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4. 4. 26. 14:41
1. 지도, Map.
역사 교과서나 위인 전기를 통해서, 혹은 다른 여러가지 매체를 통해서 한 번 쯤 들어 봤을 법한 이름이 있다. '김정호'. 조선시대에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다는 사람. 물론, 그 전에도 지도를 그렸던 사람은 많지만, 그의 이름이 아직까지 불려지는 이유는 아주 '정확하게'지도를 그렸기 때문이리라.
여행을 가거나 어딘가를 찾아갈 때, 지도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여행을 하는데 있어서 지도는 아주 중요하다. 지도 없이 어딘가를 찾아 가겠다고 길을 나선다면 하루종일 길을 헤매면서 하루를 다 허비할 지도 모른다. 지도가 있어도 지도를 잘 볼 줄 모른다면 길을 헤멜 지도 모르지만, 지도가 있으면 현지인들에게 길을 물을 수가 있다. 요즘은 스마트폰의 지도 서비스가 아주 좋기 때문에 이제는 '디지털 지도'를 사용하여 쉽게 길을 찾기도 한다.
지도를 보며 골목길을 누비다가 목적지에 도달 했을 때의 기쁨. 그 순간에는 택시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 했을 때는 느낄 수 없는 성취감이 있다. 가끔은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끼리 이쪽이니 저쪽이니 티격태격 하다가도, 서로 의견을 잘 교환하여 목적지에 제대로 도착했을 때는 서로간에 돈독한 신뢰를 쌓을 수도 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는 사실[지도를 잘못 보고 이상한 곳을 헤메다가 결국 싸움에 이르게 되는 될 수도 있으니 조심하자].
우리는 여행을 다니든, 일상 생활을 하든 '지도(Map)'라는 이름이 붙은 다양한 것들을 접한다. 지도는 알게 모르게 우리의 생활속에 스며들어 있다.
2.서울의 지도, 서울의 길.
전 세계의 여느 대도시가 그렇듯이 서울에는 무수한 지하철 노선이 얽히고설켜 있다. 지방 작은 도시에 사는 사람이 서울에 올라와서 지하철 노선도를 처음 보게되면 눈이 휘동그래 진다. 지하철 노선도는 내가 어디에서 어디로 가야할 지 골똘히 생각하게 만든다.
함께 자취를 하던 친구와 주말마다 오토바이를 타고 서울 관광 안내 책자에 나오는 서울의 관광 명소를 돌아다니던 때가 있었다. 큰 도로를 벗어나 작은 골목길이나 좁은 도로를 지날 때,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서 헤매던 기억이 있다. 구불구불 꼬여있는 서울의 골목길은 저 길이 이 길 같고, 이 길이 저길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도가 있었지만, 길을 찾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우리가 찾던 목적지가 나오기도 했다.
3. 뉴욕 지하철 노선도(New York Metro Map)
JFK공항(John F.Kennedy International Airport)에서 맨해튼의 125th Street까지 지하철을 타고 이동 했다. 125번가는 할렘의 중심가였다. 그 곳에 위치한 숙소가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가장 저렴한 숙소 중 하나였기에 나는 서슴없이 그곳으로 이동했다. JFK 공항에서 출발하여 두 번 지하철을 갈아타고나서 125번가 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게스트하우스에 비치된 뉴욕 관광 안내 지도를 집어 들었다. 그 지도의 한쪽 면에은 큼직하게 뉴욕 메트로 맵이 뉴욕의 지도와 겹쳐져서 그려져 있었다. 아주 간략하고 보기 좋게.
나는 뉴욕 지하철 지도의 역 이름을 살펴 보던 중 한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지하철역 이름과는 좀 다른 역 이름들. 우리나라의 지하철역이름은 그 동네의 지명이나 큰 건물의 이름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예를 들면 3호선의 대화, 구파발, 불광, 홍제, 옥수, 약수, 압구정 등] 그렇지만 뉴욕 지하철의 역들은 대부분 그 거리의 이름을 지하철 역이름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특히, 맨해튼의 경우 그 특징이 두드러 졌다.
△ 뉴욕 지하철 노선도(New York Metro Map)
맨해튼은 가장 아래 쪽, 남쪽의 1st street부터 북쪽으로 가면서 동서로 가르지르는 길에 번호를 부여해서 길 이름을 구성하고 있엇다. 1st, 2nd, 3rd, 4th, 5th .... 10th, 100th, 125th street...이런 식으로 동서를 가르지르는 도로에는 스트릿(street)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남북을 가로지르는 길에는 way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었다. 그래서 맨해튼을 남북을 가로지르는 대표적인 길이 바로 '브로드웨이(broad Way)'이다. 지하철 역들은 주로 street 넘버를 지하철 역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같은 스트릿(Street)의 동쪽과 서쪽에 서로 다른 지하철 노선이 지나가는 경우에는 동일한 지하철 역 이름을 가지고 있었기에 나는 종종 실수로 다른 역에서 내리곤 했다.
내가 가장 눈여겨 본 지하철 역은 나의 숙소가 위치하고 있던 125th Street와 42nd Street의 타임스퀘어 역이었다. 그 외에도 20번가, 7번가 등 많은 역들이 거리 이름으로 되어 있어서 그곳을 지도에서 그곳을 찾아 이동하기가 아주 쉬웠다.
4. SOHO부터 Wall Street까지.
소호(SOHO)에 가 보고 싶었다. 예전에는 화랑이 즐비해 있었다지만 높아진 임대료로 인해 화랑들은 이제 주로 첼시 쪽으로 이동하거나 더 먼 곳으로 서서히 이동하고 있다고 했지만 '화랑'의 흔적을 찾고 싶었다. 소호는 패션의 거리가 되어 가고 있다고 들었다. 론니플래닛 뉴욕 시티(Lonely planet, New York City)에 나온 안내에 따라 지하철 역에서 내렸지만, 그곳이 소호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그곳이 소호라고 해서 '여기가 소호 입니다'라는 안내판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소호역'이라는 말도 없었으니 나는 그저 사람들을 따라서 걸을 수 밖에 없었다. 왠지 내가 가는 곳이 '소호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무작정 사람들이 많이 가는, 젊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뒤쫓았다.
△ 리틀 이탈리아와 차이나타운은 붙어 있다.
길을 걸으며 거리 곳곳에 파편처럼 흩어져 있는 예술의 흔적과, 건물들의 모습에 취해 셔터를 누르다 보니 어느새 내가 와 있는 곳은 '리틀 이탈리아(Little Italy)였다. 언젠가 '리틀 이탈리아'에 대해 읽은 기억이 났다. 차이나타운 근처에 위치한 '이탈리아 타운'. 조금 더 걸으니 '차이나타운(China town)'이 나왔다. 그러면서, '차이나 타운의 지하로 잘못 들어가면 영영 빠져나올 수 없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차이나타운의 지하는 미로처럼 얽혀 있어서 뉴욕 경찰들도 그곳으로 들어가는 것을 꺼려한다는 이야기.
차이나타운의 한 테이크아웃 음식점에서 사람들이 음식을 사 가는 모습을 보니 배가 고파왔다. 메뉴를 고른 만큰 돈을 지불하는 방식이었는데, 가격은 저렴했다. 음식을 사 들고, 근처에 있는 공원에 앉아 배를 채운 다음 다시 발걸음을 남쪽으로 옮겼다. 점점 더 소호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남쪽으로 내려가자 NYPD(뉴욕 경찰서)건물이 나왔고,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더 이상 이쪽으로 오지말라고 소리쳤다. 나는 방향을 서쪽으로 돌려 계속 걸었다. 법원 같은 건물이 나왔고, 나는 다시 지하철 역으로 들어갔다. 42번가로 돌아가려 했으나, 나는 지하철을 잘못 타버렸고 브루클린 브리지(Brooklyn Bridge)를 건넜다. 맨해튼을 떠나 브루클린으로 가고 있었다. 맨해튼의 야경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5. SOHO에서 타임스퀘어까지.
나는 다음날 또 다시 소호를 찾았다. 이번에는 다른 지하철 역에서 내렸다. 왠지 그곳이 소호의 중심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을 빠져나오니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그리고 많은 유명 브랜드의 매장이 깃발을 펄럭이며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제대로 찾아온 것 같았다. 아메리칸어페럴, 유니클로, 바나나리퍼블릭, 게스, 디씨슈즈 등의 많은 해외 유명 의류 브랜드들이 내 눈에 띄었다. 호주에서 자메이카까지 6개월 이상을 보내면서 나는 여름 옷만을 가지고 있었고, 뉴욕의 추위를 견디기 힘들었다. 소호의 여러 의류 매장들을 돌아다니며 옷을 구입했다. 통장 잔고는 조금씩 줄어들었지만, 추위를 막을 수 있다면 통장의 잔고가 줄어드는 것은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 소호 거리에 있는 게스(guess)매장과 젊은 이들.
△ 뉴욕대(NYU)지하철 역(왼쪽)과 뉴욕대 근처 공원의 개선문(오른쪽)
숙소 근처에 위치한 유명한 재즈 카페에서 재즈 공연을 볼 생각을 한 나는, 간단히 식사를 하고 재즈 카페를 찾았다. 재즈 공연을 보기 위한 사람들로 카페는 붐비고 있었다.
6. 길 찾기가 쉬운 맨해튼.
전형적인 바둑판식 도로가 깔려 있는 맨해튼. 맨해튼의 중심에는 센트럴파크(Central Park)가 있고, 그 오른쪽을 이스트사이드(East Side), 왼쪽을 웨스트사이드(West Side)라 부르고 있는 곳. 1번가(1st street)부터 약 130번가까지 차례로 하나씩 숫자를 붙여 나가며 동서를 가로지르는 길이 있는 곳. 남쪽을 향해 계속 길을 걷다 보면 1번가와 2번가가 나왔고, 배터리 파크에 서서 강 저 멀리를 바라보면 자유의 여신상이 서 있었다.
△ 42번가 역 안(왼쪽)과 42번가 역을 나왔을 때 만날 수 있는 풍경.
▶ '지도 없이 길을 헤매도, 그저 I LOVE NY'관련 글 보기
- 뉴욕의 거리를 걷다 보면, I ♥ NY(2) - NewYork city
- 뉴욕, 좋아할 수 밖에. I♥NY (1) - New York City, NY(U.S.A)
- Ep] 뉴욕(NewYork, NY) - 폭설과 비행 취소. 비행기 비지니스석을 타라고?! (NYC, USA)
- Ep] 뉴욕(NewYork, NY) - 나는 할렘가(125th st)에 머물고 있어요. (NYC, U.S.A)
△ 42번가를 향해 가는 길(왼쪽)과 42번가 주변(오른쪽)
△ 차이나타운 관광 안내소
| 터키, 카파도키아 Morning - 대지에 태양이 드리울 때. (0) | 2014.05.15 |
|---|---|
| 터키, 카파도키아 Daylight - 풍경이 주는 즐거움. (0) | 2014.05.10 |
| 뉴욕의 거리를 걷다 보면, I♥NY(2) - NewYork city (0) | 2014.04.26 |
| 뉴욕, 좋아할 수 밖에. I♥NY (1) - New York City, NY(U.S.A) (0) | 2014.04.25 |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4. 1. 27. 02:21
3rd Edit.
1. 여행 속 "만남".
혼자 여행을 하는 사람이든,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하는 사람이든, 여행은 여행하는 사람에게 있어 만남의 연속이다. 특히 그 만남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혼자 여행을 하는 사람은 더 많은 만남을 경험 할 수 있다]
그 '만남'이라는 것이, 잠깐 스쳐가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조금 길게 이어질 수 있고, 그 만남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만남을 통해서[여행 중 누군가와의 만남]을 통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만남은 어쩌면 우리가 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고귀한 경험일 지도 모른다.
2.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그 여행 속에서 만났던 수 많은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그 만남은 여행이 끝났지만 지속되고 있을 수도 있다] 나도 많은 여행을 했고, 많은 만남이 있었다[아직은 젊은 나이-만 25세 밖에 안되었으니!-라서 더 많은 만남을 가질 수 있었는지도]
인도에서의 많은 사람들, 이집트에서 그리고 유럽에서의 만남, 터키의 친구들, 네팔의 연인, 시베리아 횡단열차속에서의 만남, 남미, 쿠바 등. 수 많은 사람들이 나와 만났고, 대화했고, 함께 했고, 내 카메라 렌즈속으로 들어왔고, 나 또한 가끔은 그들의 카메라 메모리에 저장되었다.
그리고 나는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그들의 다양한 사고방식을 이해했고, 그들의 다양한 문화를 이해했고, 나 자신의 삶의 방향을 만들어 갔다.
만남 속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은 나의 추억이 되었고, 나의 스승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 어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의 재산이 되었다.
3. 쿠바 하바나(Havana)에서의 짧은 여정을 마치고, 왠지 모를 아쉬움을 남겨둔 채. 자메이카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갔다.
쿠바에서의 일주일,
싸구려 카사(까사,casa 홈스테이)에서, 다시는 경험 하지 못 할 쿠바 사회를 간접적으로 경험했다[숙소의 영향이 컷다. 그 곳은 실제 그들이 사는 곳이었으므로] 그것은 그들의 현실, 삶이었다.[내가 머물던 집은 불법 카사로서,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못한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이었다]
나의 비행기는 케이만아일랜드(Cayman Island, 영국령의 카리브해의 섬)를 경유해서 자메이카로 가는 것이었기에[그 비행기가 가장 저렴했다. 약 215US$], 하바나 공항에서 케이만아일랜드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와 같은 비행기를 타는 것 같아보이는 한 꼬마가 나의 앞 쪽 건너편 자리에서 심심한 듯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 때 케이만아일랜드행 비행기가 대기하고 있는 게이트 앞에 있었는데, 그 앞에 그 꼬마와 삼촌뻘로 보이는 사람이 같이 있었으므로 그런 사실을 쉽게 파악 할 수 있었다.]
4. 한 꼬마.
한 꼬마가 하바나 공항, 케이만아일랜드행 비행기에 탑승하는 게이트 앞에 왔다. 그 꼬마는 혼자 앉아 있는 한 남자를 보았다. 검은 머리에 거무잡잡한 피부. 보통의 남자들보다는 조금 긴 머리. 그리고 보통의 남자들 보다는 조금 큰 키. 그 꼬마 여자아이는 귀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은 신기한 무언가를 보는듯한 눈빛으로 동양인 남자를 바라보았다.
꼬마는 그의 앞자리[건너편]에서 그를 몰래 훔쳐보다가, 그가 꼬마에게로 시선을 가져가면 의자 뒤로 숨곤 했다. 그 꼬마의 삼촌뻘 되어 보이는 남자는 쿠바에서의 일정이 피곤했는지 의자 위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고, 그 꼬마는 자신과 놀아줄 상대를 찾지 못해, 심심해 하는 눈치였다.
꼬마의 장난기 어린 행동이 시작되었고, 그 곳엔 숨바꼭질 하듯 긴장감이 나돌았다. 그는 카메라를 집어 들고, 카메라의 초점을 꼬마쪽을 향해서 고정시킨 채, 꼬마를 향해 셔터를 눌렀다.
5.
나와 그 꼬마의 숨바꼭질. 나는 사실 속으로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그 꼬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얼마 후 그 꼬마의 삼촌뻘되는 사람이 잠에서 깨어났고, 우리들의 놀이는 끝이 났다.
꼬마를 향해 셔터를 눌러 대던 그 당시엔 몰랐지만, 그 곳을 떠난 지금 그 때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정말 재미있는 장면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 Ep] 뉴욕(NewYork) - 나는 할렘가(125th st)에 머물고 있어요. (0) | 2014.04.26 |
|---|---|
| Ep] 몽골, 루마니아 외 - 슬픈 눈빛, 때묻은 손을 나에게 (2) | 2014.01.27 |
| Ep] 인도, 암리차르 - 황금사원, 템플스테이 그리고 친구들(Amritsar, Golden Temple) (14) | 2013.10.09 |
| Ep] 인도, 아그라 - 타지마할, 우리는 왜 그곳에 머무르지 않는가?(India, Agra). (4) | 2013.09.17 |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1. 11. 20. 20:19
- 밤이 찾아오는 하바나
- 어둠이 스미는 까삐똘리오
-
-
- 구시가의 광장, 밤엔 노천 카페가 드러선다.
-
-
-
-
-
-
-
-
-
- 걸어서, 혁명광장까지
-
- 혁명 광장
- 광장
- 광장
- 말 그대로 광장
-
-신시가 집들, 교통사고
- 신시가 공원
-
-
-
-
-
--
- 아파트 위에서 본 구시가
- 재즈카페
- 카사블랑카를 바라보며
- 밤의 구시가 광장
-
-
| Ep] 불가리아, 소피아 - 고개를 끄덕끄덕, '아니'라는 의미 였다고?! (Bulgaria, Sofia) (6) | 2011.12.03 |
|---|---|
| Ep] 라트비아, 리가 - 빵. 유럽에서 맛있는 빵을 먹는 즐거움(Latvia, Riga) (2) | 2011.11.21 |
| Ep] 콜롬비아, 보고타 - 친절한 그녀. 소매치기일리가..(Colombia, Bogota) (2) | 2011.11.17 |
| Ep] 인도, 스리나가르 - 최고급 투어, 갔더니 유배(流配)?! <2> -일주일간의 유배- (India, Srinagar) (0) | 2011.11.14 |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1. 4. 21. 21:34
1. 아는 것이 힘이다. 아는 것이 돈이다!
우리는 "아는 것이 힘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 등의 "아는 것"과 관련된 다양한 구호들을 쉽게 접한다. 그리고 실제로 아는 것이 많을 수록 살아가면서 좀 더 많은 혜택을 누리기도하고[물론 너무 많이 알아서 피곤한 경우도 가끔 있다], 부당한 대우에 대해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 할 수 있다. 그 만큼 아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여행의 경우에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어느 유적지를 갔을 때 혹은 특정한 장소에 갔을 때 그 곳에 대해서 뭔가 색다른 사실을 알고 있다면 좀 더 풍부한 여행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 외에도 우리는 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앎으로써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모르면 혜택을 전혀 못받고 지나가거나, 더 심한 경우에는 금전적인 피해를 입기도 한다.[물론 모르는 상태에서 금전적으로 지출이 있었다면 그 지출조차 불필요한 지출이었다고 생각 할 수 없지만] 대표적으로, 공공 건물이나 OO타워 등의 대형 건물, 대형 쇼핑몰, 학교나 학원 등의 장소에서 상해를 입었을 경우 그에 따른 치료비를 다 지급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사소하지만 모르기 때문에 금전적인 손해를 보는 경우가 더러 있다. 한 개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런 경우는 두 가지 손해를 입는 것이다.[신체적 그리고 금전적 손해]
특히, 여행의 경우 "아는 것이 돈이다"라는 말이 제대로 먹히는 경우가 많다. 인터넷을 통해서 수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철저하게 준비해 가는 사람은 여행의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인 금전적인 부분에 있어서 상당한 절약 효과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어느 도시의 어느 호텔[혹은 호스텔, 민박]이 가격 대비 시설이 좋은가부터 시작해서 교통비를 절약 하는 방법, 그리고 저렴하면서 질 좋은 식사는 어디서 할 수 있을지 등의 정보를 찾을 수 있다.
2. 모르면 손해다.
관광지를 가면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많다. 별 것 아닌 문제로 기분을 상하게 되는 때도 많다. 휴가철이나 연휴가 끼어있는 주말 등의 어디론가 짧은 여행을 떠나기 좋을 때 우리는 연인, 친구 혹은 가족끼리 짧은 여행을 떠나게 될 경우가 많다. 그 여행지의 장사꾼들은 다른 지방에서 들뜬 마음으로 찾아온 사람들에게 '바가지' 요금을 부과하기 일쑤다.[희소성과 관광지라는 특수성을 강조하면서 부당한 요금을 부과하는 장사꾼들은 어디에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분명 내가 사는 동네에는 천원 하던 물건이 관광지에서는 2천원, 3천원으로 그 가치가 올라가 있는 경우를 자주 발견 할 수 있다. 우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어쩔 수 없이 돈을 지불하는 경우도 많다.
한 외국인을 보았다. 다른 나라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특히 유럽이나, 아메리카 대륙] 포장마차에서 어묵 꼬치를 먹고 있었다. 한국 사람들은 하나에 5백원에 먹고 돈을 지불했는데, 그들은 하나에 천원을 지불하고 있었다. 근본적인 잘못은 그 장사꾼에게 있지만, 만약 그 외국인들이 다른 관광객이나 인터넷 정보를 통해서 가격 정보를 알았다거나, 차림표[혹은 가격표]를 읽을 줄 알았다거나, 누군가가 진짜 가격을 말해 줬다면 그들은 부당한 가격을 지불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르는게 병이 되어 부당한 대우를 당할 때가 많다.
3. 1CUC = 1Peso?
베네수엘라를 떠난 비행기가 하바나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카라카스 쿠바나에어 사무실에서 구입한 쿠바 비자종이에 스탬프를 찍고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공항 로비로 빠져나왔다. 내가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환전소였다. 예상대로 형편없는 환율이었다.[쿠바는 US$에 대한 환율이 상당히 나쁘다. 반면 CA$의 환율은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울며 겨자먹기로 US$를 환전했다. 약 1.3달러 : 1CUC 였다. 나에게는 1CUC가 한국돈으로 1500원 가량 되는 셈이었다.[나중에 알게 된 한국 사람들은 캐나다 달러를 가져왔는데 1CUC에 천원정도의 환전비율이라고 했다.]
쿠바에 오기 전, 호주에 머물 때 쿠바를 여행 갔다온 사람이 나에게 해준 말이 있었다. 쿠바는 여행자가 사용하는 화폐와 현지인이 사용하는 화폐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행자들이 환전을 하게 되면 여행자 전용 화폐인 1CUC(쿡)을 받아서 사용하게 된다고 했다. 나는 대략 쿠바에서 쓸 금액을 계산해서 조금 여유 있게 환전을 하고, 택시를 잡아타고 쿠바 시내로 향했다. 물론 택시비도 CUC으로 지불을 했고, 가자마자 잡은 숙소에서도 CUC로 방값을 지불하기로 했다.
하루에 10CUC에 묵기로 한 불법 까사에 내 짐을 놓아두고, 나는 하바나의 중심가로 향했다. 해가 스멀스멀 멕시코만 저편으로 넘어가고 있었고, 어둠이 하바나를 잠식해갈 즈음이었다. 나는 배가 물가가 싸다고 들은 쿠바, 하바나의 식당에서 배를 채워볼 요량으로 식당가를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식당의 메뉴판, 그것도 모자라 길거리에 파는 핫도그나 샌드위치 조차도 내가 생각 할 때 터무니 없이 비싸보였다. 핫도그가 10peso 에서 15peso. 작은 아이스크림 콘이 5peso 였다. 식당의 메뉴는 25peso 부터 30peso 정도의 가격이 책정되어 있었다. 나는 혼란 스러웠다. '쿠바 사람들은 모두 엄청난 부자인가?'라는 의문과 함께 내 머리는 공황속으로 빠져들었고, 배가 고팠지만 나는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 까사의 삐걱거리는 침대위에서 내 지친몸을 달래야 했다.
분명히 공항에서 환전한 CUC이라 불리는 돈에도 화폐 단위는 Peso라고 적혀 있었다. 1CUC이라 불렸지만 지폐에 적혀 있는 것은 1peso, 5CUC 은 5peso라고 적혀 있었다. 그렇게 치면, 길거리에 파는, 고깃집[갈비집 같은 곳]에서 무료로 디저트로 퍼 먹는 아이스 크림 하나가 5peso니까 5peso = 5CUC. 1CUC = 약 1500원. 아이스크림 하나가 7천원이 넘는 셈이었다.
살인적인 물가에 나는 굶어 죽을 수 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나는 세상이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아픈 머리를 베게속에 파묻었다.
4. 갑부들의 나라 쿠바?
그가 눈을 떳을 때 싸구려 까사엔 아무도 없었다. 유리 없는 창문 밖은 그늘져 있었고, 그늘의 안쪽에서 새 소리만이 창틀을 넘어 그의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그는 아직도 어제 엄청난 음식가격의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상태였다. 그 엄청난 가격들은 그를 공황 상태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다음 비행까지는 5일이 남아 있었는데, 그 기간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는 론니플래닛 캐리비안 아일랜드(Lonely Planet Caribbean islands)의 Cuba 부분을 펼쳤다. 일단 먹는 건 둘째치고, 하바나에 왔으니 길을 걸으며 하바나의 공기라도 마셔볼 심산이었다. 쿠바의 일반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 건물. 복도 계단엔 전선들이 거미줄 처럼 얽혀 있었다. 옆 집의 TV소리, 아이 우는 소리, 그리고 새가 밥을 달라고 소리지르는 것 까지 바로 옆 에서 말하는 것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방음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집을 얼른 빠져 나왔다.
그의 걸음엔 힘이 없었다. 먹은 것도 없었다. 까삐똘리오로 향했다. 숙소에서 비교적 가깝고, 많은 단체 관광객들이 버스를 타고 우르르 몰려와 사진을 찍고, 우르르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는 까삐똘리오 계단에 앉아 책을 읽으며 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까삐똘리오 길 건너편을 거닐고 있는 수 많은 쿠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수 많은 작은 가게들을 바라보았다. 수 많은 사람들이 가게에서 뭔가를 사먹고, 길을 떠나고 있었고, 거기에 발맞춰 많은 음식들을 또 다시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는 또 한번 생각 했다. 외국인과 내국인의 차별이 어느 정도 존재한다더니, 정말 여기는 외국인을 전부 초갑부로 알고 있는 건가? 길 건너편 핫도그를 파는 가게에서 소시지에 야채가 곁들여진 핫도그를 먹고 싶었지만, 가격은 12peso 였다. 핫도그 하나에 1만 8000원을 주고 사먹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5. 스타벅스 커피보다 비싼 구멍가게 밀크티 한 잔.
까삐똘리오의 계단에 앉아 계속 궁상만 떨고 있을 순 없었다. 까삐똘리오 앞에서 사진만 찍고 사라지는 단체 관광객들을 구경하는 것도 신물이 났다. 어느 정도 배고픔이 사그라 든 것 같아 나는 발걸음을 구 시가지[쿠바의 낡은 건물들이 모여 있는 곳]로 옮겼다. 그리고 골목 골목을 거닐면서 쿠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이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만큼의 돈을 지불하면서 살아가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내가 가진 지식으로 그들의 물가를 이해하기에는 뭔가 역부족이었다.
거리를 걷다가 어느 작은 식당 같은 곳 앞에서 사람들 몇 몇이 모여서 밀크티를 마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자 인도의 짜이가 미치도록 그리워 졌고, 나는 밀크티의 가격을 확인해 보았다. 3peso. 옆에 있던 상자엔 주먹만한 빵이 쌓여 있었는데, 밀크티와 빵 하나를 먹으면 금상첨화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밀크티 한 잔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 짧은 스페인어로 말했다. 이 빵 하나만 먹어도 되죠? 그리고 바로 빵을 하나 집어 들어서 밀크티와 함께 마셨다.
계산을 해 봤다.3peso. 1500x3 = 4500원. 나는 지금 4500원 짜리 밀크티를 마시고 있다. 나는 지금 4500원 짜리 밀크티를 마시고 있다. 나는 지금 4500원 짜리 밀크티를 마시고 있다. 라고 누군가 내 머릿속에서 자꾸 소리치고 있었다. 그랬다. 인도의 달콤한 짜이는 1잔에 100원도 안했는데, 쿠바의 밀크티는 적어도 나한테는 한 잔에 4500원 이었다. 스타벅스 커피보다 비싸다.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나는 내 나이보다 조금 더 있어보이는 주인에게 5peso라고 적힌 5CUC짜리 지폐를 내밀었다. 그러자 그는 지금 잔돈이 없으니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면서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잠시 뒤 나타나서 2peso를 거슬러 주었다. 1peso 라고 적힌 지폐 두 장. 2CUC이었다.
나는 생각했다.아까전에도 사람들이 많이 와서 사 먹던데, 왜 2peso를 바꾸기 위해 다른 가게 까지 갔다온걸까? 나는 그런 의문만을 남긴 채 그 곳에 모여있던 사람들의 시선을 등 뒤로 받으며 다시 까삐똘리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까삐똘리오로 오니 또 다시 배가 고팠다. 점심때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런데, 까삐똘리오 앞에 못 보던 장사꾼이 둘 생겼다. 빵 사이에 그냥 소시지만 꽂아서 파는 핫도그를 파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들 주위를 스쳐 지나가는 관광객인척 하면서 가격을 보았다. 내 눈이 휘동그래졌다. 핫도그 하나에 0.5CUC. 나에겐 혁명이었다. 어쩜 이럴수가 있지?
나는 그 날 그 곳에서 식사를 다 해결했고, 마운틴 듀까지 1CUC를 지불하고 사 먹었다. 태양이 스믈스믈 낡은 건물들 아래로 모습을 감출 때 즈음 나는 나의 보금자리 불법 까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6. 불법 까사 주인에게 들은 이야기.
그가 까사로 돌아오니, 이미 주인 아줌마가 먼저와서 작은 흑백 TV로 공연 DVD를 보고 있었다. 그에게 친한척을 하면서 옆에 앉으라면서 같이 보자고 했다. 그도 음악을 좋아하는 편이라 흥미있게 보고 있었는데, 그녀가 말했다. 니가 하루에 10CUC을 더 내면 아침과 저녁을 내가 해 주겠다. 그는 생각 해 보았다. 사실 좀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10CUC이라는 돈이 좀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싫다고 했더니 5CUC으로 가격을 내려서 같은 제안을 했다. 사실 숙소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던 터라 제안을 거절했는데, 여러가지 옵션을 더 제시하자 그의 마음이 조금 동요 되었다. 그리고 그는 쿠바의 살인적인 물가에 충격을 받고 있던 터라, 알았다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너무 기뻐하며, 자기가 잘하는 요리로 해서 대접하겠다며 이틀치 돈을 미리 달라고 했다. 그는 뭔가 찝찝했지만, 사기칠 사람같아 보이지는 않았서 그렇게 했다.
그리고 스페인어 사전을 찾아가며 대화한 끝에 그는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환전소에 가면 1CUC을 24peso로 바꿔 준다는 말이었다. 그는 그건 쿠바나(쿠바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냐? 라고 되물었으나, 아무나 CUC을 가져가면 Peso로 바꿔준다는 거였다. 1CUC에 24Peso. 그러면서 필요하면 자기가 지금 가서 환전해 줄 수 있다고 했다. 아는 사람이 환전소에서 일한다면서 엄청난 호의를 베풀기 시작했다.
그는 생각 해 보았다. 그랬다. 3peso 짜리 밀크티는 3CUC이 아닌 진짜 쿠바돈 3peso 였다. 그는 3peso만 지불하면 될 밀크티 가격에 72peso[3x24peso]를 지불 했던 것이다. 그는 또 한번 충격에 휩싸였다. 낮에 든건 없었지만 배가 고팠기에 맛있게 먹었던 핫도그도 알고보니 12peso짜리 핫도그 였던 것이다. 12peso짜리 핫도그는 길 건너에서는 야채까지 곁들여져 있었다. 식당 메뉴의 24peso도 실상은 1CUC이면 되는 것이었다.
그 때부터 그는 쿠바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 그랬다. 까사의 하루 방값이 10CUC인데, 핫도그 하나가 12peso일리 없었다. 그는 그녀에게 20CUC를 주며, peso로 바꿔 달라고 했다. 그리고 잠시 뒤 그녀는 480peso를 그에게 가져다 주었다.
7. 여행에선 돈을 쓸 수록 배움이 크다?
나는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쿠바가 정말 좋다. 물가가 싸다라고 다른 이에게 들었는데, 사실 나는 그 말을 이해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날 밤, 불법 싸구려 까사의 아줌마는 나에게 진실을 알게 해 주었다. 하지만, 내가 낮에 그런 일을 겪었다고는 말하지 못했다. 그건 지금 하나의 사건으로 남아 있다.
밀크티 한 잔이 스타벅스 커피 보다 비쌌던 쿠바에서의 이야기.
- 노을의 까삐똘리오
-까삐똘리오 앞 계단
-
- 까삐똘리오 앞
-
-
- 학교 운동장
- 0.5페소 짜리 버스. 정말 좋다. 싸서..
-
- 라 하바나 시티.
- 골목을 거닐다
-
-
- 아저씨
- 콘 아이스크림이 맛있던 가게의 형제
-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 풍의 음악이 울려퍼지던 재즈카페
-
- 위 쪽 돈이 CUC 아래 쪽 돈이 쿠바나 peso
CUC의 가치가 24배가 높다....돈도 더 이쁘다.
| Ep]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 베로니카를 만나러, 류블랴나, 류블랴나(Slovenia, Ljubljana) (12) | 2011.06.19 |
|---|---|
| EP] 자메이카, 킹스톤- 자메이카에 다시 오지 말라고?! - Jamaica, Kingston (15) | 2011.05.10 |
| Ep]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 하우스 파티, Shall we dance? (Venezuela, Caracas) (6) | 2011.02.23 |
| Ep] 브라질, 아마존 - 아마존의 과외 선생님들 - (Brazil, Amazon) (12) | 2011.02.16 |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1. 3. 15. 22:39
Venezuela, Caracas - Cuba, La Habana - Jamaica, Kingston
1. 엽서 혹은 편지.
초등학교 시절[15년 전 쯤]을 생각 해 보면, 친구들끼리 편지를 참 많이 주고 받았었다. 그 시절엔 휴대폰이라는 것도 없었고, 삐삐라고 불리는 작은 기계가 이제 막 세상에 모습을 드러 내려 할 때 였기에, 사람들은 손으로 글자를 쓰고, 편지 봉투에 그 글자들을 담고, 그리고 풀로 그 글자들을 감싸서, 우표와 함께 우체통에 넣었다.
어느 날, 집으로 들어서기 전 우체통에 다른 사람의 체온이 담긴 편지가 들어 있는 걸 발견 한다면 그 날은 정말 즐거운[혹은 기분 안좋은 일이 있었더라도 좋아지는] 하루가 된다.
연말이 되면 엽서를 보내기도 했고, 라디오 프로그램에 사연을 보낼 때도 단연 엽서를 썼다[지금은 휴대폰 문자나 인터넷 게시판을 이용하는 걸로 알고 있다] 누군가에게 짧은 말을 전할 때 나의 체온을 함께 전하고 싶다면 엽서를, 그리고 나의 마음을 좀 더 길게 담아서 전하고 싶다면 편지를 썼다.
중학교 시절, 설레는 마음으로 편지를 써서 좋아하는 여자아이에게 건네주기도 하고, 저 멀리 다른 도시로 전학 간 친구에게도 편지를 써서 안부를 묻곤 했다. 그리고 해외에 있는 친구들과도 편지를 주고 받기도 했다. 그렇게 편지는 보내는 기쁨과 그것을 기다리는 설렘 속에 기쁨이 있고, 또한 받았을 때도 기쁜 마음이 드는 특이한 존재였다.
그리고,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장소에서, 그 장소에 어울리거나 그 곳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혹은 그 나라에 어울리거나 특징을 잘 나타내는] 엽서를 구입하고, 친구들에게 안부를 묻는 엽서를 보낸다. 외국에서 외국의 향기가 담긴 엽서를 보내는 것은 백년 전이든 50년 전이든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든 여행자 들이 좋아하는 행동 중 하나이다.
엽서는 쓰는 사람의 체온이 담기고, 보내는 사람은 받는 사람을 한 번 더 생각하게 해주고, 엽서를 받는 사람은 그 사람의 체온을 전달 받고 기쁨에 잠길 것이 분명하기에, 여행에서 보내는 엽서는 특별한 가치를 지니게 된다.
2. 내 엽서는 어디로 갔나요?
나는 여행을 하면서 엽서를 수 많은 엽서를 보냈다.[보통 한 나라에서 2통 이상 씩. 한 번 보낼 때 보통 2개를 보낸다. 지금 까지 100통이 넘는 엽서를 친구, 혹은 아는 사람, 혹은 여행 중 만난 사람들에게 보냈다. 하지만 그 엽서들이 모두 그들의 품에 도착했는 지는 알 수 없다.]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에게 엽서를 보내면서 드는 생각은 오직 하나. 이 엽서를 받은 사람은 기분이 좋겠지? 그리고 먼 훗날 서랍장을 뒤지다가 우연히 내가 해외에서 보낸 엽서를 발견 했을 때 나를 잠시라도 기억 해 주겠지. 좋은 기억으로. 라는 생각.
엽서를 받았냐고 물어 봤을 때, 엽서를 받지 못했다는 사람들도 많았다.[특히,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에서 보냈을 경우] 내 엽서들은 어디로 갔을까? 누군가 그 엽서와 관련이 없는 사람 손에 닿아서 파괴 되었거나 그 가치를 상실 했을 것이다.
내가 억울하게 생각하는 것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보낸 엽서들이 대다수가 한국에 도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엽서 하나 보내는 가격이 한화 5천원 이상을 하지만, 나는 받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기뻐할 것을 알기에 보냈지만, 엽서들은 도착하지 않았다.[물론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
3. 쿠바에 대한 상념.
대학교 시절, 체 게바라를 알았다. 사회적 문제, 노동 운동에 관심을 가지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이다. 체 게바라 평전을 읽었고, 체 게바라의 젊은 시절을 모델로 한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라는 영화를 보았다. 그리고, 나도 젊은 시절의 체 게바라처럼 오토바이는 아니라도 그 코스를 따라 여행을 해 보겠다고 생각을 했다. 버스를 타고서라도.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와는 많이 다른 코스로 남미를 여행했다. 그렇지만, 그토록 가 보고 싶었던 쿠바에 왔다. 돈이 얼마가 들던 나는 쿠바는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나의 일정을 채찍질 해서 쿠바에 닿아 있었다.
사실, 쿠바에서는 체 게바라의 흔적을 가장 먼저 보고 싶었다. 체 게바라의 삶의 종지부. 그와 피델 카스트로. 그리고 사회주의 혁명. 쿠바의 이미지는 그런 것들이었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의 재즈 음악과 쿠바나 음악 보다는, 헤밍웨이가 하바나에 머물면서 썻다는 <노인과 바다>의 하바나 바다의 이미지 보다는, 쿠바 혁명의 흔적, 아니 그 보다더 직설적으로는 체 게바라의 흔적이 어떻게 남아 있는 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쿠바에 도착한 첫 날. 나의 쿠바에 대한 환상은 뒤바꼈다. 쿠바는 내가 생각하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혁명의 흔적은 역사의 파편이 되어 한 쪽에 머물러 있었고. 내가 찾던 체 게바라는 사진 속에서만 웃고 있었다.
4. 쿠바에 대해서 얼마나 아세요?
어디에 가세요? 쿠바에요. 다음은 어디가? 쿠바. 쿠바. 쿠바에 간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좋겠다고 했다. 물론, 나도 쿠바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쿠바에 간다는 나를 부러워 했다. 쿠바가 어떤 곳이길래?
내가 쿠바에 도착 하기 전 쿠바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곤, 사회주의 국가. 미국과 적대적 관계. 하바나의 클럽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재즈. 체 게바라와 피델카스트로의 혁명. 단지 그것 뿐이었다. 나는 단지 한 사람 때문에 쿠바를 동경하고 있었던 것이 틀림 없다.
남미, 라틴 아메리카의 영웅. 체 게바라. 하지만 영웅은 어디에도 없었다.
쿠바에 처음 도착하고, 시티 센터에 도착 했을 때 내 눈에 보인 건, 거대한 고딕 양식의 건물이었다. 중세 유럽에 온 듯한 느낌. 유럽의 한 도시에 온 기분이었다. 건물들은 낡아 있었지만, 기품있어 보였다. 흑은과 백인. 혼혈인들이 뒤섞여 있었고, 스페인어들이 쉴새 없이 내 귓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무언가 활기가 느껴졌지만, 내가 기대하던, 내가 생각하던 그런 곳과는 달랐다. 쿠바는 이런 곳인가? 클래식 카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지만, 세련되어 보이지는 않았다. 도로엔 차들이 지나다녔고, 거리엔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혼잡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나는 쿠바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5. 쿠바에 대해서 알아가는 단계.
숙소로 잡은 불법 까사에서, 쿠바 사람들의 삶을 보았다. 불법 까사는 다세대 아파트의 수 많은 문들 중 하나를 열고 들어가자 나왔다. 5평이 채 되지 않은 작은 공간. 그 곳에서 한 가족이 살고 있었다. 주인 여자의 남편은 경찰. 주인 여자의 나이는 30대 중반 정도로 보였지만 19살 짜리 아들이 있었고, 동생은 5살 이었다. 내 방이랍시고 내 준 곳에 창문은 없었고, 건넛집의 음악소리, 말소리가 다 들려왔다. 옆 집에서 키우는 새들이 아침을 알리는 그런 곳이었다. 침대는 삐걱대고 있었다.
지도를 보며 거리를 걸었다. 올드 시티. 길을 따라 가자,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곳이라서 그런지 괜찮아 보이는 카페와 식당들이 늘어서 있었다. 건물들은 하나같이 오래되어 쓰러질 듯 한 모습을 띤 것도 있었지만, 그래도 봐 줄만 했다. 광장에는 여러 무리의 광광객 떼들이 보였다. 나는 조용히 그늘에 앉아 그들을 바라 보다가, 혼자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골목 속으로 숨어버렸다.
밤의 쿠바 시내 거리는 조용했다. 빛 조차 찾아들지 않는 골목 속으로 다니기가 무서웠다. 늦은 밤의 거리는 차들도 거의 없었기에 혼자 그 거리를 걷고 있자니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왠지 모르게 누군가 나타나 칼로 나를 찌를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 - 쿠바가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
서점에 들러 책을 보았다. 음반 가게에 들러 음악을 들어 보았다. 쿠바나 뮤직. 나쁘지 않기에 CD를 몇 장 샀다. 길 거리에, 서점에 엽서를 파는 사람들. 그 곳엔 항상 체 게바라가 있었다. 체 게바라는 이제 자본주의의 물결 속에서 좋은 돈벌이 수단이 되고 있었다.
3peso 짜리 지폐 속의 체 게바라는 3CUC(1CUC=24peso)에 판매되고 있는 좋은 기념품의 하나 였다.[나는 우연히 상점에서 3peso 지폐를 거슬러 받았다] 그리고, 체 게바라의 얼굴이 양각된 동전도 하나의 기념품이 되어 있었다. 쿠바 국민들에게는 그냥 동전에 불과했지만, 관광객들에게는 그것이 하나의 기념품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체 게바라의 얼굴을 가지고 돈을 벌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그것은 가능했다.
혁명의 흔적은 혁명 광장에서 잠깐 느낄 수 있었다. 드넓은 광장을 가운데 두고, 큰 얼굴들이 탑을 바라보고 있었다. 혁명 탑. 체 게바라의 눈동자도 그 곳을 향해 있었다. 혁명은 그 곳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사진속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하바나의 거센 파도. 듣던대로 거센 파도였다. 도심에서는 바람을 전혀 느낄 수 없었지만, 노인과 바다에서 묘사된 듯 한 하바나 해변에는 성난 파도가 휘몰아 쳤다. 이 곳이 노인이 사투하던 바다라고 말하는 것 처럼. 노인은 결국 빈손으로 집에 돌아왔고, 잠이 들었다. 나도 빈 손으로 그 곳을 거닐다가 싸구려 까사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쿠바의 극장에서 쇼를 보았다. 하바나의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극장으로 몰려와 쇼를 보았다. 어딜가나 그런 부류는 있는 법이다. 그 쇼의 가격이 보통 식당에서 코스 요리로 한끼를 먹는가격의 30배가 넘는 금액이지만, 그런 쇼는 표가 없어서 못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젊은 청춘 남녀들의 모습을 보았다. 세상, 어딜가나 다 똑같은 법이다.
쿠바에는 시내버스 노선도가 따로 없다. 버스 안에만 노선도가 있다. 외국인들은 버스 노선을 알 수 없다. 버스는 한 번 타는데 0.5peso.[한화 약30원]. 일부러 외국인들은 택시를 타게 하려고 노선도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현지인들이 타는 여객선을 타고 요새가 지어져 있는 하바나 건너편의 카사블랑카로 갔다. 그 곳에서 하바나 시내를 바라보고 버스를 타고 하바나로 돌아왔다. 0.5peso짜리 버스에는 쿠바나의 냄새가 났다. 나쁘지는 않았다. 이게 바로 사람사는 냄새.
0.5peso짜리 시내버스를 타고 정처 없이 돌아 다녔다. 그냥 이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그리고 거기서 또 다른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그렇게 버스를 타고 사람 사람 곳을 돌아다니며 구경을 했다. 시티투어 버스가 15CUC인가(?)를 하는것에 비하면 100배 이상 싼 금액이니까. 난 그런 여행을 즐겼다.
6. 쿠바 어떤가요?
쿠바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조금 더 많이. 쿠바는 내 생각 속에서 혁명의 나라 였지만, 그 곳은 정열의 나라 였고, 음악의 나라였고, 사람 냄새 나는 곳이었다.
한편으론, 체 게바라가 너무나도 상품화 되어있다는 사실이좀 씁쓸하긴 했다. 체 게바라가 과연 그 사실을 알면 어떤 말을 할까?
쿠바는 그런곳이었다. 사람 사는 곳. 라틴 아메리카 속의 라틴 아메리카.
- 까삐똘리오 옆으로 지나가는 버스
- 까삐똘리오
-
-
- 차이나 타운 입구
- 혁명 광장의 체 게바라
- 하바나 해안도로
- 카사블랑카 언덕에서 본 하바나
Good Bye Cuba, Adios! Habana!
| 필리핀, 세부 시티 - 우리는 외국 여행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먹는가?(Cebu City) (6) | 2013.02.23 |
|---|---|
| 세계여행] 자메이카, 음악과 함께 하는 삶. Jamaica, Kingston. (14) | 2011.03.27 |
| 세계여행] 쿠바, 하바나 - 진정한 라틴의 피가 흐르는 곳. (La Habana) <2> (12) | 2011.03.06 |
| 세계일주] 쿠바, 하바나 - 기대 그 이상의 가치. - 쿠바, 하바나<1> (10) | 2011.02.27 |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1. 3. 6. 00:22
Venezuela, Caracas - Cuba, La Habana - Jamaica, Kingston
1. 음악, 그것은 여행객의 필수품이 되어 버렸다.
옛날 어느 유럽여행이라는 프로그램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면서 반드시 챙겨야 하는 것이 무엇이었을까?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면서 여행 필수품에서 사라져 버린 것들도 있을 것이고 새로 생겨난 것들도 많을 것이다. 여행 가방은 아마도 그 형태만 가뀌고 기능성이 추가 되었을 뿐 예나 지금이나 가장 중요한 필수품일 것이 분명하다. 카메라는 어떨까? 자신이 다녀온 곳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찍은 사진. 아마 옛날 유럽 여행이 시작되었을 때도 카메라는 필수품이었을지도 모른다. 단지 시간이 지나 기술이 발전했고, 예전보다 더 편리하게 사진을 찍고, 찍은 사진을 볼 수 있다는 것 말고는 바뀐 것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서 새롭게 여행 필수품이 되어버린 것. 바로 음악. 궁극적으로 말하자면 음악을 재생하는 장치와 음악이 재생될 수 있게 하는 음원이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소니(Sony)에서 워크맨을 개발하여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이후 워크맨 시장은 급속도로 발달했다.[필자가 고등학생이던 때만해도 워크맨은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고, 그 때 막 MD player 가 나오고 CD player는 최고급 아이템 중의 하나였다] CD player 시대를 지나 새롭게 등장한 것이 바로, MP3 player 이다.
2000년 밀레니엄시대를 기대와 우려속에서 맞이하고, 2002년 월드컵의 함성을 지날 무렵 MP3 플레이어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고, 많은 문제가 있었지만 각각의 개인은 서로간에 음악을 주고 받기에 바빳다. 그러면서 여행, 더 궁극적으로는 해외여행의 필수품으로 자리잡은 듯 하다.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음악을 가지고 있다. 음악이라고 해서 기계가 재생하는 그런 음악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악기를 들고 다니면서 음악을 직접 만드는 이들도 있다. 소형 스피커를 들고 다니며 작은 기계속의 음악을 공유하는 사람도 있고, 직접 몸으로 음악을 만드는 사람도 있다. 기타 사물을 이용해 연주를 하는 사람도 봤다. 그리고, CD를 수십장 들고 다니며 음악을 듣는 사람도 봤다.[CD를 들고 다니며 음악을 듣는 사람에게서는 왠지 묘한 매력이 느껴진다.]
이렇듯, 음악과 그것을 재생하는 장치는 여행객의 필수품이 되었다.
2. 음악은 우리를 즐겁게 한다.
많은 이들이 음악을 즐긴다. 그리고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음악에 재능이 있든 없든] 대중가요는 차치하고[대중가요가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다]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은 보통 인디(indie)음악을 많이 찾는다. 인디음악에는 항상 에너지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우리나라 사람들도 다양한 음악을 다양한 장소에서 즐기게 되었다.[아마 인터넷과 다양한 매체의 발달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특히, 서울에 위치한 '홍대 앞 거리'의 많은 클럽과 카페에서 다양한 음악을 즐길 수 있다. 그렇게 다양한 음악을 클럽이나 카페같은 곳에서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닌데, 우리나라의 정서상 그런 문화가 보편적으로 허용되는 특정 지역에서만 그런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슬픈 감정을 자아내기도 한다.
물론, 서울이라는 공간이 너무나도 거대하고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볼거리, 다양한 장소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그런 오픈된 장소에서 여유와 음악을 즐기며, 노는 문화에는 익숙치 않은 것 같다.[물론 뉴욕, 파리, 런던 같은 대도시에서도 라틴과 같은 분위기는 아니지만, 우리나라보다는 훨씬 더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음악들을 즐길 수 있다. 물론 그에 합당한 돈을 지불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즐기기 위해 특정 장소를 찾고, 그러한 특정한 장소들이 더욱 많아 지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즐겁게 하는 하나의 요소이다. 음악은 세상을 아름답게 할 수도 있다. 존 레논이 말했던 것 처럼.
3. 경제적 발전과 삶을 즐기는 것은 반비례 하는 쿠바.
쿠바의 경제가 세계에서 몇 번째 쯤 될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싸구려 까사(casa, 현지인 민박 형태의 숙소)에서 생활이 시작되고 내가 그녀에게 방세를 지불 했을 때 그녀는 미소를 머금었다[내가 지불한 방세는 10CUC. 1CUC = 24peso. 20페소면 로컬 레스토랑에서 코스요리를 먹을 수 있는 정도이다]. 그리고 나에게 스페인어로 말을 걸어왔다.[그녀는 영어를 못했으므로] 나의 짧은 스페인어와 라틴스페니시 프라세북의 사전을 뒤적이며 대화를 이어갔다.
오늘 밤, 그녀는 라틴댄스를 추러 간다고 했다. 거기서 춤도 배우고, 라틴 댄스도 추고. 나에게 같이 가보지 않겠냐는 말을 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나는 그 날 밤, 오페라극장에서 하는 쇼의 티켓을 예매해 놓은 상태였다.
4. 쿠바의 치안, 보기와는 다르네요?
극장으로 가는 길, 길거리의 가로등은 빛이 나지 않은 채 서있거나, 빛이 약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런 거리를 걸었다. 거리를 걸었기보다는 그냥 칠흑같은 어둠속을 헤쳐나갔다고 보는 편이 옳을 정도로 어두운 골목이었다. 거리의 양 옆에는 낡은 건물들이 서 있었고, 그 곳에는 쿠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어둠 저편에서 "하포네스(japanese의 스페인어식 발음)" 혹은 "치노!(중국인의 스페인어)"라는 소리가 메아리쳐 울려왔고, 가끔 내 바로 뒤에서 그런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무서웠다. 사실, 난 완전하지 않은 지도 한장과 낮에 거리를 쏘다녔던 기억을 더듬으며 길을 가고 있었는데, 그런 어둠 속에서 내 기억력은 제대로 작동될 리 없었다.
어느정도 지났을까? 나는 더이상 길을 갈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날 밤, 극장에서 열리는 쇼고 뭐고 다 집어 치우고 싶었다. 그냥 숙소로 돌아가서 잠이나 자고 싶었다. 쇼를 보고 나면 밤 12시가 넘을 텐데, 밤 늦은 시간 혼자 숙소로 돌아올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정말 그 거리에서 칼맞고 죽어도 누구하나 챙겨주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극장으로 가던 발걸음을 다시 숙소 쪽으로 돌려서, 사람들이 우글대는 혼잡한 거리로 진입했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나는 길을 걷다가 우연히 한국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들은 말.
쿠바가 라틴아메리카에서 치안이 제일 좋은 나라래요.
5. 쿠바의 음악과 쇼(Show)를 즐기다.
쿠바의 신시가(新市街)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 사람의 말을 듣고 난 쿠바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왜 쿠바가 라틴에서 가장 치안이 좋은 곳이 되었을지를 생각 해 보았고, 그리고 나를 자기의 까사로 안내한 쿠바 청년의 말이 생각났다.
사회주의 국가 쿠바. 외화벌이의 유일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 외국인 관광객. 그리고 국가가 엄격하게 통제하는 사회의 범죄통제와 사회 질서 혼란에 대한 국가의 응징.
그 날 이후로, 나는 밤마다 이곳 저곳을 쏘다니며 공연을 보고, 재즈카페에서 술을 마시며 재즈 공연을 보고 들었으며, 공원 벤치에 앉아 밤 늦은 시간까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쿠바에서 만난 한국인과 함께] 밤이 깊어 자정이 지난 시간에도 쿠바의 시내버스는 운행을 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공원에서 더위를 식히며, 담소를 나누거나 술을 마셨다. 더러는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거리에 사람은 뜸했지만, 공원에는 아직 숙소로 돌아가기 아쉬운 그런 기운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희한한 것은 여름 날씨였는데도 불구하고, 공원에는 모기가 없었다. 아니, 쿠바에서 모기를 보지 못했다.
쿠바의 밤에는 극장같은 공연 장에서 발레공연이 열리거나 연주회가 열렸고, 재즈 카페에서는 재즈 음악이 흘러 나왔고, 쇼를 하는 술 집의 무대위에서는 무용수들이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렀고, 사설 댄스장에서는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며 즐기는 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렇게 쿠바의 밤은 흥미로운 볼거리, 놀거리들로 가득했다. 물론 낮이라고 예외는 아니었지만.
6. 거리에선 음악이 흘러 나오고.
싸구려 까사의 여주인은 나에게 쿠바의 다양한 음악들을 들려주었다. 조그마한 흑백 텔리비전 화면속에 비치는 DVD영상은 어색했지만,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은 나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쿠바의 다양한 아티스트들. 라틴음악 부터 재즈까지. 쿠바나 뮤직. 정말 매력적이었다. 나는 여주인에게 추천받은 가수의 CD를 사야겠다는 생각을 머리속에 간직한 채 쿠바의 거리를 걸었다. 그리고 버스정류장 근처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CD를 팔고 있는 노점에 들러 음악을 들으며 CD를 고르고 있었다.
거리에는 음악이 흘러 퍼졌고, 사람들은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 주변에 서 있으면서도 리듬을 타고 있었다. 그 중 한 꼬마, 대여섯살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꼬마가, 살사 음악에 맞추어 몸을 흔들었다. 정말 유연한 몸놀림. 놀라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의 몸놀림을 하는 그 어린아이는 내 머리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아, 모든 쿠바의 사람들이 어릴 때 부터 이렇게 음악을 들으면서 춤을 추니, 나이가 조금 더 들어 10대 후반, 20대 그리고 30대 더 나아가 40대가 되어서도 그렇게 춤을 추는 것을 즐기고, 음악을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쿠바의 거리에서는 음악이 흘러 넘쳤고, 사람들은 흘러 넘치는 음악을 몸으로 주워 담고 있었다.
| 세계여행] 자메이카, 음악과 함께 하는 삶. Jamaica, Kingston. (14) | 2011.03.27 |
|---|---|
| 세계여행] 쿠바, 하바나 - 환상 그 이상의 즐거움 (La Habana) <3> (16) | 2011.03.15 |
| 세계일주] 쿠바, 하바나 - 기대 그 이상의 가치. - 쿠바, 하바나<1> (10) | 2011.02.27 |
| 세계일주] 미녀(美女) 공화국, 베네수엘라 - 카라카스(Caracas) (14) | 2011.02.19 |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1. 2. 27. 23:58
Venezuela, Caracas(베네수엘라 카라카스) - Cuba, La Habana(쿠바 하바나) - Jamaica, Kingston(자메이카 킹스톤)
1. 비자(Visa), 특정한 국가를 여행 할 때 허가증을 따로 받아야 한다는 것.
전자 여권 제도가 시행되기 전 광화문 미국 대사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던 광경이 있었다. 미국 대사관 입구에서부터 대사관 주변으로 길게 뻗은 줄. 미국 비자를 받기위해 사람들은 그렇게 줄을 서야 했다.[전자 여권 제도가 시행된 후, 그 모습은 사라졌다] 2004년 필자가 일본을 여행 할 때만 해도, 일본 대사관에서 비자를 따로 발급 받아야 했다.[그것은 적잖히 번거로운 일이었다] 하지만 일본과의 무비자 협정 체결 이후, 일본은 손쉽게 갈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빨리 중국과도 무비자 협정이 체결되기를 바란다]
어느 특정 국가를 여행할 때, 그 나라에 대해서 확인 해야 할 것 중 하나가 바로 비자의 필요 유무(有無)이다. 전 세계적인 추세가 특별히 대사관에서 비자를 따로 발급 받지 않고도 자기의 나라를 여행할 수 있게 하는 무사증(무비자)를 허용하고 있지만, 아직도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라면 비자가 필요한 국가가 많다.[유럽의 경우는 러시아, 벨라루스를 제외하고 모든 나라가 무사증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 필자가 2005년 마케도니아와 슬로바키아를 가고자 했을 때는 비자가 필요했지만 2007년 이후로 무비자로 바뀌어 동유럽 여행이 한결 쉬워졌다]
비자를 발급 받을 때 유의할 점은, 반드시 본국[대한민국 사람이라면 한국내에서]발급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고, 우리나라에 대사관이 없어서 외국에 있는 대사관에서 발급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국경에서 비자 발급 비용을 지불하면[흔히 비자피(Vasa fee)라고 한다] 비자를 발급해 주는 곳도 있다는 것.[대표적으로 캄보디아, 네팔을 들 수 있고, 시리아의 경우는 우리나라와 수교를 하고 있지않기 때문에 국경에서 비자를 발급해 준다. 시리아 입국시 일본인의 경우는 일본 현지의 시리아 대사관에서 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고 들었다]
비자 문제는 유럽 여행을 할 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장기간 여러나라를 여행하는 장기여행자들의 경우는 특히 신경써야 할 부분이다.[국경에서 비자 문제로 입국이 거부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러시아, 몽골, 중국, 시리아, 볼리비아등 많은 나라들이 아직도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비자를 요구하고 있고, 비자에 관한 문제는 수시로 정책이 바뀌기 때문에 꼭 챙겨두어야 할 사항이다.
2. 쿠바에 다녀온 흔적을 남길 수 없다.
이스라엘은 중동의 미운오리 새끼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이스라엘은 꼭 가봐야 할 곳중 한 군데이기도 하지만, 많은 여행자들이 이스라엘의 독특한 위치와, 역사적 상황, 그리고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기 위해 이스라엘을 가고자 한다. 하지만, 이스라엘을 갈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바로 입/출국 스탬프를 여권에 찍어서는 안 된다는 것. 이스라엘을 입/출국 할 때는 별지에 스탬프를 찍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출/입국 스탬프가 찍혀 있으면 주변 나라에서 입국을 시켜주지 않는 다는 것이다. 미운오리 새끼, 이스라엘.
쿠바에 가기 위해서는 비자가 필요하다. 쿠바는 국제사회의 왕따이다. 국제사회의 큰형 미국이 쿠바를 왕따시키고 있기에, 쿠바는 늘 찬밥 신세다. 하지만, 역사적으로든 문화적으로든 쿠바는 엄청난 매력을 가진 곳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쿠바를 찾는다.[많은 수의 미국인들도 쿠바를 찾는다. 미국의 대문호였던 헤밍웨이는 쿠바 하바나에 살면서 "바다와 노인"이라는 소설을 썻다] 하지만, 쿠바도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여권에 스탬프를 찍을 수 없다. 별도의 비자 용지를 구입해서 그 곳에 스탬프를 찍고 출국 할 때 반납해야 한다.
보통, 쿠바의 비자는 항공사 사무실에 비자를 판매하는 코너에 있다. 쿠바에 입국하기 위해서는 비자가 필요하고, 그 곳에서 비자를 구입해야 한다. 그리고 그 종이에 입국 스탬프를 찍고, 쿠바 출국 심사를 할 때 반납한다. 쿠바의 흔적은 여권에 남길 수 없다.[쿠바 스탬프가 있으면 미국을 갈 수 없다는 이야기도 있다]
3. 비행기는 카리브해(Caribbean sea) 위를 날고 있었다.
하우스파티 다음 날 아침, 나는 숙소로 가서 짐을 챙겼다. 내가 루이지의 집을 떠날 때 그는 나에게 물었었다. 어디서 공항가는 버스를 탈 거냐고. 나는 지도를 보여주고 11시 쯤 지도에 표시된 곳에서 버스를 탈 것이라고 말하고 떠났지만, 그 곳에서 버스를 타지 않았다.
공항에서의 까다로운 배낭 패킹을 마치고, 출국세를 지불하고, 베네수엘라의 인기있는 가수라는 녀석의 CD를 한장 구입하고, 쿠바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렸다. 또 다시 방문하게 되는 사회주의 국가였다.[이번 여행에서 시리아, 중국, 쿠바 세 군데의 사회주의 국가를 방문했는데, 각각의 나라 분위기가 너무나도 달랐다] 체 게바라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남아있는 쿠바. 피델 카스트로, 체 게바라. 혁명. 그리고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의 재즈. 그리고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 묘사되는 하바나의 성난 바다. 여러가지 이미지들이 내 머리속에 겹쳐졌다.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에 좀 더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다음 행선지인 쿠바와 자메이카의 매력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크게 다가왔기에, 카라카스에서 좀 서둘러 떠나는 감이 있어 좀 아쉬웠지만, 내가 그토록 가고싶어 하던 곳에 더 오래 머물고 싶다는 욕망을 이길 수는 없었다.
Cubana air의 낡은 기체는 한적한 공항 위를 이륙해서 반원을 그린다음, 파랗게 펼쳐져 있는 카리브해(Caribbean sea)위에 자리를 잡았다. 창밖 아래로는 카리브해의 작은 섬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세계적인 휴양지로 손꼽히는 섬들이겠지.
4. 하바나 국제 공항.
크지 않은 공항은 좀 혼잡해 보였다. 공항은 여러 무리의 관광객들을 토해냈고, 쿠바에 살고 있는 것 같은 여러 중국인들을 토해냈다. 나는 공항의 환전소에서 환전을 했다. 충격이었다. 이미 쿠바에 오기전에 들은 바는 있었지만, 정말 이렇게 심할 줄은 몰랐다. 캐나다 달러가 쿠바에서 가장 환율이 좋다는 이야길 듣고 캐나다 달러를 사고자 했지만, 캐나다 달러를 살 곳이 없었던 내가 가진 것은 미국 US달러였다.
우리나라 환율로 따지면, US달러가 훨씬 높았지만 쿠바에서는 US달러의 가치는 형편없었다. 울며 겨자먹기로 외국인용 화폐로 쓰인다는 CUC(쿡 이라고 불린다)을 바꾸고 공항 앞에서 택시를 잡았다. 택시에 몸을 싣고, 시내 중심가격은 까삐똘리오로 가자고 했다. 그 근처에 까사[현지인이 운영하는 민박과 같은 숙소]가 많다는 정보를 들은 바 있어서 그 곳에서 숙소를 잡기 위함이었다.
5. 혁명의 흔적과 함께 시간이 멈춰 버린 듯한 도시.
한적한 공항 주변의 도로를 달려, 하바나 시내로 접어들고 있음이 느껴졌다. 사람들은 버스 정류장 근처에 몰려서 버스를 타려 하고 있었고, 버스는 사람들을 가득 태우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거리엔 우리나라에서는 찾아 볼 수 없고, 다른 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클래식 자동차(Classic car)들로 넘쳐났다. 그리고 론니플래닛에 적혀있던 한 구절이 생각났다. "쿠바의 볼거리 중 하나인 클래식 카(Car)"
낡은 자동차들이 검은 매연을 토하면서 거리를 누비고 다녔다. 페인트가 벗겨진 클래식 카도 있었고, 삐까번쩍한 클래식 카들도 있었다. 도요타의 자동차도 거리를 누비고 있었고, 간혼 현대차도 보였다. 그래도 거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클래식 카였다.
어쩌면 혁명 이후 시간이 멈춰 버린 걸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미국의 경제 봉쇄 정책으로 인해서 시간이 멈춰버린 것일 지도]
6. 불법 까사. 그 곳이 나의 숙소.
까사를 찾기위해 까삐똘리오[예전에는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던 건물. 중앙에 큰 돔이 있는데 세계에서 손에 꼽힌다. 쿠바 하바나의 메인 건물 중 하나로서 역사도 오래되었고 규모면에서도 세계적인 건축물이다] 주변을 배회하다 보니, 한 명이 나에게 접근하더니 물었다. 까사?까사?
씨씨, 라고 대답하딘 10cuc에 해 준다고 했다. 엄청 싸다는 생각에, 한번 집부터 보자고 했다. 그러더니 따라오라면서, 나와는 2미터 정도의 간격을 두고 걸었다. 그리고 말을 할 때도, 나를 바라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시선을 다른 곳으로 향했다.[ 쿠바는 미국의 경제봉쇄적책으로 인해 외화를 벌어들이는 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외국인 관광객에 의한 외화벌이이다. 따라서 쿠바는 정책적으로 외국인 관광객을 많이 보호하고 관광을 장려하고 있다. 외국인 보호와 관광객 유치라는 정부 정책에 의해 정부에서 제공되는 서비스의 가격에는 외국인 가격(foreign price)가 형성되어 있음은 물론이지만, 외국인 관광객에 대한 보호도 강력하게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현지인이 외국인 관광객과 직접 대화를 하거나 접근하여 신체 접촉을 하는 모습을 경찰이 보면 그 자리에서 쿠바 현지인은 체포되어 감옥으로 간다고 한다.]
까삐똘리오에서 걸어 일반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 같은 건물에 들어섰다. 출입문을 열쇠로 열고, 좁은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각종 전선들이 거미줄처럼 계단 위쪽에 얽혀 있었다.[불이라도 날 것 같았고, 불이 난다면 다 죽을 것 같았다] 4층에 다다르자 또 하나의 문이 나왔고, 그 곳에는 복도를 따라 몇 개의 문이 있었다. 그 중 하나로 나를 안내했다.
여기가 현지인들이 살고 있는 곳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이 겨우 설 수 있는 주방. 거실에는 네 개의 세포와 작은 TV와 오디오가 있었다. 화장실은 거실 한쪽 벽문에 있었는데, 환풍기가 없었고, 샤워기는 없이 수도꼭지만이 있었다. 주방 바로 뒤에 좁은 계단을 타고 올라가니 다락방이 나왔다. 다락방은 두개의 칸으로 나뉘어 있었고, 계단과 연결되는 곳에 하나의 침대가 있었고, 문 너머에 또 다른 하나의 침대가 있었다.
이런 곳에서 한 가족이 살고 있다니. 정말 빈민촌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 곳이 일반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다. 이것이 쿠바의 현실인가? 아-주 저렴한 가격의 숙소. 뭐, 난 이제까지 여행하면서 이보다 더 심하고 시설이 좋지 않은 곳에서도 살아 봤으니라고 생각했고, 그 날 몹시 피곤했기에 다른 숙소로 옮길 생각도 없었다. 일단 여기서 이틀 정도 지내보고 숙소를 옮길지 말지 결정하기로 했다.
그렇게,
불법 싸구려 까사(casa)에서 나의 쿠바에서의 여정은 시작되었다.
- 공항을 빠져나오며
- 까삐똘리오
-
- 숙소 근처의 차이나 타운 입구
- 어디에나 걸려 있는 체 게바라
- CIUDAD DE LA HABANA
- 관광객 기다리는 쌔끈한 클래식카
-
- 혁명의 흔적
- 주차장
| 세계여행] 쿠바, 하바나 - 환상 그 이상의 즐거움 (La Habana) <3> (16) | 2011.03.15 |
|---|---|
| 세계여행] 쿠바, 하바나 - 진정한 라틴의 피가 흐르는 곳. (La Habana) <2> (12) | 2011.03.06 |
| 세계일주] 미녀(美女) 공화국, 베네수엘라 - 카라카스(Caracas) (14) | 2011.02.19 |
| 세계일주] 아마존의 중심, 마나우스(Manaus). (6) | 2011.0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