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got the job! - 04, 호주에서의 마지막 와인농장 : Donnelly River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1. 21. 14:59

반응형

마지막 와인팜.
와인으로 유명한 호주 서남부의 마가렛리버(Margaret river)에서 약간 오른쪽에 위치한 펨버튼(Pemberton)에 갔다.
여기로 오기 전 조그마한 와인팜 몇 군데를 더 갔었다. 퍼스 근처의 스완강(Swan river)도 와인으로 유명한 곳이었는데 그곳에 위치한 와인 팜이었다. 한 농장은 포도나무가 40년이 넘은 것이었는데, 정말 나무가 돌덩이처럼 보였다. 그 나무에서 나는 와인의 향이 정말 죽여준다고 하는데, 먹어보지 못한게 아쉽다.

아무튼,
퍼스Perth에서 남쪽으로 4시간 이상을 달려 도착한 곳, 도넬리리버(Donnelly river) 와인팜.
농장안에 와이너리(Winnery)도 있었다.

쾌 큰 농장이었다.
이곳에서 엄청난 속도로 2주나 일했으니까 말이다.
농장안에는 소떼들이 몰려 다니면서 풀을 뜯고 있었는데, 농장의 잡초는 소들이 다 뜯어먹고 있었고,
농장 어커머데이션앞 뒤에 오렌지나무와 레몬나무가 몇그루 있었는데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떨어진 오렌지들을 소들이 주워먹고 있었다.
농장 주변은 숲이라서 캥거루들이 뛰어 다니고 있었다.

기후?
정말 최악이었다. 포도나무들이 언덕을 따라서 언덕 위쪽가지 쭉 심어져있었는데, 언덕위에서 보면 저 멀리 남극해가 보였다. 그 쪽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과 구름, 정말 최악!

모진 환경에서 자란 나무들이 만들어낸 와인의 맛이 좋다고,, 이곳에서 생산된 와인은 호주 와인콘테스트에서 상도 받았다. 바람이 얼마나 불던지, 포도나무가 뽑히기도했고, 밑둥이 1미터가 넘는 나무도 쓰러져 있었다.

농장일을 하면서 그렇게 많이 비를 맞아가면서 일을 하기는 처음이었다. 도착한 첫날부터 비가 쏟아졌다.
하지만, 농장주의 닥달로 인해서 비를 맞아가면서 일을 했다.
9월 중순이면 거의 우기가 끝나는 기간인데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렸다.
10-20분 비가 내리다가 해가 뜬다.
하늘 저 멀리 구름이 보이고 그 구름들이 다시 20-30분뒤에 농장위를 지나가면서 엄청난 비를 뿌렸다.

일을 하기도 뭐하고, 안하기도 뭐하고, 비옷이 없었으면 정말 감기걸려서 폐렴으로 죽었을것 같다.
그렇게 힘들게 그래도 계속 일을 했다.
그래도 농장주가 빨리 일을 끝내주기를 요청했기에 우리는 일을 많이 할 수 있었다.

한번은,
팀원들 사이에서 논쟁이 있었다.
그 날도 일을 하러 나갔다가 비가 줄기차게 내리길래 일을 그만두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러자 또 비가 그쳤다.
일을 하러 다시 나갈것인가 말것인가 논쟁이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이런 상태가 될 건데 앞으로 어떻게 할지.

본인은 여행을 계속 해야했기에 시간이 없었고,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웬만하면 일을 하자는 쪽이었다. 주 50시간 이상 하면 좋겠다는 생각. - 50시간이면 텍스를 제외하고 주당 700달러 정도 세이브할 수 있었다.
나와 같은 의견 3명, 주40시간이 기본이니까 주40시간만 쉬엄쉬엄 하자는 사람 3명. 몸생각하면서 천천히 하자는 의견이었다.
이런저런 논란 끝에, 그 날 일은 접고, 펨버튼 날씨가 개판이니 중간에 비가와도 계속 일을 하자는 쪽으로 무게가 기울었다.

처음,
계속 일을 하자고 의견을 낸 본인이 욕을 많이 먹었다.(나이가 젤 어렸으므로, 기쁨조이자 갈굼의 대상이었다)
일을 할 수 있을때 짧은 시간에 많이해서 돈을 짧은 시간에 많이 벌자는 나의 의견에 처음에 반발했던 사람들도 나중에 페이를 받고나서는 돈을 많이 받았다고 좋아했다..(처음에 욕할땐 언제고 ㅡㅡ)

아무튼,
그렇게 농장숙소에서 여러 음식도 해먹고, 재미있게 보냈다.
6명이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사람이 여럿 모이면 이런 저런일도 생기고 마음상하는 사람도 생기고 여러가지였지만 나름, 잘 버텼다.

그리고, 와이너리에서 와인도 공짜로 주어서 와인도 많이 마셨다.
어커머데이션 창고에도 와인이 있어서 그것도 꺼내 마시고,, 
오렌지나무에서 매일 오렌지를 20개 이상씩 따먹었다. 오줌과 똥이 주황색이 될 정도로 말이다..


펨버튼으로 왔을 때 컨츄렉터가 우리에게 한 말이 있었다.
"이 농장을 빨리 끝내면 다른 농장이 있긴한데, 그 농장주도 지금 포도 나무 싹이 피고 있어서 빨리 손질해주길 바란다"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 농장이 끝나면, 다시 일을 구해야겠구나 하고 말이다. 그래서 하나하나 계획을 세웠고, 정리를 하고 있었다.

농장일이 끝나기 3일 전,
컨츄렉터와의 통화에서 컨츄렉터가 농장일이 끝나고 다른 일을 연결시켜준다고 했다. 
나는  크게 기대하지 않고 있었지만,  일단 시켜주면 하면서 그 일을 계속할지 생각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이제 농장을 떠나고싶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그리고 이제 혼자 다시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농장일이 끝나는 날이 다가올수록,
사람들의 얼굴에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나하는 근심이 보였지만,
컨츄렉터가 다시 일을 준다는 말에 모두 화기를 띄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통화한 결과로는 2-3명 분의 자리만 있다고 했다.
그리고 모두가 짐을 싸야할 시간이 하루가 남아있었다.







- 움직이는 호주산 쇠고기들


- 토나올 것 같은 포도나무들,









반응형

I've got the job! - 03, 대농장이란 이런곳!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1. 14. 18:50

반응형


처음간 농장에서 화이트와인용 포도나무의 푸르닝을 끝내고 다른 농장의 화이트와인을 하러 가야했다.
컨츄렉터와의 약속시간은 아침8시. 농장 근처의 로드하우스(Road house)에서 보자는 것이었다.

30-40분이면 올 수 있다는 말에 출발했지만, 이놈의 길은 가도가도 끝이없다.
서쪽에 펼쳐진 평원은 왜이리도 넓은지, 서쪽 해안까지 약 100km가까이는 되지만,
저 멀리 바다같은 것이 보일 정도다.
더 웃긴건 그냥 평야가 아니라 농장이라는 사실,


오지(Aussie, 호주사람)치고 약속은 드럽게 안지키는 컨츄렉터의 욕을 하고 있는데 때마침 와서, 농장으로 같이 갔다.

"Fini Olive"라는 우람한 대리석 간판이 있고, 그곳으로 갔다.
지평선 저 끝까지 뻗어있는 포장길, 그리고 양쪽에 지평선 끝까지 심어져있는 올리브나무.
'이것이 바로 대농장이구나'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 정말 엄청난 크기 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꽤나 유명한 올리프팜이었다.)

농장숙소,
방마다 냉/온풍기 및 위성 티비, 깔끔한 키친, 수백장이 구비된 DVD 및 Xbox 360,
거기다가 숙박비는 이틀에 15달러 !!
매일 청소하는 아줌마가 청소도 해주고, 샤워실에 샤워타월도 갈아준다.
역시,,,,,,,,,,대농장에서 일을 해야한다는 생각.

포도나무. 약 4천그루.......................
듣자하니, 농장주 부인이 취미로 키우고있다는 화이트와인 나무들이다..

'헐, 4천그루나 되는 나무를 취미로 키워? 거기다가 와인도 만들어서 취미로 마신단다........ㅁㅊ...' 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좋다,,,나에게 일거리를 주고 돈을 준다니......


그곳에서 시작된 날씨와의 싸움.
정말 날씨 말그대로 개판이었다... 엄청나게 빨리 흘러가는 구름들,,,,,,저 멀리 먹구름이 보이면 30분 이내로 비가 내린다...그것도 폭우가, 그러다가 10분뒤에 해가뜬다..
그러다가 30분뒤에 또 비가 내린다....그러다가 해가 쨍쨍하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무슨 날씨가 말그대로 개판이다..
일기예보가 필요없다...


아무튼, 정예(?)멤버 4명이서 5일만에 4천그루나 되는포도나무를 다듬다니! 이건 놀라운 일이었다.
컴츄렉터도 좀 놀랬는지,, 예상보다 일찍 일을 끝내서 내심 만족하는 듯했다.
미친듯이 일을 했으니까,,,,,,,,끝낼수있었지.

Fini Olive 에서 올리브식용유도 몇 개 챙겼다..ㅋㅋㅋ 300ml 한병에 마트에 9.99 달러하는 건데 잘 됐지뭐.

아직도 잊혀 지지 않는다.
끝없이 펼쳐진 올리브나무들, 그리고 엄청난 크기의 초원. 평야.
일을하다가 우리는 이런 대화를 주고 받았다.
"저 언덕뒤에 뭐가 있을까?"(포도밭 북쪽으로 언덕이 있었다)
그 뒤엔 분명히 농장주 전용 비행장이 있을 거라고,,,,,,,,,이야기했었다.



-비가온 뒤엔 항상 무지개가 떳다.


- 뱅글뱅글 돌아가는 빨래들,


- 마냥 하늘을 탓하는 동료들

반응형

호주, 돈벌기도 쉽지만 돈쓰기도 쉽다?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1. 12. 15:39

반응형


"호주에서 돈을 벌기도 쉽지만, 돈을 쓰기도 쉽다." 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물론, 돈을 쓰는건 개인의 판단과 의지지만 말이다.


현재 본인이 일하고 있는 곳의 동료와 저녁을 먹으면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 남미가는 비행기 표값때문에 고민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와,
편도와 왕복의 요금차이가 1000AUD, 그리고 어차피 난 리턴티켓은 필요가 없고,
왕복을 끊자니 1000AUD가 아깝고, 다른 방법을 생각할려니 머리가 아프다.
라는 이야기.

동료 왈,
뭐 1000달러면 여기서 겨우 일주일 일하면 벌 수 있는 돈인데, 뭘 그렇게 고민하나?

본인 왈,
그렇게 천달러를 그냥 없애버리기보다는 여기서 일주일 덜 일하고 천불을 아끼는 방향을 찾는게 좋은 거겠지.
그리고, 여기서 일하니까, 천달러를 일주일에 벌 수 있는것이지, 천달러면 남미에서 한달생활비로 쓸 수도 있는 돈인데, 그렇게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야.


- 에피소드,
호주 농장에서 일을 하다가 만난 형이 한국을 간다고 해서, 마지막으로 술자리를 가졌다.
술은 내가 샀는데, 그날 술값 200달러가 나왔다.
술값 너무 많이 나온거 아니냐는 말에 나는 말했다.
"뭐, 하루일당 술먹는데 다 썻다고 생각하죠"

스노클링 장비가 필요해서 스노클링장비를 사러 갔다.
이제 남미와 호주는 본격적으로 여름이라 스노클링을 하려고 말이다. 저렴하게 구입할 생각이었으나, 이왕하는거 좀더 괜찮은 걸로 고르다보니 가격이 꽤 나왔다. 약 500달러.
옆에 있던 형이 말했다.
"좋은걸로 다 맞춰도, 이틀 일하면 다시 다 벌수 있네."

카지노를 가자는 말이 나왔다.
가서 딱 100달러만 하고 오자는 이야기.
"100달러면 반나절 일한 것 밖에 안되니, 그렇게 아까운 느낌이 안든다." 는 동료들의 말.


돈을 쓸 때,
그 기준을 어디에 두고 쓰느냐에 따라서 돈을 많이/ 적게 쓴다는 느낌이 달라지고, 그 가치에 따라서 아깝다와 아깝지 않다가 결정된다고 생각된다.

만약,
내가 한국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가정하고, 한국의 아르바이트 시급 5000원에 비유하면,
내가 소비한 돈들은 엄청 큰 돈처럼 느껴지지만,(실제로 큰 돈이 맞긴 하다)
지금 내가 호주에서 일을 하고 있기에(보통 최소 시급이 17.5달러) , 체감하는 돈의 무게가 줄어든다.

물론,
호주의 물가가 비싼탓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돈을 쓸 때 자기가 시간당 얼마를 버니까 이정도면 싼편이라는 식의 기준을 부여하고 있는 것 같다.(내가 만난 사람들을 기준으로 볼 때)

그렇게 되면,
돈을 쓰기가 정말 쉬워 진다.
지금의 본인은 다음 여행을 호주에서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돈의 가치를 호주가 아닌 남미와 미국에 두고 있다.
현재 호주에서 내가 아는 사람들과 내가 돈의 가치의 기준을 다른곳에 두고있고, 여행을 위해서 자금을 모으고 있는 나를 돈을 너무 아껴쓴다고 보고있다.(실제로 불필요한 건 사지도 하지도 않고 살아가고 있기도 하다)

아무튼,

결론은,
호주에서 돈을 벌기도 쉽지만, 쓰기도 쉽다는 말.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자기 하기 나름이다.




반응형

You are looking for job? - 캐시잡(cash job) vs 텍스잡(tax job)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1. 2. 00:13

반응형

-
호주에서의 일을 크게 두가지로 나누자면 어디에서 일하냐에 따라서 농장(Farm job)과 시티잡(City job)이 있다.
농장중에도 캐시로 임금을 지불하는 캐시잡이 있지만 극히 드물다.
캐시잡은 주로 시티잡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 가게를 비롯한 한국인이 중간관리자를 맡고있는 청소를 비롯한 각종 잡들, 그리고 타일데모도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캐시잡을 하면 뭐가 좋으냐??
1. 주로 시티에서 일을 하는 것.  - 생활이 편리하다. 물론 돈은 시골보다 많이 쓰게 된다.
2. 현금으로 바로 받는 다는 것. - 메리트인지는 모르겠다. 어차피 텍스잡도 통장으로 돈 들어오니까;
3. 귀찮게(?) 텍스리턴 신청할 필요가 없다는 것.
4. ????

그렇다,
본인은 처음에 퍼스 시티(Perth city)에서 머물면서 캐시잡을 구할 마음이 없었다.
왜??
임금이 적다.
청소의 경우 시간당 10~12달러다. 중간관리자인 한국사람이 중간 마진을 먹고 주는 거다...외국인 청소업체에서 일하면 시간당 18달러를 받을 수 있다.
다른 시티잡 - 식당이나 뭐 기타 여러가지 보통 13달러를 넘지 못한다.


자, 그럼 텍스잡은 어떤가?
텍스잡은 호주 국세청에 정식으로 일한다는 것을 신고하고 일을 시작한다. (처음에 일을 시작할 때 텍스디클레이션?을 작성하고 시작한다.)
따라서, 자신의 임금의 일정 부분을 세금으로 내도록 되어 있다. (보통 농장의 경우 13%, 공장의 경우 11~25%)

세금을 내면 뭐가 좋은가?
일시적으로는, 내 임금에서 세금이 빠져나가니까 손해보는 느낌이다.. (나도 첨에 그랬었다. 그리고 난 텍스리턴이라는 것도 몰랐으니까,)
텍스잡을 하면 호주 국가에 세금을 내고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자기가 속한 회사에서 연금도 넣어 준다.

무슨혜택을 받을 수 있나??
가장 대표적으로, 직장보험에 자동으로 가입이 되는 것이다. 임금에서 일정부분 납입되는 세금에 보험금도 포함되어있기 때문에 일을하다가 다치면 전액 병원비 보험처리가 된다.
(호주에 오면 알겠지만, 병원비 겁나 비싸다...그냥 의사 얼굴만 봐도 50달러 이상 줘야한다)
호주의 의료보험체계는 기본적으로 메디케어(medicare)의 틀인데, 이는 직장이 없거나 호주 시민이 아니면 혜택을 못 받는다. 하지만 워홀러는 합법적인 노동자이므로 텍스잡을하게 되면 직장보험이 가입이 되어 보험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연금도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갈 때 받을 수 있다. 물론 텍스도 리턴을 받을 수 있다.
(농장의 최저임금이 17.5 ~18 달러임을 감안할 때 텍스를 떼어도 15달러가 넘는다. 공장의 경우는 더 많이 받는다.)


결과적으로,
텍스잡을 해도 처음에 텍스를 일정금액 납부 하더라도, 나중에 한국에 갈 때 돌려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본인은 은행에 적금 붓고있다고 생각중이다..지금은 쓸수없는 돈이니까,)


결론을 말하자.
요즘은, 일을 구하기가 정말 어려워서 청소잡 조차도 경쟁이 심하다.(시티잡을 사람들이 선호하기 때문에)
하지만, 주변지역으로 조금만 눈을 돌려서 노력하면 농장에서 일을 할 수 있다.
돈이 정 급하지 않다면, 캐시잡보다는 정식으로 일을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다. (캐시잡은 따지고보면 탈세의 일종이고, 본인은 처음에 캐시로 돈을 받는것에 동의를 한 것이기 때문에 탈세혐의에 가담을 한 것이된다)


단, 어떤 일을 하든지, 자신의 선택이다. 어차피 일은 자기가 하고 돈은 자기가 받으니까.


본인은 위와 같은 생각인 것이다.



반응형

I've got the job! - 02, 눈을 다치다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0. 31. 15:00

반응형


-

겨울철,
호주 남서부지역의 농장에서의 일거리는 대부분이 푸르닝(Pruning)이다.
특히, 마가렛리버(Magaret river)와 그 주변지역의 와인은 굉장히 유명하다. 퍼스 주변에도 많은 와인팜들이 있고, 나 또한 포도밭에서 겨울철 포도나무를 다음는일을 한 것이다.

나는 컨츄렉(Contract)이 아닌 아월리(Hourly)로 일했기 때문에, 푸쉬업(Push-up)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일을 빨리빨리 해야했다. 컴츄렉이라면 내 능력이되는만큼 하고싶은 만큼 일을 하고 돈을 받으면 되지만, 아월리는 시간으로 수당을 계산하기에 푸쉬업을 받았다.


오랜만에 날씨가 좋은 날, 햇살조차도 따사로왔다.
그 날도 역시 나뭇가지자르는 기계로 열심히 가지를 자르고 있었는데, 잘린 나뭇가지가 갑자기 튀어올라 내 눈을 강타했다.

한순간이었다.
가끔, 잔가지들이 튀어서 얼굴 주변에 맞긴 했었지만 정확하게 눈을 강타해버린 것이었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눈물이 계속 흘러나왔다.

약 10분 후,
서서히 눈을 떳지만, 따갑고 사물이 흐릿하게 보였다. 안약을 넣어보기도 하고, 물로 씻어보기도하고, 그렇게 눈을 감고 30분 쯤 후에 좀 더 안정이 되었을 때 눈을 보니, 동공의 옆에 살짝 찢어진 것 같은 흔적이 보였다.

컨츄렉터에게 전화를 해서, 다쳐서 일을 할 수 없고, 병원을 가봐야겠다고 말했다. 컨츄렉터는 한두시간뒤에 온다고 했다.(우리 팀은 매일아침 우리가 농장으로 가서 우리끼리 일을 하고, 일이 끝나면 전화로 그 날 어느정도 일을 했는지 보고하는 식으로 일을 했기 때문에 눈치보지않고 마음편하게 일을 할 수 있었다)


컨츄렉터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일을 시작한지 이제 이주 남짓. 내가 모은 돈은 한국가는 비행기표를 사고, 약간의 생활비 정도.
혹시나, 눈을 수술해야한다고 하면 일을 그만두고 한국으로 가야 하는 건아닐까?
만약 한국에 가면, 한국에서 수술을 하고, 한국에서 알바를 해서 그 돈으로 미국이라도 잠깐 갔다와야 겠다..는 생각.
나도 지금 일으 할 수 있는데, 눈이 좀 아픈것만 말고는 일을 할 수 있는데,,오늘 100달러 날렸다는 생각,,
호주 병원비도 비싼데, 호주에서 수술해야한다고 하면어쩌지? 라는 생각.
아무튼 별에 별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점심을 먹고나서, 병원.
의사가 내 눈을 검사했다. (그래도 역시 비교적 잘 산다는 나라라서 그런지 시설은 인도에 병원갔을 때보다 좋은 것 같았다.)
눈에 뭔 용액을 붙고 닦아내고 이것저것 하고 거즈를 눈에 대었다. 그리고 나서 눈을 떠보니 한결 깔끔한 느낌이었다.
의사가 약국에가서 나보고 연고를 사오랜다... 애꾸눈으로 약국에가니 정신이 몽롱했다. 처방전에 적혀있는대로 약을 달라니까 약사가 뭐라뭐라고 웃으면서 농담같은걸 하는데 뭔말인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시 병원,
연고를 2시간마다 눈안에 바르랜다...연고를 눈에 바르라니? 안약을 넣는 것도 아니고.. 아무튼 그렇게 하라니까 했다.(연고를 바르고 눈을 깜빡이면 눈밖으로 다 삐져나왔다..그래도 그 연고가 3만원이나 하니 버릴 수도 없고 열심히 발랐다).
그리고, 3일뒤에 다시 병원에 오라고 했다..사실 다시 올까말까 고민했다. 그래도 다시 오기로 했다.
그렇게 병원 치료가 끝났다..

내심 마음속으로 병원비 걱정을 하고 있었다.
물론 여행자 보험을 들긴 했지만,,당장 가진돈이 얼마 없었기에,,메디케어(Medicare)혜택이 없는 나로서는 일반진료비가 100달러 였다.
결제하려고 카운터에 가니, 결제가 다되었다는 거였다.
'엥? 난 결제한적이 없는데??'

알고보니, 직장의료보험으로 처리된 것이었다. 근무중에 다친거니까 직장보험으로 처리되어 직장에서 치료비를 내준 것이었다. 다행이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래, 난 합법적인 외국인 노동자니까."

그렇게 다시 농장으로 돌아와,
나무 그늘 밑에 누워서 낮잠도 잤다. 다른 사람들은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지만, 뭐 이렇게 된 것 오랜만에 휴식을 취했다. 오렌지도 따먹고, 야생 오리도 괴롭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뻣던 건,
내가 의사에게 내 눈의 상태가 어떻냐고 물었을 때,
의사가 No problem 이라고 말하면서 내일부터 일을 해도 상관없다고 말을 해준 것이었다.  






반응형

I've got the job! - 01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0. 31. 14:32

반응형

내가 처음 농장일을 하게된 것은, 와인팜Wine farm에서 포도나무를 다듬는 일이었다.

호주 농장에서 1년간 일한 형을 알게되어서 그 형한테 일을 구할 때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푸르닝(나무 가지를쳐서 나무를 다듬는 일)은 웬만하면 피하라고 한 이야기를 들었지만 우선은 돈이 급했기 때문에 하기로 했다. 농장일 중에서 제일 힘들면서도 후유증이 남는 일이라서 웬만하면 권하지 않는 일이라고 했지만 난 하기로 했다.

사실, 푸르닝을 그만둔지 지금 약 한달가까이 되었지만 손가락에 후유증이 남아서 손가락이 아직도 아프다...
누군가 이 글을 본다면, 무리하게 푸르닝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진짜 열심히 일했다,
그래서 인정받을 수 있었다. Hard worker라고, 그리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나를 반겨줬다.
난 팀 아월리 Team Hourly로 일했기 때문에 같은 팀 동료들이 일 잘하는 사람을 좋아해서, 내가 평균속도보다 좋게 나오니까 좋아했다.


내가 처음 일하게 된 곳,
퍼스에서 약 50Km 북쪽의 Bullsbrook에 있는 와인팜이었다. 정말 컷다...
숙소에서 아침 7시 와인팜으로 가서 일을 시작했다.

언덕사이에 있는 와이팜, 아침에 가면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있었고, 햇갈이 와인팜을 비추고 있었다.
포도나무 사이로 캥거루들이 뛰어다니고있었고, 저 언덕위에서 소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야생오리들이 개울가에서 놀고있었고,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다.

농장의 입구에는 오렌지 나무들이 자라고 있어서, 쉬는시간마다 오렌지를 따먹을 수 있었서 좋았다.
와인팜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오렌지나무를 기르고 있었다. 그 덕분에 난 24년간 내가 먹은 오렌지 개수보다 약 두달간 먹은 오렌지 수가 더 많을 정도였다...하루에 15-20개 정도는 먹었으니까,,ㅋㅋ

아무튼,
난 일을 할 수있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돈을 벌 수 있다는,,그리고 일주일에 500불 이상씩 모을 수 있었다. 시간당 18$  일주일에 40시간 이상씩 일할 수 있었고, 세금은 13%를 떼니까 숙소와 먹는것을 제외하고 500불 이상씩 저금할 수 있었다.

그 때부터 나의 생활은 즐거움의 시작이었다.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생활의 안정이 됨과 동시에 즐거움의 시작이었으니까,
그리고 같이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과도 즐겁게 보냈으니까.






- 처음으로 일했던 와인팜, 여기서 3주간 일했다.


- 내가 한달넘게 살았던 숙소,,,빗물을 받아먹고 살았다..ㅋ



- 숙소에 뜬 무지개,, 호주에서 무지개보기란 참 쉽다,,그것도 쌍무지개로 ㅋㅋ
반응형

I'm looking for job! - 05, 외국인 노동자가 되다.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0. 28. 15:52

반응형

호주에서 맞이하는 세번 째 토요일.

백팩커스의 체크아웃을 끝내고, 에이전시에서 소개해 준 컨츄렉터와의 약속장소로 떠났다.

약속시간은 12시,
퍼스 시티(Perth city)에서 북쪽으로 약 50km 떨어진 곳. Bullsbrook.
조그마한 마을 이었다. 마을의 중심가에 있는 체커스호텔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12시,
주차장에서 Drummont(두루먼, 컨츄렉터)이라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차들이 왔다갔다 할 때 마다 유심히 쳐다보았다.
12시가 다 되었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초조했다.
"또 이렇게 펑크가 나는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전화를 해 보았지만, 자동응답으로 넘어갈 뿐이었다.
사무실 전화번호가 있어서, 사무실로 전화를 하니, 비서같은 사람이 받는 듯 했다.
 - 에이전시에서 연락받고, 오늘 12시에 두루먼과 만나기로 했는데 두루먼과 연락이 안된다고, 연락좀 해서 나한테 연락을 다시 해 달라고 했다.

12시 15분 경,
하얀 홀덴 한대에서 덩치가 조금 있고, 연륜이 있어보이는 한 남자가 영국식 발음으로 말을 걸어왔다.
왔구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마치고, 현재 농장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에게 모르는 것 있으면 물어보고, 연락처를 가르쳐 주었다. 자기는 오늘 홀리데이라서 시티에나가서 쉬어야 한다면서.


현재, 농장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은 네명, 모두 한국인이었다.
그렇게 나는 그 날 농장근처에 다른 노동자들이 묵고있는 숙소로 들어갔고, 다음날 부터 일을 할 수 있었다.


드디어 호주에서, 워킹을 시작했다.

반응형

I'm looking for job! - 04, 구직자에서 외국인노동자가 되기까지 03.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0. 27. 16:27

반응형


호주에서의 첫 주,
난 럭키가이라고 생각했었다.

호주에서의 둘 째주,
이대로 호주에서의 워킹은 실패로 끝나는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공장을 돌아다니면서 어플리케이션을 쓰러 다녔지만,
공장의 리셉션(Reception)에서는 하나같이 같은 말들을 반복했다.
"지금 시기에는 사람을 뽑지않으니까, 나중에 모집하게되면 연락주겠다."
"지금은 경제가 어려워서 사람들을 해고하고 있는 상황이다. 어플리케이션을 쓰는건 시간낭비다."
"지금은 겨울이라서 일거리가 별로 없다. 12월이나 1월에 다시 와라."  (어쩌라는거냐? 난 11월말에 호주를 뜰 거단말이다...)

아무튼, 저런 멘트들이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거기다가, 나의 몸상태가 조금씩 나빠지고 있었다.


아무튼,
일을 구하러 다니기 시작하고  2주가 다 지나가려 하고고 있었다.

금요일,
그 날도 에이전시에 들렀지만, 일이 없다는 소리를 들을 수 밖에 없었다.
힘이 빠졌다. 통장의 잔고도 이미 바닥이었다.

수없이 어플리케이션을 썻던 공장들은 무응답이었다. 보통 금요일날 인터뷰를 보고 월요일부터 일을 시작한다는 사람들의 말. 이미 끝난 것 같았다.

금요일 오후,
일을 구하러 돌아다닐까하다가, 힘도 나지않고해서 기분전환할겸, Blue cat(Perth시티의 무료버스)을 타고 스완강가(Swan river)로 갔다.  그 곳 벤치에 앉아서 많은 생각을 했다.
다음주까지 안되면, 걍 한국이나 갈까? 하는 생각.
한국가서 몇 달 돈 벌어서 미국이나 갈까 하는 생각.
그리고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
그리고 여행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들.

그리고, 저녁때 교회에나 가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통의 전화가 울렸는데, 퍼스에 처음 왔을 때 만난 형님이었다. 특별히 바쁜일이 없어서, 그 형님의 일을 도와 주었다. 어차피 그 형님도 교회에 다녔기 때문에 같이 교회에 가기로 했다.

금요일 오후 5시,
에이전시에서 한통의 전화가 왔다. 순간, 느낌이 왔다. 왔구나............. 금요일 오후 5시가 조금 넘은 시간.
에이전시는 4시 30분에 문을 닫는다. 왠일일까?
"Hello? this is Mr chang. speaking."
"Hi, Chang,, 어쩌고 저쩌고"

결론은,
일자리가 생겼는데, 당장 내일부터 일할수 있냐였다.
너무 흥분해서, 알았다고하면서 입에서 이상한 영어가 막 튀어 나왔다. 그래도 에이전시 메니져는 성격도 좋고 농담따먹기도 좋아하는 편이라서 나에게 농담도 하면서 자기와 만날 시간과 약속을 잡았다.

나는 나와 같이 있던 형님에게 말하고, 에이전시로 갔다.
막 퇴근하려던길에 나를 발견한 에이전시 메니져는 잘 왔다면서 나에게 일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었다.
그리고 행운을 빈다면서, 무슨일이 생기면 자기에게 전화하라고 명함을 건네주었다.

일에대한 소개가 적힌 종이와, 내가 일하러 가게될 곳의 전화번호, 주소, 준비물, 임금 등이 적힌 종이를 주었다.
그것을 받아들었을 때 그 기쁨이란!

마침, 그 날 텍스파일넘버(TFN, Tax file number)을 받았고, 모든것이 완벽했다.

그렇게, 일을 시작 할 수 있다는 생각과, 지난번처럼 펑크가 날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함께 내 몸속에 공존하고 있었다.


모든 것은 내일 결정 된다.
반응형

I'm looking for job! - 03, 구직자에서 외국인노동자가 되기까지 02.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0. 23. 16:15

반응형

호주에 와서 맞이한 첫 번째 월요일에 두 개의 농장일을 놓쳐버리고나서, 나는 집중적으로 공장에 가서 어플리케이션Application을 쓰기로 했다.

물론,
오전에는 잡에이전시(Job Agency)에 들러서 일자리가 있는지를 물어보고, 일이 없다고하면 점심도시락을 챙겨서 공장지대를 돌아다녔다.

구글어스(Google Earth)로 퍼스Perth 주변의 공장처럼 보이는 곳의 위치를 확인한 후 그 곳을 돌아다녔다.

운 좋게도 퍼스에서 좋은 사람 몇몇을 만나 일을 구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모두가 형, 누나들이었고 호주에서 1년이상 워킹으로 와 있던 사람들이어서 나에게 많은 이야기도 해 주었는데,

특히, 난 여행중에 호주에 들려 잠깐 돈을 벌고 가야하는 처지라서 시간이 별로 없는 상태였기에 그 사람들의 도움은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퍼스에서 만난 형과 함께 그 형의 차를 타고 프리맨틀Fremantle 주변의 공장을 돌면서 어플리케이션쓰는 요령을 배웠다. - 조금 더 내가 쓴 어플리케이션폼이 눈에 띌 수 있는 노하우를 보고 배웠다. -

그리고,
주변의 공장과 주변 사정, 퍼스 주변의 농장의 정보에 대해서 많은 걸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시즌이 겨울(내가 호주에 처음 왔을 때가 7월 중순, 일을 구하러 다닐때가 7월말 8월초,,호주는 한겨울이었다)이라서 많은 공장들이 인원을 줄인 상태였고, 거기다가 호주경기가 나빳기 때문에 하나같이 사람을 모집하지 않는 다고 했다.
한국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곳까지 돌아다녔으나, 일을 구하기는 힘들었다. 

시간이 지날 수록, 난 점점 더 초조해졌고, 통장의 잔고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나의 건강상태도 더욱 악화되어 갔다. - 많은 나라들을 여행하다보니 몸의 밸런스가 깨어져버렸었다.


그래도 어쩌겠나?
나는 그냥 열심히 알아보고, 돌아다녔다.
매일 아침, 호주 정부에서 운영하는 잡사이트와 몇몇 에이전시사이트에 올라오는 일자리를 확인하고, 에이전시에 가서 일자리를 문의했으며, 돈이 급했기에 돈은 얼마 안되지만 새벽에 청소를 하는 일도 알아 보았다.

그렇게 몇 일 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일을 구하러 다닌지 2주차가 되었다. 이제는 에이전시에서 나를 알아볼 정도가 되었다. 내가 에이전시에 들어가서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오늘 일거리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그리고 일을 구할 수 있는 다른 방법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나중에는 서로 친구먹을 정도 까지 되었다)


호주에서 맞이하는 두 번째 월요일,
드디어!!
에이전시에서 잡을 하나 얻어 내었다. 그리고 일을 하러 당장 떠날 수 있다고 말해놓은 상태였다. 사실은 경험자를 원했는데, 난 별에별 구라를 다 쳐가면서, 할 수 있다고 우겼고, 워킹 세컨비자가 필요하니까 꼭 시켜달라고 떼를써서 하기로 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게...(지금 생각하면 그 때까지도 참 어리석었다. 하지만 글을 쓰고있는 지금은 더 잘 되고 있으니 다행이다)
에이전시에 올라온 다른 일이 조금 더 끌렸다. 벌을치는 일이었는데, 왠지 그 일이 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 일을 시켜달라고 했더니,
"농장간다며?"라면서 정색을 하길래,
"dont worry my second visa. I'd like to bee keeping"이라고 말했다.

그게, 실수였다.
월요일이라서 안그래도 일이 바빠서 스트레스 받는데, 내가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니까 짜증이 난거였다.
알았다고, 일단 기다리라고 해서 기다렸는데,,,,

결국은, 둘다 캔슬이 되었다.

절망.
참 많은 후회가 밀려 들었다.
괜히, 조금 더 좋은 조건에, 뭔가 재미있을 것 같은 일을 해 보려다가
두마리 토끼를 다 놓친 격이었다.

또 다시 느꼈다.

일을 하려거든,
그 일이 있을 때 그냥 무조건 시작하고 나서 계속할 지 그만둘지를 결정해야 된다는 것을.
기회는 순간이다.




반응형

I'm looking for job! - 02, 구직자에서 외국인노동자가 되기까지 01,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0. 21. 15:13

반응형


퍼스에 도착하고나서 첫 번째 일요일 저녁,
내가 머물던 백팩커스(Coolibah lodge)의 스텝에게 퍼스에서 좀 유명한 에이전시 4군데의 위치를 들었다.
그래서 난 월요일 에이전시를 방문할 동선을 짜고 나름대로 계획을 세웠다.


일요일 오전,
퍼스에 와서 우연히 알게된 사람이 다닌다는 교회에 갔었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점심을 먹고 여러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했다.

무엇보다도,
나는 호주에 순수 워킹이나 공부를 위해서 온 사람이 아니라 여행 중에 호주에 잠시 들러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여행을 하려고 하고 있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 주었다.
내가 호주에 머물려고 생각하는 기간, 3개월에서 최대 4개월,, 앞으로 여행에 필요한 여행자금 7천-8천달러.

나에게는 돈이 필요했고, 따라서 나의 최대관심사는 일자리였다. 물론 교회에서 많은 한국사람들이 있었고 일자리를 구하러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요즘은, 겨울이고 호주경제도 많이 나빠지고, 워홀러들도 많아져서 일구하기가 어렵다고들 했다. 작년에는 그나마 쉬웠지만 올해의 호주 경제가 최악??

아무튼, 나는 호주에 오기 전,
퍼스근처에 공장들이 꽤 있어서 공장에 취직을 하기가 쉽고, 돈벌이도 좀 된다고 들어서 공장에서 일을 하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공장에서 단기간에 돈을 좀 많이 벌 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월요일,
숙소를 나와서 열심히 걸었다. 첫 번째 에이전시로 갔는데 에이전시를 찾지 못했다..아직 퍼스지리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관계로 시간을 많이 낭비하고 있었다. 마음은 급했고, 다음 에이전시로 갔다.
오픈시간이 문 앞에 적혀 있었다. Mon 10:30 - 16:00, 현재 시간 09:30.
어쩔 수 없이 다른 에이전시에 갔다. 거기도 문은 닫혀 있었다. 오픈시간조차 적혀있지 않았다..
마지막 네번 째 에이전시에 갔다.

Hello,(중략), I'm lookoing for job.
where are u from?
South korea.
Cool, I have one farm job, Look,

그러면서 마침 10분전에 도착한 팩스같은걸 보여주었다.
캐시(cash)로 시간당 18달러,

- 호주에 온지 얼마 안되는 나로서는 캐시잡이 뭘 뜻하는지 몰랐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캐시로 일한다는 것은 세금을 떼지않고 바로 현금으로 내가 돈을 받는다는 뜻이었다. 따라서 나중에 텍시리턴을 신청할 필요도없고 신청해도 세금을 내지 않기 때문에 텍스를 받을 게 없다. -

퍼스에서 동쪽으로 200km 떨어져있고, 주 45-50시간, 3개월 이상 일 할 수 있는 조건. 계산해보면 주당 적어도 800달러 이상은 벌 수 있는 거였다.

하지만, 난 퍼스에서 공장에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해보고 나중에 다시 온다고 했다. - 이건 정말 미친짓한거였다고 나중에 뼈저리게 후회했다. 일은 있을 때 무조건 바로 Ok 하고나서 나중에 할지 안할지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에이전시를 갔는데, 거기는 오피스잡만 있고, 주로 여자들이 비서를 구해준다고했다. 거기다가 이력서(레주메, Resume)가 필요한데, 난 이력서조차 없었다...도대체가 난 정말 무대포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10시 30분, 마지막 네번째 에이전시에 갔다. 가서 내 신상정보와 아르바이트 경험등을 등록했다. 그리고 묻는 거였다.
"do you have a car?"

나는 차가 없었다. 그래서 말했다.
I dont have car. but my friend have a car.
그러자,
오후에 차있는 친구를 데리고 다시 오라고 했다. 난 알았다고 했다. 가고 안가고는 내가 판단할 문제니까.

월요일 오후,
밥을 먹고 있는데, 네번째 에이전시에서 전화가 왔다.
2시까지 올 수 있냐고, 차있는 친구와 함께. 마침 그 때 퍼스에서 만난 형님과 함께 있었는데, 그 형님도 일을 구하고 있다길래 같이 갔다.

잡 에이전시.
가니까 일이 있다고, 할 수 있냐고 하길래 조건을 들었다. 괜찮았다. 그렇게 오래 하는 일도 아니라서 난 잠깐 일하다가 다시 공장을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Ok 사인을 하고, 당장 가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농장주와 연락이 안되니까 내일 다시 이야기 하자고 했다.

난 숙소로 가서 짐을 다시 싸고 농장으로 갈 준비를 했다.

화요일 오후,
에이전시에 갔다. 사실 일이 잘 연결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한 마음이 마음 한켠에 이미 생겨 있었다.
역시나, 꿈자리가 불안했는데 일이 잘 되지 않았다.
에이전시에서 쏘리라고하면서, 농장주가 이미 사람을 구했다는 거였다.

그 때, 느꼈다. 일자리는 있을 때 바로 잡아야 된다는 것을.
어제 갔던 다른 에이전시에 가서 어제 농장일을 가겠다고 했더니 그것도 이미 다른 사람이 갔다고 했다.

일자리,
기회가 있을 때 무조건 가야 한다. 생각할 여유를 가지면 안된다.
생각은 일단, 간다고 말하고 난 뒤에 하는 거다.
한다고 하고 나서 일을 하고 안하고는 나중에 판단하면 되는 문제인 것이었다.

그렇게, 두개의 일자리를 모두 날려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그렇게 여행을 할 수 있는 나의 시간은 점점 더 줄어들었고 나의 통장 잔고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