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주] 미녀(美女) 공화국, 베네수엘라 - 카라카스(Caracas)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1. 2. 19.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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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zil - Santa Elena de Uairen - Ciudad Bolivar - Caracas(카라카스) - Cuba, Havana(쿠바 하바나)



1. 지금 당신의 지갑 속에는 몇 장의 카드가 들어있나요? - 신용카드(체크카드,현금카드) vs 여행자 수표.

   지갑 속을 들여다 보면 몇 장의 카드가 눈에 띈다. 포인트 적립 카드를 비롯해서 신용카드(체크카드), 보안카드 를 비롯한 다양한 카드들. 카드가 난무하는 시대에 현금 지폐를 비롯한 일정 금액의 가치와 동등한 효력을 가진 종이들은[수표나 상품권 등] 그 설자리를 점점 잃어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여행을 하면서 꼭 챙겨야 하는 필수 품 중 하나였던 여행자 수표는 이제는 여행 필수품이라는 항목에서 제외된 듯한 느낌이 든다. 그 자리를 대신해서 현금카드 혹은 신용카드가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불과 몇 년 사이에] 
  2004년 겨울 유럽 여행의 필수품은 여행자 수표였다.[특히 지점이 많아서 편리하다고 알려진 토마스쿡은 인기가 많았다] 그 당시 많은 이들이 여행자 수표를 이용했고, 그 이후에도 많은 이들이 여행자 수표를 이용하였다.[여행자 수표의 장점은 환전 수수료가 비교적 적었고, 분실시 발행 코드를 알고 있으면 재발행 할 수 있고, 본인 서명이 없으면 사용 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여행자 수표를 교환해 주는 지점이 없으면 환전을 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 할 수 있다는 점이 단점] 2010년 까지도 여행자 수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보았지만, 그 수는 급감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자리를 신용카드나 현금카드가 대체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현급지급기(ATM)가 있으면 그 자리에서 전산환율로 바로 현금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을 바탕으로 많은 이들이 현금카드를 가지고 다닌다.[특히 시티은행의 경우는 해외에서 돈을 찾을 때도 수수료가 면제 된다]

  하지만 현금카드, 신용카드의 편리성에 따른 위험성도 간과할 수 없다. 카드를 분실하게 될 경우 여행에 필요한 현금을 충당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을 갖기 힘들고, 다량의 현금 유출 이라는 참혹한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2. 어디에서나 현금카드가 편하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2005년 동유럽을 여행 할 때였다. 크로아티아 스플리트(split)에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모스타르(Mostar)로 가는 버스를 타기위해 버스 정류장 옆에 있는 현금지급기에서 돈을 찾았다. 그 당시 현금지급기는 건물의 벽에 붙어 있는 오픈형이었고, 나는 버스 시간에 쫒기고 있었기에 돈을 급하게 찾아 버스표를 사고 바로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몇 시간을 달려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국경에 도착했고, 소지품 검사와 여권 검사를 할 때 현금지급기에 카드를 그대로 꽂아 놓고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스타르에 도착해서 내 계좌의 잔고를 확인 해 보았을 때, 내 통장의 잔고는 0원에 가까운[희미한 기억으로는 8백 몇 십원] 숫자를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렇게 통장에 들어있던 여행 경비를 모두 도둑 맞은 것이다.

  2009년 베네수엘라의 카라카스에서 은행의 현금지급기앞에 섰다. 그리고 카드를 집어 넣고, 베네수엘라에서 사용 할 돈을 넉넉하게 찾았다[전산환율로 원화 대비 베네수엘라 페소로 바로 계산되어 출금되었다]. 생각보다 베네수엘라의 물가가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은행에서 찾은 돈을 원화로 계산해 보고, 길거리의 음식들의 값을 계산 해 보니] 물론 나는 달러가 있었지만, 쿠바와 자메이카에서 US달러를 써야 했기에 달러를 환전하지 않았다. 그리고 베네수엘라를 떠나 쿠바, 자메이카를 거쳐 미국으로 갔다.

  미국에서 들은 이야기. 베네수엘라는 고정환율이라서 달러로 환전 하면 물가가 엄청나게 싸게 느껴지지만, 현금지급기에서 돈을 찾아서 생활하게 될 경우 물가가 엄청 비싸진다고. 나는 그제서야 베네수엘라의 물가가 비싸게 느껴졌던 이유를 알았다.



3.  미인들의 나라 베네수엘라?

  베네수엘라. 왠지 모르게 낯설지 않은 나라 이름이었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 본 듯한 느낌이 들었던 베네수엘라. 한 번도 가보지도 않았고, 지도에서 어디에 있는지 마음먹고 찾아 본 기억이 없는 나라였다. 그 나라에 대해서도 잘 아는 것이 없었다. 단지 차베스라는 대통령의 이름만 TV에서 얼핏 들은 것 같았다.

  그런데, 누군가 말해주었다. 세계에서 미스 유니버스가 가장 많이 나온 나라. 베네수엘라. 아, 미인의 나라! 그리고, 사람들이 나에게 했던 말들이 기억났다. 내가 베네수엘라에 간다고 하자, 좋겠다. 부럽다고 하면서 덧붙였던 말들. 이쁜 여자들을 많이 볼 수 있겠네. 사진 많이 찍어. 남자, 여자 할 것없이 나에게 그런 말을 했었다. 그랬구나.

  미스 유니버스, 미인의 나라. 베네수엘라.



4. 카라카스. 두 가지 세계.
 
  볼리바르(Ciudad Bolivar)에서 버스를 타고 카라카스로. 볼리바르에서 루리로와 헤어졌다. 루리로는 나에게 저녁 때 같이 떠날 것을 권했지만 나에게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는 나와 내가 길거리에 나가서 악기를 연주하면 재미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어쩌면 돈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나의 잠베와 루리로의 피리의 합주를 말한다]. 하지만 나는 더운 날씨에 길거리에서 공연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고, 쿠바로 가는 비행기편을 알아보러 카라카스로 가야 했다. 루리로에게는 미안한 일이었고, 나로서도 이렇게 바쁘게 어디론가 떠나는 것은 원치 않았지만, 베네수엘라에 머무는 것 보다 쿠바에서 하루라도 더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물론 베네수엘라가 싫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쿠바에 대한 기대가 너무나도 컷기에 쿠바에서 하루라도 더 머물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일 뿐이다]
  
  카라카스로 향하던 버스는 어느덧 도시에 진입하려 하고 있었다. 고속도로의 거의 끝 부분 도시의 진입로 근처에 산 등성이를 타고 무너져 가는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얼핏봐도 그 곳은 빈민가 처럼 보였다[그 곳의 사진을 몇 장 찍었는데, 그 곳에서 만난 대학생들이 그 사진을 보고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말해 주었다]. 버스는 얼마간을 더 달려, 높은 빌딩들이 서 있는 도심으로 들어왔고, 사람들과 짐들을 토해냈다. 사람들은 각자의 짐을 주섬주섬 주워들고 뿔뿔히 흩어졌다. 나도 사람들의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버스에서 내리기 전에 보았던 지하철 입구를 향해 걸었다.

  지하철을 타고 도심으로 향했다. 카라카스에는 저렴한 게스트하우스가 없었기에, 론니플래닛에 나와있는 가장 저렴하다는 숙소로 찾아갔다. 러브 모텔을 개조한 숙소라고 적혀 있었는데, 역시나 러브 모텔의 느낌이 살짝 배어 있엇다. 내가 도착했을 때 싱글룸이 없었기에 나는 더블룸에서 혼자 묶어야 했고, 숙박 요금은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했지만 다른 대안은 없었다.

  시내 중심가를 거닐었다. 많은 사람들이 시내 중심가에서 쇼핑을 하고 음식을 먹고 있었다. 하지만 밤이 깊어가자 사람들은 하나 둘 씩 모습을 감추었고, 나는 나이트 클럽에나 가볼까 하는 요량으로 이곳 저곳을 배회하고 있었지만, 거리의 분위기는 외국인 여행자가 혼자 함부로 돌아다니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론니플래닛의 한 구절이 내 머릿속에 자꾸 나타났다. "밤에는 위험하니 반드시 숙소 앞에서 택시를 타고 목적지로 이동 할 것. 혼자 절대 돌아다니지 말 것."

 

5. 그 곳은 아직도 변화를 원한다.

  시내 곳곳을 돌아다녔다. 지하철 요금은 정말 쌋다. 버스 요금도 쌋다.[석유가 생산되고 있는 나라기 때문에 저렴하다고 들었다] 지하철을 타고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고, 항공사를 찾아가 비행기 표를 알아보러 다녔고, 관광 안내도의 여러 가볼만 한 곳을 찾아 가 보았고, 대형 서점들을 찾아가 보았고, 사람들이 모여드는 번화가의 거리를 걸었다.

  경찰차와 경찰오토바이들이 어디론가 몰려가고 있었다. 아까전에 지나온 곳에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이 모여 있었는데, 그 곳으로 가는 듯 했다. 다시 그 곳으로 가서 그 현장을 구경했다. 한쪽에서 외치고 있었다. 차베스! 차베스! 사람들은 함성을 질렀고, 누군가는 연설을 했다[그 사람이 차베스는 아니었다] 여러 사람들이 큰 대로 위에 설치된 연단 같은 곳에서 무언가를 말했다. 사람들은 그들의 말에 호응했고, 함성을 질렀다. 내가 대학시절 겪었던 그런 광경이 내 눈앞에 오버랩 되었다. 과연 이들이 내가 생각하는 이들일까?

  서점에서 엽서를 몇 장 사서, 엽서를 보냈다. 그리고, 가이드북에 소개 되어있는 올드 시티를 구경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6. 우리와 같은 방향이네요? 같이 가요.

  매표소 옆, 벽에 그려져 있는지하철 노선도를 유심히 보고 있었다. 가이드 북에 나와있는 노선도와는 약간 달랐다. 그래서 가이드 북의 노선도와 벽에 그려져있는 그림을 유심히 번갈아 가며 보고 있엇다. 그 때 누군가 영어로 말했다. 메이아이헬프유? 나는 나의 목적지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들도 거기 까지 간다고 하면서, 같이 가자고 했다.

  남자 셋, 여자 셋이었다. 세 커플 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중에서 영어를 제일 잘 하는 듯한 여자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영어로 이것 저것 이야기를 주고 받았고, 다른 사람들과도 나의 짧은 스페인어로 대화를 했다. 대학생. 나이는 21, 22살. 

  목적지에 내려 내가 어디로 가려고 한다고 말하자, 그들은 나를 안내해 주었다. 그 곳도 번화가 중의 하나였는지 사람들이 많았다. 공원 같은 곳에 둥글게 서서 담배를 피웠다. 담배를 다 피우자 왠지 서먹서먹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니들 술마시러 가냐?

그들은 웃으며 말했다. 응, 술마시러 가. 오늘 하우스 파티를 하기로 했거든. 그리고 덧붙였다. 너도 안바쁘면 같이 갈래?

하우스 파티? 나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얘들이 나를 어디 가둬놓고 돈을 갈취할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올드 시티를 돌아볼 계획을 취소하고 그들과 함께 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들을 따라, 하우스 파티를 한다는 애의 집으로 갔다.


 
7. 대학생들 그리고 하우스 파티.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난 아이들과의 하우스 파티. 그의 아파트에서 음악을 들으며, 술을 마셨다. 저렴한 와인 같은 것을 마셨는데, 도수는 그리 세지 않았다. 나에게 많은 술을 주었지만 내가 취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마존에서 배운 라틴 댄스를 추었고, 삼바와 살사도 추었다. 어우러져 사진도 찍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낮부터 저녁까지, 그리고 밤까지 놀았다. 

  라틴 아메리카의 사람들은 파티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춤도 정말 잘 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카라카스에서의 일정도 끝나가고 있었다.



  

- 벽에 그려져 있던 그림


-


- 도시 외곽의 빈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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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 시내



-



- 집회






- 경찰 출동



- 파뤼파뤼 가는 중


- 원래 여기서부터 올드시티 구경을 하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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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붓하게 술을



-



- 댄스타임


- 시벨과 카를로스


- 그래피티




-출근길 지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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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인도, 소나울리 - 테러를 당하다.(1)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0. 11. 13.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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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부[rejection]

  많은 장기 여행자[6개월 이상 여행을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들에게 중요한 것 한가지를 뽑으라면, 항공권을 저렴하면서도 잘 구매하는 것을 뽑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장기 여행자들이 많이 선택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편도 항공권.
   해외 여행을 떠날 때, 편도 항공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한가지 고민이 더 생기게 된다[이런 고민은 편도 항공권을 가진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이 고민은 일반적으로 편도 항공권을 가진 사람이 받는 '입국 거부'라는 부당한 대우와 관련이 되기 때문이다.
   여행을 가는 사람[특히, 장기 해외 여행]이 편도 항공권을 살까, 말까를 고민하면서 한 번쯤 생각해 보게 되는 문제. 편도 항공권으로 여행한다고 공항에서 입국거부 당하는 것은 아닐까[물론 입국 못하는 사례가 많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편도 항공권이라고 해서 그 공항에서 입국거부를 당했다는 사람을 실제로는 만나보지 못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여행사와 항공사의 이익을 위한 겁주기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해 본다]. 편도 항공권과 입국 거부에 관한 문제는 엉킨 실타래보다도 더 풀기 어려운 딜레마를 제공한다. 그것은 여행 자금의 문제와 여행을 제대로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사로 상충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경우로, 육로(陸路)로 여행을 하는 사람이라면, 국경이 폐쇄되거나, 입국 거부를 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실제로, 정치(政治) 상태가 혼란한 국가를 여행하려고 할 때는 그 인접 국가의 국경에서 출국을 금지시키기도 한다.

  여행이라는 것은 알 수가 없다. 여행(旅行, Traveling) 이라는 말 속에는 불확실성이 내포되어 있다[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그게 여행의 매력이라고 말 할 수 있다].


2.                
  이런 생각을 가끔 해보게 된다.  남한과 북한이 통일되면, 기차를 타고 중국으로 러시아로, 몽골로 여행을 할 수 있을 텐데. 낭만적으로 보이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한국에서 타고 갈 수 있을 텐데.라고 말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도 국경이 폐쇄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정확히 말한다면, 우리나라는 지금 전쟁중이다. 그리고 그 전쟁을 좀 오랫동안 쉬고 있는 것일 뿐이다]
. 남한과 북한을 연결하는 길을 함부로 밟을 수 없다. 그 길을 따라 남한에서 북한으로 가려면 비합법적이거나, 정치적, [그리고 정치인들이 말하기를]평화적, 인도적인 일을 한다는 명목으로 가야 한다. 그 경우를 제외하고는 남한과 북한을 잇는 길을 지나갈 수 없다. 다시 말해, 일반인[외국인과 한국인 모두를 포함하는 사람들]이 여행을 위해 남한과 북한의 국경을 함부로 넘어갈 수 없다는 말이다.

  어릴 때 살던 동네에 미군부대가 있었다. 미군부대에는 정문과 후문이 있었고, 그 옆 쯤 되는 곳에 철로가 놓여 있었다.  미군부대 안까지 쭉- 이어져 철조망을 관통하고 있는 철로. 가끔은, 그 철로를 위로 탱크나 전차 같은 무기들을 실은 열차가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의 집은 미군 부대의 후문에 가까운 곳에 위치하는 곳이었고, 중학교는 그 철로를 지나 얼마를 더 가야 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학교를 다녀오던 길에 종종 보이던 열차. 그 철로를 따라 천천히 흘러가는 열차를 보면서 저 열차를 따라가면 미군 부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텐데. 그러면 맛있는 피자와 햄버거를 싼 가격에 먹을 수 있는데!.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조금 더, 어릴 적. 미군부대에 출입할 수 있는 친구를 따라 미군부대의 수영장에서 수영하던 기억, 식당에서 피자를 사먹던 기억이 물방울처럼 피어 올랐다. 
  민들레 꽃씨가 날리는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오후.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길, 미군부대 안으로 이어진 철로가 나를 부르는 듯 했다. 나를 따라 들어오렴.이라고. 철로 위를 지나, 사람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던 철조망 문도 열려 있었다. 내가 들어와도 좋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철로 위에 발을 올렸다. 자연스럽게- 철로 위에서, 철로를 따라 걷고 있는 내가 있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누군가가 소리치고 있었다. 뭐지? 나는 주위를 둘러 보았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나를 부르는 것 같았는데. 들뜬 마음으로 나는 계속 걸었다. 어디선가 또 들려오는 소리. 누군가 나를 부르는게 확실했다. 누구지?.. 저 쪽, 감시탑 위에서 나를 향해 소리치는 한 군인이 보였다. 나에게 돌아가라고 소리쳤다. 아차, 역시- 나는 안으로 들어갈 수 없구나.


  나는, 쫓겨 났다. 거부 당했다. 미군 부대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 곳은, 대한민국이 아닌 곳이니까.
 


3.                        
  인도 조드푸르(Jodhpur)에서 뭄바이(Mumbai)로 가려고 했던 나는, 뭄바이로 가는 기차표의 좌석은 4일 뒤에 살 수 있다는 말에, 바라나시(Varanasi)로 가는 기차표를 끊었다[같이 있던 일본애가 바라나시로 간다기에, 나도 그냥 바라나시나 가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바라나시로 가는 2박 3일. 책을 보고, 또 보고 또 봐도 기차는 계속 달리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천천히. 
  동행하던 일본애는 바라나시에 도착하자마자 네팔(Nepal)로 갈 예정이라고 했다.  바라나시에서 네팔로 바로 갈 수가 있어?.라는 나의 물음에, 그는 바라나시에서 인도와 네팔의 국경도시인 소나울리로 가는 버스가 있다.고 대답해 줬다. 그는 그 버스를 타고 바로 네팔로 떠날 것이라고 했다. 
  
  나는 바라나시로 가는 것도 예정에 없던 일이라, 네팔까지 간다는 그의 말에 별다른 흥미를 갖지 못했다. 거기다가, 내가 그 자리에서 나도 네팔로 가야겠어.라고 하면, 내가 너무 그 일본애를 따라가는 모양새가 될 것 같았기에 나는 바라나시에서 며칠간 머물기로 했다.일단 나는 바라나시에 머물면서 그 다음 어디로 갈지를 생각해 보기로 했다.

  지루한 시간들이 차창을 스쳐 지나가더니, 기차는 어느 새 바라나시에 도착했다. 그 일본애는 자신의 가이드북을 찢어서 나에게 주었다[나는 가이드북이 없었기 때문에 초반부터 힘든 여행을 하고 있었다]. 가이드북이 없던 나로서는 고마운 일이었다. 나는 그에게, 그는 나에게 서로의 여행에 행운을 빌어주며, 과일주스 한잔을 마시고 서로의 길을 향했다.
 
  나는 사이클 릭샤에 올라, 갠지즈 강가의 가트를 향해 갔다. 여기가 바라나시구나. 갠지즈강이 흐르는 곳. 인도의 젖줄기, 힌두의 성지. 여기서 무얼 하지.라고 생각하며, 숨막힐 정도로 먼지로 가득찬 인도의 도로를 달렸다.



4.                          
  그는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할 일이 없었다기 보다는 계획 없이 그 곳에 왔기 때문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가 머물고 있던 게스트 하우스의 식당에는 많은 여행자들이 남기고 간 책들이 있었다[그 곳은 휴식 공간처럼 꾸며져, 책도 볼 수 있고, 식사도 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었다]. 그는 여행자들이 남기고간 책, 그 중에서도 인도 여행에 관한 책들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여름이 막 시작되고 있는 바라나시의 오후 날씨는 무더웠다. 그는 더위를 피해, 그 게스트 하우스의 식당에서 시간을 때우며, 정보를 수집하기로 한 것이다. 여행 책자의 바라나시 부분을 열심히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바라나시의 역사, 문화, 먹을거리 등. 바라나시- 비록, 그는 그곳에 생각없이 갔지만, 그곳은 인도 여행에 있어서 생각보다 중요한 도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책의 내용 중에서도, 교통정보 부분을 열심히 뒤적거렸다. 그 곳에는 바라나시에서 네팔로 넘어가는 코스와 방법이 다양하게 있었다. 
  
  그가, 식당의 한쪽 귀퉁이에서 바라나시에서 네팔로 가는 방법에 관한 부분을 열심히 뒤적거리고 있을 때, 한쪽에서 밥을 먹던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는, 눈으로는 책을 보고 있었지만 귀는 그들의 말소리를 열심히 주워담고 있었다. 머릿속엔 이미 책의 내용은 들어오지 않았다. 저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 볼까?.라는 생각만 했을 뿐.

  대화의 내용을 유심히 듣던 그는, 그들이 네팔로 가려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그 사람들은 네팔로 가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었으므로]. 그는 슬며시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그리고 물었다. 혹시 네팔에 가세요? 네팔 이야기 하시길래.




5.                         
  그 사람들은 이틀 뒤 네팔로 떠난다고 한다. 네팔에 같이 갈 사람들을 모으고 있다고 했다. 나도 네팔로 가 볼까? 이틀 뒤. 어차피 나는 여기에 있어도 할 일이 그렇게 많은 것이 아니었기에, 일단 네팔로 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인도 여행을 해도 상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말했다. 네, 같이 가요. 

  나는 그들과 함께 네팔로 가기로 했다[그렇다고 네팔 여행을 함께 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국경을 같이 넘어가자는 이야기 였다. 국경을 넘고, 룸비니(Lumbini)에 잠깐 들렀다가, 대부분 포카라로 가서 히말라야 트레킹을 할 것이라고 했고, 나는 포카라가 아닌 카트만두로 갈 예정이었다]. 어차피 나는 인도를 지나 파키스탄으로 갈 예정이었기에, 파키스탄 비자를 네팔에서 받으면 쉽고, 편하게 받을 수 있다고 생각 했다. 네팔 여행도 할 겸, 네팔에 가서 파키스탄 비자를 받아오면 되겠다는 생각도 했다.
 
  
  나는 바라나시의 먼지로 가득찬 골목을 헤집고 돌아다녔다. 소똥을 피하고, 개똥을 포히고, 쓰레기들을 피해 골목을 헤메다가 지치면, 짜이를 파는 곳에서 3루피 짜리 짜이를 한잔 마시면서 인도 사람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사람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이틀 뒤 네팔에 간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나에게 네팔에 절대 가면 안된다는 말을 했다. 아니 왜? 나는 가야해.라고 내가 말했다. 그는 나에게, 
요즘 네팔에서 테러가 나서 사람들이 죽고 있어.라고 말했다.
테러?.나는 생각했다. 테러는 파키스탄을 이야기 하는거 아닌가?[파키스탄은 폰탄 테러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 지금 너 파키스탄 이야기 하는거 아니야?.라고 되묻자, 그는 말했다. 아니야, 네팔이 확실해. 그는 네팔이 지금 정치적으로 혼란 스럽다고 덧붙였다. 나는 그의 말을 신뢰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 나는 관광객인데 설마 나를 죽이기야 하겠어?.라고 말하며, 웃어 넘겼다.



6.                            
  네팔로 떠나기로 한 날, 여섯명이 모였다. 여섯의 사람들은 릭샤를 타고 역으로 향한다. 그들은 역에서 소나울리로 가기 위해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도 기차의 연착, 그것을 너그럽게 받아 들이면서[밤 12시 경 출발 해야할 기차가 새벽 5시 쯤 도착했다] 기차에 올랐다. 밤을 거의 새다 시피한, 그들은 몇 시간 뒤 종점인 박타푸르[기차는 박타푸르까지 운행했고, 박타푸르에서 소나울리까지 버스를 타거나, 지프(Jeep)를 타고 소나울리로 이동해야 했다]에 도착했다. 박타푸르 역 앞에서 지프두 대를 섭외한 그들은, 지프(Jeep)를 타고 소나울리로 갔다.

  소나울리에 가기 전[바라나시를 떠나기 하루 전], 그들은 네팔에 관한 좋지 않은 소식을 하나 들었다. 지금
네팔로 넘어가는 국경 검문소가 폐쇄되었다.는 소식. 네팔과 인도의 국경, 소나울리에서 온 다른 여행자들이 그런 소식을 들고 바라나시로 온 것이었다.
설마, 아무일도 없겠지.라고 생각하고 그들은 네팔로 떠난 것이었다. 이미, 가기로 한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니까. 가보면, 진실을 알게 되겠지.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그들은 바라나시를 떠난 것이었다.

  그들이 소나울리, 국경 사무소에 도착했을 때. 설마,라고 생각하던 일은 진실이 되어 있었다. 국경의 출입국 관리 사무소에서는,
"출국 허가 도장을 찍어줄 수 없음"이라고 엄포를 놓고 있는 상태였다. 출입국 관리 사무소의 직원들은, 가만히 의자에 앉아 있을 따름이었다. 

  그의 일행을 포함한 20명 정도되는 여행자들이 국경 사무실에 죽치고 앉아 있어야만 했다. 국경을 마음대로 들락 날락 하는 현지인들을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 보며[현지인들은 비자나 여권없이도 생활의 편의를 위해 왔다갔다 할 수 있었다], 열려 있지만 지나갈 수 없는 국경을 원망해야 했다.
  하지만, 몇몇 사람은 국경을 그냥 넘어 가기도 했다. 어차피 여권 검사만 안하면 불법 입국으로 처벌 받을 일도 없고, 며칠 네팔에 머무르다가 다시 인도로 올 것이니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여행자들에게 출입이 금지된 국경을 지나서 저 멀리 사라져갔다.

  태양은 저물어 어둠이 내려 앉기 시작했고, 거리에 붐비던 사람들도 거의 다 사라져갔다. 시간이 꽤 많이 흘렀다. 점심때쯤 도착한 국경에서 다섯, 여섯, 일곱...여덟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국경 사무실의 직원 앞에 놓인 전화기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모두가 그 전화기를 바라보면서, 그 속에서 국경을 넘어도 좋다는 소식.을 전해주기를 바랐다. 

   
여행자들은 보내 달라고 아우성을 질렀다.



7.                          
  네팔의 총리가 한 대학생 시위자에게 총을 맞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네팔에서는 지금 유혈사태가 일어나고, 각종 파업사태가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암울했다. 뭐지, 하필이면 내가 가려고 하는 이 때에. 일주일 전까지만해도 아무런 일도 없다고 했는데. 하필 이런 때에. 내 자신을 원망할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하- 더 이상, 기운을 차릴 수 없다. 언제까지 일까? 여기, 사무실에서 침낭을 펴야하나?

   어둠이 완전히 거리를 지배했을 때, 거리를 거닐던 사람들은 거의 다 사라졌다. 어디선가 이따금씩 비명같은 소음이 들려 올 때를 제외하곤, 적막함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런 시간들이 지속되던 가운데, 테이블 위에 고요히 놓여 있던, 묵묵히 침묵을 지키고 있던 전화기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전화벨이 울렸고, 모두들 그 전화기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제발.


  수화기는 생각보다 빨리 제자리를 찾아 갔다. 전화를 받았던 직원은, 별 말을 하지 않고 고개만 몇 번 끄덕였다. 표정도 변화가 없었다. 아직도, 출국 허가가 명령이 떨어지지 않을 걸까?. 약간의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이 가라 앉을 때쯤, 출입국 관리 사무소 직원은 천천히 입을 뗐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알파벳 몇 개가 흘러 나왔다. You can go Nepal. 모두들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각자 짐을 챙기고, 여권을 내밀었다. 하나,  둘 출국 카드를 작성했고, 스탬프를 찍었다.



8.                         
  어둠이 깔린 거리. 국경을 지나는 사람은 여행자들 밖에 없었다. 그들은 국경을 넘어, 네팔 출입국 관리 사무소로 향했다. 수십명의 여행자들이 달빛과 자신의 손전등에 의지해서 입국 카드를 작성했다. 사무실에서 네팔 비자(Nepal visa)를 사고, 스티커를 붙였다. 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그들이 국경을 넘은 시간. 국경에서 포카라, 카투만두로 가는 버스가 있을리 없었다. 밤늦은 시간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테러로 인해 버스 운행을 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곧 접할 수 있었다. 길의 중간 쯤에서 정권 반대파들이 버스를 향해서 테러를 감행하고 있기 때문에 버스운행이 전면 중단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일단 밤이 깊었으니, 근처의 한 호텔에서 하룻밤 묵기로 하고 다음 날 아침 일찍, 릭샤를 타고, 룸비니(lumbini)로 가기로 했다. 일단 그곳에서 며칠 쉬면서 네팔의 상황을 지켜보자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 소나울리


- 소나울리 출입국 관리 사무소


- 기다리는 여행객들


- 국경 게이트, 저 넘어는 네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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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ana, turkey / 아다나, 터키 14/05/2009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09. 5. 23.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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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를 만들다. 

+ 이스탄불에서 기차로 18시간 30분. 매일(23시50분)

 

시리아에 가기위해 Adana(아다나)에 갔어. 기차로 이스탄불에서 아다나, 아다나에서 알레포까지 갈 수 있기 때문이야.(아다나Adana→알레포Aleppo, 화/금 23시50, 8시간30분 35YTL) 

이스탄불기차역 인포메이션에서 기차 연결편 날짜를 잘 못 알고 있어서, 아다나에 목요일저녁 8시쯤 도착했는데, 기차가 금요일 밤 11시에 있다는 말을 듣고 어떻게 기다리나 하고 난감했지.(이스탄불에선 금요일 아침 8시에 기차가 있어서 오후 4시에 알레포에 도착한다고..) 

난감한 상황은 언제나 있는 거니까, 배가고파서 케밥이라도 하나 사먹으려고 길을 나섰어. 아다나에는 아다나케밥이 유명하다고 들어서 케밥이나 먹을까 했어. 한 식당 앞에 뭔가를 먹고있는 애들이 보이길래 그리로 가서 구경을 하기로 했어. 거기에 팔고 있는 빵속에 고기를 갈아 넣은 걸 먹어보니 맛이 있었어. 그리고 거기서 친구들을 만나게 됐어. 

영어가 전-혀는 아니지만, 영어로 대화가 이루어지는건 5%정도?였어. 손짓, 발짓으로 그리고 눈치, 느낌으로 대화를 했지. 그리고 학생이라는 그 사람들의 집에서 자기로 했어.

어차피 정해놓은 숙소도, 아다나에 대한 정보도 그리고 기차역앞에 앉아서 밤을 새고 아침기차타고 갈 생각이었는데 잘됐지. 그렇게 우리는 만나게 된거야. 

동네 한량(?)들 같은 애들과 함께 차를 타고 갔지. 외제차였어. 한명은 원래 알레포(Aleppo, 시리아)출신인데 터키에서 살고 있었어. 걔네들의 맨션에가서 가볍게 맥주한잔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나서 잠을 청했지. 그 다음날은 걔네들의 학교에 놀러가서 수업도 들었어. 같이 학교에 가자는 친구들의 권유에 흔쾌히 응했지. 어차피 할 일도 없고, 대학교 수업을 들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어. 그 친구들의 차를 타고 학교에 갔는데 지각이었어. 다행히 교양영어 수업을 하고 있어서 수업은 어느 정도 알아 들을 수 있었지만, 쉬는시간이 끝나고나서 떠든다고 쫒겨나버렸어. 점심을 먹고, 또 다른 친구의 학교에 놀러갔는데 그 학교는 댐의 주변에 캠퍼스가 조성되어 있어서 경치가 아름다웠어. 그리고 파릇파릇한 젊은 대학생 여자들이 많아서 좋았어. 그냥 눈이 즐거웠지. 

그날 밤은 대학교 축제 파티가 있는 날이라서, 축제 파티에 가기로 했어. 내 기차시간이 23시여서 많이 고민을 했지. 물론 터키애들도 많은 고민을 했어. 나의 기차시간 때문에 말이야. 하지만 결과적으로 모든 일들이 잘 끝났지. Nejat라는 친구의 여친의 생일이기도 했는데, 여친과 다툰 상태였던 Nejat의 여친과 화해하기 프로젝트를 하기로 한거야. 뭐, 크게 별건 아니지만 파티에가서 다른 여자들과 노는 것 보다는 그렇게 하는 편이 여친과 화해하는 빠른 방법이니까.  

그렇게, 그 친구들과 2일간 함께하면서 아다나를 떠났어.

아다나Adana, 사실, 크게 볼거리는 없는 도시라고 생각해. 하지만 난 친구들을 만들 수 있어서 좋았고, 그 친구들 덕분에 터키에서 경험하기 힘든(?)일들을 경험 할 수 있었지.

기차를 타고 시리아로 가는 것. 크게 나쁘진 않는 것 같았어. 나의 경우는 뭔가 좀 문제가 있었지만 말이야.

   

 

+ Tip. 터키에서 기차타고 시리아로 넘어가기.

이스탄불에서 알레포로가는 기차가 있다고 론니를 비롯한 가이드북에 나와있지만 사실은 없다. 따라서 기차를 타고 가려면 Adana까지 가서 기차를 갈아타야 한다.(본인은 발칸플렉시패스Balkan Flexi Pass가 있어서 알레포까지 가는 터키 기차를 공짜로 탔다. 물론 패스는 한국에서 샀다. 104€)

 

이스탄불Istanbul(매일 22시 50분) - 아다나Adana(18시35분), fare ??.
아다나Adana(화/금 22시 50분) - 알레포Aleppo(08시 35분) fare 35YTL.
아다나Adana(매일 14시 10분) - 이스탄불Istanbul(09시 09분)




<아다나 역>



<터키 친구들이 다니는 대학, 교내가 잘 정돈되고 이뻣다>



<호수의 중간에 위치한 대학교>



<카페테리아>



<이름 까먹음, 저 롤 안에는 케밥에 들어가는 재료가 들어있어서 맛있었고, 사각형 안에는 치즈가 녹아들어있었다. 맛은 최고!!>


<아다나 케밥 - 팔뚝만한 아다나 케밥. 안에 소스가 매콤한 맛이 난다. 정말 맛있고 컷다. 거기다가 배달까지 되어서 집에서 시켜 먹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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