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리는 언제부터 애니팡을 하지 않게 되었는가?


 이 글의 제목과 같은 말이다. 그럼, 질문에 대답을 해 보자. 

 

 작년(2012년) 9월부터 10월을 지나면서, 거리 곳곳에서 동물들의 울음이 울려퍼졌다. 지하철 곳곳에서, 카페 곳곳에서 동물들은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던 것이, 11월을 지나면서 서서이 잦아들기 시작해서 12월이 지나자 거의 사라졌다. 선데이토즈(애니팡 제작사)에서는 동물들의 비명을 다시 살려내보려고 여러가지 대안을 마련했지만, 동물들의 비명은 더 작아졌고, 이제는 거의 들을 수 없게 되었다.[사실 그 대안(업데이트) 때문에 나는 애니팡을 떠나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떠났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언제부터 애니팡을 하지 않게 되었는지를 말이다.

 대략 11월에서 12월로 넘어가는 그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애니팡에 접속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면서 혹자는 열심히 '드래곤플라이'를 했고, 혹자는 애니팡을 하는 사람들에게 "너 아직도 애니팡해?"라는 핀잔을 주기도 했다. 


 12월이 넘어서까지 애니팡을 하는 사람은 시대에 뒤쳐진다는 느낌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일까?



2.  애니팡에 접속을 하지 않게 되었는가?


  요즘은 모든 것이 빠르다고한다. 유행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마트폰조차 빠르게 바꿔버리는, 버스폰이 난무하는 시대에, 스마트폰으로 즐기는 어플 게임에도 유행이 있고, 그것마저도 빠르게 지나간다고 한다. 이런 세태 속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왜 애니팡에 접속을 하지 않나요?"라고 물으면, 

 "한물 갔죠[유행이 끝났단 말이다]" 또는 "너무 단순해서 질렸어요". 라고 대답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와 같은 단순한 이유들이 애니팡을 멀리하게된 결정적인 이유라고 볼 수는 없다.



3. 니팡의 미학. - 우리는 그토록 애니팡에 열광했던가.


    

 애니팡의 핵심은 두가지 였다고 할 수 있다.[여기서 "였다"라는 표현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첫째, "경쟁 - 카카오톡과의 연동으로인해 카카오톡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즐기며 경쟁을 한다". 

둘째"시간 - 제한시간 60초".


 예전에도 애니팡과 비슷한 게임은 있었다. 유독 애니팡이 선풍적인 인기 몰이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첫 번째 핵심 요소인 "경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경쟁"은 단순한 경쟁이 아니다. 심리적으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고, 사람들은 하트를 갈구하게 되었다. 물론 이 "경쟁"이라는 것은 두 번째 이유인 "시간"과도 연관이 된다. 이 두가지가 절묘하게 결합을 했기에 우리는 애니팡에 열광했던 것이다.

 "경쟁". 애니팡에서의 경쟁은 누구와 하는 것인가? 바로 내 카카오톡에 있는 사람들(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이다. 나와 친분이 있는 '이  사람'보다 내가 앞서고 싶다는 소망, 내가 '이 사람'보다 뒤질 수 없다는 생각. 그것은 바로 경쟁 의식이다.  

       <애니팡의 미학이 잘 담겨있는 말이다>

 게임을 하면서 우리는 이런 생각들, 행동들을 했다. "아니 얘가 나보다 점수가 높네? 내가 질 순 없지",  "(등수가 바뀌는 화면을 보며)미소를 짓고, 친구에게 자랑 카톡을 날린다".  

  

"(금,은,동메달을 보며, 이게 사람인가. 라는 생각을 하지만 나도 그 점수를 받기 위해 또 다시 '시작하기' 버튼을 누르거나, 친구들에게 하트를 보낸다.", 하트를 받기만 하고 주지 않는 친구를 욕하기도 하고, 하트를 받기 위해 틈만 나면 하트를 보낸다. 또, 랭킹을 훑어 보면서, 누가 나의 아래에 랭크되어 있는지를 찬찬히 살펴보고, 레벨을 확인한다.-나보다 위에 있는 사람이 중요하지 않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러면서 자기만족, 일종의 우월감을 느낀다


 위에서 나열한 것은 '애니팡'을 하면서 나타날 수 있는 행동들과 생각들이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높은 점수를 받기위해 손가락을 움직였고, 콤보를 많이 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적절한 시기에 폭탄을 터트려 많은 점수를 획득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최고 점수를 받고, 메달을 받으며, 등수가 바뀌는 화면을 보면서 희열을 느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공정한" 경쟁만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아무도 손해를 보는 사람이 없었고,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오직 실력으로만 "경쟁"해야 했다.높은 순위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게임 횟수(경험)가 필요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때만되면  <순위가 바뀌는 장면 - 여유와 희열이 있다> 

애니팡에 접속을 했고많은 기회를 가지기 위해 하트를 날렸다.


어릴 때부터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자란 우리들은 너무나도 익숙했다. 친구들끼리, 아는 사람들끼리 선의의 경쟁을 펼치는 것에 대해서 즐거워 했다. 그 "경쟁"이 기분나쁘고 불쾌하고 불공정한 경쟁이 아니라 "재미있는" 그러면서도 가끔은 "희열을 느끼는" 경쟁이었다. 바로 그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오직 실력만으로" 경쟁했기 때문이다.


[공평했다]

 오직 자신의 실력만으로 자신의 가치를 드높이고,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왜냐하면, 게임을 하는데 주어진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았기 때문이다. 오직 "60초"

누구에게나 60초가 주어졌다는 것은 중요했다. 점수가 높든 낮

든, 돈이 많든 적든, 스마트폰 기계가 비싸든 싸든, 누구에게나 똑같은 시간이 주어졌다. 애니팡의 세계에서는 누구에게나 같은 조건이 제공되었고, 실력만으로 승부해야 했다.

    <처음에는 누구에게나 1분이 주어졌다>

'경쟁', '사람', '시간'의 조화. 

애니팡의 세계는 "공정한 경쟁"의 세계였고, 그것이 바로 애니팡의 미학이었다. 

하지만, 미학은 깨졌다.


                             

4. 니팡에 침투한 자본의 논리 - '돈'을 벌기 위한 노동.

 애니팡이 새롭게 업데이트를 하면서, 두 가지를 추가했다.

첫째, '아이템'이 추가되었다. 

둘째,  아이템 구입을 위한 '돈(게임 머니, 코인)'이 생겨났다. 

     

  이 두가지가 애니팡의 미학을 산산히 부숴버렸고, 사람들이 게임을 하는 순간 '돈'이 매개되었고 '돈'에 자연스럽게 집착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돈'을 벌기위한

노동의 일종으로 게임을 해야했고, 그 돈으로 아이템을 사고, 더 높은 점수를 받으려 했다. 


 결국, 애니팡에 '돈'이 중심이 되는 자본의 논리가 개입되었고, 변질될 수 밖에 없었다.[물론 이는 게임 회사측의 전략이었지만 이는 철저한 실패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부익부 빈익빈, 공정한 경쟁의 세계는 파괴되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부익부 빈익빈이 발생하고 공정한 경쟁의 세계가 파괴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공정한 세계에서 능숙한 솜씨로 높은 점수를 얻던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같은 시간에 '더 많은' 돈을 벌었다. 더 적은 시간을 투자해서 실력이 낮은 사람보다 '돈'을 많이 벌고, 그 돈으로 아이템을 구입해서 더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아이템은 "60초"라는 시간[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주어지던 불변의 요소]의 테두리를 넘어서게 했고,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 <아이템이 추가된 애니팡 - 변질된 애니팡>      '콤보 지속시간'을 파괴했고, 누구에게나 똑같은 시간에 제공되던 힌트를 더 빠른 시간에 제공했다. 하지만, 이 모든 혜택을 얻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자본의 논리, 누군가와의 경쟁에 익숙한 사람들은 그러한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 들였고, 돈을 벌기 위해 노력했다. '돈'이 있어야만 '아이템'을 살 수 있고, 남들보다 좀 더 유리한 조건으로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불평등[자본의 논리] 부익부 빈익빈을 가져왔을 뿐이고, 애니팡의 미학은 사라지고 사람들은 애니팡을 떠났다.



5. 임 개발자 '선데이토즈'의 실수.


 조금씩 줄어드는 접속자들을 붙잡아 두기 위한 방법으로 '아이템'이 등장하고, 그 아이템을 사기 위한 '돈(코인)'이 등장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접속만 해도 돈을 제공하는 '접속 포상금'을 지하기까지 했다. 모두가 사람들을 붙잡아 두기 위한 대안, 좀 더 다양한   <아이템과 돈때문에 변질된 애니팡>       

재미를 주기 위한 대안으로 시도된 것이지만 그것은 애니팡이 가졌던 매력을 철저하게 파괴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공정한 경쟁, 진정한 승부를 위해서 애니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많은 돈을 벌기위해[아이템을 구입하기 위해] 기계적으로 게임을 하게 되었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아이템을 구입했다. 아이템을 쓰지 않고는 높은 순위에 랭크될 수 없었기 때문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돈을 벌고 아이템을 사야했다. 게임의 목적이 변질되었다. 



 아이템을 구입한 뒤 애니팡을 하면서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하면[심지어 아이템을 안쓸 때보다 낮은 점수를 받으면] 돈을 아까워하고, 짜증을 내고, 자기 자신 또는 주변 사람을 책망했다. 더 이상 애니팡은 즐거움을 위해 웃으면서 경쟁하는 게임이 아닌, 무언가[바로 그 무언가가 '돈'이다]집착을 하게 만드는 게임이 되었다.                                                                                       <노력만으로 메달을 따려고 하던 시절> 

 


6.  언.


 '아이템'이 등장하지 않았을 때, '돈'이 생기지 않았을 때, 그때는 잃을 것이 없었고, 집착할 것이 없었다. 그저 잃는 것은 1분여의 시간이었지만, 즐거움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는 실력을 쌓아서 높은 점수를 받으면 된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아이템'이 등장하고 '돈'이 등장했을 때는 '돈'을 위한 노동을 했고, 노동의 대가로 '아이템'을 구입했다. 게임을 하고 나면 '돈'을 잃는 것이고, 실력보다는 '돈'을 많이 모아서 '아이템'으로 높은 점수를 받길 바랐다.


 애니팡의 근본 가치가 변질되었다. - 자본의 논리 때문에.


 나는 애니팡을 업데이트 하지 않았다. '돈'을 위한 게임을 하기 싫었고, 게임을 노동의 수단으로 하기 싫었다. 그리고 이제는 업데이트를 하지 않으면 접속조차 할 수 없다. 자본주의의 논리를 게임에 결합시켜 사람들을 얽매이게 만들고,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 접근조차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나는 일개 개인이고, 약자이다. 거대한 힘을 가진 게임 회사가 주는 선택권을 수용하지 않으면 나는 그들이 만든 세계에 접근조차 할 수 없다. 나는 그저 약자일 뿐이고, 거대한 힘 앞에 굴복할 수 밖에 없고, 그것을 거부한다면 소외될 수 밖에 없다.

  <업데이트를 하지 않아 접속조차 할 수 없다>   


 맥도날드화(McDonaldization)가 된 사회, 거대 자본이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시대. 우리는 어떤 힘때문에 얽매일 수 밖에 없고, 우리에게 진정한 선택권이 없다고 생각하니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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