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이야기] 호주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하다.

- 호주, 워홀이야기- · 2010. 11. 18. 12:28

반응형
Second Edit.


1. 내가 호주에 가게 되면 호주에서 꼭 하고 싶었던 것. 
스카이다이빙.


2. 사실,
스카이다이빙을 하기 위해 케언즈Cairns에 가려고 했었다.

케언즈[ 직접 가보진 못했지만 들은 바에 의하면 각종 레포츠의 천국 이라는 곳]에가서 스노클링도하고, 스카이다이빙도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케언즈에서부터 시드니까지 해안선을 따라 내려 가면서 여행도하고 바다에서 서핑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나의 이상을 모두 채워줄 순 없었다.

그래서 케언즈에가서 스카이다이빙이라도 하자라는 생각에 비행기표도 알아보고 스카이다이빙 가격도 알아보았다. 그리고, 덤으로 케언즈에서 시드니로가는 비행기표도 알아 보았다.


3.
  루트와 계획을[여행에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 이지만, 나는 계획 짜는걸 좋아하지 않아서 문제이다] 여러 번 생각했다. 그리고 공장을 언제 그만두고 언제 퍼스를 떠나고, 언제 시드니로 갈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했다..

이미 미국을 경유하여  남미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끊어놓았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서 가야했다.

그러던 중, 듣게 된 소식.


4.
'퍼스에서도 스카이다이빙을 할 수 있다.'
이 소식을 접하고 나서 이곳저곳 알아보니, 퍼스에도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곳이 두세군데 있었다.

나는 구글검색을 통해 알게된 퍼스에 있는 트래블 에이전시(Travel agency)에 가서 스카이다이빙 가격을 알아보았다.
'가장 높은 높이인 14,000피트에서 뛰어내리는 가격 $439, DVD촬영 $129, 총 합 568달러'

케언즈에서 하는 것 보다, 150-200달러 정도 비싼가격이었다. 생각해 볼 문제였다.
여러가지 여건들[시간과 돈과, 여행과 일정 등등]을 고려 한 끝에 내린 결론!
퍼스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해야겠다고 결론지었다.[ 시간에 너무 쫒기면서 돌아다니는건 내 스타일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케언즈로 갔다가, 또 시드니로 곧 이동해야 한다는 사실이 나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5. 12월 4일 금요일, 오전.
  잠을 자고 있는데, 어디선가 전화가 왔다.

'헬로우, 뭐 어쩌고 저쩌고, 스카이다이빙입니다. Mr.Chang?'
'옙, 맞습니다'
'어쩌고 저쩌고~ (막 뭐라고 말을 한다, 내일 40도까지 낮기온이 올라가고 ,뭐 어쩌고 막 설명을 한다)'

사실 잠결이라서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 듣다가 얼핏 40도, 얼리? 라고 하길래 무슨소리냐고 했더니 다시 설명을 해준다.

'내일 낮기온이 40도까지 올라가니까 오전에 일찍 뛰어 내려야한다. 예정 시간보다 1시간 일찍 나와라'
'오케이' 라고 말하고 오히려 나에겐 잘됐다고 생각하고 다시 잠을 청했다.


6. 12월 5일 토요일, 아침.

  일이 끝나고 집에와서 씻고, 스카이다이빙하러갈 준비를 했다.[준비라고 해 봐야 신분증과 영수증을 챙기고, 그냥 평소대로 옷 입고 나간 정도다]

  트레인을 타고, 퍼스 시티에 약속된 장소[웰링턴 버스스테이션 앞]에 가니, 투어를 하러 가는듯한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 서핑스쿨(Surfing school)에서 일일 서핑교실에 참여하는 사람도 있었고,- 나도 따라 가고 싶었다. 일일 서핑스쿨 - 스카이다이빙(Sky diving)을 하러 가는 사람도 있었고, 무엇을 하러 가는 지 알 수 없지만 뭔가를 하러 가려고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고]

일본인 두명과 나와 이렇게 셋이서 출발했다. 우리 셋을 실은 봉고차는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곳으로, 달려갔다.
차를 한 시간 반가량 가서 도착한 곳. 'Historic city of York'가는 간판이 도시의 입구에 서 있는 조그마한 시골마을 이었다. 그 마을에서 좀 더 안으로 들어가니 작은 비행장이 있었다. 그곳이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카이다이빙을 준비하는 창고같은 건물에 곳에 가니,  그 앞에 활주로가 뻗어 있고,  경비행기 두대가 대기하고 있었고, 스카이다빙을 하려는 사람들이 여럿있었다.[개인적으로 스카이 다이빙을 하러 오는 사람들도 꽤 있었지만, 스카이다이빙 동호회 팀들도 많이 있었다. 동호회팀들은 뛰어내리면서 취할 포즈를 연습하고 있었다]

밖에선 비행기가 뜨고, 사람들이 뛰어 내리고, 낙하산이 펼쳐지고, 또 다시 비행기가 뜨고, 또 사람들이 뛰어내리고.
 
'아, 나도 드디어 스카이다이빙을 하는구나!'


7. 오전 11시경,
드디어 내 차례다.[내가 마지막이었다.] 스카이다이빙 두팀과 나와 강사와 카메라맨이 함께 비행기에 타기로 되어있었다.
스카이다이빙 옷을 입고, 간단한 안전교육을 받고. 드디어 비행기에 올랐다.[가슴이 두근거렸다]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조그마한 경비행기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서, 하늘로 하늘로 올라갔다. 창 밖으로 보이는 집들이 점점 작아지고, 자동차들은 작은 점처럼 보였다.  어느새 옅은 구름이 나와 같은 높이에 있었다. 다이빙 강사의 손목에 차고 있던 고도계의 숫자는 점점 올라갔고, 고도계가 한 바퀴를 돌자 스카이 다이빙 팀들이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그 다음이 내 차례였다. 한바퀴가 돌고, 그리고 고도계가 조금 더 돌았을 때,뛰어내려야 한다고 강사가 나에게 말했다.


'으악, 내가 그냥 이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는건가?'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면서 내가 뛰어내려야하는 곳을 쳐다보니, 긴장되기도 했다.  점점 목표 높이에 다가가고 있었다.  "빨간불이 들어오면 뛰어내려야 한다"는 강사의 말이 생각났다.

드디어 작은 비행기는 14,000 fit 상공에 도달했고, 비행기의 출입문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강사는 고고고를 외쳤다. 나는 살짝 미소를 띄웠지만, 내 마음엔 약간의 두려움과 셀럼이 공존하고 있었다.


8. 비행기의 문이 열렸고, 나는 문으로 다가갔다.
비행기의 아래를 쳐다보니, 발 밑에 구름이 있었다.[구름을 밟으면 하늘위에 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1초 정도 한 것 같다. 다른 생각 할 틈도 없이 뛰어내렸다]

오묘한 기분. 다이빙이라는 말보다는 그냥 추락 추락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법 한. 그런 늒미이었다. 나는 배운대로 포즈를 취했다.

번지점프와는 또 다른 기분. 말로 표현하기가 힘든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냥, 기분이 좋았다. 마냥 좋은 그 기분.

시속 200km정도의 속도로 떨어진다는 스카이 다이빙?[9.8m/s 인가? 만류 인력법칙에 의한 물체의 낙하속도 말이다]

그렇게 그냥 막 떨어졌다. DVD촬영 하는 애가 어느새 내 앞에 자리잡고 나를 촬영했다. 그를 바라보며 같이 뛰어 내렸다. 입을 너무 벌리고 있어서 침이 흘러 나왔지만 닦을 수 없었다. 뭘 어떻게 해 보겠다는 생각도 없이 소리를 막 지르고 있는데, 어느 순간 낙하산이 펼쳐졌다.


9. 낙하산을 타고 천천히 내려오면서 바라본 풍경.
아름다웠다. 드 넓게 펼쳐진 평야같은 곳에 중간에 위치한 마을. 그 곳으로 나는 내려가고 있었다. 저 멀리 어렴풋이 바다가 보였다.

햇살에 드러나는 나의 그림자는 엄청 크게 보였다. 낙하산을 타고 내려가는 나의 모습이 땅에 그려지고 있었다. 자동차가 내 발 밑에가볍게 미끄러지고 있었다.

스카이다이빙 = 번지점프 + 패러글라이딩? 이라는 생각을 잠깐 해보기도 했다. 낙하산을 이리저리 좌우로 조정하며, 목표지점으로 향했다. 재미있었다.

스카이다이빙을 마치고, 촬영한 DVD를 보았다.
아, 좀 많이 쪽팔렸다 ...ㅋㅋㅋㅋ 카페테리아에 앉아서 같이 뛰었던 애들걸 다 같이 보는데, 오지(Aussie, 호주사람)여자애들 둘이 내껄 보면서 계속 킥킥댓다.[ 내가 봐도 웃긴데 - _-; 걔들은 오죽했을까] 


10. 다시, 퍼스 시티(Perth city)로 돌아오는 길,
모든게 꿈만같았다. 피곤해서 살짝 잠이 들었다가 다시 깨었다. '내가 스카이다이빙을 하고 온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게 꿈같이 느껴졌다.
  내가 호주에서 일을하고, 바다에도 들어가서 다이빙도하고, 전복도 따고, 하늘에서 뛰어내린 모든 것들이 꿈같다고 생각되었다.
누군가가 옆에서 크게 소리치면, 잠에서 깨어날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잠에서 깨어나면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은 느낌.





- 나를 픽업하러 온 아저씨 ㅋ


- 스카이다이브 익스프레스,


- 내가 타고 올라간 경비해기가 보인다,


- 낙하중인 다른 스카이다이빙 팀원


- 같이 스카이다이빙을 하러 온, 아츠유키/타츠오미 상


- 나의 DVD가 방영되고 있다................


- 스카이다이빙, 인증샷!








반응형

워홀이야기]호주, 5000달러를 잃다?!

- 호주, 워홀이야기- · 2010. 11. 16. 13:21

반응형
Second Edit.



1.
   3일 뒤면 호주를 떠나 남미로 간다.[엄밀히 말하면, 퍼스를 떠나 시드니에 머물다가  시드니에서 미국가는 비행기를 타고, 미국에서 남미가는 비행기를 타는 일정이다]

그래서  텍스리턴을 위해 회계사 사무실에 찾아갔다. 조기 텍스리턴을 신청하기 위해서였다.

2.  호주에 7월 22일 도착해서,
  8월 9일 일을 시작했다.
농장에서, 약 7주[정확히 따지면 6주+3일] 일했고,  농장에서 5144달러를 벌었고 텍스로 670을 냈다.[막상 일을 끝내고 나니 내가 호주 정부에 바친 세금이 엄청났다. 한국에서 한국 정부에 낸 세금이라고는 담배소비세 몇 푼, 주차위반, 신호위반 벌금 밖에 없는데]
중간에 캐시(현금)로 받고 일한 것도 얼마정도 있지만, 그건 텍스리턴과 상관없으니,

공장에서 일을 했다. 10월 6일 부터 약 9주간. 공장에서, 9주 동안 14,626달러를 벌었고, 텍스로 3,513달러를 냈다. [호주 정부에
 매주 평균 400달러를 호주정부에 갖다 바쳤다, 일주일에 5-6일씩 일했는데, 하루 이상을 정부를 위해서 일해준거다. 이런 미친!]

공장에서 그 많은 텍스를 내면서도 생각했다. "호주를 떠날 때 돌려받을 수 있으니까"라고.


3. 연금이라는 것,
고용주가 노동자를 위해서 의무적으로 들어주게 되어있다.[한달에 천달러? 아무튼 그 이상 수입이 있을 경우]
그리고 연금회사에서 회원번호를 가입자에게 알려주게되어있다.[우편을 통해서]

하지만, 난 두 군데의 연금회사[농장에서 일 할 때 컨츄렉터가 소속된 회사에서 연금을 가입한 곳과, 공장에서 연금을 넣어준 회사]로부터, 아무 것도 받지 못했다.

그나마, 공장의 페이슬립(pay slip, 임금 명세서)에는 어느 회사에 연금을 넣는지 나와있어서 그 회사에 전화를해서 조회를 하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농장에서 일할 때 컨츄렉터의 회사가 어느 회사에 연금을 넣었는지 알 수 없었다.

급하게 계약서를 찾아봤는데, 고용 계약서를 이미 버려 버린 뒤였다 ㅠ [컨츄렉터의 회사로 전화를 해서 어디로 연금을 넣었는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전화번호가 없다.] 

농장에서 일할 때 내 앞으로 들어간 연금 470달러,
공장에서 일할 때 내 앞으로 들어간 연금 약 700달러.


4.
회계사의 말을 비롯한, 각종 인터넷의 자료를 뒤져보니,내가 낸 텍스 4000달러는 돌려받기는 힘들 듯했다.
내 앞으로 들어간 농장에서 일한 만큼의 연금 470달러도 받기는 힘들 듯했고, 공장에서 내 앞으로 넣어준 연금은 받을 수 있을 지의문이었다.[연금번호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아, 텍스리턴, 이런 조건이 있을 줄 몰랐다.

'호주에서 한 지역에 6개월 이상 머물렀거나 머물 예정인자.'

텍스리턴과 연금에 대해서 너무 무지했던 본인 ㅠ
정보는 알면 돈이고, 모르면, 돈날리는 것이라는 말이 얼핏 생각났다.

진작에 알았으면,
"여행 일정을 좀 늦추고, 6개월 딱 채우고 텍스리턴 신청 할 걸" 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적은 금액도 아니고, 내가 호주에서 일하고 정부에 낸 돈을 다시 받아 가겠다는 건데.[사실상 호주 정부가 나에게 해 준 복지혜택은 없었으니까. 난 의료비도 메디케어 혜택을 받지 못하고 내 돈내고 거의다 해결 했으니까]


5.
뭐, 어쩔수 없었다.

돈은 돈이고, 여행은 여행이니까
.

그래도, 호주에서 일하면서 호주에서 생활하고, 즐기고, 다시 여행할 만큼의 돈은 모았으니.
크게 마음 상하지말자고 생각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돈"욕심, 별로 좋지 않은거니까.




- 농장 페이슬립, 힐탑노미니스에서 일햇는데,,,홈페이지도 있다더니 구글검색해보니 나오지도않는다-_-


- 공장 페이슬립, 아래쪽에 연금이 있다. AMP라는 회사에 들어가고 있는 연금.




반응형

워홀이야기] 호주, 퍼스 서핑동호회를 만들다!

- 호주, 워홀이야기- · 2010. 11. 14. 17:59

반응형
Second Edit


1. 호주에 가기 전, 
호주에 가면 하고 싶은 것 세가지가 있었다.

돈벌기[너무나도 당연한 것인가?]
서핑(Surfing)[호주의 바다는 서핑하기에 최고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나 또한 서핑이 너무 해 보고 싶었기에]
스카이다이빙(sky diving)[스카이 다이빙의 메카, 호주.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할 수 있다고 해서]
+a 호주여행?


2.
호주의 공장 일하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서핑 때문이었다
.[공장은 도시 주변에 있었고, 도시에서 가까운 곳에 바다가 있었기 때문에 나의 입맛에 딱 맞았다] 특히, 프리맨틀Fremantle에는 공장들이 많았고, 바다도 있었기에 내가 생각한 최적의 장소였다.
하지만, 현실은 나의 상상처럼 되지 않았다.

나의 상상...[수영장이 있는 집에 살면서, 주말에 집에있는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거나, 비치beach에 나가서 해수욕과 서핑즐기는 것.] 

처음 호주에와서 퍼스(Perth)에 머물면서 프리맨틀(Fremantle)에 왔을 때, 프리맨틀에서 일자리를 구해서 살고 싶었다.[정말 간절한 마음이었다. 물론 나 말고도 다른 워홀러들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시간은 흘러갔고, 통장의 잔고는 제로에 가까워 지고 있었다. 이제는 농장이든 공장이든 광산이든 원양이선이든 무엇을 해서라도 돈이 된다면 아무곳이나가서 일을 해야했다.
그래서, 농장으로 갔다[그것조차 운이 좋아서였다]


3. 농장에서 일할 때,
서핑은 무슨..호주에선 돈이나 벌어야지.  남미에가서 서핑 해야지뭐, 남미도 바다가 좋다고하니까라고 생각하면서 나 자신을 위로 했다.
농장 일이 끝나고 돈이 어느정도 모이면 캐언즈(Cairns)에 가서 스카이다이빙이나 하고 호주를 떠나야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호주에서 서핑하는 모습을 그렸었는데, 그것은 단지 상상에 불과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4. 새로운 농장 일을 구하러 카날본에 갔을 때,
  카날본은 바닷가에 위치한 조그마한 휴양 도시 같은 느낌을 풍겼다.바람도 좋았고, 사람들은 레저를 즐기러 찾아왔다. 나도 여기서 서핑을 해볼까?라고 생각했지만, 서핑보드의 가격이 만만찮았다.[최소 $400 이상하는 서핑보드. ]

농장에서 버는 돈으로 여행자금도 빠듯한 실정인데 어디서 그런 사치스러운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여행 내내 들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단념해야했다. 서핑 보드를 타고 파도를 가르는 나의 모습은 단지 꿈 속에서나 있을 법한, 아니면 그것은 저- 멀리 지구 반대편 먼나라 이야기였다.


5. 공장에 취직을 하고 나서,
 서핑에 대한 나의 마음이 다시 불타올랐다. 이젠 현실적으로 가능한 문제였다. 특히, 내가 일하게 된 공장은 프리맨틀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나는 자연스럽게 공장 근처로 이사를 왔다.

비록, 마땅한 집이 없어서 바다에서 약간 떨어진곳에 위치한 집이었지만, 괜찮았다.[버스를 타면 바다로 나갈 수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볼까 했지만, 호주의 땡볕에서 자전거를 타고 바다까지 간다는건 미친짓이었다]

집에 수영장도 있고,조그마한 잔디밭도있고. 서핑만 하면 딱이네 이거!


6. 공장에서 일하고 약 3주 후, 서핑보드를 샀다. 

호주 중고거래 사이트 검트리에서 호주애한테 중고로 서핑보드를 샀다.[어차피 한달정도 뒤에 호주를 떠날생각이었기 때문에 ]다시 떠날때는 서핑보드를 팔고 가야하니까, 싼걸로 샀다.[너무 좋은걸 사면, 제 값을 받고 팔기가 어렵고, 팔리지도 않을 것 같아서]  일단 호주에서는 맛만 보고, 기본만 하고 남미에서 제대로 좀 타보자는 생각이었다.


7. 11월,
날씨가 많이 더워졌다. 서핑보드도 있었다. 서핑을 하러 비치에 나가기 시작했다.[바다에는 많은 사람들이 서핑을 하고, 해수욕을 했다. 몸도 마음도 눈도 즐거웠다]
인도양 무서운 녀석. 인도양 저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과 인도양의 파도는 엄청났다.
우리나라에서 몰아쳐오는 파도와는 비교가 되지도 않았다.[우리나라 풍랑주의보때 몰아닥치는 파도 수준이었다]
역시,호주. 스케일이 달랐다.[그런데도 호주 애들은 파도위에서 춤을 춰댓다. 정말 부러웠다]


혼자 서핑을 해보니 심심했다. 그 때 마침! 다음카페의 퍼스커뮤니티 "퍼스 참을 수 없는 그리움 (일명, 퍼참)"의 취미생활 게시판에 서핑할 사람을 모집한다는 글을 보았다.

8. 그 글을 보고 난 뒤, 어느 토요일.
퍼스 시티(Perth city)의 울워스(woolworth)앞에 몇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서핑을 서로 배우고, 함께 즐기기 위한 사람들의 모임.
그렇게 처음, 다섯명의 사람들이 서핑보드를 들고 스카보로비치(scarborough beach)로 갔다.

스카보로비치는 퍼스지역에서 꽤나 유명한 비치라서 그런지 서핑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해변 잔디밭에 바베큐(BBQ)시설들도 많았다. 재미있었다. 서핑도하고, 비치옆의 마트에서 사온 간단한 먹을 거리를 가지고 바베큐파티도 하고, 술도 한잔씩하고.

9. 그렇게 시작했다.
퍼스, 최초의 서핑모임/동호회? - 서프 홀리데이 Surf holiday.[가칭, 공식적으로 이름을 정한 건 없었다] 


호주에서, 해 보고 싶었던 것 중 하나.
서핑을 해 보다.
그리고, 동호회 1기 멤버가 되다. - 1st member of Surf holiday.



- 서핑하러 갈 때, 사진기를 들고 나간적이 없어서;;



- With Surfing board


반응형

워홀이야기] 호주, 공장에서 일하다.

- 호주, 워홀이야기- · 2010. 11. 10. 13:41

반응형
Second Edit.(first edi 09.12.06)

1. 공장에 취직하고 처음 몇 주간.
정말 부지런히 열심히 일했다. 좀 힘든일, 작업 분량이 많아도 군소리 하지 않고 묵묵히 일 했다.
사실 내가 생각 할 때 크게 힘든 것도 없었다.[농장에서 일하던 것에 비하면 정말 쉽고, 힘들지 않는 일들이라고 생각했을 정도]

같이 일하는 동료들중에 일을 하면서 힘들다, 소세지가 무겁다고 투덜대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런 말을 들을 때 마다 맞장구를 쳐 주기는 했지만, '이게 정말 힘든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농장에서 일을 하면서 몸을 단력 시키고[미친듯이 일했었다] 나서 공장으로 온 온 나로서는 공장에서 하는 일들은 많이 힘들지 않으면서 쉬운 일들이었다.


2. 특히,
  소시지 및 햄, 베이컨 등을 만드는 공장이다보니 공장안이 시원했다[한여름에도 추워서 일을 할 때는 옷을 몇 겹씩 껴입어야 했다]. 실내는 항상 최소 냉장고 냉장실의 온도[패킹룸쪽은 냉동실 수준의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공장안은 추워서 파리가 없었지만, 공장 밖으로 잠깐씩 나가는 순간 파리떼들이 습격해 왔다]

  호주에서 내리쬐는 강렬한 태양 아래에서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좋았다.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고,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말로는 벌써부터 일 할 때 최소 수십마리의 파리들이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렸다.

  농장보다 시급이 높아서 좋았고, 일하는 시간도 많아서 좋았다. 그리고 시원한 곳에서 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새벽에 몰래 창고에서 소시지를 꺼내먹는 재미가 있어서 좋았다.[농장에서는 과일따먹는 재미가 있었지만] 아무튼 여러가지로 좋았다. 그 중에서 가장 좋은 건 돈을 많이 준다는 것.



3. 필라델피아, 내 너를 저주하리다!!
  필라델피아라는 햄이 있다. 햄 한덩어리가 사람 머리통보다 큰 놈인데, 스틱 하나에 3개가 걸려 있다. 그것들 세개[하나의 스틱]을 끓는 물에 담궈서삶아야 하는데, 완전 노가다로 그 녀석들을 번쩍!들어서 물에 집에 넣어야 한다. 그 녀석들 보기에도 무거워 보이지만 실제로도 엄청 무겁다....... 
  그런데 항상 그 일을 해야 할 때마다 나를 시키는 것이었다.....ㅠ_ㅠ... 내가 처음에 잘 보이려고 일을 너무 열심히 막 하다보니, 내가 그걸 잘 하는줄알고 나를 시키는 것이었다.[다른 사람이 모두 꺼려하니까, 제일 만만한게 나였나 보다]

  처음에 그 무거운걸 무식하게 하루에 수십개씩 들었다가 놓았다가를 반복했다.[나중에는 요령이 생겨 비교적 쉽게 했지만] 무게로 치면 아마 하루에 몇 톤 정도 물에 담갔다 뺐다 했다.
 
  항상 그녀석을 들어 옮기면서 생각했다.아 필라델피아,,"내가 미국에 가면 반드시 필라델피아 역(驛)에 침을 뱉고, 길바닥에도 침을 뱉고 돌아다닐 것라고.."
 필라델피아 햄 때문에 팔목이 나가서 몇 주간 고생했다. 처음엔 어깨에도 무리가가서 어깨가 아팠다. 만병의 근원이 필라델피아 햄이었다.

  나는 어느새, 무거운 햄, 소세지류를 들어서 트롤리[햄들을 쌓아두는 거치대같은 것]에 걸거나, 옮기는 일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런 일을 도맡아서 하는 사이 내 몸 속에서는 이두근, 삼두근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라고 있었다.


5. 
  서브웨이(SUBWAY), 헝그리잭스(Hungry Jack's, 호주의 버거킹)에 납품하는 베이컨을 내 손으로 만들고 있었다.
서브웨이 고기를 자르고, 베이컨을 만들고, 헝그리잭스 베이컨을 만들었다.  만들면서 생각했다. "호주 사람들은 내 손으로 만든 고기들을 먹는구나, 내 침도 자연스럽게 먹는구나"[일을 하면서 지루하기 때문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니까, 당연히 침이 튄다]라고.

헝그래잭스 베이컨을 만드는 일은 내가 공장에서 가장 많이 한 일 중에 하나였다. 사실, 헝그리잭스를 하는 일이 싫었다. 어려운 건 아니었다. 정말 쉬운일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너무 지루했다. 쉬운일을 계속 반복해야 했다. 매일매일 헝그리잭스에 납품하는 물량이 고정적으로 있었기 때문에 매일 엄청난 양을 만들어야 했다. 길고, 지루한 작업의 연속이었다.
특히, 헝그리잭스는 복도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약간 더운곳에서 작업을 했다..그래서 가끔 더울 때도 있었다. 그게 싫었던거였다.


6. 몇 주 후,
  처음 2-3주간 일을 너무 열심히 한 것이 잘못이었다[보통 사람들은 처음에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 처럼 나도 그랬다].  공장에서 일 할 때 대부분이 일을 천천히 하면서 일의 양과 자기가 집에 갈 시간을 맞추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그들과 같이 일을 하다보니 나 또한 속도를 맞추게 되었다. 그것이 편했다.[일을 쉽게, 천천히 할 수 있었으니까]
  특히, 나와 일을 같이 많이 한 콩고출신의 "자바"가 그랬다.[우리파트에서 일을 젤 천천히 하고 농땡이를 피우는 녀석으로 꼽혔다]
가끔씩, 너무 일을 천천히하고, 안하려고하는 모습을 보여서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같은 회사 동료니까 참았다. 그냥 난 묵묵히 할 일을 했다.



7.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나보다 오랬동안 일을 했던 외국애들(최소 몇 년씩 일을 한 애들) 및 슈퍼바이저, 작업반장이 나를 보는 시선이 별로 좋지 않다는 걸 느꼈다.일하는 속도가 느리다는 거였다. 게을러졌다고,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속도가 느린건 아니었다. 난 그냥 나와 같이 하는 애들의 속도를 맞추어 주었다. 빨리하면 빨리하고, 천천히하면 나도천천히 하고,, 천천히 하는쪽이 많긴 했다.

결국 난,
일을 천천히 한다. 못한다 등 호박씨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는 소식을 들었다.[공장에서 일을 오랬동안 하면서 슈퍼바이저, 작업반장 등과 친하게 지내는 외국인이 나와 친하게 지내는 한국인에게 그 말을 해 주었고, 난 그 소식을 알게 되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그러려니 했다.

8. 그냥, 난 내 할일을 했다.
 어쩌겠나? 사람의 마음이 한 곳으로 기울어 지면 되돌리기가 처음보다 더 힘든 것을. 그리고 어차피 여기서 9주만 일할 거니까라고 생각했다.
 일을 못한다고 호박씨 깔때는 다 까면서 또 필요하면 나를 불러서 힘쓰는 일을 많이 시켰다. 그렇다고 해서 나도 기분나빠 하지 않고 그냥 내 할일을 했다. 그게 그냥 편했다. 그러려니~ 필라델피아, 베이컨, 로스트비프, C.O.B,,, 힘쓰는 일은 내 담당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공장에서의 생활이 마무리되어갔다.





- DORSOGNA, 콸리타,


- 필라델피아,,,보기만 봐도 토나온다ㅋ


- 이곳이 햄들의 욕조!


- 요렇게 집어 넣는다,,


- 키친룸,,급하게 몰래 찍느라 완전 화질 구림 ㅋㅋㅋ 베이컨, 치즈마일드 소시지, C.O.B 등등..


- 오른쪽이 C.O.B 보기만봐도 무거워보인다...돼지 뒷다리 ㅋ
왼쪽은 치즈마일드,,제일 맛있는듯 안에 치즈가 들어있다 ㅋㅋ


- 오른쪽 구석탱이에 자바, 나와 함께있는건 칸쿠,
초록색옷입은애는 이름 물어보면 이런다."한국사람 입니다"
















반응형

워홀이야기] 호주에서, 쉐어하우스에 들어가다!

- 호주, 워홀이야기- · 2010. 11. 9. 16:24

반응형

+Second Edit.


1. 
  일본에서 꽤나 유명하다고 하는[일본인 친구의 말에 의하면] 다양한 직업을 가졌지만 그 중에 하나가
작가인 , "다카하시 아유무".

그의 책 의 오세아니아부분에서 이런 제목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Weekly life'

  처음 호주에 오기 전에는 이 글의 제목과 내용을 선뜻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이제는 이해할 수 있었다.
호주의 많은 도시에 존재하는 쉐어하우스. 보통 1주일 또는 2주일 단위로 돈을 지불하고 그 집에서 방을 얻어 사는 것. 특히, 많은 워홀러들이 쉐어하우스 운영을 하면서, 특히 요즘에는 단기쉐어라는것이 많이 생겨났다.
 


2. 시티잡(city job)이라고 불리는 공장에 취직을 했다.
  백팩에서 살 수 없었으므로[물론 살 수는 있었지만 쉐어하우스로 가는 것이 더 저렴하고 편했으므로], 나는 쉐어를 알아보았다.  당장 내일부터 공장에 출근을 하라고 통보를 받았으니, 일단 집부터 구하는 것이 급선무 였다.  공장이 프리맨틀(Fremantle)에 위치하고 있었으므로, 프리맨틀주변에 있는 쉐어하우스를 알아 보았다.

  사실,  처음 퍼스에 왔을 때, 그리고 일자리를 알아보러 프리맨틀에 처음 왔을 때 프리맨틀은 한 번 쯤 살아보고 싶던 곳이었다.  그곳엔 바다가 있었기에, 내가 생각하던 그럼 삶[평일에 일하고 주말에 서핑하고]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평일에 일하고 주말에 바다에 나가서 해수욕, 서핑을 하고, 다이빙도 하고, 스노클링도 하고, 얼마나 좋을까? 내가 상상하던 그런 곳과 딱 들어맞는 곳이 바로 프리맨틀이었다.
 

이제, 내가 상상하던 호주에서의 생활을 할 수 있는건가???

 

3.
  퍼스시티(perth city)에서 20-30분이면 오지만, 퍼스와는 너무 다른 분위기.  조용하고, 차분한 거리, 인도양의 푸른 파도와 멋진 노을을 가진 도시. 바닷바람이 불어서 기분이 좋은 도시.  정말 내 마음에 꼭 드는 도시였다.


  프리맨틀(Fremantle) - City of Fremantle.

프리맨틀의 도서관의 게시판에 가서 각족 쉐어하우스 광고 쪽지에 가서 알아보고, 인터넷 사이트 검트리(http://perth.gumtree.com.au) [호주의 중고 물품거래 및 하우스 렌트에 대한 각종 정보가 있는 사이트]에도 알아보고, 이곳저곳 발품을 팔면서 쉐어하우스에 대해서 알아 보았다.

 

  일단, 가격이 싼곳으로!  그리고 웬만하면 한국인 쉐어보다는 오지[Aussie, 호주사람]쉐어로 가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지쉐어라 가면 자연스럽게 영어를 사용해야 하니까 영어도 늘릴겸 해서 말이다.
하지만 마땅한 곳을 찾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찾아간 곳 - 다음 카페의 퍼스 커뮤니티. "퍼스 참을수 없는 그리움(일명, 퍼참)"

그곳에 보니, 비교적 공장과 가까운 곳에 사람을 구한다는 광고를 올린 쉐어하우스 주인이 있었다. 그리고  그 중 한 군데를 연락해서 집을 보러 가 보았다.

 

4. 
  싱글룸,  주당 $125[싼 가격은 아니었다. 난 일주일에 $100 정도의 집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방은 넓었다. 침대도 더블침대가 있어서 크고 좋았다. 
  집도 깨끗하고. 호주 사람들이 사는 도시 교외의 한적한 동네에 위치한 집이었다. 전형적인 호주 주택가에 위치한 집.
 

   이런 곳에 살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아라고 혼자 되뇌었다. 보통 호주사람들이 이런 집에 사니까. 나도 이런 곳에 한 번 살아볼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집 앞에는 작은 정원이 있고, 뒤쪽 마당엔 잔디와 나무와 화초가 약간 있고, 조그마한 풀장이 있는 집. 흔히들 나오는 외국드라마의 그냥 평범한 집같았다. 키친도 외국 시트콤이나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조. 전형적인 외국집이었다.

좀 비싸긴해도 살아보자, 라고 생각했다.

 


5.

그렇게 살게 된 곳. 리치하이웨이(Leach Hwy)라는 큰 길가의 옆으로 난 주택가의 도로 빌링스웨이(Billings Way)에 위치한 집.
발음을 그대로 한국말로 번역한다면, - 부자 고속도로의 지폐들의 거리?

그럼 난, 부자 고속도로옆의 지폐들 거리에 살게 되는간가? 난 이제 부자가 되는건가?라는 유치한 농담을 속으로 생각하며.


아무튼,
공장에 취직하고 새로 살기로 결정한 집 주소도 좋았고[어감이 좋았단 말], 공장에서 돈도 많이 벌게되고 여러모로 좋았다.
그리고, 그곳이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곳.


호주에서 살아보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쉐어하우스.


- 6 번지,



- 안뜰,


- 주방,


반응형

I've got the job again!! - 하루만에 두개의 일자리를 구하다!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1. 28. 22:08

반응형

지평선 넘어로 뻗어있는 도로를 달려 퍼스Perth에서 카날본Carnarvon까지 와버렸다. 997km.


오전 6시,
꿈을 꿨다. 왠지 기분이 좋은 꿈. 카날본으로 가는길이 상쾌했다. 왠지 일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오전 8시.
카날본 시티센터에 도착을 했다.
여기가 카날본이구나..! 정말 휴양지같은 느낌이었다. 실제로 요트나 카약같은걸 차에 싣고 오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카날본에 부는 바람도 다합(Dahab, 이집트의 홍해에 있는 작은 휴양도시)에서 내가 느꼈던 바람과 유사했다. 기후도, 풍경도.. 다합에 대한 기억이 나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오전 9시.
시티 비지터센터(city visitor centre)가 문을 열자마자 들어가서, 잡에이전시(job agency)가 어디에있는지 물어봤다. 시티 쇼핑센터에 위치한 에이전시를 가르쳐주길래 바로 그리로 갔다.
에이전시에가서 잡을 구하고 있다고 말을 하니, 직접 농장을 찾아가보라면서 농장들이 모여있는 위치를 지도에 표시해주었다. 플랜트Planet. 어마어마했다.


그 이후,
농장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가니, 정말 거대한 대 농장들이 줄지어 있었다. 한 농장주에게 일이 있을만한 농장좀 알려달라고하니 카날본에만 170개가 넘는 농장이 있는데 자기는 그걸 다 알 수 없다고, 그냥 열심히 돌아다녀 보랜다...
대농장이 170개,,,,,,,,??? 거기서 일자리를 설마 못구하랴?

이미 일을 하고 있는 농장도 많았고, 아직 시즌을 시작하지않은 농장도 많았다. 농장을 하나하나 차례대로 돌아다녔다.

오전 10시경,
농장을 돌아다니면서 농장주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도중, 어디선가 전화가 왔다. "꿈이 드디어 현실이 되는건가?!"


전화,
"Hello"
"Yes, this is Mr, Chang"
"i'm mrs.....후략."

1시까지 공장으로 면접을 보러 오라는 전화.
카날본에서 퍼스까지 1000km거리를 3시간만에 어떻게 가지????????

프리맨틀의 아는 형에게 전화를 했다.
"형, 나 돌쏘냐에서 면접보러 오래요,"
"잘됐다 야, 당연히 가야지"
"네 형, 가야죠, 근데 저 지금 카날본에 있어요"
"아, 뭐 일이 또 그렇게 되냐???"
"그래서 말인데, 형이 대신 면접 좀 가주시면 안되요??"
"나도 니 맘 알겠는데, 나 예전에 거기서 일해서 걔네들이 나 보면 알아 그냥 사실대로 말해, 카날본에 있다고 내일 간다고"
"아... 네 알았어요 형, 어쩔 수 업네요. 나중에 다시 연락드릴게요"

방법은 없었다.
카날본에서 비행기도 없었고, 버스도 없었다.
비행기라도 있으면 비행기라도 타고 가고 싶었다. 버스는 다음날 새벽2시. 퍼스엔 오후4시에 도착한다.

공장에 다시 전화를 했다.
"오늘 오후1시에 인터뷰보러가기로 한 MR. CHANG인데, 사실 내가 지금 카날본에 있다.
인터뷰를 가려고, 비행기도 알아보고 버스도 알아봤는데 오늘은 교통편이 없다. 인터뷰를 내일이나 월요일로 미루면 안되겠느냐?"고 말했다.

"알았다. 일단 나중에 다시 전화 주겠다. yes or no를 조금 있다가  전화로 알려 주겠다." 는 대답.
초조했다.
그래도 한 숨 놓았다. 
나는 꿈을 믿었다. - 꿈에서 교수님이 나중에 발표하는 것을 허락했기에 믿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농장을 컨텍(contact)하러 갔다.
어느 한 농장에서 내일 일을 하러 오라고 했다. 일단 캐시잡으로 일을 시켜준댄다. 농장 어커머데이션도 시설도 좋았고 가격도 쌋다. 그렇게 일이 일사천리로 풀렸다.


일단 처음 숙소로 잡은, 카날본 백팩커스로 돌아왔다.
같이 온 동료들이 나에게 말했다.
"농장도 컨텍됐고, 우리랑 같이 여기 농장에서 일하자"라고.

고민했다. 많은 생각을 했다. 대답을 하지 않았다.
'여행, 돈, 시간, 사람, 정(情), 확실성과 불확실성' 모든걸 생각해야했다.

많은 고민끝에 나는 입을 열었다.
"퍼스로 다시 돌아갈게요"
"퍼스에 모든 미련 다 버리고 왔으면 여기 같이 있자. 여기까지 와서 니가 이러면 배신이다"라는 대답.

나의 상황에 대해서 설명했다.
이제 얼마남지 않은 시간. 그리고 필요한 돈. 내년까지 여행을 마쳐야하는 나의 상황. 시간+돈 과 사람 사이의 갈등이었다.

결국, 퍼스로 다시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퍼스로 가서 공장에 일단 가보지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을 평생 원망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날은 컨텍했던 농장에서 반나절 일을하고 현금으로 돈을 받고 나는 퍼스로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지만, 일이야 어떻게 되든 퍼스로가지않으면 정말 후회할 것 같았다. 


후담이지만,
결국은 모든일이 잘 풀렸다.
그리고 카날본에 같이 갔던 사람들과도 지금 잘 지내고 있다. 가끔씩 만나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들은 다시 퍼스로 내려와서 다른 농장에서 일하고 있고, 한명은 몸상태가 안좋아서 한국으로 귀국했다.







- Great north coast hwy의 로드하우스,


-


- 퍼스로가는 버스, 그레이하운드. 카날본-퍼스의 가격이 190AUD....쩐다..13시간버스가 20만원 ㅠ


- 호주에서의 마지막 농장일,


- 바나나밭 중간에 수박을 심었다...


- 바나나 열매들, 많이 따먹었다 ㅋㅋ



반응형

꿈 이야기 - 카날본으로 가는 길 로드하우스(Road house)에서,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1. 28. 20:39

반응형

혹시, 당신은 꿈을 믿으시나요? 혹시 믿는 다면,
꿈이 나의 미래를 예지한다는 느낌으로? 아니면 꿈은 반대라는 생각으로?
아니면 그냥 개꿈이라고 생각하나요?

전 꿈을 믿는 편입니다.

보통, 난 너무 피곤해서 새우잠같은걸 잘 때 꿈을 잘 꾸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 꿈을 꾸는 경우가 있다.
그 다음날이 대체적으로 중요한 날일 때. 뭔가 의미있다고 생각되는 꿈을 꾸는 편이다.

예를들어, 시험기간이라던가, 뭐 아무튼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일을 하는 날일 때 말이다.

그리고 호주에서, 뇌리에 선명하게 기억될만한 꿈들을 몇 개 꾸었다.



꿈을 꿨다.
- 퍼스에서 북쪽으로 1000km 카날본Carnarvon으로 가는 길, 어느 로드하우스의 주차장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꿈 속에서,
한 후배가 나에게 전화를 했다.
"오빠, 수업에서 조별 발표를 해야하는데 오빠 우리조에서 같이 발표 하실래요?" 라고 말했다.
난, "Ok"라고 대답을 했다.

왜 갑자기 그 아이가 나에게 전화를 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왜 하필 그애 였는지.
학교 다니면서 많이 마주치지도 않았다. 서너번 정도 본 것 같다. 술도 같이 딱 두번 먹었다. 싸이는 일촌이지만, 뭐 그냥 보통 선후배사이다. 별로 친한사이는 아니다.
왜냐하면 친할 기회가 없었으니까. 09학번.....ㄷㄷ...나는 세계일주를 한답시고 09년 3월 한국을 떳으니까.


꿈 속에서,
같이 발표 조모임을 하게 되었다.
발표준비를 다 끝내고 발표를 하는날이 되었는데 갑자기 내가 너무 급한일이 생겨서 발표를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교수님한테 전화를해서 발표를 다음으로 미루면 안되겠느냐고 부탁을 했더니 다음에 발표를 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뭐 지금은 기억이 잘 안나는 이것저것을 하고나서,
다시 발표를 하게 되었다.

꿈의 끝.


아침 6시 경,
잠에서 깨어났다. 약 4시간을 차 안에서 눈을 붙이고, 카날본으로 다시 떠났다.


왠지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냥 느낌이.
그리고 왠지 어디선가 내 전화기로 전화를 해 줄것 같았다. 그냥 이유없이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일자리에 관한 전화가 올 것 같다는 근거없는 믿음이 생겼다.
혼자 꿈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았는데, 왠지 공장 어디선가에서 나한테 전화가 올 것 같았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아무튼 그 날 아침부터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 날, 오전 10시 경.
카날본에 도착을 해서, 농장들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일자리를 알아보러 다니고 있었다.
다행히도 시내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서 일을 구하러 다니고 있어서 전화가 터지는 구역이었다.

농장을 돌아다니며 농장주와 이야기를 나누던 그 때, 어디선가 일반전화로 걸려진 전화가 내 휴대폰을 울렸다.
프리맨틀Fremantle 에 위치한 소세지 공장에서 전화가 온 것이었다. 돌쏘냐(DORSOGNA). 내가 얼마나 가고 싶어하던 공장이던가!
오늘 오후 1시까지 인터뷰를 보러 공장으로 올 수 있는지 묻길래, 당연히 오케이했다.

인터뷰까지 남은시간 3시간.
1000km가 넘는거리를 3시간만에 어떻게 간단말인가???????
일은 그렇게 되었다.

여기서 부터 나는 참 절박했다.
그리고 같이 카날본에 간 사람들은 참 착찹해했다.

그날의 꿈. 잊지 못한다.



- 잠을잤던 로드하우스,
모든건 우연의 일치였을까? 카날본에서 퍼스로 돌아오는 버스도 여기서 쉬었다.




반응형

I've got the job! - 04, 호주에서의 마지막 와인농장 : Donnelly River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1. 21. 14:59

반응형

마지막 와인팜.
와인으로 유명한 호주 서남부의 마가렛리버(Margaret river)에서 약간 오른쪽에 위치한 펨버튼(Pemberton)에 갔다.
여기로 오기 전 조그마한 와인팜 몇 군데를 더 갔었다. 퍼스 근처의 스완강(Swan river)도 와인으로 유명한 곳이었는데 그곳에 위치한 와인 팜이었다. 한 농장은 포도나무가 40년이 넘은 것이었는데, 정말 나무가 돌덩이처럼 보였다. 그 나무에서 나는 와인의 향이 정말 죽여준다고 하는데, 먹어보지 못한게 아쉽다.

아무튼,
퍼스Perth에서 남쪽으로 4시간 이상을 달려 도착한 곳, 도넬리리버(Donnelly river) 와인팜.
농장안에 와이너리(Winnery)도 있었다.

쾌 큰 농장이었다.
이곳에서 엄청난 속도로 2주나 일했으니까 말이다.
농장안에는 소떼들이 몰려 다니면서 풀을 뜯고 있었는데, 농장의 잡초는 소들이 다 뜯어먹고 있었고,
농장 어커머데이션앞 뒤에 오렌지나무와 레몬나무가 몇그루 있었는데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떨어진 오렌지들을 소들이 주워먹고 있었다.
농장 주변은 숲이라서 캥거루들이 뛰어 다니고 있었다.

기후?
정말 최악이었다. 포도나무들이 언덕을 따라서 언덕 위쪽가지 쭉 심어져있었는데, 언덕위에서 보면 저 멀리 남극해가 보였다. 그 쪽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과 구름, 정말 최악!

모진 환경에서 자란 나무들이 만들어낸 와인의 맛이 좋다고,, 이곳에서 생산된 와인은 호주 와인콘테스트에서 상도 받았다. 바람이 얼마나 불던지, 포도나무가 뽑히기도했고, 밑둥이 1미터가 넘는 나무도 쓰러져 있었다.

농장일을 하면서 그렇게 많이 비를 맞아가면서 일을 하기는 처음이었다. 도착한 첫날부터 비가 쏟아졌다.
하지만, 농장주의 닥달로 인해서 비를 맞아가면서 일을 했다.
9월 중순이면 거의 우기가 끝나는 기간인데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렸다.
10-20분 비가 내리다가 해가 뜬다.
하늘 저 멀리 구름이 보이고 그 구름들이 다시 20-30분뒤에 농장위를 지나가면서 엄청난 비를 뿌렸다.

일을 하기도 뭐하고, 안하기도 뭐하고, 비옷이 없었으면 정말 감기걸려서 폐렴으로 죽었을것 같다.
그렇게 힘들게 그래도 계속 일을 했다.
그래도 농장주가 빨리 일을 끝내주기를 요청했기에 우리는 일을 많이 할 수 있었다.

한번은,
팀원들 사이에서 논쟁이 있었다.
그 날도 일을 하러 나갔다가 비가 줄기차게 내리길래 일을 그만두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러자 또 비가 그쳤다.
일을 하러 다시 나갈것인가 말것인가 논쟁이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이런 상태가 될 건데 앞으로 어떻게 할지.

본인은 여행을 계속 해야했기에 시간이 없었고,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웬만하면 일을 하자는 쪽이었다. 주 50시간 이상 하면 좋겠다는 생각. - 50시간이면 텍스를 제외하고 주당 700달러 정도 세이브할 수 있었다.
나와 같은 의견 3명, 주40시간이 기본이니까 주40시간만 쉬엄쉬엄 하자는 사람 3명. 몸생각하면서 천천히 하자는 의견이었다.
이런저런 논란 끝에, 그 날 일은 접고, 펨버튼 날씨가 개판이니 중간에 비가와도 계속 일을 하자는 쪽으로 무게가 기울었다.

처음,
계속 일을 하자고 의견을 낸 본인이 욕을 많이 먹었다.(나이가 젤 어렸으므로, 기쁨조이자 갈굼의 대상이었다)
일을 할 수 있을때 짧은 시간에 많이해서 돈을 짧은 시간에 많이 벌자는 나의 의견에 처음에 반발했던 사람들도 나중에 페이를 받고나서는 돈을 많이 받았다고 좋아했다..(처음에 욕할땐 언제고 ㅡㅡ)

아무튼,
그렇게 농장숙소에서 여러 음식도 해먹고, 재미있게 보냈다.
6명이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사람이 여럿 모이면 이런 저런일도 생기고 마음상하는 사람도 생기고 여러가지였지만 나름, 잘 버텼다.

그리고, 와이너리에서 와인도 공짜로 주어서 와인도 많이 마셨다.
어커머데이션 창고에도 와인이 있어서 그것도 꺼내 마시고,, 
오렌지나무에서 매일 오렌지를 20개 이상씩 따먹었다. 오줌과 똥이 주황색이 될 정도로 말이다..


펨버튼으로 왔을 때 컨츄렉터가 우리에게 한 말이 있었다.
"이 농장을 빨리 끝내면 다른 농장이 있긴한데, 그 농장주도 지금 포도 나무 싹이 피고 있어서 빨리 손질해주길 바란다"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 농장이 끝나면, 다시 일을 구해야겠구나 하고 말이다. 그래서 하나하나 계획을 세웠고, 정리를 하고 있었다.

농장일이 끝나기 3일 전,
컨츄렉터와의 통화에서 컨츄렉터가 농장일이 끝나고 다른 일을 연결시켜준다고 했다. 
나는  크게 기대하지 않고 있었지만,  일단 시켜주면 하면서 그 일을 계속할지 생각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이제 농장을 떠나고싶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그리고 이제 혼자 다시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농장일이 끝나는 날이 다가올수록,
사람들의 얼굴에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나하는 근심이 보였지만,
컨츄렉터가 다시 일을 준다는 말에 모두 화기를 띄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통화한 결과로는 2-3명 분의 자리만 있다고 했다.
그리고 모두가 짐을 싸야할 시간이 하루가 남아있었다.







- 움직이는 호주산 쇠고기들


- 토나올 것 같은 포도나무들,









반응형

세계일주? - 돈없어도 할 수 있다. (결론)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준비 · 2009. 11. 8. 23:22

반응형

당신,
세계일주를 꿈꾸는가? 지구의 6개 대륙(남극까지하면 7대륙)을 다 밟아보고 싶은가?
지금 돈이 없다고, 그것을 못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당신에게 시간이 있다면. 그리고 열정을 가지고 있다면 할 수 있다.



앞서 말이 너무 길어졌다. 왜이렇게 말만 하면 딴데로 새는지 모르겠다. 각설하고.

결론부터 말하자. 돈없어도 할 수 있는 방법??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임을 다시한번 밝힌다)

먼저 한국에서 어느정도의 돈은 있어야한다.(세계일주를 하려면 최소의 자금, 비행기표값은 있을거라고 믿는다)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신청하고, 호주로 날아온다.
그리고, 호주에서 일을 시작해서 돈을 모은다.
그 돈으로 원월드 세계일주 항공권을 산다.
그리고 세계일주 여행을 시작하면 되는 거다.

결론은 정말 간단하다.
실제로, 호주에서 돈을 벌어서 여행을 시작한 사람들을 몇 몇 만났었다.
그리고, 여행을 하다가 호주에서 돈을 벌고 또다시 여행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만났었다.(본인도 이런 케이스)

하지만,
후자의 길을 걷고 있는 본인의 생각으로는 전자의 경우가 더 안정적인 여행을 할 수 있다고 본다(재정적인 면에서나 계획적인 면에서나)


호주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열정이다. 물론 운도 있어야 겠지만, 그 운은 자기가 열심히 한 만큼 운을 거머쥐는 것이다.


또 한가지,
세계일주를 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이 있다.
내가 가려고 하는 곳이 그 시기가 성수기(시즌)인지 비수기(논시즌)인지를 알아서, 웬만하면 논시즌에 가는게 좋다.

일반적으로 성수기에는 여행자들의 가격이 오르고, 사람들이 많이 몰리기 때문에 돈이 더 많이 든다.
본인의 이야기를 살짝 곁들이자면,,,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탈 때쯤의 시기가, 6월 말경이라서..비수기때보다 비싼가격에 표를 사야했다.
터키나 그리스를 여행할 때는 비수기여서, 비교적 저렴하고 안락하게 여행을 했었다.
지금, 남미를 가려고 하는 이시점..11월 부터는 남미가 성수기 시즌으로 접어들기 때문에 비행기표값이 엄청나게 올랐다.

이렇게, 성수기 비수기의 가격차이가 있기 때문에 장기여행을 할 때는 웬만하면 비수기에 가는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간혹, 호주에서의 워킹홀리데이를 와서 워킹에 실패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지금 머물고 있는 퍼스Perth에도, 많은 한국인들이 있고, 일을 구하지 못해서 돌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최소한, 나는 워킹홀리데이를 실패하지 않았고, 비록 내 계획보다는 좀 더 많은 시간이 지체되었지만 어느정도 생각대로 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이렇게 불특정 다수의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세계일주, 그거 돈 많이 필요한 거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묻는다.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얼마나 들었는지.
근데, 진짜 처음 여행을 시작할 때 가진 돈은 얼마 되지 않았다.

돈이 없다고, 여행을 못하는 건 아니다.
돈은 만들면 된다. 시간이 있다면. 시간과 돈은 반비례하기 때문에 시간과 열정,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시간이 없으면 여행을 못하는건 맞지만, 돈이 없다고 못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을 아껴라)

<터키, 카파도키아. 세계일주 중인 본인>


몇 일 전에 쓴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여행에서 필요한건 돈이 아니라 결단력과 용기이다.
그리고 호주에 열정과 노력을 가지고 오면 된다.


['세계일주 돈없이도 가능하다'관련 글 보기]

- 세계일주? - 돈없어도 할 수 있다. (본론)

 - 세계일주? - 돈없어도 할 수 있다.(서론)



반응형

세계일주? - 돈없어도 할 수 있다.(서론)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준비 · 2009. 11. 8. 21:19

반응형

당신, 

세계일주를 꿈꾸는가? 지구의 6개 대륙(남극까지하면 7대륙)을 다 밟아보고 싶은가?

지금 돈이 없다고, 그것을 못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당신에게 여행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 있다면, 그리고 열정을 가지고 있다면 '세계일주'라는 것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세계일주를 하는 데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 루트가 중요하다!


본인의 여행 스타일은, 루트를 전혀 신경쓰지 않는 스타일이다....그 결과 고생도 많이하고, 돈도 많이 깨졌다..(아까운 내돈 ㅠㅠㅠㅠ)
한마디로, 가보고 싶은 곳이 있으면, 일단 가고 본다. 그러다가, 어디가 끌리면 그리로 가버린다. 그렇게 자유분방(?)하게 계획이란걸 세우지않고 그냥 막 돌아다닌다. (물론 대체적인 큰 틀은 잡는다..)

어떤 사람들을 보면, 루트로 엄청나게 골머리를 앓는 사람들이 있다. 또한 루트를 짜는데 엄청나게 긴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현명(?)하다고 할 수도 있겠고, 계획성이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은 즉흥적으로 여행을 하기 때문에.

이번 여행에서, 루트의 중요성을 지금!! 이 호주땅에서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한국을 떠나기 전, 세계일주를 하기 전 생각했었다.
인도에 가고 싶었고, 파키스탄의 훈자에 가보고 싶었고, 지난 여행에서 가지 못한 슬로베니아에 가보고 싶었고,(크로아티아에서 해안따라 남쪽으로 이동했기에..)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타보고 싶었고, 몽골 초원에서 맨발로 달려보고 싶었고, 호주에서 스카이다이빙과 서핑을 해보고 싶었고, 마추픽추에 올라가보고 싶었고, 남미의 매력을 느껴보고 싶었고, 쿠바에 가보고 싶었고, 뉴욕에도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한 방법!
동남아와 인도를 거쳐, 중동을 지나 동유럽으로 간다음, 러시아로 들어가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몽골로 간다음, 중국을 거쳐서 호주로 내려간다. 
호주에서 워킹을 해서 돈을 번다음 남미로가서 남미여행을 한다음,카리브해를 지나서 북쪽으로 쭉쭉 올라가서, 뉴욕에 간다.
뉴욕에서 미국 횡단해서 캘리포니아까지간다음, 일본을 거쳐서 한국에 들어간다.

지도상에 루트를 그려보면, 숫자 "8"이 옆으로 누운 루트가 나온다. 대한민국이 중간이다.



그래서!
내 계획은 이랬다..
한국에서 알바를 해서 어느정도 돈을 모은다, 그 다음 그 돈으로 유라시아 대륙을 여행한 다음, 돈이 떨어질 때 쯤 호주로 넘어간다.
호주로 넘어가서 워킹홀리데이로 돈을 번 다음, 호주 여행을 하고, 남미로 넘어간다음 여행을 계속한다.
그리고나서 한국으로 돌아간다.

그럴듯 하다.
여행을 하는데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본인과 같은 가난한 여행자에게는 엄청난 리스크가 있었으니,그것은 바로 이동경비였다.
본인은 비행기를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왜???
비싸니까.그리고 도심에서 공항은 항상 멀리 떨어져 있다.
그리고,, 안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너무 많은 짐검사를 하고,,아무튼 그렇다.

호주에서 남미로가는 비행기표가 전 세계에서 가장 싸다는 정보(북미를 제외하고)를 어디선가 주워들었기에, 호주에서 일하고 남미를 여행하면 되겠다 싶었다.

사실, 처음에 고민을 좀 했다.
호주에서 처음부터 돈을 벌고 여행을 시작할까?

아니면, 여행중간에 돈이 떨어지면 호주에서 다시 돈을 벌어서 계속 여행을 할까.

본인은 후자의 방법을 택했다.

지금 당장 돈이 없어도 할 수 있다는 진짜 이야기를 본론에서 다루어 보자.


<인도, 타지마할>


[세계일주 어떻게 할까? 관련 글 보기]

 - 세계일주? - 돈없어도 할 수 있다. (결론)

 - 세계일주? - 돈없어도 할 수 있다. (본론)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