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뉴욕(NewYork) - 나는 할렘가(125th st)에 머물고 있어요.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4. 4. 26.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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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목 사회에서 농경 사회로.
  사람들은 큰 강 유역에 모여 살면서 문명 사회를 이루었다. 그 이전의 시대의 사람들도 모여 살긴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이지도 않았고 때로는 이동을 하는 수렵, 채집 중심의 사회였다. 생존에 유리한 환경 속에서 사람들이 모여 살다보니, '문명사회'라고 불리는 것이 만들어 졌다.

  산업 혁명 이후, 사람들은 도시로 몰려들었다. 대도시는 점점 더 거대도시가 되어갔고 대도시 주변에는 신도시라는 이름의 작은 도시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산업 혁명은 영국에서 시작하여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경제를 발전시키려는 나라들의 도시들은 비슷한 모습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도시에는 노동자들이 사는 곳과 부자들이 사는 곳의 구분이 생겼고, 부자들은 엄청난 돈을 들여가며 자신들만의 쉼터를 만들며, 삶을 윤택하게 가꾸어 나갔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힘든 삶을 살아야 했다.

△ '뉴욕(New York)' 롱아일랜드에서 바라본 뉴욕의 중심 맨해튼.



    2. 어디 사세요?

  누군가를 만났을 때, 가장 흔히 하는 질문은 어디에 사느냐고 묻는 것이다. 한국에서, 특히 서울에서. '사는 곳'은 자신의 경제력, 경제적 지위가 대략 어느정도 된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 되었다. 예컨대, 자신이 처음 만난 두 사람에게 "어디에 사느냐"고 물었을 때 어떤 사람 A는 '강남구 XX동 타X팰X스'산다고 말했고, B는 '노원구 상X동'에 산다고 했다면[노원은 필자가 사는 곳으로서, 극단적 비유를 위해 예로 든 곳이다],  A와 B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우리 사회는 이미 어떤 사람이 어떤 동네, 어느 아파트에 사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그 사람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어떻다는 것을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 어느 누구도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동네 이름'만 가지고 그 동네 사람들이 어떻다고 생각한다. 비단 이런 현상이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비슷한 현상은 목격 할 수 있다.


   3. 125번가 역으로 가려면 어떻게 가죠?
  맨해튼에 있는 가장 저렴한 게스트하우스의 도미토리를 예약했다. 125번가에 위치한 호스텔이었다. 나는 맨해튼에 생각보다 저렴한 숙소가 있다는 사실에 약간 놀라면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여행 경비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숙박비'이기 때문에 나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저렴한 숙소를 선택한 것이다..

 

△ 125번가 역(왼쪽), 125번가에 내리는 눈(오른쪽)

  JFK공항에서 입국 수속을 마친 후, 전철에 몸을 실었다. JFK공항철도에서 내려, 전철로 옮겨 탔다. 전철은 125번가를 향해 달려갔다. 전철이 목적지인 125번가에 가까워질수록 열차 안의 사람 수는 줄어들었지만, 흑인의 비율은 높아졌다. 전철은 차가운 공기를 가득 싣고 계속해서 북쪽으로 달렸고, 125번가 역에 도착했다. 

  전철역을 빠져나와 바라본 풍경은 내가 늘상 외국에서 보던 풍경과 비슷했다. 여느 도시와 비슷하다는 생각. 뉴욕, 주변에 흑인들이 좀 많다는 것을 제외하곤 별다른 특별함이 없었다. 나는 게스트하우스의 주소를 확인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길은 어두웠고, 길 양쪽으로 눈이 쌓여 있었다. 

 '아, 1년 만에 겨울로 돌아왔구나. 뉴욕, I LOVE YOU'


   4. 할렘가(Harlem District)
  게스트하우스에서 체크인을 하고, 도미토리에 들어간 나는 도미토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냈다. 그러나 다른 여행지와는 좀 다른 분위기의 숙소라고 생각했다. 남미나 중동 같은 곳에서 느낄 수 없었던 서먹함이 나의 피부를 파고 들었다. 대도시를 여행할 때 느낄 수 있는 서먹함. 그런 느낌이라고 생각했다. 어색했다. 오랜만에 이런 느낌을 받는 다는 것이. 그렇지만, 나는 늘 하던 습관대로 눈앞에 보이는 이들에게 가볍게 인사를 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여행 하는 사람들의 예의인 양.

  론니플래닛(Lonely planet)을 펼쳐 들었을 때, 125번가에 대한 내용이 나왔다. 125번가, 숙소가 있는 곳이라는 생각에 찬찬히 읽어 보았다. 할렘가(Halem District)의 중심인 125th st. 내가 위치한 곳이 할렘가의 중심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내가 전철을 타고 오면서 보았던 풍경들이 좀 더 명확히 이해되었다. 지하철이 맨해튼 남쪽에서 북쪽으로 오면서, 흑인들만 열차에 올랐던 이유를. 지하철 역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대다수가 흑인들이었다는 사실이 다시금 생각났다. 그리고 지금 머물고 있는 숙소가 저렴한 이유도 어느정도 이해되었다.


  이곳이 할렘이라고 불리는 곳이었지만, 그 동안 영화나 드라마로 보던 할렘의 이미지, 말로 듣던 할렘의 이미지와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저, 그냥 사람사는 동네였다.


   5. 저지 시티(Jersey city)에서 들은 이야기.
  하루는 미국에 유학 온 대학 동기를 만나기 위해 허드슨 강 건너편의  맨해튼 서쪽의 저지 시티로 갔다. 저지시티에서 식사를 하고 쇼핑몰을 구경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친구는 나에게 숙소가 어디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125번가에 숙소가 있어".  친구는 놀라며 되물었다. "거기 할렘이잖아? 안 위험해?". 

 "몰라, 위험한 건 전혀 모르겠는데? 그냥 똑같아."라고 대답했다.

 나는 생각했다. 할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할렘의 공포를 만든다.

 "할렘에서는, 저녁 때 운전자도 없는 자동차들이 도로를 돌아다닌다"는 말도 이런 맥락에서 생긴 오해가 아닐까.


   6. JFK공항에서,

  예상치 못한 폭설이 내렸고, 비행 일정이 취소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유나이티드 에어라인(United Airline)데스크에서 다음 비행기를 알아보았지만, 항공사에서 제공해 줄 수 있는 비행편은 '5일 뒤'에 있는 비행기 뿐이었다. LA에 가서 내가 타고 가기로 되어있던 LA발 대한항공 비행기는 정상 운행이었지만, 뉴욕에서 LA로 갈 방도가 없었다.

 

△ 전철을 타고 공항으로 가는 길에 바라본 눈내리는 마을(왼쪽), 모든 비행편 결항으로 인해 혼란스러운 공항(오른쪽)


  나는 유나이티드에어라인 직원과 영어로 계속 대화를 하다보니 답답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LA의 대한항공 직원과 전화 통화를 해 보았지만, 마땅한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면서 데스크에서 계속 직원과 대화를 하고 있을 때, 동양인 직원 한 명이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한국 분이시죠?" 

 나는 그 직원의 도움으로 비행 스케줄을 새로 잡을 수 있었지만, 당장 비행기를 탈 수 있는 방도는 없었다. 숙소로 돌아가서 며칠을 보내야 할 것 같았기에, 직원은 나에게 숙소가 어디냐고 물었고, 나는 대답했다.

 "125번가에 있던 숙소였어요. 지금 돌아가도 방이 있을 지 모르겠네요"

  그러자 그 직원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할렘, 위험하지 않아요? 왠만하면 그곳으로 돌아가지 말고 다른 숙소로 알아보세요"

 "퀸즈에 친구가 살고 있어요. 그곳으로 가보죠."라고 내가 말하자 직원은 휴대폰을 빌려주며 그 친구에게 전화하고, 그리로 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당부했다. "125번가는 위험하니까, 조심하세요."

  나는 새로 발급받은 보팅패스를 들고 데스크를 빠져나왔다. JFK공항 통유리 너머로 매서운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다. 뉴욕은 나를 그런식으로 붙잡고 있었다.

△ 브로드웨어 42번가의 화려함. 이곳의 화려함은 '125번가 할렘'과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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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지도 없이 길을 헤매도, 그저 I♥NY(3) - New York City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4. 4. 26.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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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도, Map.
 
  역사 교과서나 위인 전기를 통해서, 혹은 다른 여러가지 매체를 통해서 한 번 쯤 들어 봤을 법한 이름이 있다. '김정호'. 조선시대에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다는 사람. 물론, 그 전에도 지도를 그렸던 사람은 많지만, 그의 이름이 아직까지 불려지는 이유는 아주 '정확하게'지도를 그렸기 때문이리라.

  여행을 가거나 어딘가를 찾아갈 때, 지도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여행을 하는데 있어서 지도는 아주 중요하다. 지도 없이 어딘가를 찾아 가겠다고 길을 나선다면 하루종일 길을 헤매면서 하루를 다 허비할 지도 모른다. 지도가 있어도 지도를 잘 볼 줄 모른다면 길을 헤멜 지도 모르지만, 지도가 있으면 현지인들에게 길을 물을 수가 있다. 요즘은 스마트폰의 지도 서비스가 아주 좋기 때문에 이제는 '디지털 지도'를 사용하여 쉽게 길을 찾기도 한다.

  지도를 보며 골목길을 누비다가 목적지에 도달 했을 때의 기쁨. 그 순간에는 택시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 했을 때는 느낄 수 없는 성취감이 있다. 가끔은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끼리 이쪽이니 저쪽이니 티격태격 하다가도, 서로 의견을 잘 교환하여 목적지에 제대로 도착했을 때는 서로간에 돈독한 신뢰를 쌓을 수도 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는 사실[지도를 잘못 보고 이상한 곳을 헤메다가 결국 싸움에 이르게 되는 될 수도 있으니 조심하자].

  우리는 여행을 다니든, 일상 생활을 하든 '지도(Map)'라는 이름이 붙은 다양한 것들을 접한다. 지도는 알게 모르게 우리의 생활속에 스며들어 있다.


2.서울의 지도, 서울의 길.


   전 세계의 여느 대도시가 그렇듯이 서울에는 무수한 지하철 노선이 얽히고설켜 있다. 지방 작은 도시에 사는 사람이 서울에 올라와서 지하철 노선도를 처음 보게되면 눈이 휘동그래 진다. 지하철 노선도는 내가 어디에서 어디로 가야할 지 골똘히 생각하게 만든다. 

  함께 자취를 하던 친구와 주말마다 오토바이를 타고 서울 관광 안내 책자에 나오는 서울의 관광 명소를 돌아다니던 때가 있었다. 큰 도로를 벗어나 작은 골목길이나 좁은 도로를 지날 때,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서 헤매던 기억이 있다. 구불구불 꼬여있는 서울의 골목길은 저 길이 이 길 같고, 이 길이 저길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도가 있었지만, 길을 찾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우리가 찾던 목적지가 나오기도 했다.


3. 뉴욕 지하철 노선도(New York Metro Map)

  JFK공항(John F.Kennedy International Airport)에서 맨해튼의 125th Street까지 지하철을 타고 이동 했다. 125번가는 할렘의 중심가였다. 그 곳에 위치한 숙소가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가장 저렴한 숙소 중 하나였기에 나는 서슴없이 그곳으로 이동했다. JFK 공항에서 출발하여 두 번 지하철을 갈아타고나서 125번가 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게스트하우스에 비치된 뉴욕 관광 안내 지도를 집어 들었다. 그 지도의 한쪽 면에은 큼직하게 뉴욕 메트로 맵이 뉴욕의 지도와 겹쳐져서 그려져 있었다. 아주 간략하고 보기 좋게.


  나는 뉴욕 지하철 지도의 역 이름을 살펴 보던 중 한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지하철역 이름과는 좀 다른 역 이름들. 우리나라의 지하철역이름은 그 동네의 지명이나 큰 건물의 이름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예를 들면 3호선의 대화, 구파발, 불광, 홍제, 옥수, 약수, 압구정 등] 그렇지만 뉴욕 지하철의 역들은 대부분 그 거리의 이름을 지하철 역이름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특히, 맨해튼의 경우 그 특징이 두드러 졌다.



△ 뉴욕 지하철 노선도(New York Metro Map)


 맨해튼은 가장 아래 쪽, 남쪽의 1st street부터 북쪽으로 가면서 동서로 가르지르는 길에 번호를 부여해서 길 이름을 구성하고 있엇다. 1st, 2nd, 3rd, 4th, 5th .... 10th, 100th, 125th street...이런 식으로 동서를 가르지르는 도로에는 스트릿(street)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남북을 가로지르는 길에는 way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었다. 그래서 맨해튼을 남북을 가로지르는 대표적인 길이 바로 '브로드웨이(broad Way)'이다.  지하철 역들은 주로 street 넘버를 지하철 역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같은 스트릿(Street)의 동쪽과 서쪽에 서로 다른 지하철 노선이 지나가는 경우에는 동일한 지하철 역 이름을 가지고 있었기에 나는 종종 실수로 다른 역에서 내리곤 했다.

  내가 가장 눈여겨 본 지하철 역은 나의 숙소가 위치하고 있던 125th Street와 42nd Street의 타임스퀘어 역이었다. 그 외에도 20번가, 7번가 등 많은 역들이 거리 이름으로 되어 있어서 그곳을 지도에서 그곳을 찾아 이동하기가 아주 쉬웠다.


4. SOHO부터 Wall Street까지.
 

   소호(SOHO)에 가 보고 싶었다. 예전에는 화랑이 즐비해 있었다지만 높아진 임대료로 인해 화랑들은 이제 주로 첼시 쪽으로 이동하거나 더 먼 곳으로 서서히 이동하고 있다고 했지만 '화랑'의 흔적을 찾고 싶었다. 소호는 패션의 거리가 되어 가고 있다고 들었다. 론니플래닛 뉴욕 시티(Lonely planet, New York City)에 나온 안내에 따라 지하철 역에서 내렸지만, 그곳이 소호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그곳이 소호라고 해서 '여기가 소호 입니다'라는 안내판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소호역'이라는 말도 없었으니 나는 그저 사람들을 따라서 걸을 수 밖에 없었다. 왠지 내가 가는 곳이 '소호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무작정 사람들이 많이 가는, 젊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뒤쫓았다.


    

△ 리틀 이탈리아와 차이나타운은 붙어 있다.


  길을 걸으며 거리 곳곳에 파편처럼 흩어져 있는 예술의 흔적과, 건물들의 모습에 취해 셔터를 누르다 보니 어느새 내가 와 있는 곳은 '리틀 이탈리아(Little Italy)였다. 언젠가 '리틀 이탈리아'에 대해 읽은 기억이 났다. 차이나타운 근처에 위치한 '이탈리아 타운'. 조금 더 걸으니 '차이나타운(China town)'이 나왔다. 그러면서, '차이나 타운의 지하로 잘못 들어가면 영영 빠져나올 수 없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차이나타운의 지하는 미로처럼 얽혀 있어서 뉴욕 경찰들도 그곳으로 들어가는 것을 꺼려한다는 이야기.

  차이나타운의 한 테이크아웃 음식점에서 사람들이 음식을 사 가는 모습을 보니 배가 고파왔다. 메뉴를 고른 만큰 돈을 지불하는 방식이었는데, 가격은 저렴했다. 음식을 사 들고, 근처에 있는 공원에 앉아 배를 채운 다음 다시 발걸음을 남쪽으로 옮겼다. 점점 더 소호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남쪽으로 내려가자 NYPD(뉴욕 경찰서)건물이 나왔고,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더 이상 이쪽으로 오지말라고 소리쳤다. 나는 방향을 서쪽으로 돌려 계속 걸었다. 법원 같은 건물이 나왔고, 나는 다시 지하철 역으로 들어갔다. 42번가로 돌아가려 했으나, 나는 지하철을 잘못 타버렸고 브루클린 브리지(Brooklyn Bridge)를 건넜다. 맨해튼을 떠나 브루클린으로 가고 있었다. 맨해튼의 야경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5. SOHO에서 타임스퀘어까지.

  나는 다음날 또 다시 소호를 찾았다. 이번에는 다른 지하철 역에서 내렸다. 왠지 그곳이 소호의 중심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을 빠져나오니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그리고 많은 유명 브랜드의 매장이 깃발을 펄럭이며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제대로 찾아온 것 같았다. 아메리칸어페럴, 유니클로, 바나나리퍼블릭, 게스, 디씨슈즈 등의 많은 해외 유명 의류 브랜드들이 내 눈에 띄었다. 호주에서 자메이카까지 6개월 이상을 보내면서 나는 여름 옷만을 가지고 있었고, 뉴욕의 추위를 견디기 힘들었다. 소호의 여러 의류 매장들을 돌아다니며 옷을 구입했다. 통장 잔고는 조금씩 줄어들었지만, 추위를 막을 수 있다면 통장의 잔고가 줄어드는 것은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 소호 거리에 있는 게스(guess)매장과 젊은 이들.

  
   소호의 거리들을 돌아다니며 쇼핑을 하고, 사진을 찍고, 거리의 분위기를 관찰했다. 거리의 분위기를 밝고 활기가 넘쳤으며, 다양한 먹거리들이 즐비하고 있었다. 북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뉴욕대(NYU)를 지나 42번가 까지 갔다. 42번가는 타임스퀘어 근처에 위치한 곳이라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붐볐다. 해가 저물고, 현란한 불빛이 하나둘 거리를 메우기 시작했다. 기온은 조금씩 더 떨어지고 있었다.

 

△ 뉴욕대(NYU)지하철 역(왼쪽)과 뉴욕대 근처 공원의 개선문(오른쪽)

 

  숙소 근처에 위치한 유명한 재즈 카페에서 재즈 공연을 볼 생각을 한 나는, 간단히 식사를 하고 재즈 카페를 찾았다. 재즈 공연을 보기 위한 사람들로 카페는 붐비고 있었다.



6. 길 찾기가 쉬운 맨해튼.

  전형적인 바둑판식 도로가 깔려 있는 맨해튼. 맨해튼의 중심에는 센트럴파크(Central Park)가 있고, 그 오른쪽을 이스트사이드(East Side), 왼쪽을 웨스트사이드(West Side)라 부르고 있는 곳. 1번가(1st street)부터 약 130번가까지 차례로 하나씩 숫자를 붙여 나가며 동서를 가로지르는 길이 있는 곳. 남쪽을 향해 계속 길을 걷다 보면 1번가와 2번가가 나왔고, 배터리 파크에 서서 강 저 멀리를 바라보면 자유의 여신상이 서 있었다.


 

△ 42번가 역 안(왼쪽)과 42번가 역을 나왔을 때 만날 수 있는 풍경.



  나는 20번가와 42번가 사이를 수 없이 왔다갔다 했고, 그렇게 다니다 보니 어느새 맨해튼은 지도 없이도 다닐만 한 곳이 되어 있었다. 나는 맨해튼 말고 주변 지역(롱아일랜드, 브루클린, 퀸즈)도 돌아다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미국에 유학와 있는 친구를 만나러 뉴저지에도 가 보고, 롱아일랜드, 퀸즈, 브루클린의 여러 패션 아이템 샵에도 들러 좋은 패션 아이템을 찾아보거나, 거리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뉴욕은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오는 그런 곳이었다.




 

△ 42번가를 향해 가는 길(왼쪽)과 42번가 주변(오른쪽)


△ 차이나타운 관광 안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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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좋아할 수 밖에. I♥NY (1) - New York City, NY(U.S.A)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4. 4. 25.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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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술, 미술관 그리고 예술.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목적에 따라 여행 장소가 정해지기도 한다. 가령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 산자락을 트레킹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네팔의 포카라로 향할 것이고, 유럽 이곳 저곳을 누비며 중세 유럽의 흔적을 느끼고 싶은 사람이라면 유럽 배낭 여행을 떠날 것이다. 저렴한 여행 경비로 다양한 먹거리와 놀거리를 찾는 사람은 동남아로 떠날 것이고, 홍콩으로 떠나는 사람은 쇼핑을 할 생각에 가슴 부풀어 있을 것이다. 이처럼 여행의 목적지는 그 여행의 성격과 많은 연관성을 가지게 된다.


  일반적으로 유럽 여행을 하면서 가장 많이 가게 되는 곳 중 하나가 박물관 혹은 미술관이다. 특히, 유럽에 있는 유명 미술관의 경우는 항상 많은 사람들로 북적댄다. 중세시대 뿐만 아니라 근대의 유명한 화가의 생가를 비롯해서 다양한 장소가 미술관으로 꾸며져있고, 그런 미술관을 둘러보기 위해서 멀리서 비행기를 타고 오거나, 기차를 타는 것은 흔한 일이다. 영국의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 테이트모던(Tate Mordern), 프랑스의 오르세 미술관(Orsay Museum), 로댕 미술관, 피카소 미술관, 네덜란드의 반 고흐 미술관 등 유럽에 위치한 많은 유명 미술관들은 항상 많은 관광객들로 붐빈다. 중,고등학교 시절 교과서에서 보았던 그림들을 이들 미술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은 유럽의 유명 미술관을 찾는 사람에게 두 배의 기쁨을 선사해 준다.

△ 뉴욕 현대 미술관(The Museum of Modern Art, MoMA)은 세계 3대 현대 미술관 중 하나이다.

  미술, 예술에 대한 여행자들의 갈망은 어디에서 부터 비롯된 것일까?[물론 모든 여행자가 미술관에 대한 갈망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외국의 유명 미술관에 있는 작품들을 자신의 나라(우리나라)에서 우연히 감상할 기회가 생겼을 때, 그것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여행지에서 지불하는 대가의 몇 배를 치루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갈망의 근원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을 수도 있다. 또 다른 이유로는, 여행자들은 여행에서 여유를 만끽하기 위해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기도 하고, 잘 정돈되고 쾌적한[미술관이나 박물관은 다른 장소들에 비해서 비교적 쾌적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 환경 속에서 시간을 보내기를 원하기 때문에 미술관을 갈망하는 것일 수도 있다. 물론 미술이나 예술에 대한 갈망의 가장 근본적인 근원지는 여행자 개인이 가진 다양한 미술 작품에 대한 관심이 되겠지만, 여행자들이 들고 다니는 작은 책자들은 많은 지면을 할애해 가면서 여행자들에게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기 대문에, 여행자들은 그 정보들에 현혹되어 미술과 예술에 관한 갈망을 싹틔우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2. 예술과 공공질서의 파괴 사이.
  골목길을 걷다 보면 건물의 벽이나, 담장에 그려진 그림들을 볼 수 있다. 스프레이 락카로 그려진 그림들을 가리켜 누군가는 공공질서를 파괴하는 낙서라고 말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그런 것들도 예술의 하나라고 말하기도 한다. 낙서와 예술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

  예전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샤갈전이 열렸을 때,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찾아온 샤갈의 그림들을 보기 위해 서울시립미술관을 찾았다. 샤갈의 그림들은 경매에서 고가에 거래되는 것은 물론이고, 수 많은 사람들이 많은 대가를 지불해 가면서 샤갈의 그림을 보기를 원한다. 샤갈의 그림을 가리켜 '예술 작품'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거리의 담벼락에 그려진 '그래피티(Graffiti)를 보고 누군가는 예술이라고 하지만 누군가는 '낙서'라고 말한다. 예술의 관점에서 본다면 '담벼락에 그려진 그림'은 거리의 분위기를 조금 더 밝고, 아름답게 꾸며준다는 측면에서 '예술'이라고 일컬을 수 있다. 하지만 예술의 기준을 '미술관의 작품'으로 정의하는 사람의 관점에서는 거리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아무렇게나 그러져 있는 작품은 낙서인 것이다.


  공공질서를 파괴하는 낙서와 예술성 높은 미술 작품으로 평가되는 기준은 참으로 모호하다. 그 기준이 일관성 없는 편견의 산물일 뿐이라는 것은 이미 뱅크시(Banksy)라는 아티스트에 여러차례 풍자되기도 했다.

  

△ 예술일까? 공공질서의 파괴일까?


3. 세계의 수도, 뉴욕(New York City)
  뉴욕을 세계 경제, 문화의 수도라고 말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맨해튼의 월스트리트(Wall Street)는 경제의 중심지로 불린다. 그리고 뉴욕은 '문화의 중심지'라고도 불린다. 특히 현대 미술과 관련하여 60년대, 70년대 자본주의와 미술. 그리고 팝 아트. 다양한 현대 미술과 모더니즘을 넘어선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뉴욕은 많은 아티스트들의 활동지였다. 
  
  나는 세계 3대 현대 미술관 중 하나로 불리는 모마(MoMA, Museum of Mordern Art)에 가 보고 싶었다.  유럽 배낭여행을 통해서 유럽에 있는 세계 3대 현대 미술관 중 두 곳인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Tate Mordern),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센터(Centre Pompidou)센터를 둘러보았던 나로서는 세계 문화의 중심지 뉴욕의 모마(MoMA)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또한, 맨해튼 근교(브루클린, 롱아일랜드)에서 그래피티, 재즈 카페에서 재즈(Jazz) 공연, 링컨 센터에서 열리는 공연,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그 외의 다양한 뉴욕만의 특권을 즐겨야 겠다고 생각했다.

 

△ 링컨센터(왼쪽)과 자유의여신상 내부 전시관(오른쪽)


4. MoMA, 그리고 MoMA PS1

  우리는 편지를 쓴 뒤, 중간에 빠뜨린 부분이나 본문에 적지 않은 중요한 말은 편지의 끝에 P.S(추신 혹은 덧)라는 말과 함께 간단히 적으면서 편지를 마무리 할 때가 있다. 뉴욕 맨해튼에 있는 MoMA 본관과 롱아일랜드에 있는 MoMA PS1의 관계가 편지 본문과 추신(PS)의 관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맨해튼에 위치한 MoMA의 본관엔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깔끔한 내부와 그 안에 어울리는 작품들. 미술관을 탐험하며 돌아다니는 몇 시간 동안 나의 감정과 마음, 그리고 나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는 작품들. 오디오 가이드와 함께 하는 모마 여행은 나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모마는 다양한 섹션에서 예술의 다양성을 보여주었고, 많은 사람들의 휴식처이자, 눈을 즐겁게 해 주며, 감성을 키워주는 공간이었다.

△ 'MoMA'의 다양한 작품들.


   롱아일랜드에 있는 MoMA PS1의 입장료는 무료였다[MoMA의 입장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 한해서 무료입장]. 무료라고 하지 않아도, PS1은 MoMA보다 훨씬 작은 규모의 미술관이었기 때문에 입장료가 절반이 채 되지 않았다. PS1은 설치 미술을 위주로 꾸며진 공간이었다. 나는 팝 아트와 설치미술에 상당한 흥미가 있었기 때문에, 느낌은 달랐지만 모마에서 느꼈던 것 이상의 만족을 얻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학교와 비슷한 같은 구조로 되어 있는 미술관은 외곽 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PS1의 방문객은 나를 포함해서 다섯 명이었다. 그 곳에선 미술 강의도 이루어 지고 있었다[세미나 실에서 1:1 또는 2:1 강의를 하고 있었다]. 각 방마다 안내원을 겸한 감시자들이 나의 행동을 주시했다. 방문자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미술 작품을 감상하듯이 나의 행동 하나하나를 감상햇다.

△ 롱아일랜드에 있는, MoMA PS1


  미디어 아트의 영상을 보고, 영상이 말하고 있는 것을 생각했다. 독특한 아이디어로 설치된 작품들을 보면서 감탄하며, 다양한 각도에서 작품을 바라보면서 몸을 이용해서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웠다. 1층 복도에서는 카페테리아에서 흘러나온 여자들의 목소리로 가득찼다. 미술관에 근무하는 여직원들은 카페테리아에서 점심을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나는 그녀들의 목소리를 미술관 바닥에 그대로 흘려 놓은 채 미술관을 빠져나왔다.

△ MoMA PS1의 작품


5. 그래피티.
  MoMA PS1을 빠져 나와, 근처 건물 벽을 가득 메우고 있던 그래피티를 구경했다. 그래피티 스쿨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빽빽하게 그려진 그래피티들. 보기 좋게 잘 꾸며진 건물이었다. 나는 세계 각국의 골목을 거닐면서 그래피티 사진을 많이 찍었던 나 였지만, 뉴욕의 그래피티들이 작품성이 가장 뛰어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 그래피티


6. 구겐하임 미술관
  언젠가 책에서 본 적 있는 건물 모양이었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독특한 건물 모양으로 유명한 미술관이었다. 구겐하임 미술관. 건물의 중간이 뻥 뚫려서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빛이 건물 내부로 흘러 들어왔다. 채광이 잘 되었고 분위기는 독특했다. 중앙 홀에서 남녀 한 쌍이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엇다. 행위예술. 천천히, 천천히, 서로를 애무하며 키스를 하는 퍼포먼스였다. 아침 일찍 방문한 구겐하임 미술관엔 사람이 얼마 없었다. 그들은 천천히 움직이며 포퍼먼스를 계속 했다. 그리고 몇 시간 동안 작품을 감상하며 꽤 오랜 시간을 보낸 뒤, 아래쪽을 바라보았을 때도 퍼포먼스는 계속되고 있었다. 제법 많은 학생들이 미술관을 방문 중이었고, 퍼포먼스를 하는 주변에는 사람들이 앉아서 그들의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예술이란!

  유치원생, 초등학생처럼 보이는 학생들이 체험 학습을 하는 듯 했다. 미술관에 방문한 사람들을 상대로 여러가지 질문을 하고 퀴즈를 푸는 활동을 하는 듯 했다. 많은 학생들이 미술관을 방문한 다른 사람들에게 달려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움을 요청했다. 물론, 나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 구겐하임 미술관 외관(왼쪽), 구겐하임 미술관 미술관의 퍼포먼스(오른쪽)


7. 거리 곳곳의 작품들.
  뉴욕 거리 곳곳에는 다양한 예술 작품들이 많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간혹 대기업의 건물 입구나 큰 건물의 입구에 설치 미술 작품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지만, 뉴욕의 거리에는 거리 곳곳에 많은 작품들이 산재해 있었다. 나는 9.11테러로 무너져 내린 세계 무역 센터 자리를 오가며 근처 벤치에 앉아 있는 동상을 보았고, 큐브를 보기도 했고, 그 외에 다양한 작품들을 거리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뉴욕은 도시 자체가 미술관이었다. 도시 곳곳에 현대 미술의 흔적이 보였다. 미술관이든 거리든 어디든지 예술이 있었다. 뉴욕은 그런 곳이었다.

  

△ 월드 트레이드 센터(WTC)와 거리 곳곳의 예술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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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뉴욕(NewYork, NY) - 폭설과 비행 취소. 비행기 비지니스석을 타라고?! (NYC, USA)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1. 7. 15.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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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연, 재해(災害)

  기술의 발달하면서 인간 문명은 점점 더 나은 생활을 추구하면서 발전을 하고 있다. 좀 더 편안한 삶을 위해서, 사회 곳곳에서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우리들은 그 노력의 결과물을 통해서 더 편리한 삶을 살아간다. 옛날[수백년 전]에는 인공위성이라는 것이 없었고, TV도 없었으며, 라디오라는 것도 없었다. 사람들은 날씨를 예측 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고 여기던 시대가 있었으며[물론 아직도 날씨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 하고, 오늘 날씨는 하늘의 뜻에 따라 바뀌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날씨는 오직 하늘의 신적 존재만이 알 수 있는 것이라고 나에게 말한 적이 있다] , 혹시나 날씨를 예측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우대해 주었다. 그리고 비가 내리기를 간절히 원할 때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기우제.

  기술이 많은 발전을 이루었지만, 그 '기술'이라는 것으로 어떻게 할 수없는 것들은 무수히 많다. 그 중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바로 '날씨'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비가 내릴지 안 내릴 지 예측 할 수는 있지만, [현대의 과학 기술로는] 비가 내리지 않는 곳에 비를 내리도록 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눈이 내릴지 안 내릴지, 얼마나 내릴지 예측은 가능하지만 눈을 많이 내리게 하거나, 내리지 않도록 막을 수는 없다. 가끔은, 그 예측마저도 틀릴 경우가 많다. 이렇듯 자연 현상에 대한 것은 아직도 인간의 기술로는 제어 할 수 없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다. 옛날[우리가 원시라고 부르는 시대] 사람들은 자연에 순응하면서 살아왔다. 산 비탈에 자연과 조화 되도록 집을 짓고, 농사를 짓고 살아왔다. 날씨가 추워지면, 날씨가 따뜻한 곳으로 옮겨 가며 살기도 했다. 인간 문명이 발달하면서 인간은 자연의 일부가 되기 보다는 독립된 존재가 되려 했다. 살기 좋다고 생각 되는 곳을 개발하여, 인간이 살기 편한 곳으로 만들었다.

  현대 사회는, 인간에게 조금 더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제공하기 위해 자연을 지배하려고 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자연 현상을 통제하려 하지만 결국은 자연에게 굴복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부정하려 하고 있다. 우리가 자연 현상 때문에, 우리의 생활이 불편을 겪는다면, 그 때는 그냥 시간을 두고 지켜 보며, 자연과 하나 되는 길을 찾는게 더 옳은 길일지도 모르겠다. 

  자연 현상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서 무언가를 하다가 자연과 충돌이 일어났을 때 재해라고 부르는게 아닐까.



2. 뉴스(NEWS), 전광판의 붉은 글씨.

  비가 많이 오는 장마 철이면, 뉴스에는 장마로 인한 각종 피해 상황을 알리는 뉴스들이 많이 보인다. 철로가 유실되어 기차가 다닐 수 없게 되어 많은 불편을 겪기도 한다. 많은 비로 인해서, 산사태가 일어나서 그 도로가 유실되기도 하고, 사고가 나기도 한다. 심지어는 산 아래의 가옥(家屋)이 매몰되는 일을 겪기도 한다. 물론, 그럴 경우에는 사람들이 다치거나, 사망하기도 한다. 눈이 많이 내려 하우스가 붕괴되어 농민들이 피해를 입기도 하고, 가건물의 천장이 붕괴도었다는 소식을 접하기도 한다.
  
  비가 많이 내리면[아주 많이], 가끔 비행기가 지연되거나 취소되기도 한다. 짙은 안개가 끼면, 비행기는 취소되기도 하고 지연되기도 한다., 눈이 많이 내리면 비행기는 당연히 비행일정이 취소된다. 공항의 비행일정을 알리는 모니터에는 Cancel 이라는 글자가 빨간 색으로 찍힌다. 가끔은 기차역에서도, 사고로 인해서 기차의 운행이 지연되거나 취소되면, 빨간색 글씨를 보게 된다.

  우리는 살면서, 빨간 글씨를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붉은색 글씨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정보들은 대부분, 우리에게 유익하지 않은 정보들이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빨간색 글씨는 우리의 불안샘을 자극한다.



3.  90년 만의 폭설, 워싱턴(Wasington)

  자메이카 킹스톤(Kingston, 자메이카의 수도)를 떠난 JetBlue air사(社)의 보잉기는 카리브해를 지나고, 마이애미(Maiami)상공을 지나고 있었다. 창 밖에는 잿빛 구름들이 빼곡히 들어차있었다. 저 구름들이 땅을 향해서 눈을 뿌리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 뉴스에서 얼핏 본 기사들의 제목이 생각 났다. "미국 동부 90년 만의 폭설"

  좌석 앞에 설치된 모니터에서 비행기의 항로가 보였다. 나는 지금 워싱턴 상공을 지나고 있었고, 이제 곧 뉴욕이 나올 터였다. 워싱턴을 지나자, 내 발 아래 있던 구름들이 사라졌고, 쌀쌀한 모습의 도시가 조그마하게 보였다. 뉴욕엔 눈이 내리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하늘에서 보는 땅은 얼어 붙은 듯이 보였다.

  자메이카 킹스톤의 여름과 같이 푹푹 찌던 날씨, 그 곳에서 4시간 떨어진 뉴욕은 차가운 겨울이 뒤덮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약간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진 겨울 옷이라곤 바람막이 하나 밖에 없는데, 하늘에서 본 뉴욕은 차가운 모습으로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비행기는 JFK 공항에 승객들을 토해냈고, 나는 공항의 건물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공항 건물 안에 갇혀 있는 공기들은 따뜻했다. 햇살이 유리를 통과해서 내 몸을 비추고 있었다. 나는 입국 카드를 작성하고, 입국 심사대에서 약간의 농담을 주고 받은 후, 터미널을 빠져 나왔다.

  차가운 뉴욕의 공기 내 몸을 엄습 했지만, 뉴욕의 날씨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겨울에 볼 수 있는, 겨울 특유의 저녁 노을이 도시를 비추고 있었고, 도시를 지나 나에게 까지 뻗어 있었다. 뉴욕의 공기는 겨울의 공기 답게 차가웠지만, 상쾌했다.



뉴욕 JFK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뉴욕의 날씨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겨울 특유의 저녁노을이 비치고 있었고, 공기는 겨울의 공기답게 차갑지만 상쾌했다.



4. News, Heavy Show.

  그는 뉴스를 봤다. 워싱턴, 뉴저지를 비롯한 동남부 지방 수십년 만의 폭설. 워싱턴 90년 만의 폭설. 그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뉴욕은 눈이 내리지 않았다. 뉴욕의 거리에는 오래 전에 쌓인, 녹다 만 눈의 흔적이 약간 있었을 뿐이었다. 그는 얼마 후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혹시나 폭설로 비행기가 취소될까봐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하지만, 그건 나중의 일이니까 괜찮아라고 자위했다.

  연일 뉴스에서는 폭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는 뉴욕에서의 생활을 즐기면서도, 한켠으로는 신경이 쓰였다. 설마, 뉴욕에는 눈이 안오겠지. 조마조마 했다. 뉴욕에는 제발, 눈이 오지 마라...라고 생각을 했다.

  뉴욕의 날씨는 추웠지만, 가끔은 잿빛 구름들이 뉴욕의 하늘을 뒤덮었지만 눈이 내리지는 않았다. 잿빛 구름이 하늘을 뒤덮은 다음날은 파란 하늘이 뉴욕의 하늘을 감싸고 있었다. 그는 뉴욕에서,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5. 뉴욕, 떠나기 하루 전.

  나는 뉴욕을 떠나기 하루 전, 유학중인 친구를 만났다. 그날따라 유독 날씨가 따뜻했다. 뉴욕에 온 날 중 가장 따뜻한 날씨였다. 포근하다고 느껴질 정도도로 따뜻한 날, 나는 친구를 만난 것이었다.
 오늘은 날씨가 따뜻해서 놀기 좋은 날이네.내가 말했다. 원래 눈오기 전에 날씨가 따뜻하잖아. 오늘 밤부터 눈이 많이 온다던데, 그래서 학교도 내일 쉬어. 내일 수업 다 휴강이야. 친구가 말했다. 헐, 진짜? 설마. 하늘에 구름도 얼마 없는데. 나 내일 비행기 타야 되는데, 눈오면 비행기 안뜨잖아. 내가 말했다.

  나는, 눈이 오지 않길 바랐다. 내일은 비행기를 타야하는 날이었다. 눈이 와도, 조금만 왔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일단 LA까지 가는 비행기니까, 국내선이니까, 뜨겠지.라고 생각했다.



6. 뉴욕을 떠나는 날.

  그는 꿈을 꿨다. 그리 유쾌한 꿈은 아나었다. 뒤숭숭한- 그런 꿈이었다. 불안했다. 어두 컴컴한 방을 빠져나와, 주방에서 커피한잔과 머핀을 먹고, 창 밖을 바라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크게 우려할만한 수준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7. 꿈 이야기.

  꿈에서, 내가 어딘가[정확한 기억은 없다]에서 빠져나가려고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나를 빠져나가지 못하게 했다. 나는 울면서 빠져그 곳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서 발버둥을 쳤다. 그렇게 빠져나가려고 노력을 한 긑에, 결국 마지막에는 그 곳을 힙겹게 탈출했고, 그와 동시에 잠에서 깨어 났다.



8. 다시, 뉴욕을 떠나는 날.

  시간이 지날 수록 하늘에서 뿌리는 눈의 양은 많아지고 있었다. 그는 오전에 뉴욕 App store에 갈 계획이었기에, 체크아웃(Check out)을 하고 앱스토어로 떠났다. 그가 그 곳까지 갈 때는 눈이 많이 오지 않았는데, 그 안에서 구경을 하고 물건을 사고 나오자, 눈보라가 뉴욕 시내를 휘감고 있었다. 엄청난 눈발이 몰아치고 있었던 것이었다.

  불안한 마음이 불안샘을 진동시키고 있었다. 사실, 그는 시간이 지나면 눈이 그치겠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시간이 지나자 눈과 함께 엄청난 바람이 불어댔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리고 모니터 화면에 찍힌 검은 점들은 Heavy snow가 아닌 Snow Storm이라는 모양으로 그의 눈이 비추어 졌다.
 
  그는 App store에 전시된 MAC book 으로 JFK공항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설마 설마 하면서, 그는 비행 스케쥴을 확인 했다. 모든 비행기의 상태가 Cancel로 표시되어 있었다. 그 중에는 그가 타고가야할 Unitied Airline의 비행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그 순간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고, 멍하니 화면만을 응시하며 입을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쇼핑을 더 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숙소로 돌아가서 가방을 들고, 공항으로 떠났다. 일단 공항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을 했다. 공항으로 가는 길은 온통 눈으로 뒤덮여 있었고,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다. 공항으로 가는 전철 안에서 쏟아지는 눈을 보면서 생각했다.

'지금껏 살면서 눈이 이렇게 많이 오는 건 처음봐.'


공항가는 길,
거리는 온통 눈으로 뒤덮여 있었고, 눈보라가 몰아쳤다. 공항으로 가는 전철안에서 쏟아지는 눈을 보면서 생각했다.
'지금 껏 살면서 눈이 이렇게 많이 오는걸 본건 처음이야'라고.



9. JFK 공항 제7 터미널.

  United Airline의 데스크가 위치한 7터미널로 갔다. NY-LA 비행기. 그리고 LA에서 대한항공으로 갈아타도록 되어 있었지만, 비행기는 취소되어 있었다. 데스크 직원에게 말했다. 직원은 나에게 다음 비행편을 타도록 해준다고 했는데, 자리가 있는 비행기는 3일 뒤에 있는 비행기였다. 절망.이 나를 엄습했다.

  첫 번째 보딩패스.
  자리가 없다는 말만을 되풀이 하며, 직원은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녀는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를 조회중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나에게 티켓 한 장을 주었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였다. DELTA 항공 카운터로 가 보라는 말. 나는 티켓을 바라보았다.

  4일 뒤, 뉴욕에서 인천으로 날아가는 델타항공 티켓이었다. 울며 겨자먹기로 티켓을 받아들고, 델타항공 카운터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만히 서서 티켓을 보니, 탑승자 이름이 내 이름이 아니었다. MR.JIWOONG/YANG라고 적힌 티켓이었다. 오타인가?라는 생각을 했지만, 비행기 티켓은 이름이 다르면 탑승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여권의 이름과 완전 다른 이름이었다.

  나는 다시 카운터로 갔다. 그리고 두번째 보팅패스.
 티켓의 이름이 내 여권의 이름과 다르다고 말하니, 여권을 달라고 했다. 여권을 보며 나에게 물었다. 누가 발권을 해줬냐는 말에, 저기 저 여자라고 말하며 가리켰다. 그리고 나서 말도 안되는 티켓이라며, 새로운 티켓을 한 장 발권해 준다고 했다. 그러면서 또 한마디 덧붙였다.
  넌 원래 LA로 가서 갈아타기로 되어 있었으니, DELTA항공 인천으로 바로가는 티켓은 이용할 수 없다. 그래서 취소를 했어.
 나는 유나이티드에어리인의 데스크에서 또 다시 한 시간동안 서 있었다. 결론은 비행기가 없다는 것이었다. 대한항공 LA지사와 전화통화를 번갈아하면서 겨우 자리를 구한 것은 5일 뒤의 비행기였다. NY-LA구간 비행티켓이 없는 날엔 LA-서울 구간의 자리가 있었고, LA-서울의 자리가 없을 땐, NY-LA의 자리가 없는 식이었다. 둘 다 자리가 있는 날은 5일 뒤였다.

  대한항공측에서 전화상으로 나에게 말했다. 폭설로 인해서 비행기를 못타서 어쩔수 없이 날짜를 변경했다는 서류를 챙기라고 했고, 그 서류를 챙기고 보딩패스를 받았다. 나에게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보딩 패스를 받고 보니, 뭔가 이상했다. 아까 이야기 할 때의 비행 날짜가 아니라, 뉴욕에서 인천으로 다이렉트로가는 비행기의 보딩패스였다. 이건 뭐지??

  마침, 유나이티드 데스크에서 근무하는 한국인이 나에게 와서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설명해 주었는데, 내가 보딩패스가 좀 이상한 것 같다며 보여주었다.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이건 내일 밤 뉴욕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표인데, 제1 터미널 대한항공 카운터에가서 문읠을 해 보세요.




10. 제1 터미널. 대한항공 카운터.

  그는 어이가 없었다. 1시간 넘게, 유나이티드항공사 직원과 대한항공 지원과 이야기 한 건, 뉴욕-LA, LA-서울의 비행기 표인데, 결과적으로 그가 받은 보딩패스는 뉴욕-서울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찌됐든, 제1터 터미널로 갔다.

  대한항공 카운터,
 폭설이 계속되고 있었지만, 새벽 1시에 출발하는 대한항공 KE086기는 정시 출발이라고 모니터가 알려주고 있었다. 그는 카운터로 가서 물어보았다. 이 티켓 어떻게 되는 건가요?

  대한항공 카운터에서 대답했다. 이 티켓으로는 비행기를 탑승할 수 없다. 당신이 끊은 티켓보다 이 비행기가 더 비싼 것이기 때문에 오버차지를 해야한다. 그리고 좌석도 비지니스석이다. 만약 당신이 오버치지를 하지 않고 타고 가고 싶다면, 유나이티드항공사로가서 티켓을 바꿔 달라고 해서 서류를 다시 챙겨와라.
  [하지만 그는, 서류를 다시 챙겨오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그가 다른 비행기 티켓을 달라고 했을 때, 다른 루트로 가는 티켓을 제공할 수 없다는 말을 그들은 되풀이 했었기 때문이다.]

 그는 물었다. 오버차지가 얼마야? 
 295달러를 더 내면, 좌석을 마련해주겠다고 했다. 
 그는 생각을 했다. 유나이티도항공사로 가서 땡깡을 부려볼까, 아니면 5일을 더 기다릴까, 아니면 295달러를 더 낼까. 그는 갑자기, 그가 가진 티켓이 비지니스석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쏠렸다.

  295달러를 더 내고 비행기를 타게 된다면, 비지니스석을 타고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생각했다. - 내가 언제 비지니스석을 타보겠어?- 30초 정도 생각하고, 그는 결정했다. 오버차지를 내고, 한국으로 가야겠어.




11. 비행기는 떠난다.

  나는 비지니스석을 타지 못했다. 역시,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 했다. 항공사는 조금이라도 자기들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새벽 1시.
 눈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비행기에는 시동이 걸렸다. 바깥에서는 비행기에 쌓인 눈을 제거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 분주함을 기다리는데 1시간이 넘게 걸리고 있었다.

  어느새, 눈발은 사그라 들었고, 세찬 바람만이 거대한 비행기 동체를 흔들어 댓다. 맑은 날, 무거운 동체를 하늘로 끌어 올려 수천km를 날아와도 힘들어 하지 않던 엔진도, 매서운 눈보라가 지나간 뒤에는 힘겨워 하는 것 같았다. 

  힘겨워 하는 엔진과 세찬 바람에 떨고 있는 동체의 안에서는 안도의 한숨에서 나온 입금이 공기를 덥히고 있었다. 비행기는 JFK활주로를 빠르게 달려갔고, 창문 저 아래로, 맨해튼의 밤이 보였다. 바둑판 같은 모습. 비행기는 약간 흔들 거렸지만, 이윽고 높은 하늘에 자리를 잡았다.

 굿바이 뉴욕.


- 공항가는 길, 거리엔 온통 눈.


- 나중에 보딩받고나서 찍은 화면, 다음날 비행기들은 거의 On time 이되어있었다.


- 나에게 티켓을 건네준 직원...... 말이달랐다....



- 앱스토어, 들어가기전엔 눈이 많이 오지 않았다.


-


-하늘에서 본 맨해튼, 바둑판형식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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