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리가 생각하는 것들_장소에 관하여.


  우리가 장소를 기억한다는 것은, 그 장소에 어떤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어떤 특정한 장소를 접하는 사람들은 각자 그 장소를 다르게 인식한다. 어떤 장소는 누군가에게는 좋은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특별한 장소가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 장소가 불쾌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곳 일 수도 있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무런 감흥

장소와 방향(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도, 의미도 없는 기억에 조차 남지 않는 '장소'가 될 수도 있다. 

  이처럼 '장소'는 가변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장소에 대해 서로 다른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장소는 사람들에게 상이한 의미를 전달하게 되는 것이다. 그 '장소'는 그 자체의 하나로 존재하지만, 우리는 그 장소와 함께 다른 수많은 '이미지'들을 결합시켜 다양한 '장소'로 만들어 우리들 각자의 머릿속에 넣어둔다[그것이 의식적 행동이 될 수 도 있고, 무의식적인 행동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기억을 하거나 어떤 추억을 만드는 데 있어서 많은 이미지들을 활용한다[기억을 하는 데 있어서 이미지를 활용하는 것은 상당히 유용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어떤 장소는 어떤 특정한 이미지와 연결되어 우리의 머릿속에 남게 된다. 예컨데 우리가 일상을 보내며 과거의 특정한 경험과 연관되는 어떤 특정한 이미지[사물, 사진, 영상 등의 모든 형태]를 접하게 될 때 우리는 그 이미지와 관련된 어떤 기억을 떠올릴 수 있고, 잊고 있던 옛 추억이 떠오름으로 인해서 즐거운 감상에 젖을 수도 있다.  

 

  또한, 우리는 어떤 장소를 생각하거나 떠올리려 할 때, 그 장소에서 보았던 이미지들을 회상할 수도 있고, [아직 그 장소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이 없다면]책이나 인터넷에서 보았던 어떤 것을 떠올릴 수도 있다. 우리가 떠올린 이런 이미지들은 어떤 '상징'이 되어 우리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징'은 우리가 여행을 할 때, 어떤 지향점 혹은 목표가 되어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 우리는 여행을 하면서 그런 '상징'을 좇고, 그 '상징'을 통해서 머릿속에서 또 다른 이미지들을 만든다.


 

2.리가 보고싶어 하는 것들_상징

 

  우리는 '상징'을 찾아 다니며, 그것들을 보고싶어 한다. 

 많은 사람들이 '뉴욕'하면 자유의 여신상을 떠올린다. 많은 사람들이 '파리'하면 에펠탑을 떠올리고, '런던'하면 빅밴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나라 그 도시를 여행하며 우리는 그런 상징물을 찾아 사진을

 찍고, 우리 각자의 추억을 만들어 간다.  비단 이런 '상징 좇기'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시가 아닌, 한

뉴욕, 자유의 여신상

나라[국가] 상징과도 관련이 된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중국의 만리장성, 브라질의 쌈바, 몽골의 게르 등 우리는 이들 나라를 방문할 때면 그런 상징을 찾아 헤멘다. 


  현대 사회의 여행은 어쩌면 이런 '상징 좇기'를 하는 일종의 형식 유희라고 볼 수도 있으며, 여행사들은 그런 '상징 좇기'를 부추기며 그 나라를 방문했을 때, '상징물' 앞에서 사진을 찍는 행위가 여행의 모든 것이며, 여행의 종착지인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이러한 '상징 좇기'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상징'여행의 목적지가 될 수도 있고, 여행의 목표가 될 수도 있다. 어느날 내가 책을 읽다가[그 책의 제목은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였다] 문득 그 책의 배경이 되는 도시에 가고 싶어졌고, 그 도시의 '상징'을 그 책에 나오는'도시의 광장'이라고 생각하고 무작정 그 도시의 광장으로 향했던 것 처럼, '상징 좇기'여행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도시의 '상징', 여행의 '상징 좇기'를 통해 우리는 그 도시를 기억하고, 여행을 통해 자신이 만든 새로운 경험을 바탕으로 그 도시를 이미지화 한다. 그리고 나 자신과 그 장소, 도시 사이에 새로운 의미관계를 만들어 그 장소를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여 그곳을 자신만의 특별한 공간으로 만들어 간다.



3.인도의 상징을 찾아서_

 

  인도의 '상징'. '인도'하면 떠오르는 것,

 많은 것들이 떠오를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올리는 것 중 하나가 '타지마할(Taj Mahal)'이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의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는 타지마할. '인도의 대표적인 건축물', '인류가 보편적으로 감탄할 수 있는 걸작'이라는 수식어들. 이런 수식어들은 우리들에게 '타지마할'이 인도

타지마할(Taj Mahal), 인도 아그라

의 상징이 될 수 있게 해 준다. 우리는 많은 책들을 통해서, 그리고 많은 광고를 통해서 타지마할의 모습을 보아 왔다. 


  델리(Delhi)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아그라(Agra). 많은 사람들이 아그라를 찾는 목적은 인도의 '상징'을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이다. 아그라 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인류가 남긴 걸작 '타지마할'을 만날 수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타지마할은 아그라에서 요염한 자태를 뽐내며 관광객들을 맞아들이고 있다. 파란 하늘, 길게 늘어진 회랑, 그리고 그 끝에 위치한 새햐안 색의 거대한 건물. 곡선이 아름다운 건물, 그 주위에 네 개의 기둥이 서 있다. 우리가 많이 보아왔던 '타지마할'의 모습이 있다.

  하지만, 그곳에 가보면 우리가 상상하던 '타지마할'이 아닌 또 '다른 타지마할'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인도의 상징인 '타지마할'을 본다는 생각으로, 길을 떠났다면 우리는 그 목적을 생각하며 그것에 충실하면 된다. 하지만, 여행은 그 하나의 목적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여행은 그 목적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겪는 수 많은 사건들[일상의 소소한 일들을 포함한 모든 일들이라는 의미]의 집합체이다. '타지마할'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수 많은 사람들, 무더위, 그리고 놀랄만큼 비싼 타지마할의 입장료. 많은 요소들이 우리들을 불쾌하게 만들 수 있다. 이러한 불쾌함을 만드는 소소한 요소들이 우리가 인도의 상징을 바라보며, 감탄하고 싶다는 순수한 목적을 훼손시킬 수도 있다. 심지어는 '타지마할'이라는 건물이 가진 본질적 가치, 여행의 순수했던 목적마저 훼손된 채, 우리는 타지마할에 관한 안좋은 기억만을 가진 채 아그라를 떠날 수도 있다.



4.'타지마할'에 관한 짧은 대화_

  

  우연히 어떤 여행자들을 만났다. 그들은 타지마할에 다녀온 뒤였고, 아직 타지마할에 가 보지 않은[곧 타지마할을 방문할 예정인] 여행자들에게 타지마할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물론 나도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 중에 하나였다]. 그들 무리 중 한 남자가 타지마할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를 해 주고 있었고, 모두의 귀와 눈은 그의 입과 몸짓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는 타지마할에 가는 방법, 타지마할의 입장료 등 자신이 경험한 타지마할에 대해 열심히 말했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그는 덧붙였다. 

 "타지마할이 꼭 가봐야 하는 곳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냥 큰 건물 하나 있는데, 입장료 얼마나 비싼지, 완전 바가지에요.그 입장료[타지마할의 입장료는 외국인과 내국인이 다른데, 외국인이 내국인에 비해서 30배 이상 비싸다. 내국인은 20루피, 외국인은 750루피]에 비하면, 정말 형편없어요." 

 그러고 나서 심지어 이런 말을 했다. 

 "돈아깝고 시간아깝고, 가지마세요"


  나는 그의 말에 반박하고 싶었지만, 아직 그곳에 가보지 않은 나로서는 별로 할 말이 없었기에, 그 말을 듣고도 잠자코 있었다. 옆에서 나와 함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른 여행자가 말했다. 

 "가지 말까... 시간도 별로 없는데."

  그러면서 그녀는 아그라에서 멀지 않은 다른 도시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그렇게 여러가지 여행 정보를 주고 받으며 한참을 이야기 한 뒤, 나는 나와 함께 타지마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던, 고민하던 그녀에게 말했다.

 "타지마할에 가보세요. 왜 저 사람 말만 듣고 가보지도 않은 곳에 대해서 편견을 가지고 있죠?" 그녀는 다시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덧붙였다.

 "후회하더라도 가보고 후회해야지, 가보지도 않고 후회도 못해보는 건 너무 억울하지 않나요?"




5.우리는 왜 그곳에 머무르지 않는가_Taj Mahal.


 아침 일찍, 아그라의 타지마할로 향했다. 아침 일찍 타지마할에 가서, 그곳에서 시간을 보낸 뒤 델리로 돌아올 예정이었다. 아그라 역의 혼잡한 인파를 헤치고 나와 릭샤꾼들을 무시한 채, 타지마할을 향

저 너머, 타지마할.

 걸었다. 타지마할로 향하는 길에, 아그라 성을 비롯한 여러가지 볼거리들이 있었지만 그런 것들은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오직 세기의 명작, 인도의 '상징' 타지마할을 봐야 한다는 생각과 타지마할에 기대감이 있었기에 한시라도 빨리 타지마할을 보러 가고 싶었다. 아그라의 오래된 다른 건축물들을 뒤에 흘려보내고, 타지마할 입장권을 구입했다. 듣던대로 비싼 가격이었다. 정말, 터무니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수 많은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외국인 가격과 내국인 가격이 따로 책정되어 있는 곳을 수 없이 봐왔지만 이렇게 차이가 많은 폭리를 취하는 곳은 처음이었다.


 보안검사를 한 뒤, 넓은 광장 같은 곳을 지나 타지마할이 있다는 곳을 향해 갔다. 큰 관문 같은 것이 있었고, 그 아래 수 많은 인파가 뒤엉켜 있었고, 그 뒤로 타지마할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관문의 어두운 통로, 그 뒤로 파란 하늘. 그 아래, 새하얀 타지마할이 있었다. 듣던대로 웅장했고, 듣던대로 라인이 살아 있었다. 책에서 보던, 딱 그 모습이었다. 한가지 다른 점, 새롭게 발견한 것이 있다면, 내 주변, 타지마할의 주변에만 수 백명의 사람들이 뒤엉켜서 타지마할의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혼자, 타지마할을 향해 걸어갔고, 사진을 찍기 위해 뷰 포인트(View Point)에서 다른 사람들

이 사진을 다 찍을 때까지 기다리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

사진찍는 사람들

고, 나는 벤치에 앉아 타지마할이 뿜어내고 있는 아우라를 느껴보기도 했다. 새하얀 타지마할의 대리석 바닥. 바닥 조차 돌이 아닌 부드러운 지우개로 만들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돌이 아닌, 하얀 진흙으로 빗은 건물 같았다. 부드러움이 묻어나는 건물이었다. 주변을 둘러싼 회랑 사이사이를 드나들며, 회랑의 출입구 사이로 언뜻 보이는 타지마할의 모습을 구경했다.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하는 타지마할. 내가 타지마할의 주위를 거닐며 보는 타지마할은 시시각각 모습을 바꾼채 나에게 다가왔다. 타지마할 앞으로 펼쳐져 있는 정원, 나무 그늘 벤치에 앉아 타지마할을, 타지마할 주위를 거니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햇살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그런 타지마할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와서 사진을 찍고 타지마할 주위를 한바퀴 돌고, 다시 들어왔던 관문을 통과해서 빠져나갔다. 나는 타지마할이 잘 보이는 한켠에 앉아 그 사람들을, 그리고 타지마할을 유심히 살폈다.


Taj Mahal, 사진찍는 소년

 '이게 바로, 세기의 걸작이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동안 나는 여행을 하면서 유럽의 수많은 건축물들을 보아왔고, 숨막히는 절경도 보아왔지만, 이곳 타지마할의 앞에서 또 다른 감동을 받고 있었다. 선과 색과 하늘의 조화. 그 옛날, 무굴제국의 황제 '샤 자한'이 타지마할을 만든 기술자들의 팔을 잘랐다는 이야기가 생각났고, 충분히 그럴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감동을 줄 수 있는, 죽기전에 꼭 봐야 하는 건물, 그것이 왜 타지마할인지, 그 정답은 여기에 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 누군가의 말을 듣고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그것은 정말 '일생일대의 후회될 일' 이라고 생각했다. '입장료'가 아깝지 않았다. 혹자들이 말하는 터무니없이 비싼 입장료,라 할지라도 타지마할은 그 입장료를 내고라도 볼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돌바닥에 앉아 타지마할을 보며, 감동을 하며, 감격에 차 올라 있을 때, 한 여행객이 내 눈에 밟혔다. 그녀도 나를 보았고, 자연스럽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정말 멋지지 않아요?' 내가 말했고, 그녀는 '정말 그렇네요'라고 말한뒤, '식사하셨어요?'라고 덧붙였다.


 시간이 많이 흘러 있었다. 나는 그녀의 제안에 따라, 식당으로 향했고, 식사를 하고, 근처 카페테리아에 앉아 음료를 마신 후, 조금이나마 무더위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그녀가 말했다.

 '가이드 북에 보니까, 아그라에 볼거리가 꽤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아그라 성에 가볼까 해요. 거긴 타지마할보다 볼 게 많을 것 같아요. 같이 갈래요?'

 그녀는 총총걸음으로 아그라 성을 향해 걸었다. 나는 아그라 성에 들어가지 않았다. 나무 그늘에 앉아, 아그라의 풍경을 바라보았을 뿐이다. 


  얼마 뒤, 그녀는 아그라 성의 입구를 빠져나와 나무 그늘에 앉아 있던 나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여기가 타지마할보다 볼건 더 많은데요? 미소" 



 6.리는 무엇을 볼 것인가_

 

 타지마할, 새하얀 건물이 파란 하늘아래. 은은한 빛을 내뿜으며 서 있다. 단지, 그것이 전부다. 타지마할이 왜,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일까. 스쳐지나가듯 보면서, 사진만을 찍는다면, 타지마할이 주는 감동을 느끼지 못한 채 지나칠 지도 모른다. 타지마할을 그윽히 바라보며, 타지마할이 내뿜은 아우라를 느낀다면, 우리는 그 건물이 가지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타지마할에서 뿐만 아니라, 많은 곳에서 세기의 걸작들을 만난다. 로마에서, 파리에서, 안데스 산 속의 마추픽추에서. 그들은 단지, 사진을 찍기 위한 배경이 아니다. 사진을 찍기 위한 피사체가 아니다. 그들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지만, 우리가 그들의 가치를 한순간에 발견해 내기는 쉬운일이 아니다.


  우리는 그들 곁에 머물면서, 그윽히 그들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한다면, 감동이 밀려올 것이고, 새로운 의미를, 새로운 느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사진을 뛰어 넘는 그 장소의 진정한 이미지를 머릿속에 새겨넣을 수 있다.





구경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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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마할, 그 감동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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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마할에서 바라본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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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마할,




타지마할, 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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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다른 볼거리를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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