 모습이 불쌍했지만, 그렇게 관광객들에게 구걸을 하는 아이들이 밉기도 했다. 나와 함께 있던 일행 중 한 명이 그 아이들에게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주려 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사탕'이었다. 그는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인도에서, 내 또래의 일본인과 잠시 동행을 한 적이 있었다. 그는 나와 함께 버스를 타고, 조드푸르로 향하는 길이었다. 조드푸르에 도착했을 때, 숙소로 올라가는 길, 언덕 중턱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 한 무리를 만났다. 그 아이들은 우리 둘을 쳐다보았고, 우리도 그 아이들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갑자기, 그 일본인은 보조가방을 주섬주섬 열기 시작하더니, 그 안에서 사탕을 꺼내서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나는 항상 사탕을 준비해서 다녀요. 이렇게 아이들을 만날 때 마다 사탕을 나눠주면 굉장히 좋아하더라고요."라고 덧붙이며 그는 웃어보였다.

  왜 그 때가 생각난걸까? 몇 달도 더 전에 여행했던, 인도였다. 인도부터 유럽까지. 그리고 또 다시 유럽에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몽골까지 온 나였다. 여기에서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고 있었다.

  구걸하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는 모습. 인도에서 그냥 뛰어놀던 동네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던 모습과는 조금은 다른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어쨌거나, 구걸해서 돈을 얻어가는 아이들이 못마땅했다. 그들은, 충분히 다른 일을 배울 수 있었음에도, 구걸을 배웠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6. 어느 식당, 셋 만의 이야기.

  몽골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세 명의 한국인은 해가 대륙 저편으로 넘어가고, 어둠이 몽골을 덥쳤을 때 저녁을 먹기위해 시내 레스토랑으로 갔다. 광장을 지나서, 조금 더 떨어진 곳. 거리는 어두웠다. 식당안은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지만, 밖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칠흑같은 어둠만이 그 식당을 감싸고 있었다. 그는 창밖을 바라보면서 이 세상에는 그 식당과 그 안에 있는 사람만이 존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낮에 있었던, 구걸하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거리로 떠올랐다. 구걸하는 아이들에게 돈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사람과 그들을 도와 주어야 한다는 또 한 사람. 왜 구걸을 하는 것일까? 라는 질문과 함께 서로의 견해가 테이블 위에 쏟아졌다. 
  
  그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더이상 없기에, 구걸이라는 수단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을 하던 한 사람. 사회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어 버린 거라는 그녀의 말. 그리고 여러가지 이유를 설명하는 그녀의 말은 어느정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다른 견해를 피력하던 그는, 그것은 자신의 의지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 아이들, 그리고 아니가 조금 더 있는 아이들. 그들이 과연 구걸밖에 할 수 없었을까? 그 아이들이 다른 것을 하고자 했다면, 그의 부모나 다른 나이많은 형제가 다른 일을 할 수 있도록 뭔가를 해 주었다면 그들은 구걸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다른 일을 힘들게 배우고, 하는 것 보다 구걸을 하는게 더 쉽고 편하게 돈을 구할 수 있는 일이라는걸 알기 때문에 그들은 구걸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덧붙였다. "내가 예전에, 돈이 없어서 그리스에서 구걸을 한 적이 있었는데, 구걸을 하다보면 욕심이 생기고, 구걸이라는 것이 돈을 정말 쉽게 모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는 걸 알게돼."(http://dwis.tistory.com/563 참조)



7. 단상(短想)

  지하철에서 장님인 척, 구걸을 하는 사람이 지하철을 내리고 역사를 빠져나가면, 고급 승용차를 타고 유유히 사라진다는 말[풍문인지 진실인지는 알 도리가 없지만]을 들은 적이 있다. 구걸로 상당한 수입을 올린다는 말이다. 지하철역이나 길거리에 하루종일 업드려 있는 사람들의 바구니에 얼마 만큼의 돈이 들어가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난 항상 이런 생각을 해본다. 저들은 정말 무언가 다른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일까?

  물론, 구걸도 구걸을 하는 사람의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특히, 경제적으로 발전이 덜되어 사회 전체가 풍족하지 못한 곳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아이들 중, 극빈층에 속하게 되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구걸밖에 없을 수도 있는 것이고, 구걸이 편하고 좋아하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구걸에 대해서, 누가 옳고, 누가 그릇됐다고 가타부타 할 수 없는 것 같다.는 생각.




-해가 저무는 시기쇼아라



- 시기쇼아라 역의 아이들,




- 시기쇼아라의 아이들


-기차 안,



- 불가리아, 집시 가족



- 울란바토르 메인광장






-사원 주변 풍경



- 전통과 현대의 공존



- 어둠이 스미는 광장



-울란바토르 역




- 테를지 국립공원. 이곳엔 아직도 노마드가 있다. 아무 걱정 없이 사는 것 같아 보이던, 말을 타고 달리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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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인도, 암리차르 - 황금사원, 템플스테이 그리고 친구들(Amritsar, Golden Temple)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3. 10. 9.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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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플스테이(Temple Stay), 하다.

  언제부턴가 우리 주변에 템플스테이에 관한 이야기가 많아졌다. '사찰', '사원', '신전' 등에서 머문다는 의미의 '템플스테이'는 종교적인 의미를 떠나, 우리 삶에서 문화 생활의 한 단면으로 자리잡고 있다. 바쁜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호젓한 사찰에 머물며 몸과 마음의 다스리고 자기 자신을 되돌아 보며, 힐링을 한다는 의미로 템플스테이는 꽤나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템플스테이를 하는 데 있어서 개인이 가진 '종교'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Temple'은 모든 사람에게 개방적이며, 템플스테이의 기회를 제공해 준다. 템플스테이는 특정 종교를 믿는 사람들만의 것이 아닌, 우리 모두가 향유할 수 있는 문화적 행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황금사원(Golden Temple, 골든템플)


 우리는 템플스테이를 하면서, 그 사원의 종교가 추구하는 이상향을 좇을 필요는 없다. 그곳의 상징물이나, 분위기가 자신이 추구하는 어떤 목적을 얻는데 도움이 된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은 것이다. 단지 우리는 템플스테이를 통해서 자신을 위한 수양을 통해 어떤 깨달음을 얻으면 되는 것이다. 

  우리는 템플스테이를 통해 새로운 무언가를 추구할 수 있다.


2.플스테이_가능할까요?

  여행을 하다보면, 종교와 관련된 많은 건축물들과 마주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여행지인 '경주'는 신라시대 불교 유적 일색이며, 우리나라 국보/보물급 유물들도

룹비니(Lumbini)의 한국 사찰

종교와 관련있는 것이 대다수이다. 또한, 유럽 대부분의 관광지들은 로마 제국과 중세 기독교의 산물이며, 중동의 대다수 유적지들도 종교만 조금 다를 뿐, 유럽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인도에는 다양한 종교가 있고, 각각의 종교들은 그들만의 성지(聖地)를 가지고 있으며, 외국인 관광객이든 현지인이든 많은 사람들이 성지를 찾는다. 

 성지에는 흔히 '사원'이라고 일컬어지는 각 종교들의 'Temple'이 있다. 

  인도와 네팔은 불교의 발상지 답게, 불교와 관련된 많은 성지가 존재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곳이 네팔의 룸비니[Lumbini, 부처님(고타마 싯타르타)이 태어난 곳]와 인도의 보드가야[Bodh Gaya,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장소, 보리수 나무가 있다]이다. 우리는 그곳의 불교 사찰에서 템플스테이를 할 수 있다.

 인도의 북서부, 파키스탄과의 국경도시 -암리차르(Amritsar)-에는 많은 이들이 파키스탄과의 국경에서 벌어지는 국기 하강식 행사를 보기 위해 몰려가지만, 그곳은 '시크교'의 성지인 '황금사원(골든템플, Golden Temple)'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황금사원'에는 외국인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가 따로 마련되어 있으며, 많은 현지인 순례자들도 사원 바로 옆의 숙소에서 머물고 있다. 우리가 어떤 목적을 가졌든, 성지의 '사원'들은 우리에게 호의를 베푼다. 그들 종교는 그들만의 종교가 아닌, 모든 사람들을 위한 종교라는 생각이 들게끔, 우리들에게 많은 호의를 베푸는 것이다. 우리가 그들 종교에 반하는 극단적인 행동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들 종교가 제공하는 호의를 받으며, 그곳에서 우리 자신을 위한 힐링의 시간을 가질 수


3.금사원(Golden Temple), 친구들.

 황금사원의 외국인 숙소는 협소한 공간이기에 언제나 많은 외국인들로 붐빈다. 물론, 그곳에도 숙소를 관리하는 사람이 따로있고 침대의 개수를 넘어서는 외국인은 그곳에서 머물 수 없었다. 다행히

사원의 숙소. 현지인들이 묵는 숙소다.

내가 암리차르의 황금사원에 도착했을 때, 하나의 침대가 비어 있었다. 어두운 주황색 조명이 약하


게 빛나고 있는 길쭉한 방에 침대들이 길게 놓여 있었고, 여럿이 함께쓰는 작은 방들도 몇 개 있었다. 종교 시설에서 마련해 준 숙소라기 보다는, 게스트하우스의 도미토리 같은 느낌을 풍기는 그 숙소에는 나 처럼 혼자 여행을 다니는 여행객에서부터 둘 또는 셋이서 다니는 여행객까지 다양한 여행자들이 있었고, 책을 보거나 수다를 떠는 사람, 그리고 음악을 들으며 낮잠을 자는 사람까지 다양 행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나는 내 옆 침대에 누워있던 남자와 인사를 했다. 이름은 짐(Zim). 미국 보스턴에서 왔다고 했다. 마침, 점심을 먹고 난 뒤 책을 뒤적이고 있었고, 잠시 후에 암리차르의 한 사원에 놀러가려던 참이었다고 했다. 그곳은 Mandir Mata Lal Devi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나는 그곳에 대해 전혀 몰랐고, 짐도 잘 몰랐지만 일단 갈 거라고 했다. 두 명의 동행자가 있었다. 내 침대는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쪽이었고, 두 명의 동행자는 길쭉한 방의 안쪽에 위치한 침대에 머물고 있는 두 명의 영국 소녀였다[여성이라고 하기에는 젊었으므로]. 하나(Hannah)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는 마른 체형에 안경을 썼고, 백금색 금발 머리를 가진 소녀였다.

짐, 캐시니, 하나(왼쪽부터)

또 다른 소녀는 캐시니(Kayshani)라고 하는 소녀였는데, 하나와 달리 통통한 체격에 성격도 활발했고, 피부는 햇빛에 약간 그을린듯 했으며, 머리색은 갈색이었다. 하나와 캐시니는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졸업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보스턴에서 온 짐, 영국에서 온 하나와 캐시니, 그리고 나는 황금사원의 숙소에서 만나자 마자 함께 Mandir Mata Lal Devi라는 사원을 찾아 떠났다. 


 Mandir Mata Lal Devi를 찾아가는 길은 유쾌했다. 인도의 그저 그런 거리였지만, 대도시가 아니었고, 관광객들은 대부분 국경인 와가(Wagah border)로 향해서인지 거리에 관광객들은 거의 없었다. 거리의 인도 사람들도 우리를 낯선 눈으로 바라보았다. Mandir Mata Lal Devi는 여러

신들의 모습(Mandir Mata Lal Devi)

신들을 모셔놓은 사원이었다. 인도의 수 많은 신들. 수 만 가지의 신들이 존재한다고 들었는데, 그런 신들을 모아 놓고, 모시고 있는 사원이었다. 우스꽝스러운 생김새의 신들에서부터 돌맹이 모양의 신들까지 다양한 생김새의 신들이 있었고, 우리는 동굴 탐험을 하듯이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놀이동산 귀신의 집에 온 기분이라고 할까?


 한참 동안 사원 안을 헤매고 돌아다니고 나서야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하나와 캐시니 그리고 짐은 활동적이었고, 웃음을 멈출 줄 몰랐다. 그렇게 우리는 사원에서의 추억을 뒤로 한 채, 국경에서 벌어지는 국기 하강식을 보러 가기 위해 와가로 가는 릭샤에 올랐다.




4.행이란 그런 것.


 여행이란 우연의 연속이 만들어 낸 산물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아무런 구체적인 계획이 없이, 황금사원에서 황금 빛으로 빛나는 사원을 보기 위해 그곳에 갔다. 그곳엔 내가 들었던, 내가 생각하던 황

밤의 황금사원(Night of Golden Temple)

금사원이 있었다. 타지마할보다 더 뛰어난 예술, 건축물이라고 불리던 황금사원이었다. 그리고 듣던대로 아름다웠다. 어둠 속에서 황금빛으로 빛나는 황금사원은 나에게 묘한 기분이 들게 했다. 사원안은 언제나 경건했다. 혼잡스러움 속에서도 경건함이 깃들얼 있었다.


 우연히 친구들을 만났다. 그곳에서 처음 만났고, 그리고 황금사원을 떠나면서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친구들이었다. 모두 황금사원으로 모였다가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졌다. 그곳에는 세계 각지에서 모인 친구들이 머물고 있었다. 템플스테이를 하며, 황금사원에서 제공하는 식사를 먹었고, 제공하는 잠자리에서 잤고, 그곳의 공동 샤워실에서 함께 샤워를 했다. 함께 밥먹고, 함께 호흡하면서 공통의 목적을 가지고 행동하는 우리들이었기에, 짧은 기간에 친해질 수 있었고, 나이와 국적을 떠나 서스럼없이 지낼 수 있었다.


 내가 한 달 뒤에는 터키에 갈 예정이라고 말하자, 터키에서 여행온 친구가 이스탄불의 저렴한 숙소

우리들. Friends.

가 있는 곳과 맛있는 먹거리가 있는 골목을 알려 주었다. 맥글로드간즈로 간다고 하자, 그곳에서 온 여행객이 그곳에 쉽고, 편하게 가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나도 내가 지나온 길에 대해서 알려 주었다. 하나와 캐시니 그리고 짐과는 서로 간단한 선물을 교환했다. 흔히 여행객들이 차고다니는 팔찌. 서로 팔찌를 주고 받고, 헤어졌다. 첫만남이 있고 난 다음 날, 짐이 떠났고, 그 다음날은 하나와 캐시니가 떠났다. 그리고 그 다음날은 내가 황금사원을 떠났다. 


 모두가 우연히 만나지만, 그것이 필연적인 것이라는 착각이 드는 것. 그리고 각자의 길을 가기위해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지만, 그러지 않을 것처럼 지낸다. 여행이란, 그런 것이다.

 

 여행. 만남과 헤어짐을 통해 완성 되는 것. 템플스테이를 통해서 더 특별해 질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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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사원으로 들어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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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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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황금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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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황금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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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하강식에 모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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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하강식(인도-파키스탄 국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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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으로 지는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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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인도, 아그라 - 타지마할, 우리는 왜 그곳에 머무르지 않는가?(India, Agra).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3. 9. 17.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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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리가 생각하는 것들_장소에 관하여.


  우리가 장소를 기억한다는 것은, 그 장소에 어떤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어떤 특정한 장소를 접하는 사람들은 각자 그 장소를 다르게 인식한다. 어떤 장소는 누군가에게는 좋은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특별한 장소가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 장소가 불쾌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곳 일 수도 있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무런 감흥

장소와 방향(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도, 의미도 없는 기억에 조차 남지 않는 '장소'가 될 수도 있다. 

  이처럼 '장소'는 가변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장소에 대해 서로 다른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장소는 사람들에게 상이한 의미를 전달하게 되는 것이다. 그 '장소'는 그 자체의 하나로 존재하지만, 우리는 그 장소와 함께 다른 수많은 '이미지'들을 결합시켜 다양한 '장소'로 만들어 우리들 각자의 머릿속에 넣어둔다[그것이 의식적 행동이 될 수 도 있고, 무의식적인 행동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기억을 하거나 어떤 추억을 만드는 데 있어서 많은 이미지들을 활용한다[기억을 하는 데 있어서 이미지를 활용하는 것은 상당히 유용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어떤 장소는 어떤 특정한 이미지와 연결되어 우리의 머릿속에 남게 된다. 예컨데 우리가 일상을 보내며 과거의 특정한 경험과 연관되는 어떤 특정한 이미지[사물, 사진, 영상 등의 모든 형태]를 접하게 될 때 우리는 그 이미지와 관련된 어떤 기억을 떠올릴 수 있고, 잊고 있던 옛 추억이 떠오름으로 인해서 즐거운 감상에 젖을 수도 있다.  

 

  또한, 우리는 어떤 장소를 생각하거나 떠올리려 할 때, 그 장소에서 보았던 이미지들을 회상할 수도 있고, [아직 그 장소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이 없다면]책이나 인터넷에서 보았던 어떤 것을 떠올릴 수도 있다. 우리가 떠올린 이런 이미지들은 어떤 '상징'이 되어 우리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징'은 우리가 여행을 할 때, 어떤 지향점 혹은 목표가 되어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 우리는 여행을 하면서 그런 '상징'을 좇고, 그 '상징'을 통해서 머릿속에서 또 다른 이미지들을 만든다.


 

2.리가 보고싶어 하는 것들_상징

 

  우리는 '상징'을 찾아 다니며, 그것들을 보고싶어 한다. 

 많은 사람들이 '뉴욕'하면 자유의 여신상을 떠올린다. 많은 사람들이 '파리'하면 에펠탑을 떠올리고, '런던'하면 빅밴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나라 그 도시를 여행하며 우리는 그런 상징물을 찾아 사진을

 찍고, 우리 각자의 추억을 만들어 간다.  비단 이런 '상징 좇기'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시가 아닌, 한

뉴욕, 자유의 여신상

나라[국가] 상징과도 관련이 된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중국의 만리장성, 브라질의 쌈바, 몽골의 게르 등 우리는 이들 나라를 방문할 때면 그런 상징을 찾아 헤멘다. 


  현대 사회의 여행은 어쩌면 이런 '상징 좇기'를 하는 일종의 형식 유희라고 볼 수도 있으며, 여행사들은 그런 '상징 좇기'를 부추기며 그 나라를 방문했을 때, '상징물' 앞에서 사진을 찍는 행위가 여행의 모든 것이며, 여행의 종착지인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이러한 '상징 좇기'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상징'여행의 목적지가 될 수도 있고, 여행의 목표가 될 수도 있다. 어느날 내가 책을 읽다가[그 책의 제목은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였다] 문득 그 책의 배경이 되는 도시에 가고 싶어졌고, 그 도시의 '상징'을 그 책에 나오는'도시의 광장'이라고 생각하고 무작정 그 도시의 광장으로 향했던 것 처럼, '상징 좇기'여행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도시의 '상징', 여행의 '상징 좇기'를 통해 우리는 그 도시를 기억하고, 여행을 통해 자신이 만든 새로운 경험을 바탕으로 그 도시를 이미지화 한다. 그리고 나 자신과 그 장소, 도시 사이에 새로운 의미관계를 만들어 그 장소를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여 그곳을 자신만의 특별한 공간으로 만들어 간다.



3.인도의 상징을 찾아서_

 

  인도의 '상징'. '인도'하면 떠오르는 것,

 많은 것들이 떠오를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올리는 것 중 하나가 '타지마할(Taj Mahal)'이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의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는 타지마할. '인도의 대표적인 건축물', '인류가 보편적으로 감탄할 수 있는 걸작'이라는 수식어들. 이런 수식어들은 우리들에게 '타지마할'이 인도

타지마할(Taj Mahal), 인도 아그라

의 상징이 될 수 있게 해 준다. 우리는 많은 책들을 통해서, 그리고 많은 광고를 통해서 타지마할의 모습을 보아 왔다. 


  델리(Delhi)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아그라(Agra). 많은 사람들이 아그라를 찾는 목적은 인도의 '상징'을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이다. 아그라 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인류가 남긴 걸작 '타지마할'을 만날 수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타지마할은 아그라에서 요염한 자태를 뽐내며 관광객들을 맞아들이고 있다. 파란 하늘, 길게 늘어진 회랑, 그리고 그 끝에 위치한 새햐안 색의 거대한 건물. 곡선이 아름다운 건물, 그 주위에 네 개의 기둥이 서 있다. 우리가 많이 보아왔던 '타지마할'의 모습이 있다.

  하지만, 그곳에 가보면 우리가 상상하던 '타지마할'이 아닌 또 '다른 타지마할'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인도의 상징인 '타지마할'을 본다는 생각으로, 길을 떠났다면 우리는 그 목적을 생각하며 그것에 충실하면 된다. 하지만, 여행은 그 하나의 목적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여행은 그 목적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겪는 수 많은 사건들[일상의 소소한 일들을 포함한 모든 일들이라는 의미]의 집합체이다. '타지마할'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수 많은 사람들, 무더위, 그리고 놀랄만큼 비싼 타지마할의 입장료. 많은 요소들이 우리들을 불쾌하게 만들 수 있다. 이러한 불쾌함을 만드는 소소한 요소들이 우리가 인도의 상징을 바라보며, 감탄하고 싶다는 순수한 목적을 훼손시킬 수도 있다. 심지어는 '타지마할'이라는 건물이 가진 본질적 가치, 여행의 순수했던 목적마저 훼손된 채, 우리는 타지마할에 관한 안좋은 기억만을 가진 채 아그라를 떠날 수도 있다.



4.'타지마할'에 관한 짧은 대화_

  

  우연히 어떤 여행자들을 만났다. 그들은 타지마할에 다녀온 뒤였고, 아직 타지마할에 가 보지 않은[곧 타지마할을 방문할 예정인] 여행자들에게 타지마할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물론 나도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 중에 하나였다]. 그들 무리 중 한 남자가 타지마할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를 해 주고 있었고, 모두의 귀와 눈은 그의 입과 몸짓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는 타지마할에 가는 방법, 타지마할의 입장료 등 자신이 경험한 타지마할에 대해 열심히 말했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그는 덧붙였다. 

 "타지마할이 꼭 가봐야 하는 곳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냥 큰 건물 하나 있는데, 입장료 얼마나 비싼지, 완전 바가지에요.그 입장료[타지마할의 입장료는 외국인과 내국인이 다른데, 외국인이 내국인에 비해서 30배 이상 비싸다. 내국인은 20루피, 외국인은 750루피]에 비하면, 정말 형편없어요." 

 그러고 나서 심지어 이런 말을 했다. 

 "돈아깝고 시간아깝고, 가지마세요"


  나는 그의 말에 반박하고 싶었지만, 아직 그곳에 가보지 않은 나로서는 별로 할 말이 없었기에, 그 말을 듣고도 잠자코 있었다. 옆에서 나와 함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른 여행자가 말했다. 

 "가지 말까... 시간도 별로 없는데."

  그러면서 그녀는 아그라에서 멀지 않은 다른 도시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그렇게 여러가지 여행 정보를 주고 받으며 한참을 이야기 한 뒤, 나는 나와 함께 타지마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던, 고민하던 그녀에게 말했다.

 "타지마할에 가보세요. 왜 저 사람 말만 듣고 가보지도 않은 곳에 대해서 편견을 가지고 있죠?" 그녀는 다시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덧붙였다.

 "후회하더라도 가보고 후회해야지, 가보지도 않고 후회도 못해보는 건 너무 억울하지 않나요?"




5.우리는 왜 그곳에 머무르지 않는가_Taj Mahal.


 아침 일찍, 아그라의 타지마할로 향했다. 아침 일찍 타지마할에 가서, 그곳에서 시간을 보낸 뒤 델리로 돌아올 예정이었다. 아그라 역의 혼잡한 인파를 헤치고 나와 릭샤꾼들을 무시한 채, 타지마할을 향

저 너머, 타지마할.

 걸었다. 타지마할로 향하는 길에, 아그라 성을 비롯한 여러가지 볼거리들이 있었지만 그런 것들은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오직 세기의 명작, 인도의 '상징' 타지마할을 봐야 한다는 생각과 타지마할에 기대감이 있었기에 한시라도 빨리 타지마할을 보러 가고 싶었다. 아그라의 오래된 다른 건축물들을 뒤에 흘려보내고, 타지마할 입장권을 구입했다. 듣던대로 비싼 가격이었다. 정말, 터무니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수 많은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외국인 가격과 내국인 가격이 따로 책정되어 있는 곳을 수 없이 봐왔지만 이렇게 차이가 많은 폭리를 취하는 곳은 처음이었다.


 보안검사를 한 뒤, 넓은 광장 같은 곳을 지나 타지마할이 있다는 곳을 향해 갔다. 큰 관문 같은 것이 있었고, 그 아래 수 많은 인파가 뒤엉켜 있었고, 그 뒤로 타지마할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관문의 어두운 통로, 그 뒤로 파란 하늘. 그 아래, 새하얀 타지마할이 있었다. 듣던대로 웅장했고, 듣던대로 라인이 살아 있었다. 책에서 보던, 딱 그 모습이었다. 한가지 다른 점, 새롭게 발견한 것이 있다면, 내 주변, 타지마할의 주변에만 수 백명의 사람들이 뒤엉켜서 타지마할의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혼자, 타지마할을 향해 걸어갔고, 사진을 찍기 위해 뷰 포인트(View Point)에서 다른 사람들

이 사진을 다 찍을 때까지 기다리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

사진찍는 사람들

고, 나는 벤치에 앉아 타지마할이 뿜어내고 있는 아우라를 느껴보기도 했다. 새하얀 타지마할의 대리석 바닥. 바닥 조차 돌이 아닌 부드러운 지우개로 만들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돌이 아닌, 하얀 진흙으로 빗은 건물 같았다. 부드러움이 묻어나는 건물이었다. 주변을 둘러싼 회랑 사이사이를 드나들며, 회랑의 출입구 사이로 언뜻 보이는 타지마할의 모습을 구경했다.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하는 타지마할. 내가 타지마할의 주위를 거닐며 보는 타지마할은 시시각각 모습을 바꾼채 나에게 다가왔다. 타지마할 앞으로 펼쳐져 있는 정원, 나무 그늘 벤치에 앉아 타지마할을, 타지마할 주위를 거니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햇살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그런 타지마할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와서 사진을 찍고 타지마할 주위를 한바퀴 돌고, 다시 들어왔던 관문을 통과해서 빠져나갔다. 나는 타지마할이 잘 보이는 한켠에 앉아 그 사람들을, 그리고 타지마할을 유심히 살폈다.


Taj Mahal, 사진찍는 소년

 '이게 바로, 세기의 걸작이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동안 나는 여행을 하면서 유럽의 수많은 건축물들을 보아왔고, 숨막히는 절경도 보아왔지만, 이곳 타지마할의 앞에서 또 다른 감동을 받고 있었다. 선과 색과 하늘의 조화. 그 옛날, 무굴제국의 황제 '샤 자한'이 타지마할을 만든 기술자들의 팔을 잘랐다는 이야기가 생각났고, 충분히 그럴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감동을 줄 수 있는, 죽기전에 꼭 봐야 하는 건물, 그것이 왜 타지마할인지, 그 정답은 여기에 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 누군가의 말을 듣고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그것은 정말 '일생일대의 후회될 일' 이라고 생각했다. '입장료'가 아깝지 않았다. 혹자들이 말하는 터무니없이 비싼 입장료,라 할지라도 타지마할은 그 입장료를 내고라도 볼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돌바닥에 앉아 타지마할을 보며, 감동을 하며, 감격에 차 올라 있을 때, 한 여행객이 내 눈에 밟혔다. 그녀도 나를 보았고, 자연스럽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정말 멋지지 않아요?' 내가 말했고, 그녀는 '정말 그렇네요'라고 말한뒤, '식사하셨어요?'라고 덧붙였다.


 시간이 많이 흘러 있었다. 나는 그녀의 제안에 따라, 식당으로 향했고, 식사를 하고, 근처 카페테리아에 앉아 음료를 마신 후, 조금이나마 무더위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그녀가 말했다.

 '가이드 북에 보니까, 아그라에 볼거리가 꽤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아그라 성에 가볼까 해요. 거긴 타지마할보다 볼 게 많을 것 같아요. 같이 갈래요?'

 그녀는 총총걸음으로 아그라 성을 향해 걸었다. 나는 아그라 성에 들어가지 않았다. 나무 그늘에 앉아, 아그라의 풍경을 바라보았을 뿐이다. 


  얼마 뒤, 그녀는 아그라 성의 입구를 빠져나와 나무 그늘에 앉아 있던 나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여기가 타지마할보다 볼건 더 많은데요? 미소" 



 6.리는 무엇을 볼 것인가_

 

 타지마할, 새하얀 건물이 파란 하늘아래. 은은한 빛을 내뿜으며 서 있다. 단지, 그것이 전부다. 타지마할이 왜,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일까. 스쳐지나가듯 보면서, 사진만을 찍는다면, 타지마할이 주는 감동을 느끼지 못한 채 지나칠 지도 모른다. 타지마할을 그윽히 바라보며, 타지마할이 내뿜은 아우라를 느낀다면, 우리는 그 건물이 가지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타지마할에서 뿐만 아니라, 많은 곳에서 세기의 걸작들을 만난다. 로마에서, 파리에서, 안데스 산 속의 마추픽추에서. 그들은 단지, 사진을 찍기 위한 배경이 아니다. 사진을 찍기 위한 피사체가 아니다. 그들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지만, 우리가 그들의 가치를 한순간에 발견해 내기는 쉬운일이 아니다.


  우리는 그들 곁에 머물면서, 그윽히 그들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한다면, 감동이 밀려올 것이고, 새로운 의미를, 새로운 느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사진을 뛰어 넘는 그 장소의 진정한 이미지를 머릿속에 새겨넣을 수 있다.





구경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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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마할, 그 감동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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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마할에서 바라본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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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마할,




타지마할, 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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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다른 볼거리를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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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발트3국(빌뉴스,리가,탈린) - 비와 낭만, 비오는 발틱(발트3국) 거리를 걷다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3. 9. 1.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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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비[雨, Rain], 그 지루함의 끝은 낭만.

  여름, 지루하게 비가 내린다. 가끔씩 억수같이 쏟아지고, 아파트 사이사이를 흐르는 작은 천(川)은 금새 흘러 넘친다. 삼삼오오 모여 천(川) 안에서 놀던 오리 가족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여름 휴가를 떠났을까]. 창 밖으로, 빈틈없이 떨어지는 빗방울들을 바라보다보면 가끔씩 빗속을 걷고 싶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1998)> 박흥식, 허진호 감독.

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어쩌면 정신나간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시련을 당했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것은 정말 지루함을 떨쳐낼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면서, 특히 여름에 많은 비를 만나야 하는 것은 좋은 것일 수 있다[비를 맞고나서도 추위에 떨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그동안 우리가 봐 왔던 많은 영화들에서 비는, 슬픔을 대신 말해주었고 비는, 우연을 말해주었고 비는, 운명을 보여주었고 비는, 낭만적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영화 <접속(1997)>에서 어떤 우연을, 영화 <동감(2000)>에서 어떤 비극적 운명을,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1998)>에서는 사랑을 속삭였고, 영화 <클래식(2003)>에서도 비는 사랑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아직도 많은 '비'는 우리에게 어떤 낭만적 만남과 사랑을 말해주고 있다. 내가 우산도 없이 빗속을 걷고 있으면 누군가 나타나서 우산을 씌워주는 것은 아닐까,라는 상상을 하며 어떤 '운명적 만남'을 조심스레 기대해 보기도 한다. 이처럼,


 '비'는 지루함이 아니라, '낭만'이 될 수 있다.




2.이지 않는 '비'가 전해주는 즐거움.

  마른 땅에 빗방울이 떨어질 때, 촉촉한 물기가 메마른 땅을 적시며 흙 속으로 스며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흙 내음이 살며시 우리의 콧속으로 스민다. 이 순간 '흙 냄새' 좋다,라는 말이 나오기도 한

비오는 거리, 2013

다. 오랜만에 찾아온 빗방울이 메마른 대지를 적실 때, 우리는 갑작스레 찾아온 흙 내음에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가끔은 빗방울이 똑, 똑, 똑, 똑, 떨어질 때가 있다. 무언가를 두드리며 떨어지는 소리. 가끔은 우드드드득, 무언가를 마구 두드리며 떨어질 때도 있다. 가끔은 '쏴아-'하는 소리를 내며, 아파트 벽을, 나뭇잎을 쉼없이 두드릴 때도 있다. 우리는 '아, 비가 오는 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비가 내리는 소리가 좋다, 라는 생각을 한다. 자연이 자연과 부딪으며 내는 소리들, 자연이 사람[사람이 만든 물건]과 부딪으며 내는 소리들이 있다. 우리는 이런 소리를 들으며, '좋다'라고 느낀다.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 '소리[음악]'가 아닌 자연이 만들어낸 그저 '소리'일 뿐이지만, 우리는 그 소리가 음악보다 '좋다'라고 느껴질 대가 있다. 

  봄 비 내리는 밤, 우리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땅에서 부터 피어올라 콧속으로 스미는 흙 내음을 맡으며 기분좋게 잠들 때가 있다.


 밤사이 세차게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지만, 아침의 고요함 속에서 깨어날 때가 있다. 세차게 떨어지는 비가 내던 빗소리는 사라지고, 고요 속에서 가끔 새소리가 들리고, 자동차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고요를 뚫고 방 안으로 들어오는 그런 날이 있다. 그런 날 아침. 집을 나서며 하늘을 바라보면, 맑고 투명한, 파란 하늘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다. 그런 날은 왠지 우리의 기분을 즐겁게 만든다.   


  가끔은, 귀[耳]로. 가끔은, 코[鼻]로. 우리는 비[雨]를 만난다. 귀와 코로 만나는 비는 우리에게 즐거움을 전해준다. 비[雨]는 즐거움이다.



3.여행을 하는 중에 만나는 '비'? 

  일상을 살면서 우리는 일기예보에 민감하다. 혹시나 '비'가 올까봐.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걱정이다. 스마트폰 액정 속에 나와있는 세계 각국의 날씨에 먹구름이 잔뜩이니까. 

  비가 오는 날에는 숙소에서 쉬거나, 비가 오는 날에는 예정된 일정을 취소해야 하나,라는 생각으로

잿빛 하늘. 류블랴나.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 비가 오면 어쩌지?

  비가 오면 여행이 새로워 진다. 우리는 그것을 즐겨야 한다.


  '비'는 그 도시의 색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잔뜩 찌푸린 잿빛 하늘, 그 사이를 뚫고 떨어지는 물방울. 우리는 빗속에서 그 도시의 색다른 모습을 보게 되고, 그 도시의 골목을 적시고 있는 비를 만나게 된다. 카페에 앉아 거리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길 수도 있다[날씨가 맑았다면 절대 하지 못 할 일이다]. '비'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도시의 색다른 풍경을 보여준다[대부분의 여행 안내책, 여행 블로그들에는 비오는 날의 풍경이 거의 없다]. 우리는 그 동안 알지 못했던 낯선 풍경을 통해서, 그 여행의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다[물론 그곳에 머물동안 계속 비가 왔다면, 그곳의 이미지는 '비'내리는 풍경으로 영원히 각인될 것이지만]. 조용한 거리, 빗방울이 떨어지는 거리를 거닐다 보면, 그 거리가 온통 나 혼자만의 것이 된 것 같다. 비가 오는 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들어진 '이방인의 거리'.


  여행을 하는 데 있어 비가 내리는 것은, 뭔가 번거로운 일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비 때문에 카메라를 함부로 꺼낼 수도 없고, 빗방울로 얼룩지고 잿빛 먹구름들로 뒤덮힌 하늘에선 한 줌 빛 조차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사진도 잘 찍히지 않는다. 비가 오는 날의 사진은 찾기 힘들지만, 그렇지만 우리는 평소와는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있다. 비가 오는 날 사진을 찍는 대신 사람의 흔적이 씻겨 나가버린 한적한 거리를 거닐어 보고, 가만히 앉아 비가 오는 모습을 바라보기도 해 보고, 비가 만들어 내는 소리를 들어보자. 이국에서 만들어 내는 빗소리는 우리가 사는 곳의 소리와 뭔가 다르지 않을까?



4.틱(Baltic, 발트 3국.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거리를 걷다.

  빌뉴스(Vilnius). 하늘을 보니, 구름들이 북쪽으로 마구 날아가고 있었다. 슬로베니아에서, 헝가리에서 만났던 빗방울들이 폴란드를 지나 리투아니아도 와 있었다. 알고 있었다, 리투아니아 빌뉴스에

빌뉴스 거리에 서다.

도 비가 온다는 사실을, 일기예보에서 봤지만 나는 빌뉴스로 갔다. 

  빌뉴스의 골목들을 걸었다, 올드 타운운 골목 골목을 거닐었다. 드문드문 사람들이 보였지만, 거리는 한산했고, 동유럽 특유의 벽돌길, 벽돌집들이 나에게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발틱만의 새로운 느낌, 맑지 않은 하늘, 밝지 않은 거리, 6월 중순이었지만 거리의 노점상들은 털모자, 털장갑을 팔고 있었다. 아직, 꽃이 피지 않았고, 날씨는 쌀쌀했다. 비오는 발틱, 비오는 빌뉴스의 거리를 걸었고 빌뉴스에 머무는 내내 비가 내렸다. 많지 않는 비, 우산을 쓰지 않아도 그리 많이 젖지 않을 양 만큼. 딱, 그만큼만 비가 내렸고, 가볍게 젖은 몸을 이끌고 커피를 마실 때면, 리트머스지로 물이 스며들듯 커피의 온기가 내 몸을 적셨다.


  리가(Riga). 빌뉴스를 떠나기 전 봤던 일기예보에서는 리가에도 비가 내린다고 했다. 사람 없고, 자동차들이 멈추지 않아 폐허가 된 국경 검문소를 지나 리가에 도착했다. 비오는 리가 거리를 가로지르며, 리가의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밤11시가 넘었지만, 아직 어둠이 오지 않았다. 하늘엔 구름이 가득했지만, 거리는 어두워지지 않았고, 가로등도 빛나지 않았다. 어둡지 않는 거리에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기분 좋게 웃고, 말을 거는 사람들이 많았다. 비오는 거리, 어둡지 않은 밤. 술집[pub]에 모여 사람들은 즐거운 기분을 한 껏 토해내고 있었다. 삐걱 거리는 나무 바닥, 물기를 머금은 나무 테이블. 아늑한 기운이 술집에 가득했다. 빗방울 떨

비오는 리가의 거리.

어지는 광장, 노천 카페에 앉아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 광장의 변두리 식당에 앉아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리곤 빗방울을 바라보며, 비오는 리가의 거리를 바라보며 여유를 즐겼다.


  탈린(Tallin). 버스를 타고 북쪽 하늘을  바라보니, 저 멀리 하늘은 파란색이었다. 구름이 버스의 뒤를 쫓았지만 버스는 구름보다 빨리 달렸고탈린에 도착했을 때 하늘은 파란색이었다. 백야(白夜)현상의 탓일까, 밤 12시가 넘어도, 거리는 조금 어두워졌을 뿐, 아직도 어둠 보다는 빛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밤 늦도록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고, 나는 잠을 자기 위해 커튼을 쳐야만 했다. 

  깊은 밤, 빗방울이 세차게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물기를 가득 머금은 구름들이 북쪽으로 날아온 것이었다. 6월 중순, 이불을 꽁꽁 싸매고, 탈린 거리를 향해 힘차게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내는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내일도, 비오는 발틱의 거리를 걷겠구나.' 

  아침, 창문을 열었을 때, 차가운 공기가 방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6월 중순, 10도가 채 안되는 서늘한 공기가 어젯밤 세차게 떨어진 물방울들을 양 껏 머금고 있었다. 일기예보에서는 비가 내일까지 올 것이라고 말했고, 다음날 밖으로 나와 탈린의 거리에 발을 딪고 하늘을 바라보았을 때, 파랗고 투명한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너무나도 맑고 투명해서, 금방이라도 손에 닿을 것 같은 그런 하늘. 그리고, 발트해에서 불어오는 조금은 차가운 봄 바람이 내 피부에 와 닿았다.


  비오는 발틱 거리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비오는 탈린의 거리, 싸늘함을 머금고 있는 공기들에 둘러싸여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자그마한 기념품 상점들을 둘러 보았던, 내 인생에서 다시 없을 비오

올드 캐슬, 탈린.

는 탈린의 거리였다. 여름 옷을 걸치고 있던 나에게, 한 겨울 가랑비를 맞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던 탈린의 거리는 그렇게 떠나갔다.


 햇살 가득한 탈린의 거리, 탈린의 교외에는 어느새 꽃이 피어 있었다. 민들레 풀씨가 나풀나풀 날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고, 이제는  꽃들도, 나무들도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6월 중순에 맞는 봄. 며칠 전 밤, 세차게 내리던 비는 봄을 불러내기 위해 대지를 그렇게 힘차게 두드렸던 것일까. 세차게 내리던 비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고, 포근한 봄기운이 탈린의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5.스럽다.

 비[雨], 오는 류블랴나의 거리는 사랑스러웠다. 

비 오는 발틱의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그래서 더 사랑스러웠다.그래서 말하고 싶다. 

 사랑스럽다, 발틱 - 빌뉴스, 리가, 탈린.



탈린의 하늘.

-



빛으로 가득 찬 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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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네팔(Nepal) - 테러를 당하다.(2) : 네팔 버스테러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2. 2. 6.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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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st edit 10.11.14)

"Episode] 테러를 당하다.(1) : 인도 국경 폐쇄"에서 이어집니다.(클릭하면 글을 볼 수 있어요)


1. 테러. 테러리즘(Terror, Terrorism)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2001년 9월 11일. 뉴욕의 중심. 세계 경제의 중심. 맨해튼(
Manhattan)의 중심에 있던 세계무역센터(WTC. world trade center)가 무너져 내렸다. 여객기 두 대가 테러리스트의 지시에 따라 쌍둥이 빌딩의 내부에 파고 들었다. 하늘을 찌를듯한, 세계 경제의 중심지의 위상을 드높이며 서 있던 쌍둥이 빌딩은 차례로 무너져 내렸고, 한 줌의 재가 되었다.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테러.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가? 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당신은 어떤 생각이 먼저 머릿속에 찾아오기 전에 온 몸으로 느끼고 있다. 알 수 없는 두려움. 공포의 끝자락을. 당신이 머물고 있는 빌딩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고, 10분 뒤 폭발할 거라는 테러리스트의 메시지가 남겨진다면 그것이 어떤 공포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겠지만, 우리는 막연히 생각할 뿐이다. 그리고, 생존자들의 입을 통해서 우리는 테러의 공포에 대해서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엄청난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후유증에 시달리는 사람들.

  테러리즘, 테러리스트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일까. 그들은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테러를 자행한다[일반적으로 정치, 종교, 사상적 목적을 위해 폭력적인 방법의 수단을 동원한다] 그런 임무 수행의 과정 중에 개인, 단체, 국국가를 상대로 누군가를 사망에 이르게 하고, 물질적, 정신적인 피해를 입힘으로써 공포심을 일으키고, 어떤 행동을 강요하거나 혹은 행동을 중단하게끔 한다. 이러한 테러는 특히, 정치나 종교와 많은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된다[주요 테러리스트들의 출신을 살펴보면 이슬람 과격분자라는 견해가 많은 것을 근거로 생각해 볼 때 말이다].

  테러리스트들['테러분자'라고 하기도 한다]은 자신들이 믿는 이념의 큰 뜻을 이루기 위해 민간인이나 관련되지 않은 사람들의 희생이 어쩔 수 없다는 가치 판단을 내리며, 그 자신 혹은 자신들의 동조자들의 생명 또한 희생되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여행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들은 항상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들은, 특정 누군가를 향해서 테러를 자행하고 사회나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 불특정 다수를 이용하여 자신의 목적을 취하려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포심을 극대화하기 좋은 가장 좋은 대상이 바로 여행자, 외국인들이다. 옛날 이집트에서 폭탄 테러가 났을 때도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테러였고, 예멘에서 테러가 났을 때도 관광객을 상대로 한 테러였다. 관광객은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지만, 그들은 테러리스트의 표적이기도 하다.


2. 
  서울에서 시내버스가 폭발하는 사고가 일어난 적이 있다. 그 사고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했다. 그 버스에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설레는 마음을 안고 약속 장소로 가던 사람이 있었을 것이고,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어디론가 떠나고 있던 사람, 자신의 보금자리로 돌아가던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갑작스런 사고로 그 사람들은 상처를 입었으며, 혼란을 경험했다. 갑작스런 사고. 그것은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 넣었다. 물론, 그것은 테러가 아닌 갑작스런 사고였지만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희생되었다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공포심을 느껴야 했다.

  얼마 전, 또 파키스탄에서 자살 폭탄테러
가 났다. 내가 파키스탄에 가려고 생각하고 있던 무렵에도 한창 자살 폭탄 테러가 자행되던 시점이었기에 인도와 네팔 사이의  국경이 폐쇄되기도 했다. 결국 나는 잦은 자살폭탄 테러로 인해[궁극적으로는 나도 자살 폭탄테러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인도 국경을 넘어 파키스탄을 넘어가지 못했다. 나는 갈 수가 없었다.

  예멘에서 한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폭탄 테러가 일어나서, 4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그 사람들 중에는 내가 아는 사람과 관련되는 사람이 있었다. 나에게는 예외라고 느껴지던 테러의 위험, 테러로 인한 죽음이 나에게 어느새 한걸음 다가와 있었다. 나는 도저히 테러의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느꼈다. 테러는 불특정 다수를 향해서 일어난다. 테러는 관광객들을 노리는 경우가 더 많다. 여행자는 항상 조심해야 한다.
   사고, 테러 등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사건들은 예측하지 못할 때 찾아온다[예측할 수 있을 때 찾아오는 사고는 부주의다]. 해외여행, 특히 정치적으로 불안정하거나, 내전이 있는 지역을 여행 할 때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
언제, 어디서 불의의 사고가 터질지 모르고, 그 희생자가 바로 당신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내가 파키스탄을 가려 했을 때, 국경에서 버스 폭탄테러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코소보가 독립하기 전 코소보 지역을 여행 하려 했을 때, 코소보는 국지적 게릴라전이 발생하여, 민간인들이 수도 없이 죽어 나갔고, 내가 이집트 다합에 있을 때 외국인을 상대로 한 테러가 발생해서 7명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이번 네팔 여행을 하기 위해 인도를 떠나 네팔 국경으로 향했을 때에도, 전국적인 파업과 정치적 불안 상태가 발생하고 있었다. 나는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봤다. 나는 조금은 소극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3.  
  여권에 네팔 입국 스탬프를 찍고, 일행들과 함께 근처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는다. 우리는 다음날 아침 일찍, 테러를 피해 룸비니(Lumbini)에 있는 한국 사찰에 머물다가 상황을 지켜본 다음 카트만두나 포카라로 가기로 했다. 일행은 사이클 릭샤를 타고 룸비니로 이동했다
. 국경에서 룸비니의 사찰들이 모여 있는 곳 까지는 20km가 넘지만, 모든 교통수단이 통제되고 있는 상황에 우리가 탈수 있는 것은 사이클릭샤 밖에 없었다. 우리는 사이클릭샤를 운전하는 사람에게 많은 돈을 쥐어 주었지만,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큰 배낭과 두 사람을 싣고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사이클릭샤 운전수. 힘들고 지쳐 보인다. 
  
  룸비니의 한국 사찰(절/寺)[룸비니에는 독일, 일본, 중국, 태국 등 각국의 사찰들이 각국의 특색에 따라 지어져 있다. 그 곳은 부처가 태어난 곳이기 때문에, 불교의 성지중 한 군데이다.]
은 방문자들에게 숙식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었기에 그 곳에서 머무는데 부담은 없다. 또한, 절에서 제공되는 음식도 한국의 음식과 비슷했기에 인도의 음식에 지쳐있던 나로서는 몸보신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우리는 몇 시간을 자전거에 의지한 끝에,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장소였다.



4. 
  그들은 룸비니에 3일 째 머물고 있었다
. 여전히 교통수단은 마비된 상태였고, 각종 소문들이 절 안으로 파도치듯 한 두명의 여행자들과 함께 몰려 왔다. 문제는 테러집단이었다. 그들은 대중교통인 버스를 향해서 테러를 자행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사찰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더 이상 발이 묶여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짧은 기간 여행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그들은 하루 바삐 그들의 목적지로 가야만 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다.
나는 더 이상 여기서 시간을 지체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내일 상황이 어떻게 되든 여기를 떠나겠어요. 

  매일 밤, 소나울리[인도와 네팔의 국경 도시]에서 비밀리에 버스를 운행 한다는 소식이 봄바람 불듯이 사찰 안으로 흘러 들어왔기에 사람들은 그것을 타려고 했다. 포카라와 카트만두로 가는 버스가 각각 한 대씩 있었다. 가격은 평소의 3배 이상. 하지만 사람들은 다른 대안이 없었기에 그 버스를 타야만 했다. 그도 그 버스를 타고 카트만두로 떠날 생각이었다. 그
전날 함께 룸비니의 사찰에 머물던 두 명의 남자가 먼저 포카라로 떠났기에, 사회적 혼란 상태는 어느정도 진정되고 있는 듯했다.



5. 
  룸비니에 남아 있던 여섯명의 사람들이 다시 소나울리로 아침 일찍 나온다. 그날 밤, 포카라와 카트만두로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위해서다. 나와 사람들은 호텔에서 반나절을 쉬면서 해가 기울어 어두워지기를 기다린다. 포카라로, 카트만두로 각각 자신의 길을 가야하는 사람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지금 우리의 상황에 대해서, 과거에 대해서, 그리고 미래의 여행에 대해서.

  거리에는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거리를 가득 메웠던 사람들이 하나 둘 씩 사라져간다. 어둠이 온 거리를 지배하자, 버스를 타기위해 많은 여행자들이 모여든다. 하지만, 버스는 단 두 대다. 포카라로 가는 버스 한 대. 그리고 카트만두로 가는 버스 한 대. 포카라로 가는 버스는 사람이 많아서 버스 지붕에도 사람이 올라탄다[포카라는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재미있는 광경이지만, 야간 버스이고, 지금 상황에 사고가 날 수도 있기에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카트만두로 가는 버스는 인원이 딱 맞았다. 저녁 8시. 버스 기사와 요금을 받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버스에 시동이 걸렸다. 자기들 끼리 무언가 말을 주고 받았다. 나는 어서 빨리 카트만두에 도착하기를 바랄 뿐이다.

  버스는 라이트를 켜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달빛에만 의지해서 도시를 빠져 나가려는 것이다. 게다가 버스는 단독으로 출발하는 것이 아니다. 10톤 트럭 뒤에 바짝 붙어서, 라이트를 끄고, 버스가 버스임을 부정한 채 운행하는 것이다. 소나울리의 버스 협회에서 웃돈을 받고, 여행자들만을 위해서 비밀리에 운행하는 버스
였기에, 진행자들은 조심스러웠다. 사람들은 우왕좌왕했지만, 출발전 큰 사고는 없었다.



6. 
  그는 운전석 뒤 둘 째 줄에 자리를 잡았다. 그의 앞 좌석에는 동행하는 여자 아이가 앉았고, 그 앞 운전석에는  칸막이가 쳐져 있었다. 그리고 운전기사의 옆에 보조석 자리에 세명의 외국인 여자가 앉았다. 그들은 버스가 떠나려고 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달렸다. 모든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다. 천천히, 트럭들 틈에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밤은 점점 깊어갔고 사람들은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피곤했다. 목적지로 가기 위해 많은 시간을 기다린 탔이었을까. 그도 음악을 들으며 슬며시 잠속으로 빠져들려고 하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버스의 옆면을 무언가가 툭툭 건드리는 소리가 났다. 둔탁한 소리였다. 뭐지. 그 때 갑자기 창문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 쨍그랑. 여자의 비명 소리가 들려 왔고, 버스는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밖에서는 괴성이 들려오고 있다. 버스 옆면을 두드리는 둔탁한 소리가 끊임없이 그의 귓등을 때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괴성을 질러댔다. 혼란스러웠다. 잠은 어느새 멀리 달아나고 없었다. 그리고 그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면서,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하지. 여기서 죽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채웠다.



7.
  버스는 멈추지 않는다
.
  버스의 앞 유리창이 박살났다. 파편은 산산조각 나서 이리저리 뒹굴고 있다. 하지만 운전기사는 버스를 세우지 않고 계속 몰았다. 마구 흔들리며 바닥 긁는 소리를 내는 유리조각들. 사람들의 괴성과 어디선가 들려오는 여자의 흐느낌. 그리고 멀어져 가는 굵직한 남자들의 목소리.
  깨진 유리창으로 차가운 산바람이 쏟아져 들어왔고, 운전석과 좌석 사이의 칸막이에 달린 문은 마구 흔들리면서 혼란한 상황을 어색하지 않게 표현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버스에 올랐던, 보조석에 앉아 있던 외국인 여자는 비명을 지르며 울고 있다.
  

  바깥의 함성이 서서히 잦아지다가 이윽고 들리지 않았다. 버스의 엔진 소리만이 어두운 공기를 울리고 있었다. 얼마 후, 운전기사는 버스를 세웠다. 운전기사 옆에 자리하고 있던 세 명의 여자 여행객은 울고 있었다. 한 명은 다리가 피범벅이었다.
  여행자들은 자신의 배낭에서 응급약을 꺼내서 전달해 주었다. 깨진 유리로 인해 가벼운 찰과상이 여러군데 난 것 같았다. 큰 상처는 아닌 것 같았다. 다행이었다. 운전기사에게 큰 돌덩이가 날아갔지만, 운전기사도 큰 상처를 입지 않았다.나는 혹시나 여기서 다시 소나울리로 돌아가야하는건 아닌가하는 걱정이 앞섰다. 여기서 돌아가면 모두 도루묵이다. 나는 또 다시 이 길을 지나올 자신이 없다.



8.
  여행자들은 서로 도울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도왔다. 운전기사는 선글라스가 필요했다.[유리창이 없었기에, 차가운 밤바람과 산속의 벌레들로 부터 눈을 보호해야 했다.] 
  버스는 다시 출발했고, 히말라야 산자락의 밤 공기는 차가웠다. 모두들 추위에 떨면서 히말라야의 산 속을 달렸다. 카트만두는 영원히 나올 것 같지 않았다. 그는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언제 또 다시 그런 상황이 발생할지 몰랐다. 히말라야 산맥 저 뒤편으로 태양이 고개를 내미려고 할 때, 도시가, 건물들이 보였다. 해가 밝으려 할 때 모두들 카트만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는 그날 소나울리에서 카트만두로 오던 길에 일어난 모든 일들이 꿈같이 느껴졌다.





- 카트만두 시내 데모현장



- 룸비니의 한국 사찰, 저 뒤에 공사중인건 대웅전. 황룡사 9층 목탑을 따라한 것.



- 룸비니의 밤. 룸비니의 밤에는 원숭이들이 괴성을 질러댄다.





- 국경(인도 쪽)




- 사이클 릭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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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이집트, 바하리야 - 인생의 가르침을 얻다. 사막에서 만난 사람.(Egypt, Bahariya)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2. 1. 11.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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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연(講演)
  우리는 주변에서 저명한 사람들이 초청되어 어떤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강연회가 열리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리고 누구나 한 번쯤 강연회에 참석하여[강연을 하는 사람이 자신이 평소에 알던 사람일 경우, 강연회에 참석하여 강연을 듣는 경우가 많다] 강연을 듣기도 한다. 특히, 당신이 만약 지금 대학생이라면, 강연을 들을 수 있는 기회는 더 많다. 각 대학에서는 해외 유수 대학의 석학이나 사회 저명인사를 초청하여 강연을 하는 경우가 많고, 총학생회에서도 학생들의 삶의 질 향상과 교양을 위해서 사회 여러 분야의 사람들을 초청하여 강연을 하고, 학생들은 그 강연을 듣는다. 또한, 시간이 허락한다면 초청 연사와 질의 응답을 하는 시간을 가지고, 함께 대화를 하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우리는 사회 생활[학교 생활, 취미활동, 직장 생활 등의 모든 활동을 포괄하는 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면서, 자신보다 좀 더 많은 경험을 한 사람[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 자신 스스로가 판단 했을 때, 본받을 점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말과 행동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게 된다[자신이 판단 했을 때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서도 배울 것은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자]. 
  흔히, 이런 사람을 일컬어 롤 모델[Role model]이라고 한다.

  이처럼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대화를 통해서, 혹은 그 어떤 사람의 행동, 행적을 보면서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을 가지게 되고, 스스로를 변화시켜 나간다. 다시 말해, 우리 스스로 지금 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자신을 발전시켜 나간다고 할 수 있다.


2. 이집트에서 만난 사람.

  이집트 여행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나는 며칠 시간이 남았기에 이집트 바하리야 사막에 갔다 와야겠다고 생각했다.[카이로에서 바하리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그 곳에 도착하면, 그 곳에서 사막 투어를 주선하는 사람과 협상을 해서 1박 2일 짜리 사막투어를 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버스를 타고 바하리야로 떠난다. 이번 여정이 이집트에서의 마지막 여정이 될 것이다[이집트를 떠나는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4일이 남은 시점이었다]. 버스는 사막을 가로지르는 검은 실선 위를 달린다. 앞뒤좌우, 사방이 모두 모래 이다. 뿌연 먼지 위로 태양이 홀로 불타고 있다. 
  휴게소에 들러 허기를 채우고, 더위를 피하기 위해 주위를 어슬렁 거리며 방황하고 있었다. 저 쪽에 같은 버스에서 내린 일본인 여자 여행객 두 명이 보인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바하리야에 가서 사막 투어를 할 것이냐고 물었다. 그녀들은 그럴 것이라고 대답한다. 오늘은 도착하면 호텔에서 쉬고, 내일 투어에 참여할 예정이라고 덧붙인다. 그들은 이미 호텔을 정해놓은 상태다. 나는 생각해본다. 바하리야에 도착해서 협상에 실패한다면, 어쩔 수 없이 호텔에 묵고 다음날 투어를 떠나야 한다. 모든 것은 불확실하다.

  버스는 지평선 저 끝에 있을지도 모르는 낭떠러지를 향해 계속 달린다.


△ 흑사막으로 가는 길.

끝없이 이어져 있는 도로, 그 위에 아무도 없다.



3. 흑사막과 백사막(Black desert and white desert) - 바하리야
  버스는 바하리야 거리에 승객과 짐들을 토해 냈다버스 주변에는 지프 몇 대와 택시들이 서 있다. 누군가 그를 향해 외쳤다. 미스터 스즈키?. 아니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본다. 그에게 스즈키냐고 물었던 한 남자는 계속해서 스즈키를 찾고 있었다.
  그는 이대로 호텔을 잡고, 여행사에 가서 사막 투어 문의를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어디로 가야 할까?. 그가 걸어야 할 방향을 정하고 막 발걸음을 떼려 할 때, 지프의 묵직한 경적이 그의 뒤통수를 때린다. 일 년 넘게 양치질 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하얀색 도요타 지프 한 대가 그의 곁으로 다가와 섰다. 
  안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사막 투어 갈꺼야? 갈꺼면 지금 같이 가자. 얼만데?. 150파운드. 음, 비싼데?. 그럼 140에 해줄게. 그래도 너무 비싸, 100파운드 해줘. 그건 안되고 그럼 120파운드 어때?. 그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오케이를 외쳤다. 보조석에 앉아 있던 한 일본인 남자가 같이 가자고 소리치며, 얼른 차에 오르라고 부추기고 있었다
.
그 남자가, 스즈키였다.

  그는 차에 오르며 생각 했다. 일단 지금 120에 합의를 봤지만, 나중에 더 깍아서 100까지 해야겠다. 그는 이미 시와 사막(Siwa desert)에서 1박 2일 사막 투어를 80파운드에 갔다 온 적이 있기 때문에 120파운드는 비싸다고 생각했다.

  지프는 사막으로 떠나기 전 미리 주문해 놓은 듯한 먹거리를 차에 실었고, 작은 상점에 들러 먹을 것을 추가로 좀 더 샀다. 그러고 나서 사막의 입구에 있는 찻집에서 차를 마시며 약간의 시간을 흘려 보냈다. 그런 뒤, 투어를 떠나는 두 남자[그와 스즈키]는  지프 뒤에 나란히 올랐고, 바퀴는 사막을 향해 굴렀다.


△ 검은 현무암으로 덮여 있는 흑사막(왼쪽)과 석회암이 있는 백사막(오른쪽)



4. 사막(desert) 속으로,
   나는 협상을 하면서 물었었다. 오프로드(Off road) 주행과 음식, 그 밖에 어떤 옵션이 포함되어 있냐고. [사실, 시와 사막(Siwa desert)에서의 투어가 나에게 있어 굉장히 만족스러웠던 상황이었기에 나는 바하리야 사막 투어에 더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다. 가격도 더 비싼데 당연히 더 재미있겠지?라고 생각하며.]
  흑사막을 지나 백사막으로 가서, 그 곳[백사막]에서 캠핑을 하는 일정이다  
사막의 입구, 카페에서 마신 민트차의 여운을 뒤로 한 채, 우리들은 사막을 헤집고 다녔다. 지프는 사막을 신나게 달린다. 스즈키는 마냥 즐거운 표정으로 이것 저것을 구경하며, 사진을 마구 찍어대고 있다. 흑사막. 독특한 사막이다. 표면이 시커먼 돌들로 덮여 있다. 하지만, 시와 사막[모래 사막]의 강렬한 이미지가 뇌리에 새겨져 있던 나로서는 만족할 수 없다[사실 좀 실망스러웠다]. 즐거움이나 만족감을[혹은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더구나, 이곳의 사막 투어가 시와 사막보다 더 비싼 금액이라는 것이 나의 기분을 더 나쁘게 할 뿐이다.

  검은색 화석으로 덮여 있는 흑사막. 그리고 하얀색 버섯 바위와 석회암으로 덮여 있는 백사막. 흔히 볼 수 없는 그런 사막이지만, 나의 마음은 즐겁지 않다. 마음 한켠엔 찝찝함이 남아 있다. 


△ 물을 마시러 온 '사막여우'.

우리가 캠핑하는 곳에서 귀를 쫑긋 세운 채 물을 마시고 있다.



5. 사막 속에서, 
  그들은 백사막 모래 위에 담요를 깔고, 지프를 바람막이 삼아 캠핑할 준비를 했다. 주변에는 하얀색 버섯 바위가 그들을 둘러 싸고 있다. 그와 스즈키는 여러 사진을 찍었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는 스즈키가 사막 투어를 위해서 엄청난 준비를 해 왔다는 것에 감탄을 했다. 스즈키는 이 사막 투어를 위해, 자신이 일본에서 준비해 온 CD[사막에서 듣기 좋은 음악 셀렉션]를 보여주었다. 수 십장의 CD가 케이스 속에 담겨져 있었다. 그들은 저녁 식사가 준비 되는 동안 그 음악을 들으며, 사막의 건조하면서 감미로운 공기를 허파 속으로 들여 보냈다.

  저녁 식사 준비가 다 되었다.고 운전 기사가 말했다. 치킨 바베큐가 숯불 위에서 노릇노릇하게 익어가고 있었고, 사막의 베두인들이 먹는다는 전통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전통 음식을 먹었다. 그러고 나서 황톳빛으로 변한 치킨 바베큐를 먹고, 맥주와 음료수를 마셨다. 운전 기사는 자신이 이집트의 한 고등학교 국사 교사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 주말에는 사막 투어 가이드를 하고 있다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러면서 물 한 컵을 떠서 앞에 놓아 두었는데, 그렇게 하면 사막 여우가 찾아와 물을 마신다는 말을 덧붙였다.

  해가 사막 저편으로 모습을 감추었을 때, 그들을 비추는 건 모닥불에서 흘러나오는 붉고 건조한 빛이 전부였다. 그들은 모닥불을 앞에 두고, 시간을 보냈다. 허리가 안좋다는 알리[운전기사 겸 가이드]에게 침을 맞으면 허리가 한결 좋아진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 그는 사막의 모래 위에, 포만감이 지배하고 있는 배를 대고 엎드려 허리에 스즈키가 놓아주는 침을 맞기도 했다[스즈키는 일본에서 한의사였기에, 항상 가방에 침을 가지고 다녔다].
 
그렇게, 달 빛 없이 별 빛 만으로 가득하던 밤이 지나고, 사막에는 지평선 너머로 아침 태양이 스믈스믈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 아침햇살.

백사막에서 맞이한 아침.



6. 돌아오는 길.
  나는 생각한다. 시와 사막(Siwa Desert)과는 다른 매력이 있지만, 그래도 시와 사막 때 만큼 재미있었던 것 같지 않다. 아직 돈을 지불하지 않았으니, 이따가 돈을 줄 때 다시 한 번 더 협상을 해서 내가 원하는 금액인 100파운드만 줘야 겠어.

  어느덧, 지프는 바하리야 시내로 진입하고 있다. 알리는 한 시간쯤 뒤에 카이로로 가는 버스가 올 것이이니 저쪽 벤치에 앉아 기다리면 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나에게 투어 비용을 지불하라는 메시지가 담긴 눈빛을 보낸다. 나는 이제 말을 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저런 이야기로 말을 시작했다.
  나는 몇 마디를 덧붙여 나의 입장을 밝힌다. 하지만, 알리는 완고하다. 나도 더 이상 내 주장만을 말하면서 내 뜻을 고집할 순 없다. 120파운드를 알리에게 건네주고 지프에서 내린다.

  나와 스즈키는 지프에서 내려 간단하게 끼니를 때웠다.  버스 정류장 옆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서 버스를 기다린다. 메마른 태양이 흙먼가 피어오르는 거리를 광통하고 있다. 먼지들이 다시 그 태양빛을 관통한다. 나는 몽상에 잠겨 있다.
  그 몽상을 깨뜨리며, 스즈키가 나에게 말을 걸어 왔다.

  당신은 지금 막 다녀온 사막 투어가 마음에 들지 않았나요? 나는 그의 질문에 답한다. 며칠 전 시와에서 사막 투어에 다녀왔는데, 그곳은 이곳보다 가격도 저렴하고 더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사실, 나로서는 이번에 간 사막에 좀 실망했고, 재미도 별로 없었어요. 
  스즈키는 말한다.
 나는 이 투어를 가려고
카이로에서 예약하고 왔는데, 얼마를 냈는지 아세요? 나는 스즈키가 얼마를 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 없었다. 처음에 운전기사가 나에게 제시한 150파운드 정도 일거라고 생각을 하고, 150파운드 정도 아니냐고 말했다. 하지만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전 500파운드를 내고 왔어요. 카이로에서 말이죠.라고 스즈키가 말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내가 돈을 낼 때 제시된 옵션에는 치킨 바베큐 한 마리, 맥주, 과일 등 다 포함된 것이었어요. 당신은 120파운드를 냈죠? 그리고 나와 똑같은 옵션을 제공받았어요. 사실, 그 옵션은 나를 위한 것이었는데, 당신이 참가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반으로 나뉜거죠. 그렇지만, 전 마음 상하거나, 기분나쁘지 않아요. 당신을 원망하지도 않고요. 왜냐하면 저는 이번 사막 투어에서 500파운드 이상의 즐거움을 찾았고, 그 이상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하거든요.

  나는 생각한다. 치킨, 맥주, 과일 등 모든 것이 스즈키의 몫이 었다. 중간에 내가 끼어들게 됨으로써 모든 것이 반으로 나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스즈키보다 380 파운드나 적은 돈을 지불했다. 모든 조건을 공유 하면서도. 
  그렇지만,  스즈키는 이번 사막 투어에 대해서 만족을 했고, 즐거웠고, 자신의 인생에서 다시 없을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 백사막의 풍경.



7. 머릿속을 맴도는 그 말. 

  버스가 흙먼지를 날리며 굴러와 그들 앞에 멈춰 섰다. 그들은 버스에 올랐다. 둘은 함께 좌석의 한쪽을 차지했지만, 시선은 서로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각자 사막 건너의 서로 다른 지평선 너머의 절벽을 바라보며, 다른 생각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가 부끄럽다고 느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스즈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그는 바하리야 사막 투어를 하는 동안, 머릿속 한쪽에 생겨난 어떤 생각때문에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다. 시와 사막 투어와 비교 때문에 제대로 된 즐거움을 찾지 못했던 것이다. 그의 마음 한편에 자리잡은 불만이 바하리야 사막 투어의 재미를 갉아 먹은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시와 사막은 시와 사막 나름대로의 매력과 재미가 있는 것이고, 바하리야 사막은 바하리야 사막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다는 것을. 그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집트 여행의 마지막 여정. 바하리야 사막 투어의 끝자락. 그는 [인생의 대선배]스즈키에게서 [단순하지만 망각하기 쉬운]즐겁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것이었다. 그는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모래들을 바라보며, 계속 무언가를 되뇌이고 있었다.

  당신은 지금, 여기에서 최고의 만족, 최고의 즐거움, 최대한의 행복을 이끌어 내려고 하지 않았어요. 당신이 100파운드, 500파운드, 1000파운드, 얼마의 돈을 내던 그건 상관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오직, 당신과 나에게 중요했던 건 이번 여행[바하리야 사막 투어]에서 최고의 만족, 최고의 즐거움, 최대한의 행복을 누리는 거였어요. 저는 제 목표를 이루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가 얼마를 냈던, 당신이 얼마를 냈던, 제가 낸 돈이 아깝지 않아요. 돈을 얼마 내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 최대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을 찾고, 가치를 뽑아내면 되는 거잖아요. 지불한 돈 이상의 가치를 찾아서 즐기면 되는 거에요. 우리가 함께 보냈던 그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잖아요. 그러니, 우리는 최대한 행복하게, 즐겁게 즐기는 수 밖에 없죠. 

  그 순간에도, 버스는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며 사막 위를 굴러가고 있었다.



2. 일기장(Diary)
  요즘은, '일기장(日記帳)'이라는 말을 쓰기보다는, '다이어리'라고 부르는게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 그런 것들을 누구나 하나씩은 들고 다닌다. 흔히, "다이어리를 쓴다"고 말하고, 그때그때 떠오르는 것을 적거나, 어떤 날의 생각을 네모로 생긴 수첩에 적어 둔다. 이런 용도 말고도,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여러가지 용도로 다이어리를 쓴다.

  집안의 짐을 정리 해야할 일이 생겼다. 나는 이사를 가야 했다. 
  
  이사를 가기위해 짐을 정리하는 행위에는 단순히 짐을 포장하는 행위 말고도 다른 행동들을 수반하게 된다. 그 동안 찾아볼 수 없었고, 이미 머릿속 기억에서 지워져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여러가지 물건들이 책상 서랍의 구석에서 나오기도 하고, 책더미 사이에서 추억의 편지나 엽서 같은 것이 흘러 나오기도 한다. 그렇게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어떤 사람의 흔적이 불쑥 나타나는가 하면,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지워져 있던 순수하던, 풋풋했던 옛날의 기록들이 고개를 슬며시 내밀기도 한다['추억'과 함께 말이다].
    짐을 정리하면서 나오는 몇 권의 작은 노트[또는 수첩]. 머릿속 저편 망각의 그물 속에서 어떤 기억을 슬며시 꺼낸 뒤, 그 작은 노트를 조심스럽게 펼칠 때. 그럴때면 항상, 왠지 모를 가슴 벅찬 설렘이 몰려 온다. 어느새 손끝에는 옛날 나는 무슨 생각을 했었더라?.하는 호기심이 맺혀있다. 한 장. 한 장. 조심스럽게 과거의 시간을 넘겨 가며, 옛날 썼던 글들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순수하던, 힘들었던, 고민이 많았던, 그런 시절들이 페이지 저 너머에 펼쳐 져 있다.

  서랍의 한 귀퉁이의 어둠 속에서 잠을 자고 있던 일기장, 내 손끝에 닿았다. 일기장? 초록과 하얀색이 부드럽게 뒤섞여 파스텔톤으로 은은하게 빛나고 있는 딱딱한 표지. 길쭉한 모양의 노트였다. 고등학교 2학년때 부터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생각 날 때마다 간간히, 글자들을 묻어 놓았던 일기장이다. 무슨 내용이 들어있을까? 그 시절, 나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라는 호기심이 나를 둘러사고 있었다. 어느새 내 손은 일기장을 펼쳤고, 그 곳에는 지금의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이야기와 생각들이 흐르고 있었다. 내가, 이.랬.었.구.나..

  나는 [적어도 일기장을 넘기던 그 순간까지]고등학교 시절 3년을 되돌아 봤을 때, 내 자신 스스로가 힘들거나 괴롭다고 느꼈던 적이 거의- 없었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일기장은 그제서야 나에게 말해주고 있었다[비록, 그 날이 심하게 괴로웠던 날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시절 나는 힘들어 하고 있었다. 힘들고 고독한 싸움을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고. 성적은 원하는 만큼 올라주지 않았고, 일기장 속에는 힘들어 하는 내가 있었다. 어느덧, 고3 후기. 나는, 그 시절을 나름대로 즐겼다고 믿고 있었지만, 그것은[그렇게 믿은 이유는] 단지 즐거웠던 기억의 파편만이 머릿속에 남아버린 탓이었다. 그 시절에 내가 끄적였던 일기장에는 그 당시의 [어쩌면 진실된]내가 남아 있었다. 그 시절을 즐기지 못하고 있던 내가.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이 유행하던 시절, 나는 피할 수 없었지만, 즐기지도 못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과거의 시간. 일기장이 너는 그랬어.라고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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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몬테네그로, 부드바 - Save me! 당신은 내 생명의 은인(恩人) (Montenegro, Budva)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1. 12. 15.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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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름(夏, Summer)
  
  여름.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를까. 찌는듯한 무더위, 이글거리는 태양과 아스팔트 위에서 춤추는 아지랑이, 불면증, 방학, 휴가, 시원하게 보이는 바다와 백사장이 있는 해수욕장? 

  '여름'이라는 말을 가지고 생각해 낼 수 있는 것은 많지만, 그 중에서도 여름을 가장 상징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은 파란 바다와 백사장이 어우러진 '해수욕장'과 '피서객'이다. 많은 사람들이, 휴가철 해수욕장을 찾는다[중고등학생, 대학생이라면 누구라도 친구들과 함께 해수욕장에 갈 계획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고, 직장인들도 여름 휴가에는 해수욕장에서 해수욕을 좀 즐기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해수욕장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다양한 즐거움을 제공해 준다. 해수욕장은 자연이 우리에게 준 하나의 혜택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해수욕장은 해수욕'만' 하라고 있는게 아니기에, 사람들은 해수욕장을 많이 찾게 되고, 여름을 상징하는 중요한 하나의 장소가 된다.

  바다로 가는 기차 안은 즐겁다. 들뜬 마음으로 기차에 오른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 작은 가방을 들고 바다로 간다. 해수욕장엔 수 많은 인파가 들이닥치지만, 그것 때문에 불쾌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화가나지도, 짜증나지도 않는다. 모두들 즐겁게 놀러 온 것이기 때문에 많은 인파들조차 반갑다. 하지만, 너무 들뜬 나머지 몇몇 사람들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을 한가지 잊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해수욕장에는 지켜야할 규칙이 있고, 항상 '안전'을 위해서, '사고 예방'을 위해서 뒤에서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더 재미있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지켜야할 규칙이 있는 것이다.

  해수욕장에는 피서객, 동네 주민, 안전요원(Life guard), 경찰, 소방관, 상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그런 사람들이 서로 상호작용을 하며 질서를 만들어 간다. 모두가 즐겁게 피서를 즐기기 위해서는 질서가 지켜져야 하고, 피서객들은 안전 수칙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해수욕장에서 즐거운 기억을 가지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불쾌하거나, 안좋은 기억을 가지고 돌아가기도 한다. 


  당신이 언젠가, 여름에 관한 기억을 더듬을 때. 해수욕장에서의 어떤 일에 대한 기억은 당신에게 조금은 특별하면서, 강렬한 이미지로 다가올 수 있다.



2. 동해(東海). East sea[Sea of between Korea and japan. not sea of japan] 

  학창 시절, 매년 여름이면 바다로 향했다. 보충 수업이 시작되기 전, 친구들과 기차를 타고 바다로 갔다. 동해 바다, 남해 바다, 해수욕장에서 여름을 만끽하기 위해 떠났다. 
  
  그 해 여름. 어김없이 친구들과 함께 바다로 향했다. 고등학교 1학년. 7월 중순을 막 지난 정동진 바다는 아직, 한적했다. 태양이 백사장을 향해 떨어졌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거센 파도를 싣고 왔다. 어릴 때 부터, 바다에서 자주 놀았던 나는, 물개처럼 바다를 휘젖고 다녔다. 파도에 몸을 싣고, 파도를 타기도 했다.

  문득, 호기심이 생겼다. 친구들과 함께 내기를 했다. 저기, 저 뒤에 보이는 안전선까지 제일 늦게 갖다오는 사람이 통닭 쏘기. 친구들과 나는 미친듯이 팔과 다리를 바다 속에서 휘저었다. 파도가 내 면상에 부딪치며 깨졌지만, 나는 굴하지 않았다. 꼴찌만 안하면 되는거야. 무사히 안전선을 터치 햇고, 이제 다시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나는 파도에 몸을 실었다. 파도가 햐얀 물거품으로 변해 모래 속으로 스며드는 곳까지만 가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안심했던 탓일까? 나는 지쳐있었고, 갑자기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이쯤 왔으면 내 발이 바닥에 닿을 거야.라는 생각을 했고, 나는 수면 아래 보이지 않는 바닥을 짚기 위해 발 끝을 아래쪽으로 내려 꽂았다. 그 순간, 내 몸은 걷잡을 수 없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당황스러웠다.

  호흡 조절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내가 있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파도는 거칠게 몰아치고 있었다. 당황한 내 몸은 순간적으로 허우적 댓다. 바닷물이 내 입과 코를 통해서 마구 쏟아져 들어왔다. 긴장을 해서인지 설상가상으로 다리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통증이 찾아왔지만, 그 통증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주변에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았다. 나는 소리치려 했지만, 입을 벌리는 순간마다 바닷물이 내 입속으로 파고 들어, 내 목소리를 집어 삼켰다. 필사적으로 팔을 저었다.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일 수 없었다. 움직일 수 없는, 통증만이 느껴지는 다리가 내 몸뚱어리에 달려 있었고, 그 순간 나를 살릴 유일한 도구는 양쪽 팔밖에 없었다.

  그렇게 허우적대기를 몇 십 번. 어느새, 내 몸은 파도가 부서져 하얀 거품으로 변하는 지점에 도착해 있었다. 파도의 조각이 내 몸을 어루만졌다. 파란 배경에 노랗게 물들었던 조각 구름들이 서서히 하얗게 변하는 모습이 보였다. 어휴, 죽다 살아났네.
 
  그 사건이 있고 난 후, 발이 닿지 않는 곳, 바다가 두려워 졌다.
   


3. 바다로 가는 시기.

  태양(日)은 7월을 지나 8월의 문턱에 다다랐다. 더위는 절정으로 치솟고 있다. 나는 아드리안해[adrian sea, 이탈리아와 발칸반도 사이에 있는 바다]로 잠기는 태양을 뒤로 한 채, 사라예보[Sarajebo,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시외버스터미널에 있었다.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오늘 밤, 보스니아와 세르비아의 국경 도시 바르디스테[Vardiste]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그 버스를 타고, 국경으로 간 다음, 기차를 타고 몬테네그로[Montenegro]의 해안 도시 바르[BAR]로 향할 예정이다.

  어둠이 깔리자, 버스는 출발한다. 어둠에 휩쌓인 사라예보에는 불빛들이 반짝인다. 아름다워 보인다. 나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밤에 피는 국가'라고 생각한다. 밤에 피는 국가.

  모스타르[Mostar,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남부에 위치한 도시]의 거리에 내가 서 있었다. 거리에는 사람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오직 내가 만날 수 있었던 건, 내전(內戰)의 흔적들 뿐이었다. 텅빈, 건물들. 폐허가 된 건물들이 도시 곳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빈 건물들의 벽에는 총탄 자국이 선명했다. 건물의 2층에 위치한, 예전에는 창문이 달려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그 곳의 주위에는, 수 많은 총탄의 흔적이 있었다. 전봇대에도, 강위를 가로지르는 다리의 기둥에도. 온통 총탄의 흔적이었다. 관광객들이 찾아가는 상점가 주변을 제외하고는 사람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이글거리는 태양이 모습을 감추고, 도시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가로등에서는 희미한 빛이 새어 나와 힙겹게 거리를 비추고 있었다. 길가, 작은 공원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고 있었다. 저녁이 되자, 사람들이 어딘가에서 모여 들었고 몇몇 무리의 사람들은 테이블에 앉아 음료를 마시기도 했다. 아이들은 공원 주위를 뛰어다녔다. 낮에는, 뜨거운 태양빛이 채우고 있던 자리에, 어둠이 미처 자리잡기 전에 사람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밤에 피는 도시'

  차장이 나를 깨운다. 나에게 뭐라고 말을 하고 있다. 아마도, 내가 내려야 할 곳이라고 말하는 거겠지. 나는 내 짐들을 주섬주섬 챙겨들고 버스에서 내린다. 새벽이다. 피부에 닿는 공기는 약간 차갑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산-속 작은 도시의 밤 공기는 차다.

  낡고 허름한 기차역 안으로 들어간다. 매표소에 위에 불안하게 매달린 시간표를 확인하니, 내가 알던 그대로다. 조금 후면, 기차가 도착할 것이다. 나를 아드리안해의 휴양 도시로 실어다 줄 기차. 간혹, 열차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화물 열차들이다. 그 열차들을 몇 차례 보내고 난 뒤, 기차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기차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4. BAR[바르]

  날이 밝았다. 기차는 종착역에 멈춰섰고, 많은 사람들이 기차에서 내렸다. 그도, 왁자지껄 떠들며 역사를 떠나는 무리에 휩쓸려 역사를 빠져나왔다. 간단하게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빵을 사 들고, 주변을 둘러 보았다. 그는 부드바[Budva]로 갈 생각이었다. 바르[BAR]에서, 부드바로 가는 미니버스(봉고차)가 역 앞에 서 있다. 그는 운전사에게 부드바로 가는 것이 확실하냐고 다시 한 번 물었다. 운전사는 간다면서 그의 가방을 차에 실었다. 뒷 좌석에 그의 가방을 싣고, 그 옆에 앉으라고 권했다. 몇 사람이 더 차에 올랐다. 자동차는 부드바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니버스는 해안도로를 신나게 달렸다. 해안 절벽 아래에는 아름다운 섬들이 있었다. 와- 그는 속으로 감탄을 하며, 언젠가는 저런 곳에서 시간을 보내보고 싶다고 생각을 한다. 봉고차 바퀴 아래로 많은 해수욕장들이 지나가고, 아름다운 해안선이 지나간다. 그는 바깥 경치를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는 사이, 자동차는 산을 한바퀴 돌아 목적지까지 도착했다. 부드바.

  그는 번화한 거리에 내동댕이 쳐졌다. 자동차와 사람들과 상인들이 뒤엉켜 있었다. 여기도 지금은 휴가철이라서 그럴거야.라는 생각을 해 본다. 리조트 건물 안에 보니, 물품 보관소가 있다. 그는 그 곳에 일단 큰 배낭을 맡겨 두기로 했다. 작은 크로스백 하나, 비치타올, MP3플레이어와 돈을 챙겨서 리조트 물품 보관소를 빠져나왔다. 오늘은 어디서 잠을 잘까.라고 그는 잠시 고민을 해 보지만, 마땅히 답은 나오지 않는다. 일단, 바다로 가서 놀아야 겠다는 생각이 먼저다.

  해변으로 가는 길, 많은 사람들이 있다. 많은 상점들이 있다. 노점상들도 많다. 여느-바다와 비슷한 풍경이다. 음악CD를 싸게 팔고 있는 노점상을 발견하고 음악을 들어보기도 한다. 길거리에서 파는, 구운 옥수수를 사먹기도 하고, 노점상에서 연인들이 하는 게임을 구경하기도 한다. 그는 책[론니플래닛]을 펼쳤다. 아, 이곳으로 가 봐야 겠군.



5. Old catsle, Mogren beach.

  아드리안해의 해안 도시들은 성(城)을 가지고 있다[성(城)을 가졌다고 하기 보다는, 오래된 성벽을 가지고 있고, 그 성벽 안쪽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보는 편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해안선을 따라서, 성벽이 세워져 있고, 그 안쪽으로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고풍스러운 느낌이 든다. 옛날, 대항해시대의 흔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무역, 상업을 통해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성을 짓고, 그 안쪽에 살면서 해적들에 대항하는 그런 것을 상상했다. 지금은, 이 성벽이 바다와 조화를 이루어 멋진 풍경을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지금 이 성벽의 의미는, 바다와의 조화를 통한 아름다움이다.
 
  스플리트[Split, 크로아티아의 남부 해안도시. 미항(美港)이라고 불릴만큼 아름다운 곳이다]에서 그랬듯이, 나는 성안 이곳저곳을 누빈다. 골목과 골목을 휘젓고 다니면서 옛 정취를 느껴본다. 성벽 위를 걸으면서, 바다를 바라보기도 한다. 내가 하고 있는게, '성벽 걷기'일거야. 라고 생각한다. 성벽 안쪽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들이 있고, 바깥쪽은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져 있다. 바다가 태양빛을 반사시킨다. 눈이 부시다.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라고 표현해도 될 것 같다.


  아침은 빵으로 간단하게 때웠다. 부드바에 도착해서, 너무 돌아다닌 탓인지 배가 고팠다. 성벽 안쪽에는 많은 식당들이 있었다. 관광지 느낌이 물씬-풍기는 그런 곳이기에 관광객들을 상대로하는 식당과 카페테리아가 많이 있었다. 이런곳에서 바가지 쓰기 쉽상인데.라는 생각이 들지만 나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다. 나는, 몇 군데 식당을 돌아다니다가, 현지인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식당으로 들어가, 간단하게 식사를 해결한다. 비싸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관광지 식당이라는 것을 고려 할 때]. 맛도 나쁘지 않았다. 

  이제 해변으로 가볼까. 모그렌비치[Mogren beach] 가 봐야 겠군. 책에 많은 해수욕장들이 소개되고 있었지만, 나는 모그렌비치로 가기로 했다. 모그렌비치를 설명하는 많은 문장들 중에, 나의 호기심과 기대감을 자극하면서 나를 그곳으로 향하게금 만든 문구가 있었다. 

  "부드바에 있는 해수욕장들 중에서 멋진 경치를 가진 곳 중 하나이다. 또한 이곳은 많은 글래머들이 찾는 곳이다."



6. 해수욕.

  그는 모그렌비치(Mogren beach)를 찾아갔다. 태양이 머리위를 지나간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해수욕을 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이었다. 모그렌비치로 가는 입구는 절벽 아래의 작은 공간을 지나가야 했다. 그가 절벽의 모퉁이를 돌자, 해수욕장 입장료를 내는 곳이 나타났다. 모그렌비치는 입장료를 내야했다. 그는, 입장료 2Euro를 지불하고 해수욕장의 모래위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 보았다. 설마 내가 낚인 건가. 라는 말을 입속에 머금었다.

  그는, 주위를 둘러 보면서 깨달았다. 아, 실수 했구나.라고 생각을 했다. 해수욕장엔, 얼핏보기에도 여자보다 남자가 더 많은 것 같았다. 모든, 남자들이 그의 생각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해수욕장을 찾은게 틀림 없었다. 돈을 내고, 입장한 해수욕장이니 그는 해수욕이나 즐겨야 겠다고 생각하고, 절벽아래 그늘진 공간에 비치 타월을 깔고 누웠다. 물 위를 둥둥 떠다니는 사람들이 보였다. 신기했다. 어떻게 저렇게 자연스럽게 물 위에 사람들이 떠 다닐수가 있지?

  바다 위로 사람들이 떠다녔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도, 유유히 흘러 다녔다. 그는 신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바다속에 들어가면 저렇게 뜰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아직 바다에 대한 공포증을 떨쳐내지 못한 상태였다. 그는 물 속으로 들어갔다. 물은 너무나도 깨끗했다. 경치도 좋은 편이었다. 그는 가까운 곳에서 몸을 풀면서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조금씩 조금씩, 발이 닿는 곳에서 헤엄을 치면서 자신감을 키워나갔다.

  안전선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안전선 바깥에도 사람들이 둥둥 떠다녔다. 저렇게 멀리까지 나가도 되는걸까.라는 의문을 가지기도 했지만, 그건 그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여유롭게 물 위에 떠 있는 사람들을 보니 그도, 안전선까지라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위험한 발상이었지만, 그는 어느정도 자신감을 얻은 상태였기에 충분히 저 멀리까지 헤엄쳐서 갔다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갈까 말까, 고민을 했다. 비치 타월에 앉아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저- 사람들 처럼. 

  물 속으로 뛰어 들었다. 바다라고 하기엔 물이 너무 맑았다. 생각보다 깊기도 했다[너무 맑아서, 상대적으로 얕아 보였다]. 그는 헤엄을 쳐서 안전선까지 왔다. 꽤 먼거리를 헤엄쳐서 왔다. 뒤를 보니, 백사장까지 거리가 꽤 되어보였다. 그는, 막막했다. 일단 안전선까진 왔지만, 다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태였다. 그는 그가 온 만큼 다시 되돌아 가야했다. 덜컥- 겁이 조금 나기도 했다.

  크게 숨을 몰아쉬고- 다시 헤엄을 쳤다. 어느 정도 왔을까, 정신없이 헤엄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너무나도 더디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생각보다 더디게, 더디게 앞으로 나아갔다. 힘이 부쳐왔다. 하아, 하아, 하아, 하아, 헉,헉,헉,헉-  그 순간이었다. 그는 왼쪽 다리에 큰 통증을 느꼈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다리 근육에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그가 큰일 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는 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물을 먹었다. 필사적으로 물 위로 다시 솟아올라서 허우적 댔다. 소리쳐야 했다. Help me! help me! 라고 머릿속에서 소리치라고 명령어를 입력하고 있었지만, 입은 말을 듣지 않았다. help me 라는 말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해변에 있던 사람 몇 명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가 왜 그렇게 허우적 대는지는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외치기 시작했다. '헬프미'가 아닌 '살려줘!'라는 소리가 그의 입 밖으로 새어나왔다.

  물을 몇 모금이나 마셨을까. 그가 '살려줘'라고 몇 번 외쳤을 때, 해변에 있던 누군가가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는 그의 목을 껴안고, 뒤로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그는, 나무토막처럼 둥둥 떠 있었다. 최대한 몸에서 힘을 뺐다. 그들은 곧 해변으로 올라왔다. 왓해픈? 이라고 그를 구해준 남자가 물었다. 그는, 숨을 고르며 대답했다. 다리 근육이 마비가 됐어. 그러자, 그를 구해준 남자는 그의 다리를 부여잡고, 마사지를 해 주기 시작했다. 그의 입에서 작은 소리가 굴러 나왔다. 죽다 살아났네.


 
7. 라쇼[Raso]

  나를 구해준 그 남자의 이름은 '라쇼'라고 한다. 브라질 출신이인데, 일 때문에 몬테네그로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나는 고맙다고 말한다. 리고 한국에서 온 여행객이라고 소개했다. 해수욕을 즐기러 왔다가 물에 빠진 것이라고 덧붙인다. 나는 가방을 뒤지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하회탈 열쇠고리를 꺼낸다. 그에게, 전해준다. Korean tradtional mask. it's for you. thank you.

  라쇼와 나는 이야기를 좀 나누다가, 헤어진다. 나는 비치타올을 접어 가방에 넣고, 모그렌비치를 떠난다. 힘든 하루다.





 

- 출항을 기다리는 배들, 스플리트 항구



- 모스타르, 풍경들.


- 모스타르


- 모스타르, 세계문화유산



- BAR 역



- 골목과 골목 사이


- 바다와 부드바 성



- 성벽과 바다



- 부드바


- 모그렌비치(Mogren beach)



- 부드바(Bud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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