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이야기] 전복(全鰒)을 라면에?! - 호주에서,

- 호주, 워홀이야기- · 2010. 11. 12. 19:08

반응형
3rd Edit.



1. 전복,
"배가 전복되었다." 라고 할 때 쓰는 전복이 아니라,
바닷가의 바위에 붙어서 서식하는 흔히들 사람들이 말하길, 먹으면 그렇게~ 몸에 좋다는 그 전복(abalone, 全鰒)을 말씀이올시다.


2. "파스타"라는 드라마를 봤다. 그 드라마의 후반부에 남녀 주인공인 서유경(공효진 역)과 최현욱(이선균 역)이 함께 서유경의 아버지에게 찾아가 짬뽕을 먹는 장면이 나왔다. 그 짬뽕에 들어있던 전복!!  역시 전복과 사위에 대한 배려....

  전복 전복 전복 전복...그 장면을 보면서 호주에서 먹던 손바닥만한 자연산 전복이 생각났다. 드라마에서 말하길, 자연산 전복이 한마리에 20만원? 에게게? 내가 호주에서 먹던 전복보다 작은 크기처럼 보였는데... 그럼 난 호주에서 일주일에 400만원어치 이상의 전복을 먹었던 것인가??



3. 호주에서 맞이한 날씨 좋던 토요일
.
  9월 말, 농장에서의 일이 끝나고[사실상 짤린 것이었다. I'm fired!],  퍼스에 머물며 새로운 일을 구하고 있을 때, 아는 형[호주에와서 만난 형]다이빙을 가자고 연락이 왔다.

  마땅히 할 것도 없던 난[주말에는 에이전시를 비롯해서 모든 공장의 오피스가 업무를 안하므로], 당연히 다이빙을 하는데 따라갔다.  하지만, 아직 9월말이라서 그런지 바닷물은 생각보다 차가웠다. 바깥의 햇살은 비교적 따뜻했지만, 역시 바다라서 그런지 체감온도는 ㄷㄷㄷ 이었다. 
  생각보다 추운 물 온도 때문에 바닷물 속에 함부로 몸을 담그지 못하고, 그 대신 바닷가의 암초 주위를 돌아 다녔다. 그렇게 바닷가의 암초를 탐사(?)하던중, 같이 갔던 형이 뭔가를 발견해냈다..이게 웬걸? 전복의 껍질?? 그렇다면,, 전복이 주위에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우리 한번 전복을 찾아보자라고 말한 뒤 서로 흩어져 전복을 찾아보니 역시나,,전복이 바위 틈속에 꼭 꼭 숨어 있었다.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전복을 땃다.[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것은 불법이었다. 전복을 따려면 지정된 장소에서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만약 걸리면 집과 재산을 모두 날리고 감옥에 갈 정도의 벌금이..^^%]

  우리는 집으로 돌아와, 그 날 잡은 생선은 매운탕을 끓여 먹고 함께 따온 전복은 회를 쳐 먹고 나머지는 라면에 넣어 먹었다.

4. 일요일.
  일요일은 토요일 보다 날씨가 많이 따듯했다. 햇살이 강렬하게 내리쬐는 로킹햄(Rockingham)의 비치(beach). 이 날은 전복을 따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바다에 나온 날이었다. 바닷속을 헤엄쳐서 전복이 많이 있을만한 곳으로 가니, 역시나! 전복 밭이었다. 기쁜 마음으로 전복을 땄다. 한두마리가 아니라, 수십마리가 모여있었다. 크기도 대부분 손바닥 반 이상의 크기여서 즐거운 마음으로 전복을 땄다.  그 전복을 가지고, 여럿이 회도 쳐먹고, 라면도 매운탕도 끓였다.


5.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공장에서 일하는 형과 키위[뉴질랜드인]한명이 전복을 따러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소리를 듣고 귀가 번쩍뜨인 난, 나도 같이 가면 안되겠냐고 물었다. 당연히 오케이! 다다익선이라고, 함께 가기로 했다. 이미 눈으로 보지 않고 손에 잡히는 감각만으로 전복따는 기술을 익힌 나로서는 내 실력을 제대로 발휘해 볼 기회였다.
 
  몇 년 째 전복을 따러 다닌다는 키위(이름은 가브리엘)의 정보에 의하면 11월 1일부터 전복시즌이 시작되는데 라이센스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복라이센스가 뭐냐고 묻자 라이센스에 대해서 알려 주었다.[전복 라이센스란, 전복을 따기위한 자격증인데(일종의 허가증), 우체국에가서 $44 에 살 수 있었다.] 우체국에가서 신청서를 작성하고 돈을 지불하고 신청하자 3일 후 집으로 라이센스가 왔다. 드디어 합법적으로 전복을 딸 수 있었다.



6. 11월 1일 일요일.
  드디어 공식적으로 전복을 잡는 날이 찾아왔다. 하지만 라이센스가 있다고 매일 전복을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퍼스perth를 기준으로 200km이내의 지역에서는 일요일 오전7시-오전8시 사이의 1시간만이 전복을 잡는것이 허용되었다.
또한, 잡을 수 있는 마리수가 제한되어 있어서 하루에 20마리만 잡을 수 있었다.[20마리를 잡아도 전부 손바닥만한 크기를 잡기 때문에, 일주일 내내 먹어도 전복을 다 먹지 못했다]
그래도 그게 어디야? 44달러짜리 라이센스로, 일주일에 20마리,,1달 4주면 80마리?!

  전복을 따기 시작한지 첫번째날 이라 그런지 전복들이 하나같이 정말 컷다. 손바닥 만한것들로 20마리를 땃다. 전복을 따면서 몇 마리는 우걱우걱씹어먹었다....그냥 바로 따자마자 바닷물과 함께말이다. 자연산 전복은 그 자리에서 바로 먹어줘야 몸에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전복을 씹어 먹으면서 전복을 땃다. 어차피 가져갈 수 있는 건 20마리니까..20를 다 따고나서 바닷속에서 전복을 먹어 댓다.

그렇게, 전복을 따러 다녔다. 일요일 아침마다.
전복을 11월 1일부터 매주 일요일마다 계속 딸 수 있는게 아니라 12월 초까지만 허용된다고 했기에 열심히 따야지 생각했다. 이 기회에 몸보신이라도 제대로 해 보겠다고 생각하며 매일 일요일 아침마다 필승의 결의를 다졌다.ㅋㅋㅋ


7.
아무튼, 호주에서 내가 잡은 전복만 100마리가 넘었다...

전복을 가장,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은 단연!!!
라면에 전복을 넣어서 먹기,,,
짜파게티에도 전복을 넣어서 먹어보고,
밥에도 넣어서 전복밥도 해먹어보고,
전복 볶음밥도,
전복 볶음도,
전복 스파게티도,
전복 비빔밥(?)도,
전복 회덮밥도,
전복 죽도,
전복을 넣고 간단하면서도 맛있을 방법을 연구해서 요리를 만들어 먹어봤다.


그래도 그냥 간단하게 전복을 먹는 방법은 전복라면인듯!![사실, 전복을 먹는건지 그냥 오징어를 먹는건지 구분은 잘 안된다. 특히 오징어짬뽕에 넣어 먹을때는 더욱더!!!]

자연산전복을, 라면에 넣어서 먹다니...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데,,,,,,,,,호주니까 가능한가??

호주에서는,
자연산 전복을 라면에 넣어먹는다!![라면을 끓일 때 마다 전복을 넣어 먹던 나를 보고, 옆방에 살던 누나가 자주 하던 말이 있다 "나는 결코 라면에 이 귀한 전복을 넣어 먹을 수 없어"]

이런 일, 호주니까 해 보는거 아닐까?






- 전복라면! 완성품



- 전복


- 전복을 송송송송 썰어서, 초장에도 찍어먹고~


- 부글부글 맛있는 라면~



- 만찬,





반응형

워홀이야기] 호주, 공장에서 일하다.

- 호주, 워홀이야기- · 2010. 11. 10. 13:41

반응형
Second Edit.(first edi 09.12.06)

1. 공장에 취직하고 처음 몇 주간.
정말 부지런히 열심히 일했다. 좀 힘든일, 작업 분량이 많아도 군소리 하지 않고 묵묵히 일 했다.
사실 내가 생각 할 때 크게 힘든 것도 없었다.[농장에서 일하던 것에 비하면 정말 쉽고, 힘들지 않는 일들이라고 생각했을 정도]

같이 일하는 동료들중에 일을 하면서 힘들다, 소세지가 무겁다고 투덜대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런 말을 들을 때 마다 맞장구를 쳐 주기는 했지만, '이게 정말 힘든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농장에서 일을 하면서 몸을 단력 시키고[미친듯이 일했었다] 나서 공장으로 온 온 나로서는 공장에서 하는 일들은 많이 힘들지 않으면서 쉬운 일들이었다.


2. 특히,
  소시지 및 햄, 베이컨 등을 만드는 공장이다보니 공장안이 시원했다[한여름에도 추워서 일을 할 때는 옷을 몇 겹씩 껴입어야 했다]. 실내는 항상 최소 냉장고 냉장실의 온도[패킹룸쪽은 냉동실 수준의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공장안은 추워서 파리가 없었지만, 공장 밖으로 잠깐씩 나가는 순간 파리떼들이 습격해 왔다]

  호주에서 내리쬐는 강렬한 태양 아래에서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좋았다.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고,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말로는 벌써부터 일 할 때 최소 수십마리의 파리들이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렸다.

  농장보다 시급이 높아서 좋았고, 일하는 시간도 많아서 좋았다. 그리고 시원한 곳에서 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새벽에 몰래 창고에서 소시지를 꺼내먹는 재미가 있어서 좋았다.[농장에서는 과일따먹는 재미가 있었지만] 아무튼 여러가지로 좋았다. 그 중에서 가장 좋은 건 돈을 많이 준다는 것.



3. 필라델피아, 내 너를 저주하리다!!
  필라델피아라는 햄이 있다. 햄 한덩어리가 사람 머리통보다 큰 놈인데, 스틱 하나에 3개가 걸려 있다. 그것들 세개[하나의 스틱]을 끓는 물에 담궈서삶아야 하는데, 완전 노가다로 그 녀석들을 번쩍!들어서 물에 집에 넣어야 한다. 그 녀석들 보기에도 무거워 보이지만 실제로도 엄청 무겁다....... 
  그런데 항상 그 일을 해야 할 때마다 나를 시키는 것이었다.....ㅠ_ㅠ... 내가 처음에 잘 보이려고 일을 너무 열심히 막 하다보니, 내가 그걸 잘 하는줄알고 나를 시키는 것이었다.[다른 사람이 모두 꺼려하니까, 제일 만만한게 나였나 보다]

  처음에 그 무거운걸 무식하게 하루에 수십개씩 들었다가 놓았다가를 반복했다.[나중에는 요령이 생겨 비교적 쉽게 했지만] 무게로 치면 아마 하루에 몇 톤 정도 물에 담갔다 뺐다 했다.
 
  항상 그녀석을 들어 옮기면서 생각했다.아 필라델피아,,"내가 미국에 가면 반드시 필라델피아 역(驛)에 침을 뱉고, 길바닥에도 침을 뱉고 돌아다닐 것라고.."
 필라델피아 햄 때문에 팔목이 나가서 몇 주간 고생했다. 처음엔 어깨에도 무리가가서 어깨가 아팠다. 만병의 근원이 필라델피아 햄이었다.

  나는 어느새, 무거운 햄, 소세지류를 들어서 트롤리[햄들을 쌓아두는 거치대같은 것]에 걸거나, 옮기는 일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런 일을 도맡아서 하는 사이 내 몸 속에서는 이두근, 삼두근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라고 있었다.


5. 
  서브웨이(SUBWAY), 헝그리잭스(Hungry Jack's, 호주의 버거킹)에 납품하는 베이컨을 내 손으로 만들고 있었다.
서브웨이 고기를 자르고, 베이컨을 만들고, 헝그리잭스 베이컨을 만들었다.  만들면서 생각했다. "호주 사람들은 내 손으로 만든 고기들을 먹는구나, 내 침도 자연스럽게 먹는구나"[일을 하면서 지루하기 때문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니까, 당연히 침이 튄다]라고.

헝그래잭스 베이컨을 만드는 일은 내가 공장에서 가장 많이 한 일 중에 하나였다. 사실, 헝그리잭스를 하는 일이 싫었다. 어려운 건 아니었다. 정말 쉬운일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너무 지루했다. 쉬운일을 계속 반복해야 했다. 매일매일 헝그리잭스에 납품하는 물량이 고정적으로 있었기 때문에 매일 엄청난 양을 만들어야 했다. 길고, 지루한 작업의 연속이었다.
특히, 헝그리잭스는 복도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약간 더운곳에서 작업을 했다..그래서 가끔 더울 때도 있었다. 그게 싫었던거였다.


6. 몇 주 후,
  처음 2-3주간 일을 너무 열심히 한 것이 잘못이었다[보통 사람들은 처음에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 처럼 나도 그랬다].  공장에서 일 할 때 대부분이 일을 천천히 하면서 일의 양과 자기가 집에 갈 시간을 맞추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그들과 같이 일을 하다보니 나 또한 속도를 맞추게 되었다. 그것이 편했다.[일을 쉽게, 천천히 할 수 있었으니까]
  특히, 나와 일을 같이 많이 한 콩고출신의 "자바"가 그랬다.[우리파트에서 일을 젤 천천히 하고 농땡이를 피우는 녀석으로 꼽혔다]
가끔씩, 너무 일을 천천히하고, 안하려고하는 모습을 보여서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같은 회사 동료니까 참았다. 그냥 난 묵묵히 할 일을 했다.



7.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나보다 오랬동안 일을 했던 외국애들(최소 몇 년씩 일을 한 애들) 및 슈퍼바이저, 작업반장이 나를 보는 시선이 별로 좋지 않다는 걸 느꼈다.일하는 속도가 느리다는 거였다. 게을러졌다고,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속도가 느린건 아니었다. 난 그냥 나와 같이 하는 애들의 속도를 맞추어 주었다. 빨리하면 빨리하고, 천천히하면 나도천천히 하고,, 천천히 하는쪽이 많긴 했다.

결국 난,
일을 천천히 한다. 못한다 등 호박씨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는 소식을 들었다.[공장에서 일을 오랬동안 하면서 슈퍼바이저, 작업반장 등과 친하게 지내는 외국인이 나와 친하게 지내는 한국인에게 그 말을 해 주었고, 난 그 소식을 알게 되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그러려니 했다.

8. 그냥, 난 내 할일을 했다.
 어쩌겠나? 사람의 마음이 한 곳으로 기울어 지면 되돌리기가 처음보다 더 힘든 것을. 그리고 어차피 여기서 9주만 일할 거니까라고 생각했다.
 일을 못한다고 호박씨 깔때는 다 까면서 또 필요하면 나를 불러서 힘쓰는 일을 많이 시켰다. 그렇다고 해서 나도 기분나빠 하지 않고 그냥 내 할일을 했다. 그게 그냥 편했다. 그러려니~ 필라델피아, 베이컨, 로스트비프, C.O.B,,, 힘쓰는 일은 내 담당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공장에서의 생활이 마무리되어갔다.





- DORSOGNA, 콸리타,


- 필라델피아,,,보기만 봐도 토나온다ㅋ


- 이곳이 햄들의 욕조!


- 요렇게 집어 넣는다,,


- 키친룸,,급하게 몰래 찍느라 완전 화질 구림 ㅋㅋㅋ 베이컨, 치즈마일드 소시지, C.O.B 등등..


- 오른쪽이 C.O.B 보기만봐도 무거워보인다...돼지 뒷다리 ㅋ
왼쪽은 치즈마일드,,제일 맛있는듯 안에 치즈가 들어있다 ㅋㅋ


- 오른쪽 구석탱이에 자바, 나와 함께있는건 칸쿠,
초록색옷입은애는 이름 물어보면 이런다."한국사람 입니다"
















반응형

워홀이야기] 얻은건 무엇인가? 돈이면 충분하다? - 호주에서,

- 호주, 워홀이야기- · 2010. 11. 10. 11:34

반응형
+ Second Edit

1. 언젠가,
호주에서 만난 누군가가 나에게 말했다. "호주에서는 돈만 만들어 가면 된다고."


2. 언젠가,
공장에서 일 할 때
공장의 한 동료가 말했다. "호주에서 얻는건 돈이면 충분하다고,"
자신은 1년간 공장에서 일하면서 엄청난 돈을 모았다고.
그리고, 한국으로 가기 3일전 까지[공장을 그만두는 날 까지]도 밤 늦게까지 일을 했다.


3. '돈이면 충분한가?'라는 의문을 가져본다.
나는 농장에서 힘들게 일을 했지만 돈은 많이 받지 못했다.[공장에서 받는 돈에 비교 할 때 말이다. 물론 다른 농장에서 일 할 때 버는 돈의 평균 이상의 돈을 벌었다]

하지만, 농장에서는
추억과 경험과 사람을 얻었다. 내 인생에서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를 그런 풍경들을 보았다.[농장과 농장사이를 돌아다니며 일을 하다보니, 정말 멋진 경치를 많이 볼 수 있었다.] 


4.
'그'에게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 돈이면 모든걸 다 커버할 수 있다(보상 받을 수 있다)는 그에게.


5.
나 또한 호주에 온 가장 큰 목적은 돈을 벌기 위해서이다[여행 중 호주에 와서 일을 하면서 여행 경비를 충당할 목적으로 왔으므로].

하지만,
나 자신에게 되물어 본다.
"돈이면 충분한가?"




- 호주의 돈.


- 농장 근처의 숙소에 지는 노을,





반응형

워홀이야기] 호주에서, 쉐어하우스에 들어가다!

- 호주, 워홀이야기- · 2010. 11. 9. 16:24

반응형

+Second Edit.


1. 
  일본에서 꽤나 유명하다고 하는[일본인 친구의 말에 의하면] 다양한 직업을 가졌지만 그 중에 하나가
작가인 , "다카하시 아유무".

그의 책 의 오세아니아부분에서 이런 제목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Weekly life'

  처음 호주에 오기 전에는 이 글의 제목과 내용을 선뜻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이제는 이해할 수 있었다.
호주의 많은 도시에 존재하는 쉐어하우스. 보통 1주일 또는 2주일 단위로 돈을 지불하고 그 집에서 방을 얻어 사는 것. 특히, 많은 워홀러들이 쉐어하우스 운영을 하면서, 특히 요즘에는 단기쉐어라는것이 많이 생겨났다.
 


2. 시티잡(city job)이라고 불리는 공장에 취직을 했다.
  백팩에서 살 수 없었으므로[물론 살 수는 있었지만 쉐어하우스로 가는 것이 더 저렴하고 편했으므로], 나는 쉐어를 알아보았다.  당장 내일부터 공장에 출근을 하라고 통보를 받았으니, 일단 집부터 구하는 것이 급선무 였다.  공장이 프리맨틀(Fremantle)에 위치하고 있었으므로, 프리맨틀주변에 있는 쉐어하우스를 알아 보았다.

  사실,  처음 퍼스에 왔을 때, 그리고 일자리를 알아보러 프리맨틀에 처음 왔을 때 프리맨틀은 한 번 쯤 살아보고 싶던 곳이었다.  그곳엔 바다가 있었기에, 내가 생각하던 그럼 삶[평일에 일하고 주말에 서핑하고]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평일에 일하고 주말에 바다에 나가서 해수욕, 서핑을 하고, 다이빙도 하고, 스노클링도 하고, 얼마나 좋을까? 내가 상상하던 그런 곳과 딱 들어맞는 곳이 바로 프리맨틀이었다.
 

이제, 내가 상상하던 호주에서의 생활을 할 수 있는건가???

 

3.
  퍼스시티(perth city)에서 20-30분이면 오지만, 퍼스와는 너무 다른 분위기.  조용하고, 차분한 거리, 인도양의 푸른 파도와 멋진 노을을 가진 도시. 바닷바람이 불어서 기분이 좋은 도시.  정말 내 마음에 꼭 드는 도시였다.


  프리맨틀(Fremantle) - City of Fremantle.

프리맨틀의 도서관의 게시판에 가서 각족 쉐어하우스 광고 쪽지에 가서 알아보고, 인터넷 사이트 검트리(http://perth.gumtree.com.au) [호주의 중고 물품거래 및 하우스 렌트에 대한 각종 정보가 있는 사이트]에도 알아보고, 이곳저곳 발품을 팔면서 쉐어하우스에 대해서 알아 보았다.

 

  일단, 가격이 싼곳으로!  그리고 웬만하면 한국인 쉐어보다는 오지[Aussie, 호주사람]쉐어로 가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지쉐어라 가면 자연스럽게 영어를 사용해야 하니까 영어도 늘릴겸 해서 말이다.
하지만 마땅한 곳을 찾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찾아간 곳 - 다음 카페의 퍼스 커뮤니티. "퍼스 참을수 없는 그리움(일명, 퍼참)"

그곳에 보니, 비교적 공장과 가까운 곳에 사람을 구한다는 광고를 올린 쉐어하우스 주인이 있었다. 그리고  그 중 한 군데를 연락해서 집을 보러 가 보았다.

 

4. 
  싱글룸,  주당 $125[싼 가격은 아니었다. 난 일주일에 $100 정도의 집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방은 넓었다. 침대도 더블침대가 있어서 크고 좋았다. 
  집도 깨끗하고. 호주 사람들이 사는 도시 교외의 한적한 동네에 위치한 집이었다. 전형적인 호주 주택가에 위치한 집.
 

   이런 곳에 살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아라고 혼자 되뇌었다. 보통 호주사람들이 이런 집에 사니까. 나도 이런 곳에 한 번 살아볼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집 앞에는 작은 정원이 있고, 뒤쪽 마당엔 잔디와 나무와 화초가 약간 있고, 조그마한 풀장이 있는 집. 흔히들 나오는 외국드라마의 그냥 평범한 집같았다. 키친도 외국 시트콤이나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조. 전형적인 외국집이었다.

좀 비싸긴해도 살아보자, 라고 생각했다.

 


5.

그렇게 살게 된 곳. 리치하이웨이(Leach Hwy)라는 큰 길가의 옆으로 난 주택가의 도로 빌링스웨이(Billings Way)에 위치한 집.
발음을 그대로 한국말로 번역한다면, - 부자 고속도로의 지폐들의 거리?

그럼 난, 부자 고속도로옆의 지폐들 거리에 살게 되는간가? 난 이제 부자가 되는건가?라는 유치한 농담을 속으로 생각하며.


아무튼,
공장에 취직하고 새로 살기로 결정한 집 주소도 좋았고[어감이 좋았단 말], 공장에서 돈도 많이 벌게되고 여러모로 좋았다.
그리고, 그곳이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곳.


호주에서 살아보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쉐어하우스.


- 6 번지,



- 안뜰,


- 주방,


반응형

Ep] 시리아, 하마 - 히치하이킹, 여행자의 특권! - 시리아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0. 11. 7. 15:56

반응형

1.                            
  TV광고 또는 영화의 한 장면 혹은 드라마 혹은 포스터 등등에서 우리는 가끔 끝없이 펼쳐진 도로 가운데 서서 지나가는 자동차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미녀(?)를 발견하곤 한다. 

  만약, 전국 일주를 생각하는 당신, 무전 여행을 계획했다면 당연 이동 수단으로써 히치하이킹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본인의 어릴적 기억을 더듬어보면, 어린 시절 친구들과 산골에 있는 저수지와 계곡을 찾아 놀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히치하이킹을 해서 자주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 탈것은 1톤 트럭부터 경운기, 승용차에 이르기 까지 다양하게 히치하이킹을 해 봤던 기억이 있다.
  단, 요즘은 히치하이킹하는 사람들을 납치하는 사례가 있다고 하니,,,주의하도록 하자. 요즘은 정말 무서운 세상이다.



2.                                
  언젠가, 여행중에 만난 어떤 형에게 들은 적이 있다. 그 형이 파키스탄을 지나 이란에 도착했을 때, 교통수단이 마땅치 않아, 히치하이킹을 해서 수백km를 손쉽게 이동할 수 있었고, 이란 사람들의 친절에 감동했다는 그 말. 나도 언젠가 한번쯤은 히치하이킹을 하며 세계 여러곳을 돌아다녀보고 싶기도 했다.

  또 다른 기억 하나. 불가리아를 여행하고 있을 적, 지금은 이름도 기억이 잘 안나는 꽤나 유명한 수도원에 갔던 적이 있다. 교통편이 얼마나 불편한지, 우여곡절 끝에 찾아간 그 수도원의 입구에 해당하는 마을에서 택시를 타고 수도원까지 갔었는데, 택시비가 너무나도 비쌋다. 수도원 구경을 마치고 다시 마을로 내려와야 할 때, 그 때 내 눈에 띈 젊은 여행자들. 그들은 이탈리아 출신의 대학생이었는데, 차를 렌트해서 발칸유럽을 여행하는 중이라 했다. 나 또한 발칸유럽을 여행중이었으니, 혹시 괜찮다면 나를 좀 태워달라고 부탁 했다. 그들은 흔쾌히 승낙했고, 우리들은 차를 타고 다음 목적지까지 같이 간 적이 있다.



3.  시리아의 악몽. 이젠 안녕.
  내 몸을 실은 버스는 팔미라로 가지 않고 라타키아로 갔고, 나는 시리아의 모든 일정을 접고, 단지 하마와 알레포에만 가기로 결정했다. 하마로 간 나는, 도무지 뭐가 먼지 알 수 없었다. 시리아에 대해 너무나도 모르고 왔던 나는, 정말 난감했다. 단지 시리아가 사회주의 국가라는 사실 밖에 모르던 나는, 인터넷에서 얼핏 본 호텔의 이름을 기억해 냈다. 리아드호텔. 하마에서 꽤나 유명한 호텔이었다. 한국인여행자와 일본인여행자들 사이에선 말이다.
 
  리아드호텔의 위치에 관한 내가 찾은 정보중[물론 터키에서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얻은 정보였다] 내 노트에 적힌 정보는 시계탑 근처에 리아드호텔이 있다는 것. 보통 시계탑은 시가지의 중앙에 위치한다는 추측아래, 시내로 가기위해 발버둥을 쳤다. 말한마디 통하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온갖 손짓 발짓, 시계를 까지 보여주고 그림까지 그려가면서 말이다. 시계를 보여주니 몇시인지 가르쳐주는데, 나도 시계가 있단 말이다!라고 속으로 소리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 슬펐다.

  결국! 사람들의 도움으로 시가지를 찾아갔고, 거기서 또 물어물어 리아드호텔을 찾아갔다. 거리에 가끔 보이는 일본인 여행자와 한국인 여행자! 아, 그들을 보는순간 표현은 안했지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기뻣음은 틀림없다. 외국에서 한국인 여행자를 만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모순된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너무 힘들고 지쳐있었으니까 말이다.



4. 크락데슈발리에로 가다.
  그는 하마[Hama]에서 뭘 할까를 생각하다가, 같은 방에 있던 일본애들에게 정보를 하나 얻었다. 크락데슈발리에성. 소위 십자군성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그곳이 일본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의 배경이 되었다는 성이 하마의 근처에 있다는 것. 그래서 그는 그 곳에 한 번 가보는게 좋을 것 갔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같은 호텔에 있던 한국인 여자애가 다음 날 십자군성에 간다는 말을 듣고 그와 그녀는 동행하기로 했다. 그 성에 가는 방법은 이미 호텔 내에 머물고 있는 한국 사람들이 이이기를 해 주었고, 주의사항까지 친절히 그들에게 일러 주었지만, 그 곳에 가는 일은 그들에게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이 동네에선...

  다음날 아침, 호텔 앞의 빵가게에서 그들은 크로아상을 하나 사 먹고, 크락데슈발리에로 떠났다. 하마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다른 작은 도시로 간다음 또 거기서 미니버스를 타고 가야했는데...거기서부터 그들은 길을 헤메기 시작했다. 미니버스를 잘못타서 시내를 뱅뱅 돌다가 다시 돌아온 곳은 버스터미널. 다행히 그들은 다른 방향으로 가서 수소문한 끝에 크락데슈발리에로 가는 미니버스를 제대로 탈 수 었고. 그리고 무사히 십자군성에 도착해서, 구경을 마쳤다.


5. 이런 사기꾼들한테는 돈을 지불 할 순 없지!
  십자군성에서 돌아오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일정 인원의 사람이 필요 했다. 미니버스 정원이 6명 이상이 되어야, 미니버스가 출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와 나는 좀 늦어버려 그 성에는 둘만 남게 되었고, 미니버스 기사는 터무니 없는 금액의 차비를 요구했다. 훗, 우리는 순순히 그들의 요구에 따를 수 없었기에, 그냥 걸어서 성을 내려왔다.
  내려 오는 길에 지나가는 차들을 향해서 손을 흔들었지만, 차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그나마 세워주는 애들이 하는 말이라곤, 얼마줄래? 내가 하마까지 데려다줄게 였다. 어이가없어서, 꺼지라고 한마디 한 다음 그들을 쫒아보냈다.

  언덕의 능선에 위치한 마을은 비교적 조용하고 아름다웠다.[멀리서 볼때] 동네 아이들은 착해 보였다. 사진을 찍어달라는 아이들이 있었다. 꼬맹이들은 우리에게 사진을 찍어달라며 우리를 에워쌋고 우리는 그들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식료품가게 주인의 자식쯤 되어 보이는 그들이었는데, 가게 안의 토마토가 크고 먹음직 스럽게 보이길래, 사진을 빌미로 아주 헐값에 토마토를 구입하기도 했다.



6. 히치에 성공하다.
  그들은 얼마나 더 가야  차를 얻어 탈수있을까?하는 대화를 했다. 설마 우리가 하마까지 걸어가야 되겠어?ㅋㅋ 마을 저 아래에는 고속도로가 있었는데, 거기엔 차들이 많으니 라고 말하며 그들은 십자군성을 뒤로 한 채 성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그들이 중간 쯤 내려 왔을 대 마침 동네 슈퍼마켓에 들른 물류차량[동네 수퍼에 물건을 대어주는 차량]이 였고 그들은 운전기사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은 사정을 설명하며 기사에게 좀 태워달라고 하니, 타라고 하면서 보조석의 짐들을 치웠다. 굳이 짐들을 치울 필요까진 없었는데, 그 운전기사는 그들에게 정말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하지만, 고속도로가 있는 곳에 다다르자 그 기사는 자신의 방향은 하마쪽이 아닌 반대쪽이어서, 더 이상 태워 줄 수 없다는 말과 함게, 행운을 빈다며, 고속도로 어귀에 그들을 내려놓고 떠났다.

  고속도로 어귀에 서서 그들은 지나가는 트럭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이나 다를까, 거대한 트럭이 그들 앞에 와서 멈춰섰고. 어디까지 가냐고 묻자, 그들은 "하마"를 외쳤다. 그러자 트럭의 운전 기사는 그들을 향해 타라고 손짓을 했다.  어차피 그 쪽 방향을 향해 가니까  가는데 까지 데려다 주겠다는 이야기였다. 대형트럭이라서 그런지 안은 비교적 넓었다. 트럭은 기들을 싣고 고속도로를 무섭게 달려가고 있었고, 트럭 운전기사는 그들을 향해 이것저것 말을 걸어왔다, 후훗, 그들은 알아들은건 별로 없었지만, 나름대로 그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려는 것 같은 느낌에 미소와 웃음으로 응수했다. 아 정말 착한 시리아사람들!이라고 그는 생각하고 생각했다.
 
  트럭은 그들을 하마로 가는 버스가 있는 버스터미널까지 실어었고,그들은 그곳에서 하마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 나의 구세주 리아드호텔



- 하마 시계탑


- 하마 시내의 한 겔러리, 작가들의 사회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담겨 있는 작품들이 많았다



- 역사의 흔적,



- 이렇게 보면,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 볼 것 같기도하다


- 식료품가게 꼬맹이, 옆에 꼬맹이는 왜 미니어처가 되었지?ㅋㅋ



- 아저씨 사랑해유~
반응형

Ep] 시리아, 다마스커스 - 잘못탄 버스는 어디로 가는걸까?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0. 11. 6. 13:15

반응형

1.  누구나 한번 쯤 경험해 봤을 만한 경험.
  버스를 잘못 타서 반대 방향으로 가거나, 버스를 타고 나서 막상 정신을 차려보니 자기가 알 지 못하는 곳에 버스가 도착 해 있던 경험. 혹은, 지하철을 반대로 타서, 황급히 내려서 반대쪽 지하철을 탔던 경험. 
  나만 그런건 아니라고 믿는다[그렇게 믿고 싶다].  습관적으로 지하철을 타다보니, 가끔은 목적지와는 반대방향으로 타기도하고, 충무로역에서 3호선을 타야하는데, 습관적으로 4호선 플랫폼으로 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나 자신을 자책하기도 한다. 버스를 탈 때도, 내가 잘 알지 못한 곳에서 버스를 탈 때 반대로 타고 가다가 내려서 길을 건너서 다시 타고 간 적도 수도 없이 많다.
  혹시, 당신은 그런 경험이 없었는지요?

특히, 여행을 가서,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가야할 때 그런 경험을 더 없이 많이 하게 된다. 장거리 시외버스는 덜하지만, 시내버스에서는 버스 잘못타기를 거듭 반복 하면서 스스로를 멍청하다고 자책을 하기도 하지만 그러는 사이  현지인 만큼의 버스타는 스킬을 습득하게 된 자신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릴 수도 있다.



2.                           
  그는 터키 아다나의 친구들을 배웅을 받으며, 알레포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가 아침에 도착한 곳은 시리아 제2의 도시 알레포(Aleppo, Syria). 갑자기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에 가고싶다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기에 그는 일정에도 없던 다마스커스를 먼저 구경하러 가기로 결정했다. 묻고 물어, 미니버스와 대형버스를 번갈아 타며, 시내 외곽에 위치한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는 무작정 다마스커스(Damascus)로 가는 버스표를 끊고 버스에 몸을  실었다.

  차도르를 한 여인과 한 동양인 여행자와 몇몇의 승객을 실은 버스는 사막을 달려, 하마(Hama)에 도착했고, 그는 빵으로 허기를 채웠다. 그의 옆에 앉은 시리아사람은 아무것도 모르는 그를 많이 도와주었다[사실, 버스 티켓을 파는 사무실에서 만난 그 사람 덕분에 그 버스회사 티켓을 가지고 있으면, 버스 정류장에 있는 한 식당에서 차이(짜이,차,Tea의 한 종류)가 한잔 무료라는 사실을 알고 차를 한 잔 얻어 먹을 수 있었다].

  버스는 사막을 달리고 달려, 시리아 남부에 위치한 다마스커스에 도착했다. 사실 그는 막막했다.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사람들에게 물었지만,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워 보였다. 그의 손에는 지도도 없었고, 가이드북도 없었고, 배고픔이 찾아 왔고, 태양은 강렬했고, 그의 마음 한켠에 존재하고 있던 두려움이 스물스물 기어나왔다. 일단 사람들에게 묻고 물어, 무작정 시내로 향한 그는 미니버스를 타고 시내쪽으로 가다가, 번화가인것처럼 보이는 곳에서 내렸다. 경찰에게 호텔을 물으니 그가 가야할 방향을 일러 주기에 그 쪽으로 가니, 과연 호텔들이 많이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싸구려 호텔들 처럼 보였지만, 가격은 생각보다 비쌋다. 뭐지 이건? 그가 생각하던건 이런것이 아니었다.


3. 결정을 해야했다.
  다마스커스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오늘 여기를 떠서, 원래 가려고 했던 시리아 동부의 팔미라 유적지로 갈 것인가를. 공원에서 누군가가 다가와 커피 비슷한 걸 주길래, 먹기 싫다고 했더니, 공짜라면서 먹어 보란다. 그래서 먹었더니 뭔 이런 맛이 다있어?라는 생각과 함께 버려버렸다. 그리고 잠시 뒤 이상한 커피같은걸 준 녀석이 와서 돈을 내놓으라길래 화를 좀 내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니 그냥 되돌아 가는것이었다. 기분이 사실 좀 나빠서, 나는 당장 팔미라로 떠나기로 결정했다. 
 
  아니 뭐 다마스커스까진 그럼 왜왔음??


4. 버스정류장에 가서 팔미라행 버스티켓을 끊었다.
  출발 시각은 오후 다섯시. 하지만 오후 다섯시가 되어도 버스가 보이질 않았다. 버스 회사로 가니, 마냥 기다리라고만 한다. 이거 뭐 왠지 불안했다. 사기당한 기분이었다. 다섯시를 넘긴 시각 시간이 흘러 다섯시 반 쯤 되자, 같은 버스회사의 버스가 들어오길래 그리로 달려갔다. 그리고 내 표를 내밀면서 팔미라를 외치니, 타라고 했다. 이제 팔미라로 가는 구나.

  ByeBye! 다마스커스. 저 멀리 사막 뒤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그는 좌석에 몸을 뉘였고, 버스는 지는 태양을 옆에 두고 북쪽으로 달렸다. 어 이상하다? 팔미라는 동쪽인데, 왜 계속 북쪽으로만 가지? 북쪽으로 가다가 동쪽으로 가려나? 라고 그는 생각을 했지만, 너무나도 피곤했기에 아무 생각 않고 될대로 대라는 식으로 그는 잠을 청했다.


5. 버스기사가 소리쳤다.
  내려내려, 다왔어. 여기 팔미라야? 일단내려. 종점이야. 나는 내렸다. 이미 늦은 밤이었다. 시간은 10시를 가리키려 하고 있었고, 이제 버스정류장에서 다른 도시로 출발하는 버스도 없었다. 술취한 택시기사가 나에게 어디를 가냐고 물었다. 그래서 팔미라 유적지에 가낟고 말하니, 택시에 타란다. 자기가 데려다 주겠다고. 가격이 얼마냐니까, 여기까지 타고온 버스비보다 더 비싸다고 한다. 뭐 장난하는 거임? 술취한 택시기사와 실랑이를 벌이다가, 경찰에게 물었다. 팔미라 유적지를 가려면 어디로 가야하나? 그러자 경찰이 말했다. 여기는 라타키아라고. 아 그니까 팔미라 유적지는 어느방향에 있냐고. 그러자 또 말한다. 라타키아라고. 라타키아? 라타키아가 어딘지는 모르겠고 난 팔미라 유적지에 가려고 한다니까? 라고 말하면서..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6. 그는 카메라를 꺼냈다.
  다마스커스의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외국인 배낭여행객에게서 잠깐 지도를 빌려 본 일이 있었는데, 그 때 시리아 지도를 사진으로 찍어 놨었다. 그 사진파일을 확대해서 보았다. 라타키아, 라타키아 라고 속으로 되내이면서, 파일을 뒤졌다. 라타키아!
  그는 절망하려 했지만, 그럴 힘도 없었다. 어이가 없었다. 버스기사에게 욕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버스기사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버스회사도 이미 문이 다 닫혀 있었다.
  라타키아와 팔미라는 서로 반대쪽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알레포가 서울. 다마스커스가 광주. 팔미라가 영덕, 동해 그쯤? 그리고, 라타키아는...........대천 정도 되는 위치였다. 어쩜 이렇게 될수가 있지?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버스기사는 팔미라로 간다고 말했는데, 왜 나를 싣고 여기로 온것이냐!라고 생각했다.



7. 나는 따질 생각이었다.
  아침이 되면 버스 회사에 돈을 환불해 달라고 할 작정이었다. 그리고 버스 경찰에게 물어보니, 팔미라로 가는 아침 버스가 있댄다. 팔미라, 거긴 인연이 아닌 가보다.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냥 원래 두번 째 목적지였던, 하마(Hama)로 가기로 했다. 어제 그냥 하마에 섰을 때 내렸으면 이 고생도 안했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버스 정류장의 벤치에서 침낭을 펴고, 잠을 청했다.


8.                             
  아침에 버스회사를 찾아간 그는 당연한 결과라고 할만한 소릴 들었다. 우리는 모르겠으니, 다마스커스 회사에 문의를 해 보아라.라고 하는 말을. 그랬다. 지금에 와서 어쩌겠는가? 그는 그냥 하마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그리고 버스정류장에서 잠베를 치면서 버스를 기다렸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시리아, 왜 이토록 나에게 시련을 주는건데?





 


- 다마스커스 시내

 



- 넘어가는 태양


- 라타키아 버스터미널


- 사진을 찍어 달라던 버스기사들


나에게 먹을 것을 사 줬던 애들


- 내가 불쌍해 보였나??


- 구두닦이 꼬맹이들


- 다른 버스 기사



반응형

Ep] 터키 아다나 - 터키 친구들. (2)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0. 11. 5. 19:31

반응형

1.                                
  당신이 어딘가 낯선 곳에 가서 혼자 방황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친절히 말을 걸어 온다면 당신은 어떤 생각이 먼저 드는가? 안도감? 경계? 
  나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만나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한국에서 혼자 방황하고 있을 때는 누군가가 말을 걸어주면 반가운 느낌이 든다.  하지만 외국의 경우는 다르다. 외국에서 사기도 많이 당해보고, 소매치기도 당해보고, 배낭도 도둑맞아 본 본인..특히 이집트 같은 곳에서 말을 걸어오는 10명 중 9명은 사기꾼이라는 걸 경험한 본인이기에, 외국에서는 나와 같이 백팩을 메고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남녀를 불문하고 처음에는 경계하는 마음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경계의 마음과 자세는 좀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풀 수가 없었다. 언제 어느 때 뒤통수를 칠 지 모르니까!

  콜롬비아에서, 인도에서, 이집트에서, 러시아에서, 그리고 그 외의 여러 나라에서, 착한 사람이었다고 생각이 드는 순간은 그들에게 좀 미안했지만 그래도 여행에서 내가 믿을 건,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과 돈 밖에 없었으니까.


2. 가끔은 이런날이 있다.
  어떤 날은 그 하루를 너무나도 알차게 보낸 나머지, 후일 그 날을 되새겨 보며, 정말 그 날의 일들이 하루에 모두 일어난 일인가? 하는 의심이 드는 날 말이다. 평소 같으면 그 날의 일들은 적어도 이틀에 일어 났을 법한 그런 일들이 있었던 날들. 너무나도 그 하루를 알차게 보내고 다양한 일들을 경험하면, 때론 그 날이 정말 하루였던가 하는 의심이 든다.

  내가 아다나에 도착하고 터키 친구들의 집에서 하루를 자고 난 다음날이 나에게는 그런 날로 남아 있다. 터키 친구들의 집에 초대 받은 그 날 저녁, 드라마를 보며 맥주를 마시고, 그 다음날 터키 친구들과 함께 그들이 다니는 대학에 놀러가서 수업을 듣고, 점심을 먹고, 카페테리아에서 차를 마셨으며, 그 날 저녁은 학교 축제가 있는 날이기도 하지만, 한 친구의 여자친구의 생일이어서 여자친구와 사이가 토라져있던 친구와 여자친구 사이를 화해시켜주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녔던 날. 그리고 마지막으로 난 알레포로 떠났던 날. 


3.  아다나에서 만난 네 명의 친구들. 
  그들을 친구라고 부를 수 있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들의 차를 타고 어디론 가 갈 때, 이 자식들이 나를 어디 이상한 곳으로 데려가서 강도짓을 하는것은 아닐까하는 불안한 마음이 내 마음 한켠에 자리잡고 있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저, 이들이 정말 한 외국인과 친해지고 싶어하는, 한 외국인을 도와주고자 하는 그런 사람이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내 몸을 싣고 자동차는 도시의 도로를 이리저리 달리더니, 어느 한 아파트에 도착했다. 그리고 한명은 나의 무거운 베낭을 짊어 졌고, 내 손에는 내가 아끼는 악기만이 들려 있었다. 어느 아파트의 입구에서 경비원과 인사할 때 나는 어느정도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3.  터키 대학에서 수업을 듣다.
  터키 친구들의 집에서 머문 다음 날 아침, 그들은 학교에 가야 했고 나 또한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동행했다. 네 명중 한명을 제외하고 세 명은 다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했다. 
  내가 학교에 들어서자, 다른 학생들이 나에게 관심을 보였다. 그들은 나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었고, 나는 작은 강의실 뒤쪽에 친구들과 함께 앉았다. 마침 그 시간은 교양 어 시간었기에. 영어강사와 영어로 대화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수업시간에 뒤에서 너무 떠든다고 강사는 우리를 쫒아냈다..사실 좀 부끄러웠다.  이럴려고 온 건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리고는 우리는 학교 근처의 식당에 가서 시간을 때우며 놀았다. 다른 수업을 들으러 갔던 한 명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4.  여자친구와 화해하기 프로젝트! 
  '네잣'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가 네명의 무리들 중 리더역할을 하고 있는 친구였다. 차도 가지고 있고, 집도 부자라고 그의 사촌동생이 말해주었다.(대농장 지주의 아들이라나?) 그 친구가 나에게 말하기를, 오늘 밤(금요일)에 다른 학교에서 축제를 하는데, 같이 가서 놀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오늘 밤엔 알레포가는 기차를 타야하는데, 그건 12시 기차니까, 일단은 알겠다고 했다. 하지만 기차탈 시간까지 놀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사실 그 날이 여친의 생일인줄 몰랐다. 학교에서 '네잣'의 여친을 만났지만 전혀 그런 기운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인즉슨, '네잣'과 그의 여친이 싸워서 사이가 지금 별로 않좋다는 것이었다. '아! 그런 사연이..' 네잣이 나에게 말했다. 사실, 오늘 밤이 여친 생일인데, 여친과 싸워서 다른 학교 축제에 가서 다른 여자들과 놀려고 했다고 말이다. 그리고선 나에게 물었다. 자기가 오늘 밤 여자친구의 생일에 가야하나, 아니면 사이가 안좋은 상태니까 축제에 가야할지를 말이다. 나는, 그래도 여자친구 생일인데, 여자친구 생일을 챙겨주어야 하지 않겠냐는 말을 했다.(사실 내 마음엔 학교 축제에가서 놀고 싶은 마음이 조금은 있었지만...그게 도리일것이라는 생각에) 그리고선 자기도 그렇게 생각한다면서 활짝 웃어보였다.

  '여자 친구와 싸웠는데, 어떻게 화해를 하지?' '꽃을 선물하는게 어떠냐?' '어떤 꽃?' '좀 특별하게, 준비해야 할 텐데...' '뭐 좋은 것 없을까?' '일단 꽃집에 가보자!'

  그렇게 우리는 꽃가게에 갔다. 그리고는 꽃을 골랐다. 붉은 장미와, 백장미의 조화. 적절한 선택인 것 같았다. 내가 봐도 정말 이뻣다. 내가 남자라서 잘은 모르겠지만, 내가 정말 여자라면 이것 받고 기분이 안좋을리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꽃은 정말 탐이 날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리고, 또 다른 생일선물을 준비한 '네잣'과 우리들은 여자친구의 집으로 갔다. 나는 차 안에서 지켜보고 있었고, '네잣'이 여자친구의 집으로 갔다. 얼마 뒤 돌아왔다. 그리고 나에게 하는 말은 여자친구의 반응이 시큰둥하다는 것이었다. 여자친구의 집에는 다른 친구들 몇 명이 모여서 파티를 하고 있다고도 전해주었다.


5. 기차가 떠나는 시간이 두 시간 쯤 남은 시간.
  우리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와 맥주를 마시며, 나와 터키친구들이 헤어져야 하는 시간이 흘러가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영어가 약한 그들, 터키쉬가 약한 나. 컴퓨터 번역기 앞에 앉아서 나에게 무언가를 알려주는 친구들. 감동이다...
알레포는 위험한 곳. 시리아는 위험하니까 함부로 돌아다니지말고, 사람들 믿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는 친구들.(시리아 가보니 실상은 그렇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다시 터키로 오면 아다나에 들러서 연락하라는 그들. 그리고 나의 세계지도 롤링페이퍼에 한마디씩 적어준 친구들.
  그리고 전화통화를 하러 나갔다가 돌아온 네잣은 웃으면서 말했다. 여자친구와 화해한 것 같다고..


6. 덧.
  나는 시리아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또 아다나에 들러, 터키 친구들의 집에서 하룻밤을 더 묵고, 카파도키아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 지금은 수업중,


- 네잣의 여친


- 그냥 캠퍼스 모습


- 식당에서 농땡이 ㅋㅋ


- 화장실에서도,


- 바이람 ㅋㅋ 듬직하고 착했던 녀석


- 네잣의 사촌동생이 다니는 학교의 카페테리아. 댐 중간에 대학이 있어서, 호수 중간에 있는 느낌



- 네잣 사촌동생. 저 꽃다발이 여친과 화해를 위해 준비한 꽃다발. 백장미와 한송이 붉은 장미



- 매점아저씨와 나를 엄청 좋아해줬던 아이욜 ㅋㅋㅋ
반응형

Ep] 터키 아다나 - 터키 친구들. (1)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0. 11. 3. 19:23

반응형

1. 낯선 곳에 서다.    
  가끔, 낯선 곳에 혼자 갈 때가 있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그런 곳에 혼자 가야 한다는 것은 부담이다. 그리고 그 곳에 가서 식사는 어떻게 할지, 홀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생각. 외로움을 어떻게 극복 해야 할 지 머릿속은 복잡진다.  최근 나는 시험 준비를 하느라, 혼자인 생활을 오랫동안 한 적이 있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공부를 하고, 혼자 어디론가 떠나고. 항상 혼자인 채로 생활을 하다 보니 가끔은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가끔은 혼자인 누군가에게 말을 걸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행에 있어서 혼자라는 일생 생활과 달리,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혼자 여행을 하게되면, 친구들과 함께 혹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여럿이 여행을 할 때 보다 낯선 사람들, 여행을 하는 다른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물론 그 중에는 사기꾼들도 있으니 주의해야 겠지만, 혼자 여행을 다닐 때 얻을 수 있는 묘미중 하나가 바로 많은 친구를 사귈 수 있다는 것이다.

2. 터키 아다나(Adana)
  나는 터키에서 시리아(Syria)로 가기 위해, 이스탄불에서 출발하는 기차에 몸을 실어 터키 남부의 대도시 아다나(Adana)로 갔다. 아다나에서 시리아 북부의 도시 알레포(Aleppo)로 가는 기차를 타야했다. 이스탄불 역에서 열차 시간을 알아봤을 때, 아다나에서 알레포로 떠나는 열차가 있는 것으로 나와있었지만 아다나 역에 도착해서보니 알레포로 떠나는 열차는 없었다. 나는 매표소의 직원에게 왜 열차가 없냐고 물었다. 그러자 매표소의 직원이 말했다. 
  "오늘 밤에는 알레포로 가는 열차가 없고, 내일 밤에 알레포로 가는 열차가 있다." 열차는 이틀에 한 번 운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밤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다가, 기차 역에서 밤을 꼬박 세우고 그 다음날까지 기다려야 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미 밤은 깊어져 있었고, 아다나에서 어디로 가야 숙소가 있는 지도 알지 못했기에, 나는 그런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배가 고파오자 나는 역 앞 식당가를 서성였다.

  역 앞의 식당은 가격이 비쌀 뿐만 아니라, 음식도 맛이 없어 보였다. 그는 그래서 역에서 좀 더 떨어진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역에서 조금 떨어진 도로변에는 식당 몇 개가 붉을 밝히고 있었고, 야외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곳을 향해 걸었다.


<터키 아다나(Adana) 역>


3. 그는 네 명의 친구를 만났다.
  네 명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가격도 괜찮았고 맛있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를 하던 한 명이 자신들의 주변을 서성이는 그에게 눈짓하며 북을 치는 시늉을 했다. 그는 그 악기(젬베djambe)를 들어 보이며 칠 줄 아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한 청년에게 악기를 건넸다. 그 순간 그는 악기와 음악은 국경을 초월해서 모든 사람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좋은 도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악기를 다시 돌려 받아 잠깐의 연주를 했다. 식당 종업원이 뭘 먹고싶냐고 묻자 그는 테이블을 가리키면서 접시에 있던 케밥을 주문했다. 음식이 나왔고 그가 주문하지 않은 다른 음식들도 함께 나왔다. 그 음식들이 왜 나왔는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그는 배가 고팠기 때문에 그 음식들을 모두 먹어 치웠다. 그리고 테이블의 네명과 종업원은 악기를 가운데 둔 채 담소를 나누었다. 담소라기 보다는 바디랭귀지를 통한 대화였다.


4. 우리와 함께 갈래?
  식당의 테이블에 있던 한 남자가 아다나에 무슨 일로 왔냐고 묻자, 나는 알레포에 가기 위해서 들렀다고 말했다. 그럼 오늘 밤은 어디서 자냐고 묻자, 나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자 그들 중 한 명이 나에게 말했다. 오늘 우리집에서 자고 갈래?

5. 네 명의 친구들과 함께 하기로 결정하다.
  나는 고민을 했다. 얘들이 나를 데려가서 폭행을 하고 내 돈을 다 뺏아 가면 어쩌지? 그들은 네명이었고 나는 혼자 였다. 덩치도 전부 나만했다. 처음에 그는 거절을 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같은 집에 살고 있으니 같이 가자고 했다. 그리고는 자신들이 학생이라고 했다. 그래 나도 학생이다.
  잠시 뒤, 나는, 그들의 집에가서 하룻밤 머물겠노라고 말했다. 심사숙고 한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그들이 강도짓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리고 정말 그들은 좋은 친구들이 되었다.



<네 명의 친구들과 나>


6.네 명의 친구들과 함께 가다.
  테이블의 네 남자는, 내가 먹은 음식값까지 모두 계산을 했다. 그리고 한 남자의 차에 타라고 하면서 나를 차에 태우고, 그들의 아파트를 향해 떠났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곳은 터키 아다나에 있는 대학을 다니는 네 명의 학생이 살고 있는 자취방이었다.



반응형

세계일주 인터뷰(2) - 어느 대학생의 세계일주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0. 10. 25. 15:23

반응형

Q. 1년 동안  세계를 여행하면서 돈을 많이 썼을 것 같은데 얼마정도 썼죠?
 
  - 사실 처음, 계획은 한달에 백만원 정도 해서 1200만원 정도 생각했어요. 서유럽 국가들은 1년간 여행을 떠나기 전에 다녀온 적이 있어서 제외시키고, 1년간 여행할 대부분 국가들이 물가가 비교적 저렴한 국가들이라서 처음엔 1200만원 정도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거죠. 인도, 중동, 동유럽, 러시아, 몽골, 중국, 호주, 남미, 중미, 미국 대충 이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더라고요. 호주에서 쓴 것 까지 포함하면 2000만원 정도 쓴 것 같아요. 특히, 이동을 하는데 예상치 않게 비행기를 많이 탈 수 밖에 없어서 돈이 더 많이 나간 것 같아요.

  정확하진 않지만, 호주에서 지내면서 쓴 것을 제외하고 1500만원 정도 쓴 것 같았어요. 엄청 많이 썻죠. 호주에서는 일도하면서 여가도 즐기고 하다보니 500만원 정도 쓴 것 같고요. 4달 정도 호주에 있으면서, 일을 했는데 그 때 돈을 많이 벌어서 씀씀이가 커진 것 같아요. 그리고, 호주에서 다이빙하느라 스쿠버다이빙 장비 구입하고, 스카이다이빙도 하고, 서핑도 하고 이래저래 많이 썼어요.


 

Q. 돈은 어떻게 마련했나요? 집에서 지원 해 줬나요? 아니면 본인이 스스로 벌었나요?
 
   - 휴학을 하고 여행을 떠날 거라고 말했을 때, 집에서 엄청난 반대가 있었죠. 물론 예상은 했지만요. 그 때 부모님이 하신 말이 금전적인 지원은 없다는 거였어요. 그것도 예상을 했죠. 예전부터 내가 여행을 갈 때, 집에서 지원을 해주지 않았거든요. 집에서는 항상 제가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기를 바랐어요.

  - 군대를 제대하고 칼복학을 했어요. 3학년이었는데, 학교 수업은 거의 포기하다 시피하고, 알바를 했어요. 쓰리잡을 했죠. (평일에 2개 주말에 1개). 그렇게 한 학기 내내 알바를 하고 이곳저곳에서 돈좀 모았더니 돈이 좀 모이더라고요. 힘들었지요. 1, 2학년때 망친 학점관리도 좀 해야했으니까요. 2학기 때부터는 공부를 하면서 주말에만 알바를 했어요. 그래서 결국 600만원 정도 모을 수 있었죠.

  - 여행을 떠날 때가 되니까, 집에서 100만원을 주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에 700만원 정도 가지고 시작했어요. 물론, 그걸로 비행기표도 사고, 비자도 발급받고, 여행을 떠났죠. 인도를 지나서 중동, 동유럽, 러시아, 몽골, 중국을 거쳐 호주로 가니 딱 100만원이 남더라고요. 100만원 생활비를 가지고 호주에서 일자리를 구하러 다녔어요. 어떻게 열심히 다니다 보니, 운이 좋아서 호주에서 돈을 많이 벌게 되었죠. 처음엔 3달 정도만 바짝 벌고 떠나려고 했는데, 처음에 도착하고 일이 잘 안구해져서 시간을 보내고,  중간에도 좀 쉬고해서 4달정도 있었는데, 그 때 2000만원 정도 벌었죠. 생각했던 것 보다 여유있는 금액이라서 여행도 좀 여유있게 할 수 있었어요.



Q. 자신의 여행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 사실, 많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좀 더 여유있게 더 많은 곳을 가 봤을텐데 라고 생각하죠. 1년이란 시간동안 최대한 즐기면서, 하고 싶은 것 하면서 가고 싶은 곳에 갔지만, 아프리카를 제대로 여행하지 못했다는게 아쉬움으로 남아 있어요. 그래도 이집트에 갔다왔으니까, 아프리카 땅도 밟았다고 스스로 위안 삼지만, 사실 이집트는 중동이나 다름없으니까요.
  그래도 정말 즐거운 여행이었어요. 1년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경험들을 했죠. 귀국 후에 학교를 다니면서 시험준비를 했는데, 공부하다가 힘들 때면 여행 사진을 보면서 즐거웠던 기억들을 떠올렸죠. 1년간의 세계여행이 많은 저에게 힘이 되었죠.



Q. 가장 추천해 주고 싶은 여행지는 어디인가요?

 - 가장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네요. 여행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어요. 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제가 많은 나라를 여행했으니, 추천을 해 달라는 거죠. 하지만 그 질문에 확실한 답을 해 줄 수 없어요. 왜냐하면 대부분의 장소가 좋았으니까요.
  모든 나라와 장소들이 그 나름대로의 매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들은 다른 장소들과 비교할 수 없는 가치들이죠. 그래서 저는 되묻죠. 어떤 여행을 원하는지? 어떤 걸 좋아하는지? 어떤 테마를 정해주면 내가 대답해 주겠다고요.



Q. 여행을 하면서 살고 싶다고 느낀 나라가 있나요?
 
  - 물론 있죠. 처음 유럽 여행을 할 때, 독일에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리고 호주에 들러서 일하며 잠깐 지내면서 호주에서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요. 그리고, 뉴욕에도 살아보고 싶어요. 뉴욕에는 가기 전에도 동경의 대상이었지만 갔다오고 난 뒤에도 저에게 커다란 매력덩어리로 남아있으니까요,


Q. 다시 가 보고 싶은 곳을 몇 군데 뽑으면?
 
  - 아주 많아요. 영국 런던. 정말 매력적이었어요. 프랑스 파리, 독일, 오스트리아, 그리고 루마니아, 보스니아에도 다시 가 보고 싶었는데 이번 여행을 통해서 다시 가보지 못해서 아쉬웠어요. 이집트 다합에 다시 가서 푹 쉬어보고 싶기도 하고, 인도에는 내년에 다시 가  봐야겠따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남미도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어요. 아마존에서 5일간 배를 타고 이동한 적이 있는데, 다시 한 번 간다면 다른 방향으로 배를 타고 아마존 강물 위를 떠다니고 싶어요.
 또, 자메이카 거리에 울려 퍼지는 음악이 다시 듣고 싶고, 쿠바의 열정도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어요. 묘한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뉴욕은 항상 제가 동경하는 곳이죠.




Q. 여행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 하실 것 같은데?
 
  - 네, 전 여행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돈이 얼마 없어서 힘들게 다닌 적도 많고, 노숙도 많이 하고, 가방 도난을 당하고, 차비가 없어서 구걸을 한 적도 있고, 길거리에서 악기를 연주해서 돈을 벌기도 하고. 누가 보면 왜 저렇게 여행을 하느냐고 말 할 정도로 힘들게 여행 한 적도 있지만, 저한텐 모두 하나같이 정말 귀중한 경험들이라고 생각해요.

 - 그리고 또 한가지는, 세계일주(?)라는 걸 하면서 세계일주를 하는 저보다 어린 사람을 못봤다는 데에서, 내가 남들보다 어린 나이에 세상의 다양한 일들에 맞닥뜨리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2005년 이집트 여행을 할 때, 중동을 거쳐서 이집트로 온 그 당시 세계일주를 하던 형이 26살이었는데, 제가 25살에 세계일주를 한 것이니까요. 만 나이로는 23살 에서 24살에 걸쳐서 세계일주를 했다는 데에서 사실 좀 스스로 대견하다고 생각해요.




Q. 마지막으로, 세계일주를 준비하거나 생각하고 계시는 분들께 한마디 하신다면?
 
   
- 사실, 세계일주는 돈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물론 어느 정도의 돈이 필요하지만 엄청나게 많은 돈이 필요한 건 아니라고 봐요. 한국에서 돈이 없더라도 여행 중에도 돈을 벌 수있는 방법은 다양해요. 저 처럼 세계일주를 하는 일본인 친구랑 며칠 같이 다닌 적 있는데 그 친구는 돈벌이가 좀 되는 나라에서 일정기간 일을 하고, 또 다시 여행을 떠나고, 또 일을 하고, 그런 식으로 여행을 하더라고요. 저 또한, 호주에서 일을 해서 목돈을 챙겨서 또 다시 여행을 떠났고요.

 중요한건 무언가를 제쳐두고 떠날 수 있는 용기와, 여행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드는 것 같아요. 그렇게 떠날 수 있을 때, 떠났기 때문에 얻는  여행의 가치는 엄청난 것 같아요.

- 마지막으로, 한마디 한다면,
  열정과 용기 그리고 시간만 허락한다면 세계일주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세계일주를 꿈꾸는 모든 분들께 그것은 꿈이 아니라 한 발 앞에 있는 현실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인터뷰 끝.



- 시베리아 횡단열차


- 몽골 테를지


- 호주, go to the carnarvon



-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


반응형

세계일주 인터뷰(1) - 어느 대학생의 세계일주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0. 10. 25. 02:31

반응형


Q. 언제 처음 해외여행을 하게 되었나요?
 - 해외여행은 대학교 1학년 여름 방학때 처음 하게 되었어요. 그 때 일본으로 가게 됐죠.


Q. 일본으로 가게 된 특별한 계기는 있나요?
 - 중, 고등학교때 한창 일본 문화가 비공식적으로 들어오던 때여서 제 친구랑 전 일본 문화를 많이 접하게 됐고, 일본에 한번 가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죠. 그냥 막연한 생각뿐이었는데, 운 좋게도 대학교 1학년 때 모 의류회사에서 일본에 보내주는 이벤트에 당첨되어서 겸사겸사 갔다오게 됐죠.


Q. 세계일주를 하기 전 또 다른 곳에 여행을 간 적 있나요?
  - 대학교 1학년 겨울 방학때 친구와 둘이서 유럽 배낭여행을 40일 동안 간 적이 있었어요. 고등학교친구이자 대학교 들어와서 룸메이트로 같이 살면서 같이 여행을 가기로 했었죠. 몇 달 간 같이이야기 하면서 루트도 짜고, 가고 싶은 곳들을 정하고, 그래서 겨울에 유럽여행을 하게 되었죠. 보통 사람들이 하듯이 그냥 후다닥 하고 와서 아쉬움이 많이 남았어요.

 - 대학교 2학년 여름 방학 때도 여행을 갔어요. 그 때는 이집트가 너무 가고싶어서 무턱대고 이집트행 비행기표를 끊었죠. 그리고 아쉬운 마음에 발칸반도도 갔어요. 방학 때 약 2둘 정도 시간이 있어서, 한달은 이집트여행 한달은 발칸반도 여러 나라들을 여행했죠. 그때가 2005년 이었는데, 그 당시 한국에는 발칸반도 국가들에 대한 여행 가이드북이 없어서 정말 힘든 여행이었어요. 광화문 교보, 영풍에도 없고,,,그래서 현지 도서관에서 관련 여행 자료를 보고, 외국인 백팩커들한테 가이드북 빌려보면서 다녔었죠.

Q. 그 외에는 세계일주 하기 전 다른 여행은 안했나요?
 - 대학 2학년 여름에 해외여행 갔다오고나서 겨울엔 군대를 갔어요. 사실 그 때 인도여행 갈 까 하다가, 군입대 날짜가 빨라서 입대를 해야 했죠. 제대하고나서 대학교 3학년  여름 방학때 친구와 전국일주를 했어요. 사실상 거의 무전여행이었다고 할 수 있는 여행이었죠.


Q. 전국일주를 하게된 계기가 있나요? 여행은 어땟나요?
 - 사실 해외여행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묻더군요. "전국일주는 해 봤느냐고요" 
 유럽 및 이집트를 비롯해서 약 20여개국을 돌아다녔지만, 전국일주를 제대로 안했다는 게 좀 찝찝했죠. 원래 하고 싶던 것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군대에 있을 때 친구와 전국일주를 하기로 결정하고, 군대에서 계획을 짰어요. 물론, 그 때 이미 세계일주에 대한 계획도 세웠죠.

 - 정말 힘든 여행이었어요. 오토바이를 타고 31박 32일 동안 "금강에서 한라까지"라는 모토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한라산까지 동해, 남해, 서해안을 두루 도는 코스였어요. 오토바이 기름값과, 울릉도, 제주도 배삯, 그리고 예비금으로 관광지 입장료만 들고 출발했죠. 강원도, 경북 북부 과수원에서 서리도 많이하고, 전라도 산에서 고구마도 파먹었어요. 정말 배고프면서 힘들었죠. 전국 각지에 있는 친척들집에도 방문해서 밥도 얻어 먹고, 등산을 할 땐 등산객들한테도 얻어먹고 했어요.
  대도시를 지날 땐 대형마트 시식코너에서 배를 채우곤 했죠. 제주도에서 특히, 제주시, 서귀포시에 있는 대형할인마트를 애용했어요. 목포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가 초콜릿이랑 초코바를 사줘서 그걸 먹고 한라산에 올랐죠. 친구랑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힘든 여행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기억에 많이 남는 여행이었어요.

Q. 세계일주를 하게 된 계기는요?
  - 여행에 대한 갈증을 해결 할 방법은 세계일주 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집에서 반대도 많이 할 것이란 걸 알고 있었죠. 그렇지만 여행 계획을 짯어요. 사실 2년 계획을 잡았는데, 현실적인 부분을 많이 감안해서 1년 반으로 줄였죠.


Q. 루트는 본인 스스로 정한건가요? 기준은요?
  - 루트는 일단 그 동안 제가 안 가본 곳을 기준으로 짯어요. 그리고 많은 돈이 들지 않는 곳을 중심으로 제가 가고 싶은 나라들을 중심으로요. 그리고 기간과 교통편 등등 고려했죠. 그래도 제가 꼭 해보고싶은것을 중심으로 짯죠.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타보고싶었고, 타지마할에 가보고 싶었고, 몽골에가서 말도 타보고 싶었고, 호주에서 스카이다이빙도 하고 싶었죠. 그리고 마추픽추도 가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집트 다합에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었고요. 그런 굵직한 것들을 선으로 죽 잇고나서, 그리고 가야할 나라들과 교통편을 고려했죠. 그리고 대략 체류 일 수를 적어봤어요. 그랬더니 도저히 날짜수가 안나오더라고요. 금전적인 문제도 있고요. 우여곡절끝에 루트를 정하고 해보고 싶은 걸 다 적었는데, 정말 방대했어요. 어차피 루트라는건 항상 바뀐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큰 신경은 안썻지만, 해보고 싶은건 웬만하면 해보고 싶었어요.


인터뷰 1. 끝.







 

2008 전국일주 울릉도 성인봉



 

- 2008 전국일주 해남 땅끝



 

- 2009 세계일주 아마존, 브라질



 

- 내가 좋아 하는 사진 중 하나



 

- 2009년 터키 카파도키아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