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이야기] 예비 워홀러들에게 고(告)하다.

- 호주, 워홀이야기- · 2011. 12. 10.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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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rd edit(2nd edit 10.12.08)


1.호주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고하다.

  내가, 호주에 머물면서 틈틈이 포스팅을 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많은 예비 워홀러들이 나에게 무언가를 물었고, 나 또한 호주에 입국하기 전 여행을 하면서 워킹홀리데이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호주에서의 성공을 꿈꾸었다.

  한 때, 나에게 조언을 구하던 여러 사람들 중에는 이미 호주에 도착해서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직 '호주'라는 광활한 땅에 가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호주에 도착했지만 일이 생각만큼 잘 풀리지 않아, 나에게 조언을 구하는 사람도 있다.
  나에게 많은 질문을 했던 사람들, 그리고 나의 글을 보면서 호주에서의 희망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딱 한가지다.

"열정을 가지고 가라. 그리고 자신의 목표를 확실하게 정하라"는 말.

  한번은 파랑새의 꿈 대구지부에 들른적이 있다.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기 전, 사전 교육 일정이 있다고 했다. 그 때 호주 워킹홀리데이에 대해서 이야기 해 주던 분이 해 준 말이 생각난다.  "자신의 목표를 확실하게 해야한다."

돈이면 돈, 영어면 영어. 하나라도 건져야 한다. 일단 한가지에 목표를 두고 열심히 하라는 뜻이다.


  나의 목적은 돈이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여행 경비.
호주와 남미, 중미, 미국 여행을 위한 여행 경비가 필요 했다.
그리고, [나의 호주이야기를 보면 알겠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 내가 호주에 있을 때,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과 연락을 한 적 있는데, 호주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일은 여전히 힘들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이 노력한다면 얼마든지 길은 있다고 생각한다.[나와 연락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정말 노력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운도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 나의 이야기.

  처음, 호주 퍼스(Perth)에 갔을 때, 나는 정말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호주에 도착해서 무작정, 일을 구하러 다녔다. 처음 백팩에서 만난 아일랜드 가이 '말리키', 그리고 백팩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인 스탭에게 들은 정보, 처음 간 교회에서 들은 정보 등 그들에게서 정보를 얻고, 계획을 짜고, 그리고 몸을 움직였다. 부지런히 다녔고, 필사적이었다.[여기서 멈추면 내 여행도 끝이라는 생각에]

  매일 아침,
  퍼스 시티(Perth city)의 에이전시가 문을 열기전부터 기다리다가, 문을 열자 마자 안으로 달려 들어가 직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항상 그들이 나에게 해 준말은, 일이 없으니 다음에 연락을 주겠다.였다.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 마다 웃으면서 나왔다[마음은 좋지 않았지만]. 일자리를 얻기 위해 한국에서의 아르바이트 경험은 물론, 군대에서 했던 일도 거창하게 이력서에 써 넣었다. 물론, 하지 않은 일도 해 봤다고 적었다. 할 줄 모르는 것도 일단 할 수 있다고 우기면서, 대단한 능력자인 것처럼 행동했다.

  한번은,  the job shop 이라는 에이전시에서, 나에게 일자리를 주기로 했다. 그날 밤, 나는 기쁜 마음으로 모든 짐을 다 싸놨지만, 마지막에 그 일자리가 나와 같은 에이전시에서 일을 구하던 프랑스애들에게 넘어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는 끓어 오르는 분노를 억지로 꾹 눌러서 참았다. 아니 분노를 누를 수 밖에 없었다. 그 프랑스 애들은 트랙터 자격증이 있었고, 나보다 영어를 잘 했기에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여기서 내가 화를 내면, 혹시라도 나에게 돌아올 지 모르는 다른 일자리 마저 없어질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 일을 겪으면서도, 매일 에이전시에 드나들었다. 나는 내가 성실하다는 것을 보여 줘야 했고, 부지런 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고, 나는 결국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나를 믿게 만드는 방법은 부지런함을 직접 보여주는 것 뿐이었다]

  두 번째 일을 구할 때는 더 힘들었다. 나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었다. 거기다가 여행을 위한 자금은 충분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비행기 푯값은 치솟고 있었다.

  매일 아침, 모두가 잠들어 있는 시간 일어나서 씻고, 백팩에서 제공해주는 아침을 먹고, 백팩에서 제공해주는 빵과 잼으로 도시락을 쌌다. 그리고 공장 지대를 돌아다니면서 어플리케이션을 썼다. 공장 지대의 길 모퉁이에 앉아, 심란하고 우울한 마음으로 맛없고, 건조한 빵을 질겅질겅 씹던 기억이 있다.
  
  때로는 무턱대고 공장 오피스를 찾아다녔다.,그리고는 직원에게 인터뷰 하러 오라는 전화를 받았다며, 인사 담당자를 만나게 해 달라고 떼를 쓰기도 했다. 그럴 때면, 문전 박대를 당하기도 하고, 인사 담당관을 만났지만 거절 당하기도 했고, 미친놈 취급을 당하면서 쫓겨 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절박한 심정이었기에, 무엇이든 하려고 달려든 것이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한때는, 공사장에서 노가다라도 할 요량으로, 블루 카드(Blue card : 공사장같은 곳에서 일하려면 필요한 카드)를 만들기 위해, 신문 광고를 뒤져 가장 싼 가격으로 블루 카드를 발급해 주는 직업 훈련소에 가서 교육을 받고, 시험을 보고, 블루 카드를  발급 받았다. 블루 카드 발급을 위해 교육을 받는 내내, 혹시나 교육을 받고 나서 시험에 불합격 하여 블루 카드를 받지 못할 까봐, 필사적으로 문제를 풀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중고차 매장들을 돌아다니며, 세차라도 할 수 있게 일자리를 달라고 해 봤고, 이삿짐 센터에도 찾아가서 물건을 잘 나른다고 일을 시켜 달라고도 해 봤다.
  매일, 혹시 오늘은 내가 어플리케이션을 쓴 공장에서 전화가 오지 않을 까.라는 생각에 항상 전화기를 붙잡고 전화벨이 울릴 때 마다 가슴을 조리던 적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노력한 만큼 운이 따랐고 좋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처음, 농장에서 일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내가 이력서를 넣었던 에이전시에서 연락이 온 적이 있다. 일자리가 생겼다고 연락이 온 것이었다. 그것도 내가 열심히 눈도장 찍은 결과가 아닌가 싶다.
  어플리케이션 쓰러 갈 때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었고, 에이전시에서도 직원 앞에서는 항상 웃는 얼굴르 그들을 바라봤기 때문이 아닐까.



3.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한국 사람이라는 걸 이용해서 한국 사람이 한국사람을 상대로 등쳐먹는 사람이 많다고들 하는데, 그런건 정말 자기가 잘 판단해서 피해야 한다. 누구도 그 상황에 도움을 줄 수 없다.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는,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은 착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일부는 정말 쓰레기같은 친해지기 싫은 사람이 몇 몇 있다는 것이 문제다] - 나는 모든 사람이 나보다는 착하다는 생각을 하며 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처음 호주에 갔을 때 만났던 유동환 형님.정말 고마웠다.[그땐 차마 말을 못했고, 마지막에 인사도 못하고 떠나서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퍼스, 라이프라인(Life line)장로 교회 사람들 그리고 지금은 영주권 준비하고 있을 형진이형, 영희누나 등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준 사람들 모두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호주에 갔을 때, 처음 나의 룸메이트가 되었던 아이리시 가이(Irish guy) 말리키.[밤마다 함께 악기를 연주하며 즐거운 생활이 될 수 있게 해 준 친구다], 처음 농장 일을 할 때, 같은 팀에서 일하게 된 너무 착해서 탈이었던 스티브 형님, 지금은 한국으로 돌아온 희훈이형 그리고 아직 호주에 있는 창욱이, 지훈이형 등. 특히 농장에서 같이 일했던 사람들은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내가 너무 열심히 일해서, 형들이 나에게 구박을 많이 했지만, 모두들 함께 해 주었기에 고마웠다.]
 
 나와 함께 있던 모든 사람들이 나의 목적을 알고 있었기에, 나의 마음을 잘 이해해 주었다. 단기간에 최대한 돈을 많이 벌고 싶어하는 나를 다 이해해 주었다. 맨날 나에게 쫌생이라고 놀리면서도 나를 많이 도와 주었던 사람들. 카날본에서의 사건과 퍼스에서의 재회.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주고 많은 걸 베풀고 알려주었던 외국인들.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난 사람을 만나는 것에 있어서, 운이 좋았다. 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호주로 가는 모든 한국인들,
꿈과 열정을 가지고 떠나는 한국의 젊은이들.
모두 "성공[성공이라는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좀 웃기지만]"하길 바란다.


- Winthrop, 프리맨틀 공장 다닐 때 살던 곳.


- 퍼스 시티,



- 시티의 입구

 


- 론돈아이? 런던아이 모조품 ㅋ



- 교회 사람들과 처음이자 마지막 나들이



- 불크릭 스테이션.



- 퍼스 시티 맥도날드



- 팸버튼 포도밭



- 불스브룩(Bulls brook) 판자촌



- 휴게소



- On the Road



- 스카이다이빙




- Mr, 드루먼(Drument). 처음 널 만났을 때 정말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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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홀이야기] 얻은건 무엇인가? 돈이면 충분하다? - 호주에서,

- 호주, 워홀이야기- · 2010. 11. 10.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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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cond Edit

1. 언젠가,
호주에서 만난 누군가가 나에게 말했다. "호주에서는 돈만 만들어 가면 된다고."


2. 언젠가,
공장에서 일 할 때
공장의 한 동료가 말했다. "호주에서 얻는건 돈이면 충분하다고,"
자신은 1년간 공장에서 일하면서 엄청난 돈을 모았다고.
그리고, 한국으로 가기 3일전 까지[공장을 그만두는 날 까지]도 밤 늦게까지 일을 했다.


3. '돈이면 충분한가?'라는 의문을 가져본다.
나는 농장에서 힘들게 일을 했지만 돈은 많이 받지 못했다.[공장에서 받는 돈에 비교 할 때 말이다. 물론 다른 농장에서 일 할 때 버는 돈의 평균 이상의 돈을 벌었다]

하지만, 농장에서는
추억과 경험과 사람을 얻었다. 내 인생에서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를 그런 풍경들을 보았다.[농장과 농장사이를 돌아다니며 일을 하다보니, 정말 멋진 경치를 많이 볼 수 있었다.] 


4.
'그'에게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 돈이면 모든걸 다 커버할 수 있다(보상 받을 수 있다)는 그에게.


5.
나 또한 호주에 온 가장 큰 목적은 돈을 벌기 위해서이다[여행 중 호주에 와서 일을 하면서 여행 경비를 충당할 목적으로 왔으므로].

하지만,
나 자신에게 되물어 본다.
"돈이면 충분한가?"




- 호주의 돈.


- 농장 근처의 숙소에 지는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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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narvon, Australia / 카날본, 호주 / 2009.10.3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09. 12. 26.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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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백개의 농장이 있는 곳, 카날본

   

+퍼스Perth - 카날본Carnarvon, Greyhound Bus, 14hr, $190(Vip 할인 $160)
+카날본 백팩커스, 6인도미토리, $20.

 

- 카날본엔 농장이 있다.

농장에서 일하기 위해서 찾아간 카날본.
바나나로 유명한 서부의 작은 도시였어. 이른 아침, 카날본의 시내에 진입하면서 본 풍경은 끝없이 펼쳐진 농장. 바나나 농장.

수백개의 농장들이 있고, 수십가지의 과일, 채소들이 자라고 있었어.
마트에서 비싼가격에 판매되는 채소, 과일들이 여기에선 그냥 버려지고 있었어. 최고의 품질, 최상의 품질이 아니면 모두다 버려지는 과일, 채소들.

최고의 퀄리티를 추구하는 농장주들?

 

 

- 휴양도시, 카날본.

처음 카날본의 시가지에서 느낄 수 있었던 느낌은, 휴양도시같다는 느낌.
한적하고 조용한 휴양도시.
실제로, 호주 사람들은 차에 카누, 보트를 싣고 카날본에 오는걸 보았어.
바람은 마치, 지중해에서 부는 산뜻하면서도 시원한 바람, 이집트 다합의 홍해에서 느꼈던 그런 분위기가 감도는 그런 도시의 분위기.

 
바다엔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어. 엄청나게 큰 고기들이 잡히고, 킹크랩(King crab)들이 바닷속을 기어다니는 그런 곳. 카날본.

 
이런 곳에서 일을하기보다는,

몇 일 푹- 쉬다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일을 하더라도, 주말에 여유있게 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

 
서핑하기에 좋은 바람이 불고 있었어.
서핑을 하고싶어하던 나에겐, 좋은 바람이었지. 햇살은 따갑지만, 바람이 시원했던 카날본.

 
휴양지같은 느낌의 카날본, 그렇지만 수백개의 농장에서 일을 하러 찾아가는 카날본.
휴양과 일, 두 가지를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카날본

 




- Roadhouse, to Carnarvon


- 길가 풍경,


- 끝없이 펼쳐진 바나나 농장


- 카날본의 밤거리, 에버리진조심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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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 공장에 취직하다! - 02,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2. 5.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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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에서 일하기 위해 찾아간 카날본.
하지만, 프리맨틀의 공장에서 걸려온 전화.

우여곡절 끝에 미루게 된 인터뷰. 나에게 어떤 운명이 펼쳐질지 알 수 없었다.
전화영어(?)에 유독 약하던 내가, 어떻게 그렇게 통화를 자연스럽게 끝마쳤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아무튼, 난,
배신자, 양아치라는 칭호(?)를 얻었고, 요즘 호주 경기가 안좋아서 공장에서도 일하는 시간을 많이 안준다는 주변의 위협성(?)발언과 페이가 농장보다 적을 것이라는 말에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결정한 퍼스행.
퍼스로가는 버스표는 끊었고! 주사위는 던져졌다. 결과는 아직 미지수였지만..

그래도,
한가지 희망은 있었다.  "최소한 주에 40시간은 일 할 수 있다" 는, 프리맨틀에사는 형님의 말,,

토요일, 추석.
카날본의 농장에서 반나절 동안 일을 했다. 밥값, 방값이라도 벌어서 가자는 생각에,
캐시(Cash)잡이었다. 단 하루.
일을 끝내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농장주에게 말을 했다.
"내가 급한일 때문에 퍼스에 가게 됐는데, 혹시 나중에 다시 돌아왔을 때 일을 할 수 있겠냐"라고
농장주는 대답했다.
"일이 맨날 있는 건 아니지만, 일이 있으면 시켜 주겠다."라고

한 결 마음이 놓였다.


퍼스로 가는 버스,
많은 생각을 했다.
일이 잘 안풀리더라도, 이젠 카날본으로는 다시 못가겠다고. 남쪽으로 가야겠다고. 날씨가 이제 따뜻해 지고 있으니 이제 남쪽도 슬슬 농장들이 시즌을 시작하니까.


프리맨틀,
프리맨틀에서 가장 저렴한 백팩커를 찾아갔다. 역시 프리맨틀에는 백팩이 많이 없고,
관광도시의 성격이 강해서 그런지 가격이 퍼스시티(perth city)보다 가격이 비쌌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오래 있지는 않을 거니까.
빨리 쉐어를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월요일 오전 10시,
몇 시에 인터뷰를 보러올 수 있냐는 물음에, 나는 아침 6시에라도 갈 수 있다고 말했었다. 그만큼 절박함을 표현하고 싶었다/
10시에 인터뷰 약속을 잡고, 나는 10시 조금전에 도착해서, 리셉션에가서 말했다. 당당히.
"I have a interview ~"
역시나, 인사담당자에게 인터뷰 약속이 있는지 물어보더니 기다리랜다...ㅋㅋㅋ


잠시후,
금발의 키큰 여자가 나오더니, 나를 보고 인사를 했다. 다이애나.
그리고는 회의실 같은데로 가더니, 내가 쓴 어플리케이션을 보고 뭐라뭐라고 했는데, 어플리케이션을 쓸 때 하도 구라를 많이 적어놔서 기억이 하나도 안나서 긴장을 했는데, 그냥 웃으면서 간단한 인터뷰는 무사히 잘 넘겼다.
그리고, 페이 및 일하는 시간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었다.


기본 38시간, 오버타임 매일 두시간 이상,,조건은 괜찮았다. 거기다가 난 Afternoon shift(오후반)이라서 돈도 오전반보다 조금더 많이 받았다. 오전반X1.15... 시간당 21달러가 조금 넘는 돈이었다. 괜찮았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퀴즈같은걸 풀어오랜다..시험인가? 호주와서 두번째 시험이었다. 정말 열심히 풀었다..
블루카드만들 때 이후로 그렇게 열심히 글을 집중해서 읽은 적은 처음이었다.
통과!
그리고 고용계약서를 작성하고 회사보관용에 사인을 하고, 개인보관용을 하나 받고 사인을 했다..


다이애나와 함께 공장을 둘러보고나서,
내일부터 출근하라는 말을 들었다. 드디어 출근이구나!!


계산을 해 보았다. 돈 계산.
38 X 21 + 10 X 23(풀타임X1.5 임금, 1.5시간 오버타임) 이렇게만 해도 꽤 되는 돈이었다.

카날본에 있는 형에게 전화를 했다. 모든 일들이 잘 풀린것 같다고. 주당 40시간 이상 일할 수 있다고.
나중에 호주 뜨기전에 한 번 만날 수 있으면 만나자고.


화요일, 첫 출근. 오후4시.
일하러 왔다고 리셉션에 말하니, 다이애나가 나와서 어느파트냐고 묻길래 "Kitchen"이라고 말했다.
잠시 후, 키친파트 슈퍼바이저가 왔다. '미겔'
그리고 나서 나를 데리고 들어가더니, 일 하고 있던 한국사람 한명 부르더니 나한테 일을 가르쳐주라고 하고 훌쩍 떠났다.

난 아직 ID CARD도 안만들었고, 지문인식기에 지문도 등록안했는데,,일부터 하라니. 이런,
뭐 어쩌겠나? 일을 했다. 소세지 공장이라서 그런지 안은 냉장고 냉장실/냉동실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옷을 얇게 입고온 나는 추웠다. 그래도 꾹 참고 일을 했다. 열심히 해야지,,

오후 다섯시경,
야간반 사람들이 거의다 출근을 해서 그 사람들과 일을 같이 했다. 오늘 새로 들어왔다고. 그리고 여러가지를 물어봤고, 가르쳐주었다.
아마, 하루에 12시간씩 일을 하게 될 거라고. 요즘에 바빠서 그렇게 하고 있다고.
특히, 오후반은 사람이 적어서 한사람 한사람 역할이 중요하니까 열심히 하라고.
"하루에 12시간? 주5일에 60시간? 도대체 얼마를 벌지???"

많이 버는 만큼, 텍스도 많이 떼지만, 내가 이 공장에서 받게될 돈은 내가 처음 상상하던 수치를 초월했다.
못해도 일주일에 백만원이상은 벌 수 있다
는 말을 들었기에...

그렇게 공장이라는 곳에서 본격적으로 일하게 되었다.


농장에서 일할 때,

"사람들이 공장에서 일하고 싶다, 공장이 편하고 돈도 많이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었다.
나는 공장에서 일한 적이 없었기에 잘은 몰랐지만,
우스갯소리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인간 문명의 발달과정중 경제적인 측면을 볼 때,
1차 산업 - 2차 산업 - 3차 산업으로 바뀌었는데, 1차가 농업, 2차가 공업,,
다시 말해서, 농장보다 공장이 좋으니까 인간문명이 그렇게 발달했겠죠뭐,,,3차 서비스 - 금융..돈많이 버니까.."

"결론은, 농장보다 공장이 좋다는 것이었다."



- 가끔씩, 12시간 넘게 일을 하고 집에 가다보면 동이트고 있다. 멋있다.


- 같은 키친파트의, 칸쿠와 자바, 콩고출신의 형제. 흐릿한애는 패킹룸(Packing room) 클리너(Clea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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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배신자인가?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1. 29.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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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일 목요일.  PM 4:00.
퍼스(perth)에서 일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카날본으로 떠나기로 결정한 세 남자.


오후 다섯시.
그렇게 퍼스를 떠났다.


10월 3일 금요일,
1000Km 북쪽으로 차를 달려 도착한 작은 해변도시. 카날본Carnarvon. 열대기후에 가까운 곳.
일년 내내 바나나 농사를 하고 있는 곳. 일년 내내 농장일이 있는 곳이라는 말을 듣고 온 이곳.

일을 찾기위해 농장을 돌아다니던 중 어디선가 걸려온 한통의 전화...


프리맨틀의 어느 공장 에서 걸려온 전화.
그리고 그 날 오후 1시까지 공장 오피스로 면접을 보러 오라는 통보.

하지만, 절대 갈 수 없다.

3시간 만에 1000km가 넘는 거리를 무슨수로 간단말인가? 비행기도 없는 곳에서..
우여곡절끝에 인터뷰는 월요일로 미뤘고,
수 많은 고민 끝에 퍼스로 돌아가기로 한다.


다른 두 남자의 만류.
함께 카날본에서 일하자는 제안. 같이 있자는 제안.
모든 미련을 버리고 여기까지 왔으면 깔끔하게 여기서 새로, 함께일하자는 그들.
이미 농장도 잡았는데 퍼스까지 돌아 갈 필요가 없잖냐면서, 같이 있자는 그들.


갈등.

돈과 여행과 정(情)과 사람들.
그토록 기다리던 기회.

이 기회를 놓치기 싫었다. 
그리고 마음 한 구석엔 그들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혼자이고 싶었다.
이젠 새로운 곳에서 다시 한 번 시작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결정한 퍼스行.

만남과 헤어짐.
일과 일자리.
떠남과 정착.
여행자,

워홀러의 숙명이라고 믿고 싶다.







- 퍼스로 가는 길, 로드하우스.


- To Perth.


- Greyhound From Carnarvon.


- 카날본의 밤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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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e got the job again!! - 하루만에 두개의 일자리를 구하다!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1. 28.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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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넘어로 뻗어있는 도로를 달려 퍼스Perth에서 카날본Carnarvon까지 와버렸다. 997km.


오전 6시,
꿈을 꿨다. 왠지 기분이 좋은 꿈. 카날본으로 가는길이 상쾌했다. 왠지 일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오전 8시.
카날본 시티센터에 도착을 했다.
여기가 카날본이구나..! 정말 휴양지같은 느낌이었다. 실제로 요트나 카약같은걸 차에 싣고 오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카날본에 부는 바람도 다합(Dahab, 이집트의 홍해에 있는 작은 휴양도시)에서 내가 느꼈던 바람과 유사했다. 기후도, 풍경도.. 다합에 대한 기억이 나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오전 9시.
시티 비지터센터(city visitor centre)가 문을 열자마자 들어가서, 잡에이전시(job agency)가 어디에있는지 물어봤다. 시티 쇼핑센터에 위치한 에이전시를 가르쳐주길래 바로 그리로 갔다.
에이전시에가서 잡을 구하고 있다고 말을 하니, 직접 농장을 찾아가보라면서 농장들이 모여있는 위치를 지도에 표시해주었다. 플랜트Planet. 어마어마했다.


그 이후,
농장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가니, 정말 거대한 대 농장들이 줄지어 있었다. 한 농장주에게 일이 있을만한 농장좀 알려달라고하니 카날본에만 170개가 넘는 농장이 있는데 자기는 그걸 다 알 수 없다고, 그냥 열심히 돌아다녀 보랜다...
대농장이 170개,,,,,,,,??? 거기서 일자리를 설마 못구하랴?

이미 일을 하고 있는 농장도 많았고, 아직 시즌을 시작하지않은 농장도 많았다. 농장을 하나하나 차례대로 돌아다녔다.

오전 10시경,
농장을 돌아다니면서 농장주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도중, 어디선가 전화가 왔다. "꿈이 드디어 현실이 되는건가?!"


전화,
"Hello"
"Yes, this is Mr, Chang"
"i'm mrs.....후략."

1시까지 공장으로 면접을 보러 오라는 전화.
카날본에서 퍼스까지 1000km거리를 3시간만에 어떻게 가지????????

프리맨틀의 아는 형에게 전화를 했다.
"형, 나 돌쏘냐에서 면접보러 오래요,"
"잘됐다 야, 당연히 가야지"
"네 형, 가야죠, 근데 저 지금 카날본에 있어요"
"아, 뭐 일이 또 그렇게 되냐???"
"그래서 말인데, 형이 대신 면접 좀 가주시면 안되요??"
"나도 니 맘 알겠는데, 나 예전에 거기서 일해서 걔네들이 나 보면 알아 그냥 사실대로 말해, 카날본에 있다고 내일 간다고"
"아... 네 알았어요 형, 어쩔 수 업네요. 나중에 다시 연락드릴게요"

방법은 없었다.
카날본에서 비행기도 없었고, 버스도 없었다.
비행기라도 있으면 비행기라도 타고 가고 싶었다. 버스는 다음날 새벽2시. 퍼스엔 오후4시에 도착한다.

공장에 다시 전화를 했다.
"오늘 오후1시에 인터뷰보러가기로 한 MR. CHANG인데, 사실 내가 지금 카날본에 있다.
인터뷰를 가려고, 비행기도 알아보고 버스도 알아봤는데 오늘은 교통편이 없다. 인터뷰를 내일이나 월요일로 미루면 안되겠느냐?"고 말했다.

"알았다. 일단 나중에 다시 전화 주겠다. yes or no를 조금 있다가  전화로 알려 주겠다." 는 대답.
초조했다.
그래도 한 숨 놓았다. 
나는 꿈을 믿었다. - 꿈에서 교수님이 나중에 발표하는 것을 허락했기에 믿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농장을 컨텍(contact)하러 갔다.
어느 한 농장에서 내일 일을 하러 오라고 했다. 일단 캐시잡으로 일을 시켜준댄다. 농장 어커머데이션도 시설도 좋았고 가격도 쌋다. 그렇게 일이 일사천리로 풀렸다.


일단 처음 숙소로 잡은, 카날본 백팩커스로 돌아왔다.
같이 온 동료들이 나에게 말했다.
"농장도 컨텍됐고, 우리랑 같이 여기 농장에서 일하자"라고.

고민했다. 많은 생각을 했다. 대답을 하지 않았다.
'여행, 돈, 시간, 사람, 정(情), 확실성과 불확실성' 모든걸 생각해야했다.

많은 고민끝에 나는 입을 열었다.
"퍼스로 다시 돌아갈게요"
"퍼스에 모든 미련 다 버리고 왔으면 여기 같이 있자. 여기까지 와서 니가 이러면 배신이다"라는 대답.

나의 상황에 대해서 설명했다.
이제 얼마남지 않은 시간. 그리고 필요한 돈. 내년까지 여행을 마쳐야하는 나의 상황. 시간+돈 과 사람 사이의 갈등이었다.

결국, 퍼스로 다시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퍼스로 가서 공장에 일단 가보지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을 평생 원망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날은 컨텍했던 농장에서 반나절 일을하고 현금으로 돈을 받고 나는 퍼스로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지만, 일이야 어떻게 되든 퍼스로가지않으면 정말 후회할 것 같았다. 


후담이지만,
결국은 모든일이 잘 풀렸다.
그리고 카날본에 같이 갔던 사람들과도 지금 잘 지내고 있다. 가끔씩 만나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들은 다시 퍼스로 내려와서 다른 농장에서 일하고 있고, 한명은 몸상태가 안좋아서 한국으로 귀국했다.







- Great north coast hwy의 로드하우스,


-


- 퍼스로가는 버스, 그레이하운드. 카날본-퍼스의 가격이 190AUD....쩐다..13시간버스가 20만원 ㅠ


- 호주에서의 마지막 농장일,


- 바나나밭 중간에 수박을 심었다...


- 바나나 열매들, 많이 따먹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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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이야기 - 카날본으로 가는 길 로드하우스(Road house)에서,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1. 28.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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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당신은 꿈을 믿으시나요? 혹시 믿는 다면,
꿈이 나의 미래를 예지한다는 느낌으로? 아니면 꿈은 반대라는 생각으로?
아니면 그냥 개꿈이라고 생각하나요?

전 꿈을 믿는 편입니다.

보통, 난 너무 피곤해서 새우잠같은걸 잘 때 꿈을 잘 꾸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 꿈을 꾸는 경우가 있다.
그 다음날이 대체적으로 중요한 날일 때. 뭔가 의미있다고 생각되는 꿈을 꾸는 편이다.

예를들어, 시험기간이라던가, 뭐 아무튼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일을 하는 날일 때 말이다.

그리고 호주에서, 뇌리에 선명하게 기억될만한 꿈들을 몇 개 꾸었다.



꿈을 꿨다.
- 퍼스에서 북쪽으로 1000km 카날본Carnarvon으로 가는 길, 어느 로드하우스의 주차장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꿈 속에서,
한 후배가 나에게 전화를 했다.
"오빠, 수업에서 조별 발표를 해야하는데 오빠 우리조에서 같이 발표 하실래요?" 라고 말했다.
난, "Ok"라고 대답을 했다.

왜 갑자기 그 아이가 나에게 전화를 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왜 하필 그애 였는지.
학교 다니면서 많이 마주치지도 않았다. 서너번 정도 본 것 같다. 술도 같이 딱 두번 먹었다. 싸이는 일촌이지만, 뭐 그냥 보통 선후배사이다. 별로 친한사이는 아니다.
왜냐하면 친할 기회가 없었으니까. 09학번.....ㄷㄷ...나는 세계일주를 한답시고 09년 3월 한국을 떳으니까.


꿈 속에서,
같이 발표 조모임을 하게 되었다.
발표준비를 다 끝내고 발표를 하는날이 되었는데 갑자기 내가 너무 급한일이 생겨서 발표를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교수님한테 전화를해서 발표를 다음으로 미루면 안되겠느냐고 부탁을 했더니 다음에 발표를 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뭐 지금은 기억이 잘 안나는 이것저것을 하고나서,
다시 발표를 하게 되었다.

꿈의 끝.


아침 6시 경,
잠에서 깨어났다. 약 4시간을 차 안에서 눈을 붙이고, 카날본으로 다시 떠났다.


왠지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냥 느낌이.
그리고 왠지 어디선가 내 전화기로 전화를 해 줄것 같았다. 그냥 이유없이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일자리에 관한 전화가 올 것 같다는 근거없는 믿음이 생겼다.
혼자 꿈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았는데, 왠지 공장 어디선가에서 나한테 전화가 올 것 같았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아무튼 그 날 아침부터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 날, 오전 10시 경.
카날본에 도착을 해서, 농장들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일자리를 알아보러 다니고 있었다.
다행히도 시내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서 일을 구하러 다니고 있어서 전화가 터지는 구역이었다.

농장을 돌아다니며 농장주와 이야기를 나누던 그 때, 어디선가 일반전화로 걸려진 전화가 내 휴대폰을 울렸다.
프리맨틀Fremantle 에 위치한 소세지 공장에서 전화가 온 것이었다. 돌쏘냐(DORSOGNA). 내가 얼마나 가고 싶어하던 공장이던가!
오늘 오후 1시까지 인터뷰를 보러 공장으로 올 수 있는지 묻길래, 당연히 오케이했다.

인터뷰까지 남은시간 3시간.
1000km가 넘는거리를 3시간만에 어떻게 간단말인가???????
일은 그렇게 되었다.

여기서 부터 나는 참 절박했다.
그리고 같이 카날본에 간 사람들은 참 착찹해했다.

그날의 꿈. 잊지 못한다.



- 잠을잤던 로드하우스,
모든건 우연의 일치였을까? 카날본에서 퍼스로 돌아오는 버스도 여기서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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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looking for a job again! - 다시 구직자의 삶으로(2)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1. 28.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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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일을 다시 잡았구나!!
근데, 북쪽으로 2500km?! 차를 타고 꼬박 2박3일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거기라도 가서 돈을 벌어야지,, 페이도 어느정도 괜찮았고, 농장 숙소에 수영장도 있었다.

에이전시가 문을 닫을 시간이라서 내일 오전에 자세하게 이야기를 해줄테니 다음날 오전에 오라고 하길래 알았디고하고 에이전시를 빠져나왔다.
"다시, 농장으로 가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일이 끝나고 딱 일주일만이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다.
농장주와 계약이 체결되는 그 순간까지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그 전에 일을 구할 때도 일을 하기 바로 직전에 펑크가 나서 도루묵이 된 적이 있다고.
너무 기대는 하지말고 그냥 안전빵으로 생각하고 있으라고.

마음 한구석엔 약간의 불안감이 있었지만,
그래도 안도감이 조금 더 컷다. 일을 할 수 있다는 안도감.

그날 저녁,
백팩커스의 같은 방을 쓰는 외국애들에게 작별인사를 미리했다.
그리고 모든 짐들을 다시 정리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저녁으 먹었다.

다음 날, 오전.
에이전시영업시간 전에 미리 찾아가서 기다리고 있으니, 여직원이 잠시 기다리면서 인터넷에 올라와있는 더 좋은 일자리를 한 번 알아 보라고 했다. 뭔가 좀 불안하면서도 찝찝한 기분이었다.
여직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농장주의 전화번호를 적어주는 것이었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계약서나 페이에대한 설명 등등 그런 설명이 아니라, 달랑 전화번호 하나 주면서 농장주에게 직접 전화를 해보라니?!  - 이럴경우, 하루가 지나버리면 거의 90%이상 자리가 없다고 봐야한다.

농장주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지 않아서 메세지를 남겼다. 그래도, 조바심이 나서 다시 전화를 했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한 남자의 목소리
"Hello?"
어쩌고 저쩌고.
퍼스 에이전시에서 소개받고 전화했다고 하니, 이름을 묻고 알았으니까 나중에 다시 전화 준댄다...

"끝났네."라고 생각했다.

1시간 뒤 다시 전화했다.
지금 당장 일 할 수 있고, 일잘한다고 했다. 그리고 수박 플랜팅, 피킹도 해봤다고 했다.(당연히 거짓말) 지금 퍼스에 있지만 브룸으로 갈 수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대답은,
"나중에 연락주겠다."였다. 

게임 끝.

이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니 역시나,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목요일 오후,
그동안 썼던 공장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보통 공장에서 목요일날 연락이와서 금요일날 인터뷰를 보고 월요일부터 일을 시작하는게 일반적이라고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공장도 끝난 것 같았다.

나는 금요일을 퍼스에서의 마지노선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이제 퍼스에서 미련을 두려고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게 믿었던 일자리가 사라지고나니 모두가 힘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가고,

몇 분 뒤,
결정되었다.
지금. 그냥 카날본(Carnarvon)으로 떠나자!


목요일 오후 다섯시.
퍼스에서 북쪽으로 1000km를 달리는 여정을 시작했다.
일을 찾아서.



처음,
내가 호주에와서 조건이 괜찮은 일자리를 내가 거부했을 때(그 당시는 그게 좋은 조건인줄 몰랐다)
일이 안구해 질 때, 내가 그 때 미쳤지라고 생각하면서도 "나중에 더 좋은 일자리가 생기겠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더 좋은 일자리, 더 좋은 잡job, 그걸 찾아서 퍼스를 떠나기로 했다.




- 북쪽으로 끝없이 달리는 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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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looking for a job again! - 다시 구직자의 삶으로(1)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1. 28.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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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에서의 즐거웠던 나날들은 끝이 났다.
그리고 나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더이상 쓸모없어진 사냥개처럼 내동댕이 쳐 졌다.

나는 어느정도 다 예상하고 있던 결과였기에 최대한 빨리 다른 잡(job)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이제 여름이 시작되고 있어서 슬슬 일자리가 많아 진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그건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퍼스시티(Perth city)의 백팩(Backpackers)도 이미 일자리를 찾아서 몰려든 사람들로 붐볐다.
불과 두달전만해도 한산하던 백팩에 도미토리방이 없을 정도라니!

세명이서 같이 다니기로 해서, 같은 숙소에 같은 방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물론 비싼방은 있었지만)
여차저차해서 방을 잡았다. 내가 호주에 왔을 때 두번째로 갔던 백팩이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더니, 티격태격하기도 했지만 어쨋든 일을 다시 구해야 했다.

또 다시 시작되었다.
일을 구하기 위한 사투가,,,,2개월 전보다 경쟁자들이 더 늘어난 상황이었다.
거기다가 나에게 또하나의 조건이 더 붙어 있었다.
3명 모두가 일을 구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현실적으로 3명이 동시에 같은 일자리를 갈 수는 없었다. 3
명을 한꺼번에 고용하는 곳은 50군데중에 한곳이 있을까 말까한게 현실이었다.

일단은 우선 일을 구하는게 급하니까, 말을 했다.
일을 구하기 가장 쉬운 사람은,1명이면서 차가 있는 사람.
그 다음이 차가 있고 2명.
그 다음이 차가 없는 1명.
그 다음이 차가 없는 2명.
이라고.


그리고 덧붙였다. 2명짜리 일은 에이전시(Agency)에 자주 등록되니까 2명짜리 일이 나오면 먼저 일을 하러 가라고. 그리고 나서 내가 따로 가겠다고.
물론, 3명 동시에 할 수 있는일을 우선적으로 찾아보겠다고.

욕 바가지로 먹었다...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것이 현실인데. 3명을 우선적으로 알아보겠다고 했는데,
내가 나 외에 2명을 더 먹여 살려야한다는 부담감이 나를 압박해왔다. 내가 어쩌다가 이리 됐는지 ㅠ


아침을 먹고, 도시락을 싸들고 나와서 일자리를 찾으러 다녔다. 에이전시에도 가보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정보도 얻고,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알아보고.

공장들도 10월부터 크리스마스까지가 시즌이라서 사람을 많이 뽑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래서 퍼스, 프리맨틀Fremantle의 주변 공장지역에 어플리케이션을 쓰러도 다녔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통잔의 잔고는 줄어들었고, 몸에 힘도 점점 빠지는 것 같았고, 웃음도 점점 사라져갔다.

일을 구한다는건 힘든일이었다. 더욱이 나에겐 시간이 없었다.
나는 여행을 계속 해야한다는 압박이 있었고, 나중엔 돈이 있든 없든 여행을 떠나야만 했다.
있으면 있는데로, 없으면 없는데로,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다시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었다.
예전같으면 공휴일이 좋았을 텐데, 하필이면 월요일이 Queen's birthday라서 공휴일이었다.
 이런 제길,, 에이전시와 공장이 모두 문을 닫는 공휴일...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주까지 일이 구해지지않으면 나 혼자라도 북쪽으로 가야 겠다고... 북쪽에는 농장들이 많았고, 농장을 직접 찾아가야겠다고.

북쪽지방은 퍼스보다 기온이 따뜻했기에 농장이 서서히 열리고 있었다. 퍼스와 남쪽지방은 기후가 비교적 서늘해서 빨리야 10월 중순, 11월에 농장이 열렸기에 나는 북쪽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나의 생각을 말했다.
모두가 북쪽으로 갈 생각이 있는것 같기도 했다.

그러다가 수요일.
에이전시가 문을 닫기전에 한 번 더 가봐야 겠다는 생각에, 에이전시에 들렀더니 북쪽으로 2500km에 위치한 곳에 있는 수박농장Watermelon farm 에 2명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일단, 간다고 말했다..무조건 가겠다고. 지금 당장 갈 수 있다고...





- 퍼스시티의 밤거리, 겨우 저녁 7시가 조금 넘은 시간

 - 퍼스 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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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e got the job! - 05, 호주에서의 마지막 와인농장 : Donnelly River(2)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1. 21.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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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넬리리버 와인팜에서 2주라는 시간을 보냈다.
2주, 결코 짧지않은 시간이다. 그 안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

같은 농장, 같은 숙소, 여섯명의 사람들. 같이 일하고, 같이 생활하는 사람들.

사람이 모여사는 곳에는 이런사람, 저런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 곳, 도넬리리버에서도 여러가지 일이 있었고,
그리고 모두가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사실,
나는 농장일 끝나면 혼자 어디론가 가겠다고 말 할 생각이었다.


농장에는 나와 친하게 지내는 사람 둘, 그리고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서 나와 사이가 좋지않게 된 사람 하나, 그리고 리더 형 그리고 그 형의 여자친구가 있었다.

대충, 3 / 2 / 1 이런식으로 사람들이 모여서 놀았다...1 ? 의도하지않게 왕따?비슷한게 되어버렸다.
1이 왕따?가 된 이유는 자명했다. 일을 너무 못했다. 아니, 너무 안했다. 할 수 있는데도 일을 안하니 일을 열심히하는 우리가 그 땜빵을 해 줘야 했다. 그래서 나날이 사람들의 불만은 쌓여갔고, 자연스럽게 나중에는 외면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컨츄렉터가 나중에 전해준 이야기.
"2~3명에게는 일을 줄 수 있다."
나는 생각했다.
"컨츄렉터는 분명히 리더형과 일을 하려고 그런말을 했을 것이라고. 말도 잘듣고 착하니까. 그리고 나는 이쯤에서 빠져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착한 리더형,
나와 친하게 지내는 다른 형에게 일자리를 넘겼다. 2~3명이 자리가 있다고 하니 니네가 해라는 식으로. 자기는 다른 일자리를 구해보겠다.(차도있고 능력도 될법하니까, 인정하는 부분이다)

나는 그냥 오렌지를 따러 나가버렸다. 웬지 분위기가 나까지 엮이는 분위기여서 말이다.
역시나, 내가 오렌지를 따서 들어오니, 나랑 나랑 친하게 지내는 두명까지 이렇게 셋이서 같이 일을 하잔다.
거기서, "전 그냥 혼자 일자리 알아볼게요"라고 차마 말할 수 없었다. 그런 분위기? 그런말 했다가 매장달할 것 같은느낌?  그래서 "뭐 전 아무렇게되든 상관없어요" 라고 말해버렸다...

그리고 다른 한명은? - 나이가 가장 많은 큰형님이었는데,
착찹한 것 같았다. 영어를 하나도 할 줄 모르는 데다가, 그렇게 미움까지 받고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일이 되어 버렸고.

농장이 끝나고, 어커머데이션정리를 하고,
와이너리에서 와인을 사고,
그렇게 다시 퍼스로 돌아왔다.


그리고 퍼스에서 다시 컨츄렉터와 이야기를 했다.
사실, 난 컨츄렉터를 믿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끼리 이야기를 한 내용을 컨츄렉터를 만나서 이야기했다.
리더형과 여친은 다른일 찾으러 가겠다고. 그리고 혼자인 큰형님도 돌아갔고, 셋이 남았다고.
컨츄렉터는 자신이 예상한 결과가 나오지 않아서 실망을 했는지, 갑자기 지금 다른 애들이 거기에 일을 하고 있다고 둘러 댄다. 그리고는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생각했다.
이제, 끝이구나.

그렇게,
혼자인 큰형님은 이미 떠났었고,
나와 같이 팀을 구성하게된 두명, 그리고 리더형과 그 여친 이렇게 두팀이 시티로 나와서 다시 잡(job)을 구해보기로 했다.




-마지막날 일을 끝내고,



- 마지막으로 모두가 헤어진 숙소에 지는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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