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아그라 '타지마할' - 결코 놓칠 수 없는 아름다움.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5. 1. 13.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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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죽음과 아름다움,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그것.

  '죽음[死]'은 사라진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의 결별은 어쩌면 '아름다움'의 종결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해서,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게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 어쩌면 먼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은 사후 세계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고대 국가의 권력자들은 죽음과 관련된 의식을 화려하게 거행했고, 죽은 이를 위해 '아름다운 건축물'을 남기기도 했다. 

 전 세계에는 '죽음'과 관련된 건축물들이 많이 있지만, 과연 '타지마할(Taj Mahal)'만큼 아름다운 건물이 또 있을까?  


△ '세기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타지마할'.

인도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결코 놓쳐서는 안된다.


2. 은은히 빛나는 '타지마할' - 죽음과 아름다움, 그리고 절대미(絶對美)를 위한 고통.

 인도의 수도 뉴델리(New Delhi)에서 기차로 3시간 남짓이면 도착할 수 있는 '아그라(Agra)'에 '타지마할'이 있다는 사실은 여행자들에게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인도 여행에서 놓칠 수 없는 볼거리라고 할 수 있는, 페루의 '마추픽추' 등과 더불어 '세계 7대 기적'이라고 불리는 '타지마할'. 그곳에 비교적 쉽게 갈 수 있다는 것만해도 인도를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 아그라 중앙역인 '아그라 칸트'역 주변의 모습.

여느 인도의 도시와같이 많은 '릭샤'꾼들로 혼잡함을 이루고 있다.


△ 타지마할을 보기 위해, 매표소를 지나면 하나의 문을 통과해야 한다.

저 문 너머에 '타지마할'이 있다.


△ 타지마할로 연결되는 '통로'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 타지마할로 통하는 '관문'의 혼잡함 속에서도,

타지마할은 은은히 빛나고 있다.


 세기의 걸작이라 불리는 '타지마할'은 '무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아름답다. 으레, 유럽을 비롯한 세계 각지의 유명 건축물들이 그렇듯 완성하는 데만 23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린 '타지마할'이다. 메마른 태양 아래에서 은은히 빛나는 이 건물을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을까. 아름다운 무덤을 만들기 위해, 온 힘을 쏟았던 사람들은 '타지마할'만큼 아름다운 건물을 만들지 못하게 하려는 절대 권력자 때문에, 손목이 잘려야 했다.  


 '타지마할'을 보고 있노라면, 유네스코에서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했던 말 "인도에 위치한 무슬림 예술의 보석이며, 인류가 보편적으로 감탄할 수 있는 걸작"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비운의 역사가 서려있어서일까, 타지마할은 은은히 빛나고 있다.   


△ 타지마할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곳. 

타지마할이 잘 보이는 포토존(Taj Mahal Photo Zone)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사람들은 차례를 기다린다.


3. 놓칠 수 없는 아름다움.

 사실,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에는 '타지마할'뿐만 아니라, '아그라 성'을 비롯한 여러가지 볼거리들이 있다. 아그라를 찾는 많은 사람들은 '타지마할'을 보기위해 그곳으로 가지만, 다른 많은 유적지를 함께 둘러보며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과연, 다른 유적지들이 '타지마할'과 같은 감동을 선사해 줄 수 있을까. '타지마할'이 주는 아름다움을 하나하나 찾다보면 다른 유적지를 둘러볼 시간이 없다.


△ 타지마할 포토존에서 바라본 '타지마할'.


△ 타지마할은 '웅장함'도 갖추고 있다.

무덤치고는 굉장히 큰 곳이다.


 

△ 타지마할의 네 귀퉁이에 서 있는 '미나레트'라고 불리는 첨탑.

미나레트를 통한 완벽한 대칭은 '타지마할'을 더욱 아름다워 보이게 한다.


 

△ 타지마할에 사용된 형형색색의 대리석, 

그리고 곡선과 직선의 조화는 타지마할의 아름답게 만드는 근본 요소이다.


△ 타지마할의 대리석에서는 '부드러움'이 느껴진다.

파스텔톤의 대리석과 부드러운 곡선. 섬세한 조각 하나하나는 감탄을 자아낼 만하다. 

△ 타지마할.

타지마할의 네 귀퉁이에 서 있는 '첨탑' 미나레트는 타지마할의 바깥쪽으로 기울어져 있다고 한다.

혹시라도 지진과 같은 재해가 발생했을 때, 바깥쪽으로 쓰러져 '타지마할'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 타지마할을 둘러싸고 있는 사원의 통로.

△ 타지마할에서 바라본, 타지마할 사원 입구(관문).


△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앉아 있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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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가다. - 과거, 역사를 기억하라.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5. 1. 5.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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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과거, 역사를 기억하다.

  우리는 '역사(歷史)'를 배운다고 한다. 과거를 통해 지금을 바라보고, 미래를 준비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전 세계 수 많은 국가들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관계를 맺어왔고, 서로간에 얽히고설킨 '과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과거의 사실'들이 현재와 상호작용하는 과정, '과거와 현재의 대화', 그것은 '기억'이고 '되새김'이다.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더 나은 미래, 긍정적인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 


△ 독일어로 'HALT', 폴란드어로 'STOJ'는 영어로 'Stand'와 비슷한 의미를 지닌다.  

사진은 '아우슈비츠 제1수용소'의 철저망 앞에 세워져 있는 '경고 문구 - 멈춰서라".

담장을 넘어 '수용소'를 빠져나가려는 사람들에게 경고하기 위한 문구로 생각된다.


'아우슈비츠'는 폴란드 제2의 도시 '크라쿠프(Krakow)'에서 약 30분 정도 버스를 타고가면 닿을 수 있다.

독일어로 '아우슈비츠', 폴란드어로 '오시비엥침'이라고 불리는 이 도시에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가 자리잡고 있다.


2. 세기의 흑역사(黑歷史), "제2차 세계 대전"과 그 후.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는 말이 있을 만큼, 많은 전쟁이 있어왔고 '제2차 세계대전'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은 많은 민족, 국가들이 '자유'를 되찾는 기회가 되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속에는 많은 아픔이 담겨있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으로 불리는 '독일'과 '일본'이 1945년 항복을 선언하기까지 많은 고통을 받았던 국가와 민족들은 1945년 종전과 함께 '고통으로의 탈피'라는 기쁨을 누리는 동시에, 과거의 '사실'과 '기억'으로 인해서 '슬픈 역사'를 지닌 채 살아가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전 세계는 더이상 이런 '참극'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데 동의했다. 그리고 치유의 시간과 반성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에도 동의했다.


△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제1수용소', '제2수용소', '제3수용소'로 나누어진다.

메인 박물관은 '제1수용소'를 개조하여 만들어졌다.

사진은 '제1수용소'의 관광 안내소에 있는 '관광 안내 책자'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대한 안내 책자는 '한국어'를 비롯한 다양한 언어로 된 안내책자가 존재한다.

 아우슈비츠의 참상을 통해 '전 인류가 반성'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 '아우슈비츠 제2수용소'

철조망 문 너머로 들여다 보다.

'제1수용소'에서 셔틀 버스를 타고 '제2수용소'로 갈 수 있다.


△ '아우슈비츠 제2수용소' 철조망 바깥쪽 길가.


3.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 유태인뿐만이 아닌, 모든 인간에 대한 죄악.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는 우리에게 굉장히 낯익은 이름이다. 나치 독일이 '유태인'을 비롯한 정치범, 전쟁 포로 등을 '학살'하기 위해서 만든 '강제 수용소'인 이곳에서 수 백만 명의 사람들이 '학살'당했다. 기차는 수 많은 사람들을 싣고 '아우슈비츠'로 향했고, '수용소'에 도착한 사람들은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독가스실'로 가서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도 있었고, 며칠간 수용소에서 강제 노동에 시달리다가 죽음을 당하기도 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수용소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곤 고작 '노동'과 '죽음'뿐이었다. 거대한 수용소로 계속해서 실려오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수용할 공간이 부족해지면 누군가는 죽어야 했다. '인간성', '인간에 대한 존엄'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곳이었다. 

  이런 일이 독일과 체코의 동쪽, 작은 도시 '아우슈비츠(폴란드어로 '오시비엥침')'에서 일어났다. 전쟁이 끝난 후, 전 세계의 수많은 이들이 '아우슈비츠'에서 일어난 일을 알게되었고, 이에대해 '분노'하고 '오열'할 수 밖에 없었다.

  

△ 아우슈비츠 수용소 입구.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표어 'Arbeit macht Frei(노동이 그대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문구가 있다.


△ 제1수용소의 전경.

이곳은 주로 관리동과 노동을 하는 공간(공장)으로 나누어 져 있다.


△ 이곳에서 '총살'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곳을 방문한 많은 이들이 '헌화(獻花)'한 것을 볼 수 있다.


△ 건물 사이의 '철조망'


△ 독가스실에서 죽음을 당하거나, 총살당한 사람들, 여러가지 이유로 죽은 사람들은

이곳, '화장터'에서 불태워졌다.


△ 화장터 외관.

화장터에서 쉼없이 뿜어져 나온 연기 때문에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고통받아야 했다.


△ 독가스가 들어있던 깡통.

나치는 '유태인'들을 대량 학살하기 위해 '독가스'를 사용하였다.

독가스는 적은 노력으로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나치들은 사람들의 옷을 벗긴 다음 사람들을 '샤워실'에 넣어두고, 독가스를 살포했다. 


△ 죽은 사람들의 '머리카락'과 '머리카락'으로 만들어진 '양탄자'.

죽임을 당한 사람들은 그냥 불태워지는 것이 아니었다.

죽은 사람들의 머리카락은 '양탄자'로 만들어지거나 '가발'로 만들어졌고, 

때로는 그들의 피부를 이용하요 '비누'를 만들기도 했다.

한마디로, '사람'을 '도구'를 만드는 '재료'로 이용한 것이다.

△ '아우슈비츠 제2수용소' 안으로 연결된 '철도'.

나치들에게 붙잡힌 '유태인', '포로', '정치범'등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기차에 태워져 아우슈비츠로 갔다.

기차가 아우슈비츠 수용소 안으로 들어가면, 사람들은 기차에서 내렸다.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분류'되었으며, 때로는 '분류'되지 않은 채 '독가스실'로 바로 향하는 경우도 있었다.


△ 아우슈비츠 제2수용소 전경.


  

△ '아우슈비츠 제2수용소'


4. 과거를 기억하라. 그리고 미래를 준비하라.

  과거는 지나가버린 시간이다. 현재라 불리는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과거'사실을 그저 과거의 사실로써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과거를 반성하며, 미래를 준비할 수 밖에 없다. 과거를 바탕으로 긍정적 미래를 건설해야 하는 것이다.

△ '제1수용소' 건물 안쪽 벽에 걸려있는 일부 희생자들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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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여행, '우유니 소금 사막' - 죽기전에 꼭 가봐야 할 그곳.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4. 12. 30.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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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버킷리스트. 그것은 소소한 행복.

 'Bucketlist'. 흔히 '죽기 전에 꼭 해봐야 할 것들'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새해가 되면 꼭 해야할 일들을 생각하며 적어 놓듯이, 우리는 인생이 끝나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을 가슴 속에 담아두거나, 다이어리 한켠에 적어두곤 한다. 한편, 다수의 여행 매체들은 '죽기전에 꼭 가봐야할 여행지'를 소개하기도 한다. 우리는 '꼭 가봐야 할 여행지'의 사진을 보고 감탄하며 '그곳'에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은 할 수 없고, 갈 수 없는 곳이지만, 언젠가는 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 곳이기에 그곳은 우리의 상상 속에서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버킷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여행지. 우리는 그곳을 여행하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언젠가는 '내가 그곳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그것은 우리의 삶을 즐겁게 해 주는 소소한 행복이다.


△ 우유니  소금 사막을 가로지르는 '지프(jeep)'. 그리고 저 멀리 먹구름.


2. 새하얀, 하늘과 맞닿은 사막. '우유니 소금 사막(Uyuni Salt flat)'.

  남미 여행을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을 몇 군데 뽑으라면, 페루의 '마추픽추'와 함께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을 뽑을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여행자들을 유혹하는 매력 넘치는 대륙 '남아메리카(South America)'에는 수 많은 볼거리, 즐길거리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우유니 사막'은 마추픽추와 함께 남미 여행의 정수(精髓)라고 불릴 만하다.


△ 내가 우유니 사막에 가기 전날 밤, 비가 내렸다.

하지만, 새벽에 강한 바람 때문에 물이 많이 증발되어 군데군데 바닥이 보였다.

우유니 사막의 진풍경은 '비온 뒤, 물이 고여 있을 때' 펼쳐 진다.

사진 왼쪽에 '소금 캐는 소년'이 잠시 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흔히들 'Salt flat(소금 평원)', '우유니 소금 사막'이라고 부르는,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스(La Paz)에서 버스를 타고 10시간 이상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안데스 산맥 언저리에 위치한 '하얀 땅'을 과연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세상에서 가장 큰 거울'이라고 하기도 하고, '하늘을 옮겨 놓은 곳'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곳은 그 어떤 수식어로도 꾸며질 수 없을 듯 하다.

 하늘과 맞닿은 하얀색 평원. 때로는 눈이부실 정도로 밝고, 때로는 매우 짜지만, 그곳에 서면 '와‥'라는 감탄사 밖에 나오지 않는 곳이다.

 해발고도 3,500미터가 넘는 곳이지만, '바다'라는 착각이 들고, 저 멀리 솟아 있는 '바위로 된 언덕'이 '섬'이라는 착각이 드는 곳. '우유니 소금 사막'은 상상을 초월하는 경이로움을 선사한다.


△ 쌓여 있는 소금 더미.


△ 자전거를 타고 사막으로 와 소금을 쌓아 둔다.


△ 소금을 긁어 모으고 있는 소년.

우유니는 한때 소금 산업으로 번창했다.



△ 사막 한가운데 솟아있는 바위 언덕. 마치 '섬(Island)'처럼 보인다.


3. 내가 '우유니'에 간 이유.

  내가 우유니에 가게 된 것이 '필연'이었는지, '우연'이었는지 알 수 없다. 나는 페루 쿠스코의 '마추픽추'를 지나 볼리비아로 갈 생각이었지만, 그 목적지는 '우유니'가 아닌 볼리비아의 북쪽 아마존, 볼리비아 국경도시 'Guayaramerin(구아야라메린)'이었다. 

  나는 우연히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스'에서 인도 '타르 사막(Thar desert)'을 함께 여행했던 친구를 만났다. '타르 사막'에서 헤어진 후, 6개월 간 서로 다른 길을 걷다가 '볼리비아'에서 만난 것이었다. 인도를 떠난 뒤, 나는 콜롬비아를 거쳐 볼리비아에 왔고, 친구는 유럽과 브라질, 그리고 아르헨티나를 거쳐 볼리비아로 온 것이었다.


 그 친구로부터 '우유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고나서 나는, 우유니로 가는 차표를 끊었다. 우리는 각자 우유니로 떠났고, 우유니에서 만나기로 했다. 모든 것이 즉흥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우유니'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곳에 가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 한때, 소금을 가득 실은 기차들이 다녔을 철로. 지금은 그저 '놓여'있을 뿐이다.


△ 우유니 사막으로 가는 길에 멈춰 있는 기차. 

여행객들의 노리개일 뿐이다.


△ 저 멀리 보이는 '우유니 사막'과 '바위 언덕'.


4. 우유니 사막, 그 경이로움을 함께하다.

  우유니에서 6명이 팀을 만들어 떠난 2박 3일간의 우유니 소금 사막 & 안데스 산맥 투어. 보통, 6명씩 팀을 이루어 출발하는 우유니 투어의 멤버를 구성할 때, 소위 '업체'에서 국가별로 짝을 지어준다고 했다. 하지만, 지프 운전 기사도 놀랄 만큼, 우리는 다국적이었다. 한국, 브라질, 아르헨티나, 폴란드, 영국, 아일랜드. 그래서 어쩌면, 더 특별한 여행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 함께, 우유니 사막투어에 나선 친구들.


△ 각각 영국, 아일랜드, 폴란드, 브라질, 아르헨티나에서 왔다.


△ 우유니 사막에 엄청난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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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유니 사막의 베이스캠프.

무박 투어를 하는 사람들의 종착지이다. 2박 3일 투어를 하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떠난다.


△ 사막에 휘날리는 국기들.


△ 우유니 사막의 바닥은 '육각형'모양으로 갈라져 있다.

소금의 결정체가 '육각형'이기 때문이다.


△ 사막에 솟아있는 선인장 가득한 섬.

'물고기 섬'에서 바라본 사막.


 

△ '물고기 섬'의 선인장.



△ 물고기섬, 그리고 8월의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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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티티카카 호수 : 구름 위의 호수 - 페루 푸노(Puno)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4. 12. 28.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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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티티카카 호수, 산 위의 바다.

 해발고도 0m. 0보다 아래는 바다이다.

 수족관(館, Aquarium/아쿠아리움)이라고 불리는 곳은 대부분 땅보다 아래, 지하에 있다. 우리는 보통 땅보다 아래에 있는 수족관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들을 만난다. 그런데, 63빌딩에 있는 수족관은 땅 위에 있다. 공중에 떠 있다고 하는 편이 좀 더 정확한 표현일까. 물고기들이 하늘을 날아 다닌다. 그래서 63빌딩 수족관은 좀 더 신비함이 깃든  장소처럼 느껴지는 지도 모른다.

  페루에는 '티티카카 호수(Lake Titicaca)'가 있다. 볼리비아와 페루, 두 나라가 공유하는 거대한 호수는 구름과 붙어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티티카카 호수'를 동경한다. 구름 위에 있는 호수, 그곳은 신비함이 묻어 있다.


- 푸노 뒷산에서 바라본 '푸노'와 '티티카카 호수'

http://enjoiyourlife.com ⓒ 자유인-



2. 호수의 끝은 구름. 그리고 사람들.

어쩌면 바다라고 해도 믿을 지도 모르겠다. 푸른 물결, 구름과 만나는 지점, 수평선. 배를 타고 몇 시간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그곳. 바다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이들에게 "이곳은 바다야"라고 말하면 믿을 것 같다.

 

 티티카카 호수 위에는 사람들이 산다.

 물 위에 사는 사람들. 티티카카에는 두 종류의 섬에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 베어낸 갈대 위에서 사는 사람들과 흙으로 된 섬 위에 사는 사람들이다.

 우로스(Uros). 섬이라고 해야할까. 갈대 더미라고 해야할까. 페루의 원주민이 '우로스'라는 섬 위에 살고 있었다. 잔인한 남미의 역사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스페인 사람들의 손에 죽임을 당하지 않기 위해, 원주민들은 그렇게 호수 위의 '갈대'위에서 삶을 살았고, 일부는 아직도 그곳에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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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대로 만든 인공선 우로스(왼쪽), 우로스에 살면서 관광객들을 위해 노래를 부르는 여인들(오른쪽)

이 여인들의 몸집이 풍만한 것은 '잘 먹어서'가 아니다. 

이들이 먹는 음식에 '몸집을 부풀리는'물질이 들어있어서 몸집이 부푼다고 한다.


 우로스 섬을 떠난 사람들은 보통 '타킬레(Taquile)'섬으로 간다. 그곳에는 또다른 원주민들이 살아가고 있다. 꽤나 큰 섬인 그곳 마을 광장에는 관광객을 향해 손을 내미는 아이들이 서 있었다. 손에는 '팔찌'와 '목걸이'가 들려 있었다.광장 한켠에서 호수 저편을 바라보는 것은 상쾌한 일이지만, 호수 반대편 아이들이 관광객들 주변을 둘러싸고 원달라를 외치고 있는 모습은 어딘지 슬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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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를 정박시킨 곳에서 '타킬레 광장'으로 오르는 길(왼쪽 위), 광장에서 호수를 바라보는 사람들(오른쪽 위)

광장으로 들어가는 입구. 먼저 도착한 사람들은 사진을 찍고 있다(아래)



3. 누군가는 '티티카카 호수'에 가 보고 싶다고 했다.

 영화 '후아유'를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63빌딩 수영장에서 헤엄을 치던 그녀는 '티티카카 호수'에 가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이나영이다. 꽤나 낭만적인 모습으로 그려졌던 티티카카. 맞다. 티티카카는 낭만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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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멀리 구름, 저 멀리 안데스 산맥, 그리고 푸른 물.

하얀 구름, 상쾌한 바람. 초록색 풀. 해발고도 3800미터에 있는 호수에도 봄은 왔다.


 낭만, 여행을 하다보면 '낭만'과 만나는 일이 적지 않다. 티티카카 호수 위에 떠 있는 섬을 걷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은 '낭만'을 즐기기 위해서일까.

 

 타킬레 섬의 비탈길을 걸으면서, 저 멀리 안데스 산자락에서 시작되어 호수를 거쳐온 바람을 맞았다. 해발고도 3800미터 이상에서 불어오는 바람. 그 바람이 호수 위를 지나 내 얼굴을 스쳐지나갈 때의 촉감은. 상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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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티카카 호수의 둘레길을 걷다.




△ 우로스 섬. 원주민들이 사는 마을.


△ 우로스 섬. 원주민들이 사는 마을.



△ 타킬레 섬, 부두에 매여 있는 배.



△ 티티카카 호수를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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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여행 : 사하라 사막, 타르 사막 - 사막이 주는 '경외감'.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4. 12. 26.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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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막(Desert), 많은 것을 간직한 땅.

  지금 우리가 '사막'이라고 부르는 곳 중 많은 곳이 몇 백, 몇 천년 전의 과거에는 풍요로웠던 땅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지금은 흔히 '불모지'라는 말과 동일한 의미로 쓰이는 '사막'이라고 불리는 땅에, 먼 과거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았지만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거나 아주 적은, 소수의 사람들만이 살아가고 있다.

 과거에는 풍요로웠고, 현재는 삭막한 땅으로 불리는 '사막'은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전해준다. 묵묵히, 온 몸으로, 사막을 찾는 이들에게 어떤 울림을 전달한다. 여행자로서 사막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은, 여행자만이 누릴 수 있는 '행운'이라고 말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이집트 타르 사막의 꼬마들과 물동이를 머리에 얹고 마을로 돌아가는 여인들.


2. 사막 여행 - 내가 사막으로 간 이유.

  나는 여행을 하면서 여러차례 사막으로 들어갔다. 처음 사막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 나는 두려움을 느꼈다. 혼자 사막을 걷다가 고개를 들었을 때, 내 주변에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모래 언덕과 태양뿐이었다. 나는 두려움을 안고 허겁지겁 내가 걸어왔다고 생각하는 곳으로 달려나갔던 기억이 있다.

  그렇지만,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잠시 뿐이었다. 나는 곧 '사막'의 매력에 빠졌다. 사막이 보여주는 '거대함'. 그리고 인간이라는 존재가 한낱 먼지같은 존재만큼 작아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막. 그리고, 태양이 지구 반대편으로 사라졌을 때 찾아오는 쏟아지는 별들의 향연. 그러나 셀 수 없는 별들이 빛나는 밤하늘을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칠흑같은 어둠으로 가득찬 사막


  '사막'이라는 공간은 내가 평소에 경험하지 못하는 것들을 경험하게 해주었고, '나'라는 존재를 지극히 작게 만들었다. 사막은 항상 나에게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주었다.

  이런 연유로, 나는 주변에 사막이 있는 곳을 여행할 때면 '사막'에 잠깐씩 다녀오곤했다. 그러면서, 사막도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래 사막, 바위 사막, 검은 돌이 있는 사막, 흰 돌이 있는 사막. 버섯 바위가 곳곳에 있는 사막. 모든 사막이 같을 수는 없었다. 


 

사막 모래 위에 찍은 발자국(왼쪽, 타르 사막)

사막을 달리는 지프. 거대한 사막 안에서 한낱 먼지와도 같은 존재처럼 보인다(오른쪽, 사하라 사막)


3. 인도 타르 사막(Thar Desert) - 모래와 삶.

 인도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놓칠 수 없는 여행 코스 중 하나가 바로 낙타를 타고 '타르 사막'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도 북서부에 위치한 '타르 사막'은 여러 도시에 걸쳐 있기 때문에 사막으로 들어가는 경로가 다양하다. '자이살메르(Jaisalmer)'와 '비카네르(Bikaner)'로 대표되는 '사막의 여행의 시작점'은 인도의 여느 도시 답게 북적댄다. 비카네르의 혼잡함, 자이살메르의 관광지 느낌 물씬나는 분위기.  

 자이살메르는 인도 '타르 사막'을 대표하는 사막 도시 답게, '모래'로 지어진 도시라는 느낌을 전해주기도 하지만 '사막 속'의 도시는 아니다. 단지, 사막으로 가는 입구일 뿐이다. '사막의 입구'에서 낙타를 타고 반나절 정도만 가면 '사막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만날 수 있다. 우리는 우리와는 '다른 환경'에서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 해질녘, 자이살메르의 한 식당에서 바라본 풍경.

비둘기 떼가 자이살메르의 하늘을 수놓고 있다.


낙타를 타고 사막 깊숙히 들어가는 길.


짐을 가득 싣고 가는 낙타.


낙타 위에서 찍은 그림자.


사막으로 가는 길에, 나무 그늘에서 쉬어갔다.

그 사이 낙타도 휴직을 취하고 있다.


사막에서의 잠자리.

사막에서 잠을 잘 때는 텐트를 치거나, 천막을 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사막 위에 담요를 깔고 하늘을 바라보며 잠드는 것이다. 

쏟아지는 별들을 바라보며, 잠을 잘 수 있다.


어둠을 몰아내는 햇살. 타르 사막에서의 일출.


양떼와 목동.(오른쪽 끝 부분에 목동이 있다)


마을로 돌아가는 소 떼.


사막 한가운데 있는 마을에 살며, 소를 몰고 다니는 소년.

 

사막 마을의 소녀(왼쪽)와 소년들(오른쪽)


4. 사하라 사막(이집트 시와/Egypt Siwa) - 한없이 작은 존재감.

 '사막'의 이미지를 떠올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리쬐는 태양과 '모래 언덕'을 생각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막이라고 할 수 있는 '사라하'사막은 북아프리카 전역에 걸쳐 있을 만큼 큰 사막인 만큼, 그 규모에 걸맞는 '웅장함'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버스를 타고, 사막을 가로질러 밤 늦은 시간 도착한 사하라 사막의 동쪽 끝 '시와(Siwa)'. 사하라 사막의 동쪽, 이집트 시와에서 '지프(Jeep car)'를 타고 사막으로 들어갔다. 모래 사막을 달리고, 또 달려도 보이는 것은 모래 언덕 뿐이었고, 저 멀리 달리는 지프는 모래 언덕에 파묻혀 한낱 먼지처럼 보였다. 한없이 작아지는 지프의 모습을 바라보다보면 나 자신의 존재가 한없이 작음을 느낄 수 있다.

 드넓은 우주. 작은 행성 '지구',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존재는 한낱 티끌보다도 작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사막'은 보여주고 있었다. 


동쪽 끝, 사하라 사막의 출발점. 시와(Siwa).

이곳도 역시, 모래로 이루어진 도시라는 생각이 든다. 


 

모래 언덕을 오르내리는 지프와 지프 위에 올라 앉은 여행객들.

여러대의 지프가 도시를 떠나왔지만, 결국 모두 다 뿔뿔히 흩어진다.


사막으로 달려가는 지프.


사막 속으로 달려가는 지프들은 그 모습을 감춘다.


점점 작아지는 지프.


사하라 사막.


모래 언덕과 지프가 지나간 '흔적'만 있을 뿐이다.



사막 저편으로 태양이 사라지고 난 직후.

지평선에는 태양의 흔적이 남아 있고, 하늘에 밝은 별 몇개가 보인다.


태양이 떠오르기 전. 하늘의 색깔은 수 십가지 색상으로 바뀐다.


태양이 떠오르기 직전.


사하라 사막의 일출.


시와에서 돌아오는 길.

메르사마트루(Mersa matruh) 근교에 있는 '아기바 비치(Agiba beach)' 주변.

아름다운 지중해 바다와 사막의 끝이 만나는 풍경이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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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 퍼스 시티(Perth City)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4. 12. 24.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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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관념, 그리고 '당연하다'라고 생각하는 것.

  우리는 우리가 '당연하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다른 현상이 발견될 때, 놀라거나 신기한 마음으로 그것을 바라본다. 예컨대,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생각하면서 '흰 눈'이 펑펑 내려 나무위에 흰 눈에 살포시 쌓이고,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한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소망한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과 멀리 떨어진 곳에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도 존재한다. 그들의 '산타'는 루돌프가 끄는 눈설매를 타고 눈 위를 달리는 것이 아니라, 제트스키를 타고 물 위를 달리기도 한다.

 TV나 영화, 책을 비롯한 미디어는 우리의 환경과 삶에 적절한 관념을 심어준다. 다시말해, '우리의 생활 환경'에 맞게 생활하고 상상하도록 만들며, 그것을 '당연하다'고 여기게 만든다. 그렇지만,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 

   


2. 호주의 크리스마스(Christmas), 그리고 서핑하는 산타.

 우리에게 있어서, '크리스마스'와 '눈', '눈썰매'를 연관짓는 것은 너무나도 익숙하지만 '크리스마스'와 '서핑', '바다'를 연관짓는 것은 어색할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12월 한여름인 '호주'에서는 '크리스마스'와 '서핑'을 연관짓는 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내리쬐는 태양 아래, 우뚝 솟아 있는 '크리스마스 트리'. '크리스마스 트리'는 여느 트리들과 마찬가지로 갖가지 장식을 온몸에 두른 채 반짝이며 서 있다. 하지만, 호주 서부, 서부 오스트레일리아(Western Australia)의 주도 퍼스(Perth) 중심가에 서 있는 크리스마스 트리 주변에는 반바지, 반팔티를 입은 사람들이 있다. 호주의 크리스마스는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지구 북반구에 사는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즈음 호주에 가게되면,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를 맞이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호주의 분위기 때문에 '낯설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강렬한 태양, 더위, 선글라스, 에어컨, 반바지, 반팔 셔츠,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과 크리스마스. 그리고 서핑하는 산타. 이런 낯선 풍경은 여행객들에게는 소소한 즐거움을 전하기도 한다. '여행'을 왔다는 느낌을 확실하게 전해주니까 말이다.



△ 퍼스 시티(Perth City) 중심가, 우체국 앞의 크리스마스 트리(위)

크리스마스 트리의 나무 그늘에서 쉬면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아래)


 

퍼스 시티 곳곳에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껏 돋우는 깨알같은 장식물들이 있다.

퍼스(Perth)는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 주(州)의 '주도(州都)'이다. 

하지만, 동부의 '시드니(Sydney)', '브리즈번(Brisbane)', '멜버른(Melbourne)'에 비하면 인구가 훨씬 적은 작은 도시이다.


  

 

△ 퍼스 시티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크리스마스 장식물'.

Perth City


3. 조용한 도시, 소소한 즐거움.

 서부에 홀로 위치한 도시 '퍼스(Perth)'는 동부의 도시들에 비해서 조용하다. 인구가 그리 많지 않을 뿐더러, 관광객도 많이 찾는 곳은 아니다. 외로이 홀로 서부 끝에 떨어져 대서양을 마주하고 있는 곳이다. 하지만, 호주를 찾는 사람들. 혹은 호주를 경험했던 사람들은 '퍼스'를 최고의 도시로 꼽기도 한다. 번잡함이 없는 도시 '퍼스'에는 소소한 즐거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은 호주에서 가장 큰 기념일 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리는 단아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단아한 모습 속에서도 크리스마스를 위한, 퍼스의 사람들을 위한 소소한 즐거움을 가지고 있다.

 

△ 거리에서 퍼포먼스를 하는 사람.

금새 많은 사람들이 그를 둘러싸고, 그의 퍼포먼스를 지켜 보고 있다.


△ 퍼시 시티의 '크리스마스 이벤트'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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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여행 필수품, '볼리비아 비자' 쿠스코(Cusco)에서 받기.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준비 · 2014. 12. 20.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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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남미 여행을 꿈꾸지만, 쉽사리 가기 힘든 곳이 남미라고 할 수 있다. 지구반대편인 남미 여행을 하는 데는 시간과 거리라는 물리적인 문제도 있지만, 도착해서도 여러가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남미의 필수 코스 '볼리비아 비자' 문제이다. (남미 여행을 하는데 있어서, 한국인이 가진 불편함 중에 하나가 볼리비아 비자 문제다. 최소한 내가 남미 여행을 하면서 만난 외국인 중에서 볼리비아 비자가 필요한 국가는 한국 뿐이었다.)

남미 여행을 하면서 '볼리비아'를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볼리비아'라고 하기보다는 '우유니 사막(Salt flat)'이라고 하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우유니 사막'에 가기 위해서는 볼리비아 비자가 필요했다.

볼리비아를 여행한 수 많은 여행자들을 통해서, 페루에서 볼리비아 비자를 받기가 쉽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리고 나는 볼리비아로 넘어가기 전, 쿠스코(Cusco)에서 볼리비아 비자를 받기로 결정했다. 쿠스코는 마추픽추를 가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곳이었고, 볼리비아 영사관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 페루 쿠스코(Cusco), 볼리비아 영사관에서 받은 '볼리비아 비자'

30일짜리 관광비자(Turista)이다.



- 비자를 받으러 가는길은 생각보다 쉬웠다.
 쿠스코에 위치한 볼리비아 영사관은 홈페이지도 있었고, 홈페이지에는 주소도 나와 있었다. google mpas를 통해서 위치를 살펴보니 숙소에서 걸어갈 수 없다고 판단, 택시를 타기로했다.

 단순히 주소를 제시하면 택시 기사가 모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미리 구글맵으로 위치를 확인하고 주변에 뭔가 유명할 것 같은 건물(큰 건물)의 이름을 적고, 거리 이름을 적어가며 약도를 그렸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택시 기사에게 주소를 보여주었을 때 '그곳(볼리비아 영사관)'이 어디인지 몰랐다. 내가 약도를 보여주고 나서야 그곳이 어디인지 이해를 했다. 택시비는 5솔로 합의. 택시를 타고 영사관으로 향했다.

영사관은 주택가에 위치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사관에는 그곳이 '볼리비아 영사관'임을 알리는 그 어떤 표지도 없었다. '볼리비아 국기'마저도 걸려있지 않았다. 그래서 정작 그 주변에서 좀 헤매야 했다. 물론, 택시 기사의 도움으로 비교적 쉽게 볼리비아 영사관 건물을 찾을 수 있었다.

볼리비아 영사관은 9시 30분부터 업무를 시작했다. 영사관 앞에서 좀 기다리다가 9시 30분이 되자마자 초인종을 눌렀다. 그러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창 틈으로 안을 엿보기도 했다.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 받을 만한)행동들을 하면서, 초인종을 눌렀다. 초인종을 세번째 누르니 그제서야 영사가 나왔다.


- 볼리비아 비자받으러 왔습니다.
영사는 나에게 의자에 앉으라고 하더니 이것저것 물었다. 그다지 중요한 질문이 아닌, 형식적인 질문들이었다. '어디 가냐?', '왜 가냐?', '뭐하러 가냐?'. '언제가나?' 따위의 질문들.

몇 가지 질문을 한 뒤, 서류를 내라고 했다. 나는 미리 준비해간 서류를 꺼내놓았다.

영사관에 비자를 받으러 가기 전 알아낸 바로는 "사진, 여권, 신용카드(체크카드도 된다), 비행기표, 황열병확인서, 호텔 예약 확인서"가 필요 하다는 것이었다. '신용카드'는 종이에 복사한 것이었다.

 황열병 확인서를 먼저 확인하고(가장 중요한 서류인듯), 호텔 예약 확인서도 확인하고, 신용카드 복사본을 보면서 '카드'를 보여달라고 한다. 그래서 '체크 카드'를 보여주었고, 비행기 표를 보여달라고 해서 가지고 있던 '항공권 e-ticket'를 보여주었다.

'설마 비행기표를 확인하겠나'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역시나 였다. 흔히, 타국 대사관에서 비자를 발급 받을 때와  비슷한 절차를 거쳤다.  

 사실, 나는 남미를 육로로 여행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남미를 빠져나가는 비행기표'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비행기표 두 장, "콜롬비아 보고타 - 미국 LA"로 가는 것(날짜가 지난 것이었다), "미국 LA - 호주 시드니"로 가는 것(날짜가 지나지 않은 것)를 보여주었다. 비행기표를 유심히 보길래, 마음이 조마조마 했지만 어쨌든 통과(Ok)였다. 

영사는 여러가지 서류를 들고 2층으로 가서 복사를 하고 왔다. 


-  비자 신청서.

 비자 신청서를 쓰고, 볼리비아에서 '어디로 이동할 것인가?'라는 질문 사항에는 대략적인 경로를 적었다. 그리고 사인.

 비자를 받는데 한 시간은 커녕,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다른 나라에서 비자를 받을 때(국경 비자 제외)는 보통 그 다음날 방문하는 게 통상적이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끝난 것이 좋았다.
'너무 일찍 갔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찍 끝나버린 비자 받기.


- '쿠스코 소재, 볼리비아 영사관'에 비자를 받으러 가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
1. 그 전에 내가 알아본 바로는, 항공권은 남미를 빠져나가는것이어야 한다고 했지만, 항공권의 출발지가 남미가 아니라도 상관 없었다.(본인은 남미를 빠져나가는 항공권이 아니었지만 비자를 받았다)
2. 사진은 1장 필요하다.
3. 비용은 들지 않는다. 푸노(puno)의 볼리비아 영사관은 수수료를 낸다고 들었다.
4. 볼리비아 영사관에서 비자를 받고, 속소로 돌아 올 때는 큰길에서 버스타면 저렴하게 시내로 갈 수 있다.
5. 신용카드가 아니라 체크카드가 있어도 가능하다.

+ 쿠스코, 볼리비아 영사관 주소
Av.Oswaldo baca 101
urb Mogisterio
Consulado de Bolivia
tel: +51-84-984-155367


△ 구글 지도 검색을 통해 찾아본 '볼리비아 영사관'의 위치.

△ 내가 묵었던 '로키 호스텔(loki hostel)'에서 바라본 쿠스코.

높은 언덕 지대에 호스텔들이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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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시베리아 횡단열차 : 여행자의 '로망', 어떨까?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4. 7. 3.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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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망에 대하여.

우리는 로망, 낭만을 꿈꾼다. 즐거운 삶을 원하고, 자신이 바라는 바를 성취하기를 원한다. '자아실현'이라고나 할까? 유명한 심리학자인 매슬로우(Maslow)는 인간 욕구 5단계설을 통해서 가장 상위에 있는 욕구를 '자아실현'이라고 불렀다. 우리가 생각하는 '로망'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성취했을 때 느끼는 즐거움은 일상에서 얻는 기쁨을 초월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로망'은 '자아실현'과 통하는 것이 아닐까?


 '시베리아 횡단열차'라는 말을 들으면, 괜히 마음이 설렌다. 많은 여행자들이 꿈꾸는 그것은 바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것이다. 그러면서 중간에 잠깐 '바이칼 호수(Lake Bikal)'에 들르는 것.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여행자 뿐만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것이다. 여행을 하는 데 있어 '기차 여행'만큼 낭만적인 것은 없다. 그 기차여행의 백미가 바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여행을 하는 것 아닐까? 실상은 그리 좋을 게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여행하는 것을 꿈꾼다.



2.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몸을 싣다. 


-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출발하는 모스크바의 '야로슬라브 역'


 모스크바 야로슬라브역(Yaroslavsky vokazl)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열차가 서 있었다. 모스크바를 출발해서 극동이라고 불리는 블로디보스톡까지 가는 열차였다. 흔히 말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Trans SIberian)'이었다. 

 모스크바의 따사롭던 햇살은 잿빛 구름뒤에 가려지고,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열차에 오르려는 사람들과 검표원. 그리고 멀리 가족과 친구를 떠나보내는 사람들이 열차 플랫폼에 뒤엉켜 있었다. 


- 기차에 오르기 위해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나는 열차에 올라, 기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렸다. 내가 그토록 원하던 것을 드디어 해냈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여행을 좋아했던 나는, 어릴 때 부터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여행하는 것을 꿈꿨다. 우리나라가 분단이 되지 않았더라면, '서울에서부터 유럽까지 기차를 타고 갈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기차여행은 느리지만 그만큼 매력이 있는 것이었기에, 나는 기차 타는 것을 좋아했고, 자연스럽게 나의 로망 중 하나가 바로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트랜스 시베리안'을 타는 것이었다.


- 나는 16번 객차에 올랐다. 열차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3. 열차에서의 하루는 23시간.

 기차는 동쪽으로 달렸다. 나는 이르쿠츠크에서 내려야 했다. 모스크바에서 이르쿠츠크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85시간, 4박 5일이었다.


 모스크바와 이르쿠츠크는 5시간의 시차가 났다. 하룻밤 잠을 자고 나면 어느 새 한 시간이 줄어들어 있었다. 손목 시계의 시간을 한 시간씩 앞으로 당겨야 했다. 그랬다. 동쪽으로 가는 기차에서의 하루는 23시간이었다. 기차가 달리는 동안 시간의 경계선을 하나씩 하나씩 넘었던 것이었다.



- 열차는 달린다. 밤이든 낮이든 목적지를 향해서 달린다.

ⓒ 자유인- http://enjoiyourlife.com




4. 기차는 삶이다.

 모스크바에서 이르쿠츠크까지 기차에서의 4박 5일. 블라디보스톡까지 갔다면 일주일이 넘는 시간을 열차에서 보냈을 것이다. 여행자들이 많이 탄다는 '쿠페(4인 1실)'가 아닌 러시아 현지인들이 많이 타는 6인 1실의 '플라츠카르타(쁠라쯔카르따)'를 탔다. 

 큰 역에 기차가 정차할 때면, 사람들은 기차 밖으로 나와 바람을 쐬고 먹을 것을 사곤 했다. 객실 테이블 위에는 항상 음식과 함께 술이 놓여 있었다. 


- 기차가 오랫동안 정차하는 규모가 비교적 큰 역이 있다.

기차안에 있던 사람들이 몰려 나와 햇살을 즐기거나 먹을 것을 산다.


 어젯밤 함께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하던 같은 칸의 사람이 그 다음날 기차에서 내리면 또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올라 함께하는 식이었다. 사람이 자주 바뀌는 침대가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침대도 있었다. 그 사람들은 며칠간 나와 함께 같은 객실에서 시베리아 평원을 바라보았다.




5. 차창 밖 풍경은 변화가 없었다.

 기대를 한 것도, 기대를 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달리면서 차창 밖으로 펼쳐져 있는 새하얀 대지를 바라보는 것을 꿈꿨지만, 나는 시베리아에 봄이 한창일 때 기차를 탔기 때문에 '녹색 평원'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 창 밖 풍경은 변함 없다.

 

모스크바를 떠난 뒤, 보았던 평원은 둘째 날에도 똑같이 펼쳐져 있었다. 여행의 피로 때문에 지쳐있던 나는 잠을 많이 잤다. 자다가 눈을 뜨고 창 밖을 바라보면 어제 봤던 평원이 펼쳐져 있었다. 또다시 눈을 감았다가 몇 시간 뒤 눈을 뜨면 아까전에 봤던 녹색 평원이 펼쳐져 있었다. 똑같은 풍경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것이 유라시아 대륙,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달리는 곳의 풍경이었다.



6. 도착.

 이르쿠츠크 역에 도착해서 기차에서 내렸을 때, 5일이 지나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4박 5일 간, 기차에서 있었던일들이 꿈만 같았다. 또 다시 기차에 오르고 싶었다. 아쉬움이 감돌았다.

 이로써, 나의 '시베리아 횡단열차(Trans Siberian/Siberia train)'에 대한 로망은 막을 내렸다.

 

- 시베리아의 파리라고 불리는 '이르쿠츠크' 역.

ⓒ 자유인- http://enjoiyourlife.com



 바이칼 호수에 들렀다가, 트랜스 몽골리안(Trans Mongolian)열차를 타고 몽고로 갈 계획이었다.

이르쿠츠크는 완연한 봄이었다. '시베리아의 파리'라고 불리는 곳에는 봄이 먼저 와 있었다.





- 바이칼 호수가 있는 그곳! 이르쿠츠크 역에 내리다.



사람들이 기차역 플랫폼에 있는 노점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사고 있다.



- 열차가 남동쪽으로 달리다 보니, 기온도 조금씩 올라갔다.


- 내가 탄 객실의 테이블. 먹을 것들이 펼쳐져 있다.


 

- 밤에 정차한, Novosibirsk 역


- 시베리아 횡단열차 티켓.

모스크바 - 이르쿠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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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 러시아의 처음 혹은 끝일 수도 있는 곳.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4. 6. 30.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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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너 답다.

 우리는 가끔 누군가에게 '너 답다'라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너 답다'라는 말이 쓰이는 맥락은 다양하겠지만 긍정적으로 쓰인다면, '너만의 매력이 있다' 혹은 '너만의 매력이 느껴진다'라는 의미로 쓰일 수가 있을 것이다.

 여행을 하다보면 수 많은 장소와 마주친다. 거대한 도시에서부터 작은 시골마을까지 다양한 공동체와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각각의 도시는 그 도시만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현대 사회의 대다수의 도시들은 급격한 도시화의 과정 속에서 자신만이 가진 역사와 개성을 몰살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여행자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역사와 개성이 사라진'도시에 머무르지 않는다. 여행자들은 '매력적인 도시'를 갈망한다. 

 "너 답다"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곳, '상트 페테르부르크(St.Peterburg)처럼.



2. 6월, 어두워 지지 않는 도시.

 에스토니아 탈린에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는 버스. 왼쪽에는 발트해 핀란드만이 펼쳐져 있었다. 밤 11시에 출발해서 아침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할 예정인 버스는 해가 지지 않는 땅을 달렸다. 새벽 4시, 잠결에 눈을 떴을 때 '핀란드만' 드넓은 바다는 붉게 물들어 있었다. 수평선 저 멀리서 떠오르는 태양 때문인지, 사라지는 태양이 마지막으로 빚어낸 색상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의 오묘한 붉은 빛이 하늘과 바다를 물들이고 있었다. 일출과 일몰, 그 어느것도 아니었다.

 '백야(白夜)'였다. 태양은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 머물고 있었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있는 '발트해 - 핀란드만'은 어두워지지 않았다.


△ 상트페트르부르크(St.Peterburg)의 백야(白夜/White night) - am 00:25, 네바강.

sorurce : The New York TImes



3. 6월 중순의 쌀쌀함. 그리고 아름다움.

 

푸르스름한 옥빛을 띠고 있던 하늘은 어느새 먹구름에 가려져 있었다. 상트 페트르부르크에는 비가 내렸고, 초겨울의 추위가 나를 엄습했다. 6월 중순이었는 데도 말이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고, 숙소로 찾아들어 몸을 녹였다. 비오는 초겨울, 어둠침침한 실내. 나무 냄새와 비 냄새가 방 안에 뿐만 아니라 건물 전체에 가득했다. 호스텔의 공기를 통해 느껴지는 눅눅함은 나를 꿈도 없는 잠 속으로 밀어넣었다. 



 

△ 비내리는 페테르부르크(St.Pegreburg) 그리고, 피의 사원

source : http://enjoiyourlife.com ⓒ 자유인-


 눈을 떴을 때. 비는 멎어있었다. 그러나 아직 잿빛 하늘은 그대로였고,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6월 중순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추위가 나를 엄습했다. 상트페트르부르크의 6월은 이런 것일까. 바람을 맞으며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거리를 헤매던 어느 순간, 문득 하늘을 바라보니 잿빛 구름은 바람에 떠밀려 사라진 뒤였다. 그 자리를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채우고 있었다. 그 사이로 햇살이 내려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거리로 떨어졌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아름다웠다.


 

△ 페테르부르크 운하(왼쪽)과 겨울궁전 앞의 광장(오른쪽)

source : http://enjoiyourlife.com ⓒ 자유인-


 카잔성당, 겨울궁전, 네바강, 이삭성당. 그리고 강 건너에 있는 요새와 강가의 공원들.


 잿빛 하늘 아래, 비에 적셔진 도시는 차가웠지만, 햇살이 스며든 도시는 아름답고 고요해 보였다. 강가에는 아직도 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그 바람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어울리는 바람이었다. 우중충한 잿빛 하늘아래에서 불던 바람은 매서웠지만, 햇살 속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휘젖고 다니는 바람은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 시내 중심가에 있는, 카잔성당.

ⓒ 자유인-http://enjoiyourlife.com




4. 표트르 대제의 선택.

 표트르대제는 유럽 진출을 위해, 자신이 머물 곳으로 페테르부르크를 선택했다. 러시아의 수도. 유럽 진출을 위한 전략적 요충지로 이곳을 선택한 표트르 대제. 

 차가운 도시. 그렇지만 아름다운 도시였다. 대륙의 북쪽에 있는 도시답게 차가우면서도 아름다운 도시. 

추위와 잘 어울릴 것 같은 이곳에 '겨울'에 다시 한 번 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 네바강 건너편에서 바라본, '겨울궁전(에르미타주 박물관)'





△ '겨울궁전' 앞 광장(위)와 '겨울궁전(에르미타주 박물관)'에 들어가려고 줄을 선 사람들(아래)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가기위해서는 아침 일찍 가지 않으면, 한 시간 이상 줄을 서야 한다.


 

△ 피의 사원(왼쪽)과 청동기마상(오른쪽)

청동 기마상의 발 아래 밟혀 있는 '뱀'이 포인트라고 한다.


 

△ 네바강에 정박해 있는 범선.


△ 요새로 건너가는 다리.

바람이 세차게 불어 깃발들이 휘날리고 있다.


 

△ 겨울궁전 근처의 광장


 

△ 상트페테르부르크 요새를 거닐며.


△ 상트 페테르부르그에 있는 '모스크바역(Moskvasky vokzal)'

모스크바행 열차들은 여기에서 출발하고, 모스크바에서 온 기차들도 이 역으로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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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이스탄불 - 묘한 매력이란 이런 것일까?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4. 5. 25.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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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매력'있다는 것.

 흔히들 자신만의 매력이 있어야 된다고 말한다. 매력을 가져야 된다고 말한다. 여자로서의 매력, 남자로서의 매력. 나만의 매력, 너만의 매력. '너의 매력에 끌렸어'

 사실, '매력'이라는 것을 엄밀히 정의하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매력의 판단 기준이 모호하다는 것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직관적으로 어떤 장소에 갔을 때,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장소나 그 사람이 내뿜는 매력에 매혹되곤 한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 다른 사람에게서는 느낄 수 없었던 것. 매력이라는 것은 밋밋함도 아니고 부조화도 아니다. 

 여행을 하다보면 '매력적인 장소'를 자주 접하게 된다. 내가 평소에 접할 수 없던 풍경이 펼쳐져 있지만, 친근감이 느껴지면서 그곳에 오래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곳을 떠날 때에는 기회가 된다면 반드시 이곳에 다시 오리라는 다집을 하게 된다. 

 매력이란 이끌림이다.


2. 이스탄불, 4번째.

 이스탄불. 4번째 였다. 이스탄불을 여행할 계획을 하고 온 적도 있고, 그렇지 않은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스탄불'이 싫지 않았다. 매 번 이스탄불을 올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이스탄불은 도시 자체로도 묘한 매력을 풍기는 곳이었다.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독특한 매력을 가질만 했다. 이스탄불의 모습은 나날이 변해가고 있는 듯 했다. 동양과 서양을 가르는 보스포루스 해협(보스포러스 해협)을 끼고 있는 이스탄불은 유럽과 아시아에 각각 발을 들여놓고 있었지만, 유럽이라고 불렀다. 

 

- 이스탄불, 탁심 거리의 트램


 이스탄불은 동양과 서양, 아시아와 유럽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슬람과 기독교가 공존하는 곳이기도 하다. 절대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은 두 종교, 이슬람과 기독교가 이스탄불에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독특한 매력을 지닐 수 있는 것일까? 

 과거와 현재, 유럽과 아시아, 동양과 서양, 이슬람과 기독교. 그리고 보스포러스 해협. 이것들이 풍기는 매력이 나를 네 번이나 이스탄불로 불러들인 이유가 될 것이다.


- 보스프러스 해협을 건너는 배.



3. 탁심.

 넓고, 길게 뻗어있는 길. 양쪽에 쭉 늘어서 있는 가게들.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모스크가 상징하는 이슬람의 색채보다는 유럽의 색채가 강렬하게 흐르고 있는 이 거리에는 많은 젊은이들로 가득메워져 있었다. 이스탄불에서 이슬람의 색채는 점점 옅어지다 못해, 사라진듯한 느낌을 받았다.

 탁심 거리 근처에 있는 술집에서는 밤 새도록 많은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불렀다. 밤 늦게까지 나이트클럽은 불을 밝혔다. 다른 이슬람 국가들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들이었다. 밤 늦게까지 술집에서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스타벅스가 새벽 1시까지 영업을 한다는 것은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서도 보기 힘든 풍경이었다. 

 터키의 사람들은 '이슬람'이라는 종교적 색채와 얽매임을 떠나 '개인의 자유'를 지향하는 듯 했다.


- 술탄아흐멧과 탁심을 잇는 다리가 있는 광장.


- 밤 늦게까지 불을 밝힌, 탁심의 술집들. 

Nevizade street.



4. 술탄 아흐멧, 그리고 아시아 대륙의 골목.

 술탄 아흐멧쪽의 아야소피아 성당과 그랜드 바자르, 블루모스크 쪽도 언제나 그랬듯이 사람들로 넘쳐났다. 그랜드바자르 주변은 언제나 생기 있었고, 다양한 먹거리들이 즐비하고 있었다. 관광객들은 성당과 모스크, 바자르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기에 바빴다.

 아시아쪽의 거리는 해협 건너의 유럽과는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거리 골목골목에 그려져 있는 그래피티. 거리가 친숙하게 느껴지면서도 유럽의 느낌이 들었다. 친숙함 속의 낯섦?

 

 이스탄불은 묘한 매력을 지닌 곳이었다.


- 아야소피아 대성당


- 아시아 지구에 있는 이스탄불 기차역





△ 탁심 거리의 종점, 탁심 스퀘어.


 

△ 탁심 거리에 있는 터키공화국 탄생(1923) 기념 조형물(왼쪽), 블루모스크(오른쪽)



△ 그랜드 바자르(Grand Bazar)



△ 아야소피아 성당 근처의 공원


△ 탁심 거리의 밤.



△ 탁심 거리로 가는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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