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만이 가질 수 있는 기회, '호주 워킹홀리데이' -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는 곳.

- 호주, 워홀이야기- · 2015. 5. 23.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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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靑春)! 듣기만해도 가슴 설레는 말이다(민태원, '청춘예찬')"라는 말을 자주 생각하곤 합니다. 많은 청춘들이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자신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노력의 하나로 '젊음의 특권'이라고 불리는 '워킹홀리데이'를 계획하고 있기도 합니다.

  많은 청춘들이 '20대'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생각합니다. 호주 워킹홀리데이가 그리 호락호락한 것만은 아니지만, 드넓은 호주에는 무궁무진한 기회와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호주워킹홀리데이를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합니다. 저도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왔었고, 제 친구들과 주변 지인들도 여럿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왔는데요, 모두들 호주에서의 경험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호주에서 만난 친구들과의 추억. 그리고 호주에서의 생활과 여행까지. 호주는 젊은 청춘들에게 물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은 것을 전해주는 장소라고 할 수 있죠 :) 


호주 워킹홀리데이, 자신의 인생을 바꾼 경험.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 꿈을 찾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

즐거운 반전의 시작. 호주에서 [                    ] 나를 발견하다. 


△ 호주의 상징 캥거루.

캥거루 아일랜드.

www.australia.com/ko-kr(호주정부관광청)

 

  호주는 '호주 대륙'이라고 불릴 만큼 드넓은 땅을 가지고 있고, 다양한 기후, 멋진 자연 풍경을 자랑하는 곳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동부 대도시에 모여살고 있긴하지만, 서부와 북부, 남부 등지에도 도시를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죠. 뿐만 아니라 호주 대륙 곳곳에는 일을 하고자하는 사람들을 위한 일자리들이 도처에 널려있기도 합니다.

  '호주워킹홀리데이'를 떠난 사람들 대부분이 1년, 그 이상을 호주에 머물고 싶어합니다. 1년이라는 시간이 정말 너무나도 짧다고 느껴질 뿐만 아니라, 너무나도 할 수 있는 것들이 많고,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은 곳이기 때문이죠. 호주워킹홀리데이를 통해 외국인 친구들과 어울리며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고, 돈을 벌어서 여행을 떠나는 것. 호주 대륙의 다양한 모습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만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호주의 다양한 매력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사진으로도 그 감동을 온전히 전달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 호주는 '보드 스포츠'의 메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서핑(Surfing)'을 하기에 너무나도 좋은 비치들이 많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서핑 스팟으로, 시드니 북쪽의 '골드 코스트(gold coast, 골코)'가 있죠.

http://www.australia.com/ko-kr

△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에서의 다이빙/스노클링

△ 많은 이들이 찾는, 호주 남부의 대도시

'멜번'

△ 호주의 대표적인 도시 '시드니'

시드니의 하버브리지와 오페라하우스의 야경이 일품입니다.

http://www.australia.com/ko-kr

△ 호주 서북부 '브룸(Broome)'에서의 낙타 사파리.


△ 호주 관광청에서는 작년에 이어 올해(2015년)에도 '호주로 보내주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Let's Go 호주'라는 이벤트

'호주 정부 관광청 홈페이지' 혹은 '호주 관광청 페이스북'에 접속해서,

호주 사진들을 감상한 뒤, 자신이 가보고 싶은 곳을 선택, 자신의 공약과 함께 사진을 올리면 된다.

선정된 사람에게는 '호주 왕복 항공권 1매(1명/대상)', 인기상 30명에게는 스타벅스 아메라카노 1매가 증정된다.(~6월 5일까지)


- 호주 정부 관광청 페이스북 페이지 : www.facebook.com/wowaustralia

- 호주 정부 관광청 홈페이지 : www.australia.com/ko-kr

- '더콘테스트' 이벤트 관련 페이지 : www.thecontest.co.kr

△ '20대, 나를 찾아 떠나는 호주 여행' 이벤트도 진행하고 있다.

1차 미션 퀴즈와 2차 면접(1차 합격자들)을 통해 선발되는 사람들에게는 '호주 왕복 항공권'과 '어학코스(+홈스테이)'가 제공된다.


- 1차 미션 통과자 30명에게 호주 Top 10 도서 증정.

 1등 총 2명 :  시드니 맥쿼리대학 부설 어학코스 4주 + 홈스테이 4주 + 항공권(1명) / 다윈 나비타스 어학코스 4주 + 홈스테이 4주 + 항공권(1명)

2등 총 2명 : 애들레이드 비즈니스앤테크놀로지 인스티튜트 어학코스 4주 + 항공권(1명) / 퍼스 커튼 대학교 부설 어학코스 4주 + 항공권(1명)


- 퀴즈 참여 홈페이지(더콘테스트) : www.thecontest.co.kr/quiz/Australia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계획중인 사람이라면 위의 이벤트에 참여해서 더 좋은 기회를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가기 전에 '필리핀'에서 어학 연수 과정을 거치거나 호주 현지에서 어학연수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호주 정부에서 '어학연수 + 홈스테이 + 항공권'을 제공한다고 하니, 한 번 도번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벤트에 당첨되지 않더라도, 호주에서 자신의 미래를 위한 열정의 불씨를 키워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 '엔조이(i)유어라이프 닷컴'의 호주 워킹홀리데이 관련 글


 - 워홀이야기] 예비 워홀러들에게 고(告)하다.

 - 워홀이야기] 호주에서, 워킹을 끝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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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워킹홀리데이, 인생의 전환점 - 주인공은 바로 당신!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준비 · 2014. 6. 22.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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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워킹홀리데이(Australia Working Holiday).

많은 젊은이들이 '워킹홀리데이 '를 한 번쯤 생각해보곤 합니다. 실제로 주변에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사람도 있고, '떠나볼까'라는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워킹홀리데이, '20대'에만 할 수 있는 고민이고 '20대'에게만 주어진 특권이라고 할 수 있죠. 20대이기 때문에 워킹홀리데이를 통해서 또 인생의 또 다른 지향점을 발견할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필자도 호주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들고 호주로 떠난 적이 있습니다. 호주에서의 생활은 힘들기도 했지만, 필자의 삶에 있어서 큰 경험이었고,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필자에게 호주 워킹홀리데이에 대해서 많이 물어왔고, 많은 대답들을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제가 해 준 말을 요약하자면 '떠나고, 얻어라' 정도가 될 수 있겠네요.


 

△ 필자가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하면서, 주말에 바다에 나가서 다이빙을 하던 때.


 매일 반복되는 일상. 그 속에서 느껴지는 막연한 불안감. 우리는 '20대'라는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 고민들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한민국의 일상은 언제나 바쁘게 돌아가고, 치열한 삶을 살아가지만 무언가 부족함이 느껴지는 삶이 반복되고 있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내가 가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 그런 생각이 든다면 우리는 많이 '지쳐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워킹 홀리데이'라는 걸 생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죠. 낯선 환경에서 새롭게 시작해 보는 것. 새로운 도전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고, 자신을 넓혀 가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호주'. 그리고 '호주 워킹홀리데이'. 거대한 땅덩어리, 호주로 찾아가는 전 세계의 많은 젊은이들. 젊은이들이 찾아가는 이유는 그곳에서 내 안에 잠들어 있는 '가능성'때문이 아닐까요?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가는 목적은 다양합니다. 워킹홀리데이를 떠나면서 생각한 목표가 그곳에서도 이루어 질 지는 미지수이지만, 목표와 열정을 가지고 떠난 사람들은 호주워킹홀리데이를 통해서 자신의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합니다.



△ Australia Working Holiday Video.

'호주 워킹홀리데이,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 


- 간호사를 준비하던 사람이 '서퍼'가 되고,

- 호주에서의 경험이 커스텀 아티스트가 되게 했고,

- 인디밴드 윈디시티의 라국산씨의 호주에서의 경험은 자신의 음악 세계를 넓혀주었다.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는 사람들, 떠나려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워킹홀리데이는 '어학 연수'가 아닌 다양한 '경험'을 하는 기회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경험과 함께 '영어'는 옵션으로 따라오는 것이고, 그리고 그런 것들이 모여서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 이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 호주 워킹 홀리데이. '진정한 나를 찾는 곳'


- 소심한 A형, 겁없는 호주형으로 변하다.

- 차가운 공대생, 따뜻한 동물애호가로 변하다.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결심한 사람들, 떠날지 말 지를 고민하는 사람들. 그리고 '워킹 홀리데이'라는 것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호주 워킹홀리데이'는 자신의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 수도 있고,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도 있고, 진정한 나를 찾을 수도 있다는 것을요. 


 워킹홀리데이는 20대 만의 특권입니다. 그러나, '도전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 할 수 있죠. 우리의 인생은 참으로 짧지만 우리는 더 넓은 세상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를 찾지 못하기 때무에 '그저 그런 반복되는 일상'속에 갇혀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혹시 아나요? 호주 워킹홀리데이가 '즐거운 반전의 시작점'이 될지요. 물론,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떠날 때는 '목표'를 가지고 가야합니다. 그리고 열정은 필수라는 사실을 기억해야해요!

 

△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통해서 경험할 수 있는 것.


- 도서관 범생이가 해변의 다이버가 되다.




△ 호주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


- 하늘을 날다. 스카이 다이빙.

(필자가 호주 서부 퍼스 인근에서 스카이다이빙 하는 모습)


진정으로 꿈을 실현하기를 원한다면 안전망은 포기하라.

모두의 기대에 순응하는 것이 당신이 최우선 목표라면 당신은 개성, 즉 당신의 뛰어난 자질을 희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돈 워드


사람들이 갖고 있는 가장 일반적인 착오는 / 지금은 결정적인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날그날이 평생을 통해서 가장 좋은 날이라는 것을 / 마음 속 깊이 새겨 두어야 한다. 

- 애머슨


 두려워 하지 마세요. 그리고, 겨우 20대의 나이에 '시간이 촉박'하다고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고대 로마제국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20대'의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20대의 특권,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통해서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워킹홀리데이'를 갔다온 사람이 20대 후반, 30대가 됐을 때, 그 시절을 돌이켜 생각해 본다면 '그 때 경험이 아주 중요한 것이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고, 갔다오지 않은 사람은 '그 때 내가 왜 그런 경험을 할 생각을 못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은 항상 도전하는 사람들의 것이니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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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홀이야기] 예비 워홀러들에게 고(告)하다.

- 호주, 워홀이야기- · 2011. 12. 10.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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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rd edit(2nd edit 10.12.08)


1.호주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고하다.

  내가, 호주에 머물면서 틈틈이 포스팅을 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많은 예비 워홀러들이 나에게 무언가를 물었고, 나 또한 호주에 입국하기 전 여행을 하면서 워킹홀리데이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호주에서의 성공을 꿈꾸었다.

  한 때, 나에게 조언을 구하던 여러 사람들 중에는 이미 호주에 도착해서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직 '호주'라는 광활한 땅에 가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호주에 도착했지만 일이 생각만큼 잘 풀리지 않아, 나에게 조언을 구하는 사람도 있다.
  나에게 많은 질문을 했던 사람들, 그리고 나의 글을 보면서 호주에서의 희망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딱 한가지다.

"열정을 가지고 가라. 그리고 자신의 목표를 확실하게 정하라"는 말.

  한번은 파랑새의 꿈 대구지부에 들른적이 있다.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기 전, 사전 교육 일정이 있다고 했다. 그 때 호주 워킹홀리데이에 대해서 이야기 해 주던 분이 해 준 말이 생각난다.  "자신의 목표를 확실하게 해야한다."

돈이면 돈, 영어면 영어. 하나라도 건져야 한다. 일단 한가지에 목표를 두고 열심히 하라는 뜻이다.


  나의 목적은 돈이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여행 경비.
호주와 남미, 중미, 미국 여행을 위한 여행 경비가 필요 했다.
그리고, [나의 호주이야기를 보면 알겠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 내가 호주에 있을 때,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과 연락을 한 적 있는데, 호주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일은 여전히 힘들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이 노력한다면 얼마든지 길은 있다고 생각한다.[나와 연락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정말 노력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운도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 나의 이야기.

  처음, 호주 퍼스(Perth)에 갔을 때, 나는 정말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호주에 도착해서 무작정, 일을 구하러 다녔다. 처음 백팩에서 만난 아일랜드 가이 '말리키', 그리고 백팩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인 스탭에게 들은 정보, 처음 간 교회에서 들은 정보 등 그들에게서 정보를 얻고, 계획을 짜고, 그리고 몸을 움직였다. 부지런히 다녔고, 필사적이었다.[여기서 멈추면 내 여행도 끝이라는 생각에]

  매일 아침,
  퍼스 시티(Perth city)의 에이전시가 문을 열기전부터 기다리다가, 문을 열자 마자 안으로 달려 들어가 직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항상 그들이 나에게 해 준말은, 일이 없으니 다음에 연락을 주겠다.였다.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 마다 웃으면서 나왔다[마음은 좋지 않았지만]. 일자리를 얻기 위해 한국에서의 아르바이트 경험은 물론, 군대에서 했던 일도 거창하게 이력서에 써 넣었다. 물론, 하지 않은 일도 해 봤다고 적었다. 할 줄 모르는 것도 일단 할 수 있다고 우기면서, 대단한 능력자인 것처럼 행동했다.

  한번은,  the job shop 이라는 에이전시에서, 나에게 일자리를 주기로 했다. 그날 밤, 나는 기쁜 마음으로 모든 짐을 다 싸놨지만, 마지막에 그 일자리가 나와 같은 에이전시에서 일을 구하던 프랑스애들에게 넘어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는 끓어 오르는 분노를 억지로 꾹 눌러서 참았다. 아니 분노를 누를 수 밖에 없었다. 그 프랑스 애들은 트랙터 자격증이 있었고, 나보다 영어를 잘 했기에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여기서 내가 화를 내면, 혹시라도 나에게 돌아올 지 모르는 다른 일자리 마저 없어질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 일을 겪으면서도, 매일 에이전시에 드나들었다. 나는 내가 성실하다는 것을 보여 줘야 했고, 부지런 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고, 나는 결국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나를 믿게 만드는 방법은 부지런함을 직접 보여주는 것 뿐이었다]

  두 번째 일을 구할 때는 더 힘들었다. 나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었다. 거기다가 여행을 위한 자금은 충분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비행기 푯값은 치솟고 있었다.

  매일 아침, 모두가 잠들어 있는 시간 일어나서 씻고, 백팩에서 제공해주는 아침을 먹고, 백팩에서 제공해주는 빵과 잼으로 도시락을 쌌다. 그리고 공장 지대를 돌아다니면서 어플리케이션을 썼다. 공장 지대의 길 모퉁이에 앉아, 심란하고 우울한 마음으로 맛없고, 건조한 빵을 질겅질겅 씹던 기억이 있다.
  
  때로는 무턱대고 공장 오피스를 찾아다녔다.,그리고는 직원에게 인터뷰 하러 오라는 전화를 받았다며, 인사 담당자를 만나게 해 달라고 떼를 쓰기도 했다. 그럴 때면, 문전 박대를 당하기도 하고, 인사 담당관을 만났지만 거절 당하기도 했고, 미친놈 취급을 당하면서 쫓겨 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절박한 심정이었기에, 무엇이든 하려고 달려든 것이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한때는, 공사장에서 노가다라도 할 요량으로, 블루 카드(Blue card : 공사장같은 곳에서 일하려면 필요한 카드)를 만들기 위해, 신문 광고를 뒤져 가장 싼 가격으로 블루 카드를 발급해 주는 직업 훈련소에 가서 교육을 받고, 시험을 보고, 블루 카드를  발급 받았다. 블루 카드 발급을 위해 교육을 받는 내내, 혹시나 교육을 받고 나서 시험에 불합격 하여 블루 카드를 받지 못할 까봐, 필사적으로 문제를 풀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중고차 매장들을 돌아다니며, 세차라도 할 수 있게 일자리를 달라고 해 봤고, 이삿짐 센터에도 찾아가서 물건을 잘 나른다고 일을 시켜 달라고도 해 봤다.
  매일, 혹시 오늘은 내가 어플리케이션을 쓴 공장에서 전화가 오지 않을 까.라는 생각에 항상 전화기를 붙잡고 전화벨이 울릴 때 마다 가슴을 조리던 적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노력한 만큼 운이 따랐고 좋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처음, 농장에서 일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내가 이력서를 넣었던 에이전시에서 연락이 온 적이 있다. 일자리가 생겼다고 연락이 온 것이었다. 그것도 내가 열심히 눈도장 찍은 결과가 아닌가 싶다.
  어플리케이션 쓰러 갈 때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었고, 에이전시에서도 직원 앞에서는 항상 웃는 얼굴르 그들을 바라봤기 때문이 아닐까.



3.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한국 사람이라는 걸 이용해서 한국 사람이 한국사람을 상대로 등쳐먹는 사람이 많다고들 하는데, 그런건 정말 자기가 잘 판단해서 피해야 한다. 누구도 그 상황에 도움을 줄 수 없다.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는,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은 착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일부는 정말 쓰레기같은 친해지기 싫은 사람이 몇 몇 있다는 것이 문제다] - 나는 모든 사람이 나보다는 착하다는 생각을 하며 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처음 호주에 갔을 때 만났던 유동환 형님.정말 고마웠다.[그땐 차마 말을 못했고, 마지막에 인사도 못하고 떠나서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퍼스, 라이프라인(Life line)장로 교회 사람들 그리고 지금은 영주권 준비하고 있을 형진이형, 영희누나 등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준 사람들 모두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호주에 갔을 때, 처음 나의 룸메이트가 되었던 아이리시 가이(Irish guy) 말리키.[밤마다 함께 악기를 연주하며 즐거운 생활이 될 수 있게 해 준 친구다], 처음 농장 일을 할 때, 같은 팀에서 일하게 된 너무 착해서 탈이었던 스티브 형님, 지금은 한국으로 돌아온 희훈이형 그리고 아직 호주에 있는 창욱이, 지훈이형 등. 특히 농장에서 같이 일했던 사람들은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내가 너무 열심히 일해서, 형들이 나에게 구박을 많이 했지만, 모두들 함께 해 주었기에 고마웠다.]
 
 나와 함께 있던 모든 사람들이 나의 목적을 알고 있었기에, 나의 마음을 잘 이해해 주었다. 단기간에 최대한 돈을 많이 벌고 싶어하는 나를 다 이해해 주었다. 맨날 나에게 쫌생이라고 놀리면서도 나를 많이 도와 주었던 사람들. 카날본에서의 사건과 퍼스에서의 재회.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주고 많은 걸 베풀고 알려주었던 외국인들.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난 사람을 만나는 것에 있어서, 운이 좋았다. 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호주로 가는 모든 한국인들,
꿈과 열정을 가지고 떠나는 한국의 젊은이들.
모두 "성공[성공이라는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좀 웃기지만]"하길 바란다.


- Winthrop, 프리맨틀 공장 다닐 때 살던 곳.


- 퍼스 시티,



- 시티의 입구

 


- 론돈아이? 런던아이 모조품 ㅋ



- 교회 사람들과 처음이자 마지막 나들이



- 불크릭 스테이션.



- 퍼스 시티 맥도날드



- 팸버튼 포도밭



- 불스브룩(Bulls brook) 판자촌



- 휴게소



- On the Road



- 스카이다이빙




- Mr, 드루먼(Drument). 처음 널 만났을 때 정말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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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홀이야기] 호주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하다.

- 호주, 워홀이야기- · 2010. 11. 18.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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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ond Edit.


1. 내가 호주에 가게 되면 호주에서 꼭 하고 싶었던 것. 
스카이다이빙.


2. 사실,
스카이다이빙을 하기 위해 케언즈Cairns에 가려고 했었다.

케언즈[ 직접 가보진 못했지만 들은 바에 의하면 각종 레포츠의 천국 이라는 곳]에가서 스노클링도하고, 스카이다이빙도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케언즈에서부터 시드니까지 해안선을 따라 내려 가면서 여행도하고 바다에서 서핑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나의 이상을 모두 채워줄 순 없었다.

그래서 케언즈에가서 스카이다이빙이라도 하자라는 생각에 비행기표도 알아보고 스카이다이빙 가격도 알아보았다. 그리고, 덤으로 케언즈에서 시드니로가는 비행기표도 알아 보았다.


3.
  루트와 계획을[여행에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 이지만, 나는 계획 짜는걸 좋아하지 않아서 문제이다] 여러 번 생각했다. 그리고 공장을 언제 그만두고 언제 퍼스를 떠나고, 언제 시드니로 갈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했다..

이미 미국을 경유하여  남미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끊어놓았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서 가야했다.

그러던 중, 듣게 된 소식.


4.
'퍼스에서도 스카이다이빙을 할 수 있다.'
이 소식을 접하고 나서 이곳저곳 알아보니, 퍼스에도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곳이 두세군데 있었다.

나는 구글검색을 통해 알게된 퍼스에 있는 트래블 에이전시(Travel agency)에 가서 스카이다이빙 가격을 알아보았다.
'가장 높은 높이인 14,000피트에서 뛰어내리는 가격 $439, DVD촬영 $129, 총 합 568달러'

케언즈에서 하는 것 보다, 150-200달러 정도 비싼가격이었다. 생각해 볼 문제였다.
여러가지 여건들[시간과 돈과, 여행과 일정 등등]을 고려 한 끝에 내린 결론!
퍼스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해야겠다고 결론지었다.[ 시간에 너무 쫒기면서 돌아다니는건 내 스타일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케언즈로 갔다가, 또 시드니로 곧 이동해야 한다는 사실이 나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5. 12월 4일 금요일, 오전.
  잠을 자고 있는데, 어디선가 전화가 왔다.

'헬로우, 뭐 어쩌고 저쩌고, 스카이다이빙입니다. Mr.Chang?'
'옙, 맞습니다'
'어쩌고 저쩌고~ (막 뭐라고 말을 한다, 내일 40도까지 낮기온이 올라가고 ,뭐 어쩌고 막 설명을 한다)'

사실 잠결이라서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 듣다가 얼핏 40도, 얼리? 라고 하길래 무슨소리냐고 했더니 다시 설명을 해준다.

'내일 낮기온이 40도까지 올라가니까 오전에 일찍 뛰어 내려야한다. 예정 시간보다 1시간 일찍 나와라'
'오케이' 라고 말하고 오히려 나에겐 잘됐다고 생각하고 다시 잠을 청했다.


6. 12월 5일 토요일, 아침.

  일이 끝나고 집에와서 씻고, 스카이다이빙하러갈 준비를 했다.[준비라고 해 봐야 신분증과 영수증을 챙기고, 그냥 평소대로 옷 입고 나간 정도다]

  트레인을 타고, 퍼스 시티에 약속된 장소[웰링턴 버스스테이션 앞]에 가니, 투어를 하러 가는듯한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 서핑스쿨(Surfing school)에서 일일 서핑교실에 참여하는 사람도 있었고,- 나도 따라 가고 싶었다. 일일 서핑스쿨 - 스카이다이빙(Sky diving)을 하러 가는 사람도 있었고, 무엇을 하러 가는 지 알 수 없지만 뭔가를 하러 가려고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고]

일본인 두명과 나와 이렇게 셋이서 출발했다. 우리 셋을 실은 봉고차는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곳으로, 달려갔다.
차를 한 시간 반가량 가서 도착한 곳. 'Historic city of York'가는 간판이 도시의 입구에 서 있는 조그마한 시골마을 이었다. 그 마을에서 좀 더 안으로 들어가니 작은 비행장이 있었다. 그곳이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카이다이빙을 준비하는 창고같은 건물에 곳에 가니,  그 앞에 활주로가 뻗어 있고,  경비행기 두대가 대기하고 있었고, 스카이다빙을 하려는 사람들이 여럿있었다.[개인적으로 스카이 다이빙을 하러 오는 사람들도 꽤 있었지만, 스카이다이빙 동호회 팀들도 많이 있었다. 동호회팀들은 뛰어내리면서 취할 포즈를 연습하고 있었다]

밖에선 비행기가 뜨고, 사람들이 뛰어 내리고, 낙하산이 펼쳐지고, 또 다시 비행기가 뜨고, 또 사람들이 뛰어내리고.
 
'아, 나도 드디어 스카이다이빙을 하는구나!'


7. 오전 11시경,
드디어 내 차례.[내가 마지막이었다.] 스카이다이빙 두팀과 나와 강사와 카메라맨이 함께 비행기에 타기로 되어있었다.
스카이다이빙 옷을 입고, 간단한 안전교육을 받고. 드디어 비행기에 올랐다.[가슴이 두근거렸다]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조그마한 경비행기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서, 하늘로 하늘로 올라갔다. 창 밖으로 보이는 집들이 점점 작아지고, 자동차들은 작은 점처럼 보였다.  어느새 옅은 구름이 나와 같은 높이에 있었다. 다이빙 강사의 손목에 차고 있던 고도계의 숫자는 점점 올라갔고, 고도계가 한 바퀴를 돌자 스카이 다이빙 팀들이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그 다음이 내 차례였다. 한바퀴가 돌고, 그리고 고도계가 조금 더 돌았을 때,뛰어내려야 한다고 강사가 나에게 말했다.


'으악, 내가 그냥 이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는건가?'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면서 내가 뛰어내려야하는 곳을 쳐다보니, 긴장되기도 했다.  점점 목표 높이에 다가가고 있었다.  "빨간불이 들어오면 뛰어내려야 한다"는 강사의 말이 생각났다.

드디어 작은 비행기는 14,000 fit 상공에 도달했고, 비행기의 출입문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강사는 고고고를 외쳤다. 나는 살짝 미소를 띄웠지만, 내 마음엔 약간의 두려움과 셀럼이 공존하고 있었다.


8. 비행기의 문이 열렸고, 나는 문으로 다가갔다.
비행기의 아래를 쳐다보니, 발 밑에 구름이 있었다.[구름을 밟으면 하늘위에 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1초 정도 한 것 같다. 다른 생각 할 틈도 없이 뛰어내렸다]

오묘한 기분. 다이빙이라는 말보다는 그냥 추락 추락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법 한. 그런 늒미이었다. 나는 배운대로 포즈를 취했다.

번지점프와는 또 다른 기분. 말로 표현하기가 힘든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냥, 기분이 좋았다. 마냥 좋은 그 기분.

시속 200km정도의 속도로 떨어진다는 스카이 다이빙?[9.8m/s 인가? 만류 인력법칙에 의한 물체의 낙하속도 말이다]

그렇게 그냥 막 떨어졌다. DVD촬영 하는 애가 어느새 내 앞에 자리잡고 나를 촬영했다. 그를 바라보며 같이 뛰어 내렸다. 입을 너무 벌리고 있어서 침이 흘러 나왔지만 닦을 수 없었다. 뭘 어떻게 해 보겠다는 생각도 없이 소리를 막 지르고 있는데, 어느 순간 낙하산이 펼쳐졌다.


9. 낙하산을 타고 천천히 내려오면서 바라본 풍경.
아름다웠다. 드 넓게 펼쳐진 평야같은 곳에 중간에 위치한 마을. 그 곳으로 나는 내려가고 있었다. 저 멀리 어렴풋이 바다가 보였다.

햇살에 드러나는 나의 그림자는 엄청 크게 보였다. 낙하산을 타고 내려가는 나의 모습이 땅에 그려지고 있었다. 자동차가 내 발 밑에가볍게 미끄러지고 있었다.

스카이다이빙 = 번지점프 + 패러글라이딩? 이라는 생각을 잠깐 해보기도 했다. 낙하산을 이리저리 좌우로 조정하며, 목표지점으로 향했다. 재미있었다.

스카이다이빙을 마치고, 촬영한 DVD를 보았다.
아, 좀 많이 쪽팔렸다 ...ㅋㅋㅋㅋ 카페테리아에 앉아서 같이 뛰었던 애들걸 다 같이 보는데, 오지(Aussie, 호주사람)여자애들 둘이 내껄 보면서 계속 킥킥댓다.[ 내가 봐도 웃긴데 - _-; 걔들은 오죽했을까] 


10. 다시, 퍼스 시티(Perth city)로 돌아오는 길,
모든게 꿈만같았다. 피곤해서 살짝 잠이 들었다가 다시 깨었다. '내가 스카이다이빙을 하고 온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게 꿈같이 느껴졌다.
  내가 호주에서 일을하고, 바다에도 들어가서 다이빙도하고, 전복도 따고, 하늘에서 뛰어내린 모든 것들이 꿈같다고 생각되었다.
누군가가 옆에서 크게 소리치면, 잠에서 깨어날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잠에서 깨어나면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은 느낌.





- 나를 픽업하러 온 아저씨 ㅋ


- 스카이다이브 익스프레스,


- 내가 타고 올라간 경비해기가 보인다,


- 낙하중인 다른 스카이다이빙 팀원


- 같이 스카이다이빙을 하러 온, 아츠유키/타츠오미 상


- 나의 DVD가 방영되고 있다................


- 스카이다이빙, 인증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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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홀이야기]호주, 5000달러를 잃다?!

- 호주, 워홀이야기- · 2010. 11. 16.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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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ond Edit.



1.
   3일 뒤면 호주를 떠나 남미로 간다.[엄밀히 말하면, 퍼스를 떠나 시드니에 머물다가  시드니에서 미국가는 비행기를 타고, 미국에서 남미가는 비행기를 타는 일정이다]

그래서  텍스리턴을 위해 회계사 사무실에 찾아갔다. 조기 텍스리턴을 신청하기 위해서였다.

2.  호주에 7월 22일 도착해서,
  8월 9일 일을 시작했다.
농장에서, 약 7주[정확히 따지면 6주+3일] 일했고,  농장에서 5144달러를 벌었고 텍스로 670을 냈다.[막상 일을 끝내고 나니 내가 호주 정부에 바친 세금이 엄청났다. 한국에서 한국 정부에 낸 세금이라고는 담배소비세 몇 푼, 주차위반, 신호위반 벌금 밖에 없는데]
중간에 캐시(현금)로 받고 일한 것도 얼마정도 있지만, 그건 텍스리턴과 상관없으니,

공장에서 일을 했다. 10월 6일 부터 약 9주간. 공장에서, 9주 동안 14,626달러를 벌었고, 텍스로 3,513달러를 냈다. [호주 정부에
 매주 평균 400달러를 호주정부에 갖다 바쳤다, 일주일에 5-6일씩 일했는데, 하루 이상을 정부를 위해서 일해준거다. 이런 미친!]

공장에서 그 많은 텍스를 내면서도 생각했다. "호주를 떠날 때 돌려받을 수 있으니까"라고.


3. 연금이라는 것,
고용주가 노동자를 위해서 의무적으로 들어주게 되어있다.[한달에 천달러? 아무튼 그 이상 수입이 있을 경우]
그리고 연금회사에서 회원번호를 가입자에게 알려주게되어있다.[우편을 통해서]

하지만, 난 두 군데의 연금회사[농장에서 일 할 때 컨츄렉터가 소속된 회사에서 연금을 가입한 곳과, 공장에서 연금을 넣어준 회사]로부터, 아무 것도 받지 못했다.

그나마, 공장의 페이슬립(pay slip, 임금 명세서)에는 어느 회사에 연금을 넣는지 나와있어서 그 회사에 전화를해서 조회를 하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농장에서 일할 때 컨츄렉터의 회사가 어느 회사에 연금을 넣었는지 알 수 없었다.

급하게 계약서를 찾아봤는데, 고용 계약서를 이미 버려 버린 뒤였다 ㅠ [컨츄렉터의 회사로 전화를 해서 어디로 연금을 넣었는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전화번호가 없다.] 

농장에서 일할 때 내 앞으로 들어간 연금 470달러,
공장에서 일할 때 내 앞으로 들어간 연금 약 700달러.


4.
회계사의 말을 비롯한, 각종 인터넷의 자료를 뒤져보니,내가 낸 텍스 4000달러는 돌려받기는 힘들 듯했다.
내 앞으로 들어간 농장에서 일한 만큼의 연금 470달러도 받기는 힘들 듯했고, 공장에서 내 앞으로 넣어준 연금은 받을 수 있을 지의문이었다.[연금번호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아, 텍스리턴, 이런 조건이 있을 줄 몰랐다.

'호주에서 한 지역에 6개월 이상 머물렀거나 머물 예정인자.'

텍스리턴과 연금에 대해서 너무 무지했던 본인 ㅠ
정보는 알면 돈이고, 모르면, 돈날리는 것이라는 말이 얼핏 생각났다.

진작에 알았으면,
"여행 일정을 좀 늦추고, 6개월 딱 채우고 텍스리턴 신청 할 걸" 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적은 금액도 아니고, 내가 호주에서 일하고 정부에 낸 돈을 다시 받아 가겠다는 건데.[사실상 호주 정부가 나에게 해 준 복지혜택은 없었으니까. 난 의료비도 메디케어 혜택을 받지 못하고 내 돈내고 거의다 해결 했으니까]


5.
뭐, 어쩔수 없었다.

돈은 돈이고, 여행은 여행이니까
.

그래도, 호주에서 일하면서 호주에서 생활하고, 즐기고, 다시 여행할 만큼의 돈은 모았으니.
크게 마음 상하지말자고 생각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돈"욕심, 별로 좋지 않은거니까.




- 농장 페이슬립, 힐탑노미니스에서 일햇는데,,,홈페이지도 있다더니 구글검색해보니 나오지도않는다-_-


- 공장 페이슬립, 아래쪽에 연금이 있다. AMP라는 회사에 들어가고 있는 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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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홀이야기] 호주, 공장에서 일하다.

- 호주, 워홀이야기- · 2010. 11. 10.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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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ond Edit.(first edi 09.12.06)

1. 공장에 취직하고 처음 몇 주간.
정말 부지런히 열심히 일했다. 좀 힘든일, 작업 분량이 많아도 군소리 하지 않고 묵묵히 일 했다.
사실 내가 생각 할 때 크게 힘든 것도 없었다.[농장에서 일하던 것에 비하면 정말 쉽고, 힘들지 않는 일들이라고 생각했을 정도]

같이 일하는 동료들중에 일을 하면서 힘들다, 소세지가 무겁다고 투덜대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런 말을 들을 때 마다 맞장구를 쳐 주기는 했지만, '이게 정말 힘든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농장에서 일을 하면서 몸을 단력 시키고[미친듯이 일했었다] 나서 공장으로 온 온 나로서는 공장에서 하는 일들은 많이 힘들지 않으면서 쉬운 일들이었다.


2. 특히,
  소시지 및 햄, 베이컨 등을 만드는 공장이다보니 공장안이 시원했다[한여름에도 추워서 일을 할 때는 옷을 몇 겹씩 껴입어야 했다]. 실내는 항상 최소 냉장고 냉장실의 온도[패킹룸쪽은 냉동실 수준의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공장안은 추워서 파리가 없었지만, 공장 밖으로 잠깐씩 나가는 순간 파리떼들이 습격해 왔다]

  호주에서 내리쬐는 강렬한 태양 아래에서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좋았다.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고,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말로는 벌써부터 일 할 때 최소 수십마리의 파리들이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렸다.

  농장보다 시급이 높아서 좋았고, 일하는 시간도 많아서 좋았다. 그리고 시원한 곳에서 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새벽에 몰래 창고에서 소시지를 꺼내먹는 재미가 있어서 좋았다.[농장에서는 과일따먹는 재미가 있었지만] 아무튼 여러가지로 좋았다. 그 중에서 가장 좋은 건 돈을 많이 준다는 것.



3. 필라델피아, 내 너를 저주하리다!!
  필라델피아라는 햄이 있다. 햄 한덩어리가 사람 머리통보다 큰 놈인데, 스틱 하나에 3개가 걸려 있다. 그것들 세개[하나의 스틱]을 끓는 물에 담궈서삶아야 하는데, 완전 노가다로 그 녀석들을 번쩍!들어서 물에 집에 넣어야 한다. 그 녀석들 보기에도 무거워 보이지만 실제로도 엄청 무겁다....... 
  그런데 항상 그 일을 해야 할 때마다 나를 시키는 것이었다.....ㅠ_ㅠ... 내가 처음에 잘 보이려고 일을 너무 열심히 막 하다보니, 내가 그걸 잘 하는줄알고 나를 시키는 것이었다.[다른 사람이 모두 꺼려하니까, 제일 만만한게 나였나 보다]

  처음에 그 무거운걸 무식하게 하루에 수십개씩 들었다가 놓았다가를 반복했다.[나중에는 요령이 생겨 비교적 쉽게 했지만] 무게로 치면 아마 하루에 몇 톤 정도 물에 담갔다 뺐다 했다.
 
  항상 그녀석을 들어 옮기면서 생각했다.아 필라델피아,,"내가 미국에 가면 반드시 필라델피아 역(驛)에 침을 뱉고, 길바닥에도 침을 뱉고 돌아다닐 것라고.."
 필라델피아 햄 때문에 팔목이 나가서 몇 주간 고생했다. 처음엔 어깨에도 무리가가서 어깨가 아팠다. 만병의 근원이 필라델피아 햄이었다.

  나는 어느새, 무거운 햄, 소세지류를 들어서 트롤리[햄들을 쌓아두는 거치대같은 것]에 걸거나, 옮기는 일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런 일을 도맡아서 하는 사이 내 몸 속에서는 이두근, 삼두근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라고 있었다.


5. 
  서브웨이(SUBWAY), 헝그리잭스(Hungry Jack's, 호주의 버거킹)에 납품하는 베이컨을 내 손으로 만들고 있었다.
서브웨이 고기를 자르고, 베이컨을 만들고, 헝그리잭스 베이컨을 만들었다.  만들면서 생각했다. "호주 사람들은 내 손으로 만든 고기들을 먹는구나, 내 침도 자연스럽게 먹는구나"[일을 하면서 지루하기 때문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니까, 당연히 침이 튄다]라고.

헝그래잭스 베이컨을 만드는 일은 내가 공장에서 가장 많이 한 일 중에 하나였다. 사실, 헝그리잭스를 하는 일이 싫었다. 어려운 건 아니었다. 정말 쉬운일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너무 지루했다. 쉬운일을 계속 반복해야 했다. 매일매일 헝그리잭스에 납품하는 물량이 고정적으로 있었기 때문에 매일 엄청난 양을 만들어야 했다. 길고, 지루한 작업의 연속이었다.
특히, 헝그리잭스는 복도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약간 더운곳에서 작업을 했다..그래서 가끔 더울 때도 있었다. 그게 싫었던거였다.


6. 몇 주 후,
  처음 2-3주간 일을 너무 열심히 한 것이 잘못이었다[보통 사람들은 처음에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 처럼 나도 그랬다].  공장에서 일 할 때 대부분이 일을 천천히 하면서 일의 양과 자기가 집에 갈 시간을 맞추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그들과 같이 일을 하다보니 나 또한 속도를 맞추게 되었다. 그것이 편했다.[일을 쉽게, 천천히 할 수 있었으니까]
  특히, 나와 일을 같이 많이 한 콩고출신의 "자바"가 그랬다.[우리파트에서 일을 젤 천천히 하고 농땡이를 피우는 녀석으로 꼽혔다]
가끔씩, 너무 일을 천천히하고, 안하려고하는 모습을 보여서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같은 회사 동료니까 참았다. 그냥 난 묵묵히 할 일을 했다.



7.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나보다 오랬동안 일을 했던 외국애들(최소 몇 년씩 일을 한 애들) 및 슈퍼바이저, 작업반장이 나를 보는 시선이 별로 좋지 않다는 걸 느꼈다.일하는 속도가 느리다는 거였다. 게을러졌다고,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속도가 느린건 아니었다. 난 그냥 나와 같이 하는 애들의 속도를 맞추어 주었다. 빨리하면 빨리하고, 천천히하면 나도천천히 하고,, 천천히 하는쪽이 많긴 했다.

결국 난,
일을 천천히 한다. 못한다 등 호박씨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는 소식을 들었다.[공장에서 일을 오랬동안 하면서 슈퍼바이저, 작업반장 등과 친하게 지내는 외국인이 나와 친하게 지내는 한국인에게 그 말을 해 주었고, 난 그 소식을 알게 되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그러려니 했다.

8. 그냥, 난 내 할일을 했다.
 어쩌겠나? 사람의 마음이 한 곳으로 기울어 지면 되돌리기가 처음보다 더 힘든 것을. 그리고 어차피 여기서 9주만 일할 거니까라고 생각했다.
 일을 못한다고 호박씨 깔때는 다 까면서 또 필요하면 나를 불러서 힘쓰는 일을 많이 시켰다. 그렇다고 해서 나도 기분나빠 하지 않고 그냥 내 할일을 했다. 그게 그냥 편했다. 그러려니~ 필라델피아, 베이컨, 로스트비프, C.O.B,,, 힘쓰는 일은 내 담당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공장에서의 생활이 마무리되어갔다.





- DORSOGNA, 콸리타,


- 필라델피아,,,보기만 봐도 토나온다ㅋ


- 이곳이 햄들의 욕조!


- 요렇게 집어 넣는다,,


- 키친룸,,급하게 몰래 찍느라 완전 화질 구림 ㅋㅋㅋ 베이컨, 치즈마일드 소시지, C.O.B 등등..


- 오른쪽이 C.O.B 보기만봐도 무거워보인다...돼지 뒷다리 ㅋ
왼쪽은 치즈마일드,,제일 맛있는듯 안에 치즈가 들어있다 ㅋㅋ


- 오른쪽 구석탱이에 자바, 나와 함께있는건 칸쿠,
초록색옷입은애는 이름 물어보면 이런다."한국사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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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홀이야기] 얻은건 무엇인가? 돈이면 충분하다? - 호주에서,

- 호주, 워홀이야기- · 2010. 11. 10.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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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cond Edit

1. 언젠가,
호주에서 만난 누군가가 나에게 말했다. "호주에서는 돈만 만들어 가면 된다고."


2. 언젠가,
공장에서 일 할 때
공장의 한 동료가 말했다. "호주에서 얻는건 돈이면 충분하다고,"
자신은 1년간 공장에서 일하면서 엄청난 돈을 모았다고.
그리고, 한국으로 가기 3일전 까지[공장을 그만두는 날 까지]도 밤 늦게까지 일을 했다.


3. '돈이면 충분한가?'라는 의문을 가져본다.
나는 농장에서 힘들게 일을 했지만 돈은 많이 받지 못했다.[공장에서 받는 돈에 비교 할 때 말이다. 물론 다른 농장에서 일 할 때 버는 돈의 평균 이상의 돈을 벌었다]

하지만, 농장에서는
추억과 경험과 사람을 얻었다. 내 인생에서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를 그런 풍경들을 보았다.[농장과 농장사이를 돌아다니며 일을 하다보니, 정말 멋진 경치를 많이 볼 수 있었다.] 


4.
'그'에게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 돈이면 모든걸 다 커버할 수 있다(보상 받을 수 있다)는 그에게.


5.
나 또한 호주에 온 가장 큰 목적은 돈을 벌기 위해서이다[여행 중 호주에 와서 일을 하면서 여행 경비를 충당할 목적으로 왔으므로].

하지만,
나 자신에게 되물어 본다.
"돈이면 충분한가?"




- 호주의 돈.


- 농장 근처의 숙소에 지는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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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홀이야기] 호주에서, 쉐어하우스에 들어가다!

- 호주, 워홀이야기- · 2010. 11. 9.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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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ond Edit.


1. 
  일본에서 꽤나 유명하다고 하는[일본인 친구의 말에 의하면] 다양한 직업을 가졌지만 그 중에 하나가
작가인 , "다카하시 아유무".

그의 책 의 오세아니아부분에서 이런 제목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Weekly life'

  처음 호주에 오기 전에는 이 글의 제목과 내용을 선뜻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이제는 이해할 수 있었다.
호주의 많은 도시에 존재하는 쉐어하우스. 보통 1주일 또는 2주일 단위로 돈을 지불하고 그 집에서 방을 얻어 사는 것. 특히, 많은 워홀러들이 쉐어하우스 운영을 하면서, 특히 요즘에는 단기쉐어라는것이 많이 생겨났다.
 


2. 시티잡(city job)이라고 불리는 공장에 취직을 했다.
  백팩에서 살 수 없었으므로[물론 살 수는 있었지만 쉐어하우스로 가는 것이 더 저렴하고 편했으므로], 나는 쉐어를 알아보았다.  당장 내일부터 공장에 출근을 하라고 통보를 받았으니, 일단 집부터 구하는 것이 급선무 였다.  공장이 프리맨틀(Fremantle)에 위치하고 있었으므로, 프리맨틀주변에 있는 쉐어하우스를 알아 보았다.

  사실,  처음 퍼스에 왔을 때, 그리고 일자리를 알아보러 프리맨틀에 처음 왔을 때 프리맨틀은 한 번 쯤 살아보고 싶던 곳이었다.  그곳엔 바다가 있었기에, 내가 생각하던 그럼 삶[평일에 일하고 주말에 서핑하고]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평일에 일하고 주말에 바다에 나가서 해수욕, 서핑을 하고, 다이빙도 하고, 스노클링도 하고, 얼마나 좋을까? 내가 상상하던 그런 곳과 딱 들어맞는 곳이 바로 프리맨틀이었다.
 

이제, 내가 상상하던 호주에서의 생활을 할 수 있는건가???

 

3.
  퍼스시티(perth city)에서 20-30분이면 오지만, 퍼스와는 너무 다른 분위기.  조용하고, 차분한 거리, 인도양의 푸른 파도와 멋진 노을을 가진 도시. 바닷바람이 불어서 기분이 좋은 도시.  정말 내 마음에 꼭 드는 도시였다.


  프리맨틀(Fremantle) - City of Fremantle.

프리맨틀의 도서관의 게시판에 가서 각족 쉐어하우스 광고 쪽지에 가서 알아보고, 인터넷 사이트 검트리(http://perth.gumtree.com.au) [호주의 중고 물품거래 및 하우스 렌트에 대한 각종 정보가 있는 사이트]에도 알아보고, 이곳저곳 발품을 팔면서 쉐어하우스에 대해서 알아 보았다.

 

  일단, 가격이 싼곳으로!  그리고 웬만하면 한국인 쉐어보다는 오지[Aussie, 호주사람]쉐어로 가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지쉐어라 가면 자연스럽게 영어를 사용해야 하니까 영어도 늘릴겸 해서 말이다.
하지만 마땅한 곳을 찾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찾아간 곳 - 다음 카페의 퍼스 커뮤니티. "퍼스 참을수 없는 그리움(일명, 퍼참)"

그곳에 보니, 비교적 공장과 가까운 곳에 사람을 구한다는 광고를 올린 쉐어하우스 주인이 있었다. 그리고  그 중 한 군데를 연락해서 집을 보러 가 보았다.

 

4. 
  싱글룸,  주당 $125[싼 가격은 아니었다. 난 일주일에 $100 정도의 집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방은 넓었다. 침대도 더블침대가 있어서 크고 좋았다. 
  집도 깨끗하고. 호주 사람들이 사는 도시 교외의 한적한 동네에 위치한 집이었다. 전형적인 호주 주택가에 위치한 집.
 

   이런 곳에 살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아라고 혼자 되뇌었다. 보통 호주사람들이 이런 집에 사니까. 나도 이런 곳에 한 번 살아볼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집 앞에는 작은 정원이 있고, 뒤쪽 마당엔 잔디와 나무와 화초가 약간 있고, 조그마한 풀장이 있는 집. 흔히들 나오는 외국드라마의 그냥 평범한 집같았다. 키친도 외국 시트콤이나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조. 전형적인 외국집이었다.

좀 비싸긴해도 살아보자, 라고 생각했다.

 


5.

그렇게 살게 된 곳. 리치하이웨이(Leach Hwy)라는 큰 길가의 옆으로 난 주택가의 도로 빌링스웨이(Billings Way)에 위치한 집.
발음을 그대로 한국말로 번역한다면, - 부자 고속도로의 지폐들의 거리?

그럼 난, 부자 고속도로옆의 지폐들 거리에 살게 되는간가? 난 이제 부자가 되는건가?라는 유치한 농담을 속으로 생각하며.


아무튼,
공장에 취직하고 새로 살기로 결정한 집 주소도 좋았고[어감이 좋았단 말], 공장에서 돈도 많이 벌게되고 여러모로 좋았다.
그리고, 그곳이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곳.


호주에서 살아보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쉐어하우스.


- 6 번지,



- 안뜰,


- 주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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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 내 너를 저주하리다.

- 길을 걷다, 세계여행/Feel-ing, 세계일주-ing, · 2009. 12. 29.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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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라델피아, 내 너를 저주하리다.


미국,
필라델피아에가면 반드시 길바닥에 침을 뱉고 말테다.

필라델피아 소시지.
엄청난 크기,
엄청난 무게,

그 녀석을 옮기다보면
어깨가 아프고,
팔목이 아프다.

그 녀석을 옮기다가
망가져버린 나의 팔목.

이 녀석,
오늘도 나를 괴롭힌다.

 

27/10/2009, Tue.
Fremantle, Australia.



- 필라델피아 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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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에서 일을하며 언덕을 바라보다.

- 길을 걷다, 세계여행/Feel-ing, 세계일주-ing, · 2009. 12. 26.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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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장에서 일을하며 언덕을 바라보다.

일을하다보면,
가끔 공장 뒤쪽으로 가게된다.

그 곳에서 바라보이는 언덕위의 길.
공장이 바라보이는 그 곳.

수 많은 발걸음을 하며,
그 언덕에서 얼마나 많이 이 공장을 바라보았었나.

사람들은 모른다.
내가 얼마나 많은 발걸음을 했었고,
지금,
얼마나 많이, 힘들게 열심히 일하는지.

그들의 관심은 오직,
내가 일주일에 얼마를 버는지, 그 숫자에만 관심이 있다.
그리고 그들도 바란다.

단지 바라기만 할 뿐...

 

someday, Oct 2009.
Fremantle, Austr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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