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을 걷다, 세계여행/여행, 그리고 에피소드 · 2014. 1. 27. 02:21
3rd Edit.
1. 여행 속 "만남".
혼자 여행을 하는 사람이든,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하는 사람이든, 여행은 여행하는 사람에게 있어 만남의 연속이다. 특히 그 만남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혼자 여행을 하는 사람은 더 많은 만남을 경험 할 수 있다]
그 '만남'이라는 것이, 잠깐 스쳐가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조금 길게 이어질 수 있고, 그 만남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만남을 통해서[여행 중 누군가와의 만남]을 통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만남은 어쩌면 우리가 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고귀한 경험일 지도 모른다.
2.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그 여행 속에서 만났던 수 많은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그 만남은 여행이 끝났지만 지속되고 있을 수도 있다] 나도 많은 여행을 했고, 많은 만남이 있었다[아직은 젊은 나이-만 25세 밖에 안되었으니!-라서 더 많은 만남을 가질 수 있었는지도]
인도에서의 많은 사람들, 이집트에서 그리고 유럽에서의 만남, 터키의 친구들, 네팔의 연인, 시베리아 횡단열차속에서의 만남, 남미, 쿠바 등. 수 많은 사람들이 나와 만났고, 대화했고, 함께 했고, 내 카메라 렌즈속으로 들어왔고, 나 또한 가끔은 그들의 카메라 메모리에 저장되었다.
그리고 나는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그들의 다양한 사고방식을 이해했고, 그들의 다양한 문화를 이해했고, 나 자신의 삶의 방향을 만들어 갔다.
만남 속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은 나의 추억이 되었고, 나의 스승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 어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의 재산이 되었다.
3. 쿠바 하바나(Havana)에서의 짧은 여정을 마치고, 왠지 모를 아쉬움을 남겨둔 채. 자메이카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갔다.
쿠바에서의 일주일,
싸구려 카사(까사,casa 홈스테이)에서, 다시는 경험 하지 못 할 쿠바 사회를 간접적으로 경험했다[숙소의 영향이 컷다. 그 곳은 실제 그들이 사는 곳이었으므로] 그것은 그들의 현실, 삶이었다.[내가 머물던 집은 불법 카사로서,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못한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이었다]
나의 비행기는 케이만아일랜드(Cayman Island, 영국령의 카리브해의 섬)를 경유해서 자메이카로 가는 것이었기에[그 비행기가 가장 저렴했다. 약 215US$], 하바나 공항에서 케이만아일랜드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와 같은 비행기를 타는 것 같아보이는 한 꼬마가 나의 앞 쪽 건너편 자리에서 심심한 듯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 때 케이만아일랜드행 비행기가 대기하고 있는 게이트 앞에 있었는데, 그 앞에 그 꼬마와 삼촌뻘로 보이는 사람이 같이 있었으므로 그런 사실을 쉽게 파악 할 수 있었다.]
4. 한 꼬마.
한 꼬마가 하바나 공항, 케이만아일랜드행 비행기에 탑승하는 게이트 앞에 왔다. 그 꼬마는 혼자 앉아 있는 한 남자를 보았다. 검은 머리에 거무잡잡한 피부. 보통의 남자들보다는 조금 긴 머리. 그리고 보통의 남자들 보다는 조금 큰 키. 그 꼬마 여자아이는 귀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은 신기한 무언가를 보는듯한 눈빛으로 동양인 남자를 바라보았다.
꼬마는 그의 앞자리[건너편]에서 그를 몰래 훔쳐보다가, 그가 꼬마에게로 시선을 가져가면 의자 뒤로 숨곤 했다. 그 꼬마의 삼촌뻘 되어 보이는 남자는 쿠바에서의 일정이 피곤했는지 의자 위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고, 그 꼬마는 자신과 놀아줄 상대를 찾지 못해, 심심해 하는 눈치였다.
꼬마의 장난기 어린 행동이 시작되었고, 그 곳엔 숨바꼭질 하듯 긴장감이 나돌았다. 그는 카메라를 집어 들고, 카메라의 초점을 꼬마쪽을 향해서 고정시킨 채, 꼬마를 향해 셔터를 눌렀다.
5.
나와 그 꼬마의 숨바꼭질. 나는 사실 속으로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그 꼬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얼마 후 그 꼬마의 삼촌뻘되는 사람이 잠에서 깨어났고, 우리들의 놀이는 끝이 났다.
꼬마를 향해 셔터를 눌러 대던 그 당시엔 몰랐지만, 그 곳을 떠난 지금 그 때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정말 재미있는 장면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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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1. 3. 27. 20:11
Cuba, Habana - Cayman Island - Jamaica, Kingston - New York, NYC.
1. 전설, Legend.
전설. 사람들이 여행을 할 때 좇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전설이다. 드라큘라 전설. 로빈후드 전설. 여러가지 전설이 있다. 어느 지방의 전설이 유명해지면 사람들이 그 전설을 좇아 그 곳을 찾아온다. 전설이 매력있는 이유 중 하나는 그 전설에 관련된 구체적인 증거물이 존재한다는 것이다.[중고등학교때 국어 공부를 꽤나 열심히 했던 사람이라면 전설, 신화, 민담(설화)를 기억해 보라. 전설의 특징은 구체적인 장소와 증거물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꽤나 많은 전설이 존재한다. 어떻게 보면 춘향이와 이몽룡의 사랑이야기는 남원 지방의 전설이고, 그들이 놀았다는 구체적인 사물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축제가 열리고 사람들은 그 곳을 찾는다. 그 옛날 춘향이와 이몽룡이 놀았다는 그 곳에서 그들 기억속에 존재하는 춘향이와 이몽룡의 모습을 생각하게 된다.
인도의 타지마할에도 전설은 존재한다. 타지마할을 짓고 나서, 왕은 타지마할과 같은 건축물을 더 이상 만들지 못하게 하기 위해 타지마할을 만드는데 참여했던 사람들의 손을 잘라버렸다는 그런 이야기와 함께 전하는 타지마할. 그래서 사람들은 세계에서 아름답다고 소문난, 세계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건축물을 보기위해 인도의 건조한 도시, 아그라(Agra)로 발걸음을 옮긴다.
전설은 어느 장소와 관련되거나 특정한 건축물에 관련된 것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마이클 잭슨을 전설이라고 부른다. 누군가는 스티브 잡스를 전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그는 아직 살아 있지만, 살아 있어도 전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메이카에 가면 또 하나의 전설을 만날 수 있다. 레게 음악의 전설, 밥 말리.
2. 밥말리(Bob Marley)라고 쓰고, 전설(Legend)라고 읽는다.
나는 전설을 좇아 다녔다. 어린 시절 영화로 접한 드라큘라의 이야기. 그 전설을 좇아 루마니아로 떠나기도 해봤고,[남들이 다 하는 것 처럼], 전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흔적을 찾아 그의 집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밥 말리. 레게 음악의 전설. 언제 부턴가 레게 음악의 리듬이 좋아졌고, 레게 음악에 대해서 알아 보았다. 힙합과는 다른, 재즈와도 다른, 독특한 매력의 레게. 남미의 레게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접하면서 자메이카 태생의 세계적인 레게 뮤지션이었던 밥 말리가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집에서 본 그가 받은 수 많은 음악상. 그리고 그가 입었던 옷. 그리고 생전의 사진. 항상 마리화나를 입에 물고 작업을 했다는, 밥 말리.
자메이카에선 "레전드"라고 쓰고 "밥 말리"라고 읽고, "밥 말리"라고 쓰면 "레전드"라고 읽었다.
3. 자메이카에서 맞이한 새로운 이야기.
비행기는 쿠바 하바나공항을 떠났다. 나와 장난을 치던 꼬마(http://dwis.tistory.com/530 참고하시길!)도 나와 같은 비행기를 타고 케이만제도(Cayman Island)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1시간 반 뒤, 카리브 해의 작은 섬에 비행기가 착륙했다. 공항은 동네 기차역 보다 작았다. 2층의 아담한 건물. 그 곳에서 꼬마와 나는 헤어졌다. 그랜드 케이만(Grand Cayman)의 조지타운. 영국령 카리브해 자치 섬인 케이만 제도의 수도였다. 해가 스믈스믈 바다 저편으로 넘어갔고, 비행기는 2시간 딜레이 되었다. 그 덕에 나는 해가 떠 있을 때 자메이카에 도착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버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편으론 걱정되었다. 치안이 극도로 좋지 않다는 자메이카. 그리고 그 수도 킹스톤(Kingston). 밤 9시를 넘긴 시각, 그 날의 마지막 비행기가 사람들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꾸역꾸역 비행기 몸체속으로 들어갔다. 습기를 많이 머금은 따뜻한 바람이 내 살갛을 스쳐 지나갔다. 카리브 해의 냄새가 내 콧가에 머물렀다.
자메이카의 킹스톤 국제공항. 공항을 빠져 나오니 밤 11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나는 인터넷에서 주워들은 정보들을 이리 저리 조합을 했다. 그리고 택시 기사들과 쇼부를 쳤으나 그들은 가격을 내리려 하지 않았다. 한 남자가 나에게 접근 해 왔고, 나는 그와 쇼부를 쳤다. 20달러에 내 목적지 까지. 그리고 그가 주차장으러 차를 가지러 갔고, 나는 주차장 게이트에서 그가 차를 몰고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 때, 고급 벤츠가 내 앞에 멈추어 서더니 창문이 열렸다. 그리고 나에게 외쳤다. "헤이, 너 왜 거기 서있는거야? 어디로가?"
4. 자메이카에 다시는 오지 마세요.
나? 택시 기다리고 있어. 왜 거기서 택시를 기다려? 어디까지가? 예약한 호텔로 가야지.[사실 그 때 예약한 호텔따윈 없었다] 그러면서 일단 나에게 타라고 했다. 자기가 태워 주겠다면서.[아주 좋은 차로 보였고, 뒷자석에 탄 사람은 정말 신사처럼 보였기에 나를 어떻게 해칠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살짝 고민을 하다가, 그의 차에 올라탔다.
그 때, 나와 쇼부를 쳤던 무허가 택시 기사가 뒤에서 소리쳤다. 그리고 내가 탄 차의 운전기사와 무슨 말을 나누었다. 그리고 나에게 물었다. 저 사람 알아?
알긴 아는데, 저 사람 차를 타고 호텔로 가기로 했어. 그리고 신사가 바로 말을 이었다. 내가 호텔로 데려다 주겠어. 여긴 위험해. 저런 사람 차 타지 않는게 좋아.
나는 고민을 했다.[고민이라고 할 것 까진 없었다. 지금 이 차를 타고가면 택시비 20달러 굳는다는 생각과 함께 원래 내가 타기로 한 택시 기사가 나중에 밤에 나를 총으로 쏴 죽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냥 지금 이 차를 타고 호텔로 가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운전기사와 택시기사는 실랑이를 벌였고, 밖에서는 욕설이 마구 들렸지만, 창문이 닫혔고 차는 출발했다. 나는 불안한 마음에 뒤를 돌아보았으나 다행히, 그 택시기사는 따라오지 않는 것 같았다.
내 옆에 탔던 신사가 말했다. 너 한국 사람이지? 나는 대답했다. 응 한국사람이야. 그러자 그 신사가 덧붙였다. 난 워싱턴에서 온 비지니스맨인데, 내 부인이 한국사람이야. 그래서 니가 한국사람이라는 걸 알아봤지. 잘됐어. 이름은 뭐야? 내 이름은 진. 여행중이야. 자메이카는 처음이지? 처음처럼 보이는데. 응 처음이야.
그러자 미국인 사업가는 덧붙였다. 자메이카에 다음 부터 절대로 오지말라고. 이곳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위험한 곳이라고. 그리고 또 하나 덧붙였다. 자기 아들의 이름이 "진"이라고. 나와 이름이 같았다. 나는 그들이 묵는 호텔로 갔고, 그 곳에서 콜택시를 불러서 내 숙소로 이동을 했다.
그리고 그 사업가는 나에게 명함을 하나 주면서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을 하라고 했다.[그 후로 연락 할 일은 없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를 더 받았다. 자메이카는 생각보다 위험한 곳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말이다.
조금은 불안했지만, 나쁘지 않은 출발이었다.
5. 거리엔 음악이 흐르고.
숙소에 짐을 풀고, 잠을 잤다. 방은 더블 룸 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날이 밝자 슈퍼마켓에서 먹을 음식과 생수 한 통을 사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후덥지근한 날씨였다. 마당의 해먹에는 몇 몇 애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스라엘에서 온 애들이었다. 그들은 내일 자메이카 북부 도시로 떠난 다고 했다. 그곳에는 레게 음악파티가 열린다고 했다.
몇 몇 일본인 들은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밤에만 움직이는 듯 했다. 밤에는 클럽에서 음악이 울려퍼졌기에. 그들은 낮에 잠을 자고, 밤에는 클럽에서 놀았다. 낮에는 거리에서 음악이 울려 퍼졌고, 밤에는 클럽에서 음악이 울려 퍼졌다. 나는 밤 낮 가리지 않고 음악을 들었다.
2월 초 였지만, 북반구 였지만, 자메이카는 더웠다. 거리를 걸어 번화가로 향했다. 생각보다 먼 거리였다. 거리를 혼자 걸으면서도 생각했다. 누군가가 나에게 총이나 칼을 들이대는 건 아닐까?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 다가가자, 길거리에서 음악 CD를 파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다양한 음악들. 흘러나오는 음악은 주로 레게였다.[힘합 리믹스 음악이 나오는 곳도 있었다]
시내의 중심가인 넬슨만델라 공원의 곁을 지나갔다. 인터넷을 하다가 얼핏 본 기억이 났다. 넬슨만델라 공원에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그는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래서 그 공원이 아주 큰 규모인 줄 알았는데, 정말 작은 규모였다. 공원의 바깥에서 안에 누가 있는지 다 보일 정도의 작은 크기의 공원. 그 공원에서 낯익은 냄새가 내 코를 자극했다. 그리고 하얀 연기들이 피어 올랐다. 담배보다는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부드러운 냄새. 담배보다 몸에 해롭지는 않지만, 조금은 더 강력한 것.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입에 물고 연기를 뿜어 댓다.
6. 밥 말리.
밥 말리 뮤지엄에서 밥 말리를 보았다. 레게의 전설. 자메이카의 전설이었다. 밥 말리. 그의 음악, 그의 영향을 받은 많은 아티스트. 대한민국의 레게 뮤지션들이 자메이카에서 레게 음악을 배우고, 앨범 작업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었다. 레게의 본고장에서 레게를 듣고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기분이 묘했다.
7. 클럽. 나이트.
숙소에 머무는 외국애들과 밤에 클럽을 갔다. 자메이카에서 밤에 외출을 할 때는 반드시, 숙소 문 앞까지 택시를 불러서 택시를 타고 목적지 까지 간 다음, 그 곳에서 돌아 올 때도 그 앞에서 택시를 타고 숙소 앞에 내려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봉변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자메이카에선 어떤 사람이 밤에 사람을 죽이고도, 그것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사람을 죽인 사람은 그것을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무서운 세상이구나 라고 생각을 했다.
클럽 앞에서 돈을 지불하고, 클럽으로 들어섰다. 육중한 철문을 밀고 들어선 그 곳에는 음악이 흘러 나왔고, 많은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자메이카의 젊은이들이 다 모여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곳에서 느낀건, 아, 여기도 라틴인가?
8. 음악이 시간을 채워주는 도시.
자메이카와 쿠바는 멀리 떨어지지 않았는데, 느낌이 달랐다. 기후도 달랐다. 자메이카에선 힘이 빠졌다. 쿠바보다 습한 날씨와 약간은 더 높은 기온. 낮에는 그냥 숙소 침대에서 뒹굴었다. 나가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거리엔 태양이 내리쬐고 있었고, 사람들은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해가 지길 기다려, 저녁을 지어 먹고. 밤이 깊어지면 숙소의 다른 외국애들과 음악을 즐기러 갔다. 그렇게 자메이카에서의 하루하루는 음악과 함께 하는 시간들로 채워졌다.
- 무료하게 거리를 걸으며
-
- 밥말리 뮤지엄 외벽
- 내가 자메이카에서 한거라곤 고작 밥말리 뮤지엄을 간 것 뿐.
- 밥 말리
- 시계탑. 시내 중심가. 옆에 넬슨만델라 공원이 있다.
- 시외버스 터미널
- 나에게 야유를 보내던 여고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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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1. 3. 15. 22:39
Venezuela, Caracas - Cuba, La Habana - Jamaica, Kingston
1. 엽서 혹은 편지.
초등학교 시절[15년 전 쯤]을 생각 해 보면, 친구들끼리 편지를 참 많이 주고 받았었다. 그 시절엔 휴대폰이라는 것도 없었고, 삐삐라고 불리는 작은 기계가 이제 막 세상에 모습을 드러 내려 할 때 였기에, 사람들은 손으로 글자를 쓰고, 편지 봉투에 그 글자들을 담고, 그리고 풀로 그 글자들을 감싸서, 우표와 함께 우체통에 넣었다.
어느 날, 집으로 들어서기 전 우체통에 다른 사람의 체온이 담긴 편지가 들어 있는 걸 발견 한다면 그 날은 정말 즐거운[혹은 기분 안좋은 일이 있었더라도 좋아지는] 하루가 된다.
연말이 되면 엽서를 보내기도 했고, 라디오 프로그램에 사연을 보낼 때도 단연 엽서를 썼다[지금은 휴대폰 문자나 인터넷 게시판을 이용하는 걸로 알고 있다] 누군가에게 짧은 말을 전할 때 나의 체온을 함께 전하고 싶다면 엽서를, 그리고 나의 마음을 좀 더 길게 담아서 전하고 싶다면 편지를 썼다.
중학교 시절, 설레는 마음으로 편지를 써서 좋아하는 여자아이에게 건네주기도 하고, 저 멀리 다른 도시로 전학 간 친구에게도 편지를 써서 안부를 묻곤 했다. 그리고 해외에 있는 친구들과도 편지를 주고 받기도 했다. 그렇게 편지는 보내는 기쁨과 그것을 기다리는 설렘 속에 기쁨이 있고, 또한 받았을 때도 기쁜 마음이 드는 특이한 존재였다.
그리고,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장소에서, 그 장소에 어울리거나 그 곳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혹은 그 나라에 어울리거나 특징을 잘 나타내는] 엽서를 구입하고, 친구들에게 안부를 묻는 엽서를 보낸다. 외국에서 외국의 향기가 담긴 엽서를 보내는 것은 백년 전이든 50년 전이든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든 여행자 들이 좋아하는 행동 중 하나이다.
엽서는 쓰는 사람의 체온이 담기고, 보내는 사람은 받는 사람을 한 번 더 생각하게 해주고, 엽서를 받는 사람은 그 사람의 체온을 전달 받고 기쁨에 잠길 것이 분명하기에, 여행에서 보내는 엽서는 특별한 가치를 지니게 된다.
2. 내 엽서는 어디로 갔나요?
나는 여행을 하면서 엽서를 수 많은 엽서를 보냈다.[보통 한 나라에서 2통 이상 씩. 한 번 보낼 때 보통 2개를 보낸다. 지금 까지 100통이 넘는 엽서를 친구, 혹은 아는 사람, 혹은 여행 중 만난 사람들에게 보냈다. 하지만 그 엽서들이 모두 그들의 품에 도착했는 지는 알 수 없다.]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에게 엽서를 보내면서 드는 생각은 오직 하나. 이 엽서를 받은 사람은 기분이 좋겠지? 그리고 먼 훗날 서랍장을 뒤지다가 우연히 내가 해외에서 보낸 엽서를 발견 했을 때 나를 잠시라도 기억 해 주겠지. 좋은 기억으로. 라는 생각.
엽서를 받았냐고 물어 봤을 때, 엽서를 받지 못했다는 사람들도 많았다.[특히,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에서 보냈을 경우] 내 엽서들은 어디로 갔을까? 누군가 그 엽서와 관련이 없는 사람 손에 닿아서 파괴 되었거나 그 가치를 상실 했을 것이다.
내가 억울하게 생각하는 것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보낸 엽서들이 대다수가 한국에 도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엽서 하나 보내는 가격이 한화 5천원 이상을 하지만, 나는 받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기뻐할 것을 알기에 보냈지만, 엽서들은 도착하지 않았다.[물론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
3. 쿠바에 대한 상념.
대학교 시절, 체 게바라를 알았다. 사회적 문제, 노동 운동에 관심을 가지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이다. 체 게바라 평전을 읽었고, 체 게바라의 젊은 시절을 모델로 한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라는 영화를 보았다. 그리고, 나도 젊은 시절의 체 게바라처럼 오토바이는 아니라도 그 코스를 따라 여행을 해 보겠다고 생각을 했다. 버스를 타고서라도.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와는 많이 다른 코스로 남미를 여행했다. 그렇지만, 그토록 가 보고 싶었던 쿠바에 왔다. 돈이 얼마가 들던 나는 쿠바는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나의 일정을 채찍질 해서 쿠바에 닿아 있었다.
사실, 쿠바에서는 체 게바라의 흔적을 가장 먼저 보고 싶었다. 체 게바라의 삶의 종지부. 그와 피델 카스트로. 그리고 사회주의 혁명. 쿠바의 이미지는 그런 것들이었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의 재즈 음악과 쿠바나 음악 보다는, 헤밍웨이가 하바나에 머물면서 썻다는 <노인과 바다>의 하바나 바다의 이미지 보다는, 쿠바 혁명의 흔적, 아니 그 보다더 직설적으로는 체 게바라의 흔적이 어떻게 남아 있는 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쿠바에 도착한 첫 날. 나의 쿠바에 대한 환상은 뒤바꼈다. 쿠바는 내가 생각하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혁명의 흔적은 역사의 파편이 되어 한 쪽에 머물러 있었고. 내가 찾던 체 게바라는 사진 속에서만 웃고 있었다.
4. 쿠바에 대해서 얼마나 아세요?
어디에 가세요? 쿠바에요. 다음은 어디가? 쿠바. 쿠바. 쿠바에 간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좋겠다고 했다. 물론, 나도 쿠바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쿠바에 간다는 나를 부러워 했다. 쿠바가 어떤 곳이길래?
내가 쿠바에 도착 하기 전 쿠바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곤, 사회주의 국가. 미국과 적대적 관계. 하바나의 클럽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재즈. 체 게바라와 피델카스트로의 혁명. 단지 그것 뿐이었다. 나는 단지 한 사람 때문에 쿠바를 동경하고 있었던 것이 틀림 없다.
남미, 라틴 아메리카의 영웅. 체 게바라. 하지만 영웅은 어디에도 없었다.
쿠바에 처음 도착하고, 시티 센터에 도착 했을 때 내 눈에 보인 건, 거대한 고딕 양식의 건물이었다. 중세 유럽에 온 듯한 느낌. 유럽의 한 도시에 온 기분이었다. 건물들은 낡아 있었지만, 기품있어 보였다. 흑은과 백인. 혼혈인들이 뒤섞여 있었고, 스페인어들이 쉴새 없이 내 귓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무언가 활기가 느껴졌지만, 내가 기대하던, 내가 생각하던 그런 곳과는 달랐다. 쿠바는 이런 곳인가? 클래식 카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지만, 세련되어 보이지는 않았다. 도로엔 차들이 지나다녔고, 거리엔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혼잡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나는 쿠바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5. 쿠바에 대해서 알아가는 단계.
숙소로 잡은 불법 까사에서, 쿠바 사람들의 삶을 보았다. 불법 까사는 다세대 아파트의 수 많은 문들 중 하나를 열고 들어가자 나왔다. 5평이 채 되지 않은 작은 공간. 그 곳에서 한 가족이 살고 있었다. 주인 여자의 남편은 경찰. 주인 여자의 나이는 30대 중반 정도로 보였지만 19살 짜리 아들이 있었고, 동생은 5살 이었다. 내 방이랍시고 내 준 곳에 창문은 없었고, 건넛집의 음악소리, 말소리가 다 들려왔다. 옆 집에서 키우는 새들이 아침을 알리는 그런 곳이었다. 침대는 삐걱대고 있었다.
지도를 보며 거리를 걸었다. 올드 시티. 길을 따라 가자,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곳이라서 그런지 괜찮아 보이는 카페와 식당들이 늘어서 있었다. 건물들은 하나같이 오래되어 쓰러질 듯 한 모습을 띤 것도 있었지만, 그래도 봐 줄만 했다. 광장에는 여러 무리의 광광객 떼들이 보였다. 나는 조용히 그늘에 앉아 그들을 바라 보다가, 혼자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골목 속으로 숨어버렸다.
밤의 쿠바 시내 거리는 조용했다. 빛 조차 찾아들지 않는 골목 속으로 다니기가 무서웠다. 늦은 밤의 거리는 차들도 거의 없었기에 혼자 그 거리를 걷고 있자니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왠지 모르게 누군가 나타나 칼로 나를 찌를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 - 쿠바가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
서점에 들러 책을 보았다. 음반 가게에 들러 음악을 들어 보았다. 쿠바나 뮤직. 나쁘지 않기에 CD를 몇 장 샀다. 길 거리에, 서점에 엽서를 파는 사람들. 그 곳엔 항상 체 게바라가 있었다. 체 게바라는 이제 자본주의의 물결 속에서 좋은 돈벌이 수단이 되고 있었다.
3peso 짜리 지폐 속의 체 게바라는 3CUC(1CUC=24peso)에 판매되고 있는 좋은 기념품의 하나 였다.[나는 우연히 상점에서 3peso 지폐를 거슬러 받았다] 그리고, 체 게바라의 얼굴이 양각된 동전도 하나의 기념품이 되어 있었다. 쿠바 국민들에게는 그냥 동전에 불과했지만, 관광객들에게는 그것이 하나의 기념품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체 게바라의 얼굴을 가지고 돈을 벌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그것은 가능했다.
혁명의 흔적은 혁명 광장에서 잠깐 느낄 수 있었다. 드넓은 광장을 가운데 두고, 큰 얼굴들이 탑을 바라보고 있었다. 혁명 탑. 체 게바라의 눈동자도 그 곳을 향해 있었다. 혁명은 그 곳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사진속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하바나의 거센 파도. 듣던대로 거센 파도였다. 도심에서는 바람을 전혀 느낄 수 없었지만, 노인과 바다에서 묘사된 듯 한 하바나 해변에는 성난 파도가 휘몰아 쳤다. 이 곳이 노인이 사투하던 바다라고 말하는 것 처럼. 노인은 결국 빈손으로 집에 돌아왔고, 잠이 들었다. 나도 빈 손으로 그 곳을 거닐다가 싸구려 까사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쿠바의 극장에서 쇼를 보았다. 하바나의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극장으로 몰려와 쇼를 보았다. 어딜가나 그런 부류는 있는 법이다. 그 쇼의 가격이 보통 식당에서 코스 요리로 한끼를 먹는가격의 30배가 넘는 금액이지만, 그런 쇼는 표가 없어서 못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젊은 청춘 남녀들의 모습을 보았다. 세상, 어딜가나 다 똑같은 법이다.
쿠바에는 시내버스 노선도가 따로 없다. 버스 안에만 노선도가 있다. 외국인들은 버스 노선을 알 수 없다. 버스는 한 번 타는데 0.5peso.[한화 약30원]. 일부러 외국인들은 택시를 타게 하려고 노선도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현지인들이 타는 여객선을 타고 요새가 지어져 있는 하바나 건너편의 카사블랑카로 갔다. 그 곳에서 하바나 시내를 바라보고 버스를 타고 하바나로 돌아왔다. 0.5peso짜리 버스에는 쿠바나의 냄새가 났다. 나쁘지는 않았다. 이게 바로 사람사는 냄새.
0.5peso짜리 시내버스를 타고 정처 없이 돌아 다녔다. 그냥 이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그리고 거기서 또 다른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그렇게 버스를 타고 사람 사람 곳을 돌아다니며 구경을 했다. 시티투어 버스가 15CUC인가(?)를 하는것에 비하면 100배 이상 싼 금액이니까. 난 그런 여행을 즐겼다.
6. 쿠바 어떤가요?
쿠바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조금 더 많이. 쿠바는 내 생각 속에서 혁명의 나라 였지만, 그 곳은 정열의 나라 였고, 음악의 나라였고, 사람 냄새 나는 곳이었다.
한편으론, 체 게바라가 너무나도 상품화 되어있다는 사실이좀 씁쓸하긴 했다. 체 게바라가 과연 그 사실을 알면 어떤 말을 할까?
쿠바는 그런곳이었다. 사람 사는 곳. 라틴 아메리카 속의 라틴 아메리카.
- 까삐똘리오 옆으로 지나가는 버스
- 까삐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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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이나 타운 입구
- 혁명 광장의 체 게바라
- 하바나 해안도로
- 카사블랑카 언덕에서 본 하바나
Good Bye Cuba, Adios! Hab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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