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너 답다.

 우리는 가끔 누군가에게 '너 답다'라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너 답다'라는 말이 쓰이는 맥락은 다양하겠지만 긍정적으로 쓰인다면, '너만의 매력이 있다' 혹은 '너만의 매력이 느껴진다'라는 의미로 쓰일 수가 있을 것이다.

 여행을 하다보면 수 많은 장소와 마주친다. 거대한 도시에서부터 작은 시골마을까지 다양한 공동체와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각각의 도시는 그 도시만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현대 사회의 대다수의 도시들은 급격한 도시화의 과정 속에서 자신만이 가진 역사와 개성을 몰살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여행자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역사와 개성이 사라진'도시에 머무르지 않는다. 여행자들은 '매력적인 도시'를 갈망한다. 

 "너 답다"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곳, '상트 페테르부르크(St.Peterburg)처럼.



2. 6월, 어두워 지지 않는 도시.

 에스토니아 탈린에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는 버스. 왼쪽에는 발트해 핀란드만이 펼쳐져 있었다. 밤 11시에 출발해서 아침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할 예정인 버스는 해가 지지 않는 땅을 달렸다. 새벽 4시, 잠결에 눈을 떴을 때 '핀란드만' 드넓은 바다는 붉게 물들어 있었다. 수평선 저 멀리서 떠오르는 태양 때문인지, 사라지는 태양이 마지막으로 빚어낸 색상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의 오묘한 붉은 빛이 하늘과 바다를 물들이고 있었다. 일출과 일몰, 그 어느것도 아니었다.

 '백야(白夜)'였다. 태양은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 머물고 있었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있는 '발트해 - 핀란드만'은 어두워지지 않았다.


△ 상트페트르부르크(St.Peterburg)의 백야(白夜/White night) - am 00:25, 네바강.

sorurce : The New York TImes



3. 6월 중순의 쌀쌀함. 그리고 아름다움.

 

푸르스름한 옥빛을 띠고 있던 하늘은 어느새 먹구름에 가려져 있었다. 상트 페트르부르크에는 비가 내렸고, 초겨울의 추위가 나를 엄습했다. 6월 중순이었는 데도 말이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고, 숙소로 찾아들어 몸을 녹였다. 비오는 초겨울, 어둠침침한 실내. 나무 냄새와 비 냄새가 방 안에 뿐만 아니라 건물 전체에 가득했다. 호스텔의 공기를 통해 느껴지는 눅눅함은 나를 꿈도 없는 잠 속으로 밀어넣었다. 



 

△ 비내리는 페테르부르크(St.Pegreburg) 그리고, 피의 사원

source : http://enjoiyourlife.com ⓒ 자유인-


 눈을 떴을 때. 비는 멎어있었다. 그러나 아직 잿빛 하늘은 그대로였고,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6월 중순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추위가 나를 엄습했다. 상트페트르부르크의 6월은 이런 것일까. 바람을 맞으며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거리를 헤매던 어느 순간, 문득 하늘을 바라보니 잿빛 구름은 바람에 떠밀려 사라진 뒤였다. 그 자리를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채우고 있었다. 그 사이로 햇살이 내려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거리로 떨어졌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아름다웠다.


 

△ 페테르부르크 운하(왼쪽)과 겨울궁전 앞의 광장(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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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잔성당, 겨울궁전, 네바강, 이삭성당. 그리고 강 건너에 있는 요새와 강가의 공원들.


 잿빛 하늘 아래, 비에 적셔진 도시는 차가웠지만, 햇살이 스며든 도시는 아름답고 고요해 보였다. 강가에는 아직도 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그 바람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어울리는 바람이었다. 우중충한 잿빛 하늘아래에서 불던 바람은 매서웠지만, 햇살 속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휘젖고 다니는 바람은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 시내 중심가에 있는, 카잔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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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표트르 대제의 선택.

 표트르대제는 유럽 진출을 위해, 자신이 머물 곳으로 페테르부르크를 선택했다. 러시아의 수도. 유럽 진출을 위한 전략적 요충지로 이곳을 선택한 표트르 대제. 

 차가운 도시. 그렇지만 아름다운 도시였다. 대륙의 북쪽에 있는 도시답게 차가우면서도 아름다운 도시. 

추위와 잘 어울릴 것 같은 이곳에 '겨울'에 다시 한 번 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 네바강 건너편에서 바라본, '겨울궁전(에르미타주 박물관)'





△ '겨울궁전' 앞 광장(위)와 '겨울궁전(에르미타주 박물관)'에 들어가려고 줄을 선 사람들(아래)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가기위해서는 아침 일찍 가지 않으면, 한 시간 이상 줄을 서야 한다.


 

△ 피의 사원(왼쪽)과 청동기마상(오른쪽)

청동 기마상의 발 아래 밟혀 있는 '뱀'이 포인트라고 한다.


 

△ 네바강에 정박해 있는 범선.


△ 요새로 건너가는 다리.

바람이 세차게 불어 깃발들이 휘날리고 있다.


 

△ 겨울궁전 근처의 광장


 

△ 상트페테르부르크 요새를 거닐며.


△ 상트 페테르부르그에 있는 '모스크바역(Moskvasky vokzal)'

모스크바행 열차들은 여기에서 출발하고, 모스크바에서 온 기차들도 이 역으로 들어온다.