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인도, 바라나시 - 물[水], 갠지스 강으로 가는 이유(Varanasi, India)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3. 9. 5.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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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물[水, Water], 그것은 생명.

  인간은 물이 없으면 살 수 없다. 이 사실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물을 갈망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한다. 우리는 물과 떨어질 수 없기 때문에 항상 곁에 두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물을 갈망하고, 물을 통해 갈증을 해소하면서도 물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 


  
'관심'이란, 서울에 여행 온 프랑스 사람이 서울이라는 도시의 일부를 바라보며, 여러 사물들의 움직임과 위치가 나타내는 의미를 찾아내려고 노력하는데 필요한 '관심'같은 것을 말한다. 우리는 프랑스인과 달리, [서울에 사는 사람들을 예로 들자면]서울의 일상적인 풍경에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으며, 주변의 변화조차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그런 상태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물에 대한 '관심'은 물이 가지는 의미, 존재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이다.

 

  화성 탐사선이 화성에서 물의 흔적에 대한 정보를 지구로 보내면, 그것을 받아본 지구인들은 흥분 상태로 돌입한다. 화성에 생명체가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기대감. 먼 미래에는 지구인이 화성에서도 살 수 있지않을까,라는 생각. 

 물은, 그 흔적 만으로도 생명이 될 수 있다. 

 

 메마른 땅에 빗방울이 스치고 지나가기만 해도, 초록색 풀들이 대지를 뒤덮는다. 메말랐던 땅이 생명의 땅으로 변모한다. 사막 한가운데 있는 물 웅덩이-오아시스- 주변은 생명의 요람이다. '물'은 생명이자 그것의 탄생이라고 할 수 있다.




2.물, 그것은 삶(Life).

  어린 시절의 여름, 친구들과 함께 흐르는 물 속으로 송사리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개천에 자주 놀러가곤 했다. 개천에서 실컷 헤엄치고 물고기도 잡으며 한참을 놀다가, 물에 흠뻑 젖은 채로 집을 향해 걷는 것이 일상의 모습이었다. 지금은 TV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그런 광경들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여름이면, 개천으로 강으로 달려갔다.   

  지금도 여름이면, 사람들은 너도나도 물가로 달려간다. 드넓은 바다로, 산 속의 계곡으로, 강변의 수영장으로. 누군가는 물 속에서 살고싶다고도 말한다. 물은, 우리의 갈증을 해소시켜 준다. 더위에 지친, 우리의 몸이 느끼는 갈증을 해소시켜 주고,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바다에서의 즐거움, 계곡에서의 즐거움, 강변 수영장에서의 즐거움. 우리는 물과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오감(五感)이 즐겁다.


  겨울, 눈이 내린다. 눈덮힌 자동차들, 눈 덮힌 집들. 집 앞, 온 동네, 온 도시, 온 세상이 눈에 덮힌다. 하루 아침에 온 세상의 풍경이 새하얗게 바뀐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우리는 눈덮힌 세상을 바라보며, 첫사랑을 생각할 수도 있고, 저 멀리 떨어져 있을 누군가를 생각할 수도 있다[누군가는 치워야할 쌓인 눈을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낭만을 즐기자]. 작은 물방울들이 응고된 결정체가 세상을을 바꿔 놓는다. 매서운 바람이, 잿빛 하늘아래 음울하던 풍경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새하얗게 바뀌어 있는 것이다. 


  눈[雪]은 물[水]이고, 물은 우리의 삶의 풍경을 바꿔놓는다. 

  



3.갠지스(Ganges), 그곳으로 가는 이유,

  유라시아 대륙의 지붕, 티베트 고원. 그곳에서 남쪽, 인도양을 향해 가다보면 거대한 국가, 인도(India)가 있다. '인도'라는 단어를 보았을 때,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인도'라는 거대한 나라

를 하나의 이미지 속에 구겨넣을 수는 없지만, 우리는 기억의 편의를 위해 '인도'라는 국가를 어떤 하나의 이미지로 만들어 머릿속에 넣어 둘 수 있다. 

  우리가 '인도'라는 말을 들었을 때 떠오르는 것,

  누군가는 타지마할(Tajmahal)을 말할 수 있고, 누군가는 흙먼지 날리는 혼잡한 거리와 릭샤에 대해서 말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드넓은 갠지스 강에 몸을 담그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도 있다. '인도'라는 나라를 이것들만으로 표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이것들은 모두 '인도의 이미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지금의 인도 거리가 흙먼지 날리는 혼잡한 풍경을 갖추기 이전에, 17세기 무굴 제국의 황제 샤 자한이 '타지마할'을 만들라고 명령하기 훨씬전에, 히말라야 산맥이 있었고, 히말라야 산맥의 빙하에서 물이 흘러 나왔고, 흘러나온 물은 큰 강을 이루었다. 그 강이 바로 '갠지스 강'이다. 인도의 이미지, 그 모든 것이 있기 이전부터 갠지스는 인도를 흘렀다.


  인도에 여행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거리 열차를 타고 '바라나시[Varanasi, Banaras라고 표기하는 사람도 있다]'로 향한다. 보통, 이틀 이상씩 흙먼지를 만들며 달리는 열차에 몸을 싣고, 침대칸에서 누웠다 앉았다를 반복하며, 하염없이 창밖을 보다 말았다를 반복하면서 바라나시로 향한다.

바라나시의 혼잡한 거리.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가져간 책을 다 읽어도 기차는 여전히 달리고 있다. 같은 칸에 타고 있던 사람과 나눌 이야깃거리가 더 이상 없다고 느껴질 때 쯤이면, 바라나시 역에 도착한다. 바라나시 역 안팎에 머물고 있는 수 많은 인파들을 헤치고 나오면 우리는 그제서야 바라나시의 모습과 대면하게 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바라나시'까지 가는 걸까, 왜 바라나시는 여행자들을 자신의 품 안으로 끌어들이는 걸까, 어떤 매력이 있기에 여행자들은 그곳으로 가는 걸까.


  바라나시에는 강이 있다. '갠지스 강'이 있다. 물론, 그 강이 바라나시에만 흐르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바라나시'로 간다. 그곳에서 '갠지스 강'을 보기를 원한다. 그곳에 흐르는 강은 '그냥' 갠지스 강이 아니다. 신비의 강, 갠지스이다. 수 많은 가트(Ghat)들이 강변에 있고, 사람들은 그곳을 찾는다. 죽은 사람도 강을 찾고, 산 사람도 강을 찾는다. 여행객들도 강을 찾고, 현지인들도 강을 찾는다. 모든 일은 가트에서 일어나지만, 사람들은 '강'때문이라고 말한다.




4.과거의 죽음, 현재의 삶, 미래의 생명 - 갠지스 강의 모든 것

  갠지스 강가를 거닐다 보면[엄밀히 말하면, 수 많은 가트들을 거닐다 보면], 우리는 그곳에서 많은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어제를 살았지만 지금은 죽은 사람의 모습, 오늘을 살기위해 자신을 정화하는 사람

햇볕을 쬐고 있는 빨래들, 갠지스 강가.

들의 모습, 미래의 생명을 위한 의식을 행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과거의 죽음, 현재의 삶, 미래의 생명'이라는 갠지즈 강이 담고 있는 모든 것이다.


  물[水]은 생명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소멸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리고 맥락에 따라서는 대상에 대한 사랑의 방증이 될 수 있다.

 

  바라나시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갠지스 강은 삶이다. 이른 아침,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해가 뜰 무렵, 갠지스 강가는 사람들로 붐빈다. 강물에 몸을 담그고 하루를 시작하려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그들에게 강물은 하루를 건강하게 열 수 있게 하는 신성함이 깃든 물이다. 그 강물매우 더럽기 때문에 강물에 들어가는 것은 몸에 해로울 수 있다고 누군가가 말하더라도 그것은 그들에게 중요한 사실이 아니다. 

  그 강물에 몸을 담그며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갠지스 강이 그들의 삶과 함께 하는 강이라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갠지스 강의 물은 신성함이 깃든 물이기 때문에 그곳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자신의 몸을 깨끗이 정화시키고 벅찬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도와주는 신성한 물인 것이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중요한 것이다. 


  갠지스 강의 가트에 앉아 강물을 바라보다 보면, 주변의 화장장에서부터 떠내려가는 많은 부유물들이 눈에 보인다. 어제를 살았지만 오늘은 눈을 감고, 심장을 정지시키고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이 강 옆에서 화장되고, 고요히 흐르는 강물에 실려간다.강물은 어제를 살던 사람의 흔적을 소멸시켜 준다.   

갠지스 화장장.

 갠지스 강에서 화장되어 강물에 휩쓸리는 것은 인생의 모든 것을 강물의 신성함에 맡기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곳에는 과거의 죽음이 있다.


  어제를 살다간 사람들의 흔적이 강물에 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강물에 담겨 있다. 그리고, 갠지스 강에는 어제를 살다간 사람들이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하길 원하는 소망이 담겨 있고,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제보다 더 벅찬 삶을 살 수 있기를 희망하는 희망찬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는 곳이다. 


  갠지스 강에, 이 모든 걸 느끼기 위해서 사람들은 강가로 모인다.




5.갠지스 강, 그것은 믿음의 차이.

 

  나는, 바라나시에 도착하고나서부터 며칠 째 두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어느날 아침, 막 해가 뜨려는 순간 강물에 들어가서 수영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수건 한 장만을 챙겨들고 가트로 나갔다. 해가 뜨려는 순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멱을 감고 있었고, 또 다른 많은 사람들[대부분은 관광객이었으리라]은 조각배를 타고 강 위를 유유히 떠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일부 사람들[그들도 역시 대부분 관광객이었다]은 아침 일찍부터 가트와 가트 사이를 돌아다니며 강가 산책을 하고 있었다.

갠지스 강에서 아침을.


  두려움 반, 호기심 반이었다. 발을 물에 담그자 따뜻한 기운이 발 끝에서 부터 온 몸을 타고 올라왔다. 오른발, 왼발. 그리고 돌 계단을 한 계단, 두 계단 내려가자 내 몸이 서서히 강물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주변에는 많은 인도 사람들이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시선을 받으며 강물 속으로 서서히 들어갔다. 미끈한 점액 같은 것들이 발가락 사이로 파고 들었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미끈한 점액들이 내 발가락을 감쌌고, 엉덩이가 물에 잠겼고, 배꼽이 물에 잠겼고, 가슴이 물에 잠겼고, 목까지 물이 찾다. 나는 거기에서 멈춰서 주위를 둘러 보았다. 나와 함께 물 속에 있던 인도 사람들이 와,하고 웃어보였다. 나는 눈을 감고 물 속에 머리 끝까지 집어 넣었다.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몇 초나 지났을까. 나는 다시 머리를 꺼내고, 푸하,하고 숨을 내 뱉았다. 상쾌했다. 가트 위에서 나를 구경하던 외국인들도 나를

갠지스 강물 안에서, 인도를 느끼다.

신기한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나와 함께 물 속에 있던 인도 사람들이 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웠고, 나도 그들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지켜 세웠다. 기분이 좋았다. 정말, 신성한 물이기 때문일까? 해가 서서히 떠오르는 바라나시의 아침이었다. 갠지스 강 물속에서 맞이하는 바라나시의 아침은 상쾌했고, 기분 좋았다. 


  인도, 바라나시의 사람들이 매일 갠지스 강물에 몸을 담그며 하루를 시작하는 이유가, 강물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상쾌함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봤다. 


  태양은 서서히 강 위로 떠올라, 도시를 주황빛 색체를 조금씩 걷어내고 있었다. 거짓말같이 나의 두통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두통은 나에게 찾아오지 않았고, 또렷한 정신만이 내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훗날, 여행을 하며 만난 이에게 이날의 경험을 말하자,

 "에이 설마, 그냥 기분탓이었겠지. 근데 몸에 두드러기 난 건 없어?" 라고 그녀가 말했다.

 


 갠지스 강물의 대장균 수는 보통 강물보다 수 천, 수 백만 배 많다고 한다. 그리고 수 많은 책자에서, 그리고 몇몇 사람들은 '절대로' 강물에 들어가지 말라고 경고를 하고 있었다. 

 수 백, 수 천 명의 사람들이 물 속에 들어가서 수영을 하고, 몸을 씻는 갠지스 강. 누구는 신성한 물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더러운 물, 위험한 물이라고 하고 있었다. 저 뒤쪽에서는 시체가 떠내려가고, 소들이 수영을 하고, 이쪽에서는 사람들이 빨래를 하고, 몸을 씼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물[水]에 대한 믿음의 차이.





바라나시 역, 신비함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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멱을 감는 사람들, 바라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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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배를 타고, 갠지스를 거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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갠지스 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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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NGA, 갠지스 강은 '강가'라고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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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갠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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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발트3국(빌뉴스,리가,탈린) - 비와 낭만, 비오는 발틱(발트3국) 거리를 걷다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3. 9. 1.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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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비[雨, Rain], 그 지루함의 끝은 낭만.

  여름, 지루하게 비가 내린다. 가끔씩 억수같이 쏟아지고, 아파트 사이사이를 흐르는 작은 천(川)은 금새 흘러 넘친다. 삼삼오오 모여 천(川) 안에서 놀던 오리 가족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여름 휴가를 떠났을까]. 창 밖으로, 빈틈없이 떨어지는 빗방울들을 바라보다보면 가끔씩 빗속을 걷고 싶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1998)> 박흥식, 허진호 감독.

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어쩌면 정신나간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시련을 당했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것은 정말 지루함을 떨쳐낼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면서, 특히 여름에 많은 비를 만나야 하는 것은 좋은 것일 수 있다[비를 맞고나서도 추위에 떨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그동안 우리가 봐 왔던 많은 영화들에서 비는, 슬픔을 대신 말해주었고 비는, 우연을 말해주었고 비는, 운명을 보여주었고 비는, 낭만적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영화 <접속(1997)>에서 어떤 우연을, 영화 <동감(2000)>에서 어떤 비극적 운명을,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1998)>에서는 사랑을 속삭였고, 영화 <클래식(2003)>에서도 비는 사랑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아직도 많은 '비'는 우리에게 어떤 낭만적 만남과 사랑을 말해주고 있다. 내가 우산도 없이 빗속을 걷고 있으면 누군가 나타나서 우산을 씌워주는 것은 아닐까,라는 상상을 하며 어떤 '운명적 만남'을 조심스레 기대해 보기도 한다. 이처럼,


 '비'는 지루함이 아니라, '낭만'이 될 수 있다.




2.보이지 않는 '비'가 전해주는 즐거움.

  마른 땅에 빗방울이 떨어질 때, 촉촉한 물기가 메마른 땅을 적시며 흙 속으로 스며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흙 내음이 살며시 우리의 콧속으로 스민다. 이 순간 '흙 냄새' 좋다,라는 말이 나오기도 한

비오는 거리, 2013

다. 오랜만에 찾아온 빗방울이 메마른 대지를 적실 때, 우리는 갑작스레 찾아온 흙 내음에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가끔은 빗방울이 똑, 똑, 똑, 똑, 떨어질 때가 있다. 무언가를 두드리며 떨어지는 소리. 가끔은 우드드드득, 무언가를 마구 두드리며 떨어질 때도 있다. 가끔은 '쏴아-'하는 소리를 내며, 아파트 벽을, 나뭇잎을 쉼없이 두드릴 때도 있다. 우리는 '아, 비가 오는 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비가 내리는 소리가 좋다, 라는 생각을 한다. 자연이 자연과 부딪으며 내는 소리들, 자연이 사람[사람이 만든 물건]과 부딪으며 내는 소리들이 있다. 우리는 이런 소리를 들으며, '좋다'라고 느낀다.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 '소리[음악]'가 아닌 자연이 만들어낸 그저 '소리'일 뿐이지만, 우리는 그 소리가 음악보다 '좋다'라고 느껴질 대가 있다. 

  봄 비 내리는 밤, 우리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땅에서 부터 피어올라 콧속으로 스미는 흙 내음을 맡으며 기분좋게 잠들 때가 있다.


 밤사이 세차게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지만, 아침의 고요함 속에서 깨어날 때가 있다. 세차게 떨어지는 비가 내던 빗소리는 사라지고, 고요 속에서 가끔 새소리가 들리고, 자동차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고요를 뚫고 방 안으로 들어오는 그런 날이 있다. 그런 날 아침. 집을 나서며 하늘을 바라보면, 맑고 투명한, 파란 하늘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다. 그런 날은 왠지 우리의 기분을 즐겁게 만든다.   


  가끔은, 귀[耳]로. 가끔은, 코[鼻]로. 우리는 비[雨]를 만난다. 귀와 코로 만나는 비는 우리에게 즐거움을 전해준다. 비[雨]는 즐거움이다.



3.여행을 하는 중에 만나는 '비'란? 

  일상을 살면서 우리는 일기예보에 민감하다. 혹시나 '비'가 올까봐.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걱정이다. 스마트폰 액정 속에 나와있는 세계 각국의 날씨에 먹구름이 잔뜩이니까. 

  비가 오는 날에는 숙소에서 쉬거나, 비가 오는 날에는 예정된 일정을 취소해야 하나,라는 생각으로

잿빛 하늘. 류블랴나.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 비가 오면 어쩌지?

  비가 오면 여행이 새로워 진다. 우리는 그것을 즐겨야 한다.


  '비'는 그 도시의 색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잔뜩 찌푸린 잿빛 하늘, 그 사이를 뚫고 떨어지는 물방울. 우리는 빗속에서 그 도시의 색다른 모습을 보게 되고, 그 도시의 골목을 적시고 있는 비를 만나게 된다. 카페에 앉아 거리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길 수도 있다[날씨가 맑았다면 절대 하지 못 할 일이다]. '비'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도시의 색다른 풍경을 보여준다[대부분의 여행 안내책, 여행 블로그들에는 비오는 날의 풍경이 거의 없다]. 우리는 그 동안 알지 못했던 낯선 풍경을 통해서, 그 여행의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다[물론 그곳에 머물동안 계속 비가 왔다면, 그곳의 이미지는 '비'내리는 풍경으로 영원히 각인될 것이지만]. 조용한 거리, 빗방울이 떨어지는 거리를 거닐다 보면, 그 거리가 온통 나 혼자만의 것이 된 것 같다. 비가 오는 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들어진 '이방인의 거리'.


  여행을 하는 데 있어 비가 내리는 것은, 뭔가 번거로운 일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비 때문에 카메라를 함부로 꺼낼 수도 없고, 빗방울로 얼룩지고 잿빛 먹구름들로 뒤덮힌 하늘에선 한 줌 빛 조차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사진도 잘 찍히지 않는다. 비가 오는 날의 사진은 찾기 힘들지만, 그렇지만 우리는 평소와는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있다. 비가 오는 날 사진을 찍는 대신 사람의 흔적이 씻겨 나가버린 한적한 거리를 거닐어 보고, 가만히 앉아 비가 오는 모습을 바라보기도 해 보고, 비가 만들어 내는 소리를 들어보자. 이국에서 만들어 내는 빗소리는 우리가 사는 곳의 소리와 뭔가 다르지 않을까?



4.발틱(Baltic, 발트 3국.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거리를 걷다.

  빌뉴스(Vilnius). 하늘을 보니, 구름들이 북쪽으로 마구 날아가고 있었다. 슬로베니아에서, 헝가리에서 만났던 빗방울들이 폴란드를 지나 리투아니아도 와 있었다. 알고 있었다, 리투아니아 빌뉴스에

빌뉴스 거리에 서다.

도 비가 온다는 사실을, 일기예보에서 봤지만 나는 빌뉴스로 갔다. 

  빌뉴스의 골목들을 걸었다, 올드 타운운 골목 골목을 거닐었다. 드문드문 사람들이 보였지만, 거리는 한산했고, 동유럽 특유의 벽돌길, 벽돌집들이 나에게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발틱만의 새로운 느낌, 맑지 않은 하늘, 밝지 않은 거리, 6월 중순이었지만 거리의 노점상들은 털모자, 털장갑을 팔고 있었다. 아직, 꽃이 피지 않았고, 날씨는 쌀쌀했다. 비오는 발틱, 비오는 빌뉴스의 거리를 걸었고 빌뉴스에 머무는 내내 비가 내렸다. 많지 않는 비, 우산을 쓰지 않아도 그리 많이 젖지 않을 양 만큼. 딱, 그만큼만 비가 내렸고, 가볍게 젖은 몸을 이끌고 커피를 마실 때면, 리트머스지로 물이 스며들듯 커피의 온기가 내 몸을 적셨다.


  리가(Riga). 빌뉴스를 떠나기 전 봤던 일기예보에서는 리가에도 비가 내린다고 했다. 사람 없고, 자동차들이 멈추지 않아 폐허가 된 국경 검문소를 지나 리가에 도착했다. 비오는 리가 거리를 가로지르며, 리가의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밤11시가 넘었지만, 아직 어둠이 오지 않았다. 하늘엔 구름이 가득했지만, 거리는 어두워지지 않았고, 가로등도 빛나지 않았다. 어둡지 않는 거리에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기분 좋게 웃고, 말을 거는 사람들이 많았다. 비오는 거리, 어둡지 않은 밤. 술집[pub]에 모여 사람들은 즐거운 기분을 한 껏 토해내고 있었다. 삐걱 거리는 나무 바닥, 물기를 머금은 나무 테이블. 아늑한 기운이 술집에 가득했다. 빗방울 떨

비오는 리가의 거리.

어지는 광장, 노천 카페에 앉아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 광장의 변두리 식당에 앉아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리곤 빗방울을 바라보며, 비오는 리가의 거리를 바라보며 여유를 즐겼다.


  탈린(Tallin). 버스를 타고 북쪽 하늘을  바라보니, 저 멀리 하늘은 파란색이었다. 구름이 버스의 뒤를 쫓았지만 버스는 구름보다 빨리 달렸고, 탈린에 도착했을 때 하늘은 파란색이었다. 백야(白夜)현상의 탓일까, 밤 12시가 넘어도, 거리는 조금 어두워졌을 뿐, 아직도 어둠 보다는 빛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밤 늦도록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고, 나는 잠을 자기 위해 커튼을 쳐야만 했다. 

  깊은 밤, 빗방울이 세차게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물기를 가득 머금은 구름들이 북쪽으로 날아온 것이었다. 6월 중순, 이불을 꽁꽁 싸매고, 탈린 거리를 향해 힘차게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내는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내일도, 비오는 발틱의 거리를 걷겠구나.' 

  아침, 창문을 열었을 때, 차가운 공기가 방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6월 중순, 10도가 채 안되는 서늘한 공기가 어젯밤 세차게 떨어진 물방울들을 양 껏 머금고 있었다. 일기예보에서는 비가 내일까지 올 것이라고 말했고, 다음날 밖으로 나와 탈린의 거리에 발을 딪고 하늘을 바라보았을 때, 파랗고 투명한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너무나도 맑고 투명해서, 금방이라도 손에 닿을 것 같은 그런 하늘. 그리고, 발트해에서 불어오는 조금은 차가운 봄 바람이 내 피부에 와 닿았다.


  비오는 발틱 거리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비오는 탈린의 거리, 싸늘함을 머금고 있는 공기들에 둘러싸여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자그마한 기념품 상점들을 둘러 보았던, 내 인생에서 다시 없을 비오

올드 캐슬, 탈린.

는 탈린의 거리였다. 여름 옷을 걸치고 있던 나에게, 한 겨울 가랑비를 맞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던 탈린의 거리는 그렇게 떠나갔다.


 햇살 가득한 탈린의 거리, 탈린의 교외에는 어느새 꽃이 피어 있었다. 민들레 풀씨가 나풀나풀 날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고, 이제는  꽃들도, 나무들도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6월 중순에 맞는 봄. 며칠 전 밤, 세차게 내리던 비는 봄을 불러내기 위해 대지를 그렇게 힘차게 두드렸던 것일까. 세차게 내리던 비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고, 포근한 봄기운이 탈린의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5.사랑스럽다.

 비[雨], 오는 류블랴나의 거리는 사랑스러웠다. 

비 오는 발틱의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그래서 더 사랑스러웠다.그래서 말하고 싶다. 

 사랑스럽다, 발틱 - 빌뉴스, 리가, 탈린.



탈린의 하늘.

-



빛으로 가득 찬 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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