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이야기] 호주에서, 워킹을 끝내다.

- 호주, 워홀이야기- · 2014. 8. 9.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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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rd Edit. 이 글은 2010년 11월에 썼던 것을 다시 다듬은 글 입니다.

1. 이런 대화를 한 적이 있다.
"난 특별한 목적없이 호주에 왔지만, 결과적으로는 만족해. 그래도 얻어가는게 있으니까."
"호주에 와서 영어도 많이 늘었고, 돈도 많이 벌고 이정도면 괜찮지."
"저도 여행경비 만들려고 호주에 와서, 목표[최소한의 목표- 여행경비 충당]는 이루었으니까 만족해요."

" '실패다', ´성공이다´ 라고 말하는건 웃기지만, 호주에 워킹와서 돈만 쓰다가 돌아가는 사람들도 많은데 이정도면 우린 최소한 실패한 케이스는 아니죠."[웃음]


2. 7월 22일 밤,
 비행기 좌석 앞에 설치된 모니터에서는 잠시 후 도착할 도시, 호주 퍼스(Perth)의 현재기온 11도, 날씨는 "비"라는 글자를 보여주고 있었다.

 퍼스공항.
 피곤하고, 정신도없고, 연착한 말레이시아 항공 승객들이 내가 탄 비행기와 동시에 도착해서인지 퍼스의 작은 국제공항은 더욱 혼잡스럽게 느껴졌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심사대를 빠져나오니 새벽 1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역시 듣던 대로 세관 검사가 까다로웠지만 무사히 통과했고,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첫차를 기다리기 위해 공항을 이리저리 배회하며 잠 잘곳을 찾아다녔다. 한 외국인 여행객이 공항 한쪽에 자리를 잡고 있기에 그 쪽에서 나도 같이 밤을 보낼 요량이었다.

 나는 호주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아는 사람도 없고, 숙소도 예약해 놓지 않았기 때문에 어디로 가야할 지를 몰랐다. 날이 밝으면 무작정 시내로 가서 어디로든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운 좋게도 한 한국인이 무료로 픽업을 해 주었고 자신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해 주었다. 그렇게 나의 호주 생활이 시작되었다.

△ 퍼스 CBD(Perth CBD) 야경.

2주간 실업자로 지낼 적에 찍은 것.


3. 호주에 오기 전, 내가 목표로 한 것.
1. 여행자금 600-700만원가량 모아서 가기.[미국, 중미, 남미 여행]
2. 오래 있지말고, 딱 3개월만 호주에 머물면서 돈을 모으기.
3. 스카이다이빙하기.
4. 서핑하기.
5. 일 끝나고 2-4주 정도 호주 여행하기.


4. 호주에 와서, 몸으로 느낀 것.
1.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퍼스의 경우 7, 8월은 겨울이기 때문에 농장/공장을 막론하고 일자리가 거의 없었다. 한마디로 '초 비수기'였다.
2. 호주의 임금이 생각 했던 것 보다 높았다. 호주에 오기전 시급을 15달러 선, 텍스를 제외하고 12-13달러 정도로 생각했는데, 실제로 일을 하면서 텍스를 제외하고 최고 22.5달러를 받고 일했다.[야간에 일을 할 때는 30달러까지 받은 적도 있다]
3. 서핑하기에 파도는 너무 좋은데, 웬만큼 수영을 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드넓은 대서양에서 흘러오는 파도가 장난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 풍랑주의보가 발효되었을 때 밀어닥치는 수준의 파도가 평소에 몰아 닥친다. 나는 몇 번씩이나 파도에 휩쓸렸고, 필사적으로 바다에서 빠져나오곤 했다]
4. 듣던 대로 호주 서부해안의 바다는 정말 깨끗하고, 좋았다.
5. 어딜 가든 한국 사람이 있다. 대도시엔 특히 더 많다.
6. 영주권을 따서 호주에 정착하려는 사람이 많았다. 살기 좋은 나라다?[많은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내가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한 나라가 있다. 그 중 한 곳으로 '호주'가 추가되었다.]


5 일에 대한 것.
  호주에 수요일 밤에 도착했고, 그 다음주부터 일을 시작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일을 빨리구한 축에 속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호주에 온 지, 2주 하고 이틀이 지난 뒤 일을 시작했다. 사실, 농장에 가기싫었는데 나에게 더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시간도 시간이었지만 내 수중에 돈은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기 떄문에 아무 일이라도 해야했다] 시간 = 돈.

 컨츄렉터 밑에서 여러 농장을 돌아다니면서 8월 8일부터, 9월 28일까지. 약 7주간 일했다. 그 동안 번돈, 텍스포함해서 5000달러가 조금 넘는 금액.[캐시로 돈을 받고 일한 경우도 있었다] 텍스 13%를 제외하고, 생활비를 제외하고, 아끼고 아끼고 아껴서 7주 동안 3천 달러 조금 넘는 돈을 모았다.
하지만, 내 목표금액에 턱없이 모자란 금액이었다. 그리고 호주 물가가 예상보다 훨씬 비쌌기 때문에 여윳돈이 필요했다.

△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서 카날본으로 가는 길, 로드하우스.


 약 2주가량 쉬고 나서카날본 농장에서 캐시잡으로 시간당 15달러, 4시간을 일했다. 이틀 뒤부터 퍼스 근교 '프리맨틀(Fremantle)'의 공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공장에서 약 9주간 일했다. 7주만 일할 지, 조금 더 일할 지 많은 고민을 하기도 했다. 일을 조금 더 하면 좀 더 많은 돈을 가지고 여유있는 여행을 할 수 있었고, 일을 빨리 그만두면 돈은 부족하지만 시간에 좀 더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공장엔 일거리가 넘쳐났다.
 하지만 항상 변수는 있고,[사실 돈 욕심이라는 것이 조금 생기기도 했다] 많은 고민을 했다. 

 날짜를 생각했다. 언제 떠나야 할까?

 내가 예상했던 비행기 표값(남미로 가는 비행기)이 약 100만원이었는데, 비행기 표를 미리 끊지 않아 '성수기'티켓을 끊을 수 밖에 없었다. 남미로가는 비행기 티켓이 250만원이었다.[편도였는데도 말이다!] 여윳돈 생각에 12월 초에 남미로 떠나기로 했다. 남미는 그때가 성수기 절정에 이르는 시기였다.

 하지만, 막판에 일주일만 일하면 100만원이라는 생각에 1주일 더 일하게 되었다. 100만원이면 남미 한달 생활비(?)라는 자기 합리화.[삶을 살아가는 가장 편한 방법이기도 하다. 자기합리화]

△ 공장일을 그만두기 전날 밤.

칸쿠와 미치. 칸쿠가 내 가방을 들고나왔다.


6. 12월 10일, 새벽에 마지막 일을 끝마치고, 페이를 받았다.

 공장에서 9주간 일하면서 번 금액, 16,000달러가 조금 넘는 금액, 텍스 3,600달러 정도를 빼고 내가 만진돈은 12,000달러.

사람은 역시, 버는 만큼 쓴다. 
공장에 일할때는 방값은 좀 비쌌지만 좋은 집에 살았다. 전형적인 호주의 전원 주택. 집에 정원,수영장이 있었다.
해보고 싶던 서핑도 했다. 서핑보드 새것의 가격이 최소 400달러였기에 중고로 저렴하게 구입했다.[현지인에게 구입했는데, 처음 제시 가격이 180달러였지만 협상을 통해서 155달러에 샀다]
해보고 싶던 스카이다이빙도 했다. 퍼스에서 좀 비싸긴 했지만, 560달러에 DVD까지 촬영했다.
스노클링을 하기 위해[할까 말까 살짝 고민했었던..] 스노클링 및 다이빙 장비를 풀셋으로 구입했다. 이왕이면 좋을 걸로 하자는 생각에 장비 가격만 600달러가 넘는 돈이 들었다.
차가 없었기에, 어디 자주 놀러갈 순 없었다.[시간적 여유가 많지도 않았다] 그냥 시티에서 여러 사람들 만났다.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농장에서 번 돈, 쓸 것 쓰고 남은돈 3000달러 정도가 없어져 있었다.[어디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내가 돈을 많이 썼다는 걸 느꼈다.
공장에서 번 돈도 꽤 쓴것 같았다.
나름대로 유명한 와인팜[호주 서부의 마가렛리버 근처의 와인팜 중에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와인팜이었다]에서 일한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와인을 14병 사서, 한국으로 13병 보냈다.[농장 안에 와이너리가 있어서, 저렴하게 살 수 있었다]
1병씩 보낼땐 40달러, 2병씩 세트로 보낼땐 60달러[와인 값보다 배송비가 더비싼...] 와인 보내는데만 500달러 정도 썼다.[한국에 와서 보니 2병이 도착하지 않았다!!]

△ 마지막 '와인 농장'이었던, 팸버튼의 도넬리리버 와인팜.


7.나와 호주, 그리고 여행.
호주 올 때, 내가 가지고 있던 돈, 현금으로 약 100만원.
호주에서 4개월이 조금 넘는 기간동안 번돈 약 2000만원

호주를 떠날 때, 내 통장 잔고에 찍혀있던 금액, 530만원,
호주를 떠날 때, 환전한 USD 약 1000달러,
호주를 떠나기 전, 내가 쓴 비행기표값 350만원.
호주에서 텍스로 호주 정부에 바친금액 약 400만원[한국에 와서 텍스리턴 신청해서 계좌로 360만원 송금받았다]

호주에 돈벌로 와서, 만족할 만큼(?) 돈을 벌었다.
호주에 와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호주에 와서, 많은 것들을 경험했다.
호주에 와서, 많은 것들을 보았다.
호주에 와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호주에 와서, 영어가 조금은 늘었다.
호주에 와서, 많은 생각들이 바뀌었다.

호주에 와서, 나는 생각했다. 최소한 실패는 하지 않았다고.
어느 정도 목표를 이루었고, 그리고 다른 목표를 위한 준비도 마쳤다고.


△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 시드니 시티 CBD 야경


△ 킹스크로스의 상징이자 자본주의의 상징인 '코카콜라'


△ 로킹햄(Rockingham)에서 스노클링 하던 시절.

 

△ 공장 일을 마치고, 퇴근길. 집 가는 길의 풍경.


△ 퍼스, 선셋코스트(Sunset coast) 마미안 비치.

전복을 따러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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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홀이야기] 예비 워홀러들에게 고(告)하다.

- 호주, 워홀이야기- · 2011. 12. 10.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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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rd edit(2nd edit 10.12.08)


1.호주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고하다.

  내가, 호주에 머물면서 틈틈이 포스팅을 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많은 예비 워홀러들이 나에게 무언가를 물었고, 나 또한 호주에 입국하기 전 여행을 하면서 워킹홀리데이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호주에서의 성공을 꿈꾸었다.

  한 때, 나에게 조언을 구하던 여러 사람들 중에는 이미 호주에 도착해서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직 '호주'라는 광활한 땅에 가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호주에 도착했지만 일이 생각만큼 잘 풀리지 않아, 나에게 조언을 구하는 사람도 있다.
  나에게 많은 질문을 했던 사람들, 그리고 나의 글을 보면서 호주에서의 희망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딱 한가지다.

"열정을 가지고 가라. 그리고 자신의 목표를 확실하게 정하라"는 말.

  한번은 파랑새의 꿈 대구지부에 들른적이 있다.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기 전, 사전 교육 일정이 있다고 했다. 그 때 호주 워킹홀리데이에 대해서 이야기 해 주던 분이 해 준 말이 생각난다.  "자신의 목표를 확실하게 해야한다."

돈이면 돈, 영어면 영어. 하나라도 건져야 한다. 일단 한가지에 목표를 두고 열심히 하라는 뜻이다.


  나의 목적은 돈이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여행 경비.
호주와 남미, 중미, 미국 여행을 위한 여행 경비가 필요 했다.
그리고, [나의 호주이야기를 보면 알겠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 내가 호주에 있을 때,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과 연락을 한 적 있는데, 호주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일은 여전히 힘들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이 노력한다면 얼마든지 길은 있다고 생각한다.[나와 연락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정말 노력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운도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 나의 이야기.

  처음, 호주 퍼스(Perth)에 갔을 때, 나는 정말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호주에 도착해서 무작정, 일을 구하러 다녔다. 처음 백팩에서 만난 아일랜드 가이 '말리키', 그리고 백팩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인 스탭에게 들은 정보, 처음 간 교회에서 들은 정보 등 그들에게서 정보를 얻고, 계획을 짜고, 그리고 몸을 움직였다. 부지런히 다녔고, 필사적이었다.[여기서 멈추면 내 여행도 끝이라는 생각에]

  매일 아침,
  퍼스 시티(Perth city)의 에이전시가 문을 열기전부터 기다리다가, 문을 열자 마자 안으로 달려 들어가 직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항상 그들이 나에게 해 준말은, 일이 없으니 다음에 연락을 주겠다.였다.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 마다 웃으면서 나왔다[마음은 좋지 않았지만]. 일자리를 얻기 위해 한국에서의 아르바이트 경험은 물론, 군대에서 했던 일도 거창하게 이력서에 써 넣었다. 물론, 하지 않은 일도 해 봤다고 적었다. 할 줄 모르는 것도 일단 할 수 있다고 우기면서, 대단한 능력자인 것처럼 행동했다.

  한번은,  the job shop 이라는 에이전시에서, 나에게 일자리를 주기로 했다. 그날 밤, 나는 기쁜 마음으로 모든 짐을 다 싸놨지만, 마지막에 그 일자리가 나와 같은 에이전시에서 일을 구하던 프랑스애들에게 넘어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는 끓어 오르는 분노를 억지로 꾹 눌러서 참았다. 아니 분노를 누를 수 밖에 없었다. 그 프랑스 애들은 트랙터 자격증이 있었고, 나보다 영어를 잘 했기에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여기서 내가 화를 내면, 혹시라도 나에게 돌아올 지 모르는 다른 일자리 마저 없어질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 일을 겪으면서도, 매일 에이전시에 드나들었다. 나는 내가 성실하다는 것을 보여 줘야 했고, 부지런 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고, 나는 결국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나를 믿게 만드는 방법은 부지런함을 직접 보여주는 것 뿐이었다]

  두 번째 일을 구할 때는 더 힘들었다. 나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었다. 거기다가 여행을 위한 자금은 충분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비행기 푯값은 치솟고 있었다.

  매일 아침, 모두가 잠들어 있는 시간 일어나서 씻고, 백팩에서 제공해주는 아침을 먹고, 백팩에서 제공해주는 빵과 잼으로 도시락을 쌌다. 그리고 공장 지대를 돌아다니면서 어플리케이션을 썼다. 공장 지대의 길 모퉁이에 앉아, 심란하고 우울한 마음으로 맛없고, 건조한 빵을 질겅질겅 씹던 기억이 있다.
  
  때로는 무턱대고 공장 오피스를 찾아다녔다.,그리고는 직원에게 인터뷰 하러 오라는 전화를 받았다며, 인사 담당자를 만나게 해 달라고 떼를 쓰기도 했다. 그럴 때면, 문전 박대를 당하기도 하고, 인사 담당관을 만났지만 거절 당하기도 했고, 미친놈 취급을 당하면서 쫓겨 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절박한 심정이었기에, 무엇이든 하려고 달려든 것이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한때는, 공사장에서 노가다라도 할 요량으로, 블루 카드(Blue card : 공사장같은 곳에서 일하려면 필요한 카드)를 만들기 위해, 신문 광고를 뒤져 가장 싼 가격으로 블루 카드를 발급해 주는 직업 훈련소에 가서 교육을 받고, 시험을 보고, 블루 카드를  발급 받았다. 블루 카드 발급을 위해 교육을 받는 내내, 혹시나 교육을 받고 나서 시험에 불합격 하여 블루 카드를 받지 못할 까봐, 필사적으로 문제를 풀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중고차 매장들을 돌아다니며, 세차라도 할 수 있게 일자리를 달라고 해 봤고, 이삿짐 센터에도 찾아가서 물건을 잘 나른다고 일을 시켜 달라고도 해 봤다.
  매일, 혹시 오늘은 내가 어플리케이션을 쓴 공장에서 전화가 오지 않을 까.라는 생각에 항상 전화기를 붙잡고 전화벨이 울릴 때 마다 가슴을 조리던 적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노력한 만큼 운이 따랐고 좋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처음, 농장에서 일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내가 이력서를 넣었던 에이전시에서 연락이 온 적이 있다. 일자리가 생겼다고 연락이 온 것이었다. 그것도 내가 열심히 눈도장 찍은 결과가 아닌가 싶다.
  어플리케이션 쓰러 갈 때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었고, 에이전시에서도 직원 앞에서는 항상 웃는 얼굴르 그들을 바라봤기 때문이 아닐까.



3.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한국 사람이라는 걸 이용해서 한국 사람이 한국사람을 상대로 등쳐먹는 사람이 많다고들 하는데, 그런건 정말 자기가 잘 판단해서 피해야 한다. 누구도 그 상황에 도움을 줄 수 없다.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는,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은 착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일부는 정말 쓰레기같은 친해지기 싫은 사람이 몇 몇 있다는 것이 문제다] - 나는 모든 사람이 나보다는 착하다는 생각을 하며 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처음 호주에 갔을 때 만났던 유동환 형님.정말 고마웠다.[그땐 차마 말을 못했고, 마지막에 인사도 못하고 떠나서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퍼스, 라이프라인(Life line)장로 교회 사람들 그리고 지금은 영주권 준비하고 있을 형진이형, 영희누나 등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준 사람들 모두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호주에 갔을 때, 처음 나의 룸메이트가 되었던 아이리시 가이(Irish guy) 말리키.[밤마다 함께 악기를 연주하며 즐거운 생활이 될 수 있게 해 준 친구다], 처음 농장 일을 할 때, 같은 팀에서 일하게 된 너무 착해서 탈이었던 스티브 형님, 지금은 한국으로 돌아온 희훈이형 그리고 아직 호주에 있는 창욱이, 지훈이형 등. 특히 농장에서 같이 일했던 사람들은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내가 너무 열심히 일해서, 형들이 나에게 구박을 많이 했지만, 모두들 함께 해 주었기에 고마웠다.]
 
 나와 함께 있던 모든 사람들이 나의 목적을 알고 있었기에, 나의 마음을 잘 이해해 주었다. 단기간에 최대한 돈을 많이 벌고 싶어하는 나를 다 이해해 주었다. 맨날 나에게 쫌생이라고 놀리면서도 나를 많이 도와 주었던 사람들. 카날본에서의 사건과 퍼스에서의 재회.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주고 많은 걸 베풀고 알려주었던 외국인들.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난 사람을 만나는 것에 있어서, 운이 좋았다. 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호주로 가는 모든 한국인들,
꿈과 열정을 가지고 떠나는 한국의 젊은이들.
모두 "성공[성공이라는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좀 웃기지만]"하길 바란다.


- Winthrop, 프리맨틀 공장 다닐 때 살던 곳.


- 퍼스 시티,



- 시티의 입구

 


- 론돈아이? 런던아이 모조품 ㅋ



- 교회 사람들과 처음이자 마지막 나들이



- 불크릭 스테이션.



- 퍼스 시티 맥도날드



- 팸버튼 포도밭



- 불스브룩(Bulls brook) 판자촌



- 휴게소



- On the Road



- 스카이다이빙




- Mr, 드루먼(Drument). 처음 널 만났을 때 정말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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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홀이야기] 호주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하다.

- 호주, 워홀이야기- · 2010. 11. 18.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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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ond Edit.


1. 내가 호주에 가게 되면 호주에서 꼭 하고 싶었던 것. 
스카이다이빙.


2. 사실,
스카이다이빙을 하기 위해 케언즈Cairns에 가려고 했었다.

케언즈[ 직접 가보진 못했지만 들은 바에 의하면 각종 레포츠의 천국 이라는 곳]에가서 스노클링도하고, 스카이다이빙도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케언즈에서부터 시드니까지 해안선을 따라 내려 가면서 여행도하고 바다에서 서핑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나의 이상을 모두 채워줄 순 없었다.

그래서 케언즈에가서 스카이다이빙이라도 하자라는 생각에 비행기표도 알아보고 스카이다이빙 가격도 알아보았다. 그리고, 덤으로 케언즈에서 시드니로가는 비행기표도 알아 보았다.


3.
  루트와 계획을[여행에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 이지만, 나는 계획 짜는걸 좋아하지 않아서 문제이다] 여러 번 생각했다. 그리고 공장을 언제 그만두고 언제 퍼스를 떠나고, 언제 시드니로 갈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했다..

이미 미국을 경유하여  남미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끊어놓았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서 가야했다.

그러던 중, 듣게 된 소식.


4.
'퍼스에서도 스카이다이빙을 할 수 있다.'
이 소식을 접하고 나서 이곳저곳 알아보니, 퍼스에도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곳이 두세군데 있었다.

나는 구글검색을 통해 알게된 퍼스에 있는 트래블 에이전시(Travel agency)에 가서 스카이다이빙 가격을 알아보았다.
'가장 높은 높이인 14,000피트에서 뛰어내리는 가격 $439, DVD촬영 $129, 총 합 568달러'

케언즈에서 하는 것 보다, 150-200달러 정도 비싼가격이었다. 생각해 볼 문제였다.
여러가지 여건들[시간과 돈과, 여행과 일정 등등]을 고려 한 끝에 내린 결론!
퍼스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해야겠다고 결론지었다.[ 시간에 너무 쫒기면서 돌아다니는건 내 스타일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케언즈로 갔다가, 또 시드니로 곧 이동해야 한다는 사실이 나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5. 12월 4일 금요일, 오전.
  잠을 자고 있는데, 어디선가 전화가 왔다.

'헬로우, 뭐 어쩌고 저쩌고, 스카이다이빙입니다. Mr.Chang?'
'옙, 맞습니다'
'어쩌고 저쩌고~ (막 뭐라고 말을 한다, 내일 40도까지 낮기온이 올라가고 ,뭐 어쩌고 막 설명을 한다)'

사실 잠결이라서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 듣다가 얼핏 40도, 얼리? 라고 하길래 무슨소리냐고 했더니 다시 설명을 해준다.

'내일 낮기온이 40도까지 올라가니까 오전에 일찍 뛰어 내려야한다. 예정 시간보다 1시간 일찍 나와라'
'오케이' 라고 말하고 오히려 나에겐 잘됐다고 생각하고 다시 잠을 청했다.


6. 12월 5일 토요일, 아침.

  일이 끝나고 집에와서 씻고, 스카이다이빙하러갈 준비를 했다.[준비라고 해 봐야 신분증과 영수증을 챙기고, 그냥 평소대로 옷 입고 나간 정도다]

  트레인을 타고, 퍼스 시티에 약속된 장소[웰링턴 버스스테이션 앞]에 가니, 투어를 하러 가는듯한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 서핑스쿨(Surfing school)에서 일일 서핑교실에 참여하는 사람도 있었고,- 나도 따라 가고 싶었다. 일일 서핑스쿨 - 스카이다이빙(Sky diving)을 하러 가는 사람도 있었고, 무엇을 하러 가는 지 알 수 없지만 뭔가를 하러 가려고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고]

일본인 두명과 나와 이렇게 셋이서 출발했다. 우리 셋을 실은 봉고차는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곳으로, 달려갔다.
차를 한 시간 반가량 가서 도착한 곳. 'Historic city of York'가는 간판이 도시의 입구에 서 있는 조그마한 시골마을 이었다. 그 마을에서 좀 더 안으로 들어가니 작은 비행장이 있었다. 그곳이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카이다이빙을 준비하는 창고같은 건물에 곳에 가니,  그 앞에 활주로가 뻗어 있고,  경비행기 두대가 대기하고 있었고, 스카이다빙을 하려는 사람들이 여럿있었다.[개인적으로 스카이 다이빙을 하러 오는 사람들도 꽤 있었지만, 스카이다이빙 동호회 팀들도 많이 있었다. 동호회팀들은 뛰어내리면서 취할 포즈를 연습하고 있었다]

밖에선 비행기가 뜨고, 사람들이 뛰어 내리고, 낙하산이 펼쳐지고, 또 다시 비행기가 뜨고, 또 사람들이 뛰어내리고.
 
'아, 나도 드디어 스카이다이빙을 하는구나!'


7. 오전 11시경,
드디어 내 차례.[내가 마지막이었다.] 스카이다이빙 두팀과 나와 강사와 카메라맨이 함께 비행기에 타기로 되어있었다.
스카이다이빙 옷을 입고, 간단한 안전교육을 받고. 드디어 비행기에 올랐다.[가슴이 두근거렸다]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조그마한 경비행기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서, 하늘로 하늘로 올라갔다. 창 밖으로 보이는 집들이 점점 작아지고, 자동차들은 작은 점처럼 보였다.  어느새 옅은 구름이 나와 같은 높이에 있었다. 다이빙 강사의 손목에 차고 있던 고도계의 숫자는 점점 올라갔고, 고도계가 한 바퀴를 돌자 스카이 다이빙 팀들이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그 다음이 내 차례였다. 한바퀴가 돌고, 그리고 고도계가 조금 더 돌았을 때,뛰어내려야 한다고 강사가 나에게 말했다.


'으악, 내가 그냥 이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는건가?'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면서 내가 뛰어내려야하는 곳을 쳐다보니, 긴장되기도 했다.  점점 목표 높이에 다가가고 있었다.  "빨간불이 들어오면 뛰어내려야 한다"는 강사의 말이 생각났다.

드디어 작은 비행기는 14,000 fit 상공에 도달했고, 비행기의 출입문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강사는 고고고를 외쳤다. 나는 살짝 미소를 띄웠지만, 내 마음엔 약간의 두려움과 셀럼이 공존하고 있었다.


8. 비행기의 문이 열렸고, 나는 문으로 다가갔다.
비행기의 아래를 쳐다보니, 발 밑에 구름이 있었다.[구름을 밟으면 하늘위에 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1초 정도 한 것 같다. 다른 생각 할 틈도 없이 뛰어내렸다]

오묘한 기분. 다이빙이라는 말보다는 그냥 추락 추락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법 한. 그런 늒미이었다. 나는 배운대로 포즈를 취했다.

번지점프와는 또 다른 기분. 말로 표현하기가 힘든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냥, 기분이 좋았다. 마냥 좋은 그 기분.

시속 200km정도의 속도로 떨어진다는 스카이 다이빙?[9.8m/s 인가? 만류 인력법칙에 의한 물체의 낙하속도 말이다]

그렇게 그냥 막 떨어졌다. DVD촬영 하는 애가 어느새 내 앞에 자리잡고 나를 촬영했다. 그를 바라보며 같이 뛰어 내렸다. 입을 너무 벌리고 있어서 침이 흘러 나왔지만 닦을 수 없었다. 뭘 어떻게 해 보겠다는 생각도 없이 소리를 막 지르고 있는데, 어느 순간 낙하산이 펼쳐졌다.


9. 낙하산을 타고 천천히 내려오면서 바라본 풍경.
아름다웠다. 드 넓게 펼쳐진 평야같은 곳에 중간에 위치한 마을. 그 곳으로 나는 내려가고 있었다. 저 멀리 어렴풋이 바다가 보였다.

햇살에 드러나는 나의 그림자는 엄청 크게 보였다. 낙하산을 타고 내려가는 나의 모습이 땅에 그려지고 있었다. 자동차가 내 발 밑에가볍게 미끄러지고 있었다.

스카이다이빙 = 번지점프 + 패러글라이딩? 이라는 생각을 잠깐 해보기도 했다. 낙하산을 이리저리 좌우로 조정하며, 목표지점으로 향했다. 재미있었다.

스카이다이빙을 마치고, 촬영한 DVD를 보았다.
아, 좀 많이 쪽팔렸다 ...ㅋㅋㅋㅋ 카페테리아에 앉아서 같이 뛰었던 애들걸 다 같이 보는데, 오지(Aussie, 호주사람)여자애들 둘이 내껄 보면서 계속 킥킥댓다.[ 내가 봐도 웃긴데 - _-; 걔들은 오죽했을까] 


10. 다시, 퍼스 시티(Perth city)로 돌아오는 길,
모든게 꿈만같았다. 피곤해서 살짝 잠이 들었다가 다시 깨었다. '내가 스카이다이빙을 하고 온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게 꿈같이 느껴졌다.
  내가 호주에서 일을하고, 바다에도 들어가서 다이빙도하고, 전복도 따고, 하늘에서 뛰어내린 모든 것들이 꿈같다고 생각되었다.
누군가가 옆에서 크게 소리치면, 잠에서 깨어날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잠에서 깨어나면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은 느낌.





- 나를 픽업하러 온 아저씨 ㅋ


- 스카이다이브 익스프레스,


- 내가 타고 올라간 경비해기가 보인다,


- 낙하중인 다른 스카이다이빙 팀원


- 같이 스카이다이빙을 하러 온, 아츠유키/타츠오미 상


- 나의 DVD가 방영되고 있다................


- 스카이다이빙, 인증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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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홀이야기] 전복(全鰒)을 라면에?! - 호주에서,

- 호주, 워홀이야기- · 2010. 11. 12.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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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rd Edit.



1. 전복,
"배가 전복되었다." 라고 할 때 쓰는 전복이 아니라,
바닷가의 바위에 붙어서 서식하는 흔히들 사람들이 말하길, 먹으면 그렇게~ 몸에 좋다는 그 전복(abalone, 全鰒)을 말씀이올시다.


2. "파스타"라는 드라마를 봤다. 그 드라마의 후반부에 남녀 주인공인 서유경(공효진 역)과 최현욱(이선균 역)이 함께 서유경의 아버지에게 찾아가 짬뽕을 먹는 장면이 나왔다. 그 짬뽕에 들어있던 전복!!  역시 전복과 사위에 대한 배려....

  전복 전복 전복 전복...그 장면을 보면서 호주에서 먹던 손바닥만한 자연산 전복이 생각났다. 드라마에서 말하길, 자연산 전복이 한마리에 20만원? 에게게? 내가 호주에서 먹던 전복보다 작은 크기처럼 보였는데... 그럼 난 호주에서 일주일에 400만원어치 이상의 전복을 먹었던 것인가??



3. 호주에서 맞이한 날씨 좋던 토요일
.
  9월 말, 농장에서의 일이 끝나고[사실상 짤린 것이었다. I'm fired!],  퍼스에 머물며 새로운 일을 구하고 있을 때, 아는 형[호주에와서 만난 형]다이빙을 가자고 연락이 왔다.

  마땅히 할 것도 없던 난[주말에는 에이전시를 비롯해서 모든 공장의 오피스가 업무를 안하므로], 당연히 다이빙을 하는데 따라갔다.  하지만, 아직 9월말이라서 그런지 바닷물은 생각보다 차가웠다. 바깥의 햇살은 비교적 따뜻했지만, 역시 바다라서 그런지 체감온도는 ㄷㄷㄷ 이었다. 
  생각보다 추운 물 온도 때문에 바닷물 속에 함부로 몸을 담그지 못하고, 그 대신 바닷가의 암초 주위를 돌아 다녔다. 그렇게 바닷가의 암초를 탐사(?)하던중, 같이 갔던 형이 뭔가를 발견해냈다..이게 웬걸? 전복의 껍질?? 그렇다면,, 전복이 주위에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우리 한번 전복을 찾아보자라고 말한 뒤 서로 흩어져 전복을 찾아보니 역시나,,전복이 바위 틈속에 꼭 꼭 숨어 있었다.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전복을 땃다.[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것은 불법이었다. 전복을 따려면 지정된 장소에서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만약 걸리면 집과 재산을 모두 날리고 감옥에 갈 정도의 벌금이..^^%]

  우리는 집으로 돌아와, 그 날 잡은 생선은 매운탕을 끓여 먹고 함께 따온 전복은 회를 쳐 먹고 나머지는 라면에 넣어 먹었다.

4. 일요일.
  일요일은 토요일 보다 날씨가 많이 따듯했다. 햇살이 강렬하게 내리쬐는 로킹햄(Rockingham)의 비치(beach). 이 날은 전복을 따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바다에 나온 날이었다. 바닷속을 헤엄쳐서 전복이 많이 있을만한 곳으로 가니, 역시나! 전복 밭이었다. 기쁜 마음으로 전복을 땄다. 한두마리가 아니라, 수십마리가 모여있었다. 크기도 대부분 손바닥 반 이상의 크기여서 즐거운 마음으로 전복을 땄다.  그 전복을 가지고, 여럿이 회도 쳐먹고, 라면도 매운탕도 끓였다.


5.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공장에서 일하는 형과 키위[뉴질랜드인]한명이 전복을 따러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소리를 듣고 귀가 번쩍뜨인 난, 나도 같이 가면 안되겠냐고 물었다. 당연히 오케이! 다다익선이라고, 함께 가기로 했다. 이미 눈으로 보지 않고 손에 잡히는 감각만으로 전복따는 기술을 익힌 나로서는 내 실력을 제대로 발휘해 볼 기회였다.
 
  몇 년 째 전복을 따러 다닌다는 키위(이름은 가브리엘)의 정보에 의하면 11월 1일부터 전복시즌이 시작되는데 라이센스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복라이센스가 뭐냐고 묻자 라이센스에 대해서 알려 주었다.[전복 라이센스란, 전복을 따기위한 자격증인데(일종의 허가증), 우체국에가서 $44 에 살 수 있었다.] 우체국에가서 신청서를 작성하고 돈을 지불하고 신청하자 3일 후 집으로 라이센스가 왔다. 드디어 합법적으로 전복을 딸 수 있었다.



6. 11월 1일 일요일.
  드디어 공식적으로 전복을 잡는 날이 찾아왔다. 하지만 라이센스가 있다고 매일 전복을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퍼스perth를 기준으로 200km이내의 지역에서는 일요일 오전7시-오전8시 사이의 1시간만이 전복을 잡는것이 허용되었다.
또한, 잡을 수 있는 마리수가 제한되어 있어서 하루에 20마리만 잡을 수 있었다.[20마리를 잡아도 전부 손바닥만한 크기를 잡기 때문에, 일주일 내내 먹어도 전복을 다 먹지 못했다]
그래도 그게 어디야? 44달러짜리 라이센스로, 일주일에 20마리,,1달 4주면 80마리?!

  전복을 따기 시작한지 첫번째날 이라 그런지 전복들이 하나같이 정말 컷다. 손바닥 만한것들로 20마리를 땃다. 전복을 따면서 몇 마리는 우걱우걱씹어먹었다....그냥 바로 따자마자 바닷물과 함께말이다. 자연산 전복은 그 자리에서 바로 먹어줘야 몸에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전복을 씹어 먹으면서 전복을 땃다. 어차피 가져갈 수 있는 건 20마리니까..20를 다 따고나서 바닷속에서 전복을 먹어 댓다.

그렇게, 전복을 따러 다녔다. 일요일 아침마다.
전복을 11월 1일부터 매주 일요일마다 계속 딸 수 있는게 아니라 12월 초까지만 허용된다고 했기에 열심히 따야지 생각했다. 이 기회에 몸보신이라도 제대로 해 보겠다고 생각하며 매일 일요일 아침마다 필승의 결의를 다졌다.ㅋㅋㅋ


7.
아무튼, 호주에서 내가 잡은 전복만 100마리가 넘었다...

전복을 가장,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은 단연!!!
라면에 전복을 넣어서 먹기,,,
짜파게티에도 전복을 넣어서 먹어보고,
밥에도 넣어서 전복밥도 해먹어보고,
전복 볶음밥도,
전복 볶음도,
전복 스파게티도,
전복 비빔밥(?)도,
전복 회덮밥도,
전복 죽도,
전복을 넣고 간단하면서도 맛있을 방법을 연구해서 요리를 만들어 먹어봤다.


그래도 그냥 간단하게 전복을 먹는 방법은 전복라면인듯!![사실, 전복을 먹는건지 그냥 오징어를 먹는건지 구분은 잘 안된다. 특히 오징어짬뽕에 넣어 먹을때는 더욱더!!!]

자연산전복을, 라면에 넣어서 먹다니...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데,,,,,,,,,호주니까 가능한가??

호주에서는,
자연산 전복을 라면에 넣어먹는다!![라면을 끓일 때 마다 전복을 넣어 먹던 나를 보고, 옆방에 살던 누나가 자주 하던 말이 있다 "나는 결코 라면에 이 귀한 전복을 넣어 먹을 수 없어"]

이런 일, 호주니까 해 보는거 아닐까?






- 전복라면! 완성품



- 전복


- 전복을 송송송송 썰어서, 초장에도 찍어먹고~


- 부글부글 맛있는 라면~



- 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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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홀이야기] 호주, 공장에서 일하다.

- 호주, 워홀이야기- · 2010. 11. 10.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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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ond Edit.(first edi 09.12.06)

1. 공장에 취직하고 처음 몇 주간.
정말 부지런히 열심히 일했다. 좀 힘든일, 작업 분량이 많아도 군소리 하지 않고 묵묵히 일 했다.
사실 내가 생각 할 때 크게 힘든 것도 없었다.[농장에서 일하던 것에 비하면 정말 쉽고, 힘들지 않는 일들이라고 생각했을 정도]

같이 일하는 동료들중에 일을 하면서 힘들다, 소세지가 무겁다고 투덜대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런 말을 들을 때 마다 맞장구를 쳐 주기는 했지만, '이게 정말 힘든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농장에서 일을 하면서 몸을 단력 시키고[미친듯이 일했었다] 나서 공장으로 온 온 나로서는 공장에서 하는 일들은 많이 힘들지 않으면서 쉬운 일들이었다.


2. 특히,
  소시지 및 햄, 베이컨 등을 만드는 공장이다보니 공장안이 시원했다[한여름에도 추워서 일을 할 때는 옷을 몇 겹씩 껴입어야 했다]. 실내는 항상 최소 냉장고 냉장실의 온도[패킹룸쪽은 냉동실 수준의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공장안은 추워서 파리가 없었지만, 공장 밖으로 잠깐씩 나가는 순간 파리떼들이 습격해 왔다]

  호주에서 내리쬐는 강렬한 태양 아래에서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좋았다.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고,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말로는 벌써부터 일 할 때 최소 수십마리의 파리들이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렸다.

  농장보다 시급이 높아서 좋았고, 일하는 시간도 많아서 좋았다. 그리고 시원한 곳에서 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새벽에 몰래 창고에서 소시지를 꺼내먹는 재미가 있어서 좋았다.[농장에서는 과일따먹는 재미가 있었지만] 아무튼 여러가지로 좋았다. 그 중에서 가장 좋은 건 돈을 많이 준다는 것.



3. 필라델피아, 내 너를 저주하리다!!
  필라델피아라는 햄이 있다. 햄 한덩어리가 사람 머리통보다 큰 놈인데, 스틱 하나에 3개가 걸려 있다. 그것들 세개[하나의 스틱]을 끓는 물에 담궈서삶아야 하는데, 완전 노가다로 그 녀석들을 번쩍!들어서 물에 집에 넣어야 한다. 그 녀석들 보기에도 무거워 보이지만 실제로도 엄청 무겁다....... 
  그런데 항상 그 일을 해야 할 때마다 나를 시키는 것이었다.....ㅠ_ㅠ... 내가 처음에 잘 보이려고 일을 너무 열심히 막 하다보니, 내가 그걸 잘 하는줄알고 나를 시키는 것이었다.[다른 사람이 모두 꺼려하니까, 제일 만만한게 나였나 보다]

  처음에 그 무거운걸 무식하게 하루에 수십개씩 들었다가 놓았다가를 반복했다.[나중에는 요령이 생겨 비교적 쉽게 했지만] 무게로 치면 아마 하루에 몇 톤 정도 물에 담갔다 뺐다 했다.
 
  항상 그녀석을 들어 옮기면서 생각했다.아 필라델피아,,"내가 미국에 가면 반드시 필라델피아 역(驛)에 침을 뱉고, 길바닥에도 침을 뱉고 돌아다닐 것라고.."
 필라델피아 햄 때문에 팔목이 나가서 몇 주간 고생했다. 처음엔 어깨에도 무리가가서 어깨가 아팠다. 만병의 근원이 필라델피아 햄이었다.

  나는 어느새, 무거운 햄, 소세지류를 들어서 트롤리[햄들을 쌓아두는 거치대같은 것]에 걸거나, 옮기는 일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런 일을 도맡아서 하는 사이 내 몸 속에서는 이두근, 삼두근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라고 있었다.


5. 
  서브웨이(SUBWAY), 헝그리잭스(Hungry Jack's, 호주의 버거킹)에 납품하는 베이컨을 내 손으로 만들고 있었다.
서브웨이 고기를 자르고, 베이컨을 만들고, 헝그리잭스 베이컨을 만들었다.  만들면서 생각했다. "호주 사람들은 내 손으로 만든 고기들을 먹는구나, 내 침도 자연스럽게 먹는구나"[일을 하면서 지루하기 때문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니까, 당연히 침이 튄다]라고.

헝그래잭스 베이컨을 만드는 일은 내가 공장에서 가장 많이 한 일 중에 하나였다. 사실, 헝그리잭스를 하는 일이 싫었다. 어려운 건 아니었다. 정말 쉬운일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너무 지루했다. 쉬운일을 계속 반복해야 했다. 매일매일 헝그리잭스에 납품하는 물량이 고정적으로 있었기 때문에 매일 엄청난 양을 만들어야 했다. 길고, 지루한 작업의 연속이었다.
특히, 헝그리잭스는 복도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약간 더운곳에서 작업을 했다..그래서 가끔 더울 때도 있었다. 그게 싫었던거였다.


6. 몇 주 후,
  처음 2-3주간 일을 너무 열심히 한 것이 잘못이었다[보통 사람들은 처음에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 처럼 나도 그랬다].  공장에서 일 할 때 대부분이 일을 천천히 하면서 일의 양과 자기가 집에 갈 시간을 맞추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그들과 같이 일을 하다보니 나 또한 속도를 맞추게 되었다. 그것이 편했다.[일을 쉽게, 천천히 할 수 있었으니까]
  특히, 나와 일을 같이 많이 한 콩고출신의 "자바"가 그랬다.[우리파트에서 일을 젤 천천히 하고 농땡이를 피우는 녀석으로 꼽혔다]
가끔씩, 너무 일을 천천히하고, 안하려고하는 모습을 보여서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같은 회사 동료니까 참았다. 그냥 난 묵묵히 할 일을 했다.



7.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나보다 오랬동안 일을 했던 외국애들(최소 몇 년씩 일을 한 애들) 및 슈퍼바이저, 작업반장이 나를 보는 시선이 별로 좋지 않다는 걸 느꼈다.일하는 속도가 느리다는 거였다. 게을러졌다고,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속도가 느린건 아니었다. 난 그냥 나와 같이 하는 애들의 속도를 맞추어 주었다. 빨리하면 빨리하고, 천천히하면 나도천천히 하고,, 천천히 하는쪽이 많긴 했다.

결국 난,
일을 천천히 한다. 못한다 등 호박씨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는 소식을 들었다.[공장에서 일을 오랬동안 하면서 슈퍼바이저, 작업반장 등과 친하게 지내는 외국인이 나와 친하게 지내는 한국인에게 그 말을 해 주었고, 난 그 소식을 알게 되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그러려니 했다.

8. 그냥, 난 내 할일을 했다.
 어쩌겠나? 사람의 마음이 한 곳으로 기울어 지면 되돌리기가 처음보다 더 힘든 것을. 그리고 어차피 여기서 9주만 일할 거니까라고 생각했다.
 일을 못한다고 호박씨 깔때는 다 까면서 또 필요하면 나를 불러서 힘쓰는 일을 많이 시켰다. 그렇다고 해서 나도 기분나빠 하지 않고 그냥 내 할일을 했다. 그게 그냥 편했다. 그러려니~ 필라델피아, 베이컨, 로스트비프, C.O.B,,, 힘쓰는 일은 내 담당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공장에서의 생활이 마무리되어갔다.





- DORSOGNA, 콸리타,


- 필라델피아,,,보기만 봐도 토나온다ㅋ


- 이곳이 햄들의 욕조!


- 요렇게 집어 넣는다,,


- 키친룸,,급하게 몰래 찍느라 완전 화질 구림 ㅋㅋㅋ 베이컨, 치즈마일드 소시지, C.O.B 등등..


- 오른쪽이 C.O.B 보기만봐도 무거워보인다...돼지 뒷다리 ㅋ
왼쪽은 치즈마일드,,제일 맛있는듯 안에 치즈가 들어있다 ㅋㅋ


- 오른쪽 구석탱이에 자바, 나와 함께있는건 칸쿠,
초록색옷입은애는 이름 물어보면 이런다."한국사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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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홀이야기] 호주에서, 쉐어하우스에 들어가다!

- 호주, 워홀이야기- · 2010. 11. 9.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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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ond Edit.


1. 
  일본에서 꽤나 유명하다고 하는[일본인 친구의 말에 의하면] 다양한 직업을 가졌지만 그 중에 하나가
작가인 , "다카하시 아유무".

그의 책 의 오세아니아부분에서 이런 제목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Weekly life'

  처음 호주에 오기 전에는 이 글의 제목과 내용을 선뜻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이제는 이해할 수 있었다.
호주의 많은 도시에 존재하는 쉐어하우스. 보통 1주일 또는 2주일 단위로 돈을 지불하고 그 집에서 방을 얻어 사는 것. 특히, 많은 워홀러들이 쉐어하우스 운영을 하면서, 특히 요즘에는 단기쉐어라는것이 많이 생겨났다.
 


2. 시티잡(city job)이라고 불리는 공장에 취직을 했다.
  백팩에서 살 수 없었으므로[물론 살 수는 있었지만 쉐어하우스로 가는 것이 더 저렴하고 편했으므로], 나는 쉐어를 알아보았다.  당장 내일부터 공장에 출근을 하라고 통보를 받았으니, 일단 집부터 구하는 것이 급선무 였다.  공장이 프리맨틀(Fremantle)에 위치하고 있었으므로, 프리맨틀주변에 있는 쉐어하우스를 알아 보았다.

  사실,  처음 퍼스에 왔을 때, 그리고 일자리를 알아보러 프리맨틀에 처음 왔을 때 프리맨틀은 한 번 쯤 살아보고 싶던 곳이었다.  그곳엔 바다가 있었기에, 내가 생각하던 그럼 삶[평일에 일하고 주말에 서핑하고]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평일에 일하고 주말에 바다에 나가서 해수욕, 서핑을 하고, 다이빙도 하고, 스노클링도 하고, 얼마나 좋을까? 내가 상상하던 그런 곳과 딱 들어맞는 곳이 바로 프리맨틀이었다.
 

이제, 내가 상상하던 호주에서의 생활을 할 수 있는건가???

 

3.
  퍼스시티(perth city)에서 20-30분이면 오지만, 퍼스와는 너무 다른 분위기.  조용하고, 차분한 거리, 인도양의 푸른 파도와 멋진 노을을 가진 도시. 바닷바람이 불어서 기분이 좋은 도시.  정말 내 마음에 꼭 드는 도시였다.


  프리맨틀(Fremantle) - City of Fremantle.

프리맨틀의 도서관의 게시판에 가서 각족 쉐어하우스 광고 쪽지에 가서 알아보고, 인터넷 사이트 검트리(http://perth.gumtree.com.au) [호주의 중고 물품거래 및 하우스 렌트에 대한 각종 정보가 있는 사이트]에도 알아보고, 이곳저곳 발품을 팔면서 쉐어하우스에 대해서 알아 보았다.

 

  일단, 가격이 싼곳으로!  그리고 웬만하면 한국인 쉐어보다는 오지[Aussie, 호주사람]쉐어로 가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지쉐어라 가면 자연스럽게 영어를 사용해야 하니까 영어도 늘릴겸 해서 말이다.
하지만 마땅한 곳을 찾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찾아간 곳 - 다음 카페의 퍼스 커뮤니티. "퍼스 참을수 없는 그리움(일명, 퍼참)"

그곳에 보니, 비교적 공장과 가까운 곳에 사람을 구한다는 광고를 올린 쉐어하우스 주인이 있었다. 그리고  그 중 한 군데를 연락해서 집을 보러 가 보았다.

 

4. 
  싱글룸,  주당 $125[싼 가격은 아니었다. 난 일주일에 $100 정도의 집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방은 넓었다. 침대도 더블침대가 있어서 크고 좋았다. 
  집도 깨끗하고. 호주 사람들이 사는 도시 교외의 한적한 동네에 위치한 집이었다. 전형적인 호주 주택가에 위치한 집.
 

   이런 곳에 살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아라고 혼자 되뇌었다. 보통 호주사람들이 이런 집에 사니까. 나도 이런 곳에 한 번 살아볼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집 앞에는 작은 정원이 있고, 뒤쪽 마당엔 잔디와 나무와 화초가 약간 있고, 조그마한 풀장이 있는 집. 흔히들 나오는 외국드라마의 그냥 평범한 집같았다. 키친도 외국 시트콤이나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조. 전형적인 외국집이었다.

좀 비싸긴해도 살아보자, 라고 생각했다.

 


5.

그렇게 살게 된 곳. 리치하이웨이(Leach Hwy)라는 큰 길가의 옆으로 난 주택가의 도로 빌링스웨이(Billings Way)에 위치한 집.
발음을 그대로 한국말로 번역한다면, - 부자 고속도로의 지폐들의 거리?

그럼 난, 부자 고속도로옆의 지폐들 거리에 살게 되는간가? 난 이제 부자가 되는건가?라는 유치한 농담을 속으로 생각하며.


아무튼,
공장에 취직하고 새로 살기로 결정한 집 주소도 좋았고[어감이 좋았단 말], 공장에서 돈도 많이 벌게되고 여러모로 좋았다.
그리고, 그곳이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곳.


호주에서 살아보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쉐어하우스.


- 6 번지,



- 안뜰,


- 주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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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th, Australia / 퍼스, 호주 / 2009.12.10 - Perth Summer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0. 2. 7.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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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th, Australia / 퍼스, 호주 / 2009.12.10 - Perth Winter
 

- 여름 그리고,, City of Perth

 

+퍼스Perth to 시드니Sydney, Jetstar Airline, 4hr, $290(수시로 가격변동)
+Coolibah lodge, 6인도미토리, $25(VIP회원$24, 마일리지적립가능), 아침불포함.
+Old swan barrack, 12dm, $23(Vip $22), 아침포함.
+Easyperth backpacker, 10dm, $20, 아침포함.

 

- 바다가 있기에 여름은 즐겁다.

 

10월이 지나고 11월이 다가올 때, 퍼스에도 여름이왔어.
비치Beach엔 주말마다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어.
서핑을 하는 사람들, 해수욕을 하는 사람들, 산책을 하는 사람들, 삼삼오오모여서 바비큐파티를 하는 사람들. 

바다가 아름답고, 좋기로 유명한 서부의 해안.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퍼스.
여름은 모두가 좋아하는 계절인 것 같았어. 가끔은 날씨가 쌀쌀할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바다로 몰려들었어.

거리엔, 사람들로 붐볐어.
퍼스의 겨울이 웬지 쓸쓸한 느낌을 주었다면, 퍼스의 여름은 왠지 활기차보였어. 

 

-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호주 최고의 명절!!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었어. 호주뿐만아니라, 서양 최고의 명절이지만 말이야.
시내중심광장엔 크리스마스트리가 설치되었어. 길거리 곳곳엔 크리스마스 장식품들이 거리를 꾸미기 시작했어.

성탄절, 크리스마스.
줄곧 겨울에만 크리스마스를 보내왔던 나에겐 새로운 풍경이었어.
반팔티셔츠, 반바지, 그리고 크리스마스트리. 웬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것 같았지만,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를 즐기려는 것 같았어.

강렬한 태양아래 그 자태를 뽐내고있는 크리스마스트리, 그리고 곧 크리스마스라는걸 알리는 장식품들.
화려하지는 않았어. 하지만 도시에 어울리는 풍경이었어.
크리스마스. 그것은 전 세계인의 기념일. 

 

- 여름엔 할 수 있는게 많다.

여름, 나는 겨울보다는 여름을 좋아해. 할 수 있는게 많으니까 말이야.
서핑, 수영, 파티, 피크닉, 다이빙, 스노클링,

여름엔 할 수 있는게 많아.
호주의 여름엔, 전복을 따 먹을수도 있어. 공식적으로 전복을 딸 수 있는 기간이 여름에 있으니까 말이야. 거친 파도와 싸우며 전복을 딸 때 그 느낌이란! 너도 한 번 호주에 가면 느껴봐. 전복을 따는 재미가 쏠쏠하니까 말이야.

서핑, 호주에 가면 꼭 해봐야 할 것 중 하나아닐까?
스카이다이빙, 정말 최고야. 

여름엔 크리스마스도 있고, 일자리도 많고, 할 것도 많고,
여름은 즐거워.

 

 


- 교외



- 크리스마스 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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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엔 거리에서 공연도 많이한다.



- 전복도 따 먹고



- 마미안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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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th, Australia / 퍼스, 호주 / 2009.8월. Perth Winter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0. 2. 7.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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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th, Australia / 퍼스, 호주 / 2009.8월. Perth Winter

 

- 퍼스의 겨울은 여러 가지 모습을 담고 있었다.

 
+Coolibah lodge, 6인도미토리, $25(VIP회원$24, 마일리지적립가능), 아침불포함.
+Old swan barrack, 12dm, $23(Vip $22), 아침포함.
+Easyperth backpacker, 10dm, $20, 아침포함.


- 호주의 겨울은 쓸쓸했다.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여름에서 겨울로, 더운곳에서 추운곳으로.
비행기를 타고, 10시간 후에 도착한 곳은 겨울이었어.
 

겨울, 겨울, 겨울이라면 춥다는 생각이 들지만, 퍼스의 겨울은 조금 달랐어.
우리나라 가을, 늦가을 같은 느낌? 분위기? 

공원의 나무들은 나뭇잎을 살며시 흔들고 있었어. 스산한 분위기가 감돌았어.
공기는 살짝 차가웠지만, 상쾌했어. 늦가을의 그런 공기. 몸속까지 시원해지는 그런 공기.
햇살은 따뜻해서, 기분이 좋았지만, 그늘에선 추위가 느껴졌어.
 

오후 5시,
해가 서쪽해안 저편으로 넘어갈 때, 하늘은 붉게 물들고, 사방에 어둠이 깔려왔어.
해가 저편으로 넘어갈 때 노을을 보고있노라면, 묘-한기분이 들었어.
노을이 아름다운 퍼스였어.
 

낮엔,
햇살덕분에 반팔, 반바지를 입어도 춥다고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해가넘어가면 추워지는 곳. 퍼스. 

하늘은,
티없이 맑고 깨끗했어. 낮은 하늘에 가끔씩 떠내려가는 하얀 조각구름들. 

8월은 덥다고 생각해온, 대한민국에서의 삶.
8월은 늦가을처럼 차갑다고 생각하게된 퍼스. 

호주의 겨울은, 왠지 삭막함이 느껴졌어.
한국의 늦가을은 낭만과 분위기가 느껴졌지만,
왠지 삭막한 쓸쓸함이 느껴지는 건 나뿐이었을까?
 

그래도, 좋았어. 상쾌한 공기속에 아름다운 노을을 볼 수있었으니까.
퍼스의 겨울에서 말이야.

 



-Perth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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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ina town


- train station


- city of perth





-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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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mantle, Australia / 프리맨틀, 호주 / 2009년 12월,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0. 2. 7.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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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가 함께하는 도시 프리맨틀. City of Fremantle.

   

+퍼스시티(Perth city) - 프리맨틀, 프리맨틀라인(blue), 약30분. 일반3.6달러.
+오스트레일리아 백팩커스(Australia Backpackers), 6인도미토리, 22달러. 아침불포함.

 

- 퍼스와 가깝지만 너무나도 다른 분위기의 프리맨틀. 

처음 프리맨틀에 도착해서 그 곳 거리를 걸었을 때, 퍼스와는 너무나도 다른 분위기에 어색했었어. 퍼스가 조금 혼잡하고 바쁜느낌이라면, 프리맨틀은 조용하고 여유로운 분위기?

프리맨틀의 그런 여유로운 분위기가 좋았어. 첫인상. 여유가 느껴지는 그런 도시. 

프리맨틀은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어.

프리맨틀의 앞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 로트네스트아일랜드(Rottnest Island)는 유명한 관광지이기도 하지. 그리고 프리맨틀 주변의 비치와, 요트항, 그런 것들을 바라보면서 프리맨틀에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호주의 여유로운 삶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프리맨틀은 그런 여유로움이 느껴졌어.

   

- Enjoy in Beach.,

프리맨틀항의 북쪽엔 퍼스주변에서 꽤나 사람들이 많이 몰려오는 비치가 있어. 코트슬로우비치. 꽤나 큰 비치야.
나도 코트슬로우비치와 포트비치에서 서핑을 하기도 했어. 바람이 심하게 많이 부는날엔 패러서핑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어.

역시, 호주답게 사람들은 자기차에 서핑장비를 싣고 다니면서 주말을 보내곤 했어. 프리맨틀의 주말은 언제나 활기차보였어. 물론, 그건 해가지고 너무 어두워지기 전까지지만 말이야.

  
- 프리맨틀, 그곳은 사랑스러운 곳.
 
City of Fremantle.
고풍스러운 건물의 City hall. 시계탑.

작지만 번화한 시가지. 세계 각국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가가 있고, 바다와 함께하는 곳이기에 생선요리를 맛나게 먹을 수 있는 곳.

항구엔 요트들이 정박해 있고, 다른 항구엔 어선들이 정박해 있고.
스노클링, 다이빙 샵들이 사람들을 기다리는 곳.
그리고, 무엇보다도
깨끗하고 바다가 있는 곳.
아름다운 석양이 있는 곳.

City of Fremantle.

 

 


- 아침 햇살이 프리맨틀을 비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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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적한 프리맨틀



- 나름 크리스마스분위기



- City hall




- 스테이크가 일품이었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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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

- 길을 걷다, 세계여행/Feel-ing, 세계일주-ing, · 2010. 2. 4.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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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치.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이야기를 한다.

"나는 너와 같은 나이에 무엇을 했지?"라고 자기 자신에게 질문한다.
더러는 "니가 부럽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

지금의 내 나이적에,
그 사람이 했던 것은
그 때, 그 사람이 생각 할 때 가장 가치있는 일이었을 테니까.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사람이 생각할 때 가장 가치있는일을 하고 있는 것일테니까.

나도 그와 같은 나이가 되었을 때,
그 때, 내가 생각할 때 가장 가치있는 일을 하고 있겠지.

모두가, 자신이 생각할 때 가장 가치있는 일을
지금 이 순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기에,
누군가를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December, 2009.
Beach in the Perth. WA.


- City of pe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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