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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바하리야' - 지금 이 순간, 최고로 살아라. : 사막에서의 만남.-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2015. 7. 7. 10:30반응형
1. 여행에서의 만남.
일상을 뒤로 한 채 떠나는 여행에서, 우리는 여러가지 만남을 기대한다. 일상에서는 볼 수 없었던 풍경, 여행지에서만 맛 볼 수 있는 음식. 그리고 여행지에서 만나게 될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 만남에 대한 기대는 여행을 더욱 즐겁고, 풍성하게 만든다. 기대로 가득 찬 여행에서는 많은 것들을 마주하며 즐거움을 느낄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즐거움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 아닐까?
내가 평소에 만났던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과의 만남. 여행은 우리들을 좀 더 관대하고 호의적인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힘이 있기에, 다른 사람과의 만남은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동시에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우리는 여행을 통해 변화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2. 바하리야(Bahariya)에서 만난 사람.
△ 바하리야 '흑사막'으로 향하는 길(왼쪽)과 이집트 서부 시와사막(Siwa desert, 사하라사막)(오른쪽).
'바하리야'의 흑사막과 백사막은 한 달 동안의 이집트 여행 마지막 행선지였다. 모래 언덕이 지평선 너머까지 펼쳐져 있던 '시와 사막(Siwa desert)'의 경이로움을 잊지 못한 나는, 시와 사막의 여운을 안은 채 카이로에서 버스를 타고 5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에 있는 '바하리야'로 향했다. 내가 여행 일정에 없던 '바하리야'로 향한 것은 '바하리야 사막'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 어쩌면 '사막 여행'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바하리야'에 가서 모든 일정, 예컨대 '사막 투어'와 '숙소' 등을 결정할 요량으로 아침 일찍 바하리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던 나는,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흰색 도요타 지프(jeep)에 동승했다. 바하리야 버스 정류장에서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 갈피를 못 잡고 있던 나에게 지프 운전 기사가 '사막 투어'를 갈 것이냐고 물어왔고, 보조석에 타고 있던 한 남자가 사막 투어를 함께 가자고 했기에 나는 냉큼 지프에 올랐던 것이다.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였다. 시간과 사막 투어 비용, 모든 것이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프 운전 기사의 이름은 '알리', 옆 자리에 타고 있던 남자는 일본에서 온 '스즈키'였다. 흙먼지 폴폴 날리는 혼잡한 버스 정류장을 빠져나온 지프는 식료품 가게 앞에 멈춰 섰다. 알리는 닭고기와 채소, 과일과 음료수, 그리고 물과 술을 차에 실으며, 오늘 밤 사막에서 먹을 음식들이라고 했다. 음식을 가득 실은 지프는 마을을 벗어나 사막의 초입이라고 생각되는 곳에 있는 찻집 앞에 멈춰섰다. 한 낮의 태양은 뜨거웠고, 나는 그곳에서 민트차를 주문했다.
3. 흑사막과 백사막(Black & White Desert). 그리고 사막에서의 하룻밤.
△ 검은색 돌들이 대지를 뒤덮고 있는 흑사막(왼쪽)과 석회함 바위들이 즐비한 백사막(오른쪽)
지프는 사막을 달렸다. 흑사막을 거쳐 백사막으로 가서 하룻밤 보내고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지프는 흙먼지를 일으키며 흑사막의 자갈길을 마구 달렸다. 검은 돌이 사방에 펼쳐져 있었고, 붉은 빛을 띠는 흙과 바위가 검은색 자갈들에 뒤덮여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동안 생각해 왔던 '사막'의 이미지와는 다른 풍경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흑사막에서는 이따금씩 화석을 줍기도 했다. 조개 화석이었다. 먼 옛날에는 사하라 사막이 바다였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던 기억이 있다.
지프는 흑사막을 지나 백사막에 접어들었다. 사막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검은빛이 감돌던 풍경은 온데간데 없고, 노란빛을 띠는 모래와 그 위에 솟아 있는 새하얀 석회 바위들이이 주변을 장악하고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석회 바위들은 바람이 실어온 모래와의 격렬한 마찰 때문에 버섯 바위가 되어 있었다. 모든 것이 새로웠다.
그렇지만 즐겁지 않았다. 뭔가, 부족한 느낌. 마음 속의 공허함이 채워지지 않고 있었다. 반나절 동안 완전히 다른 두 얼굴을 가진 사막을 보았다는 기쁨보다는 '사막에 대한 기대'가 충족되지 않는 것에서 오는 '실망'이 더 컸다. 나는 줄곧 '이것 말고 다른 건 없나'라는 생각을 하며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시와 사막'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경이로움과 장엄함을 '바하리야 사막'에서 볼 수 없었기 때문일까. 아쉬운 마음은 자꾸만 커져갔고, 내 표정은 기쁘다기보다는 시무룩에 가까워져 있었다. 스즈키는 나에게 큰 걱정거리가 있는 것 처럼 보인다면서, 나를 걱정해주기까지 했다. 스즈키는 지프를 타고 가는 내내 탄성을 지르며 사진기 셔터를 눌러댔지만,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주변 풍경을 바라볼 뿐이었다. 우리는 같은 것을 보았지만 생각하는 것은 분명 달랐다.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 갈 때 쯤, 지프는 백사막 한켠 새하얀 버섯 바위들로 둘러싸인 곳에 멈춰 섰다. 알리가 불을 피우고 저녁 식사를 준비할 동안 스즈키와 나는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며 음악을 들었다. 스즈키는 '바하리야 사막 투어'를 위해 '사막에서 듣기 좋은 음악 셀렉션'을 준비 해 왔고, 카이로에서 투어 예약을 하면서 내가 낸 돈보다 5배나 더 많은 돈을 지불했다고 말했다. 나보다 15살 많은 스즈키는 해맑게 웃고 있었다.
"괜찮아. 사막 투어를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아. 혼자보다는 둘이 더 재미있잖아." 스즈키는 내가 함께해서 더 즐겁다고 말했지만, 나는 '스즈키가 예약한 투어에 내가 갑자기 끼어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모닥불이 서서히 잦아들 무렵 우리는 담요를 덮고 나란히 누웠다. 은하수가 밤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4. 사막, 바하리야를 떠나며.
△ 우리는 백사막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백사막의 버섯 바위 틈으로 보이던 태양은 숨죽이며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왼쪽)
사막 저편, 불모의 땅위로 솟아오르는 태양. 세상의 모든 사물들이 숨 죽인 채, 조금씩 조금씩 위로 올라가는 태양을 바라보는 듯, 사막은 고요했다. 우리는 태양이 붉은 기운을 잃고 백색으로 변했을 즈음 사막을 떠났다.
햇빛 사이로 메마른 흙먼지가 부유하고 있는 바하리야 거리. 우리는 작은 그늘에 잠긴 길쭉한 나무 벤치에 나란히 앉아 카이로행 버스를 기다렸다. 어색한 침묵만이 흐를 뿐, 서로 아무 말이 없었다. 이윽고 스즈키가 견딜 수 없다는 듯 말을 꺼냈다. "사막 투어 어땠어? 즐겁지 않아 보이던데···"
그랬다. 즐겁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바하리야에 도착한 순간부터 '시와 사막에 대한 기억'으로 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바하리야 사막 투어를 하는 내내 '시와 사막'이 떠올랐고 '시와 사막'과 '바하리야 사막'이 비교되었다. 흑사막과 백사막은 분명 '매력적인 장소'임이 틀림 없었지만, 나에게는 '온전한' 흑사막과 백사막이 없었다. '바하리야 사막'은 '시와 사막'의 장대한 스케일과 웅장함에 압도당하고 있었다. 시와 사막보다 '비싼 금액'의 바하리야 사막 투어가 '웅장함'과 '경이로움'을 선사해주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나는 괴로워했다. 나는 스즈키에게 변명하듯 내가 겪었던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런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 너는 여기에서 최고의 즐거움을 찾고 최대한 행복해지려고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슬퍼 보였던 거야. 예전에 네가 얼마를 주고, 어떤 경험을 했고, 무엇을 보았는지,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 이번 사막 투어에서 너와 나(스즈키)에게 가장 중요했던 건, 여기 '바하리야'에서 최고의 만족을 느끼고 최대한 행복해지는 것이었어. 우리가 함께 보냈던 시간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잖아.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을 최고의 시간으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야해.
스즈키의 말이 끝난 뒤, 커다란 침묵이 둘 사이에 놓였다. 부끄러웠다. 그것은 나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이었다.
바하리야를 떠난 버스는 지평선 너머로 향했고, 버스가 달리는 내내 우리는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나의 이집트 여행도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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