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삐삐'라는 기계가 진동을 할 때면, 우리는 공중전화를 찾아 두리번 거리던 시절이 있었다.

   '삐삐',를 가지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의 30대, 40대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알고 있을 물건이다.'삐삐'가 울리면 공중전화를 찾아 두리번 거리곤 했고, 때로는 집 전화기로 '삐삐'의 자그마한 액정에 찍힌 번호를 보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곤 했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약속을 할 때면, 우리는 몇 시간, 몇 십분 전에 전화를 통해서 약속을 하고 약속 장소에서 서로를 기다려야 했다. 그 시절에는 약속 장소를 향해서 가고 있는 그 누구도 조급해하지 않았고,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는 그 누군가도 안절부절하지 않았다. 약속 장소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은 그 누군가가 곧 올 것이고,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고,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 시간 속에는 설렘이 깃들어 있었기때문에 불안해하거나 지루할 틈이 없었다. 


 누군가가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올 때 마다 나의 시선은 카페의 문을 향하고, 내가 기다리는 그 사람이 들어오지 않을까 하는 설렘. 누군가와 약속을 하는 순간부터 그 사람을 만나는 순간,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기다림의 시간까지. 우리는 그 시간들을 사랑했다.


네가 오기로 한 그자리에 /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 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다 안다 /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에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 너였다가 /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 사랑히는 이여 / 오지 않는 너를 기달며 /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 아주 먼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다 /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갓금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전문.


2.간이 많이 흘렀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를 두고 많은 사람들은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지금보다 윤택한 삶은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IT기술은 눈부

앙코르 와트 신전

신 발전을 거듭했고, Steve Jobs는 '혁신'이라는 말의 의미를 전 세계에 알리며 iPhone을 세상에 선보였다. 대한민국에서는 '비둘기호'열차가 사라졌고, 고속열차 KTX 가 선로 위를 달리고 있다. 더 윤택해진 삶, 더 편리해진 삶, 손바닥 안에 있는 작은 기계 하나면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삶 속에서 우리는 더없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지금 우리의 삶은 우리에게 많은 편리함을 가져다 주었지만, 우리가 상실한 어떤 가치에 대해서는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모든 것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시대에 '여유'라는 말을 하기가 힘들어 졌고, '여유'는 사치로 취급된다. 지금의 30대, 40대들은, 언젠가 그들이 '삐삐'를 치고나서 상대방이 나에게 연락을 해 줄 때까지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기다린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고 산다. 심지어, 그 이후의 세대들[1980년대 후반 이후 출생자들]은 그 애틋함을 알지 못한다. 누구나 손바닥 안에 전화기를 가지고 있고, 언제든지 메시지를 보낼 수 있으며, 내가 보낸 메시지를 상대방이 확인 했는지도 알 수 있다. 여유롭게,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기다리던 우리의 모습은 사라진지 오래다. '여유', '애틋함'이 자리하고 있던 곳에는 '조급함', '불안'만이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누군가와 약속을 잡하, 그 사람을 만남기 위해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기다리는 모습은 사라졌다. 우리는 실시간으로 상대방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고, 약속 시간은 수시로 변경될 수 있으며, 심지어 약속 시간 10분 전에도 약속은 취소될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불안'이 우리의 삶 속에 스며들어 왔다고 할 수 있다.


  KTX는 말한다. "KTX를 타면. 시간이 절약되고 약속 시간에 더 빠르고 정확하게 도달할 수 있습니다." 기차가 빨라진 대신, 창 밖의 풍경은 시시각각 변하는 다양한 삶의 모습이 아닌, 기차역의 플랫폼과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로 채워졌다[무궁화호를 탈 수도 있고, 우리는 무궁화호를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넘쳐나는 KTX들 사이로 간간히 존재하는 무궁화호는 쓸쓸해 보인다. 사람들은 스마트 시대에 걸맞게 KTX를 타야하는 것처럼 여긴다]. 빠름, 빠르게,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를 외치면서 그것이 정답인 양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다. 출발점과 목적지만 존재하는 그런 삶, 하나의 점에서 또 다른 하나의 점으로 이어지는 그런 삶. 

 중간이 사라졌다. 점과 점, 그 둘을 연결해서 하나의 선으로 만들기엔 지금 우리의 삶은 너무나도 빠르다.


3.코르 유적에서 무엇을 타야할까? 툭툭 vs 자전거 - '툭툭'


  캄보디아 시엠립[앙코르 유적이 위치한 도시, 앙코르 와트가 가장 대표적인 사원이다]에는 '툭툭'과 '자전거'가 있다. 많은 사람들[앙코르와트를 방문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툭툭'을 타고 앙코르의 여러 사원들을 방문하고, 사진을 찍는다. 툭툭은 빠르고 편하며, 짧은 시간에 많은 사원들을 둘러 볼 수 있다. 몇몇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고 앙코르 유적의 사원들을 방문하고, 그곳의 공기를 마신다.  그렇지만 자전거는 느리고, 힘들다. 사원 하나하나를 둘러보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정글 곳곳에 신전들이 퍼져있기 때문에, 신전들 사이를 오가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앙코르 와트

△ 앙코르와트 사원의 전경



 '툭툭'은 앙코르 사원들을 둘러보는 데 있어서 최고의 탈것이라고 자신을 광고한다. '툭툭'은 앙코르 유적의 여러 사원들을 빠르게 돌아볼 수 있도록 해주는 최고의 탈것임은 틀림없지만, 아무도 툭툭이 '최고의 만족'을 준다고 말하지 않는다. 툭툭은 그저 관광객들을 앙코르 유적의 여러 사원에 실어다주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다. 툭툭은 앙코르의 사원들을 관광객들에게 '점'으로 만들어 준다. 넓은 정글 속에 있는 사원들은 툭툭에 의해서 점들이 되고, 관광객들은 앙코르 사원들을 점으로 기억하게 된다.


앙코르 와트 신전을 구경중인 사람들

시엠립 시가지에서 관광객들을 실은 '툭툭'은 관광객들을 '앙코르 와트' 내려준다. 관광객들은 사진을 찍고, 다시 툭툭에 올라 '앙코르 톰'에 내린다. 사진을 찍고 다시 툭툭에 오른 관광객들은 '프레아 칸'에 내려 사원을 오르내리며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찍고 사원에서 빠져나온 관광객들을 실은 툭툭은 밀림으로 들어가, 비포장길을 빠른 속도로 가로질러 또 다른 사원에 관광객들을 내려놓는다[빠르게 달리는 툭툭 안에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바깥 풍경을 포착하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툭툭[궁극적으로는 툭툭의 운전기사]에게는 '사원'과 '사원' 사이의 공간은 무의미하다. 사원들 '사이의 공간'은 사원과 사원을 이어주는 '길', '통로'에 불과하다. 다시말해, '통로', '길'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툭툭'에게는 밀림 속의 수 많은 사원들 조차 어떤 '특별한'의미를 지니지 않는 돌 무더기일 뿐이다. 툭툭 혹은 운전자들에게 있어 그곳은 단지 '관광객들의 목적지'이고 '자신의 일터'일 뿐이므로, 그들은 관광객들이 빨리 사진을 찍고 사원에서 빠져나와 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다음 사원을 향해 가는 것이 툭툭의 존재 이유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툭툭'에게 있어서 앙코르와트를 비롯한 앙코르 유적의 여러 사원들은 몇 개의 점들에 불과하고, 그런 '점'과 '점들'에 관광객을 내려놓는 것이 '툭툭의 목적'이다. 이런 툭툭에 실려 다니는 관광객들은 자연스럽게, 사원들을 '점과 점'으로 인식하게 되며, 앙코르와트에 대한 이미지는 규모가 '큰' 몇 개의 사원에 대한 이미지로 대변된다. 



△ 프레야 칸



4.코르 유적에서 무엇을 타야할까? 툭툭 vs 자전거 - '자전거'

 우리 주변에서 '느리게 하는 여행'을 찾기란 힘들다. 우리는 더 빨리 움직일 수 있게 되었고, 더 빨리,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삶이 더, 빨라져서일까? 그만큼 시간을 절약하고 있지

끝없는 툭툭의 행렬

만, 그것을 여유로운 생활을 하는 데 쓰지
않고 더 많은 일을 하는데, 더 바쁜 삶을 사는데 쓰고 있다(스베냐 플라스푈러, <우리의 노동은 왜 우울한가>에서 발췌).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은 우리에게 '느림'의 의미를 알려주지도 않고, 그런 '여유'를 부릴 수 있도록 허락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아니라면, 모두가 빠르고 편한 것만 원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자전거'도 '툭툭'과 마찬가지로 '사원'과 '사원'을 이어준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툭툭'이 앙코르의 유적들을 돌아보는데 최고의 탈것이라고 말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자전거'는 힘들고, 느리다는 이유로 추천을 하지 않는다. 자전거가 '최고의 탈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최고의 만족'을 준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 앙코르 유적지에서는 모든 사람들의 목적지가 밀림 속에 산재해 있는 앙코르 사원들이고, 사원들은 한 곳에 몰려 있는 것

신전과 자전거


이 아니라 넓은 지역에 걸쳐 퍼져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둘러보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앙코르 유적을 포함한 밀림에서 볼만한 것, 봐야하는 것이 앙코르 사원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앙코르 유적지의 사원들은 다 같은 돌무더기가 아니다. 그리고 그 사원들을 연결하는 밀림속의 길들도 모두 같은 밀림 속의 길이 아니며, 자전거를 타고 밀림 속의 길을 가다가 만나는 소나기들도 다 같은 소나기가 아니며, 밀림 속에서 만나는 다양한 동물들은 색다른 앙코르 유적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 준다. 자전거는, 비록 느리지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해주고, 앙코르 유적의 다채로운 모습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밀림 속을 질주해보기도 하고, 나무 밑에서서 지나가는 비를 피해보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멈춰서서 동물들을 바라보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고 신전 주위를 빙빙 돌아보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고 앙코르 유적의 숨결을 마음껏 느낄 수 있다. 앙코르 유적이 문닫는 그 시간까지, 그 누구도 재촉하지 않는다. '빠름', '빨리'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저, 자전거를 타고 밀림 속에서 유유히 흘러다니면 된다.


5.리의 여행은 언제부터,


 우리의 여행은 언제부터 이렇게 빨라 졌을까?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해야하고, 많은 것을 보아야 왠지 좀 더 뿌듯하고 유익한 여행을 한 것 같다는 착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좀 더 많은 사진을 찍고, 나중에 그 사진을 보면서 여행의 기억을 더듬는 것이 '여행'이 되어버린 것은 왜일까. 바쁜 일상을 떠나 여행에서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찾겠다는 다짐은 바쁜 여행 속에서, 일상보다 더 바쁘고 부지런한 생활을 하면서 사라져 버린다. 

 '빠름', '빨리'. '빠르게'. 이런 말들은 우리에게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지만, 우리는 더 많은 시간을 더 많이 움직이는데 써버린다.
 '빠름'을 버리고, '느림'을 선택해 보자. 그리고, '느림'이 당신에게 주는 '여유'를 마음껏 즐겨보자.
- From. 앙코르 유적, 캄보디아.


△ 비를 피하다.


<밀림 속 신전 - 고목들이 스며들다>


<밀림 속 신전 - 스며든 고목>


<밀림 속 신전>


<섬세한 부조>


<통로, 대칭>


<자전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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