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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네팔(Nepal) - 테러를 당하다.(2) : 네팔 버스테러-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2012. 2. 6. 17:22반응형(1st edit 10.11.14)
"Episode] 테러를 당하다.(1) : 인도 국경 폐쇄"에서 이어집니다.(클릭하면 글을 볼 수 있어요)
1. 테러. 테러리즘(Terror, Terrorism)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2001년 9월 11일. 뉴욕의 중심. 세계 경제의 중심. 맨해튼(Manhattan)의 중심에 있던 세계무역센터(WTC. world trade center)가 무너져 내렸다. 여객기 두 대가 테러리스트의 지시에 따라 쌍둥이 빌딩의 내부에 파고 들었다. 하늘을 찌를듯한, 세계 경제의 중심지의 위상을 드높이며 서 있던 쌍둥이 빌딩은 차례로 무너져 내렸고, 한 줌의 재가 되었다.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테러.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가? 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당신은 어떤 생각이 먼저 머릿속에 찾아오기 전에 온 몸으로 느끼고 있다. 알 수 없는 두려움. 공포의 끝자락을. 당신이 머물고 있는 빌딩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고, 10분 뒤 폭발할 거라는 테러리스트의 메시지가 남겨진다면 그것이 어떤 공포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겠지만, 우리는 막연히 생각할 뿐이다. 그리고, 생존자들의 입을 통해서 우리는 테러의 공포에 대해서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엄청난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후유증에 시달리는 사람들.
테러리즘, 테러리스트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일까. 그들은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테러를 자행한다[일반적으로 정치, 종교, 사상적 목적을 위해 폭력적인 방법의 수단을 동원한다] 그런 임무 수행의 과정 중에 개인, 단체, 국국가를 상대로 누군가를 사망에 이르게 하고, 물질적, 정신적인 피해를 입힘으로써 공포심을 일으키고, 어떤 행동을 강요하거나 혹은 행동을 중단하게끔 한다. 이러한 테러는 특히, 정치나 종교와 많은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된다[주요 테러리스트들의 출신을 살펴보면 이슬람 과격분자라는 견해가 많은 것을 근거로 생각해 볼 때 말이다].
테러리스트들['테러분자'라고 하기도 한다]은 자신들이 믿는 이념의 큰 뜻을 이루기 위해 민간인이나 관련되지 않은 사람들의 희생이 어쩔 수 없다는 가치 판단을 내리며, 그 자신 혹은 자신들의 동조자들의 생명 또한 희생되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여행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들은 항상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들은, 특정 누군가를 향해서 테러를 자행하고 사회나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 불특정 다수를 이용하여 자신의 목적을 취하려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포심을 극대화하기 좋은 가장 좋은 대상이 바로 여행자, 외국인들이다. 옛날 이집트에서 폭탄 테러가 났을 때도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테러였고, 예멘에서 테러가 났을 때도 관광객을 상대로 한 테러였다. 관광객은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지만, 그들은 테러리스트의 표적이기도 하다.
2.
서울에서 시내버스가 폭발하는 사고가 일어난 적이 있다. 그 사고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했다. 그 버스에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설레는 마음을 안고 약속 장소로 가던 사람이 있었을 것이고,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어디론가 떠나고 있던 사람, 자신의 보금자리로 돌아가던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갑작스런 사고로 그 사람들은 상처를 입었으며, 혼란을 경험했다. 갑작스런 사고. 그것은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 넣었다. 물론, 그것은 테러가 아닌 갑작스런 사고였지만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희생되었다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공포심을 느껴야 했다.
얼마 전, 또 파키스탄에서 자살 폭탄테러가 났다. 내가 파키스탄에 가려고 생각하고 있던 무렵에도 한창 자살 폭탄 테러가 자행되던 시점이었기에 인도와 네팔 사이의 국경이 폐쇄되기도 했다. 결국 나는 잦은 자살폭탄 테러로 인해[궁극적으로는 나도 자살 폭탄테러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인도 국경을 넘어 파키스탄을 넘어가지 못했다. 나는 갈 수가 없었다.
예멘에서 한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폭탄 테러가 일어나서, 4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그 사람들 중에는 내가 아는 사람과 관련되는 사람이 있었다. 나에게는 예외라고 느껴지던 테러의 위험, 테러로 인한 죽음이 나에게 어느새 한걸음 다가와 있었다. 나는 도저히 테러의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느꼈다. 테러는 불특정 다수를 향해서 일어난다. 테러는 관광객들을 노리는 경우가 더 많다. 여행자는 항상 조심해야 한다.
사고, 테러 등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사건들은 예측하지 못할 때 찾아온다[예측할 수 있을 때 찾아오는 사고는 부주의다]. 해외여행, 특히 정치적으로 불안정하거나, 내전이 있는 지역을 여행 할 때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 언제, 어디서 불의의 사고가 터질지 모르고, 그 희생자가 바로 당신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내가 파키스탄을 가려 했을 때, 국경에서 버스 폭탄테러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코소보가 독립하기 전 코소보 지역을 여행 하려 했을 때, 코소보는 국지적 게릴라전이 발생하여, 민간인들이 수도 없이 죽어 나갔고, 내가 이집트 다합에 있을 때 외국인을 상대로 한 테러가 발생해서 7명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이번 네팔 여행을 하기 위해 인도를 떠나 네팔 국경으로 향했을 때에도, 전국적인 파업과 정치적 불안 상태가 발생하고 있었다. 나는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봤다. 나는 조금은 소극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3.
여권에 네팔 입국 스탬프를 찍고, 일행들과 함께 근처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는다. 우리는 다음날 아침 일찍, 테러를 피해 룸비니(Lumbini)에 있는 한국 사찰에 머물다가 상황을 지켜본 다음 카트만두나 포카라로 가기로 했다. 일행은 사이클 릭샤를 타고 룸비니로 이동했다. 국경에서 룸비니의 사찰들이 모여 있는 곳 까지는 20km가 넘지만, 모든 교통수단이 통제되고 있는 상황에 우리가 탈수 있는 것은 사이클릭샤 밖에 없었다. 우리는 사이클릭샤를 운전하는 사람에게 많은 돈을 쥐어 주었지만,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큰 배낭과 두 사람을 싣고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사이클릭샤 운전수. 힘들고 지쳐 보인다.
룸비니의 한국 사찰(절/寺)[룸비니에는 독일, 일본, 중국, 태국 등 각국의 사찰들이 각국의 특색에 따라 지어져 있다. 그 곳은 부처가 태어난 곳이기 때문에, 불교의 성지중 한 군데이다.]은 방문자들에게 숙식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었기에 그 곳에서 머무는데 부담은 없다. 또한, 절에서 제공되는 음식도 한국의 음식과 비슷했기에 인도의 음식에 지쳐있던 나로서는 몸보신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우리는 몇 시간을 자전거에 의지한 끝에,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장소였다.
4.
그들은 룸비니에 3일 째 머물고 있었다. 여전히 교통수단은 마비된 상태였고, 각종 소문들이 절 안으로 파도치듯 한 두명의 여행자들과 함께 몰려 왔다. 문제는 테러집단이었다. 그들은 대중교통인 버스를 향해서 테러를 자행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사찰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더 이상 발이 묶여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짧은 기간 여행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그들은 하루 바삐 그들의 목적지로 가야만 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다. 나는 더 이상 여기서 시간을 지체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내일 상황이 어떻게 되든 여기를 떠나겠어요.
매일 밤, 소나울리[인도와 네팔의 국경 도시]에서 비밀리에 버스를 운행 한다는 소식이 봄바람 불듯이 사찰 안으로 흘러 들어왔기에 사람들은 그것을 타려고 했다. 포카라와 카트만두로 가는 버스가 각각 한 대씩 있었다. 가격은 평소의 3배 이상. 하지만 사람들은 다른 대안이 없었기에 그 버스를 타야만 했다. 그도 그 버스를 타고 카트만두로 떠날 생각이었다. 그 전날 함께 룸비니의 사찰에 머물던 두 명의 남자가 먼저 포카라로 떠났기에, 사회적 혼란 상태는 어느정도 진정되고 있는 듯했다.
5.
룸비니에 남아 있던 여섯명의 사람들이 다시 소나울리로 아침 일찍 나온다. 그날 밤, 포카라와 카트만두로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위해서다. 나와 사람들은 호텔에서 반나절을 쉬면서 해가 기울어 어두워지기를 기다린다. 포카라로, 카트만두로 각각 자신의 길을 가야하는 사람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지금 우리의 상황에 대해서, 과거에 대해서, 그리고 미래의 여행에 대해서.
거리에는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거리를 가득 메웠던 사람들이 하나 둘 씩 사라져간다. 어둠이 온 거리를 지배하자, 버스를 타기위해 많은 여행자들이 모여든다. 하지만, 버스는 단 두 대다. 포카라로 가는 버스 한 대. 그리고 카트만두로 가는 버스 한 대. 포카라로 가는 버스는 사람이 많아서 버스 지붕에도 사람이 올라탄다[포카라는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재미있는 광경이지만, 야간 버스이고, 지금 상황에 사고가 날 수도 있기에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카트만두로 가는 버스는 인원이 딱 맞았다. 저녁 8시. 버스 기사와 요금을 받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버스에 시동이 걸렸다. 자기들 끼리 무언가 말을 주고 받았다. 나는 어서 빨리 카트만두에 도착하기를 바랄 뿐이다.
버스는 라이트를 켜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달빛에만 의지해서 도시를 빠져 나가려는 것이다. 게다가 버스는 단독으로 출발하는 것이 아니다. 10톤 트럭 뒤에 바짝 붙어서, 라이트를 끄고, 버스가 버스임을 부정한 채 운행하는 것이다. 소나울리의 버스 협회에서 웃돈을 받고, 여행자들만을 위해서 비밀리에 운행하는 버스였기에, 진행자들은 조심스러웠다. 사람들은 우왕좌왕했지만, 출발전 큰 사고는 없었다.
6.
그는 운전석 뒤 둘 째 줄에 자리를 잡았다. 그의 앞 좌석에는 동행하는 여자 아이가 앉았고, 그 앞 운전석에는 칸막이가 쳐져 있었다. 그리고 운전기사의 옆에 보조석 자리에 세명의 외국인 여자가 앉았다. 그들은 버스가 떠나려고 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달렸다. 모든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다. 천천히, 트럭들 틈에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밤은 점점 깊어갔고 사람들은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피곤했다. 목적지로 가기 위해 많은 시간을 기다린 탔이었을까. 그도 음악을 들으며 슬며시 잠속으로 빠져들려고 하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버스의 옆면을 무언가가 툭툭 건드리는 소리가 났다. 둔탁한 소리였다. 뭐지. 그 때 갑자기 창문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 쨍그랑. 여자의 비명 소리가 들려 왔고, 버스는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밖에서는 괴성이 들려오고 있다. 버스 옆면을 두드리는 둔탁한 소리가 끊임없이 그의 귓등을 때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괴성을 질러댔다. 혼란스러웠다. 잠은 어느새 멀리 달아나고 없었다. 그리고 그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면서,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하지. 여기서 죽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채웠다.
7.
버스는 멈추지 않는다.
버스의 앞 유리창이 박살났다. 파편은 산산조각 나서 이리저리 뒹굴고 있다. 하지만 운전기사는 버스를 세우지 않고 계속 몰았다. 마구 흔들리며 바닥 긁는 소리를 내는 유리조각들. 사람들의 괴성과 어디선가 들려오는 여자의 흐느낌. 그리고 멀어져 가는 굵직한 남자들의 목소리.
깨진 유리창으로 차가운 산바람이 쏟아져 들어왔고, 운전석과 좌석 사이의 칸막이에 달린 문은 마구 흔들리면서 혼란한 상황을 어색하지 않게 표현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버스에 올랐던, 보조석에 앉아 있던 외국인 여자는 비명을 지르며 울고 있다.
바깥의 함성이 서서히 잦아지다가 이윽고 들리지 않았다. 버스의 엔진 소리만이 어두운 공기를 울리고 있었다. 얼마 후, 운전기사는 버스를 세웠다. 운전기사 옆에 자리하고 있던 세 명의 여자 여행객은 울고 있었다. 한 명은 다리가 피범벅이었다.
여행자들은 자신의 배낭에서 응급약을 꺼내서 전달해 주었다. 깨진 유리로 인해 가벼운 찰과상이 여러군데 난 것 같았다. 큰 상처는 아닌 것 같았다. 다행이었다. 운전기사에게 큰 돌덩이가 날아갔지만, 운전기사도 큰 상처를 입지 않았다.나는 혹시나 여기서 다시 소나울리로 돌아가야하는건 아닌가하는 걱정이 앞섰다. 여기서 돌아가면 모두 도루묵이다. 나는 또 다시 이 길을 지나올 자신이 없다.
8.
여행자들은 서로 도울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도왔다. 운전기사는 선글라스가 필요했다.[유리창이 없었기에, 차가운 밤바람과 산속의 벌레들로 부터 눈을 보호해야 했다.]
버스는 다시 출발했고, 히말라야 산자락의 밤 공기는 차가웠다. 모두들 추위에 떨면서 히말라야의 산 속을 달렸다. 카트만두는 영원히 나올 것 같지 않았다. 그는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언제 또 다시 그런 상황이 발생할지 몰랐다. 히말라야 산맥 저 뒤편으로 태양이 고개를 내미려고 할 때, 도시가, 건물들이 보였다. 해가 밝으려 할 때 모두들 카트만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는 그날 소나울리에서 카트만두로 오던 길에 일어난 모든 일들이 꿈같이 느껴졌다.
- 카트만두 시내 데모현장
- 룸비니의 한국 사찰, 저 뒤에 공사중인건 대웅전. 황룡사 9층 목탑을 따라한 것.
- 룸비니의 밤. 룸비니의 밤에는 원숭이들이 괴성을 질러댄다.
- 국경(인도 쪽)
- 사이클 릭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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