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이야기] 예비 워홀러들에게 고(告)하다.

- 호주, 워홀이야기- · 2011. 12. 10.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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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rd edit(2nd edit 10.12.08)


1.호주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고하다.

  내가, 호주에 머물면서 틈틈이 포스팅을 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많은 예비 워홀러들이 나에게 무언가를 물었고, 나 또한 호주에 입국하기 전 여행을 하면서 워킹홀리데이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호주에서의 성공을 꿈꾸었다.

  한 때, 나에게 조언을 구하던 여러 사람들 중에는 이미 호주에 도착해서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직 '호주'라는 광활한 땅에 가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호주에 도착했지만 일이 생각만큼 잘 풀리지 않아, 나에게 조언을 구하는 사람도 있다.
  나에게 많은 질문을 했던 사람들, 그리고 나의 글을 보면서 호주에서의 희망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딱 한가지다.

"열정을 가지고 가라. 그리고 자신의 목표를 확실하게 정하라"는 말.

  한번은 파랑새의 꿈 대구지부에 들른적이 있다.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기 전, 사전 교육 일정이 있다고 했다. 그 때 호주 워킹홀리데이에 대해서 이야기 해 주던 분이 해 준 말이 생각난다.  "자신의 목표를 확실하게 해야한다."

돈이면 돈, 영어면 영어. 하나라도 건져야 한다. 일단 한가지에 목표를 두고 열심히 하라는 뜻이다.


  나의 목적은 돈이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여행 경비.
호주와 남미, 중미, 미국 여행을 위한 여행 경비가 필요 했다.
그리고, [나의 호주이야기를 보면 알겠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 내가 호주에 있을 때,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과 연락을 한 적 있는데, 호주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일은 여전히 힘들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이 노력한다면 얼마든지 길은 있다고 생각한다.[나와 연락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정말 노력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운도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 나의 이야기.

  처음, 호주 퍼스(Perth)에 갔을 때, 나는 정말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호주에 도착해서 무작정, 일을 구하러 다녔다. 처음 백팩에서 만난 아일랜드 가이 '말리키', 그리고 백팩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인 스탭에게 들은 정보, 처음 간 교회에서 들은 정보 등 그들에게서 정보를 얻고, 계획을 짜고, 그리고 몸을 움직였다. 부지런히 다녔고, 필사적이었다.[여기서 멈추면 내 여행도 끝이라는 생각에]

  매일 아침,
  퍼스 시티(Perth city)의 에이전시가 문을 열기전부터 기다리다가, 문을 열자 마자 안으로 달려 들어가 직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항상 그들이 나에게 해 준말은, 일이 없으니 다음에 연락을 주겠다.였다.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 마다 웃으면서 나왔다[마음은 좋지 않았지만]. 일자리를 얻기 위해 한국에서의 아르바이트 경험은 물론, 군대에서 했던 일도 거창하게 이력서에 써 넣었다. 물론, 하지 않은 일도 해 봤다고 적었다. 할 줄 모르는 것도 일단 할 수 있다고 우기면서, 대단한 능력자인 것처럼 행동했다.

  한번은,  the job shop 이라는 에이전시에서, 나에게 일자리를 주기로 했다. 그날 밤, 나는 기쁜 마음으로 모든 짐을 다 싸놨지만, 마지막에 그 일자리가 나와 같은 에이전시에서 일을 구하던 프랑스애들에게 넘어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는 끓어 오르는 분노를 억지로 꾹 눌러서 참았다. 아니 분노를 누를 수 밖에 없었다. 그 프랑스 애들은 트랙터 자격증이 있었고, 나보다 영어를 잘 했기에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여기서 내가 화를 내면, 혹시라도 나에게 돌아올 지 모르는 다른 일자리 마저 없어질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 일을 겪으면서도, 매일 에이전시에 드나들었다. 나는 내가 성실하다는 것을 보여 줘야 했고, 부지런 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고, 나는 결국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나를 믿게 만드는 방법은 부지런함을 직접 보여주는 것 뿐이었다]

  두 번째 일을 구할 때는 더 힘들었다. 나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었다. 거기다가 여행을 위한 자금은 충분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비행기 푯값은 치솟고 있었다.

  매일 아침, 모두가 잠들어 있는 시간 일어나서 씻고, 백팩에서 제공해주는 아침을 먹고, 백팩에서 제공해주는 빵과 잼으로 도시락을 쌌다. 그리고 공장 지대를 돌아다니면서 어플리케이션을 썼다. 공장 지대의 길 모퉁이에 앉아, 심란하고 우울한 마음으로 맛없고, 건조한 빵을 질겅질겅 씹던 기억이 있다.
  
  때로는 무턱대고 공장 오피스를 찾아다녔다.,그리고는 직원에게 인터뷰 하러 오라는 전화를 받았다며, 인사 담당자를 만나게 해 달라고 떼를 쓰기도 했다. 그럴 때면, 문전 박대를 당하기도 하고, 인사 담당관을 만났지만 거절 당하기도 했고, 미친놈 취급을 당하면서 쫓겨 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절박한 심정이었기에, 무엇이든 하려고 달려든 것이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한때는, 공사장에서 노가다라도 할 요량으로, 블루 카드(Blue card : 공사장같은 곳에서 일하려면 필요한 카드)를 만들기 위해, 신문 광고를 뒤져 가장 싼 가격으로 블루 카드를 발급해 주는 직업 훈련소에 가서 교육을 받고, 시험을 보고, 블루 카드를  발급 받았다. 블루 카드 발급을 위해 교육을 받는 내내, 혹시나 교육을 받고 나서 시험에 불합격 하여 블루 카드를 받지 못할 까봐, 필사적으로 문제를 풀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중고차 매장들을 돌아다니며, 세차라도 할 수 있게 일자리를 달라고 해 봤고, 이삿짐 센터에도 찾아가서 물건을 잘 나른다고 일을 시켜 달라고도 해 봤다.
  매일, 혹시 오늘은 내가 어플리케이션을 쓴 공장에서 전화가 오지 않을 까.라는 생각에 항상 전화기를 붙잡고 전화벨이 울릴 때 마다 가슴을 조리던 적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노력한 만큼 운이 따랐고 좋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처음, 농장에서 일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내가 이력서를 넣었던 에이전시에서 연락이 온 적이 있다. 일자리가 생겼다고 연락이 온 것이었다. 그것도 내가 열심히 눈도장 찍은 결과가 아닌가 싶다.
  어플리케이션 쓰러 갈 때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었고, 에이전시에서도 직원 앞에서는 항상 웃는 얼굴르 그들을 바라봤기 때문이 아닐까.



3.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한국 사람이라는 걸 이용해서 한국 사람이 한국사람을 상대로 등쳐먹는 사람이 많다고들 하는데, 그런건 정말 자기가 잘 판단해서 피해야 한다. 누구도 그 상황에 도움을 줄 수 없다.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는,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은 착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일부는 정말 쓰레기같은 친해지기 싫은 사람이 몇 몇 있다는 것이 문제다] - 나는 모든 사람이 나보다는 착하다는 생각을 하며 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처음 호주에 갔을 때 만났던 유동환 형님.정말 고마웠다.[그땐 차마 말을 못했고, 마지막에 인사도 못하고 떠나서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퍼스, 라이프라인(Life line)장로 교회 사람들 그리고 지금은 영주권 준비하고 있을 형진이형, 영희누나 등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준 사람들 모두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호주에 갔을 때, 처음 나의 룸메이트가 되었던 아이리시 가이(Irish guy) 말리키.[밤마다 함께 악기를 연주하며 즐거운 생활이 될 수 있게 해 준 친구다], 처음 농장 일을 할 때, 같은 팀에서 일하게 된 너무 착해서 탈이었던 스티브 형님, 지금은 한국으로 돌아온 희훈이형 그리고 아직 호주에 있는 창욱이, 지훈이형 등. 특히 농장에서 같이 일했던 사람들은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내가 너무 열심히 일해서, 형들이 나에게 구박을 많이 했지만, 모두들 함께 해 주었기에 고마웠다.]
 
 나와 함께 있던 모든 사람들이 나의 목적을 알고 있었기에, 나의 마음을 잘 이해해 주었다. 단기간에 최대한 돈을 많이 벌고 싶어하는 나를 다 이해해 주었다. 맨날 나에게 쫌생이라고 놀리면서도 나를 많이 도와 주었던 사람들. 카날본에서의 사건과 퍼스에서의 재회.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주고 많은 걸 베풀고 알려주었던 외국인들.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난 사람을 만나는 것에 있어서, 운이 좋았다. 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호주로 가는 모든 한국인들,
꿈과 열정을 가지고 떠나는 한국의 젊은이들.
모두 "성공[성공이라는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좀 웃기지만]"하길 바란다.


- Winthrop, 프리맨틀 공장 다닐 때 살던 곳.


- 퍼스 시티,



- 시티의 입구

 


- 론돈아이? 런던아이 모조품 ㅋ



- 교회 사람들과 처음이자 마지막 나들이



- 불크릭 스테이션.



- 퍼스 시티 맥도날드



- 팸버튼 포도밭



- 불스브룩(Bulls brook) 판자촌



- 휴게소



- On the Road



- 스카이다이빙




- Mr, 드루먼(Drument). 처음 널 만났을 때 정말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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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looking for a job again! - 다시 구직자의 삶으로(2)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1. 28.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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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일을 다시 잡았구나!!
근데, 북쪽으로 2500km?! 차를 타고 꼬박 2박3일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거기라도 가서 돈을 벌어야지,, 페이도 어느정도 괜찮았고, 농장 숙소에 수영장도 있었다.

에이전시가 문을 닫을 시간이라서 내일 오전에 자세하게 이야기를 해줄테니 다음날 오전에 오라고 하길래 알았디고하고 에이전시를 빠져나왔다.
"다시, 농장으로 가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일이 끝나고 딱 일주일만이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다.
농장주와 계약이 체결되는 그 순간까지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그 전에 일을 구할 때도 일을 하기 바로 직전에 펑크가 나서 도루묵이 된 적이 있다고.
너무 기대는 하지말고 그냥 안전빵으로 생각하고 있으라고.

마음 한구석엔 약간의 불안감이 있었지만,
그래도 안도감이 조금 더 컷다. 일을 할 수 있다는 안도감.

그날 저녁,
백팩커스의 같은 방을 쓰는 외국애들에게 작별인사를 미리했다.
그리고 모든 짐들을 다시 정리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저녁으 먹었다.

다음 날, 오전.
에이전시영업시간 전에 미리 찾아가서 기다리고 있으니, 여직원이 잠시 기다리면서 인터넷에 올라와있는 더 좋은 일자리를 한 번 알아 보라고 했다. 뭔가 좀 불안하면서도 찝찝한 기분이었다.
여직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농장주의 전화번호를 적어주는 것이었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계약서나 페이에대한 설명 등등 그런 설명이 아니라, 달랑 전화번호 하나 주면서 농장주에게 직접 전화를 해보라니?!  - 이럴경우, 하루가 지나버리면 거의 90%이상 자리가 없다고 봐야한다.

농장주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지 않아서 메세지를 남겼다. 그래도, 조바심이 나서 다시 전화를 했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한 남자의 목소리
"Hello?"
어쩌고 저쩌고.
퍼스 에이전시에서 소개받고 전화했다고 하니, 이름을 묻고 알았으니까 나중에 다시 전화 준댄다...

"끝났네."라고 생각했다.

1시간 뒤 다시 전화했다.
지금 당장 일 할 수 있고, 일잘한다고 했다. 그리고 수박 플랜팅, 피킹도 해봤다고 했다.(당연히 거짓말) 지금 퍼스에 있지만 브룸으로 갈 수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대답은,
"나중에 연락주겠다."였다. 

게임 끝.

이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니 역시나,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목요일 오후,
그동안 썼던 공장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보통 공장에서 목요일날 연락이와서 금요일날 인터뷰를 보고 월요일부터 일을 시작하는게 일반적이라고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공장도 끝난 것 같았다.

나는 금요일을 퍼스에서의 마지노선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이제 퍼스에서 미련을 두려고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게 믿었던 일자리가 사라지고나니 모두가 힘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가고,

몇 분 뒤,
결정되었다.
지금. 그냥 카날본(Carnarvon)으로 떠나자!


목요일 오후 다섯시.
퍼스에서 북쪽으로 1000km를 달리는 여정을 시작했다.
일을 찾아서.



처음,
내가 호주에와서 조건이 괜찮은 일자리를 내가 거부했을 때(그 당시는 그게 좋은 조건인줄 몰랐다)
일이 안구해 질 때, 내가 그 때 미쳤지라고 생각하면서도 "나중에 더 좋은 일자리가 생기겠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더 좋은 일자리, 더 좋은 잡job, 그걸 찾아서 퍼스를 떠나기로 했다.




- 북쪽으로 끝없이 달리는 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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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looking for job! - 05, 외국인 노동자가 되다.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0. 28.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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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 맞이하는 세번 째 토요일.

백팩커스의 체크아웃을 끝내고, 에이전시에서 소개해 준 컨츄렉터와의 약속장소로 떠났다.

약속시간은 12시,
퍼스 시티(Perth city)에서 북쪽으로 약 50km 떨어진 곳. Bullsbrook.
조그마한 마을 이었다. 마을의 중심가에 있는 체커스호텔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12시,
주차장에서 Drummont(두루먼, 컨츄렉터)이라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차들이 왔다갔다 할 때 마다 유심히 쳐다보았다.
12시가 다 되었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초조했다.
"또 이렇게 펑크가 나는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전화를 해 보았지만, 자동응답으로 넘어갈 뿐이었다.
사무실 전화번호가 있어서, 사무실로 전화를 하니, 비서같은 사람이 받는 듯 했다.
 - 에이전시에서 연락받고, 오늘 12시에 두루먼과 만나기로 했는데 두루먼과 연락이 안된다고, 연락좀 해서 나한테 연락을 다시 해 달라고 했다.

12시 15분 경,
하얀 홀덴 한대에서 덩치가 조금 있고, 연륜이 있어보이는 한 남자가 영국식 발음으로 말을 걸어왔다.
왔구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마치고, 현재 농장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에게 모르는 것 있으면 물어보고, 연락처를 가르쳐 주었다. 자기는 오늘 홀리데이라서 시티에나가서 쉬어야 한다면서.


현재, 농장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은 네명, 모두 한국인이었다.
그렇게 나는 그 날 농장근처에 다른 노동자들이 묵고있는 숙소로 들어갔고, 다음날 부터 일을 할 수 있었다.


드디어 호주에서, 워킹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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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looking for job! - 04, 구직자에서 외국인노동자가 되기까지 03.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0. 27.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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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의 첫 주,
난 럭키가이라고 생각했었다.

호주에서의 둘 째주,
이대로 호주에서의 워킹은 실패로 끝나는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공장을 돌아다니면서 어플리케이션을 쓰러 다녔지만,
공장의 리셉션(Reception)에서는 하나같이 같은 말들을 반복했다.
"지금 시기에는 사람을 뽑지않으니까, 나중에 모집하게되면 연락주겠다."
"지금은 경제가 어려워서 사람들을 해고하고 있는 상황이다. 어플리케이션을 쓰는건 시간낭비다."
"지금은 겨울이라서 일거리가 별로 없다. 12월이나 1월에 다시 와라."  (어쩌라는거냐? 난 11월말에 호주를 뜰 거단말이다...)

아무튼, 저런 멘트들이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거기다가, 나의 몸상태가 조금씩 나빠지고 있었다.


아무튼,
일을 구하러 다니기 시작하고  2주가 다 지나가려 하고고 있었다.

금요일,
그 날도 에이전시에 들렀지만, 일이 없다는 소리를 들을 수 밖에 없었다.
힘이 빠졌다. 통장의 잔고도 이미 바닥이었다.

수없이 어플리케이션을 썻던 공장들은 무응답이었다. 보통 금요일날 인터뷰를 보고 월요일부터 일을 시작한다는 사람들의 말. 이미 끝난 것 같았다.

금요일 오후,
일을 구하러 돌아다닐까하다가, 힘도 나지않고해서 기분전환할겸, Blue cat(Perth시티의 무료버스)을 타고 스완강가(Swan river)로 갔다.  그 곳 벤치에 앉아서 많은 생각을 했다.
다음주까지 안되면, 걍 한국이나 갈까? 하는 생각.
한국가서 몇 달 돈 벌어서 미국이나 갈까 하는 생각.
그리고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
그리고 여행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들.

그리고, 저녁때 교회에나 가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통의 전화가 울렸는데, 퍼스에 처음 왔을 때 만난 형님이었다. 특별히 바쁜일이 없어서, 그 형님의 일을 도와 주었다. 어차피 그 형님도 교회에 다녔기 때문에 같이 교회에 가기로 했다.

금요일 오후 5시,
에이전시에서 한통의 전화가 왔다. 순간, 느낌이 왔다. 왔구나............. 금요일 오후 5시가 조금 넘은 시간.
에이전시는 4시 30분에 문을 닫는다. 왠일일까?
"Hello? this is Mr chang. speaking."
"Hi, Chang,, 어쩌고 저쩌고"

결론은,
일자리가 생겼는데, 당장 내일부터 일할수 있냐였다.
너무 흥분해서, 알았다고하면서 입에서 이상한 영어가 막 튀어 나왔다. 그래도 에이전시 메니져는 성격도 좋고 농담따먹기도 좋아하는 편이라서 나에게 농담도 하면서 자기와 만날 시간과 약속을 잡았다.

나는 나와 같이 있던 형님에게 말하고, 에이전시로 갔다.
막 퇴근하려던길에 나를 발견한 에이전시 메니져는 잘 왔다면서 나에게 일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었다.
그리고 행운을 빈다면서, 무슨일이 생기면 자기에게 전화하라고 명함을 건네주었다.

일에대한 소개가 적힌 종이와, 내가 일하러 가게될 곳의 전화번호, 주소, 준비물, 임금 등이 적힌 종이를 주었다.
그것을 받아들었을 때 그 기쁨이란!

마침, 그 날 텍스파일넘버(TFN, Tax file number)을 받았고, 모든것이 완벽했다.

그렇게, 일을 시작 할 수 있다는 생각과, 지난번처럼 펑크가 날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함께 내 몸속에 공존하고 있었다.


모든 것은 내일 결정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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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looking for job! - 03, 구직자에서 외국인노동자가 되기까지 02.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0. 23.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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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 와서 맞이한 첫 번째 월요일에 두 개의 농장일을 놓쳐버리고나서, 나는 집중적으로 공장에 가서 어플리케이션Application을 쓰기로 했다.

물론,
오전에는 잡에이전시(Job Agency)에 들러서 일자리가 있는지를 물어보고, 일이 없다고하면 점심도시락을 챙겨서 공장지대를 돌아다녔다.

구글어스(Google Earth)로 퍼스Perth 주변의 공장처럼 보이는 곳의 위치를 확인한 후 그 곳을 돌아다녔다.

운 좋게도 퍼스에서 좋은 사람 몇몇을 만나 일을 구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모두가 형, 누나들이었고 호주에서 1년이상 워킹으로 와 있던 사람들이어서 나에게 많은 이야기도 해 주었는데,

특히, 난 여행중에 호주에 들려 잠깐 돈을 벌고 가야하는 처지라서 시간이 별로 없는 상태였기에 그 사람들의 도움은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퍼스에서 만난 형과 함께 그 형의 차를 타고 프리맨틀Fremantle 주변의 공장을 돌면서 어플리케이션쓰는 요령을 배웠다. - 조금 더 내가 쓴 어플리케이션폼이 눈에 띌 수 있는 노하우를 보고 배웠다. -

그리고,
주변의 공장과 주변 사정, 퍼스 주변의 농장의 정보에 대해서 많은 걸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시즌이 겨울(내가 호주에 처음 왔을 때가 7월 중순, 일을 구하러 다닐때가 7월말 8월초,,호주는 한겨울이었다)이라서 많은 공장들이 인원을 줄인 상태였고, 거기다가 호주경기가 나빳기 때문에 하나같이 사람을 모집하지 않는 다고 했다.
한국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곳까지 돌아다녔으나, 일을 구하기는 힘들었다. 

시간이 지날 수록, 난 점점 더 초조해졌고, 통장의 잔고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나의 건강상태도 더욱 악화되어 갔다. - 많은 나라들을 여행하다보니 몸의 밸런스가 깨어져버렸었다.


그래도 어쩌겠나?
나는 그냥 열심히 알아보고, 돌아다녔다.
매일 아침, 호주 정부에서 운영하는 잡사이트와 몇몇 에이전시사이트에 올라오는 일자리를 확인하고, 에이전시에 가서 일자리를 문의했으며, 돈이 급했기에 돈은 얼마 안되지만 새벽에 청소를 하는 일도 알아 보았다.

그렇게 몇 일 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일을 구하러 다닌지 2주차가 되었다. 이제는 에이전시에서 나를 알아볼 정도가 되었다. 내가 에이전시에 들어가서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오늘 일거리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그리고 일을 구할 수 있는 다른 방법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나중에는 서로 친구먹을 정도 까지 되었다)


호주에서 맞이하는 두 번째 월요일,
드디어!!
에이전시에서 잡을 하나 얻어 내었다. 그리고 일을 하러 당장 떠날 수 있다고 말해놓은 상태였다. 사실은 경험자를 원했는데, 난 별에별 구라를 다 쳐가면서, 할 수 있다고 우겼고, 워킹 세컨비자가 필요하니까 꼭 시켜달라고 떼를써서 하기로 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게...(지금 생각하면 그 때까지도 참 어리석었다. 하지만 글을 쓰고있는 지금은 더 잘 되고 있으니 다행이다)
에이전시에 올라온 다른 일이 조금 더 끌렸다. 벌을치는 일이었는데, 왠지 그 일이 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 일을 시켜달라고 했더니,
"농장간다며?"라면서 정색을 하길래,
"dont worry my second visa. I'd like to bee keeping"이라고 말했다.

그게, 실수였다.
월요일이라서 안그래도 일이 바빠서 스트레스 받는데, 내가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니까 짜증이 난거였다.
알았다고, 일단 기다리라고 해서 기다렸는데,,,,

결국은, 둘다 캔슬이 되었다.

절망.
참 많은 후회가 밀려 들었다.
괜히, 조금 더 좋은 조건에, 뭔가 재미있을 것 같은 일을 해 보려다가
두마리 토끼를 다 놓친 격이었다.

또 다시 느꼈다.

일을 하려거든,
그 일이 있을 때 그냥 무조건 시작하고 나서 계속할 지 그만둘지를 결정해야 된다는 것을.
기회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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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Looking for job!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0. 19.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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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내가 찾아간 백팩(숙소,게스트하우스)은 Coolibah lodge 였다. 호주에 오기 전 호주 VIP카드를 만들었던 나는 숙소 할인도 되고 일자리도 소개해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쿨리바로지에 찾아간 것이었다.

노스브리지(Perth Northbridge)에 위치한 쿨리바로지에 처음 머물렀다. 다른 숙소들에 비해서 가격은 좀 비싼 편이었지만 시설이 괜찮은 편이었고, 잡 게시판에 일자리에 관한 이야기가 종종 올라오긴 했다. 그러나 실상 그 정보는 그리 유용한 것은 아니었다.

다행히, 쿨리바로지에서 스태프로 일하는 사람 중에 한국인이 있어서 여러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퍼스 시내에 위치한 잡 에어전시(Job agency)의 위치와 시즌(날짜)에 따른 일거리 정보였다. 나는 그 스태프의 말을 토대로 퍼스 시내에 위치한 잡 에이전시에 들리기 위한 동선을 만들었다. 그리고 일요일에는 교회에 나갔다. 교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에게 "일자리를 구하기가 많이 힘들어 졌다"고 말했다. 나는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빨리 일을 구해서 돈을 번 다음 다시 여행을 떠나야 했기에, 교회 사람들의 말은 나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나는 부지런히 움직이지 않으면 안되었다.


- 월요일,

아침 일찍, 잡 에어진시를 찾아갔다. 백패커 스태프가 말해준 에어진시 위치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4군데 정도 둘러볼 예정이었다. 

 퍼스 시티에 있는 주요 잡 에어전시로 Aussi job, The job shop, Traveller's Club(나중에 Traveller's club는 the job shop과 통합되었다) 세 군데 정도가 있었다. 처음 찾아간 곳은 Traveler's club 이었는데, 그곳의 매니저는 내가 찾아가자마자 좋은 농장 일이 있다며 나에게 가 볼 거냐고 말했다. 캐시잡(Cash job) 시급 18달러, 3개월 이상 가능. 나는 갈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공장일이 더 하고 싶었던 나머지 오후에 다시 찾아오겠다고 했다.(그러지 말았어야 했지만, 그 땐 그 사실을 몰랐다)

 그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Aussi job이었다. 찾아갔을 때 마침 일거리가 있다고 했다. 그것도 농장일이었는데, 푸르닝(포도나무의 가지를 자르는 일)이었다. 이건 한 달짜리 일이었다. 나는 공장일이 하고 싶었기 때문에, 짧게 한 달 정도 농장에서 일하고 다시 공장일을 알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Aussi job에서 주선해 주는 일을 하기로 결정했지만, 그날은 농장주와 연락이 되지 않아 다음날(화요일)에 다시 오라고 했다. 그래서 Traveller's club에서 주선해 준 일은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공장에 이력서를 돌리며 돌아다니는 일은 고독하고 힘들었다>



-화요일,

내가 어제 큰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Aussie job에서 주선해 준 일이 성사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Traveller's club에 찾아갔으나 3개월 짜리 농장일은 이미 다른 사람이 가져간 뒤였다. 나는 그 때 생각했다. 기회는 주어졌을 때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 일단 무조건 'OK'를 외치고 나서 일을 하고 안하고를 결정해야 했다는 것을.


그 이후 나는 약 2주간 일을 구하지 못했다. 교회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다고 들은 것이 실감났다. 전 세계적인 불경기 속에서 한국, 일본을 비롯한 세계 각지의 청년들이 호주로 몰려들어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라는 사실.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매일 아침, 잡 에이전시가 문을 열면 일이 있는 지 확인하고 난 뒤 공장에 어플리케이션(Application, 자기소개서)를 쓰러 다녔다. 매일 아침 첫 손님으로 에이전시에 가서 얼굴 도장을 찍다 보니 에이전시 직원과 친해질 정도였다. 일이 있든 없든, 나는 웃으며 에이전시를 빠져나왔다. 내가 긍정적이고 부지런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야 했다



- 그러던 어느날, 

잡 에이전시에서 전화가 왔다. 농장에 일자리가 생겼는데 일을 할 수 있냐는 전화였다. 나는 기쁜 마음에 당연히 'Sure'라고 외쳤고, 그렇게 농장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여행중인 나에게 더 이상 돈만 쓰면서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돈이 필요했다. 선택할 여지 없이 나는 바로 농장으로 떠나기로 했다.

<퍼스 북쪽에 있는 작은 마을 불스브룩(Bulls brook) 근처에 있는 와인 농장. 첫 번째 농장이었다>



- 사실,
호주에서 일을 구하기 어렵다는 말들이 많다. 하지만, 자기만 열심히 한다면 길은 열려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별로 노력도 하지 않고 일을 구하려고 한다. 물론 운이 좋아서 일을 구할 수 있는 경우도 생기는데, 그건 정말 '하늘의 별따기'라는 말이 실감난다. 자신이 노력하지않으면 운도 따르지 않는 법 이다.

나는 매일 에이전시에 가서 눈도장 찍고, 공장도 여러군데 돌아다니고 열심히 발품을 팔았다.
하지만 많은 한국인들은 그저 시티잡을 구하기 위해 이력서(Resume)같은 걸 시티에 있는 레스토랑에 돌리기만 하고, 에이전시에는 가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많았다.하지만, 꾸준히 노력하면 기회는 반드시 오게 되어 있는 법이다. 많은 사람들이 워킹홀리데이를 와서 일을 구하지 못해 한국으로 다시 돌아간다는데, 자기 노력의 부재라고 볼 수도 있다.
난, 일을 구하기 위해서 잡 에이전시에는 매일 출근했고(Aussi job은 소스가 오픈되지않아서 매일 찾아가야 했고, the job shop은 홈페이지에 소스가 오픈되어있어서 자기가 일을 선택할 수 있었다(http://www.thejobshop.com.au). 그 결과 Aussi job 매니저가 나에게 전화를 해 주었다.
결국 호주에 온 지 16일째 되는 날 겨우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내가 호주에 오기전 생각했던 기간보다는 오래걸렸지만 생각하던 것 보다 시급이 높아서 다행이었다.

나는 일을 시작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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