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엽서를 주고받던 시절에 관한 이야기.


  손바닥만한 크기의 네모난 모양. 한 면에는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주소를 쓰는 곳이 있고, 한 귀퉁이에는 엽서가 붙어 있었다. 주로 연말, 혹은 가끔씩 우리는 엽서라는 것을 써서 누군가에게 보내곤 했다. 엽서는 간편했다. 우표를 따로 살 필요도 없었고, 받는 사람의 주소만 알면 손쉽게 누군가에게 나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다[물론 2~3일은 걸리는 데다가, 그 메시지를 우편 배달부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도 다 볼 수 있는 단점이 있긴 하다].

영화 <클래식(the classic)>의 한 장면. 2003, 곽재용 감독.

 1990년 후반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엽서와 편지를 썼고, 서로 주고 받았다. 지금은 손바닥 안에서 클릭 한 번이면 접속할 수 있는 '인터넷'. 이것이 뭔지 잘 모르던 시절, 이메일(E-Mail)이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생소한 단어였던 시절, 사람들은 그렇게 편지(Mail), 엽서(post card)를 주고 받았다.

 

 [구분짓기 좋아하는]누군가는 '아날로그적 감성'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공들여 편지를 쓰는 것이 그냥 좋다고도 했다. 인터넷이 보급되고, 이메일이 보편화 되고, 휴대전화가 보급되고, 문자 메시지를 통해서 수시로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 누군가에게 엽서를 보낸다는 것을 생각할 틈이 없었다. 누군가에게 엽서를 써서 보냈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 조차 없었다. 엽서는 그렇게 우리들 곁에서 점차 멀어져 갔다. 이제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체온을 담은, 정성을 담은 편지는 번거로운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간편하게 쓸 수 있는 이메일, 그마저도 이제는 다른 SNS로 대체되었다. 

  침대에 누워 종이 한 장을 들고, 그 사람을 상상해보는 즐거움은 좀처럼 찾기 힘들다. 이제 편지는, 누군가에게 러브레터를 쓸 때나 가끔[x10] 등장하는, 그런 신기한 물건이 되어가고 있다.


 

영화 <클래식(the Classic)> 중.

1990년대를 통과하고 2000년대 초반을 지내며 인생의 추억을 쌓아온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은 집 한켠, 책장 한켠에 작은 상자를 하나쯤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가끔씩, 그 상자를 바라보고 그 상자 속에서 꺼낸 엽서, 편지들에게서 향수를 느끼고, 추억을 더듬는다. 엽서, 편지들은 우리를 옛 시절의 추억에 잠길 수 있는 '여유'를 선물해준다.






2.행지에서 엽서를 고르며,


  여행지에서 만나게 되는 엽서는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그 곳에 여행을 온 사람들에게 각각 다른 의미를 가진다는 뜻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여행지의 엽서는 그 속에 그 장소, 그 도시의 대표적인 무언가[상징물, 사람들, 유적, 풍경 등]를 담고 있게 마련이다. 


  엽서는 매력적이다. 누군가가 어떤 도시를 방문해서 그 도시의 기념품 가게에 진열되어 있는 엽서를 집어 들었다면, 그것은 그 엽서가 담고 있는 무언가의 매력에 이끌렸기 때문이다. 엽서를 고르는 일은 절대로 즉흥적이지 않다. 엽서를 선택한 사람은 그 엽서가 담고 있는 것이 그 도시를 아주 매력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자신이 그 도시를 방문하고 있다는 사실을 매력적으로 나타내 줄거라고 믿기 때문에 그것을 선택한 것이다. 또한, 그 엽서에 그 나라 우체국의 스탬프가 찍혀서 누군가에게 전해질 것을 생각한다면 함부로 엽서를 고를 수 없다. 엽서를 고르는 일은 결코, 손쉽게 아무렇게나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류블랴나(슬로베니아)에서 고른 엽서.


  기념품 가게의 진열대에 아무렇게나 진열되어 있는 엽서처럼 보이지만, 그 엽서들은 아주 신중하게 선택될 물건들이다. 그 엽서들은 아주 많은 것을 담고 있으며, 작은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 

  그 도시가 가진 매력을 지닐 것, 나의 취향에 맞을 것, 나를 잘 표현할 것, 엽서가 담고 있는 것이 받는 사람의 취향에 맞을 것, 그리고 나의 온기를 담고 전달되어 받는 사람을 기쁘게 할 것.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엽서를 받는 사람이 엽서를 받아보고, 기뻐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엽서를 고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3.서를 보내며,


  엽서를 보내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우체국을 찾아 길거리를 헤메는 일은 꽤나 번거로운 일이다[그리고

쿠바의 길가에 팔고 있는 엽서들. 체 게바라의 모습이 담겨있다.

놀라운 사실은, 엽서를 보내는 비용이 꽤나 비싸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번거로움 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내용을 써야할지'와 '누구에게 어떤 엽서를 보낼까'이다.


  엽서의 단점은, 엽서에 담긴 내용이 공개적이라는 것이다[겉 봉투가 없기 때문에 내용이 바로 보인다는 의미]. 엽서의 수신인이 혼자 사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엽서의 내용을 우편 배달부는 볼 수 있다. 옆집 사람이 호기심에 볼 수도 있다. 혼자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엄마가, 아빠가, 동생이, 누나가, 언니가, 오빠가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엽서를 보낼 때는 이런 가능성들을 배제하고 오직, '한명의 수신인'이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그 '수신인'이 엽서를 받았을 때, 기뻐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엽서를 보낸다. 그 엽서 속에 내가 담음 메시지가, 그 엽서가 원래 담고 있던 어떤 상징, 매력이 그 '수신인'을 기쁘게 해야 한다.


  가끔은, 엽서가 우리를 실망시키는 경우가 있다['엽서'가 실망시키기 보다는, 엽서를 발송하는 '국가의 우체국 시스템'에 분노하게 되는 것이다]. 어렵게, 많은 생각을 하며 고르고, 어떤 내용을 담을지 고민하며 온기를 담은 엽서. 우체국에서 스탬프가 찍히는 모습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엽서는 어디론가 사라져 갈 곳을 잃을 경우가 종종 있다. 영원히 수신인을 찾아가지 못하는 엽서들이 존재한다[그럴 땐, 나의 노력이, 나의 애틋함이 헛수고 였다는 생각이 들어 허무함이 밀려온다. 실제로 인도, 볼리비아, 쿠바 등지에서 이런 경험을 했다].




4.엽서를 보내는 이유.


  그 시절, 우리는 엽서, 편지를 주고 받았다. '아날로그적 감성'이라는 말이 없던 시절.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호주 Pemberton 와이너리 기념 엽서

었고, 서로가 교감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그 흔적은 아직까지 남아서 가끔씩, 추억에 잠기게 하기도 하고, 잊고 있던 누군가를 생각하며 '그 사람은 지금 뭘 하고 살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 보게 한다. 그리고 가끔은, 손가락이 닳기도 한다.


  엽서를 보내며,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엽서를 받은 그 사람은 내가 보낸 엽서를 받고 잠시나마 기뻐하며 내가 써내려간 글자들을 어루만질 것이다. 그리고 그 엽서는 기쁜 마음과 함께 어딘가에 보관이 되겠지. 

 훗날 바쁜 일상을 살아가면서, 서로의 기억속에서 서로가 잊혀졌을 때, 나와 그 사람이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을 때,  어느날 우연히 발견된 내가 보낸 그 엽서가 그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기억할 수 있게 한다면 그것은 정말 기쁜 일이다. 비록, 나는 그 순간까지도 내가 엽서를 보내주었던 그 사람을 기억해내지 못할 지라도, 그 사람이 나를 기억해준다는 것은 크나큰 기쁨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엽서를 보낸다.




5. 덧, 아이러니.

 나는 지금까지 여행을 하면서 수 십장의 엽서를 보냈지만, 한 통의 엽서도 받아보지 못했다. 엽서의 기능이 상실된 것일까, 엽서가 잊혀진 것일까, 내가 잊혀진 것일까.  




보통의 우리나라 엽서 앞면




쿠바의 골목길, 벽화



까비똘리에오 찾아오는 어둠.



주말 시장, 하바나의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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