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이야기] 호주에서, 워킹을 끝내다.

- 호주, 워홀이야기- · 2014. 8. 9.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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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rd Edit. 이 글은 2010년 11월에 썼던 것을 다시 다듬은 글 입니다.

1. 이런 대화를 한 적이 있다.
"난 특별한 목적없이 호주에 왔지만, 결과적으로는 만족해. 그래도 얻어가는게 있으니까."
"호주에 와서 영어도 많이 늘었고, 돈도 많이 벌고 이정도면 괜찮지."
"저도 여행경비 만들려고 호주에 와서, 목표[최소한의 목표- 여행경비 충당]는 이루었으니까 만족해요."

" '실패다', ´성공이다´ 라고 말하는건 웃기지만, 호주에 워킹와서 돈만 쓰다가 돌아가는 사람들도 많은데 이정도면 우린 최소한 실패한 케이스는 아니죠."[웃음]


2. 7월 22일 밤,
 비행기 좌석 앞에 설치된 모니터에서는 잠시 후 도착할 도시, 호주 퍼스(Perth)의 현재기온 11도, 날씨는 "비"라는 글자를 보여주고 있었다.

 퍼스공항.
 피곤하고, 정신도없고, 연착한 말레이시아 항공 승객들이 내가 탄 비행기와 동시에 도착해서인지 퍼스의 작은 국제공항은 더욱 혼잡스럽게 느껴졌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심사대를 빠져나오니 새벽 1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역시 듣던 대로 세관 검사가 까다로웠지만 무사히 통과했고,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첫차를 기다리기 위해 공항을 이리저리 배회하며 잠 잘곳을 찾아다녔다. 한 외국인 여행객이 공항 한쪽에 자리를 잡고 있기에 그 쪽에서 나도 같이 밤을 보낼 요량이었다.

 나는 호주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아는 사람도 없고, 숙소도 예약해 놓지 않았기 때문에 어디로 가야할 지를 몰랐다. 날이 밝으면 무작정 시내로 가서 어디로든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운 좋게도 한 한국인이 무료로 픽업을 해 주었고 자신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해 주었다. 그렇게 나의 호주 생활이 시작되었다.

△ 퍼스 CBD(Perth CBD) 야경.

2주간 실업자로 지낼 적에 찍은 것.


3. 호주에 오기 전, 내가 목표로 한 것.
1. 여행자금 600-700만원가량 모아서 가기.[미국, 중미, 남미 여행]
2. 오래 있지말고, 딱 3개월만 호주에 머물면서 돈을 모으기.
3. 스카이다이빙하기.
4. 서핑하기.
5. 일 끝나고 2-4주 정도 호주 여행하기.


4. 호주에 와서, 몸으로 느낀 것.
1.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퍼스의 경우 7, 8월은 겨울이기 때문에 농장/공장을 막론하고 일자리가 거의 없었다. 한마디로 '초 비수기'였다.
2. 호주의 임금이 생각 했던 것 보다 높았다. 호주에 오기전 시급을 15달러 선, 텍스를 제외하고 12-13달러 정도로 생각했는데, 실제로 일을 하면서 텍스를 제외하고 최고 22.5달러를 받고 일했다.[야간에 일을 할 때는 30달러까지 받은 적도 있다]
3. 서핑하기에 파도는 너무 좋은데, 웬만큼 수영을 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드넓은 대서양에서 흘러오는 파도가 장난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 풍랑주의보가 발효되었을 때 밀어닥치는 수준의 파도가 평소에 몰아 닥친다. 나는 몇 번씩이나 파도에 휩쓸렸고, 필사적으로 바다에서 빠져나오곤 했다]
4. 듣던 대로 호주 서부해안의 바다는 정말 깨끗하고, 좋았다.
5. 어딜 가든 한국 사람이 있다. 대도시엔 특히 더 많다.
6. 영주권을 따서 호주에 정착하려는 사람이 많았다. 살기 좋은 나라다?[많은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내가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한 나라가 있다. 그 중 한 곳으로 '호주'가 추가되었다.]


5 일에 대한 것.
  호주에 수요일 밤에 도착했고, 그 다음주부터 일을 시작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일을 빨리구한 축에 속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호주에 온 지, 2주 하고 이틀이 지난 뒤 일을 시작했다. 사실, 농장에 가기싫었는데 나에게 더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시간도 시간이었지만 내 수중에 돈은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기 떄문에 아무 일이라도 해야했다] 시간 = 돈.

 컨츄렉터 밑에서 여러 농장을 돌아다니면서 8월 8일부터, 9월 28일까지. 약 7주간 일했다. 그 동안 번돈, 텍스포함해서 5000달러가 조금 넘는 금액.[캐시로 돈을 받고 일한 경우도 있었다] 텍스 13%를 제외하고, 생활비를 제외하고, 아끼고 아끼고 아껴서 7주 동안 3천 달러 조금 넘는 돈을 모았다.
하지만, 내 목표금액에 턱없이 모자란 금액이었다. 그리고 호주 물가가 예상보다 훨씬 비쌌기 때문에 여윳돈이 필요했다.

△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서 카날본으로 가는 길, 로드하우스.


 약 2주가량 쉬고 나서카날본 농장에서 캐시잡으로 시간당 15달러, 4시간을 일했다. 이틀 뒤부터 퍼스 근교 '프리맨틀(Fremantle)'의 공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공장에서 약 9주간 일했다. 7주만 일할 지, 조금 더 일할 지 많은 고민을 하기도 했다. 일을 조금 더 하면 좀 더 많은 돈을 가지고 여유있는 여행을 할 수 있었고, 일을 빨리 그만두면 돈은 부족하지만 시간에 좀 더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공장엔 일거리가 넘쳐났다.
 하지만 항상 변수는 있고,[사실 돈 욕심이라는 것이 조금 생기기도 했다] 많은 고민을 했다. 

 날짜를 생각했다. 언제 떠나야 할까?

 내가 예상했던 비행기 표값(남미로 가는 비행기)이 약 100만원이었는데, 비행기 표를 미리 끊지 않아 '성수기'티켓을 끊을 수 밖에 없었다. 남미로가는 비행기 티켓이 250만원이었다.[편도였는데도 말이다!] 여윳돈 생각에 12월 초에 남미로 떠나기로 했다. 남미는 그때가 성수기 절정에 이르는 시기였다.

 하지만, 막판에 일주일만 일하면 100만원이라는 생각에 1주일 더 일하게 되었다. 100만원이면 남미 한달 생활비(?)라는 자기 합리화.[삶을 살아가는 가장 편한 방법이기도 하다. 자기합리화]

△ 공장일을 그만두기 전날 밤.

칸쿠와 미치. 칸쿠가 내 가방을 들고나왔다.


6. 12월 10일, 새벽에 마지막 일을 끝마치고, 페이를 받았다.

 공장에서 9주간 일하면서 번 금액, 16,000달러가 조금 넘는 금액, 텍스 3,600달러 정도를 빼고 내가 만진돈은 12,000달러.

사람은 역시, 버는 만큼 쓴다. 
공장에 일할때는 방값은 좀 비쌌지만 좋은 집에 살았다. 전형적인 호주의 전원 주택. 집에 정원,수영장이 있었다.
해보고 싶던 서핑도 했다. 서핑보드 새것의 가격이 최소 400달러였기에 중고로 저렴하게 구입했다.[현지인에게 구입했는데, 처음 제시 가격이 180달러였지만 협상을 통해서 155달러에 샀다]
해보고 싶던 스카이다이빙도 했다. 퍼스에서 좀 비싸긴 했지만, 560달러에 DVD까지 촬영했다.
스노클링을 하기 위해[할까 말까 살짝 고민했었던..] 스노클링 및 다이빙 장비를 풀셋으로 구입했다. 이왕이면 좋을 걸로 하자는 생각에 장비 가격만 600달러가 넘는 돈이 들었다.
차가 없었기에, 어디 자주 놀러갈 순 없었다.[시간적 여유가 많지도 않았다] 그냥 시티에서 여러 사람들 만났다.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농장에서 번 돈, 쓸 것 쓰고 남은돈 3000달러 정도가 없어져 있었다.[어디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내가 돈을 많이 썼다는 걸 느꼈다.
공장에서 번 돈도 꽤 쓴것 같았다.
나름대로 유명한 와인팜[호주 서부의 마가렛리버 근처의 와인팜 중에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와인팜이었다]에서 일한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와인을 14병 사서, 한국으로 13병 보냈다.[농장 안에 와이너리가 있어서, 저렴하게 살 수 있었다]
1병씩 보낼땐 40달러, 2병씩 세트로 보낼땐 60달러[와인 값보다 배송비가 더비싼...] 와인 보내는데만 500달러 정도 썼다.[한국에 와서 보니 2병이 도착하지 않았다!!]

△ 마지막 '와인 농장'이었던, 팸버튼의 도넬리리버 와인팜.


7.나와 호주, 그리고 여행.
호주 올 때, 내가 가지고 있던 돈, 현금으로 약 100만원.
호주에서 4개월이 조금 넘는 기간동안 번돈 약 2000만원

호주를 떠날 때, 내 통장 잔고에 찍혀있던 금액, 530만원,
호주를 떠날 때, 환전한 USD 약 1000달러,
호주를 떠나기 전, 내가 쓴 비행기표값 350만원.
호주에서 텍스로 호주 정부에 바친금액 약 400만원[한국에 와서 텍스리턴 신청해서 계좌로 360만원 송금받았다]

호주에 돈벌로 와서, 만족할 만큼(?) 돈을 벌었다.
호주에 와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호주에 와서, 많은 것들을 경험했다.
호주에 와서, 많은 것들을 보았다.
호주에 와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호주에 와서, 영어가 조금은 늘었다.
호주에 와서, 많은 생각들이 바뀌었다.

호주에 와서, 나는 생각했다. 최소한 실패는 하지 않았다고.
어느 정도 목표를 이루었고, 그리고 다른 목표를 위한 준비도 마쳤다고.


△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 시드니 시티 CBD 야경


△ 킹스크로스의 상징이자 자본주의의 상징인 '코카콜라'


△ 로킹햄(Rockingham)에서 스노클링 하던 시절.

 

△ 공장 일을 마치고, 퇴근길. 집 가는 길의 풍경.


△ 퍼스, 선셋코스트(Sunset coast) 마미안 비치.

전복을 따러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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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워킹홀리데이, 인생의 전환점 - 주인공은 바로 당신!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준비 · 2014. 6. 22.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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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워킹홀리데이(Australia Working Holiday).

많은 젊은이들이 '워킹홀리데이 '를 한 번쯤 생각해보곤 합니다. 실제로 주변에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사람도 있고, '떠나볼까'라는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워킹홀리데이, '20대'에만 할 수 있는 고민이고 '20대'에게만 주어진 특권이라고 할 수 있죠. 20대이기 때문에 워킹홀리데이를 통해서 또 인생의 또 다른 지향점을 발견할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필자도 호주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들고 호주로 떠난 적이 있습니다. 호주에서의 생활은 힘들기도 했지만, 필자의 삶에 있어서 큰 경험이었고,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필자에게 호주 워킹홀리데이에 대해서 많이 물어왔고, 많은 대답들을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제가 해 준 말을 요약하자면 '떠나고, 얻어라' 정도가 될 수 있겠네요.


 

△ 필자가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하면서, 주말에 바다에 나가서 다이빙을 하던 때.


 매일 반복되는 일상. 그 속에서 느껴지는 막연한 불안감. 우리는 '20대'라는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 고민들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한민국의 일상은 언제나 바쁘게 돌아가고, 치열한 삶을 살아가지만 무언가 부족함이 느껴지는 삶이 반복되고 있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내가 가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 그런 생각이 든다면 우리는 많이 '지쳐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워킹 홀리데이'라는 걸 생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죠. 낯선 환경에서 새롭게 시작해 보는 것. 새로운 도전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고, 자신을 넓혀 가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호주'. 그리고 '호주 워킹홀리데이'. 거대한 땅덩어리, 호주로 찾아가는 전 세계의 많은 젊은이들. 젊은이들이 찾아가는 이유는 그곳에서 내 안에 잠들어 있는 '가능성'때문이 아닐까요?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가는 목적은 다양합니다. 워킹홀리데이를 떠나면서 생각한 목표가 그곳에서도 이루어 질 지는 미지수이지만, 목표와 열정을 가지고 떠난 사람들은 호주워킹홀리데이를 통해서 자신의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합니다.



△ Australia Working Holiday Video.

'호주 워킹홀리데이,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 


- 간호사를 준비하던 사람이 '서퍼'가 되고,

- 호주에서의 경험이 커스텀 아티스트가 되게 했고,

- 인디밴드 윈디시티의 라국산씨의 호주에서의 경험은 자신의 음악 세계를 넓혀주었다.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는 사람들, 떠나려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워킹홀리데이는 '어학 연수'가 아닌 다양한 '경험'을 하는 기회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경험과 함께 '영어'는 옵션으로 따라오는 것이고, 그리고 그런 것들이 모여서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 이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 호주 워킹 홀리데이. '진정한 나를 찾는 곳'


- 소심한 A형, 겁없는 호주형으로 변하다.

- 차가운 공대생, 따뜻한 동물애호가로 변하다.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결심한 사람들, 떠날지 말 지를 고민하는 사람들. 그리고 '워킹 홀리데이'라는 것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호주 워킹홀리데이'는 자신의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 수도 있고,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도 있고, 진정한 나를 찾을 수도 있다는 것을요. 


 워킹홀리데이는 20대 만의 특권입니다. 그러나, '도전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 할 수 있죠. 우리의 인생은 참으로 짧지만 우리는 더 넓은 세상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를 찾지 못하기 때무에 '그저 그런 반복되는 일상'속에 갇혀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혹시 아나요? 호주 워킹홀리데이가 '즐거운 반전의 시작점'이 될지요. 물론,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떠날 때는 '목표'를 가지고 가야합니다. 그리고 열정은 필수라는 사실을 기억해야해요!

 

△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통해서 경험할 수 있는 것.


- 도서관 범생이가 해변의 다이버가 되다.




△ 호주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


- 하늘을 날다. 스카이 다이빙.

(필자가 호주 서부 퍼스 인근에서 스카이다이빙 하는 모습)


진정으로 꿈을 실현하기를 원한다면 안전망은 포기하라.

모두의 기대에 순응하는 것이 당신이 최우선 목표라면 당신은 개성, 즉 당신의 뛰어난 자질을 희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돈 워드


사람들이 갖고 있는 가장 일반적인 착오는 / 지금은 결정적인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날그날이 평생을 통해서 가장 좋은 날이라는 것을 / 마음 속 깊이 새겨 두어야 한다. 

- 애머슨


 두려워 하지 마세요. 그리고, 겨우 20대의 나이에 '시간이 촉박'하다고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고대 로마제국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20대'의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20대의 특권,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통해서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워킹홀리데이'를 갔다온 사람이 20대 후반, 30대가 됐을 때, 그 시절을 돌이켜 생각해 본다면 '그 때 경험이 아주 중요한 것이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고, 갔다오지 않은 사람은 '그 때 내가 왜 그런 경험을 할 생각을 못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은 항상 도전하는 사람들의 것이니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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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홀이야기] 호주, 퍼스 서핑동호회를 만들다!

- 호주, 워홀이야기- · 2010. 11. 14.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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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ond Edit


1. 호주에 가기 전, 
호주에 가면 하고 싶은 것 세가지가 있었다.

돈벌기[너무나도 당연한 것인가?]
서핑(Surfing)[호주의 바다는 서핑하기에 최고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나 또한 서핑이 너무 해 보고 싶었기에]
스카이다이빙(sky diving)[스카이 다이빙의 메카, 호주.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할 수 있다고 해서]
+a 호주여행?


2.
호주의 공장 일하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서핑 때문이었다
.[공장은 도시 주변에 있었고, 도시에서 가까운 곳에 바다가 있었기 때문에 나의 입맛에 딱 맞았다] 특히, 프리맨틀Fremantle에는 공장들이 많았고, 바다도 있었기에 내가 생각한 최적의 장소였다.
하지만, 현실은 나의 상상처럼 되지 않았다.

나의 상상...[수영장이 있는 집에 살면서, 주말에 집에있는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거나, 비치beach에 나가서 해수욕과 서핑즐기는 것.] 

처음 호주에와서 퍼스(Perth)에 머물면서 프리맨틀(Fremantle)에 왔을 때, 프리맨틀에서 일자리를 구해서 살고 싶었다.[정말 간절한 마음이었다. 물론 나 말고도 다른 워홀러들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시간은 흘러갔고, 통장의 잔고는 제로에 가까워 지고 있었다. 이제는 농장이든 공장이든 광산이든 원양이선이든 무엇을 해서라도 돈이 된다면 아무곳이나가서 일을 해야했다.
그래서, 농장으로 갔다[그것조차 운이 좋아서였다]


3. 농장에서 일할 때,
서핑은 무슨..호주에선 돈이나 벌어야지.  남미에가서 서핑 해야지뭐, 남미도 바다가 좋다고하니까라고 생각하면서 나 자신을 위로 했다.
농장 일이 끝나고 돈이 어느정도 모이면 캐언즈(Cairns)에 가서 스카이다이빙이나 하고 호주를 떠나야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호주에서 서핑하는 모습을 그렸었는데, 그것은 단지 상상에 불과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4. 새로운 농장 일을 구하러 카날본에 갔을 때,
  카날본은 바닷가에 위치한 조그마한 휴양 도시 같은 느낌을 풍겼다.바람도 좋았고, 사람들은 레저를 즐기러 찾아왔다. 나도 여기서 서핑을 해볼까?라고 생각했지만, 서핑보드의 가격이 만만찮았다.[최소 $400 이상하는 서핑보드. ]

농장에서 버는 돈으로 여행자금도 빠듯한 실정인데 어디서 그런 사치스러운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여행 내내 들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단념해야했다. 서핑 보드를 타고 파도를 가르는 나의 모습은 단지 꿈 속에서나 있을 법한, 아니면 그것은 저- 멀리 지구 반대편 먼나라 이야기였다.


5. 공장에 취직을 하고 나서,
 서핑에 대한 나의 마음이 다시 불타올랐다. 이젠 현실적으로 가능한 문제였다. 특히, 내가 일하게 된 공장은 프리맨틀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나는 자연스럽게 공장 근처로 이사를 왔다.

비록, 마땅한 집이 없어서 바다에서 약간 떨어진곳에 위치한 집이었지만, 괜찮았다.[버스를 타면 바다로 나갈 수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볼까 했지만, 호주의 땡볕에서 자전거를 타고 바다까지 간다는건 미친짓이었다]

집에 수영장도 있고,조그마한 잔디밭도있고. 서핑만 하면 딱이네 이거!


6. 공장에서 일하고 약 3주 후, 서핑보드를 샀다

호주 중고거래 사이트 검트리에서 호주애한테 중고로 서핑보드를 샀다.[어차피 한달정도 뒤에 호주를 떠날생각이었기 때문에 ]다시 떠날때는 서핑보드를 팔고 가야하니까, 싼걸로 샀다.[너무 좋은걸 사면, 제 값을 받고 팔기가 어렵고, 팔리지도 않을 것 같아서]  일단 호주에서는 맛만 보고, 기본만 하고 남미에서 제대로 좀 타보자는 생각이었다.


7. 11월,
날씨가 많이 더워졌다. 서핑보드도 있었다. 서핑을 하러 비치에 나가기 시작했다.[바다에는 많은 사람들이 서핑을 하고, 해수욕을 했다. 몸도 마음도 눈도 즐거웠다]
인도양 무서운 녀석. 인도양 저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과 인도양의 파도는 엄청났다.
우리나라에서 몰아쳐오는 파도와는 비교가 되지도 않았다.[우리나라 풍랑주의보때 몰아닥치는 파도 수준이었다]
역시,호주. 스케일이 달랐다.[그런데도 호주 애들은 파도위에서 춤을 춰댓다. 정말 부러웠다]


혼자 서핑을 해보니 심심했다. 그 때 마침! 다음카페의 퍼스커뮤니티 "퍼스 참을 수 없는 그리움 (일명, 퍼참)"의 취미생활 게시판에 서핑할 사람을 모집한다는 글을 보았다.

8. 그 글을 보고 난 뒤, 어느 토요일.
퍼스 시티(Perth city)의 울워스(woolworth)앞에 몇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서핑을 서로 배우고, 함께 즐기기 위한 사람들의 모임.
그렇게 처음, 다섯명의 사람들이 서핑보드를 들고 스카보로비치(scarborough beach)로 갔다.

스카보로비치는 퍼스지역에서 꽤나 유명한 비치라서 그런지 서핑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해변 잔디밭에 바베큐(BBQ)시설들도 많았다. 재미있었다. 서핑도하고, 비치옆의 마트에서 사온 간단한 먹을 거리를 가지고 바베큐파티도 하고, 술도 한잔씩하고.

9. 그렇게 시작했다.
퍼스, 최초의 서핑모임/동호회? - 서프 홀리데이 Surf holiday.[가칭, 공식적으로 이름을 정한 건 없었다] 


호주에서, 해 보고 싶었던 것 중 하나.
서핑을 해 보다.
그리고, 동호회 1기 멤버가 되다. - 1st member of Surf holiday.



- 서핑하러 갈 때, 사진기를 들고 나간적이 없어서;;



- With Surfing bo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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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 공장에 취직하다! - 02,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2. 5.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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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에서 일하기 위해 찾아간 카날본.
하지만, 프리맨틀의 공장에서 걸려온 전화.

우여곡절 끝에 미루게 된 인터뷰. 나에게 어떤 운명이 펼쳐질지 알 수 없었다.
전화영어(?)에 유독 약하던 내가, 어떻게 그렇게 통화를 자연스럽게 끝마쳤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아무튼, 난,
배신자, 양아치라는 칭호(?)를 얻었고, 요즘 호주 경기가 안좋아서 공장에서도 일하는 시간을 많이 안준다는 주변의 위협성(?)발언과 페이가 농장보다 적을 것이라는 말에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결정한 퍼스행.
퍼스로가는 버스표는 끊었고! 주사위는 던져졌다. 결과는 아직 미지수였지만..

그래도,
한가지 희망은 있었다.  "최소한 주에 40시간은 일 할 수 있다" 는, 프리맨틀에사는 형님의 말,,

토요일, 추석.
카날본의 농장에서 반나절 동안 일을 했다. 밥값, 방값이라도 벌어서 가자는 생각에,
캐시(Cash)잡이었다. 단 하루.
일을 끝내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농장주에게 말을 했다.
"내가 급한일 때문에 퍼스에 가게 됐는데, 혹시 나중에 다시 돌아왔을 때 일을 할 수 있겠냐"라고
농장주는 대답했다.
"일이 맨날 있는 건 아니지만, 일이 있으면 시켜 주겠다."라고

한 결 마음이 놓였다.


퍼스로 가는 버스,
많은 생각을 했다.
일이 잘 안풀리더라도, 이젠 카날본으로는 다시 못가겠다고. 남쪽으로 가야겠다고. 날씨가 이제 따뜻해 지고 있으니 이제 남쪽도 슬슬 농장들이 시즌을 시작하니까.


프리맨틀,
프리맨틀에서 가장 저렴한 백팩커를 찾아갔다. 역시 프리맨틀에는 백팩이 많이 없고,
관광도시의 성격이 강해서 그런지 가격이 퍼스시티(perth city)보다 가격이 비쌌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오래 있지는 않을 거니까.
빨리 쉐어를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월요일 오전 10시,
몇 시에 인터뷰를 보러올 수 있냐는 물음에, 나는 아침 6시에라도 갈 수 있다고 말했었다. 그만큼 절박함을 표현하고 싶었다/
10시에 인터뷰 약속을 잡고, 나는 10시 조금전에 도착해서, 리셉션에가서 말했다. 당당히.
"I have a interview ~"
역시나, 인사담당자에게 인터뷰 약속이 있는지 물어보더니 기다리랜다...ㅋㅋㅋ


잠시후,
금발의 키큰 여자가 나오더니, 나를 보고 인사를 했다. 다이애나.
그리고는 회의실 같은데로 가더니, 내가 쓴 어플리케이션을 보고 뭐라뭐라고 했는데, 어플리케이션을 쓸 때 하도 구라를 많이 적어놔서 기억이 하나도 안나서 긴장을 했는데, 그냥 웃으면서 간단한 인터뷰는 무사히 잘 넘겼다.
그리고, 페이 및 일하는 시간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었다.


기본 38시간, 오버타임 매일 두시간 이상,,조건은 괜찮았다. 거기다가 난 Afternoon shift(오후반)이라서 돈도 오전반보다 조금더 많이 받았다. 오전반X1.15... 시간당 21달러가 조금 넘는 돈이었다. 괜찮았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퀴즈같은걸 풀어오랜다..시험인가? 호주와서 두번째 시험이었다. 정말 열심히 풀었다..
블루카드만들 때 이후로 그렇게 열심히 글을 집중해서 읽은 적은 처음이었다.
통과!
그리고 고용계약서를 작성하고 회사보관용에 사인을 하고, 개인보관용을 하나 받고 사인을 했다..


다이애나와 함께 공장을 둘러보고나서,
내일부터 출근하라는 말을 들었다. 드디어 출근이구나!!


계산을 해 보았다. 돈 계산.
38 X 21 + 10 X 23(풀타임X1.5 임금, 1.5시간 오버타임) 이렇게만 해도 꽤 되는 돈이었다.

카날본에 있는 형에게 전화를 했다. 모든 일들이 잘 풀린것 같다고. 주당 40시간 이상 일할 수 있다고.
나중에 호주 뜨기전에 한 번 만날 수 있으면 만나자고.


화요일, 첫 출근. 오후4시.
일하러 왔다고 리셉션에 말하니, 다이애나가 나와서 어느파트냐고 묻길래 "Kitchen"이라고 말했다.
잠시 후, 키친파트 슈퍼바이저가 왔다. '미겔'
그리고 나서 나를 데리고 들어가더니, 일 하고 있던 한국사람 한명 부르더니 나한테 일을 가르쳐주라고 하고 훌쩍 떠났다.

난 아직 ID CARD도 안만들었고, 지문인식기에 지문도 등록안했는데,,일부터 하라니. 이런,
뭐 어쩌겠나? 일을 했다. 소세지 공장이라서 그런지 안은 냉장고 냉장실/냉동실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옷을 얇게 입고온 나는 추웠다. 그래도 꾹 참고 일을 했다. 열심히 해야지,,

오후 다섯시경,
야간반 사람들이 거의다 출근을 해서 그 사람들과 일을 같이 했다. 오늘 새로 들어왔다고. 그리고 여러가지를 물어봤고, 가르쳐주었다.
아마, 하루에 12시간씩 일을 하게 될 거라고. 요즘에 바빠서 그렇게 하고 있다고.
특히, 오후반은 사람이 적어서 한사람 한사람 역할이 중요하니까 열심히 하라고.
"하루에 12시간? 주5일에 60시간? 도대체 얼마를 벌지???"

많이 버는 만큼, 텍스도 많이 떼지만, 내가 이 공장에서 받게될 돈은 내가 처음 상상하던 수치를 초월했다.
못해도 일주일에 백만원이상은 벌 수 있다
는 말을 들었기에...

그렇게 공장이라는 곳에서 본격적으로 일하게 되었다.


농장에서 일할 때,

"사람들이 공장에서 일하고 싶다, 공장이 편하고 돈도 많이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었다.
나는 공장에서 일한 적이 없었기에 잘은 몰랐지만,
우스갯소리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인간 문명의 발달과정중 경제적인 측면을 볼 때,
1차 산업 - 2차 산업 - 3차 산업으로 바뀌었는데, 1차가 농업, 2차가 공업,,
다시 말해서, 농장보다 공장이 좋으니까 인간문명이 그렇게 발달했겠죠뭐,,,3차 서비스 - 금융..돈많이 버니까.."

"결론은, 농장보다 공장이 좋다는 것이었다."



- 가끔씩, 12시간 넘게 일을 하고 집에 가다보면 동이트고 있다. 멋있다.


- 같은 키친파트의, 칸쿠와 자바, 콩고출신의 형제. 흐릿한애는 패킹룸(Packing room) 클리너(Clea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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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e got the job! - 03, 대농장이란 이런곳!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1. 14.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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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간 농장에서 화이트와인용 포도나무의 푸르닝을 끝내고 다른 농장의 화이트와인을 하러 가야했다.
컨츄렉터와의 약속시간은 아침8시. 농장 근처의 로드하우스(Road house)에서 보자는 것이었다.

30-40분이면 올 수 있다는 말에 출발했지만, 이놈의 길은 가도가도 끝이없다.
서쪽에 펼쳐진 평원은 왜이리도 넓은지, 서쪽 해안까지 약 100km가까이는 되지만,
저 멀리 바다같은 것이 보일 정도다.
더 웃긴건 그냥 평야가 아니라 농장이라는 사실,


오지(Aussie, 호주사람)치고 약속은 드럽게 안지키는 컨츄렉터의 욕을 하고 있는데 때마침 와서, 농장으로 같이 갔다.

"Fini Olive"라는 우람한 대리석 간판이 있고, 그곳으로 갔다.
지평선 저 끝까지 뻗어있는 포장길, 그리고 양쪽에 지평선 끝까지 심어져있는 올리브나무.
'이것이 바로 대농장이구나'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 정말 엄청난 크기 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꽤나 유명한 올리프팜이었다.)

농장숙소,
방마다 냉/온풍기 및 위성 티비, 깔끔한 키친, 수백장이 구비된 DVD 및 Xbox 360,
거기다가 숙박비는 이틀에 15달러 !!
매일 청소하는 아줌마가 청소도 해주고, 샤워실에 샤워타월도 갈아준다.
역시,,,,,,,,,,대농장에서 일을 해야한다는 생각.

포도나무. 약 4천그루.......................
듣자하니, 농장주 부인이 취미로 키우고있다는 화이트와인 나무들이다..

'헐, 4천그루나 되는 나무를 취미로 키워? 거기다가 와인도 만들어서 취미로 마신단다........ㅁㅊ...' 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좋다,,,나에게 일거리를 주고 돈을 준다니......


그곳에서 시작된 날씨와의 싸움.
정말 날씨 말그대로 개판이었다... 엄청나게 빨리 흘러가는 구름들,,,,,,저 멀리 먹구름이 보이면 30분 이내로 비가 내린다...그것도 폭우가, 그러다가 10분뒤에 해가뜬다..
그러다가 30분뒤에 또 비가 내린다....그러다가 해가 쨍쨍하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무슨 날씨가 말그대로 개판이다..
일기예보가 필요없다...


아무튼, 정예(?)멤버 4명이서 5일만에 4천그루나 되는포도나무를 다듬다니! 이건 놀라운 일이었다.
컴츄렉터도 좀 놀랬는지,, 예상보다 일찍 일을 끝내서 내심 만족하는 듯했다.
미친듯이 일을 했으니까,,,,,,,,끝낼수있었지.

Fini Olive 에서 올리브식용유도 몇 개 챙겼다..ㅋㅋㅋ 300ml 한병에 마트에 9.99 달러하는 건데 잘 됐지뭐.

아직도 잊혀 지지 않는다.
끝없이 펼쳐진 올리브나무들, 그리고 엄청난 크기의 초원. 평야.
일을하다가 우리는 이런 대화를 주고 받았다.
"저 언덕뒤에 뭐가 있을까?"(포도밭 북쪽으로 언덕이 있었다)
그 뒤엔 분명히 농장주 전용 비행장이 있을 거라고,,,,,,,,,이야기했었다.



-비가온 뒤엔 항상 무지개가 떳다.


- 뱅글뱅글 돌아가는 빨래들,


- 마냥 하늘을 탓하는 동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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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돈벌기도 쉽지만 돈쓰기도 쉽다?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1. 12.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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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 돈을 벌기도 쉽지만, 돈을 쓰기도 쉽다." 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물론, 돈을 쓰는건 개인의 판단과 의지지만 말이다.


현재 본인이 일하고 있는 곳의 동료와 저녁을 먹으면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 남미가는 비행기 표값때문에 고민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와,
편도와 왕복의 요금차이가 1000AUD, 그리고 어차피 난 리턴티켓은 필요가 없고,
왕복을 끊자니 1000AUD가 아깝고, 다른 방법을 생각할려니 머리가 아프다.
라는 이야기.

동료 왈,
뭐 1000달러면 여기서 겨우 일주일 일하면 벌 수 있는 돈인데, 뭘 그렇게 고민하나?

본인 왈,
그렇게 천달러를 그냥 없애버리기보다는 여기서 일주일 덜 일하고 천불을 아끼는 방향을 찾는게 좋은 거겠지.
그리고, 여기서 일하니까, 천달러를 일주일에 벌 수 있는것이지, 천달러면 남미에서 한달생활비로 쓸 수도 있는 돈인데, 그렇게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야.


- 에피소드,
호주 농장에서 일을 하다가 만난 형이 한국을 간다고 해서, 마지막으로 술자리를 가졌다.
술은 내가 샀는데, 그날 술값 200달러가 나왔다.
술값 너무 많이 나온거 아니냐는 말에 나는 말했다.
"뭐, 하루일당 술먹는데 다 썻다고 생각하죠"

스노클링 장비가 필요해서 스노클링장비를 사러 갔다.
이제 남미와 호주는 본격적으로 여름이라 스노클링을 하려고 말이다. 저렴하게 구입할 생각이었으나, 이왕하는거 좀더 괜찮은 걸로 고르다보니 가격이 꽤 나왔다. 약 500달러.
옆에 있던 형이 말했다.
"좋은걸로 다 맞춰도, 이틀 일하면 다시 다 벌수 있네."

카지노를 가자는 말이 나왔다.
가서 딱 100달러만 하고 오자는 이야기.
"100달러면 반나절 일한 것 밖에 안되니, 그렇게 아까운 느낌이 안든다." 는 동료들의 말.


돈을 쓸 때,
그 기준을 어디에 두고 쓰느냐에 따라서 돈을 많이/ 적게 쓴다는 느낌이 달라지고, 그 가치에 따라서 아깝다와 아깝지 않다가 결정된다고 생각된다.

만약,
내가 한국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가정하고, 한국의 아르바이트 시급 5000원에 비유하면,
내가 소비한 돈들은 엄청 큰 돈처럼 느껴지지만,(실제로 큰 돈이 맞긴 하다)
지금 내가 호주에서 일을 하고 있기에(보통 최소 시급이 17.5달러) , 체감하는 돈의 무게가 줄어든다.

물론,
호주의 물가가 비싼탓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돈을 쓸 때 자기가 시간당 얼마를 버니까 이정도면 싼편이라는 식의 기준을 부여하고 있는 것 같다.(내가 만난 사람들을 기준으로 볼 때)

그렇게 되면,
돈을 쓰기가 정말 쉬워 진다.
지금의 본인은 다음 여행을 호주에서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돈의 가치를 호주가 아닌 남미와 미국에 두고 있다.
현재 호주에서 내가 아는 사람들과 내가 돈의 가치의 기준을 다른곳에 두고있고, 여행을 위해서 자금을 모으고 있는 나를 돈을 너무 아껴쓴다고 보고있다.(실제로 불필요한 건 사지도 하지도 않고 살아가고 있기도 하다)

아무튼,

결론은,
호주에서 돈을 벌기도 쉽지만, 쓰기도 쉽다는 말.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자기 하기 나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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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are looking for job? - 캐시잡(cash job) vs 텍스잡(tax job)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1. 2.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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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주에서의 일을 크게 두가지로 나누자면 어디에서 일하냐에 따라서 농장(Farm job)과 시티잡(City job)이 있다.
농장중에도 캐시로 임금을 지불하는 캐시잡이 있지만 극히 드물다.
캐시잡은 주로 시티잡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 가게를 비롯한 한국인이 중간관리자를 맡고있는 청소를 비롯한 각종 잡들, 그리고 타일데모도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캐시잡을 하면 뭐가 좋으냐??
1. 주로 시티에서 일을 하는 것.  - 생활이 편리하다. 물론 돈은 시골보다 많이 쓰게 된다.
2. 현금으로 바로 받는 다는 것. - 메리트인지는 모르겠다. 어차피 텍스잡도 통장으로 돈 들어오니까;
3. 귀찮게(?) 텍스리턴 신청할 필요가 없다는 것.
4. ????

그렇다,
본인은 처음에 퍼스 시티(Perth city)에서 머물면서 캐시잡을 구할 마음이 없었다.
왜??
임금이 적다.
청소의 경우 시간당 10~12달러다. 중간관리자인 한국사람이 중간 마진을 먹고 주는 거다...외국인 청소업체에서 일하면 시간당 18달러를 받을 수 있다.
다른 시티잡 - 식당이나 뭐 기타 여러가지 보통 13달러를 넘지 못한다.


자, 그럼 텍스잡은 어떤가?
텍스잡은 호주 국세청에 정식으로 일한다는 것을 신고하고 일을 시작한다. (처음에 일을 시작할 때 텍스디클레이션?을 작성하고 시작한다.)
따라서, 자신의 임금의 일정 부분을 세금으로 내도록 되어 있다. (보통 농장의 경우 13%, 공장의 경우 11~25%)

세금을 내면 뭐가 좋은가?
일시적으로는, 내 임금에서 세금이 빠져나가니까 손해보는 느낌이다.. (나도 첨에 그랬었다. 그리고 난 텍스리턴이라는 것도 몰랐으니까,)
텍스잡을 하면 호주 국가에 세금을 내고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자기가 속한 회사에서 연금도 넣어 준다.

무슨혜택을 받을 수 있나??
가장 대표적으로, 직장보험에 자동으로 가입이 되는 것이다. 임금에서 일정부분 납입되는 세금에 보험금도 포함되어있기 때문에 일을하다가 다치면 전액 병원비 보험처리가 된다.
(호주에 오면 알겠지만, 병원비 겁나 비싸다...그냥 의사 얼굴만 봐도 50달러 이상 줘야한다)
호주의 의료보험체계는 기본적으로 메디케어(medicare)의 틀인데, 이는 직장이 없거나 호주 시민이 아니면 혜택을 못 받는다. 하지만 워홀러는 합법적인 노동자이므로 텍스잡을하게 되면 직장보험이 가입이 되어 보험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연금도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갈 때 받을 수 있다. 물론 텍스도 리턴을 받을 수 있다.
(농장의 최저임금이 17.5 ~18 달러임을 감안할 때 텍스를 떼어도 15달러가 넘는다. 공장의 경우는 더 많이 받는다.)


결과적으로,
텍스잡을 해도 처음에 텍스를 일정금액 납부 하더라도, 나중에 한국에 갈 때 돌려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본인은 은행에 적금 붓고있다고 생각중이다..지금은 쓸수없는 돈이니까,)


결론을 말하자.
요즘은, 일을 구하기가 정말 어려워서 청소잡 조차도 경쟁이 심하다.(시티잡을 사람들이 선호하기 때문에)
하지만, 주변지역으로 조금만 눈을 돌려서 노력하면 농장에서 일을 할 수 있다.
돈이 정 급하지 않다면, 캐시잡보다는 정식으로 일을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다. (캐시잡은 따지고보면 탈세의 일종이고, 본인은 처음에 캐시로 돈을 받는것에 동의를 한 것이기 때문에 탈세혐의에 가담을 한 것이된다)


단, 어떤 일을 하든지, 자신의 선택이다. 어차피 일은 자기가 하고 돈은 자기가 받으니까.


본인은 위와 같은 생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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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e got the job! - 01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0. 31.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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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농장일을 하게된 것은, 와인팜Wine farm에서 포도나무를 다듬는 일이었다.

호주 농장에서 1년간 일한 형을 알게되어서 그 형한테 일을 구할 때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푸르닝(나무 가지를쳐서 나무를 다듬는 일)은 웬만하면 피하라고 한 이야기를 들었지만 우선은 돈이 급했기 때문에 하기로 했다. 농장일 중에서 제일 힘들면서도 후유증이 남는 일이라서 웬만하면 권하지 않는 일이라고 했지만 난 하기로 했다.

사실, 푸르닝을 그만둔지 지금 약 한달가까이 되었지만 손가락에 후유증이 남아서 손가락이 아직도 아프다...
누군가 이 글을 본다면, 무리하게 푸르닝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진짜 열심히 일했다,
그래서 인정받을 수 있었다. Hard worker라고, 그리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나를 반겨줬다.
난 팀 아월리 Team Hourly로 일했기 때문에 같은 팀 동료들이 일 잘하는 사람을 좋아해서, 내가 평균속도보다 좋게 나오니까 좋아했다.


내가 처음 일하게 된 곳,
퍼스에서 약 50Km 북쪽의 Bullsbrook에 있는 와인팜이었다. 정말 컷다...
숙소에서 아침 7시 와인팜으로 가서 일을 시작했다.

언덕사이에 있는 와이팜, 아침에 가면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있었고, 햇갈이 와인팜을 비추고 있었다.
포도나무 사이로 캥거루들이 뛰어다니고있었고, 저 언덕위에서 소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야생오리들이 개울가에서 놀고있었고,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다.

농장의 입구에는 오렌지 나무들이 자라고 있어서, 쉬는시간마다 오렌지를 따먹을 수 있었서 좋았다.
와인팜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오렌지나무를 기르고 있었다. 그 덕분에 난 24년간 내가 먹은 오렌지 개수보다 약 두달간 먹은 오렌지 수가 더 많을 정도였다...하루에 15-20개 정도는 먹었으니까,,ㅋㅋ

아무튼,
난 일을 할 수있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돈을 벌 수 있다는,,그리고 일주일에 500불 이상씩 모을 수 있었다. 시간당 18$  일주일에 40시간 이상씩 일할 수 있었고, 세금은 13%를 떼니까 숙소와 먹는것을 제외하고 500불 이상씩 저금할 수 있었다.

그 때부터 나의 생활은 즐거움의 시작이었다.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생활의 안정이 됨과 동시에 즐거움의 시작이었으니까,
그리고 같이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과도 즐겁게 보냈으니까.






- 처음으로 일했던 와인팜, 여기서 3주간 일했다.


- 내가 한달넘게 살았던 숙소,,,빗물을 받아먹고 살았다..ㅋ



- 숙소에 뜬 무지개,, 호주에서 무지개보기란 참 쉽다,,그것도 쌍무지개로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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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looking for job! - 04, 구직자에서 외국인노동자가 되기까지 03.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0. 27.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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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의 첫 주,
난 럭키가이라고 생각했었다.

호주에서의 둘 째주,
이대로 호주에서의 워킹은 실패로 끝나는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공장을 돌아다니면서 어플리케이션을 쓰러 다녔지만,
공장의 리셉션(Reception)에서는 하나같이 같은 말들을 반복했다.
"지금 시기에는 사람을 뽑지않으니까, 나중에 모집하게되면 연락주겠다."
"지금은 경제가 어려워서 사람들을 해고하고 있는 상황이다. 어플리케이션을 쓰는건 시간낭비다."
"지금은 겨울이라서 일거리가 별로 없다. 12월이나 1월에 다시 와라."  (어쩌라는거냐? 난 11월말에 호주를 뜰 거단말이다...)

아무튼, 저런 멘트들이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거기다가, 나의 몸상태가 조금씩 나빠지고 있었다.


아무튼,
일을 구하러 다니기 시작하고  2주가 다 지나가려 하고고 있었다.

금요일,
그 날도 에이전시에 들렀지만, 일이 없다는 소리를 들을 수 밖에 없었다.
힘이 빠졌다. 통장의 잔고도 이미 바닥이었다.

수없이 어플리케이션을 썻던 공장들은 무응답이었다. 보통 금요일날 인터뷰를 보고 월요일부터 일을 시작한다는 사람들의 말. 이미 끝난 것 같았다.

금요일 오후,
일을 구하러 돌아다닐까하다가, 힘도 나지않고해서 기분전환할겸, Blue cat(Perth시티의 무료버스)을 타고 스완강가(Swan river)로 갔다.  그 곳 벤치에 앉아서 많은 생각을 했다.
다음주까지 안되면, 걍 한국이나 갈까? 하는 생각.
한국가서 몇 달 돈 벌어서 미국이나 갈까 하는 생각.
그리고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
그리고 여행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들.

그리고, 저녁때 교회에나 가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통의 전화가 울렸는데, 퍼스에 처음 왔을 때 만난 형님이었다. 특별히 바쁜일이 없어서, 그 형님의 일을 도와 주었다. 어차피 그 형님도 교회에 다녔기 때문에 같이 교회에 가기로 했다.

금요일 오후 5시,
에이전시에서 한통의 전화가 왔다. 순간, 느낌이 왔다. 왔구나............. 금요일 오후 5시가 조금 넘은 시간.
에이전시는 4시 30분에 문을 닫는다. 왠일일까?
"Hello? this is Mr chang. speaking."
"Hi, Chang,, 어쩌고 저쩌고"

결론은,
일자리가 생겼는데, 당장 내일부터 일할수 있냐였다.
너무 흥분해서, 알았다고하면서 입에서 이상한 영어가 막 튀어 나왔다. 그래도 에이전시 메니져는 성격도 좋고 농담따먹기도 좋아하는 편이라서 나에게 농담도 하면서 자기와 만날 시간과 약속을 잡았다.

나는 나와 같이 있던 형님에게 말하고, 에이전시로 갔다.
막 퇴근하려던길에 나를 발견한 에이전시 메니져는 잘 왔다면서 나에게 일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었다.
그리고 행운을 빈다면서, 무슨일이 생기면 자기에게 전화하라고 명함을 건네주었다.

일에대한 소개가 적힌 종이와, 내가 일하러 가게될 곳의 전화번호, 주소, 준비물, 임금 등이 적힌 종이를 주었다.
그것을 받아들었을 때 그 기쁨이란!

마침, 그 날 텍스파일넘버(TFN, Tax file number)을 받았고, 모든것이 완벽했다.

그렇게, 일을 시작 할 수 있다는 생각과, 지난번처럼 펑크가 날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함께 내 몸속에 공존하고 있었다.


모든 것은 내일 결정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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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looking for job! - 02, 구직자에서 외국인노동자가 되기까지 01,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0. 21.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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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에 도착하고나서 첫 번째 일요일 저녁,
내가 머물던 백팩커스(Coolibah lodge)의 스텝에게 퍼스에서 좀 유명한 에이전시 4군데의 위치를 들었다.
그래서 난 월요일 에이전시를 방문할 동선을 짜고 나름대로 계획을 세웠다.


일요일 오전,
퍼스에 와서 우연히 알게된 사람이 다닌다는 교회에 갔었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점심을 먹고 여러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했다.

무엇보다도,
나는 호주에 순수 워킹이나 공부를 위해서 온 사람이 아니라 여행 중에 호주에 잠시 들러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여행을 하려고 하고 있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 주었다.
내가 호주에 머물려고 생각하는 기간, 3개월에서 최대 4개월,, 앞으로 여행에 필요한 여행자금 7천-8천달러.

나에게는 돈이 필요했고, 따라서 나의 최대관심사는 일자리였다. 물론 교회에서 많은 한국사람들이 있었고 일자리를 구하러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요즘은, 겨울이고 호주경제도 많이 나빠지고, 워홀러들도 많아져서 일구하기가 어렵다고들 했다. 작년에는 그나마 쉬웠지만 올해의 호주 경제가 최악??

아무튼, 나는 호주에 오기 전,
퍼스근처에 공장들이 꽤 있어서 공장에 취직을 하기가 쉽고, 돈벌이도 좀 된다고 들어서 공장에서 일을 하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공장에서 단기간에 돈을 좀 많이 벌 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월요일,
숙소를 나와서 열심히 걸었다. 첫 번째 에이전시로 갔는데 에이전시를 찾지 못했다..아직 퍼스지리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관계로 시간을 많이 낭비하고 있었다. 마음은 급했고, 다음 에이전시로 갔다.
오픈시간이 문 앞에 적혀 있었다. Mon 10:30 - 16:00, 현재 시간 09:30.
어쩔 수 없이 다른 에이전시에 갔다. 거기도 문은 닫혀 있었다. 오픈시간조차 적혀있지 않았다..
마지막 네번 째 에이전시에 갔다.

Hello,(중략), I'm lookoing for job.
where are u from?
South korea.
Cool, I have one farm job, Look,

그러면서 마침 10분전에 도착한 팩스같은걸 보여주었다.
캐시(cash)로 시간당 18달러,

- 호주에 온지 얼마 안되는 나로서는 캐시잡이 뭘 뜻하는지 몰랐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캐시로 일한다는 것은 세금을 떼지않고 바로 현금으로 내가 돈을 받는다는 뜻이었다. 따라서 나중에 텍시리턴을 신청할 필요도없고 신청해도 세금을 내지 않기 때문에 텍스를 받을 게 없다. -

퍼스에서 동쪽으로 200km 떨어져있고, 주 45-50시간, 3개월 이상 일 할 수 있는 조건. 계산해보면 주당 적어도 800달러 이상은 벌 수 있는 거였다.

하지만, 난 퍼스에서 공장에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해보고 나중에 다시 온다고 했다. - 이건 정말 미친짓한거였다고 나중에 뼈저리게 후회했다. 일은 있을 때 무조건 바로 Ok 하고나서 나중에 할지 안할지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에이전시를 갔는데, 거기는 오피스잡만 있고, 주로 여자들이 비서를 구해준다고했다. 거기다가 이력서(레주메, Resume)가 필요한데, 난 이력서조차 없었다...도대체가 난 정말 무대포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10시 30분, 마지막 네번째 에이전시에 갔다. 가서 내 신상정보와 아르바이트 경험등을 등록했다. 그리고 묻는 거였다.
"do you have a car?"

나는 차가 없었다. 그래서 말했다.
I dont have car. but my friend have a car.
그러자,
오후에 차있는 친구를 데리고 다시 오라고 했다. 난 알았다고 했다. 가고 안가고는 내가 판단할 문제니까.

월요일 오후,
밥을 먹고 있는데, 네번째 에이전시에서 전화가 왔다.
2시까지 올 수 있냐고, 차있는 친구와 함께. 마침 그 때 퍼스에서 만난 형님과 함께 있었는데, 그 형님도 일을 구하고 있다길래 같이 갔다.

잡 에이전시.
가니까 일이 있다고, 할 수 있냐고 하길래 조건을 들었다. 괜찮았다. 그렇게 오래 하는 일도 아니라서 난 잠깐 일하다가 다시 공장을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Ok 사인을 하고, 당장 가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농장주와 연락이 안되니까 내일 다시 이야기 하자고 했다.

난 숙소로 가서 짐을 다시 싸고 농장으로 갈 준비를 했다.

화요일 오후,
에이전시에 갔다. 사실 일이 잘 연결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한 마음이 마음 한켠에 이미 생겨 있었다.
역시나, 꿈자리가 불안했는데 일이 잘 되지 않았다.
에이전시에서 쏘리라고하면서, 농장주가 이미 사람을 구했다는 거였다.

그 때, 느꼈다. 일자리는 있을 때 바로 잡아야 된다는 것을.
어제 갔던 다른 에이전시에 가서 어제 농장일을 가겠다고 했더니 그것도 이미 다른 사람이 갔다고 했다.

일자리,
기회가 있을 때 무조건 가야 한다. 생각할 여유를 가지면 안된다.
생각은 일단, 간다고 말하고 난 뒤에 하는 거다.
한다고 하고 나서 일을 하고 안하고는 나중에 판단하면 되는 문제인 것이었다.

그렇게, 두개의 일자리를 모두 날려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그렇게 여행을 할 수 있는 나의 시간은 점점 더 줄어들었고 나의 통장 잔고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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