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nezuela, Caracas   -   Cuba, La Habana   -   Jamaica, Kingston

1. 엽서 혹은 편지.

  초등학교 시절[15년 전 쯤]을 생각 해 보면, 친구들끼리 편지를 참 많이 주고 받았었다. 그 시절엔 휴대폰이라는 것도 없었고, 삐삐라고 불리는 작은 기계가 이제 막 세상에 모습을 드러 내려 할 때 였기에, 사람들은 손으로 글자를 쓰고, 편지 봉투에 그 글자들을 담고, 그리고 풀로 그 글자들을 감싸서, 우표와 함께 우체통에 넣었다. 
 
  어느 날, 집으로 들어서기 전 우체통에 다른 사람의 체온이 담긴 편지가 들어 있는 걸 발견 한다면 그 날은 정말 즐거운[혹은 기분 안좋은 일이 있었더라도 좋아지는] 하루가 된다. 

  연말이 되면 엽서를 보내기도 했고, 라디오 프로그램에 사연을 보낼 때도 단연 엽서를 썼다[지금은 휴대폰 문자나 인터넷 게시판을 이용하는 걸로 알고 있다] 누군가에게 짧은 말을 전할 때 나의 체온을 함께 전하고 싶다면 엽서를, 그리고 나의 마음을 좀 더 길게 담아서 전하고 싶다면 편지를 썼다.

  중학교 시절, 설레는 마음으로 편지를 써서 좋아하는 여자아이에게 건네주기도 하고, 저 멀리 다른 도시로 전학 간 친구에게도 편지를 써서 안부를 묻곤 했다. 그리고 해외에 있는 친구들과도 편지를 주고 받기도 했다. 그렇게 편지는 보내는 기쁨과 그것을 기다리는 설렘 속에 기쁨이 있고, 또한 받았을 때도 기쁜 마음이 드는 특이한 존재였다.

  그리고,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장소에서, 그 장소에 어울리거나 그 곳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혹은 그 나라에 어울리거나 특징을 잘 나타내는] 엽서를 구입하고, 친구들에게 안부를 묻는 엽서를 보낸다. 외국에서 외국의 향기가 담긴 엽서를 보내는 것은 백년 전이든 50년 전이든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든 여행자 들이 좋아하는 행동 중 하나이다.

  엽서는 쓰는 사람의 체온이 담기고, 보내는 사람은 받는 사람을 한 번 더 생각하게 해주고, 엽서를 받는 사람은 그 사람의 체온을 전달 받고 기쁨에 잠길 것이 분명하기에, 여행에서 보내는 엽서는 특별한 가치를 지니게 된다.



2. 내 엽서는 어디로 갔나요?
 
  나는 여행을 하면서 엽서를 수 많은 엽서를 보냈다.[보통 한 나라에서 2통 이상 씩. 한 번 보낼 때 보통 2개를 보낸다. 지금 까지 100통이 넘는 엽서를 친구, 혹은 아는 사람, 혹은 여행 중 만난 사람들에게 보냈다. 하지만 그 엽서들이 모두 그들의 품에 도착했는 지는 알 수 없다.]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에게 엽서를 보내면서 드는 생각은 오직 하나. 이 엽서를 받은 사람은 기분이 좋겠지? 그리고 먼 훗날 서랍장을 뒤지다가 우연히 내가 해외에서 보낸 엽서를 발견 했을 때 나를 잠시라도 기억 해 주겠지. 좋은 기억으로. 라는 생각.   
 
  엽서를 받았냐고 물어 봤을 때, 엽서를 받지 못했다는 사람들도 많았다.[특히,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에서 보냈을 경우] 내 엽서들은 어디로 갔을까? 누군가 그 엽서와 관련이 없는 사람 손에 닿아서 파괴 되었거나 그 가치를 상실 했을 것이다.

  내가 억울하게 생각하는 것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보낸 엽서들이 대다수가 한국에 도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엽서 하나 보내는 가격이 한화 5천원 이상을 하지만, 나는 받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기뻐할 것을 알기에 보냈지만, 엽서들은 도착하지 않았다.[물론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



3.  쿠바에 대한 상념.

  대학교 시절, 체 게바라를 알았다. 사회적 문제, 노동 운동에 관심을 가지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이다. 체 게바라 평전을 읽었고, 체 게바라의 젊은 시절을 모델로 한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라는 영화를 보았다. 그리고, 나도 젊은 시절의 체 게바라처럼 오토바이는 아니라도 그 코스를 따라 여행을 해 보겠다고 생각을 했다. 버스를 타고서라도.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와는 많이 다른 코스로 남미를 여행했다. 그렇지만, 그토록 가 보고 싶었던 쿠바에 왔다. 돈이 얼마가 들던 나는 쿠바는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나의 일정을 채찍질 해서 쿠바에 닿아 있었다.

  사실, 쿠바에서는 체 게바라의 흔적을 가장 먼저 보고 싶었다. 체 게바라의 삶의 종지부. 그와 피델 카스트로. 그리고 사회주의 혁명. 쿠바의 이미지는 그런 것들이었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의 재즈 음악과 쿠바나 음악 보다는, 헤밍웨이가 하바나에 머물면서 썻다는 <노인과 바다>의 하바나 바다의 이미지 보다는, 쿠바 혁명의 흔적, 아니 그 보다더 직설적으로는 체 게바라의 흔적이 어떻게 남아 있는 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쿠바에 도착한 첫 날. 나의 쿠바에 대한 환상은 뒤바꼈다. 쿠바는 내가 생각하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혁명의 흔적은 역사의 파편이 되어 한 쪽에 머물러 있었고. 내가 찾던 체 게바라는 사진 속에서만 웃고 있었다.


4. 쿠바에 대해서 얼마나 아세요?

  어디에 가세요? 쿠바에요. 다음은 어디가? 쿠바. 쿠바. 쿠바에 간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좋겠다고 했다. 물론, 나도 쿠바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쿠바에 간다는 나를 부러워 했다. 쿠바가 어떤 곳이길래?

  내가 쿠바에 도착 하기 전 쿠바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곤, 사회주의 국가. 미국과 적대적 관계. 하바나의 클럽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재즈. 체 게바라와 피델카스트로의 혁명. 단지 그것 뿐이었다. 나는 단지 한 사람 때문에 쿠바를 동경하고 있었던 것이 틀림 없다.

  남미, 라틴 아메리카의 영웅. 체 게바라.  하지만 영웅은 어디에도 없었다.

쿠바에 처음 도착하고, 시티 센터에 도착 했을 때 내 눈에 보인 건, 거대한 고딕 양식의 건물이었다. 중세 유럽에 온 듯한 느낌. 유럽의 한 도시에 온 기분이었다. 건물들은 낡아 있었지만, 기품있어 보였다. 흑은과 백인. 혼혈인들이 뒤섞여 있었고, 스페인어들이 쉴새 없이 내 귓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무언가 활기가 느껴졌지만, 내가 기대하던, 내가 생각하던 그런 곳과는 달랐다. 쿠바는 이런 곳인가? 클래식 카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지만, 세련되어 보이지는 않았다. 도로엔 차들이 지나다녔고, 거리엔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혼잡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나는 쿠바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5. 쿠바에 대해서 알아가는 단계.

  숙소로 잡은 불법 까사에서, 쿠바 사람들의 삶을 보았다. 불법 까사는 다세대 아파트의 수 많은 문들 중 하나를 열고 들어가자 나왔다. 5평이 채 되지 않은 작은 공간. 그 곳에서 한 가족이 살고 있었다. 주인 여자의 남편은 경찰. 주인 여자의 나이는 30대 중반 정도로 보였지만 19살 짜리 아들이 있었고, 동생은 5살 이었다. 내 방이랍시고 내 준 곳에 창문은 없었고, 건넛집의 음악소리, 말소리가 다 들려왔다. 옆 집에서 키우는 새들이 아침을 알리는 그런 곳이었다. 침대는 삐걱대고 있었다.

  지도를 보며 거리를 걸었다. 올드 시티. 길을 따라 가자,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곳이라서 그런지 괜찮아 보이는 카페와 식당들이 늘어서 있었다. 건물들은 하나같이 오래되어 쓰러질 듯 한 모습을 띤 것도 있었지만, 그래도 봐 줄만 했다. 광장에는 여러 무리의 광광객 떼들이 보였다. 나는 조용히 그늘에 앉아 그들을 바라 보다가, 혼자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골목 속으로 숨어버렸다.

  밤의 쿠바 시내 거리는 조용했다. 빛 조차 찾아들지 않는 골목 속으로 다니기가 무서웠다. 늦은 밤의 거리는 차들도 거의 없었기에 혼자 그 거리를 걷고 있자니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왠지 모르게 누군가 나타나 칼로 나를 찌를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 - 쿠바가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

  서점에 들러 책을 보았다. 음반 가게에 들러 음악을 들어 보았다. 쿠바나 뮤직. 나쁘지 않기에 CD를 몇 장 샀다. 길 거리에, 서점에 엽서를 파는 사람들. 그 곳엔 항상 체 게바라가 있었다. 체 게바라는 이제 자본주의의 물결 속에서 좋은 돈벌이 수단이 되고 있었다.

  3peso 짜리 지폐 속의 체 게바라는 3CUC(1CUC=24peso)에 판매되고 있는 좋은 기념품의 하나 였다.[나는 우연히 상점에서 3peso 지폐를 거슬러 받았다] 그리고, 체 게바라의 얼굴이 양각된 동전도 하나의 기념품이 되어 있었다. 쿠바 국민들에게는 그냥 동전에 불과했지만, 관광객들에게는 그것이 하나의 기념품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체 게바라의 얼굴을 가지고 돈을 벌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그것은 가능했다.

  혁명의 흔적은 혁명 광장에서 잠깐 느낄 수 있었다. 드넓은 광장을 가운데 두고, 큰 얼굴들이 탑을 바라보고 있었다. 혁명 탑. 체 게바라의 눈동자도 그 곳을 향해 있었다. 혁명은 그 곳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사진속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하바나의 거센 파도. 듣던대로 거센 파도였다. 도심에서는 바람을 전혀 느낄 수 없었지만, 노인과 바다에서 묘사된 듯 한 하바나 해변에는 성난 파도가 휘몰아 쳤다. 이 곳이 노인이 사투하던 바다라고 말하는 것 처럼. 노인은 결국 빈손으로 집에 돌아왔고, 잠이 들었다. 나도 빈 손으로 그 곳을 거닐다가 싸구려 까사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쿠바의 극장에서 쇼를 보았다. 하바나의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극장으로 몰려와 쇼를 보았다. 어딜가나 그런 부류는 있는 법이다. 그 쇼의 가격이 보통 식당에서 코스 요리로 한끼를 먹는가격의 30배가 넘는 금액이지만, 그런 쇼는 표가 없어서 못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젊은 청춘 남녀들의 모습을 보았다. 세상, 어딜가나 다 똑같은 법이다.

  쿠바에는 시내버스 노선도가 따로 없다. 버스 안에만 노선도가 있다. 외국인들은 버스 노선을 알 수 없다. 버스는 한 번 타는데 0.5peso.[한화 약30원]. 일부러 외국인들은 택시를 타게 하려고 노선도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현지인들이 타는 여객선을 타고 요새가 지어져 있는 하바나 건너편의 카사블랑카로 갔다. 그 곳에서 하바나 시내를 바라보고 버스를 타고 하바나로 돌아왔다. 0.5peso짜리 버스에는 쿠바나의 냄새가 났다. 나쁘지는 않았다. 이게 바로 사람사는 냄새.

  0.5peso짜리 시내버스를 타고 정처 없이 돌아 다녔다. 그냥 이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그리고 거기서 또 다른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그렇게 버스를 타고 사람 사람 곳을 돌아다니며 구경을 했다. 시티투어 버스가 15CUC인가(?)를 하는것에 비하면 100배 이상 싼 금액이니까. 난 그런 여행을 즐겼다.


6. 쿠바 어떤가요?

  쿠바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조금 더 많이. 쿠바는 내 생각 속에서 혁명의 나라 였지만, 그 곳은 정열의 나라 였고, 음악의 나라였고, 사람 냄새 나는 곳이었다.

  한편으론, 체 게바라가 너무나도 상품화 되어있다는 사실이좀 씁쓸하긴 했다. 체 게바라가 과연 그 사실을 알면 어떤 말을 할까?

쿠바는 그런곳이었다. 사람 사는 곳. 라틴 아메리카 속의 라틴 아메리카. 


- 까삐똘리오 옆으로 지나가는 버스


- 까삐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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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이나 타운 입구



- 혁명 광장의 체 게바라










- 하바나 해안도로






- 카사블랑카 언덕에서 본 하바나





 Good Bye Cuba, Adios! Haba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