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 쿠바, 하바나 - 환상 그 이상의 즐거움 (La Habana) <3>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1. 3. 15.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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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nezuela, Caracas   -   Cuba, La Habana   -   Jamaica, Kingston

1. 엽서 혹은 편지.

  초등학교 시절[15년 전 쯤]을 생각 해 보면, 친구들끼리 편지를 참 많이 주고 받았었다. 그 시절엔 휴대폰이라는 것도 없었고, 삐삐라고 불리는 작은 기계가 이제 막 세상에 모습을 드러 내려 할 때 였기에, 사람들은 손으로 글자를 쓰고, 편지 봉투에 그 글자들을 담고, 그리고 풀로 그 글자들을 감싸서, 우표와 함께 우체통에 넣었다. 
 
  어느 날, 집으로 들어서기 전 우체통에 다른 사람의 체온이 담긴 편지가 들어 있는 걸 발견 한다면 그 날은 정말 즐거운[혹은 기분 안좋은 일이 있었더라도 좋아지는] 하루가 된다. 

  연말이 되면 엽서를 보내기도 했고, 라디오 프로그램에 사연을 보낼 때도 단연 엽서를 썼다[지금은 휴대폰 문자나 인터넷 게시판을 이용하는 걸로 알고 있다] 누군가에게 짧은 말을 전할 때 나의 체온을 함께 전하고 싶다면 엽서를, 그리고 나의 마음을 좀 더 길게 담아서 전하고 싶다면 편지를 썼다.

  중학교 시절, 설레는 마음으로 편지를 써서 좋아하는 여자아이에게 건네주기도 하고, 저 멀리 다른 도시로 전학 간 친구에게도 편지를 써서 안부를 묻곤 했다. 그리고 해외에 있는 친구들과도 편지를 주고 받기도 했다. 그렇게 편지는 보내는 기쁨과 그것을 기다리는 설렘 속에 기쁨이 있고, 또한 받았을 때도 기쁜 마음이 드는 특이한 존재였다.

  그리고,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장소에서, 그 장소에 어울리거나 그 곳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혹은 그 나라에 어울리거나 특징을 잘 나타내는] 엽서를 구입하고, 친구들에게 안부를 묻는 엽서를 보낸다. 외국에서 외국의 향기가 담긴 엽서를 보내는 것은 백년 전이든 50년 전이든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든 여행자 들이 좋아하는 행동 중 하나이다.

  엽서는 쓰는 사람의 체온이 담기고, 보내는 사람은 받는 사람을 한 번 더 생각하게 해주고, 엽서를 받는 사람은 그 사람의 체온을 전달 받고 기쁨에 잠길 것이 분명하기에, 여행에서 보내는 엽서는 특별한 가치를 지니게 된다.



2. 내 엽서는 어디로 갔나요?
 
  나는 여행을 하면서 엽서를 수 많은 엽서를 보냈다.[보통 한 나라에서 2통 이상 씩. 한 번 보낼 때 보통 2개를 보낸다. 지금 까지 100통이 넘는 엽서를 친구, 혹은 아는 사람, 혹은 여행 중 만난 사람들에게 보냈다. 하지만 그 엽서들이 모두 그들의 품에 도착했는 지는 알 수 없다.]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에게 엽서를 보내면서 드는 생각은 오직 하나. 이 엽서를 받은 사람은 기분이 좋겠지? 그리고 먼 훗날 서랍장을 뒤지다가 우연히 내가 해외에서 보낸 엽서를 발견 했을 때 나를 잠시라도 기억 해 주겠지. 좋은 기억으로. 라는 생각.   
 
  엽서를 받았냐고 물어 봤을 때, 엽서를 받지 못했다는 사람들도 많았다.[특히,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에서 보냈을 경우] 내 엽서들은 어디로 갔을까? 누군가 그 엽서와 관련이 없는 사람 손에 닿아서 파괴 되었거나 그 가치를 상실 했을 것이다.

  내가 억울하게 생각하는 것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보낸 엽서들이 대다수가 한국에 도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엽서 하나 보내는 가격이 한화 5천원 이상을 하지만, 나는 받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기뻐할 것을 알기에 보냈지만, 엽서들은 도착하지 않았다.[물론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



3.  쿠바에 대한 상념.

  대학교 시절, 체 게바라를 알았다. 사회적 문제, 노동 운동에 관심을 가지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이다. 체 게바라 평전을 읽었고, 체 게바라의 젊은 시절을 모델로 한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라는 영화를 보았다. 그리고, 나도 젊은 시절의 체 게바라처럼 오토바이는 아니라도 그 코스를 따라 여행을 해 보겠다고 생각을 했다. 버스를 타고서라도.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와는 많이 다른 코스로 남미를 여행했다. 그렇지만, 그토록 가 보고 싶었던 쿠바에 왔다. 돈이 얼마가 들던 나는 쿠바는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나의 일정을 채찍질 해서 쿠바에 닿아 있었다.

  사실, 쿠바에서는 체 게바라의 흔적을 가장 먼저 보고 싶었다. 체 게바라의 삶의 종지부. 그와 피델 카스트로. 그리고 사회주의 혁명. 쿠바의 이미지는 그런 것들이었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의 재즈 음악과 쿠바나 음악 보다는, 헤밍웨이가 하바나에 머물면서 썻다는 <노인과 바다>의 하바나 바다의 이미지 보다는, 쿠바 혁명의 흔적, 아니 그 보다더 직설적으로는 체 게바라의 흔적이 어떻게 남아 있는 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쿠바에 도착한 첫 날. 나의 쿠바에 대한 환상은 뒤바꼈다. 쿠바는 내가 생각하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혁명의 흔적은 역사의 파편이 되어 한 쪽에 머물러 있었고. 내가 찾던 체 게바라는 사진 속에서만 웃고 있었다.


4. 쿠바에 대해서 얼마나 아세요?

  어디에 가세요? 쿠바에요. 다음은 어디가? 쿠바. 쿠바. 쿠바에 간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좋겠다고 했다. 물론, 나도 쿠바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쿠바에 간다는 나를 부러워 했다. 쿠바가 어떤 곳이길래?

  내가 쿠바에 도착 하기 전 쿠바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곤, 사회주의 국가. 미국과 적대적 관계. 하바나의 클럽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재즈. 체 게바라와 피델카스트로의 혁명. 단지 그것 뿐이었다. 나는 단지 한 사람 때문에 쿠바를 동경하고 있었던 것이 틀림 없다.

  남미, 라틴 아메리카의 영웅. 체 게바라.  하지만 영웅은 어디에도 없었다.

쿠바에 처음 도착하고, 시티 센터에 도착 했을 때 내 눈에 보인 건, 거대한 고딕 양식의 건물이었다. 중세 유럽에 온 듯한 느낌. 유럽의 한 도시에 온 기분이었다. 건물들은 낡아 있었지만, 기품있어 보였다. 흑은과 백인. 혼혈인들이 뒤섞여 있었고, 스페인어들이 쉴새 없이 내 귓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무언가 활기가 느껴졌지만, 내가 기대하던, 내가 생각하던 그런 곳과는 달랐다. 쿠바는 이런 곳인가? 클래식 카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지만, 세련되어 보이지는 않았다. 도로엔 차들이 지나다녔고, 거리엔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혼잡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나는 쿠바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5. 쿠바에 대해서 알아가는 단계.

  숙소로 잡은 불법 까사에서, 쿠바 사람들의 삶을 보았다. 불법 까사는 다세대 아파트의 수 많은 문들 중 하나를 열고 들어가자 나왔다. 5평이 채 되지 않은 작은 공간. 그 곳에서 한 가족이 살고 있었다. 주인 여자의 남편은 경찰. 주인 여자의 나이는 30대 중반 정도로 보였지만 19살 짜리 아들이 있었고, 동생은 5살 이었다. 내 방이랍시고 내 준 곳에 창문은 없었고, 건넛집의 음악소리, 말소리가 다 들려왔다. 옆 집에서 키우는 새들이 아침을 알리는 그런 곳이었다. 침대는 삐걱대고 있었다.

  지도를 보며 거리를 걸었다. 올드 시티. 길을 따라 가자,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곳이라서 그런지 괜찮아 보이는 카페와 식당들이 늘어서 있었다. 건물들은 하나같이 오래되어 쓰러질 듯 한 모습을 띤 것도 있었지만, 그래도 봐 줄만 했다. 광장에는 여러 무리의 광광객 떼들이 보였다. 나는 조용히 그늘에 앉아 그들을 바라 보다가, 혼자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골목 속으로 숨어버렸다.

  밤의 쿠바 시내 거리는 조용했다. 빛 조차 찾아들지 않는 골목 속으로 다니기가 무서웠다. 늦은 밤의 거리는 차들도 거의 없었기에 혼자 그 거리를 걷고 있자니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왠지 모르게 누군가 나타나 칼로 나를 찌를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 - 쿠바가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

  서점에 들러 책을 보았다. 음반 가게에 들러 음악을 들어 보았다. 쿠바나 뮤직. 나쁘지 않기에 CD를 몇 장 샀다. 길 거리에, 서점에 엽서를 파는 사람들. 그 곳엔 항상 체 게바라가 있었다. 체 게바라는 이제 자본주의의 물결 속에서 좋은 돈벌이 수단이 되고 있었다.

  3peso 짜리 지폐 속의 체 게바라는 3CUC(1CUC=24peso)에 판매되고 있는 좋은 기념품의 하나 였다.[나는 우연히 상점에서 3peso 지폐를 거슬러 받았다] 그리고, 체 게바라의 얼굴이 양각된 동전도 하나의 기념품이 되어 있었다. 쿠바 국민들에게는 그냥 동전에 불과했지만, 관광객들에게는 그것이 하나의 기념품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체 게바라의 얼굴을 가지고 돈을 벌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그것은 가능했다.

  혁명의 흔적은 혁명 광장에서 잠깐 느낄 수 있었다. 드넓은 광장을 가운데 두고, 큰 얼굴들이 탑을 바라보고 있었다. 혁명 탑. 체 게바라의 눈동자도 그 곳을 향해 있었다. 혁명은 그 곳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사진속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하바나의 거센 파도. 듣던대로 거센 파도였다. 도심에서는 바람을 전혀 느낄 수 없었지만, 노인과 바다에서 묘사된 듯 한 하바나 해변에는 성난 파도가 휘몰아 쳤다. 이 곳이 노인이 사투하던 바다라고 말하는 것 처럼. 노인은 결국 빈손으로 집에 돌아왔고, 잠이 들었다. 나도 빈 손으로 그 곳을 거닐다가 싸구려 까사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쿠바의 극장에서 쇼를 보았다. 하바나의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극장으로 몰려와 쇼를 보았다. 어딜가나 그런 부류는 있는 법이다. 그 쇼의 가격이 보통 식당에서 코스 요리로 한끼를 먹는가격의 30배가 넘는 금액이지만, 그런 쇼는 표가 없어서 못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젊은 청춘 남녀들의 모습을 보았다. 세상, 어딜가나 다 똑같은 법이다.

  쿠바에는 시내버스 노선도가 따로 없다. 버스 안에만 노선도가 있다. 외국인들은 버스 노선을 알 수 없다. 버스는 한 번 타는데 0.5peso.[한화 약30원]. 일부러 외국인들은 택시를 타게 하려고 노선도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현지인들이 타는 여객선을 타고 요새가 지어져 있는 하바나 건너편의 카사블랑카로 갔다. 그 곳에서 하바나 시내를 바라보고 버스를 타고 하바나로 돌아왔다. 0.5peso짜리 버스에는 쿠바나의 냄새가 났다. 나쁘지는 않았다. 이게 바로 사람사는 냄새.

  0.5peso짜리 시내버스를 타고 정처 없이 돌아 다녔다. 그냥 이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그리고 거기서 또 다른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그렇게 버스를 타고 사람 사람 곳을 돌아다니며 구경을 했다. 시티투어 버스가 15CUC인가(?)를 하는것에 비하면 100배 이상 싼 금액이니까. 난 그런 여행을 즐겼다.


6. 쿠바 어떤가요?

  쿠바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조금 더 많이. 쿠바는 내 생각 속에서 혁명의 나라 였지만, 그 곳은 정열의 나라 였고, 음악의 나라였고, 사람 냄새 나는 곳이었다.

  한편으론, 체 게바라가 너무나도 상품화 되어있다는 사실이좀 씁쓸하긴 했다. 체 게바라가 과연 그 사실을 알면 어떤 말을 할까?

쿠바는 그런곳이었다. 사람 사는 곳. 라틴 아메리카 속의 라틴 아메리카. 


- 까삐똘리오 옆으로 지나가는 버스


- 까삐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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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이나 타운 입구



- 혁명 광장의 체 게바라










- 하바나 해안도로






- 카사블랑카 언덕에서 본 하바나





 Good Bye Cuba, Adios! Hab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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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 쿠바, 하바나 - 기대 그 이상의 가치. - 쿠바, 하바나<1>

- 길을 걷다, 세계여행/세계일주, 나의 발자취 · 2011. 2. 27.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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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nezuela, Caracas(베네수엘라 카라카스) - Cuba, La Habana(쿠바 하바나) - Jamaica, Kingston(자메이카 킹스톤)


1. 비자(Visa), 특정한 국가를 여행 할 때 허가증을 따로 받아야 한다는 것.

    전자 여권 제도가 시행되기 전 광화문 미국 대사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던 광경이 있었다. 미국 대사관 입구에서부터 대사관 주변으로 길게 뻗은 줄. 미국 비자를 받기위해 사람들은 그렇게 줄을 서야 했다.[전자 여권 제도가 시행된 후, 그 모습은 사라졌다] 2004년 필자가 일본을 여행 할 때만 해도, 일본 대사관에서 비자를 따로 발급 받아야 했다.[그것은 적잖히 번거로운 일이었다] 하지만 일본과의 무비자 협정 체결 이후, 일본은 손쉽게 갈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빨리 중국과도 무비자 협정이 체결되기를 바란다]

  어느 특정 국가를 여행할 때, 그 나라에 대해서 확인 해야 할 것 중 하나가 바로 비자의 필요 유무(有無)이다. 전 세계적인 추세가 특별히 대사관에서 비자를 따로 발급 받지 않고도 자기의 나라를 여행할 수 있게 하는 무사증(무비자)를 허용하고 있지만, 아직도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라면 비자가 필요한 국가가 많다.[유럽의 경우는 러시아, 벨라루스를 제외하고 모든 나라가 무사증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 필자가 2005년 마케도니아와 슬로바키아를 가고자 했을 때는 비자가 필요했지만 2007년 이후로 무비자로 바뀌어 동유럽 여행이 한결 쉬워졌다]
  비자를 발급 받을 때 유의할 점은, 반드시 본국[대한민국 사람이라면 한국내에서]발급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고, 우리나라에 대사관이 없어서 외국에 있는 대사관에서 발급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국경에서 비자 발급 비용을 지불하면[흔히 비자피(Vasa fee)라고 한다] 비자를 발급해 주는 곳도 있다는 것.[대표적으로 캄보디아, 네팔을 들 수 있고, 시리아의 경우는 우리나라와 수교를 하고 있지않기 때문에 국경에서 비자를 발급해 준다. 시리아 입국시 일본인의 경우는 일본 현지의 시리아 대사관에서 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고 들었다]

  비자 문제는 유럽 여행을 할 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장기간 여러나라를 여행하는 장기여행자들의 경우는 특히 신경써야 할 부분이다.[국경에서 비자 문제로 입국이 거부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러시아, 몽골, 중국, 시리아, 볼리비아등 많은 나라들이 아직도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비자를 요구하고 있고, 비자에 관한 문제는 수시로 정책이 바뀌기 때문에 꼭 챙겨두어야 할 사항이다.


2. 쿠바에 다녀온 흔적을 남길 수 없다.

  이스라엘은 중동의 미운오리 새끼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이스라엘은 꼭 가봐야 할 곳중 한 군데이기도 하지만, 많은 여행자들이 이스라엘의 독특한 위치와, 역사적 상황, 그리고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기 위해 이스라엘을 가고자 한다. 하지만, 이스라엘을 갈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바로 입/출국 스탬프를 여권에 찍어서는 안 된다는 것. 이스라엘을 입/출국 할 때는 별지에 스탬프를 찍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출/입국 스탬프가 찍혀 있으면 주변 나라에서 입국을 시켜주지 않는 다는 것이다. 미운오리 새끼, 이스라엘.

  쿠바에 가기 위해서는 비자가 필요하다. 쿠바는 국제사회의 왕따이다. 국제사회의 큰형 미국이 쿠바를 왕따시키고 있기에, 쿠바는 늘 찬밥 신세다. 하지만, 역사적으로든 문화적으로든 쿠바는 엄청난 매력을 가진 곳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쿠바를 찾는다.[많은 수의 미국인들도 쿠바를 찾는다. 미국의 대문호였던 헤밍웨이는 쿠바 하바나에 살면서 "바다와 노인"이라는 소설을 썻다] 하지만, 쿠바도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여권에 스탬프를 찍을 수 없다. 별도의 비자 용지를 구입해서 그 곳에 스탬프를 찍고 출국 할 때 반납해야 한다.

  보통, 쿠바의 비자는 항공사 사무실에 비자를 판매하는 코너에 있다. 쿠바에 입국하기 위해서는 비자가 필요하고, 그 곳에서 비자를 구입해야 한다. 그리고 그 종이에 입국 스탬프를 찍고, 쿠바 출국 심사를 할 때 반납한다. 쿠바의 흔적은 여권에 남길 수 없다.[쿠바 스탬프가 있으면 미국을 갈 수 없다는 이야기도 있다]



3. 비행기는 카리브해(Caribbean sea) 위를 날고 있었다.

  하우스파티 다음 날 아침, 나는 숙소로 가서 짐을 챙겼다. 내가 루이지의 집을 떠날 때 그는 나에게 물었었다. 어디서 공항가는 버스를 탈 거냐고. 나는 지도를 보여주고 11시 쯤 지도에 표시된 곳에서 버스를 탈 것이라고 말하고 떠났지만, 그 곳에서 버스를 타지 않았다.
  
  공항에서의 까다로운 배낭 패킹을 마치고, 출국세를 지불하고, 베네수엘라의 인기있는 가수라는 녀석의 CD를 한장 구입하고, 쿠바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렸다. 또 다시 방문하게 되는 사회주의 국가였다.[이번 여행에서 시리아, 중국, 쿠바 세 군데의 사회주의 국가를 방문했는데, 각각의 나라 분위기가 너무나도 달랐다] 체 게바라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남아있는 쿠바. 피델 카스트로, 체 게바라. 혁명. 그리고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의 재즈. 그리고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 묘사되는 하바나의 성난 바다. 여러가지 이미지들이 내 머리속에 겹쳐졌다.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에 좀 더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다음 행선지인 쿠바와 자메이카의 매력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크게 다가왔기에, 카라카스에서 좀 서둘러 떠나는 감이 있어 좀 아쉬웠지만, 내가 그토록 가고싶어 하던 곳에 더 오래 머물고 싶다는 욕망을 이길 수는 없었다.

  Cubana air의 낡은 기체는 한적한 공항 위를 이륙해서 반원을 그린다음, 파랗게 펼쳐져 있는 카리브해(Caribbean sea)위에 자리를 잡았다. 창밖 아래로는 카리브해의 작은 섬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세계적인 휴양지로 손꼽히는 섬들이겠지.



4. 하바나 국제 공항.

  크지 않은 공항은 좀 혼잡해 보였다. 공항은 여러 무리의 관광객들을 토해냈고, 쿠바에 살고 있는 것 같은 여러 중국인들을 토해냈다. 나는 공항의 환전소에서 환전을 했다. 충격이었다. 이미 쿠바에 오기전에 들은 바는 있었지만, 정말 이렇게 심할 줄은 몰랐다. 캐나다 달러가 쿠바에서 가장 환율이 좋다는 이야길 듣고 캐나다 달러를 사고자 했지만, 캐나다 달러를 살 곳이 없었던 내가 가진 것은 미국 US달러였다.
  우리나라 환율로 따지면, US달러가 훨씬 높았지만 쿠바에서는 US달러의 가치는 형편없었다. 울며 겨자먹기로 외국인용 화폐로 쓰인다는 CUC(쿡 이라고 불린다)을 바꾸고 공항 앞에서 택시를 잡았다. 택시에 몸을 싣고, 시내 중심가격은 까삐똘리오로 가자고 했다. 그 근처에 까사[현지인이 운영하는 민박과 같은 숙소]가 많다는 정보를 들은 바 있어서 그 곳에서 숙소를 잡기 위함이었다.


5. 혁명의 흔적과 함께 시간이 멈춰 버린 듯한 도시.

  한적한 공항 주변의 도로를 달려, 하바나 시내로 접어들고 있음이 느껴졌다. 사람들은 버스 정류장 근처에 몰려서 버스를 타려 하고 있었고, 버스는 사람들을 가득 태우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거리엔 우리나라에서는 찾아 볼 수 없고, 다른 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클래식 자동차(Classic car)들로 넘쳐났다. 그리고 론니플래닛에 적혀있던 한 구절이 생각났다. "쿠바의 볼거리 중 하나인 클래식 카(Car)"

  낡은 자동차들이 검은 매연을 토하면서 거리를 누비고 다녔다. 페인트가 벗겨진 클래식 카도 있었고, 삐까번쩍한 클래식 카들도 있었다. 도요타의 자동차도 거리를 누비고 있었고, 간혼 현대차도 보였다. 그래도 거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클래식 카였다.

  어쩌면 혁명 이후 시간이 멈춰 버린 걸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미국의 경제 봉쇄 정책으로 인해서 시간이 멈춰버린 것일 지도]



6. 불법 까사. 그 곳이 나의 숙소.

  까사를 찾기위해 까삐똘리오[예전에는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던 건물. 중앙에 큰 돔이 있는데 세계에서 손에 꼽힌다.  쿠바 하바나의 메인 건물 중 하나로서 역사도 오래되었고 규모면에서도 세계적인 건축물이다] 주변을 배회하다 보니, 한 명이 나에게 접근하더니 물었다. 까사?까사?
  씨씨, 라고 대답하딘 10cuc에 해 준다고 했다. 엄청 싸다는 생각에, 한번 집부터 보자고 했다. 그러더니 따라오라면서, 나와는 2미터 정도의 간격을 두고 걸었다. 그리고 말을 할 때도, 나를 바라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시선을 다른 곳으로 향했다.[ 쿠바는 미국의 경제봉쇄적책으로 인해 외화를 벌어들이는 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외국인 관광객에 의한 외화벌이이다. 따라서 쿠바는 정책적으로 외국인 관광객을 많이 보호하고 관광을 장려하고 있다. 외국인 보호와 관광객 유치라는 정부 정책에 의해 정부에서 제공되는 서비스의 가격에는 외국인 가격(foreign price)가 형성되어 있음은 물론이지만, 외국인 관광객에 대한 보호도 강력하게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현지인이 외국인 관광객과 직접 대화를 하거나 접근하여 신체 접촉을 하는 모습을 경찰이 보면 그 자리에서 쿠바 현지인은 체포되어 감옥으로 간다고 한다.] 
  까삐똘리오에서 걸어 일반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 같은 건물에 들어섰다. 출입문을 열쇠로 열고, 좁은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각종 전선들이 거미줄처럼 계단 위쪽에 얽혀 있었다.[불이라도 날 것 같았고, 불이 난다면 다 죽을 것 같았다] 4층에 다다르자 또 하나의 문이 나왔고, 그 곳에는 복도를 따라 몇 개의 문이 있었다. 그 중 하나로 나를 안내했다.

  여기가 현지인들이 살고 있는 곳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이 겨우 설 수 있는 주방. 거실에는 네 개의 세포와 작은 TV와 오디오가 있었다. 화장실은 거실 한쪽 벽문에 있었는데, 환풍기가 없었고, 샤워기는 없이 수도꼭지만이 있었다. 주방 바로 뒤에 좁은 계단을 타고 올라가니 다락방이 나왔다. 다락방은 두개의 칸으로 나뉘어 있었고, 계단과 연결되는 곳에 하나의 침대가 있었고, 문 너머에 또 다른 하나의 침대가 있었다. 

  이런 곳에서 한 가족이 살고 있다니. 정말 빈민촌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 곳이 일반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다. 이것이 쿠바의 현실인가? 아-주 저렴한 가격의 숙소. 뭐, 난 이제까지 여행하면서 이보다 더 심하고 시설이 좋지 않은 곳에서도 살아 봤으니라고 생각했고, 그 날 몹시 피곤했기에 다른 숙소로 옮길 생각도 없었다. 일단 여기서 이틀 정도 지내보고 숙소를 옮길지 말지 결정하기로 했다.

그렇게,
불법 싸구려 까사(casa)에서 나의 쿠바에서의 여정은 시작되었다.



- 공항을 빠져나오며


- 까삐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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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소 근처의 차이나 타운 입구


- 어디에나 걸려 있는 체 게바라


- CIUDAD DE LA HABANA


- 관광객 기다리는 쌔끈한 클래식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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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명의 흔적


- 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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