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담함과 거대함에 대하여.

 아담하다는 것에 대한 기준은 모호하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작은 것을 보면서 사랑스럽다는 느낌이 들 때, '아담하다'라는 말을 쓰곤 한다. 그리고, '아담하다'라는 말 뒤에는 '좋다'라는 말이 덧붙곤 한다. 가령 어떤 도시를 여행한 뒤 누군가에게 그 도시에 대해 말할 때 "아담한 도시였어"라고 말한다면, 그 말 속에는 '좋았다 혹은 괜찮았다'라는 말이 숨어 있는 것이다.

 아담함과 대조되는 말로 우리는 '거대함'이라는 말을 생각할 수 있다. '거대하다'라는 것은 '크다'의 범위를 넘어서는 그 무언가를 함의한다. "거대했어"라는 말 앞에는 흔히 수식어가 하나 더 붙는다. "정말 거대했어", "엄청 거대했어"와 같은 말 말이다. 거대함에서 어떤 느낌이 느껴진다면 아마 '시원스러움'이 아닐까?

 

△ 이르쿠츠크 역(Irkutsk station).

ⓒ 자유인- http://enjoiyourlife.com


 시베리아, 대륙의 중앙에 위치한 도시 이르쿠츠크(Irkutsk)는 결코 작은 도시가 아니다. 하지만, 아담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르쿠츠크 곁에는 지구에서 가장 큰 호수, 바이칼 호수(Lake Bikal)가 있다. 아담함과 거대함이 시베리아의 중앙에 있었다.




2. 이르쿠츠크의 봄.

 모스크바에서 출발해서 유리시아 대륙의 동쪽 끝,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열차는 '이르쿠츠크'에서 멈춰섰고 나는 기차에서 내렸다. 모스크바에서 기차를 타고 4박 5일, 85시간이 걸려서 도착한 도시 이르쿠츠크에서는 완연한 봄날씨가 느껴졌다. 모스크바에서 보았던 맑고 쾌청한 하늘은 사라지고 봄 기운 충만한 민들레 풀시 흩날리는 이르쿠츠크였다.

 모스크바보다 5시간이 빨라진 탓에 시차적응이 잘 되지 않아서 피곤한 것인지, 괜한 춘곤증이 찾아온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나의 몸은 나른했고, 약간은 몽롱한 기분으로 따사로움을 느꼈다.


 

△ 건물 사이사이에 흩날리는 풀씨들. 눈이 내리는 것 같았다.

문 틈 사이로 훔쳐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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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르쿠츠크는 '시베리아의 파리(Paris)'라는 별명이 있다.

 

도시를 거닐면서 과연 '시베리아의 파리'라는 말이 어울릴까를 생각해 봤다. 유럽풍의 건물들, 봄의 햇살, 벤치에 앉아서 쉬고있는 사람들. 이르쿠츠크 기차역의 아담함. 시베리아의 파리라는 말이 어울린다는 생각을 해 봤다. 민들레 풀씨 날리는 봄 기운 충만한 이르쿠츠크.

 어느덧 6월 중순을 지나, 6월 말이 되었는데 그제서야 이곳 '시베리아의 파리'에는 봄이 찾아왔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올텐데, 그러면 여름은 얼마나 되는 걸까? 시베리아의 겨울은 길고 추울 것 같았다.


 

 

△ 햇살 가득한 이르쿠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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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득, 7월이 다 되어서야 이제 막 흩날리기 시작한 풀씨들. '도대체 여름은 얼마나 될까'라는 궁금증이 문득 피어올랐지만, 그 해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3. 리스트비얀카, 그리고 바이칼 호수(Listvyanka, and Lake Bikal).

 바이칼 호수로 떠나기 위해, 작은 봉고차에 몸을 실었다. 이르쿠츠크에서 바이칼 호수가 있는 리스트비얀카를 왕복한다는 작은 승합차였다. 여행자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승합차에는 리스트비얀카에 사는 사람들로 보이는 사람 몇 명과 내가 전부였다. 바이칼로 향하는 차는 큰 나무들로 양쪽에 늘어선 2차선 도로를 빠른 속도로 달려 물가에 닿았다. 

 운전 기사가 그 물가를 가리키며, '여기가 바이칼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기에 나는 차에서 내려 물가를 바라보았다.


 

△ 바이칼 호수. 그 끝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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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호수 저 끝, 수평선은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여기가 지구에서 가장 큰 담수호(淡水湖), '지구에서 가장 큰 호수, 바이칼 이구나'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말없이, 호수를 바라보았다.

 

 다섯 시간이라는 시차 때문인지, 잠을 뒤척였다. 정신이 몽롱한 상태였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상쾌한 바람이 콧속으로 비집고 들어왔다'는 것이다.


 바이칼 호숫가를 걸었다. 사실, 어디로 가야할 지 몰랐다. 여기가 바다일까? 바다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배들이 몇 척 떠 있었다.

 바이칼 호수에 접해 있는 마을에 사는 몇몇 아이들이 나와서 놀고 있었다. 누군가는 자전거를 타고 어디론가 달려갔다. 바람 불어 물결이 찰싹거리고 있었다. 맑고 투명한 물은 바람에 떠밀려 호숫가의 돌맹이를 찰싹찰싹 때렸다.

 해변에 와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 호숫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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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간적으로 물 속으로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 생각을 얼른 접었다. 너무나도 깊어 보였다. 투명한 물은 금새 흑청색으로 변해버렸는데, 그 깊이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내 눈앞에 '심해(深海)' 혹은 '블루홀(blue hole)'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Lake Bikal


 바이칼 호수 저편, 수평선 위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호숫가를 걸었다. 그 길을 걷는 내내 바이칼의 '거대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이르쿠츠크를 관통해서 바이칼 호수를 향해 흘러가는 앙가라강(River Angara) 이르쿠츠크의 풍경.



 

△ 재래시장 주변의 꽃 가게 와 골목 풍경. 풀씨들이 흩날리고 있다.


     

△ 벤치에 앉아 이르쿠츠크의 시간을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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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의 베스킨라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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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칼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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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숫가. 그리고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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