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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이집트, 바하리야 - 인생의 가르침을 얻다. 사막에서 만난 사람.(Egypt, Bahariya)-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2012. 1. 11. 20:43반응형
1. 강연(講演)
우리는 주변에서 저명한 사람들이 초청되어 어떤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강연회가 열리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리고 누구나 한 번쯤 강연회에 참석하여[강연을 하는 사람이 자신이 평소에 알던 사람일 경우, 강연회에 참석하여 강연을 듣는 경우가 많다] 강연을 듣기도 한다. 특히, 당신이 만약 지금 대학생이라면, 강연을 들을 수 있는 기회는 더 많다. 각 대학에서는 해외 유수 대학의 석학이나 사회 저명인사를 초청하여 강연을 하는 경우가 많고, 총학생회에서도 학생들의 삶의 질 향상과 교양을 위해서 사회 여러 분야의 사람들을 초청하여 강연을 하고, 학생들은 그 강연을 듣는다. 또한, 시간이 허락한다면 초청 연사와 질의 응답을 하는 시간을 가지고, 함께 대화를 하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우리는 사회 생활[학교 생활, 취미활동, 직장 생활 등의 모든 활동을 포괄하는 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면서, 자신보다 좀 더 많은 경험을 한 사람[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 자신 스스로가 판단 했을 때, 본받을 점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말과 행동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게 된다[자신이 판단 했을 때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서도 배울 것은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자].
흔히, 이런 사람을 일컬어 롤 모델[Role model]이라고 한다.
이처럼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대화를 통해서, 혹은 그 어떤 사람의 행동, 행적을 보면서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을 가지게 되고, 스스로를 변화시켜 나간다. 다시 말해, 우리 스스로 지금 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자신을 발전시켜 나간다고 할 수 있다.2. 이집트에서 만난 사람.
이집트 여행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나는 며칠 시간이 남았기에 이집트 바하리야 사막에 갔다 와야겠다고 생각했다.[카이로에서 바하리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그 곳에 도착하면, 그 곳에서 사막 투어를 주선하는 사람과 협상을 해서 1박 2일 짜리 사막투어를 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버스를 타고 바하리야로 떠난다. 이번 여정이 이집트에서의 마지막 여정이 될 것이다[이집트를 떠나는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4일이 남은 시점이었다]. 버스는 사막을 가로지르는 검은 실선 위를 달린다. 앞뒤좌우, 사방이 모두 모래 뿐이다. 뿌연 먼지 위로 태양이 홀로 불타고 있다.
휴게소에 들러 허기를 채우고, 더위를 피하기 위해 주위를 어슬렁 거리며 방황하고 있었다. 저 쪽에 같은 버스에서 내린 일본인 여자 여행객 두 명이 보인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바하리야에 가서 사막 투어를 할 것이냐고 물었다. 그녀들은 그럴 것이라고 대답한다. 오늘은 도착하면 호텔에서 쉬고, 내일 투어에 참여할 예정이라고 덧붙인다. 그들은 이미 호텔을 정해놓은 상태다. 나는 생각해본다. 바하리야에 도착해서 협상에 실패한다면, 어쩔 수 없이 호텔에 묵고 다음날 투어를 떠나야 한다. 모든 것은 불확실하다.
버스는 지평선 저 끝에 있을지도 모르는 낭떠러지를 향해 계속 달린다.△ 흑사막으로 가는 길.
끝없이 이어져 있는 도로, 그 위에 아무도 없다.
3. 흑사막과 백사막(Black desert and white desert) - 바하리야
버스는 바하리야 거리에 승객과 짐들을 토해 냈다. 버스 주변에는 지프 몇 대와 택시들이 서 있다. 누군가 그를 향해 외쳤다. 미스터 스즈키?. 아니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본다. 그에게 스즈키냐고 물었던 한 남자는 계속해서 스즈키를 찾고 있었다.
그는 이대로 호텔을 잡고, 여행사에 가서 사막 투어 문의를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어디로 가야 할까?. 그가 걸어야 할 방향을 정하고 막 발걸음을 떼려 할 때, 지프의 묵직한 경적이 그의 뒤통수를 때린다. 일 년 넘게 양치질 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하얀색 도요타 지프 한 대가 그의 곁으로 다가와 섰다.
안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사막 투어 갈꺼야? 갈꺼면 지금 같이 가자. 얼만데?. 150파운드. 음, 비싼데?. 그럼 140에 해줄게. 그래도 너무 비싸, 100파운드 해줘. 그건 안되고 그럼 120파운드 어때?. 그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오케이를 외쳤다. 보조석에 앉아 있던 한 일본인 남자가 같이 가자고 소리치며, 얼른 차에 오르라고 부추기고 있었다. 그 남자가, 스즈키였다.
그는 차에 오르며 생각 했다. 일단 지금 120에 합의를 봤지만, 나중에 더 깍아서 100까지 해야겠다. 그는 이미 시와 사막(Siwa desert)에서 1박 2일 사막 투어를 80파운드에 갔다 온 적이 있기 때문에 120파운드는 비싸다고 생각했다.
지프는 사막으로 떠나기 전 미리 주문해 놓은 듯한 먹거리를 차에 실었고, 작은 상점에 들러 먹을 것을 추가로 좀 더 샀다. 그러고 나서 사막의 입구에 있는 찻집에서 차를 마시며 약간의 시간을 흘려 보냈다. 그런 뒤, 투어를 떠나는 두 남자[그와 스즈키]는 지프 뒤에 나란히 올랐고, 바퀴는 사막을 향해 굴렀다.△ 검은 현무암으로 덮여 있는 흑사막(왼쪽)과 석회암이 있는 백사막(오른쪽)
4. 사막(desert) 속으로,
나는 협상을 하면서 물었었다. 오프로드(Off road) 주행과 음식, 그 밖에 어떤 옵션이 포함되어 있냐고. [사실, 시와 사막(Siwa desert)에서의 투어가 나에게 있어 굉장히 만족스러웠던 상황이었기에 나는 바하리야 사막 투어에 더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다. 가격도 더 비싼데 당연히 더 재미있겠지?라고 생각하며.]
흑사막을 지나 백사막으로 가서, 그 곳[백사막]에서 캠핑을 하는 일정이다 사막의 입구, 카페에서 마신 민트차의 여운을 뒤로 한 채, 우리들은 사막을 헤집고 다녔다. 지프는 사막을 신나게 달린다. 스즈키는 마냥 즐거운 표정으로 이것 저것을 구경하며, 사진을 마구 찍어대고 있다. 흑사막. 독특한 사막이다. 표면이 시커먼 돌들로 덮여 있다. 하지만, 시와 사막[모래 사막]의 강렬한 이미지가 뇌리에 새겨져 있던 나로서는 만족할 수 없다[사실 좀 실망스러웠다]. 즐거움이나 만족감을[혹은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더구나, 이곳의 사막 투어가 시와 사막보다 더 비싼 금액이라는 것이 나의 기분을 더 나쁘게 할 뿐이다.
검은색 화석으로 덮여 있는 흑사막. 그리고 하얀색 버섯 바위와 석회암으로 덮여 있는 백사막. 흔히 볼 수 없는 그런 사막이지만, 나의 마음은 즐겁지 않다. 마음 한켠엔 찝찝함이 남아 있다.△ 물을 마시러 온 '사막여우'.
우리가 캠핑하는 곳에서 귀를 쫑긋 세운 채 물을 마시고 있다.
5. 사막 속에서,
그들은 백사막 모래 위에 담요를 깔고, 지프를 바람막이 삼아 캠핑할 준비를 했다. 주변에는 하얀색 버섯 바위가 그들을 둘러 싸고 있다. 그와 스즈키는 여러 사진을 찍었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는 스즈키가 사막 투어를 위해서 엄청난 준비를 해 왔다는 것에 감탄을 했다. 스즈키는 이 사막 투어를 위해, 자신이 일본에서 준비해 온 CD[사막에서 듣기 좋은 음악 셀렉션]를 보여주었다. 수 십장의 CD가 케이스 속에 담겨져 있었다. 그들은 저녁 식사가 준비 되는 동안 그 음악을 들으며, 사막의 건조하면서 감미로운 공기를 허파 속으로 들여 보냈다.
저녁 식사 준비가 다 되었다.고 운전 기사가 말했다. 치킨 바베큐가 숯불 위에서 노릇노릇하게 익어가고 있었고, 사막의 베두인들이 먹는다는 전통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전통 음식을 먹었다. 그러고 나서 황톳빛으로 변한 치킨 바베큐를 먹고, 맥주와 음료수를 마셨다. 운전 기사는 자신이 이집트의 한 고등학교 국사 교사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 주말에는 사막 투어 가이드를 하고 있다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러면서 물 한 컵을 떠서 앞에 놓아 두었는데, 그렇게 하면 사막 여우가 찾아와 물을 마신다는 말을 덧붙였다.
해가 사막 저편으로 모습을 감추었을 때, 그들을 비추는 건 모닥불에서 흘러나오는 붉고 건조한 빛이 전부였다. 그들은 모닥불을 앞에 두고, 시간을 보냈다. 허리가 안좋다는 알리[운전기사 겸 가이드]에게 침을 맞으면 허리가 한결 좋아진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 그는 사막의 모래 위에, 포만감이 지배하고 있는 배를 대고 엎드려 허리에 스즈키가 놓아주는 침을 맞기도 했다[스즈키는 일본에서 한의사였기에, 항상 가방에 침을 가지고 다녔다].
그렇게, 달 빛 없이 별 빛 만으로 가득하던 밤이 지나고, 사막에는 지평선 너머로 아침 태양이 스믈스믈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아침햇살.
백사막에서 맞이한 아침.
6. 돌아오는 길.
나는 생각한다. 시와 사막(Siwa Desert)과는 다른 매력이 있지만, 그래도 시와 사막 때 만큼 재미있었던 것 같지 않다. 아직 돈을 지불하지 않았으니, 이따가 돈을 줄 때 다시 한 번 더 협상을 해서 내가 원하는 금액인 100파운드만 줘야 겠어.
어느덧, 지프는 바하리야 시내로 진입하고 있다. 알리는 한 시간쯤 뒤에 카이로로 가는 버스가 올 것이이니 저쪽 벤치에 앉아 기다리면 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나에게 투어 비용을 지불하라는 메시지가 담긴 눈빛을 보낸다. 나는 이제 말을 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저런 이야기로 말을 시작했다.
나는 몇 마디를 덧붙여 나의 입장을 밝힌다. 하지만, 알리는 완고하다. 나도 더 이상 내 주장만을 말하면서 내 뜻을 고집할 순 없다. 120파운드를 알리에게 건네주고 지프에서 내린다.
나와 스즈키는 지프에서 내려 간단하게 끼니를 때웠다. 버스 정류장 옆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서 버스를 기다린다. 메마른 태양이 흙먼가 피어오르는 거리를 광통하고 있다. 먼지들이 다시 그 태양빛을 관통한다. 나는 몽상에 잠겨 있다.
그 몽상을 깨뜨리며, 스즈키가 나에게 말을 걸어 왔다.
당신은 지금 막 다녀온 사막 투어가 마음에 들지 않았나요? 나는 그의 질문에 답한다. 며칠 전에 시와에서 사막 투어에 다녀왔는데, 그곳은 이곳보다 가격도 저렴하고 더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사실, 나로서는 이번에 간 사막에 좀 실망했고, 재미도 별로 없었어요.
스즈키는 말한다. 나는 이 투어를 가려고 카이로에서 예약하고 왔는데, 얼마를 냈는지 아세요? 나는 스즈키가 얼마를 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 없었다. 처음에 운전기사가 나에게 제시한 150파운드 정도 일거라고 생각을 하고, 150파운드 정도 아니냐고 말했다. 하지만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전 500파운드를 내고 왔어요. 카이로에서 말이죠.라고 스즈키가 말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내가 돈을 낼 때 제시된 옵션에는 치킨 바베큐 한 마리, 맥주, 과일 등 다 포함된 것이었어요. 당신은 120파운드를 냈죠? 그리고 나와 똑같은 옵션을 제공받았어요. 사실, 그 옵션은 나를 위한 것이었는데, 당신이 참가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반으로 나뉜거죠. 그렇지만, 전 마음 상하거나, 기분나쁘지 않아요. 당신을 원망하지도 않고요. 왜냐하면 저는 이번 사막 투어에서 500파운드 이상의 즐거움을 찾았고, 그 이상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하거든요.
나는 생각한다. 치킨, 맥주, 과일 등 모든 것이 스즈키의 몫이 었다. 중간에 내가 끼어들게 됨으로써 모든 것이 반으로 나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스즈키보다 380 파운드나 적은 돈을 지불했다. 모든 조건을 공유 하면서도.
그렇지만, 스즈키는 이번 사막 투어에 대해서 만족을 했고, 즐거웠고, 자신의 인생에서 다시 없을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백사막의 풍경.
7. 머릿속을 맴도는 그 말.
버스가 흙먼지를 날리며 굴러와 그들 앞에 멈춰 섰다. 그들은 버스에 올랐다. 둘은 함께 좌석의 한쪽을 차지했지만, 시선은 서로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각자 사막 건너의 서로 다른 지평선 너머의 절벽을 바라보며, 다른 생각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가 부끄럽다고 느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스즈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그는 바하리야 사막 투어를 하는 동안, 머릿속 한쪽에 생겨난 어떤 생각때문에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다. 시와 사막 투어와 비교 때문에 제대로 된 즐거움을 찾지 못했던 것이다. 그의 마음 한편에 자리잡은 불만이 바하리야 사막 투어의 재미를 갉아 먹은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시와 사막은 시와 사막 나름대로의 매력과 재미가 있는 것이고, 바하리야 사막은 바하리야 사막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다는 것을. 그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집트 여행의 마지막 여정. 바하리야 사막 투어의 끝자락. 그는 [인생의 대선배]스즈키에게서 [단순하지만 망각하기 쉬운]즐겁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것이었다. 그는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모래들을 바라보며, 계속 무언가를 되뇌이고 있었다.
당신은 지금, 여기에서 최고의 만족, 최고의 즐거움, 최대한의 행복을 이끌어 내려고 하지 않았어요. 당신이 100파운드, 500파운드, 1000파운드, 얼마의 돈을 내던 그건 상관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오직, 당신과 나에게 중요했던 건 이번 여행[바하리야 사막 투어]에서 최고의 만족, 최고의 즐거움, 최대한의 행복을 누리는 거였어요. 저는 제 목표를 이루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가 얼마를 냈던, 당신이 얼마를 냈던, 제가 낸 돈이 아깝지 않아요. 돈을 얼마 내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 최대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을 찾고, 가치를 뽑아내면 되는 거잖아요. 지불한 돈 이상의 가치를 찾아서 즐기면 되는 거에요. 우리가 함께 보냈던 그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잖아요. 그러니, 우리는 최대한 행복하게, 즐겁게 즐기는 수 밖에 없죠.
그 순간에도, 버스는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며 사막 위를 굴러가고 있었다.
2. 일기장(Diary)
요즘은, '일기장(日記帳)'이라는 말을 쓰기보다는, '다이어리'라고 부르는게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 그런 것들을 누구나 하나씩은 들고 다닌다. 흔히, "다이어리를 쓴다"고 말하고, 그때그때 떠오르는 것을 적거나, 어떤 날의 생각을 네모로 생긴 수첩에 적어 둔다. 이런 용도 말고도,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여러가지 용도로 다이어리를 쓴다.
집안의 짐을 정리 해야할 일이 생겼다. 나는 이사를 가야 했다.
이사를 가기위해 짐을 정리하는 행위에는 단순히 짐을 포장하는 행위 말고도 다른 행동들을 수반하게 된다. 그 동안 찾아볼 수 없었고, 이미 머릿속 기억에서 지워져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여러가지 물건들이 책상 서랍의 구석에서 나오기도 하고, 책더미 사이에서 추억의 편지나 엽서 같은 것이 흘러 나오기도 한다. 그렇게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어떤 사람의 흔적이 불쑥 나타나는가 하면,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지워져 있던 순수하던, 풋풋했던 옛날의 기록들이 고개를 슬며시 내밀기도 한다['추억'과 함께 말이다].
짐을 정리하면서 나오는 몇 권의 작은 노트[또는 수첩]. 머릿속 저편 망각의 그물 속에서 어떤 기억을 슬며시 꺼낸 뒤, 그 작은 노트를 조심스럽게 펼칠 때. 그럴때면 항상, 왠지 모를 가슴 벅찬 설렘이 몰려 온다. 어느새 손끝에는 옛날 나는 무슨 생각을 했었더라?.하는 호기심이 맺혀있다. 한 장. 한 장. 조심스럽게 과거의 시간을 넘겨 가며, 옛날 썼던 글들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순수하던, 힘들었던, 고민이 많았던, 그런 시절들이 페이지 저 너머에 펼쳐 져 있다.
서랍의 한 귀퉁이의 어둠 속에서 잠을 자고 있던 일기장이, 내 손끝에 닿았다. 일기장? 초록과 하얀색이 부드럽게 뒤섞여 파스텔톤으로 은은하게 빛나고 있는 딱딱한 표지. 길쭉한 모양의 노트였다. 고등학교 2학년때 부터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생각 날 때마다 간간히, 글자들을 묻어 놓았던 일기장이다. 무슨 내용이 들어있을까? 그 시절, 나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라는 호기심이 나를 둘러사고 있었다. 어느새 내 손은 일기장을 펼쳤고, 그 곳에는 지금의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이야기와 생각들이 흐르고 있었다. 내가, 이.랬.었.구.나..
나는 [적어도 일기장을 넘기던 그 순간까지]고등학교 시절 3년을 되돌아 봤을 때, 내 자신 스스로가 힘들거나 괴롭다고 느꼈던 적이 거의- 없었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일기장은 그제서야 나에게 말해주고 있었다[비록, 그 날이 심하게 괴로웠던 날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시절 나는 힘들어 하고 있었다. 힘들고 고독한 싸움을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고. 성적은 원하는 만큼 올라주지 않았고, 일기장 속에는 힘들어 하는 내가 있었다. 어느덧, 고3 후기. 나는, 그 시절을 나름대로 즐겼다고 믿고 있었지만, 그것은[그렇게 믿은 이유는] 단지 즐거웠던 기억의 파편만이 머릿속에 남아버린 탓이었다. 그 시절에 내가 끄적였던 일기장에는 그 당시의 [어쩌면 진실된]내가 남아 있었다. 그 시절을 즐기지 못하고 있던 내가.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이 유행하던 시절, 나는 피할 수 없었지만, 즐기지도 못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과거의 시간. 일기장이 너는 그랬어.라고 말하고 있었다.반응형'- 길을 걷다, 세계여행 > 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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