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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인도, 소나울리 - 테러를 당하다.(1)-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2010. 11. 13. 13:29반응형
1. 거부[rejection]
많은 장기 여행자[6개월 이상 여행을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들에게 중요한 것 한가지를 뽑으라면, 항공권을 저렴하면서도 잘 구매하는 것을 뽑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장기 여행자들이 많이 선택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편도 항공권.
해외 여행을 떠날 때, 편도 항공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한가지 고민이 더 생기게 된다[이런 고민은 편도 항공권을 가진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이 고민은 일반적으로 편도 항공권을 가진 사람이 받는 '입국 거부'라는 부당한 대우와 관련이 되기 때문이다.
여행을 가는 사람[특히, 장기 해외 여행]이 편도 항공권을 살까, 말까를 고민하면서 한 번쯤 생각해 보게 되는 문제. 편도 항공권으로 여행한다고 공항에서 입국거부 당하는 것은 아닐까[물론 입국 못하는 사례가 많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편도 항공권이라고 해서 그 공항에서 입국거부를 당했다는 사람을 실제로는 만나보지 못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여행사와 항공사의 이익을 위한 겁주기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해 본다]. 편도 항공권과 입국 거부에 관한 문제는 엉킨 실타래보다도 더 풀기 어려운 딜레마를 제공한다. 그것은 여행 자금의 문제와 여행을 제대로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사로 상충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경우로, 육로(陸路)로 여행을 하는 사람이라면, 국경이 폐쇄되거나, 입국 거부를 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실제로, 정치(政治) 상태가 혼란한 국가를 여행하려고 할 때는 그 인접 국가의 국경에서 출국을 금지시키기도 한다.
여행이라는 것은 알 수가 없다. 여행(旅行, Traveling) 이라는 말 속에는 불확실성이 내포되어 있다[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그게 여행의 매력이라고 말 할 수 있다].
2.
이런 생각을 가끔 해보게 된다. 남한과 북한이 통일되면, 기차를 타고 중국으로 러시아로, 몽골로 여행을 할 수 있을 텐데. 낭만적으로 보이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한국에서 타고 갈 수 있을 텐데.라고 말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도 국경이 폐쇄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정확히 말한다면, 우리나라는 지금 전쟁중이다. 그리고 그 전쟁을 좀 오랫동안 쉬고 있는 것일 뿐이다]. 남한과 북한을 연결하는 길을 함부로 밟을 수 없다. 그 길을 따라 남한에서 북한으로 가려면 비합법적이거나, 정치적, [그리고 정치인들이 말하기를]평화적, 인도적인 일을 한다는 명목으로 가야 한다. 그 경우를 제외하고는 남한과 북한을 잇는 길을 지나갈 수 없다. 다시 말해, 일반인[외국인과 한국인 모두를 포함하는 사람들]이 여행을 위해 남한과 북한의 국경을 함부로 넘어갈 수 없다는 말이다.
어릴 때 살던 동네에 미군부대가 있었다. 미군부대에는 정문과 후문이 있었고, 그 옆 쯤 되는 곳에 철로가 놓여 있었다. 미군부대 안까지 쭉- 이어져 철조망을 관통하고 있는 철로. 가끔은, 그 철로를 위로 탱크나 전차 같은 무기들을 실은 열차가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의 집은 미군 부대의 후문에 가까운 곳에 위치하는 곳이었고, 중학교는 그 철로를 지나 얼마를 더 가야 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학교를 다녀오던 길에 종종 보이던 열차. 그 철로를 따라 천천히 흘러가는 열차를 보면서 저 열차를 따라가면 미군 부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텐데. 그러면 맛있는 피자와 햄버거를 싼 가격에 먹을 수 있는데!.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조금 더, 어릴 적. 미군부대에 출입할 수 있는 친구를 따라 미군부대의 수영장에서 수영하던 기억, 식당에서 피자를 사먹던 기억이 물방울처럼 피어 올랐다.
민들레 꽃씨가 날리는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오후.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길, 미군부대 안으로 이어진 철로가 나를 부르는 듯 했다. 나를 따라 들어오렴.이라고. 철로 위를 지나, 사람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던 철조망 문도 열려 있었다. 내가 들어와도 좋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철로 위에 발을 올렸다. 자연스럽게- 철로 위에서, 철로를 따라 걷고 있는 내가 있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누군가가 소리치고 있었다. 뭐지? 나는 주위를 둘러 보았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나를 부르는 것 같았는데. 들뜬 마음으로 나는 계속 걸었다. 어디선가 또 들려오는 소리. 누군가 나를 부르는게 확실했다. 누구지?.. 저 쪽, 감시탑 위에서 나를 향해 소리치는 한 군인이 보였다. 나에게 돌아가라고 소리쳤다. 아차, 역시- 나는 안으로 들어갈 수 없구나.
나는, 쫓겨 났다. 거부 당했다. 미군 부대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 곳은, 대한민국이 아닌 곳이니까.
3.
인도 조드푸르(Jodhpur)에서 뭄바이(Mumbai)로 가려고 했던 나는, 뭄바이로 가는 기차표의 좌석은 4일 뒤에 살 수 있다는 말에, 바라나시(Varanasi)로 가는 기차표를 끊었다[같이 있던 일본애가 바라나시로 간다기에, 나도 그냥 바라나시나 가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바라나시로 가는 2박 3일. 책을 보고, 또 보고 또 봐도 기차는 계속 달리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천천히.
동행하던 일본애는 바라나시에 도착하자마자 네팔(Nepal)로 갈 예정이라고 했다. 바라나시에서 네팔로 바로 갈 수가 있어?.라는 나의 물음에, 그는 바라나시에서 인도와 네팔의 국경도시인 소나울리로 가는 버스가 있다.고 대답해 줬다. 그는 그 버스를 타고 바로 네팔로 떠날 것이라고 했다.
나는 바라나시로 가는 것도 예정에 없던 일이라, 네팔까지 간다는 그의 말에 별다른 흥미를 갖지 못했다. 거기다가, 내가 그 자리에서 나도 네팔로 가야겠어.라고 하면, 내가 너무 그 일본애를 따라가는 모양새가 될 것 같았기에 나는 바라나시에서 며칠간 머물기로 했다.일단 나는 바라나시에 머물면서 그 다음 어디로 갈지를 생각해 보기로 했다.
지루한 시간들이 차창을 스쳐 지나가더니, 기차는 어느 새 바라나시에 도착했다. 그 일본애는 자신의 가이드북을 찢어서 나에게 주었다[나는 가이드북이 없었기 때문에 초반부터 힘든 여행을 하고 있었다]. 가이드북이 없던 나로서는 고마운 일이었다. 나는 그에게, 그는 나에게 서로의 여행에 행운을 빌어주며, 과일주스 한잔을 마시고 서로의 길을 향했다.
나는 사이클 릭샤에 올라, 갠지즈 강가의 가트를 향해 갔다. 여기가 바라나시구나. 갠지즈강이 흐르는 곳. 인도의 젖줄기, 힌두의 성지. 여기서 무얼 하지.라고 생각하며, 숨막힐 정도로 먼지로 가득찬 인도의 도로를 달렸다.
4.
그는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할 일이 없었다기 보다는 계획 없이 그 곳에 왔기 때문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가 머물고 있던 게스트 하우스의 식당에는 많은 여행자들이 남기고 간 책들이 있었다[그 곳은 휴식 공간처럼 꾸며져, 책도 볼 수 있고, 식사도 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었다]. 그는 여행자들이 남기고간 책, 그 중에서도 인도 여행에 관한 책들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여름이 막 시작되고 있는 바라나시의 오후 날씨는 무더웠다. 그는 더위를 피해, 그 게스트 하우스의 식당에서 시간을 때우며, 정보를 수집하기로 한 것이다. 여행 책자의 바라나시 부분을 열심히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바라나시의 역사, 문화, 먹을거리 등. 바라나시- 비록, 그는 그곳에 생각없이 갔지만, 그곳은 인도 여행에 있어서 생각보다 중요한 도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책의 내용 중에서도, 교통정보 부분을 열심히 뒤적거렸다. 그 곳에는 바라나시에서 네팔로 넘어가는 코스와 방법이 다양하게 있었다.
그가, 식당의 한쪽 귀퉁이에서 바라나시에서 네팔로 가는 방법에 관한 부분을 열심히 뒤적거리고 있을 때, 한쪽에서 밥을 먹던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는, 눈으로는 책을 보고 있었지만 귀는 그들의 말소리를 열심히 주워담고 있었다. 머릿속엔 이미 책의 내용은 들어오지 않았다. 저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 볼까?.라는 생각만 했을 뿐.
대화의 내용을 유심히 듣던 그는, 그들이 네팔로 가려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그 사람들은 네팔로 가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었으므로]. 그는 슬며시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그리고 물었다. 혹시 네팔에 가세요? 네팔 이야기 하시길래.
5.
그 사람들은 이틀 뒤 네팔로 떠난다고 한다. 네팔에 같이 갈 사람들을 모으고 있다고 했다. 나도 네팔로 가 볼까? 이틀 뒤. 어차피 나는 여기에 있어도 할 일이 그렇게 많은 것이 아니었기에, 일단 네팔로 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인도 여행을 해도 상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말했다. 네, 같이 가요.
나는 그들과 함께 네팔로 가기로 했다[그렇다고 네팔 여행을 함께 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국경을 같이 넘어가자는 이야기 였다. 국경을 넘고, 룸비니(Lumbini)에 잠깐 들렀다가, 대부분 포카라로 가서 히말라야 트레킹을 할 것이라고 했고, 나는 포카라가 아닌 카트만두로 갈 예정이었다]. 어차피 나는 인도를 지나 파키스탄으로 갈 예정이었기에, 파키스탄 비자를 네팔에서 받으면 쉽고, 편하게 받을 수 있다고 생각 했다. 네팔 여행도 할 겸, 네팔에 가서 파키스탄 비자를 받아오면 되겠다는 생각도 했다.
나는 바라나시의 먼지로 가득찬 골목을 헤집고 돌아다녔다. 소똥을 피하고, 개똥을 포히고, 쓰레기들을 피해 골목을 헤메다가 지치면, 짜이를 파는 곳에서 3루피 짜리 짜이를 한잔 마시면서 인도 사람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사람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이틀 뒤 네팔에 간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나에게 네팔에 절대 가면 안된다는 말을 했다. 아니 왜? 나는 가야해.라고 내가 말했다. 그는 나에게, 요즘 네팔에서 테러가 나서 사람들이 죽고 있어.라고 말했다. 테러?.나는 생각했다. 테러는 파키스탄을 이야기 하는거 아닌가?[파키스탄은 폰탄 테러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 지금 너 파키스탄 이야기 하는거 아니야?.라고 되묻자, 그는 말했다. 아니야, 네팔이 확실해. 그는 네팔이 지금 정치적으로 혼란 스럽다고 덧붙였다. 나는 그의 말을 신뢰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 나는 관광객인데 설마 나를 죽이기야 하겠어?.라고 말하며, 웃어 넘겼다.
6.
네팔로 떠나기로 한 날, 여섯명이 모였다. 여섯의 사람들은 릭샤를 타고 역으로 향한다. 그들은 역에서 소나울리로 가기 위해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도 기차의 연착, 그것을 너그럽게 받아 들이면서[밤 12시 경 출발 해야할 기차가 새벽 5시 쯤 도착했다] 기차에 올랐다. 밤을 거의 새다 시피한, 그들은 몇 시간 뒤 종점인 박타푸르[기차는 박타푸르까지 운행했고, 박타푸르에서 소나울리까지 버스를 타거나, 지프(Jeep)를 타고 소나울리로 이동해야 했다]에 도착했다. 박타푸르 역 앞에서 지프두 대를 섭외한 그들은, 지프(Jeep)를 타고 소나울리로 갔다.
소나울리에 가기 전[바라나시를 떠나기 하루 전], 그들은 네팔에 관한 좋지 않은 소식을 하나 들었다. 지금 네팔로 넘어가는 국경 검문소가 폐쇄되었다.는 소식. 네팔과 인도의 국경, 소나울리에서 온 다른 여행자들이 그런 소식을 들고 바라나시로 온 것이었다. 설마, 아무일도 없겠지.라고 생각하고 그들은 네팔로 떠난 것이었다. 이미, 가기로 한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니까. 가보면, 진실을 알게 되겠지.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그들은 바라나시를 떠난 것이었다.
그들이 소나울리, 국경 사무소에 도착했을 때. 설마,라고 생각하던 일은 진실이 되어 있었다. 국경의 출입국 관리 사무소에서는,"출국 허가 도장을 찍어줄 수 없음"이라고 엄포를 놓고 있는 상태였다. 출입국 관리 사무소의 직원들은, 가만히 의자에 앉아 있을 따름이었다.
그의 일행을 포함한 20명 정도되는 여행자들이 국경 사무실에 죽치고 앉아 있어야만 했다. 국경을 마음대로 들락 날락 하는 현지인들을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 보며[현지인들은 비자나 여권없이도 생활의 편의를 위해 왔다갔다 할 수 있었다], 열려 있지만 지나갈 수 없는 국경을 원망해야 했다.
하지만, 몇몇 사람은 국경을 그냥 넘어 가기도 했다. 어차피 여권 검사만 안하면 불법 입국으로 처벌 받을 일도 없고, 며칠 네팔에 머무르다가 다시 인도로 올 것이니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여행자들에게 출입이 금지된 국경을 지나서 저 멀리 사라져갔다.
태양은 저물어 어둠이 내려 앉기 시작했고, 거리에 붐비던 사람들도 거의 다 사라져갔다. 시간이 꽤 많이 흘렀다. 점심때쯤 도착한 국경에서 다섯, 여섯, 일곱...여덟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국경 사무실의 직원 앞에 놓인 전화기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모두가 그 전화기를 바라보면서, 그 속에서 국경을 넘어도 좋다는 소식.을 전해주기를 바랐다.
여행자들은 보내 달라고 아우성을 질렀다.
7.
네팔의 총리가 한 대학생 시위자에게 총을 맞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네팔에서는 지금 유혈사태가 일어나고, 각종 파업사태가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암울했다. 뭐지, 하필이면 내가 가려고 하는 이 때에. 일주일 전까지만해도 아무런 일도 없다고 했는데. 하필 이런 때에. 내 자신을 원망할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하- 더 이상, 기운을 차릴 수 없다. 언제까지 일까? 여기, 사무실에서 침낭을 펴야하나?
어둠이 완전히 거리를 지배했을 때, 거리를 거닐던 사람들은 거의 다 사라졌다. 어디선가 이따금씩 비명같은 소음이 들려 올 때를 제외하곤, 적막함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런 시간들이 지속되던 가운데, 테이블 위에 고요히 놓여 있던, 묵묵히 침묵을 지키고 있던 전화기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전화벨이 울렸고, 모두들 그 전화기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제발.
수화기는 생각보다 빨리 제자리를 찾아 갔다. 전화를 받았던 직원은, 별 말을 하지 않고 고개만 몇 번 끄덕였다. 표정도 변화가 없었다. 아직도, 출국 허가가 명령이 떨어지지 않을 걸까?. 약간의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이 가라 앉을 때쯤, 출입국 관리 사무소 직원은 천천히 입을 뗐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알파벳 몇 개가 흘러 나왔다. You can go Nepal. 모두들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각자 짐을 챙기고, 여권을 내밀었다. 하나, 둘 출국 카드를 작성했고, 스탬프를 찍었다.
8.
어둠이 깔린 거리. 국경을 지나는 사람은 여행자들 밖에 없었다. 그들은 국경을 넘어, 네팔 출입국 관리 사무소로 향했다. 수십명의 여행자들이 달빛과 자신의 손전등에 의지해서 입국 카드를 작성했다. 사무실에서 네팔 비자(Nepal visa)를 사고, 스티커를 붙였다. 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그들이 국경을 넘은 시간. 국경에서 포카라, 카투만두로 가는 버스가 있을리 없었다. 밤늦은 시간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테러로 인해 버스 운행을 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곧 접할 수 있었다. 길의 중간 쯤에서 정권 반대파들이 버스를 향해서 테러를 감행하고 있기 때문에 버스운행이 전면 중단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일단 밤이 깊었으니, 근처의 한 호텔에서 하룻밤 묵기로 하고 다음 날 아침 일찍, 릭샤를 타고, 룸비니(lumbini)로 가기로 했다. 일단 그곳에서 며칠 쉬면서 네팔의 상황을 지켜보자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 소나울리
- 소나울리 출입국 관리 사무소
- 기다리는 여행객들
- 국경 게이트, 저 넘어는 네팔.반응형'- 길을 걷다, 세계여행 > 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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