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시리아, 하마(Hama) - 만난다는 것은 헤어짐과 동의어 (Syria, Hama)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1. 12. 10.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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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남. 만나다.

  만나다.【…을】누군가 가거나 와서 둘이 서로 마주 보다. 혹은, 인연으로 어떤 관계를 맺다.는 의미로 많이 쓰이는 말이다. 만난다는 것. 그것은 약간의 설렘을 수반한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약속된 시간에, 약속된 장소에서 누군가를 기다릴 때, 그 기다림 속에는 설렘이 깃들어 있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이 좋은 이유는, 만나는 행위가 이루어 지기 전 어떤 일련의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만나기 전, 당신의 마음 속에는 만날 대상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담겨있을 것이고, 그[또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그 사람을 기다리는 행위 속에는 기대감[상대방이 언제, 어떤 모습을 하고 나타날까.같은 부류의 기대감]과 설렘이 있기 때문이다.

  황지우 시인의 시(詩) 중에는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라는 시가 있다.
   네가 오기로 한 그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 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다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에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후략….


  우리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불과 15년 전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약 15년전 유행하던 PC통신 천리안, 나우누리 등에서 서비스하던 채팅을 비롯해서, 인터넷을 이용하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채팅 서비스를 통해 대화를 나누고, 동호회에 가입을 하고 모임을 갖기도 한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대화상대를 찾아 대화를 하고 만남을 가지기도 한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사람을 만나더라도, 그 곳에 항상 존재하고 있는 것은 바로 설렘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설렘이 있던 자리를 이별[헤어짐]이라는 녀석이 채우게 된다. 요즘 처럼, 사람을 쉽게 만나는 시대에는 헤어짐도 더 빨리, 쉽게 찾아오기 마련이다.

  여행.을 하다보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 중에서도, 여행을 하고 있는 다른 여행자들을 만날 수 있다.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여행자들에게는 서로에게 끌릴 수 밖에 없는 요소가 있다. 그들은 서로가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는 사실. 이런 이유로, 여행자들은 서로에게 많은 경계를 하지 않으며, 좀 더 포용적인 마음을 가질 수 있다 . 하지만 알고 있다. 누가 말하지 않더라도, 알고 있는 한가지 사실.

  우리들은 언젠가는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

 
2. 어떤 경우-

  [지금은 상상 할 수 없을지도 모를 사람이 많이 있겠지만] 휴대폰을 가진 사람을 주변에서 찾아보기 힘들던 시절이 있었다[그 시절은 '삐삐'와 '공중전화'그리고 '집 전화'가 긴요한 통신 수단이었다]. 그 시절, 인터넷이라는 것이 서서히 보급되던 시절이었다. 모뎀이 "삐이이-지지직'대는 소리를 내며, 집 전화를 불통상태로 만들면, 온라인 세상이 열렸다. 그 시절, 나는 매일 밤 [PC통신]천리안에서 나와 다른 곳에 사는 누군가와 대화를 하기 위해 채팅방을 찾았고, 다른 사람들이 올린 자료를 보기 위해 자료실을 뒤적거렸으며, 동호회라는 곳에 가입을 해서 여러가지 글과 정보를 공유했다. 
  몇 년 후, 하나포스, 메가패스 등의 초고속 인터넷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하나, 둘씩 천리안을 떠났다[가입해지 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나와 돈독한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은 하나, 둘씩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갔다. 그 때, 미처 나의 연락처를 알려 주기 전에 갑작스럽게 해지가 된 경우도 있었고, [멋있는 척 하며]통신[그 때는 '온라인'을 지칭하던 말]에서 만난 관계는 통신에서 끝내자.라는 말을 하며 관계를 정리하기도 했다.

  천리안, 나우누리 등 PC통신 시대를 지나, 랜선(LAN), 무선인터넷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많은 온라인 커뮤니티들이 활성화 되었다[프리챌, 다모임, 세이클럽...다음 카페, 네이버 카페 등].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끼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교류를 하면서 친분을 쌓기도 하고, 정모를 통해 친목을 다지기도 했다. 그렇게 새로운 만남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그런 만남 속에서도 헤어짐은 늘 존재했다. 갑작스럽게, 친하게 지내던 누군가가, 돌연 - 클럽을 탈퇴해 버리고. 휴대폰번호 마저 바뀌어 버리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 그럴 때면, 이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이제, 그 사람과도 끝났구나.  

  온라인, 통신 매체를 통해서 만난 사람과의 관계는 통신 기기, 통신 매체의 단절이 발생하면- 그 사람과의 관계도 단절이 된다. 어떻게 본다면, 참으로 맺고, 끊기 쉬운 인간관계다.



3.  하마(Hama, 시리아 중부의 도시. 수차(水車)가 유명하다)

  라타키아(Latakia)를 떠난 버스가 하마 버스터미널로 들어오고 있다. 하늘은 파란 바다에 흰 물감을 풀어 놓은 듯 하다. 한 낮의 버스 정류장은 뜨겁다. 태양 나를 비추고 있다. 나는 어디로 가야하지?

  일단, 하마로 돌아왔다. 아니, 돌아왔다고 하기보다는 하마에 도착했다고 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알레포(Aleppo)에서 다마스커스(Damascus)로 향하는 버스에서 몸을 실었을 때, 중간 기착지가 하마였다. 그 때, 나는 하마의 버스터미널에서 차를 마셨다. 옆 자리에 앉았던 한 남자가 버스 티켓에 붙어 있는 쿠폰으로 차를 마실 수 있는 곳을 안내해 줬었다. 하마로 이렇게 일찍 돌아올 줄 몰랐다. 나는 막막했고, 피곤했다. 어제는 라타키아 버스터미널의 벤치에서 노숙을 했다.

  지도 한 장 없다. 어디로 가야 할 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바로보고 있는 방향도 모른다. 아는 사람도 없다. 아랍어도 할 줄 모른다. 도대체, 지금의 나는 할 줄 아는게 없다. 나는, 버스터미널 주변에서 사람들에게 말했다. 시계탑이 어디에 있는 줄 아냐고.

  터키 아다나에 있을 때 인터넷으로 검색을 했다. 하마. 하마에 가면 리아드 호텔(Riad hotel)이 있다. 그 곳은 한국 사람들과 일본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그럼, 그 곳으로 가면 뭔가 정보를 얻을 수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 하마에 가면 리아드 호텔로 가면 되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지금, 리아드 호텔에 가고 싶지만, 갈 수가 없다. 어디로 가야하지? 몰랐다. 딱, 한가지만 빼고.
호텔 근처에, 시계탑이 있다는 정보. 시계탑으로 가면 뭐라도 해결 되겠지.라는 생각에 사람들에게 말했다. 클락타워. 클락타워. 사람들은 알아 듣지 못했다. 내 손목의 시계를 가리키며, 타워, 타워를 외쳤다. 나에게 시간을 가르쳐 준다. 시간은 나도 알고 있다고!



4. 시계탑.

  태양이 큰 배낭을 메고 있는 한 남자를 비추고 있다. 그는 지쳐 보인다. 사람들에게 뭔가 도움을 요청하는 듯 했지만, 만족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는 시계탑을 찾아가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근처에 있는 리아드호텔을 찾아가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는 생각 했다. 시계탑은 보통, 시내에 있다. 그럼 시내로 가자.라고. 그리고, 다시 말했다. 시티, 시티 센터. 그러자 한 남자가, 손짓을 한다.

  그는 그 곳으로 몸을 움직였다. 작은 미니버스를 타는 곳이다. 거기서 물었다. 클락 타워, 시티, 시티 센터. 작은 봉고가 그를 싣고 달리기 시작했다. 운전기사가 그에게 뭔가 말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대답했다. 클락 타워, 리아드 호텔, 시티 센터. 그 때, 보조석에 앉았던 남자가 리아드 호텔! 이라는 말을 내뱉는다. 작은 봉고는 어디선가 멈췄고, 나에게 내리라고 한다. 그러더니, 보조석에 앉은 남자가 손짓했다. 리아드 호텔쪽을 가리켰지만, 그는 거기에 리아드 호텔이 있는 지 모른다. 그는 그 쪽으로 걸었다.

  거리의 사람에게 물었다. 리아드 호텔? 지나가던 사람이 손짓했다. 저- 쪽. 그는 손끝이 가리키고 있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 곳에 있었다. 리아드 호텔. 그는 구세주를 만난듯 마음이 놓였다. 뭔가- 대단한 것을 발견한 것 같이 기뻤다. 오! 리아드 호텔! 나의 구세주여. 라고 외치며 그 곳으로 달려갔다.

  그는, 프론트로 가서 체크인을 했다. 돈을 지불했다. 안내를 받았다. 4인 도미토리룸이다. 프론트에서는 너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거야.라는 말을 남겼다. 내친구들? 이라고 그는 반문했다. 프론트에서는 대답없이 웃음을 지었다. 그가, 호텔 한쪽의 침대에 짐을 풀고, 샤워를 하고, 누워서 쉬고 있을 때 - 한 무리의 남자들이 들어왔다. 3명의 남자. 셋다 일본인이었다. 아, 내 친구들. 프론트의 남자는 그가 일본인 인줄 알았나보다.

  그는 키친을 어슬렁 거렸다. 저녁에 뭘 먹을까? 일본인 룸메가 추천해준 파르페 가게에 가서 사 먹을까? 아니면, 가방에 든 재료를 가지고 음식을 해 먹을까. 그러다가, 한 무리의 한국인들을 만났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그는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한국 사람들이었다.



5. 밤거리.

  저녁, 윗층 주방 옆 식탁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한국 사람 여럿이서 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나는 혼자 였지만, 그들에게 인사를 하고 합석을 한다. 간단하게, 소개를 한 후- 염치 없이 음식들을 나눠 먹는다. 아, 내일은 뭐할지 모르겠어요. 아직 정해진 게 없어서. 내일은 그냥 하루 푹 쉬면서, 뭐 할지 좀 생각해 봐야 겠어요. 

  오랜만에 푹-잤다. 오랜만에 마음이 편하다. 걱정없이, 편-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시장을 둘러보고, 사진을 찍는다. 사람 사진, 풍경 사진. 거리를 걸으며,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한다. 차도르를 걸친 여성들. 불편하지 않을까?

  숙소로 돌아 왔다. 어젯밤 보았던, [나보다 어려 보이는]여자애가 서 있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오늘 뭐했어요? 그냥, 길거리 돌아다녔어요. 오, 저도 그냥 돌아다니다가 들어왔는데, 어디 좋은데 발견했어요?. 아니요, 그냥 그랬어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역시, 나보다 어리다. 잠시-지만, 그 여자애가 부럽다고 생각해 본다. 그리고, 잠시- 대단하다고 생각해 본다.  

  나에게 말했다. 오빠, 그거 봤어요? 아까 돌아다니다 보니까, 길거리에 찐옥수수 팔던데. 찐옥수수? 먹어봤어? 나 완전 그런거 좋아하는데. 아, 진짜요? 나도 그런거 좋아하는데, 먹으러 갈래요?. 좋지- 진짜 오랜만이다, 그런거 먹는거. 우리는 거리에서 찐 옥수수를 사 들고, 길 옆에 앉아 목수수를 먹는다. 내가, 생각하던 한국의 맛은 아니지만 그래도 좋았다. 중동[모든 것이 이국적으로 느껴지는 곳]에서 한국에서만 맛 볼 수 있을 법한 그런, 한국적인 느낌이 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이런 곳에서 그런 음식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며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내일은 뭐해?. 내일, 전 크락데슈발리에 가보려고요. 크락데슈발리에? 들어 본 것 같은데,, 어제 같은방 일본애들이 갔다왔다던 곳인가?. 아마 그럴거에요, 여기서 꽤 유명한데. 아, 그래? 난 아는게 없어서. 일본 애니 '천공의 성 라퓨타' 모델이라던데, 이쁘다고 하더라고요. 아, 한 번 가봐야 겠네. 같이가요, 내일. 그러자. 거기, 가는 방법도 까다로워서 혼자 가려면 힘들다던데, 잘됐다.  

  우리는 거리를 걷는다. 어느 작은 갤러리에 들러, 그림을 구경한다. 시리아- 사회주의 국가, 독재 국가. 속에서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유에 대한 갈망들이 작품속에 드러나 있음을 느꼈다. 갤러리를 관리하는 사람이 우리에게 차를 한 잔 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여자애가 덧붙였다. 전, 중동와서 이렇게 차를 얻어 먹을 기회가 많네요. 훗- 웃음을 머금었다.

  어둠이 깔린 하마 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카페에서 차를 마시는 사람, 거리 곳곳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 거리는 여유로워 보였다. 무덥지 않은- 가끔은 건조함이 몸 속을 파고드는, 건조한 공기가 피부를 감싸고 있는 도시. 우리는 호텔로 발걸음을 옮겼다.



6. 크락데슈발리에.

  도시에 태양이 서서히 비치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호텔을 나섰다. 아직은 도시가 달궈지기 전이다. 호텔 근처의 빵가게에서 빵을 샀다. 빵을 많이 사지는 않는다. 적당히. 둘 다, 아침을 가볍게 먹는다. 점심 식사도-간단히 적당량만. 배부르지 않게. 큰 버스를 타고, 작은 봉고차를 타고, 크락데 슈발리에로 간다. 그들은 한 번, 버스를 잘못타서 도시를 뱅뱅 돌았다. 이런-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 싶더니, 역시나 였다. 그들은 우여곡절 끝에 크락데 슈발리에에 도착했다.

  마을의 산등성이. 그 위에, 하얀- 성이 홀로 우뚝 서 있다. 십자군 성(城). 그 옛날 십자군 전쟁때 이곳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 했겠지.라고 그는 생각했다. 학생 할인으로 입장권을 끊고 안으로 들어갔다. 긴-통로. 성은 크다. 좀 이른 시간이라서 그런지 사람이 많지는 않다. 조용하다. 햇살이 성의 무너진 틈새와 작은 창을 통해 들어왔다. 통로의 어둠은 작은 구멍을 통해서 들어오는 빛에 의해 상처를 받기 싫은 듯, 주위로 물러나 있다. 그는 작은 창으로 바라보는 바깥세상은 아름답다.고 생각해 본다.

  그는, 작은 배낭 하나와 잠베를 들고 왔다. 바람이 성의 망루에 서 있는 그들의 피부를 스쳐 지나간다. 그녀가 말했다. 오빠, 잠베 연주좀 들려 주면 안돼?. 그는 조용한 곳에 앉아 잠베를 연주 해 볼 요량으로 잠베를 들고왔던 터라, 성의 망루에서 잠베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둔탁한 음이 무너진 성의 벽돌을 두드린다. 고요한 가운데 울려 퍼지는- 잠베의 둔탁함. 곁은 지나던 관광객들은 잠시 멈추어 그 모습을 지켜 보기도 한다.

  그들은 성의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녔다. 사진을 찍고, 올라가고, 내려가고. 바라보고. 어느덧 태양은 머리위를 지나 슬슬, 서쪽을 향해 가고 있다. 사진 찍어 줄까?. 그가 말했다. 그녀는 거절한다. 난, 내가 나오는 사진은 안찍어. 그의 카메라로, 한 컷 찍어주려 하자 그녀는 거절한다. 안찍어도 돼, 괜찮아. 
  그도, 그 자신이 나오는 사진을 잘 찍지 않지만, 그래도 가끔은 자신이 나온 사진을 찍고 싶을 때가 있긴 했다. 하지만, 절-대. 자신의 사진은 찍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크락데슈발리에를 떠나는 차를 타기위해 그들은 성에서 내려왔지만, 그들을 싣고 그곳을 떠나 하마로 돌아가 줄 자동차는 없었다. 그들은 성 아래 마을을 향해 내려왔다. 그는 말했다. '히치'해서 갈까?



7. 다시, 하마.
 
  카페에서 맥주를 마신다. 하마, 왠지 편안한 느낌이 든다. 그녀는 하마를 떠나면, 이집트를 향해서 간다고 한다. 나는 반대 방향이다. 나는 이제부터 계속 북쪽으로 가야한다[물론 반드시 가야하는건 아니지만]. 서로의 가까운 미래에는 서로의 여행 계획이 있다. 그녀는 이집트로 간 다음, 그리스를 거쳐 이탈리아로 간다고 했다. 이탈리아에서 방학을 맞아 이탈리아 여행을 온다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나는 터키를 지나, 그리스로 간다고 했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우리가 그리스에서 우연히 만날 수도 있겠네.라고 말한다. 풋- 그럴리가.

  나는 그리스를 지나, 러시아 상트페트르부르크까지 북쪽으로 북쪽으로, 그리고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야한다. 그래, 그게 내 계획이다. 여행의 수 많은 목표 중 하나다. 여행자에게는 자신의 여행 목적, 목표에 대한 집념이 있고, 그 집념을 깨기는 어렵지.라고 생각해 본다.

  아침, 하마에는 여전히 건조한 공기가 머무르고 있었고, 태양이 공기 사이로 파고 들었고, 빵집에서는 빵이 구워졌다. 나는 오늘 하마를 떠나 알레포로 간다. 
  큰 길가에서, 버스터미널로 가는 봉고차를 타기 위해 호텔 문을 나섰다. 몇 명의 여행자들이 배웅을 나온다. 오랜 시간 그들과 함께 한 것 같지만, 사실은 며칠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아쉽다는 마음이 든다.

  호텔에서 봉고차를 타러 가는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이 든다. 그녀에게 이메일 주소나 페이스북 주소라도 알려줄까. 말까. 다른 사람들의 주소라도 물어볼까. 말까. 길가에서, 봉고를 기다리며 그녀의 얼굴을 쳐다본다. 오묘하다. 그녀도 아쉬워 할까? 
  여기 까지 걸어오는 길에, 결정을 내렸다. 우리가 인연이 된다면, 언젠가 또 다시 만날 기회가 있겠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입 밖으로 한 마디 말이 흘러나와 바닥에 떨어졌다. 여행 잘 해. 어색한 미소가 그 뒤를 따른다.

  만난다는 것은 헤어짐과 동의어. 여행은 수 많은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면서 완성되는 것이다. 라는 말을 만들어 봤다.






- 성 위에서,



- 성 벽의 통로.


- 햇살



- 그림자,


- 마을의 아이들. 거인과 난장이


- 우리를 큰 길까지 태워다 준, 배달부.


- 리아드 호텔



- 하마의 수차.


- 수차와 수로


- 하마의 시계탑

- 갤러리,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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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라트비아, 리가 - 빵. 유럽에서 맛있는 빵을 먹는 즐거움(Latvia, Riga)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1. 11. 21.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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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식탐(食貪)이라고 말하기 보다는, 미식(美食).

  '미식가(美食家)'라는 직업(職業)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을 보면, 얼마나 좋은 직업을 가졌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먹으면서, 세상에서 가장 맛있기를 바라는 요리들을 먹으면서, 평생을 살 수 있다[그렇게 하면서 많은 돈을 번다]. 얼마나 즐거운 삶인가.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 영국의 철학자이자 정치경제학자]은 『자유론』에서 말했다. "배부른 돼지가 되기 보다는 배고픈 인간이 되는 것이 낫고, 만족스러운 바보가 되기 보다는 불만족스러운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낫다[이를 줄여서, 배고픈 돼지가 되기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낫다.라고 흔히 말한다]". 흔히, 이 말을 가지고 식탐이 많은 이들을 비꼬기도 한다[이 말의 본질은 먹는 것에 관해서 논하는 것이 아니지만 말이다]. 하지만, 먹는 것에 광(狂)적으로 집착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맛있는 음식을 갈망(渴望)하기 마련이다. 매슬로우[A.H. Maslow, 1908∼1970, 미국 심리학자]는 인간의 욕구에 대해서 논하면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는 '생리의 욕구[의, 식, 주에 대한 욕구가 포함된다]'라고 했다. 바로 이 생리의 욕구에 '먹는 것'이 포함된다는 것은, 인간은 단지 생존을 위해 취식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차원 높은 무언가를 지향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인간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아무 음식에나 광적으로 집착하는 경우를 식탐(食貪)이라고 말한다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성향을 미식(美食)이라고 말해도 될 법하다. 사람은 누구나 맛있는 음식을 먹기를 원한다. 맛집을 찾아 다니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평가를 내리는 '맛집 동호회'가 활동하고, 맛집 블로그들이 인기가 있다는 것만 봐도 '미식'은 삶에 있어서 중요한 한 부분이 될 수 있다.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에게서 일반적으로 발견되는 공통점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그들은 '아무'음식이나 잘 먹는다는 것이다. 어느 나라를 가든, 그 나라 음식[현지 음식]을 잘 먹는다. 심지어는 가이드북에 소개된 유명한 음식점 보다는 시장(市場)의 길을 헤메다가 발견하게 되는, 현지인들만의 음식점[흔히 로컬식당(Local restaurant)이라고 말한다] 같은 곳에서 현지인들만 먹는 음식[그런 곳에서는 독특한 향신료를 쓰게 마련이다]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것들이 '미식'이고 여행자들은 모두 '미식가(美食家)'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여행'은' 좋아하지만, 미식가가 될 수 없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미식가가 될 수 없는 그들 대부분은 여행, 특히 해외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음식을 가리는 경향이 너무 심해서, 우리나라[한국] 음식을 제외하고는 전혀 입을 댈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다른 나라를 여행한다는 것은 엄청난 불행을 짊어지고 다니는 것이나 다름 없다.
  
  더 구체적으로, 불행한 부류의 여행자를 언급하자면, 유럽 여행을 하는데 빵을 못 먹거나 좋아하지 않는 부류다. 그들만큼 불행한 사람은 없다.


2. 빵순이와 빵돌이들을 위한.

  초등학교 시절 부터[더 정확히, IMF가 터지기 전] 나는 가끔, 아침마다 밥을 먹지 않겠다고 생떼를 쓰곤 했다. 그 대신, 빵과 우유를 먹고 가겠다고, 그것도 아니면 콘푸라이트를 먹고 가겠다고 떼를 썼다. 엄마는 그런 나의 똥고집에 차츰 익숙해져 갔고 일주일에 적어도 두 번 정도는 아침에 빵과 우유를 먹고 학교를 가게 되었다. 그러한 습관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도 변함이 없었다. 
  비단 아침 뿐만 아니라 나는 빵을 자주 먹었다. 그렇게 나의 학창시절은 빵과 함께 할 적이 많았다. 제과점이 많지 않던 시절이었지만, 나는 빵을 먹으면서 빵의 맛을 나름 음미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부터 절대로 먹지 않는 빵이 있었다. 슈크림빵. 슈크림빵은 먹지 않았다. 대학을 가고, 군대를 다녀와서도 먹지 않았다. 최소한 어느 시점까지는 슈크림빵은 내 인생 최악의 빵이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의 바로 앞 상가에 편의점이 있었다. 그 편의점에서 가끔 물건을 사거나, 택배를 보내거나, 택배를 받기도 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익숙하던 그 길에 어색함이 느껴졌다. 무심코 지나쳤던 그 길가. 편의점이 불이 꺼져 있었다. 어, 왜 장사를 안하지? 라고 생각하며, 내부 공사를 하는 건가? 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얼마 후, 공사가 끝났다. 그 곳은 더 이상 편의점이 아닌, 빵집이 되어 있었다. 나는 길 건너에 있는 다른 편의점을 가야 했다.

  요즘, 빵순이 빵돌이들이 정말 많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집 주변에[내가 사는 집을 중심으로 반경 100m 이내] 빵집이 네군데나 있다. 새로생긴 빵 전문점 하나. 뚜OOO 하나. 파OOO트 둘.
  가끔, 이런 이야기가 들리기도 한다. OO에 무슨 빵이 맛있더라. 난 OO는 OO것만 먹어. 빵에 대한 이야기들. 격세지감을 느낀다. 내가 10대이던 시절, 빵을 좋아하는 사람은 주변에 나 말곤 없었는데. 그리고, 나에게도 한가지 변화가 생겼다. 예전에 '쓰레기빵'이라고 불렀던 '한국의' 슈크림빵을 돈 주고 사먹을 정도의 변화.

  어떤 아이가 나에게 말했다. 곧 밥먹으러 갈거지만 빵을 먹을 수 있어요. 밥 배, 빵 배 따로 있으니까요. 난 빵순이. 나는 빵돌인데. 너도 빵 엄청 좋아하나보다.


3.  유럽에서 빵을 먹는 이유.

  돈이 얼마 없어, 가난하게 유럽 여행을 하던 시절. 나는 말했다. 유럽은 빵의 본고장이니까 많은, 다양한 빵을 먹어 봐야지[정작 비싸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빵은 먹어보지 못했다] 나는 저렴하면서도 맛있어 보이는 빵들을 선택했다[소박한 스타일을 좋아하고, 변형되고 복잡한 것 보다는 오리지널을 추구하는 나의 취향과도 연관은 있는 듯 하다]. 빵의 본고장은 둘째 치고, 가난한 여행자 였기 때문에 식비를 그런 식으로 절약해야 했다. 그렇게 식비를 아껴서, 가끔- 어느 나라의 유명한 음식을 먹곤 했다.

  한국에서 많은 빵을 먹으면서 자랐다고 자부했지만, 45일 내내- 빵만 먹는건 힘든 일이었다. 맛있는 빵들도 많았지만, 입에 맛지 않는 빵들도 많았다[특히 올리브가 들어간 빵들. 나는 올리브를 정말 경멸한다]. 처음, 유럽 여행을 할 때 거의 매일 설사를 했다. 몸이 아프거나, 속이 좋지 않아서 설사를 한 것은 아니다. 분명 빵을 너무 많이 먹어서 나오는 것이라고 믿었다.

  또 다시, 유럽을 찾았을 때, 내 몸은 아무 말썽도 일으키지 않았다. 나는 빵의 맛을 즐기기 시작했다. 이 빵, 저 빵. 아침엔 이 빵 먹었으니, 점심엔 저 빵을 먹어야 겠다. 라고 생각하며 빵을 사 먹었다. 설사 따위는 내 몸에서 사라졌다.
  아침에 갖 구워져 나온 빵의 따끈따끈함이 좋았다. 빵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입 속에 퍼질 때 빵의 맛은 더 깊고 고소하게 내 입속을 감돌았다.

  요즘도, 가끔- 아침에 집을 나서면 따끈따끈한[오븐에서 갖 구워져 나온] 빵이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유럽에서 먹던 갖 구워져 나온 빵의 느낌이 아직도 내 입 속을 맴돈다. 빵의 온기와 촉촉함.




4. 생애 최고의 크로와상과 소라빵.

  그는 다시 알레포[Aleppo, 시리아 북부 알레포주의 주도. 터키로 넘어가는 버스가 출발 하는 곳]로 돌아왔다. 그는 시리아에서 생각지도 못한 즐거움을 발견한 뒤였다. 

  하마[Hama, 시리아 중부에 위치한 도시. 하마주의 주도. 수차(水車)로 유명하다]의 리아드호텔에서 한 블록 떨어져 있는 곳에 있던 빵집. 그리고 그곳의 크로와상. 그는 매일 아침을 그 가게의 빵과 함께 시작했다. 볼수록 푸짐한 거대한 크로와상 하나. 빵은 항상 온기를 머금고 있었다. 오븐은 한번에 수 십 개의 빵들을 토해냈지만, 그 빵들은 진열대에 내려지기 전에 모두 다 사라졌다.
  그는 하마를 떠나면서, 아쉬움을 남겨두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평생을 살면서 그 크로와상을 맛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는 그 크로와상을 맛 볼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니, 슬퍼졌다[그가 시리아를 다시 찾지 않는 이상 그 빵을 다시 먹을 순 없으니까].

  알레포는 큰 도시였다. 사람들도 많았고, 시장(市場)도 하마의 그것보다 컸다. 그는, 늘- 하던대로 걸었다. 걷다보면 시장도 나왔고, 광장도 나왔다. 그는 길의 한 모퉁이에서 빵들을 발견했다. 빵집이었다. 그 빵집의 앞 가판에는 크로와상과 소라빵[단지 두 종류만 쌓여 있었다]수 백개의 빵들이 쌓여있었다. 그는 물만난 고기 처럼 빛의 속도로 빵집으로 달려갔다. 빵들을 바라보았다. 보기만해도 입가에 빵의 감촉이 느껴졌다. 먹음직 스러웠다. 그 빵집에서는 다른 종류의 빵은 없었다. 두 종류의 빵만 계속해서 굽고 있었다. 그는 돈을 지불하고 즐거웠다. 빵을 먹어보고 싶었다. 시리아의 빵집은[비단 빵 뿐만 아니라 모든 먹거리]그에게 실망을 안겨준 적이 없었기에, 이미 흥분한 상태였다. 얼마나 맛있는 빵일까.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그곳은 유럽이 아니었다[물론, 유럽과 가까운 곳이긴 했다. 중세 시대부터 유럽과 많은 교류가 있었고, 하마(Hama)는 십자군 전쟁의 요충지였다]. 그곳은 엄연한 중동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는 유럽의 빵이 최고일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그 혼자 만의 생각. 이었다고 할 수 밖에 없었다. 적어도, 크로와상과 소라빵은 시리아가 최고였다.

  중동, 그에게 중동은 빵보다는 케밥(Kebab)이었다. 시리아의 야채 케밥, 양고기 케밥, 닭고기 케밥. 케밥도 일품이었지만, 빵은 최고 수준이었다. 그가 살면서 맛 본 그 어느 지방의 빵보다 맛있었다. 종류는 많지 않았지만, 맛은 최고였다. 차를 타고 도시를 벗어나면 모래 바람이 불고 사막이 펼쳐지는 곳. 성의 망루에 올라, 도시를 바라보면 하늘엔 항상 흙먼지가 끼어있고, 황토빛 풍경이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그런 곳에서 만들어 지는 빵들이, 그를 감동시켰다. 그의 혀와 입술을, 미각을 감동시켰다. 이런게 바로 여행의 묘미 일까.

  시리아 음식들은[특히, 빵-크로와상과 소라빵-] 그를 감동 시켰다. 시리아에서 있었던 모든 고생들은 이미 기억 저 뒤편에 버려졌다.



5. 북쪽으로, 북쪽으로.

  아쉬운 마음에 나는 그 빵집으로 가서 빵을 몇 개 샀다. 어차피 시리아를 떠나면, 필요없을 돈이었다. 승합 버스는 알레포를 떠나 북쪽으로 향했다. 시리아 국경을 빠져나와 터키 국경을 지났다. 어느새 풍경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불과 몇 시간 사이였지만 메마른 풍경이 어느덧 물기가 조금은 보이는 풍경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다나[ADANA, 터키 남부의 도시]에 들러서, 터키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다. 그들의 집에 하루 묵고, 오후에 카파도키아로 떠났다. 아다나 케밥[Adana kebab, 매콤한 맛이 강한 케밥이다]은 여전히 맛있었다. 카파도키아에서 며칠을 보낸 후, 이스탄불로 돌아왔다. 이스탄불에서 야간 열차를 타고 그리스로 떠났다. 그리스에서 마케도니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헝가리를 거쳐 폴란드로 갔다. 

폴란드에 머물면서, 맥주를 마셨다. 여행하면서 만난 폴란드 친구가 폴란드에 가면 꼭 마셔보라던 ZYWIEC(지비에츠, 지윅).  크라코프[Krakow, 폴란드 남부의 도시]를 떠나 바르샤바[Warszawa. 폴란드의 수도]로 향했다. 크라코프와는 사뭇 다른 바르샤바의 도시적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새가 없었다. 바르샤바보다 발트3국[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세 나라를 일컬어 발트3국 이라고 부른다]이 더 끌렸다. 그리고 빨리 러시아로 들어가고 싶었다. 

  기차에 몸을 실었다. 열차는 조용했다. 바르샤바를 떠난 열차는 폴란드 국경을 향해 가고 있었다. 국경이 가까워질수록 기차에서 하나 둘 사람들이 사라져 갔다. 사람이 줄어드는 만큼 열차의 차량 갯수도 줄어갔다. 유럽의 북쪽은 봄이 오고 있었다. 인도에서는 두 달 전부터 폭염으로 사람이 죽어 나갔지만, 그 곳은 이제서야 민들레 풀씨가 하늘을 떠다녔다. 평화롭다. 따뜻하다.

  리투아니아 국경을 지나, 열차는 빌뉴스로 향했다. 빌뉴스[Vilnius. 리투아니아의 수도]에는 빗방울이 거리를 적시고 있었다. 폴란드로 가는 기차에서 누군가 말했었다. 지금 우기가 시작되고 있다.고. 비는 오늘 부터 내린다. 비가 빨리 그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비는- 우울하게 했다. 비가 내릴때, 생각한다. 코 끝을 스치는 흙내음이 좋지만, 여행에서 떨어지는 비를 바라보면 나는 우울하다. 여행은 항상 혼자라는걸 일깨워 주기 때문일까.

  비오는 발틱의 거리[빌뉴스의 거리]를 걷다가 지치면, 노천카페에 앉아서 커피를 마신다. 마트에 들러 빵과 과일을 사서 숙소로 돌아갔다. 내가 있는 호스텔은- 조용하다. 비오는 빌뉴스에서 다들 뭘 하는 걸까? 반지하에 마련된 주방과 거실은 잿빛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방울과 함께 우울을 즐기기에 안성마춤이다. 그 곳은 비가 내리든, 안내리든 우울함이 항상 감싸고 있지만 말이다.

  비오는 빌뉴스를 떠난다. 라트비아의 리가[Riga, 라트비아의 수도]에는 비가 오지 않겠지.라는 생각을 해 본다.



6. 구름이 그를 따라 가지만, 그는 즐겁다.

  빗방울이 그의 정수리 위로 떨어진다. 가방을 살짝 적신다. 버스에 몸을 싣고 창밖을 바라본다. 어느새, 버스는 황량한 들판을 가로지르고 있다. 리투아니아의 국경을 알리는 표지판을 지난다. 국경 검문소. 그 곳은 지금 폐허가 되어 있었다[유럽연합 국가들은 국경에서 여권검사를 하지 않는다]. 예전엔, 사람들이 북적였겠지. 라고 그는 생각해 본다. 그의 옆을 지나가는 낡은 검문소, 그리고 리가(Riga)까지 몇 Km가 남았다는 표지. 비는 내리지 않는다.

  창 밖을 내다 본다. 비는 내리지 않지만, 하늘은 어둡다. 금방이라도 물방울을 떨어뜨릴 것 같은 느낌이다. 여기도 비가 내리려는 건가. 뭘 하지. 라고 그는 중얼거려본다.
  버스는, 리가 터미널에 도착했다. 비가 내릴 듯 말듯 하더니, 그가 터미널을 빠져나오는 순간 비가 내린다. 제길. 다행히, 그가 가려고 하던 숙소는 터미널에서 그리 멀지 않다. 리가.도시 자체가 그렇게 크지 않다. 전형적인 유럽의 도시같다. 벽돌로 된 길. 아담한 크기.

  숙소의 1층은 술집이었다. 2층.3층.4층은. 숙소로 쓰이고 있었다. 창 밖에 떨어지는 비를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오늘, 폴란드로 떠난다는 한 여행자가 그에게 에스토니아 지폐를 주었다. 그 여행자는 이제 리투아니아로 떠난다고 했다. 그가 다음으로 갈 곳이 에스토니아라는 걸 알고 그에게 남은 지폐를 주었다. 그는 그 여행자에게, 폴란드 지폐를 주었다. 리투아니아 다음으로 갈 곳이 폴란드라고 했기에. 여행은 소소한 곳에서, 의미를,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고. 그는 생각해 본다. 침대에 몸을 뉘였다. 유리창을 두드리는 빗소리는 여러가지 추억을 떠올리는데 더 없이 좋은 도구다.

  책을 펼쳐 들었다. 터미널의 바로 뒤 쪽에, 마켓(Market)이 있다고 적혀있다. 그는 마켓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빗방울은 오락가락 한다. 마켓은 큰 건물 몇 채와 주변의 야채, 과일 노점상을 비롯해서 다양한 가게들이 즐비해 있다. 건물 마다 판매되는 물건들이 달랐다. 빗방울이 오락가락 하는 날씨지만 사람들로 붐빈다. 

  건물 안. 그 곳은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 것 같다. 다양한 소시지들과 육류들이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무게에 따라서 가격을 책정하는 시스템이다. 나는 맛있어 보이는 소시지를 몇 개 산다. 맥주도 산다. 이래 저래 돌아다니다 보니, 눈이 즐겁다. 다양한 먹거리들이 눈앞에 펼쳐지기도 하고, 여러가지 옷가지들도 판매를 한다. 이것저것 다 먹어보고 싶지만, 이미 너무 많이 산 것 같다. 괜찮다고 생각한다. 아직 앞으로 며칠 더 머무를 거니까.

  그는 발걸음을 다른 건물로 옮겼다. 묵직한 공기가 출입문 근처에서 그를 맞이한다. 무언가의 고소함이 그의 주위를 감싼다. 뭐지?. 눈 속으로 주변 풍겸을 담아 본다. 그 곳에는 빵들이 놓여 있었다. 오우, 골져스(gorgeous)라는 말이 밉가 주변에 맴돈다. 세상에 빵들이 이렇게 맛있어 보일 수가. 가격도 저렴하다.[한국돈으로 하나에 2-300원 부터 500원] 정말 맛있어 보이는 빵들이 그의 눈 앞에 펼쳐져 있다는 사실에 그는 행복했다. 그는 이곳이 바로 천국?. 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빵들을 구경하면서, 슈크림빵들을 유심히 보았다. 슈크림빵의 종류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았다. 그는 생각했다. 아니, 슈크림으로 어떻게 저렇게 다양한 빵을 만들 수가 있지? 한국에서 보던 그런 슈크림빵의 경지를 넘어선 것이었다. 그는 슈크림빵을 종류별로 골랐다. 행복한 표정으로.

  빵을 먹어 보았다. 아- 어쩜, 이럴 수가 있을까? 슈크림빵이 이렇게 맛있을 수 있다니. 밀과 슈크림과 버터.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슈크림. 슈크림빵의 재발견이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빵은 역시 유럽[크로와상과 소라빵을 제외하고].



- 빵, 빵, 빵.

- 빵, 빵, 빵. 시리아. 오른쪽엔 달콤한 파이.

- 왼쪽의 파이. 달달한게 맛있다.

- 알레포 야채 케밥. 독특한 곳이었다. 가격도 저렴.

- 알레포 케밥 맛집.


- 라트비아, 빵빵빵.

- 라트비아 빵빵빵.

- 라트비아, 빵빵빵.


- 라트비아 소시지.

- 빵빵빵.

- 빵빵빵.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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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시리아, 하마 - 히치하이킹, 여행자의 특권! - 시리아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0. 11. 7.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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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TV광고 또는 영화의 한 장면 혹은 드라마 혹은 포스터 등등에서 우리는 가끔 끝없이 펼쳐진 도로 가운데 서서 지나가는 자동차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미녀(?)를 발견하곤 한다. 

  만약, 전국 일주를 생각하는 당신, 무전 여행을 계획했다면 당연 이동 수단으로써 히치하이킹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본인의 어릴적 기억을 더듬어보면, 어린 시절 친구들과 산골에 있는 저수지와 계곡을 찾아 놀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히치하이킹을 해서 자주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 탈것은 1톤 트럭부터 경운기, 승용차에 이르기 까지 다양하게 히치하이킹을 해 봤던 기억이 있다.
  단, 요즘은 히치하이킹하는 사람들을 납치하는 사례가 있다고 하니,,,주의하도록 하자. 요즘은 정말 무서운 세상이다.



2.                                
  언젠가, 여행중에 만난 어떤 형에게 들은 적이 있다. 그 형이 파키스탄을 지나 이란에 도착했을 때, 교통수단이 마땅치 않아, 히치하이킹을 해서 수백km를 손쉽게 이동할 수 있었고, 이란 사람들의 친절에 감동했다는 그 말. 나도 언젠가 한번쯤은 히치하이킹을 하며 세계 여러곳을 돌아다녀보고 싶기도 했다.

  또 다른 기억 하나. 불가리아를 여행하고 있을 적, 지금은 이름도 기억이 잘 안나는 꽤나 유명한 수도원에 갔던 적이 있다. 교통편이 얼마나 불편한지, 우여곡절 끝에 찾아간 그 수도원의 입구에 해당하는 마을에서 택시를 타고 수도원까지 갔었는데, 택시비가 너무나도 비쌋다. 수도원 구경을 마치고 다시 마을로 내려와야 할 때, 그 때 내 눈에 띈 젊은 여행자들. 그들은 이탈리아 출신의 대학생이었는데, 차를 렌트해서 발칸유럽을 여행하는 중이라 했다. 나 또한 발칸유럽을 여행중이었으니, 혹시 괜찮다면 나를 좀 태워달라고 부탁 했다. 그들은 흔쾌히 승낙했고, 우리들은 차를 타고 다음 목적지까지 같이 간 적이 있다.



3.  시리아의 악몽. 이젠 안녕.
  내 몸을 실은 버스는 팔미라로 가지 않고 라타키아로 갔고, 나는 시리아의 모든 일정을 접고, 단지 하마와 알레포에만 가기로 결정했다. 하마로 간 나는, 도무지 뭐가 먼지 알 수 없었다. 시리아에 대해 너무나도 모르고 왔던 나는, 정말 난감했다. 단지 시리아가 사회주의 국가라는 사실 밖에 모르던 나는, 인터넷에서 얼핏 본 호텔의 이름을 기억해 냈다. 리아드호텔. 하마에서 꽤나 유명한 호텔이었다. 한국인여행자와 일본인여행자들 사이에선 말이다.
 
  리아드호텔의 위치에 관한 내가 찾은 정보중[물론 터키에서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얻은 정보였다] 내 노트에 적힌 정보는 시계탑 근처에 리아드호텔이 있다는 것. 보통 시계탑은 시가지의 중앙에 위치한다는 추측아래, 시내로 가기위해 발버둥을 쳤다. 말한마디 통하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온갖 손짓 발짓, 시계를 까지 보여주고 그림까지 그려가면서 말이다. 시계를 보여주니 몇시인지 가르쳐주는데, 나도 시계가 있단 말이다!라고 속으로 소리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 슬펐다.

  결국! 사람들의 도움으로 시가지를 찾아갔고, 거기서 또 물어물어 리아드호텔을 찾아갔다. 거리에 가끔 보이는 일본인 여행자와 한국인 여행자! 아, 그들을 보는순간 표현은 안했지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기뻣음은 틀림없다. 외국에서 한국인 여행자를 만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모순된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너무 힘들고 지쳐있었으니까 말이다.



4. 크락데슈발리에로 가다.
  그는 하마[Hama]에서 뭘 할까를 생각하다가, 같은 방에 있던 일본애들에게 정보를 하나 얻었다. 크락데슈발리에성. 소위 십자군성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그곳이 일본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의 배경이 되었다는 성이 하마의 근처에 있다는 것. 그래서 그는 그 곳에 한 번 가보는게 좋을 것 갔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같은 호텔에 있던 한국인 여자애가 다음 날 십자군성에 간다는 말을 듣고 그와 그녀는 동행하기로 했다. 그 성에 가는 방법은 이미 호텔 내에 머물고 있는 한국 사람들이 이이기를 해 주었고, 주의사항까지 친절히 그들에게 일러 주었지만, 그 곳에 가는 일은 그들에게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이 동네에선...

  다음날 아침, 호텔 앞의 빵가게에서 그들은 크로아상을 하나 사 먹고, 크락데슈발리에로 떠났다. 하마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다른 작은 도시로 간다음 또 거기서 미니버스를 타고 가야했는데...거기서부터 그들은 길을 헤메기 시작했다. 미니버스를 잘못타서 시내를 뱅뱅 돌다가 다시 돌아온 곳은 버스터미널. 다행히 그들은 다른 방향으로 가서 수소문한 끝에 크락데슈발리에로 가는 미니버스를 제대로 탈 수 었고. 그리고 무사히 십자군성에 도착해서, 구경을 마쳤다.


5. 이런 사기꾼들한테는 돈을 지불 할 순 없지!
  십자군성에서 돌아오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일정 인원의 사람이 필요 했다. 미니버스 정원이 6명 이상이 되어야, 미니버스가 출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와 나는 좀 늦어버려 그 성에는 둘만 남게 되었고, 미니버스 기사는 터무니 없는 금액의 차비를 요구했다. 훗, 우리는 순순히 그들의 요구에 따를 수 없었기에, 그냥 걸어서 성을 내려왔다.
  내려 오는 길에 지나가는 차들을 향해서 손을 흔들었지만, 차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그나마 세워주는 애들이 하는 말이라곤, 얼마줄래? 내가 하마까지 데려다줄게 였다. 어이가없어서, 꺼지라고 한마디 한 다음 그들을 쫒아보냈다.

  언덕의 능선에 위치한 마을은 비교적 조용하고 아름다웠다.[멀리서 볼때] 동네 아이들은 착해 보였다. 사진을 찍어달라는 아이들이 있었다. 꼬맹이들은 우리에게 사진을 찍어달라며 우리를 에워쌋고 우리는 그들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식료품가게 주인의 자식쯤 되어 보이는 그들이었는데, 가게 안의 토마토가 크고 먹음직 스럽게 보이길래, 사진을 빌미로 아주 헐값에 토마토를 구입하기도 했다.



6. 히치에 성공하다.
  그들은 얼마나 더 가야  차를 얻어 탈수있을까?하는 대화를 했다. 설마 우리가 하마까지 걸어가야 되겠어?ㅋㅋ 마을 저 아래에는 고속도로가 있었는데, 거기엔 차들이 많으니 라고 말하며 그들은 십자군성을 뒤로 한 채 성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그들이 중간 쯤 내려 왔을 대 마침 동네 슈퍼마켓에 들른 물류차량[동네 수퍼에 물건을 대어주는 차량]이 였고 그들은 운전기사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은 사정을 설명하며 기사에게 좀 태워달라고 하니, 타라고 하면서 보조석의 짐들을 치웠다. 굳이 짐들을 치울 필요까진 없었는데, 그 운전기사는 그들에게 정말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하지만, 고속도로가 있는 곳에 다다르자 그 기사는 자신의 방향은 하마쪽이 아닌 반대쪽이어서, 더 이상 태워 줄 수 없다는 말과 함게, 행운을 빈다며, 고속도로 어귀에 그들을 내려놓고 떠났다.

  고속도로 어귀에 서서 그들은 지나가는 트럭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이나 다를까, 거대한 트럭이 그들 앞에 와서 멈춰섰고. 어디까지 가냐고 묻자, 그들은 "하마"를 외쳤다. 그러자 트럭의 운전 기사는 그들을 향해 타라고 손짓을 했다.  어차피 그 쪽 방향을 향해 가니까  가는데 까지 데려다 주겠다는 이야기였다. 대형트럭이라서 그런지 안은 비교적 넓었다. 트럭은 기들을 싣고 고속도로를 무섭게 달려가고 있었고, 트럭 운전기사는 그들을 향해 이것저것 말을 걸어왔다, 후훗, 그들은 알아들은건 별로 없었지만, 나름대로 그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려는 것 같은 느낌에 미소와 웃음으로 응수했다. 아 정말 착한 시리아사람들!이라고 그는 생각하고 생각했다.
 
  트럭은 그들을 하마로 가는 버스가 있는 버스터미널까지 실어었고,그들은 그곳에서 하마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 나의 구세주 리아드호텔



- 하마 시계탑


- 하마 시내의 한 겔러리, 작가들의 사회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담겨 있는 작품들이 많았다



- 역사의 흔적,



- 이렇게 보면,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 볼 것 같기도하다


- 식료품가게 꼬맹이, 옆에 꼬맹이는 왜 미니어처가 되었지?ㅋㅋ



- 아저씨 사랑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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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시리아, 다마스커스 - 잘못탄 버스는 어디로 가는걸까?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0. 11. 6.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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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누구나 한번 쯤 경험해 봤을 만한 경험.
  버스를 잘못 타서 반대 방향으로 가거나, 버스를 타고 나서 막상 정신을 차려보니 자기가 알 지 못하는 곳에 버스가 도착 해 있던 경험. 혹은, 지하철을 반대로 타서, 황급히 내려서 반대쪽 지하철을 탔던 경험. 
  나만 그런건 아니라고 믿는다[그렇게 믿고 싶다].  습관적으로 지하철을 타다보니, 가끔은 목적지와는 반대방향으로 타기도하고, 충무로역에서 3호선을 타야하는데, 습관적으로 4호선 플랫폼으로 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나 자신을 자책하기도 한다. 버스를 탈 때도, 내가 잘 알지 못한 곳에서 버스를 탈 때 반대로 타고 가다가 내려서 길을 건너서 다시 타고 간 적도 수도 없이 많다.
  혹시, 당신은 그런 경험이 없었는지요?

특히, 여행을 가서,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가야할 때 그런 경험을 더 없이 많이 하게 된다. 장거리 시외버스는 덜하지만, 시내버스에서는 버스 잘못타기를 거듭 반복 하면서 스스로를 멍청하다고 자책을 하기도 하지만 그러는 사이  현지인 만큼의 버스타는 스킬을 습득하게 된 자신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릴 수도 있다.



2.                           
  그는 터키 아다나의 친구들을 배웅을 받으며, 알레포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가 아침에 도착한 곳은 시리아 제2의 도시 알레포(Aleppo, Syria). 갑자기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에 가고싶다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기에 그는 일정에도 없던 다마스커스를 먼저 구경하러 가기로 결정했다. 묻고 물어, 미니버스와 대형버스를 번갈아 타며, 시내 외곽에 위치한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는 무작정 다마스커스(Damascus)로 가는 버스표를 끊고 버스에 몸을  실었다.

  차도르를 한 여인과 한 동양인 여행자와 몇몇의 승객을 실은 버스는 사막을 달려, 하마(Hama)에 도착했고, 그는 빵으로 허기를 채웠다. 그의 옆에 앉은 시리아사람은 아무것도 모르는 그를 많이 도와주었다[사실, 버스 티켓을 파는 사무실에서 만난 그 사람 덕분에 그 버스회사 티켓을 가지고 있으면, 버스 정류장에 있는 한 식당에서 차이(짜이,차,Tea의 한 종류)가 한잔 무료라는 사실을 알고 차를 한 잔 얻어 먹을 수 있었다].

  버스는 사막을 달리고 달려, 시리아 남부에 위치한 다마스커스에 도착했다. 사실 그는 막막했다.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사람들에게 물었지만,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워 보였다. 그의 손에는 지도도 없었고, 가이드북도 없었고, 배고픔이 찾아 왔고, 태양은 강렬했고, 그의 마음 한켠에 존재하고 있던 두려움이 스물스물 기어나왔다. 일단 사람들에게 묻고 물어, 무작정 시내로 향한 그는 미니버스를 타고 시내쪽으로 가다가, 번화가인것처럼 보이는 곳에서 내렸다. 경찰에게 호텔을 물으니 그가 가야할 방향을 일러 주기에 그 쪽으로 가니, 과연 호텔들이 많이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싸구려 호텔들 처럼 보였지만, 가격은 생각보다 비쌋다. 뭐지 이건? 그가 생각하던건 이런것이 아니었다.


3. 결정을 해야했다.
  다마스커스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오늘 여기를 떠서, 원래 가려고 했던 시리아 동부의 팔미라 유적지로 갈 것인가를. 공원에서 누군가가 다가와 커피 비슷한 걸 주길래, 먹기 싫다고 했더니, 공짜라면서 먹어 보란다. 그래서 먹었더니 뭔 이런 맛이 다있어?라는 생각과 함께 버려버렸다. 그리고 잠시 뒤 이상한 커피같은걸 준 녀석이 와서 돈을 내놓으라길래 화를 좀 내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니 그냥 되돌아 가는것이었다. 기분이 사실 좀 나빠서, 나는 당장 팔미라로 떠나기로 결정했다. 
 
  아니 뭐 다마스커스까진 그럼 왜왔음??


4. 버스정류장에 가서 팔미라행 버스티켓을 끊었다.
  출발 시각은 오후 다섯시. 하지만 오후 다섯시가 되어도 버스가 보이질 않았다. 버스 회사로 가니, 마냥 기다리라고만 한다. 이거 뭐 왠지 불안했다. 사기당한 기분이었다. 다섯시를 넘긴 시각 시간이 흘러 다섯시 반 쯤 되자, 같은 버스회사의 버스가 들어오길래 그리로 달려갔다. 그리고 내 표를 내밀면서 팔미라를 외치니, 타라고 했다. 이제 팔미라로 가는 구나.

  ByeBye! 다마스커스. 저 멀리 사막 뒤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그는 좌석에 몸을 뉘였고, 버스는 지는 태양을 옆에 두고 북쪽으로 달렸다. 어 이상하다? 팔미라는 동쪽인데, 왜 계속 북쪽으로만 가지? 북쪽으로 가다가 동쪽으로 가려나? 라고 그는 생각을 했지만, 너무나도 피곤했기에 아무 생각 않고 될대로 대라는 식으로 그는 잠을 청했다.


5. 버스기사가 소리쳤다.
  내려내려, 다왔어. 여기 팔미라야? 일단내려. 종점이야. 나는 내렸다. 이미 늦은 밤이었다. 시간은 10시를 가리키려 하고 있었고, 이제 버스정류장에서 다른 도시로 출발하는 버스도 없었다. 술취한 택시기사가 나에게 어디를 가냐고 물었다. 그래서 팔미라 유적지에 가낟고 말하니, 택시에 타란다. 자기가 데려다 주겠다고. 가격이 얼마냐니까, 여기까지 타고온 버스비보다 더 비싸다고 한다. 뭐 장난하는 거임? 술취한 택시기사와 실랑이를 벌이다가, 경찰에게 물었다. 팔미라 유적지를 가려면 어디로 가야하나? 그러자 경찰이 말했다. 여기는 라타키아라고. 아 그니까 팔미라 유적지는 어느방향에 있냐고. 그러자 또 말한다. 라타키아라고. 라타키아? 라타키아가 어딘지는 모르겠고 난 팔미라 유적지에 가려고 한다니까? 라고 말하면서..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6. 그는 카메라를 꺼냈다.
  다마스커스의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외국인 배낭여행객에게서 잠깐 지도를 빌려 본 일이 있었는데, 그 때 시리아 지도를 사진으로 찍어 놨었다. 그 사진파일을 확대해서 보았다. 라타키아, 라타키아 라고 속으로 되내이면서, 파일을 뒤졌다. 라타키아!
  그는 절망하려 했지만, 그럴 힘도 없었다. 어이가 없었다. 버스기사에게 욕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버스기사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버스회사도 이미 문이 다 닫혀 있었다.
  라타키아와 팔미라는 서로 반대쪽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알레포가 서울. 다마스커스가 광주. 팔미라가 영덕, 동해 그쯤? 그리고, 라타키아는...........대천 정도 되는 위치였다. 어쩜 이렇게 될수가 있지?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버스기사는 팔미라로 간다고 말했는데, 왜 나를 싣고 여기로 온것이냐!라고 생각했다.



7. 나는 따질 생각이었다.
  아침이 되면 버스 회사에 돈을 환불해 달라고 할 작정이었다. 그리고 버스 경찰에게 물어보니, 팔미라로 가는 아침 버스가 있댄다. 팔미라, 거긴 인연이 아닌 가보다.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냥 원래 두번 째 목적지였던, 하마(Hama)로 가기로 했다. 어제 그냥 하마에 섰을 때 내렸으면 이 고생도 안했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버스 정류장의 벤치에서 침낭을 펴고, 잠을 청했다.


8.                             
  아침에 버스회사를 찾아간 그는 당연한 결과라고 할만한 소릴 들었다. 우리는 모르겠으니, 다마스커스 회사에 문의를 해 보아라.라고 하는 말을. 그랬다. 지금에 와서 어쩌겠는가? 그는 그냥 하마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그리고 버스정류장에서 잠베를 치면서 버스를 기다렸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시리아, 왜 이토록 나에게 시련을 주는건데?





 


- 다마스커스 시내

 



- 넘어가는 태양


- 라타키아 버스터미널


- 사진을 찍어 달라던 버스기사들


나에게 먹을 것을 사 줬던 애들


- 내가 불쌍해 보였나??


- 구두닦이 꼬맹이들


- 다른 버스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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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터키 아다나 - 터키 친구들. (1)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0. 11. 3.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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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낯선 곳에 서다.    
  가끔, 낯선 곳에 혼자 갈 때가 있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그런 곳에 혼자 가야 한다는 것은 부담이다. 그리고 그 곳에 가서 식사는 어떻게 할지, 홀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생각. 외로움을 어떻게 극복 해야 할 지 머릿속은 복잡진다.  최근 나는 시험 준비를 하느라, 혼자인 생활을 오랫동안 한 적이 있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공부를 하고, 혼자 어디론가 떠나고. 항상 혼자인 채로 생활을 하다 보니 가끔은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가끔은 혼자인 누군가에게 말을 걸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행에 있어서 혼자라는 일생 생활과 달리,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혼자 여행을 하게되면, 친구들과 함께 혹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여럿이 여행을 할 때 보다 낯선 사람들, 여행을 하는 다른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물론 그 중에는 사기꾼들도 있으니 주의해야 겠지만, 혼자 여행을 다닐 때 얻을 수 있는 묘미중 하나가 바로 많은 친구를 사귈 수 있다는 것이다.

2. 터키 아다나(Adana)
  나는 터키에서 시리아(Syria)로 가기 위해, 이스탄불에서 출발하는 기차에 몸을 실어 터키 남부의 대도시 아다나(Adana)로 갔다. 아다나에서 시리아 북부의 도시 알레포(Aleppo)로 가는 기차를 타야했다. 이스탄불 역에서 열차 시간을 알아봤을 때, 아다나에서 알레포로 떠나는 열차가 있는 것으로 나와있었지만 아다나 역에 도착해서보니 알레포로 떠나는 열차는 없었다. 나는 매표소의 직원에게 왜 열차가 없냐고 물었다. 그러자 매표소의 직원이 말했다. 
  "오늘 밤에는 알레포로 가는 열차가 없고, 내일 밤에 알레포로 가는 열차가 있다." 열차는 이틀에 한 번 운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밤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다가, 기차 역에서 밤을 꼬박 세우고 그 다음날까지 기다려야 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미 밤은 깊어져 있었고, 아다나에서 어디로 가야 숙소가 있는 지도 알지 못했기에, 나는 그런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배가 고파오자 나는 역 앞 식당가를 서성였다.

  역 앞의 식당은 가격이 비쌀 뿐만 아니라, 음식도 맛이 없어 보였다. 그는 그래서 역에서 좀 더 떨어진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역에서 조금 떨어진 도로변에는 식당 몇 개가 붉을 밝히고 있었고, 야외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곳을 향해 걸었다.


<터키 아다나(Adana) 역>


3. 그는 네 명의 친구를 만났다.
  네 명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가격도 괜찮았고 맛있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를 하던 한 명이 자신들의 주변을 서성이는 그에게 눈짓하며 북을 치는 시늉을 했다. 그는 그 악기(젬베djambe)를 들어 보이며 칠 줄 아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한 청년에게 악기를 건넸다. 그 순간 그는 악기와 음악은 국경을 초월해서 모든 사람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좋은 도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악기를 다시 돌려 받아 잠깐의 연주를 했다. 식당 종업원이 뭘 먹고싶냐고 묻자 그는 테이블을 가리키면서 접시에 있던 케밥을 주문했다. 음식이 나왔고 그가 주문하지 않은 다른 음식들도 함께 나왔다. 그 음식들이 왜 나왔는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그는 배가 고팠기 때문에 그 음식들을 모두 먹어 치웠다. 그리고 테이블의 네명과 종업원은 악기를 가운데 둔 채 담소를 나누었다. 담소라기 보다는 바디랭귀지를 통한 대화였다.


4. 우리와 함께 갈래?
  식당의 테이블에 있던 한 남자가 아다나에 무슨 일로 왔냐고 묻자, 나는 알레포에 가기 위해서 들렀다고 말했다. 그럼 오늘 밤은 어디서 자냐고 묻자, 나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자 그들 중 한 명이 나에게 말했다. 오늘 우리집에서 자고 갈래?

5. 네 명의 친구들과 함께 하기로 결정하다.
  나는 고민을 했다. 얘들이 나를 데려가서 폭행을 하고 내 돈을 다 뺏아 가면 어쩌지? 그들은 네명이었고 나는 혼자 였다. 덩치도 전부 나만했다. 처음에 그는 거절을 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같은 집에 살고 있으니 같이 가자고 했다. 그리고는 자신들이 학생이라고 했다. 그래 나도 학생이다.
  잠시 뒤, 나는, 그들의 집에가서 하룻밤 머물겠노라고 말했다. 심사숙고 한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그들이 강도짓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리고 정말 그들은 좋은 친구들이 되었다.



<네 명의 친구들과 나>


6.네 명의 친구들과 함께 가다.
  테이블의 네 남자는, 내가 먹은 음식값까지 모두 계산을 했다. 그리고 한 남자의 차에 타라고 하면서 나를 차에 태우고, 그들의 아파트를 향해 떠났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곳은 터키 아다나에 있는 대학을 다니는 네 명의 학생이 살고 있는 자취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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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중동)사람들에 대한 대화.

- 길을 걷다, 세계여행/Feel-ing, 세계일주-ing, · 2010. 2. 3.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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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람(중동)사람들에 대한 대화.


Islamic country. 중동(Middle east) 사람들.
우리는 그들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걸까?

테러, 납치, 전쟁, 대량살상무기?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가보지 않은)
"가지마라", "위험하다"

소수의 사람들은 말한다.(갔다온)
사람들은 착하고, 정겹다.
나라의 분위기는 위험하지 않았다고.
그 어느 나라보다도, 좋았다고.

언론에서 말하는 현실과
현실이 말하는 현실은 다르다.

또 다시 생각하게 되는 아젠다세팅(Agenda setting).

여행자들은 말한다.
중동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곳이라고.

 

20 Dec, 2009. Sun.
Quito, Ecuador.




- 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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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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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포Aleppo, 시리아

- 길을 걷다, 세계여행/나를 만나다, 사람을 만나다 · 2009. 7. 15.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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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ppo, Modern city.

- 길을 걷다, 세계여행/Feel-ing, 세계일주-ing, · 2009. 6. 5.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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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eppo, Modern city.


알레포의 밤거리, 거리엔 사람들이 넘쳐난다.
네온사인 간판들이 불을 밝히고,
현대적인 모습의 상점들도 불을 밝힌다.

사람들은 쇼핑을 즐기고, 길거리는 활기차다.
현대적인 국가(?)의 모습. -이것조차 내 편견일지도-

내가 생각하던,
그런 중동 국가의 모습과는 다른,
새로운 중동 -아랍, 이슬람-국가의 발견.

비록, 이 나라에 대해서 아는게 거의 없지만,
내 눈에 비친 시리아의 모습은
색다른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20/05/2009
Aleppo, Sy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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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eppo, Modern city.


Night street of Aleppo.
crowded in every street.
Trun on the Neon Signboard, Modern design shop's are open.

People are enjoy the shopping, all the town wasup.
a state of modern nation.

differently aspect - middle east nation - I thought.

that was quite a revelation to me.
although, I don't know well syria.
but, I saw the syria, comming different.


20 May, Wed.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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アレッポ, モダンシティ(Aleppo, modern city)

 

アレッポ, モダンシティ, 通りには人?があふれる
ネオンサイン看板たちが火を?して,
現代的な姿の商店たちも火を?す

人?はショッピングを?しんで,
道は活?がある.

現代的な国家の姿? - これさえ私の偏見かも.. -


私が思ったそんな中東国家の姿とは違う
新しい中東 - アラブ, イスラム - 国家の発見

たとえ, シリアに対して分かるのがほとんどないが
私の目に映ったシリアの姿は風変りな姿に近付いた.





- 알레포의 밤거리



-



-알레포의 중심, 시계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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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락 데 슈발리에, Hichi Hiking.

- 길을 걷다, 세계여행/Feel-ing, 세계일주-ing, · 2009. 6. 5. 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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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락 데 슈발리에, Hichi Hiking.


오랜만에, 유적지 나들이.
바람도 시원했고, 유적지도 좋았다.
비록, 폐허가 된 십자군의 성.
지금은 흔적만 남아있었지만, 분위기가 있었다.

크락 데 슈발리에에서 하마(Hama)로 돌아오는 길,
히치하이킹.
여행의 재미(?)중 하나인 히치하이킹.
오랜만에 재미를 느끼다.

여행의 묘미?재미?
시리아에서의 3일 째. 여행을 느끼다.

18/05/2009
Crak des Chevaliers, Sy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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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rak des Chevaliers, Hichi-Hiking.


Be a long time, Picnic of relics - Crak des Chevaliers's catsle.
refreshing breeze, nice scenery and relics.

even if, the ruins of castle - castle of the crusaders -
now, not traces but free atmosphere.

Come back from Crak des Chevaliers to HAMA, on the road.

Hitch-hiking, one of the enjoyment at travel.
after a long time, feeling enjoyment.

Exquisiteness? enjoyment?
3Days in Syria life.
Feeling enjoyment of Traveling.


18 May, Mon.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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クラッデスシュバリエ, Hichi-Hiking

クラッデスシュバリエ,
久しぶりに, 遺跡地外出
風も凉しかったし, 遺跡地も良かった.
たとえ, 廃墟になったクルーセードの城.
今は跡だけ残っていたが
雰囲気があった.


クラッデスシュバリエから ハマで帰って来る途中
Hichi-Hiking.
旅行の楽しさ中一つ Hichi-hiking.
久しぶりに楽しさを感じる
シリアでの 3日目, 旅行を感じる


<크락 데 슈발리에 십자군 성>



<두 번 히치했는데, 첫 번 째 차량 운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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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ppo, Syria / 알레포, 시리아 / 21.05.2009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09. 5. 24. 0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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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리아 여행의 기대를 만족 시켜준 곳.

 

+이스탄불Istanbul(매일 22시 50분) - 아다나Adana(18시35분), 기차 약 20시간(연착감안)
+아다나Adana(화/금 23시 50분) - 알레포Aleppo(08시 35분) ,35YTL. 기차 약9시간 - 기차로 국경통과시 비자fee 34$ 
+아다나Adana(매일 14시 10분) - 이스탄불Istanbul(09시 09분)
+하마Hama→알레포Aleppo / Bus 2hr, 150SP /

+스프링플라워 호텔 Spring Flower Hotel / dm 250SP.

   

시리아 여행의 마지막 도시. 알레포로 갔어. 사실, 알레포는 내가 터키에서 처음 도착한 도시이기도 하지. 기차를 타고 도착한 알레포의 첫인상은 마음에 들었었어. 하지만 시리아 여행을 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지.

다시 찾아온 알레포는 역시나 싫지 않은 곳이었어. 비록 대도시였지만, 비교적 깔끔한 거리와 값싼 음식과 다른 도시에 비해서 가격이 저렴한 호텔이 있었기 때문이지. 길거리에서 파는 음식들은 나의 입을 즐겁게 해 주었어. 

알레포는 시리아 제2의 도시답게 큰 규모를 자랑했지. 그리고 내가 사실 좀 놀란것은 저녁에 알레포의 거리를 거닐 때 였어. 여느 다른 서구 국가들과 다름 없는 거리 분위기가 나를 좀 놀라게 했어. 번화가에는 사람들이 즐비하고, 많은 사람들이 쇼핑을 하고, 놀거리를 찾아 거리를 헤메고 있었지. 숙소가 있는 곳인 시계탑은 도시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었기에 그 주변을 거닐면서 시리아 사람들의 선진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어.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중동국가의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버리게 했어. 

사실, 난 시리아를 여행하면서 다른 중동국가, 이슬람국가들과는 좀 다르다는 생각을 가지기도 했어. 중동국가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을 확실하게 깨버린 거지. 거리의 분위기, 사회적인 분위기가 독특했어. 특히 알레포에서 그런 것을 더 잘 느낄수가 있었지. 

옛날, 로마시대의 흔적들이 도시 곳곳에 남아있었어. 알레포의 이름 모를 거리들을 걷다보면 내가 고대 로마시대의 거리를 걷는 느낌을 받았어. 또한 알레포의 대표적인 볼거리인 시타델, 그것은 고대로마유적과 흡사했어. 물론, 모스크와 수크는 중동만의 특징이지만 시타델은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성격을 띄는 것이었지. 나는 시타델을 이렇게 부르고 싶어. “알레포의 공중도시”. 왜 그렇게 부르냐고 묻는다면, 한 번 가보라는 말 밖에. 

알레포에는 정말 먹을 거리들이 넘쳐났어. 그것도 저렴한 가격이었지. 알레포의 수크가 유명하다는 건 너도 알거야. 이스탄불의 그랜드바자르가 유명하듯이 알레포의 수크도 그 크기와 다양한 제품들의 존재가 볼만했어. 그리고 간판없는 길 모퉁에에서 먹는 닭고기 팔라페(케밥과 비슷)의 맛도 일품이었고, 알레포의 크로아상은 내가 이때까지 먹어본 것 중에서 가장 맛있었어. 그리고 야채팔라페 또한 저렴한 가격에 맛있고 큰 크기 때문에 싸고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지.  

알레포는 그렇게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어. 고대와 현대. 그리고 그 옛날의 동방이라는 이름의 중동과 서방의 로마제국의 조화. 그리고 메소포타미아지역의 문명의 흔적들.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나의 생각들. 알레포의 거리를 거닐면서 즐거움과 함께 사색의 시간들을 가질 수 있었어.

   

+국경Tip - 알레포에서 터키 안타크야로 넘어 갈 때.

만약, 터키 안타크야에서 육로로 시리아로 넘어 왔다면, 국경비자fee 34$(33$) + 12$를 지불 했을 것이다. 그것을 가지고 12$를 바가지 썻다고 말하는 외국여행자들을 보았다. 그것은 알레포와 안타크야 사이의 국경에서만!!! 지불하게되는 입·출국세이다. 시리아 파운드로 550파운드인데 달러로 환산하면 약12$가 나오기 때문에 현재 12$를 부과하고 있다. 

만약, 안타크야 - 알레포 구간으로 터키로 넘어가지 않는다면 입·출국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요르단에서 넘어왔거나, 다른 국경으로 넘어와서 알레포→안타크야구간을 이용한다면 출국할 때 550SP(12$)짜리 출국세카드를 구입해야지 출국 스템프를 받을 수 있다.

물론, 다른 국경도시로 갈 시에는 납부하지 않아도 된다. 아마도 알레포-안타크야구간을 가장 많이 이용하기 때문에 그 사이의 국경에서 돈을 뜯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Tip 02. 버스.

알레포→안타크야 사이의 버스는 알레포시내에서 버스를 탑승한다. 시계탑 근처의 인터내셔날 버스스테이션인데, 국립박물관의 대각선 길 건너에 있다. 그곳에서 출발하는 버스가 350SP 하루에 한 편 오후2시(1400)에 있다. 안타크야까지는 약 3시간 30분 걸린다.

 

 

<알레포 시계탑 - 시티센터라고하니까 여길 가르쳐 주더라. 길 모를 때 시계탑 사진 보여주면 다 알려준다>




<내가 아랍어권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표지 - 영어와 아랍어로 된 간판>



<알레포의 밤 거리>



<아마 여기가 시티센터?그런것 같았다. 각종 패스트푸드점과 상점들이 즐비해있었다>



<아마이드?모스크 앞의 시타델가는 길, 여기서 좀 더 올라가서 수크 입구 건너편 모퉁이에 간판없는 펠라페(케밥비슷한거) 엄청 맛잇었다. 35 SP 한끼식사로 딱이다)



<유명한 ㅋㅋ 모스크 내부>



<이것 역시 그!! 유명한 수크>



<우체국 - 역시 저 대단하신 분의 사진이 걸려있따>



<채소 펠라페가 일품인 집 - 모스크 가는 길에 있는 수크로 통하는 길 바로 옆에 있다. 15SP인데 엄청 크고 맛있었다>



<시리아, 터키를 통틀어서 빵이 가장 맛있었던 집 - 크로아상이 일품>



굿굿굿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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