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지나가는 하루하루.

- 길을 걷다, 세계여행/Feel-ing, 세계일주-ing, · 2009. 11. 15.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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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 지나가는 하루하루.


삶을 살면서 스쳐지나가는 많은 날들이 있다.

먼훗날,
아니 가까운 훗날에 조차 기억나지 않을 그런 날들.

지금 이 순간을 먼훗날에 기억하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서 이 오늘을 즐기고,
추억을 만들어야 한다.

오늘,
이 시간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서.

 

20/09/2009. Sun.
Pemberton, Austr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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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e got the job! - 02, 눈을 다치다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0. 3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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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철,
호주 남서부지역의 농장에서의 일거리는 대부분이 푸르닝(Pruning)이다.
특히, 마가렛리버(Magaret river)와 그 주변지역의 와인은 굉장히 유명하다. 퍼스 주변에도 많은 와인팜들이 있고, 나 또한 포도밭에서 겨울철 포도나무를 다음는일을 한 것이다.

나는 컨츄렉(Contract)이 아닌 아월리(Hourly)로 일했기 때문에, 푸쉬업(Push-up)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일을 빨리빨리 해야했다. 컴츄렉이라면 내 능력이되는만큼 하고싶은 만큼 일을 하고 돈을 받으면 되지만, 아월리는 시간으로 수당을 계산하기에 푸쉬업을 받았다.


오랜만에 날씨가 좋은 날, 햇살조차도 따사로왔다.
그 날도 역시 나뭇가지자르는 기계로 열심히 가지를 자르고 있었는데, 잘린 나뭇가지가 갑자기 튀어올라 내 눈을 강타했다.

한순간이었다.
가끔, 잔가지들이 튀어서 얼굴 주변에 맞긴 했었지만 정확하게 눈을 강타해버린 것이었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눈물이 계속 흘러나왔다.

약 10분 후,
서서히 눈을 떳지만, 따갑고 사물이 흐릿하게 보였다. 안약을 넣어보기도 하고, 물로 씻어보기도하고, 그렇게 눈을 감고 30분 쯤 후에 좀 더 안정이 되었을 때 눈을 보니, 동공의 옆에 살짝 찢어진 것 같은 흔적이 보였다.

컨츄렉터에게 전화를 해서, 다쳐서 일을 할 수 없고, 병원을 가봐야겠다고 말했다. 컨츄렉터는 한두시간뒤에 온다고 했다.(우리 팀은 매일아침 우리가 농장으로 가서 우리끼리 일을 하고, 일이 끝나면 전화로 그 날 어느정도 일을 했는지 보고하는 식으로 일을 했기 때문에 눈치보지않고 마음편하게 일을 할 수 있었다)


컨츄렉터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일을 시작한지 이제 이주 남짓. 내가 모은 돈은 한국가는 비행기표를 사고, 약간의 생활비 정도.
혹시나, 눈을 수술해야한다고 하면 일을 그만두고 한국으로 가야 하는 건아닐까?
만약 한국에 가면, 한국에서 수술을 하고, 한국에서 알바를 해서 그 돈으로 미국이라도 잠깐 갔다와야 겠다..는 생각.
나도 지금 일으 할 수 있는데, 눈이 좀 아픈것만 말고는 일을 할 수 있는데,,오늘 100달러 날렸다는 생각,,
호주 병원비도 비싼데, 호주에서 수술해야한다고 하면어쩌지? 라는 생각.
아무튼 별에 별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점심을 먹고나서, 병원.
의사가 내 눈을 검사했다. (그래도 역시 비교적 잘 산다는 나라라서 그런지 시설은 인도에 병원갔을 때보다 좋은 것 같았다.)
눈에 뭔 용액을 붙고 닦아내고 이것저것 하고 거즈를 눈에 대었다. 그리고 나서 눈을 떠보니 한결 깔끔한 느낌이었다.
의사가 약국에가서 나보고 연고를 사오랜다... 애꾸눈으로 약국에가니 정신이 몽롱했다. 처방전에 적혀있는대로 약을 달라니까 약사가 뭐라뭐라고 웃으면서 농담같은걸 하는데 뭔말인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시 병원,
연고를 2시간마다 눈안에 바르랜다...연고를 눈에 바르라니? 안약을 넣는 것도 아니고.. 아무튼 그렇게 하라니까 했다.(연고를 바르고 눈을 깜빡이면 눈밖으로 다 삐져나왔다..그래도 그 연고가 3만원이나 하니 버릴 수도 없고 열심히 발랐다).
그리고, 3일뒤에 다시 병원에 오라고 했다..사실 다시 올까말까 고민했다. 그래도 다시 오기로 했다.
그렇게 병원 치료가 끝났다..

내심 마음속으로 병원비 걱정을 하고 있었다.
물론 여행자 보험을 들긴 했지만,,당장 가진돈이 얼마 없었기에,,메디케어(Medicare)혜택이 없는 나로서는 일반진료비가 100달러 였다.
결제하려고 카운터에 가니, 결제가 다되었다는 거였다.
'엥? 난 결제한적이 없는데??'

알고보니, 직장의료보험으로 처리된 것이었다. 근무중에 다친거니까 직장보험으로 처리되어 직장에서 치료비를 내준 것이었다. 다행이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래, 난 합법적인 외국인 노동자니까."

그렇게 다시 농장으로 돌아와,
나무 그늘 밑에 누워서 낮잠도 잤다. 다른 사람들은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지만, 뭐 이렇게 된 것 오랜만에 휴식을 취했다. 오렌지도 따먹고, 야생 오리도 괴롭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뻣던 건,
내가 의사에게 내 눈의 상태가 어떻냐고 물었을 때,
의사가 No problem 이라고 말하면서 내일부터 일을 해도 상관없다고 말을 해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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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e got the job! - 01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0. 31.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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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농장일을 하게된 것은, 와인팜Wine farm에서 포도나무를 다듬는 일이었다.

호주 농장에서 1년간 일한 형을 알게되어서 그 형한테 일을 구할 때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푸르닝(나무 가지를쳐서 나무를 다듬는 일)은 웬만하면 피하라고 한 이야기를 들었지만 우선은 돈이 급했기 때문에 하기로 했다. 농장일 중에서 제일 힘들면서도 후유증이 남는 일이라서 웬만하면 권하지 않는 일이라고 했지만 난 하기로 했다.

사실, 푸르닝을 그만둔지 지금 약 한달가까이 되었지만 손가락에 후유증이 남아서 손가락이 아직도 아프다...
누군가 이 글을 본다면, 무리하게 푸르닝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진짜 열심히 일했다,
그래서 인정받을 수 있었다. Hard worker라고, 그리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나를 반겨줬다.
난 팀 아월리 Team Hourly로 일했기 때문에 같은 팀 동료들이 일 잘하는 사람을 좋아해서, 내가 평균속도보다 좋게 나오니까 좋아했다.


내가 처음 일하게 된 곳,
퍼스에서 약 50Km 북쪽의 Bullsbrook에 있는 와인팜이었다. 정말 컷다...
숙소에서 아침 7시 와인팜으로 가서 일을 시작했다.

언덕사이에 있는 와이팜, 아침에 가면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있었고, 햇갈이 와인팜을 비추고 있었다.
포도나무 사이로 캥거루들이 뛰어다니고있었고, 저 언덕위에서 소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야생오리들이 개울가에서 놀고있었고,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다.

농장의 입구에는 오렌지 나무들이 자라고 있어서, 쉬는시간마다 오렌지를 따먹을 수 있었서 좋았다.
와인팜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오렌지나무를 기르고 있었다. 그 덕분에 난 24년간 내가 먹은 오렌지 개수보다 약 두달간 먹은 오렌지 수가 더 많을 정도였다...하루에 15-20개 정도는 먹었으니까,,ㅋㅋ

아무튼,
난 일을 할 수있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돈을 벌 수 있다는,,그리고 일주일에 500불 이상씩 모을 수 있었다. 시간당 18$  일주일에 40시간 이상씩 일할 수 있었고, 세금은 13%를 떼니까 숙소와 먹는것을 제외하고 500불 이상씩 저금할 수 있었다.

그 때부터 나의 생활은 즐거움의 시작이었다.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생활의 안정이 됨과 동시에 즐거움의 시작이었으니까,
그리고 같이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과도 즐겁게 보냈으니까.






- 처음으로 일했던 와인팜, 여기서 3주간 일했다.


- 내가 한달넘게 살았던 숙소,,,빗물을 받아먹고 살았다..ㅋ



- 숙소에 뜬 무지개,, 호주에서 무지개보기란 참 쉽다,,그것도 쌍무지개로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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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Looking for job!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0. 19.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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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내가 찾아간 백팩(숙소,게스트하우스)은 Coolibah lodge 였다. 호주에 오기 전 호주 VIP카드를 만들었던 나는 숙소 할인도 되고 일자리도 소개해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쿨리바로지에 찾아간 것이었다.

노스브리지(Perth Northbridge)에 위치한 쿨리바로지에 처음 머물렀다. 다른 숙소들에 비해서 가격은 좀 비싼 편이었지만 시설이 괜찮은 편이었고, 잡 게시판에 일자리에 관한 이야기가 종종 올라오긴 했다. 그러나 실상 그 정보는 그리 유용한 것은 아니었다.

다행히, 쿨리바로지에서 스태프로 일하는 사람 중에 한국인이 있어서 여러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퍼스 시내에 위치한 잡 에어전시(Job agency)의 위치와 시즌(날짜)에 따른 일거리 정보였다. 나는 그 스태프의 말을 토대로 퍼스 시내에 위치한 잡 에이전시에 들리기 위한 동선을 만들었다. 그리고 일요일에는 교회에 나갔다. 교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에게 "일자리를 구하기가 많이 힘들어 졌다"고 말했다. 나는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빨리 일을 구해서 돈을 번 다음 다시 여행을 떠나야 했기에, 교회 사람들의 말은 나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나는 부지런히 움직이지 않으면 안되었다.


- 월요일,

아침 일찍, 잡 에어진시를 찾아갔다. 백패커 스태프가 말해준 에어진시 위치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4군데 정도 둘러볼 예정이었다. 

 퍼스 시티에 있는 주요 잡 에어전시로 Aussi job, The job shop, Traveller's Club(나중에 Traveller's club는 the job shop과 통합되었다) 세 군데 정도가 있었다. 처음 찾아간 곳은 Traveler's club 이었는데, 그곳의 매니저는 내가 찾아가자마자 좋은 농장 일이 있다며 나에게 가 볼 거냐고 말했다. 캐시잡(Cash job) 시급 18달러, 3개월 이상 가능. 나는 갈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공장일이 더 하고 싶었던 나머지 오후에 다시 찾아오겠다고 했다.(그러지 말았어야 했지만, 그 땐 그 사실을 몰랐다)

 그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Aussi job이었다. 찾아갔을 때 마침 일거리가 있다고 했다. 그것도 농장일이었는데, 푸르닝(포도나무의 가지를 자르는 일)이었다. 이건 한 달짜리 일이었다. 나는 공장일이 하고 싶었기 때문에, 짧게 한 달 정도 농장에서 일하고 다시 공장일을 알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Aussi job에서 주선해 주는 일을 하기로 결정했지만, 그날은 농장주와 연락이 되지 않아 다음날(화요일)에 다시 오라고 했다. 그래서 Traveller's club에서 주선해 준 일은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공장에 이력서를 돌리며 돌아다니는 일은 고독하고 힘들었다>



-화요일,

내가 어제 큰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Aussie job에서 주선해 준 일이 성사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Traveller's club에 찾아갔으나 3개월 짜리 농장일은 이미 다른 사람이 가져간 뒤였다. 나는 그 때 생각했다. 기회는 주어졌을 때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 일단 무조건 'OK'를 외치고 나서 일을 하고 안하고를 결정해야 했다는 것을.


그 이후 나는 약 2주간 일을 구하지 못했다. 교회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다고 들은 것이 실감났다. 전 세계적인 불경기 속에서 한국, 일본을 비롯한 세계 각지의 청년들이 호주로 몰려들어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라는 사실.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매일 아침, 잡 에이전시가 문을 열면 일이 있는 지 확인하고 난 뒤 공장에 어플리케이션(Application, 자기소개서)를 쓰러 다녔다. 매일 아침 첫 손님으로 에이전시에 가서 얼굴 도장을 찍다 보니 에이전시 직원과 친해질 정도였다. 일이 있든 없든, 나는 웃으며 에이전시를 빠져나왔다. 내가 긍정적이고 부지런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야 했다



- 그러던 어느날, 

잡 에이전시에서 전화가 왔다. 농장에 일자리가 생겼는데 일을 할 수 있냐는 전화였다. 나는 기쁜 마음에 당연히 'Sure'라고 외쳤고, 그렇게 농장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여행중인 나에게 더 이상 돈만 쓰면서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돈이 필요했다. 선택할 여지 없이 나는 바로 농장으로 떠나기로 했다.

<퍼스 북쪽에 있는 작은 마을 불스브룩(Bulls brook) 근처에 있는 와인 농장. 첫 번째 농장이었다>



- 사실,
호주에서 일을 구하기 어렵다는 말들이 많다. 하지만, 자기만 열심히 한다면 길은 열려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별로 노력도 하지 않고 일을 구하려고 한다. 물론 운이 좋아서 일을 구할 수 있는 경우도 생기는데, 그건 정말 '하늘의 별따기'라는 말이 실감난다. 자신이 노력하지않으면 운도 따르지 않는 법 이다.

나는 매일 에이전시에 가서 눈도장 찍고, 공장도 여러군데 돌아다니고 열심히 발품을 팔았다.
하지만 많은 한국인들은 그저 시티잡을 구하기 위해 이력서(Resume)같은 걸 시티에 있는 레스토랑에 돌리기만 하고, 에이전시에는 가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많았다.하지만, 꾸준히 노력하면 기회는 반드시 오게 되어 있는 법이다. 많은 사람들이 워킹홀리데이를 와서 일을 구하지 못해 한국으로 다시 돌아간다는데, 자기 노력의 부재라고 볼 수도 있다.
난, 일을 구하기 위해서 잡 에이전시에는 매일 출근했고(Aussi job은 소스가 오픈되지않아서 매일 찾아가야 했고, the job shop은 홈페이지에 소스가 오픈되어있어서 자기가 일을 선택할 수 있었다(http://www.thejobshop.com.au). 그 결과 Aussi job 매니저가 나에게 전화를 해 주었다.
결국 호주에 온 지 16일째 되는 날 겨우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내가 호주에 오기전 생각했던 기간보다는 오래걸렸지만 생각하던 것 보다 시급이 높아서 다행이었다.

나는 일을 시작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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