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지도 없이 길을 헤매도, 그저 I♥NY(3) - New York City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4. 4. 26.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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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도, Map.
 
  역사 교과서나 위인 전기를 통해서, 혹은 다른 여러가지 매체를 통해서 한 번 쯤 들어 봤을 법한 이름이 있다. '김정호'. 조선시대에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다는 사람. 물론, 그 전에도 지도를 그렸던 사람은 많지만, 그의 이름이 아직까지 불려지는 이유는 아주 '정확하게'지도를 그렸기 때문이리라.

  여행을 가거나 어딘가를 찾아갈 때, 지도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여행을 하는데 있어서 지도는 아주 중요하다. 지도 없이 어딘가를 찾아 가겠다고 길을 나선다면 하루종일 길을 헤매면서 하루를 다 허비할 지도 모른다. 지도가 있어도 지도를 잘 볼 줄 모른다면 길을 헤멜 지도 모르지만, 지도가 있으면 현지인들에게 길을 물을 수가 있다. 요즘은 스마트폰의 지도 서비스가 아주 좋기 때문에 이제는 '디지털 지도'를 사용하여 쉽게 길을 찾기도 한다.

  지도를 보며 골목길을 누비다가 목적지에 도달 했을 때의 기쁨. 그 순간에는 택시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 했을 때는 느낄 수 없는 성취감이 있다. 가끔은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끼리 이쪽이니 저쪽이니 티격태격 하다가도, 서로 의견을 잘 교환하여 목적지에 제대로 도착했을 때는 서로간에 돈독한 신뢰를 쌓을 수도 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는 사실[지도를 잘못 보고 이상한 곳을 헤메다가 결국 싸움에 이르게 되는 될 수도 있으니 조심하자].

  우리는 여행을 다니든, 일상 생활을 하든 '지도(Map)'라는 이름이 붙은 다양한 것들을 접한다. 지도는 알게 모르게 우리의 생활속에 스며들어 있다.


2.서울의 지도, 서울의 길.


   전 세계의 여느 대도시가 그렇듯이 서울에는 무수한 지하철 노선이 얽히고설켜 있다. 지방 작은 도시에 사는 사람이 서울에 올라와서 지하철 노선도를 처음 보게되면 눈이 휘동그래 진다. 지하철 노선도는 내가 어디에서 어디로 가야할 지 골똘히 생각하게 만든다. 

  함께 자취를 하던 친구와 주말마다 오토바이를 타고 서울 관광 안내 책자에 나오는 서울의 관광 명소를 돌아다니던 때가 있었다. 큰 도로를 벗어나 작은 골목길이나 좁은 도로를 지날 때,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서 헤매던 기억이 있다. 구불구불 꼬여있는 서울의 골목길은 저 길이 이 길 같고, 이 길이 저길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도가 있었지만, 길을 찾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우리가 찾던 목적지가 나오기도 했다.


3. 뉴욕 지하철 노선도(New York Metro Map)

  JFK공항(John F.Kennedy International Airport)에서 맨해튼의 125th Street까지 지하철을 타고 이동 했다. 125번가는 할렘의 중심가였다. 그 곳에 위치한 숙소가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가장 저렴한 숙소 중 하나였기에 나는 서슴없이 그곳으로 이동했다. JFK 공항에서 출발하여 두 번 지하철을 갈아타고나서 125번가 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게스트하우스에 비치된 뉴욕 관광 안내 지도를 집어 들었다. 그 지도의 한쪽 면에은 큼직하게 뉴욕 메트로 맵이 뉴욕의 지도와 겹쳐져서 그려져 있었다. 아주 간략하고 보기 좋게.


  나는 뉴욕 지하철 지도의 역 이름을 살펴 보던 중 한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지하철역 이름과는 좀 다른 역 이름들. 우리나라의 지하철역이름은 그 동네의 지명이나 큰 건물의 이름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예를 들면 3호선의 대화, 구파발, 불광, 홍제, 옥수, 약수, 압구정 등] 그렇지만 뉴욕 지하철의 역들은 대부분 그 거리의 이름을 지하철 역이름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특히, 맨해튼의 경우 그 특징이 두드러 졌다.



△ 뉴욕 지하철 노선도(New York Metro Map)


 맨해튼은 가장 아래 쪽, 남쪽의 1st street부터 북쪽으로 가면서 동서로 가르지르는 길에 번호를 부여해서 길 이름을 구성하고 있엇다. 1st, 2nd, 3rd, 4th, 5th .... 10th, 100th, 125th street...이런 식으로 동서를 가르지르는 도로에는 스트릿(street)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남북을 가로지르는 길에는 way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었다. 그래서 맨해튼을 남북을 가로지르는 대표적인 길이 바로 '브로드웨이(broad Way)'이다.  지하철 역들은 주로 street 넘버를 지하철 역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같은 스트릿(Street)의 동쪽과 서쪽에 서로 다른 지하철 노선이 지나가는 경우에는 동일한 지하철 역 이름을 가지고 있었기에 나는 종종 실수로 다른 역에서 내리곤 했다.

  내가 가장 눈여겨 본 지하철 역은 나의 숙소가 위치하고 있던 125th Street와 42nd Street의 타임스퀘어 역이었다. 그 외에도 20번가, 7번가 등 많은 역들이 거리 이름으로 되어 있어서 그곳을 지도에서 그곳을 찾아 이동하기가 아주 쉬웠다.


4. SOHO부터 Wall Street까지.
 

   소호(SOHO)에 가 보고 싶었다. 예전에는 화랑이 즐비해 있었다지만 높아진 임대료로 인해 화랑들은 이제 주로 첼시 쪽으로 이동하거나 더 먼 곳으로 서서히 이동하고 있다고 했지만 '화랑'의 흔적을 찾고 싶었다. 소호는 패션의 거리가 되어 가고 있다고 들었다. 론니플래닛 뉴욕 시티(Lonely planet, New York City)에 나온 안내에 따라 지하철 역에서 내렸지만, 그곳이 소호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그곳이 소호라고 해서 '여기가 소호 입니다'라는 안내판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소호역'이라는 말도 없었으니 나는 그저 사람들을 따라서 걸을 수 밖에 없었다. 왠지 내가 가는 곳이 '소호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무작정 사람들이 많이 가는, 젊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뒤쫓았다.


    

△ 리틀 이탈리아와 차이나타운은 붙어 있다.


  길을 걸으며 거리 곳곳에 파편처럼 흩어져 있는 예술의 흔적과, 건물들의 모습에 취해 셔터를 누르다 보니 어느새 내가 와 있는 곳은 '리틀 이탈리아(Little Italy)였다. 언젠가 '리틀 이탈리아'에 대해 읽은 기억이 났다. 차이나타운 근처에 위치한 '이탈리아 타운'. 조금 더 걸으니 '차이나타운(China town)'이 나왔다. 그러면서, '차이나 타운의 지하로 잘못 들어가면 영영 빠져나올 수 없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차이나타운의 지하는 미로처럼 얽혀 있어서 뉴욕 경찰들도 그곳으로 들어가는 것을 꺼려한다는 이야기.

  차이나타운의 한 테이크아웃 음식점에서 사람들이 음식을 사 가는 모습을 보니 배가 고파왔다. 메뉴를 고른 만큰 돈을 지불하는 방식이었는데, 가격은 저렴했다. 음식을 사 들고, 근처에 있는 공원에 앉아 배를 채운 다음 다시 발걸음을 남쪽으로 옮겼다. 점점 더 소호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남쪽으로 내려가자 NYPD(뉴욕 경찰서)건물이 나왔고,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더 이상 이쪽으로 오지말라고 소리쳤다. 나는 방향을 서쪽으로 돌려 계속 걸었다. 법원 같은 건물이 나왔고, 나는 다시 지하철 역으로 들어갔다. 42번가로 돌아가려 했으나, 나는 지하철을 잘못 타버렸고 브루클린 브리지(Brooklyn Bridge)를 건넜다. 맨해튼을 떠나 브루클린으로 가고 있었다. 맨해튼의 야경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5. SOHO에서 타임스퀘어까지.

  나는 다음날 또 다시 소호를 찾았다. 이번에는 다른 지하철 역에서 내렸다. 왠지 그곳이 소호의 중심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을 빠져나오니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그리고 많은 유명 브랜드의 매장이 깃발을 펄럭이며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제대로 찾아온 것 같았다. 아메리칸어페럴, 유니클로, 바나나리퍼블릭, 게스, 디씨슈즈 등의 많은 해외 유명 의류 브랜드들이 내 눈에 띄었다. 호주에서 자메이카까지 6개월 이상을 보내면서 나는 여름 옷만을 가지고 있었고, 뉴욕의 추위를 견디기 힘들었다. 소호의 여러 의류 매장들을 돌아다니며 옷을 구입했다. 통장 잔고는 조금씩 줄어들었지만, 추위를 막을 수 있다면 통장의 잔고가 줄어드는 것은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 소호 거리에 있는 게스(guess)매장과 젊은 이들.

  
   소호의 거리들을 돌아다니며 쇼핑을 하고, 사진을 찍고, 거리의 분위기를 관찰했다. 거리의 분위기를 밝고 활기가 넘쳤으며, 다양한 먹거리들이 즐비하고 있었다. 북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뉴욕대(NYU)를 지나 42번가 까지 갔다. 42번가는 타임스퀘어 근처에 위치한 곳이라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붐볐다. 해가 저물고, 현란한 불빛이 하나둘 거리를 메우기 시작했다. 기온은 조금씩 더 떨어지고 있었다.

 

△ 뉴욕대(NYU)지하철 역(왼쪽)과 뉴욕대 근처 공원의 개선문(오른쪽)

 

  숙소 근처에 위치한 유명한 재즈 카페에서 재즈 공연을 볼 생각을 한 나는, 간단히 식사를 하고 재즈 카페를 찾았다. 재즈 공연을 보기 위한 사람들로 카페는 붐비고 있었다.



6. 길 찾기가 쉬운 맨해튼.

  전형적인 바둑판식 도로가 깔려 있는 맨해튼. 맨해튼의 중심에는 센트럴파크(Central Park)가 있고, 그 오른쪽을 이스트사이드(East Side), 왼쪽을 웨스트사이드(West Side)라 부르고 있는 곳. 1번가(1st street)부터 약 130번가까지 차례로 하나씩 숫자를 붙여 나가며 동서를 가로지르는 길이 있는 곳. 남쪽을 향해 계속 길을 걷다 보면 1번가와 2번가가 나왔고, 배터리 파크에 서서 강 저 멀리를 바라보면 자유의 여신상이 서 있었다.


 

△ 42번가 역 안(왼쪽)과 42번가 역을 나왔을 때 만날 수 있는 풍경.



  나는 20번가와 42번가 사이를 수 없이 왔다갔다 했고, 그렇게 다니다 보니 어느새 맨해튼은 지도 없이도 다닐만 한 곳이 되어 있었다. 나는 맨해튼 말고 주변 지역(롱아일랜드, 브루클린, 퀸즈)도 돌아다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미국에 유학와 있는 친구를 만나러 뉴저지에도 가 보고, 롱아일랜드, 퀸즈, 브루클린의 여러 패션 아이템 샵에도 들러 좋은 패션 아이템을 찾아보거나, 거리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뉴욕은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오는 그런 곳이었다.




 

△ 42번가를 향해 가는 길(왼쪽)과 42번가 주변(오른쪽)


△ 차이나타운 관광 안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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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쿠바, 하바나 공항 - 하바나 공항과 한 꼬마.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4. 1. 27. 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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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rd Edit.


1. 여행 속 "만남".

  혼자 여행을 하는 사람이든,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하는 사람이든, 여행은 여행하는 사람에게 있어 만남의 연속이다. 특히 그 만남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혼자 여행을 하는 사람은 더 많은 만남을 경험 할 수 있다] 
  그 '만남'이라는 것이, 잠깐 스쳐가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조금 길게 이어질 수 있고, 그 만남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만남을 통해서[여행 중 누군가와의 만남]을 통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만남은 어쩌면 우리가 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고귀한 경험일 지도 모른다.



2.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그 여행 속에서 만났던 수 많은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그 만남은 여행이 끝났지만 지속되고 있을 수도 있다] 나도 많은 여행을 했고, 많은 만남이 있었다[아직은 젊은 나이-만 25세 밖에 안되었으니!-라서 더 많은 만남을 가질 수 있었는지도] 
  인도에서의 많은 사람들, 이집트에서 그리고 유럽에서의 만남, 터키의 친구들, 네팔의 연인, 시베리아 횡단열차속에서의 만남, 남미, 쿠바 등. 수 많은 사람들이 나와 만났고, 대화했고, 함께 했고,  내 카메라 렌즈속으로 들어왔고, 나 또한 가끔은 그들의 카메라 메모리에 저장되었다.
  그리고 나는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그들의 다양한 사고방식을 이해했고, 그들의 다양한 문화를 이해했고, 나 자신의 삶의 방향을 만들어 갔다. 
 
  만남 속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은 나의 추억이 되었고, 나의 스승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 어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의 재산이 되었다.



3.  쿠바 하바나(Havana)에서의 짧은 여정을 마치고, 왠지 모를 아쉬움을 남겨둔 채. 자메이카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갔다.

  쿠바에서의 일주일,
싸구려 카사(까사,casa 홈스테이)에서, 다시는 경험 하지 못 할 쿠바 사회를 간접적으로 경험했다[숙소의 영향이 컷다. 그 곳은 실제 그들이 사는 곳이었으므로] 그것은 그들의 현실, 삶이었다.[내가 머물던 집은 불법 카사로서,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못한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이었다]

나의 비행기는 케이만아일랜드(Cayman Island, 영국령의 카리브해의 섬)를 경유해서 자메이카로 가는 것이었기에[그 비행기가 가장 저렴했다. 약 215US$], 하바나 공항에서 케이만아일랜드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와 같은 비행기를 타는 것 같아보이는 한 꼬마가 나의 앞 쪽 건너편 자리에서 심심한 듯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 때 케이만아일랜드행 비행기가 대기하고 있는 게이트 앞에 있었는데, 그 앞에 그 꼬마와 삼촌뻘로 보이는 사람이 같이 있었으므로 그런 사실을 쉽게 파악 할 수 있었다.] 


4. 한 꼬마.

  한 꼬마가 하바나 공항, 케이만아일랜드행 비행기에 탑승하는 게이트 앞에 왔다. 그 꼬마는 혼자 앉아 있는 한 남자를 보았다. 검은 머리에 거무잡잡한 피부. 보통의 남자들보다는 조금 긴 머리. 그리고 보통의 남자들 보다는 조금 큰 키. 그 꼬마 여자아이는 귀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은 신기한 무언가를 보는듯한 눈빛으로 동양인 남자를 바라보았다.

 꼬마는 그의 앞자리[건너편]에서 그를 몰래 훔쳐보다가, 그가 꼬마에게로 시선을 가져가면 의자 뒤로 숨곤 했다. 그 꼬마의 삼촌뻘 되어 보이는 남자는 쿠바에서의 일정이 피곤했는지 의자 위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고, 그 꼬마는 자신과 놀아줄 상대를 찾지 못해, 심심해 하는 눈치였다.
 
  꼬마의 장난기 어린 행동이 시작되었고, 그 곳엔 숨바꼭질 하듯 긴장감이 나돌았다. 그는 카메라를 집어 들고, 카메라의 초점을 꼬마쪽을 향해서 고정시킨 채, 꼬마를 향해 셔터를 눌렀다.
 

5.                           

  나와 그 꼬마의 숨바꼭질. 나는 사실 속으로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그 꼬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얼마 후 그 꼬마의 삼촌뻘되는 사람이 잠에서 깨어났고, 우리들의 놀이는 끝이 났다. 
  꼬마를 향해 셔터를 눌러 대던 그 당시엔 몰랐지만, 그 곳을 떠난 지금 그 때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정말 재미있는 장면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쿠바 남쪽의 작은 섬들, 케이만제도로 날아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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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자메이카, 킹스톤- 자메이카에 다시 오지 말라고?! - Jamaica, Kingston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1. 5. 10.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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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치안(治安)에 관한 생각.

  여행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 자신의 목적지[여행할 장소]에 관해서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 중 하나가 그 장소의 안전에 관한 문제이다[그것은 다시 말해 '치안'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떠한 정보[여행 장소에 관한 정보]를 수집 할 때 좋은 정보 보다는 안좋은 정보를 더 많이 접하게 된다[일상 생활에서도 흔히 그러한 것을 경험 할 수 있다.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정보의 대다수는 범죄 사건, 사고에 관한 소식이라는 점에서 볼 때 우리는 안좋은 소식을 훨씬 많이 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예전에 이란 여행을 하고자 했던 사람이 정보를 수집했다면, 이란 국민들의 시위에 관한 소식과 시위 하던 사람들 중에서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정보를 접하게 될 것이고, 여행을 가고자 했던 사람은 여행을 망설이게 될 것이다. 얼마전 태국에서 일어났던 시위, 그리고 최근 일어나고 있는 중동의 민주화 물결, 이런 정치적인 문제들은 그 나라의 치안 상태가 극도로 불안정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여행자들은 그 곳의 여행을 꺼리게 된다.

  그런 곳에 사는 사람은 어떨까? 대한민국은 과연 안전한 나라인가? 대한민국은 결과적으로 보자면, 아직도 전쟁중인 국가이다. 엄연히 국제법상으로 휴전(休戰)중인 국가이지 절대 종전(終戰)을 한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도 언제 전쟁이 일어날 지 모르는 곳이고,  설령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전쟁이 일어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한국인이 그 상황을 바라보는 눈과 제3자인 외국인이 대한민국의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르고, 따라서 판단의 결과도 달라진다.[물론 대한민국의 상황이 그렇게 극단적이지는 않다]

  사업가의 경우는 어떨까? 해외로 출장을 다니며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과 거래를 하는 국가의 치안에 관해 상당한 관심을 기울일 것이 틀림없다[치안 유지가 잘 되어 정치, 사회적으로 안정적이라면 사업을 하는데 있어서 큰 리스크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치안이 안정적이고 그렇지 않고의 여부는 그 나라에 얼마나 많이 투자를 할 것인가 말것인가와 연관이되고, 사회적으로 범죄율이 낮다면, 그 나라의 사람들을 고용해서 사업을 크게 확장 할 수도 있을 것이며, 물류 창고와 같은 시설을 확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치안은 여행을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사업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큰 관심거리이다[중요한 사안이다].

  하지만, 한 가지 알아두어야 할 중요한 것은 그 현장에 살고있는 현지인들은 여행자나 사업가들에 비해서 민감하지 않다는 것이다[물론 그것은 자기의 상황과 주변의 상황을 잘 알고 있고, 자신의 삶의 터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현지인들은 여행자나 사업가들이 많은 오해를 하고 있다고 생각 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럴지도 모른다.

 

2.                         

  2005년 이집트 여행을 갔을 때는 바야흐로 이집트 대통령 선거가 얼마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내가 이집트를 가기 전, 이집트 국민들은 데모를 하기도 했고, 과격파에서는 테러를 감행하기도 했다.[신문과 뉴스를 통해서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정보를 터키에서 접하고 있었다] 내가 접한 이집트의 상황은 그리 나빠보이지 않았다. 나는 평소와 다름 없는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보았고, 그 곳은 사람이 사는 곳이었을 뿐이었다. 내가 이집트에 머무는 한 달간 딱 한번의 테러가 있었긴 했지만,[그 테러로 인해 관광객 7명이 목숨을 잃었다. 관광지 관광객을 노린 테러였다] 사람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내가 머물던 바로 옆 도시에서 테러가 났기에 나는 잔뜩 긴장했지만 결과적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네팔에 갔을 때, 누군가 암살당했다는 소식이 들렸고, 버스의 파업이 있었고, 훌리건들이 내가 탄 버스를 공격하기도 했다. 하지막 막상, 수도 카트만두에 도착했을 때는 너무나도 평화로웠다. 그 곳 역시 그냥 사람 사는 곳이었다.

  네팔에서 파키스탄 비자를 받고, 파키스탄으로 들어가려 할 때 즈음, 인도-파키스탄 국경에서 테러사건이 일어났다. 버스 폭탄 테러로 스리랑카 크리켓팀이 큰 피해를 입기도 했고, 관공서를 노린 테러가 일어나기도 했다. 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인도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결국 파키스탄을 건너뛰어 비행기를 타고 터키로 넘어갔다. 하지만, 그 무렵 나와 다른 결정을 한 다른 여행객은 파키스탄의 훈자로 무난히 갈 수 있었고, 세계 최고의 절경으로 손꼽히는 훈자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 곳, 훈자는 순박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아주 평화로운 곳이라고 했다.[아직도 훈자를 가지 않은 것이 한(恨)이다.]



3. 쿠바에서 케이만 제도 그리고 자메이카로.

  쿠바에서의 일주일. 싸구려 까사에서의 일주일. 싸구려 불법 까사의 주인 아줌마는 내가 쿠바를 떠난다고 하니 아쉬운 눈치였다. 나도 쿠바가 점점 좋아지고 있었는데, 비행기 예약 날짜가 다가왔으니 어쩔 수 없었다. 거리로 나서서 시내 외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지나가는 클래식카 택시들에게 손을 들었다. 합승을 해줄 법 한데도, 그들은 한사코 합승을 시켜주지 않았다[현지인들은 합승을 많이 했지만, 외국인은 시켜주지 않는 것이었다]

  지나가는 택시 한대를 잡아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서 올 때는 좋은 차를 타고 왔었는데, 갈 때는 현지인들이 타는 낡은 차량을 타고 가니 기분이 뭔가 색달랐다. 택시 기사가 중간에 자기 부인을 좀 만나고 가자면서, 자기 부인을 만나 같이 공항으로 왔다. 부인은 택시 기사의 점심 식사를 가지고 온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하바나 국제공항에 도착했고, 나는 15CUC을 지불했다. 친절히 내 짐들을 꺼내주고, 택시는 그 곳을 떠났다.[공항에서 시내로 갈 때는 20CUC이었다. 20CUC이 공식적인 고정요금 인듯 했다. 내가 처음 하바나에 도착했을 때 공항 직원에게 시내로 가는 택시비가 얼마냐고 물었는데 그 때 20CUC이라고 말을 해 주었었다.]

  출국 수속을 밟고, 쿠바 스탬프가 찍힌 비자를 출국관리소 직원에게 제출했다. 비행기는 케이만 제도(Cayman Island, 영국령의 작은 섬)를 경유해서 자메이카로 가는 것이었다. 케이만 제도까지 1시간 남짓, 케이만 제도에서 자메이카까지 1시간 반 남짓 걸리는 거리였다. 자메이카 킹스톤(Jamaica, Kingston)에 도착 예정시간은 오후 6시. 어두워지기 전에 도착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메이카의 밤은 상당히 위험하다고 들었기에, 약간은 안심이 되었다.

  쿠바의 공항에서 귀여운 꼬마와 장난을 치다 보니, 어느덧 게이트가 열렸다. 비행기는 카리브해 위로 떠올랐고, 자그마한 쿠바가 서서히 사라졌다. 그리고, 케이만 제도를 향해 날아갔다.

  케이만 제도, 작은 섬나라에 도착했다. 공항 건물은 2층짜리 작은 건물이 전부였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높은 습도가 내 숨통을 조여왔다. 이 텁텁함. 전형적인 열대의 날씨였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공기였다. 한국의 8월 무더위로 인해 습도가 높고 온도까지 높은 공기를 그 작은 섬에 옮겨 놓은 듯 했다.

  내 짐들을 들고, 빠져 나왔다. 피부 색깔이 어중간한 외국인 관광객은 나 혼자였다. 몇 안되는 승객들. 검은 피부를 가진 사람들은 모두 자메이카로 가는 사람들이었고, 흰색 피부를 가진 몇 몇은 현지인이었다. 나와 장난을 치던 꼬마도 이 작은 섬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작은 섬, 휴양지로 놀러오면 좋을 것 같은 섬에서 꼬마는 무얼 하며 살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아마 좀 나이가 들면, 영국 본토로 들어가서 공부를 하겠지, 라는 생각을 했다.

  Air Jamaica 카운터에서 내 큰 배낭을 수하물로 보내고 출국장으로 나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 비행기는 3시간 지연이었다. 예상 도착시간은 밤 9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오우, 이런 제기랄.

  작은 섬에 어둠이 깔렸을 때, 활주로에 비행기가 한 대 나타났다. 쿠바의 까삐똘리오 인터넷 카페에서 자메이카의 일본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 예약 메일을 보냈었는데, 답장은 아직 오지 않은 상태였다. 불안한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라타기 위해 활주로를 걸었다.. 또 다시 고온 다습한 공기가 내 피부에 와닿았다.

  낯설지 않은 느낌이었다. 어둠은 언제나 나를 긴장시키고, 약간은 불안하게 만들었다. 비행기를 타러 가는 내 마음은 좀 무거워져 있었다. 자메이카, 뭔가 많이 낯설다는 느낌, 준비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4. Welcome to Jamaica.
 
  비행기는 사람들을 토해냈다. 확실히 쿠바보다 큰 공항, 많은 사람들이 게이트를 빠져나와 입국장에 줄을 섰다. 국제 공항의 느낌이 조금 묻어났다. 외국인은 몇 없었다. 그는 자메이카의 스탬프가 왠지 마음에 들었다. 아래쪽에 자메이카, 섬 나라의 모양이 찍히는 스탬프. 그는 관광객으로 분류 되었다. 가방을 주워들고[레인커버가 떨어져 나가 있었다. 없어진 것이다!] 공항을 빠져나왔다. 밤 10시가 넘은, 11시가 가까워진 시간이었다.

  그는 말을 걸어오는 택시 기사들을 무시하고 공항 주위를 배회해 보았다[혹시나 버스가 있으면 그것을 타고 가려고]. 하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공항의 한쪽은 공사중이었고, 보통 택시를 타고 숙소까지 이동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왔기에, 택시 기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가격을 물어 보았다. 40달러. 그는 손사래를 치며 다른 택시기사의 무리로 이동하려 했다. 그 때였다.

  한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어디까지가? 그는 종이에 적힌 주소를 보여줬다. 30달러를 불렀고, 그는 그 남자를 외면했다. 25달러를 불렀다. 그는 말했다. 투엔티! 오케이, 라고 말하며, 그는 자기 차를 가지고 온다고 했다. 그리고는 공항 주차장 입구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그는 그 곳에서 공항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차량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 였다. 고급 메르세데스 벤츠 한대가 그의 앞에 멈추어 섰다. 그리고 운전석이 열리고, 그 안에서 누군가가 그에게 소리쳤다. 그는 생각했다. 그 택시기사인가? 그러기엔 차가 너무 좋은데?
  그리고 뒷 좌석의 창문이 열렸고, 누군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헤이, 여기서 뭐해?, 나? 택시 기사기다리고 있어. 아니 여기서 뭘 기다린다고? 어디까지가? 태워 줄게. 순간, 그는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이런 고급 승용차를 탄 사람이 자기 자신을 납치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의 목적지까지 데려다 준다고 하고 있었기에, 그는 그 차를 타고 싶었지만, 그 택시기사가 왠지 마음에 걸렸다. 에라 모르겠다.

  그는 고급 메르세데스에 올라탔다.


5.                          

  차가 출발하려는 순간, 어떤 사람이 차 앞을 가로막고 섰다. 아뿔사, 그 택시 기사였다. 그리고는 운전석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자메이카 억양으로 영어를 하기 시작했다. 언성이 높았다. 나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나에게 운전석에서 물어왔다. 아는 사람이야?

  안다고 했다. 내가 저 사람 차를 타고 호텔까지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정식 택시 운전기사가 아니었다. 사복에, 차량도 일반 승용차였다. 내 옆에 있던 사업가는 나에게 물었다. 내릴거야? 아니면 같이 타고 갈래?

  판단이 서지 않았다. 저 택시 기사는 내가 어느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는지 알고 있었기에, 밤에 와서 나를 칼로 찌르거나 총으로 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 옆에 있던 미국인 사업가는 빨리 결정하라고 했다. 운전기사와 택시기사는 계속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초조했다. 그리고 결정했다.  
 
  난 택시를 타지 않겠어. 이 차를 타고 갈게. 일단 택시비 20달러를 굳힐 수 있다는 생각을 했기에 그런 판단을 했다. 될대로 돼라.

  내가 탄 메르세데스 뒤로 그 택시기사가 따라왔다. 불안했다.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했다. 그리고 옆에 있던 사업가가 말을 걸어왔다. 너 한국사람이지? 어 맞아, 한국사람이야. 지금은 여행중. 어쩐지, 그렇게 보였어. 내 부인이 한국사람이거든. 오 정말? 어디 사는데? 워싱턴 살아. 너가 한국 사람 같아서 너를 태워준거야. 이름이 뭐야? 내 이름은 Jin. 오 정말? 내 아들 이름도 Jin 인데. 아들이 3명 있어. 자메이카는 처음이야? 처음 같이 보이는데. 응 처음이야, 쿠바에서 오늘 자메이카로 넘어오는 길이야. 자메이카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줄 모르지?

  다음부터, 자메이카엔 오지마. 위험한 곳이야. 여긴 여행 할 만한 곳이 아니야.  .... 알았어. 참고할 게. 고마워.

  운전기사는 내가 머물 게스트하우스의 위치를 잘 알지 못했기에, 사업가가 머무는 호텔로 가게 되었다. 프론트에서 음료수 서비스를 받고, 그 미국인 사업가는 나에게 명함을 하나 주며 덧붙였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전화해. 그렇게 말하며, 콜택시를 불렀고, 콜택시가 왔을 때, 나를 배웅해주었다.


6.                            

  그는 콜택시 기사에게 주소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택시는 출발했다. 택시 기사가 자기의 휴대폰을 어딘가에 떨어뜨렸다면서, 휴대폰을 좀 찾아달라고 했다. 좌석 밑 어딘가를 뒤져 봐 달라고 했기에, 그는 이곳 저곳을 뒤졌다. 그 순간 그는 간담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좌석 밑에서, 대도(길이가 팔뚝만한 칼)을 보았던 것이다. 그는 생각했다. 뭐지, 이 사람 나를 어딘가로 데려가서 칼로 위협하고 돈을 뺏으려는 건가? 그는 휴대폰을 기사에게 건내고, 자리를 좀 멀리 옮겼다[봉고차 였기에, 공간은 많았다]

  기사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자메이카식 영어로 대화를 했다. 그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들이 무슨 대화를 하는지. 인적이 없는 곳, 길 중간에 차가 갑자기 멈추었다. 그는 긴장하고 있었다. 무슨일이지?

  전화 통화를 하더니, 다시 출발했다. 길을 이리저리 왔다갔다 했다. 그는 불안했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그는 꿈자리를 생각해 봤으나, 꿈자리가 나빳던 것 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어느 골목으로 들어갔고, 차는 멈추었다. 그리고 기사가 말했다. 다왔어.

  주소를 확인했다. 내가 가려던 곳이 맞았다. 벨을 눌렀고, 문이 열렸다. 내 짐을 집 안으로 옮겼고, 주인이 나왔다. 방을 안내해 주었고, 택시비를 지불했다. 그는 그렇게 자메이카의 숙소에 도착했다. 시간은 밤 12시에 가까워져 있었다. 그 곳에 있던 일본애에게 물으니, 몇 명은 그날 밤 클럽에 놀러갔다고 했다. 다음에 너도 같이 가라고 했다.


7.                               

  자메이카의 밤은 어둡고, 적막했다. 왠지 위험하고 불길한 기운이 감돌았다. 밤에, 음악 클럽에 다니면서 놀았는데, 그 때는 항상 집앞까지 택시를 불러 택시를 타고 다녔다. 그리고 집에 돌아올 때도 택시를 잡아타고 왔고, 야식이 먹고 싶을 때도, 야식을 파는[훈제 닭고기를 파는 포장마차 같은 곳]곳까지 택시를 타고 갔다가 돌아오곤 했다.

  누군가 이런말을 했다. 자메이카의 밤 거리에서, 누군가가 총을 쏘아 사람을 죽여도 그것은 범죄가 아닐 수도 있다. 만약 그 장면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범죄가 아니고, 누군가가 봤을 때만 범죄가 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자메이카 사람들이 달리기를 잘하는 건, 밤에 누군가와 골목에서 맞닥뜨렸을 때, 총알보다 빨리 달려서 살아야 하니까, 총알보다 빨리 달려야 해서인가? 그래서 우사인 볼트가, 총알탄 사나이 인가...

 

 

-공항에서 같이 장난치던 꼬마



-쿠바의 남쪽 바다


-자메이카 입국 스탬프

- 거리, 낮은 별 감흥 없다




-시계탑, 그리고 넬슨 만델라 공원.

-시외버스터미널

-하교하는 학생들. 낮에는 위험한 것들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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