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 자메이카, 음악과 함께 하는 삶. Jamaica, Kingston.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1. 3. 27.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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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ba, Habana - Cayman Island - Jamaica, Kingston - New York, NYC.


1. 전설, Legend.

  전설. 사람들이 여행을 할 때 좇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전설이다. 드라큘라 전설. 로빈후드 전설. 여러가지 전설이 있다. 어느 지방의 전설이 유명해지면 사람들이 그 전설을 좇아 그 곳을 찾아온다. 전설이 매력있는 이유 중 하나는 그 전설에 관련된 구체적인 증거물이 존재한다는 것이다.[중고등학교때 국어 공부를 꽤나 열심히 했던 사람이라면 전설, 신화, 민담(설화)를 기억해 보라. 전설의 특징은 구체적인 장소와 증거물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꽤나 많은 전설이 존재한다. 어떻게 보면 춘향이와 이몽룡의 사랑이야기는 남원 지방의 전설이고, 그들이 놀았다는 구체적인 사물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축제가 열리고 사람들은 그 곳을 찾는다. 그 옛날 춘향이와 이몽룡이 놀았다는 그 곳에서 그들 기억속에 존재하는 춘향이와 이몽룡의 모습을 생각하게 된다.
  인도의 타지마할에도 전설은 존재한다. 타지마할을 짓고 나서, 왕은 타지마할과 같은 건축물을 더 이상 만들지 못하게 하기 위해 타지마할을 만드는데 참여했던 사람들의 손을 잘라버렸다는 그런 이야기와 함께 전하는 타지마할. 그래서 사람들은 세계에서 아름답다고 소문난, 세계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건축물을 보기위해 인도의 건조한 도시, 아그라(Agra)로 발걸음을 옮긴다. 
  
  전설은 어느 장소와 관련되거나 특정한 건축물에 관련된 것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마이클 잭슨을 전설이라고 부른다. 누군가는 스티브 잡스를 전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그는 아직 살아 있지만, 살아 있어도 전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메이카에 가면 또 하나의 전설을 만날 수 있다. 레게 음악의 전설, 밥 말리.


2. 밥말리(Bob Marley)라고 쓰고, 전설(Legend)라고 읽는다.

  나는 전설을 좇아 다녔다. 어린 시절 영화로 접한 드라큘라의 이야기. 그 전설을 좇아 루마니아로 떠나기도 해봤고,[남들이 다 하는 것 처럼], 전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흔적을 찾아 그의 집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밥 말리. 레게 음악의 전설. 언제 부턴가 레게 음악의 리듬이 좋아졌고, 레게 음악에 대해서 알아 보았다. 힙합과는 다른, 재즈와도 다른, 독특한 매력의 레게. 남미의 레게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접하면서 자메이카 태생의 세계적인 레게 뮤지션이었던 밥 말리가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집에서 본 그가 받은 수 많은 음악상. 그리고 그가 입었던 옷. 그리고 생전의 사진. 항상 마리화나를 입에 물고 작업을 했다는, 밥 말리.
  
  자메이카에선 "레전드"라고 쓰고 "밥 말리"라고 읽고, "밥 말리"라고 쓰면 "레전드"라고 읽었다.


3. 자메이카에서 맞이한 새로운 이야기.

  비행기는 쿠바 하바나공항을 떠났다. 나와 장난을 치던 꼬마(http://dwis.tistory.com/530 참고하시길!)도 나와 같은 비행기를 타고 케이만제도(Cayman Island)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1시간 반 뒤, 카리브 해의 작은 섬에 비행기가 착륙했다. 공항은 동네 기차역 보다 작았다. 2층의 아담한 건물. 그 곳에서 꼬마와 나는 헤어졌다. 그랜드 케이만(Grand Cayman)의 조지타운. 영국령 카리브해 자치 섬인 케이만 제도의 수도였다. 해가 스믈스믈 바다 저편으로 넘어갔고, 비행기는 2시간 딜레이 되었다. 그 덕에 나는 해가 떠 있을 때 자메이카에 도착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버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편으론 걱정되었다. 치안이 극도로 좋지 않다는 자메이카. 그리고 그 수도 킹스톤(Kingston). 밤 9시를 넘긴 시각, 그 날의 마지막 비행기가 사람들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꾸역꾸역 비행기 몸체속으로 들어갔다. 습기를 많이 머금은 따뜻한 바람이 내 살갛을 스쳐 지나갔다. 카리브 해의 냄새가 내 콧가에 머물렀다.

  자메이카의 킹스톤 국제공항. 공항을 빠져 나오니 밤 11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나는 인터넷에서 주워들은 정보들을 이리 저리 조합을 했다. 그리고 택시 기사들과 쇼부를 쳤으나 그들은 가격을 내리려 하지 않았다. 한 남자가 나에게 접근 해 왔고, 나는 그와 쇼부를 쳤다. 20달러에 내 목적지 까지. 그리고 그가 주차장으러 차를 가지러 갔고, 나는 주차장 게이트에서 그가 차를 몰고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 때, 고급 벤츠가 내 앞에 멈추어 서더니 창문이 열렸다. 그리고 나에게 외쳤다. "헤이, 너 왜 거기 서있는거야? 어디로가?"


4. 자메이카에 다시는 오지 마세요.

  나? 택시 기다리고 있어. 왜 거기서 택시를 기다려? 어디까지가? 예약한 호텔로 가야지.[사실 그 때 예약한 호텔따윈 없었다] 그러면서 일단 나에게 타라고 했다. 자기가 태워 주겠다면서.[아주 좋은 차로 보였고, 뒷자석에 탄 사람은 정말 신사처럼 보였기에 나를 어떻게 해칠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살짝 고민을 하다가, 그의 차에 올라탔다.

  그 때, 나와 쇼부를 쳤던 무허가 택시 기사가 뒤에서 소리쳤다. 그리고 내가 탄 차의 운전기사와 무슨 말을 나누었다. 그리고 나에게 물었다. 저 사람 알아?

  알긴 아는데, 저 사람 차를 타고 호텔로 가기로 했어. 그리고 신사가 바로 말을 이었다. 내가 호텔로 데려다 주겠어. 여긴 위험해. 저런 사람 차 타지 않는게 좋아. 

  나는 고민을 했다.[고민이라고 할 것 까진 없었다. 지금 이 차를 타고가면 택시비 20달러 굳는다는 생각과 함께 원래 내가 타기로 한 택시 기사가 나중에 밤에 나를 총으로 쏴 죽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냥 지금 이 차를 타고 호텔로 가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운전기사와 택시기사는 실랑이를 벌였고, 밖에서는 욕설이 마구 들렸지만, 창문이 닫혔고 차는 출발했다. 나는 불안한 마음에 뒤를 돌아보았으나 다행히, 그 택시기사는 따라오지 않는 것 같았다.

  내 옆에 탔던 신사가 말했다. 너 한국 사람이지? 나는 대답했다. 응 한국사람이야. 그러자 그 신사가 덧붙였다. 난 워싱턴에서 온 비지니스맨인데, 내 부인이 한국사람이야. 그래서 니가 한국사람이라는 걸 알아봤지. 잘됐어. 이름은 뭐야? 내 이름은 진. 여행중이야. 자메이카는 처음이지? 처음처럼 보이는데. 응 처음이야. 
 
  그러자 미국인 사업가는 덧붙였다. 자메이카에 다음 부터 절대로 오지말라고. 이곳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위험한 곳이라고. 그리고 또 하나 덧붙였다. 자기 아들의 이름이 "진"이라고. 나와 이름이 같았다. 나는 그들이 묵는 호텔로 갔고, 그 곳에서 콜택시를 불러서 내 숙소로 이동을 했다. 

  그리고 그 사업가는 나에게 명함을 하나 주면서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을 하라고 했다.[그 후로 연락 할 일은 없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를 더 받았다. 자메이카는 생각보다 위험한 곳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말이다.

  조금은 불안했지만, 나쁘지 않은 출발이었다.


5. 거리엔 음악이 흐르고.

  숙소에 짐을 풀고, 잠을 잤다. 방은 더블 룸 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날이 밝자 슈퍼마켓에서 먹을 음식과 생수 한 통을 사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후덥지근한 날씨였다. 마당의 해먹에는 몇 몇 애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스라엘에서 온 애들이었다. 그들은 내일 자메이카 북부 도시로 떠난 다고 했다. 그곳에는 레게 음악파티가 열린다고 했다.

  몇 몇 일본인 들은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밤에만 움직이는 듯 했다. 밤에는 클럽에서 음악이 울려퍼졌기에. 그들은 낮에 잠을 자고, 밤에는 클럽에서 놀았다. 낮에는 거리에서 음악이 울려 퍼졌고, 밤에는 클럽에서 음악이 울려 퍼졌다. 나는 밤 낮 가리지 않고 음악을 들었다.

  2월 초 였지만, 북반구 였지만, 자메이카는 더웠다. 거리를 걸어 번화가로 향했다. 생각보다 먼 거리였다. 거리를 혼자 걸으면서도 생각했다. 누군가가 나에게 총이나 칼을 들이대는 건 아닐까?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 다가가자, 길거리에서 음악 CD를 파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다양한 음악들. 흘러나오는 음악은 주로 레게였다.[힘합 리믹스 음악이 나오는 곳도 있었다]

  시내의 중심가인 넬슨만델라 공원의 곁을 지나갔다. 인터넷을 하다가 얼핏 본 기억이 났다. 넬슨만델라 공원에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그는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래서 그 공원이 아주 큰 규모인 줄 알았는데, 정말 작은 규모였다. 공원의 바깥에서 안에 누가 있는지 다 보일 정도의 작은 크기의 공원. 그 공원에서 낯익은 냄새가 내 코를 자극했다. 그리고 하얀 연기들이 피어 올랐다. 담배보다는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부드러운 냄새. 담배보다 몸에 해롭지는 않지만, 조금은 더 강력한 것.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입에 물고 연기를 뿜어 댓다.


6. 밥 말리.

  밥 말리 뮤지엄에서 밥 말리를 보았다. 레게의 전설. 자메이카의 전설이었다. 밥 말리. 그의 음악, 그의 영향을 받은 많은 아티스트. 대한민국의 레게 뮤지션들이 자메이카에서 레게 음악을 배우고, 앨범 작업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었다. 레게의 본고장에서 레게를 듣고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기분이 묘했다.


7. 클럽. 나이트.

  숙소에 머무는 외국애들과 밤에 클럽을 갔다. 자메이카에서 밤에 외출을 할 때는 반드시, 숙소 문 앞까지 택시를 불러서 택시를 타고 목적지 까지 간 다음, 그 곳에서 돌아 올 때도 그 앞에서 택시를 타고 숙소 앞에 내려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봉변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자메이카에선 어떤 사람이 밤에 사람을 죽이고도, 그것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사람을 죽인 사람은 그것을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무서운 세상이구나 라고 생각을 했다.

  클럽 앞에서 돈을 지불하고, 클럽으로 들어섰다. 육중한 철문을 밀고 들어선 그 곳에는 음악이 흘러 나왔고, 많은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자메이카의 젊은이들이 다 모여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곳에서 느낀건, 아, 여기도 라틴인가?

8. 음악이 시간을 채워주는 도시.

  자메이카와 쿠바는 멀리 떨어지지 않았는데, 느낌이 달랐다. 기후도 달랐다. 자메이카에선 힘이 빠졌다. 쿠바보다 습한 날씨와 약간은 더 높은 기온. 낮에는 그냥 숙소 침대에서 뒹굴었다. 나가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거리엔 태양이 내리쬐고 있었고, 사람들은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해가 지길 기다려, 저녁을 지어 먹고. 밤이 깊어지면 숙소의 다른 외국애들과 음악을 즐기러 갔다. 그렇게 자메이카에서의 하루하루는 음악과 함께 하는 시간들로 채워졌다.


- 무료하게 거리를 걸으며



-



- 밥말리 뮤지엄 외벽



- 내가 자메이카에서 한거라곤 고작 밥말리 뮤지엄을 간 것 뿐.








- 밥 말리









- 시계탑. 시내 중심가. 옆에 넬슨만델라 공원이 있다.



- 시외버스 터미널


- 나에게 야유를 보내던 여고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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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Feeling] 체 게바라. at the CUBA,

- 길을 걷다, 세계여행/Feel-ing, 세계일주-ing, · 2011. 3. 20.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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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ond edit.

- 체 게바라


체 게바라,
그는 라틴의 영웅이었다.
하지만,
그가 살아 있을 때, 그가 바라던 세상이 오지 않았다.

그의 모습이 남아있는
라틴 아메리카
지금 그곳엔
그의 모습이, 그의 흔적이 남아 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자본을 위한 하나의 도구가 되어 있었다.

돈을 벌기위한 수단, 체.
자본, 상업을 위한 수단이 되어버린 체 게바라.
그는 단지 좋은 돈벌이 수단에 불과했다.

그는,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La havana, Cuba.




- 혁명광장.  
하바나, 쿠바.


- 까삐똘리아(Capitolio)앞에서 체게바라가 나오는 지폐를 팔고있다.
하바나, 쿠바.


-  Plaza de Armas, 엽서에 나오는 체 게바라의 모습들.
하바나, 쿠바.


- 레전드
  보고타, 콜롬비아.


- 문에 붙여진, 체 게바라의 모습.(술집으로 추정)
키토, 에콰도르.


- 책과 잡지 등등을 파는 잡화상.
라파즈, 볼리비아.


- 라파즈의 여행자거리.
라파즈, 볼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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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 쿠바, 하바나 - 환상 그 이상의 즐거움 (La Habana) <3>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1. 3. 15.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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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nezuela, Caracas   -   Cuba, La Habana   -   Jamaica, Kingston

1. 엽서 혹은 편지.

  초등학교 시절[15년 전 쯤]을 생각 해 보면, 친구들끼리 편지를 참 많이 주고 받았었다. 그 시절엔 휴대폰이라는 것도 없었고, 삐삐라고 불리는 작은 기계가 이제 막 세상에 모습을 드러 내려 할 때 였기에, 사람들은 손으로 글자를 쓰고, 편지 봉투에 그 글자들을 담고, 그리고 풀로 그 글자들을 감싸서, 우표와 함께 우체통에 넣었다. 
 
  어느 날, 집으로 들어서기 전 우체통에 다른 사람의 체온이 담긴 편지가 들어 있는 걸 발견 한다면 그 날은 정말 즐거운[혹은 기분 안좋은 일이 있었더라도 좋아지는] 하루가 된다. 

  연말이 되면 엽서를 보내기도 했고, 라디오 프로그램에 사연을 보낼 때도 단연 엽서를 썼다[지금은 휴대폰 문자나 인터넷 게시판을 이용하는 걸로 알고 있다] 누군가에게 짧은 말을 전할 때 나의 체온을 함께 전하고 싶다면 엽서를, 그리고 나의 마음을 좀 더 길게 담아서 전하고 싶다면 편지를 썼다.

  중학교 시절, 설레는 마음으로 편지를 써서 좋아하는 여자아이에게 건네주기도 하고, 저 멀리 다른 도시로 전학 간 친구에게도 편지를 써서 안부를 묻곤 했다. 그리고 해외에 있는 친구들과도 편지를 주고 받기도 했다. 그렇게 편지는 보내는 기쁨과 그것을 기다리는 설렘 속에 기쁨이 있고, 또한 받았을 때도 기쁜 마음이 드는 특이한 존재였다.

  그리고,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장소에서, 그 장소에 어울리거나 그 곳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혹은 그 나라에 어울리거나 특징을 잘 나타내는] 엽서를 구입하고, 친구들에게 안부를 묻는 엽서를 보낸다. 외국에서 외국의 향기가 담긴 엽서를 보내는 것은 백년 전이든 50년 전이든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든 여행자 들이 좋아하는 행동 중 하나이다.

  엽서는 쓰는 사람의 체온이 담기고, 보내는 사람은 받는 사람을 한 번 더 생각하게 해주고, 엽서를 받는 사람은 그 사람의 체온을 전달 받고 기쁨에 잠길 것이 분명하기에, 여행에서 보내는 엽서는 특별한 가치를 지니게 된다.



2. 내 엽서는 어디로 갔나요?
 
  나는 여행을 하면서 엽서를 수 많은 엽서를 보냈다.[보통 한 나라에서 2통 이상 씩. 한 번 보낼 때 보통 2개를 보낸다. 지금 까지 100통이 넘는 엽서를 친구, 혹은 아는 사람, 혹은 여행 중 만난 사람들에게 보냈다. 하지만 그 엽서들이 모두 그들의 품에 도착했는 지는 알 수 없다.]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에게 엽서를 보내면서 드는 생각은 오직 하나. 이 엽서를 받은 사람은 기분이 좋겠지? 그리고 먼 훗날 서랍장을 뒤지다가 우연히 내가 해외에서 보낸 엽서를 발견 했을 때 나를 잠시라도 기억 해 주겠지. 좋은 기억으로. 라는 생각.   
 
  엽서를 받았냐고 물어 봤을 때, 엽서를 받지 못했다는 사람들도 많았다.[특히,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에서 보냈을 경우] 내 엽서들은 어디로 갔을까? 누군가 그 엽서와 관련이 없는 사람 손에 닿아서 파괴 되었거나 그 가치를 상실 했을 것이다.

  내가 억울하게 생각하는 것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보낸 엽서들이 대다수가 한국에 도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엽서 하나 보내는 가격이 한화 5천원 이상을 하지만, 나는 받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기뻐할 것을 알기에 보냈지만, 엽서들은 도착하지 않았다.[물론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



3.  쿠바에 대한 상념.

  대학교 시절, 체 게바라를 알았다. 사회적 문제, 노동 운동에 관심을 가지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이다. 체 게바라 평전을 읽었고, 체 게바라의 젊은 시절을 모델로 한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라는 영화를 보았다. 그리고, 나도 젊은 시절의 체 게바라처럼 오토바이는 아니라도 그 코스를 따라 여행을 해 보겠다고 생각을 했다. 버스를 타고서라도.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와는 많이 다른 코스로 남미를 여행했다. 그렇지만, 그토록 가 보고 싶었던 쿠바에 왔다. 돈이 얼마가 들던 나는 쿠바는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나의 일정을 채찍질 해서 쿠바에 닿아 있었다.

  사실, 쿠바에서는 체 게바라의 흔적을 가장 먼저 보고 싶었다. 체 게바라의 삶의 종지부. 그와 피델 카스트로. 그리고 사회주의 혁명. 쿠바의 이미지는 그런 것들이었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의 재즈 음악과 쿠바나 음악 보다는, 헤밍웨이가 하바나에 머물면서 썻다는 <노인과 바다>의 하바나 바다의 이미지 보다는, 쿠바 혁명의 흔적, 아니 그 보다더 직설적으로는 체 게바라의 흔적이 어떻게 남아 있는 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쿠바에 도착한 첫 날. 나의 쿠바에 대한 환상은 뒤바꼈다. 쿠바는 내가 생각하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혁명의 흔적은 역사의 파편이 되어 한 쪽에 머물러 있었고. 내가 찾던 체 게바라는 사진 속에서만 웃고 있었다.


4. 쿠바에 대해서 얼마나 아세요?

  어디에 가세요? 쿠바에요. 다음은 어디가? 쿠바. 쿠바. 쿠바에 간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좋겠다고 했다. 물론, 나도 쿠바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쿠바에 간다는 나를 부러워 했다. 쿠바가 어떤 곳이길래?

  내가 쿠바에 도착 하기 전 쿠바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곤, 사회주의 국가. 미국과 적대적 관계. 하바나의 클럽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재즈. 체 게바라와 피델카스트로의 혁명. 단지 그것 뿐이었다. 나는 단지 한 사람 때문에 쿠바를 동경하고 있었던 것이 틀림 없다.

  남미, 라틴 아메리카의 영웅. 체 게바라.  하지만 영웅은 어디에도 없었다.

쿠바에 처음 도착하고, 시티 센터에 도착 했을 때 내 눈에 보인 건, 거대한 고딕 양식의 건물이었다. 중세 유럽에 온 듯한 느낌. 유럽의 한 도시에 온 기분이었다. 건물들은 낡아 있었지만, 기품있어 보였다. 흑은과 백인. 혼혈인들이 뒤섞여 있었고, 스페인어들이 쉴새 없이 내 귓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무언가 활기가 느껴졌지만, 내가 기대하던, 내가 생각하던 그런 곳과는 달랐다. 쿠바는 이런 곳인가? 클래식 카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지만, 세련되어 보이지는 않았다. 도로엔 차들이 지나다녔고, 거리엔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혼잡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나는 쿠바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5. 쿠바에 대해서 알아가는 단계.

  숙소로 잡은 불법 까사에서, 쿠바 사람들의 삶을 보았다. 불법 까사는 다세대 아파트의 수 많은 문들 중 하나를 열고 들어가자 나왔다. 5평이 채 되지 않은 작은 공간. 그 곳에서 한 가족이 살고 있었다. 주인 여자의 남편은 경찰. 주인 여자의 나이는 30대 중반 정도로 보였지만 19살 짜리 아들이 있었고, 동생은 5살 이었다. 내 방이랍시고 내 준 곳에 창문은 없었고, 건넛집의 음악소리, 말소리가 다 들려왔다. 옆 집에서 키우는 새들이 아침을 알리는 그런 곳이었다. 침대는 삐걱대고 있었다.

  지도를 보며 거리를 걸었다. 올드 시티. 길을 따라 가자,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곳이라서 그런지 괜찮아 보이는 카페와 식당들이 늘어서 있었다. 건물들은 하나같이 오래되어 쓰러질 듯 한 모습을 띤 것도 있었지만, 그래도 봐 줄만 했다. 광장에는 여러 무리의 광광객 떼들이 보였다. 나는 조용히 그늘에 앉아 그들을 바라 보다가, 혼자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골목 속으로 숨어버렸다.

  밤의 쿠바 시내 거리는 조용했다. 빛 조차 찾아들지 않는 골목 속으로 다니기가 무서웠다. 늦은 밤의 거리는 차들도 거의 없었기에 혼자 그 거리를 걷고 있자니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왠지 모르게 누군가 나타나 칼로 나를 찌를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 - 쿠바가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

  서점에 들러 책을 보았다. 음반 가게에 들러 음악을 들어 보았다. 쿠바나 뮤직. 나쁘지 않기에 CD를 몇 장 샀다. 길 거리에, 서점에 엽서를 파는 사람들. 그 곳엔 항상 체 게바라가 있었다. 체 게바라는 이제 자본주의의 물결 속에서 좋은 돈벌이 수단이 되고 있었다.

  3peso 짜리 지폐 속의 체 게바라는 3CUC(1CUC=24peso)에 판매되고 있는 좋은 기념품의 하나 였다.[나는 우연히 상점에서 3peso 지폐를 거슬러 받았다] 그리고, 체 게바라의 얼굴이 양각된 동전도 하나의 기념품이 되어 있었다. 쿠바 국민들에게는 그냥 동전에 불과했지만, 관광객들에게는 그것이 하나의 기념품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체 게바라의 얼굴을 가지고 돈을 벌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그것은 가능했다.

  혁명의 흔적은 혁명 광장에서 잠깐 느낄 수 있었다. 드넓은 광장을 가운데 두고, 큰 얼굴들이 탑을 바라보고 있었다. 혁명 탑. 체 게바라의 눈동자도 그 곳을 향해 있었다. 혁명은 그 곳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사진속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하바나의 거센 파도. 듣던대로 거센 파도였다. 도심에서는 바람을 전혀 느낄 수 없었지만, 노인과 바다에서 묘사된 듯 한 하바나 해변에는 성난 파도가 휘몰아 쳤다. 이 곳이 노인이 사투하던 바다라고 말하는 것 처럼. 노인은 결국 빈손으로 집에 돌아왔고, 잠이 들었다. 나도 빈 손으로 그 곳을 거닐다가 싸구려 까사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쿠바의 극장에서 쇼를 보았다. 하바나의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극장으로 몰려와 쇼를 보았다. 어딜가나 그런 부류는 있는 법이다. 그 쇼의 가격이 보통 식당에서 코스 요리로 한끼를 먹는가격의 30배가 넘는 금액이지만, 그런 쇼는 표가 없어서 못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젊은 청춘 남녀들의 모습을 보았다. 세상, 어딜가나 다 똑같은 법이다.

  쿠바에는 시내버스 노선도가 따로 없다. 버스 안에만 노선도가 있다. 외국인들은 버스 노선을 알 수 없다. 버스는 한 번 타는데 0.5peso.[한화 약30원]. 일부러 외국인들은 택시를 타게 하려고 노선도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현지인들이 타는 여객선을 타고 요새가 지어져 있는 하바나 건너편의 카사블랑카로 갔다. 그 곳에서 하바나 시내를 바라보고 버스를 타고 하바나로 돌아왔다. 0.5peso짜리 버스에는 쿠바나의 냄새가 났다. 나쁘지는 않았다. 이게 바로 사람사는 냄새.

  0.5peso짜리 시내버스를 타고 정처 없이 돌아 다녔다. 그냥 이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그리고 거기서 또 다른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그렇게 버스를 타고 사람 사람 곳을 돌아다니며 구경을 했다. 시티투어 버스가 15CUC인가(?)를 하는것에 비하면 100배 이상 싼 금액이니까. 난 그런 여행을 즐겼다.


6. 쿠바 어떤가요?

  쿠바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조금 더 많이. 쿠바는 내 생각 속에서 혁명의 나라 였지만, 그 곳은 정열의 나라 였고, 음악의 나라였고, 사람 냄새 나는 곳이었다.

  한편으론, 체 게바라가 너무나도 상품화 되어있다는 사실이좀 씁쓸하긴 했다. 체 게바라가 과연 그 사실을 알면 어떤 말을 할까?

쿠바는 그런곳이었다. 사람 사는 곳. 라틴 아메리카 속의 라틴 아메리카. 


- 까삐똘리오 옆으로 지나가는 버스


- 까삐똘리오


-


-
























- 차이나 타운 입구



- 혁명 광장의 체 게바라










- 하바나 해안도로






- 카사블랑카 언덕에서 본 하바나





 Good Bye Cuba, Adios! Hab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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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 쿠바, 하바나 - 진정한 라틴의 피가 흐르는 곳. (La Habana) <2>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1. 3. 6.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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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nezuela, Caracas - Cuba, La Habana - Jamaica, Kingston


1. 음악, 그것은 여행객의 필수품이 되어 버렸다.

  옛날 어느 유럽여행이라는 프로그램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면서 반드시 챙겨야 하는 것이 무엇이었을까?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면서 여행 필수품에서 사라져 버린 것들도 있을 것이고 새로 생겨난 것들도 많을 것이다. 여행 가방은 아마도 그 형태만 가뀌고 기능성이 추가 되었을 뿐 예나 지금이나 가장 중요한 필수품일 것이 분명하다. 카메라는 어떨까? 자신이 다녀온 곳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찍은 사진. 아마 옛날 유럽 여행이 시작되었을 때도 카메라는 필수품이었을지도 모른다. 단지 시간이 지나 기술이 발전했고, 예전보다 더 편리하게 사진을 찍고, 찍은 사진을 볼 수 있다는 것 말고는 바뀐 것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서 새롭게 여행 필수품이 되어버린 것. 바로 음악. 궁극적으로 말하자면 음악을 재생하는 장치와 음악이 재생될 수 있게 하는 음원이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소니(Sony)에서 워크맨을 개발하여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이후 워크맨 시장은 급속도로 발달했다.[필자가 고등학생이던 때만해도 워크맨은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고, 그 때 막 MD player 가 나오고 CD player는 최고급 아이템 중의 하나였다] CD player 시대를 지나 새롭게 등장한 것이 바로, MP3 player 이다.

  2000년 밀레니엄시대를 기대와 우려속에서 맞이하고, 2002년 월드컵의 함성을 지날 무렵 MP3 플레이어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고, 많은 문제가 있었지만 각각의 개인은 서로간에 음악을 주고 받기에 바빳다. 그러면서 여행, 더 궁극적으로는 해외여행의 필수품으로 자리잡은 듯 하다.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음악을 가지고 있다. 음악이라고 해서 기계가 재생하는 그런 음악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악기를 들고 다니면서 음악을 직접 만드는 이들도 있다. 소형 스피커를 들고 다니며 작은 기계속의 음악을 공유하는 사람도 있고, 직접 몸으로 음악을 만드는 사람도 있다. 기타 사물을 이용해 연주를 하는 사람도 봤다. 그리고, CD를 수십장 들고 다니며 음악을 듣는 사람도 봤다.[CD를 들고 다니며 음악을 듣는 사람에게서는 왠지 묘한 매력이 느껴진다.]

  이렇듯, 음악과 그것을 재생하는 장치는 여행객의 필수품이 되었다.


2. 음악은 우리를 즐겁게 한다.

  많은 이들이 음악을 즐긴다. 그리고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음악에 재능이 있든 없든] 대중가요는 차치하고[대중가요가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다]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은 보통 인디(indie)음악을 많이 찾는다. 인디음악에는 항상 에너지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우리나라 사람들도 다양한 음악을 다양한 장소에서 즐기게 되었다.[아마 인터넷과 다양한 매체의 발달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특히, 서울에 위치한 '홍대 앞 거리'의 많은 클럽과 카페에서 다양한 음악을 즐길 수 있다. 그렇게 다양한 음악을 클럽이나 카페같은 곳에서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닌데, 우리나라의 정서상 그런 문화가 보편적으로 허용되는 특정 지역에서만 그런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슬픈 감정을 자아내기도 한다.

  물론, 서울이라는 공간이 너무나도 거대하고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볼거리, 다양한 장소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그런 오픈된 장소에서 여유와 음악을 즐기며, 노는 문화에는 익숙치 않은 것 같다.[물론 뉴욕, 파리, 런던 같은 대도시에서도 라틴과 같은 분위기는 아니지만, 우리나라보다는 훨씬 더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음악들을 즐길 수 있다. 물론 그에 합당한 돈을 지불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즐기기 위해 특정 장소를 찾고, 그러한 특정한 장소들이 더욱 많아 지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즐겁게 하는 하나의 요소이다. 음악은 세상을 아름답게 할 수도 있다. 존 레논이 말했던 것 처럼.



3. 경제적 발전과 삶을 즐기는 것은 반비례 하는 쿠바.

  쿠바의 경제가 세계에서 몇 번째 쯤 될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싸구려 까사(casa, 현지인 민박 형태의 숙소)에서 생활이 시작되고 내가 그녀에게 방세를 지불 했을 때 그녀는 미소를 머금었다[내가 지불한 방세는 10CUC. 1CUC = 24peso. 20페소면 로컬 레스토랑에서 코스요리를 먹을 수 있는 정도이다]. 그리고 나에게 스페인어로 말을 걸어왔다.[그녀는 영어를 못했으므로] 나의 짧은 스페인어와 라틴스페니시 프라세북의 사전을 뒤적이며 대화를 이어갔다.

  오늘 밤, 그녀는 라틴댄스를 추러 간다고 했다. 거기서 춤도 배우고, 라틴 댄스도 추고. 나에게 같이 가보지 않겠냐는 말을 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나는 그 날 밤, 오페라극장에서 하는 쇼의 티켓을 예매해 놓은 상태였다.



4. 쿠바의 치안, 보기와는 다르네요?

  극장으로 가는 길, 길거리의 가로등은 빛이 나지 않은 채 서있거나, 빛이 약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런 거리를 걸었다. 거리를 걸었기보다는 그냥 칠흑같은 어둠속을 헤쳐나갔다고 보는 편이 옳을 정도로 어두운 골목이었다. 거리의 양 옆에는 낡은 건물들이 서 있었고, 그 곳에는 쿠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어둠 저편에서 "하포네스(japanese의 스페인어식 발음)" 혹은 "치노!(중국인의 스페인어)"라는 소리가 메아리쳐 울려왔고, 가끔 내 바로 뒤에서 그런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무서웠다. 사실, 난 완전하지 않은 지도 한장과 낮에 거리를 쏘다녔던 기억을 더듬으며 길을 가고 있었는데, 그런 어둠 속에서 내 기억력은 제대로 작동될 리 없었다.

  어느정도 지났을까? 나는 더이상 길을 갈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날 밤, 극장에서 열리는 쇼고 뭐고 다 집어 치우고 싶었다. 그냥 숙소로 돌아가서 잠이나 자고 싶었다. 쇼를 보고 나면 밤 12시가 넘을 텐데, 밤 늦은 시간 혼자 숙소로 돌아올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정말 그 거리에서 칼맞고 죽어도 누구하나 챙겨주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극장으로 가던 발걸음을 다시 숙소 쪽으로 돌려서, 사람들이 우글대는 혼잡한 거리로 진입했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나는 길을 걷다가 우연히 한국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들은 말. 

  쿠바가 라틴아메리카에서 치안이 제일 좋은 나라래요.


5. 쿠바의 음악과 쇼(Show)를 즐기다.

  쿠바의 신시가(新市街)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 사람의 말을 듣고 난 쿠바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왜 쿠바가 라틴에서 가장 치안이 좋은 곳이 되었을지를 생각 해 보았고, 그리고 나를 자기의 까사로 안내한 쿠바 청년의 말이 생각났다.
  사회주의 국가 쿠바. 외화벌이의 유일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 외국인 관광객. 그리고 국가가 엄격하게 통제하는 사회의 범죄통제와 사회 질서 혼란에 대한 국가의 응징.

  그 날 이후로, 나는 밤마다 이곳 저곳을 쏘다니며 공연을 보고, 재즈카페에서 술을 마시며 재즈 공연을 보고 들었으며, 공원 벤치에 앉아 밤 늦은 시간까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쿠바에서 만난 한국인과 함께] 밤이 깊어 자정이 지난 시간에도 쿠바의 시내버스는 운행을 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공원에서 더위를 식히며, 담소를 나누거나 술을 마셨다. 더러는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거리에 사람은 뜸했지만, 공원에는 아직 숙소로 돌아가기 아쉬운 그런 기운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희한한 것은 여름 날씨였는데도 불구하고, 공원에는 모기가 없었다. 아니, 쿠바에서 모기를 보지 못했다.

  쿠바의 밤에는 극장같은 공연 장에서 발레공연이 열리거나 연주회가 열렸고, 재즈 카페에서는 재즈 음악이 흘러 나왔고, 쇼를 하는 술 집의 무대위에서는 무용수들이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렀고, 사설 댄스장에서는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며 즐기는 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렇게 쿠바의 밤은 흥미로운 볼거리, 놀거리들로 가득했다. 물론 낮이라고 예외는 아니었지만.



6. 거리에선 음악이 흘러 나오고.
    
   싸구려 까사의 여주인은 나에게 쿠바의 다양한 음악들을 들려주었다. 조그마한 흑백 텔리비전 화면속에 비치는 DVD영상은 어색했지만,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은 나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쿠바의 다양한 아티스트들. 라틴음악 부터 재즈까지. 쿠바나 뮤직. 정말 매력적이었다. 나는 여주인에게 추천받은 가수의 CD를 사야겠다는 생각을 머리속에 간직한 채 쿠바의 거리를 걸었다. 그리고 버스정류장 근처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CD를 팔고 있는 노점에 들러 음악을 들으며 CD를 고르고 있었다.

  거리에는 음악이 흘러 퍼졌고, 사람들은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 주변에 서 있으면서도 리듬을 타고 있었다. 그 중 한 꼬마, 대여섯살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꼬마가, 살사 음악에 맞추어 몸을 흔들었다. 정말 유연한 몸놀림. 놀라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의 몸놀림을 하는 그 어린아이는 내 머리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아, 모든 쿠바의 사람들이 어릴 때 부터 이렇게 음악을 들으면서 춤을 추니, 나이가 조금 더 들어 10대 후반, 20대 그리고 30대 더 나아가 40대가 되어서도 그렇게 춤을 추는 것을 즐기고, 음악을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쿠바의 거리에서는 음악이 흘러 넘쳤고, 사람들은 흘러 넘치는 음악을 몸으로 주워 담고 있었다.



- 쿠바 거리의 아파트와 달.

- 어둠에 젖어드는 까삐똘리오

- 스트릿

- 거리의 벽화

- 오페라극장 건물. 1층에는 우체국이 있다.

- 벼룩시장.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체게바라의 얼굴

- 길거리 공연단

- 꽤나 유명했던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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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핑몰

- 낮잠자던 아저씨. 친구가 나를 막 부르더니 사진 찍으랬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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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당의 형제

- 일하던 아저씨. 사진 찍어 달래서.

- 구두수선집 아저씨. 나를 불러세우고선 사진 찍어 달랬다.
많은 나라를 돌면서 느낀 것인데, 다른 나라 사람들은 자신이 일하고 있는 모습을 찍히길 좋하는 듯. 무슨 일을 하고 있던 간에 자부심이 대단한 것 같았다.

- 차이나 타운의 알림판. 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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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안해도 안다. 혁명광장에서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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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명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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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넘볼 수 없던 호텔. 로비만 가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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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바나의 거센 파도를 느낄 수 있었떤 곳.

- 어흥!

- 싸대기 맞을래?? 까삐똘리오 동상

- 중궈~

- 카사블랑카에서 본 하바나 시내

-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풍의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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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 쿠바, 하바나 - 기대 그 이상의 가치. - 쿠바, 하바나<1>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1. 2. 27.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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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nezuela, Caracas(베네수엘라 카라카스) - Cuba, La Habana(쿠바 하바나) - Jamaica, Kingston(자메이카 킹스톤)


1. 비자(Visa), 특정한 국가를 여행 할 때 허가증을 따로 받아야 한다는 것.

    전자 여권 제도가 시행되기 전 광화문 미국 대사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던 광경이 있었다. 미국 대사관 입구에서부터 대사관 주변으로 길게 뻗은 줄. 미국 비자를 받기위해 사람들은 그렇게 줄을 서야 했다.[전자 여권 제도가 시행된 후, 그 모습은 사라졌다] 2004년 필자가 일본을 여행 할 때만 해도, 일본 대사관에서 비자를 따로 발급 받아야 했다.[그것은 적잖히 번거로운 일이었다] 하지만 일본과의 무비자 협정 체결 이후, 일본은 손쉽게 갈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빨리 중국과도 무비자 협정이 체결되기를 바란다]

  어느 특정 국가를 여행할 때, 그 나라에 대해서 확인 해야 할 것 중 하나가 바로 비자의 필요 유무(有無)이다. 전 세계적인 추세가 특별히 대사관에서 비자를 따로 발급 받지 않고도 자기의 나라를 여행할 수 있게 하는 무사증(무비자)를 허용하고 있지만, 아직도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라면 비자가 필요한 국가가 많다.[유럽의 경우는 러시아, 벨라루스를 제외하고 모든 나라가 무사증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 필자가 2005년 마케도니아와 슬로바키아를 가고자 했을 때는 비자가 필요했지만 2007년 이후로 무비자로 바뀌어 동유럽 여행이 한결 쉬워졌다]
  비자를 발급 받을 때 유의할 점은, 반드시 본국[대한민국 사람이라면 한국내에서]발급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고, 우리나라에 대사관이 없어서 외국에 있는 대사관에서 발급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국경에서 비자 발급 비용을 지불하면[흔히 비자피(Vasa fee)라고 한다] 비자를 발급해 주는 곳도 있다는 것.[대표적으로 캄보디아, 네팔을 들 수 있고, 시리아의 경우는 우리나라와 수교를 하고 있지않기 때문에 국경에서 비자를 발급해 준다. 시리아 입국시 일본인의 경우는 일본 현지의 시리아 대사관에서 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고 들었다]

  비자 문제는 유럽 여행을 할 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장기간 여러나라를 여행하는 장기여행자들의 경우는 특히 신경써야 할 부분이다.[국경에서 비자 문제로 입국이 거부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러시아, 몽골, 중국, 시리아, 볼리비아등 많은 나라들이 아직도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비자를 요구하고 있고, 비자에 관한 문제는 수시로 정책이 바뀌기 때문에 꼭 챙겨두어야 할 사항이다.


2. 쿠바에 다녀온 흔적을 남길 수 없다.

  이스라엘은 중동의 미운오리 새끼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이스라엘은 꼭 가봐야 할 곳중 한 군데이기도 하지만, 많은 여행자들이 이스라엘의 독특한 위치와, 역사적 상황, 그리고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기 위해 이스라엘을 가고자 한다. 하지만, 이스라엘을 갈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바로 입/출국 스탬프를 여권에 찍어서는 안 된다는 것. 이스라엘을 입/출국 할 때는 별지에 스탬프를 찍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출/입국 스탬프가 찍혀 있으면 주변 나라에서 입국을 시켜주지 않는 다는 것이다. 미운오리 새끼, 이스라엘.

  쿠바에 가기 위해서는 비자가 필요하다. 쿠바는 국제사회의 왕따이다. 국제사회의 큰형 미국이 쿠바를 왕따시키고 있기에, 쿠바는 늘 찬밥 신세다. 하지만, 역사적으로든 문화적으로든 쿠바는 엄청난 매력을 가진 곳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쿠바를 찾는다.[많은 수의 미국인들도 쿠바를 찾는다. 미국의 대문호였던 헤밍웨이는 쿠바 하바나에 살면서 "바다와 노인"이라는 소설을 썻다] 하지만, 쿠바도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여권에 스탬프를 찍을 수 없다. 별도의 비자 용지를 구입해서 그 곳에 스탬프를 찍고 출국 할 때 반납해야 한다.

  보통, 쿠바의 비자는 항공사 사무실에 비자를 판매하는 코너에 있다. 쿠바에 입국하기 위해서는 비자가 필요하고, 그 곳에서 비자를 구입해야 한다. 그리고 그 종이에 입국 스탬프를 찍고, 쿠바 출국 심사를 할 때 반납한다. 쿠바의 흔적은 여권에 남길 수 없다.[쿠바 스탬프가 있으면 미국을 갈 수 없다는 이야기도 있다]



3. 비행기는 카리브해(Caribbean sea) 위를 날고 있었다.

  하우스파티 다음 날 아침, 나는 숙소로 가서 짐을 챙겼다. 내가 루이지의 집을 떠날 때 그는 나에게 물었었다. 어디서 공항가는 버스를 탈 거냐고. 나는 지도를 보여주고 11시 쯤 지도에 표시된 곳에서 버스를 탈 것이라고 말하고 떠났지만, 그 곳에서 버스를 타지 않았다.
  
  공항에서의 까다로운 배낭 패킹을 마치고, 출국세를 지불하고, 베네수엘라의 인기있는 가수라는 녀석의 CD를 한장 구입하고, 쿠바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렸다. 또 다시 방문하게 되는 사회주의 국가였다.[이번 여행에서 시리아, 중국, 쿠바 세 군데의 사회주의 국가를 방문했는데, 각각의 나라 분위기가 너무나도 달랐다] 체 게바라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남아있는 쿠바. 피델 카스트로, 체 게바라. 혁명. 그리고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의 재즈. 그리고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 묘사되는 하바나의 성난 바다. 여러가지 이미지들이 내 머리속에 겹쳐졌다.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에 좀 더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다음 행선지인 쿠바와 자메이카의 매력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크게 다가왔기에, 카라카스에서 좀 서둘러 떠나는 감이 있어 좀 아쉬웠지만, 내가 그토록 가고싶어 하던 곳에 더 오래 머물고 싶다는 욕망을 이길 수는 없었다.

  Cubana air의 낡은 기체는 한적한 공항 위를 이륙해서 반원을 그린다음, 파랗게 펼쳐져 있는 카리브해(Caribbean sea)위에 자리를 잡았다. 창밖 아래로는 카리브해의 작은 섬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세계적인 휴양지로 손꼽히는 섬들이겠지.



4. 하바나 국제 공항.

  크지 않은 공항은 좀 혼잡해 보였다. 공항은 여러 무리의 관광객들을 토해냈고, 쿠바에 살고 있는 것 같은 여러 중국인들을 토해냈다. 나는 공항의 환전소에서 환전을 했다. 충격이었다. 이미 쿠바에 오기전에 들은 바는 있었지만, 정말 이렇게 심할 줄은 몰랐다. 캐나다 달러가 쿠바에서 가장 환율이 좋다는 이야길 듣고 캐나다 달러를 사고자 했지만, 캐나다 달러를 살 곳이 없었던 내가 가진 것은 미국 US달러였다.
  우리나라 환율로 따지면, US달러가 훨씬 높았지만 쿠바에서는 US달러의 가치는 형편없었다. 울며 겨자먹기로 외국인용 화폐로 쓰인다는 CUC(쿡 이라고 불린다)을 바꾸고 공항 앞에서 택시를 잡았다. 택시에 몸을 싣고, 시내 중심가격은 까삐똘리오로 가자고 했다. 그 근처에 까사[현지인이 운영하는 민박과 같은 숙소]가 많다는 정보를 들은 바 있어서 그 곳에서 숙소를 잡기 위함이었다.


5. 혁명의 흔적과 함께 시간이 멈춰 버린 듯한 도시.

  한적한 공항 주변의 도로를 달려, 하바나 시내로 접어들고 있음이 느껴졌다. 사람들은 버스 정류장 근처에 몰려서 버스를 타려 하고 있었고, 버스는 사람들을 가득 태우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거리엔 우리나라에서는 찾아 볼 수 없고, 다른 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클래식 자동차(Classic car)들로 넘쳐났다. 그리고 론니플래닛에 적혀있던 한 구절이 생각났다. "쿠바의 볼거리 중 하나인 클래식 카(Car)"

  낡은 자동차들이 검은 매연을 토하면서 거리를 누비고 다녔다. 페인트가 벗겨진 클래식 카도 있었고, 삐까번쩍한 클래식 카들도 있었다. 도요타의 자동차도 거리를 누비고 있었고, 간혼 현대차도 보였다. 그래도 거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클래식 카였다.

  어쩌면 혁명 이후 시간이 멈춰 버린 걸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미국의 경제 봉쇄 정책으로 인해서 시간이 멈춰버린 것일 지도]



6. 불법 까사. 그 곳이 나의 숙소.

  까사를 찾기위해 까삐똘리오[예전에는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던 건물. 중앙에 큰 돔이 있는데 세계에서 손에 꼽힌다.  쿠바 하바나의 메인 건물 중 하나로서 역사도 오래되었고 규모면에서도 세계적인 건축물이다] 주변을 배회하다 보니, 한 명이 나에게 접근하더니 물었다. 까사?까사?
  씨씨, 라고 대답하딘 10cuc에 해 준다고 했다. 엄청 싸다는 생각에, 한번 집부터 보자고 했다. 그러더니 따라오라면서, 나와는 2미터 정도의 간격을 두고 걸었다. 그리고 말을 할 때도, 나를 바라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시선을 다른 곳으로 향했다.[ 쿠바는 미국의 경제봉쇄적책으로 인해 외화를 벌어들이는 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외국인 관광객에 의한 외화벌이이다. 따라서 쿠바는 정책적으로 외국인 관광객을 많이 보호하고 관광을 장려하고 있다. 외국인 보호와 관광객 유치라는 정부 정책에 의해 정부에서 제공되는 서비스의 가격에는 외국인 가격(foreign price)가 형성되어 있음은 물론이지만, 외국인 관광객에 대한 보호도 강력하게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현지인이 외국인 관광객과 직접 대화를 하거나 접근하여 신체 접촉을 하는 모습을 경찰이 보면 그 자리에서 쿠바 현지인은 체포되어 감옥으로 간다고 한다.] 
  까삐똘리오에서 걸어 일반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 같은 건물에 들어섰다. 출입문을 열쇠로 열고, 좁은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각종 전선들이 거미줄처럼 계단 위쪽에 얽혀 있었다.[불이라도 날 것 같았고, 불이 난다면 다 죽을 것 같았다] 4층에 다다르자 또 하나의 문이 나왔고, 그 곳에는 복도를 따라 몇 개의 문이 있었다. 그 중 하나로 나를 안내했다.

  여기가 현지인들이 살고 있는 곳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이 겨우 설 수 있는 주방. 거실에는 네 개의 세포와 작은 TV와 오디오가 있었다. 화장실은 거실 한쪽 벽문에 있었는데, 환풍기가 없었고, 샤워기는 없이 수도꼭지만이 있었다. 주방 바로 뒤에 좁은 계단을 타고 올라가니 다락방이 나왔다. 다락방은 두개의 칸으로 나뉘어 있었고, 계단과 연결되는 곳에 하나의 침대가 있었고, 문 너머에 또 다른 하나의 침대가 있었다. 

  이런 곳에서 한 가족이 살고 있다니. 정말 빈민촌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 곳이 일반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다. 이것이 쿠바의 현실인가? 아-주 저렴한 가격의 숙소. 뭐, 난 이제까지 여행하면서 이보다 더 심하고 시설이 좋지 않은 곳에서도 살아 봤으니라고 생각했고, 그 날 몹시 피곤했기에 다른 숙소로 옮길 생각도 없었다. 일단 여기서 이틀 정도 지내보고 숙소를 옮길지 말지 결정하기로 했다.

그렇게,
불법 싸구려 까사(casa)에서 나의 쿠바에서의 여정은 시작되었다.



- 공항을 빠져나오며


- 까삐똘리오


-


- 숙소 근처의 차이나 타운 입구


- 어디에나 걸려 있는 체 게바라


- CIUDAD DE LA HABANA


- 관광객 기다리는 쌔끈한 클래식카


-


- 혁명의 흔적


- 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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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 하우스 파티, Shall we dance? (Venezuela, Caracas)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1. 2. 23.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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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음주가무(飮酒歌舞)

   술이 있는 곳엔[엄밀히 따지자면 술을 마시는 곳] 음악이 있고, 음악과 술이 있는 곳에는 춤이 있다. 술과 음악과 춤이 함께 한 장소에서 조화를 이루는 것은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보편적인 현상인 듯 하다. 대학생 시절을 되돌아 보며 하는 말 중에서도 신입생 혹은 학년이 낮을 때 쉴새 없이 음주가무를 즐겼지 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음주가무를 즐기던 민족이다. 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실제로 고대 국가였던 고구려나 동예, 옥저 같은 나라에서는 추수를 끝낸 뒤 하늘에 감사하기 위해 제사를 지내고 몇 일 밤낮을 지새면서 음주가무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기도 하다. 한반도에서는 그렇게 고대부터 음주가무를 즐기는 행사들이 있어왔다. 항상 좋은 일이 있으면 술과 노래와 춤이 함께 한 것이다.

  슬프니까 술 한잔. 그리고 슬픈 음악. 기쁘니까 술 한잔. 그러면서 즐거운 음악. 그냥 심심하니까 술 한잔. 그럴 땐 적당한 음악. 노래방에 가면, 노래가 흘러 나오고, 맥주가 들어오고, 앞으로 튀어나가 서로 마이크를 잡고 몸을 흔들어 대기도 한다. 

  대학의 단과대, 학과별 행사가 있을 경우에는 넓은 장소에서 음주가무가 벌어지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그런 공개된 장소에서 벌어지는 음주가무를 목격하고 참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주 특별한 행사가 아니고서는 혹은 그런 집단적인 행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런 공개적인 장소에서의 음주가무를 꺼린다. 어느새 세월은 흘렀고, 음주가무는 어둠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좀 더 개방적인 장소라기 보다는 좀 더 폐쇄적이고 은밀한 장소에서 음주가무가 이루어 지고 있다. 그것은 시대의 변화에 따른 것이고, 공개적, 공동체적으로 무언가를 하기를 원하는 사람보다 개인적으로 조용히 살아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 지면서 생기는 현상이 아닐까 싶다.

  음주가무를 논하면서 왠지 씁쓸한 기분이 찾아든다.


2. 이제는 하나의 추억이 되어버린 음주가무(飮酒歌舞)를 즐기던 시절.

  대학시절 봄바람이 내 볼을 스치기 전부터, 야외에서 음주가무를 즐기던 때가 있었다. 아직은 밤이면 약간 찬 기운이 느껴지던 4월의 첫째주 금요일. 해오름제라는 이름으로 사물놀이패가 하늘을 울리고, 우리들은 광장에서 밤새 음주가무를 즐기던 때가 있었다.[물론 지금도 해오름제는 매년 열린다]

  내가 나이를 먹은 탓도 있겠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대학에 들어오는 후배들을 보니 옛날과는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대학 이란 곳을 만으로 6년을 다니다 보니] 후배들은 점점 더 개인주의화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소수의 몇 몇 후배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선배란 자신들에게 존재하지 않는 것 처럼 보인다.[물론 나도 그들을 모른다] 그들을 탓 할 마음은 없다. 그들이 선배라는 사람에 대해서 관심이 있든 없든 그것은 그들의 자유이니까 말이다. 

  단지 안타까운 것은, 내가 대학생활을 하면서 정말 즐거웠던 일들이라고 생각하던 것들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학점, 취업이 뭔지. 그런 것들을 1학년 때 부터 고민하는 요즘 학생들을 보면 안타깝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 바는 아니다]



3. 여행, 그것은 불확실성만으로 이루어진 또 다른 세계.
  
  나는 카라카스의 지하철 역에서 열심히 지하철 노선도를 보고 있었다. 그 날 오후, 카라카스의 올드시티를 거닐어야 겠다는 생각에 올드시티에 위치한 지하철 역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 비교적 단순한 지하철 노선도 였지만, 그 날 따라 노선도는 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가이드북의 노선도와 실제 노선도가 달랐기 때문에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열심히 지하철 노선도를 보고 있는데,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어디까지 가냐고. 

  목적지를 말하자, 나에게 말을 건 학생처럼 보이는 남자는 자기도 거기까지 간다며 같이 가자고 했다. 나는 지하철 표를 구입하고 그들과 함께 열차에 올랐다. 세 명의 남자와 세 명의 여자. 그들은 세 커플처럼 보였는데, 커플은 아니고 모두 친구였다. 아무 짧은 영어를 구사할 줄 아는 한 명의 여자, 그리고 짧은 영어를 하는 또 한명의 여자, 그리고 영어를 할 줄 모르는 한 명의 여자. 짧은 영어를 구사하는 여자가 나에게 많은 것을 물었다. 그리고 영어를 구사할 줄 아는 두 명의 남자와도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짧은 스페인어를 사용하여 대화를 하기도 했다. 영어를 할 줄 모르는 여자는 스페인어로 나에게 무언가를 물어 왔기 때문에.


4. 

  한 명의 동양인 남자와 세 명의 백인 계열 느낌이 많이 나는 남자. 그리고 구릿빛 피부가 돋보이는 두 명의 여자, 이탈리아계의 백인 여자 한명. 그들은 광장의 동상 아래에 빙 둘러서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여섯명의 베네수엘라 대학생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진(Jin)이라고 불리던 한 동양인 남자는 그들의 말에 기계적으로 반응 하듯이 반박자 늦은 웃음을 보였다.
 
  담배가 다 타 들어가자 약간의 적막이 흘렀고, 그는 말했다. 너희들 술마시러 가냐? 그는 왠지 그런 분위기를 감지하고 있었기에 그렇게 물어본 것이었다.[사실 그도 술을 안 먹은지 꽤 되었기에 술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었다] 여섯명의 대학생들은 그에게 말했다. 응, 그들은 루이지(Luigi)를 가리키며 그의 집에서 오늘 파티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또 덧붙였다. 너도 갈래?

  그들 중 한 명은 다른 약속이 있다며, 먼저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베네수엘라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다섯명의 학생들과 그는 루이지의 아파트로 향했다.

  가는 길에 골동품 가게에 들러, 골동품 카메라를 구경하기도 하고, 마실 술을 좀 사가기도 했고, 빵 가게에 들러 바게트와 안에 넣어 먹을 햄과 치즈를  사기도 했으며, 음료수를 몇 개 사기도 했다. 술은 많이 사지 않았다. 루이지의 집에 와인이 많이 있어서 그걸 마실 것이라고 했기 때문에 그들은 약간의 간식거리를 사서 아파트로 향했다.



5. 
  
  나는 그들을 따라 아파트로 들어갔다. 전망이 꽤나 좋은 곳이었다. 시벨(Cibel)이 창 밖 너머 저 아래 위치한 저택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곳이 대통령이 살고 있는 곳이야.

  익숙한 리듬의 음악이 거실에 울려 퍼졌다. 테이블 위에는 술이 있었고, 그들은 나에게 술을 권했다. 맛이 나쁘지 않은 와인이었다. 와인이라고 하기에는 좀 도수가 약한. 약간은 음료수에 가까운 와인이었다. 맥주보다 알콜 농도는 더 높았지만, 맥주만큼 취한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맥주는 취하는 것 보다 배가 쉽게 부르게되는 술이긴 하지만].

  베네수엘라의 유명한 가수의 음악이 흘러나왔다[그들이 유명한 가수라고 말해 주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음악은 신이 났고, 그들은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라틴 댄스.
  
  그들은 나를 일으켜 세웠고, 나에게도 라틴 댄스를 권했다. 나는 스텝을 밟았다. 아마존에서 배운 스텝이 유용하게 쓰였고, 나는 아마존에서 보다 더 춤을 즐길 수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또 다른 스텝도 가르쳐 주었다.

  아드리아나가 살사춤을 추었다. 엄청난 흔들림이었다. 놀라울 정도 였다.[라틴의 여자들은 어릴 때 부터 엉덩이를 흔들며 살사를 추니 커 가면서 더 부드럽게 흔들 수 있는 것 같다. 쿠바에서 본 꼬마가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추는 것을 보고 놀랄 정도 였으니]
  나에게 살사를 권했지만, 난 도저히 그 속도의 반의 반도 못따라 갈 정도였다. 허리가 끊어 질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대낮부터  시작된 술판은 흥을 더해갔고, 밖은 어느새 어둠이 찾아와 있었다.


6. 루나(Luna).

  점점 밤이 깊어가자, 음악은 좀 조용한 것으로 바뀌었다.[밤 늦은 시간에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춤을 추며 놀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은 가끔 조용히 라틴 댄스를 추거나 술을 홀짝 거리고, 대화를 나누었다.
  
  루이지의 엄마와 누나가 밖에서 돌아왔지만, 파티는 계속 되었다.[루이지는 피부가 백인 같았는데, 누나와 엄마는 피부가 검은 빛에 가까웠다. 혼혈은 역시 랜덤이라는 생각] 그는 루이지의 엄마와 누나에게 인사를 하고 계속 술을 마셨다. 그날 따라 그는 좀처럼 취하지 않았다. 그는 너무 즐거웠기 때문일까? 그는 대학시절 정말 즐거운 술 자리에서 소주 대꼴 3병을 마신 적도 있다.[물론 세번 토했지만]

  밤은 깊어 갔다. 그리고 창 밖 저 높이에는 달이 떠 있었다. 더러는 방으로 들어가 야구를 보았고, 더러는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그는 숙소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이미 전철은 끊겼을 테고, 루이지의 집에서 자고 가라고 그에게 말했다. 그는 아침 일찍, 숙소로 돌아가야 했다. 다음 날 점심 즈음, 쿠바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했기 때문에.

  소파에 앉아, 저 높이 떠서 빛을 창 안으로 쏟아내고 있는 달을 보자 갑자기 그는 "루나"라는 말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는 입 밖으로 소리를 만들어 보았다.  Luna. 

  옆에 있던 시벨이 말했다. Si, SI, Luna. 그리고 별에 대해서 덧붙였지만, 그는 더 이상 기억하지 못했다.

그냥, 루나. 라는 말이 참 아름답게 느껴진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7. 
  그들은 거실에 나를 위해 간이 침대를 설치해 주었다. 그 위에서 나는 잠이 들었고, 6시 쯤 일어났다. 숙소까지 가는데 1시간. 샤워를 하고 짐을 챙기고 아침을 먹고 공항으로 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모두들 잠이 든 시간이었다. 나는 간이 침대를 접고, 이불을 개어서 옆에 놓아 두었다. 그리고, 쪽지를 하나 써서 탁자위에 올려 놓았고, 조용히 루이지를 깨웠다[출입문은 안에서도 열쇠로 문을 열어야 하는 것이었기에] 카를로스와 루이지가 아파트 입구까지 배웅을 해 주었다. 그리고 그들과 헤어지고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카라카스에서의 하우스 파티는 그렇게 끝났다.



- 카라카스 시내

- 파티 멤버 + 찍사 Cibel

- 울랄라


- 표정들

- 동상

- 구조가 좀 특이하던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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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비아 팔에 그림 그려주는 카를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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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 미녀(美女) 공화국, 베네수엘라 - 카라카스(Caracas)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1. 2. 19.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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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zil - Santa Elena de Uairen - Ciudad Bolivar - Caracas(카라카스) - Cuba, Havana(쿠바 하바나)



1. 지금 당신의 지갑 속에는 몇 장의 카드가 들어있나요? - 신용카드(체크카드,현금카드) vs 여행자 수표.

   지갑 속을 들여다 보면 몇 장의 카드가 눈에 띈다. 포인트 적립 카드를 비롯해서 신용카드(체크카드), 보안카드 를 비롯한 다양한 카드들. 카드가 난무하는 시대에 현금 지폐를 비롯한 일정 금액의 가치와 동등한 효력을 가진 종이들은[수표나 상품권 등] 그 설자리를 점점 잃어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여행을 하면서 꼭 챙겨야 하는 필수 품 중 하나였던 여행자 수표는 이제는 여행 필수품이라는 항목에서 제외된 듯한 느낌이 든다. 그 자리를 대신해서 현금카드 혹은 신용카드가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불과 몇 년 사이에] 
  2004년 겨울 유럽 여행의 필수품은 여행자 수표였다.[특히 지점이 많아서 편리하다고 알려진 토마스쿡은 인기가 많았다] 그 당시 많은 이들이 여행자 수표를 이용했고, 그 이후에도 많은 이들이 여행자 수표를 이용하였다.[여행자 수표의 장점은 환전 수수료가 비교적 적었고, 분실시 발행 코드를 알고 있으면 재발행 할 수 있고, 본인 서명이 없으면 사용 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여행자 수표를 교환해 주는 지점이 없으면 환전을 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 할 수 있다는 점이 단점] 2010년 까지도 여행자 수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보았지만, 그 수는 급감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자리를 신용카드나 현금카드가 대체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현급지급기(ATM)가 있으면 그 자리에서 전산환율로 바로 현금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을 바탕으로 많은 이들이 현금카드를 가지고 다닌다.[특히 시티은행의 경우는 해외에서 돈을 찾을 때도 수수료가 면제 된다]

  하지만 현금카드, 신용카드의 편리성에 따른 위험성도 간과할 수 없다. 카드를 분실하게 될 경우 여행에 필요한 현금을 충당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을 갖기 힘들고, 다량의 현금 유출 이라는 참혹한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2. 어디에서나 현금카드가 편하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2005년 동유럽을 여행 할 때였다. 크로아티아 스플리트(split)에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모스타르(Mostar)로 가는 버스를 타기위해 버스 정류장 옆에 있는 현금지급기에서 돈을 찾았다. 그 당시 현금지급기는 건물의 벽에 붙어 있는 오픈형이었고, 나는 버스 시간에 쫒기고 있었기에 돈을 급하게 찾아 버스표를 사고 바로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몇 시간을 달려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국경에 도착했고, 소지품 검사와 여권 검사를 할 때 현금지급기에 카드를 그대로 꽂아 놓고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스타르에 도착해서 내 계좌의 잔고를 확인 해 보았을 때, 내 통장의 잔고는 0원에 가까운[희미한 기억으로는 8백 몇 십원] 숫자를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렇게 통장에 들어있던 여행 경비를 모두 도둑 맞은 것이다.

  2009년 베네수엘라의 카라카스에서 은행의 현금지급기앞에 섰다. 그리고 카드를 집어 넣고, 베네수엘라에서 사용 할 돈을 넉넉하게 찾았다[전산환율로 원화 대비 베네수엘라 페소로 바로 계산되어 출금되었다]. 생각보다 베네수엘라의 물가가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은행에서 찾은 돈을 원화로 계산해 보고, 길거리의 음식들의 값을 계산 해 보니] 물론 나는 달러가 있었지만, 쿠바와 자메이카에서 US달러를 써야 했기에 달러를 환전하지 않았다. 그리고 베네수엘라를 떠나 쿠바, 자메이카를 거쳐 미국으로 갔다.

  미국에서 들은 이야기. 베네수엘라는 고정환율이라서 달러로 환전 하면 물가가 엄청나게 싸게 느껴지지만, 현금지급기에서 돈을 찾아서 생활하게 될 경우 물가가 엄청 비싸진다고. 나는 그제서야 베네수엘라의 물가가 비싸게 느껴졌던 이유를 알았다.



3.  미인들의 나라 베네수엘라?

  베네수엘라. 왠지 모르게 낯설지 않은 나라 이름이었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 본 듯한 느낌이 들었던 베네수엘라. 한 번도 가보지도 않았고, 지도에서 어디에 있는지 마음먹고 찾아 본 기억이 없는 나라였다. 그 나라에 대해서도 잘 아는 것이 없었다. 단지 차베스라는 대통령의 이름만 TV에서 얼핏 들은 것 같았다.

  그런데, 누군가 말해주었다. 세계에서 미스 유니버스가 가장 많이 나온 나라. 베네수엘라. 아, 미인의 나라! 그리고, 사람들이 나에게 했던 말들이 기억났다. 내가 베네수엘라에 간다고 하자, 좋겠다. 부럽다고 하면서 덧붙였던 말들. 이쁜 여자들을 많이 볼 수 있겠네. 사진 많이 찍어. 남자, 여자 할 것없이 나에게 그런 말을 했었다. 그랬구나.

  미스 유니버스, 미인의 나라. 베네수엘라.



4. 카라카스. 두 가지 세계.
 
  볼리바르(Ciudad Bolivar)에서 버스를 타고 카라카스로. 볼리바르에서 루리로와 헤어졌다. 루리로는 나에게 저녁 때 같이 떠날 것을 권했지만 나에게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는 나와 내가 길거리에 나가서 악기를 연주하면 재미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어쩌면 돈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나의 잠베와 루리로의 피리의 합주를 말한다]. 하지만 나는 더운 날씨에 길거리에서 공연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고, 쿠바로 가는 비행기편을 알아보러 카라카스로 가야 했다. 루리로에게는 미안한 일이었고, 나로서도 이렇게 바쁘게 어디론가 떠나는 것은 원치 않았지만, 베네수엘라에 머무는 것 보다 쿠바에서 하루라도 더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물론 베네수엘라가 싫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쿠바에 대한 기대가 너무나도 컷기에 쿠바에서 하루라도 더 머물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일 뿐이다]
  
  카라카스로 향하던 버스는 어느덧 도시에 진입하려 하고 있었다. 고속도로의 거의 끝 부분 도시의 진입로 근처에 산 등성이를 타고 무너져 가는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얼핏봐도 그 곳은 빈민가 처럼 보였다[그 곳의 사진을 몇 장 찍었는데, 그 곳에서 만난 대학생들이 그 사진을 보고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말해 주었다]. 버스는 얼마간을 더 달려, 높은 빌딩들이 서 있는 도심으로 들어왔고, 사람들과 짐들을 토해냈다. 사람들은 각자의 짐을 주섬주섬 주워들고 뿔뿔히 흩어졌다. 나도 사람들의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버스에서 내리기 전에 보았던 지하철 입구를 향해 걸었다.

  지하철을 타고 도심으로 향했다. 카라카스에는 저렴한 게스트하우스가 없었기에, 론니플래닛에 나와있는 가장 저렴하다는 숙소로 찾아갔다. 러브 모텔을 개조한 숙소라고 적혀 있었는데, 역시나 러브 모텔의 느낌이 살짝 배어 있엇다. 내가 도착했을 때 싱글룸이 없었기에 나는 더블룸에서 혼자 묶어야 했고, 숙박 요금은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했지만 다른 대안은 없었다.

  시내 중심가를 거닐었다. 많은 사람들이 시내 중심가에서 쇼핑을 하고 음식을 먹고 있었다. 하지만 밤이 깊어가자 사람들은 하나 둘 씩 모습을 감추었고, 나는 나이트 클럽에나 가볼까 하는 요량으로 이곳 저곳을 배회하고 있었지만, 거리의 분위기는 외국인 여행자가 혼자 함부로 돌아다니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론니플래닛의 한 구절이 내 머릿속에 자꾸 나타났다. "밤에는 위험하니 반드시 숙소 앞에서 택시를 타고 목적지로 이동 할 것. 혼자 절대 돌아다니지 말 것."

 

5. 그 곳은 아직도 변화를 원한다.

  시내 곳곳을 돌아다녔다. 지하철 요금은 정말 쌋다. 버스 요금도 쌋다.[석유가 생산되고 있는 나라기 때문에 저렴하다고 들었다] 지하철을 타고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고, 항공사를 찾아가 비행기 표를 알아보러 다녔고, 관광 안내도의 여러 가볼만 한 곳을 찾아 가 보았고, 대형 서점들을 찾아가 보았고, 사람들이 모여드는 번화가의 거리를 걸었다.

  경찰차와 경찰오토바이들이 어디론가 몰려가고 있었다. 아까전에 지나온 곳에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이 모여 있었는데, 그 곳으로 가는 듯 했다. 다시 그 곳으로 가서 그 현장을 구경했다. 한쪽에서 외치고 있었다. 차베스! 차베스! 사람들은 함성을 질렀고, 누군가는 연설을 했다[그 사람이 차베스는 아니었다] 여러 사람들이 큰 대로 위에 설치된 연단 같은 곳에서 무언가를 말했다. 사람들은 그들의 말에 호응했고, 함성을 질렀다. 내가 대학시절 겪었던 그런 광경이 내 눈앞에 오버랩 되었다. 과연 이들이 내가 생각하는 이들일까?

  서점에서 엽서를 몇 장 사서, 엽서를 보냈다. 그리고, 가이드북에 소개 되어있는 올드 시티를 구경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6. 우리와 같은 방향이네요? 같이 가요.

  매표소 옆, 벽에 그려져 있는지하철 노선도를 유심히 보고 있었다. 가이드 북에 나와있는 노선도와는 약간 달랐다. 그래서 가이드 북의 노선도와 벽에 그려져있는 그림을 유심히 번갈아 가며 보고 있엇다. 그 때 누군가 영어로 말했다. 메이아이헬프유? 나는 나의 목적지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들도 거기 까지 간다고 하면서, 같이 가자고 했다.

  남자 셋, 여자 셋이었다. 세 커플 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중에서 영어를 제일 잘 하는 듯한 여자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영어로 이것 저것 이야기를 주고 받았고, 다른 사람들과도 나의 짧은 스페인어로 대화를 했다. 대학생. 나이는 21, 22살. 

  목적지에 내려 내가 어디로 가려고 한다고 말하자, 그들은 나를 안내해 주었다. 그 곳도 번화가 중의 하나였는지 사람들이 많았다. 공원 같은 곳에 둥글게 서서 담배를 피웠다. 담배를 다 피우자 왠지 서먹서먹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니들 술마시러 가냐?

그들은 웃으며 말했다. 응, 술마시러 가. 오늘 하우스 파티를 하기로 했거든. 그리고 덧붙였다. 너도 안바쁘면 같이 갈래?

하우스 파티? 나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얘들이 나를 어디 가둬놓고 돈을 갈취할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올드 시티를 돌아볼 계획을 취소하고 그들과 함께 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들을 따라, 하우스 파티를 한다는 애의 집으로 갔다.


 
7. 대학생들 그리고 하우스 파티.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난 아이들과의 하우스 파티. 그의 아파트에서 음악을 들으며, 술을 마셨다. 저렴한 와인 같은 것을 마셨는데, 도수는 그리 세지 않았다. 나에게 많은 술을 주었지만 내가 취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마존에서 배운 라틴 댄스를 추었고, 삼바와 살사도 추었다. 어우러져 사진도 찍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낮부터 저녁까지, 그리고 밤까지 놀았다. 

  라틴 아메리카의 사람들은 파티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춤도 정말 잘 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카라카스에서의 일정도 끝나가고 있었다.



  

- 벽에 그려져 있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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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 외곽의 빈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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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 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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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회






- 경찰 출동



- 파뤼파뤼 가는 중


- 원래 여기서부터 올드시티 구경을 하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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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붓하게 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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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댄스타임


- 시벨과 카를로스


- 그래피티




-출근길 지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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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브라질, 아마존 - 아마존의 과외 선생님들 - (Brazil, Amazon)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1. 2. 16.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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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가기 전 걱정 하는 것 중 하나가 의사소통에 관련된 것이다. "나 영어 못하는데 어떡하지?" 혹은 "남미는 영어도 안통하고 스페인어만 써야 한다며? 스페인어 공부해야해?" 혹은 "중동에서는 아랍어만 써야되는 거야?"라는 생각을 하고, 혹자에게 그런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그리고 실제로 여행을 떠나기 전 그 나라의 언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을 만나 볼 수도 있다[일주일간의 일본 여행을 위해서 일본어 책을 두권, 세권씩 가지고 일본어 공부를 한 달 하고 떠나는 사람을 본 적 있다]. 여행을 떠나기 전이나 떠난 후에 우리가 배우는 것은 언어 뿐만이 아니다.

  누군가는 여행을 하며 악기를 들고 다니기 위해 간단한 악기를 배우기도 한다. 누군가는 여행에서 좀 더 즐거운 파티를 즐기기 위해 춤을 배우기도 한다. 누군가는 여행에서 좀 더 즐거운 여행을 위해서 그 나라의 문화에 대해서 배우기도 하고, 음식에 대해서 배우기도 한다. 여행이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이유중 하나가 바로 여행 중에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특히, 그 배우게 되는 것이 자신이 상상하지도 못하던 것이었다면, 여행은 한층 더 즐거운 것이 될 수 있다.  
 

2. 즐겁게 배우고자 하는 마음.

  학교를 다니면서 조금의 용돈 벌이를 위해, 혹은 여행 경비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학원에서 강의를 하거나 개인 과외를 하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부터 고등학교 2학년 까지 다양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느낀 것. 학생들이 배우려는 마음이 없으면 내가 아무리 가르쳐 줘 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 
 
  나의 학창시절을 생각해 본다. 초등 학교 시절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 학원을 다닌 적 있으나, 그 마저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학원은 다니지 않고 놀러 다니기 바빳다[그 시절은 PC방이 없던 시절이라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총싸움을 하거나 미니카를 가지고 놀기도 했다] 물론, 공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은 눈꼽만큼도 없엇다. 중학교 때도 물론, 중3이 되기 전 까지 공부란 걸 몰랐고, 중3이 되어서야 내 스스로 공부를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때부터 공부를 했다. 그렇게 뭔가를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때 뭔가를 해야만 난 그 무언가를 재미있게 배울 수 있었다.

  유럽 배낭여행을 위해서 유럽의 역사에 대해서 공부 할 때도, 내가 재미있을 것 같아서 세계사를 공부할 때도, 그리고 여행에서 만나는 많은 일본인들과의 답답함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기 위해 일본어를 공부할 때도, 인도에서 잠베(djambe)를 배울 때도, 중동 여행을 위해 아랍어를 공부할 때도, 남미에서 생존하기 위해 스페인어를 공부할 때도, 모두가 내가 하고 싶어서 했고, 그 모든것은 고통이 아니라 나에게 있어서 즐거움이었다.


3. 포르투갈어 선생님 - 마르코(Marco)
 
  아마존 선착장에서의 4일. 그리고 아마존 강 위를 떠 가는 배 위에서의 4일. 선착장에서 만난 한 커플[파울리나(Paulina, 여, 칠레 출신)와 마르코(Marco, 남, 아르헨티나 출신)]. 배가 출항하기 전 나는 주로 그들과 함께 다녔다. 그 선착장에서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그들 밖에 없었고, 영어가 잘 안 될때는 나의 짧은 스페인어로 대화를 할 수 있었고, 그들은 나의 말을 포르투갈어로 번역을 해 주었다. 물론, 브라질 사람들이 하는 말을 영어 또는 스페인어로 번역을 해주기도 했고[마르코는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영어를 할 줄 알았다]. 

  사실, 나도 가이드북 뒤에 붙어 있는 포르투갈어를 가지고 공부를 했지만 역부족이었고, 스페인어와 헷갈리기만 했다.[어차피 브라질을 빠져나가면 또 베네수엘라와 쿠바로 갈 건데 그 때도 스페인어만 쓸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마르코와 파울리나 그리고 나는 선착장 앞에 있는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마르코가 말했다. Hey Jin, 너 포르투갈어 배워볼 생각 없어? 음, 혼자 공부중이긴 한데 어렵네. 여행하려면 배우는게 좋지. 그럼 내가 가르쳐 줄까? 응? 너가 그르쳐 준다고? 그럼 지금부터 나랑 파울리나가 스페인어랑 영어를 가지고 포르투갈어 가르쳐 줄게. 어때? 나야 좋지.

  가르쳐 준다는 말에, 배워 보겠다는 말은 그렇게 쉽게 나왔다.[의욕이 너무 앞선 탓]


4.                       
  포르투베유(Porto Velho) 여객선 선착장 근처의 한 식당에 세 명의 외국인이 있었다. 그들은 외국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주로 영어와 스페인어. 그리고 한국어와 일본어[파울리나는 대학에서 일본문학도 배운다고 하면서 약간의 일본어도 했다] 그리고 동양인 남자는 그들에게서 포르투갈어를 배우는 듯한 모양새였으나, 표정을 봐서는 그리 탐탁치 않은 듯 보였다.
  기본적인 단어에서부터,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는 것 까지. 그에게 있어 포르투갈어는 쉽지 않은 듯 보였다. 그의 표정에는 오히려 혼란한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마르코는 그에게 틈틈히 포르투갈어를 가르쳐 주려고 하였으나, 그는 어느덧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스페인어도 잘 모르는 상황에서 포르투갈어를 배우려 하니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 진 것이었다. 그는 처음에 열심히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이제는 포르투갈어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르코에게 말했다. 포르투갈어는 포기해야 겠어. 

  그에게 있어 포르투갈어는 오히려 더 부담이 되었는 지도 모른다. 그는 그냥 론니플래닛 스페니쉬 프라세북(Lonely planet Spanish prase book)만을 틈틈히 들여다 보며, 스페인어에 집중하기로 했다.



5. 배는 아마존의 물살을 갈랐고, 음악은 물살을 타고 강 양쪽에 끝없이 펼쳐진 숲으로 스며 들었다.

  배 위에서는 매일 밤마다 파티가 이어졌다. 다양한 음악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라틴의 경쾌한 음악도 한 몫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술을 마시며 그들과 떠들고 놀았지만, 춤을 추지는 않았다.[라틴 댄스를 출 줄 몰랐으니까]

  마르코와 파울리나는 리듬에 맞추어 서로 파트너가 되어 라틴 댄스를 추었다. 그러던 차에 파울리나와 마르코가 나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진, 춤 춰보지 않을래? 아, 난 라틴댄스를 출 줄 몰라. 그냥 구경만 할 게. 내가 가르쳐 줄 게. 같이 추자. 그렇게, 파울리나의 손을 잡고 무대로 나갔다.

  리듬에 맞춰, 오른 발을 앞으로 또 앞으로. 그리고 또 뒤로 또 뒤로. 내 발은 자꾸 꼬이기만 했고, 스텝을 맞추기가 어려웠다.[이래뵈도 리듬은 잘 타는 몸인데도 말이다] 그렇게 스텝이 꼬였다가 풀렸다가, 파울리나의 리드로 어느 정도 리듬을 타고, 음악에 몸을 맡겨 스텝을 밟을 정도가 되었다.

  주변에 춤을 추던 사람들도 내 주위에서 조언을 해 주었다. 자세를 교정 해 주고, 스템에 대해서 설명해 주고,[친절한 사람들] 그렇게 파울리나의 리드로 배 위에서 울려퍼지는 음악에 맞추어 라틴 댄스를 출 수 있게 되었다.

 
6.                       
  그는 춤추고 술마시고 노는걸 좋아하지만, 여기서는 왠지 좀 소되되는 것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한국의 클럽이나 콜롬비아의 클럽에서 흘러나오는 그런 음악과 다른, 그리고 그런 곳에서 추는 춤과는 좀 다른. 배 위에서는 라틴 음악의 리듬에 맞춰 라틴 댄스를 추고 있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파울리나의 도움으로 배 위에서 즐기는 파티에서 소외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는 어설프기는 했지만, 라틴 댄스를 췄다. 파트너도 파울리나에서 다른 여인으로 바꾸어 가며, 음악에 몸을 맡기며, 라틴 스텝을 따라가려 했다. 그는 배 위에서, 라틴 댄스를 배웠다.

  그리고, 나중에 베네수엘라의 하우스 파티에 라틴댄스를 조금은 더 능숙하게 출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7, 배 위의 사람들.

  많은 브라질 사람들과 다양한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은 다양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와서 남미를 여행하고 있는 커플은 신기한 악기를 가지고 다녔다.[탬버린 비슷한 것과 캐스터네츠 그리고 활 처럼 생겨서 하나의 현이 달린 악기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둘러 앉아 나의 잠베도 쳐 보고, 그 악기들을 간단하게 연주해 보았다. 모두들 그렇게 악기와 음악 그리고 술을 통해서 하나가 되고 있었다.

밤은 깊어 갔고, 우리의 목적지도 다가오고 있었다.



- 파울리나와 마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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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하는 사진. 중 하나.



- 댄스 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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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eling] 한국엔 없지만 아마존에는 있다.

- 길을 걷다, 세계여행/Feel-ing, 세계일주-ing, · 2011. 2. 15.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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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ond edit.



- 한국에는 없지만 아마존에는 있다.


수 천Km의 강줄기.
한국에는 없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끝없이 펼쳐진 숲.
한국에는 없다.

무엇보다도,
강 위에 떠 있는 배를 타고,
그 물살을 가르며
4일 동안 배를 타고 이동을 하는 것.
한국에는 없지.

배 위에 해먹을 치고, 모두가 음악을 들으며 함께 즐기고,
강 위에서 배를 타고 어디론가 간다는 것.

한국에는 없다.



Jan 20, 2010. Wed.
The Amazon, Brazil.



- The Amazon


- 여행자들


- 출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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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 아마존의 중심, 마나우스(Manaus).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1. 1. 30.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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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Amazon) 강 여객선 - 마나우스(Manaus) - 보아비스타(Boa Vista)



1. 그 도시에 대해서 안다는 것 - 그 곳의 역사(歷史)를 안다는 것-

  어떤 도시를 여행하기 전, 많은 정보를 접하게 된다. 그 도시에서는 어디에 머무를까? 그 도시에서 유명한 건 뭘까? 그 도시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은? 그 도시의 특산물은? 그 도시의 유명한 식당은? 등 여러가지 정보를 수집하고, 그 중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들을 모은다. 그리고, 또 한가지 중요한 것. 그 도시의 역사를 안다는 것.

  아는 만큼 보인다. 라는 말이 있다. 여행을 하다보면, 정말 아는 만큼 보인다. 어느 도시의 어떤 곳을 방문 했을 때, 아무것도 모르고 그 도시에 방문했다가는 정말 매력적일 수 있는 그 곳만의 매력을 놓쳐버리기 쉽다. 혹시, 우연히 만난 어떤 사람이 그 곳의 역사와 그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을 말해 줄 때 우리는 그냥 스쳐지나갈 뻔한 그 곳의 매력을 느끼게 되고, 그 곳은 하나의 공간에서 하나의 장소로 바뀐다.

  여행을 하면서 반드시 알아야 할 것 중 하나는 바로 그 도시의(혹은 그 곳의) 역사(歷史)이다. 그 곳의 역사를 안다는 것은 그 곳의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넘어서 그 장소에 대해서 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장소를 방문 했을 때 그 곳에서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그 곳은 새로운 느낌으로 나에게 다가온다.

  '역사'라고 해서 반드시 그리 진부한 것은 아니다. 그 곳에서 유명 연예인이 밥을 먹었던 것도 그 곳의 역사이고, 그 곳에서 영화 촬영을 했다는 것도 그 곳의 역사이다. 과거에 어떤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던 것도 그 곳의 역사가 될 수 있고, 어떤 곳에 어떤 건물이 어떻게 세워졌고, 어떤 내력을 가졌는 가를 알아가는 것도 그 곳의 역사를 아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역사는 지금 '내'가 바로 그 '공간'에서 그 곳을 바라보며 나에게 특별한 '장소'가 되도록 하는 것. 그것이 바로 가장 중요한 '역사'이다.



2.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의 실천.

  이집트를 여행하기 전, 이집트에 관한 책을 읽었다. 물론 그 전부터 이집트에 대해서 알고 있었지만 그 보다 더 자세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알고 싶었다. 어떤 피라미드가 누구에 의해 세워졌고, 어떤 의미가 있으며, 왜 만들어 졌는지. 왜 이집트는 이슬람 종교이고, 이슬람이라는 종교는 도대체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근원은 어디인지. 몇 권의 책을 통해서 역사에 대해서 알아갔다. 그리고 그 곳을 방문했을 때 그 곳은 나에게 새로운 역사가 되었다. 단지 머리속에 있던 공간이 나에게 의미있는 장소가 되었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따라 흐르는 여객선에 몸을 싣고, 몇 일 밤을 보낸 뒤, 마나우스(Manaus)에 도착했다. 아마존강 유역에 있는 도시 중 가장 큰 도시. 아마존의 중앙에 위치한 도시. 많은 배들이 여러 강줄기를 따라 그 곳에 도착했고, 또 출발했다. 그리고 그 도시는 MBC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을 촬영하기 위한 중심 도시가 되는 곳이기도 했다[물론 그 사실은 한참뒤에 알았지만]. 내가 아마존강의 습한 지역에 위치한 큰 도시에 도착했을 때는 아는 것이 없었고, 혼잡스럽기만 했다. 고요한 아마존강을 지나 도착한 문명의 세계. 그 곳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던 나에게 실천은 없었다.



3. 배는 선착장에 멈췄다.

  마나우스에는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비 속을 뚫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수십척의 배들,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지는 비. 그 빗줄기 사이로 보이는 아마존강은 마치 바다와 같았다. '강'이 아니라 '바다'. 수평선이 보일 정도의 큰 강. 강이 어떻게 이렇게 클 수가 있지? 역시 아마존이다.

  여객선 천장을 두드리던 굵은 빗줄기는 어느덧 얇아 졌고, 선착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배에 실려있던 짐들을 선착장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양파 수백 포대. 그리고 그 외의 각종 야채들. 아마존의 숲 속에서 재배된 다양한 채소들이 선착장으로 옮겨졌다. 나는 그것들이 다 사라질때 까지 해먹위에서 그저 일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비가 완전히 그치기를 바라고 있었다.



4. 비가 그치고 발걸음을 옮겼다.

  콜롬비아에서 온 친구와 나만이 배 위에 남았다. 그는 내일 다른 배를 타고 아마존강을 다시 거슬러 올라가서 콜롬비아 국경으로 갈 생각이라고 했다. 그리고 거기서 비행기를 타고 자신의 집이 있는 메데진(Medecin)으로 갈 거라고. 나는 그에게 내 짐을 좀 봐달라고 하고, 버스 정류장을 찾아 갔다. 시내 버스 정류장.

  버스 정류장 근처에 있는 경찰서에 물으니, 시외버스 터미널의 위치를 가르쳐 주었다. 택시를 타거나 버스를 타거나. 버스를 타고 시외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아직은 미숙한 포르투갈어를 더듬거리며, 여러 사람들에게 길을 물었다. 어디에서 내려야 하는지, 어디로 가면 시외버스 터미널이 있는지. 역시, 흔히 볼 수 없는 외국인에게 친절한 사람들. 하지만 경계는 금물.

  2014년 브라질 월드컵 경기장이 지어지고 있는 마나우스. 버스를 타고 가면서 월드컵 경기장 공사현장을 바라 보았다. 나에게 길을 가르쳐 주던 한 브라질 사람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월드컵 경기가 마나우스에서 열릴 거라고.



5. 도시를 배회하다.
  
  시외 버스 터미널에서 보아비스타(Boa Vista)로 가는 버스 시간을 알아보니 저녁 7시 야간 버스가 있다. 야간 버스로 약 12시간 거리. 가격은 150헤알. 역시 브라질은 한국과 물가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내버스 요금도 2헤알. 한국돈으로 약 1200원.

  다시 시내로 돌아와, 베네수엘라 영사관을 찾아 다녔다. 도시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니, 아마존의 중심 도시 답게, 시장은 사람들로 붐볐고, 많은 사람들로 거리는 혼잡했다. 대도시 답게 높은 건물들이 보였고, 그런 건물들 사이로 지은지 100년이 넘는다는 마나우스 오페라 하우스도 보였다[그게 오페라 하우스 인건,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알았다. 아마존의 눈물을 통해서]

  추적추적 빗줄기가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나는 발걸음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베네수엘라 영사관에 들렀고, 관광안내소에도 들렀다. 친절했던 관광안내소의 직원. 친절히 나에게 이것 저것을 일러 주었지만, 나는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나는 오늘 밤 그 도시를 떠나야 했기에.

  그저 비오는 거리의 골목을 헤집고 다녔다. 뭔가, 새로운 느낌을 발견하기 위해 애쓰는 동물 처럼.



6. 나에게 있어 마나우스의 의미.

  마나우스는 하나의 공간에 지나지 않았다. 그저, 아마존의 여객선을 타고 종착지로 도착한 공간. 그리고 브라질과 베네수엘라의 국경으로 가기 위해 들리는 중간 기착지. 그리고, 아마존에서 가장 큰 대도시. 대도시에 큰 흥미는 없었다. 그리고 그 때 까지 알지 못했다. 그 도시가 아마존이 수난을 겪기 시작할 때부터 커온 도시라는 것을.



7. 새롭게 다가온 마나우스에 대한 나의 회상.

  마나우스의 거리를 그냥 걸었을 땐 많은 의미를 알지 못했다. 도시 곳곳에 거대한 건물들이 그저 신기했을 뿐이고, 꽤나 오래 됐을 법한 건물들 사이를 지나면서도, 그저 오래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뿐이었다.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을 보면서 새롭게 의미가 다가왔다. 한 밤중 보트를 타고 아마존의 강을 가로지르다가 사고가 난 다큐멘터리 제작진. 그 곳은 내가 머물렀던 바다같던 마나우스의 선착장 주변이었다.  내가 신기하게 바라보며 사진을 찍었던 거대한 돔을 가진 건물. 그 곳은 유럽인들이 아마존을 파헤치기 위해 아마존으로 몰려 들고, 마나우스에 도시를 세우면서 만든 오페라 하우스였다. 아마존을 파헤치고 쌓은 부를 그 곳에서 과시했겠지.
  침략자 유럽인들에 의해 시작된 아마존의 파괴. 그리고 파괴와 함께 발전하게 된 마나우스. 그런 역사를 가진 도시. 그리고 그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미래에도 그럴, 아마존에서 가장 큰 도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많은 물건들이 몰려드는 마나우스.

  내가 그 곳에 머물 때는 하나의 '공간'이었지만, 지금 그 곳을 생각하면 그 곳은 나에게 하나의 '장소'가 되어있다.




- 마나우스 선착장. 비가 내리고 있지만 빗줄기는 사진 속에서 보이지 않는다.


- 비가 그친 후.


- 부두에서 나왔을 때 보이던 공원


- 오페라 하우스




- 많은 배들이 정박해 있던 선착장.




- 여객선 터미널 근처의 풍경.


- 버스를 나고 가다가 찍은, 월드컵 경기장 주변


- 시외버스 터미널


- 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


- 보아비스타로 가는 버스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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