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지도 없이 길을 헤매도, 그저 I♥NY(3) - New York City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4. 4. 26. 14:41

반응형

1. 지도, Map.
 
  역사 교과서나 위인 전기를 통해서, 혹은 다른 여러가지 매체를 통해서 한 번 쯤 들어 봤을 법한 이름이 있다. '김정호'. 조선시대에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다는 사람. 물론, 그 전에도 지도를 그렸던 사람은 많지만, 그의 이름이 아직까지 불려지는 이유는 아주 '정확하게'지도를 그렸기 때문이리라.

  여행을 가거나 어딘가를 찾아갈 때, 지도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여행을 하는데 있어서 지도는 아주 중요하다. 지도 없이 어딘가를 찾아 가겠다고 길을 나선다면 하루종일 길을 헤매면서 하루를 다 허비할 지도 모른다. 지도가 있어도 지도를 잘 볼 줄 모른다면 길을 헤멜 지도 모르지만, 지도가 있으면 현지인들에게 길을 물을 수가 있다. 요즘은 스마트폰의 지도 서비스가 아주 좋기 때문에 이제는 '디지털 지도'를 사용하여 쉽게 길을 찾기도 한다.

  지도를 보며 골목길을 누비다가 목적지에 도달 했을 때의 기쁨. 그 순간에는 택시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 했을 때는 느낄 수 없는 성취감이 있다. 가끔은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끼리 이쪽이니 저쪽이니 티격태격 하다가도, 서로 의견을 잘 교환하여 목적지에 제대로 도착했을 때는 서로간에 돈독한 신뢰를 쌓을 수도 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는 사실[지도를 잘못 보고 이상한 곳을 헤메다가 결국 싸움에 이르게 되는 될 수도 있으니 조심하자].

  우리는 여행을 다니든, 일상 생활을 하든 '지도(Map)'라는 이름이 붙은 다양한 것들을 접한다. 지도는 알게 모르게 우리의 생활속에 스며들어 있다.


2.서울의 지도, 서울의 길.


   전 세계의 여느 대도시가 그렇듯이 서울에는 무수한 지하철 노선이 얽히고설켜 있다. 지방 작은 도시에 사는 사람이 서울에 올라와서 지하철 노선도를 처음 보게되면 눈이 휘동그래 진다. 지하철 노선도는 내가 어디에서 어디로 가야할 지 골똘히 생각하게 만든다. 

  함께 자취를 하던 친구와 주말마다 오토바이를 타고 서울 관광 안내 책자에 나오는 서울의 관광 명소를 돌아다니던 때가 있었다. 큰 도로를 벗어나 작은 골목길이나 좁은 도로를 지날 때,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서 헤매던 기억이 있다. 구불구불 꼬여있는 서울의 골목길은 저 길이 이 길 같고, 이 길이 저길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도가 있었지만, 길을 찾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우리가 찾던 목적지가 나오기도 했다.


3. 뉴욕 지하철 노선도(New York Metro Map)

  JFK공항(John F.Kennedy International Airport)에서 맨해튼의 125th Street까지 지하철을 타고 이동 했다. 125번가는 할렘의 중심가였다. 그 곳에 위치한 숙소가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가장 저렴한 숙소 중 하나였기에 나는 서슴없이 그곳으로 이동했다. JFK 공항에서 출발하여 두 번 지하철을 갈아타고나서 125번가 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게스트하우스에 비치된 뉴욕 관광 안내 지도를 집어 들었다. 그 지도의 한쪽 면에은 큼직하게 뉴욕 메트로 맵이 뉴욕의 지도와 겹쳐져서 그려져 있었다. 아주 간략하고 보기 좋게.


  나는 뉴욕 지하철 지도의 역 이름을 살펴 보던 중 한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지하철역 이름과는 좀 다른 역 이름들. 우리나라의 지하철역이름은 그 동네의 지명이나 큰 건물의 이름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예를 들면 3호선의 대화, 구파발, 불광, 홍제, 옥수, 약수, 압구정 등] 그렇지만 뉴욕 지하철의 역들은 대부분 그 거리의 이름을 지하철 역이름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특히, 맨해튼의 경우 그 특징이 두드러 졌다.



△ 뉴욕 지하철 노선도(New York Metro Map)


 맨해튼은 가장 아래 쪽, 남쪽의 1st street부터 북쪽으로 가면서 동서로 가르지르는 길에 번호를 부여해서 길 이름을 구성하고 있엇다. 1st, 2nd, 3rd, 4th, 5th .... 10th, 100th, 125th street...이런 식으로 동서를 가르지르는 도로에는 스트릿(street)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남북을 가로지르는 길에는 way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었다. 그래서 맨해튼을 남북을 가로지르는 대표적인 길이 바로 '브로드웨이(broad Way)'이다.  지하철 역들은 주로 street 넘버를 지하철 역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같은 스트릿(Street)의 동쪽과 서쪽에 서로 다른 지하철 노선이 지나가는 경우에는 동일한 지하철 역 이름을 가지고 있었기에 나는 종종 실수로 다른 역에서 내리곤 했다.

  내가 가장 눈여겨 본 지하철 역은 나의 숙소가 위치하고 있던 125th Street와 42nd Street의 타임스퀘어 역이었다. 그 외에도 20번가, 7번가 등 많은 역들이 거리 이름으로 되어 있어서 그곳을 지도에서 그곳을 찾아 이동하기가 아주 쉬웠다.


4. SOHO부터 Wall Street까지.
 

   소호(SOHO)에 가 보고 싶었다. 예전에는 화랑이 즐비해 있었다지만 높아진 임대료로 인해 화랑들은 이제 주로 첼시 쪽으로 이동하거나 더 먼 곳으로 서서히 이동하고 있다고 했지만 '화랑'의 흔적을 찾고 싶었다. 소호는 패션의 거리가 되어 가고 있다고 들었다. 론니플래닛 뉴욕 시티(Lonely planet, New York City)에 나온 안내에 따라 지하철 역에서 내렸지만, 그곳이 소호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그곳이 소호라고 해서 '여기가 소호 입니다'라는 안내판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소호역'이라는 말도 없었으니 나는 그저 사람들을 따라서 걸을 수 밖에 없었다. 왠지 내가 가는 곳이 '소호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무작정 사람들이 많이 가는, 젊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뒤쫓았다.


    

△ 리틀 이탈리아와 차이나타운은 붙어 있다.


  길을 걸으며 거리 곳곳에 파편처럼 흩어져 있는 예술의 흔적과, 건물들의 모습에 취해 셔터를 누르다 보니 어느새 내가 와 있는 곳은 '리틀 이탈리아(Little Italy)였다. 언젠가 '리틀 이탈리아'에 대해 읽은 기억이 났다. 차이나타운 근처에 위치한 '이탈리아 타운'. 조금 더 걸으니 '차이나타운(China town)'이 나왔다. 그러면서, '차이나 타운의 지하로 잘못 들어가면 영영 빠져나올 수 없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차이나타운의 지하는 미로처럼 얽혀 있어서 뉴욕 경찰들도 그곳으로 들어가는 것을 꺼려한다는 이야기.

  차이나타운의 한 테이크아웃 음식점에서 사람들이 음식을 사 가는 모습을 보니 배가 고파왔다. 메뉴를 고른 만큰 돈을 지불하는 방식이었는데, 가격은 저렴했다. 음식을 사 들고, 근처에 있는 공원에 앉아 배를 채운 다음 다시 발걸음을 남쪽으로 옮겼다. 점점 더 소호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남쪽으로 내려가자 NYPD(뉴욕 경찰서)건물이 나왔고,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더 이상 이쪽으로 오지말라고 소리쳤다. 나는 방향을 서쪽으로 돌려 계속 걸었다. 법원 같은 건물이 나왔고, 나는 다시 지하철 역으로 들어갔다. 42번가로 돌아가려 했으나, 나는 지하철을 잘못 타버렸고 브루클린 브리지(Brooklyn Bridge)를 건넜다. 맨해튼을 떠나 브루클린으로 가고 있었다. 맨해튼의 야경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5. SOHO에서 타임스퀘어까지.

  나는 다음날 또 다시 소호를 찾았다. 이번에는 다른 지하철 역에서 내렸다. 왠지 그곳이 소호의 중심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을 빠져나오니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그리고 많은 유명 브랜드의 매장이 깃발을 펄럭이며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제대로 찾아온 것 같았다. 아메리칸어페럴, 유니클로, 바나나리퍼블릭, 게스, 디씨슈즈 등의 많은 해외 유명 의류 브랜드들이 내 눈에 띄었다. 호주에서 자메이카까지 6개월 이상을 보내면서 나는 여름 옷만을 가지고 있었고, 뉴욕의 추위를 견디기 힘들었다. 소호의 여러 의류 매장들을 돌아다니며 옷을 구입했다. 통장 잔고는 조금씩 줄어들었지만, 추위를 막을 수 있다면 통장의 잔고가 줄어드는 것은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 소호 거리에 있는 게스(guess)매장과 젊은 이들.

  
   소호의 거리들을 돌아다니며 쇼핑을 하고, 사진을 찍고, 거리의 분위기를 관찰했다. 거리의 분위기를 밝고 활기가 넘쳤으며, 다양한 먹거리들이 즐비하고 있었다. 북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뉴욕대(NYU)를 지나 42번가 까지 갔다. 42번가는 타임스퀘어 근처에 위치한 곳이라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붐볐다. 해가 저물고, 현란한 불빛이 하나둘 거리를 메우기 시작했다. 기온은 조금씩 더 떨어지고 있었다.

 

△ 뉴욕대(NYU)지하철 역(왼쪽)과 뉴욕대 근처 공원의 개선문(오른쪽)

 

  숙소 근처에 위치한 유명한 재즈 카페에서 재즈 공연을 볼 생각을 한 나는, 간단히 식사를 하고 재즈 카페를 찾았다. 재즈 공연을 보기 위한 사람들로 카페는 붐비고 있었다.



6. 길 찾기가 쉬운 맨해튼.

  전형적인 바둑판식 도로가 깔려 있는 맨해튼. 맨해튼의 중심에는 센트럴파크(Central Park)가 있고, 그 오른쪽을 이스트사이드(East Side), 왼쪽을 웨스트사이드(West Side)라 부르고 있는 곳. 1번가(1st street)부터 약 130번가까지 차례로 하나씩 숫자를 붙여 나가며 동서를 가로지르는 길이 있는 곳. 남쪽을 향해 계속 길을 걷다 보면 1번가와 2번가가 나왔고, 배터리 파크에 서서 강 저 멀리를 바라보면 자유의 여신상이 서 있었다.


 

△ 42번가 역 안(왼쪽)과 42번가 역을 나왔을 때 만날 수 있는 풍경.



  나는 20번가와 42번가 사이를 수 없이 왔다갔다 했고, 그렇게 다니다 보니 어느새 맨해튼은 지도 없이도 다닐만 한 곳이 되어 있었다. 나는 맨해튼 말고 주변 지역(롱아일랜드, 브루클린, 퀸즈)도 돌아다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미국에 유학와 있는 친구를 만나러 뉴저지에도 가 보고, 롱아일랜드, 퀸즈, 브루클린의 여러 패션 아이템 샵에도 들러 좋은 패션 아이템을 찾아보거나, 거리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뉴욕은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오는 그런 곳이었다.




 

△ 42번가를 향해 가는 길(왼쪽)과 42번가 주변(오른쪽)


△ 차이나타운 관광 안내소


반응형

Ep] 몽골, 루마니아 외 - 슬픈 눈빛, 때묻은 손을 나에게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4. 1. 27. 02:06

반응형

1. 구걸, 구걸하는 사람들.

  길을 걷다보면 마주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지하철을 타도 자주 마주칠 수 있다] 여행을 하다보면, 더 자주 마주치게 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당신에게 다가와 손을 내민다. 그리고, 애절한 눈빛을 함께 당신의 시선 속에 던진다. 그리고 간혹 이런말을 함께 당신의 주변에 맴돌게 하기도 한다. One Dollar.

  그 사람들이, 그 아이들이. 구걸을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일까? 아니면 그가 그렇게 구걸을 하게 만든[특히, 외국인을 상대로 구걸을 하는] 사회 제도, 구조가 잘못된 것일까? 결론을 쉽게 내릴 수 없을 것 같다[아마도 이 문제는 생각하는 사람에 따라서 다른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여행을 하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들[구걸을 하는 아이들, 사람들]에게 돈을 쥐어준다. 그들이 외치는 원 달러. 원 달러를 외치는 이들에게 있어서 원 달러의 가치는 비교적 크다. 하지만 그에 반해, 원 달러를 건내주는 사람에게 있어서 원 달러의 가치는 너무나도 작은 것이 일반적이다[자기 나라(본국)의 화폐 가치에 비교 했을 때]. 그러기에, 그들은 쉽게 원 달러를, 원 달러를 외치는 이들이게 건네준다.

  혹자는 '그들'의 행동이 잘못되었고, 그런 행동을 되풀이 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혹자는 '그들'의 행동은 사회적 약자의 행복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도와 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누구의 말이 옳고, 그르다고 말할수는 없다. 그것은 각자가 가진 가치관의 문제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의 문제이고, 그 동안 그들 자신이 쌓아온 경험의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들에게 손을 내미는 '그들'은 최소한 사회적 강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2. 작은 바구니를 품에 품고,

  지하철 차량을 연결하는 통로의 문이 열리고, 잡음섞인 음악 소리가 작은 기계를 통해서 열차 안에 울려퍼진다. 누군가는 얼굴을 찌푸리고, 누군가는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로 그 사람이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지하철 차량 속의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 손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거나, 그 사람이 지나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다가 간혹,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한 손에 들려있는 바구니에 지폐 한장 혹은 동전 몇 개를 집어 넣는다. 그렇게 음악을 짊어진 사람은 유유히 다른 열차칸으로 사라져간다. 잡은 섞인 음악의 파편만을 열차칸에 남겨 놓은채.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뉴스에서는 장마라고 떠들어대고, 비 피해를 조심해야 한다고 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우슨을 펼쳐들고 거리를 돌아다녔고, 그들이 지하보도로 들어섰을 때 하늘로 향하던 우산을 땅을 향했고, 하늘에서 우산위로 떨어지던 물방울은 우산에서 땅으로 떨어졌다. 물방울은 바닥을 적셨고, 이내 작은 바구니를 앞에 두고, 바구니를 향해 엎드려 있던 사람의 무릎을 적시는 듯 했다.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역사를 빠져나오는 길의 풍경은 이랬다.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의 시선은 그들의 뒷통수만 살짝 스쳐 지나갈 뿐, 그들의 바구니를 무겁게 채워주지는 못했다.



3. 기차는 국경을 넘어, 

  테살로니키를 오후에 떠난 기차는 북쪽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리스 북부지방을 지나, 마케도니아 국경을 지나려 하고 있었다. 국경을 지나기 위해 정차한 기차에는 국경 기차역의 고요함이 스며들고 있었다[기차를 타고 국경을 지나본 사람이라면 알 법한 느낌]. 새 소리가 울려퍼지던 그 때, 내가 타고 있던 칸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꾀죄죄한 얼굴의 한 여자가[30대 중반정도의 얼굴]가 나를 슬픈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알아 들을 수 없는 말로 나에게 말을 걸어 왔다. 나에게 조금 다가오면, 손을 내 밀었다. 그녀의 뒤에는 작은 꼬마가 그녀의 옷깃을 잡고 있었고, 나의 시선은 꼬마에게 잠시 머물렀다가 그녀의 손을 향했다. 그녀의 손에는 유로화 동전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그녀가 했던 말을 생각 해 보았다. 나에게 동전을 달란 말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케도니아를 지나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로 가는 기차에서 유로화 동전은 쓸모 없는 것이었다. 마케도니아에서도 세르비아에서도 유로화는 사용될 수 없는 돈. 골동품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손에 쌓인 동전을 보며, 나는 나보다 돈이 더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을 잠시 했을 뿐, 그녀를 향해 고개를 저을 수 밖에 없었다.  



4. 집시, 집시 아이들.

  시비우(Sibiu)를 지나 머무르던 작은 마을 시기쇼아라(Sighisoara). 그는 기차역에서 그가 타고 갈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역 앞의 작은 상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역 쪽으로 다가가자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 들었다. 그는 어제, 그 동네의 빌라옆 쓰레기통을 뒤지던 한 무리의 아이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아이들은 말을 걸어 왔다. 그러면서 그의 한 손에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가리켰다. 이미 그가 반 이상을 먹은 소프트 콘이었다. 그의 침과 아이스크림의 녹은 부분이 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아이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아이스크림을 받아 먹었다.
  그는 가방에서 자일리톨을 꺼내 아이들에게 하나씩 나눠 주었다. 아이들은 기뻐하며 껌을 받아갔다. 이윽고, 멀리서 기차 소리가 나더니, 서서히 멈춰섰다.

  기차 안은 한산했다. 시골 작은 도시를 출발한 기차는 비교적 큰 도시이자, 많은 기차들이 지나는 브라쇼브(Brasov)로 향했다. 그는 음악을 듣고 있었고, 그의 옆 건너편 칸엔 루마니아 전통의상을 입은 것 같은 여인과 아들, 그리고 남편처럼 보이는 남자가 타고 있었다. 그 여인이 갑자기 그에게 말을 걸어 왔다. 그는 알아 들을 수 없었지만, 그 여인이 사진 찍히기를 원한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는 그들의 사진을 찍어 주었다. 그러자 그 여인이 그에게 뭐라고 말했다. 그는 정확히 그 뜻을 알 수 없었지만, 그녀의 행동으로 보아 돈을 달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지만, 사진에 대한 답례로, 유로화 지폐를 한 장 건네 주었다.



5. 몽골, 초원에는 웃음이 울려 퍼지지만,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백화점 앞에는 관광객들이 여러가지 물건을 사기위해서 몰려든다. 그리고, 그들에게 다가가는 다른 이들이 있었다. 너덜너덜한 옷가지를 입고, 얼굴엔 콧물 흐른 자국이 있는 아이들. 그 아이들은 나에게, 나와 같이 있던 일행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아이들의 모습이 불쌍했지만, 그렇게 관광객들에게 구걸을 하는 아이들이 밉기도 했다. 나와 함께 있던 일행 중 한 명이 그 아이들에게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주려 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사탕'이었다. 그는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인도에서, 내 또래의 일본인과 잠시 동행을 한 적이 있었다. 그는 나와 함께 버스를 타고, 조드푸르로 향하는 길이었다. 조드푸르에 도착했을 때, 숙소로 올라가는 길, 언덕 중턱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 한 무리를 만났다. 그 아이들은 우리 둘을 쳐다보았고, 우리도 그 아이들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갑자기, 그 일본인은 보조가방을 주섬주섬 열기 시작하더니, 그 안에서 사탕을 꺼내서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나는 항상 사탕을 준비해서 다녀요. 이렇게 아이들을 만날 때 마다 사탕을 나눠주면 굉장히 좋아하더라고요."라고 덧붙이며 그는 웃어보였다.

  왜 그 때가 생각난걸까? 몇 달도 더 전에 여행했던, 인도였다. 인도부터 유럽까지. 그리고 또 다시 유럽에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몽골까지 온 나였다. 여기에서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고 있었다.

  구걸하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는 모습. 인도에서 그냥 뛰어놀던 동네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던 모습과는 조금은 다른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어쨌거나, 구걸해서 돈을 얻어가는 아이들이 못마땅했다. 그들은, 충분히 다른 일을 배울 수 있었음에도, 구걸을 배웠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6. 어느 식당, 셋 만의 이야기.

  몽골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세 명의 한국인은 해가 대륙 저편으로 넘어가고, 어둠이 몽골을 덥쳤을 때 저녁을 먹기위해 시내 레스토랑으로 갔다. 광장을 지나서, 조금 더 떨어진 곳. 거리는 어두웠다. 식당안은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지만, 밖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칠흑같은 어둠만이 그 식당을 감싸고 있었다. 그는 창밖을 바라보면서 이 세상에는 그 식당과 그 안에 있는 사람만이 존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낮에 있었던, 구걸하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거리로 떠올랐다. 구걸하는 아이들에게 돈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사람과 그들을 도와 주어야 한다는 또 한 사람. 왜 구걸을 하는 것일까? 라는 질문과 함께 서로의 견해가 테이블 위에 쏟아졌다. 
  
  그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더이상 없기에, 구걸이라는 수단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을 하던 한 사람. 사회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어 버린 거라는 그녀의 말. 그리고 여러가지 이유를 설명하는 그녀의 말은 어느정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다른 견해를 피력하던 그는, 그것은 자신의 의지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 아이들, 그리고 아니가 조금 더 있는 아이들. 그들이 과연 구걸밖에 할 수 없었을까? 그 아이들이 다른 것을 하고자 했다면, 그의 부모나 다른 나이많은 형제가 다른 일을 할 수 있도록 뭔가를 해 주었다면 그들은 구걸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다른 일을 힘들게 배우고, 하는 것 보다 구걸을 하는게 더 쉽고 편하게 돈을 구할 수 있는 일이라는걸 알기 때문에 그들은 구걸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덧붙였다. "내가 예전에, 돈이 없어서 그리스에서 구걸을 한 적이 있었는데, 구걸을 하다보면 욕심이 생기고, 구걸이라는 것이 돈을 정말 쉽게 모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는 걸 알게돼."(http://dwis.tistory.com/563 참조)



7. 단상(短想)

  지하철에서 장님인 척, 구걸을 하는 사람이 지하철을 내리고 역사를 빠져나가면, 고급 승용차를 타고 유유히 사라진다는 말[풍문인지 진실인지는 알 도리가 없지만]을 들은 적이 있다. 구걸로 상당한 수입을 올린다는 말이다. 지하철역이나 길거리에 하루종일 업드려 있는 사람들의 바구니에 얼마 만큼의 돈이 들어가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난 항상 이런 생각을 해본다. 저들은 정말 무언가 다른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일까?

  물론, 구걸도 구걸을 하는 사람의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특히, 경제적으로 발전이 덜되어 사회 전체가 풍족하지 못한 곳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아이들 중, 극빈층에 속하게 되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구걸밖에 없을 수도 있는 것이고, 구걸이 편하고 좋아하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구걸에 대해서, 누가 옳고, 누가 그릇됐다고 가타부타 할 수 없는 것 같다.는 생각.




-해가 저무는 시기쇼아라



- 시기쇼아라 역의 아이들,




- 시기쇼아라의 아이들


-기차 안,



- 불가리아, 집시 가족



- 울란바토르 메인광장






-사원 주변 풍경



- 전통과 현대의 공존



- 어둠이 스미는 광장



-울란바토르 역




- 테를지 국립공원. 이곳엔 아직도 노마드가 있다. 아무 걱정 없이 사는 것 같아 보이던, 말을 타고 달리던 아이들.




반응형

Ep] 시리아, 하마(Hama) - 만난다는 것은 헤어짐과 동의어 (Syria, Hama)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1. 12. 10. 11:05

반응형

1. 만남. 만나다.

  만나다.【…을】누군가 가거나 와서 둘이 서로 마주 보다. 혹은, 인연으로 어떤 관계를 맺다.는 의미로 많이 쓰이는 말이다. 만난다는 것. 그것은 약간의 설렘을 수반한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약속된 시간에, 약속된 장소에서 누군가를 기다릴 때, 그 기다림 속에는 설렘이 깃들어 있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이 좋은 이유는, 만나는 행위가 이루어 지기 전 어떤 일련의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만나기 전, 당신의 마음 속에는 만날 대상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담겨있을 것이고, 그[또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그 사람을 기다리는 행위 속에는 기대감[상대방이 언제, 어떤 모습을 하고 나타날까.같은 부류의 기대감]과 설렘이 있기 때문이다.

  황지우 시인의 시(詩) 중에는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라는 시가 있다.
   네가 오기로 한 그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 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다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에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후략….


  우리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불과 15년 전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약 15년전 유행하던 PC통신 천리안, 나우누리 등에서 서비스하던 채팅을 비롯해서, 인터넷을 이용하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채팅 서비스를 통해 대화를 나누고, 동호회에 가입을 하고 모임을 갖기도 한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대화상대를 찾아 대화를 하고 만남을 가지기도 한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사람을 만나더라도, 그 곳에 항상 존재하고 있는 것은 바로 설렘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설렘이 있던 자리를 이별[헤어짐]이라는 녀석이 채우게 된다. 요즘 처럼, 사람을 쉽게 만나는 시대에는 헤어짐도 더 빨리, 쉽게 찾아오기 마련이다.

  여행.을 하다보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 중에서도, 여행을 하고 있는 다른 여행자들을 만날 수 있다.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여행자들에게는 서로에게 끌릴 수 밖에 없는 요소가 있다. 그들은 서로가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는 사실. 이런 이유로, 여행자들은 서로에게 많은 경계를 하지 않으며, 좀 더 포용적인 마음을 가질 수 있다 . 하지만 알고 있다. 누가 말하지 않더라도, 알고 있는 한가지 사실.

  우리들은 언젠가는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

 
2. 어떤 경우-

  [지금은 상상 할 수 없을지도 모를 사람이 많이 있겠지만] 휴대폰을 가진 사람을 주변에서 찾아보기 힘들던 시절이 있었다[그 시절은 '삐삐'와 '공중전화'그리고 '집 전화'가 긴요한 통신 수단이었다]. 그 시절, 인터넷이라는 것이 서서히 보급되던 시절이었다. 모뎀이 "삐이이-지지직'대는 소리를 내며, 집 전화를 불통상태로 만들면, 온라인 세상이 열렸다. 그 시절, 나는 매일 밤 [PC통신]천리안에서 나와 다른 곳에 사는 누군가와 대화를 하기 위해 채팅방을 찾았고, 다른 사람들이 올린 자료를 보기 위해 자료실을 뒤적거렸으며, 동호회라는 곳에 가입을 해서 여러가지 글과 정보를 공유했다. 
  몇 년 후, 하나포스, 메가패스 등의 초고속 인터넷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하나, 둘씩 천리안을 떠났다[가입해지 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나와 돈독한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은 하나, 둘씩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갔다. 그 때, 미처 나의 연락처를 알려 주기 전에 갑작스럽게 해지가 된 경우도 있었고, [멋있는 척 하며]통신[그 때는 '온라인'을 지칭하던 말]에서 만난 관계는 통신에서 끝내자.라는 말을 하며 관계를 정리하기도 했다.

  천리안, 나우누리 등 PC통신 시대를 지나, 랜선(LAN), 무선인터넷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많은 온라인 커뮤니티들이 활성화 되었다[프리챌, 다모임, 세이클럽...다음 카페, 네이버 카페 등].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끼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교류를 하면서 친분을 쌓기도 하고, 정모를 통해 친목을 다지기도 했다. 그렇게 새로운 만남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그런 만남 속에서도 헤어짐은 늘 존재했다. 갑작스럽게, 친하게 지내던 누군가가, 돌연 - 클럽을 탈퇴해 버리고. 휴대폰번호 마저 바뀌어 버리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 그럴 때면, 이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이제, 그 사람과도 끝났구나.  

  온라인, 통신 매체를 통해서 만난 사람과의 관계는 통신 기기, 통신 매체의 단절이 발생하면- 그 사람과의 관계도 단절이 된다. 어떻게 본다면, 참으로 맺고, 끊기 쉬운 인간관계다.



3.  하마(Hama, 시리아 중부의 도시. 수차(水車)가 유명하다)

  라타키아(Latakia)를 떠난 버스가 하마 버스터미널로 들어오고 있다. 하늘은 파란 바다에 흰 물감을 풀어 놓은 듯 하다. 한 낮의 버스 정류장은 뜨겁다. 태양 나를 비추고 있다. 나는 어디로 가야하지?

  일단, 하마로 돌아왔다. 아니, 돌아왔다고 하기보다는 하마에 도착했다고 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알레포(Aleppo)에서 다마스커스(Damascus)로 향하는 버스에서 몸을 실었을 때, 중간 기착지가 하마였다. 그 때, 나는 하마의 버스터미널에서 차를 마셨다. 옆 자리에 앉았던 한 남자가 버스 티켓에 붙어 있는 쿠폰으로 차를 마실 수 있는 곳을 안내해 줬었다. 하마로 이렇게 일찍 돌아올 줄 몰랐다. 나는 막막했고, 피곤했다. 어제는 라타키아 버스터미널의 벤치에서 노숙을 했다.

  지도 한 장 없다. 어디로 가야 할 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바로보고 있는 방향도 모른다. 아는 사람도 없다. 아랍어도 할 줄 모른다. 도대체, 지금의 나는 할 줄 아는게 없다. 나는, 버스터미널 주변에서 사람들에게 말했다. 시계탑이 어디에 있는 줄 아냐고.

  터키 아다나에 있을 때 인터넷으로 검색을 했다. 하마. 하마에 가면 리아드 호텔(Riad hotel)이 있다. 그 곳은 한국 사람들과 일본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그럼, 그 곳으로 가면 뭔가 정보를 얻을 수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 하마에 가면 리아드 호텔로 가면 되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지금, 리아드 호텔에 가고 싶지만, 갈 수가 없다. 어디로 가야하지? 몰랐다. 딱, 한가지만 빼고.
호텔 근처에, 시계탑이 있다는 정보. 시계탑으로 가면 뭐라도 해결 되겠지.라는 생각에 사람들에게 말했다. 클락타워. 클락타워. 사람들은 알아 듣지 못했다. 내 손목의 시계를 가리키며, 타워, 타워를 외쳤다. 나에게 시간을 가르쳐 준다. 시간은 나도 알고 있다고!



4. 시계탑.

  태양이 큰 배낭을 메고 있는 한 남자를 비추고 있다. 그는 지쳐 보인다. 사람들에게 뭔가 도움을 요청하는 듯 했지만, 만족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는 시계탑을 찾아가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근처에 있는 리아드호텔을 찾아가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는 생각 했다. 시계탑은 보통, 시내에 있다. 그럼 시내로 가자.라고. 그리고, 다시 말했다. 시티, 시티 센터. 그러자 한 남자가, 손짓을 한다.

  그는 그 곳으로 몸을 움직였다. 작은 미니버스를 타는 곳이다. 거기서 물었다. 클락 타워, 시티, 시티 센터. 작은 봉고가 그를 싣고 달리기 시작했다. 운전기사가 그에게 뭔가 말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대답했다. 클락 타워, 리아드 호텔, 시티 센터. 그 때, 보조석에 앉았던 남자가 리아드 호텔! 이라는 말을 내뱉는다. 작은 봉고는 어디선가 멈췄고, 나에게 내리라고 한다. 그러더니, 보조석에 앉은 남자가 손짓했다. 리아드 호텔쪽을 가리켰지만, 그는 거기에 리아드 호텔이 있는 지 모른다. 그는 그 쪽으로 걸었다.

  거리의 사람에게 물었다. 리아드 호텔? 지나가던 사람이 손짓했다. 저- 쪽. 그는 손끝이 가리키고 있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 곳에 있었다. 리아드 호텔. 그는 구세주를 만난듯 마음이 놓였다. 뭔가- 대단한 것을 발견한 것 같이 기뻤다. 오! 리아드 호텔! 나의 구세주여. 라고 외치며 그 곳으로 달려갔다.

  그는, 프론트로 가서 체크인을 했다. 돈을 지불했다. 안내를 받았다. 4인 도미토리룸이다. 프론트에서는 너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거야.라는 말을 남겼다. 내친구들? 이라고 그는 반문했다. 프론트에서는 대답없이 웃음을 지었다. 그가, 호텔 한쪽의 침대에 짐을 풀고, 샤워를 하고, 누워서 쉬고 있을 때 - 한 무리의 남자들이 들어왔다. 3명의 남자. 셋다 일본인이었다. 아, 내 친구들. 프론트의 남자는 그가 일본인 인줄 알았나보다.

  그는 키친을 어슬렁 거렸다. 저녁에 뭘 먹을까? 일본인 룸메가 추천해준 파르페 가게에 가서 사 먹을까? 아니면, 가방에 든 재료를 가지고 음식을 해 먹을까. 그러다가, 한 무리의 한국인들을 만났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그는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한국 사람들이었다.



5. 밤거리.

  저녁, 윗층 주방 옆 식탁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한국 사람 여럿이서 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나는 혼자 였지만, 그들에게 인사를 하고 합석을 한다. 간단하게, 소개를 한 후- 염치 없이 음식들을 나눠 먹는다. 아, 내일은 뭐할지 모르겠어요. 아직 정해진 게 없어서. 내일은 그냥 하루 푹 쉬면서, 뭐 할지 좀 생각해 봐야 겠어요. 

  오랜만에 푹-잤다. 오랜만에 마음이 편하다. 걱정없이, 편-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시장을 둘러보고, 사진을 찍는다. 사람 사진, 풍경 사진. 거리를 걸으며,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한다. 차도르를 걸친 여성들. 불편하지 않을까?

  숙소로 돌아 왔다. 어젯밤 보았던, [나보다 어려 보이는]여자애가 서 있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오늘 뭐했어요? 그냥, 길거리 돌아다녔어요. 오, 저도 그냥 돌아다니다가 들어왔는데, 어디 좋은데 발견했어요?. 아니요, 그냥 그랬어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역시, 나보다 어리다. 잠시-지만, 그 여자애가 부럽다고 생각해 본다. 그리고, 잠시- 대단하다고 생각해 본다.  

  나에게 말했다. 오빠, 그거 봤어요? 아까 돌아다니다 보니까, 길거리에 찐옥수수 팔던데. 찐옥수수? 먹어봤어? 나 완전 그런거 좋아하는데. 아, 진짜요? 나도 그런거 좋아하는데, 먹으러 갈래요?. 좋지- 진짜 오랜만이다, 그런거 먹는거. 우리는 거리에서 찐 옥수수를 사 들고, 길 옆에 앉아 목수수를 먹는다. 내가, 생각하던 한국의 맛은 아니지만 그래도 좋았다. 중동[모든 것이 이국적으로 느껴지는 곳]에서 한국에서만 맛 볼 수 있을 법한 그런, 한국적인 느낌이 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이런 곳에서 그런 음식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며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내일은 뭐해?. 내일, 전 크락데슈발리에 가보려고요. 크락데슈발리에? 들어 본 것 같은데,, 어제 같은방 일본애들이 갔다왔다던 곳인가?. 아마 그럴거에요, 여기서 꽤 유명한데. 아, 그래? 난 아는게 없어서. 일본 애니 '천공의 성 라퓨타' 모델이라던데, 이쁘다고 하더라고요. 아, 한 번 가봐야 겠네. 같이가요, 내일. 그러자. 거기, 가는 방법도 까다로워서 혼자 가려면 힘들다던데, 잘됐다.  

  우리는 거리를 걷는다. 어느 작은 갤러리에 들러, 그림을 구경한다. 시리아- 사회주의 국가, 독재 국가. 속에서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유에 대한 갈망들이 작품속에 드러나 있음을 느꼈다. 갤러리를 관리하는 사람이 우리에게 차를 한 잔 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여자애가 덧붙였다. 전, 중동와서 이렇게 차를 얻어 먹을 기회가 많네요. 훗- 웃음을 머금었다.

  어둠이 깔린 하마 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카페에서 차를 마시는 사람, 거리 곳곳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 거리는 여유로워 보였다. 무덥지 않은- 가끔은 건조함이 몸 속을 파고드는, 건조한 공기가 피부를 감싸고 있는 도시. 우리는 호텔로 발걸음을 옮겼다.



6. 크락데슈발리에.

  도시에 태양이 서서히 비치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호텔을 나섰다. 아직은 도시가 달궈지기 전이다. 호텔 근처의 빵가게에서 빵을 샀다. 빵을 많이 사지는 않는다. 적당히. 둘 다, 아침을 가볍게 먹는다. 점심 식사도-간단히 적당량만. 배부르지 않게. 큰 버스를 타고, 작은 봉고차를 타고, 크락데 슈발리에로 간다. 그들은 한 번, 버스를 잘못타서 도시를 뱅뱅 돌았다. 이런-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 싶더니, 역시나 였다. 그들은 우여곡절 끝에 크락데 슈발리에에 도착했다.

  마을의 산등성이. 그 위에, 하얀- 성이 홀로 우뚝 서 있다. 십자군 성(城). 그 옛날 십자군 전쟁때 이곳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 했겠지.라고 그는 생각했다. 학생 할인으로 입장권을 끊고 안으로 들어갔다. 긴-통로. 성은 크다. 좀 이른 시간이라서 그런지 사람이 많지는 않다. 조용하다. 햇살이 성의 무너진 틈새와 작은 창을 통해 들어왔다. 통로의 어둠은 작은 구멍을 통해서 들어오는 빛에 의해 상처를 받기 싫은 듯, 주위로 물러나 있다. 그는 작은 창으로 바라보는 바깥세상은 아름답다.고 생각해 본다.

  그는, 작은 배낭 하나와 잠베를 들고 왔다. 바람이 성의 망루에 서 있는 그들의 피부를 스쳐 지나간다. 그녀가 말했다. 오빠, 잠베 연주좀 들려 주면 안돼?. 그는 조용한 곳에 앉아 잠베를 연주 해 볼 요량으로 잠베를 들고왔던 터라, 성의 망루에서 잠베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둔탁한 음이 무너진 성의 벽돌을 두드린다. 고요한 가운데 울려 퍼지는- 잠베의 둔탁함. 곁은 지나던 관광객들은 잠시 멈추어 그 모습을 지켜 보기도 한다.

  그들은 성의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녔다. 사진을 찍고, 올라가고, 내려가고. 바라보고. 어느덧 태양은 머리위를 지나 슬슬, 서쪽을 향해 가고 있다. 사진 찍어 줄까?. 그가 말했다. 그녀는 거절한다. 난, 내가 나오는 사진은 안찍어. 그의 카메라로, 한 컷 찍어주려 하자 그녀는 거절한다. 안찍어도 돼, 괜찮아. 
  그도, 그 자신이 나오는 사진을 잘 찍지 않지만, 그래도 가끔은 자신이 나온 사진을 찍고 싶을 때가 있긴 했다. 하지만, 절-대. 자신의 사진은 찍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크락데슈발리에를 떠나는 차를 타기위해 그들은 성에서 내려왔지만, 그들을 싣고 그곳을 떠나 하마로 돌아가 줄 자동차는 없었다. 그들은 성 아래 마을을 향해 내려왔다. 그는 말했다. '히치'해서 갈까?



7. 다시, 하마.
 
  카페에서 맥주를 마신다. 하마, 왠지 편안한 느낌이 든다. 그녀는 하마를 떠나면, 이집트를 향해서 간다고 한다. 나는 반대 방향이다. 나는 이제부터 계속 북쪽으로 가야한다[물론 반드시 가야하는건 아니지만]. 서로의 가까운 미래에는 서로의 여행 계획이 있다. 그녀는 이집트로 간 다음, 그리스를 거쳐 이탈리아로 간다고 했다. 이탈리아에서 방학을 맞아 이탈리아 여행을 온다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나는 터키를 지나, 그리스로 간다고 했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우리가 그리스에서 우연히 만날 수도 있겠네.라고 말한다. 풋- 그럴리가.

  나는 그리스를 지나, 러시아 상트페트르부르크까지 북쪽으로 북쪽으로, 그리고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야한다. 그래, 그게 내 계획이다. 여행의 수 많은 목표 중 하나다. 여행자에게는 자신의 여행 목적, 목표에 대한 집념이 있고, 그 집념을 깨기는 어렵지.라고 생각해 본다.

  아침, 하마에는 여전히 건조한 공기가 머무르고 있었고, 태양이 공기 사이로 파고 들었고, 빵집에서는 빵이 구워졌다. 나는 오늘 하마를 떠나 알레포로 간다. 
  큰 길가에서, 버스터미널로 가는 봉고차를 타기 위해 호텔 문을 나섰다. 몇 명의 여행자들이 배웅을 나온다. 오랜 시간 그들과 함께 한 것 같지만, 사실은 며칠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아쉽다는 마음이 든다.

  호텔에서 봉고차를 타러 가는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이 든다. 그녀에게 이메일 주소나 페이스북 주소라도 알려줄까. 말까. 다른 사람들의 주소라도 물어볼까. 말까. 길가에서, 봉고를 기다리며 그녀의 얼굴을 쳐다본다. 오묘하다. 그녀도 아쉬워 할까? 
  여기 까지 걸어오는 길에, 결정을 내렸다. 우리가 인연이 된다면, 언젠가 또 다시 만날 기회가 있겠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입 밖으로 한 마디 말이 흘러나와 바닥에 떨어졌다. 여행 잘 해. 어색한 미소가 그 뒤를 따른다.

  만난다는 것은 헤어짐과 동의어. 여행은 수 많은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면서 완성되는 것이다. 라는 말을 만들어 봤다.






- 성 위에서,



- 성 벽의 통로.


- 햇살



- 그림자,


- 마을의 아이들. 거인과 난장이


- 우리를 큰 길까지 태워다 준, 배달부.


- 리아드 호텔



- 하마의 수차.


- 수차와 수로


- 하마의 시계탑

- 갤러리, 입구.

       

반응형

Ep]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 베로니카를 만나러, 류블랴나, 류블랴나(Slovenia, Ljubljana)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1. 6. 19. 23:30

반응형

1. 책 또는 영화 속 주인공을 찾아서.

  영화나 드라마, 책을 보다 보면, 간혹 그 배경이 되는 장소에 가고 싶다는 충동을 느낄 때가 있다[실제로 테마 여행이라고 해서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곳들을 찾아다니는, 소위 말해, 영화 여행을 하는 사람을 본 적도 있다]. 영화나 드라마의 경우, 그 배경을 실제 화면을 통해 볼 수 있기 때문에 그 장소가 아름답다거나 멋있다는 것을 보는 순간 알 수 있다. 또한 영상을 바라보면서 그 곳에 가고 한 번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장소에 대해 명확한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책을 통해 어떤 특정한 장소를 접했을 때는 그렇지가 못하다[이게 책의 매력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책을 읽으면, 생각을 하게 된다[책의 내용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면서 읽기 때문에]. 어떤 인물이 나온다면 그 인물에 대해서 상상하게 된다. 아름답게[혹은 멋있게] 묘사된 주인공에 대해서. 그리고 그 주인공과 더불어 평화롭거나 아름답게 묘사되고 있는 배경에 대해서. 책에서는 배경이 아름답게 묘사되지 않고 있더라도[언급조차 하지 않을 수 있다], 주인공이 사건을 전개해 나가는 그 배경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어, 이미 당신의 머릿속에는 배경의 이미지가 형성되어져 있을지도 모른다.그 묘사되고 있는 배경에 대한 궁금증은 증폭되어, 이미 머릿속에서 [자신의 경험에 기초하여]그 모습이 그려지고 있을 수가 있다.  

  파울로 코엘류의 소설들
[그의 소설들은 그의 다양한 여행 경험을 담고 있다]. 그의 소설들 속에는 다양한 주인공들이 있고, 다양한 배경이 있다. <연금술사>의 양치기와 그의 여정. <프로토벨로의 마녀>의 마녀와 그 배경이 되는 영국과 루마니아 시비우(Sibiu). <순례자>의 주인공과 스페인 산티아고길에 대한 흥미와 다양한 묘사들. 여행을 다닐 때[여행을 다니기 전에도 마찬가지였지만] 가장 흥미롭게 읽을 수 있고, 여행을 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소설을 뽑으라면, 파울로 코엘류의 소설들을 뽑을 수 있다[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의 소설들은 그 여행지에 대한 새로운 인상을 심어준다. 그리고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의 책들도, 생각하는 여행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이 두 사람[파울로 코엘류와 알랭 드 보통]이 함께한다면, 상상력을 통해 재구성된 생각하는 여행을 할 수 있다.


2. 작가의 흔적을 찾아서.
 
   김유정 문학관. 이효석 문학관. 구상 문학관. 정지용 문학관. 서정주 문학관. 그리고 각 작가의 생가(生家)들. 지방자치단체들은 많은 돈을 들여서 그 지방 출신의 작가들이 남겨놓은 흔적을 손질하고 다듬어 놓았다[이미 사라져 버린 것은 재현시켜 놓기도 했다]. 

  정지용의 생가를 찾아가서, 그 주변을 둘러 보고, 안내 책자를 읽거나 설명을 듣는다. 이효석의 흔적을 좇기 위해,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무렵>의 달빛이 흐드러지게 비치는 메밀밭 길을 걷기 위해 사람들은 그 곳으로 찾아간다. 그리고 그 곳은 언제나 사람들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 곳은 관광지가 되었기 때문에, 많은 돈을 들였기 때문에, 언제나 그 곳은 사람들을 맛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사람들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곳엔, 한가지가 부족하다. 진실성. 정지용의 <고향>이라는 시에 나오는 그런 분위기는 더 이상 없다. 배경은 같다고 하지만, 그 속에서 묻어나오는 진실성은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이효석의 소설에서 묻어나오는 그런 느낌도, 서정주의 <질마재 신화>에서 묻어나오는 그런 느낌도, 채만식의 <탁류>에서 우러나오는 그런 그 시대의 진실된 느낌이 사라지고 없다. 그 빈자리엔 새로운 것들이, 인위적인 것이 들어서 있다.

  그런 것들을 바라 보는 마음 한켠엔 언제나 부족한 무언가가 있다. 그리고, 그런 부족함은 항상 손가락 끝에서 울리는 짤막한 소리 하나로 대체 되곤 했다. "찰칵"



3. 베로니카는 그 곳에 앉아 있을까?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라는 책을 읽은 적 있다. 베로니카는 수도원 창가에서 조그마한 광장의 분수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름조차 낯선 도시에서. 그 도시의 이름은 '류블랴나(Ljubljana)'. 슬로베니아의 수도였다. 베로니카가 항상 창가에서 바라보던 그 분수대가 있는 조그마한 광장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일까?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곳이 딱히 좋다고 말 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책에서 조차 그런 말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냥, 그 곳의 분위기가 어떤지 느껴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곳에 가면, 진짜 분수대가 있을지, 확인해 보고 싶었고, 베로니카가 세상을 내다보던 창문이 진짜 있을지 궁금했다. 확인해 보고 싶었다.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그리고 광장의 노천 카페에 앉아, 커피 한잔을 마시며, 여유를 즐겨보고 싶었다.

  왠지 그곳은 여유가 가득할 것 같았다. 그리고, 커피만 한잔 마시고 그 곳을 미련없이 떠나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어느덧, 기차는 류블랴나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국경에서 따로 여권을 검사하지는 않았다[유럽연합 국가들은 여권 검사를 하지 않는다]. 


4.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류블랴나.

  그를 실은 기차는 자그레브[Zagreb, 크로아티아의 수도]역을 떠난다. 하늘은 잿빛이었고, 간혹 빗방울이 창문에 할퀴고 지나갔다. 얼핏, 창 밖을 바라보니 자그레브 역 앞의 동상이 보이는 듯 하다.

  언젠가, 자그레브에 머문 적이 있었다. 그 때도, 베로니카를 만나고 싶었다. 그녀의 시선을 좇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지만, 그는 자그레브역 플렛폼에서 기차를 떠나보냈다. 그리고, 류블랴나엔 다음에 꼭 가리라고 생각하면서 크로아티아의 남쪽 해안도시 스플리트[Split, 아드리안해의 미항(美港)]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때는 발길 닿는대로 자그레브의 거리를  거닐었고, 성당을 드나들었으며, 시장을 거닐며 잘 익은 과일들을 탐했고, 노천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세련되어 보이는 크로아티아 국기 무늬를 한 지붕을 구경했고, 한창 축구를 잘하던 동유럽의 축구 강호 크로아티아의 분위기를 느꼈다.

  그리고, 그는 또 다시 자그레브역의 모습을 보았다. 이번에는 그 역을 곁에 두고 슬로베니아로 향하고 있었다. 자그레브에서 3시간. 3시간이면 슬로베니아 류블랴나였다. 겨우 3시간이면 크로아티아의 수도에서 슬로베니아의 수도로 갈 수 있다.

  그는, 잿빛 하늘을 바라보며,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류블랴나. 얼마나 가 보고 싶던 곳이었던가. 론니 플래닛의 류블랴나 페이지를 펼쳐서 그가 찾아가야 할 곳을 체크해 두었다. 류블랴나에서 갈 만한 곳도 체크해 두었다. 그리고 그가 가장 가고 싶어하던 그곳[도시의 중앙 광장]에도 체크를 해 두었다. 그가 머무려고 하는 숙소에서 광장까지 어떻게 가면 될 지도 체크해 두었다.


5. 안녕 베로니카.

  기차는 류블랴나역에 멈추었다. 기차는 슬로베니아를 거쳐 오스트리아로 간다고 한다. 나는 기차에서 내려, 건물로 향했다. 작은 규모의 역.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 역과 비슷한 크기다. 작고 아담하고. 역 안에는 매점이 하나 있고, 맥도날드가 있다. 자판기 몇 개가 있고, 관광 안내소가 있다. 2층에는 매표 창구가 있다. 관광 안내소에서 지도를 몇 개 주섬주섬 챙겨서, 숙소를 찾아간다.

  숙소로 가는 길, 잿빛 하늘에서 간혹 물방울이 떨어지지만, 큰 비가 될 것 같진 않다. 작은 배낭 하나를 매고 다니는 여행객. 배낭을 잃어버리고 난 뒤라서 내 몰골은 형편없어 보일 것임이 틀림 없다. 동유럽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거리 곳곳의 그래피티는 내 눈길을 사로 잡을 만큼 높은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그래피티 사이에 위치한 숙소에 체크인을 했다. 샤워를 하고 베로니카를 찾아 나선다.

  베로니카를 만나러 가는 길, 아담하다. 높은 건물들을 찾을 수 없는 벽돌로된 골목길. 유럽 특유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동유럽과 서유럽의 경계. 서유럽과 동유럽의 분위기가 동시에 묻어났다. 지도에 표시된 대로라면, 이 길을 지나면 광장이 나올 터였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광장은 나왔고, 나는 베로니카를 만날 수 있었다. 광장 한켠에 있는 베로니카.


6. 죽기로 결심한 베로니카는, 살아 있었다.

  그가 그 조그마한 광장에 들어섰을 때, 베로니카는 살아있었다. 그러나 베로니카가 세상을 바라보던 통로로 이용하던 창(窓)은 없었다. 그리고 분수대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마도]분수대의 모티브가 되었을 법한, 동상이 그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베로니카는 어디선가에서 그 동상을 바라보았을 것이고, 그 곁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을 것이었다. 그도 그 분수대를 바라 보았다. 베로니카가 그랬던 것 처럼.

  그는 광장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그곳은 아주 자연스러웠다. 세계적인 작가 파울로코엘류의 소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의 배경이 되는 곳이었지만, 그곳에는 그런 것을 알리는 표지가 전혀 없었다. 그곳은 그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그 소설을 모르는 사람들이나 소설의 배경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듯 한] 하나의 광장, 수 많은 길 중의 하나였을 뿐이었다. 광장 주변의 노천 카페들도, 소설과는 전혀 무관하다는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광장 변두리에 위치한 한 카페에 앉았다. 종업원이 메뉴판을 갖다 주었고, 커피를 한잔 주문했다. 그리고 잠시 베로니카에 대해 생각하는 사이, 커피 향이 그의 코 주위를 감쌌다.

  그는 단지, 그 곳에서 베로니카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 모습은 실재한 모습이 아닌 그의 상상속에 존재하던 모습이었다. 그리고 베로니카가 소설 속에서 숨쉬던 공기를 마셔보고 싶었고, 그 곳에서 여유를 느껴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슬로베니아 '류블랴나'까지 와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생각했다. 소설의 배경이라는 것. 정말 별 것 없구나. 배경은 말 그대로 배경이었다. 사람들이 일상을 살아가는 곳. 그곳은 전혀 꾸며지지 않았다. 베로니카의 모습, 그것은 그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스쳐지나가는 그곳이었지만, 그 수 많은 사람들에겐 그냥 스쳐지나가는 하나의 광장, 하나의 공간에 불과했다. 
  그런 장소 였기에, 그는 그 장소에서 특별한 무언가를 느꼈다. 어느새 특별한 장소가 되어 있었다. 그곳에는 자연스러움이 묻어났다. 한국에서 찾아다녔던 소설이나 시(詩)의 배경이 되는 곳에서는 찾을 수 없던 것이 배어 있었다. 진실성.



  그는, 단지 베로니카의 흔적을 보고 싶었다. 자신이 생각하던 작은 광장의 모습이 어떤지 보고 싶었다. 그곳의 여유로움은 어떤 것일까를 생각하며, 류블랴나에 갔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마케도니아를 거쳐,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까지. 그리고 베오그라드에서 크로아티아를 거쳐 슬로베니아 류블랴나까지. 그리고 결국, 그곳에서, 베로니카를 보았다.

 단지, 베로니카가 보고 싶어서 슬로베니아 류블랴나까지 찾아간 그의 이야기.


-숙소 옆의 그래피티


-광장으로 가는 길.




-소설속에서 분수의 모티브가 되었을거라고 생각되는 동상



- 광장으로 이어지는 번화가



 -도시를 관통하던 하천







- 아담한 도시 중앙 광장



-광장 건너편의 시장



-



-



- 류블라냐 성에서 바라본 류블랴나






 

 





-노천카페에서 커피 한 잔




-카페에서 일하던 사람



-미니어처



-류블랴나 역의 매점



-아담한 류블랴나 역



-독특했던 류블랴나 역의 과일 자판기



-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역 앞.




-자그레브 과일 시장



- 공사중이던 건물


-전망대에서 바라본 자그레브 시내


-아침의 스플리트 역


-스플리트 올드 시티



-밤의 스플리트 항



반응형

Ep] 시리아, 하마 - 히치하이킹, 여행자의 특권! - 시리아

-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0. 11. 7. 15:56

반응형

1.                            
  TV광고 또는 영화의 한 장면 혹은 드라마 혹은 포스터 등등에서 우리는 가끔 끝없이 펼쳐진 도로 가운데 서서 지나가는 자동차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미녀(?)를 발견하곤 한다. 

  만약, 전국 일주를 생각하는 당신, 무전 여행을 계획했다면 당연 이동 수단으로써 히치하이킹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본인의 어릴적 기억을 더듬어보면, 어린 시절 친구들과 산골에 있는 저수지와 계곡을 찾아 놀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히치하이킹을 해서 자주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 탈것은 1톤 트럭부터 경운기, 승용차에 이르기 까지 다양하게 히치하이킹을 해 봤던 기억이 있다.
  단, 요즘은 히치하이킹하는 사람들을 납치하는 사례가 있다고 하니,,,주의하도록 하자. 요즘은 정말 무서운 세상이다.



2.                                
  언젠가, 여행중에 만난 어떤 형에게 들은 적이 있다. 그 형이 파키스탄을 지나 이란에 도착했을 때, 교통수단이 마땅치 않아, 히치하이킹을 해서 수백km를 손쉽게 이동할 수 있었고, 이란 사람들의 친절에 감동했다는 그 말. 나도 언젠가 한번쯤은 히치하이킹을 하며 세계 여러곳을 돌아다녀보고 싶기도 했다.

  또 다른 기억 하나. 불가리아를 여행하고 있을 적, 지금은 이름도 기억이 잘 안나는 꽤나 유명한 수도원에 갔던 적이 있다. 교통편이 얼마나 불편한지, 우여곡절 끝에 찾아간 그 수도원의 입구에 해당하는 마을에서 택시를 타고 수도원까지 갔었는데, 택시비가 너무나도 비쌋다. 수도원 구경을 마치고 다시 마을로 내려와야 할 때, 그 때 내 눈에 띈 젊은 여행자들. 그들은 이탈리아 출신의 대학생이었는데, 차를 렌트해서 발칸유럽을 여행하는 중이라 했다. 나 또한 발칸유럽을 여행중이었으니, 혹시 괜찮다면 나를 좀 태워달라고 부탁 했다. 그들은 흔쾌히 승낙했고, 우리들은 차를 타고 다음 목적지까지 같이 간 적이 있다.



3.  시리아의 악몽. 이젠 안녕.
  내 몸을 실은 버스는 팔미라로 가지 않고 라타키아로 갔고, 나는 시리아의 모든 일정을 접고, 단지 하마와 알레포에만 가기로 결정했다. 하마로 간 나는, 도무지 뭐가 먼지 알 수 없었다. 시리아에 대해 너무나도 모르고 왔던 나는, 정말 난감했다. 단지 시리아가 사회주의 국가라는 사실 밖에 모르던 나는, 인터넷에서 얼핏 본 호텔의 이름을 기억해 냈다. 리아드호텔. 하마에서 꽤나 유명한 호텔이었다. 한국인여행자와 일본인여행자들 사이에선 말이다.
 
  리아드호텔의 위치에 관한 내가 찾은 정보중[물론 터키에서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얻은 정보였다] 내 노트에 적힌 정보는 시계탑 근처에 리아드호텔이 있다는 것. 보통 시계탑은 시가지의 중앙에 위치한다는 추측아래, 시내로 가기위해 발버둥을 쳤다. 말한마디 통하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온갖 손짓 발짓, 시계를 까지 보여주고 그림까지 그려가면서 말이다. 시계를 보여주니 몇시인지 가르쳐주는데, 나도 시계가 있단 말이다!라고 속으로 소리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 슬펐다.

  결국! 사람들의 도움으로 시가지를 찾아갔고, 거기서 또 물어물어 리아드호텔을 찾아갔다. 거리에 가끔 보이는 일본인 여행자와 한국인 여행자! 아, 그들을 보는순간 표현은 안했지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기뻣음은 틀림없다. 외국에서 한국인 여행자를 만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모순된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너무 힘들고 지쳐있었으니까 말이다.



4. 크락데슈발리에로 가다.
  그는 하마[Hama]에서 뭘 할까를 생각하다가, 같은 방에 있던 일본애들에게 정보를 하나 얻었다. 크락데슈발리에성. 소위 십자군성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그곳이 일본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의 배경이 되었다는 성이 하마의 근처에 있다는 것. 그래서 그는 그 곳에 한 번 가보는게 좋을 것 갔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같은 호텔에 있던 한국인 여자애가 다음 날 십자군성에 간다는 말을 듣고 그와 그녀는 동행하기로 했다. 그 성에 가는 방법은 이미 호텔 내에 머물고 있는 한국 사람들이 이이기를 해 주었고, 주의사항까지 친절히 그들에게 일러 주었지만, 그 곳에 가는 일은 그들에게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이 동네에선...

  다음날 아침, 호텔 앞의 빵가게에서 그들은 크로아상을 하나 사 먹고, 크락데슈발리에로 떠났다. 하마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다른 작은 도시로 간다음 또 거기서 미니버스를 타고 가야했는데...거기서부터 그들은 길을 헤메기 시작했다. 미니버스를 잘못타서 시내를 뱅뱅 돌다가 다시 돌아온 곳은 버스터미널. 다행히 그들은 다른 방향으로 가서 수소문한 끝에 크락데슈발리에로 가는 미니버스를 제대로 탈 수 었고. 그리고 무사히 십자군성에 도착해서, 구경을 마쳤다.


5. 이런 사기꾼들한테는 돈을 지불 할 순 없지!
  십자군성에서 돌아오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일정 인원의 사람이 필요 했다. 미니버스 정원이 6명 이상이 되어야, 미니버스가 출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와 나는 좀 늦어버려 그 성에는 둘만 남게 되었고, 미니버스 기사는 터무니 없는 금액의 차비를 요구했다. 훗, 우리는 순순히 그들의 요구에 따를 수 없었기에, 그냥 걸어서 성을 내려왔다.
  내려 오는 길에 지나가는 차들을 향해서 손을 흔들었지만, 차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그나마 세워주는 애들이 하는 말이라곤, 얼마줄래? 내가 하마까지 데려다줄게 였다. 어이가없어서, 꺼지라고 한마디 한 다음 그들을 쫒아보냈다.

  언덕의 능선에 위치한 마을은 비교적 조용하고 아름다웠다.[멀리서 볼때] 동네 아이들은 착해 보였다. 사진을 찍어달라는 아이들이 있었다. 꼬맹이들은 우리에게 사진을 찍어달라며 우리를 에워쌋고 우리는 그들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식료품가게 주인의 자식쯤 되어 보이는 그들이었는데, 가게 안의 토마토가 크고 먹음직 스럽게 보이길래, 사진을 빌미로 아주 헐값에 토마토를 구입하기도 했다.



6. 히치에 성공하다.
  그들은 얼마나 더 가야  차를 얻어 탈수있을까?하는 대화를 했다. 설마 우리가 하마까지 걸어가야 되겠어?ㅋㅋ 마을 저 아래에는 고속도로가 있었는데, 거기엔 차들이 많으니 라고 말하며 그들은 십자군성을 뒤로 한 채 성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그들이 중간 쯤 내려 왔을 대 마침 동네 슈퍼마켓에 들른 물류차량[동네 수퍼에 물건을 대어주는 차량]이 였고 그들은 운전기사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은 사정을 설명하며 기사에게 좀 태워달라고 하니, 타라고 하면서 보조석의 짐들을 치웠다. 굳이 짐들을 치울 필요까진 없었는데, 그 운전기사는 그들에게 정말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하지만, 고속도로가 있는 곳에 다다르자 그 기사는 자신의 방향은 하마쪽이 아닌 반대쪽이어서, 더 이상 태워 줄 수 없다는 말과 함게, 행운을 빈다며, 고속도로 어귀에 그들을 내려놓고 떠났다.

  고속도로 어귀에 서서 그들은 지나가는 트럭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이나 다를까, 거대한 트럭이 그들 앞에 와서 멈춰섰고. 어디까지 가냐고 묻자, 그들은 "하마"를 외쳤다. 그러자 트럭의 운전 기사는 그들을 향해 타라고 손짓을 했다.  어차피 그 쪽 방향을 향해 가니까  가는데 까지 데려다 주겠다는 이야기였다. 대형트럭이라서 그런지 안은 비교적 넓었다. 트럭은 기들을 싣고 고속도로를 무섭게 달려가고 있었고, 트럭 운전기사는 그들을 향해 이것저것 말을 걸어왔다, 후훗, 그들은 알아들은건 별로 없었지만, 나름대로 그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려는 것 같은 느낌에 미소와 웃음으로 응수했다. 아 정말 착한 시리아사람들!이라고 그는 생각하고 생각했다.
 
  트럭은 그들을 하마로 가는 버스가 있는 버스터미널까지 실어었고,그들은 그곳에서 하마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 나의 구세주 리아드호텔



- 하마 시계탑


- 하마 시내의 한 겔러리, 작가들의 사회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담겨 있는 작품들이 많았다



- 역사의 흔적,



- 이렇게 보면,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 볼 것 같기도하다


- 식료품가게 꼬맹이, 옆에 꼬맹이는 왜 미니어처가 되었지?ㅋㅋ



- 아저씨 사랑해유~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