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쿠바, 하바나 공항 - 하바나 공항과 한 꼬마.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4. 1. 27. 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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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rd Edit.


1. 여행 속 "만남".

  혼자 여행을 하는 사람이든,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하는 사람이든, 여행은 여행하는 사람에게 있어 만남의 연속이다. 특히 그 만남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혼자 여행을 하는 사람은 더 많은 만남을 경험 할 수 있다] 
  그 '만남'이라는 것이, 잠깐 스쳐가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조금 길게 이어질 수 있고, 그 만남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만남을 통해서[여행 중 누군가와의 만남]을 통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만남은 어쩌면 우리가 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고귀한 경험일 지도 모른다.



2.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그 여행 속에서 만났던 수 많은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그 만남은 여행이 끝났지만 지속되고 있을 수도 있다] 나도 많은 여행을 했고, 많은 만남이 있었다[아직은 젊은 나이-만 25세 밖에 안되었으니!-라서 더 많은 만남을 가질 수 있었는지도] 
  인도에서의 많은 사람들, 이집트에서 그리고 유럽에서의 만남, 터키의 친구들, 네팔의 연인, 시베리아 횡단열차속에서의 만남, 남미, 쿠바 등. 수 많은 사람들이 나와 만났고, 대화했고, 함께 했고,  내 카메라 렌즈속으로 들어왔고, 나 또한 가끔은 그들의 카메라 메모리에 저장되었다.
  그리고 나는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그들의 다양한 사고방식을 이해했고, 그들의 다양한 문화를 이해했고, 나 자신의 삶의 방향을 만들어 갔다. 
 
  만남 속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은 나의 추억이 되었고, 나의 스승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 어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의 재산이 되었다.



3.  쿠바 하바나(Havana)에서의 짧은 여정을 마치고, 왠지 모를 아쉬움을 남겨둔 채. 자메이카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갔다.

  쿠바에서의 일주일,
싸구려 카사(까사,casa 홈스테이)에서, 다시는 경험 하지 못 할 쿠바 사회를 간접적으로 경험했다[숙소의 영향이 컷다. 그 곳은 실제 그들이 사는 곳이었으므로] 그것은 그들의 현실, 삶이었다.[내가 머물던 집은 불법 카사로서,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못한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이었다]

나의 비행기는 케이만아일랜드(Cayman Island, 영국령의 카리브해의 섬)를 경유해서 자메이카로 가는 것이었기에[그 비행기가 가장 저렴했다. 약 215US$], 하바나 공항에서 케이만아일랜드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와 같은 비행기를 타는 것 같아보이는 한 꼬마가 나의 앞 쪽 건너편 자리에서 심심한 듯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 때 케이만아일랜드행 비행기가 대기하고 있는 게이트 앞에 있었는데, 그 앞에 그 꼬마와 삼촌뻘로 보이는 사람이 같이 있었으므로 그런 사실을 쉽게 파악 할 수 있었다.] 


4. 한 꼬마.

  한 꼬마가 하바나 공항, 케이만아일랜드행 비행기에 탑승하는 게이트 앞에 왔다. 그 꼬마는 혼자 앉아 있는 한 남자를 보았다. 검은 머리에 거무잡잡한 피부. 보통의 남자들보다는 조금 긴 머리. 그리고 보통의 남자들 보다는 조금 큰 키. 그 꼬마 여자아이는 귀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은 신기한 무언가를 보는듯한 눈빛으로 동양인 남자를 바라보았다.

 꼬마는 그의 앞자리[건너편]에서 그를 몰래 훔쳐보다가, 그가 꼬마에게로 시선을 가져가면 의자 뒤로 숨곤 했다. 그 꼬마의 삼촌뻘 되어 보이는 남자는 쿠바에서의 일정이 피곤했는지 의자 위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고, 그 꼬마는 자신과 놀아줄 상대를 찾지 못해, 심심해 하는 눈치였다.
 
  꼬마의 장난기 어린 행동이 시작되었고, 그 곳엔 숨바꼭질 하듯 긴장감이 나돌았다. 그는 카메라를 집어 들고, 카메라의 초점을 꼬마쪽을 향해서 고정시킨 채, 꼬마를 향해 셔터를 눌렀다.
 

5.                           

  나와 그 꼬마의 숨바꼭질. 나는 사실 속으로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그 꼬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얼마 후 그 꼬마의 삼촌뻘되는 사람이 잠에서 깨어났고, 우리들의 놀이는 끝이 났다. 
  꼬마를 향해 셔터를 눌러 대던 그 당시엔 몰랐지만, 그 곳을 떠난 지금 그 때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정말 재미있는 장면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쿠바 남쪽의 작은 섬들, 케이만제도로 날아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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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쿠바, 하바나 - 스타벅스 커피보다 비싼 쿠바의 밀크티.(La Habana)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1. 4. 21.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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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는 것이 힘이다. 아는 것이 돈이다!

  우리는 "아는 것이 힘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 등의 "아는 것"과 관련된 다양한 구호들을 쉽게 접한다. 그리고 실제로 아는 것이 많을 수록 살아가면서 좀 더 많은 혜택을 누리기도하고[물론 너무 많이 알아서 피곤한 경우도 가끔 있다], 부당한 대우에 대해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 할 수 있다. 그 만큼 아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여행의 경우에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어느 유적지를 갔을 때 혹은 특정한 장소에 갔을 때 그 곳에 대해서 뭔가 색다른 사실을 알고 있다면 좀 더 풍부한 여행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 외에도 우리는 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앎으로써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모르면 혜택을 전혀 못받고 지나가거나, 더 심한 경우에는 금전적인 피해를 입기도 한다.[물론 모르는 상태에서 금전적으로 지출이 있었다면 그 지출조차 불필요한 지출이었다고 생각 할 수 없지만] 대표적으로, 공공 건물이나 OO타워 등의 대형 건물, 대형 쇼핑몰, 학교나 학원 등의 장소에서 상해를 입었을 경우 그에 따른 치료비를 다 지급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사소하지만 모르기 때문에 금전적인 손해를 보는 경우가 더러 있다. 한 개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런 경우는 두 가지 손해를 입는 것이다.[신체적 그리고 금전적 손해]
 
  특히, 여행의 경우 "아는 것이 돈이다"라는 말이 제대로 먹히는 경우가 많다. 인터넷을 통해서 수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철저하게 준비해 가는 사람은 여행의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인 금전적인 부분에 있어서 상당한 절약 효과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어느 도시의 어느 호텔[혹은 호스텔, 민박]이 가격 대비 시설이 좋은가부터 시작해서 교통비를 절약 하는 방법, 그리고 저렴하면서 질 좋은 식사는 어디서 할 수 있을지 등의 정보를 찾을 수 있다.



2. 모르면 손해다.

  관광지를 가면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많다. 별 것 아닌 문제로 기분을 상하게 되는 때도 많다. 휴가철이나 연휴가 끼어있는 주말 등의 어디론가 짧은 여행을 떠나기 좋을 때 우리는 연인, 친구 혹은 가족끼리 짧은 여행을 떠나게 될 경우가 많다. 그 여행지의 장사꾼들은 다른 지방에서 들뜬 마음으로 찾아온 사람들에게 '바가지' 요금을 부과하기 일쑤다.[희소성과 관광지라는 특수성을 강조하면서 부당한 요금을 부과하는 장사꾼들은 어디에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분명 내가 사는 동네에는 천원 하던 물건이 관광지에서는 2천원, 3천원으로 그 가치가 올라가 있는 경우를 자주 발견 할 수 있다. 우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어쩔 수 없이 돈을 지불하는 경우도 많다.

  한 외국인을 보았다. 다른 나라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특히 유럽이나, 아메리카 대륙] 포장마차에서 어묵 꼬치를 먹고 있었다. 한국 사람들은 하나에 5백원에 먹고 돈을 지불했는데, 그들은 하나에 천원을 지불하고 있었다. 근본적인 잘못은 그 장사꾼에게 있지만, 만약 그 외국인들이 다른 관광객이나 인터넷 정보를 통해서 가격 정보를 알았다거나, 차림표[혹은 가격표]를 읽을 줄 알았다거나, 누군가가 진짜 가격을 말해 줬다면 그들은 부당한 가격을 지불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르는게 병이 되어 부당한 대우를 당할 때가 많다.



3. 1CUC = 1Peso?

  베네수엘라를 떠난 비행기가 하바나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카라카스 쿠바나에어 사무실에서 구입한 쿠바 비자종이에 스탬프를 찍고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공항 로비로 빠져나왔다. 내가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환전소였다. 예상대로 형편없는 환율이었다.[쿠바는 US$에 대한 환율이 상당히 나쁘다. 반면 CA$의 환율은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울며 겨자먹기로 US$를 환전했다. 약 1.3달러 : 1CUC 였다. 나에게는 1CUC가 한국돈으로 1500원 가량 되는 셈이었다.[나중에 알게 된 한국 사람들은 캐나다 달러를 가져왔는데 1CUC에 천원정도의 환전비율이라고 했다.]

  쿠바에 오기 전, 호주에 머물 때 쿠바를 여행 갔다온 사람이 나에게 해준 말이 있었다. 쿠바는 여행자가 사용하는 화폐와 현지인이 사용하는 화폐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행자들이 환전을 하게 되면 여행자 전용 화폐인 1CUC(쿡)을 받아서 사용하게 된다고 했다. 나는 대략 쿠바에서 쓸 금액을 계산해서 조금 여유 있게 환전을 하고, 택시를 잡아타고 쿠바 시내로 향했다. 물론 택시비도 CUC으로 지불을 했고, 가자마자 잡은 숙소에서도 CUC로 방값을 지불하기로 했다.

  하루에 10CUC에 묵기로 한 불법 까사에 내 짐을 놓아두고, 나는 하바나의 중심가로 향했다. 해가 스멀스멀 멕시코만 저편으로 넘어가고 있었고, 어둠이 하바나를 잠식해갈 즈음이었다. 나는 배가 물가가 싸다고 들은 쿠바, 하바나의 식당에서 배를 채워볼 요량으로 식당가를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식당의 메뉴판, 그것도 모자라 길거리에 파는 핫도그나 샌드위치 조차도 내가 생각 할 때 터무니 없이 비싸보였다. 핫도그가 10peso 에서 15peso. 작은 아이스크림 콘이 5peso 였다. 식당의 메뉴는 25peso 부터 30peso 정도의 가격이 책정되어 있었다. 나는 혼란 스러웠다. '쿠바 사람들은 모두 엄청난 부자인가?'라는 의문과 함께 내 머리는 공황속으로 빠져들었고, 배가 고팠지만 나는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 까사의 삐걱거리는 침대위에서 내 지친몸을 달래야 했다.

  분명히 공항에서 환전한 CUC이라 불리는 돈에도 화폐 단위는 Peso라고 적혀 있었다. 1CUC이라 불렸지만 지폐에 적혀 있는 것은 1peso, 5CUC 은 5peso라고 적혀 있었다. 그렇게 치면, 길거리에 파는, 고깃집[갈비집 같은 곳]에서 무료로 디저트로 퍼 먹는 아이스 크림 하나가 5peso니까 5peso = 5CUC. 1CUC = 약 1500원. 아이스크림 하나가 7천원이 넘는 셈이었다. 

  살인적인 물가에 나는 굶어 죽을 수 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나는 세상이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아픈 머리를 베게속에 파묻었다.



4. 갑부들의 나라 쿠바?

  그가 눈을 떳을 때 싸구려 까사엔 아무도 없었다. 유리 없는 창문 밖은 그늘져 있었고, 그늘의 안쪽에서 새 소리만이 창틀을 넘어 그의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그는 아직도 어제 엄청난 음식가격의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상태였다. 그 엄청난 가격들은 그를 공황 상태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다음 비행까지는 5일이 남아 있었는데, 그 기간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는 론니플래닛 캐리비안 아일랜드(Lonely Planet Caribbean islands)의 Cuba 부분을 펼쳤다. 일단 먹는 건 둘째치고, 하바나에 왔으니 길을 걸으며 하바나의 공기라도 마셔볼 심산이었다. 쿠바의 일반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 건물. 복도 계단엔 전선들이 거미줄 처럼 얽혀 있었다. 옆 집의 TV소리, 아이 우는 소리, 그리고 새가 밥을 달라고 소리지르는 것 까지 바로 옆 에서 말하는 것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방음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집을 얼른 빠져 나왔다.

  그의 걸음엔 힘이 없었다. 먹은 것도 없었다. 까삐똘리오로 향했다. 숙소에서 비교적 가깝고, 많은 단체 관광객들이 버스를 타고 우르르 몰려와 사진을 찍고, 우르르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는 까삐똘리오 계단에 앉아 책을 읽으며 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까삐똘리오 길 건너편을 거닐고 있는 수 많은 쿠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수 많은 작은 가게들을 바라보았다. 수 많은 사람들이 가게에서 뭔가를 사먹고, 길을 떠나고 있었고, 거기에 발맞춰 많은 음식들을 또 다시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는 또 한번 생각 했다. 외국인과 내국인의 차별이 어느 정도 존재한다더니, 정말 여기는 외국인을 전부 초갑부로 알고 있는 건가? 길 건너편 핫도그를 파는 가게에서 소시지에 야채가 곁들여진 핫도그를 먹고 싶었지만, 가격은 12peso 였다. 핫도그 하나에 1만 8000원을 주고 사먹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5. 스타벅스 커피보다 비싼 구멍가게 밀크티 한 잔.

  까삐똘리오의 계단에 앉아 계속 궁상만 떨고 있을 순 없었다. 까삐똘리오 앞에서 사진만 찍고 사라지는 단체 관광객들을 구경하는 것도 신물이 났다. 어느 정도 배고픔이 사그라 든 것 같아 나는 발걸음을 구 시가지[쿠바의 낡은 건물들이 모여 있는 곳]로 옮겼다. 그리고 골목 골목을 거닐면서 쿠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이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만큼의 돈을 지불하면서 살아가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내가 가진 지식으로 그들의 물가를 이해하기에는 뭔가 역부족이었다.

  거리를 걷다가 어느 작은 식당 같은 곳 앞에서 사람들 몇 몇이 모여서 밀크티를 마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자 인도의 짜이가 미치도록 그리워 졌고, 나는 밀크티의 가격을 확인해 보았다. 3peso. 옆에 있던 상자엔 주먹만한 빵이 쌓여 있었는데, 밀크티와 빵 하나를 먹으면 금상첨화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밀크티 한 잔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 짧은 스페인어로 말했다. 이 빵 하나만 먹어도 되죠? 그리고 바로 빵을 하나 집어 들어서 밀크티와 함께 마셨다.

  계산을 해 봤다.3peso. 1500x3 = 4500원. 나는 지금 4500원 짜리 밀크티를 마시고 있다. 나는 지금 4500원 짜리 밀크티를 마시고 있다. 나는 지금 4500원 짜리 밀크티를 마시고 있다. 라고 누군가 내 머릿속에서 자꾸 소리치고 있었다. 그랬다. 인도의 달콤한 짜이는 1잔에 100원도 안했는데, 쿠바의 밀크티는 적어도 나한테는 한 잔에 4500원 이었다. 스타벅스 커피보다 비싸다.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나는 내 나이보다 조금 더 있어보이는 주인에게 5peso라고 적힌 5CUC짜리 지폐를 내밀었다. 그러자 그는 지금 잔돈이 없으니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면서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잠시 뒤 나타나서 2peso를 거슬러 주었다. 1peso 라고 적힌 지폐 두 장. 2CUC이었다.
  나는 생각했다.아까전에도 사람들이 많이 와서 사 먹던데, 왜 2peso를 바꾸기 위해 다른 가게 까지 갔다온걸까? 나는 그런 의문만을 남긴 채 그 곳에 모여있던 사람들의 시선을 등 뒤로 받으며 다시 까삐똘리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까삐똘리오로 오니 또 다시 배가 고팠다. 점심때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런데, 까삐똘리오 앞에 못 보던 장사꾼이 둘 생겼다. 빵 사이에 그냥 소시지만 꽂아서 파는 핫도그를 파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들 주위를 스쳐 지나가는 관광객인척 하면서 가격을 보았다. 내 눈이 휘동그래졌다. 핫도그 하나에 0.5CUC. 나에겐 혁명이었다. 어쩜 이럴수가 있지?

  나는 그 날 그 곳에서 식사를 다 해결했고, 마운틴 듀까지 1CUC를 지불하고 사 먹었다. 태양이 스믈스믈 낡은 건물들 아래로 모습을 감출 때 즈음 나는 나의 보금자리 불법 까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6. 불법 까사 주인에게 들은 이야기.

  그가 까사로 돌아오니, 이미 주인 아줌마가 먼저와서 작은 흑백 TV로 공연 DVD를 보고 있었다. 그에게 친한척을 하면서 옆에 앉으라면서 같이 보자고 했다. 그도 음악을 좋아하는 편이라 흥미있게 보고 있었는데, 그녀가 말했다. 니가 하루에 10CUC을 더 내면 아침과 저녁을 내가 해 주겠다. 그는 생각 해 보았다. 사실 좀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10CUC이라는 돈이 좀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싫다고 했더니 5CUC으로 가격을 내려서 같은 제안을 했다. 사실 숙소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던 터라 제안을 거절했는데, 여러가지 옵션을 더 제시하자 그의 마음이 조금 동요 되었다. 그리고 그는 쿠바의 살인적인 물가에 충격을 받고 있던 터라, 알았다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너무 기뻐하며, 자기가 잘하는 요리로 해서 대접하겠다며 이틀치 돈을 미리 달라고 했다.  그는 뭔가 찝찝했지만, 사기칠 사람같아 보이지는 않았서 그렇게 했다.

  그리고 스페인어 사전을 찾아가며 대화한 끝에 그는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환전소에 가면 1CUC을 24peso로 바꿔 준다는 말이었다. 그는 그건 쿠바나(쿠바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냐? 라고 되물었으나, 아무나 CUC을 가져가면 Peso로 바꿔준다는 거였다. 1CUC에 24Peso. 그러면서 필요하면 자기가 지금 가서 환전해 줄 수 있다고 했다. 아는 사람이 환전소에서 일한다면서 엄청난 호의를 베풀기 시작했다.

  그는 생각 해 보았다. 그랬다. 3peso 짜리 밀크티는 3CUC이 아닌 진짜 쿠바돈 3peso 였다. 그는 3peso만 지불하면 될 밀크티 가격에 72peso[3x24peso]를 지불 했던 것이다. 그는 또 한번 충격에 휩싸였다. 낮에 든건 없었지만 배가 고팠기에 맛있게 먹었던 핫도그도 알고보니 12peso짜리 핫도그 였던 것이다. 12peso짜리 핫도그는 길 건너에서는 야채까지 곁들여져 있었다. 식당 메뉴의 24peso도 실상은 1CUC이면 되는 것이었다.

  그 때부터 그는 쿠바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 그랬다. 까사의 하루 방값이 10CUC인데, 핫도그 하나가 12peso일리 없었다. 그는 그녀에게 20CUC를 주며, peso로 바꿔 달라고 했다. 그리고 잠시 뒤 그녀는 480peso를 그에게 가져다 주었다.



7. 여행에선 돈을 쓸 수록 배움이 크다?

  나는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쿠바가 정말 좋다. 물가가 싸다라고 다른 이에게 들었는데, 사실 나는 그 말을 이해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날 밤, 불법 싸구려 까사의 아줌마는 나에게 진실을 알게 해 주었다. 하지만, 내가 낮에 그런 일을 겪었다고는 말하지 못했다. 그건 지금 하나의 사건으로 남아 있다.

  밀크티 한 잔이 스타벅스 커피 보다 비쌌던 쿠바에서의 이야기.


- 노을의 까삐똘리오


-까삐똘리오 앞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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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삐똘리오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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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운동장


- 0.5페소 짜리 버스. 정말 좋다. 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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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 하바나 시티.


- 골목을 거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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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저씨


- 콘 아이스크림이 맛있던 가게의 형제



-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 풍의 음악이 울려퍼지던 재즈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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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쪽 돈이 CUC 아래 쪽 돈이 쿠바나 peso
CUC의 가치가 24배가 높다....돈도 더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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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 자메이카, 음악과 함께 하는 삶. Jamaica, Kingston.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1. 3. 27.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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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ba, Habana - Cayman Island - Jamaica, Kingston - New York, NYC.


1. 전설, Legend.

  전설. 사람들이 여행을 할 때 좇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전설이다. 드라큘라 전설. 로빈후드 전설. 여러가지 전설이 있다. 어느 지방의 전설이 유명해지면 사람들이 그 전설을 좇아 그 곳을 찾아온다. 전설이 매력있는 이유 중 하나는 그 전설에 관련된 구체적인 증거물이 존재한다는 것이다.[중고등학교때 국어 공부를 꽤나 열심히 했던 사람이라면 전설, 신화, 민담(설화)를 기억해 보라. 전설의 특징은 구체적인 장소와 증거물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꽤나 많은 전설이 존재한다. 어떻게 보면 춘향이와 이몽룡의 사랑이야기는 남원 지방의 전설이고, 그들이 놀았다는 구체적인 사물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축제가 열리고 사람들은 그 곳을 찾는다. 그 옛날 춘향이와 이몽룡이 놀았다는 그 곳에서 그들 기억속에 존재하는 춘향이와 이몽룡의 모습을 생각하게 된다.
  인도의 타지마할에도 전설은 존재한다. 타지마할을 짓고 나서, 왕은 타지마할과 같은 건축물을 더 이상 만들지 못하게 하기 위해 타지마할을 만드는데 참여했던 사람들의 손을 잘라버렸다는 그런 이야기와 함께 전하는 타지마할. 그래서 사람들은 세계에서 아름답다고 소문난, 세계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건축물을 보기위해 인도의 건조한 도시, 아그라(Agra)로 발걸음을 옮긴다. 
  
  전설은 어느 장소와 관련되거나 특정한 건축물에 관련된 것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마이클 잭슨을 전설이라고 부른다. 누군가는 스티브 잡스를 전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그는 아직 살아 있지만, 살아 있어도 전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메이카에 가면 또 하나의 전설을 만날 수 있다. 레게 음악의 전설, 밥 말리.


2. 밥말리(Bob Marley)라고 쓰고, 전설(Legend)라고 읽는다.

  나는 전설을 좇아 다녔다. 어린 시절 영화로 접한 드라큘라의 이야기. 그 전설을 좇아 루마니아로 떠나기도 해봤고,[남들이 다 하는 것 처럼], 전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흔적을 찾아 그의 집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밥 말리. 레게 음악의 전설. 언제 부턴가 레게 음악의 리듬이 좋아졌고, 레게 음악에 대해서 알아 보았다. 힙합과는 다른, 재즈와도 다른, 독특한 매력의 레게. 남미의 레게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접하면서 자메이카 태생의 세계적인 레게 뮤지션이었던 밥 말리가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집에서 본 그가 받은 수 많은 음악상. 그리고 그가 입었던 옷. 그리고 생전의 사진. 항상 마리화나를 입에 물고 작업을 했다는, 밥 말리.
  
  자메이카에선 "레전드"라고 쓰고 "밥 말리"라고 읽고, "밥 말리"라고 쓰면 "레전드"라고 읽었다.


3. 자메이카에서 맞이한 새로운 이야기.

  비행기는 쿠바 하바나공항을 떠났다. 나와 장난을 치던 꼬마(http://dwis.tistory.com/530 참고하시길!)도 나와 같은 비행기를 타고 케이만제도(Cayman Island)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1시간 반 뒤, 카리브 해의 작은 섬에 비행기가 착륙했다. 공항은 동네 기차역 보다 작았다. 2층의 아담한 건물. 그 곳에서 꼬마와 나는 헤어졌다. 그랜드 케이만(Grand Cayman)의 조지타운. 영국령 카리브해 자치 섬인 케이만 제도의 수도였다. 해가 스믈스믈 바다 저편으로 넘어갔고, 비행기는 2시간 딜레이 되었다. 그 덕에 나는 해가 떠 있을 때 자메이카에 도착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버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편으론 걱정되었다. 치안이 극도로 좋지 않다는 자메이카. 그리고 그 수도 킹스톤(Kingston). 밤 9시를 넘긴 시각, 그 날의 마지막 비행기가 사람들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꾸역꾸역 비행기 몸체속으로 들어갔다. 습기를 많이 머금은 따뜻한 바람이 내 살갛을 스쳐 지나갔다. 카리브 해의 냄새가 내 콧가에 머물렀다.

  자메이카의 킹스톤 국제공항. 공항을 빠져 나오니 밤 11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나는 인터넷에서 주워들은 정보들을 이리 저리 조합을 했다. 그리고 택시 기사들과 쇼부를 쳤으나 그들은 가격을 내리려 하지 않았다. 한 남자가 나에게 접근 해 왔고, 나는 그와 쇼부를 쳤다. 20달러에 내 목적지 까지. 그리고 그가 주차장으러 차를 가지러 갔고, 나는 주차장 게이트에서 그가 차를 몰고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 때, 고급 벤츠가 내 앞에 멈추어 서더니 창문이 열렸다. 그리고 나에게 외쳤다. "헤이, 너 왜 거기 서있는거야? 어디로가?"


4. 자메이카에 다시는 오지 마세요.

  나? 택시 기다리고 있어. 왜 거기서 택시를 기다려? 어디까지가? 예약한 호텔로 가야지.[사실 그 때 예약한 호텔따윈 없었다] 그러면서 일단 나에게 타라고 했다. 자기가 태워 주겠다면서.[아주 좋은 차로 보였고, 뒷자석에 탄 사람은 정말 신사처럼 보였기에 나를 어떻게 해칠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살짝 고민을 하다가, 그의 차에 올라탔다.

  그 때, 나와 쇼부를 쳤던 무허가 택시 기사가 뒤에서 소리쳤다. 그리고 내가 탄 차의 운전기사와 무슨 말을 나누었다. 그리고 나에게 물었다. 저 사람 알아?

  알긴 아는데, 저 사람 차를 타고 호텔로 가기로 했어. 그리고 신사가 바로 말을 이었다. 내가 호텔로 데려다 주겠어. 여긴 위험해. 저런 사람 차 타지 않는게 좋아. 

  나는 고민을 했다.[고민이라고 할 것 까진 없었다. 지금 이 차를 타고가면 택시비 20달러 굳는다는 생각과 함께 원래 내가 타기로 한 택시 기사가 나중에 밤에 나를 총으로 쏴 죽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냥 지금 이 차를 타고 호텔로 가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운전기사와 택시기사는 실랑이를 벌였고, 밖에서는 욕설이 마구 들렸지만, 창문이 닫혔고 차는 출발했다. 나는 불안한 마음에 뒤를 돌아보았으나 다행히, 그 택시기사는 따라오지 않는 것 같았다.

  내 옆에 탔던 신사가 말했다. 너 한국 사람이지? 나는 대답했다. 응 한국사람이야. 그러자 그 신사가 덧붙였다. 난 워싱턴에서 온 비지니스맨인데, 내 부인이 한국사람이야. 그래서 니가 한국사람이라는 걸 알아봤지. 잘됐어. 이름은 뭐야? 내 이름은 진. 여행중이야. 자메이카는 처음이지? 처음처럼 보이는데. 응 처음이야. 
 
  그러자 미국인 사업가는 덧붙였다. 자메이카에 다음 부터 절대로 오지말라고. 이곳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위험한 곳이라고. 그리고 또 하나 덧붙였다. 자기 아들의 이름이 "진"이라고. 나와 이름이 같았다. 나는 그들이 묵는 호텔로 갔고, 그 곳에서 콜택시를 불러서 내 숙소로 이동을 했다. 

  그리고 그 사업가는 나에게 명함을 하나 주면서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을 하라고 했다.[그 후로 연락 할 일은 없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를 더 받았다. 자메이카는 생각보다 위험한 곳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말이다.

  조금은 불안했지만, 나쁘지 않은 출발이었다.


5. 거리엔 음악이 흐르고.

  숙소에 짐을 풀고, 잠을 잤다. 방은 더블 룸 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날이 밝자 슈퍼마켓에서 먹을 음식과 생수 한 통을 사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후덥지근한 날씨였다. 마당의 해먹에는 몇 몇 애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스라엘에서 온 애들이었다. 그들은 내일 자메이카 북부 도시로 떠난 다고 했다. 그곳에는 레게 음악파티가 열린다고 했다.

  몇 몇 일본인 들은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밤에만 움직이는 듯 했다. 밤에는 클럽에서 음악이 울려퍼졌기에. 그들은 낮에 잠을 자고, 밤에는 클럽에서 놀았다. 낮에는 거리에서 음악이 울려 퍼졌고, 밤에는 클럽에서 음악이 울려 퍼졌다. 나는 밤 낮 가리지 않고 음악을 들었다.

  2월 초 였지만, 북반구 였지만, 자메이카는 더웠다. 거리를 걸어 번화가로 향했다. 생각보다 먼 거리였다. 거리를 혼자 걸으면서도 생각했다. 누군가가 나에게 총이나 칼을 들이대는 건 아닐까?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 다가가자, 길거리에서 음악 CD를 파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다양한 음악들. 흘러나오는 음악은 주로 레게였다.[힘합 리믹스 음악이 나오는 곳도 있었다]

  시내의 중심가인 넬슨만델라 공원의 곁을 지나갔다. 인터넷을 하다가 얼핏 본 기억이 났다. 넬슨만델라 공원에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그는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래서 그 공원이 아주 큰 규모인 줄 알았는데, 정말 작은 규모였다. 공원의 바깥에서 안에 누가 있는지 다 보일 정도의 작은 크기의 공원. 그 공원에서 낯익은 냄새가 내 코를 자극했다. 그리고 하얀 연기들이 피어 올랐다. 담배보다는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부드러운 냄새. 담배보다 몸에 해롭지는 않지만, 조금은 더 강력한 것.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입에 물고 연기를 뿜어 댓다.


6. 밥 말리.

  밥 말리 뮤지엄에서 밥 말리를 보았다. 레게의 전설. 자메이카의 전설이었다. 밥 말리. 그의 음악, 그의 영향을 받은 많은 아티스트. 대한민국의 레게 뮤지션들이 자메이카에서 레게 음악을 배우고, 앨범 작업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었다. 레게의 본고장에서 레게를 듣고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기분이 묘했다.


7. 클럽. 나이트.

  숙소에 머무는 외국애들과 밤에 클럽을 갔다. 자메이카에서 밤에 외출을 할 때는 반드시, 숙소 문 앞까지 택시를 불러서 택시를 타고 목적지 까지 간 다음, 그 곳에서 돌아 올 때도 그 앞에서 택시를 타고 숙소 앞에 내려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봉변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자메이카에선 어떤 사람이 밤에 사람을 죽이고도, 그것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사람을 죽인 사람은 그것을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무서운 세상이구나 라고 생각을 했다.

  클럽 앞에서 돈을 지불하고, 클럽으로 들어섰다. 육중한 철문을 밀고 들어선 그 곳에는 음악이 흘러 나왔고, 많은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자메이카의 젊은이들이 다 모여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곳에서 느낀건, 아, 여기도 라틴인가?

8. 음악이 시간을 채워주는 도시.

  자메이카와 쿠바는 멀리 떨어지지 않았는데, 느낌이 달랐다. 기후도 달랐다. 자메이카에선 힘이 빠졌다. 쿠바보다 습한 날씨와 약간은 더 높은 기온. 낮에는 그냥 숙소 침대에서 뒹굴었다. 나가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거리엔 태양이 내리쬐고 있었고, 사람들은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해가 지길 기다려, 저녁을 지어 먹고. 밤이 깊어지면 숙소의 다른 외국애들과 음악을 즐기러 갔다. 그렇게 자메이카에서의 하루하루는 음악과 함께 하는 시간들로 채워졌다.


- 무료하게 거리를 걸으며



-



- 밥말리 뮤지엄 외벽



- 내가 자메이카에서 한거라곤 고작 밥말리 뮤지엄을 간 것 뿐.








- 밥 말리









- 시계탑. 시내 중심가. 옆에 넬슨만델라 공원이 있다.



- 시외버스 터미널


- 나에게 야유를 보내던 여고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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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 쿠바, 하바나 - 기대 그 이상의 가치. - 쿠바, 하바나<1>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1. 2. 27.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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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nezuela, Caracas(베네수엘라 카라카스) - Cuba, La Habana(쿠바 하바나) - Jamaica, Kingston(자메이카 킹스톤)


1. 비자(Visa), 특정한 국가를 여행 할 때 허가증을 따로 받아야 한다는 것.

    전자 여권 제도가 시행되기 전 광화문 미국 대사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던 광경이 있었다. 미국 대사관 입구에서부터 대사관 주변으로 길게 뻗은 줄. 미국 비자를 받기위해 사람들은 그렇게 줄을 서야 했다.[전자 여권 제도가 시행된 후, 그 모습은 사라졌다] 2004년 필자가 일본을 여행 할 때만 해도, 일본 대사관에서 비자를 따로 발급 받아야 했다.[그것은 적잖히 번거로운 일이었다] 하지만 일본과의 무비자 협정 체결 이후, 일본은 손쉽게 갈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빨리 중국과도 무비자 협정이 체결되기를 바란다]

  어느 특정 국가를 여행할 때, 그 나라에 대해서 확인 해야 할 것 중 하나가 바로 비자의 필요 유무(有無)이다. 전 세계적인 추세가 특별히 대사관에서 비자를 따로 발급 받지 않고도 자기의 나라를 여행할 수 있게 하는 무사증(무비자)를 허용하고 있지만, 아직도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라면 비자가 필요한 국가가 많다.[유럽의 경우는 러시아, 벨라루스를 제외하고 모든 나라가 무사증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 필자가 2005년 마케도니아와 슬로바키아를 가고자 했을 때는 비자가 필요했지만 2007년 이후로 무비자로 바뀌어 동유럽 여행이 한결 쉬워졌다]
  비자를 발급 받을 때 유의할 점은, 반드시 본국[대한민국 사람이라면 한국내에서]발급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고, 우리나라에 대사관이 없어서 외국에 있는 대사관에서 발급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국경에서 비자 발급 비용을 지불하면[흔히 비자피(Vasa fee)라고 한다] 비자를 발급해 주는 곳도 있다는 것.[대표적으로 캄보디아, 네팔을 들 수 있고, 시리아의 경우는 우리나라와 수교를 하고 있지않기 때문에 국경에서 비자를 발급해 준다. 시리아 입국시 일본인의 경우는 일본 현지의 시리아 대사관에서 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고 들었다]

  비자 문제는 유럽 여행을 할 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장기간 여러나라를 여행하는 장기여행자들의 경우는 특히 신경써야 할 부분이다.[국경에서 비자 문제로 입국이 거부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러시아, 몽골, 중국, 시리아, 볼리비아등 많은 나라들이 아직도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비자를 요구하고 있고, 비자에 관한 문제는 수시로 정책이 바뀌기 때문에 꼭 챙겨두어야 할 사항이다.


2. 쿠바에 다녀온 흔적을 남길 수 없다.

  이스라엘은 중동의 미운오리 새끼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이스라엘은 꼭 가봐야 할 곳중 한 군데이기도 하지만, 많은 여행자들이 이스라엘의 독특한 위치와, 역사적 상황, 그리고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기 위해 이스라엘을 가고자 한다. 하지만, 이스라엘을 갈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바로 입/출국 스탬프를 여권에 찍어서는 안 된다는 것. 이스라엘을 입/출국 할 때는 별지에 스탬프를 찍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출/입국 스탬프가 찍혀 있으면 주변 나라에서 입국을 시켜주지 않는 다는 것이다. 미운오리 새끼, 이스라엘.

  쿠바에 가기 위해서는 비자가 필요하다. 쿠바는 국제사회의 왕따이다. 국제사회의 큰형 미국이 쿠바를 왕따시키고 있기에, 쿠바는 늘 찬밥 신세다. 하지만, 역사적으로든 문화적으로든 쿠바는 엄청난 매력을 가진 곳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쿠바를 찾는다.[많은 수의 미국인들도 쿠바를 찾는다. 미국의 대문호였던 헤밍웨이는 쿠바 하바나에 살면서 "바다와 노인"이라는 소설을 썻다] 하지만, 쿠바도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여권에 스탬프를 찍을 수 없다. 별도의 비자 용지를 구입해서 그 곳에 스탬프를 찍고 출국 할 때 반납해야 한다.

  보통, 쿠바의 비자는 항공사 사무실에 비자를 판매하는 코너에 있다. 쿠바에 입국하기 위해서는 비자가 필요하고, 그 곳에서 비자를 구입해야 한다. 그리고 그 종이에 입국 스탬프를 찍고, 쿠바 출국 심사를 할 때 반납한다. 쿠바의 흔적은 여권에 남길 수 없다.[쿠바 스탬프가 있으면 미국을 갈 수 없다는 이야기도 있다]



3. 비행기는 카리브해(Caribbean sea) 위를 날고 있었다.

  하우스파티 다음 날 아침, 나는 숙소로 가서 짐을 챙겼다. 내가 루이지의 집을 떠날 때 그는 나에게 물었었다. 어디서 공항가는 버스를 탈 거냐고. 나는 지도를 보여주고 11시 쯤 지도에 표시된 곳에서 버스를 탈 것이라고 말하고 떠났지만, 그 곳에서 버스를 타지 않았다.
  
  공항에서의 까다로운 배낭 패킹을 마치고, 출국세를 지불하고, 베네수엘라의 인기있는 가수라는 녀석의 CD를 한장 구입하고, 쿠바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렸다. 또 다시 방문하게 되는 사회주의 국가였다.[이번 여행에서 시리아, 중국, 쿠바 세 군데의 사회주의 국가를 방문했는데, 각각의 나라 분위기가 너무나도 달랐다] 체 게바라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남아있는 쿠바. 피델 카스트로, 체 게바라. 혁명. 그리고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의 재즈. 그리고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 묘사되는 하바나의 성난 바다. 여러가지 이미지들이 내 머리속에 겹쳐졌다.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에 좀 더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다음 행선지인 쿠바와 자메이카의 매력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크게 다가왔기에, 카라카스에서 좀 서둘러 떠나는 감이 있어 좀 아쉬웠지만, 내가 그토록 가고싶어 하던 곳에 더 오래 머물고 싶다는 욕망을 이길 수는 없었다.

  Cubana air의 낡은 기체는 한적한 공항 위를 이륙해서 반원을 그린다음, 파랗게 펼쳐져 있는 카리브해(Caribbean sea)위에 자리를 잡았다. 창밖 아래로는 카리브해의 작은 섬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세계적인 휴양지로 손꼽히는 섬들이겠지.



4. 하바나 국제 공항.

  크지 않은 공항은 좀 혼잡해 보였다. 공항은 여러 무리의 관광객들을 토해냈고, 쿠바에 살고 있는 것 같은 여러 중국인들을 토해냈다. 나는 공항의 환전소에서 환전을 했다. 충격이었다. 이미 쿠바에 오기전에 들은 바는 있었지만, 정말 이렇게 심할 줄은 몰랐다. 캐나다 달러가 쿠바에서 가장 환율이 좋다는 이야길 듣고 캐나다 달러를 사고자 했지만, 캐나다 달러를 살 곳이 없었던 내가 가진 것은 미국 US달러였다.
  우리나라 환율로 따지면, US달러가 훨씬 높았지만 쿠바에서는 US달러의 가치는 형편없었다. 울며 겨자먹기로 외국인용 화폐로 쓰인다는 CUC(쿡 이라고 불린다)을 바꾸고 공항 앞에서 택시를 잡았다. 택시에 몸을 싣고, 시내 중심가격은 까삐똘리오로 가자고 했다. 그 근처에 까사[현지인이 운영하는 민박과 같은 숙소]가 많다는 정보를 들은 바 있어서 그 곳에서 숙소를 잡기 위함이었다.


5. 혁명의 흔적과 함께 시간이 멈춰 버린 듯한 도시.

  한적한 공항 주변의 도로를 달려, 하바나 시내로 접어들고 있음이 느껴졌다. 사람들은 버스 정류장 근처에 몰려서 버스를 타려 하고 있었고, 버스는 사람들을 가득 태우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거리엔 우리나라에서는 찾아 볼 수 없고, 다른 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클래식 자동차(Classic car)들로 넘쳐났다. 그리고 론니플래닛에 적혀있던 한 구절이 생각났다. "쿠바의 볼거리 중 하나인 클래식 카(Car)"

  낡은 자동차들이 검은 매연을 토하면서 거리를 누비고 다녔다. 페인트가 벗겨진 클래식 카도 있었고, 삐까번쩍한 클래식 카들도 있었다. 도요타의 자동차도 거리를 누비고 있었고, 간혼 현대차도 보였다. 그래도 거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클래식 카였다.

  어쩌면 혁명 이후 시간이 멈춰 버린 걸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미국의 경제 봉쇄 정책으로 인해서 시간이 멈춰버린 것일 지도]



6. 불법 까사. 그 곳이 나의 숙소.

  까사를 찾기위해 까삐똘리오[예전에는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던 건물. 중앙에 큰 돔이 있는데 세계에서 손에 꼽힌다.  쿠바 하바나의 메인 건물 중 하나로서 역사도 오래되었고 규모면에서도 세계적인 건축물이다] 주변을 배회하다 보니, 한 명이 나에게 접근하더니 물었다. 까사?까사?
  씨씨, 라고 대답하딘 10cuc에 해 준다고 했다. 엄청 싸다는 생각에, 한번 집부터 보자고 했다. 그러더니 따라오라면서, 나와는 2미터 정도의 간격을 두고 걸었다. 그리고 말을 할 때도, 나를 바라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시선을 다른 곳으로 향했다.[ 쿠바는 미국의 경제봉쇄적책으로 인해 외화를 벌어들이는 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외국인 관광객에 의한 외화벌이이다. 따라서 쿠바는 정책적으로 외국인 관광객을 많이 보호하고 관광을 장려하고 있다. 외국인 보호와 관광객 유치라는 정부 정책에 의해 정부에서 제공되는 서비스의 가격에는 외국인 가격(foreign price)가 형성되어 있음은 물론이지만, 외국인 관광객에 대한 보호도 강력하게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현지인이 외국인 관광객과 직접 대화를 하거나 접근하여 신체 접촉을 하는 모습을 경찰이 보면 그 자리에서 쿠바 현지인은 체포되어 감옥으로 간다고 한다.] 
  까삐똘리오에서 걸어 일반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 같은 건물에 들어섰다. 출입문을 열쇠로 열고, 좁은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각종 전선들이 거미줄처럼 계단 위쪽에 얽혀 있었다.[불이라도 날 것 같았고, 불이 난다면 다 죽을 것 같았다] 4층에 다다르자 또 하나의 문이 나왔고, 그 곳에는 복도를 따라 몇 개의 문이 있었다. 그 중 하나로 나를 안내했다.

  여기가 현지인들이 살고 있는 곳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이 겨우 설 수 있는 주방. 거실에는 네 개의 세포와 작은 TV와 오디오가 있었다. 화장실은 거실 한쪽 벽문에 있었는데, 환풍기가 없었고, 샤워기는 없이 수도꼭지만이 있었다. 주방 바로 뒤에 좁은 계단을 타고 올라가니 다락방이 나왔다. 다락방은 두개의 칸으로 나뉘어 있었고, 계단과 연결되는 곳에 하나의 침대가 있었고, 문 너머에 또 다른 하나의 침대가 있었다. 

  이런 곳에서 한 가족이 살고 있다니. 정말 빈민촌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 곳이 일반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다. 이것이 쿠바의 현실인가? 아-주 저렴한 가격의 숙소. 뭐, 난 이제까지 여행하면서 이보다 더 심하고 시설이 좋지 않은 곳에서도 살아 봤으니라고 생각했고, 그 날 몹시 피곤했기에 다른 숙소로 옮길 생각도 없었다. 일단 여기서 이틀 정도 지내보고 숙소를 옮길지 말지 결정하기로 했다.

그렇게,
불법 싸구려 까사(casa)에서 나의 쿠바에서의 여정은 시작되었다.



- 공항을 빠져나오며


- 까삐똘리오


-


- 숙소 근처의 차이나 타운 입구


- 어디에나 걸려 있는 체 게바라


- CIUDAD DE LA HABANA


- 관광객 기다리는 쌔끈한 클래식카


-


- 혁명의 흔적


- 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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