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주] 페루에서 마추픽추를 가지 않을 수 없지 (2)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0. 11. 28. 20:09

반응형

쿠스코(Cusco/Cuzco) - 마추픽추(Machupicchu) - 푸노(puno)



1. 여행을 떠나기 전 해야하는 것 중 하나.
  혹시, 당신이 여행을 떠나보았다면 이런 질문을 받아 보았을 지도 모른다. "너는 왜 여기로 여행을 왔니?". 만약 당신이 여행을 떠나기 전이라면 이런 질문을 받을지도 모른다. "너는 왜 거기로 가려고 하니?"

   여행지의 선정,
 왜 나는 그 곳에 가려고 하는가?[왜 그곳을 여행하려 하는가?]


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 곳에 대한 막연한 동경[근원은 어릴 적 티비나 책, 아니면 다른 사람의 여행담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혹은, 책을 보다가 그 책에 나온 곳이 너무 가고 싶었졌다거나, 영화에서, 혹은 드라마의 영향으로 어떤 특정한 곳이 가고 싶다고 느껴 질 수 있다.[본인은 실제로 <베로니카죽기로결심하다>라는 책을 보고 슬로베니아에 갔다 오기도 했다.]




2. 세기의 불가사의, 공중도시 마추픽추.
  세계일주를 시작하기 전, 마추픽추를 선택했다. 나는 여행을 떠나기 전 세계일주를 하게 되면 내가 어디를 가 볼 것이며, 어디서 무엇을 할 것인지 리스트에 적은 적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마추픽추 였다. 사실, 마추픽추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던 나는 리스트에 적고, 마추픽추에 대해서 알아보다가 마추픽추가 남미 페루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뭐, 그렇다면 남미 페루에 가면 되겠군.

  왜 마추픽추에 가야했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앞서 언급한대로, 어릴 적 티비에서 본 적이 있었고, 각 종 책에서도 많이 봤다. 남미를 간다면, 세계일주를 한다면 그 곳 정도는 가 봐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 산 꼭대기에 지어졌다는 도시, 그리고 그 다시의 담벼락은 자연석이면서도 물샐틈 없이 정교하다는 그 곳. 충분히 여행지로서 매력이 있었다. 마추픽추야 기다려. 내가 너에게 다가갈테니.



3. 기차는 마추픽추역에 도착했다.
  마추픽추역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마추픽를 이미 관광하고 온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산 속의 공기는 상쾌했고, 작은 마을을 가로지르는 계곡은 비가 많이 내려서인지 우렁찬 소리를 내면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길거리의 상점들과 식당들은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기 바빴다. 전형적인 관광도시의 한 모습을 보고 있는 듯 했다. 나는 언덕의 중간에 위치한 싸구려 호텔에 짐을 풀고, 호텔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었다. 역시, 관광지 싸구려 호텔 레스토랑의 음식은 맛이 없었다.

  하늘은 파랳다. 옅은 구름이 도시를 휘감았지만, 강렬한 태양이 나를 도시를 비추고 있었다. 내일도 이런 날씨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도시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다가, 별로 할 일이 없어서 잠을 청했다. 내일은 아침에 일찍 마추픽추에 올라야 하니까.



4.  비내리는 마추픽추.
  마을 관광안내소에서 마추픽추 입장티켓을 구입 한 후, 셔틀버스 승차장으로 갔다. 편도 7달러[여전히 너무 폭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올라가는 길은 모르니 버스를 타고 올라가기로 했다.[내려올 때는 경치구경도 할 겸 걸어 내려오면 되니까]
  구불구불 산길을 따라 버스는 계속 올라갔다. 저 아래, 마을이 보였다. 마을이 점점 작아졌고, 계곡은 점점 더 깊어졌다. 정말 저 위에 마추픽추가 있는 건가? 나무 밖에 보이지 않았다. 구름에 가려져 있는 곳엔 아무것도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버스는 계속 산길을 뱅뱅 돌면서 올라갔다.

  버스는 마추픽추 입구에 승객들을 토해냈다. 비교적 이른 아침이라고 생각했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와 있었다. 와나이픽추?인가 거기는 인원제한이 걸려있어 거기가려는 사람들은 더 일찍 왔을 테니까. 나는 거기까지 관심 없었다. 그냥 마추픽추만이라도..
  구름이 휘감고 있는 마추픽추는, 역시! 마추픽추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날씨가 좀 흐린게 아쉬웠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곧 비가 몰아칠 것 같은 생각이들었다. 바람이 점점 거세지고 있었고, 조금씩 조금씩 더 많은 구름들이 마추픽추를 스쳐 지나갔다.

  기어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하나 둘 씩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아마도 입장이 통제된 듯 했다. 입구 쪽으로 나오니, 들어가려는 사람들의 줄이 끝없어 보였다. 하지만, 입장은 허용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왠만한 볼거리는 다 보았으니까! 비를 맞으며, 마추픽추를 나왔다. 사실 살짝 아쉽기도 했지만, 비를 맞은 상태였고, 생각보다 바람이 차게 느껴졌다.

  나는 걸어서 계곡 아래를 향해 갔다. 마추픽추를 머리위에 둔 채, 나는 지상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5. 조금은 아쉽지만, 바이바이.
  내일은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파란 하늘아래 마추픽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폴란드인 친구와의 약속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했다. 그 친구와 푸노(Puno)에서 만나서 뉴이어(New year)파티를 하기로 했기 때문에, 푸노로 떠나야 했다.[사실 이미 기차표를 끊어 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취소한다면 언제 마추픽추를 빠져 나갈 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 마추픽추를 떠난 더 큰 이유이다]

  마추픽추에서 내려오는 길에 만난 뉴요커 Greg 와 Jacob. 그들도 세계일주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들과 함께 간단한 저녁을 먹고  맥주를 마신 후 나는 배낭을 들었다. 내 옆엔 내 배낭에 항상 붙어다닌 죠니도 함께 하고 있었다.
  배낭을 메고, 마추픽추 역으로 가니,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마추픽추역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나는 앞을 보고 죠니는 뒤를 보고 있었다. 내가 탈 기차가 곧 출발한다는 방송이 울려펴졌고, 나는 플랫폼으로 나갔다. 


Adios!  MACHU PICCHU. 





- 구름속 마추픽추, 한가롭게 풀뜯는 야마(llama)











-


- 마추픽추 뒤 쪽의 죽음의 다리. 스페인군대가 쳐들어 올 때를 대비해서 이렇게 탈출구를...
저 다리를 건너가고 나서 나무를 치우면 아무도 못 건넌다.


- 죽음의 다리와 절벽


- 비가와서 우리는 대피중




-

- 자콥과 그레그


- 산봉우리들


- 어느 상점


-마추픽추역





- 플랫폼


-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 내 친구 죠니 ㅋㅋㅋㅋ



- 오이야따이땀보역 도착! 해발 2792미터.

 
반응형

세계일주] 페루에서 마추픽추를 가지 않을 수 없지 (1)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0. 11. 28. 20:09

반응형

쿠스코(Cusco/Cuzco) - 마추픽추(Machupicchu) - 푸노(puno)



1. 여행에서 필요한 것 하나 - 이해심?
  
   경제적으로 발전이 덜 된 나라[개발도상국, 제3세계 국가라고들 부르는 곳]를 여행할 때, 대체적으로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를 여행할 때는 느끼지 못하는, 약간은 화가 날 수도 있는 그런 일을 당하거나[당해야만 한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목격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 

  이집트를 여행할 때의 일이다. 박물관을 가거나, 기차를 타거나 할 때 두가지 가격이 있다. 내국인 가격과 외국인 가격[Nation price, foreigner price]. 대표적으로 박물관을 갔을 때, 유적지를 입장할 때, 기차표를 살 때 등등. 심지어 식당에서는 외국인 메뉴판의 가격과 내국인 메뉴판의 가격이 다른 경우도 봤다.[나는 식당에서도 외국인이라고 돈을 더 내라고 하길래, 식당 주인과 싸운적도 있다]. 인도를 여행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인도의 명소 타지마할의 입장료는 외국인이 몇 십배의 요금을 더 내야 한다. 관광객의 입장에서는 좀 억울할 수도 있지만, 그 나라 관광청의 입장에서는 수익을 외국인관광객에서 수익을 더 올리려는 의도에서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 같다.

  이럴 때는 그냥, 외국인 관광객의 입장에서 그 모든 불합리한 일에 대해서 너그럽게 이해해야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다. 어차피 화를 낸다고 해서 상황은 변하지 않고, 괘씸해서 유명한 유적지를 포기한다는 것은 자신에게 손해일 뿐이다. 우리는 이럴 때 그냥 너그럽게 이해하고, 그 나라의 문화적 발전에 조금 더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마음편하다.



2.
  페루의 마추픽추는 세계적으로 아주 유명한 관광지이다. 당연히 그 곳에도 외국인 프라이스는 존재했다. 내가 봤을 때 그 곳을 찾는 관광객의 90%이상은 외국인인 것 같았다. 페루 관광청의 입장에서는 이들 외국인 관광객에게 많은 요금을 부과하여 많은 수익을 올리고 싶을 것이다. 당연히 그들은 여러가지 명목을 내세워서 그러한 일을 벌이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그래, 입장료는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나중에 언급 하겠지만 마추픽추를 가기 위해서는 4일간 트레킹을 해서 걸어가거나 오이야따이땀보에서 마추픽추역까지 기차를 타고 가야한다. 그것까지는 좋다. 하지만....기차역에 가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 아무리 안데스 산지에 기차 레일을 깔고 서비스를 좋게 한다지만....

  내가 탄 기차가격은 편도 54달러짜리 기차였다. 물론 시설은 좋았다. 천장이 유리로 되어 있어 하늘을 볼 수 있는 기차였고, 기차에서는 비행기처럼 차내식이 제공되었다. 조금 더 저렴한 기차도 있었지만, 시간도 안맞았고 자리도 없었다.[아마 그 저렴한 기차의 표는 투어회사들이 다 공수해가는 것 같다]

  마추픽추역에 도착하여 돌아가는 차편을 예매하기위해서 창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내 앞에 페루인이 있었다. 나는 유심히 보았다. 과연 저 사람도 요금표에 나와있는대로, 40달러 이상을 지불할 것인가? 그 사람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그 사람은 신분증을 꺼내는 것 같았다. 페루 국민임을 증명하는 신분증.

  사실, 50달러라는 돈은 페루에서 엄청난 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겨우 하루 생활비 정도에 해당되겠지만, 페루에서는 잘 쓰면 최소 3일은 버틸 수 있을 금액이니 말이다. 그것도 관광객의 입장에서 말이다. 보통 조그마한 일반 식당에가서 밥 한끼에 1000원 2000원 정도 하니, 50달러는 실로 엄청난 것이다.

  역시나, 그 사람은 외국인보다 턱없이 적은 금액을 지불했다. 7페소.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그것이 페루의 정책인것을? 나는 이미 그런 모습을 많이 봐 왔기 때문에, 그 다음차례인 나는 54달러를 또 지불했다. 좌석이 있는 기차는 그것밖에 없었으니까.[물론 더 비싼 기차도 있었지만, 나는 항상 가장 싼 것 원했다]




3.
  쿠스코에서 3일 째, 어느정도 몸이 고산지대에 적응 한 것 같았다. 마추픽추에 가는 방법에 대해서 호스텔 직원에게 물으니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내가 가진 가이드북인 론니플래닛에도 나와있었지만, 그래도 현지 정보가 가장 정확한 것이기 때문에 한 번더 물은 것이었다.
  나의 목표는, 저렴하게 잘 마추픽추를 가는 것이었다. 내 몸무게의 반쯤이나 될 법한 배낭을 짊어지고, 시내에 있는 작은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좁은 버스에 배낭을 짊어지고 올라타니 다리가 저려 미칠지경이었으나, 버스는 만원이었고, 내 배낭을 나는 안고 있어야 했다.[제일 싼 버스를 타면 그만큼 고생을 해야한다는 것은 진리]

 

4.
  마추픽추로 가는 길은 버스 한번으로 될 문제가 아니었다. 소형버스를 타고 와서 산 속의 작은 도시에 내려서 거기서 봉고차로 갈아탔다. 그 봉고차를 타고 더 작은 마을로 이동했다. 그 작은 마을에서 또 작은 마을로 이동했다. 그 곳에 가니 택시들이 많았고, 전부 마추픽추를 외쳐댔다. 하지만 터무니 없는 가격처럼 들렸다. 아니 왜 그렇게 비싼거지??

  거기서는 버스는 더이상 없었다. 기차를 타고 가거나 택시를 타고 가거나 둘 중 하나였다. 기차역으로 가니, 막 떠나려는 기차가 있었다. 마추픽추로가는 기차인데 자리가 많이 남아있다는 게 신기했다. 매표소에 가서 열차 가격을 물으니, 기절할 노릇이었다.
 
  일명 마추픽추역으로 가는 편도행 기차가 54달러라는 것.[편도 비행기야??] 다른 방법은 없었다. 기차는 떠나려 하고 있었고, 그 기차를 놓치면 다음 기차는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었기에, 울며 겨자먹기로 기차에 올랐다.
  기차에 올라 숨을 고르고, 열차 가격표를 다시 한번 확인하니, 가장 싼 기차표가 30달러선이었다. 당연히 그건 매진이었고, 등급도 가장 낮았고, 편수도 적었다. 내가 탄 기차는 중상급이었다. 차내식도 제공되는 나름 좋은 기차였다. 정말, 한시간 가량 기차를 타고 천천히 마추픽추역을 향해서 가는데, 비행기를 타고 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비행기같다고 생각되는 기차를 타고, 마추픽추를 향해서 갔다. 어느새, 마추픽추스테이션에 도착했다는 방송이 들렸고, 기차는 승객들을 토해냈다. 

  저 위, 구름에 가려진 곳. 그곳이 마추픽추 였다.



- 페루레일에서 제공되는 차내식




-



- 마추픽추로 가기위한 관문도시, 아구아스깔리엔떼스






-



-




- 마추픽추 스테이션



 

반응형

세계일주] 페루 쿠스코, 마추픽추에 가려면 체력을 길러라.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0. 11. 23. 13:25

반응형

경로 : 페루 리마 - 쿠스코(Cuzco/Cusco) - 마추픽추 - 푸노(Puno) - 볼리비아


1. 여행에서 필요한 것에 관한 이야기 하나.

  "체력은 국력"이라는 말에 세뇌를 받다 시피한 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운동을 열심히 했다.[축구부, 육상부원으로 중학교 3학년 까지 활동했다] 개인적으로 운동을 좋아하기도 했고, 운동하면서 흘리는 땀이 웬지 기분이 좋았다.
  
  공부를 하는데 있어서도 체력이 중요하다. 특히 고시를 준비하거나, 수능을 준비하는 학생들의 경우는 막판 체력관리와 건강관리가 시험의 당락과 고등점에 엄청난 영향을 준다고 할 수도 있다.
  술을 마시는데도 체력이 엄청 중요하다. 젊은 시절 혈기왕성할때는 별다른 체력관리를 하지 않아도, 끓는 피와 열정으로 밤새 술을 마실 수 있지만, 나이가 조금씩 들기 시작하자 역시 술은 체력과 정신력싸움이라는걸 느끼게 된다.[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인가?]
  
  여행에서는 어떨까? 두말할 필요가 없다. 여행이라는 것은 불확실성의 연속이다.[이러한 불확실성이 여행의 한가지 매력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될지 모른다. 갑자기 산에 올라야 할 수도있고, 열차를 탔는데, 자리가 없어서 입석으로 밤을 지새워야 할 수도 있다[본이의 경험상]. 아니면, 자신이 가려고 한 곳이 고산지대여서 고산병에 대비해야 할 수도 있다.[남미의 안데스 지역 또는 히말라야지역 그 외]

  커다란 배낭을 메고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체력은 필수다. 요즘은 기능성 배낭이 발달해서 무게 분산이 잘된다지만 절대무게라는 것과 백팩커의 상징인 행군은 항상 기다리고 있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배낭의 무게를 줄이고 몸과 마음을 가볍게하고 다니는게 가장 좋지만, 놀고, 먹고, 건강하게 여행을 하는데 체력이 좋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그리고, 당신이 만약 - 남미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나의 경험상 네팔은 고산병의 위험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체력을 웬만큼 기르고 떠나기를 권장한다[장거리 버스와 고산지대에 대응하려면 웬만한 체력이 아니면 병에 시달리기 쉽상이다]. 아무리 고산병에 대비한 약이 있다고 하지만, 약을 먹어도 고생을 할 것이 분명하지만, 몸이 고산지대에 어느정도 버틸 수 있다면, 한숨 푹 자고나면 적응 할 수 있을 정도가 되니까 말이다.


2. 
   잿빛 하늘과 텁텁한 기후[여름이었으니까], 그리고 어울리지 않는 산타클로스의 빨간 옷들[여름에 맞이하는 크리스마스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호주에서 부터 그런 느낌이었지만]을 뒤로 한채 버스에 오른게 어제다. 페루 리마에서의 크리스마스는 별로 흥겨울 것도, 그렇다고 그렇게 슬플 것 까지도 없었다. 호스텔의 친구들이 모두 자고 있을 때 나는 혼자서 쿠스코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가 해안을 따라 달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산길로 접어들었다. 나는 잠이 들었고, 눈을 뜨니 산의 중턱쯤 되는 곳이었다. 그리고 아침이었다. 아침 5시. 뒤쪽 큰 산 너머로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산지라서 그런지 공기는 약간 차갑게 느껴졌다.
  사람들은 휴게소에서 간단한 식사를 했다. 나는 쿠키와 콜라로 간단히 끼니를 때우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구름을 헤치고 산을 계속 올라갔다. 저 위 저위 그리고 더 위 그리고 그 안쪽에, 고대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가 있는것인가?

  버스가 쿠스코에 도착했다. 사람들은 말했다. 쿠스코에가면 고산병증세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나는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정류장앞의 식당에서 폴로를 먹고, 론니플래닛에 나와있는 인기있다는 호스텔을 찾아갔다. 언덕을 오르고 올라, 골목의 계단을 오르자, 호스텔이 있었다. 정말 힘들어 미칠지경이었지만, 나는 그냥 자고 싶었다. 두통이 찾아왔다. 머리가 점점 아파왔고,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씻는 것 조차도 귀찮았고, 그냥 침대에 누워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고, 잠이 들었고, 방에서 술마시는 친구들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가 다시 내 친대 옆으로 시선을 가져왔다. 그리고 또다시 잠이 들었다. 왜이러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3.
  머리가 정말 깨질듯이 아팠고 그냥 자고 싶어서 잤다. 얼마후 깨어났을 때 주위는 어두웠다. 새벽인가? 시계를 보니 저녁이었다. 많이 잔 것 같은데. 이제 좀 정신이 맑은 것 같았다. 피곤해서 머리가 아픈 거였나? 아무튼 이렇게 머리 아프긴 첨음이었다.

  호스텔안에 있는 Bar에가니, 내 앞침대에서 봤던 애가 보였다. 인사를 하고, 맥주를 한병시켰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당구를 치다가 다시 방으로 돌아오고있었다. 내 방 앞 샤워실겸 화장실 앞에서 검은 머리의 여자를 보았다.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하이라고 말하고 가볍게 웃으며 그녀를 지나쳐서 방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서 물었다. 웨얼아유프롬?



4.
  그녀는 고산병때문에 코스코에 오자마자 이틀동안 토하고, 어지럽고 고생을 엄청하다가 이제서야 정신을 좀 차리고 있다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 전형적인 고산병증세라고 덧붙이면서, 나에게 그런 증상이 없냐고 물었다. 나는 말했다. 아, 머리가 좀 아프긴 하더라고요. 그게 고산병 증센가?

  그날 새벽 그녀는 마추픽추로 떠난다고 했다. 서로 좀 아쉬운 마음에[서로 한국사람을 못본지 꾀 된 상태였다. 나는 남미에와서 처음보는 한국인이었다] Bar에가서 와인을 마셨다[나는 호주 농장에서 일할 때 와인을 몇 병 사서 들고다니고 있었다].

 와인을 마시며, 나는 신세계를 경험했다. 숨이 막혀오는 것이었다. 심장 박동수가 빨라졌고, 숨쉬기가 어려웠다. 왜이러지? 술을 너무 오랜만에 마셔서 그런가?[불과 이틀전에 리마에서도 마셨는데?]


5. 그녀와 작별하고.
  나는 침대에 와서 누웠다. 숨쉬기가 정말 힘들었다. 이대로 잠들면 심장마비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내 머리속을 휘감고 있었다. 잠이 들고 싶었지만, 잠을 도저히 잘 수가 없었고, 숨을 헐떡헐떡 몰아쉬고 있었다. 한 외국인이 나에게 아유오케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노프라블럼이라고 대답했다. 사실은 노프라블럼이 아닌데!!



6. 왜 이런일이 일어났지? 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페루 쿠즈코는 해발고도 3500-3600m정도에 위치한 도시이다. 산소는 해발고도가 높아질수록 희박해지고, 기압의 영향으로 체내의 유기적인 활동이 저하되는걸까?[내 나름대로 정말 신뢰할만한 추정이었다]
  결론은, 내가 고산지대에 오자마자, 머리가 아파서 잠을 좀 잔후, 적을을 제대로 하기도 전에 술을 퍼마셔대서 몸이 깜짝놀란것같았다. 밤새 심장마비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휩싸여있다보니, 어느새 잠이 들었고 눈을뜨니 날이 밝아 있었다.

나는 창문을 열고 쿠스코 시내를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다행이다. 나는 살아있다.






- 시장 풍경



- 시장 풍경, 고깃집ㅋㅋ



- 그냥 정처없이 걷다가, 바라본 쿠스코



- 호스텔로 올라가는 길에 그려져있던 그림. 정말 딱 내 모습이었음....
큰 배낭에, 쪼리신고, 어깨에 잠베매고. 헐떡대는 ㅋㅋ



- 호스텔 입구 근처에서 바라본 쿠스코시내



- 골목길




-호스텔 안뜰 ㅋㅋ


반응형

Ep] 몽골, 볼리비아 - 해외여행에서 "세상 참 좁다"라고 느낄 때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0. 11. 21. 15:27

반응형

몽골과 볼리비아에서 있었던 이야기.


1. 케빈 베이컨의 법칙.

  누군가와 이야기 하다가 한 번 쯤은 해봤을 만한 멘트. "어?! 나도 그 사람 아는데?" "세상 참 좁다".
내가 알던 사람이 알고보니, 친구의 친구이거나, 알고보니 아는 사람이 또 알고 있는 사람이거나, 새로 알게된 사람이 알고보니 논랄만큼 나와 가까운 사람일 때. 흔히들 그런말을 하게 된다. 그 두사람이 공통적으로 아는 사람을 공유하게 될 때.

  한국의 유명한 소셜네트워크 사이트인 싸이월드에서는 이러한 관계를 "2촌"아라고 표시를 해 두고 있는 걸 발견하기도 했다.


2.                     
  대학교 2학년 때, 같이 자취하는 친구의 여자친구가 나와 같은 과 후배의 베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세상 참 좁다라고 느꼈다. 이탈리아 민박집에 머물 때, 몇일 동안 같이 술먹고 놀던 사람을 동네의 한 놀이터에서 보게 되었을 때[그 때 내가 살던 동네는 신촌] 당황스러우면서도 세상 참 좁다고 느꼈다. 그 사람들도 근처에 산다고.[그 외에도 이런 경우는 수도 없이 많았다.]
 
이럴 때 마다 하는 말 "세상 참 좁다!" 그러면서 생각 한 것, "정말 착하게 살아야 겠다."



3.  기차는 시베리아를 떠나 몽골초원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기차 창문틈으로 스며드는 한기에 새벽에 자주 잠이 깨었는데, 그 때마다 보이는 창 밖의 푸른 초원이 이곳이 몽골임을 알려주었다.[기마민족의 땅 몽골] 울란바토르의 아침은 시베리아보다 차가웠다. 시베리아엔 봄이 오고 있었는데, 울란바토르는 쟃빛 하늘아래로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내가 탄 국제선 열차는 기차의 제일 끝에 붙어 있었다.[국제선 열차 차량은 따로 분리되어 한 칸만 러시아 국경을 넘어왔다] 기차에서 내리자 여러 사람들이 팻말을 들고 서 있었고,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미스터 창? [나는 러시아의 이르쿠츠크에 머물 때 몽골의 한 호스텔을 예약해 두었었다. 가격도 싸고, 예약비도 필요 없었으며, 상당히 인기있는 호스텔이라고 해서 예약을 하고 몽골로 넘어왔다. 특히, 기차역에서 픽업을 해준다고 하기에!]
  그 사람은 한국어를 좀 할 줄 알았다. 왜냐하면 그 호스텔 주인이 한국인이었기 때문이었다.[몽골인 여자와 결혼하여 몽골에서 호스텔을 운영중인 한국인이다]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영어와 한국어로 몽골의 거리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기차가 도착한 시간이 이른 아침이어서, 거리는 황량했다[잿빛 하늘은 몽골 거리의 분위기를 더욱더 암울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호스텔에 도착하자, 체크인을 하고, 방을 배정 받았다.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싶었다. 2박 3일간 기차 속에서 생활한 터라 제대로 씻지도 못했고, 울란바토르의 기온은 차갑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내 침대에 아무렇게나 누워 잠깐 잠을 청했다.



4. 2박 3일간의 안데스투어[우유니사막투어]가 끝났다.

  우리 팀은 환호성을 지르며 지프에서 뛰어 내렸다. 2박 3일간의 투어가 끝나고 돌아온 우유니시티는 변함이 없었다[내일도 많은 사람들이 우유니투어를 떠나겠지]. 우리는 이대로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에 저녁 밥과 함께 맥주를 마시자는 약속을 하고 각자 호텔을 향해서 떠났다.[모두가 같은 곳을 향해 걸었고, 공교롭게도 우리는 모두 같은 호텔에 묵었다!] 

  사막에서 묻혀온 소금과 모래를 몸에서 떨궈냈다. 뜨거운 물이 내 몸을 타고 흘러 내렸다. 방으로 돌아와 사진을 컴퓨터로 옮기고, 사진들을 구경했다. 너무나도 평온한 오후였다. 적당한 온도, 적당한 휴식처, 적당한 기분.

  약간 출출한 분이 들어, 약간의 먹을거리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몸을 움직여, 밖으로 나가려 했다. 아래층에 있는 리센션 앞에 몇 명의 새로운 여행자들이 배낭을 풀어헤치고 있었다. 그들은 무언가를 상의하고 있었다.



5.                         
  잠에서 깼다. 그대로 누워 눈을 뜨니, 건너편 침대 2층에서 누군가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책 표지가 한글로 쓰여진것 같기도했다[시력이 좋지 않아 애매했다]. 나는 그냥 그대로 누워서 잠시 정신줄을 놓았다가, 앉았다. 그 방에는 단 둘이 있었다.

  하이. 하이. 웨얼아유프롬? 코리아. 아, 한국분이세요?ㅋㅋㅋ 책에 한글 비슷한게 적혀있어서 혹시나 했는데. 오늘 오셨어요? 아침에 들어오는 것 같던데. 네, 오늘 아침에 울란바토르도착했어요ㅋㅋ생각보다 많이 춥네요 여기. 어제까진 날시 괜찮았는데, 오늘 갑자기 추워진 것 같아요 비가내려서. 아...혹시 괜찮으시면 이따 저녁때 밥이라도 같이 먹을래요? 괜찮죠. 나가서 먹을까요? 아니면 여기 주방도 있고, 해먹어도 되고요. 전 뭐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만들어 먹는 것도 괜찮고, 사먹어도 괜찮고요. 저도 뭐 상관없는데. 요리좀 하시나봐요? ㅋㅋ, 뭐 그냥 못하는건 아니에요.

여기에서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도 요리를 웬만큼 할 줄 안다면...해양경찰 출신이 아닐까?[해양경찰 전경은 막내가 무조건 취사병으로 근무를 해야하기 때문에 해경 출신이면 웬만한 요리는 다 배우고, 할 수 있게 된다] 사실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물어보기로 했다.

혹시 군대 어디 나오셨어요?, 저요? 전경출신인데 왜요?, 아 요리좀 하신다길래 혹시 해경출신인가 해서요 ㅋㅋ, 어 저 해경나왔는데, 혹시 해경나오셨어요?, 진짜요? 저도 해경나왔는데. 대박...ㅋㅋㅋㅋ 혹시 어디 지역이세요?[해경은 지방 경찰청 근무를 제외하고 전국 각지 경찰서 근무를 하는데, 소속 경찰서가 다르면 2년 2개월간 볼 일이 없다] 아까 집이 대구라고 하셨으니 포항? , 아니요 통영출신이에요, ㅋㅋㅋㅋㅋ아 진짜 대박이다...저도 통영경찰서 출신인데..혹시 몇기세요?, 아 진짜 통영 출신이에요? 진짜 대박이네 ㅋㅋㅋ 저 259기요, 아 전 262기인데 선임이시네요. 근데 왜 배탈때 못 본것 같지? 혹시 배는 언제 탔었어요?[후략]

알고보니, 내가 배를 탔던 기간에 2개월 정도 같이 배를 탔었다. 같은 부두에 머물렀지만, 그 선임은 중형급 이상의 배를 탔고, 나는 소형배를 탔기 때문에 서로 잘 알아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어쩐지 이름이 낯익긴 했다]  
   
우리는 바로 그 자리에서 맥주를 마시러 나갔다. 이따 저녁때 밥은 밥이고, 이런데서 같은 군부대를 나온 사람을 만났으니 술이나 한잔 하러 가야하지 않겠냐는 생각에서 말이다.


6.                         
  리셉션 앞에서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는 그들에게 인사를 했다. 이미 그 호텔에 방이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벌써 몇 팀이 발길을 돌리는 것을 봤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들은 우유니사막투어를 하러 왔고, 나는 이미 하고 왔기 때문에 여러가지 정보를 줄 수 있었다. 모두가 일본어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에 나도 아는 일본어를 가지고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중 한 여자애가 한국인이었다.[아니 그런데 무슨 일본어를 저렇게 잘하지? 라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하다다가 알게된 사실. 일본에서 중,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한국으로 왔다고 했다.[아, 어쩐지 일본어를 잘하더라]. 전공은 일어일문.  재외국인 전형?이라고 나는 반문하면서 혹시, 대학은 어디냐고 물어봤다.[웬만하면 나는 이런걸 잘 안물어 보는데, 내 친구가 중앙대 일어일문을 다니고 있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 보았다]
  혹시나, 했는데. 대답은 중앙대였다. 중앙대 일어일문. 그래서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봤다. 내 친구를 아느냐고.[사실 모를리가 없었다. 내 친구는 학생회장까지 했었으니까 말이다] 역시, 물어보나마나였다. 보통사이도 아니고 완전 절친선후배사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알지 못했던, 내가 소개시켜준 여자와 내 친구간의 비하인드 스토리[슬픈 이별의 이야기]도 나에게 들려주었다.

  그 날 밤, 나는 싸이월드 내 친구의 홈피에가서 이렇게 적었다. " 야 ㅋㅋ 나 지금 볼리비아 우유니인데, OOO알아? 절친동생이라던데?ㅋㅋ 오늘 걔 만났어."
  그리고 다음 날, 내가 떠나기 전, 점심을 같이 먹고, 우연히도 저녁 때 같은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의도하지 않았지만, 투어 갔던 애들이 그 레스토랑에 다 모였고, 친구의 후배와 그녀와 같이 있던 애도 그 식당에서 만나게 되었다]



7.                        
  여행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다보면 이런 저런 인연이 다 있다. 는 생각.   






- 요리하는 남자

 


 


- 울란바토르 역[도착한 날과 떠나는 날 하늘은 흐렸다]

 



 

- 우유니 역



 

- 호텔 앞 거리


 

- 아티스트 에드손


반응형

워홀이야기] 호주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하다.

- 호주, 워홀이야기- · 2010. 11. 18. 12:28

반응형
Second Edit.


1. 내가 호주에 가게 되면 호주에서 꼭 하고 싶었던 것. 
스카이다이빙.


2. 사실,
스카이다이빙을 하기 위해 케언즈Cairns에 가려고 했었다.

케언즈[ 직접 가보진 못했지만 들은 바에 의하면 각종 레포츠의 천국 이라는 곳]에가서 스노클링도하고, 스카이다이빙도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케언즈에서부터 시드니까지 해안선을 따라 내려 가면서 여행도하고 바다에서 서핑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나의 이상을 모두 채워줄 순 없었다.

그래서 케언즈에가서 스카이다이빙이라도 하자라는 생각에 비행기표도 알아보고 스카이다이빙 가격도 알아보았다. 그리고, 덤으로 케언즈에서 시드니로가는 비행기표도 알아 보았다.


3.
  루트와 계획을[여행에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 이지만, 나는 계획 짜는걸 좋아하지 않아서 문제이다] 여러 번 생각했다. 그리고 공장을 언제 그만두고 언제 퍼스를 떠나고, 언제 시드니로 갈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했다..

이미 미국을 경유하여  남미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끊어놓았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서 가야했다.

그러던 중, 듣게 된 소식.


4.
'퍼스에서도 스카이다이빙을 할 수 있다.'
이 소식을 접하고 나서 이곳저곳 알아보니, 퍼스에도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곳이 두세군데 있었다.

나는 구글검색을 통해 알게된 퍼스에 있는 트래블 에이전시(Travel agency)에 가서 스카이다이빙 가격을 알아보았다.
'가장 높은 높이인 14,000피트에서 뛰어내리는 가격 $439, DVD촬영 $129, 총 합 568달러'

케언즈에서 하는 것 보다, 150-200달러 정도 비싼가격이었다. 생각해 볼 문제였다.
여러가지 여건들[시간과 돈과, 여행과 일정 등등]을 고려 한 끝에 내린 결론!
퍼스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해야겠다고 결론지었다.[ 시간에 너무 쫒기면서 돌아다니는건 내 스타일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케언즈로 갔다가, 또 시드니로 곧 이동해야 한다는 사실이 나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5. 12월 4일 금요일, 오전.
  잠을 자고 있는데, 어디선가 전화가 왔다.

'헬로우, 뭐 어쩌고 저쩌고, 스카이다이빙입니다. Mr.Chang?'
'옙, 맞습니다'
'어쩌고 저쩌고~ (막 뭐라고 말을 한다, 내일 40도까지 낮기온이 올라가고 ,뭐 어쩌고 막 설명을 한다)'

사실 잠결이라서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 듣다가 얼핏 40도, 얼리? 라고 하길래 무슨소리냐고 했더니 다시 설명을 해준다.

'내일 낮기온이 40도까지 올라가니까 오전에 일찍 뛰어 내려야한다. 예정 시간보다 1시간 일찍 나와라'
'오케이' 라고 말하고 오히려 나에겐 잘됐다고 생각하고 다시 잠을 청했다.


6. 12월 5일 토요일, 아침.

  일이 끝나고 집에와서 씻고, 스카이다이빙하러갈 준비를 했다.[준비라고 해 봐야 신분증과 영수증을 챙기고, 그냥 평소대로 옷 입고 나간 정도다]

  트레인을 타고, 퍼스 시티에 약속된 장소[웰링턴 버스스테이션 앞]에 가니, 투어를 하러 가는듯한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 서핑스쿨(Surfing school)에서 일일 서핑교실에 참여하는 사람도 있었고,- 나도 따라 가고 싶었다. 일일 서핑스쿨 - 스카이다이빙(Sky diving)을 하러 가는 사람도 있었고, 무엇을 하러 가는 지 알 수 없지만 뭔가를 하러 가려고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고]

일본인 두명과 나와 이렇게 셋이서 출발했다. 우리 셋을 실은 봉고차는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곳으로, 달려갔다.
차를 한 시간 반가량 가서 도착한 곳. 'Historic city of York'가는 간판이 도시의 입구에 서 있는 조그마한 시골마을 이었다. 그 마을에서 좀 더 안으로 들어가니 작은 비행장이 있었다. 그곳이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카이다이빙을 준비하는 창고같은 건물에 곳에 가니,  그 앞에 활주로가 뻗어 있고,  경비행기 두대가 대기하고 있었고, 스카이다빙을 하려는 사람들이 여럿있었다.[개인적으로 스카이 다이빙을 하러 오는 사람들도 꽤 있었지만, 스카이다이빙 동호회 팀들도 많이 있었다. 동호회팀들은 뛰어내리면서 취할 포즈를 연습하고 있었다]

밖에선 비행기가 뜨고, 사람들이 뛰어 내리고, 낙하산이 펼쳐지고, 또 다시 비행기가 뜨고, 또 사람들이 뛰어내리고.
 
'아, 나도 드디어 스카이다이빙을 하는구나!'


7. 오전 11시경,
드디어 내 차례.[내가 마지막이었다.] 스카이다이빙 두팀과 나와 강사와 카메라맨이 함께 비행기에 타기로 되어있었다.
스카이다이빙 옷을 입고, 간단한 안전교육을 받고. 드디어 비행기에 올랐다.[가슴이 두근거렸다]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조그마한 경비행기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서, 하늘로 하늘로 올라갔다. 창 밖으로 보이는 집들이 점점 작아지고, 자동차들은 작은 점처럼 보였다.  어느새 옅은 구름이 나와 같은 높이에 있었다. 다이빙 강사의 손목에 차고 있던 고도계의 숫자는 점점 올라갔고, 고도계가 한 바퀴를 돌자 스카이 다이빙 팀들이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그 다음이 내 차례였다. 한바퀴가 돌고, 그리고 고도계가 조금 더 돌았을 때,뛰어내려야 한다고 강사가 나에게 말했다.


'으악, 내가 그냥 이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는건가?'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면서 내가 뛰어내려야하는 곳을 쳐다보니, 긴장되기도 했다.  점점 목표 높이에 다가가고 있었다.  "빨간불이 들어오면 뛰어내려야 한다"는 강사의 말이 생각났다.

드디어 작은 비행기는 14,000 fit 상공에 도달했고, 비행기의 출입문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강사는 고고고를 외쳤다. 나는 살짝 미소를 띄웠지만, 내 마음엔 약간의 두려움과 셀럼이 공존하고 있었다.


8. 비행기의 문이 열렸고, 나는 문으로 다가갔다.
비행기의 아래를 쳐다보니, 발 밑에 구름이 있었다.[구름을 밟으면 하늘위에 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1초 정도 한 것 같다. 다른 생각 할 틈도 없이 뛰어내렸다]

오묘한 기분. 다이빙이라는 말보다는 그냥 추락 추락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법 한. 그런 늒미이었다. 나는 배운대로 포즈를 취했다.

번지점프와는 또 다른 기분. 말로 표현하기가 힘든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냥, 기분이 좋았다. 마냥 좋은 그 기분.

시속 200km정도의 속도로 떨어진다는 스카이 다이빙?[9.8m/s 인가? 만류 인력법칙에 의한 물체의 낙하속도 말이다]

그렇게 그냥 막 떨어졌다. DVD촬영 하는 애가 어느새 내 앞에 자리잡고 나를 촬영했다. 그를 바라보며 같이 뛰어 내렸다. 입을 너무 벌리고 있어서 침이 흘러 나왔지만 닦을 수 없었다. 뭘 어떻게 해 보겠다는 생각도 없이 소리를 막 지르고 있는데, 어느 순간 낙하산이 펼쳐졌다.


9. 낙하산을 타고 천천히 내려오면서 바라본 풍경.
아름다웠다. 드 넓게 펼쳐진 평야같은 곳에 중간에 위치한 마을. 그 곳으로 나는 내려가고 있었다. 저 멀리 어렴풋이 바다가 보였다.

햇살에 드러나는 나의 그림자는 엄청 크게 보였다. 낙하산을 타고 내려가는 나의 모습이 땅에 그려지고 있었다. 자동차가 내 발 밑에가볍게 미끄러지고 있었다.

스카이다이빙 = 번지점프 + 패러글라이딩? 이라는 생각을 잠깐 해보기도 했다. 낙하산을 이리저리 좌우로 조정하며, 목표지점으로 향했다. 재미있었다.

스카이다이빙을 마치고, 촬영한 DVD를 보았다.
아, 좀 많이 쪽팔렸다 ...ㅋㅋㅋㅋ 카페테리아에 앉아서 같이 뛰었던 애들걸 다 같이 보는데, 오지(Aussie, 호주사람)여자애들 둘이 내껄 보면서 계속 킥킥댓다.[ 내가 봐도 웃긴데 - _-; 걔들은 오죽했을까] 


10. 다시, 퍼스 시티(Perth city)로 돌아오는 길,
모든게 꿈만같았다. 피곤해서 살짝 잠이 들었다가 다시 깨었다. '내가 스카이다이빙을 하고 온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게 꿈같이 느껴졌다.
  내가 호주에서 일을하고, 바다에도 들어가서 다이빙도하고, 전복도 따고, 하늘에서 뛰어내린 모든 것들이 꿈같다고 생각되었다.
누군가가 옆에서 크게 소리치면, 잠에서 깨어날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잠에서 깨어나면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은 느낌.





- 나를 픽업하러 온 아저씨 ㅋ


- 스카이다이브 익스프레스,


- 내가 타고 올라간 경비해기가 보인다,


- 낙하중인 다른 스카이다이빙 팀원


- 같이 스카이다이빙을 하러 온, 아츠유키/타츠오미 상


- 나의 DVD가 방영되고 있다................


- 스카이다이빙, 인증샷!








반응형

Ep]페루 - 잉카콜라 vs 코카콜라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0. 11. 17. 17:48

반응형
Second Edit.

- Inca Kola vs Coca Cola

1. 10년전 쯤 기억을 하나 되새겨 본다면,

  한창 콜라 열풍이 불어닥쳤던 그 시절이었던 것 같다. 티비에서는 많은 콜라 광고가 나왔고, 다양한 제품들이 쏟아졌다. 대표적으로 "콤비콜라". "815콜라" 등이 있었고, 콜라계의 지존 "코카 콜라". 그리고 그를 따라잡기 위한 "펩시 콜라" 등등. 많은 콜라가 있었다. 애국심을 마케팅 전략으로 한 815콜라. 그나마 먹어 줄만 했던 것 같다.
  미국 자본주의의 앞잡이라는 비판과 함께 친구들 사이에서 코카 콜라를 먹으면 안된다는 그런 논리 때문에, 펩시 콜라도 많이 마셨는데 지금 생각 해 보면, 역시 콜라는 코카 콜라다.[사실 난 어릴 때, 펩시콜라의 마크가 태극기의 태극마크와 비슷해서, 펩시콜라가 국산인 줄 알았다.]

  농구나 축구를 하고 나서, 동네 슈퍼앞에 모여서 형들과 돌려 마시던 콜라. 그리고 그 당시 나름 고급스럽게 보였던 컨피던스와 파워헤이드.[파워헤이드는 요즘도 운동하고 가끔씩 먹지만 웬지 고급스러워 보인다]

  콜라 춘추전국시대. 그런 시대가 있었다.


2.                       
  콜라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학창시절 다큐멘터리 보는 것을 참 좋아했다] 그 때가 아마도, 콤비콜라, 815콜라 등 코카콜라에 대항하여 여러 콜라들이 막 출시되던 콜라 춘추전국시대였던 것 같다.

그 다큐멘터리의 주제는 페루에서 코카콜라를 제치고 성공한 <잉카콜라>였다.
  페루의 "잉카콜라"는 좀 특이하게, 색깔에 있어서도 보통의 콜라와 차별성을 둔 노란색 콜라인데, 전세계 콜라중 유일하게 검은색이 아닌 노란색 콜라라는 것이었다. 콜라의 색깔을 노란색으로 한 이유는 노란색(황금색)은 고대 잉카제국의 황금을 상징하기 때문에 잉카제국의 후예라는 페루의 특성을 잘 살린 콜라라고 했다. 그리고 페루에서 잉카콜라는 코카콜라를 제치고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했다.


3.                          
  그 당시 나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생각했다. 언젠가 페루에 가면 페루에가면 잉카콜라를 먹어봐야겠다고 말이다.[페루에 실제로 가 보니, 잉카콜라는 유명하면서도 자부심이 대단한 것 같았다. 코카콜라는 없어도, 잉카콜라 없는 곳이 없을 정도?]

  페루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먹었던 콜라가 잉카콜라였다.[본인은 콜라빠로서 매 끼 식사후 콜라를 섭취하고, 심심할 때도 콜라를 먹는 콜라 중독자]
 
  맛? 괜찮은 것 같았다.[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이다] 좀 달짝찌근하지만 톡 쏘는 맛이 있다.[이 말은 단것을 많이 먹으면 입안이 끈적거리면서 텁텁한 기분이 드는게 보통이지만, 그런 기분이 들기전에 탄산의 톡 쏘는 느낌으로 인해 어느정도 해소가 된다는 말]
코카콜라와 견주어 봤을 때, 결코 뒤지지않는 맛이라고 생각했다.[나는 음식을 먹고 펩시 콜라를 먹으면 소화가 안될 뿐더러, 역시나 페루에서도 잉카콜라만 먹다보니 코카콜라가 그리워서 코카콜라를 사먹은적도 있다.]


4.                          
  페루의 리마[수도]의 싸구려 호수텔의 도미토리에 같이 묵고 있던 각국의 여행객들. 아르헨티나에서부터 여행을 하고 있다는 한 커플이 오늘 오전에 새로 들어온 한국인 여행객 "진"에게 저녁에 같이 밥도 먹고, 놀러 가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그는 딱히 할 일이 일정이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흔쾌히 수락 했다.

  그 날 저녁, 그들은 대통령궁앞을 지나 리마의 번화가에서 좀 벗어난 곳 한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각자 먹을 메뉴를 주문하고, 콜라를 주문했다. 그런데, 주문한 콜라가 코카 콜라였다.[메뉴에 모든 콜라는 2L여서, 2L 짜리 피트병이 배달되었다]

 그 때, 갈리시아출신의 남자애와 이탈리아 출신의 여자애 하나가 자신들은 코카 콜라를 먹지 않는다면서, 잉카콜라를 따로 하나 더 주문했다.[그들은 코카콜라 컴퍼니를 싫어해서, 코카콜라컴퍼니제품은 안먹는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잉카콜라를 먹을 사람이 더 없냐면서 잉카콜라를 권했다. 8명이 밥을 먹는데, 테이블에 코카콜라 2L 피트와 잉카콜라 2L피트가 나란히 올려져있었다.[한사람당 500ml씩 먹어야, 다 먹을 수 있는 분량?]


5.                               
  우리는 한창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밥을 먹고 있었는데 갈리사아애가 엄청난[코카콜라 컴퍼니의 제품은 먹지 않는다는 그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사실이었을 것이다] 사실을 발견하고 경악을했다.

무슨 일이냐고 갸우뚱 하는 우리에게, 그는 잉카콜라의 병을 들어 보였다.
잉카콜라의 제조회사가 코카콜라 컴퍼니(Cocacola company)였던 것이다.

뭐 어쩌겟나, 내용물만 코카 콜라의 검은 물만 아니면 되지! 우리는 그냥 잉카콜라를 먹었다 ㅋㅋ


6.                               
  그는 세계 상품시장은 자본의 힘에 의해서 지배당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 봤다. 예전에 그가 티비의 타큐멘터리에서 잉카콜라에 대해서 보았을 때 잉카콜라는 코카콜라에 대항해서 나온 페루의 자존심이었는데, 이제는 코카콜라컴퍼니의 배를 채워주기위해서 생산되는 이름만 "잉카콜라"인 잉카콜라를 보며, 씁쓸함을 느꼈다.

  그러면서 또 생각 했다. 코카콜라컴퍼니, 대단하다. 세계 콜라시장을 다 장악하려하다니.

7.                                
 페루 리마에서 우리끼리 웃어 댔던 이야기.






- 코카콜라


- 잉카콜라



 


- 잘 보이진 않지만, 필기체의 코카콜라 컴퍼니 마크. 내용물은 노란색의 잉카콜라.
반응형

워홀이야기]호주, 5000달러를 잃다?!

- 호주, 워홀이야기- · 2010. 11. 16. 13:21

반응형
Second Edit.



1.
   3일 뒤면 호주를 떠나 남미로 간다.[엄밀히 말하면, 퍼스를 떠나 시드니에 머물다가  시드니에서 미국가는 비행기를 타고, 미국에서 남미가는 비행기를 타는 일정이다]

그래서  텍스리턴을 위해 회계사 사무실에 찾아갔다. 조기 텍스리턴을 신청하기 위해서였다.

2.  호주에 7월 22일 도착해서,
  8월 9일 일을 시작했다.
농장에서, 약 7주[정확히 따지면 6주+3일] 일했고,  농장에서 5144달러를 벌었고 텍스로 670을 냈다.[막상 일을 끝내고 나니 내가 호주 정부에 바친 세금이 엄청났다. 한국에서 한국 정부에 낸 세금이라고는 담배소비세 몇 푼, 주차위반, 신호위반 벌금 밖에 없는데]
중간에 캐시(현금)로 받고 일한 것도 얼마정도 있지만, 그건 텍스리턴과 상관없으니,

공장에서 일을 했다. 10월 6일 부터 약 9주간. 공장에서, 9주 동안 14,626달러를 벌었고, 텍스로 3,513달러를 냈다. [호주 정부에
 매주 평균 400달러를 호주정부에 갖다 바쳤다, 일주일에 5-6일씩 일했는데, 하루 이상을 정부를 위해서 일해준거다. 이런 미친!]

공장에서 그 많은 텍스를 내면서도 생각했다. "호주를 떠날 때 돌려받을 수 있으니까"라고.


3. 연금이라는 것,
고용주가 노동자를 위해서 의무적으로 들어주게 되어있다.[한달에 천달러? 아무튼 그 이상 수입이 있을 경우]
그리고 연금회사에서 회원번호를 가입자에게 알려주게되어있다.[우편을 통해서]

하지만, 난 두 군데의 연금회사[농장에서 일 할 때 컨츄렉터가 소속된 회사에서 연금을 가입한 곳과, 공장에서 연금을 넣어준 회사]로부터, 아무 것도 받지 못했다.

그나마, 공장의 페이슬립(pay slip, 임금 명세서)에는 어느 회사에 연금을 넣는지 나와있어서 그 회사에 전화를해서 조회를 하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농장에서 일할 때 컨츄렉터의 회사가 어느 회사에 연금을 넣었는지 알 수 없었다.

급하게 계약서를 찾아봤는데, 고용 계약서를 이미 버려 버린 뒤였다 ㅠ [컨츄렉터의 회사로 전화를 해서 어디로 연금을 넣었는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전화번호가 없다.] 

농장에서 일할 때 내 앞으로 들어간 연금 470달러,
공장에서 일할 때 내 앞으로 들어간 연금 약 700달러.


4.
회계사의 말을 비롯한, 각종 인터넷의 자료를 뒤져보니,내가 낸 텍스 4000달러는 돌려받기는 힘들 듯했다.
내 앞으로 들어간 농장에서 일한 만큼의 연금 470달러도 받기는 힘들 듯했고, 공장에서 내 앞으로 넣어준 연금은 받을 수 있을 지의문이었다.[연금번호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아, 텍스리턴, 이런 조건이 있을 줄 몰랐다.

'호주에서 한 지역에 6개월 이상 머물렀거나 머물 예정인자.'

텍스리턴과 연금에 대해서 너무 무지했던 본인 ㅠ
정보는 알면 돈이고, 모르면, 돈날리는 것이라는 말이 얼핏 생각났다.

진작에 알았으면,
"여행 일정을 좀 늦추고, 6개월 딱 채우고 텍스리턴 신청 할 걸" 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적은 금액도 아니고, 내가 호주에서 일하고 정부에 낸 돈을 다시 받아 가겠다는 건데.[사실상 호주 정부가 나에게 해 준 복지혜택은 없었으니까. 난 의료비도 메디케어 혜택을 받지 못하고 내 돈내고 거의다 해결 했으니까]


5.
뭐, 어쩔수 없었다.

돈은 돈이고, 여행은 여행이니까
.

그래도, 호주에서 일하면서 호주에서 생활하고, 즐기고, 다시 여행할 만큼의 돈은 모았으니.
크게 마음 상하지말자고 생각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돈"욕심, 별로 좋지 않은거니까.




- 농장 페이슬립, 힐탑노미니스에서 일햇는데,,,홈페이지도 있다더니 구글검색해보니 나오지도않는다-_-


- 공장 페이슬립, 아래쪽에 연금이 있다. AMP라는 회사에 들어가고 있는 연금.




반응형

Ep]인도, 소나울리 - 테러를 당하다.(1)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0. 11. 13. 13:29

반응형

1. 거부[rejection]

  많은 장기 여행자[6개월 이상 여행을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들에게 중요한 것 한가지를 뽑으라면, 항공권을 저렴하면서도 잘 구매하는 것을 뽑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장기 여행자들이 많이 선택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편도 항공권.
   해외 여행을 떠날 때, 편도 항공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한가지 고민이 더 생기게 된다[이런 고민은 편도 항공권을 가진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이 고민은 일반적으로 편도 항공권을 가진 사람이 받는 '입국 거부'라는 부당한 대우와 관련이 되기 때문이다.
   여행을 가는 사람[특히, 장기 해외 여행]이 편도 항공권을 살까, 말까를 고민하면서 한 번쯤 생각해 보게 되는 문제. 편도 항공권으로 여행한다고 공항에서 입국거부 당하는 것은 아닐까[물론 입국 못하는 사례가 많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편도 항공권이라고 해서 그 공항에서 입국거부를 당했다는 사람을 실제로는 만나보지 못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여행사와 항공사의 이익을 위한 겁주기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해 본다]. 편도 항공권과 입국 거부에 관한 문제는 엉킨 실타래보다도 더 풀기 어려운 딜레마를 제공한다. 그것은 여행 자금의 문제와 여행을 제대로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사로 상충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경우로, 육로(陸路)로 여행을 하는 사람이라면, 국경이 폐쇄되거나, 입국 거부를 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실제로, 정치(政治) 상태가 혼란한 국가를 여행하려고 할 때는 그 인접 국가의 국경에서 출국을 금지시키기도 한다.

  여행이라는 것은 알 수가 없다. 여행(旅行, Traveling) 이라는 말 속에는 불확실성이 내포되어 있다[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그게 여행의 매력이라고 말 할 수 있다].


2.                
  이런 생각을 가끔 해보게 된다.  남한과 북한이 통일되면, 기차를 타고 중국으로 러시아로, 몽골로 여행을 할 수 있을 텐데. 낭만적으로 보이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한국에서 타고 갈 수 있을 텐데.라고 말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도 국경이 폐쇄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정확히 말한다면, 우리나라는 지금 전쟁중이다. 그리고 그 전쟁을 좀 오랫동안 쉬고 있는 것일 뿐이다]
. 남한과 북한을 연결하는 길을 함부로 밟을 수 없다. 그 길을 따라 남한에서 북한으로 가려면 비합법적이거나, 정치적, [그리고 정치인들이 말하기를]평화적, 인도적인 일을 한다는 명목으로 가야 한다. 그 경우를 제외하고는 남한과 북한을 잇는 길을 지나갈 수 없다. 다시 말해, 일반인[외국인과 한국인 모두를 포함하는 사람들]이 여행을 위해 남한과 북한의 국경을 함부로 넘어갈 수 없다는 말이다.

  어릴 때 살던 동네에 미군부대가 있었다. 미군부대에는 정문과 후문이 있었고, 그 옆 쯤 되는 곳에 철로가 놓여 있었다.  미군부대 안까지 쭉- 이어져 철조망을 관통하고 있는 철로. 가끔은, 그 철로를 위로 탱크나 전차 같은 무기들을 실은 열차가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의 집은 미군 부대의 후문에 가까운 곳에 위치하는 곳이었고, 중학교는 그 철로를 지나 얼마를 더 가야 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학교를 다녀오던 길에 종종 보이던 열차. 그 철로를 따라 천천히 흘러가는 열차를 보면서 저 열차를 따라가면 미군 부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텐데. 그러면 맛있는 피자와 햄버거를 싼 가격에 먹을 수 있는데!.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조금 더, 어릴 적. 미군부대에 출입할 수 있는 친구를 따라 미군부대의 수영장에서 수영하던 기억, 식당에서 피자를 사먹던 기억이 물방울처럼 피어 올랐다. 
  민들레 꽃씨가 날리는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오후.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길, 미군부대 안으로 이어진 철로가 나를 부르는 듯 했다. 나를 따라 들어오렴.이라고. 철로 위를 지나, 사람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던 철조망 문도 열려 있었다. 내가 들어와도 좋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철로 위에 발을 올렸다. 자연스럽게- 철로 위에서, 철로를 따라 걷고 있는 내가 있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누군가가 소리치고 있었다. 뭐지? 나는 주위를 둘러 보았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나를 부르는 것 같았는데. 들뜬 마음으로 나는 계속 걸었다. 어디선가 또 들려오는 소리. 누군가 나를 부르는게 확실했다. 누구지?.. 저 쪽, 감시탑 위에서 나를 향해 소리치는 한 군인이 보였다. 나에게 돌아가라고 소리쳤다. 아차, 역시- 나는 안으로 들어갈 수 없구나.


  나는, 쫓겨 났다. 거부 당했다. 미군 부대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 곳은, 대한민국이 아닌 곳이니까.
 


3.                        
  인도 조드푸르(Jodhpur)에서 뭄바이(Mumbai)로 가려고 했던 나는, 뭄바이로 가는 기차표의 좌석은 4일 뒤에 살 수 있다는 말에, 바라나시(Varanasi)로 가는 기차표를 끊었다[같이 있던 일본애가 바라나시로 간다기에, 나도 그냥 바라나시나 가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바라나시로 가는 2박 3일. 책을 보고, 또 보고 또 봐도 기차는 계속 달리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천천히. 
  동행하던 일본애는 바라나시에 도착하자마자 네팔(Nepal)로 갈 예정이라고 했다.  바라나시에서 네팔로 바로 갈 수가 있어?.라는 나의 물음에, 그는 바라나시에서 인도와 네팔의 국경도시인 소나울리로 가는 버스가 있다.고 대답해 줬다. 그는 그 버스를 타고 바로 네팔로 떠날 것이라고 했다. 
  
  나는 바라나시로 가는 것도 예정에 없던 이라, 네팔까지 간다는 그의 말에 별다른 흥미를 갖지 못했다. 거기다가, 내가 그 자리에서 나도 네팔로 가야겠어.라고 하면, 내가 너무 그 일본애를 따라가는 모양새가 될 것 같았기에 나는 바라나시에서 며칠간 머물기로 했다.일단 나는 바라나시에 머물면서 그 다음 어디로 갈지를 생각해 보기로 했다.

  지루한 시간들이 차창을 스쳐 지나가더니, 기차는 어느 새 바라나시에 도착했다. 그 일본애는 자신의 가이드북을 찢어서 나에게 주었다[나는 가이드북이 없었기 때문에 초반부터 힘든 여행을 하고 있었다]. 가이드북이 없던 나로서는 고마운 일이었다. 나는 그에게, 그는 나에게 서로의 여행에 행운을 빌어주며, 과일주스 한잔을 마시고 서로의 길을 향했다.
 
  나는 사이클 릭샤에 올라, 갠지즈 강가의 가트를 향해 갔다. 여기가 바라나시구나. 갠지즈강이 흐르는 곳. 인도의 젖줄기, 힌두의 성지. 여기서 무얼 하지.라고 생각하며, 숨막힐 정도로 먼지로 가득찬 인도의 도로를 달렸다.



4.                          
  그는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할 일이 없었다기 보다는 계획 없이 그 곳에 왔기 때문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가 머물고 있던 게스트 하우스의 식당에는 많은 여행자들이 남기고 간 책들이 있었다[그 곳은 휴식 공간처럼 꾸며져, 책도 볼 수 있고, 식사도 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었다]. 그는 여행자들이 남기고간 책, 그 중에서도 인도 여행에 관한 책들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여름이 막 시작되고 있는 바라나시의 오후 날씨는 무더웠다. 그는 더위를 피해, 그 게스트 하우스의 식당에서 시간을 때우며, 정보를 수집하기로 한 것이다. 여행 책자의 바라나시 부분을 열심히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바라나시의 역사, 문화, 먹을거리 등. 바라나시- 비록, 그는 그곳에 생각없이 갔지만, 그곳은 인도 여행에 있어서 생각보다 중요한 도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책의 내용 중에서도, 교통정보 부분을 열심히 뒤적거렸다. 그 곳에는 바라나시에서 네팔로 넘어가는 코스와 방법이 다양하게 있었다. 
  
  그가, 식당의 한쪽 귀퉁이에서 바라나시에서 네팔로 가는 방법에 관한 부분을 열심히 뒤적거리고 있을 때, 한쪽에서 밥을 먹던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는, 눈으로는 책을 보고 있었지만 귀는 그들의 말소리를 열심히 주워담고 있었다. 머릿속엔 이미 책의 내용은 들어오지 않았다. 저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 볼까?.라는 생각만 했을 뿐.

  대화의 내용을 유심히 듣던 그는, 그들이 네팔로 가려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그 사람들은 네팔로 가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었으므로]. 그는 슬며시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그리고 물었다. 혹시 네팔에 가세요? 네팔 이야기 하시길래.




5.                         
  그 사람들은 이틀 뒤 네팔로 떠난다고 한다. 네팔에 같이 갈 사람들을 모으고 있다고 했다. 나도 네팔로 가 볼까? 이틀 뒤. 어차피 나는 여기에 있어도 할 일이 그렇게 많은 것이 아니었기에, 일단 네팔로 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인도 여행을 해도 상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말했다. 네, 같이 가요. 

  나는 그들과 함께 네팔로 가기로 했다[그렇다고 네팔 여행을 함께 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국경을 같이 넘어가자는 이야기 였다. 국경을 넘고, 룸비니(Lumbini)에 잠깐 들렀다가, 대부분 포카라로 가서 히말라야 트레킹을 할 것이라고 했고, 나는 포카라가 아닌 카트만두로 갈 예정이었다]. 어차피 나는 인도를 지나 파키스탄으로 갈 예정이었기에, 파키스탄 비자를 네팔에서 받으면 쉽고, 편하게 받을 수 있다고 생각 했다. 네팔 여행도 할 겸, 네팔에 가서 파키스탄 비자를 받아오면 되겠다는 생각도 했다.
 
  
  나는 바라나시의 먼지로 가득찬 골목을 헤집고 돌아다녔다. 소똥을 피하고, 개똥을 포히고, 쓰레기들을 피해 골목을 헤메다가 지치면, 짜이를 파는 곳에서 3루피 짜리 짜이를 한잔 마시면서 인도 사람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사람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이틀 뒤 네팔에 간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나에게 네팔에 절대 가면 안된다는 말을 했다. 아니 왜? 나는 가야해.라고 내가 말했다. 그는 나에게, 
요즘 네팔에서 테러가 나서 사람들이 죽고 있어.라고 말했다.
테러?.나는 생각했다. 테러는 파키스탄을 이야기 하는거 아닌가?[파키스탄은 폰탄 테러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 지금 너 파키스탄 이야기 하는거 아니야?.라고 되묻자, 그는 말했다. 아니야, 네팔이 확실해. 그는 네팔이 지금 정치적으로 혼란 스럽다고 덧붙였다. 나는 그의 말을 신뢰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 나는 관광객인데 설마 나를 죽이기야 하겠어?.라고 말하며, 웃어 넘겼다.



6.                            
  네팔로 떠나기로 한 날, 여섯명이 모였다. 여섯의 사람들은 릭샤를 타고 역으로 향한다. 그들은 역에서 소나울리로 가기 위해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도 기차의 연착, 그것을 너그럽게 받아 들이면서[밤 12시 경 출발 해야할 기차가 새벽 5시 쯤 도착했다] 기차에 올랐다. 밤을 거의 새다 시피한, 그들은 몇 시간 뒤 종점인 박타푸르[기차는 박타푸르까지 운행했고, 박타푸르에서 소나울리까지 버스를 타거나, 지프(Jeep)를 타고 소나울리로 이동해야 했다]에 도착했다. 박타푸르 역 앞에서 지프두 대를 섭외한 그들은, 지프(Jeep)를 타고 소나울리로 갔다.

  소나울리에 가기 전[바라나시를 떠나기 하루 전], 그들은 네팔에 관한 좋지 않은 소식을 하나 들었다. 지금
네팔로 넘어가는 국경 검문소가 폐쇄되었다.는 소식. 네팔과 인도의 국경, 소나울리에서 온 다른 여행자들이 그런 소식을 들고 바라나시로 온 것이었다.
설마, 아무일도 없겠지.라고 생각하고 그들은 네팔로 떠난 것이었다. 이미, 가기로 한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니까. 가보면, 진실을 알게 되겠지.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그들은 바라나시를 떠난 것이었다.

  그들이 소나울리, 국경 사무소에 도착했을 때. 설마,라고 생각하던 일은 진실이 되어 있었다. 국경의 출입국 관리 사무소에서는,
"출국 허가 도장을 찍어줄 수 없음"이라고 엄포를 놓고 있는 상태였다. 출입국 관리 사무소의 직원들은, 가만히 의자에 앉아 있을 따름이었다. 

  그의 일행을 포함한 20명 정도되는 여행자들이 국경 사무실에 죽치고 앉아 있어야만 했다. 국경을 마음대로 들락 날락 하는 현지인들을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 보며[현지인들은 비자나 여권없이도 생활의 편의를 위해 왔다갔다 할 수 있었다], 열려 있지만 지나갈 수 없는 국경을 원망해야 했다.
  하지만, 몇몇 사람은 국경을 그냥 넘어 가기도 했다. 어차피 여권 검사만 안하면 불법 입국으로 처벌 받을 일도 없고, 며칠 네팔에 머무르다가 다시 인도로 올 것이니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여행자들에게 출입이 금지된 국경을 지나서 저 멀리 사라져갔다.

  태양은 저물어 어둠이 내려 앉기 시작했고, 거리에 붐비던 사람들도 거의 다 사라져갔다. 시간이 꽤 많이 흘렀다. 점심때쯤 도착한 국경에서 다섯, 여섯, 일곱...여덟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국경 사무실의 직원 앞에 놓인 전화기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모두가 그 전화기를 바라보면서, 그 속에서 국경을 넘어도 좋다는 소식.을 전해주기를 바랐다. 

   
여행자들은 보내 달라고 아우성을 질렀다.



7.                          
  네팔의 총리가 한 대학생 시위자에게 총을 맞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네팔에서는 지금 유혈사태가 일어나고, 각종 파업사태가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암울했다. 뭐지, 하필이면 내가 가려고 하는 이 때에. 일주일 전까지만해도 아무런 일도 없다고 했는데. 하필 이런 때에. 내 자신을 원망할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하- 더 이상, 기운을 차릴 수 없다. 언제까지 일까? 여기, 사무실에서 침낭을 펴야하나?

   어둠이 완전히 거리를 지배했을 때, 거리를 거닐던 사람들은 거의 다 사라졌다. 어디선가 이따금씩 비명같은 소음이 들려 올 때를 제외하곤, 적막함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런 시간들이 지속되던 가운데, 테이블 위에 고요히 놓여 있던, 묵묵히 침묵을 지키고 있던 전화기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전화벨이 울렸고, 모두들 그 전화기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제발.


  수화기는 생각보다 빨리 제자리를 찾아 갔다. 전화를 받았던 직원은, 별 말을 하지 않고 고개만 몇 번 끄덕였다. 표정도 변화가 없었다. 아직도, 출국 허가가 명령이 떨어지지 않을 걸까?. 약간의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이 가라 앉을 때쯤, 출입국 관리 사무소 직원은 천천히 입을 뗐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알파벳 몇 개가 흘러 나왔다. You can go Nepal. 모두들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각자 짐을 챙기고, 여권을 내밀었다. 하나,  둘 출국 카드를 작성했고, 스탬프를 찍었다.



8.                         
  어둠이 깔린 거리. 국경을 지나는 사람은 여행자들 밖에 없었다. 그들은 국경을 넘어, 네팔 출입국 관리 사무소로 향했다. 수십명의 여행자들이 달빛과 자신의 손전등에 의지해서 입국 카드를 작성했다. 사무실에서 네팔 비자(Nepal visa)를 사고, 스티커를 붙였다. 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그들이 국경을 넘은 시간. 국경에서 포카라, 카투만두로 가는 버스가 있을리 없었다. 밤늦은 시간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테러로 인해 버스 운행을 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곧 접할 수 있었다. 길의 중간 쯤에서 정권 반대파들이 버스를 향해서 테러를 감행하고 있기 때문에 버스운행이 전면 중단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일단 밤이 깊었으니, 근처의 한 호텔에서 하룻밤 묵기로 하고 다음 날 아침 일찍, 릭샤를 타고, 룸비니(lumbini)로 가기로 했다. 일단 그곳에서 며칠 쉬면서 네팔의 상황을 지켜보자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 소나울리


- 소나울리 출입국 관리 사무소


- 기다리는 여행객들


- 국경 게이트, 저 넘어는 네팔.







반응형

워홀이야기] 전복(全鰒)을 라면에?! - 호주에서,

- 호주, 워홀이야기- · 2010. 11. 12. 19:08

반응형
3rd Edit.



1. 전복,
"배가 전복되었다." 라고 할 때 쓰는 전복이 아니라,
바닷가의 바위에 붙어서 서식하는 흔히들 사람들이 말하길, 먹으면 그렇게~ 몸에 좋다는 그 전복(abalone, 全鰒)을 말씀이올시다.


2. "파스타"라는 드라마를 봤다. 그 드라마의 후반부에 남녀 주인공인 서유경(공효진 역)과 최현욱(이선균 역)이 함께 서유경의 아버지에게 찾아가 짬뽕을 먹는 장면이 나왔다. 그 짬뽕에 들어있던 전복!!  역시 전복과 사위에 대한 배려....

  전복 전복 전복 전복...그 장면을 보면서 호주에서 먹던 손바닥만한 자연산 전복이 생각났다. 드라마에서 말하길, 자연산 전복이 한마리에 20만원? 에게게? 내가 호주에서 먹던 전복보다 작은 크기처럼 보였는데... 그럼 난 호주에서 일주일에 400만원어치 이상의 전복을 먹었던 것인가??



3. 호주에서 맞이한 날씨 좋던 토요일
.
  9월 말, 농장에서의 일이 끝나고[사실상 짤린 것이었다. I'm fired!],  퍼스에 머물며 새로운 일을 구하고 있을 때, 아는 형[호주에와서 만난 형]다이빙을 가자고 연락이 왔다.

  마땅히 할 것도 없던 난[주말에는 에이전시를 비롯해서 모든 공장의 오피스가 업무를 안하므로], 당연히 다이빙을 하는데 따라갔다.  하지만, 아직 9월말이라서 그런지 바닷물은 생각보다 차가웠다. 바깥의 햇살은 비교적 따뜻했지만, 역시 바다라서 그런지 체감온도는 ㄷㄷㄷ 이었다. 
  생각보다 추운 물 온도 때문에 바닷물 속에 함부로 몸을 담그지 못하고, 그 대신 바닷가의 암초 주위를 돌아 다녔다. 그렇게 바닷가의 암초를 탐사(?)하던중, 같이 갔던 형이 뭔가를 발견해냈다..이게 웬걸? 전복의 껍질?? 그렇다면,, 전복이 주위에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우리 한번 전복을 찾아보자라고 말한 뒤 서로 흩어져 전복을 찾아보니 역시나,,전복이 바위 틈속에 꼭 꼭 숨어 있었다.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전복을 땃다.[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것은 불법이었다. 전복을 따려면 지정된 장소에서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만약 걸리면 집과 재산을 모두 날리고 감옥에 갈 정도의 벌금이..^^%]

  우리는 집으로 돌아와, 그 날 잡은 생선은 매운탕을 끓여 먹고 함께 따온 전복은 회를 쳐 먹고 나머지는 라면에 넣어 먹었다.

4. 일요일.
  일요일은 토요일 보다 날씨가 많이 따듯했다. 햇살이 강렬하게 내리쬐는 로킹햄(Rockingham)의 비치(beach). 이 날은 전복을 따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바다에 나온 날이었다. 바닷속을 헤엄쳐서 전복이 많이 있을만한 곳으로 가니, 역시나! 전복 밭이었다. 기쁜 마음으로 전복을 땄다. 한두마리가 아니라, 수십마리가 모여있었다. 크기도 대부분 손바닥 반 이상의 크기여서 즐거운 마음으로 전복을 땄다.  그 전복을 가지고, 여럿이 회도 쳐먹고, 라면도 매운탕도 끓였다.


5.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공장에서 일하는 형과 키위[뉴질랜드인]한명이 전복을 따러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소리를 듣고 귀가 번쩍뜨인 난, 나도 같이 가면 안되겠냐고 물었다. 당연히 오케이! 다다익선이라고, 함께 가기로 했다. 이미 눈으로 보지 않고 손에 잡히는 감각만으로 전복따는 기술을 익힌 나로서는 내 실력을 제대로 발휘해 볼 기회였다.
 
  몇 년 째 전복을 따러 다닌다는 키위(이름은 가브리엘)의 정보에 의하면 11월 1일부터 전복시즌이 시작되는데 라이센스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복라이센스가 뭐냐고 묻자 라이센스에 대해서 알려 주었다.[전복 라이센스란, 전복을 따기위한 자격증인데(일종의 허가증), 우체국에가서 $44 에 살 수 있었다.] 우체국에가서 신청서를 작성하고 돈을 지불하고 신청하자 3일 후 집으로 라이센스가 왔다. 드디어 합법적으로 전복을 딸 수 있었다.



6. 11월 1일 일요일.
  드디어 공식적으로 전복을 잡는 날이 찾아왔다. 하지만 라이센스가 있다고 매일 전복을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퍼스perth를 기준으로 200km이내의 지역에서는 일요일 오전7시-오전8시 사이의 1시간만이 전복을 잡는것이 허용되었다.
또한, 잡을 수 있는 마리수가 제한되어 있어서 하루에 20마리만 잡을 수 있었다.[20마리를 잡아도 전부 손바닥만한 크기를 잡기 때문에, 일주일 내내 먹어도 전복을 다 먹지 못했다]
그래도 그게 어디야? 44달러짜리 라이센스로, 일주일에 20마리,,1달 4주면 80마리?!

  전복을 따기 시작한지 첫번째날 이라 그런지 전복들이 하나같이 정말 컷다. 손바닥 만한것들로 20마리를 땃다. 전복을 따면서 몇 마리는 우걱우걱씹어먹었다....그냥 바로 따자마자 바닷물과 함께말이다. 자연산 전복은 그 자리에서 바로 먹어줘야 몸에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전복을 씹어 먹으면서 전복을 땃다. 어차피 가져갈 수 있는 건 20마리니까..20를 다 따고나서 바닷속에서 전복을 먹어 댓다.

그렇게, 전복을 따러 다녔다. 일요일 아침마다.
전복을 11월 1일부터 매주 일요일마다 계속 딸 수 있는게 아니라 12월 초까지만 허용된다고 했기에 열심히 따야지 생각했다. 이 기회에 몸보신이라도 제대로 해 보겠다고 생각하며 매일 일요일 아침마다 필승의 결의를 다졌다.ㅋㅋㅋ


7.
아무튼, 호주에서 내가 잡은 전복만 100마리가 넘었다...

전복을 가장,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은 단연!!!
라면에 전복을 넣어서 먹기,,,
짜파게티에도 전복을 넣어서 먹어보고,
밥에도 넣어서 전복밥도 해먹어보고,
전복 볶음밥도,
전복 볶음도,
전복 스파게티도,
전복 비빔밥(?)도,
전복 회덮밥도,
전복 죽도,
전복을 넣고 간단하면서도 맛있을 방법을 연구해서 요리를 만들어 먹어봤다.


그래도 그냥 간단하게 전복을 먹는 방법은 전복라면인듯!![사실, 전복을 먹는건지 그냥 오징어를 먹는건지 구분은 잘 안된다. 특히 오징어짬뽕에 넣어 먹을때는 더욱더!!!]

자연산전복을, 라면에 넣어서 먹다니...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데,,,,,,,,,호주니까 가능한가??

호주에서는,
자연산 전복을 라면에 넣어먹는다!![라면을 끓일 때 마다 전복을 넣어 먹던 나를 보고, 옆방에 살던 누나가 자주 하던 말이 있다 "나는 결코 라면에 이 귀한 전복을 넣어 먹을 수 없어"]

이런 일, 호주니까 해 보는거 아닐까?






- 전복라면! 완성품



- 전복


- 전복을 송송송송 썰어서, 초장에도 찍어먹고~


- 부글부글 맛있는 라면~



- 만찬,





반응형

워홀이야기] 호주, 공장에서 일하다.

- 호주, 워홀이야기- · 2010. 11. 10. 13:41

반응형
Second Edit.(first edi 09.12.06)

1. 공장에 취직하고 처음 몇 주간.
정말 부지런히 열심히 일했다. 좀 힘든일, 작업 분량이 많아도 군소리 하지 않고 묵묵히 일 했다.
사실 내가 생각 할 때 크게 힘든 것도 없었다.[농장에서 일하던 것에 비하면 정말 쉽고, 힘들지 않는 일들이라고 생각했을 정도]

같이 일하는 동료들중에 일을 하면서 힘들다, 소세지가 무겁다고 투덜대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런 말을 들을 때 마다 맞장구를 쳐 주기는 했지만, '이게 정말 힘든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농장에서 일을 하면서 몸을 단력 시키고[미친듯이 일했었다] 나서 공장으로 온 온 나로서는 공장에서 하는 일들은 많이 힘들지 않으면서 쉬운 일들이었다.


2. 특히,
  소시지 및 햄, 베이컨 등을 만드는 공장이다보니 공장안이 시원했다[한여름에도 추워서 일을 할 때는 옷을 몇 겹씩 껴입어야 했다]. 실내는 항상 최소 냉장고 냉장실의 온도[패킹룸쪽은 냉동실 수준의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공장안은 추워서 파리가 없었지만, 공장 밖으로 잠깐씩 나가는 순간 파리떼들이 습격해 왔다]

  호주에서 내리쬐는 강렬한 태양 아래에서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좋았다.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고,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말로는 벌써부터 일 할 때 최소 수십마리의 파리들이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렸다.

  농장보다 시급이 높아서 좋았고, 일하는 시간도 많아서 좋았다. 그리고 시원한 곳에서 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새벽에 몰래 창고에서 소시지를 꺼내먹는 재미가 있어서 좋았다.[농장에서는 과일따먹는 재미가 있었지만] 아무튼 여러가지로 좋았다. 그 중에서 가장 좋은 건 돈을 많이 준다는 것.



3. 필라델피아, 내 너를 저주하리다!!
  필라델피아라는 햄이 있다. 햄 한덩어리가 사람 머리통보다 큰 놈인데, 스틱 하나에 3개가 걸려 있다. 그것들 세개[하나의 스틱]을 끓는 물에 담궈서삶아야 하는데, 완전 노가다로 그 녀석들을 번쩍!들어서 물에 집에 넣어야 한다. 그 녀석들 보기에도 무거워 보이지만 실제로도 엄청 무겁다....... 
  그런데 항상 그 일을 해야 할 때마다 나를 시키는 것이었다.....ㅠ_ㅠ... 내가 처음에 잘 보이려고 일을 너무 열심히 막 하다보니, 내가 그걸 잘 하는줄알고 나를 시키는 것이었다.[다른 사람이 모두 꺼려하니까, 제일 만만한게 나였나 보다]

  처음에 그 무거운걸 무식하게 하루에 수십개씩 들었다가 놓았다가를 반복했다.[나중에는 요령이 생겨 비교적 쉽게 했지만] 무게로 치면 아마 하루에 몇 톤 정도 물에 담갔다 뺐다 했다.
 
  항상 그녀석을 들어 옮기면서 생각했다.아 필라델피아,,"내가 미국에 가면 반드시 필라델피아 역(驛)에 침을 뱉고, 길바닥에도 침을 뱉고 돌아다닐 것라고.."
 필라델피아 햄 때문에 팔목이 나가서 몇 주간 고생했다. 처음엔 어깨에도 무리가가서 어깨가 아팠다. 만병의 근원이 필라델피아 햄이었다.

  나는 어느새, 무거운 햄, 소세지류를 들어서 트롤리[햄들을 쌓아두는 거치대같은 것]에 걸거나, 옮기는 일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런 일을 도맡아서 하는 사이 내 몸 속에서는 이두근, 삼두근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라고 있었다.


5. 
  서브웨이(SUBWAY), 헝그리잭스(Hungry Jack's, 호주의 버거킹)에 납품하는 베이컨을 내 손으로 만들고 있었다.
서브웨이 고기를 자르고, 베이컨을 만들고, 헝그리잭스 베이컨을 만들었다.  만들면서 생각했다. "호주 사람들은 내 손으로 만든 고기들을 먹는구나, 내 침도 자연스럽게 먹는구나"[일을 하면서 지루하기 때문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니까, 당연히 침이 튄다]라고.

헝그래잭스 베이컨을 만드는 일은 내가 공장에서 가장 많이 한 일 중에 하나였다. 사실, 헝그리잭스를 하는 일이 싫었다. 어려운 건 아니었다. 정말 쉬운일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너무 지루했다. 쉬운일을 계속 반복해야 했다. 매일매일 헝그리잭스에 납품하는 물량이 고정적으로 있었기 때문에 매일 엄청난 양을 만들어야 했다. 길고, 지루한 작업의 연속이었다.
특히, 헝그리잭스는 복도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약간 더운곳에서 작업을 했다..그래서 가끔 더울 때도 있었다. 그게 싫었던거였다.


6. 몇 주 후,
  처음 2-3주간 일을 너무 열심히 한 것이 잘못이었다[보통 사람들은 처음에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 처럼 나도 그랬다].  공장에서 일 할 때 대부분이 일을 천천히 하면서 일의 양과 자기가 집에 갈 시간을 맞추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그들과 같이 일을 하다보니 나 또한 속도를 맞추게 되었다. 그것이 편했다.[일을 쉽게, 천천히 할 수 있었으니까]
  특히, 나와 일을 같이 많이 한 콩고출신의 "자바"가 그랬다.[우리파트에서 일을 젤 천천히 하고 농땡이를 피우는 녀석으로 꼽혔다]
가끔씩, 너무 일을 천천히하고, 안하려고하는 모습을 보여서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같은 회사 동료니까 참았다. 그냥 난 묵묵히 할 일을 했다.



7.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나보다 오랬동안 일을 했던 외국애들(최소 몇 년씩 일을 한 애들) 및 슈퍼바이저, 작업반장이 나를 보는 시선이 별로 좋지 않다는 걸 느꼈다.일하는 속도가 느리다는 거였다. 게을러졌다고,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속도가 느린건 아니었다. 난 그냥 나와 같이 하는 애들의 속도를 맞추어 주었다. 빨리하면 빨리하고, 천천히하면 나도천천히 하고,, 천천히 하는쪽이 많긴 했다.

결국 난,
일을 천천히 한다. 못한다 등 호박씨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는 소식을 들었다.[공장에서 일을 오랬동안 하면서 슈퍼바이저, 작업반장 등과 친하게 지내는 외국인이 나와 친하게 지내는 한국인에게 그 말을 해 주었고, 난 그 소식을 알게 되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그러려니 했다.

8. 그냥, 난 내 할일을 했다.
 어쩌겠나? 사람의 마음이 한 곳으로 기울어 지면 되돌리기가 처음보다 더 힘든 것을. 그리고 어차피 여기서 9주만 일할 거니까라고 생각했다.
 일을 못한다고 호박씨 깔때는 다 까면서 또 필요하면 나를 불러서 힘쓰는 일을 많이 시켰다. 그렇다고 해서 나도 기분나빠 하지 않고 그냥 내 할일을 했다. 그게 그냥 편했다. 그러려니~ 필라델피아, 베이컨, 로스트비프, C.O.B,,, 힘쓰는 일은 내 담당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공장에서의 생활이 마무리되어갔다.





- DORSOGNA, 콸리타,


- 필라델피아,,,보기만 봐도 토나온다ㅋ


- 이곳이 햄들의 욕조!


- 요렇게 집어 넣는다,,


- 키친룸,,급하게 몰래 찍느라 완전 화질 구림 ㅋㅋㅋ 베이컨, 치즈마일드 소시지, C.O.B 등등..


- 오른쪽이 C.O.B 보기만봐도 무거워보인다...돼지 뒷다리 ㅋ
왼쪽은 치즈마일드,,제일 맛있는듯 안에 치즈가 들어있다 ㅋㅋ


- 오른쪽 구석탱이에 자바, 나와 함께있는건 칸쿠,
초록색옷입은애는 이름 물어보면 이런다."한국사람 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