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3)

- 소소한 즐거움 찾기/잡동사니 · 2010. 11. 23.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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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 초원은 달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



석양은 사람을 감성적이게 한다



태양가 바다가 하나가 될 때, 어둠은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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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2)

- 소소한 즐거움 찾기/잡동사니 · 2010. 11. 23.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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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 한여름밤의 꿈.



-해수영장의 오후


-절벽위의 삶


- 바람을 맞다


-


-


- 구름과 섬과 구름과 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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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도전!(1)

- 소소한 즐거움 찾기/잡동사니 · 2010. 11. 23.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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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올해는 찍은 사진이 업삳고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그래도 작년말 연초에 찍은 사진들로 한번 응모해 보련다.
달력이라도 받아야지 ㅋㅋ



- 바람개비


-쿠바의 골목


- 한 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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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몽골, 볼리비아 - 해외여행에서 "세상 참 좁다"라고 느낄 때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0. 11. 21.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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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과 볼리비아에서 있었던 이야기.


1. 케빈 베이컨의 법칙.

  누군가와 이야기 하다가 한 번 쯤은 해봤을 만한 멘트. "어?! 나도 그 사람 아는데?" "세상 참 좁다".
내가 알던 사람이 알고보니, 친구의 친구이거나, 알고보니 아는 사람이 또 알고 있는 사람이거나, 새로 알게된 사람이 알고보니 논랄만큼 나와 가까운 사람일 때. 흔히들 그런말을 하게 된다. 그 두사람이 공통적으로 아는 사람을 공유하게 될 때.

  한국의 유명한 소셜네트워크 사이트인 싸이월드에서는 이러한 관계를 "2촌"아라고 표시를 해 두고 있는 걸 발견하기도 했다.


2.                     
  대학교 2학년 때, 같이 자취하는 친구의 여자친구가 나와 같은 과 후배의 베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세상 참 좁다라고 느꼈다. 이탈리아 민박집에 머물 때, 몇일 동안 같이 술먹고 놀던 사람을 동네의 한 놀이터에서 보게 되었을 때[그 때 내가 살던 동네는 신촌] 당황스러우면서도 세상 참 좁다고 느꼈다. 그 사람들도 근처에 산다고.[그 외에도 이런 경우는 수도 없이 많았다.]
 
이럴 때 마다 하는 말 "세상 참 좁다!" 그러면서 생각 한 것, "정말 착하게 살아야 겠다."



3.  기차는 시베리아를 떠나 몽골초원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기차 창문틈으로 스며드는 한기에 새벽에 자주 잠이 깨었는데, 그 때마다 보이는 창 밖의 푸른 초원이 이곳이 몽골임을 알려주었다.[기마민족의 땅 몽골] 울란바토르의 아침은 시베리아보다 차가웠다. 시베리아엔 봄이 오고 있었는데, 울란바토르는 쟃빛 하늘아래로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내가 탄 국제선 열차는 기차의 제일 끝에 붙어 있었다.[국제선 열차 차량은 따로 분리되어 한 칸만 러시아 국경을 넘어왔다] 기차에서 내리자 여러 사람들이 팻말을 들고 서 있었고,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미스터 창? [나는 러시아의 이르쿠츠크에 머물 때 몽골의 한 호스텔을 예약해 두었었다. 가격도 싸고, 예약비도 필요 없었으며, 상당히 인기있는 호스텔이라고 해서 예약을 하고 몽골로 넘어왔다. 특히, 기차역에서 픽업을 해준다고 하기에!]
  그 사람은 한국어를 좀 할 줄 알았다. 왜냐하면 그 호스텔 주인이 한국인이었기 때문이었다.[몽골인 여자와 결혼하여 몽골에서 호스텔을 운영중인 한국인이다]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영어와 한국어로 몽골의 거리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기차가 도착한 시간이 이른 아침이어서, 거리는 황량했다[잿빛 하늘은 몽골 거리의 분위기를 더욱더 암울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호스텔에 도착하자, 체크인을 하고, 방을 배정 받았다.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싶었다. 2박 3일간 기차 속에서 생활한 터라 제대로 씻지도 못했고, 울란바토르의 기온은 차갑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내 침대에 아무렇게나 누워 잠깐 잠을 청했다.



4. 2박 3일간의 안데스투어[우유니사막투어]가 끝났다.

  우리 팀은 환호성을 지르며 지프에서 뛰어 내렸다. 2박 3일간의 투어가 끝나고 돌아온 우유니시티는 변함이 없었다[내일도 많은 사람들이 우유니투어를 떠나겠지]. 우리는 이대로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에 저녁 밥과 함께 맥주를 마시자는 약속을 하고 각자 호텔을 향해서 떠났다.[모두가 같은 곳을 향해 걸었고, 공교롭게도 우리는 모두 같은 호텔에 묵었다!] 

  사막에서 묻혀온 소금과 모래를 몸에서 떨궈냈다. 뜨거운 물이 내 몸을 타고 흘러 내렸다. 방으로 돌아와 사진을 컴퓨터로 옮기고, 사진들을 구경했다. 너무나도 평온한 오후였다. 적당한 온도, 적당한 휴식처, 적당한 기분.

  약간 출출한 분이 들어, 약간의 먹을거리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몸을 움직여, 밖으로 나가려 했다. 아래층에 있는 리센션 앞에 몇 명의 새로운 여행자들이 배낭을 풀어헤치고 있었다. 그들은 무언가를 상의하고 있었다.



5.                         
  잠에서 깼다. 그대로 누워 눈을 뜨니, 건너편 침대 2층에서 누군가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책 표지가 한글로 쓰여진것 같기도했다[시력이 좋지 않아 애매했다]. 나는 그냥 그대로 누워서 잠시 정신줄을 놓았다가, 앉았다. 그 방에는 단 둘이 있었다.

  하이. 하이. 웨얼아유프롬? 코리아. 아, 한국분이세요?ㅋㅋㅋ 책에 한글 비슷한게 적혀있어서 혹시나 했는데. 오늘 오셨어요? 아침에 들어오는 것 같던데. 네, 오늘 아침에 울란바토르도착했어요ㅋㅋ생각보다 많이 춥네요 여기. 어제까진 날시 괜찮았는데, 오늘 갑자기 추워진 것 같아요 비가내려서. 아...혹시 괜찮으시면 이따 저녁때 밥이라도 같이 먹을래요? 괜찮죠. 나가서 먹을까요? 아니면 여기 주방도 있고, 해먹어도 되고요. 전 뭐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만들어 먹는 것도 괜찮고, 사먹어도 괜찮고요. 저도 뭐 상관없는데. 요리좀 하시나봐요? ㅋㅋ, 뭐 그냥 못하는건 아니에요.

여기에서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도 요리를 웬만큼 할 줄 안다면...해양경찰 출신이 아닐까?[해양경찰 전경은 막내가 무조건 취사병으로 근무를 해야하기 때문에 해경 출신이면 웬만한 요리는 다 배우고, 할 수 있게 된다] 사실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물어보기로 했다.

혹시 군대 어디 나오셨어요?, 저요? 전경출신인데 왜요?, 아 요리좀 하신다길래 혹시 해경출신인가 해서요 ㅋㅋ, 어 저 해경나왔는데, 혹시 해경나오셨어요?, 진짜요? 저도 해경나왔는데. 대박...ㅋㅋㅋㅋ 혹시 어디 지역이세요?[해경은 지방 경찰청 근무를 제외하고 전국 각지 경찰서 근무를 하는데, 소속 경찰서가 다르면 2년 2개월간 볼 일이 없다] 아까 집이 대구라고 하셨으니 포항? , 아니요 통영출신이에요, ㅋㅋㅋㅋㅋ아 진짜 대박이다...저도 통영경찰서 출신인데..혹시 몇기세요?, 아 진짜 통영 출신이에요? 진짜 대박이네 ㅋㅋㅋ 저 259기요, 아 전 262기인데 선임이시네요. 근데 왜 배탈때 못 본것 같지? 혹시 배는 언제 탔었어요?[후략]

알고보니, 내가 배를 탔던 기간에 2개월 정도 같이 배를 탔었다. 같은 부두에 머물렀지만, 그 선임은 중형급 이상의 배를 탔고, 나는 소형배를 탔기 때문에 서로 잘 알아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어쩐지 이름이 낯익긴 했다]  
   
우리는 바로 그 자리에서 맥주를 마시러 나갔다. 이따 저녁때 밥은 밥이고, 이런데서 같은 군부대를 나온 사람을 만났으니 술이나 한잔 하러 가야하지 않겠냐는 생각에서 말이다.


6.                         
  리셉션 앞에서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는 그들에게 인사를 했다. 이미 그 호텔에 방이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벌써 몇 팀이 발길을 돌리는 것을 봤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들은 우유니사막투어를 하러 왔고, 나는 이미 하고 왔기 때문에 여러가지 정보를 줄 수 있었다. 모두가 일본어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에 나도 아는 일본어를 가지고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중 한 여자애가 한국인이었다.[아니 그런데 무슨 일본어를 저렇게 잘하지? 라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하다다가 알게된 사실. 일본에서 중,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한국으로 왔다고 했다.[아, 어쩐지 일본어를 잘하더라]. 전공은 일어일문.  재외국인 전형?이라고 나는 반문하면서 혹시, 대학은 어디냐고 물어봤다.[웬만하면 나는 이런걸 잘 안물어 보는데, 내 친구가 중앙대 일어일문을 다니고 있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 보았다]
  혹시나, 했는데. 대답은 중앙대였다. 중앙대 일어일문. 그래서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봤다. 내 친구를 아느냐고.[사실 모를리가 없었다. 내 친구는 학생회장까지 했었으니까 말이다] 역시, 물어보나마나였다. 보통사이도 아니고 완전 절친선후배사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알지 못했던, 내가 소개시켜준 여자와 내 친구간의 비하인드 스토리[슬픈 이별의 이야기]도 나에게 들려주었다.

  그 날 밤, 나는 싸이월드 내 친구의 홈피에가서 이렇게 적었다. " 야 ㅋㅋ 나 지금 볼리비아 우유니인데, OOO알아? 절친동생이라던데?ㅋㅋ 오늘 걔 만났어."
  그리고 다음 날, 내가 떠나기 전, 점심을 같이 먹고, 우연히도 저녁 때 같은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의도하지 않았지만, 투어 갔던 애들이 그 레스토랑에 다 모였고, 친구의 후배와 그녀와 같이 있던 애도 그 식당에서 만나게 되었다]



7.                        
  여행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다보면 이런 저런 인연이 다 있다. 는 생각.   






- 요리하는 남자

 


 


- 울란바토르 역[도착한 날과 떠나는 날 하늘은 흐렸다]

 



 

- 우유니 역



 

- 호텔 앞 거리


 

- 아티스트 에드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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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홀이야기] 호주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하다.

- 호주, 워홀이야기- · 2010. 11. 18.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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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ond Edit.


1. 내가 호주에 가게 되면 호주에서 꼭 하고 싶었던 것. 
스카이다이빙.


2. 사실,
스카이다이빙을 하기 위해 케언즈Cairns에 가려고 했었다.

케언즈[ 직접 가보진 못했지만 들은 바에 의하면 각종 레포츠의 천국 이라는 곳]에가서 스노클링도하고, 스카이다이빙도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케언즈에서부터 시드니까지 해안선을 따라 내려 가면서 여행도하고 바다에서 서핑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나의 이상을 모두 채워줄 순 없었다.

그래서 케언즈에가서 스카이다이빙이라도 하자라는 생각에 비행기표도 알아보고 스카이다이빙 가격도 알아보았다. 그리고, 덤으로 케언즈에서 시드니로가는 비행기표도 알아 보았다.


3.
  루트와 계획을[여행에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 이지만, 나는 계획 짜는걸 좋아하지 않아서 문제이다] 여러 번 생각했다. 그리고 공장을 언제 그만두고 언제 퍼스를 떠나고, 언제 시드니로 갈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했다..

이미 미국을 경유하여  남미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끊어놓았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서 가야했다.

그러던 중, 듣게 된 소식.


4.
'퍼스에서도 스카이다이빙을 할 수 있다.'
이 소식을 접하고 나서 이곳저곳 알아보니, 퍼스에도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곳이 두세군데 있었다.

나는 구글검색을 통해 알게된 퍼스에 있는 트래블 에이전시(Travel agency)에 가서 스카이다이빙 가격을 알아보았다.
'가장 높은 높이인 14,000피트에서 뛰어내리는 가격 $439, DVD촬영 $129, 총 합 568달러'

케언즈에서 하는 것 보다, 150-200달러 정도 비싼가격이었다. 생각해 볼 문제였다.
여러가지 여건들[시간과 돈과, 여행과 일정 등등]을 고려 한 끝에 내린 결론!
퍼스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해야겠다고 결론지었다.[ 시간에 너무 쫒기면서 돌아다니는건 내 스타일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케언즈로 갔다가, 또 시드니로 곧 이동해야 한다는 사실이 나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5. 12월 4일 금요일, 오전.
  잠을 자고 있는데, 어디선가 전화가 왔다.

'헬로우, 뭐 어쩌고 저쩌고, 스카이다이빙입니다. Mr.Chang?'
'옙, 맞습니다'
'어쩌고 저쩌고~ (막 뭐라고 말을 한다, 내일 40도까지 낮기온이 올라가고 ,뭐 어쩌고 막 설명을 한다)'

사실 잠결이라서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 듣다가 얼핏 40도, 얼리? 라고 하길래 무슨소리냐고 했더니 다시 설명을 해준다.

'내일 낮기온이 40도까지 올라가니까 오전에 일찍 뛰어 내려야한다. 예정 시간보다 1시간 일찍 나와라'
'오케이' 라고 말하고 오히려 나에겐 잘됐다고 생각하고 다시 잠을 청했다.


6. 12월 5일 토요일, 아침.

  일이 끝나고 집에와서 씻고, 스카이다이빙하러갈 준비를 했다.[준비라고 해 봐야 신분증과 영수증을 챙기고, 그냥 평소대로 옷 입고 나간 정도다]

  트레인을 타고, 퍼스 시티에 약속된 장소[웰링턴 버스스테이션 앞]에 가니, 투어를 하러 가는듯한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 서핑스쿨(Surfing school)에서 일일 서핑교실에 참여하는 사람도 있었고,- 나도 따라 가고 싶었다. 일일 서핑스쿨 - 스카이다이빙(Sky diving)을 하러 가는 사람도 있었고, 무엇을 하러 가는 지 알 수 없지만 뭔가를 하러 가려고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고]

일본인 두명과 나와 이렇게 셋이서 출발했다. 우리 셋을 실은 봉고차는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곳으로, 달려갔다.
차를 한 시간 반가량 가서 도착한 곳. 'Historic city of York'가는 간판이 도시의 입구에 서 있는 조그마한 시골마을 이었다. 그 마을에서 좀 더 안으로 들어가니 작은 비행장이 있었다. 그곳이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카이다이빙을 준비하는 창고같은 건물에 곳에 가니,  그 앞에 활주로가 뻗어 있고,  경비행기 두대가 대기하고 있었고, 스카이다빙을 하려는 사람들이 여럿있었다.[개인적으로 스카이 다이빙을 하러 오는 사람들도 꽤 있었지만, 스카이다이빙 동호회 팀들도 많이 있었다. 동호회팀들은 뛰어내리면서 취할 포즈를 연습하고 있었다]

밖에선 비행기가 뜨고, 사람들이 뛰어 내리고, 낙하산이 펼쳐지고, 또 다시 비행기가 뜨고, 또 사람들이 뛰어내리고.
 
'아, 나도 드디어 스카이다이빙을 하는구나!'


7. 오전 11시경,
드디어 내 차례.[내가 마지막이었다.] 스카이다이빙 두팀과 나와 강사와 카메라맨이 함께 비행기에 타기로 되어있었다.
스카이다이빙 옷을 입고, 간단한 안전교육을 받고. 드디어 비행기에 올랐다.[가슴이 두근거렸다]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조그마한 경비행기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서, 하늘로 하늘로 올라갔다. 창 밖으로 보이는 집들이 점점 작아지고, 자동차들은 작은 점처럼 보였다.  어느새 옅은 구름이 나와 같은 높이에 있었다. 다이빙 강사의 손목에 차고 있던 고도계의 숫자는 점점 올라갔고, 고도계가 한 바퀴를 돌자 스카이 다이빙 팀들이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그 다음이 내 차례였다. 한바퀴가 돌고, 그리고 고도계가 조금 더 돌았을 때,뛰어내려야 한다고 강사가 나에게 말했다.


'으악, 내가 그냥 이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는건가?'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면서 내가 뛰어내려야하는 곳을 쳐다보니, 긴장되기도 했다.  점점 목표 높이에 다가가고 있었다.  "빨간불이 들어오면 뛰어내려야 한다"는 강사의 말이 생각났다.

드디어 작은 비행기는 14,000 fit 상공에 도달했고, 비행기의 출입문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강사는 고고고를 외쳤다. 나는 살짝 미소를 띄웠지만, 내 마음엔 약간의 두려움과 셀럼이 공존하고 있었다.


8. 비행기의 문이 열렸고, 나는 문으로 다가갔다.
비행기의 아래를 쳐다보니, 발 밑에 구름이 있었다.[구름을 밟으면 하늘위에 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1초 정도 한 것 같다. 다른 생각 할 틈도 없이 뛰어내렸다]

오묘한 기분. 다이빙이라는 말보다는 그냥 추락 추락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법 한. 그런 늒미이었다. 나는 배운대로 포즈를 취했다.

번지점프와는 또 다른 기분. 말로 표현하기가 힘든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냥, 기분이 좋았다. 마냥 좋은 그 기분.

시속 200km정도의 속도로 떨어진다는 스카이 다이빙?[9.8m/s 인가? 만류 인력법칙에 의한 물체의 낙하속도 말이다]

그렇게 그냥 막 떨어졌다. DVD촬영 하는 애가 어느새 내 앞에 자리잡고 나를 촬영했다. 그를 바라보며 같이 뛰어 내렸다. 입을 너무 벌리고 있어서 침이 흘러 나왔지만 닦을 수 없었다. 뭘 어떻게 해 보겠다는 생각도 없이 소리를 막 지르고 있는데, 어느 순간 낙하산이 펼쳐졌다.


9. 낙하산을 타고 천천히 내려오면서 바라본 풍경.
아름다웠다. 드 넓게 펼쳐진 평야같은 곳에 중간에 위치한 마을. 그 곳으로 나는 내려가고 있었다. 저 멀리 어렴풋이 바다가 보였다.

햇살에 드러나는 나의 그림자는 엄청 크게 보였다. 낙하산을 타고 내려가는 나의 모습이 땅에 그려지고 있었다. 자동차가 내 발 밑에가볍게 미끄러지고 있었다.

스카이다이빙 = 번지점프 + 패러글라이딩? 이라는 생각을 잠깐 해보기도 했다. 낙하산을 이리저리 좌우로 조정하며, 목표지점으로 향했다. 재미있었다.

스카이다이빙을 마치고, 촬영한 DVD를 보았다.
아, 좀 많이 쪽팔렸다 ...ㅋㅋㅋㅋ 카페테리아에 앉아서 같이 뛰었던 애들걸 다 같이 보는데, 오지(Aussie, 호주사람)여자애들 둘이 내껄 보면서 계속 킥킥댓다.[ 내가 봐도 웃긴데 - _-; 걔들은 오죽했을까] 


10. 다시, 퍼스 시티(Perth city)로 돌아오는 길,
모든게 꿈만같았다. 피곤해서 살짝 잠이 들었다가 다시 깨었다. '내가 스카이다이빙을 하고 온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게 꿈같이 느껴졌다.
  내가 호주에서 일을하고, 바다에도 들어가서 다이빙도하고, 전복도 따고, 하늘에서 뛰어내린 모든 것들이 꿈같다고 생각되었다.
누군가가 옆에서 크게 소리치면, 잠에서 깨어날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잠에서 깨어나면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은 느낌.





- 나를 픽업하러 온 아저씨 ㅋ


- 스카이다이브 익스프레스,


- 내가 타고 올라간 경비해기가 보인다,


- 낙하중인 다른 스카이다이빙 팀원


- 같이 스카이다이빙을 하러 온, 아츠유키/타츠오미 상


- 나의 DVD가 방영되고 있다................


- 스카이다이빙, 인증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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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페루 - 잉카콜라 vs 코카콜라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0. 11. 17.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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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ond Edit.

- Inca Kola vs Coca Cola

1. 10년전 쯤 기억을 하나 되새겨 본다면,

  한창 콜라 열풍이 불어닥쳤던 그 시절이었던 것 같다. 티비에서는 많은 콜라 광고가 나왔고, 다양한 제품들이 쏟아졌다. 대표적으로 "콤비콜라". "815콜라" 등이 있었고, 콜라계의 지존 "코카 콜라". 그리고 그를 따라잡기 위한 "펩시 콜라" 등등. 많은 콜라가 있었다. 애국심을 마케팅 전략으로 한 815콜라. 그나마 먹어 줄만 했던 것 같다.
  미국 자본주의의 앞잡이라는 비판과 함께 친구들 사이에서 코카 콜라를 먹으면 안된다는 그런 논리 때문에, 펩시 콜라도 많이 마셨는데 지금 생각 해 보면, 역시 콜라는 코카 콜라다.[사실 난 어릴 때, 펩시콜라의 마크가 태극기의 태극마크와 비슷해서, 펩시콜라가 국산인 줄 알았다.]

  농구나 축구를 하고 나서, 동네 슈퍼앞에 모여서 형들과 돌려 마시던 콜라. 그리고 그 당시 나름 고급스럽게 보였던 컨피던스와 파워헤이드.[파워헤이드는 요즘도 운동하고 가끔씩 먹지만 웬지 고급스러워 보인다]

  콜라 춘추전국시대. 그런 시대가 있었다.


2.                       
  콜라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학창시절 다큐멘터리 보는 것을 참 좋아했다] 그 때가 아마도, 콤비콜라, 815콜라 등 코카콜라에 대항하여 여러 콜라들이 막 출시되던 콜라 춘추전국시대였던 것 같다.

그 다큐멘터리의 주제는 페루에서 코카콜라를 제치고 성공한 <잉카콜라>였다.
  페루의 "잉카콜라"는 좀 특이하게, 색깔에 있어서도 보통의 콜라와 차별성을 둔 노란색 콜라인데, 전세계 콜라중 유일하게 검은색이 아닌 노란색 콜라라는 것이었다. 콜라의 색깔을 노란색으로 한 이유는 노란색(황금색)은 고대 잉카제국의 황금을 상징하기 때문에 잉카제국의 후예라는 페루의 특성을 잘 살린 콜라라고 했다. 그리고 페루에서 잉카콜라는 코카콜라를 제치고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했다.


3.                          
  그 당시 나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생각했다. 언젠가 페루에 가면 페루에가면 잉카콜라를 먹어봐야겠다고 말이다.[페루에 실제로 가 보니, 잉카콜라는 유명하면서도 자부심이 대단한 것 같았다. 코카콜라는 없어도, 잉카콜라 없는 곳이 없을 정도?]

  페루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먹었던 콜라가 잉카콜라였다.[본인은 콜라빠로서 매 끼 식사후 콜라를 섭취하고, 심심할 때도 콜라를 먹는 콜라 중독자]
 
  맛? 괜찮은 것 같았다.[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이다] 좀 달짝찌근하지만 톡 쏘는 맛이 있다.[이 말은 단것을 많이 먹으면 입안이 끈적거리면서 텁텁한 기분이 드는게 보통이지만, 그런 기분이 들기전에 탄산의 톡 쏘는 느낌으로 인해 어느정도 해소가 된다는 말]
코카콜라와 견주어 봤을 때, 결코 뒤지지않는 맛이라고 생각했다.[나는 음식을 먹고 펩시 콜라를 먹으면 소화가 안될 뿐더러, 역시나 페루에서도 잉카콜라만 먹다보니 코카콜라가 그리워서 코카콜라를 사먹은적도 있다.]


4.                          
  페루의 리마[수도]의 싸구려 호수텔의 도미토리에 같이 묵고 있던 각국의 여행객들. 아르헨티나에서부터 여행을 하고 있다는 한 커플이 오늘 오전에 새로 들어온 한국인 여행객 "진"에게 저녁에 같이 밥도 먹고, 놀러 가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그는 딱히 할 일이 일정이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흔쾌히 수락 했다.

  그 날 저녁, 그들은 대통령궁앞을 지나 리마의 번화가에서 좀 벗어난 곳 한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각자 먹을 메뉴를 주문하고, 콜라를 주문했다. 그런데, 주문한 콜라가 코카 콜라였다.[메뉴에 모든 콜라는 2L여서, 2L 짜리 피트병이 배달되었다]

 그 때, 갈리시아출신의 남자애와 이탈리아 출신의 여자애 하나가 자신들은 코카 콜라를 먹지 않는다면서, 잉카콜라를 따로 하나 더 주문했다.[그들은 코카콜라 컴퍼니를 싫어해서, 코카콜라컴퍼니제품은 안먹는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잉카콜라를 먹을 사람이 더 없냐면서 잉카콜라를 권했다. 8명이 밥을 먹는데, 테이블에 코카콜라 2L 피트와 잉카콜라 2L피트가 나란히 올려져있었다.[한사람당 500ml씩 먹어야, 다 먹을 수 있는 분량?]


5.                               
  우리는 한창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밥을 먹고 있었는데 갈리사아애가 엄청난[코카콜라 컴퍼니의 제품은 먹지 않는다는 그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사실이었을 것이다] 사실을 발견하고 경악을했다.

무슨 일이냐고 갸우뚱 하는 우리에게, 그는 잉카콜라의 병을 들어 보였다.
잉카콜라의 제조회사가 코카콜라 컴퍼니(Cocacola company)였던 것이다.

뭐 어쩌겟나, 내용물만 코카 콜라의 검은 물만 아니면 되지! 우리는 그냥 잉카콜라를 먹었다 ㅋㅋ


6.                               
  그는 세계 상품시장은 자본의 힘에 의해서 지배당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 봤다. 예전에 그가 티비의 타큐멘터리에서 잉카콜라에 대해서 보았을 때 잉카콜라는 코카콜라에 대항해서 나온 페루의 자존심이었는데, 이제는 코카콜라컴퍼니의 배를 채워주기위해서 생산되는 이름만 "잉카콜라"인 잉카콜라를 보며, 씁쓸함을 느꼈다.

  그러면서 또 생각 했다. 코카콜라컴퍼니, 대단하다. 세계 콜라시장을 다 장악하려하다니.

7.                                
 페루 리마에서 우리끼리 웃어 댔던 이야기.






- 코카콜라


- 잉카콜라



 


- 잘 보이진 않지만, 필기체의 코카콜라 컴퍼니 마크. 내용물은 노란색의 잉카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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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홀이야기]호주, 5000달러를 잃다?!

- 호주, 워홀이야기- · 2010. 11. 16.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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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ond Edit.



1.
   3일 뒤면 호주를 떠나 남미로 간다.[엄밀히 말하면, 퍼스를 떠나 시드니에 머물다가  시드니에서 미국가는 비행기를 타고, 미국에서 남미가는 비행기를 타는 일정이다]

그래서  텍스리턴을 위해 회계사 사무실에 찾아갔다. 조기 텍스리턴을 신청하기 위해서였다.

2.  호주에 7월 22일 도착해서,
  8월 9일 일을 시작했다.
농장에서, 약 7주[정확히 따지면 6주+3일] 일했고,  농장에서 5144달러를 벌었고 텍스로 670을 냈다.[막상 일을 끝내고 나니 내가 호주 정부에 바친 세금이 엄청났다. 한국에서 한국 정부에 낸 세금이라고는 담배소비세 몇 푼, 주차위반, 신호위반 벌금 밖에 없는데]
중간에 캐시(현금)로 받고 일한 것도 얼마정도 있지만, 그건 텍스리턴과 상관없으니,

공장에서 일을 했다. 10월 6일 부터 약 9주간. 공장에서, 9주 동안 14,626달러를 벌었고, 텍스로 3,513달러를 냈다. [호주 정부에
 매주 평균 400달러를 호주정부에 갖다 바쳤다, 일주일에 5-6일씩 일했는데, 하루 이상을 정부를 위해서 일해준거다. 이런 미친!]

공장에서 그 많은 텍스를 내면서도 생각했다. "호주를 떠날 때 돌려받을 수 있으니까"라고.


3. 연금이라는 것,
고용주가 노동자를 위해서 의무적으로 들어주게 되어있다.[한달에 천달러? 아무튼 그 이상 수입이 있을 경우]
그리고 연금회사에서 회원번호를 가입자에게 알려주게되어있다.[우편을 통해서]

하지만, 난 두 군데의 연금회사[농장에서 일 할 때 컨츄렉터가 소속된 회사에서 연금을 가입한 곳과, 공장에서 연금을 넣어준 회사]로부터, 아무 것도 받지 못했다.

그나마, 공장의 페이슬립(pay slip, 임금 명세서)에는 어느 회사에 연금을 넣는지 나와있어서 그 회사에 전화를해서 조회를 하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농장에서 일할 때 컨츄렉터의 회사가 어느 회사에 연금을 넣었는지 알 수 없었다.

급하게 계약서를 찾아봤는데, 고용 계약서를 이미 버려 버린 뒤였다 ㅠ [컨츄렉터의 회사로 전화를 해서 어디로 연금을 넣었는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전화번호가 없다.] 

농장에서 일할 때 내 앞으로 들어간 연금 470달러,
공장에서 일할 때 내 앞으로 들어간 연금 약 700달러.


4.
회계사의 말을 비롯한, 각종 인터넷의 자료를 뒤져보니,내가 낸 텍스 4000달러는 돌려받기는 힘들 듯했다.
내 앞으로 들어간 농장에서 일한 만큼의 연금 470달러도 받기는 힘들 듯했고, 공장에서 내 앞으로 넣어준 연금은 받을 수 있을 지의문이었다.[연금번호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아, 텍스리턴, 이런 조건이 있을 줄 몰랐다.

'호주에서 한 지역에 6개월 이상 머물렀거나 머물 예정인자.'

텍스리턴과 연금에 대해서 너무 무지했던 본인 ㅠ
정보는 알면 돈이고, 모르면, 돈날리는 것이라는 말이 얼핏 생각났다.

진작에 알았으면,
"여행 일정을 좀 늦추고, 6개월 딱 채우고 텍스리턴 신청 할 걸" 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적은 금액도 아니고, 내가 호주에서 일하고 정부에 낸 돈을 다시 받아 가겠다는 건데.[사실상 호주 정부가 나에게 해 준 복지혜택은 없었으니까. 난 의료비도 메디케어 혜택을 받지 못하고 내 돈내고 거의다 해결 했으니까]


5.
뭐, 어쩔수 없었다.

돈은 돈이고, 여행은 여행이니까
.

그래도, 호주에서 일하면서 호주에서 생활하고, 즐기고, 다시 여행할 만큼의 돈은 모았으니.
크게 마음 상하지말자고 생각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돈"욕심, 별로 좋지 않은거니까.




- 농장 페이슬립, 힐탑노미니스에서 일햇는데,,,홈페이지도 있다더니 구글검색해보니 나오지도않는다-_-


- 공장 페이슬립, 아래쪽에 연금이 있다. AMP라는 회사에 들어가고 있는 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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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홀이야기] 호주, 퍼스 서핑동호회를 만들다!

- 호주, 워홀이야기- · 2010. 11. 14.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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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호주에 가기 전, 
호주에 가면 하고 싶은 것 세가지가 있었다.

돈벌기[너무나도 당연한 것인가?]
서핑(Surfing)[호주의 바다는 서핑하기에 최고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나 또한 서핑이 너무 해 보고 싶었기에]
스카이다이빙(sky diving)[스카이 다이빙의 메카, 호주.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할 수 있다고 해서]
+a 호주여행?


2.
호주의 공장 일하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서핑 때문이었다
.[공장은 도시 주변에 있었고, 도시에서 가까운 곳에 바다가 있었기 때문에 나의 입맛에 딱 맞았다] 특히, 프리맨틀Fremantle에는 공장들이 많았고, 바다도 있었기에 내가 생각한 최적의 장소였다.
하지만, 현실은 나의 상상처럼 되지 않았다.

나의 상상...[수영장이 있는 집에 살면서, 주말에 집에있는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거나, 비치beach에 나가서 해수욕과 서핑즐기는 것.] 

처음 호주에와서 퍼스(Perth)에 머물면서 프리맨틀(Fremantle)에 왔을 때, 프리맨틀에서 일자리를 구해서 살고 싶었다.[정말 간절한 마음이었다. 물론 나 말고도 다른 워홀러들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시간은 흘러갔고, 통장의 잔고는 제로에 가까워 지고 있었다. 이제는 농장이든 공장이든 광산이든 원양이선이든 무엇을 해서라도 돈이 된다면 아무곳이나가서 일을 해야했다.
그래서, 농장으로 갔다[그것조차 운이 좋아서였다]


3. 농장에서 일할 때,
서핑은 무슨..호주에선 돈이나 벌어야지.  남미에가서 서핑 해야지뭐, 남미도 바다가 좋다고하니까라고 생각하면서 나 자신을 위로 했다.
농장 일이 끝나고 돈이 어느정도 모이면 캐언즈(Cairns)에 가서 스카이다이빙이나 하고 호주를 떠나야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호주에서 서핑하는 모습을 그렸었는데, 그것은 단지 상상에 불과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4. 새로운 농장 일을 구하러 카날본에 갔을 때,
  카날본은 바닷가에 위치한 조그마한 휴양 도시 같은 느낌을 풍겼다.바람도 좋았고, 사람들은 레저를 즐기러 찾아왔다. 나도 여기서 서핑을 해볼까?라고 생각했지만, 서핑보드의 가격이 만만찮았다.[최소 $400 이상하는 서핑보드. ]

농장에서 버는 돈으로 여행자금도 빠듯한 실정인데 어디서 그런 사치스러운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여행 내내 들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단념해야했다. 서핑 보드를 타고 파도를 가르는 나의 모습은 단지 꿈 속에서나 있을 법한, 아니면 그것은 저- 멀리 지구 반대편 먼나라 이야기였다.


5. 공장에 취직을 하고 나서,
 서핑에 대한 나의 마음이 다시 불타올랐다. 이젠 현실적으로 가능한 문제였다. 특히, 내가 일하게 된 공장은 프리맨틀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나는 자연스럽게 공장 근처로 이사를 왔다.

비록, 마땅한 집이 없어서 바다에서 약간 떨어진곳에 위치한 집이었지만, 괜찮았다.[버스를 타면 바다로 나갈 수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볼까 했지만, 호주의 땡볕에서 자전거를 타고 바다까지 간다는건 미친짓이었다]

집에 수영장도 있고,조그마한 잔디밭도있고. 서핑만 하면 딱이네 이거!


6. 공장에서 일하고 약 3주 후, 서핑보드를 샀다

호주 중고거래 사이트 검트리에서 호주애한테 중고로 서핑보드를 샀다.[어차피 한달정도 뒤에 호주를 떠날생각이었기 때문에 ]다시 떠날때는 서핑보드를 팔고 가야하니까, 싼걸로 샀다.[너무 좋은걸 사면, 제 값을 받고 팔기가 어렵고, 팔리지도 않을 것 같아서]  일단 호주에서는 맛만 보고, 기본만 하고 남미에서 제대로 좀 타보자는 생각이었다.


7. 11월,
날씨가 많이 더워졌다. 서핑보드도 있었다. 서핑을 하러 비치에 나가기 시작했다.[바다에는 많은 사람들이 서핑을 하고, 해수욕을 했다. 몸도 마음도 눈도 즐거웠다]
인도양 무서운 녀석. 인도양 저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과 인도양의 파도는 엄청났다.
우리나라에서 몰아쳐오는 파도와는 비교가 되지도 않았다.[우리나라 풍랑주의보때 몰아닥치는 파도 수준이었다]
역시,호주. 스케일이 달랐다.[그런데도 호주 애들은 파도위에서 춤을 춰댓다. 정말 부러웠다]


혼자 서핑을 해보니 심심했다. 그 때 마침! 다음카페의 퍼스커뮤니티 "퍼스 참을 수 없는 그리움 (일명, 퍼참)"의 취미생활 게시판에 서핑할 사람을 모집한다는 글을 보았다.

8. 그 글을 보고 난 뒤, 어느 토요일.
퍼스 시티(Perth city)의 울워스(woolworth)앞에 몇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서핑을 서로 배우고, 함께 즐기기 위한 사람들의 모임.
그렇게 처음, 다섯명의 사람들이 서핑보드를 들고 스카보로비치(scarborough beach)로 갔다.

스카보로비치는 퍼스지역에서 꽤나 유명한 비치라서 그런지 서핑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해변 잔디밭에 바베큐(BBQ)시설들도 많았다. 재미있었다. 서핑도하고, 비치옆의 마트에서 사온 간단한 먹을 거리를 가지고 바베큐파티도 하고, 술도 한잔씩하고.

9. 그렇게 시작했다.
퍼스, 최초의 서핑모임/동호회? - 서프 홀리데이 Surf holiday.[가칭, 공식적으로 이름을 정한 건 없었다] 


호주에서, 해 보고 싶었던 것 중 하나.
서핑을 해 보다.
그리고, 동호회 1기 멤버가 되다. - 1st member of Surf holiday.



- 서핑하러 갈 때, 사진기를 들고 나간적이 없어서;;



- With Surfing bo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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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인도, 소나울리 - 테러를 당하다.(1)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0. 11. 13.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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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부[rejection]

  많은 장기 여행자[6개월 이상 여행을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들에게 중요한 것 한가지를 뽑으라면, 항공권을 저렴하면서도 잘 구매하는 것을 뽑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장기 여행자들이 많이 선택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편도 항공권.
   해외 여행을 떠날 때, 편도 항공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한가지 고민이 더 생기게 된다[이런 고민은 편도 항공권을 가진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이 고민은 일반적으로 편도 항공권을 가진 사람이 받는 '입국 거부'라는 부당한 대우와 관련이 되기 때문이다.
   여행을 가는 사람[특히, 장기 해외 여행]이 편도 항공권을 살까, 말까를 고민하면서 한 번쯤 생각해 보게 되는 문제. 편도 항공권으로 여행한다고 공항에서 입국거부 당하는 것은 아닐까[물론 입국 못하는 사례가 많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편도 항공권이라고 해서 그 공항에서 입국거부를 당했다는 사람을 실제로는 만나보지 못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여행사와 항공사의 이익을 위한 겁주기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해 본다]. 편도 항공권과 입국 거부에 관한 문제는 엉킨 실타래보다도 더 풀기 어려운 딜레마를 제공한다. 그것은 여행 자금의 문제와 여행을 제대로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사로 상충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경우로, 육로(陸路)로 여행을 하는 사람이라면, 국경이 폐쇄되거나, 입국 거부를 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실제로, 정치(政治) 상태가 혼란한 국가를 여행하려고 할 때는 그 인접 국가의 국경에서 출국을 금지시키기도 한다.

  여행이라는 것은 알 수가 없다. 여행(旅行, Traveling) 이라는 말 속에는 불확실성이 내포되어 있다[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그게 여행의 매력이라고 말 할 수 있다].


2.                
  이런 생각을 가끔 해보게 된다.  남한과 북한이 통일되면, 기차를 타고 중국으로 러시아로, 몽골로 여행을 할 수 있을 텐데. 낭만적으로 보이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한국에서 타고 갈 수 있을 텐데.라고 말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도 국경이 폐쇄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정확히 말한다면, 우리나라는 지금 전쟁중이다. 그리고 그 전쟁을 좀 오랫동안 쉬고 있는 것일 뿐이다]
. 남한과 북한을 연결하는 길을 함부로 밟을 수 없다. 그 길을 따라 남한에서 북한으로 가려면 비합법적이거나, 정치적, [그리고 정치인들이 말하기를]평화적, 인도적인 일을 한다는 명목으로 가야 한다. 그 경우를 제외하고는 남한과 북한을 잇는 길을 지나갈 수 없다. 다시 말해, 일반인[외국인과 한국인 모두를 포함하는 사람들]이 여행을 위해 남한과 북한의 국경을 함부로 넘어갈 수 없다는 말이다.

  어릴 때 살던 동네에 미군부대가 있었다. 미군부대에는 정문과 후문이 있었고, 그 옆 쯤 되는 곳에 철로가 놓여 있었다.  미군부대 안까지 쭉- 이어져 철조망을 관통하고 있는 철로. 가끔은, 그 철로를 위로 탱크나 전차 같은 무기들을 실은 열차가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의 집은 미군 부대의 후문에 가까운 곳에 위치하는 곳이었고, 중학교는 그 철로를 지나 얼마를 더 가야 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학교를 다녀오던 길에 종종 보이던 열차. 그 철로를 따라 천천히 흘러가는 열차를 보면서 저 열차를 따라가면 미군 부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텐데. 그러면 맛있는 피자와 햄버거를 싼 가격에 먹을 수 있는데!.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조금 더, 어릴 적. 미군부대에 출입할 수 있는 친구를 따라 미군부대의 수영장에서 수영하던 기억, 식당에서 피자를 사먹던 기억이 물방울처럼 피어 올랐다. 
  민들레 꽃씨가 날리는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오후.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길, 미군부대 안으로 이어진 철로가 나를 부르는 듯 했다. 나를 따라 들어오렴.이라고. 철로 위를 지나, 사람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던 철조망 문도 열려 있었다. 내가 들어와도 좋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철로 위에 발을 올렸다. 자연스럽게- 철로 위에서, 철로를 따라 걷고 있는 내가 있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누군가가 소리치고 있었다. 뭐지? 나는 주위를 둘러 보았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나를 부르는 것 같았는데. 들뜬 마음으로 나는 계속 걸었다. 어디선가 또 들려오는 소리. 누군가 나를 부르는게 확실했다. 누구지?.. 저 쪽, 감시탑 위에서 나를 향해 소리치는 한 군인이 보였다. 나에게 돌아가라고 소리쳤다. 아차, 역시- 나는 안으로 들어갈 수 없구나.


  나는, 쫓겨 났다. 거부 당했다. 미군 부대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 곳은, 대한민국이 아닌 곳이니까.
 


3.                        
  인도 조드푸르(Jodhpur)에서 뭄바이(Mumbai)로 가려고 했던 나는, 뭄바이로 가는 기차표의 좌석은 4일 뒤에 살 수 있다는 말에, 바라나시(Varanasi)로 가는 기차표를 끊었다[같이 있던 일본애가 바라나시로 간다기에, 나도 그냥 바라나시나 가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바라나시로 가는 2박 3일. 책을 보고, 또 보고 또 봐도 기차는 계속 달리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천천히. 
  동행하던 일본애는 바라나시에 도착하자마자 네팔(Nepal)로 갈 예정이라고 했다.  바라나시에서 네팔로 바로 갈 수가 있어?.라는 나의 물음에, 그는 바라나시에서 인도와 네팔의 국경도시인 소나울리로 가는 버스가 있다.고 대답해 줬다. 그는 그 버스를 타고 바로 네팔로 떠날 것이라고 했다. 
  
  나는 바라나시로 가는 것도 예정에 없던 이라, 네팔까지 간다는 그의 말에 별다른 흥미를 갖지 못했다. 거기다가, 내가 그 자리에서 나도 네팔로 가야겠어.라고 하면, 내가 너무 그 일본애를 따라가는 모양새가 될 것 같았기에 나는 바라나시에서 며칠간 머물기로 했다.일단 나는 바라나시에 머물면서 그 다음 어디로 갈지를 생각해 보기로 했다.

  지루한 시간들이 차창을 스쳐 지나가더니, 기차는 어느 새 바라나시에 도착했다. 그 일본애는 자신의 가이드북을 찢어서 나에게 주었다[나는 가이드북이 없었기 때문에 초반부터 힘든 여행을 하고 있었다]. 가이드북이 없던 나로서는 고마운 일이었다. 나는 그에게, 그는 나에게 서로의 여행에 행운을 빌어주며, 과일주스 한잔을 마시고 서로의 길을 향했다.
 
  나는 사이클 릭샤에 올라, 갠지즈 강가의 가트를 향해 갔다. 여기가 바라나시구나. 갠지즈강이 흐르는 곳. 인도의 젖줄기, 힌두의 성지. 여기서 무얼 하지.라고 생각하며, 숨막힐 정도로 먼지로 가득찬 인도의 도로를 달렸다.



4.                          
  그는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할 일이 없었다기 보다는 계획 없이 그 곳에 왔기 때문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가 머물고 있던 게스트 하우스의 식당에는 많은 여행자들이 남기고 간 책들이 있었다[그 곳은 휴식 공간처럼 꾸며져, 책도 볼 수 있고, 식사도 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었다]. 그는 여행자들이 남기고간 책, 그 중에서도 인도 여행에 관한 책들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여름이 막 시작되고 있는 바라나시의 오후 날씨는 무더웠다. 그는 더위를 피해, 그 게스트 하우스의 식당에서 시간을 때우며, 정보를 수집하기로 한 것이다. 여행 책자의 바라나시 부분을 열심히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바라나시의 역사, 문화, 먹을거리 등. 바라나시- 비록, 그는 그곳에 생각없이 갔지만, 그곳은 인도 여행에 있어서 생각보다 중요한 도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책의 내용 중에서도, 교통정보 부분을 열심히 뒤적거렸다. 그 곳에는 바라나시에서 네팔로 넘어가는 코스와 방법이 다양하게 있었다. 
  
  그가, 식당의 한쪽 귀퉁이에서 바라나시에서 네팔로 가는 방법에 관한 부분을 열심히 뒤적거리고 있을 때, 한쪽에서 밥을 먹던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는, 눈으로는 책을 보고 있었지만 귀는 그들의 말소리를 열심히 주워담고 있었다. 머릿속엔 이미 책의 내용은 들어오지 않았다. 저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 볼까?.라는 생각만 했을 뿐.

  대화의 내용을 유심히 듣던 그는, 그들이 네팔로 가려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그 사람들은 네팔로 가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었으므로]. 그는 슬며시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그리고 물었다. 혹시 네팔에 가세요? 네팔 이야기 하시길래.




5.                         
  그 사람들은 이틀 뒤 네팔로 떠난다고 한다. 네팔에 같이 갈 사람들을 모으고 있다고 했다. 나도 네팔로 가 볼까? 이틀 뒤. 어차피 나는 여기에 있어도 할 일이 그렇게 많은 것이 아니었기에, 일단 네팔로 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인도 여행을 해도 상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말했다. 네, 같이 가요. 

  나는 그들과 함께 네팔로 가기로 했다[그렇다고 네팔 여행을 함께 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국경을 같이 넘어가자는 이야기 였다. 국경을 넘고, 룸비니(Lumbini)에 잠깐 들렀다가, 대부분 포카라로 가서 히말라야 트레킹을 할 것이라고 했고, 나는 포카라가 아닌 카트만두로 갈 예정이었다]. 어차피 나는 인도를 지나 파키스탄으로 갈 예정이었기에, 파키스탄 비자를 네팔에서 받으면 쉽고, 편하게 받을 수 있다고 생각 했다. 네팔 여행도 할 겸, 네팔에 가서 파키스탄 비자를 받아오면 되겠다는 생각도 했다.
 
  
  나는 바라나시의 먼지로 가득찬 골목을 헤집고 돌아다녔다. 소똥을 피하고, 개똥을 포히고, 쓰레기들을 피해 골목을 헤메다가 지치면, 짜이를 파는 곳에서 3루피 짜리 짜이를 한잔 마시면서 인도 사람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사람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이틀 뒤 네팔에 간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나에게 네팔에 절대 가면 안된다는 말을 했다. 아니 왜? 나는 가야해.라고 내가 말했다. 그는 나에게, 
요즘 네팔에서 테러가 나서 사람들이 죽고 있어.라고 말했다.
테러?.나는 생각했다. 테러는 파키스탄을 이야기 하는거 아닌가?[파키스탄은 폰탄 테러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 지금 너 파키스탄 이야기 하는거 아니야?.라고 되묻자, 그는 말했다. 아니야, 네팔이 확실해. 그는 네팔이 지금 정치적으로 혼란 스럽다고 덧붙였다. 나는 그의 말을 신뢰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 나는 관광객인데 설마 나를 죽이기야 하겠어?.라고 말하며, 웃어 넘겼다.



6.                            
  네팔로 떠나기로 한 날, 여섯명이 모였다. 여섯의 사람들은 릭샤를 타고 역으로 향한다. 그들은 역에서 소나울리로 가기 위해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도 기차의 연착, 그것을 너그럽게 받아 들이면서[밤 12시 경 출발 해야할 기차가 새벽 5시 쯤 도착했다] 기차에 올랐다. 밤을 거의 새다 시피한, 그들은 몇 시간 뒤 종점인 박타푸르[기차는 박타푸르까지 운행했고, 박타푸르에서 소나울리까지 버스를 타거나, 지프(Jeep)를 타고 소나울리로 이동해야 했다]에 도착했다. 박타푸르 역 앞에서 지프두 대를 섭외한 그들은, 지프(Jeep)를 타고 소나울리로 갔다.

  소나울리에 가기 전[바라나시를 떠나기 하루 전], 그들은 네팔에 관한 좋지 않은 소식을 하나 들었다. 지금
네팔로 넘어가는 국경 검문소가 폐쇄되었다.는 소식. 네팔과 인도의 국경, 소나울리에서 온 다른 여행자들이 그런 소식을 들고 바라나시로 온 것이었다.
설마, 아무일도 없겠지.라고 생각하고 그들은 네팔로 떠난 것이었다. 이미, 가기로 한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니까. 가보면, 진실을 알게 되겠지.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그들은 바라나시를 떠난 것이었다.

  그들이 소나울리, 국경 사무소에 도착했을 때. 설마,라고 생각하던 일은 진실이 되어 있었다. 국경의 출입국 관리 사무소에서는,
"출국 허가 도장을 찍어줄 수 없음"이라고 엄포를 놓고 있는 상태였다. 출입국 관리 사무소의 직원들은, 가만히 의자에 앉아 있을 따름이었다. 

  그의 일행을 포함한 20명 정도되는 여행자들이 국경 사무실에 죽치고 앉아 있어야만 했다. 국경을 마음대로 들락 날락 하는 현지인들을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 보며[현지인들은 비자나 여권없이도 생활의 편의를 위해 왔다갔다 할 수 있었다], 열려 있지만 지나갈 수 없는 국경을 원망해야 했다.
  하지만, 몇몇 사람은 국경을 그냥 넘어 가기도 했다. 어차피 여권 검사만 안하면 불법 입국으로 처벌 받을 일도 없고, 며칠 네팔에 머무르다가 다시 인도로 올 것이니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여행자들에게 출입이 금지된 국경을 지나서 저 멀리 사라져갔다.

  태양은 저물어 어둠이 내려 앉기 시작했고, 거리에 붐비던 사람들도 거의 다 사라져갔다. 시간이 꽤 많이 흘렀다. 점심때쯤 도착한 국경에서 다섯, 여섯, 일곱...여덟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국경 사무실의 직원 앞에 놓인 전화기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모두가 그 전화기를 바라보면서, 그 속에서 국경을 넘어도 좋다는 소식.을 전해주기를 바랐다. 

   
여행자들은 보내 달라고 아우성을 질렀다.



7.                          
  네팔의 총리가 한 대학생 시위자에게 총을 맞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네팔에서는 지금 유혈사태가 일어나고, 각종 파업사태가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암울했다. 뭐지, 하필이면 내가 가려고 하는 이 때에. 일주일 전까지만해도 아무런 일도 없다고 했는데. 하필 이런 때에. 내 자신을 원망할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하- 더 이상, 기운을 차릴 수 없다. 언제까지 일까? 여기, 사무실에서 침낭을 펴야하나?

   어둠이 완전히 거리를 지배했을 때, 거리를 거닐던 사람들은 거의 다 사라졌다. 어디선가 이따금씩 비명같은 소음이 들려 올 때를 제외하곤, 적막함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런 시간들이 지속되던 가운데, 테이블 위에 고요히 놓여 있던, 묵묵히 침묵을 지키고 있던 전화기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전화벨이 울렸고, 모두들 그 전화기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제발.


  수화기는 생각보다 빨리 제자리를 찾아 갔다. 전화를 받았던 직원은, 별 말을 하지 않고 고개만 몇 번 끄덕였다. 표정도 변화가 없었다. 아직도, 출국 허가가 명령이 떨어지지 않을 걸까?. 약간의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이 가라 앉을 때쯤, 출입국 관리 사무소 직원은 천천히 입을 뗐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알파벳 몇 개가 흘러 나왔다. You can go Nepal. 모두들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각자 짐을 챙기고, 여권을 내밀었다. 하나,  둘 출국 카드를 작성했고, 스탬프를 찍었다.



8.                         
  어둠이 깔린 거리. 국경을 지나는 사람은 여행자들 밖에 없었다. 그들은 국경을 넘어, 네팔 출입국 관리 사무소로 향했다. 수십명의 여행자들이 달빛과 자신의 손전등에 의지해서 입국 카드를 작성했다. 사무실에서 네팔 비자(Nepal visa)를 사고, 스티커를 붙였다. 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그들이 국경을 넘은 시간. 국경에서 포카라, 카투만두로 가는 버스가 있을리 없었다. 밤늦은 시간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테러로 인해 버스 운행을 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곧 접할 수 있었다. 길의 중간 쯤에서 정권 반대파들이 버스를 향해서 테러를 감행하고 있기 때문에 버스운행이 전면 중단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일단 밤이 깊었으니, 근처의 한 호텔에서 하룻밤 묵기로 하고 다음 날 아침 일찍, 릭샤를 타고, 룸비니(lumbini)로 가기로 했다. 일단 그곳에서 며칠 쉬면서 네팔의 상황을 지켜보자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 소나울리


- 소나울리 출입국 관리 사무소


- 기다리는 여행객들


- 국경 게이트, 저 넘어는 네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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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에스토니아. 탈린 - 기다리지 않으면, 로맨스도 없다.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0. 11. 12.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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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포선라이즈(Before sun rise)라는 영화가 있다. 혹시, 당신이 20대 중반을 좀 넘긴 나이라면 한 번 봤을 법한 그런 영화. 여행을 하면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게 되는 그런 영화. [내가 고등학교 때 그 영화를 처음 봤고, 대학교 때 비포선셋(Before sun set)이라는 영화와 함께 한번 더 봤으며, 몇 해 전 모 여자고교에서 영어 멘토링 수업을 할 때 봤던 영화로써 총 3번이나 본 영화이다.]여행에 대한 로망이 스며들어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혹시, 당신은 비행기를 타는 순간 또는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는 순간. 그 공간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는 사람중에 당신의 연인이 될 지도 모르는 그런 사람을 만나기를 기대하는가?



2.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알랭드 보통의 책,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한국어판)>의 처음 장면은 두 남녀의 "만남"이다. 그들은 우연히, 파리에서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만나게 된다. 두 남녀는 우연히 옆자리에 앉게 되고, 그들은 이야기를 하게 되고, 그들은 약속을 잡고, 그들은 사랑하게 된다. 이것 또한 짧은 여행에서 만들어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3.                          
  에스토니아를 떠나는 날, 하늘은 파랳다.[비오는 발틱 거리의 종지부를 찍는 날이었다] 역시, 여행의 필수 요소중 하나는 파란 하늘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발트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상쾌 했다. 숙소 뒤 편에 있는 언덕위에 있는 성벽엔 많은 사람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었고, 나도 그들 사이를 서성였다.
 
  어느 관광객이 나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면서 카메라를 건네자[사진기를 들고 반대편으로 달려가면 흥미 진진할 것 같다는 생각을 1초 정도 해 봤다] 나는 구도를 잡고 셔터를 눌렀다. 그들은 고맙다며, 나에대한 관심을 나타냈다. 어디서왔어? 한국에서. 북쪽? 아니 남쪽에서 왔어. 나는 북쪽을 싫어해. 나도 북한이 무서워. 같은 짧은 대화가 오갔다.



6. 백야.                        
  6월 중순의 북유럽은 백야현상이 나타난다. 백야행(白夜行)이라는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글귀가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처음 에스토니아에 도착했을 때 그는 당황했었다. 아직도 환한 대낮같은 시간에 술취한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길을 잘 못찾아서 헤메고 있었는데, 취객이 그를 도와주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계를 보니 이미  오후9시가 가까운 시간이었고, 오후 11시가 되어도 밖은 여전히 환했다. 
  술을 마시다가 12시가 가까운 시간이 되어 자려고 했던 그도 창 밖을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지만, 밖은 아직 밝다.  이것이 바로 "백야 현상"

  그가 탈린[에스토니아의 수도]을 떠나,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떠날 시간이 가까워 져도 하늘의 태양은 사라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거리는 여전히 밝았고, 차들과 사람들은 여전히 거리를 활보 했다. 술에 취한 사람들도 가끔 그의 눈에 비췄다. 그는 호스텔에서 저녁을 지어먹고, 남은 에스토니아 돈으로 마트에가서 최대한 금액에 맞춰서 과일을 몇 개 샀다. 버스 시간이 2시간 가량 남았지만 버스정류장을 향해 출발했다.



7.                             
  버스 정류장은 작은 규모였지만 시설이 나쁜편은 아니었다. 유리로 된 창문 넘어로는 버스 플랫폼과 들어오고 나가는 버스가 보였다. 대합실 안에는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들 몇몇이 보였고, 사람들은 사라졌다가, 다시 생겨났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나는 컴퓨터로 영화를 보고 있었다.

  어느 순간, 내가 고개를 들자, 내 눈앞에 백팩을 맨 여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검은색 생머리에 적당한 체구, 그리고 몸집에 비해 좀 커보이는 배낭. 어느새 내 마음속에는 영화에 욕망은 사라지고, 그 여자에 대한 관심이 싹텄다. 그리고 유리 너머로 그 여자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를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내 시력이 나빠서 10m 이상 떨어져 있는 사람은 구별을 못한다] 체구와 피부색과, 머리색깔과, 배낭등등을 종합해 볼 때, 한국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얼핏 피부색을 보니 완전 서양인도 아닌 것 처럼 보였다. 얼핏 봤을 때는 일본인 또는 히스패닉계의 여행자로 보였다. 

  언제부턴가 나는, 저런 여자들한테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여자들이 나에게 매력을 느끼느냐 겠지만 말이다. 어쨋든 이건 순전히 내 입장이다]. 여행을 하다보니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자기 몸집보다 큰 백팩을 메고, 강인하게(?) 여행을 하는 모습. 그리고, 순수 백인보다는 히스패닉계열의 피부를 가진 여자.



8.                              
  그녀는 버스정류장 플랫폼과 대합실을 왔다갔다 하면서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는 버스 시간이 얼마나 남았나를 확인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가 타야할 버스가 도착했고, 그는 짐을 챙겨서 플랫폼으로 걸어 나갔다. 그 여자가 자신이 타야 할 버스의 차장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는 다가갔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날 때 까지 그녀와 차장에게서 약간의 거리를 두고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차장의 표정은 완고했고, 그녀는 뭔가를 부탁하는 듯했지만, 실패한 것 같았다. 
 
  차장이 그의 표를 보여달라고 했다. 그러저 그의 배낭을 버스 짐칸에 번호표를 붙여서 넣어 주었다. 그리고는 내 표를 가지고 그녀에게 보여주면서 말했다. 지금 곧 출발하는 버스는 이 티켓이 필요하고, 니 티켓은 다음 버스를 타야해 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돈을 더 지불할테니 태워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차장은 창구에가서 티켓을 끊어 오라고 했지만, 국제선 버스티켓은 버스회사사무실에서 파는데, 이미 사무실은 닫혀있었다. 그는 차장이 깐깐하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버스에 자리도 많이 남으면서 태워주면 안되나하고 생각했다.

  그와 그녀는 서로를 쳐다볼 뿐 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는 지금 이 버스를 타야하고, 그녀는 30분 뒤에 출발하는 다음 버스를 타야했다. 차장은 버스가 이제 곧 출발할 테니 버스에 오라라고 손짓했다. 그녀는 한 번 더 차장에게 태워달라고 했지만 차장은 완고했다. 그는 그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9.                           
  나는 참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왠지 당돌해보이는 그녀와 대화를 해 보고 싶었지만, 나에게 주어진시간은 없었다. 나는 버스에 올랐고, 유리창 뒤편 플랫폼에 있는 벤치에 앉아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도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녀는 종이에 뭔가를 적었다. 그리고 버스에 올랐다. 차장이 내리라고 말했고, 버스에는 이미 시동이 걸려있었다.
 
  나는 뭐지?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그녀는 나에게 종이쪽지 하나를 건네 주었다. 종이에는 페이스북 아이디가 적혀있었다. 나는 그 쪽지를 지갑 한 귀퉁이에 꽂아 놓았다. 그리고 미소를 보냈다. 씨유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외치면서.



10.                         
   버스는 아침 6시에 목적지 도착 예정이었다. 밤 11시 20분 탈린 출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간으로 오전7시 도착 예정 이었다. 가는 길 내내 해가지지 않았다. 백야속을 헤치고 버스는, 러시아와 에스토니아의 국경을 넘었다. 러시아 국경을 넘을 때, 저 멀리 강인지 바다인지 모를곳에 태양이 빛나고 있었다.[새벽 2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는데 말이다] 러시아 국경을 넘어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향하는데 추위가 엄습해왔다. 러시아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역시 얼음과 추위의 땅 러시아인가?라고 그는 생각했다. 추위가 그의 몸을 엄습해왔다. 그는 추위에 몸을 떨면서 탈린에서 출발했을 그녀의 버스를 생각했다. 탈린에서 출발하는 다음버스와 시차가 30분이니까 30분뒤에 그녀가 탄 버스가 도착 할 테니 도착하면 정류장에서 기다려야 겠다고 생각했다.



11. 버스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했다.
  버스기사가 나를 깨웠다. 도착했으니 내리라고 했다. 여기가 어디지? 나는 버스기사가 내리라는 대로 내렸더니 도로 한 복판이었다. 비는 내리고 있었고, 추웠다. 잠도 오고, 배도 고팠다. 러시아는 왜이렇게 추운거냐라고 생각하면서 러시아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정시간보다 2시간이나 일찍 도착했다!![7시 도착예정이었는데 5시에 도착한 것이었다. 버스기시사가 미친듯이 밟았나보다] 
  나는 도저히 추위를 견딜 수 없어서 지하철역 건물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도 바람이 몰아쳐 들어왔다. 다음 버스가 도착하려면 적어도 2시간을 기다려야했다. 나는 생각했다. 추위에 떨면서 두시간을 기다려야 할까? 아니면, 호스텔을 잡고, 페이스북으로 연락해서 만날까? 고민했다. 그러다가 내린 결론은, 일단 추우니까 호스텔에서 인터넷으로 연락을 하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예약한 호스텔을 향해서 지하철을 타고 떠났다.



12.  나중에 알게 된 사실.              
  나는 버스 정류장에서 그녀를 처음 봤지만, 그녀는 나를 낮에 시내를 돌아다닐 때부터 봤다고 이야기해 주었다.[내가 낮에 어떤 관광객 커플의 사진을 찍어 줄 때 자신도 거기에 있었다고 나에게 말해 주었다.] 그리고, 자신은 오스트리아에 살고 있다고 말해 주었다.






- 내가 머물렀던 호스텔의 주인. 나에게 커피 한잔을 권했다.





- 비개인 탈린의 하늘. 저 멀리 발트해가 보인다. 여기서 사진을 찍어 주었다.




- 버스정류장. 밤 11시가 넘어서자 조금씩 어둠이 찾아왔다. 저기 플랫폼 중간에 서있는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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