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향한 발걸음 - Culture Project - 관심 가져 주세요! - Keep Walking Fund 응모

- 생각 저장소 · 2010. 12. 17.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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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감사했습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



(Twitter /@ DWinStlip   , 싸이월드/forbeelite ,  페이스북 forbeelite@hotmail.com, 블로그 dwis.tistory.com)


Culture Project - 이런 생각, 이렇게 진행 할 생각입니다.

1. 

  학창시절 주말 밤마다 모여, 미래 그리고 우리의 꿈에 대해 이야기 하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 해 함께 모일 날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대학을 가고, 군대를 가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우리의 꿈은 변함없었습니다.  "문화를 세계에 퍼뜨리자 "- 한국적인 것을 세계적인 것으로 탈바꿈 시켜 전 세계에 알리는 것!  그리고 그것을  이루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드이 함께 할 수 있는 공간, 자유, 열정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

  이 꿈을 위해 걸어 가기 위해 몇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하려 합니다.[일명 Culture Project 입니다.] 이것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돈이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응원입니다. 저의 꿈을 위해서 저는 오늘도 저의 열정을 키우고 꿈을 향해 다가가려 하고 있습니다.

  킵워킹펀드의 지원을 받아 하려는 첫 번째 프로젝트는
Culture Project #1 - Road house project 입니다.(아래쪽에 소개 되어있습니다)

  몇 년전 친구와 DWinStlip라는 팀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군 제대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31박 32일간의 전국 무전 여행이었습니다. 힘들게 여행을 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았고, 우리는 열정과 도전 정신을 가슴 깊이 새겼습니다. 
 
  그리고 지인에게 책 한권을 소개 받았습니다. "러브앤프리(다카하시아유무)" 다카하시아유무라는 사람에 대해서 알게 된 후, 저의 도전과 열정이 한없이 작게만 느껴졌습니다.
 
  이후, 저는 학교를 다니며 주중에는 학원보조, 주말에는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하며 돈을 모아, 세계일주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세계 각국을 돌면서, 소수의 사람들이 외국인들에게 자기나라의 문화를, 자기나라에 대한 자부심을 알리는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을 접하며 많은 가르침을 얻었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자신들 나라의 특색을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도록 변형 시켜 누구라도 좋아할 수 있게 만들어 놓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아르바이트로 번 돈은 세계일주를 하기에 턱없이 돈이 모자랐습니다. 여행을 하며 길거리에서 악기를 연주를 하기도 했고, 호주에서는 농장, 공장에 취직해서 여행을 위한 자금을 모았습니다.   그 때 세계의 길 위를 걸을 때, 제가 가지고 있던 것은 오직 열정 그리고 노력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성공"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세계일주를 완전히 처음의 계획대로 마친건 아니지만, 그래도 세계일주를 해냈다는 의미에서 말이죠.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왜 우리나라에는 다카하시아유무와 같은 독특한 문화를 창조하는 사람이 없는걸까?[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보면 배울 점이 많습니다.]  왜 우리나라에는 유니클로(UNICLO)와 같이 단순한 의류회사가 아닌 일본의 문화를 전세계에 팔고있는 회사가 없는걸까? [내가 외국에서 바라본 유니클로는 옷과 더불어 일본, 일본의 문화를 팔고 있었습니다.]
  - 앞서 말한 두가지를 모두 따라간다는 말은 아닙니다. 일종의 롤(Role) 모델이지요. 저는 지금도, 그들의 모습을 저의 꿈, 우리의 꿈에 맞추어 리모델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이라 불리는 기업이 대한민국 사회에 기여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를 친구들과 고민해봤고, 더불어 사는 세상, 기업의 역할은 기업의 이익창출 외에도 사람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사회복지에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저는 올해 초 귀국을 해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교육에 대해서, 문화, 예술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교육자로서의 올바른 길이 무엇일까를 고민했고, 대한민국 교육에 내가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거리 문화, 우리 사회 저변에 존재하는 다양한 문화를 공유할 수 있을 까를 이야기 했습니다.


  모든 것은 저의 꿈, 그리고 우리의 꿈을 향한 공부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친구 한 명도 일본에서 일을 하며,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친구도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좀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좀 더 많은 지식을 쌓고, 우리의 꿈을 펼칠 열정을 가지고 돈을 모으는 일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열정과 노력, 그리고 끈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이렇게 걸어 올 수 있었떤 것은, 열정과 노력, 끈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저는 많은 경험을 쌓았고, 이제 꿈을 위해 발걸음을 옮기려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여러분의 응원이 필요합니다.


 

Just keep going, Culture Project.




  저의 롤 모델 중 한 사람인 다카하시아유무는 세계일주를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가 ISLAND PROJECT라는 것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성공적이이고,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저는 그 곳에가서 다카하시아유무 그리고 그와 함께함 사람들이 이루어 놓은 것을 보고 싶습니다. 그러면 또 다른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알리는 가장 작은 일 중 하나는 외국인들이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입니다. 물론 그 쉼터는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길을 걷는 모든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그런 곳 말입니다. 그 곳에서 조금이나마 한국적인 것들을 알리고 싶습니다. 이것은 Culture Project 아주 작은 한 부분 입니다.

(그 첫번째로, 로드하우스(쉼터)를 만드는 것입니다. 물론 운영은 기부금제로 할 것이고, 그것을 할 때는 트위터나 블로그를 통해 자원봉사자를 모집할 생각입니다. 물론 그것을 만드는데 필요한 재원은 제가 충당을 해야합니다.)

  많은 부분들이 제가 세계일주, 그 외의 여러 여행을 하면서 계획되었지만, 다카하시아유무의 ISLAND PROJECT로 만들어진 빌리지와 기타 장소들을 보고 나면 더 많은 부분에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모든 것들은 기본적으로 기부금제도로 운영하되, 일종의 수익사업도 해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더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말입니다.

  킵워킹펀드의 지원금으로 Culture Project의 기초를 다지고싶습니다. 그것이 바로 저의 꿈, 우리의 꿈의 기초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발판으로 발전을 시켜 "꿈"을 이루고 싶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을 세계적인 것으로 바꾸어 세계에 알리는 것 말입니다.



Culture Project #1 - Road house project.
; 제주도(예정)에 모든 여행자의 쉼터를 만들 생각입니다. 방갈로 형식의 쉼터를 만들어, 제주도를 여행하는 모든 사람들이 마음껏 쉬어 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운영 할 생각입니다. 앞 서 말했듯이 운영은 기부금제로 하고, 로드하우스 제작에는 트위터나 블로그를 통해 자원봉사자를 모집할 계획입니다.

  제가 전국일주를 하면서, 세계 각지를 돌면서 여행자들이 편히 쉬어갈 수 있는, 그리고 그 안에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문화를 공유하는 그런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 공간은 저만의 공간이 아닌, DWinStlip이라는 팀과 이 글을 보고 계시는 모든 분들이 함께만들고 함께 소유하는 공간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여행하고,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공간이 될 것입니다.


Culture Project  #2 - G.H Project.(예정)
; 외국여행을 하면서 작은 애국자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자신의 나라를 방문하는 여행자들을 위해, 자신의 나라 문화를, 자신의 나라의 자랑거리를 홍보하고, 세계에 자신의 나라에 대해서 알리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한국을 알리는 작은 실천은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알리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게스트하우스 운영을 통해 한국의 음식문화(비빔밥, 불고기 등)를 비롯한 예술문화(사물놀이)등을 간접 체험하는 활동을 생각 하고 있습니다.


Culture Project  #3 - Culture sailing.(Social Campany)
; 유니클로의 일본/일본문화를 판매하는 전략에서 많은 부분 참작했습니다.
일본에서 패션을 공부하는 친구와 마케팅을 공부하려는 또 다른 친구와 한국에서 교육에 대한 공부와 문화 예술(독립다큐멘터리, 독립영화등에 대해서 - 충무로 영상센터에서)을 공부 하고 있는 저와, 스트릿문화에 대해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다른 친구들, 그리고 그 외의 여러분들의 아이디어를 참고하여 한국의 문화콘텐츠 사업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많은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에 대한 지원, 그리고 그들의 작품을 활용한 콘텐츠제작과 판매를 할 생각입니다.
-혹자는, 이런 것을 두고 사회적 기업을 만든다고들 하더라고요.



어떻게보면 허황되고 헛소리같이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제가 많은 부분 생각을 했지만 그렇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 모든 것은 여러분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도와주십시오.




- 세계일주중,


- 프로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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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e got the job again!! - 하루만에 두개의 일자리를 구하다!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1. 28.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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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넘어로 뻗어있는 도로를 달려 퍼스Perth에서 카날본Carnarvon까지 와버렸다. 997km.


오전 6시,
꿈을 꿨다. 왠지 기분이 좋은 꿈. 카날본으로 가는길이 상쾌했다. 왠지 일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오전 8시.
카날본 시티센터에 도착을 했다.
여기가 카날본이구나..! 정말 휴양지같은 느낌이었다. 실제로 요트나 카약같은걸 차에 싣고 오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카날본에 부는 바람도 다합(Dahab, 이집트의 홍해에 있는 작은 휴양도시)에서 내가 느꼈던 바람과 유사했다. 기후도, 풍경도.. 다합에 대한 기억이 나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오전 9시.
시티 비지터센터(city visitor centre)가 문을 열자마자 들어가서, 잡에이전시(job agency)가 어디에있는지 물어봤다. 시티 쇼핑센터에 위치한 에이전시를 가르쳐주길래 바로 그리로 갔다.
에이전시에가서 잡을 구하고 있다고 말을 하니, 직접 농장을 찾아가보라면서 농장들이 모여있는 위치를 지도에 표시해주었다. 플랜트Planet. 어마어마했다.


그 이후,
농장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가니, 정말 거대한 대 농장들이 줄지어 있었다. 한 농장주에게 일이 있을만한 농장좀 알려달라고하니 카날본에만 170개가 넘는 농장이 있는데 자기는 그걸 다 알 수 없다고, 그냥 열심히 돌아다녀 보랜다...
대농장이 170개,,,,,,,,??? 거기서 일자리를 설마 못구하랴?

이미 일을 하고 있는 농장도 많았고, 아직 시즌을 시작하지않은 농장도 많았다. 농장을 하나하나 차례대로 돌아다녔다.

오전 10시경,
농장을 돌아다니면서 농장주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도중, 어디선가 전화가 왔다. "꿈이 드디어 현실이 되는건가?!"


전화,
"Hello"
"Yes, this is Mr, Chang"
"i'm mrs.....후략."

1시까지 공장으로 면접을 보러 오라는 전화.
카날본에서 퍼스까지 1000km거리를 3시간만에 어떻게 가지????????

프리맨틀의 아는 형에게 전화를 했다.
"형, 나 돌쏘냐에서 면접보러 오래요,"
"잘됐다 야, 당연히 가야지"
"네 형, 가야죠, 근데 저 지금 카날본에 있어요"
"아, 뭐 일이 또 그렇게 되냐???"
"그래서 말인데, 형이 대신 면접 좀 가주시면 안되요??"
"나도 니 맘 알겠는데, 나 예전에 거기서 일해서 걔네들이 나 보면 알아 그냥 사실대로 말해, 카날본에 있다고 내일 간다고"
"아... 네 알았어요 형, 어쩔 수 업네요. 나중에 다시 연락드릴게요"

방법은 없었다.
카날본에서 비행기도 없었고, 버스도 없었다.
비행기라도 있으면 비행기라도 타고 가고 싶었다. 버스는 다음날 새벽2시. 퍼스엔 오후4시에 도착한다.

공장에 다시 전화를 했다.
"오늘 오후1시에 인터뷰보러가기로 한 MR. CHANG인데, 사실 내가 지금 카날본에 있다.
인터뷰를 가려고, 비행기도 알아보고 버스도 알아봤는데 오늘은 교통편이 없다. 인터뷰를 내일이나 월요일로 미루면 안되겠느냐?"고 말했다.

"알았다. 일단 나중에 다시 전화 주겠다. yes or no를 조금 있다가  전화로 알려 주겠다." 는 대답.
초조했다.
그래도 한 숨 놓았다. 
나는 꿈을 믿었다. - 꿈에서 교수님이 나중에 발표하는 것을 허락했기에 믿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농장을 컨텍(contact)하러 갔다.
어느 한 농장에서 내일 일을 하러 오라고 했다. 일단 캐시잡으로 일을 시켜준댄다. 농장 어커머데이션도 시설도 좋았고 가격도 쌋다. 그렇게 일이 일사천리로 풀렸다.


일단 처음 숙소로 잡은, 카날본 백팩커스로 돌아왔다.
같이 온 동료들이 나에게 말했다.
"농장도 컨텍됐고, 우리랑 같이 여기 농장에서 일하자"라고.

고민했다. 많은 생각을 했다. 대답을 하지 않았다.
'여행, 돈, 시간, 사람, 정(情), 확실성과 불확실성' 모든걸 생각해야했다.

많은 고민끝에 나는 입을 열었다.
"퍼스로 다시 돌아갈게요"
"퍼스에 모든 미련 다 버리고 왔으면 여기 같이 있자. 여기까지 와서 니가 이러면 배신이다"라는 대답.

나의 상황에 대해서 설명했다.
이제 얼마남지 않은 시간. 그리고 필요한 돈. 내년까지 여행을 마쳐야하는 나의 상황. 시간+돈 과 사람 사이의 갈등이었다.

결국, 퍼스로 다시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퍼스로 가서 공장에 일단 가보지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을 평생 원망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날은 컨텍했던 농장에서 반나절 일을하고 현금으로 돈을 받고 나는 퍼스로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지만, 일이야 어떻게 되든 퍼스로가지않으면 정말 후회할 것 같았다. 


후담이지만,
결국은 모든일이 잘 풀렸다.
그리고 카날본에 같이 갔던 사람들과도 지금 잘 지내고 있다. 가끔씩 만나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들은 다시 퍼스로 내려와서 다른 농장에서 일하고 있고, 한명은 몸상태가 안좋아서 한국으로 귀국했다.







- Great north coast hwy의 로드하우스,


-


- 퍼스로가는 버스, 그레이하운드. 카날본-퍼스의 가격이 190AUD....쩐다..13시간버스가 20만원 ㅠ


- 호주에서의 마지막 농장일,


- 바나나밭 중간에 수박을 심었다...


- 바나나 열매들, 많이 따먹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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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이야기 - 카날본으로 가는 길 로드하우스(Road house)에서,

- 호주, 워홀이야기- · 2009. 11. 28.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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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당신은 꿈을 믿으시나요? 혹시 믿는 다면,
꿈이 나의 미래를 예지한다는 느낌으로? 아니면 꿈은 반대라는 생각으로?
아니면 그냥 개꿈이라고 생각하나요?

전 꿈을 믿는 편입니다.

보통, 난 너무 피곤해서 새우잠같은걸 잘 때 꿈을 잘 꾸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 꿈을 꾸는 경우가 있다.
그 다음날이 대체적으로 중요한 날일 때. 뭔가 의미있다고 생각되는 꿈을 꾸는 편이다.

예를들어, 시험기간이라던가, 뭐 아무튼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일을 하는 날일 때 말이다.

그리고 호주에서, 뇌리에 선명하게 기억될만한 꿈들을 몇 개 꾸었다.



꿈을 꿨다.
- 퍼스에서 북쪽으로 1000km 카날본Carnarvon으로 가는 길, 어느 로드하우스의 주차장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꿈 속에서,
한 후배가 나에게 전화를 했다.
"오빠, 수업에서 조별 발표를 해야하는데 오빠 우리조에서 같이 발표 하실래요?" 라고 말했다.
난, "Ok"라고 대답을 했다.

왜 갑자기 그 아이가 나에게 전화를 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왜 하필 그애 였는지.
학교 다니면서 많이 마주치지도 않았다. 서너번 정도 본 것 같다. 술도 같이 딱 두번 먹었다. 싸이는 일촌이지만, 뭐 그냥 보통 선후배사이다. 별로 친한사이는 아니다.
왜냐하면 친할 기회가 없었으니까. 09학번.....ㄷㄷ...나는 세계일주를 한답시고 09년 3월 한국을 떳으니까.


꿈 속에서,
같이 발표 조모임을 하게 되었다.
발표준비를 다 끝내고 발표를 하는날이 되었는데 갑자기 내가 너무 급한일이 생겨서 발표를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교수님한테 전화를해서 발표를 다음으로 미루면 안되겠느냐고 부탁을 했더니 다음에 발표를 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뭐 지금은 기억이 잘 안나는 이것저것을 하고나서,
다시 발표를 하게 되었다.

꿈의 끝.


아침 6시 경,
잠에서 깨어났다. 약 4시간을 차 안에서 눈을 붙이고, 카날본으로 다시 떠났다.


왠지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냥 느낌이.
그리고 왠지 어디선가 내 전화기로 전화를 해 줄것 같았다. 그냥 이유없이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일자리에 관한 전화가 올 것 같다는 근거없는 믿음이 생겼다.
혼자 꿈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았는데, 왠지 공장 어디선가에서 나한테 전화가 올 것 같았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아무튼 그 날 아침부터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 날, 오전 10시 경.
카날본에 도착을 해서, 농장들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일자리를 알아보러 다니고 있었다.
다행히도 시내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서 일을 구하러 다니고 있어서 전화가 터지는 구역이었다.

농장을 돌아다니며 농장주와 이야기를 나누던 그 때, 어디선가 일반전화로 걸려진 전화가 내 휴대폰을 울렸다.
프리맨틀Fremantle 에 위치한 소세지 공장에서 전화가 온 것이었다. 돌쏘냐(DORSOGNA). 내가 얼마나 가고 싶어하던 공장이던가!
오늘 오후 1시까지 인터뷰를 보러 공장으로 올 수 있는지 묻길래, 당연히 오케이했다.

인터뷰까지 남은시간 3시간.
1000km가 넘는거리를 3시간만에 어떻게 간단말인가???????
일은 그렇게 되었다.

여기서 부터 나는 참 절박했다.
그리고 같이 카날본에 간 사람들은 참 착찹해했다.

그날의 꿈. 잊지 못한다.



- 잠을잤던 로드하우스,
모든건 우연의 일치였을까? 카날본에서 퍼스로 돌아오는 버스도 여기서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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