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 내 너를 저주하리다.

- 길을 걷다, 세계여행/Feel-ing, 세계일주-ing, · 2009. 12. 29. 21:58

반응형


- 필라델피아, 내 너를 저주하리다.


미국,
필라델피아에가면 반드시 길바닥에 침을 뱉고 말테다.

필라델피아 소시지.
엄청난 크기,
엄청난 무게,

그 녀석을 옮기다보면
어깨가 아프고,
팔목이 아프다.

그 녀석을 옮기다가
망가져버린 나의 팔목.

이 녀석,
오늘도 나를 괴롭힌다.

 

27/10/2009, Tue.
Fremantle, Australia.



- 필라델피아 햄

반응형

호주에서, 공장에서 일하다 (2)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2. 11. 23:28

반응형


일을 하다보면 돈욕심이 생길것이라는 말을 들었었다.
"돈욕심?"


일을 시작하고 일주일,
일주일 일 한것에 대한 페이를 받았다. 그 주는 운이 좋겠도(?) 주말까지 일했다.
텍스를 제외하고, 1200달러가 조금 넘는 금액,,,한국돈으로 120만원이 넘는 돈을 일주일만에 벌었다.

계산해보았다.
어느 정도 일하면, 여행을 하는데 필요한 돈이 모일까?
비행기 표값을 포함해서, 6-7000달러를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공장에서 받는 돈이란 엄청 큰 금액이었다.

돈욕심?
생길만도 했다. 일주일만 일하면, 내 통장으로 백만원이 들어오는데,,,,
그래도 나는 여행을 해야 했다. 더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여기서 일 좀 더 하고, 내년 6-7월까지 천천히, 쭉- 여행하고 싶었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
해야할 게 너무나 많았고, 한국에 돌아가야하는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3월 학교 개강전까진 가야하니까,, 그 전에 이것저것 준비도 해야하고..

딱, 두달. 8주만 일하자고 생각했다.
그러면 여행하는데 필요한 돈은 충분히 모을 것 같았다.
거기다가, 호주에서 내가 하고싶었던 서핑과 스카이다이빙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공장에서의 일은 단순하고 지루한 일들이 많았다.
쉽지만 지루한 일들.
특히, 내가 가장 많이한 헝그리잭베이컨을 트롤리에 담아서 스모크하우스에서 굽는일은 단순하고, 쉽지만 엄청난 물량이어서 지루함의 극치였다. 나는 나중엔 정말 헝그리잭이 싫어졌다.
하루에, 약2000개의 베이컨의 비닐을 벗겨내어 스모크하우스에 넣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일은 정말 지루함과의 싸움이었다.

그 외의,
필라델피아,,,내가 공장을 그만두는날 마지막으로 한 일이 필라델피아였을 정도로 나를 괴롭혔던 녀석,,
C.O.B,,이녀석 덕분에 나의 이두근이 많이 자라났다..
버지니아 햄, eye bacon, R/ON bacon, R/Less bacon, Lenaldo bacon, Subway bacon, Subway cut, Roll mild, Roll hot, Roast beef, Deli ham, Polony, Triple smoke ham(T.S.H), Honey cure ham 등등,,,여러종류의 햄과 소세지, 베이컨을 다루었다.


-소세지, 햄의 이름은 왜 세계 각국의 유명도시 이름일까?
우리에게 잘 알려진 비엔나 소세지가 있다.
비엔나,,오스트리아의 수도 빈(Wien)의 다른 이름이 비엔나Vienna이다.
프랑크푸르트라는 소세지가 있다. 꽤 맛있는 녀석이었다.
버지나아햄이라는 녀석이 있었다. 줄무늬 스타킹같은 곳에 들어가는 녀석.
그리고 나를 괴롭혔던, 필라델피아.
델리 햄..
등등, 소세지나 햄의 이름이 세계각국의 도시이름인 경우가 많은 것 같았다. 그 도시가 그 햄으로 유명하나??


-어떤 일을 하느냐가 중요한것이 아니라 누구와 함께 일하느냐가 중요하다.
대부분의 일들은 두명/세명이서 팀을짜서 일을 해야 했다. 고기를 기계에 넣고, 망에 넣고, 그걸 트롤리에 싣고,,뭐 그런식으로 진행되거나 아무튼 보통 두명/세명이었다. 물론 혼자 해도 되는 일이 있긴 했지만 혼자해도 되는일도 둘이하면 더 빨리 끝낼 수 있기 때문에 두명이서 같이 팀을 이뤘다.

나는 그 공장에서 가장 늦게 입사(?)를 했기에, 이곳 저곳 돌아다니면서 다른 애들과 팀을 이루어서 일을 많이했다. 그러다보면 가끔씩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기본적으로 한국사람들과 같이 일을 하면, 힘든것도 돌아가면서 하고, 무거운것도 같이 들고 협동, 단합이 잘 된다. 물론, 마음이 잘 맞는 외국애들과도 잘 된다.

하지만, 가끔씩, 정말 게으른 애들하고 일을 하게 되면,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도무지 움직일 생각을 안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당연히 자기가 움직여야할 상황에서도 수수방관이다..........짜증백퍼센트다..
가끔씩 너무 화가날 땐, 니가 하라고 소리를 치곤했다.
뭐 그래도 어쩌겠는가?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동룐데, 그러려니 해야지,

어디서나 마찬가지지만,
일을 하거나 뭔가를 할 때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누구와 하느냐가 중요하다.


10월이 지나고, 11월이 지나가려고 하고 있을 때 쯤,
내가 이제 일을 해야할 날들이 얼마 안남았음이 실감났다.
"드디어 남미로 떠나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에 기쁘기도 했지만,
그동안 같이 일하면서, 나름대로 정이 든 녀석들과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살짝 아쉽기도 했다.
웬지, 내가 빠지면 공장이 잘 안돌아갈것같은 느낌이 들기도했다..-_-^


내가 일하는 오후반은, 오전반 보다 사람수가 대략 10배?정도 적었다. 내가 일하는 키친룸 Kitchen Room 에는 프로덕션Production 애들 4명과 키친 12명이 일하고 있었다.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하루의 반 이상을 그들과 함께 생활했다. 그리고 같이 이야기하고, 얼굴을 마주 봤다.
사람수는 적었지만, 다양한 국적을 가진 이들이 모여있었다.
한국,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콩고, 수단, 아프가니스탄, 스리랑카, 독일, 필리핀, 호주, 에티오피아, 뉴질랜드.

일을하는 이유는 대체적으로 비슷하긴 했다. 나를 제외하고. 그래서 애들이 나를 특별하게 보았다.
여행중. 그리고 또 일을 끝내고 여행을 갈 것이라는 나를.



12월의 첫 째주,
첫 째주에 일을 끝내려고 했었다. 이미 내가 호주에 처음 도착했을 때 일을 하려던 기간보다 2주나 더 지연되었지만 돈이 어느정도 모였다. 비행기 표값이 비록 생각보다 많이 비쌋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돈을 많이 벌었다.
슈퍼바이저에게 말했다. 다음주에 그만두겠다고.
역시 쿨한 슈퍼바이저. "한국가냐?"고 묻길래 그냥 구구절절 설명하기도 귀찮아서 "한국간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잘가라는 말한마디와 악수를 했다.

수 많은 한국인과 여러 국가의 사람들이 이 공장에서 일을하고 떠났을 것이다. 최대 6개월, 세컨비자까지 하면 1년. 슈퍼바이저들은 그런 것에 익숙한 것 같다. 일을 잘하든 못하든, 간다는 사람을 붙잡지는 않는다. 일을 하려고 기다리는 사람도 많겠거니와, 수십 년간 일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그렇게 만나고 보내왔을지를 생각한다면.

그렇게 나의 공장일은 12월 둘 째주에 접어들고나서 끝이났다.
그동안 내가 공장에서 번 돈은, 텍스를 제외하고 1,1000달러가 조금 넘는 금액.  엄청난 돈을 나에게 주었다.
그리고, 공장 덕택에 내가 호주에서 하고 싶었던 두 가지를 할 수 있었다.








- 스모크하우스의 굴뚝,


- 일이 끝나고, 공장 전체를 청소할때 뿌리는 솝soap. 하얗게 뒤덮히는게 눈 같다. 이거 할 때가 젤 기분이 좋았다.


- 필라델피아와 그 왼쪽엔 아이베이컨


- 칸쿠와 자바, 형제


- 칸쿠,


- 필립,


- 아멧,


- 칸쿠와 오지


- 테라,


- 가브리엘






반응형

스완리버(Swan River)의 요트

- 길을 걷다, 세계여행/Feel-ing, 세계일주-ing, · 2009. 12. 6. 22:54

반응형

- 스완리버(Swan River)의 요트


강가에 정박해있는 요트들.
그들도 언젠가는 먼바다로 나갈 것이라고 생각하겠지.

어디론가 멀리,
오랫동안 떠난다는건 큰 모험이다.

큰 모험이기에 용기가 필요하다.
모든걸 뒤로한 채 떠날 수 있는 용기.

 

30/09/2009 Wed.
South Perth, Australia.





반응형

'- 길을 걷다, 세계여행 > Feel-ing, 세계일주-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퍼스로 가는 버스 안에서,  (0) 2009.12.26
카날본의 농장.  (0) 2009.12.26
시간은 소중한 것. Time is Valueable.  (2) 2009.12.06
사냥개  (0) 2009.12.06

시간은 소중한 것. Time is Valueable.

- 길을 걷다, 세계여행/Feel-ing, 세계일주-ing, · 2009. 12. 6. 22:40

반응형

- 시간은 소중한 것. Time is Valueable.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한정된 시간을 잘 활용하고,
가치있게 사용하는 것만이 남아있다.

모두다 똑같은 절대조건.



26/09/2009 Sat.
Perth, Australia.

반응형

'- 길을 걷다, 세계여행 > Feel-ing, 세계일주-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날본의 농장.  (0) 2009.12.26
스완리버(Swan River)의 요트  (0) 2009.12.06
사냥개  (0) 2009.12.06
내가 아날로그를 좋아하는 이유.  (0) 2009.11.17

사냥개

- 길을 걷다, 세계여행/Feel-ing, 세계일주-ing, · 2009. 12. 6. 22:33

반응형


- 사냥개


사냥을 잘 할때는
사랑받는 사냥개 이지만,

사냥감이 없어지거나,
다른 사냥개로 인해서 필요가 없어지면

버려지는 사냥개.
그것이 현실.

 

23/09/2009 Thu.
Perth, Australia.

반응형

호주에서, 공장에 취직하다! - 01,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2. 5. 18:12

반응형


2009년 9월의 마지막 주,
사실상 호주 농장에서의 마지막 일이 끝났다. 도넬리리버 와인팜.
농장에서 같이 일하던 사람들과 추석때 부침개도 해먹고 추석분위기를 내자고 이야기하던 때가 있었지만,
그 이야기는 없었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우리들은 해고를 당했으니까..

어느덧,
10월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호주 농장에서의 약 7주간의 노동.

나에게는 더 이상의 선택은 없었다. 무조건 호주에서 일을 해야 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느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돈이 있든 없든 여행을 떠나야 한다고. 떠나야만 한다고.
나에게 더 이상 시간이 많지 않았다.


소식.
10월이 되면 슬슬 퍼스 주변의 공장들이 고용을 늘리고 크리스마스 준비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리고, 퍼스에서 만난 형이 나에게 말해주었다.
"10월부터 공장에서 사람 많이 뽑아보니까, 어떻게든 들어가봐."

그래서 생각한 방법.
어떻게든 인사담당관을 만나야 했다. 그래서 일 좀 시켜달라고 무작정 들이댈 생각이었다.

농장에 일을 하러 가기전 여러 공장을 돌면서 어플리케이션(Application)을 써 놓은 공장들이 퍼스와 프리맨들에 몇 군데 있었다.
난 그 중에서 가능성이 있는 몇 개의 공장을 다시 찾아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공장의 리셉션(Reception)에 찾아가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 X시에 인터뷰를 보러 오라고 해서 찾아왔다."
그러면 리셉션에서 일하는 여자는 인사담당자에게 호출을 해서 그 날 인터뷰일정이 잡혀 있는지 물어보았다.
하지만, 그 방법이 생각만큼 쉬운것은 아니었다.

인사담당관이 약속이 없다고 말하면, 만나지도 못 하는 경우도 있었고,
어떤 날은 그 날이 인사담당관이 쉬는날이기도 했다.
어쩌다가 운 좋게 인사담당자를 만나면 나는 기회다 싶어 거짓말을 해 댓다.
"며칠 전에 전화가 왔는데 오늘 이시간에 인터뷰하러 오라고 했다고...다른 일도 그만두고 왔다고."
하지만 모두가 헛수고였다. 그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수없이 인사담당자을 만나서 이야기를 했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냉정했다.
수 백명의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는데, 나 한명 일 할 자리가 없는것에 대해 한탄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10월이 시작되려하는 그 주에 마지막으로 어플리케이션을 썻다.
그리고, 10월이 시작되어도 공장에서는 소식이 없었다.
그래서, 퍼스를 떠났다.
그런데! 퍼스를 떠나고 바로 다음날 전화가 왔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전화.

프리맨틀 소재의 소세지 공장 돌소냐(DORSOGNA).
일을 하러 오라고 전화가 온 것이었다.



- D'ORSOGNA, 로고.
 나에게 참 고마운 회사다.
반응형

나는 배신자인가?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1. 29. 23:22

반응형
10월 2일 목요일.  PM 4:00.
퍼스(perth)에서 일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카날본으로 떠나기로 결정한 세 남자.


오후 다섯시.
그렇게 퍼스를 떠났다.


10월 3일 금요일,
1000Km 북쪽으로 차를 달려 도착한 작은 해변도시. 카날본Carnarvon. 열대기후에 가까운 곳.
일년 내내 바나나 농사를 하고 있는 곳. 일년 내내 농장일이 있는 곳이라는 말을 듣고 온 이곳.

일을 찾기위해 농장을 돌아다니던 중 어디선가 걸려온 한통의 전화...


프리맨틀의 어느 공장 에서 걸려온 전화.
그리고 그 날 오후 1시까지 공장 오피스로 면접을 보러 오라는 통보.

하지만, 절대 갈 수 없다.

3시간 만에 1000km가 넘는 거리를 무슨수로 간단말인가? 비행기도 없는 곳에서..
우여곡절끝에 인터뷰는 월요일로 미뤘고,
수 많은 고민 끝에 퍼스로 돌아가기로 한다.


다른 두 남자의 만류.
함께 카날본에서 일하자는 제안. 같이 있자는 제안.
모든 미련을 버리고 여기까지 왔으면 깔끔하게 여기서 새로, 함께일하자는 그들.
이미 농장도 잡았는데 퍼스까지 돌아 갈 필요가 없잖냐면서, 같이 있자는 그들.


갈등.

돈과 여행과 정(情)과 사람들.
그토록 기다리던 기회.

이 기회를 놓치기 싫었다. 
그리고 마음 한 구석엔 그들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혼자이고 싶었다.
이젠 새로운 곳에서 다시 한 번 시작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결정한 퍼스行.

만남과 헤어짐.
일과 일자리.
떠남과 정착.
여행자,

워홀러의 숙명이라고 믿고 싶다.







- 퍼스로 가는 길, 로드하우스.


- To Perth.


- Greyhound From Carnarvon.


- 카날본의 밤거리.


반응형

I've got the job again!! - 하루만에 두개의 일자리를 구하다!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1. 28. 22:08

반응형

지평선 넘어로 뻗어있는 도로를 달려 퍼스Perth에서 카날본Carnarvon까지 와버렸다. 997km.


오전 6시,
꿈을 꿨다. 왠지 기분이 좋은 꿈. 카날본으로 가는길이 상쾌했다. 왠지 일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오전 8시.
카날본 시티센터에 도착을 했다.
여기가 카날본이구나..! 정말 휴양지같은 느낌이었다. 실제로 요트나 카약같은걸 차에 싣고 오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카날본에 부는 바람도 다합(Dahab, 이집트의 홍해에 있는 작은 휴양도시)에서 내가 느꼈던 바람과 유사했다. 기후도, 풍경도.. 다합에 대한 기억이 나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오전 9시.
시티 비지터센터(city visitor centre)가 문을 열자마자 들어가서, 잡에이전시(job agency)가 어디에있는지 물어봤다. 시티 쇼핑센터에 위치한 에이전시를 가르쳐주길래 바로 그리로 갔다.
에이전시에가서 잡을 구하고 있다고 말을 하니, 직접 농장을 찾아가보라면서 농장들이 모여있는 위치를 지도에 표시해주었다. 플랜트Planet. 어마어마했다.


그 이후,
농장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가니, 정말 거대한 대 농장들이 줄지어 있었다. 한 농장주에게 일이 있을만한 농장좀 알려달라고하니 카날본에만 170개가 넘는 농장이 있는데 자기는 그걸 다 알 수 없다고, 그냥 열심히 돌아다녀 보랜다...
대농장이 170개,,,,,,,,??? 거기서 일자리를 설마 못구하랴?

이미 일을 하고 있는 농장도 많았고, 아직 시즌을 시작하지않은 농장도 많았다. 농장을 하나하나 차례대로 돌아다녔다.

오전 10시경,
농장을 돌아다니면서 농장주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도중, 어디선가 전화가 왔다. "꿈이 드디어 현실이 되는건가?!"


전화,
"Hello"
"Yes, this is Mr, Chang"
"i'm mrs.....후략."

1시까지 공장으로 면접을 보러 오라는 전화.
카날본에서 퍼스까지 1000km거리를 3시간만에 어떻게 가지????????

프리맨틀의 아는 형에게 전화를 했다.
"형, 나 돌쏘냐에서 면접보러 오래요,"
"잘됐다 야, 당연히 가야지"
"네 형, 가야죠, 근데 저 지금 카날본에 있어요"
"아, 뭐 일이 또 그렇게 되냐???"
"그래서 말인데, 형이 대신 면접 좀 가주시면 안되요??"
"나도 니 맘 알겠는데, 나 예전에 거기서 일해서 걔네들이 나 보면 알아 그냥 사실대로 말해, 카날본에 있다고 내일 간다고"
"아... 네 알았어요 형, 어쩔 수 업네요. 나중에 다시 연락드릴게요"

방법은 없었다.
카날본에서 비행기도 없었고, 버스도 없었다.
비행기라도 있으면 비행기라도 타고 가고 싶었다. 버스는 다음날 새벽2시. 퍼스엔 오후4시에 도착한다.

공장에 다시 전화를 했다.
"오늘 오후1시에 인터뷰보러가기로 한 MR. CHANG인데, 사실 내가 지금 카날본에 있다.
인터뷰를 가려고, 비행기도 알아보고 버스도 알아봤는데 오늘은 교통편이 없다. 인터뷰를 내일이나 월요일로 미루면 안되겠느냐?"고 말했다.

"알았다. 일단 나중에 다시 전화 주겠다. yes or no를 조금 있다가  전화로 알려 주겠다." 는 대답.
초조했다.
그래도 한 숨 놓았다. 
나는 꿈을 믿었다. - 꿈에서 교수님이 나중에 발표하는 것을 허락했기에 믿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농장을 컨텍(contact)하러 갔다.
어느 한 농장에서 내일 일을 하러 오라고 했다. 일단 캐시잡으로 일을 시켜준댄다. 농장 어커머데이션도 시설도 좋았고 가격도 쌋다. 그렇게 일이 일사천리로 풀렸다.


일단 처음 숙소로 잡은, 카날본 백팩커스로 돌아왔다.
같이 온 동료들이 나에게 말했다.
"농장도 컨텍됐고, 우리랑 같이 여기 농장에서 일하자"라고.

고민했다. 많은 생각을 했다. 대답을 하지 않았다.
'여행, 돈, 시간, 사람, 정(情), 확실성과 불확실성' 모든걸 생각해야했다.

많은 고민끝에 나는 입을 열었다.
"퍼스로 다시 돌아갈게요"
"퍼스에 모든 미련 다 버리고 왔으면 여기 같이 있자. 여기까지 와서 니가 이러면 배신이다"라는 대답.

나의 상황에 대해서 설명했다.
이제 얼마남지 않은 시간. 그리고 필요한 돈. 내년까지 여행을 마쳐야하는 나의 상황. 시간+돈 과 사람 사이의 갈등이었다.

결국, 퍼스로 다시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퍼스로 가서 공장에 일단 가보지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을 평생 원망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날은 컨텍했던 농장에서 반나절 일을하고 현금으로 돈을 받고 나는 퍼스로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지만, 일이야 어떻게 되든 퍼스로가지않으면 정말 후회할 것 같았다. 


후담이지만,
결국은 모든일이 잘 풀렸다.
그리고 카날본에 같이 갔던 사람들과도 지금 잘 지내고 있다. 가끔씩 만나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들은 다시 퍼스로 내려와서 다른 농장에서 일하고 있고, 한명은 몸상태가 안좋아서 한국으로 귀국했다.







- Great north coast hwy의 로드하우스,


-


- 퍼스로가는 버스, 그레이하운드. 카날본-퍼스의 가격이 190AUD....쩐다..13시간버스가 20만원 ㅠ


- 호주에서의 마지막 농장일,


- 바나나밭 중간에 수박을 심었다...


- 바나나 열매들, 많이 따먹었다 ㅋㅋ



반응형

꿈 이야기 - 카날본으로 가는 길 로드하우스(Road house)에서,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1. 28. 20:39

반응형

혹시, 당신은 꿈을 믿으시나요? 혹시 믿는 다면,
꿈이 나의 미래를 예지한다는 느낌으로? 아니면 꿈은 반대라는 생각으로?
아니면 그냥 개꿈이라고 생각하나요?

전 꿈을 믿는 편입니다.

보통, 난 너무 피곤해서 새우잠같은걸 잘 때 꿈을 잘 꾸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 꿈을 꾸는 경우가 있다.
그 다음날이 대체적으로 중요한 날일 때. 뭔가 의미있다고 생각되는 꿈을 꾸는 편이다.

예를들어, 시험기간이라던가, 뭐 아무튼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일을 하는 날일 때 말이다.

그리고 호주에서, 뇌리에 선명하게 기억될만한 꿈들을 몇 개 꾸었다.



꿈을 꿨다.
- 퍼스에서 북쪽으로 1000km 카날본Carnarvon으로 가는 길, 어느 로드하우스의 주차장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꿈 속에서,
한 후배가 나에게 전화를 했다.
"오빠, 수업에서 조별 발표를 해야하는데 오빠 우리조에서 같이 발표 하실래요?" 라고 말했다.
난, "Ok"라고 대답을 했다.

왜 갑자기 그 아이가 나에게 전화를 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왜 하필 그애 였는지.
학교 다니면서 많이 마주치지도 않았다. 서너번 정도 본 것 같다. 술도 같이 딱 두번 먹었다. 싸이는 일촌이지만, 뭐 그냥 보통 선후배사이다. 별로 친한사이는 아니다.
왜냐하면 친할 기회가 없었으니까. 09학번.....ㄷㄷ...나는 세계일주를 한답시고 09년 3월 한국을 떳으니까.


꿈 속에서,
같이 발표 조모임을 하게 되었다.
발표준비를 다 끝내고 발표를 하는날이 되었는데 갑자기 내가 너무 급한일이 생겨서 발표를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교수님한테 전화를해서 발표를 다음으로 미루면 안되겠느냐고 부탁을 했더니 다음에 발표를 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뭐 지금은 기억이 잘 안나는 이것저것을 하고나서,
다시 발표를 하게 되었다.

꿈의 끝.


아침 6시 경,
잠에서 깨어났다. 약 4시간을 차 안에서 눈을 붙이고, 카날본으로 다시 떠났다.


왠지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냥 느낌이.
그리고 왠지 어디선가 내 전화기로 전화를 해 줄것 같았다. 그냥 이유없이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일자리에 관한 전화가 올 것 같다는 근거없는 믿음이 생겼다.
혼자 꿈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았는데, 왠지 공장 어디선가에서 나한테 전화가 올 것 같았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아무튼 그 날 아침부터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 날, 오전 10시 경.
카날본에 도착을 해서, 농장들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일자리를 알아보러 다니고 있었다.
다행히도 시내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서 일을 구하러 다니고 있어서 전화가 터지는 구역이었다.

농장을 돌아다니며 농장주와 이야기를 나누던 그 때, 어디선가 일반전화로 걸려진 전화가 내 휴대폰을 울렸다.
프리맨틀Fremantle 에 위치한 소세지 공장에서 전화가 온 것이었다. 돌쏘냐(DORSOGNA). 내가 얼마나 가고 싶어하던 공장이던가!
오늘 오후 1시까지 인터뷰를 보러 공장으로 올 수 있는지 묻길래, 당연히 오케이했다.

인터뷰까지 남은시간 3시간.
1000km가 넘는거리를 3시간만에 어떻게 간단말인가???????
일은 그렇게 되었다.

여기서 부터 나는 참 절박했다.
그리고 같이 카날본에 간 사람들은 참 착찹해했다.

그날의 꿈. 잊지 못한다.



- 잠을잤던 로드하우스,
모든건 우연의 일치였을까? 카날본에서 퍼스로 돌아오는 버스도 여기서 쉬었다.




반응형

I'm looking for a job again! - 다시 구직자의 삶으로(2)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1. 28. 09:45

반응형

드디어 일을 다시 잡았구나!!
근데, 북쪽으로 2500km?! 차를 타고 꼬박 2박3일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거기라도 가서 돈을 벌어야지,, 페이도 어느정도 괜찮았고, 농장 숙소에 수영장도 있었다.

에이전시가 문을 닫을 시간이라서 내일 오전에 자세하게 이야기를 해줄테니 다음날 오전에 오라고 하길래 알았디고하고 에이전시를 빠져나왔다.
"다시, 농장으로 가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일이 끝나고 딱 일주일만이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다.
농장주와 계약이 체결되는 그 순간까지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그 전에 일을 구할 때도 일을 하기 바로 직전에 펑크가 나서 도루묵이 된 적이 있다고.
너무 기대는 하지말고 그냥 안전빵으로 생각하고 있으라고.

마음 한구석엔 약간의 불안감이 있었지만,
그래도 안도감이 조금 더 컷다. 일을 할 수 있다는 안도감.

그날 저녁,
백팩커스의 같은 방을 쓰는 외국애들에게 작별인사를 미리했다.
그리고 모든 짐들을 다시 정리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저녁으 먹었다.

다음 날, 오전.
에이전시영업시간 전에 미리 찾아가서 기다리고 있으니, 여직원이 잠시 기다리면서 인터넷에 올라와있는 더 좋은 일자리를 한 번 알아 보라고 했다. 뭔가 좀 불안하면서도 찝찝한 기분이었다.
여직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농장주의 전화번호를 적어주는 것이었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계약서나 페이에대한 설명 등등 그런 설명이 아니라, 달랑 전화번호 하나 주면서 농장주에게 직접 전화를 해보라니?!  - 이럴경우, 하루가 지나버리면 거의 90%이상 자리가 없다고 봐야한다.

농장주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지 않아서 메세지를 남겼다. 그래도, 조바심이 나서 다시 전화를 했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한 남자의 목소리
"Hello?"
어쩌고 저쩌고.
퍼스 에이전시에서 소개받고 전화했다고 하니, 이름을 묻고 알았으니까 나중에 다시 전화 준댄다...

"끝났네."라고 생각했다.

1시간 뒤 다시 전화했다.
지금 당장 일 할 수 있고, 일잘한다고 했다. 그리고 수박 플랜팅, 피킹도 해봤다고 했다.(당연히 거짓말) 지금 퍼스에 있지만 브룸으로 갈 수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대답은,
"나중에 연락주겠다."였다. 

게임 끝.

이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니 역시나,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목요일 오후,
그동안 썼던 공장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보통 공장에서 목요일날 연락이와서 금요일날 인터뷰를 보고 월요일부터 일을 시작하는게 일반적이라고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공장도 끝난 것 같았다.

나는 금요일을 퍼스에서의 마지노선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이제 퍼스에서 미련을 두려고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게 믿었던 일자리가 사라지고나니 모두가 힘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가고,

몇 분 뒤,
결정되었다.
지금. 그냥 카날본(Carnarvon)으로 떠나자!


목요일 오후 다섯시.
퍼스에서 북쪽으로 1000km를 달리는 여정을 시작했다.
일을 찾아서.



처음,
내가 호주에와서 조건이 괜찮은 일자리를 내가 거부했을 때(그 당시는 그게 좋은 조건인줄 몰랐다)
일이 안구해 질 때, 내가 그 때 미쳤지라고 생각하면서도 "나중에 더 좋은 일자리가 생기겠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더 좋은 일자리, 더 좋은 잡job, 그걸 찾아서 퍼스를 떠나기로 했다.




- 북쪽으로 끝없이 달리는 자동차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